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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어린이들의 투표참여 운동이 지상파 방송에 소개되면서호응을 얻고 있다. 수원 영화초교(교장. 오세건)는 ‘영화어린이나라’ 3부 임원들이 펼치는 ‘경기도교육감선거 투표참여운동’이 지난 3월 30일 밤 KBS-2TV 시사360프로그램에 소개되었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감선거, 초딩이 나섰다’라는 제목의 이날 방송은 교육감 선거 투표율이 매우 낮을 것이라는 소식에 ‘영화어린이나라’ 출범 후 처음 열린 3부 임원회의와 행정부 회의에서 ‘투표참여운동’을 의제로 채택한 배경과 모든 가정에 가정통신문 보내기, 재래시장을 돌며 전단지 돌리기, 부모님의 투표 참관하기 등 실천 과정을 자세하게 다루었다. 이번 운동을 제안한 어린이대통령 나운영(6년.12세)양 등 여러 임원들의 인터뷰와 어린이들의 권유를 받고 투표를 약속하는 어른들의 즐거운 표정도 함께 화면에 담았다. “투표권 행사는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첫 번째 권리이자 의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직접 나섰다”며 많은 어른들이 격려를 해주셔서 기쁘지만 무엇보다 투표율이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당차게 말해 많은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투표참여운동은 오는 4월 9일 OBS-TV(경인방송)의 경기도교육감선거 특집방송에도 소개될 예정이다. ‘영화어린이나라’ 임원들은 선거관리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지난 21일부터 방과후 하교길에 인근 재래시장과 주택가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며 투표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으며 지난 달 19일에 이어 7일에도 모든 가정에 가정통신문을 보내 투표에 꼭 참여할 것을 부모님과 약속하는 한편 투표소 체험 문예행사도 함께 실시한다. 한편 영화초는 경기도교육감 선거 투표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학부모총회에서 교육감선거 안내영상을 소개하였고 가정으로 보내는 모든 가정통신문과 주간학습안내에도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문구를 계속 싣고 있다. 지난 3월 출범한 ‘영화어린이나라 제도’는 우리나라 헌법에 명시된 3권분립 제도를 어린이회 운영에 도입하여 어린이대통령, 의회의장, 대법원장 등 3부대표를 직접 선출하고, 어린이들이 지켜야 할 약속이나 활동내용을 스스로 정하고 실천하면서 반성, 견제도 하는 제도로 매니페스토 협약식, 국회의사당 방문에 이어 오는 7월엔 ‘저탄소 녹색성장’을 의제로 영어로 진행하는 모의UN총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퇴직을 하고도 80을 넘긴 선배들이 기라성인데 언감생심 내가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은 분명 주제 넘은 일이다. 나는 2000년 이른바 햇볕정책을 표방하던 김대중 정부가 정년을 단축함에 따라 어느 날 문득 준비되지 않은 채 62세의 피 끓는 나이로 교직을 떠난 몸이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나는 날개가 부러진 비둘기처럼 휘청거리는 몸으로 거리를 배회했다. 생뚱맞게 지난 동료들에게 안부를 묻기도 하고 생각나는 제자들에게 전화도 해봤지만 그들로부터 나의 헝클어진 정서를 보상(補償)받을 수는 없었다. 주변은 너무도 고요했고 나는 그 하얀 공백의 중심에 있었다. 누구라도 내 손을 잡아주며 위로 한마디라도 건넨다면 금세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고 내 명치 끝을 밀고 올라오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서운함을 누를 수가 없었다. 재직시절, 나와 너무도 가까이 교분을 하던 교육동지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하고 형님 동생 하면서 혈친(血親)처럼 서로 돕고 아껴주던 선후배들도 없어졌다. 청년교사 때부터 내가 문턱이 닳도록 다니던 교직단체도 점점 멀어져 가더니 지금은 피안(彼岸)의 저쪽 침침한 시야 언저리로 멀어져 갔다. 내 모습은 마치 무장해제된 병사처럼 추레해졌고 내 주변은 동공화(洞空化) 현상이 된 것처럼 고즈넉하고 쓸쓸하기만 했다. 오랜 공직생활에서 묶였던 ‘룰’이 해제되는 어떤 해방감을 느낀 퇴직자들은 새로 집단을 만들어 해외여행을 가기도 하고 삼삼오오 떼 지어 경향 각지의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식도락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물질을 수반해야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오히려 그런 체험을 하고 나면 마음이 더욱 허허로움을 느끼게 되고 여행 중 세계 여러 곳의 화려한 풍물을 보고 돌아오면 다시 엄습해오는 정신적 가난의 ‘쓰나미’를 주체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모두, 40여 년간 오로지 과업지향적인 생활에 찌든 나의 자승자박이랄 수밖에 없다. ‘재직 중에 직장생활을 포함해 좀 더 삶에 대한 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있을 때 마침 현직 시절 우리들과 더불어 교육현안을 논하고 교육정책을 구안하던 새교육에서 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됨에 천학비재(淺學非才)한 내가 졸필을 들게 되었다. [PAGE BREAK] Turning Point 무사분주(無事奔走)의 나날, 인생을 세 등분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창시절은 전반기요, 재직시절은 중반기요, 퇴직 이후는 후반기라고 말한다. 전반부는 ‘초심’으로 지내고 중반부는 ‘열심’으로 살고 후반부는 ‘뚝심’으로 살아야 한다며 세칭 삼심론(三心論)을 제기하기도 한다. 초임부터 교직은 바쁘다. 거창한 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을 구현하느라 바쁜 것이 아니라 교수 • 학습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할 수 없고 거기에다 매월 각종 교내외 행사가 있기 때문에 잡다(雜多)한 일들로 교단생활은 하루도 영일(寧日)이 없는 곳이다. 그런 교직의 업무 특성 을 두고 어떤 사람은 무사분주(無事奔走)라고 한다. 일은 없는데 바쁘다는 뜻이다. 게다가 교사로서의 품위를 유지해야 하고 학생들과는 물론 학부모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유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정생활도 영위해야 하기 때문에 1인 다역(多役)을 하는 경우가 많다. 30여 성상을 그런 틀 속에 있게 되면 ‘매너리즘’에 빠져 자기 성찰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날마다 상황이 바뀌는 아이들과 지나다 보면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학교 행사에 매달리다 보면 어느새 해가 바뀌어 버린다. 방학은 방학대로 바쁘고 휴일은 휴일대로 바쁘다. 그런 환경에 익숙해버리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생활 감각조차 잃어버리기 쉽다. 교단에서 새치가 하나, 둘 늘다가 귀밑머리가 하얗게 물들면 휭 하니 50줄을 넘기고 이순(耳順)을 바라본다. 교단에서 회갑을 보내고 나면 바로 코앞이 정년이다. 관자재(觀自在)할 시간을 찾아, 한 번 자신이 걸어온 길을 성찰할 만한 시간이 없다. 그래서 자신의 생활에서 성찰의 시간을 마련하는 게 좋다. 그것이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되기 때문이다. 거기가 바로 인생의 정점이요, 반환점이요, 또한 한 ‘텀’(term)을 설계하고 걸어가야 할 출발점이기도 하다. 불가의 경문에 반야심경(般若心經)이란 것이 있다. 8만 4000 법문 중에 기본이 되는 것으로 불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자료이다. 거기에 실려 있는 270자 중에서 첫 번에 나오는 말이 바로 ‘관자재’(觀自在)이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자주 돌이켜 봐야 했지만 우리는 그럴 사유의 시간을 향유하지 못했다. 그런 시간은 향후 내가 독자적인 행보를 통하여 제2의 입신을 해야 할 중차대한 시점이랄 수 있으며 자신의 삶에 쉼표를 찍는 일에 견줄 수 있다. 그럴 때 이곳, 저곳에 해두었던 메모도 정리하고 일기를 쓴 사람이라면 숱한 나날의 이야기를 모아 퇴직할 때 문집을 만드는 데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직생활에서 따분했던 시간에 끼적거려 두었던 것이나 아이들을 통해 감동을 받았던 순간의 사연들을 모으면 훌륭한 수필집이나 시집도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료는 버리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필요한 것이다. 다만 그 기회가 다를 뿐이다. 위기는 항상 기회를 동반한다. 위기는 교단이라도 예외는 없다. 어떤 과업을 수행할 때 자료가 간절히 필요할 때가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 방법이 막연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자력(自力)이 부족하면 자료(data)를 동원해야만 한다. 자기 성찰의 시간에는 제자들이나 동료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도 정리해야 하고 이런저런 행사 때 찍어두었던 사진이나 자질구레한 기록물도 간추려 놓아야 한다. 우리는 오래도록 소각문화에 젖어왔기 때문에 없애는데 익숙해 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필요한 것이다. 언제,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효용가치가 달라질 뿐이다. 정상에서 관자재(觀自在), 흔히 인생의 정점을 직위로 해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건 잘못된 관점이다. 교장이든 교감이든 교사든 그것은 제도의 이름에 불과하다. 그동안 나를 구속했던 조직의 틀에서 한 걸음 물러나 아주 담담한 마음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면 보는 이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우물 안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근시안(近視眼)으로 차단되었던 것들이 드러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IT, ET, NT 등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의 터전과 전혀 다른 무한경쟁의 외계(外界)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일상적인 ‘콘셉트’가 다르고 의식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살아가는 삶의 형태가 다르고, 인간관계가 다른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의 오랜 전통가치였던 유교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논리가 맞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인문학에서나 통하는 말이지 자연과학에서는 옛것을 연구해 거기서 새로운 지식이나 도리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야, 이런데도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강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그곳에 함부로 뛰어들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도외시해도 안 된다.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의 위치에서 바라보지만 관심조차 저버려서는 안 된다. 어쩜 그것은 내가 훗날 다시 배워야 할 새 학습의 장(場)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PAGE BREAK] 내가 만든 생애곡선 자신이 현존(現存)하는 실존적 시간, 성경의 창세기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계시다로부터 시작해 처음에 빛이 있으라 하심에 밤과 낮이 되고 흑암이 혼돈할 때 물과 뭍으로 나누어 바다와 궁창을 만들고 갖가지 동물과 사람을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 시간을 도형화하기는 어렵지만 다음과 같은 선분으로 표시할 수 도 있을 것이다. ——————— ④ ———————— (time) ① ② ③ ⑤ 보통, ②부터 ③까지의 시간을 ‘역사적 시간’(Historic time)이라 하고 인간이 출생과 더불어 무덤까지 살아온 생애를 가리킨다. 이른바 생로병사의 과정을 말하고 기독교에서는 알파와 오메가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을 많이 둔다. ①부터 ⑤를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시간(Eternal time)이라 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시간이다. 역사적 시간을 벗어난 시간이다. 불가에서는 이 부분의 시간을 전세, 현세, 내세로 해석해 중생은 끊임없이 삼계육도(三界六道)를 돌고 돌며 생사를 거듭한다는 윤회론(輪回)론에 이른다. ④는 실존적 시간(Exist time)이다. 역사적 시간 안에서 현재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시간을 말한다. now and here(현재 그리고 여기)를 지칭하는 시간이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제자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이 시간을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고 했다. 제자들이 스승에게 “일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였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그는 “지금(Now)”이라고 했다. 다른 제자가 “그럼 가장 소중한 장소는 어디였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거침없이 “여기(Here)”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는 즉시 “당신(You)”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무척 새롭다. 신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을 할애, 했다. 그런데 그것이 특정한 인물과의 만남이나 시대적 상황, 혹은 자신의 노력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그런 나 자신은 여러 형태의 시간 속에서 유전(流轉)을 거듭하며 알게 모르게 변화를 맞게 된다. 특정한 시대를 만나서 변화를 겪기도 하고 어떤 상황을 맞나 변화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변화를 주는 것은 어떤 사람과의 ‘마주침’(encounter)에 따라 앞서 제시한 시간이라는 수평선(水平線)이 다양한 형태의 곡선으로 굴절을 거듭하게 된다. 성경에 보면 한낱, 어부에 불과했던 ‘시몬’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를 만남으로 인해 의심, 배신 등 온갖 우여곡절을 겪다가 마침내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하면서 베드로가 된 사건이나 베토벤이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쥬리에타와의 만남을 통해 월광 소나타를 작곡하게 되는 경우, 한석봉이 떡장수 어머니를 만남으로 희대(稀代)의 명필이 된 사실(史實)을 알 수 있다. 교직에서도 어떤 교장, 교감, 학년부장, 심지어는 이웃 반 담임을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교직곡선(敎職曲線)이 달라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먹기를 즐기는 학년부장을 만나면 매일 오후에 군것질을 하게 되어 비만이 되기도 하고 교수 • 학습은 팽개치고 경마, 화투, 카드놀이에 빠진 동료를 만나면 잡기에 빠지게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을 옛날 성현들은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말로 썼다. 서울대공원에서 만난 노친들, 퇴직자들도 다름없이 유유상종(類類相從)하게 된다. 경기 과천에 있는 ‘서울대공원’에 가면 여러 퇴직자들을 만나게 된다. 입장료가 무료인데다 잘 정돈된 산책로가 있고 명산 청계산(淸溪山)이 어울려 경관이 좋기 때문이다. 그 길을 수도승처럼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고개를 숙인 채 혼자서 걷는 사람도 있고 학교 동창이나 동료들이 그룹을 지어 정치, 경제의 현안을 논하고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며 시끌벅적하게 걷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유난히 내 눈이 끌린 집단이 있었다. 보아하니 모두 70줄은 넘긴 것 같고 서로 기탄없이 반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면 학교 동창인 듯했다. 종종 박장대소를 하며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어디쯤에선가 원두막에 자리를 잡는다. 옹기종기 대여섯 명이 무릎을 마주하고 앉더니 프린트물을 나누어 갖는다. 그리고 그중에 한 노인이 선독(先讀)하면 나머지 친구들이 따라 읽는다. 틀리면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하고 군데군데 중요한 부분은 해석도 해준다.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또 한 노인이 배낭에서 종이를 꺼내 나누어 준다. 역시 여러 번 소리 내어 낭독하고 설명을 했다. 한문이었다. 거기서 마치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다른 노인 한 사람이 생활 중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묻자 하니 매주 수요일에 모여서 등산을 하고 친구 중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통해 여러 가지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모두 교직에서 퇴직한 교사들이었다는 점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근대국가의 권력 행사로서의 단발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도 역사에 얽힌 머리카락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아무리 임금이 앞장서서 상투를 싹둑 잘라 단발의 의지를 공표했다 해도,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유교적 덕목을 소중히 여겨온 조선의 백성에게 1895년 말 시행된 단발령은 외세의 침략을 신체에 새기는 계기였을 따름이다. 오죽하면 머리카락을 잘리느니 차라리 목숨을 내놓겠다고 절규하면서 단발에 저항했을까. 그만큼 단발은 무력 앞에서 근대를 강요당하는 자의 치욕을 상징했던 것이다. 두루 알려진 바와 같이 머리카락을 소중히 여기는 관념은 중국이나 한반도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나아가 동양만 그런 것도 아니고, 말하자면 전근대적인 세계는 다 그랬다. 게르만 국가에서도 머리를 자르는 것은 굴욕이었기 때문에 삭발은 죄인이나 음란한 여자를 벌하는 명예형(범인의 명예나 자격을 박탈하는 형벌)이었다. 농노가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할 때도 머리를 빡빡 깎았다. 요컨대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은 지배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방책이었던 셈이다. 서양이라고 애초부터 단발의 장점을 속속들이 알고 실천하고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큰 코에 피부가 하얀 그들도 알고 보면 봉두난발(蓬頭亂髮)의 족속이었다. 그런 주제에 남보다 한 발 앞서 단발을 시행했다고 어깨에 힘을 줬다. 그렇게 좋으면 자기들이나 할 것이지, 머나먼 곳까지 찾아와 문명개화라는 거창한 이념을 내세워 굳이 단발을 강권하거나 강요한 속내가 제국주의적 침략의 욕망에 있음을 누가 모를까. 강제적 단발에서 자발적 단발로 왕의 단발은 마치 시대의 변화에 부응한 자발적인 행위라는 듯이 포장되었지만, 거리에서 강제로 상투를 잘린 백성에게 단발은 폭력에 지나지 않았다. 남성의 단발은 힘없는 나라의 사내들이 겪어야 할 부끄러움이자 좌절의 경험이었을 터였다. 이렇게 처음부터 근대 국가의 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던 남자의 단발은 이후 학교와 군대 같은 근대적 제도를 통해 정착되어 간다. “4월 5일에 회장은 오십여 명 신학생을 인솔하고 읍내에 가 일제히 단발을 시키고 모자를 씌운 후에 대(隊)를 지어 학교에 왕(往)하였소”(이광수, 농촌계발, 1916∼1917년)에서 보듯이, 단발은 어디까지나 ‘하는’ 것이 아니라 ‘시키는’ 것이었다. 남자에게 단발은 점차 근대를 맞이하기 위한 통과의례의 하나가 되었다. 개명한 남자들은 스스로 머리를 잘랐으며, 단발에 대한 거부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굴욕이 아닌 동경의 시선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잠깐 여기서 단발령의 대상이 남자였음을 짚고 넘어가자. 남자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는 것은 근대국가가 ‘국민’으로 통합하고자 한 맨 처음 대상이 남자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여성은 아직 ‘국민’에 속하지 않는 주변적 존재였기 때문에 근대국가의 정치적 요구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여자의 단발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을까. 여자의 단발은 ‘아래로부터’ 남자의 단발이 국가권력과 제도를 등에 업고 ‘위로부터’ 집중적이고 강력하게 시행되면서 단시간에 정착된 반면, 여자의 단발은 서양과 근대를 동경하는 일군의 ‘신여성’이 자발적인 의지를 통해 ‘아래로부터’ 주도해나갔다. 남자의 단발도, 여자의 단발도 전통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지만, 흥미롭게도 단발을 한 ‘개명한’ 남자도 여간해서는 여자의 단발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의 단발은 사회적 경멸과 반감에 맞서 더욱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사전에 보면 단발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머리털을 짧게 자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깨를 덮지 않게 일직선으로 가지런히 자른 여자의 머리 모양(연세 한국어사전)이다. 단발이 여성의 머리 모양을 가리키는 낱말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볼 때, 현대어의 단발이 지닌 뜻은 여자의 단발과 더욱 관계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의 단발은 한때의 이슈로 끝나버렸고 그 후 커다란 사회적 저항 없이 진행된 것에 비해, 여자의 단발은 1930년대에 논란거리가 되어 식민지 시기 전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화제에 올랐다. 봉건사회의 인습과 제약을 타파하려는 열망이라는 점에서는 남자들과 한 치 다를 바가 없었을 터인데도, 시대를 앞서 나가고자 열망했던 소수 여성의 단발은 남자보다 더욱 혹독한 반대와 질타를 마주해야 했다. 기생의 단발과 여학생의 단발 역사적으로 여자의 단발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초의 장본인은 ‘여학생’이나 ‘신여성’으로 불리는 신흥 여성계층이 아니라 천한 신분의 기생이었다. 기생 강향란은 1920년대 초라는 이른 시기에, 단발에 남장을 결행하고 남학생들과 함께 수학하겠다고 선언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화류계에서 학창생활에 머리 깎고 남복한 여학생’, 동아일보, 1922. 6. 22). 기생은 전통사회에서 유일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던 여성으로서, 이른바 패션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특히 3•1운동 이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여학생이라는 새로운 계층이 등장하면서 기생은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져갔고, 여자의 단발은 여학생의 손에 주도권이 넘어갔다. 물론 여전히 곱게 땋은 댕기머리를 고집하는 여학생도 있었고, 쪽진 아낙네도 흔히 볼 수 있는 세상이었다. 여자의 단발이 처음부터 단발머리 모양으로 행해졌던 것은 아니다. 1930년대 여자의 단발이 보편화될 때까지 많은 여학생이 선망한 머리 모양은 서양식 트레머리였다. 가르마를 타지 않고 뒤통수 한복판에 머리를 틀어 붙인 이 머리 모양은 쇠똥머리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기 일쑤였는데, 일반적으로는 ‘히사시가미’라는 일본어 명칭으로 통용되었다. 이광수의 무정에서 선영을 만나러 가는 형식이 상상하는 머리 모양도 바로 이것이었다. “가운데 책상을 하나 놓고 거기 마주 앉아서 가르칠까. 그러면 입김과 입김이 서로 마주치렷다. 혹 저편 히사시가미가 내 이마에 스칠 때도 있으렷다. 책상 아래에서 무릎과 무릎이 가만히 마주 닿기도 하렷다.” 여기서 연애 감정에 달뜬 젊은 남성이 아름다운 신여성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자연스레 히사시가미의 머리 모양을 떠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형식의 눈에 히사시가미는 신선하고 보기 좋은 헤어스타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사회투쟁으로서 여자의 단발 그러나 당시에는 여자의 단발을 곱지 않게 보는 남자의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근대의 중심을 차지한 남성이 보기에 여성해방을 표방하며 남성 지배적 질서를 비판하는 여자의 단발은 고깝고 위태로운 발상에 속했다. 단발머리는 기존 질서에 반항해 서양과 근대를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상징하는 자세의 표현이었으나, 남자들이 보기에 여자의 단발은 허영심과 모방 심리의 발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던 일반 부녀자들 역시 여자의 단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여성을 대상으로 계몽운동을 펼치고자 한 사회주의자 여성들은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다시 전통적인 머리 모양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이런 시대인 만큼, 간편하고 위생적이며 미관상 보기 좋으니까 단발을 하겠다는 소박한 취향이 통할 리 없었다. 여자가 거리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희한한 구경거리가 되는 시대였다. 장옷의 역할은 양산으로 넘어갔지만, 단발을 하고 거리에 나간 ‘신여성’이 감당해야 할 따가운 시선 때문에 여자의 단발은 그 자체로 사회투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때때로 전통이나 상식을 거스르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과 거부감이 짐작하거나 각오한 바에 비해 훨씬 강고하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여자의 단발은 남보다 시대를 앞서 살아가는 일에 얼마나 용기가 필요하며 또한 그것이 얼마나 고단한 길인지 보여준다.
협동학습이란? 협동학습이란 ‘공동의 학습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질적인 학생들이 학습 집단을 통하여 함께 학습하는 교수 전략’이다.(Slavin) 학생 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한 교수 전략이 협동학습이다. 협동학습은 쉽게 말해 ‘또래 가르치기’ 수업이다. 그런데 기존 조별학습이 ‘비구조화된 또래 가르치기’라면 협동학습은 ‘구조화된 또래 가르치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구조화의 의미는 협동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이다. 조별 학습은 모둠원 모두가 협동을 해도 과제를 완성할 수 있지만 구태여 협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제 자체는 완성할 수 있다. 하지만 협동학습에서는 협동을 해야만 비로소 과제를 완성할 수 있도록 한다. 예컨대, 어떤 주제에 대하여 한 모둠에서 토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발표 단계에서는 발표 학생이 모둠 생각이 아니라 개인의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잘 발표할 수 있다. 하지만 협동학습에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협동학습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기존 조별학습과의 차이점을 좀 더 자세히 비교해보도록 하자. 우선 기존 조별학습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자기 조(모둠) 활동에 별로 관심이 없다 •학습 과정에서 조(모둠)끼리 경쟁이 치열하다 •무임승차자나 일벌레, 방해꾼 학생 등이 나타난다 •조(모둠)별 활동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학습 시간에 비해 학생들의 모둠 과제 내용 수준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 •조(모둠)별 학습 편차가 많이 벌어진다 이러한 조별 학습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개발된 것이 협동학습이다. 조별학습과 협동학습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협동학습의 기본 원리이다. 협동학습 모형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협동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협동학습의 기본원리가 협동학습 수업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제대로 된 협동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PAGE BREAK] 협동학습의 기본 원리 협동학습의 기본원리는 긍정적인 상호 의존, 개인적인 책임, 동등한 참여, 동시다발적인 상호 작용 등이다.(Kagan, 1994) 긍정적인 상호의존 긍정적인 상호 의존이란 ‘다른 사람의 성과가 나에게 도움이 되고 나의 성과가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게 하여 각자가 서로 의지하는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협동학습은 공동의 학습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학습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학습자가 서로 협동하지 않으면 학습 목표나 과제 자체를 이룰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구조화시킨다. 긍정적인 상호의존의 개념을 이해했다는 것은 모둠이 성공하려면 구성원 개인 모두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과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엮어서 학습에 있어서 나의 성공이 다른 사람에게 실질적인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둠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 모둠 구성원 모두가 각각 고유의 역할, 과제, 자료 등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상호의존은 학생들에게 우리는 공동의 운명을 지녔다는 자연스러운 공동체의식을 가지게 하고 나의 일이 남에게 도움이 되면서 남의 일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서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책임감과 자신감을 갖게 만들어 준다. TIP ● ○ 긍정적인 상호의존을 위해서는 학습 목표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공동 과제를 수행했을 때 보상하고 격려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공동체 일원임을 느낄 수 있도록 공동 과제를 분담하고 개인에게는 의도적으로 불완전한 과제를 부여하는 것이다.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세부적인 역할을 분담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책임(개별적인 책무성) 기존 조별 학습은 학습 활동이 주로 모둠(집단) 단위로 이루어지다 보니 모둠(집단) 속에 개인이 숨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예컨대, ‘무임승차자’나 ‘일벌레’ 내지 ‘방해꾼’ 등이 나타난다. ‘무임승차자’란 자신은 전혀 공동 작업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모둠 점수를 덩달아 받는 사람이다. 반대로 ‘일벌레’란 자신의 분량보다 많은 과제를 하는 사람이다. ‘방해꾼’은 자기가 속한 모둠이나 다른 모둠의 과제를 수행하는 데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학습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평가에 있어서 공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협동학습에서는 구성원 간의 협동을 중시하면서도 동시에 구성원 개인의 책임을 분명히 한다. 개인적인 책임(책무성)이란 학습과정에 있어서 집단 속에 자신을 감추는 일이 없도록 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역할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예컨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거나 평가에 있어서 불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즉, 평가할 때 ‘무임승차자’나 ‘방해꾼’은 모둠 전체 점수와 상관없이 감점 처리하고 ‘일벌레’는 반대로 가산점을 주어 개인의 역할 기여도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TIP ● ○ 개인적인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상을 할 때 모둠이나 학급 전체 보상과 함께 개인 보상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칭찬 티켓으로 보상을 주는 경우 팀 티켓과 개인 티켓을 나누어 활동 단위에 따라 티켓을 부여하고 나중에 팀 티켓과 개인 티켓을 합해 최종적으로 보상하여 개인의 역할에 따라 그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지우도록 하는 것이다. 동등한 참여 동등한 참여란 학습자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 일부에 의해 독점되거나 반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기존 조별 학습의 경우를 살펴보면 발표력이 뛰어난 학생이나 외향적인 학생들이 모둠 내에서 발언을 독점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발표력이 부족하거나 내성적인 학생들은 모둠 활동에서 쉽게 소외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것이 바로 동등한 참여이다. 즉, 누구나 학습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하고 역할과 책임도 각자에게 동등하게 나누자는 것이다. 물론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능력이 다른 상황에서 동등한 기준의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함으로써 공동체 속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동등한 참여는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TIP ● ○ 1. 동등한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대화칩을 사용하는 것이다. 토의하기 전에 대화칩을 각각 학생들에게 2개씩 똑같이 나누어준다. 그리고 모둠 토의시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경우 대화칩을 한 개씩 책상 위에 내려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대화칩을 다 사용하면 더 이상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나머지 다른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대화칩을 다 사용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머지 학생들이 대화칩을 다 사용하였다면 다시 새로운 대화칩을 이용하여 새로운 발언 기회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2. 동등한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성원 모두에게 과제를 일정하게 분담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이끔이, 기록이, 칭찬이, 지킴이 등 모둠 구성원 개인의 역할을 고정적으로 운영하기보다는 일정기간마다 돌아가면서 역할을 바꾸어 운영할 수 있다. 그리고 교사가 수업하거나 평가할 때 특정 학생만을 중심으로 학습 활동을 운영하고 그에 맞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각 학생들의 개성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수업을 디자인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PAGE BREAK] 동시다발적인 상호작용 모든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교육적 이상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제한된 수업 시간 안에 모든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학습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려고 한 것이 동시다발적인 상호작용이다. 즉, 학습활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여기저기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다발적인 구조의 반대는 ‘순차적인’ 구조이다. 순차적 구조란 순서대로 한 명씩 나와서 학습활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1분씩만 이야기해도 한 학급에 35명이라면 학생들이 움직이거나 자리 이동하는 시간을 빼더라도 35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개 기존 수업에서는 2~3명을 교사가 선정해 발표시킨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으로 발표를 시키면 실제로 발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학생은 2~3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순차적인 구조에서는 동등한 참여를 기대할 수 없다. 만약 순차적인 구조에서 동등한 참여를 이루려고 한다면 시간상 제한이 따르고 수업 자체도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시다발적인 구조는 이러한 순차적인 구조가 갖는 한계를 극복한다. 예컨대, 한 사람당 1분씩 발표 기회가 주어진다면 짝 토의 방식은 2분이면 모든 학생들이 발표하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4인 1모둠을 구성하면 돌아가며 이야기 구조를 활용해 4분이면 충분하다. TIP ● ○ 동시다발적인 상호작용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동시동작’과 ‘동시멈춤’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학습 시작과 마침을 교사가 동시에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학습자료를 배분할 때 교사가 전체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각 모둠의 자료 담당자가 자기 모둠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주제에 대해 발표시킬 때도 한 번에 한 명씩 발표하는 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둘씩 짝지어 나누게 함으로써 모두가 동시에 발표하는 것이다. 질문이 있을 때에도 손을 들고 선생님이 오시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모둠 동료에게 즉각적으로 질문하고 해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교사가 질문을 던져 한사람씩 발표하는 것보다 전체가 대답하게 하는 것이다. 토의나 필기를 할 때도 동시에 시작하고 동시에 마치는 것이다. 물론 하던 것을 다 마치지 못했어도 그 상태로 정지시킨다. 부족한 것은 별도의 시간을 주거나 숙제로 부과해서 일부 때문에 전체 진행에 무리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계속하여 수업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아이들 스스로 시간에 따라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왜 협동학습인가? 지금까지 협동학습과 관련한 여러 가지 다양한 연구들을 통하여 많은 협동학습의 장점이 밝혀졌다. 그 중에서 학생 입장에서의 장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학생들이 흥미 있게 학습 활동에 참여한다 •학업 성취도가 크게 향상되었다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잘한다 •대인관계 협동기술인 사회적 기술이 잘 이루어진다 •의사소통능력이 증진된다 •긍정적인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 •신체 활동이 많다 •학생들의 숨어있는 다양한 재능을 개발하고 격려할 수 있다 교사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다양한 교수 전략을 제공한다 •다인수 학급에서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특별한 교육시설이 필요하지 않고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수준별 수업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협동학습을 바라볼 때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첫째, 인간 사회를 운영하고 있는 원리는 경쟁보다는 협동이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글로벌 경쟁 시대라고 하여 경쟁을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생활을 잘 분석해보면 경쟁의 원리보다는 협동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연필을 살펴보면 나무를 베고 다듬고 흑연을 캐내 연필심을 만들어 연필로 만들어 여러 유통 과정을 통하여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 간의 협동 과정을 통해 우리 손에 연필이 쥐어지게 되는 것이다. 둘째, 경쟁 학습은 학습을 두려운 경험으로 만들지만 협동학습은 학습을 즐거운 경험으로 만든다. 경쟁학습에서는 동료 학생을 나의 경쟁상대로 인식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경쟁 상대가 사라지거나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학습하는데 집중하지 않는다. 하지만 협동학습에서는 학습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함께 학습하는 기쁨을 누리면서 학습을 하기 때문에 학습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평생 학습 시대에 접어든 지금, 학생들이 일생 동안 학습을 즐겁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협동학습이다. 셋째, 협동학습은 궁극적으로 경쟁력 있는 인재들을 기를 수 있다. 경쟁학습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제학력평가(PISA) 결과 고교 학업성취도 수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대학 경쟁력이나 대학생의 학업성취도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처지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을 고민하는 세계 각국이 경쟁을 강조하는 한국보다 협동을 강조하는 핀란드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핀란드는 작지만 강한 나라로 어려서부터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조하면서 협동학습을 강조하는 나라이다. 이러한 핀란드의 교육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협동학습의 단점도 있다. •일부 학생이 끝까지 학습 활동에 거부하면 나머지 학습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도 악영향을 준다 •어떤 학생이 학습 내용을 잘못 이해하거나 잘 소화하지 못하면 다른 학생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고, 오개념을 가르칠 수 있다 •집단학습 분위기에만 빠져 학습 내용을 소홀히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면서 협동학습을 현장에서 실천한다면 교육적 성과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PAGE BREAK] 학습구조론 수업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이를 일반적으로 교육과정과 교수 • 학습방법이라고 한다. 학습구조론에서는 학습 활동을 내용과 구조의 측면으로 나누어 이해한다.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것이 내용이고 교수 • 학습방법에 해당하는 것이 구조이다. 구조란 원래 ‘학생과 학생 사이의 사회적 상호 작용 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학습구조는 개별학습, 경쟁학습, 협동학습이 있다. 개별학습 구조 개별학습 구조란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학습하는 것으로 나의 학습활동이 동료들과 어떠한 영향도 주고 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개별 학습 구조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학생들이 개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개인 학습 능력과 발달 단계에 따라 적절한 학습활동을 하는 것을 강조한다. 개별 학습 구조는 학생들의 개별적 특성을 존중하고 학생들의 흥미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의 이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개별 학습 구조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려면 교사 대 학생 비율이 최소화되어야 하고 개별 학습에 맞는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 과외 지도, 수준별 수업 등이 여기에 속한다. 경쟁 학습 구조 경쟁학습 구조란 ‘나의 성공이 너의 실패요, 너의 성공이 나의 실패’인 경우로 일종의 제로섬 게임 상태를 의미한다. 경쟁학습은 학습 집단 내에 모둠이나 개인 간에 경쟁을 유발시키는 구조이다. 교사가 일정 학습 목표를 제시하고 각 모둠이나 개인 간의 경쟁을 부추겨서 학습목표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때 경쟁을 촉진하는 방법으로 보상 제도를 적절히 운영하는 것이다. 먼저 학습목표를 이룬 모둠에게 점수나 선물 등 다양한 보상을 하여 적절히 전체 집단을 통제하는 것이다. 예컨대 학습 퍼즐이나 문제를 먼저 푼 모둠에게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다. 경쟁학습 구조는 수업 분위기를 역동적으로 만들고 학습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그러나 모둠이나 개인 간의 경쟁이 지나쳐 자칫 전체 수업 분위기가 산만해지거나 모둠이나 개인 간의 격차가 벌어져 학습에 있어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하여 일부 뒤처진 모둠이나 개인은 학습 목표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퀴즈식 수업 방법 등이 여기에 속한다. 협동 학습 구조 협동 학습 구조란 ‘나의 성공이 너의 성공이요, 너의 성공이 나의 성공’인 경우로 협동하지 않으면 과제를 완성할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고안된 구조이다. 협동학습 구조는 학습자 상호 간의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학습자가 협동을 하여 학습 목표를 이루는 구조이다. 이를 위하여 전체 학습 집단 안에 모둠을 조직하고 모둠 구성원 간, 모둠 집단 간의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협동 방식은 모둠 구성원간의 협동을 강조할 수 있고 전체 학습 집단 내에 속한 모둠들끼리 협동하여 학습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수업은 학생 상호 간의 사회적 상호 작용으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교사와 학생 사이의 사회적 상호 작용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사회적 상호 작용을 고려하면 세 가지 구조 외에 다른 학습 구조도 존재한다. 이를 고려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학습 구조가 일제학습구조이다. 일제 학습 구조 일제학습 구조란 전통적인 수업 방식으로서 교사가 전체 학습 집단을 한꺼번에 관리(통제)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교사(매체)가 지식이나 정보를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구조이다. 일제학습 구조는 많은 학습자를 동시에 교육할 수 있고 어려운 학습 내용도 쉽게 전달할 수 있으나 교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학생의 입장에서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강의식 수업, 시청각 수업 등이 여기에 속한다. 표 학습 구조의 유형 비교 수업은 어떤 특정 학습 구조로만 진행해서는 어려움이 있다. 각 학습 구조가 가지고 있는 특성과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학습 내용에 따른 적절한 학습 구조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학습 내용과 학생들의 학습 수준 등을 고려하여 일제학습, 경쟁학습, 개별학습, 협동학습을 적절하게 선택하여 수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업을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가’가 그 수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 아기사슴 섬 강화도에 이어 이제 남해의 작은 섬 소록도를 찾아갑니다. 저로서는 세 번째 소록도 방문입니다. 소록도를 향해 달리고 있는 제 차에는 저 말고 두 사람이 더 타고 있습니다. 모두 저보다 더 소록도를 잘 아는 사람들일 듯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내게 말을 걸지는 않고 일방적으로 내게 이야기하려고만 합니다. 한 사람은 한하운이란 이름을 가졌고 다른 사람은 이청준이란 이름을 가졌습니다. 이쯤이면 독자 여러분들은 ‘자네, 그게 뭔 소린가? 이미 작고한 사람들 아닌가? 놀리는 건가?’하고 나무라실지 모르겠네요. 그렇습니다. 두 분은 모두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책이 남아 있어 소록도로 향하는 내게 자꾸만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남긴 책은 내내 차 뒷좌석을 지키며 한센병을 앓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고흥읍 아래 녹동까지 오는 데는 도로가 시원스럽게 확장되었음에도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10여 년 전 폐차 직전 친구 차에 동승해서 이곳까지 왔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소록도(小鹿島). 얼마나 예쁜 이름을 가진 섬인지 모릅니다. 작은 사슴, 아기 사슴의 섬! 하늘에서 볼 때 섬의 모양새가 사슴을 닮았다고 이름 붙여졌다고 합니다. 이름만큼 예쁜 소록도는 섬 전체가 병원입니다. 병원의 정식명칭은 국립 소록도병원. 섬 전체 넓이가 113만 평이니까 아마 단위 병원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아니 지구상에서도 가장 큰 병원이 아닐까요? 섬은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해서 환우들이 거주하는 병사지대(病舍地帶)와 직원들이 거주하는 관사지대로 나뉩니다. 이곳에서는 병원 측 허가 없이는 병사지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 일반인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없기 때문에 당일 육지로 나와야 하므로 이 섬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마지막 배가 언제 떠나는지를 알아둬야 합니다.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지역은 중앙공원과 해수욕장입니다. 소록도에도 그동안 변화가 있었네요. 가장 두드러진 변화라면 연륙교 개통을 들 수 있습니다. 3월 2일 임시 개통됐고 오는 5월 정식 개통될 예정입니다. 예전처럼 도선에 몸을 맡겨 섬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느꼈던 흥분은 이제 많이 쇄감할 듯싶습니다. 지난 설날에도 5일간 임시로 연륙교를 개통시켜 많은 가족들이 차를 타고 소록도의 부모를 찾아왔다고 하네요. 참, 소록도에서 거금도까지는 연도교가 건설 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소록도는 물론이고 거금도까지 육지와 연결된다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소록도를 쉽게 찾을 것 같습니다. 소록도 내의 건물은 그리 큰 변화가 없는 듯합니다. 다만 여러 건물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아 문화재를 중심으로 답사를 즐기는 저는 어느 때보다 흥분되어 있습니다. + 순록탑과 신사 녹동항을 떠난 도선은 이내 소록도에 도착했습니다. 이 섬은 100년 가까이 오랫동안 외부에 제한적으로 공개되어 왔고 스스로 원했거나 강제로 끌려왔거나 한센병 환우들이 지켜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한 섬입니다. 이곳에 나병 환자, 문둥병 환자들로 불리던 한센병 환우들이 정착하게 된 것은 1916년부터입니다. 당시 한센병 환우들은 대부분 다리 밑이나 움막에서 살거나 유랑으로 살아가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어른들이 혼자 돌아다니면 “보리밭에서 문둥이들이 나타나 너희들을 해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그 당시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었을까요? 당시 조선총독부는 이들을 격리시키기로 하고 그 대상지로 바로 소록도를 주목했습니다. 섬이라서 육지와 격리되어 있으면서도 육지와 가까워 물자 수송이 용이한 데다 물이 풍부하고 날씨가 온화했기 때문이죠. 1916년 2월 24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로 ‘소록도자혜의원’을 건립하기로 결정하고 섬 전체의 20%에 해당하는 30여만 평에 대한 매수작업을 거쳐 5월 17일 문을 열었습니다. 전국에 있는 환우들을 계속적으로 모집해가면서 확장세를 이어나가 1933년에는 섬 전체를 매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해서 소록도는 섬 전체가 한센병 환우들의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소록도 선착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순록탑(殉鹿塔)이 보입니다. 6 • 25 전쟁 중 6000여 원생들을 보호하다가 인민군에 끌려 학살된 10명의 직원과 1명의 목사를 추모하기 위한 탑입니다. 가운데 두 기둥은 순직한 11명을 상징하는 아라비아 숫자를 의미하며 윗부분의 둥근 폭탄 모양 조형물은 전쟁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사슴섬을 지키다 순직한 사람들을 기리는 탑이란 의미로 ‘순록탑’이라 이름 붙여 1978년 5월 17일 세웠습니다. 노천명 시인은 사슴을 일컬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고 했습니다. 이 시는 소록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 몰라도 소록도라는 아름다운 이름 뒤에는 시의 내용만큼 사슴섬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제 비탈길을 올라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성당이 나타나고 곧 로타리가 보입니다. 그 로타리 주변에 교회, 원불교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여기서 놓치기 쉬운 곳이 바로 신사(神社)입니다. ‘있다, 없다’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던 모 TV 프로그램에 제보해도 채택될 만한 소스일 것입니다. ‘아니, 우리나라에 신사가 아직 있다는 말입니까?’하고 놀라실 분이 계실 테지요? 예, 그렇습니다. 있습니다. 신사에 예를 갖추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신사 건물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도 등록문화재로 당당히 지정받았습니다. 바로 소록도에 남아 있습니다. 1935년에 세워진 소록도 신사는 일제의 잔재라고 해서 철거 논란이 많았으나 가슴 아픈 흔적이지만 두고두고 가슴에 새기자는 의미로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답니다. 사실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면 소록도 전체가 철거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문화재적인 가치를 지닌 건물 모두가 일제강점기에 조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신사는 목조 건축양식을 모방하여 철근콘크리트와 벽돌로 건축했습니다. 원래 신사는 일본 황실의 조상이나 일본의 신 또는 국가에 공로가 큰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인데 이곳에는 천조대신(天照大神)을 모셔놓고 참배하도록 했답니다. 소록도에는 이곳 관사지대 외에 병사지대에도 같은 시기에 분사(分社)를 두었습니다. 특히 부부동거를 허가할 경우 부부병사에 입사하기 전에 신사참배를 강요했다고 합니다. [PAGE BREAK] + 수탄장과 추모비 신사를 지나면 차량 통제를 하는 곳이 나타납니다. 연륙교에서 내려오는 차들이 이곳으로 통하게 되어 있고 여기에 차를 세워 두고 걸어서 중앙공원까지 가게 됩니다. 수탄장이 이곳에 있습니다. 수탄장(愁嘆場)은 ‘탄식의 장소’라는 뜻입니다. 자녀들이 전염될까 봐 미감아 보육소에 격리되어 생활하던 환우들이 자녀들을 한 달에 한 번씩 면회를 했던 곳입니다. 이때 미감아동과 부모는 도로 양 옆으로 갈라선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만났으며 만나더라도 직접적인 접촉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전염을 우려해 자녀들은 바람을 등지고 부모는 바람을 안고 면회를 했다고 하는데 보호인원이 많았을 때는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길옆 소나무들은 당시 풍경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을 텐데 물어봐도 말을 해주지 않네요. 수탄장을 지나서 치료본관 건물에 다다랐을 쯤 바닷가 쪽으로 추모비가 보입니다. 애한(哀恨)의 추모비라고 합니다. 소록도에도 광복의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원생들은 병사지대에 있는 신사를 불태우고 교도소의 죄수들과 감금실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모두 석방시켰습니다. 이제 일본인들이 떠나자 병원 운영권을 두고 환우들과 의사, 직원들 간에 미묘한 갈등이 찾아왔고 급기야 직원들과 환우들 간에 무력 충돌까지 발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희생이 동반됐으며 특히, 환우들은 84명이나 희생되는 참사를 빚었습니다. 이때 환우들이 집단적으로 매몰된 곳으로 짐작되는 곳을 2001년 발굴한 결과 다수의 유골이 나왔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 자리에 한센 가족에 대한 이해와 온전한 인권회복을 소원하는 의미로 기념비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한센병 환우들이 곳곳에 정착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빚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사천 비토리(飛兎里)에서 있었던 일도 그렇습니다. 소록도 절반 크기의 섬인 비토리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빚었고 그 결과 26명이 희생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학교에서는 일반인 자녀들이 취학을 거부하는 일들이 빈발했으며 이것이 이른바 공학(共學) 반대 사건이었습니다. + 검시실과 감금실 치료 본관 건물을 지나 중앙공원으로 갈 무렵 오른편에 붉은색 벽돌로 지은 건물들이 시선을 끕니다.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검시실과 감금실입니다. 두 건물 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은 1935년 건물입니다. 검시실(檢屍室)은 해부실로 불리기도 합니다. 두 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앞쪽 방은 주로 사망환우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로 사용되었으며, 뒤쪽 방은 정관절제를 집행했던 곳입니다. 모든 사망환우는 본인 및 가족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이 이곳에서 사망원인에 대한 해부절차를 마친 뒤 간단한 장례식을 거쳐 섬 내 화장장에서 화장 후 납골당에 유골로 안치되었다고 합니다. 일제는 1936년부터 정관절제를 할 경우 부부 동거를 허용했다고 하는데 감금실에 수용되었다가 출감하는 환자들에 대해서도 그 벌칙의 하나로 행해졌다고 합니다. 일본인 병원장의 명을 거역한 벌로 감금실에 갇혔다 풀려나면서 단종수술을 받은 환우의 시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제게 묵직한 그 무엇을 부담 지웁니다. 감금실(監禁室)은 인권탄압의 상징물입니다. 두 건물이 회랑으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H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1935년 제정된 조선나예방령에 의하여 한센환자는 직업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 이동권을 박탈당했으며 수용환자들은 원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변론의 기회조차 없이 감금, 감식, 금식, 체벌 등의 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시 한 편이 당시 인권탄압의 현장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감금실 - 김정균 아무 죄가 없어도 불문 곡직하고 가두어 놓고 왜 말까지 못하게 하고 어째서 밥도 안 주느냐 억울한 호소는 들을 자가 없으니 무릎을 꿇고 주께 호소하기를 주의 말씀에 따라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중략)… 저희들은 반성문을 쓰라고 날마다 요구받았어도 양심을 속이는 반성문을 쓸 수가 없었노라 다음 호도 소록도에서 만나겠습니다
2009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4월 24일부터 5월 20일까지 태안군 안면도 꽃지 • 수목원 일원에서 꽃, 바다 그리고 꿈(Flower, Ocean 자원봉사자의 뜻을 기린 ''기적의 손'' Dream)을 주제로 ‘2009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가 열린다. 이번 박람회는 국제원예생산자협회(AIPH)의 공인을 받아 명실상부한 국제공인 꽃박람회로 열리며, 21개 나라 1억 송이의 꽃들이 전시된다. 2009 안면도 국제 꽃 박람회는 지난 2007년 12월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전 세계인들을 감탄시킨 120만 피해복구 자원봉사자들의 기적을 기념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취지를 담고 있어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생태 • 환경학습의 장의로서의 의미가 크다. 자원봉사자의 뜻을 기린 ‘기적의 손’ 7개의 전시관과 15개의 테마정원으로 꾸며지는 이번 박람회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 주제관이다. 주제관에는 태안 유류유출사고 자원봉사자 활동사진과 영상자료 등이 연출되는 ‘기적의 손’, ‘백만송이 꽃 터널’이 전시된다. 또한 소프라노 같은 여성의 고음을 접하면 춤추듯 움직이는 ‘무초(舞草)’, 지름 35㎝에 무게가 5㎏에 달해 세상에서 가장 큰 씨앗으로 불리는 ‘쌍둥이 야자씨’, 공룡이 먹고 살았다는 ‘올레미아노빌리스’ 등 희귀식물을 볼 수 있다. 실내열대정원이 마련되어 있어 이국의 정취를 느껴 볼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꽃의 교류관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가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가져온 종자에서 핀 ‘우주꽃’을 비롯해 국내외 77개 업체의 다양한 신품종 꽃들이 전시되고, 꽃의 미래관에서는 우리나라 전국에 있는 다양한 꽃을 관람할 수 있다. 다양한 꽃음식을 경험할 기회 이번 박람회에서 하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꽃음식관이다. 국 • 내외의 전통 꽃음식이 전시되는 꽃음식관에서는 꽃음식을 시식할 수도 있고, 직접 꽃음식을 만들어 볼 수도 있어서 좋은 체험학습의 기회가 될 것이다. 주행사장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부행사장에는 양치류 전시관을 비롯해 식용수원, 약용수원, 생태습지원 등이 마련되어 있어 보다 다양한 식물들을 접해볼 수 있다. 주행사장과 부행사장을 잇는 1.7㎞가량의 길에는 터널을 연상케 할 정도의 많은 꽃이 심어질 예정이어서 관람객들에게 멋진 산책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불에 타야 꽃을 피우는 나무로 불리는 ‘그래스트리’, 400년 된 ‘회양목’, 여행자의 나무로 알려진 ‘큰파초’, 코알라가 먹고 사는 ‘유칼립투스’ 등 20여 종의 희귀식물은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의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한편, 박람회장의 입지조건은 관람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꽃지해수욕장이 바로 옆에 있어 바다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고, 태안팔경의 하나인 할미•할아비 바위 너머로 볼 수 있는 일몰은 이미 절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외에 태안팔경으로 꼽히는 백화산, 안흥진성, 안면송림, 만리포, 신두사구, 가의도, 몽산해변 등도 좋은 관광코스이다. 태안관광의 또 다른 즐거움은 바로 풍부한 해산물이다. 여름의 우럭과 낙지, 가을의 전어와 전복, 겨울의 굴과 개불 등 계절별로 싱싱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이번 꽃박람회가 열리는 봄에는 바지락, 실치회, 쭈구미, 갑오징어, 꽃게, 아귀 등이 제철이다. 입장권으로 받는 다양한 할인 혜택 특히, 이번 박람회 기간 동안 유료입장권을 소지할 경우 충청남도 내 많은 관광시설에 다양한 할인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충남의 여러 관광지를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각종 박물관, 공원, 수목원은 물론 스파캐슬이나 오션캐슬 같은 레저시설도 많게는 50%이상의 할인혜택이 주어지므로 미리 계획을 세워 간다면 매우 알찬 여행이 될 것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고양국제꽃박람회 공동입장권(성인용만 발매. 1만 5000원)을 구입하면 하나의 입장권으로 두 곳을 모두 관람할 수 있다. 입장료는 성인 1만 5000원, 청소년 1만 1000원, 어린이 8000원이며 예매나 20인 이상 단체관람시 2000~4000원까지 할인된다. 또한 태안자원봉사자들에게는 별도로 50%가량의 할인혜택이 있으며 단체관람객 유치자나 인솔교사는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보다 자세한 연계관광코스나 할인혜택 정보는 안면도국제꽃박람회 홈페이지(www.floritopia.or.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단체관람문의는 관람객유치팀(041-670-6403)으로 하면 된다. 제11회 함평나비 대축제 생태체험학습장으로 거듭난 함평엑스포공원 지난해 세계함평나비•곤충엑스포가 열렸던 함평엑스포공원이 동계휴관기간을 거쳐 지난 3월 1일 재개장했다. 세계나비곤충엑스포를 개최한 함평엑스포공원은 기존의 시설을 개선 • 확충해 생태체험학습장으로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은 갖췄다. 야외 나비 곤충학교, 벌 생태원, 나비 생태원, 야생화 학습장 등 신규시설을 도입했고 습지학습장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나비와 곤충 이외에도 다양한 관찰 • 탐구를 할 수 있게 했다. 이미 올 초에 8차에 걸쳐 청소년환경과학캠프를 개최해 1800여명의 학생이 다녀갔으며, 참가학생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었다. 귀여운 미니어처 곤충 캐릭터 모형과 영상매체 등을 통해 곤충의 다양한 생태를 만날 수 있는 숲속의 곤충마을. 실감나는 풀 3D로 제작되어 환경과 인간, 곤충의 관계를 재미있게 가르쳐주는 ‘아하! 나비구조대’가 상영되는 주제영상관을 비롯해 40여 종의 살아있는 나비와 곤충이 전시되어 있는 나비•곤충 생태관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몰포나비와 가장 큰 헤라클레스 왕장수풍뎅이 등 국내외 454종 7000여 마리의 나비•곤충이 전시되어있는 나비 • 곤충표본과 화석전시관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좋은 학습의 장을 제공한다. 162㎏의 순금으로 제작된 황금박쥐상으로 이미 함평엑스포공원의 명물이 된 동굴 모양의 황금박쥐 전시관은 또 다른 볼거리이고, 바이킹, 범퍼카, 대관람차 등 13종의 놀이시설이 있는 나비랜드 놀이동산은 자칫 실증을 내거나 지치기 쉬운 어린이들에게 재미와 휴식을 제공한다. ‘나비=희망’ 주제로 열리는 함평나비대축제 상설공원으로 이미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함평엑스포공원에서는 4월 24일부터 5월 10일까지 17일간 이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한 함평나비대축제가 열린다. ‘나비=희망’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동물사랑체험, 미꾸라지 잡기, 보리완두그스름, 전통민속놀이, 나비채집 • 표본만들기, 개미이동로 관찰체험 등 많은 체험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어 이 기간에 함평엑스포공원을 방문한 관람객에게 알찬 보너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입장료는 성인 7000원, 청소년 5000원, 초등생 3000원이다. 30인 이상 단체관람객은 1000원씩 할인되며, 인터넷예매시 10%할인 받을 수 있다. 함평에는 나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생태고장을 표방하고 있는 함평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매년 10월말 국향대전이 열리는 함평자연생태공원은 함평엑스포공원 못지않은 생태공원이다. 한국춘란분류관, 나비 • 곤충표본전시관, 풍란 및 새우란관, 동양란관, 자생란전시관 등 7개 전시관과 수서곤충관찰학습장, 장미원, 반달가슴곰관찰원 등 16개 관람시설은 내로라하는 여느 생태공원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KBS 아동극 후토스촬영지는 이곳을 방문한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다. 장수풍뎅이 체험학습 축제나 명품난 대제전 등 이벤트와 곤충표본만들기, 퍼즐만들기, 종이접기, 나비 • 곤충 및 목걸이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또한 이곳에는 300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야영시설이 있어 청소련 수련회를 겸한 체험학습활동도 가능하다. 한편, 돌머리해수욕장에는 갯벌생태 체험학습장이 조성되어 있어 앞의 두 공원과 함께 좋은 생태체험학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게르마늄 해수찜 시설이 있다. 게르마늄 해수찜은 소나무 장작불에 구운 유황과 약초를 해수가 든 탕에 넣고 찜질하는 민간요법으로 세종실록에도 그 기록이 남아있다. 신경통, 관절염, 피부병, 산후통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신라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 용천사와 대동 상수원 억새숲, 가을이면 붉은 빛으로 물드는 꽃무릇길 등도 좋은 관광코스이다. 맛깔나는 먹거리 함평의 또 다른 매력은 먹거리이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명품한우를 이용한 생고기와 육회 비빔밥, 함평만의 갯벌낙지, 일명 오도리라고 불리는 보리새우는 이 지역 여행에 큰 즐거움을 더해준다. 함평군청 홈페이지(www.hampyeong.jeonnam.kr)를 통해 관광책자를 신청하면 무료로 받아볼 수 있으며, 10인 이상 단체관광 시 1주일 전에 신청하면 무료로 문화관광해설가를 지원받을 수도 있다. 함평지역 관광에 관한 전화문의는 함평군청 문화관광과(061-320-3364)로 하면 된다.
○생태계에서 1차 생산자인 ‘식물’ 하면, 광합성작용, 엽록소, 녹색 등이 떠오릅니다. 광합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녹말은 녹색을 띠는 엽록소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식물 하면 연상되는 대표색이 녹색인 것입니다. 그러나 녹색이 전혀 없는 식물들도 존재하는데 산림청에서 희귀특산물로 지정했으며, 환경부에서 국외반출승인 대상 식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기생식물 중 한 종인 ‘초종용’이 있습니다. ○초종용은 워낙 생김새가 독특해 처음 보면 무엇이 잎이고, 꽃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줄기에 갈색 빛의 비늘 조각 같은 길쭉한 잎이 어긋나게 달려있고 보라색 꽃을 피우는데 키는 한 뼘쯤 크기로 자라지만 상태가 좋으면 30㎝ 정도까지 자라기도 하며, 꽃이 달리는 부분은 식물 전체 길이의 1/3, 심지어는 1/2이 되기도 합니다. ○개화기는 5~6월경인데 필자가 처음 대청도에서 초종용을 만난 것은 10월경이었습니다. 이때 초종용 한 개체를 만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에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에서 더 많은 개체수를 발견하고 너무 황홀해했던 그때의 그 기분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뛰곤 합니다. 초종용은 주로 바닷가에 살고 있으며 땅 위에서 보면 따로 자라는 듯 보이지만 땅속에서는 초종용 육질의 뿌리줄기에서 자란 잔뿌리가 기주 식물인 사철쑥의 뿌리에서 양분을 수탈합니다. ○심신을 튼튼하게 하고 기력 보충에 효과가 있고 방광염, 위장염에 쓰이는 귀한 약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1 지난 해 대중문화계에서 선풍적인 유행을 몰고 온 노래를 들라면, 아마도 모델 출신 가수 손담비가 춤추며 노래한 ‘미쳤어’라는 노래일 것이다. 박자나 멜로디가 단순하면서 반복적인데다가, 의자에 거꾸로 앉아서 한쪽 다리를 돌려 옮기는 기묘한 다리 동작을 곁들인 춤이 얼마간의 파격을 수반한다. 가사도 그렇다. 가벼운 후회의 마음을, 스스로에게 투정하듯 나무라듯, 조금은 나른할 정도로 단조로움을 반복한다. 앞부분 한 대목만 옮겨보면 이렇다. 내가 미쳤어 정말 미쳤어 너무 미워서 떠나버렸어 너무 쉽게 끝난 사랑 다시 돌아오지 않는단 걸 알면서도 미쳤어 내가 미쳤어 그땐 미쳐 널 잡지 못 했어 나를 떠떠떠떠떠 떠나 버버버버버 버려 이 노래는 ‘미쳤어, 내가 미쳤어’를 후렴구처럼 되뇌면서 전개되는데, 허술한 감정 따라 사랑을 만들고 사랑을 정리하는 대중사회의 감정 풍속도를 보여 준다. 헤어짐에 대한 후회를 담고 있지만, 그걸 술에 취해 토로하고 있을 뿐, 그렇게 심각한 감정을 토로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그냥 ‘미쳤어, 내가 미쳤어’를 반복하는데, 그게 대중의 마음을 끌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미쳤어 내가 미쳤어’라는 말의 현실적 쓰임에 있다. 미치게 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는 상당히 심각한 상태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미쳤어, 내가 미쳤어’를 그저 상투적인 자책의 언어로 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말을 노상 입에 달고 사는 사람도 있다. 요컨대 ‘미쳤어, 내가 미쳤어’는 일상의 상투어로 더 많이 쓰인다. 그래서 이 노래 제목을 보고서, 상실과 이별이 주는 깊은 상처를 입고, 막막한 회한의 마음으로 존재의 심연에서 번뇌하는 고통으로 받아들이도록 연결되지는 않는다. 현대인들은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부담을 심각하게 주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낀다. 그러면서 동시에 너무 부담을 느끼려 하지 않는 데에 대한 부담을 안으로 지니고 있는 듯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크든 작든 그런 정도의 자기분열을 너나 할 것 없이 안으로 감추며 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시시때때로 우리들은 마음 안에서 ‘미쳤어, 내가 미쳤어’를 중얼거리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저런 대중들 감수성의 리얼리티를 이해하고서 보면, ‘미쳤어’라는 노래제목은 성공한 것 같다. 2 ‘미쳤어, 내가 미쳤어’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자기 자신을 나무라는, 이른바 자책(自責)의 말이다. 사람의 말 중에 가장 진지한 말이 바로 자책의 언어일 것이다. 자책이란 반성의 일종이다. 철학이 만들어 준 용어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바로 ‘반성(reflection)’이다. 반성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인간 정신 작용의 가장 고매한 영역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깊은 감동의 모멘트를 만들어내는 것은 뼈아픈 자책의 장면들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오나라의 장수 주유(周瑜)의 자책은 비장미를 느끼게 한다. 중원 천하를 도모하는 계책을 두고 촉나라의 제갈공명과 지략과 다투었던 그는 공명에 대해서 운명적 라이벌의식을 가진다. 여러 고비에서 공명을 꺾으려 하나, 이를 미리 간파하는 공명을 끝내 깨트리지 못한다. 일찍 죽음을 맞게 된 주유는 공명을 이기지 못한 자책의 마음을 하늘에 고하는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한다. “하늘이여! 이 주유를 내시고 다시 공명을 내시었나이까?” 자존의 감정을 유지하면서 자책을 인정하되 그것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려는 주유의 마음을 읽노라면 비장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주유만이겠는가. 누구든 자신을 탓하는 자책의 마음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하늘의 섭리를 생각하기에 이르게 되는 것 같다. 자책의 언어가 한량없이 비감하고 참담하게 다가오기로는 오이디푸스의 토로를 따라 잡을 것이 없다. 운명의 예언을 피해서 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취해 살아 온 오이디푸스가 마침내 그 사실을 알 게 되었을 때, 그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자책한다. 진정한 자책은 그 어떤 형벌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것임을 느끼게 한다. ‘미쳤어, 내가 미쳤어’의 진경이 여기에 있다. 내가 한 일이 잘한 일이 아니라고 가르치지도 말고 충고하지도 마시오. 이 나라도, 이곳에 있는 성벽도, 신전도 다시는 보지 않겠소. 아니오, 아니오, 그럴 수 없소. 할 수만 있다면 귀까지 먹어 보지도 듣지도 않을 것이오. 침묵과 암흑 속에 나를 가두면 더 이상의 슬픔은 없을 테니까. 아, 키타이론 산이여, 어쩌자고 너는 나를 살려냈는가? 오, 결혼이여, 어찌하여 너는 아버지와 형제와 아들을 뒤섞어 놓고 신부와 아내와 어머니를 구별하지 못하였는가? 입에도 담지 못할 더러운 말을 이제는 더 이상하지 않겠소. 그대들은 어서 나를 나라 밖에 숨겨주오. 나를 죽여주오. 나를 바다 속에 던져주오. 다시는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도록. 자, 가까이 다가와 불쌍한 나를 데려가 주오. 두려워 말고 나를 붙잡아 주오. 나의 죄 짊어질 자 오직 나뿐이니.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중에서 [PAGE BREAK] 3 자책하는 오이디푸스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말 그대로 ‘미칠 지경의 마음’일 것이다. 그것은 너무 무겁고 고통스러워서 듣는 이조차도 힘들게 한다. 스스로를 나무라는 일이라면 그 본질이 마땅히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엄중한 자책의 극단은 자결을 불러온다. 나라를 빼앗기던 백 년 전 이 땅의 의식 있는 엘리트들의 자결이 바로 그러하다. 오늘 우리들의 자책은 내가 나를 준열하게 나무라는 자책이라기보다는 그저 남 들으라고 하는 자책 같기도 하다. 핑계를 전달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인 것 같기도 하다. 짐짓 혼잣말처럼 자책인 듯 말하지만 사실은 주변에 들으라고 하는 혼잣말이 되기도 한다. 얄밉다. 자책의 언어를 상투적으로 달고 다니면서 자신의 욕구를 자책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그 명품을 놓치다니 미쳤어 정말 미쳤어’ 하는 식이 바로 그렇다. 자책의 본질이 반성에 있고 반성은 인간 정신의 고매한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했는데, 이처럼 자책의 말에 진정성이 사라진다면 그 자책은 거짓 반성일 것이다. 거짓 반성은 위폐보다도 더 사악한 것이다. 거짓 반성은 인간정신의 치부이다. 그래서 자책은 쉽사리 말로 튀어나오지 말고, 마음 그 깊숙한 곳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자책과 반성을 억지로 여러 사람 앞에 요구하는 것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자책을 강제로 요구하거나 그래서 억지로 하는 반성은 그저 정치적 술수에 동원되기 쉽다. 미쳤어, 미치겠다, 등등의 말이 자책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쓰이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이다. 말이 그렇게 되면 정신도 말 따라 미치게 된다. 정상적인 욕망과 후회도 모두 광기 상태로 표현해야 성에 차는 것은 아닌지. 무슨 미칠 일들이 그렇게 일상에 너부러져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우리는 속도 때문에 ‘미쳤어!’를 남발하는지도 모르겠다. 주문하거나 검색하여 금방 대령시켜야 하는 상태가 아니면 미칠 것 같아 한다. 이런 식의 감정들을 대중문화가 풍선에 바람 불어 넣듯 증폭하여 소통시키는 사이에 ‘미쳤어, 내가 미쳤어’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4 오늘의 시대는 대중들에게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인터넷 검색창에 ‘자책의 말’이라는 말을 확인해 보면 그런 경향이 쉽사리 확인된다. 아마도 심하게 자책하여 삶의 의욕을 잃고 절망과 좌절의 나락에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숱한 경쟁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는 경쟁에 밀릴 때마다 자책보다는 기운 내라는 격려가 더 필요할지 모른다. 현대인이 살아가는 삶의 환경과 조건이 너무 복잡하고 피곤하게 되어 있는 세상이니 자책으로는 헤쳐 나갈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탓하는 것이 너무 없어져 가는 세태가 되었다. 자책이 사라진 자리에 핑계의 잡초들이 무성히 자라고, 남 탓만 즐비하다. 무엇보다도 인정이 메말라 각박해진 사람들 자신이 스스로 공해가 된다. ‘자책하지 말라’는 말은 최선을 다하고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합당한 것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 자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성공의 자산이 된다. 어찌 보면 자책의 지혜에 이미 도달한 사람들은 행운을 얻은 사람이다. 자신의 과오에서 성공의 열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오에서 성공의 열쇠를 찾는 법 그것이 바로 내 탓을 인정하는 ‘자책’이다. 자신의 실수로 꼬이고 안 풀리는 와중에서도 “내가 뭘 잘못했는데!”를 연발하는 경우는 딱하기만 하다. 넘치고 모자라는 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일이란 것이 꼭 그렇게만 굴러가는 것 같지는 않다. 반성이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는 ‘내 탓하기의 자책’이 넘치고, 반성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아예 ‘내 탓하기의 자책’이 실종되어 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