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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여중(교장 이광석) 위클래스에서는 12월 24일 200여 명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3층 위클래스에서 애플데이 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 참가자들은 지난 21일부터 23일 사이에 자신이 사과하고 싶은 친구들 혹은 선생님께 사과 편지를 써서 위클래스에 전달하였는데, 위클래스에서는 지난 23일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본교 적십자 단원들 중에서 사랑의 우편배달부 도우미 10명을 뽑아서 편지와 함께 전달할 사과를 깨끗이 씻어 준비하였다. 이들은 24일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각 반별로 해당 학생과 교사들을 찾아가 편지와 함께 사과를 전달하였다. 이 행사를 기획한 위클래스 담당 고영임 교사는 “학생들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하네요. 내년에는 더 널리 홍보하여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도록 돕고 싶어요” 라고 말했고, 2학년 김다인 학생은 “사과하고 싶은 친구가 있어서 진심을 담아서 성의껏 편지를 썼어요. 친구가 제 마음을 꼭 받아주리라 믿어요” 라고 말했다.
구월중학교(교장 정복락)는 12월 23일에 교직원 장학 사업인 성말벌 장학회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전달하여 교직원들의 제자사랑 나눔을 실천, 지역사회 귀감이 되고 있다. 지난 2000년도에 결성되어 11년째 꾸준한 제자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구월중 교직원 장학사업 성말벌 장학회는 불우한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학업을 계속하기 어렵거나, 효행이 두드러진 학생들에게 전교직원의 작은 정성을 모아 제자들을 돕기 위해 설립되었는데, 올해 장학 사업으로는 아버지의 만성질환으로 생계가 곤란한 A군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 혼자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B군 등 가정환경으로 인하여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1학년 11명, 2학년 10명, 3학년 9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총 19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장학금을 받은 A군은 “제 환경을 생각하면 우울해지고 자꾸 공부하기 싫어지는데 선생님들께서 이렇게 도와주시니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서 저도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며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한편 정복락 교장은 30명의 장학생들에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생활하는 여러분들이 자랑스럽고 열심히 공부하여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지도자로 성장하길 바란다”라며 학생들을 격려하였다.
*** 요즘 같았으면 폭력교사라고 쫓겨날 짓을 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잘 못 본 게 죄지! “장영길 ! 이리 나왔!” 선생님은 핏발이 선 눈으로 노려보면서 화를 벌컥 내었습니다. 영길이는 무슨 일인지 몰라서 눈이 둥그레 가지고 엉거주춤 일어섭니다. “빨리 나와 ! 이게 뭐야 ? 넌 이 시험지를 두 번째 본 거야. 이거 .... 이게 뭐냔 말 야. 이 따위로 하니까 군내 경시 대회에서 75점을 맞아서 우리 학교의 점수를 까먹 더니 다시 본 시험지에서 요 모양이란 말이냐? 딴 사람은 몰라도 넌 이 시험지를 두 번째 본 게 아니냐? 그런데 75점이 뭐냐? 엉 이게 뭐냔 말이야?” 선생님은 붉으락푸르락 하시면서 영길이가 앞으로 나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이미 손에는 넓이가 10cm, 길이가 90cm 쯤이나 되는 무서운 매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무서운 매를 들어서 사정없이 엉덩이를 두들겨 패는 무서운 분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교살에서 잠을 자면서 집에도 못 가는 생활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무서운 매를 때리시면 반드시 왜 맞았으며,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지를 일러주시기 때문에 매를 맞을 때보다 나중에 꾸중을 들을 때 더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자기 잘 못을 뉘우치는 눈물이기 때문에 집에 가서도 매를 맞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진심으로 우리들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을 하시고 계시는 분입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교실에서 잠을 자면서 하루 15시간 이상을 매달려 우리를 가르치시느라고, 코피를 쏟으시면서도 밤을 새워 시험지를 만들어서 우리 공부를 시키십니다. 그런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울 뿐 매를 맞는 것쯤은 조금도 무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우리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봐야 하는 때였으니까요. 만약에 공부를 잘 하지 못하면 중학교에 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도 없었던 시절에 더구나 시골 면 소재지에서 4km 도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학교에서는 50명중 겨우 5,6 명이 중학교에 제대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공민학교라는 중학과정을 가르치는 무허가 학교에 가야 하는 그런 시절이기 때문에 6학년이 되면 요즘 고등학교 3학년과 똑같았습니다. 대부분의 도시 아이들은 집에서 과외를 받았지만, 우리 같은 농촌 구석에 있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시험지를 몇 장씩 풀면서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응용문제를 풀어서 시험을 대비하는 공부를 해야 하니까, 노는 시간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 무렵에 6학년 담임을 하시는 분들은 젊고 튼튼한 사람이 아니면 견딜 수도 없었습니다. 하루 8시간은 보통이고 밤이 되도록 수업을 하는데 중, 고등학교처럼 교대로 수업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온 종일 혼자서 연속으로 7, 8시간 수업을 해야 하는데, 우리 반은 그것도 모자라서 저녁을 먹고 밤 11시까지 교실에서 공부하고 11시 반이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에 깨워서 아침운동은 30분 동안 시킨 다음에 아침 공부를 한 시간 마치고 집에 가서 아침밥을 먹고 도시락을 두 개 싸 가지고 학교에 와야 합니다. 이렇게 하루에 자는 시간 5시간과 집에 다녀오는 시간 2시간해서 7시간과 잠시잠시 쉬는 시간 한 시간 정도를 뺀 나머지 16시간을 모두 선생님과 함께 교실에서 책과 시름을 하는 공부를 하고, 문제지를 풀고 외우는데 정신을 쏟아야만 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결과 학급에서 5,6명은 날마다 보는 시험지의 점수가 평균 95점 이상을 받고 있으며, 나머지 중학교에 갈 아이들도 거의 평균 80점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만약 못 미치면 모자란 점수대로 1점에 한 대씩 매를 맞기로 약속이 되었고, 우리들은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였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여 지난 10월 마지막 주일에 군내 경시대회가 열렸습니다. 각 반에서 가장 잘 하는 사람 두 명씩을 추천하여 군내 20여개 학교의 대표들이 한 곳에 모여 시험을 봐서 우수 학교를 표창하는 2학기 경시 대회에 우리 반에서는 영길이와 경규가 참가를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가 아주 조금 차이로 2등을 한 것입니다. 한 두 문제만 더 맞혔어도 1등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만 영길이가 수학에서 겨우 75점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90점만 맞았다면 1등을 한 읍내 학교보다 앞설 수 있었는데 무척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2등을 하고 돌아온 아이들을 수고했다고 격려를 했지만, 영길에게는 매우 꾸지람을 하였습니다. “뭐야, 이렇게 쉬운 문제수학에서 처음 5번까지는 가장 쉬운 문제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3문제를 틀렸음들을 틀렸으니, 이것은 네가 문제를 잘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냐?” 하시면서 꾸지람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 군에서 본 시험지를 가지고 우리 반 전체 아이들이 시험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를 대표하여 출전을 했던 장영길이가 오늘 시험지에서도 또 75점을 맞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본 순간에 “장영길, 이 녀석이 경시 대회에서 시험을 잘 못 봤다고 꾸중을 했더니 일부러 틀린 거지. 다른 아이들은 이 시험지가 처음이지만 영길이는 벌써 두 번째가 아니냐.” 이렇게 생각을 하신 선생님은 요즘 말로 뚜껑이 열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 올라옴것을 느낄 수밖에 없으셨을 것입니다. 장영길이가 앞으로 나가자 선생님은 “엎드려 뻗쳐 !” 하고 호령을 하시더니, 매를 들어서 영길이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리셨습니다. 아마도 열 대를 때린 것 같았습니다. 널찍한 매가 엉덩이에 떨어지는 순간 울려 퍼지는 무서운 소리는 교실을 쩌렁쩌렁 울려 우리들은 기가 죽어 고개를 들 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매를 맞고 있는 영길이 보다 더 움찔움찔 놀라는 아이들도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일어 서 !” 열대를 때린 선생님은 영길이를 일어 세우시더니, “이게 뭐냔 말이야. 이게 ? 그래 또 75점을 맞아? 네가 그것 밖에 안 되니?” 선생님은 조용히 타이르셨습니다. “...............................” 영길이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서 있습니다. “그래, 내가 미안하다. 너에게 걸었던 기대가 너무 컸었기에 군 대회에 가서 망치고 와서 또 이런 결과가 나오니까 너무 어이없고 내가 지금까지 잘했던 네가 이렇게 엉터리없는 짓을 하는데 대해 화가 났었다. 좀 고생스럽더라도 여기 꿇어앉아 있거라. 이 시간 공부가 끝나고 이야기하자.” 하시고서는 영길이를 들여보내고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영길이는 그렇게 맞고 혼이 났는데도, 공부 시간 내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꿋꿋하게 공부만 하고 앉아 있습니다. ‘저렇게 맞았는데 아프지도 않나? 정말 괜찮은 것일까?’ 아이들은 모두들 그렇게 생각을 하며 힐끔힐끔 영길이의 눈치를 살핍니다. 다른 아이들 같았으면 엄살을 부리고 엉엉 울거나 지금까지도 훌쩍거리고 있을 것인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영길이를 보면서 ‘정말 지독한 아이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였습니다. 오후 수업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가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 남았습니다. 영길이는 한 시간 반 정도를 그냥 꿇어앉아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공부 시간이 끝나고 화장실에를 다녀오라고 일어서는데 다리가 저려서 제대로 일어서질 못했습니다. 이걸 보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저 영길이를 좀 부축해 줘라. 다리에 피가 안 돌아 좀 힘들 거다. 교실만 나가면 괜찮을 것이니 붙잡아 주어라.” 하셨습니다. 앞쪽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영길이를 부축하여 나갔다. 몇 걸음을 걷던 영길이는 다른 아이들을 밀치고 혼자 걸었다. 정말 몇 걸음 걷는 사이에 다리가 괜찮아진 것인가 봅니다. “야 ! 엉덩이 괜찮냐?” 선생님이 안 보이는 다음 교실 복도쯤에 가서 철이가 물었습니다. “아프긴 해도 괜찮아. 소리만 요란하지 별로야.” 영길이는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면서 곧은 자세로 걸어 나갔습니다. “와 ! 우리 선생님 지독하다. 그걸로 10대를 때리시다니......” “그 까짓게 별거냐? 지금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우리하고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 자면 책을 읽으시더라.” “뭐 ? 그게 정말이냐? 난 자라는 말만 들으면 그냥 잠이 와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자 영길이는 “너희들이 자는 지 살피신 다음에 일기를 쓰시고 나서 책을 읽으시다가 주무신단 다. 그러고서도 하루도 우리보다 늦게 일어나신 거 봤니? 그런 분이야.” 지독히 매를 맞은 영길이는 아주 선생님의 자랑을 하려고만 덤볐습니다. “야 ! 영길이 넌 그렇게 맞고도 선생님 편이니?” 말썽꾸러기 규철이가 비꼬듯 말합니다. 그러자 영길이는 “그래, 난 선생님이 내가 미워서 때린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으니까 밉지 않아. 왜 미울 수 있니 ? 나를 잘 되라고 가르치려고 그러시는 것인데 뭘....” 하자, 다른 아이들은 더 이상 무어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매를 맞은 영길이가 도리어 다른 아이들이 선생님이 밉다는 생각을 한 것이 이상하다고 말을 하니까,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바라본 들판은 벌써 누렇게 벼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교실에서 잠을 자기 시작한 것은 들판에 보리 이삭이 저렇게 익기도 전이었습니다. 교실에서 자기 시작한지 한 달쯤 되어서 농번기라고 모내기철에 잠시 아이들이 학교를 쉬는 기간에도 우리는 계속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제 학교 공부를 시작한지 백일하고도 20일이 넘었고, 이제 마지막 한 달쯤이 지나면 중학교 시험을 보아야 할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날마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남쪽이라고는 하지만 벌써 11월이 되니까 날씨가 추워서 교실에서 잠을 잘 수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가까운 마을의 아이들 몇 명은 공부가 끝나면 집으로 가기로 하고 먼 아이들은 학교 사택에서 방을 빌어 여자들은 작은 방에서 남자들은 선생님과 함께 잡을 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는 동안에 날마다 보는 들판이 누렇게 변해 가는 것도 모른 채 시간이 흘러 버린 것입니다. 잠시 아이들이 노는 시간이 되는가 싶었는데 “어서 들어와라. 얼른 끝내고 가야지?” 하시는 말씀이 들려 와서 우리들은 바삐 교실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마지막 시간은 지금껏 공부한 것 중에서 가장 많이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 주시면서 그 이유를 일일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한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빨리 지나고 집에 가야할 시간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 얼른 가서 저녁을 먹고 오너라. 나머지 아이들은 저녁 먹고 저기 숙직실에 주전 자에 물 끓여 놓았으니 먹도록 하고...” 하시고는 무척 피곤해 하시면서 잠시 자리에 앉으시더니 “영길아, 이리로 와.” 하시면서 영길이를 데리고 숙직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영길이가 울고 나올 시간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울 수밖에 없을 것이니까요. 그런데 다음 날, 시험지를 받아든 영길이는 낯빛이 변하였습니다. 자기 시험지를 보니까 자기는 75점이 아니라 95점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시험이어서 선생님이 일일이 채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단 저 분단이 바꾸어서 시험지를 채점하는데 가끔은 내 시험지를 네가 채점하고, 시험지는 내가하는 경우가 생겨서 눈짓을 하여서 서로 적당히 비슷하기만 하면 동그라미를 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이걸 눈치 채신 선생님은 분단끼리 바꾸어서 앞뒤로 한두 번 바꾸게 만들어서 누가 누구 것을 채점하는지 일일이 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가끔 채점을 잘 못하여서 맞는 것을 틀리게, 또는 틀린 것을 맞다고 하는 경우가 생겨서 채점을 한 사람의 이름을 시험지의 윗칸에 적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영길이가 채점을 한 경식이의 시험지가 75점인데 그만 선생님이 이걸 잘 못 보시고 영길이가 75점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영길이는 자기가 75점을 맞았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난번 실수 때문에 선생님께 매를 맞아도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소리 않고 매를 맞았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아시고서는 자신의 잘 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매질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셨습니다. 영길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였지만, 영길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가 잘 못해서 2등을 해서 맞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웃으면서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자신의 실수를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시면서 “내가 너무 감정을 앞세워서 잘 못 본 게 죄이구나.” 하셨습니다.
요즘 학생에게 매맞는 교사가 화두가 되고 사회문제로 등장하였다. 그런데 이런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 모두들 체벌금지 때문이라고만 생각들을 하고 있어서 답답한 마음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이제야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벌써 부터 있어 왔다. 다만 이런 사건이 발생해도 차마 발표를 못하고 쉬쉬하면서 처리해 왔던 것이다. 교감으로 근무하던 96년에 6학년 남자아이가 담임에게 걸상을 집어 던지며 욕을 하고 달아난 사건이 있었다. 그때에도 학교에서는 부모를 불러서 사정을 알리고 어머니와 함께 담임 선생님께 용서를 비는 것으로 조용히 처리해주었다. 까닭은 그런 일을 한 어린이나 학생이 사건화 되어서 발표가 되고나면 받을 상처도 따져 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체벌금지 조항이 발표가 되고 실행에 들어가자 모든 것이 이것 때문인 양 떠들고 나서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원인은 생각해 보지도 않는 탓이라고 하겠다. 진짜 원인은 크게 두 가지가 된다. 첫 번째가 이렇게 떠들어 대는 언론에도 책임이 있고, 다음으로 너무 과보호하여 길러온 가정교육의 문제도 크다는 것이다. 체벌금지를 무슨 큰 사건이라도 되는 듯이 떠들고 크게 화제로 삼다보니 학생들은 이제는 ‘아무리 말썽을 부리더라도 체벌을 할 수 없으니 선생님이 어쩌겠어! 하는 생각으로 교사를 무시하게 만들었고, 그런 사실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니 나도 한번 해볼까하는 헛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화제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 그 어린학생들은 이 사건으로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클 것이며, 일생동안 얼마나 큰 마음에 멍에가 될는지 생각을 해보았는지 모르겠다. 한번 생각을 해보자 ‘내가 초등학생 시절에 나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에게 이런 짓을 저질러서 전국적으로 유명 학생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을 그 어린 학생이 평생 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1. 언론의 책임도 크다. 그런데 요즘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무슨 큰 잔칫상이나 차린 것 모양 앞 다투어 이런 사실을 발표하고 화제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방송이나 신문이 평소에 그렇게 선생님들의 인격에 아니 선생님들의 교권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준 적이 있었던가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아니 더 간단하게 매년 4월말에서 5월초의 신문이나 방송의 원고를 한번 검토해보라고 하고 싶다. 원고까지 다 떠들어 볼 필요 없이 타이틀만 한번 훑어보아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매년 5월 스승의 날을 앞두고 앞 다투어서 선생님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아주 형편없는 거지 취급을 해왔었다. 스승의 날 촌지 문제, 무슨 선물이니, 잡부금이니 하여서 교권을 짓밟아온 그들이었다. 정말 요즘에도 추잡스럽게 선물이나 촌지를 달라고 요구하는 교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긴 가끔은 그런 이야기가 들리는 것을 보면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아주 작은 일부분을 모든 교사로 확대하여서 교권을 짓밟아 온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무척이나 교권을 생각하는 양,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폭력 사태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아주 신바람이 나서 떠들어 대고 있다. 그것이 진정으로 교권을 생각하는 것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그러나 그런 보도들은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경고메시지가 아닌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나도 한번 해볼까하는 모방 심리를 유발한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지 못한 어리석을 짓이 되는 것이다. 어느 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 아주 재미났었다는 소문은 금세 인터넷을 통해서 퍼져 나가고 이것은 또 다른 이런 사태를 만들어 내고 마는 것이다. 왜 이런 교사 폭행이나 놀리는 사진과 동영상이 그렇게 빠른 시간에 퍼져 나가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보자. 그것은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이나 청소년이 그렇게 많다는 말이 아닌가? 바로 수십만의 클릭이 일어나는 동안에 그 중에 단 0,01%라도 모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청소년이 생긴다면 바로 이것은 기하급수적으로 번져가게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십만의 0,01%라도 그것은 벌써 10명이나 되지 않는가? 2. 가정교육을 되돌아보라. 다음으로 가정교육의 문제이다. 우리 교실은 요즘 아무리 학생 수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30명 정도의 집단이다. 그런데 이 많은 어린이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심정을 부모들이 과연 알까 싶은 때가 많다. 가정에서 두세 명의 자식과 생활을 하면서도 아니 단 한명의 자녀들과 생활을 하면서도 말썽을 피워서 속상하고 힘들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개성이 강한, 그리고 요즘 어린이들은 모두가 왕자나 공주이다. 그래서 자기 밖에 모르는 그런 아이들이 서로 부딪히고 자기주장을 하면서 말썽을 부릴 때에 어느 누구 편을 들어 줄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잘못을 따져 보지만 서로에게 주의를 주어서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책임이고 임무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알려지면 자기 자녀의 말만 듣고 담임이 누구의 편만 들어 주었다느니, 누구는 무슨무슨 책임자 자녀이니까 봐줬다느니 심지어는 누구 엄마가 자주 무엇을 사들고 다니니까 편을 들어 준다고까지 하면서 비난하고 교사를 헐뜯기 일쑤이다. 그렇게 일단 교사를 비난하기에 앞서 자기 자녀가 정말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인가? 그리고 정말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협력적인 아이인가? 자기 주장만하고 남에게 양보를 하지 않는 성질을 가지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을 한 번쯤 따져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 일에서 정말 내 자녀가 잘못한 일은 없었을까? 이 아이의 말 속에는 당연히 자기 합리화가 숨어 있을 것인데 정말 그 아이의 잘못만 있는 것일까? 이렇게 냉철하게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녀 말만 믿고 학교에 와서 상대 아이를 나무라거나 때려 주어서 어른 싸움이 되고 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되기 때문이다. 정말 교실에서 아이들과 생활을 하다 보면 가정에서 너무 ‘오냐오냐’하며 키웠다는 생각이 드는 아이들이 꽤 많다. 그런 아이들 일수록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잘 부딪히고 말썽을 일으키는 일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가정교육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무조건 선생님을 비난하거나 상대 아이를 욕하기에 앞서 내 아이에게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고 내 자녀만 귀하게 생각하는데서 생겨난 가정교육의 문제인 것이다. 요즘 취업포탈 등에서 가장 뽑고 싶은 사람의 성격 중에 가장 으뜸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만 보아도 이 협력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 그만큼 귀하고, 가장 찾기가 힘들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해서 요즘 젊은이들에게서도 협력하는 마음을 찾기가 힘들다는 말인데, 앞으로 내 자녀가 자라서 회사에 입사할 때 정말 큰 문제가 되지 않겠는지 내 자녀의 인격을 바르게 길러주기 위해 무엇이 가장 부족한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3. 교사들의 문제도 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선생님들은 대부분 여자 선생님들이다. 그러다 보니 벌써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교사 보다 덩치가 크고 힘도 센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담임이라고 아이들을 함부로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당장 통제하기도 힘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부분이 여선생님이기에 고학년을 맡을 남자 선생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고학년 담임은 기피하지만 순번에 의해서 한 번씩 돌아가면서 맡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든지 자기 반 아이들과 어울리고 통솔하는 능력을 가져야만 하는데 통제 불능 상태가 된다면 그것은 교사로서 치명적인 능력의 부족이라 할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통제를 하느냐는 자기 자신이 개척하여야 할 일이지만, 일단 자기 반을 이끌어 갈 수 있어야 교사로서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할 것이 아닌가? 사람이기에 만능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것은 교사로서 갖추어야할 첫 번째 능력인데 이것이 부족하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엊그제 교사를 놀리는 동영상의 교사는 잠시 맡아야할 임시교사라고 하였지만, 나머지 사건의 교사는 대부분이 담임이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교사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여야 한다. 앞으로 갈수록 영악해지고 교사를 우습게 보는 아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자기 자신이 맡은 아이들을 통제도 못하고서 어떻게 교육을 하겠다고 하겠는가? 이제 체벌을 하지 않고도 아이들을 잘 다스리고 통제하면서 이끌어 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스스로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누구의 힘으로도 그것을 줄 수는 없다 자기 개발을 하여야 한다. 이제 이것도 교사로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되어야 할 판인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스스로 아이들을 통제하고 잘 이끌어 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 이러한 불미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 반의 아이들만은 내가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해야만 교사로서 살아남을 수 있고, 교사로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인정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10년도 영예의 제29회 인천교육대상 수상자 5명이 확정 발표됐다. 인천시교육청은 교직원과 일반시민의 추천을 받아 인천교육발전에 공적이 큰 유아․특수, 초등교육, 중등교육, 관리지원, 사회교육 등 모두 5개 부문에 걸쳐 수상자를 결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인천교육대상은 인천시교육청이 매년 인천교육 발전을 위해 공헌한 인물들의 공적을 접수받아 내․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수상자를 선발, 수여하고 있다. 2010년도 부문별 수상자는 ▲유아․특수부문=김윤성(미추홀학교 교장) ▲초등교육=유기환(동막초교 교장) ▲중등교육=변종섭(인화여고 교장) ▲관리지원=함동신(남부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사회교육=조성신(성신아이스학원 원장) 이다. 김윤성 미추홀학교장은 교육청 산하 위원회 활동과 지원단 활동을 통한 학교현장의 특수교육 개선에 기여하였고, 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위해 다양한 강의활동에 펼쳐 왔으며, 지방자치단체 및 지역사회의 협력을 통한 특수교육환경 개선, 직업교육과 특수교육 현장 개선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유기환 동막초 교장은 초등교사들을 위한 수학교과의 전문성 역량개발과 교실현장 수업방법 개선활동으로 현장교사의 전문성 향상에 공헌하였고, 컴퓨터와 정보화교육에 멘토링제를 도입해 교내 장학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학교현장 교사들의 ICT를 활용한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신장에 노력해 왔다. 또한 인터넷․게임 중독예방교육 활동과 디지털교과서 활용교육 활동, 학교 CEO/CIO 강사 활동 등으로 인천교육의 정보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변종섭 인화여고 교장은 학생중심의 다양하고 특화된 방과 후 교육과정운영과 야간과 주말을 이용한 특강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욕구에 부응하고 저소득층의 사교육비 절감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교과별 특색이 갖추어진 교실 수업환경을 조성하고 7개 트랙으로 구성된 진로집중식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함으로써 교과교실제 전국 최우수상 수상과 ‘대한민국 좋은학교 박람회’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적이 인정됐다. 함동신 남부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은 전자입찰제도 도입, 견적입찰제도 및 청렴계약제도의 도입, 효율적인 공사관리를 위한 공동도급계약 개선 등으로 전국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인천교육청의 1위 달성과 교육예산 절감에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지난 15여년간 국제기아대책기구, 꽃동네, 사랑밭회, 새생명나누기운동, 나눔회 등을 후원하고, 소년․소녀 가장 및 무의탁 노인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30년간 처부모 및 5년간 노모 봉양 등 사회적으로 귀감이 된 점이 인정됐다. 조성신 성신아인스학원장은 인천 관내 3천 5백여 학원의 건전한 학원운영지도와 담임제 시행을 통한 원생들의 생활지도 및 인성교육으로 지역사회 청소년 계도에 공헌한 바가 크고, 학원 내 장학제도 운영으로 불우한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건전한 학원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결정됐다. 올 인천교육대상 시상식은 오는 30일 인천시교육청 대회의실에서 거행된다.
김종원 서울 경동고 교장(한국사이버문학연합회장·서울교원문학회 부회장)은 24일 격월간 좋은문학사가 제정한 좋은문학상 시상식에서 시 부문 좋은문학상 본상을 받았다.
지난 12월 14일부터 17일까지 호주 퀸즈랜드주 골드코스트시에서 그리피스 대학 주관으로 제12회 국제로봇올림피아드에서 인천대건고의 2학년 문성준, 서예준, 정동혁 학생이 창작부문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는 쾌거를 보여 지역사회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 창작부문의 주제는 “Robots Helping Secure our Water Future!”였는데. 학생들은 “Guardian of Lake”라는 제목으로 강이나 호수를 감시하는 악어로봇을 만들었고 이스라엘, 인도, 중국 등의 심사위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으며 쏟아지는 질문들에 진땀을 흘린 결과 은메달을 수상했다. (첨부사진참고) 한편 로봇댄싱부문에 참가한 인천대건고의 1학년 전호준 학생은 5등, 임동훈, 최한돌 학생이 6등을 차지하여 Special Award를 수상하기도 하였는데 국제로봇올림피아드는 국내 각 지역(인천) 예선을 통과한 학생들이 한국대회에서 수상하여야 국제대회 참가자격이 주어지며 매년 참가국별로 순회하며 개최되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호주에 14개국이 참가하였고, 내년에는 인도네시아 개최된다. 경연종목은 창작분야를 비롯하여 로봇댄싱, 카트롤링볼, 트랜스포터, 장애물탈출, 로봇인무비 등 다양한데 대건고에서 로봇연구반 동아리를 지도하고 있는 최범진 교사는 로봇산업 분야에 국가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성취도도 높고 창의적인 사고 개발에도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 지속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며 다만 전문계고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은 아쉽다고 말하고 학교나 외부에서 억 단위의 지원과 예산이 확보되는 전문계고와는 달리 일반 인문계고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은 상황을 안타까워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시상의 계절’이다. 지난 주부터 연달아 전북대상, 전북교육대상, 전북애향대상, 전북문학상 시상식이 열린데 이어 전주시예술상 수상자가 발표되기도 했다. 예년과 다르지 않다면 또 전북예술상 등 이런저런 시상식이 열린다. 당연히 수상자들은 상장 내지 상패와 함께 소정의 상금을 받는다. 가족과 친지, 그리고 지인들까지 함께 한 시상식이라 그 기쁨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마냥 박수치고 축하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무늬뿐인 상’ 때문이다. 무늬뿐인 상의 대표는 지자체장, 교육감 등이 주는 상이다. 가령 전북문학상은 ‘가난한’ 전북문인협회가 주는 상인데도 1명당 200만 원씩의 상금을 부상으로 준다. 독지가의 기부로 100만 원에서 2배 올린 액수이다. 그런데도 전라북도의 ‘자랑스런 전북인대상’, 전주시의 ‘전주시예술상’은 달랑 상패 또는 메달만 주고만다. 물론 특정 지역만의 현상은 아니다. 한 예로 광주광역시 문화예술상도 무늬뿐인 상이다. 박용철문학상ㆍ허백련미술상ㆍ오지호미술상ㆍ임방울국악상 등 유명한 예술인 이름으로 시상하는 ‘광주광역시 문화예술상’이지만, 그 요란함에 걸맞지 않게 상장(상패)만 달랑 줄 뿐이다. 그들 지자체가 내세우는 이유는 공직선거법 제112조이다. 선거법에서 기부행위를 금지하고 있어 상금을 주고 싶어도 부득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변명이 아니라면 무지의 소치이거나 직무유기이다. 공직선거법에 기부행위 예외 조항이 있어서다. 공직선거법 제112조 2항은 “지방자치단체가 대상ㆍ방법ㆍ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정한 조례에 의한 금품제공 행위는 직무상의 행위”라 규정하고 있다. 조례에 의한 상금 수여는 기부행위 예외조항에 속하는 것. 실제로 군산시는 매년 채만식문학상을 시상하면서 1000만 원의 상금을 부상으로 주고 있다. 바꿔 말하면 전라북도나 전주시, 광주광역시 등 많은 지자체들이 조례제정을 하지 않아 무늬뿐인 상을 시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해가 안되는 것은 수년째 계속 무늬뿐인 상을 시상하는데도 그대로 방관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1962년 처음 실시한 전북문화상이 1996년부터 확대 개편된 자랑스런 전북인대상 상금은 5백만 원이었다. 1990년 첫 수상자를 낸 풍남문학상이 1999년 확대ㆍ개편된 전주시예술상 상금은 3백만 원이었다. 상금 미지급일망정 오랫동안 그 상이 존속되어온 것은 전라북도와 전주시를 각각 대표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언론사나 문학단체 등이 시상하는 각종 상은 소정의 상금이 있어 수상자들의 기쁨을 배가시킨다. 상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는 셈이다. 유독 지자체만 수상의 기쁨을 반감시키고 있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조례제정을 통해 상다운 상이 되게 해야 한다. 교육감이 학생들에게 주는 상도 마찬가지다. 외부기관이나 단체에서 의뢰한 경우는 그렇다쳐도 도교육청 자체적으로 매년 실시하는 중등 문예백일장, 중등예능경연대회 등 정기적 사업은 조례 제정을 통해 상장 한 장만 달랑 주는 일은 없애야 맞다. 공무원들의 무지나 게으름으로 인해 무늬뿐인 상이 더 이상 계속되어선 안될 것이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의 그늘, 결식아동 예산은 0원의 충격! 1988년 제정된 대한민국어린이헌장에는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니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자"는 기본정신이 있다. 그럼에도 현재 수많은 결식아동들이 끼니를 거르며 차별 받고 인간의 존엄성에 심각한 상처를 받고 있기에 이 글을 쓰고자 합니다. 정확한 통계조차 잡히지 않은 결식아동 문제. 예산을 늘려도 모자라는 판에 지원 예산 전액 삭감이라는 소식 앞에 답답한 가슴을 누를 길이 없습니다. 1997년 1만 1천명이었던 결식아동수가 1998년 IMF 경제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나 2002년 19만 7천명에 달했습니다. 2010년 현재 빈곤가정 120만 명, 결식아동 45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정부에서 관리하는 대상자만 파악한 것이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교육비 지원대상 저소득층 자녀까지 확대해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할 것입니다. 전라남도의 경우를 보면 2010년 2만여 명의 결식아동을 위해 국비로 11억 원을 배정받아 방학 중에 42억 원을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2011년도부터는 전액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갑자기 떨어진 발등의 불을 끌 예산 확보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을 나게 될 결식아동 문제는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하고 돌아보아야 할 아픈 상처가 분명합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고 했던가요? 누가 그렇게 안일한 답을 내놓았을까요? 가난이 대물림 되는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상처를 안고 자란 아이들은 다시 자존감에 타격을 입은 어른이 됩니다.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짜내어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이들이 한 명도 나오지 않게 하는 일은 사회적 국가적 책임임을 어른들은 잊어서는 안됩니다. 80살 넘은 할머니 손에 자라는 철수 이야기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인 김철수 (가명) 어린이와 나눈 일문일답입니다. 선생님; 철수야, 그 동안 잘 지냈니? 네가 컴퓨터 게임도 많이 안 하고 글짓기 대회에서 큰 상도 타서 참 자랑스러웠단다. 어때, 철수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착하게 사니까 좋은 일도 많이 생기지? 철수 : 예, 선생님. 지금은 컴퓨터 게임도 많이 안 합니다. 선생님께 2학년 때부터 글쓰기 지도를 받고 책을 많이 읽으면서 좋은 생각이 많이 자란 것 같아요. 이제는 공부에도 자신감이 생겼어요. 선생님: 그러니? 참 다행이구나. 겨울방학이 시작되니까 참 좋지? 철수 : 아니오. 친구들은 겨울방학이 좋다고 하는데 저는 방학이 되면 쓸쓸하고 힘들어서 싫어요. 학교에 다닐 때는 친구들이랑 선생님이랑 같이 공부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은데 방학이 되면 친구들도 볼 수 없고 하루 종일 갈 곳도 별로 없어서 싫어요. 선생님: 그렇구나. 철수의 말을 들으니 선생님 마음이 참 아프구나. 또 힘든 것이 뭐지요? 철수 : 그것은 우리 할머니 연세가 이제 80세를 넘어서 아픈 곳도 많으시고 형이랑 나를 위해서 밥을 해 주시고 집안일을 하시는 것을 너무 힘들어하시기 때문에 참 슬퍼요.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더 많이 아프셔서 걱정이에요. 선생님: 그래. 철수 할머니께서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철수가 행복할 텐데. 물어보기 미안한데 혹시 어머니 소식은 듣고 있니? 아버지는 자주 오시니? 철수 : 아니오. 어머니 소식은 모르고 아버지는 1년에 세 번쯤 명절에만 다녀가십니다. 아버지는 충청도 어디선가 일꾼으로 날품팔이를 하시는데 아버지도 힘드셔서 연락도 자주 못 하십니다.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랑 헤어지고 소식이 끊어진 지 오래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겨울방학을 신나게 기다리는데 철수에게는 겨울방학이라는 낱말이 좋은 단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목이 잠겼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겨울을 나는 아이들이 45만 명에 이른다는 민간사화단체의 통계 조사를 생각하면 어른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 따뜻하게 받아줄 부모님 대신에 늙고 병든 할머니의 고부라진 허리, 주름진 손에 의지하여 자라온 철수 눈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슬픔이 담겨 있어 면담을 청한 내 가슴이 뻐근해졌습니다. 그의 상처를 덧나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됐지만 누군가는 그의 상처를 열고 고름을 닦아내고 약을 바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용기를 잃지 말고 이겨내자고 다독이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선생님: 방학 때면 집으로 도시락이 배달되었는데 언제부터였지? 만약에 이번 겨울방학에 그 도시락이 배달되지 않으면 어떻겠니? 걱정이 되어서 물어보는 거야. 나도 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고 싶고 학교 선생님들 하고도 의논해 보고 싶어서 그래. 그러니 어려워 말고 말해 주겠니? 철수 : 1학년 때부터 방학에는 도시락이 왔는데, 이번 겨울방학 때는 오지 않는다고요? 우리 할머니가 너무 고생하실 거예요. 아버지가 벌어서 주는 돈도 별로 없는데 조금이나마 반찬 걱정을 덜어주는 도시락이 없다면 라면을 많이 먹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진짜로 겨울방학 때 도시락이 안 오는가요? 선생님 : 선생님도 그게 걱정이 되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거란다. 어떻게 방법을 생각해 보고 싶어서, 함께 고민해 보는 거란다. 학교에 다닐 때는 점심 걱정도 하지 않고 급식비 걱정도 하지 않고 잠심을 먹었는데 방학을 하면 점심밥부터 걱정이구나. 지도자는 희망을 팔아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의 결식 문제는 절대 빈곤 시대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단순히 가난해서 굶는 게 아닙니다. 가정이 파괴된 상태에서 떠밀리듯 손자, 손녀들을 떠맡은 조부모의 한숨과 눈물이 가난보다 더 아픈 상처라는 데 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 실직과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당시의 충격으로 인한 이혼과 가출의 상처를 안고 시골로, 조부모 곁으로 들어온 아이들이 그 상처를 고스란히 받고 있는 구조적인 사회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신상 정보를 최대한 보호하고 있는 학교 현장에서도 아이들 개개인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편지 쓰기를 하는 일도, 가족 나들이의 체험을 발표시키는 일도. 세찬 겨울바람에도 숨쉬기를 마다하지 않는 질경이처럼, 민들레처럼 세상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채 살아가는 가여운 아이들을 지켜내는 일은 선생님의 몫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끼니를 거르는 이유는 절대빈곤과 함께 부모의 실직, 부도 등으로 가족이 흩어져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부모가 집에서 가출하여 소년소녀가장이 된 경우, 가족적인 이유와 사회적인 이유가 결합된 경우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결식은 한참 성장기에 있는 아동에게 신체적 성장 저하, 정서적인 불안정, 심리적 위축, 학교 부적응, 학습능력 저하 등 악영향을 미치게 하고, 이로 인해 건강하고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됨으로써 또 다른 사회문제를 낳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결식아동 지원을 넘어 길게 보면 언젠가는 제일 먼저 추진해야 될 복지예산이 바로 무상급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의 자식이 되었든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먹을거리 걱정을 하지 않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결식아동 외면은 나라의 수치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했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고 다른 나라를 도울 정도의 국력을 가진 나라에서 결식아동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의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하고 힘든 부모로부터 원하지 않는 격리를 당한 채, 조부모의 슬하에서 배고픔을 삼키며 자라는 아이들이 받을 상처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서 생기는 자존감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사회적 비용까지 생각하면 결식아동이 마음 놓고 밥을 먹게 하는 일은 길게 보아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유럽 복지국가의 기본인 무상급식까지는 못 가더라도 우선 당장 시급한 결식아동 급식비 만큼은 확보하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 국가의 책임입니다. 나폴레옹은 '지도자는 희망을 파는 상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국가의 리더들과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팔아야 합니다. 45만 명이나 되는 소중한 우리의 아이들이 국가로부터 어른들로부터 받은 무관심과 배고픔의 상처를 안고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의 아픔에 공감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철수가 지역 예술제에 나가서 교육장상을 받은 시를 소개합니다. 짧은 시 한 편에 담긴 이 어린이의 비원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아버지 말씀 김철수 (가명) "설날에 다시 올게 " 추석에 오신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할머니 말씀 잘 들어라 " 며칠 전 전화로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 몸 아프지 마라 " 전화하실 때마다 걱정하시는 아버지 말씀 매일 매일 듣고 싶은 아버지 말씀
오늘 자 지방 신문 교육관련 소식이 교육자의 고개를 떨구게 만든다. 기사 큰 제목이 "수능 끝난 高3 교실 ‘놀자판’ 파행수업 여전"이다. 소제목으로는"'6교시 수업 의무화’ 말 뿐 TV 보거나 잡담하다 귀가" , "교사들 '통제 안 돼' 손 놔… 일부 학교 '단축수업 고려'"다. 기사 내용을 보니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경기지역 상당수 고3 교실의 ‘시간때우기식’ 파행수업이 올해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아이들은 아침 일찍 학교에 등교하지만 기껏해야 영화를 보거나 잡담만 하다가 귀가 하고, 교사들도 아이들 지도가 어렵다며 수업 시간에도 교실을 비우는 등 신경을 쓰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자 3명이 출동, 현장 고교를 방문하여 관찰한 것을 그대로 기사화하였는데 3개교의 학교 실명이 그대로 노출되어 학교 명예가 많이 실추되었다. 이에 대한 도 장학관의 대안 제시도 나와 있지만 현장 여건에서는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고입시험을 치룬 중학교도 그 정도보다야 덜하지만 거의 마찬가지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3학년을 위해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로맨틱 크리스마스 이브 콘서트' 원래는 24일(금) 오후 7시 30분 공연인데 우리 학교 3학년을 위해 23일(목) 11시에 공연을 하는 것이다. 장안구민회관 담당자와 연결이 되어 서호중학교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입장료 10,000원은 학교 단체여서 50% 할인 받고, 학교에서 3,500원 지원하여 주니 학생들은 1,500원만 부담하면 된다. 고전음악 연주회에 이 정도면 저렴한 가격이다. 연주 단체는 수원음악진흥원 현악 5중주팀이다. 공연 시기와 콘서트 내용이 딱 맞는다. 필자는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중학교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 성탄절을 앞두고 음악회 관람은 더욱 뜻이 깊다. 어린 시절 음악적 감동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장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콘서트 후에 귀에 익은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귀가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오늘 연주 곡목을 보니, 편곡한 크리스마스 캐롤 메들리 2곡, 영화음악 3곡, 탱고, 모짜르트 곡, 바하와 헨델 곡, 차이코프스키의 왈츠 등 귀에 익은 곡이 대부분이다. 연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주자는 작곡가와 연주곡해설이 곁들인다. 그 뿐 아니다.영화 줄거리도 이야기 하고현악 5중주 악기 설명도 덧붙인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교육이다. 게다가 연주곡에 맞는 화면이 뒷배경을채운다. 귀만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눈도 즐겁게 한다. 기억에 오래 남게 하는 방법이다. 세심하게 신경을 써 준 장안구민회관 관계자가 고맙기만 하다. 연주 후, 시간 여유가 있어 필자가 마이크를 잡았다.방금 연주된 모짜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직'을 입으로 연주하니 학생들이 박수가 나온다. 지금 우리나라의 유명한 음악가들은 중학교 시절, 등하교 하면서 베토벤의 교향곡 1번부터 9번까지 입으로 흥얼거려 오늘에 이르렀다고 알려준다. 수원음악진흥원 최혜영 원장은 말한다. 중학교 때 음악회 관람이 인연이 되어 음악을 전공하고 지금의 음악가가 되었다고. 이재린 장안구민회관 관장은 클래식 콘서트가 학생들의 정서 교육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음악의 힘은 이렇게위대한 것이다. 필자의 경우, 대학 방송실에서 클래식 음악을 가까이 하고 교단에 첫발을 디딘 첫 해에 누님과 함께 번스타인 지휘 뉴욕 필하모니의 내한공연을세종문화회관에서 본 적이 있다. 당시 거금(?)을 들여 관람한 것이다. 그러나 수준 높은 음악을접하니 돈이 아깝지 않았다. 오늘 콘서트, 중학생 대상이라고 대충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5명이 호흡을 맞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해설도 중학생 눈높이에 맞는다. 이게 바로 연주자의 바른 자세다. 참교육자의 자세와도 같다. 수능 이후 프로그램, 노력하여 찾거나 학교 자체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지역의 인적자원과 유대관계를 맺고 물적 자원을발굴 활용하면언론에서 지적한 등교 후 무의미한 시간은 없앨 수 있다. 학교의 교장과 교감, 3학년부장, 3학년 담임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졸업할 때까지 그들에게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게 학교가할 일이다.
엄마가 주신 만 원짜리 돈을 만지작거리며 선생님께 다가섭니다. “선생님, 날갈이 해도 돼요?” “시간 없다. 그냥 신어라.” 나는 집에서 가져온 스케이트를 든 채 쭈뼛거립니다. 날갈이를 해야 잘 나가는데 그냥 신으라니 짜증이 납니다. 긴 파마머리를 뒤로 묶은 선생님께서는 친구들이 스케이트 신는 걸 도와줍니다. 그냥 내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 위에 서니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미끄러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안전모 타고 갈까?” “동민아, 그거 재밌겠는데.” 준혁이가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세워 흔들더니 안전모를 벗습니다. 나를 따라 안전모를 엉덩이에 깔고 앉습니다. 쭉 미끄러져 나갑니다. 빙글 돌기도 하고 기우뚱하며 아이들과 부딪히려고도 합니다. 스케이트 타는 것과는 색다른 아슬아슬한 맛이 있지요. 선생님께서 호루라기를 불어 우리를 부릅니다. 준혁이는 재빨리 안전모를 머리에 쓰더니 스케이트를 타고 갑니다. 나는 안전모를 깔고 앉아 두 발로 중심을 잡고 선생님 앞까지 미끄러져 갑니다. “동민아, 너 지금…….”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듯 말을 잊지 못합니다. “기분 짱이예요!” “뭐?” 이상하게 선생님의 얼굴이 굳어집니다. 그러고는 아직도 내가 깔고 앉은 안전모를 곁눈질합니다. 그동안 선생님이 말없이 뭔가 유심히 볼 때는 날벼락이 떨어지곤 했었지요. 나는 얼른 안전모를 들고 일어섭니다. 선생님께 더 대꾸는 못하고 손으로 뒤통수를 긁적입니다. 스케이트나 안전모나 타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규칙은 다시 정하면 되는 거고요. 꼭 안전모를 쓰라고만 할 필요는 없잖아요. 왜 내가 잘못한 건가요? 나는 준혁이와 가끔 발차기 놀이를 즐깁니다. 마주보고 한 걸음 정도 떨어져서 상대편 다리를 얼른 차고 피하거나 발바닥을 맞대서 공격을 막는 놀이지요. 스케이트 강습에서 돌아온 다음 날 2교시 뒤 쉬는 시간입니다. 선생님이 교실을 비운 틈에 내가 준혁이에게 눈짓을 보내며, 교실 뒤로 갑니다. 준혁이가 얼른 따라옵니다. 내가 창 쪽을 바라보고 자세를 잡자, 준혁이는 나와 마주보고 섭니다. “휙. 차악.” “파박. 척.” 발바닥과 발바닥이 팍팍 맞부딪히는 게 마치 장단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다리 공격을 시도합니다. “휙, 어엇.” 준혁이가 잽싸게 피하는 바람에 그만 내가 헛발질을 합니다. 벗겨진 내 실내화가 붕 뜹니다. 이런! 공교롭게도 열린 창문 밖으로 날아갑니다. 창가로 달려가 고개를 창문 사이로 쭈욱 내밀어 봅니다. “어떻게 하지? 실내화가 …….” 장식 동그라미가 나를 곤란하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우리 학교의 건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이 동그라미입니다. 창문 네 개를 에워싼 커다란 장식 동그라미가 2층 교실마다 두 개씩 있어요. 이 동그라미는 벽돌 하나만큼 벽에서 튀어나와 있지요. 하필 여기에 실내화가 딱 걸릴 게 뭐지요? 준혁이도 창까지 와서 내 실내화를 내려다봅니다. “비로 걸어 올리자.” 준혁이가 청소함에서 비를 꺼내옵니다. 거꾸로 잡은 비를 쭉 내밀어 보지만 실내화에 닿지 않습니다. “창문을 타고 내려가 볼까?” 내 말에 준혁이가 깜짝 놀라 말립니다. “안돼. 큰일 나.” 선생님께서 커다란 난화분에 꽂혀 있던 지지대를 뽑아 둔 것이 생각납니다. 그걸로 칼싸움하다가 걸린 적도 있습니다. 무슨 구경났다고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그들을 헤치며 교실 앞으로 간 나는 모서리 구석에 세워져 있는 지지대 하나를 들고 옵니다. 왼손은 창틀을 잡고 배를 걸친 채 허리를 내밀며 오른손으로 한 쪽 끝을 잡은 지지대를 뻗칩니다. 좀 어질어질 합니다. 그 끝이 실내화에 닿을락 말락 합니다. “끌어 올리려 하지 말고 아래로 떨어뜨려.” 옆에서 준혁이가 못 거들어 안달입니다. 다시 고개를 창밖으로 내미는 순간 누군가 내 뒷덜미를 잡아당깁니다. “뭐야? 어떤 놈이야?” 나는 잡힌 목을 흔들며, 소리를 꽥 지릅니다. “나다.” 선생님의 낮고 힘을 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엇, 선생니~임!” 놀란 내가 고개를 휙 돌리는 바람에 잡혔던 목덜미가 선생님의 손아귀에서 풀렸지만 얼얼합니다. “뭐하는 거야, 지금?” 화가 잔뜩 난 목소리입니다. “실내화가 저기…….” 고개를 빼서 밖을 보고 난 선생님은 내 어깨 양쪽을 꽉 잡습니다. “이런 위험한 짓을 또…….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지면 실내화도 못 신어.” “안 위험한데…….” 어깨를 잡은 손을 두어 차례 흔들다 놓은 선생님께선 내 눈을 똑바로 쏘아봅니다. 나는 목을 움츠리며 또 뒤통수를 긁습니다. 선생님은 참 이상합니다. 내가 몸을 창밖으로 내민다고 떨어지는 건가요? 나는 나대로 조심한다구요. 괜시리 안전모 탈 때처럼 걱정만 많아서 꾸중합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대체 왜 내가 잘못한 건가요? 재량 휴업일과 토요 휴업일이 이어져 3일 내리 쉰 뒤에 등교한 날입니다. 교실에 들어서니 페인트 냄새가 가득합니다. 맨 먼저 와서 교실에 첫발을 딛는 순간에 나는 내가 잘못 들어온 줄 알았어요. 온 벽이 밝은 회색으로 깨끗이 칠해져 있어 낯선 느낌이 들었거든요. 다시 나갔다가 3학년 1반 학급 팻말을 확인하고 들어옵니다. 그때 교실에 들어 온 준혁이도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재미있는 일이 있을만하면 때맞춰 나타나는 준혁이가 맘에 듭니다. “벽에 축구공 때리기 할까?” 내 제안에 준혁이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앞뒤로 흔듭니다. “오예. 좋은 생각이얌!” 나는 축구공을 재빨리 꺼내옵니다. 칠판 아래쪽 깨끗한 벽이 나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앞에는 책상도 없으니 공차기는 제격입니다. “팍!” “퍽! 팍, 퍽!” 나는 준혁이와 죽이 잘 맞아 번갈아 공을 차니 흥이 절로 납니다. 축구공도 재미있는지 퍽팍 소리를 내며 벽에 무늬를 만들어 놓습니다. 이건 상상도 못한 재미입니다. ‘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란 생각이 떠올라 혼자 씩 웃습니다. 친구들이 들어오면서 가방을 던진 채 달려듭니다. 축구공이 네 개로 늘어납니다. 열 명 남짓 몰려들어 겨루듯이 하는 공차기는 더욱 신바람이 납니다. “좀 더 빨리!” “팍, 팍, 파팍!” 온통 벽엔 축구공 무늬가 빼곡합니다. 공이 여러 개니 여기저기서 날아와 정신이 어지럽습니다. ‘우와! 넘 재밌다. 난 역시 천재야.’ 그 순간 내가 힘껏 찬 공이 칠판을 맞고 뒤쪽으로 튕깁니다. 공에 맞았는지 ‘아야.’ 하는 비명 소리도 들립니다. 그 북새통에 자리에 앉아 자습하던 여자 아이들이 왁자지껄 일어섭니다. 하지만 그런데 신경 쓸 내가 아니지요. 누가 뒤에서 던진 공이 데구르르 공이 굴러가는데 아무도 안 차네요. “뭐 해. 공 굴러 가잖아.” 내가 잡으려는 순간에 불쑥 나타난 발이 그 공을 밟아 세웁니다. 빨강 꽃장식이 두 개 달린 은색 슬리퍼가 나를 얼어붙게 합니다. “엉? 선생니~임.” 힐끗 보니 준혁이도 어느 새 한쪽으로 비켜서서 슬그머니 눈꺼플을 내립니다. 공을 찼던 친구들이 고개를 숙이고 교실 한쪽에 몰려 서 있습니다. 선생님은 축구공 무늬가 어지럽게 찍힌 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쉽니다. 그리곤 말없이 우리들을 둘러봅니다. 이럴 때가 나는 제일 힘듭니다. 차라리 한 대 맞았으면 속이 후련할 것 같습니다. “매를 맞을게요.” “…….” 이렇게 나서는 내가 한심한지 선생님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토끼뜀 10바퀴…….” 준혁이 말에 또 한번 한숨을 쉬며 창 밖으로 눈을 돌립니다. “한 달 간 청소할게요.” 누군가 한 말에 나는 깜짝 놀랐지만 선생님은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다시 보니 벽에 그려진 축구공 자국이 지저분하네요. 페인트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베란다에서 동생하고 장난치며 찍은 신발자국을 닦던 엄마 모습이 떠오릅니다. 페인트 위에 코팅하지 않았으면 닦아지지도 않았을 거라며 잔소리를 하였지요. 나는 슬그머니 뒤에 있는 청소함으로 갑니다. 청소할 때 쓰던 세제와 양동이, 걸레를 꺼내옵니다. 엄마가 한 것처럼 세제를 벽에 뿌리고 걸레로 빡빡 문질러 닦습니다. 축구공 무늬가 조금씩 지워집니다. 준혁이가 슬금슬금 다가와 같이 닦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하나 둘 슬그머니 끼어듭니다. 세제를 묻히지 않은 걸레를 양동이에 떠 온 물에 빨아 거듭 벽을 닦습니다. “쓱싹쓱싹.” 벽을 닦는 소리만 납니다. 우리가 그렇게 조용히 청소한 적은 여태 없습니다. 벽이 깨끗해질 즈음에 땀으로 속옷이 젖고 튕긴 물에 겉옷이 젖어 있습니다. 나는 재빨리 대걸레를 가져와 바닥의 물기도 닦습니다. 어느 새 1교시가 끝나가고, 공차기를 하지 않았던 친구들도 자기 주변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뒷정리를 마치고 선생님을 보니 처음 그대로 서 계시네요. 하지만 얼굴 표정이 뭔가 달라져 있습니다. “선생님, 죄송해요.” 나는 선생님께 한 발 다가서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합니다. “뭐가?” 선생님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를 긴장시킵니다. “교실에서 벽 축구한 거요.” “왜?” 짧고 강하게 묻는 말이 내 가슴에 파고듭니다. “축구는 운동장에서 하는 걸 알면서도 안 지켰어요. 깨끗한 벽도 더렵혔어요.” “그래?” “소리도 지르고 뛰었어요.” 내가 잘못한 것이 왜 이렇게 술술 나오지요? 이제는 지난 잘못까지 떠오릅니다. 안전모 사건, 실내화 사건도 생각나며 잘못을 고백하고 싶어집니다. 이상합니다. 난 분명히 그 때는 잘못한 게 없었는데요. 이걸 다 용서 빌 자리는 아닌 것 같아 꾹 참고 있는데, 그럴수록 고개가 점점 무거워짐을 느낍니다. “축구가 그렇게 하고 싶었니?” 선생님 목소리가 뜻밖에 다정하여 움찔 놀랍니다. “예!!” 우리는 잘못한 것도 잊고 큰소리로 대답합니다. “그럼 축구를 해야지.” “지금요?” “그래.” 이게 왠일인가요? 우리 모두 어리둥절합니다. 사실이 아닌 것 같아 선생님의 눈치를 살핍니다. 체육시간에도 운동장에 나가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 선생님이 수학시간에 축구라니요. 그런데 정말 선생님이 축구공을 들고 교실을 나섭니다. 그제야 우리는 함성을 지르며 따라 나갑니다. 두 팀으로 나누어 신이 나서 운동장을 누빕니다. 선생님도 처음으로 우리들과 함께 운동장을 뛰며 심판을 봐 줍니다. 아까 벽 축구로 몸을 풀어서 그런지 내가 한 골을 넣기까지 합니다. 그날 이 후로 신나게 운동장을 누비는 시간을 선생님은 가끔 주셨지요. 다른 반 친구들은 그걸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릅니다. 나도 선생님 등 뒤에서 뭐라 뭐라 하는 것보다 선생님 얼굴을 쳐다보며 웃는 일이 많아졌다고 준혁이가 그러네요. 비밀인데, 사실 나에겐 입이 두 개 있어요. 하나는 여느 사람과 같이 얼굴에 달린 입이고, 다른 하나는 뒷덜미 바로 위의 뒤통수 속에 숨겨져 있어요. 머리 속의 입이 나도 모르게 하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는 투덜대는 소리로 들리지요. 내 손이 뒤통수를 긁적일 때가 바로 그 순간이랍니다. 어쩐 일인지 요즘 빨래집게를 짚어놓은 듯 그 입이 꾹 다물려 있어요. ‘왜 내가 잘못한 건가요?’는 이젠 어디에 쓰지요?
2010 교
우리 집에 실란이 이사 온 지는 5년이 좀 넘었나 봐요. 정확히 표현하면 공원에 버려진 말라가는 실란이 가여워 주어다가 우리 집 화분에 심은 지가 그 정도 됐다는 거죠. 빈 화분에 거름흙을 섞어서 정성껏 심었습니다. 그렇지만 첫해에는 몸살을 앓는지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다음 봄에도 꽃을 피우지 않아서 이젠 그러려니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3년 째 되는 봄이었습니다. 우연히 베란다를 바라보던 나는 마치 조화처럼 올라온 3개의 꽃대에 피어난 하얀 꽃이 생소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아! 네가 꽃을 피웠구나.” 나도 모르게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수줍은 듯 약간 오므린 꽃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다시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 꽃도 피웠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5년째 되는 올 봄엔 지난해보다 더 많은 20여 개의 꽃대를 올렸습니다. 봄마다 분갈이를 해 주는 나의 정성을 잊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봄에 꽃을 피운 것도 모자랐는지 10월쯤에 또 쉴 새 없이 많은 꽃대를 올리며 꽃을 피웠습니다. ‘이게 무슨 일 일까? 좋은 일이 있으려나?’ 막연히 꽃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이 11월을 맞이했고, 그날은 18일이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어갈 무렵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교육신문사입니다. 선생님의 동화가 당선되어 연락드립니다.” 대화를 더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이 전언만 기억이 날 뿐입니다. 버려진 실란이 저를 만나 새 삶을 시작하였듯 저는 동화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실란이 한 해에 꽃을 두 번 피웠듯이 저도 올해 동화로 인하여 다시 태어났으니 두 번 태어난 거지요. 동화를 쓰기 시작하면서 저에게는 아주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시간을 쪼개서 쓰게 되고 동화책을 옆에 끼고 살았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이 생기고 아이들이 제게 와서 하는 말들을 끝까지 들어 주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나를 격려 해준 가족, 응원 해준 동료, 소재를 안겨준 우리 반 아이들까지 다들 너무나 고맙습니다. 이제 한걸음 떼었으니 그 격려를 바탕으로 더 힘차게 나아갈 생각입니다.
‘찌릉~’ 아직 붐한 날인 줄로 아셨는지 거미가 촉수로 더듬듯 짧게 한 번만 보냈다. 무얼 핑계 삼더라도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곤한 잠을 깨울 새라 안쓰러워하는 엄마의 고민이 벨 소리에 역력히 묻어 있었다. 새벽잠이 없는 어머니가 일찍 전화를 넣으신 것이다. 잠 들 때까지 자식 생각하다가 밤새도록 가슴에 품고 눈 뜨면 다시 생각하는 존재가 엄만 것 같다. 이적지 살아오시며 자식들에게 기운을 다 내어 준 어머니한테 아직도 남은 게 있을까? 안 골목에 사는 고향의 누나가 들어오더니 안고 온 보자기를 거실 바닥에다 내려놓는다. 이리로 오는 차편에 어머니가 끝물 감을 부친 것이다. 벽시계의 분침이 아래로 처지며 나를 출근길로 밀어낸다. 홍시 담은 함지박을 급하게 싸느라 자꾸 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까지 같이 쌌을 그 보자기를 나는 풀어볼 시간이 없어 그냥 나갔다. 고향집을 야트막하게 두른 돌담을 사립문까지 따라오면 키가 큰 돌감나무와 과육이 꾀죄죄한 고욤나무를 만난다. 잘아빠진 돌감이나 고욤은 씨 치레라서 늦가을에 까치밥으로나 남을 뿐 별로 실속이 없다. 타작마당에 요긴하게 새참을 하도록 건넌방 옆에 증조할아버지가 반시나무를 심었다. 납작감은 떫지 않은 감으로 동네에 퍼져 있다. 다스운 온상 속의 열매라면 속이 덜 익어 떫겠지만 이리저리 치인 납작감은 떫을 새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 납작감은 가을을 한두 달 더 얹어 익는다. 마을 뒤에는 ‘소리못’이란 이름을 가진 저수지가 있다. 둘레를 다 돌면 해동갑한다고 못지기가 자랑하는 못이다. 여러 계곡에서 몰려온 바람은 폭과 길이가 기다란 못 위에서 회오리바람을 일구어 아랫마을로 불어댄다. 우리 집은 맨 뒷집이어서 이 못 바람을 안고 산다. 농사지을 물이 가득 실리면 저수지는 더욱 득의양양하다. 옛날 아들 많은 할머니가 딸만 낳은 며느리 앞에 유세 떨던 것처럼 못 바람은 언제나 떵떵거렸다. 산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사정없이 수면 위를 흘기고는 뒷문 문고리를 덜그럭거리며 감나무로 몰아친다. 못 바람으로 가을이 유난히 빨리 느껴져 긴 추위 속에 껍질이 트며 납작감은 익어갔다. 납작감이 떫지 않은 연유 가운데는 우리 집 할머니도 빼놓을 수 없다. 다사스런 성미에 귀까지 먹은 할머니는 하루 종일 입으로 사신다. 손자에게 보리밥 한 톨이라도 이에 걸리면 종종거리며 담뱃대를 들고 감나무 밑에 둔 평상으로 간다. 담뱃대에 봉초를 꾹꾹 눌러 채우고는 성냥불도 붙이려 안 하고 연해 빈 입만 달싹이신다. 그러다가 할머니에게 미운털이 박힌 이모네 아이들이 사립문에 얼찐거리면 갑자기 마음이 심란해져 성냥불을 붙여 볼이 합죽해지도록 빨고 거푸 연기를 뱉어낸다. 상한 마음이 밴 연기는 납작감에 감긴다. 납작감은 할머니의 분을 삭이며 속이 부드러워졌다. 세 철을 겪어 온 납작감은 풋감 때부터 단련이 되어 군속한 환경도 잘 견뎌내는 이력이 생겼다. 비를 추적추적 맞아도 무른 속은 군소리가 없다. 못 바람에 껍질은 거칠어져도 속살은 달큼하게 익어갔다. 어머니도 그랬다. 가을이 훨씬 길었던 우리 집 납작감처럼 어머니의 시집살이도 늦가을까지 남아 된서리맞은 감과 같았다. 어머니는 딸만 둘 낳고 상처한 아버지와 처녀 결혼을 했다. 찔레꽃이 장가드는 곳에 석류꽃이 상객으로 간다는 노랫말처럼 아버지는 대를 이으려고 한 세대나 어린 어머니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생산력이 쾌해 보이는 새 며느리를 보며 흐뭇한 기분으로 긴 수염을 쓸어 내렸을 것이다. 며느리의 불룩한 배만 쳐다보고 있으면 굶어도 든든할 할아버지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누나와 할머니의 태도는 아주 달랐다. 귀가 먹은 대신에 눈이 초롱같은 할머니는 입으로 정기가 쏠렸다. 보이는 것마다 참견이다. 생전에 손때 묻었던 가재도구들이 새 엄마 손에 익숙해지는 걸 보면 누나의 어머니에 대한 미어지는 그리움은 장미 가시 같은 질투로 변했을 것이다. 누나는 어머니가 이모에게 된장 한 사발 주는 것도 할머니에게 다 일러바쳤다. 누나는 할머니를 지렛대로 사정없이 어머니를 헐뜯었다. 모진 가난이 아버지를 만난 고리였지만 친정이 여자 힘의 원천인 것 같다. 한번은 밥을 먹다가 할머니가 젓가락을 빼앗고 밥그릇을 엎은 적도 있었다. 갓 시집온 젊은 것은 바가지에 밥을 담아 먹어야 하고 여자가 젓가락질하면 본때 없어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내가 여남은 살 때부터 노년에 접어들던 아버지는 몸 움직이는 걸 귀찮아 하셨다. 멍석에 늘어놓은 보리가 떠내려가도 구들장을 안고 두루마기 제문을 읽으시는 아버지였다. 상노인 두 분과 집 밖을 도는 누나들, 일할 때는 남이고 먹을 때만 식구였다. 잔심부름 하나 만만하게 시킬 자리 없는 어머니는 형과 나만 바라보았다. 우리는 어머니에게 안 걸려들려고 학교를 마치면 친구 집을 맴돌다가 시간을 다 때우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일은 시키지 않고 쌀밥만 주던 할머니가 나는 좋았다. 어머니를 나무라 주는 할머니는 우리 편이었다. 가난을 밥풀 떼먹듯 했던 외삼촌과 이모들은 양배추 속처럼 꽉꽉 껴안는 우애뿐이었다. 이모네가 우리 집 논마지기라도 얻어 부치려고 이웃에 살았던 것이다. 어머니에겐 그것도 짐이었다. 이모네 아이들이 양재기에 쌀밥을 폭폭 축내면 할머니는 궁둥이를 위아래로 들썩거리시며 심란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감나무 밑이 할머니의 해우소라면 빨래터는 어머니의 해우소이다. 속을 털어낼 곳이라곤 이모밖에 없다. 이웃에 두고도 늘 허기졌던 자매끼리 대화를 빨래터에서 속까지 헹궈 흐르는 물에 쏟아낸다. 어머니가 마음 바닥까지 훑어내면 이모는 소리가 새어 나갈까봐 빨래방망이를 더 세게 두드린다. 어머니는 빨래터에서 빨래만 빠는 것이 아니라 갑갑한 마음도 함께 치대서 훌훌 흔들었다. 할머니는 자매가 냇가에 마주 앉아 빨래하는 모습도 달갑지 않았다. 빨래 그릇 속에 쌀 봉지를 감춰 몰래 이모에게 준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할머니로부터 늘 의심의 족쇄를 차고 살았다. 서운한 마음을 머리에 꿰고 살았지만 어머니는 누구를 탓하는 법이 없었다. 물 흐르듯 순리에 따르며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리라. 어머니의 고충은 대단한 데 있었다기보다 아무도 그 속을 알아주지 않음에 있었을지 모른다. 조석으로는 대가족으로 북적댔지만 집안일과 농사일 가운데서는 언제나 외로운 섬이었으니까. 어느덧 할머니의 노구를 닮은 어머니는 이모와 마주 앉으면 옛일을 넋두리처럼 풀어내신다. ‘두 시어른에 영감님까지 삼년상을 치르고 딸 둘을 추성시킨 데다 내가 낳은 것들까지 끈 이어 주고 나니 삭신이 다 무지러졌다.’고 일을 마치고 들어오자 아내가 홍시 보자기를 식탁 위로 들고 왔다. 어머니의 온기가 배어 있을 보자기의 매듭을 조심스레 풀고 있다. 용하게도 오디오에선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보고파진다.’는 나훈아의 노래가 흐른다. 아내는 껍질이 트고 금 간 홍시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한입 베어 물고는 달다고 야단이다. 간간이 감 씨를 식탁 위에 뱉어내고 있다. 가을이 깊을수록 속살은 맛깔스럽게 익었는데 씨는 이리도 여물어졌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속살이 흐물흐물하게 연해질수록 씨는 수분이 빠지고 딱딱하게 굳었다. 감 씨에 저장되었던 양분을 시나브로 과육에게 내주고 스스로 말라 버린 것이다. 심장이 뜨뜻해왔다. 창틈으로 째어든 비로 베란다에 놓인 제라늄 화초에 맺혔던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어머니도 홍시처럼 넉넉하고 부드러웠지만 첩첩물길 가슴속은 권속들에게 기운을 다 빼앗기고 쇠약한 감 씨 같은 응어리로 맺혔을 것이다. 아마 어머니는 가슴에다 대장간을 하나 차리셨던 것 같다. 못 바람을 견디고 숙성된 홍시처럼 늘 한 발 뒤에서 속을 발효시킨 어머니, 어머니의 가슴 깊은 곳에 감 씨처럼 여문 못이 박혔을 테니까. 아니, 어쩌면 그 못이야말로 가정을 일궈낸 자양분이었으리라. 식탁 모서리에 뱉은 자갈색 감 씨가 벽에 걸린 어머니 사진 속의 저승꽃과 겹쳐져 보임은 왜일까? 어머니의 쿨렁거리는 기침 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온다. 자애로운 목소리 구만리 밑에 까맣게 탄 응어리는 아무도 모르게 엄마 가슴에 묻혀 있다. 아내가 뱉어 놓은 감 씨는 아무리 봐도 어머니의 가슴에서 파 온 것 같다.
보통 수필은 작가의 개성이 드러난 산문 문학이라고 한다. 허구적이지 않은 사실적인 개인의 경험을 성찰의 과정을 거친 후 글로 표현한 것이 수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경험이다 보니 특정한 형식이 없지만 내용이 유기적으로 잘 조직되어 있어야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이끌 수 있다. 흥미 이외에도 수필에는 삶의 교훈과 세계에 대한 비판이 함께 녹아 들어가 있어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개성, 흥미, 교훈을 수필 심사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이번 교원 문학상에 응모한 작품들의 특징은 학교나 개인의 일상에서 경험한 일, 자연에 대한 경외, 여러 가지 경험을 토대로 한 단상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았다. 특히 교사라는 직업을 통해 겪게 되는 학내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 개성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다수였다. 최근의 경향인지는 몰라도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그로인한 본인의 성찰과 관련한 작품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수필이라는 장르가 워낙 개성적이다보니 그것을 평가하고 순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가운데 몇 작품을 위에서 언급한 개성, 흥미, 교훈, 문장 능력을 토대로 골라보았다. 감씨와 민들레 씨앗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매우 고심을 하였다. 민들레 씨앗은 사유의 확장에서 감씨는 우리말의 표현과 서사적 갈등 면에서 우수하였다. 수필도 글이다보니 우리말을 잘 활용하여 잘 읽히는 것에 손을 들어 주어 감씨를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감씨는 우리말을 활용하고 쓰는 표현능력이 매우 우수하다. 어휘 선택이며 비유가 매우 참신하고 정갈하다. “옛날 아들 많은 할머니가 딸만 낳은 며느리 앞에 유세 떨던 것처럼 못 바람은 언제나 떵떵거렸다”와 같은 비유를 통해 이 글의 전체 내용을 암시하는솜씨는 매우 뛰어나다. 이 글은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의 갈등, 소위 고부 갈등을 자식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도회지로 나온 자식에게 그해의 수확물인 감을 보내주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삶을 돌이켜 보는 수필이다. 고향의 풍경과 어머니의 고된 삶을 적절히 배치하여 고즈넉한 장면들이 혹 한편의 회상 소설을 보는 듯하다. 아쉽게도 가작으로 선정된 민들레 씨앗은 민들레 씨앗이라는 작은 자연물을 바라보며 자아의 성찰로 나아가고 있어 사유의 확장이 훌륭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수필이 지니고 있는 자유로운 글쓰기 방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 자유로움을 토대로 해서 ‘민들레 씨앗-텅빈 마음-나답게 사는 것’으로 사유가 확장되어 나가고 있다. 단순한 사고나 단상에 머물지 않고 점차적으로 글이 깊어지면서도 자아에서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 사유의 근간이 은유로 되어 있어 글쓴이의 상상력의 폭이 매우 넓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좋은 수필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작품이 많이 있었다. 그 가운데 흔적, 음치타령, 꽃이 필자리, 선생 노릇 등 여러 편은 선정된 작품과 같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을 이 자리를 통해 밝힌다. 엄해영 서울교대 교수 / 이준순 교과부 학교지원국장
진로진학상담교사 1500명 배치, 학교성과금제 도입 올 3월부터 전국 1500개 고교에 진로진학상담교사가 배치된다. 또 500명의 교사가 연구년에 들어간다. 학교성과금제가 도입되며, 임용고시 사전예고제도 실시된다. 신묘년 새해 달라지는 교원정책들을 간추려본다. △진로진학상담교사 1500명=진로진학지도 경력이나 능력을 갖춘 기존 교과교사 중 1500명(국공립 1000명, 사립 500명)을 진로진학상담교사로 전환시켜 3월부터 고교에 배치한다. 체계적인 진로교육과 입학사정관 전형 준비 등을 맡게 된다. 학교에 따라 선택교과인 ‘진로와 직업’ 수업도 맡는다. 비교과 교사는 전환 대상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중 선발된 이들은 겨울방학 중 180시간, 학기중 180시간, 여름방학 중 210시간의 자격연수를 이수해 부전공 자격(중등 ‘진로진학상담’)을 획득하게 된다. 교과부는 올 1500명을 시작으로 내년부터는 중학교에도 배치를 시작해 2014년까지 전국 5383개 국공사립 중·고교에 배치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매년 12월초 시도교육청별로 선발공고를 하고, 희망 교사를 대상으로 전형을 진행하게 된다. △연구년 교사 500명=지난해 99명이던 연구년교사가 500명 내외로 확대된다. 교육경력 10년 이상(정년 잔여기간 5년 이상) 교사 중 교원평가에서 동료평가, 학생만족도조사(초1~3은 학부모만족도) 결과가 각각 최상위(시도 자율 설정)여야 지원자격이 주어진다. 학교장 추천을 받아 본인이 희망하며 자기학습계획서, 수업연구역량 등을 심사해 선발한다. 교과부 선정 ‘으뜸교사’는 우선 선정하도록 했다. 또 연구년 교사 중 260명에 대해서는 교과 교육과정 기준 개발과 수업 개선 등의 연구과제를 부여하기로 하고, 이를 감안해 교과별 전공자를 안배해 선발하기로 했다. 1년 기간에 1000만원 지원이 기본이지만 시도에 따라 학기단위(6개월)로 하면서 500만원을 지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경력 및 급여․호봉은 100% 인정되며, 근평 반영 여부는 시도가 자율로 정한다. △학교성과금 도입=지난해 성과를 평가해 올 6월까지 학교성과급이 처음 지급된다. 교원성과급 예산의 10%인 1400억원을 학교평가 결과에 따라 3등급(S-30%, A-40%, B-30%)으로 차등 지급한다. 성과급 액수는 등급별 1인당 지급액(S등급 33만3천270원, A등급 22만2천180원, B등급 11만1천90원)에 학교별 교사수를 곱해 계산한다. 교과부가 제시한 학업성취도평가 향상도(초등 제외), 방과후학교 참여율, 취업률 등 성과지향적 지표는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성취도 평가를 거부한 학교는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달리 시도는 교원 연수실적, 평균 수업시수, 체험활동 현황, 학교폭력 예방교육 현황 등을 자율지표로 반영하게 된다. 이 때 학교급별, 지역별, 규모별로 시도교육감이 학교군을 구분해 평가할 수 있록 했다. 여건이 다른 학교를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임용시험 사전예고제 도입=교원 임용시험의 선발교과 및 인원이 올해부터는 4월중 사전예고된다. 임용시험 20일 전에야 공고돼왔던 문제가 소위 ‘노량진녀’의 1인 시위로 공론화되면서 교과부가 임용시험 규칙개정을 약속한데 따른 것이다. 교과부는 △전체 교원정원 변동 △정년퇴직 및 명퇴자 수 △전년도 미발령 대기자 수 등을 감안한 각 시도의 교과별 중장기 수급계획과 연계해 4월 중 사전예고를 실시하고, 시험 30일 전에 확정공고를 할 계획이다. 세부 추진계획은 곧 발표할 예정이다.
오 일마다 장이 서는 읍지역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것이 참으로 넉넉하고 즐겁습니다. 장이 열리는 날, 보부상들이 길을 꽉 채우며 보따리 위에 펼쳐 놓은 홍시, 찐쌀, 메밀묵 같은 먹을거리들을 보면 마치 점방에 들어선 어린애마냥 이것저것 가지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설렙니다. 장날이 걸린 토요일 오후는 사물들에 감춰진 재미난 얘기도 듣고 아이들에게 던질 미끼도 찾기 위해 재래시장으로 나서지요. 장날은 무싯날보다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한층 들떠, 장에 가는 날은 저도 덩달아 부푼 마음이 발걸음을 따돌리고 저만치 앞서 갑니다. 쫀득쫀득한 강냉이를 까먹으며 장 구경도 참 좋고 양념 냄새 풋풋한 국수도 사 먹을 수 있어 더욱 신났습니다. 저의 수준에는 이런 재래시장 풍경이 언제나 잘 맞습니다. 할머니가 싸 온 보자기에 홍시 여남은 개가 남아 있었습니다. 발갛고 튼실한 감을 보니 고향집 납작감을 만난 것 같아 그만 할머니 앞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오후 내내 아무 입 다실 일이 없으셨던지 할머니는 저를 보자 아들 같다며 홍시 흥정은 간데없고 자식 이야기로 침을 튀기시더군요. 홍시 하나를 손바닥으로 쓰윽 닦더니 풀쑥 저의 입에 갖다 댑니다. 어느새 저는 어머니의 향수에 젖어 있었습니다. 재래시장이나 들판으로 다니며 정겨운 소재들을 물어다가 작문 시간에 아이들과 글짓기를 하는 것은 우리 직업만의 보람입니다. 학생들과 저는 쓴 글을 꼭 돌아가며 발표합니다. 저의 차례가 되어 원고 읽기를 끝내면 아이들이 서툰 솜씨로 제가 쓴 글을 합평해 줍니다. 이런 교감으로 우리는 같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생활이 더욱 탄력을 받으라고 교원문학상 공모전에서 힘을 실어주신 심사위원님과 신문사에 진정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갈고 닦겠습니다. 비록 작은 능력일망정 반드시 그것을 교실의 아이들에게로 환원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흰 와이셔츠에도 뼈가 있다는 말을 흘려듣다 너무 오래되어 어슴푸레한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옷장 속에 묵혀 누렇게 탈색된 흰 와이셔츠 물 뿌리고 풀 먹여 등덜미를 문지르자 생솔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대나무 관절 꺾이는 소리 감나무 제 힘에 부쳐 어깨 찢어지는 소리 뼈와 뼈가 부딪쳐 자지러지는 소리에 벌레가 구멍을 갉아내는 소리였다 그동안 등에 흐르던 물방울 소리가 늘 따뜻했던 것은 흰 와이셔츠를 떠받치고 있던 등뼈 때문이었다 골다공증이었다 흰 와이셔츠에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다리미가 지나갈 때마다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생을 추스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흰 와이셔츠를 다리는 일은 금방이었지만 벌집 숭숭한 등뼈의 맨홀을 덮는 일은 또 몇 년이 걸려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시 쓰는 일이 밥이라면 며칠 굶겠습니다. 아니 단식에 돌입하겠습니다. 한번쯤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나면 사람 사는 풍경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겠지요. 밥그릇만 챙기다 보니 늘어나는 건 설거지해야 할 시간뿐입니다. 빈 그릇을 무엇으로든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앞선 나머지 겉만 번지르르한 말장난이 담길까 두렵습니다. 속 빈 강정 같은 시 말입니다. 뒤돌아보는 여유도 없이 먼발치에서 풍경만 바라보다 말 같지 않는 말만 늘여놓고 있는 것 같아 정말 시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다림질 하다말고 잠시 다리미를 내려놓습니다. 손에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갔는지 뼈가 시려옵니다. 반듯하게 옷을 펴겠다고 무턱대고 용만 썼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다리미의 적정온도를 잊었던 것입니다. 구부정해진 척추를 바르게 펴려면 따끔한 침과 알맞은 온기에 찜질이 물리적으로 이루어져 함에도 나는 느긋함을 참지 못해 병원 문을 박차고 나옵니다. 어느 시인이 골다공증을 하늘을 날기 위해 몸을 가볍게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아직 난 몸을 가볍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못합니다. 아는 것이 있다면 뼈에 구멍이 나는 병이기에 바람이 드나드는 구멍을 열심히 막아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연탄구멍만 빼고 말입니다. 연탄불은 겨우내 시린 손을 달굴 유일한 화로이기에 그렇습니다. 얼음이 꽁꽁 얼었습니다. 추울수록 따뜻한 사람 냄새가 그립습니다. 따뜻한 사람 냄새 나는 시를 쓰겠습니다. 졸시를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좋은 시로 보답하겠습니다.
교원문학상 응모작은 예년에 비해 편 수가 적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작품의 수준차는 크지 않아서 낙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소재도 다양해서 세상을 촉지하는 여러 생각들을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정서를 평이하고 상투적으로 표출하거나 심정 토로식으로 나열하는 것이 올해도 산견돼서 아쉽다. 이는 시의 긴장이나 밀도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므로 늘 유념해야 할 것이다. 시 부문 당선작 (정영희)는 사물을 의인화하고 이를 인간의 이력과 연계시켜 삶을 통찰하는 예리한 눈을 확보했다. 눈부시게 흰, 그러나 이제는 ‘누렇게 탈색된’ 와이셔츠와 퇴락한 자신의 삶을 연계시키는 발상이 신선했다. 구멍난 와이셔츠 그리고 골다공증과 관절이상으로 신음하는 화자가 일체되며 묘한 연민을 자아낸다. 섬세한 감수성과 삶을 진지하게 통찰하는 안목이 뛰어났다. 당선작 외 응모시편들 역시 시적 긴장을 끝까지 잘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안정적이라는 것은 자칫 시를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 보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과 삶을 통찰하는 작품을 기대하고 싶다. 시적 모험이 동반된 생동하는 개성을 선보여 주길 기대한다. 가작 (안영선)는 당선작에 비해 경쾌하고 날렵하다. 주변을 관찰하는 신선하고 경쾌한 비유가 생생하다. ‘자벌레처럼 늘어진 그림자가 유모차에 끌려가고’, ‘파지로 남은 생’, ‘언덕길 오르는 저 바퀴의 정점’, 그믐달을 흔드는 바람, 빈 골목을 헤매는 폐지(廢紙)같은 숨소리 등등. 풍경은 그야말로 꿈틀거리며 다채롭게 변주된다. 주변을 예리하게 관찰하며 비로소 자신과 대면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런 비유들은 어디서 보고 읽은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3연 역시 이상의 ‘거울’모티프를 연상시킨다. 장점은 이를 자기식으로 잘 직조하여 주제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자칫 상투적 수사로 그칠 수 있으니 끊임없이 자기 언어로 세계와 주변을 응시하고 삶을 통찰한다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이밖에도 , (정병근)은 재미도 있고 발상도 신선해서 좋았으나 간혹 시적 긴장을 허무는 관념어가 아쉬웠다. 그러나 시가 힘도 있고 스케일도 커서 정진하면 좋은 작품을 낳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윤종덕), (하상만) 등은 시의 밀도와 긴장을 유지한다면 좋은 결과 있으리라 기대된다. 건투를 빈다. 다음 동시 부문이다. 동시는,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어린이의 정서(童)와 문학적 성취(詩)를 조화시키는 것이 지난하다. 이런 까닭에 종종 동심 혹은 문학성 등의 상대적 우열에서 당선작이 가려질 때가 많다. 그런데 이번 당선작 (임만택)과 가작 (류상희)은 우연이지만 두 작품 모두 어린이의 정서보다 문학적 완결성이 상대적으로 돋보였다. 은 처마 끝 풍경(風磬)과 이를 흔드는 바람과의 관계를 통해 사물과의 제연관을, 은 연못에 반사된 달을 잡으려는 마음(꿈)과 그것의 허망함을 시적으로 승화시켰다. 다만 이 ‘동시’의 특성을 좀 더 드러낸다고 판단해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두 분께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동시는 어린이의 시선과 상상력에 기반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이해를 부탁드리고 싶다. 이외에 , (정안식), , (김선중)은 주로 어린이의 시선으로 사물이나 경험을 재미있게 표현했지만 완성도 면에서 상대적으로 아쉬웠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그러나 계속 정진한다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으니 다음을 기약하고 싶다. 이가림 시인, 인하대 교수 / 조용훈 문학평론가, 청주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