'교육'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77,397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방과후 학교 강사로 퇴직교원을 활용하자는 주장이 퇴직교원단체인 한국교육삼락회(회장 최열곤)가 26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한 교육정책세미나에서 제기됐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이석경 한경대 겸임교수는 학부모 334명, 현직교원 152명 등 총 5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같이 주장했다. 이 교수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퇴직교원을 강사요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에 대해 응답자의 53.33%가 ‘적합하다’고 답변했고, 35%가 ‘보통’, 11.66%가 ‘부적합하다’고 응답했다. 이는 지역사회 자원봉사자(56.24%)보다 다소 낮은 것이지만, 본교교원(43.95%), 학원강사(42.49%), 대학원생(29.78%), 타교교원(28.53%), 전경․의경(8.33%), 군인(6.45%)보다 선호도가 훨씬 높았다. 방과후 학교에 대한 기대가 높은 반면에 현실적인 전망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측면이 강해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과후 학교가 앞으로 점차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편이 66.19%, 반대하는 편이 7.55%로 기대가 높은 반면, 방과후 학교가 현재의 사교육을 대체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28.41%가 비관적이라는 의견을, 27.43%가 낙관적이라는 의견을 나타내 상대적으로 낮은 의견을 보였다. 방과후 학교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중요한 사항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강사자질(79.92%), 교육내용의 질(79.12%), 다양한 프로그램 개설(73.55%), 저렴한 수강료(46.91%), 교육방법(43.93%) 등의 순으로 답했다. 방과후 학교의 교육내용과 프로그램은 특기적성이나 취미활동 등을 위주로 하고 정규교육과정과는 별도로 운영돼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64.57%가 긍정적인 답변을 해 부정적인 답변(15.4%)보다 훨씬 높았다. 또 선생님들의 업무가 과중하게 되고 정규교육이 소홀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방과후학교가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61.45%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심은석 교육부 학교정책추진단장과 김민호 교육혁신위 전문위원(제주교대교수)이 ‘방과후 학교운영의 기본방향’과 ‘미국의 방과후학교 운영사례에 비추어본 발전방안’에 대해 각각 주제발표를 했다.
전북도 현직 교육위원이 폐교 재산을 편법으로 활용해 수천만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26일 전북 군산교육청에 따르면 A(51)위원은 교육청으로부터 2003년12월 연 319만원을 내고 군산 S초등학교 폐교 건물을 2년간 임대했다. A위원은 지역 대학 교수 등 6~7명과 공동투자 형식으로 총 3천여만원을 들여 폐교에 미인가 대안학교를 세우고 학생 10여명과 강사를 모집한 뒤 기숙 학원 형태로 시설을 운영했다. A위원은 그러나 운영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지난해 4월 "폐교재산을 수익목적으로 변경하거나 처분할수 없다"는 계약 내용을 어기고 강사인 B(46)씨에게 6천만원을 받고 폐교 시설과 운영 권한 등을 넘겨 5천400여만원에 달하는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게 됐다. 군산 교육청은 "공유재산 대부계약에 따라 폐교 건물을 다시 임대하는 것은 계약위반 사유"라고 밝혔다. 교육 당국은 그러나 이같은 편법 재임대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채 A위원의 임대 기간이 끝난 지난 4월 폐교를 2억7천만원에 매각 처분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A위원이 돈을 받고 폐교를 넘겼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권한 밖의 일이어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A위원은 이에 대해 "학교 설립 등에 투자된 금액만 모두 3천여만원"이라며 "폐교를 재임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안되는 일이지만 투자액 환수 차원에서 시설 운영권 등을 넘겨주는 재임대 계약을 맺었다"고 해명했다. A위원은 또 "인수금 6천만원중 수중에 들어온 금액은 3천여만원"이라면서 "투자자들이 공동으로 폐교 인수를 결정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인천산곡고(교장 서용석)이 지난 5일부터 빵 무인판매대인 ‘사랑의 징검다리’를 운영해 학생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산곡고에 따르면 한창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적절한 영양 간식을 제공하는 방안을 물색하던 중, 정신지체인 들의 직업재활시설에서 빵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 재활시설에서 일하는 장애우를 돕고 또한 빵 판매 수익금을 불우이웃 돕기에 활용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 직업재활시설의 빵 판매대를 교내에 설치 무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빵 판매는 학생회가 주체가 되어 운영하며, 무인 빵 판매를 원칙으로 하여 양심을 지키는 정직한 생활태도와 가치관 형성 및 산곡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고취시켜 주는 데에 의의를 두고 있다. 또한. 당일 빵 판매액을 정산하여 정산 금액이 부족할 경우에는 적색 깃발을 게양하여 전 학생들에게 공지하고, 그 책임을 물어 빵 판매를 2일 중지하고 있다. 수익금은 연말에 학생회에서 협의하여 불우한 이웃을 돕거나 급식비를 못낸 학생들을 돕는 데에 활용할 계획이다. 빵 무인판매대인 ‘사랑의 징검다리’를 직접 운영하고 있는 시선해 학생부장은 "학생들의 질서의식도 높으며, 자율적으로 돈을 내고 빵을 가져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면서, "서로 간에 믿음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 뭐 있겠느냐. 산곡인 들의 믿음이 더 나아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초석이 되리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산곡고는 올해 신설교로서 12학급 학생 405명(남학생 202, 여학생 203)으로 개교한 학교로 ‘지혜롭게 생각하고 정직하며 질서 있는 산곡인 육성’을 학교경영의 목표로 삼아 ‘실력과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적인 산곡인 육성’의 기치아래 학생들의 학력을 향상하고, 학교의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며, 학부모와 지역사회에 만족을 드리는 신흥 명문고로 자리매김하고자 산곡고 전 교육가족이 정성을 다하고 있다.
학교수업에 대해 초등학생보다는 중고교생이 불만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교육개발원은 교육인적자원부의 의뢰를 받아 전국 67개교 교원평가 시범학교 운영결과를 분석해 26일 서울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교원평가 정책포럼'에서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의 63.5%가 수업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반면 불만족이란 응답은 11.3%였고 25.2%는 보통이라고 응답했다. 수업 만족 비율은 초등 72.8%, 중학 60.9%, 고교 56.8% 순이고 불만족 비율은 초등 7.3%, 중학11.9%, 고교 14.6% 순이다. 학생들은 재미있는 수업을 통한 학습참여 유도, 쉽고 자세한 설명으로 이뤄진 수업 내용, 차별없는 공정 대우, 학생에 대한 칭찬과 격려 등의 순으로 의미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부모들이 보는 자녀의 학교생활 만족도 조사에서는 평균 53.2%가 만족한다고 응답했고 10.2%가 불만족이란 반응을 보였다. 만족 비율은 초등 63.1%, 중학 49.8%, 고교 46.6%였고 불만족 비율은 초등 6%, 중학 10.9%, 고교 13.9%였다. 학부모들은 학교측에 방과후 학교나 특기적성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 인성교육, 학생에 대한 교사의 사랑(칭찬과 격려),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한 주기적인 안내 등을 요구했다. 교원들은 동료 교원의 업무수행능력에 대해 초등 92.1%, 중학 86.6%, 고교 90.8%가 '탁월ㆍ우수하다'고 평가했으나 '미흡 또는 매우 미흡하다'는 평가는 평균 0.7%에 불과했다. 교원들은 교장에 대해 77.9%, 교감에 대해 74.7%가 우수하다고 평가했고, 학부모들은 51.9%가 만족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교원평가로 인한 변화를 묻는 질문에 교원들은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73.9%), 수업준비와 실행을 더 충실히했다(60.3%)는 응답이 많았다. 교원의 50.8%, 학생의 36.2%, 학부모의 53.4%는 교원평가를 통해 교육 주체들간의 상호 이해와 의사소통이 증진됐다고 응답했다. 또한 학생의 52.6%, 학부모의 67.7%는 교원평가 이후 교사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교원들은 평가에 대한 부담감을 묻는 질문에 32.6%가 '해소됐다'고 답한 반면 30.7%는 '해소되지 않았다'고 응답, 여전히 평가에 대해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개발원은 수업평가 이외에 교사의 생활지도 영역에 대한 평가를 추가하고 초ㆍ중ㆍ고교 전체에 담임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학급경영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며 교장ㆍ교감이 교사평가에 참여하도록 해야한다고 제안했다. 교육부는 10월중에 '교원평가 일반화 방안'을 마련해 공청회 등을 거쳐 법 개정을 추진하고 2007학년도부터 '교원평가 운영 선도학교'를 대폭 늘려 운영할 방침이다.
최근 22개국 300여 개의 대학․유학 알선업체가 참여한 ‘해외 유학․어학연수 박람회’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우리 사회의 '영어' 어학연수 열풍을 또 다시 실감케 했다. 이번 박람회는 기존의 선진 영어권인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도 함께 각광을 받았을 뿐 뜨거운 유학 열풍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가 영어조기교육 학령을 현행 초등학교 3학년에서 1학년으로 낮추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최근 국내의 영어유치원 수강료는 한 달에 60만~100만 원 선에 달하고 최근에는 태교를 영어로 하는 프로그램도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다. 어떤 학생영어캠프는 8주에 1000만원을 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교육청 등 비영리기관에서 운영하는 영어연수 프로그램도 2~3주에 50만~100만원이나 되는 수준이고 보니 영어 사교육비 문제로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의 저가 유학․연수 마케팅에 솔깃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국가교육통계정보센터(http://cesi.kedi.re.kr)의 2005년도 교육통계에 따르면 고등학생과 중학생의 유학․어학연수가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감소하고 있는 반면 초등학생 이하의 아동 증가율은 전체 평균 증가율보다 무려 5배에 가까운 증가세를 보인 것도 주목할 일이다. 정부가 생각하는 대로 조기영어교육 학령이 앞당겨지게 되면 이를 명목으로 일찍부터 해외로 빠져나가 귀중한 외화를 낭비하는 사례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다. 당초 정규 교육과정상의 영어교육을 초등학교 3학년으로 낮추었을 때도 정부는 똑 같은 기대를 가졌지만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유학 연령을 점차 낮추는 부작용만 가중시켰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는 교육열을 가진 우리나라 학부모 특성상 조기영어교육 정책은 유치원 과정의 영어 교육 확대와 어학원 등 사교육 시장의 팽배를 부채질하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 뻔하다. 세계화 추세인 오늘날 영어는 필수가 되었다. 그렇다고 남녀노소 국민 모두가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직업에 따라 업무 수행 상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잘 하면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현재 우리의 과잉 영어 교육은 그 필요성 차원을 넘어 사치와 낭비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전 국민을 영어로 주눅 들게 하는 나라, 이제야말로 어린 학생들을 외국으로 내모는 정부나 고위층의 ‘영어 과잉’ 인식에 대한 진지한 자기반성이 필요할 때다. 따라서 정부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조기 영어교육 과정에서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하면 여론 수렴이나 공청회 등을 거쳐 국가 차원의 영어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등 효율적인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대책 없는 '영어 과잉' 정책, 이 정부의 미숙한 교육정책 언제까지 참고 지켜봐야 하나.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과연 대부분 교육적인 것일까? 그렇다. 학생들은 교육을 받으며 미성숙한 인간에서 성숙한 인간으로 커가는 것이다. 학생들은 정식으로 교과를 배우면서, 즉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교과 선생님으로부터 교육과정을 배우며 커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표면적 교육과정이다. 이와 반대 개념의 잠재적 교육과정이 있다. 이것은 학교의 물리적 조건, 제도 및 행정적 조직, 사회 및 심리적 상황을 통하여 학교에서는 의도한 바 없으나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학생들이 은연중에 가지게 되는 경험을 말한다. 이 두 가지 중 사회생활을 하게 될 때 어떤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칠까? 잠재적 교육과정이다. 교육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표면적․잠재적 교육과정을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닌 상보적(相補的) 관계를 맺어 지도할 때 학생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약 10여년 전부터 학교 교실에 등장한 사물함(私物函). 글자 그대로 사적인 물건을 보관하는 함이다. 이것이 학생들에게 범죄의식을 잠재적으로 길러주고 있다면 믿을까? 웬 뚱딴지 같은 소리? 실상은 이렇다. 학생들은 그 사물함을 평상 시 자물통으로 잠궈 놓는다. 자기 물건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가기 어려운 물건들을 그곳에 보관하고 필요한 때 열쇠로 열고 꺼내어 쓴다. 문제는 열쇠가 없을 때 발생한다. 물건은 꺼내야겠고 열쇠는 없을 때 어떻게 할까? 학생들은 두 가지 방법을 쓴다. 한 가지는 사물함 뚜껑 부수기. 또 하나는 자물통 자르기다. 모 학교 어느 학급은 사물함 뚜껑이 모두 부서진 반도 보았다. 생활지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반이다. 나무로 제작된 잠긴 사물함은 발로 자물통을 걷어차면 고리가 쉽게 떨어져 나가는 것이었다. 모 고등학교에서는 사물함이 쇠로 되었는데 사물함 고리가 쇠톱으로 잘라져 나간 것도 보았다. 착한 학생들은 애교심이 있어 사물함을 부수지 않고 학교 기사님을 찾는다. “기사님, 절단기 좀 빌려 주세요?” 아주 당연한 듯 말한다. “왜 그러냐?” “사물함 열쇠를 안 가져 와서요. 자물통을 자르려고요.” 딱한 사정을 듣고 기사님은 절단기[벤치보다 큰 도구. 그림 참조]를 빌려 준다. 여기서 무의식적으로 범죄의식이 싹튼다. 정상적인 해결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범죄인들이 쓰는 수법을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몇 번 사용한 학생은 길거리에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값비싼 자전거, 어느 창고나 출입구의 자물통을 보면 절단기를 생각하고 상상으로 범죄를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범죄학을 전공한 대학 교수의 특강에서 나온 말이다.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고 탐욕이 생기면 실천에 옮기기도 한다고 한다. 잠재적 교육과정은 이처럼 무섭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간단하다. 사물함은 잠그지 말도록 해야 한다. 사물함에는 귀중품은 두지 말도록 지도해야 한다. 중요한 물품은 집으로 가져가야 한다. 범죄 저지르는 연습을 시켜서는 아니 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건을 탈취하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가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교실의 사물함 자물통 없애기,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학교에서 교과시간 이외에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 그것이 교과시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과 성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성, 습관, 문제해결 방법, 인생 살아가는 방법 등은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 자신도 모르게 굳어져 간다. 이것이 인생을 좌우하기도 하니 결코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범죄의 싹을 키워서는 안 된다.
"획일적 교육 때문에 수월성(秀越性-우수 학생들을 키워내는 교육을 말함) 교육이 모두 죽었다"는 김신일 교육부총리 지명자의 발언으로 수월성 교육과 평준화 교육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No child left behind"라고 선언한 부시대통령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도 국가에서 제공하는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 한 명이라도 뒤쳐지는 교육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평등권에 기초한 권리로 모든 민주국가들에서 학생들을 배려해 명시한 조치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럼 보통 아이들보다 지능이 월등한 아이들은 어떻게 교육받아야 하느냐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영재교육, 즉 수월성 교육의 출현이다. 기존의 평준화 교육이 과열된 입시교육을 잠재우는 동시에 암기식·주입식 위주의 수업 폐단을 개선하고, 고등학교간의 학력 차를 줄이는 한편, 대도시에만 집중되는 일류 고등학교 현상의 폐단을 없앴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수정 없는 평준화 정책의 고수로 인해 교육의 획일화와 학교간의 다양화를 사장시켜 오히려 학생들의 실력을 하향 평준화시켰다는 비판이 일고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는 국내외의 교육 환경도 많이 바뀌었고 무엇보다 세계화란 큰 흐름에 발맞추려면 우리 교육도 유연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그 유연성 교육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 수월성 교육이다. 20%의 인재가 80%의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일찌감치 국가의 동량이 될 수 있는 영재들을 발굴하여 교육한다면 이는 국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큰 득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수월성 교육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려면 우선 다양한 분야의 영재들을 정확하게 발굴해내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러려면 '백락이 있은 뒤에야 천리마가 있다'는 말처럼 영재를 알아보는 혜안과 안목을 갖춘 교사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영재라 하더라도 발굴되지 못하면 밭이나 갈다 죽는 천리마처럼 평생을 이름 없이 살다가 재능도 펼쳐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영재를 발굴해냈다 하더라도 이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전문 교사가 있어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하루아침에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 때문에 지금부터 서서히 준비해 나가자는 것이다. 대학들도 창의성과 수월성을 아우르는 전형방법을 계속 확대해 나가야 한다. 정부의 체계적인 준비와 지원 및 보완이 필수적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지금의 과학고등학교나 외국어고등학교의 제도 또한 대폭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이들 학교들의 원래 목적이 수월성 교육을 통한 인재 육성에 있었으나 지금은 단지 명문 대학에 가기 위한 교두보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의식 변화도 함께 뒤따라야 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만 특혜를 준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모든 학생들의 잠재력과 개성을 최대한 계발해 준다는 긍정적인 인식이 필요할 때다. 그렇다고 해서 수월성 교육이 전적으로 머리가 비상한 학생들만을 위한 교육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보통 수준의 학생들에게도 그 수준에 적합한 개별화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이며, 학습부진아들에겐 책임지도제를 적용하여 학습력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할 것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벽면에는 '한 명의 영재가 10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표어가 붙어있다는 것이다. 이는 회사든 국가든 경쟁력을 높이려면 숨은 영재를 발굴해 특수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따라서 수월성 교육을 어느 한정된 학생들에 대한 우대나 특혜쯤으로 여겨 교육의 평등권을 저해한다고 주장하면 이는 큰 잘못이다. 특별한 부존자원도 없고 있는 것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우리 현실에서 창의력과 리더십을 고루 갖춘 고급 두뇌의 양성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국가발전 전략이 될 것이다. 그래야만 치열한 무한 자유경쟁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여러 가지 당면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수월성 교육은 그 어떤 반대논리나 저항에 부딪히더라도 적절한 수정·보완 작업을 거쳐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고3 진학실(또는 교무실)에 매일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들. 그 중에서 하나씩 하나씩 풀어헤쳐 보면 이것저것 다양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 서울산업대학교 학보를 보다가 교양강좌에 “사회봉사”과목이 눈에 띠었다. 대학 교양 강좌에 진정한 사회봉사 정신을 길러 가기 위해 설강된 것이 신입학 학생들의 필수 과목으로 돼 있다고 한 글을 읽고 우리 사회의 진정한 봉사정신이 무엇인지 정말로 바로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고등학교에서 하는 봉사활동이 대학에 가기 위해 하는 울며 겨자 먹기식이라 일을 하는 학생도 신이 나지 않고 일을 시키는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시간수를 메워주는 것 같아 양쪽이 다 씁쓸한 느낌을 받고 있지는 않는 지 의심스럽기만 할 때가 종종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1년에 20시간을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니 교내에서는 이것저것 일을 시킨다. 그래서 학생들은 20시간이 찰 때까지는 잘 하는 척 한다. 그러나 20시간이 넘었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는 스스로 하기를 꺼려한다. 봉사활동은 봉사정신보다 봉사점수를 위한 것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규정된 봉사활동이 학생들에게 진정한 봉사정신을 길러 주기 위해서 마련된 장치이다. 그러기에 이 정신을 잘 살리기 위해서 학생들은 각 학년에서 필요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각 기관으로 사설 단체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간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각 대학에서 봉사활동도 점수로 인정하겠다는 취지를 내 놓기가 무섭게 각 고교에서는 봉사점수를 학생들에게 채우기 위해 교내 봉사활동을 주지시켰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봉사활동에 봉사상까지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그 결과 봉사상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상이 돼 버려 상의 희소성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게다가 봉사시간이 점수화돼 버린 현실에서 법정 시간만 채우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학생들에게 심어주어 학생으로서의 봉사정신은 온 데 간 데 없고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껍데기 봉사점수만 날개치듯 팔리고 있는 실정은 아닌 지. 우리 시대의 진정한 학생상은 없어도 진정한 학생을 빙자하는 학생은 날개치듯이 거리를 활보한다. 학생은 학생다운 맛이 있어야 학생이다하는 구태의연한 생각을 펼쳐내는 순간 어느 누가 자기를 왕따 취급하지 않을까 뒤돌아 봐야할 상황은 아닌 지. 교내에 화장실 청소를 시키고자 하면 학생이 하기를 싫어해 청소가 잘 되지 않는다. 그나마 봉사점수가 다 채워지지 않은 학생이 하기는 하지만 불만과 불평이 여간 아니다. 화장실도 청소 대행업체에게 맡겨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봉사정신은 봉사활동의 배경지식이 되어야 학생들에게 물어 본다. 왜 봉사활동을 하느냐고 하면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고 머뭇거림 없이 말한다. 왜 화장실 청소를 하고 봉사활동 점수를 받으려고 하지 않느냐고 질문을 던짐면 "왜 그런 더러운 일을 하고 점수를 받아야 합니까"라고 답하는 학생도 있다. 쉽고도 편리한 일이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그런 더러운 일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식이다. 자기가 사용하는 학교에 대한 애착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개인적인 이기주의가 훨씬 강하게 풍겨내는 요즘 학생들의 내면의 심리를 읽어 낼 자는 누구인지. 그들에게 바른 길을 안내할 사람은 또 어디에 있는 지. 정답을 찾아낼 힌트는 어디에 있을 지. 봉사활동은 봉사정신을 길러 사회에 나아가서는 인류에게 봉사하는 인물로 발돋음하는 계기를 삼고자 하는 것이다. 케냐의 환경부 차관(왕가리 마타이)이 2004년도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 것도 아프리카에 3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자 하는 그린벨트 운동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신의 바탕은 바로 남을 위한 헌신적인 애민정신의 발로 때문이 아닐까.
서울대가 2008학년도 정시모집부터 현재 각각 10%였던 논술과 심층면접의 비율을 30%, 20%로 그 비중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새 입시제도에 따르면, 대학수능 성적은 지원자격 기준으로만 활용하도록 되어 있고 학생부 반영 비율이 50%로 규정되어 있지만 서울대의 지난해 학생부 실질반영비율은 2.28%에 불과했다. 이처럼 내신의 실질 반영비율이 낮은 상황에서 내신점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비슷한 수준의 지원자들끼리 몰리게 되는 점을 감안하면 비중이 높아지는 논술과 심층면접이 사실상의 당락을 좌우하는 본고사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처럼 서울대의 2008학년도 입학전형요강을 사실상의 본고사 부활로 받아들이는 대부분의 수험생․학부모와는 달리 대학 측은 논술이 학생부나 수능에 비해 비율 자체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동점자를 변별하는 보조적 역할만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변명에 불과하다.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을 줄여 궁극적으로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로 변경한 입시가 학생부와 수능시험, 여기다 대학별 논술과 심층면접이 함께 병행됨으로써 학생들은 학교수업과 수능시험 공부 외에 추가 부담만 더 지우게 되었다. ‘죽음의 입시 트라이앵글’, 허울좋은 새 입시제도는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 이다. 어째서 정부의 현실 인식이 이렇게 무지한 것일까? 덕분에 학원가와 여타 사교육 시장은 신이 나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서점가나 신문 광고란에는 각종 논술 교재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에 거의 발목이 잡혀있는 일선 고등학교 교사들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마땅한 교재나 교수법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 분야와 과목을 넘나드는 논술 강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뿐만 비중 높은 논술을 조기에 준비하는 입시전략을 세워야 하는 점, 통합논술이 한 과목에만 출제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문학, 역사, 철학, 과학 등의 각 분야를 두루 대비해야 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유․초․중학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어떤 입시제도도 세계적으로 뜨거운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식힐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열된 교육열로 인해 우리 교육은 입시에 종속된 교육으로 전락됨으로써 입시제도는 여전히 한국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주된 요인이 되고 말았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공교육은 대학 입시를 위해 존재한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평준화’라는 틀을 억지로 밀어붙이려고 변별력이 없는 고교 자료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라는 제도가 근본적으로 문제다. 그렇다고 논술과 심층면접의 비중을 확대할 경우 그리도 정부가 그리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며 강력하게 수호하려는 ‘평준화’에 길들여진 일선학교에 미치는 파장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가정과 학교 등 사회전체가 해마다 입시 증후군에 시달리며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며 입시위주의 파행 교육으로 치닫는 책임은 바로 정부에게 있다. 경쟁사회에서는 어떤 방식이든 경쟁 시스템이 불가피한 법인데도 ‘지나친’ 경쟁을 없앤다면서 또 다른 경쟁 요인을 생산해 내는 정부의 교육제도가 문제인 것이다. 이제는 ‘인위적인 평준화’ 정책을 비롯한 전반적인 교육제도를 점검하고 현명한 대학입시제도를 마련해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 대학도 ‘학력’ 우수자만을 선발하려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공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는 발상의 전환만이 입시위주 교육에서 오는 병폐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화장실은 실내의 방만큼이나 중요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이 지금까지 우리들의 인식밖에 있었다. 어려서 추억을 더듬어 보면 학교에서 벌의 하나로 화장실 청소를 시키거나 하는 정도로 싫어하는 곳 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는 달리 화장실을 통해 배려하는 마음을 기르는「화장실 교육」이 초,중학교의 교육 현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를 통하여 변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한 매너 등을 전문가로부터 배우고, 청소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물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토야마현에 있는 나메리카와시립 서부초등학교는 2004년도부터 학급 활동 시간 등을 활용해, 「화장실 체험 교실」을 수시로 실시해 왔다. 현재의 6학년은 4학년 때부터 참가하는 셈이다. 1년째는 「이런 화장실이 생기면 좋겠다」라는 테마로, 아동이 이상적인 색채를 서로 이야기했다. 작년 화장실을 개수할 때에는 벽에 붙이는 타일 그림이 실제로 활용되었다. 또, 화장실내의 냄새나 밝기 등도 조사했다. 금년 7월에는 화장실을 더럽히지 않기 위한 매너나 효과적인 청소법 등을 실습했다. 강사로 각지에서 화장실의 디자인을 다루고 있는 설계사무소의 건축사가 초대되었다. 화장실을 쾌적한 공간으로 하기 위한 개수에 스스로 참가하여 아이들은 「더럽히면 스스로 닦는다」등의 매너가 몸에 베었다고 한다. 담당 교사인 하시바는「화장실은 모두 사용하는 장소라고 하는 인식이 매너의 향상으로 연결되고 있다. 청소를 하는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이 길러졌다」라고 이야기한다. 오카야마시에서는 2년전부터 교육위원회가 시내의 초,중학교 각각 1교를 모델교로 지정하여,「청결함」, 「편리한 사용」등을 키워드로 화장실 정비를 진행시켜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이 중 시립코죠중학교는 재해시 등에 지역의 고령자도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하여, 화장실은 누구라도 사용하기 쉬운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했다. 이것을 계기로 왜 이러한 디자인이 화장실에 필요한가를 전교 집회에서 생각하기도 했다. 이 학습에는 도쿄에 있는 화장실 기기 생산 담당자들로 구성한 「학교의 화장실 연구회」가 협력했다. 동시 교육위원회의 이타노씨는 「화장실을 통해 개호 받는 측, 개호하는 측 등, 여러 사람의 입장을 생각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다. 도쿄의 오타구립 쿠하라초등학교에서는 금년 6월에 화장실 생산업체의 사원을 불러 1회 화장실 사용으로 13리터의 물을 사용하는 것도 알게 되어 절수의 중요함이나 환경에 대한 배려를 배웠다. 이러한 「화장실 교육」을 하게 된 배경에는 학교의 화장실이 노후되어 각지에서 개수가 시작되었던 적이 있다. 개수를 계기로 어떤 화장실로 만들고 싶은가를 아이들이 생각하게 하는 등, 친밀한 교재로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치바 대학 공학부 조교수 야나기사와씨(교육 시설 계획)는 「화장실은 단지 일을 보는 공간만이 아니고, 아이들이 편안하게 친구나 지역의 사람들과 교류가 깊어지는 장소로 변화하고 있다. 배려, 유니버설 디자인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화장실을 수업에 활용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요즈음 우리 교육계는 여러 가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자립형 사립학교, 방과 후 학교, 교원평가 등 산적한 문제로 교육부와 교사, 학부모, 교원단체들간에 적지 않은 갈등을 겪고 있다. 이는 우리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인 교사와 학부모간의 진지한 상호의사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불신과 갈등의 결과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30개월 된 큰 아들 윤민, 학교(?)를 보내야 하나? 올해 큰 아들 윤민이가 드디어 학교, 아니 어린이집을 보내기로 했다. 이제 30개월이 갓 넘은 아이를 남의 손에 보내려 하니 온 식구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가 또래의 아이들 속에서 잘 적응 여부의 문제에서부터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자꾸만 아빠의 엄마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여보 도대체 아이를 어디 어린이집에 보내야 될 지 모르겠어요.” “너무 고민하지 말고 집에서 가까운 곳 보내자구!” “집에서만 가깝다고 아이에게 좋을 까요…” “그러면….” “같이 한 번 몇 군데 둘러봐요. 시설이나 선생님, 그리고 식단 좀 보고 결정해요.” “몇 군데?” 아내는 아이를 어디를 보낼까 내심 오랫동안 고민해 왔었다. 물론 아내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몇 달 전부터 자꾸만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께서도 집에서 이제까지 손수 키웠는데, 낯선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자못 걱정이 되시는지 자나께나 손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적응할 거에요.” “그래도 저 어린 것을 한 나절이나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영 마음이 놓이질 않는구나, 너희들은 모두 내 손으로 학교 들어갈 때까지 키워서 그런지 몰라도…” 둘째까지 있는 마당에 두 아이를 모두 어머니께서 보신다는 것이 무리다는 판단이 들었다. 물론 어머니께서도 내심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면서도 두 아이를 감내하시기가 벅찬신지 딱 잘라 보내지 말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학부모님의 마음이 이런 것이구나! 이런 저런 고민끝에 아내와 나는 윤민이를 집에서 약간 떨어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세 군데 정도의 어린이집을 둘러보면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도 해 보고, 주변 시설을 둘러보면서 윤민이가 가서 작 적응하겠다 싶은 어린이집을 결정하게 되었다. ‘정말로 학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게 되었다. 학교에 근무하면서도 교무실을 드나드는 학부모님들을 보면서 별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정작 입장이 바뀌고 보니 정말로 어렵고도 힘든 부분이 바로 아이의 선생님을 대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우리 아이를 이번에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하는데, 아직 너무 어리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너무 걱정마세요. 여기에는 대부분 윤민이와 비슷한 연령 또래의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어하고 힘들어 하는 경우도 있지만, 차츰 잘 적응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우리 부부의 아이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염려는 당연한 것이지만, 일단 믿고 맡겨 보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어린이집을 운영하시는 선생님들이 아이 본인과 우리 선생님들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을 했다. 교육도 사람 사이의 일인지라… 우리 부부는 몇 군데를 둘러보고 나서야 윤민이가 갈 곳을 정할 수 있었다. 일단은 주변 환경과 또래의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 우선 좋은 점으로 판단되었다. 물론 정작 본인의 생각은 물을 수 없었기에 혹시나 다음에 원망의 소리나 듣지 않을까라는 부부의 기우를 뒤로한 채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전날밤 우리 부부는 내내 아이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아이가 입고 갈 옷이며 가방이며 준비물을 꼼꼼하게 챙겨 보았다. 물론 가져갈 것도 거의 없었지만,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걱정스러운 말만 늘어놓고 있었다. “여보 윤민이가 잘 할까?” “선생님이 믿어 보라고 했잖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믿어보자구.” “그래도 저 어린 것이 밥이나 제대로 먹을 지….” 이래저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윤민이는 그저 새끈새끈 숨소리를 내어가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첫날 아침 우리 부부는 윤민이를 어머니께 맡겨 놓고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없다. 개학을 했는지라, 학교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걱정하지 말고 아이들이라 열심히 가르치라고 하시면서 우리 부부를 안심시켜 주셨다. 학교로 향하면서 우리 부부는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윤민이가 잘해야 될텐데라는 생각으로…. 퇴근시간이 다가오고 우리 부부는 서로 전화로 아이의 안부를 확인하기에 바빴다. 윤민이는 어린이집에서 열심히 놀고 먹고 잘 지냈다는 선생님의 확인전화를 받고서야 비로서 안심을 할 수가 있었다. 윤민이가 벌써 어린이집에 간 지 몇 주일이 지났다. 가끔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하곤 한다. “친구 아야!, 선생님 아야!” 하면서 친구와 다투거나 선생님께 혼난 일들을 “아야”라는 말로 대신하곤 한다. 그럴 때면 우리 부부는 한편으로 아이의 표현에 웃음을 던지면서도 내심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런대로 윤민이는 어린이집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 같다. 물론 어린이집 선생님이 윤민이에 대한 좋지 못한 버릇이나 습관 등에 대해 지적해 줄 때는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다. 정작 내 자식 하나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서 많은 아이들 앞에, 그것도 다 자란 아이들 앞에서 교사로서 떳떳하게 설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니, 정말로 교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우리 윤민이를 보면서 자꾸만 되뇌어졌다.
출근을 하자마자 달력을 보니 어느새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69일 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고3 학생들에겐 12년 동안 쌓은 형설의 공을 테스트 받아야하는 막중한 시험이다. 어찌 보면 인생이 송두리째 걸린 시험이기도 하다. 도시 아이들이야 학원이다 과외다 해서 공부할 곳도 갈 곳도 많지만 우리 시골아이들은 오로지 학교밖에 없다. 학교 선생님밖에 믿고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일부 여건이 되는 학생들은 방과후 단과학원에서 영어, 수학 위주의 과외 수업을 받지만 이것조차 안 되는 저소득층의 학생들은 집에서 부모님을 도와 노동으로 소일하는 편이다. 특히 서산·태안 지역은 생강과 감천배, 육쪽마늘의 주산지이기 때문에 일손이 많이 필요한 지역이라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공부보다는 집안 일 돕기를 더 바라는 분이 많다. 실정이 이렇다보니 지역 주민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도 대도시에 비해서 많이 부족하다. 이렇듯 교육 여건이 열악한 시골의 인문계 고등학교가 살아남기 위해선 어떻게든 주어진 여건 하에서 열과 성을 다해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쳐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명문 대학에 많이 보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 주민들의 신망과 격려를 받을 수 있고,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 자꾸만 도시로 떠나는 우수한 인재들도 잡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교내외적으로 실정이 이렇다보니 이것도 말처럼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전인 교육, 학력 향상, 진로 지도란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본교의 처지는 실로 눈물겹다. 이것이 대부분 현재 시골에 소재한 인문계 고등학교들의 비슷한 처지이다. 따라서 밤이 늦도록 비좁은 교실에서 자기와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아이들이 안쓰럽지만 우리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어느 책의 제목처럼 입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겐 숙명이라면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그에 맞서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9월 초순이 되면 고3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들도 초조해지기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다. 2학기 수시 준비 지도하랴, 자포자기해 가는 학생 다독이랴, 신경질적으로 변한 아이 달래랴, 1학기 수시에 합격한 학생 단속하랴 도통 정신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리포터 또한 이렇게 분주하고도 고단한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다섯 번이나 경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나온 세월이 마치 꿈결처럼 멀고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기도 하다. '스톡데일'이란 미국 장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만 불행하게도 월남전에서 베트콩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8년 동안 수십 가지에 달하는 모진 고문을 당하며 죽을 고비도 수없이 넘겼다. 그때마다 스톡데일은 한 명의 부하라도 더 살려서 고향에 돌려보내야겠다는 일념으로 그 혹독한 고문을 견뎌낼 수 있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종국에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스톡데일의 강한 믿음과 신념, 여기에서 파생된 말이 바로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다. 나는 고3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이 전쟁 영웅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눈앞에 닥친 냉혹한 현실을 직시시키는 한편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을 주곤 한다. 그러나 살벌한 입시가 닥칠 때마다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원망하며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현재로선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될 수 있으면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즐겁게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따라 도서관 앞의 민들레꽃이 유난히 붉다. 그러나 꽃이 아무리 아름답기로서니 어찌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에 비견하랴. 지금쯤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뿌리내리기에 여념이 없을 산적 영호, 갱스터 현우, 지각대장 건수, 놀래미 기명이, 꽃미남 명진이 그리고 달팽이, 남생이, 엥꼬, 쭈글이...... 녀석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자기가 태어난 강을 기억하는 연어처럼 아이들도 지금쯤 고3의 힘든 경험을 잊고 부디 학교를 그리워하길..... 소망해 본다.
요즈음 교육계 안팎에서는「교장공모제」를 둘러싼 찬반공방이 뜨겁게 불붙고 있다. 아니 찬반공방이라기 보다는 교육혁신위와 정부당국이 각계각층의 반대의사를 무시하고 이를 연내에 시범학교지정 운영을 시작으로 기필코 강행하려는 방침을 철회하지 않고 있어 이에 반발하는 각 교원단체등의 저지운동이 매우 강하게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그 강도가 더욱 높아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교직을 떠나 있는 필자도 이를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는 사람 중의 하나로서 여기저기 기회 있을 때마다 반대의사를 표명하곤 하는 중이다. 그런데「교장공모제」를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소리 높여 반대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그 주장들은 서로 공통점이 많아 거의 이구동성에 가까운 내용인걸 보면 아마도 그 주장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고 공감대를 널리 형성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 내용들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하여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일일이 밝히는 일은 생략하기로 하고 다만 거꾸로, 혁신위와 정부당국이「교장공모제」를 뜬금없이 들고 나와 이토록 교직사회 뿐 아니라 일반사회 까지 벌집을 쑤시듯이 소란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차분히 짚어 보면서 이문제가 왜 합당치 않은 것인지를 따지고 싶다. 교육혁신위와 정부당국은 현행 교장승진제도가 문제투성이로서 이대로 교장 임용제도를 계속해나가면 한마디로 교육은 실패할 뿐이기 때문에 「교장공모제」가 아니면 교육의 미래와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행 교장 승진 임용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조속히 그리고 과감히 개선 보완하는 일이 논의되고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중론이다. 그런데 여기서 교장임용제도중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현행제도가 있다. 바로「교장공모제」의 와중에 묻혀 그 개념조차도 희석된 가운데 그러나 지금도 소리 없이 시행되고 있는 「교장초빙제」이다. 일부 해당학교의 교장과 학운위원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교원이건 학부모이건 교육정책 당국이건 일선학교이건 관심의 테두리밖에 밀려나 있기 때문에 이 제도의 운영과정에서 빚어지고 있는 온갖 오류와 부당성과 비리등이 알려지지 않는 채 그 독성이 날로 퍼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만약 혁신위나 당국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현행 교장 승진 임용제도의 문제점을 파헤치며「교장공모제」의 당위성을 논할 때 당연히 대두되었어야 할 현행「교장초빙제」에 관한 이야기가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교장초빙제」는 그 이름이 허울 좋을 뿐 당초 탄생부터가 편법이었다. 언제였던가 교장임기제가 시행되고 보니 남보다 일찍 40-50대에 교장 승진이 된 사람이 임기(중임포함8년)를 모두 마치고서도 교원정년(62세)은 아직도 멀었을때 당연히 평교사로 돌아가야 하고 그게 싫으면 명예퇴직을 하도록 하는 권고 규정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욕심은 그리 쉽게 교장직을 물러나지 않으려 하니 자연히「교장초빙제」라는 돌파구를 찾게 되고 또 실제로 그들에게 안식처 역할을 「교장초빙제」가 충실히 해온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리는 것은 모든 초빙교장이 다 그렇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며 이점 오해 없기 바란다. 그러나 필자의 주장이 허황된 소리가 아니란 걸 밝히기 위해서 필자는 정식으로 교육당국에 다음 자료를 요청하는 바 이다. 「교장초빙제」가 처음 시행된 이후 현재(2006.9.1)까지 ▶초빙교장으로 임용되었던 사람들의 명단 ▶초빙교장으로 임용당시의 잔여교장임기 / 잔여정년연수 ▶초빙교장 임기를 마친후의 근무년수 / 근무직위 ▶초빙교장으로 근무한 학교에서의 특기할 만한 경영실적 물론 위자료는 인사상의 대외비임으로 모두 필자에게 제시하지 않아도 되지만 당국에서 이 통계자료를 검토해본다면 「교장초빙제」가 왜 태생부터 편법이었으며, 문제점이 들어났다면 왜 표면화 되고 개선되지 않은 채 오늘 까지도 그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명백히 따져보기 바라며, 만약에 아무리 분석을 해보아도 필자의 주장은 교육당국을 묘욕하기 위한 헛소리임이 들어난다면 필자는 어떤 책임추궁도 달게 받을 용의가 있다. 해마다 학기말(2월말과 8월말)이 되면 교장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정년이 아직 남아 있는 교장들이 예외 없이 기웃거리는 학교가 있으니, 규모가 작고 그 학교 교장이 퇴임하거나 전근되는 학교로서 우선 그 학교 교장과 학운위원에게 접근하여 먼저 「초빙교장제」시행학교 지정을 상부로부터 받아내도록 회유한다. 지정을 받고 안받고는 당해학교의 필요에 의해서 교장의 권한으로 학운위 심의를 거쳐 신청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거꾸로 초빙교장으로 가고 싶은 사람의 욕구에 따라 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하여 현 교장이 지정신청을 하게 되는 웃지 못할 형국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다음 수순으로 학운위로부터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 시도 교육청에 초빙교장으로 추천이 되고 시도교육청에서는 별다른 심사없이 초빙교장으로 임용되도록함으로서 마침내 이 교장은 무난히 원하던 학교에 초빙교장으로부임한다. 부임해서는 물론 다른 교장보다 그 이름부터 다른 「초빙」교장으로서 훌륭한 경영능력을 발휘해서 낙후되어 있던 그 학교를 눈부시게 발전 시켜 놓은 후 영광스러운 퇴임을 하거나 그래도 정년이 남았으면... 뭔가 다른 방도를 찾아서라도 교장을 놓지는 않겠지요. 자 그렇다면 이와 같이 운영되는 제도가 어느 부분에서 어떤 형태로 비리 발생의 소지가 있다는 건가? 우선 대상이 될 만한 학교를 물색하여 그 학교 교장과 학운위원으로부터 지정학교 신청을 해줄 것을 부탁해야한다. 이와 같은 중요한 일들이 간단히 전화로만 가능할까? 더구나 이때 그 학교가 교장초빙의 필요가 없어 거절한다면? 초빙교장학교로 지정이 되고 나면 이제 공모에 의해서 희망자의 신청을 받아 학운위가 추천 심의를 하게 되는데 이때 복수로 신청된 대상자들 중에서 추천의 영예를 얻으려면 희망자가 가만히 앉아있어도 당선이 될까? 더구나 학부모 위원이나 지역위원의 대부분은 「교장초빙제」자체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초빙교장이 된 뒤에도 교장은 학운위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고 만약 눈치만 살핀다면 학교경영에 자기의 소신을 살리기는 어려울 게 뻔하다. 대략 이런정도의 관점을 가지고 「교장초빙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끝으로 또 한가지 교육당국에 질의하겠다. 위와 같이 운영되고 있는 현행「교장초빙제」를 앞으로 검토 없이 계속 운영할 것인가? 아니면 「교장공모제」가 완전 정착되면 자동적으로 폐기 될 것으로 보고 그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운영할 것인가? 그런데 만약 시행하려고 하는「교장공모제」가 거센 반대에 부딛쳐 무산되고 만다면 현행 일반 교장임용제와「교장초빙제」는 아무런 손질없이 무한정 지속해 나갈 것인가? 혁신위와 정부당국이 교장승진임용제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지지도 받지 못하는 「교장공모제」를 내세우기에 앞서 원점으로 돌아가 「교장초빙제」를 포함한 현행 교장 임용승진 제도를 근본적으로 검토하여 그것을 토대로 백년대계를 세우기 바란다.
중국인 도행지 교장선생님 일화가 한 잡지 최근호에 실려 있어 전하고자 합니다. 교장선생님이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시며 이것저것을 보고계셨는데, 학교의 후미진 곳에서 어느 한 아이가 다른 한 아이를 사정없이 때리고 있더랍니다. 그것도 돌로 머리를 찍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순간 당황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꾹 참고 아이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가해자인 학생에게 조용히 “교장실로 따라오너라.”하셨습니다. 교장실에 도착하고 보니 가해학생은 먼저 교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이후에 어떻게 했을까요? 저는 큰 소리로 야단치거나, 아니면 가볍게 손찌검을 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교장선생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주머니에서 사탕을 세개 꺼내더랍니다. “자, 이것은 너에게 주는 첫 번째 상이다. 내가 너에게 교장실로 따라 오라고 했을때 야단맞을줄 알면서도 먼저 와서 기다렸다. 그것에 대한 칭찬의 선물이다. 받아라.” 사탕을 엉겁결에 받아든 아이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몇 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움츠러들었었거든요. 그 다음에 교장선생님은 주머니에서 또 사탕을 하나 꺼냅니다. “이것은 너에게 주는 두 번째 상이다. 내가 너에게 그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했을때 너는 즉시 행동을 멈췄다. 그것은 내 말을 존중하고 따랐다는 증거다. 자, 받아라.” 아이는 놀라다 못해서 눈이 커다랗게 변합니다. “자, 마지막 세 번째 상으로 줄 사탕이다. 내가 교실에 가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네가 그 아이를 때린것은 그 아이가 여학생을 괴롭혔기 때문이라고 하더구나. 비록 폭력을 사용한 것이 바람직하지는 못해도 정의감에 불타 행동했기 때문에 정의의 사나이로서 행동한 것에 대한 상이다.” 그러자 가해학생은 참았던 눈물을 펑펑 터뜨립니다. “교장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절대 그러지 않겠습니다.” 요즈음 체벌문제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많은 일은 아니겠지만 언론의 특성상 침소봉대하여 사건을 다루는 성향 때문에 극히 일부의 일이 자극적으로 터져 나오곤 합니다. 학생이 지각했다고 교사가 이백대를 때렸느니, 남자 초등학생이 여교사를 폭행하였느니 하여 학부모, 교사들의 한숨 소리가 천고마비의 계절처럼 더 높아져만 갑니다. 만일 위 도행지 교장선생님같이 하지 않고, “야, 이놈의 자식들아. 왠 싸움질이야. 당장 교장실로 따라와.”하며 인정사정없이 야단을 쳤더라면 가해학생은 맞는 순간 만큼은 승복을 했을런지 몰라도 진정한 마음속은 인정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비록 제가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고 있진 않지만 요즈음 학교에서 배우는 사람들의 태도가 예전에 비하여 고분고분하지 않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남 얘기하듯 입바른 소리만 한다고 하겠지만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 인격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았으니 학교에 와서 끊임없이 배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을 사람되게 가르치고, 행동할 수 있게 인도하는 것이 선생님들입니다. 그 소중한 일에 푸념만 한다고 나아질 것은 없을 겁니다. 완벽한 聖人이 아니기 때문에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것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꽃으로라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고 하던데 거창한 그러한 말은 몰라도 자꾸 가르치고 타이르다 보면 잠깐의 삐딱한 마음에서 착한 사람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조각가가 재료가 아무리 좋지 않다고 해서 작품 만드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 재료의 특성에 맞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듬고 새로운 구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힘내십시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작년 학년초 어느 날, 학교 교사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소란스럽던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시간이다. 이따금씩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말소리와 아동들의 대답소리가 새어 나올 뿐이다. 그런데 한적한 모퉁이에서 혼자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학생을 발견했다. 그 학생은 인기척에 고개를 휙 돌리더니 활짝 웃는다. “선생님, 교감 선생님이지요?” 부임한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교감이라는 것을 아는 걸 보면 꽤 눈썰미가 있는 학생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3학년 동준(가명)이었다. 또래보다 몸집이 훨씬 컸다. 우량아 콘테스트에 나가면 입상이라도 할 것 같은 오동통한 체격이다. 믿음직스럽고 마음씨 좋은 인상이다. 순한 티가 묻어있다. 하얀 피부에 까까머리였다. “그래, 그런데 왜 교실에서 공부하지 않고 밖에 있니?” “공부하기 싫어요.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공부하기 재미없어도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할 일을 해야 하는 거야.” “교감 선생님 이름도 알아요. 이학구지요?” “와, 독똑하구나! 너처럼 내 이름을 아는 학생이 별로 없는데. 넌 대단하구나.” 내 칭찬에 동준이는 씨익 웃는다. 손을 잡고 교실까지 데려다 주었다. 동준이는 학습부적응아로 특수학급을 오가며 기초학습 훈련을 받고 있다. 일반학급과 특수학급을 오가는 사이에 엉뚱한 곳에서 딴전을 부릴 때가 많다고 했다. 교실 이동 중에 혼자만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 부임인사를 했었는데 담임도 아닌 교감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특히 모르는 사람과 첫 통성명을 할 때 금방 듣고도 돌아서면 겨우 성씨만 생각나곤 하는 내게 비하면 얼마나 우수한 능력인가! 그 날부터 동준이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작년 11월 학교 강당에서는 ‘현악4중주’ 실내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있었다. 키가 커서 맨 뒤에 앉아있던 동준이가 연주회 리플릿을 들고 내게 왔다. “교감 선생님, 여기 학교 주소가요 잘못 나왔어요. ‘김제시’인데 ‘완주군’이라고 돼있어요.” 대단한 발견이었다. 오류를 찾아낸 것도, ‘완주군’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도 신통했다. 그리고 내게 가져와서 확인하는 것도 꽤 용기 있는 행동이기도 했다. “응, 그렇구나. 잘못 썼구나. 야, 동준이 대단한데!” 동준이는 자랑스러운 듯 만면에 웃음을 띠고 싱글벙글 웃었다. 사소한 일이지만 자신감을 키워주는 대단한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 그 뒤로도 만날 때마다 다정하게 인사하고 자기의 관심사에 대해 거침없이 묻고 대답하면서 1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지금은 4학년 2학기, 그 때에 비하면 키도 마음도 무척 커버렸다. 수업 시간 중에 혼자 밖에서 노는 일이 없어졌다한다. 학습 부적응 태도는 많이 개선되었고 학급에서 맡은 우유박스 나르기 일인일책 업무도 꾸준히 잘 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담임선생님 심부름으로 교무실에 왔다. 키도 크지만 체격도 또래들보다는 훨씬 컸다. 반갑게 맞으면서 “야, 동준이 많이 컸구나. 씨름 선수 되겠는데?” “선생님, 저 전주로 전학 갈 거예요.” “왜?” “씨름 배우러요.” 아마도 뭔가 소질을 찾아서 그 기능을 길러 줄 필요성에 대한 얘기를 부모님께서 하셨던 것 같다. 타고난 우수한 체격과 체력을 바탕으로 전주시내 씨름을 육성하는 학교에 보내겠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자녀의 재능을 조기에 발견하여 계발할 필요성을 잘 알고 계시는 부모님인 것 같다. 비록 학습력이 부족하고 또래들과 어울림이 좀 서툴지만 분명 동준이가 잘하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그 능력을 찾으려는 부모의 열린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1년 전만 해도 천방지축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었는데, 규칙이나 질서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 떼쟁이 동준이었는데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달라져 있을 모습을 생각하고 항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또한 개성과 재능을 조기에 발견하여 부단한 교육과 학습을 제공하여 그 방면에 제 1인자가 될 수 있게 교육을 제공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최근 교육부에서 교장 공모제와 관련된 시범학교 실시 운영을 공고했다. 교육 경력이 아직 일천한 교사로서 자못 이런 교육부의 정책이 과연 교육적인지 묻고 싶다. 너무나 일사천리로 많은 교육정책들이 쏟아져 나와서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마치 교육현장이 교육부 교육정책의 시험장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올바른 교육개혁을 염두하고 벌이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일선 학교의 수많은 선생님들의 의견은 무시된 채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교장 공모제와 관련된 일련의 교육부의 정책들은 과연 그 정책이 교육적인지의 여부부터 다시 한 번 점검 해볼 필요가 있으리라는 판단이 든다. 일선 학교 현장의 수많은 선생님들은 교사 승진제도의 폐해에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교사가 아닌 수많은 외부인들이 일정 기간 학교 운영을 맡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은 그야말로 이 땅의 수많은 선생님들의 자존심과 전문성을 무시한 정책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한 번 교장 해 볼까! “해도 해도 너무하네. 이거 교사들을 완전히 무시한 채, 막말로 외부 용역을 불러다 학교를 맡기겠다는 거 아니야!” “이 참에 나도 한 번 교장 한 번 해볼까. 정말로 이거 일선 학교 현장의 여론은 무시한 채 너무 막나가는 것 같아.” “우리 교사들도 대부분 학교개혁, 특히 승진제도에 대해 많은 폐해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런 식으로 학교를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죠. 특히 일정기간 아무런 책임도 없이 왔다가 가는 식의 마치 교장 자리를 전리품 인 냥 취급하려는 정치 상황이 벌어질 것인 뻔한데….” “하지만 분명 승진을 두고 이제까지 정말로 교육적으로 봐서 자격 없는 교장들이 나온 것도 사실 아니야. 우리끼리 막말로 저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교장이 되었을까 라고 할 정도의 인품을 지닌 이들도 있었잖아. 분명 새로운 승진제도나 인사 관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해.” “맞아, 평교사 때는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리저리 딴 점수로 관리자가 되면 정말로 가관 노릇을 하려고 들지.” “정말로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하는 사람이 승진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실력 있고 유능한 교사들이 제대로 검증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아.” 일선 학교의 선생님들의 대부분 승진 제도가 가지는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현행 교육부가 시행하려고 하는 교장 공모제가 가지는 문제를 대부분 걱정하는 눈치였다. 특히 정치적으로 혹은 책임성 없는 몇 년간의 교장 자리 메우기가 자칫 교육을 황폐화 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발언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교장이라는 자리가 가지는 상징성 수십 년간 평교사로서 아이들과 열심히 살다보면 30년 가까이 되어서야 비로소 교장이라는 관리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자격조건이 생긴다. 물론 교감이라는 중간 관리자를 거쳐야 됨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긴 시간 동안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저 묵묵하게 아이들과의 자리를 지켜 나간다. 기껏해야 그 중에서 일부만이 관리자의 자리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교장이라는 자리가 원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수많은 교사들의 인사 적체가 생겨나고,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인사비리가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장의 평교사들이 그저 30년간 아무런 수고도 없이, 그리고 노력도 없이 교장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장은 학교 경영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지는 자리이다. 그만큼 교육적인 안목과 전문성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이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의 교과 지도와 학생들에 대한 생활지도 전반에 걸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야만 비로소 선생님들을 적절하게 지도감독 할 수 있는 명분이 서는 자리이다. 이런 전문성과 능력을 갖추어야만 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문외한인 다양한 인사들을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은 교육을 단지 권력과 자본의 단순한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말로 유능한 교장의 위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지만 밖에서 바라보기에 이제까지 대다수 학교의 교장들은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적당하게 술수를 부려서 교장이 되어 그럭저럭 시간만 때우는 자리로 비쳐진 모양이다. 물론 그런 면도 부인할 수 없다. 학교 현장에 있다 보면 정말로 능력 미달의 교장도 분명 있다. 정작 학교 현장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학교의 문을 열어 교장을 교육과는 문외한인 이들을 받아들이겠다는 의견은 분명 문제가 있다. 우선 학교 현장을 알고 못하고를 떠나서 정작 학교 운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사들의 교과 지도와 생활 지도 등등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고는 도저히 교장으로서의 위상이 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 현장에 적합한 대안은 없는 것일까. 물론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답보상태에 있다. 초빙 교장제도 실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의 핵심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는 아닌 듯하다. 우선 학교 교장자리가 관리직이라는 기존의 틀을 벗겨내야 한다. 교사에서 교감이나 교장으로 가면 학생들과는 거의 무관한 일반 행정직으로 분류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우선 이런 부분들이 제도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교장과 교감도 일정 부분 수업을 병행하면서 교장이나 교감의 이름보다는 수석교사나 관리교사로 그 명칭의 교체를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물론 극단적으로 나아간다면 대학처럼 보직제가 될 수 있겠지만, 보직제를 하기에는 학교의 규모나 교사의 수 등의 문제에서 관리의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쉽게 학교 현장에 적용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따라서 가장 근접한 제도는 수석교사나 관리교사로 그 명칭을 바꾸고, 일정 부분 학생지도와 수업에도 참여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부분들이 점차 학교현장에서 적용된다면 차후에 순환 보직제도 적용 가능할 것이다.
어느 새 가을이다. 가을이 성큼성큼 걸어와 문 앞에 서서 인사를 한다. 하복을 입은 아이들은 춥다며 동복 언제 입냐며 아우성이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선풍기까지 윙윙 돌려대던 때가 며칠 전인데 이젠 창문을 꼭꼭 닫곤 열지를 않는다. 요즘 들어 대부분의 교사들은 ‘교사란 무엇인가?’ 하는 자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 집단과 관련된 기사가 나오면 온통 난도질을 당하는 현실 속에서 교사들은 그저 땡감 씹는 벙어리가 되어야 한다. 교원평가와 관련해서도 수많은 사람들은 ‘평가’란 피상적인 말에 현혹되어 평가를 거부하는 교사집단을 매도하고 있다. 평가의 기준도 모호하고, 평가의 내용도 모호한 상태에서 교원평가를 받으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처럼 생각하는 언론들의 보도를 보고 있자면 그저 답답할 뿐이다. 혹자들은 ‘자신 있으면 왜 평가를 못 받아?’ 하고 묻곤 한다. 그런데 그 혹자들이 생각하는 평가는 자신이 학교에 다닐 때의 단순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준을 모래알처럼 제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인성’에 대해 이야길 하고,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어떤 사람은 ‘아이들 지도’에 대해 이야기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지식’에 대해 이야길 한다. 그런데 교육이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살펴가며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부대끼며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이다. 탑을 쌓듯 쌓아가다 보면 흠이 생기기도 하고, 간혹 한쪽 귀퉁이가 무너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흠을 메우고 쓰러진 귀퉁이를 다시 세워가며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 교육이다. 이 교육은 비단 학교 현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학교, 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학교에서의 교육이란 그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교육 하면 학교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다 어쩌다 흠집 나는 일이 발생하면 벌 떼처럼 일어나 개미처럼 물어뜯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교육현장에 있는 모든 교사들이 그런 것처럼 싸잡아 비난의 고조를 높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간다. 실제로 교육현장에 있으면 말없이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하는 선생님들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용돈을 털어 용돈을 주기도 하고, 혼자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먹을거리를 남몰래 주기도 하는 선생님을 볼 수 있다. 헌데 우리 사회는 먹잇감을 사냥하는 사마귀처럼 어쩌다 터지는 일부 교사의 잘못된 행태를 전부인양 몰아세우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성과급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요즘 한 교원단체에서 성과급 반납 투쟁을 하고 있다. 수백억 원의 성과급을 반납하겠다고 하자 각 교육청에선 받지 않겠다며 실랑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성과급 반납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럼 성과급이란 게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보면 성과급에 대해, 작업의 성과를 기준으로 지급하는 임금이라고 적혀 있다. 말 그대로 성과급이란 어떤 일에 대한 성과의 결과물에 대한 임금이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성과물이란 물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인성지도가 그 성과물로 나타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밖의 다른 것도 성과로 측정할 수 없다. 그런대도 교육부는 억지를 쓰다시피 성과급이란 명목의 돈을 줌으로써 교직을 혼란으로 몰아놓고 있다. 또 객관적 기준 없는 성과급 배분도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음을 알 터인데도 몰아붙이는 것을 보면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한 예로, 대부분의 학교에선 성과급을 줄 때 호봉 순으로 순을 매기어 등급을 준다. 그리곤 일부 학교에선 똑같이 배분하기도 한다. 말이 성과급이지 한 마디로 성과와는 상관없이 성과급이 배분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어떤 교육행위를 성과물로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형의 것을 유형으로 것으로 환산하여 그 결과를 매긴다면 주관적 잣대가 개입하기 마련이고, 이는 일선 현장에서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땀을 흘리는 많은 교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일도 그렇겠지만 교육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이 없이 성급한 결과만을 얻고자 한다면 꼭 부작용이 따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 교원평가를 강행하고, 성과급제를 밀어붙이는 것이 자신들의 행정적 성과를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평가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기다리며 좀 더 나은 방법을 찾는 지혜도 생각해봤으면 한다.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이 법안 마련 과정에서 논란을 빚었던 학교촌지근절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법안은 촌지를 준 학부모와 받은 교사에게 오고간 금품(현금, 유가증권, 숙박. 회원. 입장권)이나 향응(음식. 골프 접대, 교통. 숙박 편의)의 50배에 달하는 과태료를 똑같이 물도록 규정했으며, 다만 촌지 제공․수수 학부모와 교사가 자진 신고할 경우 처벌을 면하도록 했다. 제정안은 또 16개 시도교육청에 ‘학교촌지근절대책위’를 설치해 촌지 수수행위 신고 접수 및 조사, 수수 관련자 검찰고발 및 관련기관 통보 등을 전담토록 했다고 한다. 이제 촌지는 범법행위로 각 시도에 신고 접수 및 조사, 수수관련자 검찰고발 및 관련기관 통보 등 전담함으로써 교사 전체가 촌지를 상습적으로 받는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인식을 제자들에게 나아가 전 사회에 심어주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나는 촌지 이야기만 나오면 먼 옛날 새내기 교사 때 겪었던 가장 멋지고 값진 촌지가 생각난다. 이제는 머나먼 동화 속에 나오는 촌지 이야기이다. 30여 년 전 일이다. 그 당시에는 새마을 운동과 전국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서정쇄신으로 군대식의 학교 운영이었다. 교감선생님들도 학급을 맡아 학생지도를 하였다. 그러나 교감선생님의 업무가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교감 선생님이 맡은 반을 다른 반과 합반을 하여 학생지도를 하였다. 그러다보니 한 학급의 학생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 학급을 경험도 없는 새내기 교사인 내가 맡았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는지는 요즈음과 같은 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장난을 즐겨하고 활동량이 많은 3학년 학생 87명이 좁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콩나물시루 같았다. 공부시간도 시간이지만 쉬는 시간의 생활지도는 더욱 어려웠다. 선생님이 무섭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챈 녀석들은 기고만장하였다. 그러다보니 연신 사고가 나고 다치고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월요일부터 소리 지르다 보면 금요일쯤이면 목이 쉬어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생활을 하던 5월 어느 날 오후, 글씨를 읽지 못하여 나머지 공부를 하던 녀석이 교장실에 결재를 맡으로 간 사이에 장난을 치다가 유리창을 깨고 말았다. 그것 아니라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루해가 모자랄 판인데, 또 유리창까지 깨어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의자 위에 올려 세우고 긴 회초리로 종아리를 몇 대 때렸다. 화가 조금은 풀렸다. "오늘은 나머지 공부 그만하고 집으로 간다. 책보를 잘 챙기도록 해. 그리고 오늘 배운 것 집에서 써 가지고 와. 알았어?" "……." 대답이 없다. "빨리 집으로 가!" 교실 밖을 나갈 때 보니 종아리가 벌겋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미안했다. 화가 나기는 하였지만,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교실 모퉁이를 돌아가는 녀석을 다시 불러서 교실로 들어오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누런 찌그러진 양동이에 찬물을 가득 담고 종아리를 담그게 하였다. 종아리를 주물러 주었다. 녀석은 의아한 듯 놀란 눈으로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미안하다. 내가 화를 참지 못해서 너를 심하게 때렸구나!" "선생님, 괜찮아요. 나 별로 아~안 아팠어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앞으로 좀 더 우리 열심히 잘 해 보자."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밖으로 나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때, 교실에 웬 거지가 들어와 있었다. "웬 일로 교실에 들어 오셨지요?" "아~, 저 철이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철이 아버지는 남루한 옷에 동냥자루를 등에 매고 있었다. "아, 그러세요. 그런데 어쩐 일로 ……." "선생님, 절 받으셔유~." 다짜고짜로 교실 바닥에 큰 절을 넙죽하는 것이다. 나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엉겁결에 엎드려서 같이 절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 우리 아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너무 마음씨도 착하시고, 공부도 열심히 잘 가르쳐 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 막걸리 한잔 사 드리려고 왔구먼유~. 저는 아랫동네 동냥을 하러 갔다가 오는 길이여유~." 선생님 생각을 해주는 마음이 너무 고맙기도 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흔쾌히 학교 옆 동네 막걸리 집으로 갔다. 그날의 막걸리 맛은 지금까지 먹어본 어떠한 음식보다도 가장 값진 선물이며 촌지였다. 나는 학교와 교사의 촌지 문제가 매스컴에 보도될 때마다, 항상 새내기 교사 때의 촌지가 생각이 난다.
교장선출 보직제 도입을 하겠다고 계속 강조하면서 전교조에서 펼치는 논리중의 한가지, '선출된 대학총장이 임기가 끝나면 다시 교수로 돌아오는 것처럼 초,중,고에서도 교장을 교사들이 선출하고 임기가 끝나면 다시 평교사로 돌아오는 시스템이 교장선출보직제이다.'라는 것이다. 대학교수와 교사를 직접 비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교수와 교사는 하는일이나 위치 등이 많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교장선출보직제는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 며칠전 대학교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대학총장이 다시 교수로 돌아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총장이 되기 위해서는 보통의 노력으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사실 대학교수나 선생님들이나 학생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 우대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학교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대학총장에 출마할 의사가 있는 교수가 있다면 그 교수는 여러가지로 다른 교수들보다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 노력이라는 것이 단순히 강의를 잘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총장이 되기 위한 노력입니다.' '예를 들면 교수사이에서 일어나는 각종 경조사에 남들보다 더 참가하고 부조금도 남들보다 더 내고, 그래야 됩니다. 사실 학생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지도 잘한다고 그 교수가 총장되는 것 아니거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은 나중에 총장선거에 출마해도 당선되지 않습니다. 학생들 잘 지도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총장이 될 듯한 교수와 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야 나중에 보직이라도 하나 맡을 수 있으니까요. 대학교수들 사이에서 소위 '파벌'이 생기게 됩니다. 저는 이런것이 싫어서 아이들 잘 가르치고 가급적 교수로서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그런쪽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대학총장을 뽑는데도 이런 문제가 있는데, 교장을 교사들의 투표로 뽑는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또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공모교장을 뽑는다면 그야말로 문제점 투성이가 될 것이다. 문제가 나타나서 검증이 된 것을 추진하고자 하는 전교조와 교육혁신위원회, 그리고 교육부의 행동은 중단되어야 한다. 결국은 교단을 갈등과 반목의 장으로 몰아넣는 꼴이 되고 말것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윤정일 교수(사진)가 23일 제38대 교육학회장에 선출됐다. 임기는 내년 1월부터 2년이다. 윤 차기회장은 서울대 사범대학장, 서울사대 부설 교육행정연수원장,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장, 한국교육행정학회장을 역임했다. 한편 한국교육학회는 김신일 교육부총리의 입각으로 공석이 된 37대 회장의 잔여임기(12월 31일까지) 김재복 부회장이 회장권한대행을 맡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