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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는 고창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초기 시의 대표 시집인 과 에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을 썼다. 또 로 대표되는 후기 시 역시 고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늦가을. 미당 서정주 문학의 시작과 끝이 있는 곳, 고창으로 그를 찾아 나선다. 선운산 나들목에서 서정주 생가의 약도를 받아 들고 734번 지방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고창을 찾았던 10여 년 전을 생각해 보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고속도로가 생겨났고, 문화에 대한 높은 인식으로 세심한 노력을 쏟는 지자체의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논과 밭, 그리고 멀리 야산이 펼쳐진 들길을 달려간다. 미당시 문학관과 복원된 생가 시인의 고향인 선운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답사객을 맞는 것은 ‘미당시문학관’이다. 문학관에는 서정주 시인의 유품과 육필원고, 발간된 시집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고 논쟁의 씨앗이 되었던 친일 작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2001년 11월에 개관한 미당시문학관은 폐교가 된 선운분교를 인수하여 조성을 했는데 그 규모가 국내에서는 가장 크다. 이곳에는 시인이 사용하던 가구와 유품, 육필원고와 시집 등 총 1만 5000여 점의 전시물이 있다고 한다. 문학관 중에서는 가장 많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셈이다. 중앙에는 4층짜리 전망대 모양의 건물이 있는데 각 층마다 작품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고 작은 창문을 통해 시인의 생가와 선운리 일대를 한눈에 내다볼 수 있다. 미당시문학관을 돌아보고 해설사 서동진님의 안내를 받아 시인의 생가를 찾았다. 생가는 원래 초가집이었으나 1942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친척이 거주하면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조하였고 1970년 이후에는 사람이 살지 않으면서 흉물스럽게 방치되다가 서정주 시인의 사후인 2001년 8월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이 되었다. 복원된 생가 마당의 우물 뒤편으로 장독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어 제법 시골 마을의 정취가 묻어난다. 그 옛날 툇마루에 앉아 할머니 손을 잡고 도란도란 옛날이야기를 듣던 아홉 살 어린 꼬마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10여 년 전 처음 동료 교사들과 생가를 방문했을 때에는 이웃에 서정주 시인의 친동생인 서정태 시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고향마을에서 난을 기르며 혼자 거주하던 서정태 시인의 안내를 받아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생가를 돌아본 적이 있었다. 은은한 녹차를 내 놓으며 다정스레 서정주 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민족현실 외면 평생오점으로 서정주는 중앙고등보통학교 2학년인 1930년에 광주학생운동 일주기를 맞아 기념 시위를 주도하며 항일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다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고향인 고창 선운리로 돌아온다. 당시 서정주의 아버지 서광한은 중앙고등보통학교의 소유자인 인촌 김성수의 집에서 지주를 대신하여 소작농을 관리하는 농감(農監)겸 비서 일을 맡아보고 있었다. 서정주는 아버지가 인촌의 집에서 농감으로 일하는 것을 그만두도록 요구했고, 그는 아들의 뜻을 따라 농감을 그만두고 고창읍내로 이사를 한다. 그러나 고창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한 서정주는 일본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학교의 요구에 따라 자퇴를 한다. 10대의 서정주는 꽤나 반항아였다. 주로 할머니 품에서 자란 것에도 원인이 있었겠지만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반항은 가출과 방랑으로 이어진다. 빈민촌에 입주하여 넝마주이 생활을 하고, 서울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했다. 이 시절에 니체, 고리끼 등을 공부하고 사회주의와 인도주의에 빠져 사상적 방황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젊은 시절의 경험은 미당 서정주의 작품세계에 견고한 뿌리가 되었다. 광주학생운동 기념시위를 주동하며 항일운동의 깃발을 들었던 서정주가 친일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은 ‘국민문학’의 편집을 맡은 1943년부터이다. ‘국민문학’은 최재서가 창간한 친일 문학잡지로 문인들을 동원하여 황국신민화와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글을 쓰게 하였다. 20대 젊은 나이의 서정주는 이때부터 역사와 민족의 현실 문제에서 회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과거사에 대한 진상 규명이 사회 정치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일제강점기의 친일 인사에 대한 평가가 논쟁의 씨앗이 되었다. 이에 미당시문학관에는 시인의 대표작과 일제 말기에 쓴 친일 작품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시인의 친일 행적에 대한 사회단체의 비판이 거세지고 문학관 건립에 반대하는 여론이 제기되자 유족과 문학관 관계자들은 대표적인 친일 작품인 등을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하여 국민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민족의 현실에 대한 외면과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평생의 오점으로 남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국화꽃으로 뒤덮인 질마재 서정주 시인의 문학과 삶의 토양이 되었다는 질마재. 서정주 시인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를 가리키는 말로 ‘말이 짐을 지고 넘어다니던 고개’라는 뜻이다. 질마재는 부안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4㎞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방장산과 두승산, 변산으로 이어지는 삼신산의 모산인 소요산 자락에 포근히 안겨 있는 형상이다. 마을 앞에는 넓은 벌이 펼쳐져 있는데 옛날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요즘 질마재는 국화꽃으로 덮여 있다. 시인을 사랑하는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생가와 문학관 마당에 국화가 심어졌고, 시인이 잠들어 있는 문학관 옆 산기슭에도 국화꽃이 가득하게 심어져 가을이 되면 온 산이 노랗게 물들 것이다. 날이 저물어가면서 선운사로 향하는 발길이 바빠진다. 동백꽃으로 유명한 선운사 입구에는 서정주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선운사에는 대웅보전을 비롯한 보물과 송악, 장사송 등 천연기념물, 기타 지방문화재를 비롯한 귀중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데, 대웅전 뒤에 있는 수령 500년 정도 된 동백나무는 군락을 이루며 절을 호위하고 있어 봄에 선운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동백꽃의 아름다운 장관을 선사한다. 또한 선운사 입구에는 백제가요인 『선운산가』비와 서정주의 시비 『선운사 동구』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고창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유구한 문화를 간직한 관광의 도시로 손색이 없다. 서정주 시인이 노래한 동백꽃과 상사화, 단풍과 설경으로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 아름다운 선운산과 판소리의 고장답게 동리음악당과 판소리박물관이 있는 전통문화의 고장이다. 시인의 육필 원고를 그대로 옮겨 놓은 시비 를 읽으며 오늘도 저녁노을 속에서 고창의 하루를 접는다. ■ 문학답사를 위한 여행 코스 고창 도착 ⇒ 질마재(선운리) ⇒ 미당시문학관 ⇒ 서정주 생가 ⇒ 서정주 묘소 ⇒ 선운사 시비 ⇒ 선운사 ⇒ 고창 출발 ■ 가는 길 - 고속버스(서울-고창)=매일 16회 운행 (요금 15.300원) 소요시간 약 3시간 소요. - 기차(서울-정읍-고창)(용산-정읍)=매일 11회 운행(무궁화호 요금 성인 18.100원) 3시간 42분 소요. 정읍-고창 버스이용(요금 2.000원) - 승용차(서울-고창)=서해안고속도로 이용 선운산 나들목에서 22번 국도를 타고 부안면 소재지를 지나 734지방도로로 진입. ■ 문의 고창군청 문화관광과=(063)560-2227 미당시문학관=(063)560-2760
인천평생학습관(관장 이규진)은 수능시험을 끝낸 인천시 관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꿈을 향한 도전정신과 문화적 감성을 채워줄 특별한 강연 및 공연을 제공한다. 12월 1일 인천평생학습관 미추홀에서 인천효성고 외 2개 학교를 대상으로 시작되는 특별강연 및 공연은 12월 14일까지 총 5회 진행될 예정인데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긍정을 노래하는 가수 이한철의 강연을 통해 세상을 향한 도전정신과 긍정의 힘을 제시할 것이며, '뮤즈'의 뮤지컬 하이라이트 콘서트부터 완벽한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그룹포차 '추격자' 등의 다양한 공연으로 학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인천평생학습관은 이번 강연 및 공연을 통해 수능을 끝낸 수험생들에게 역경에 굴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꿈을 실현하는 방법 등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고, 수능시험 등으로 쌓였던 고 3학생들의 스트레스와 억눌렸던 문화갈증을 해소 시켜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의 특강을 인천시민에게 제공하여 평생학습사회 구현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교총 등 13개 단체 기자회견 한국교총과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13개 교육시민단체는 29일 오전 광화문 서울시의회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시의회의 무리한 전면 무상급식 조례 제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회견문에서 “한정된 교육예산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하려다보니 저소득층의 교육복지예산이 삭감되거나 시급한 다른 교육예산이 사라지는 심각한 풍선효과가 드러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경기도교육청은 무상급식 예산 1162억원을 증액하려다보니 도시 저소득지역 교육복지투자 지원(91억→58억), 다문화가정 학력격차해소 지원(16억→10억), 농어촌학교 교육여건 개선(206억→62억) 등 저소득층 및 낙후지역 지원 예산을 삭감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또 서울시교육청은 노후 환경 개선 등을 위한 시설사업비를 1850억원 삭감하며 1162억원을 무상급식으로 배정해 학생들의 안전을 도외시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학생들의 ‘눈칫밥’ 해소를 위해서는 누가 무상혜택을 입는지 알 수 없도록 제도를 완벽하게 보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지 전면 무상급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너무 편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소득층 결식아동들의 아침과 저녁, 그리고 방학 중에도 급식을 지원하는 방안부터 우선 시행하고, 월 4~5만원에 달하는 급식비 부담을 차상위 계층에게까지 덜어주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지금도 2500원 전후의 급식 질 문제로 먹지 않거나 남기는 아이들이 많다”며 “저소득층·차상위 계층을 제외한 중상위층 이상 자녀들은 지금처럼 급식비를 부담하되, 전체적인 급식 질 제고를 위해 급식보조금을 별도로 지원해 만족도를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현 재정상황에서 무상급식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결국 외상급식, 세금급식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며 “조례 제정보다 단계적 확대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몇 년 만의 공개수업인가. 더구나 고3이다. 수업시간에 소설문학 문제집을 풀고 있는데 그걸 공개수업으로 하라니. 고민하다 시점문제가 들어있는 부분을 주제로 해서 다양한 시점의 사례를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 시점 변형의 지존, 오르한 파묵의 이 책을 붙들게 됐다. 터키어로 쓰여 3대 신문사 문학 지면에서 대서특필 된 적 있는 이 책으로 2006년 “자신이 태어난 도시의 우울한 영혼을 찾는 여정에서 문화들 간의 충돌과 융합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한 작가”라는 평가를 들으며 저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6세기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소설은 펼쳐진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로 시작돼 21가지 ‘나’가 토해내는 사건은 다음과 같다. ‘술탄’ 즉 왕은 헤지라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자신의 관심사를 담은 그림을 제작하게 한다. 당시엔 금기였던 서역 베네치아 화풍을 따라 밀서를 제작하게 했는데, 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에서 사용되던 ‘원근법’이 사용된 것이 원인이 돼, 당시 전통적인 그림을 그려오던 세밀화가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 이들은 가까운 것을 더 크게 그리는 원근법은 성스런 ‘사원’을 뒤에 있다는 이유로 해서 더러운 개나 말파리보다 작게 그려 감히 종교를 모독한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또한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온 순수한 화풍이 훼손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그림에 금박을 입히던 세밀화가 한 명과 이 밀서 작업을 지휘하던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살해되기에 이른다. 한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우유팩 원근법 놀이가 유행했다. 우유팩을 카메라 가까이 대고, 사람은 멀리 떨어져서 한 번에 찍으면 거대한 우유를 마시는 것 같은 착시효과 그림이 나온다. 먼 것은 작게, 가까운 것은 크게 보이는 게 당연한 현상이기에, 우유팩은 엄청나게 큰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우리학교 교정의 돌다리는 한 끝에서 내려다보면 저 끝은, 한 점으로 귀결되고 있고, 멀리 있는 벤치는 미니어처처럼 작다. 학생들은 원근법으로 교정의 풍경을 그려 낸다. 그러나 이 책 속의 다른 세상에서는 원근법이 죄악이자, 신을 거스르는 일로 치부되고 있었다. 처음엔 한국 민화나 고구려 고분벽화처럼 원근감 없이 표현하는 동양적 화풍이 중세 터키에도 있었구나 하며 대수롭잖게 여겼다. 그러나 베네치아식 서양 화풍과 세밀 화가들의 맞부딪침이 동서양 화풍의 충돌을 상징하며, 당시엔 목숨을 건 투쟁현실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그러면서 한 세계와 문화를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예술가가 뜨거운 혼을 살라야 했을 지를 생각하니 책을 읽어갈수록 그 치열함으로 인해 먹먹한 감동과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수천 수만의 세밀화가 견습생들을 장님이 되도록 만들면서까지 집중해서 그렸던, 세밀화의 서책들이 결국엔 소멸될 문화의 한 끄트머리일 뿐이라는 절규엔 눈물이 났다. 새로운 지식을 허겁지겁 익히며 서양의 모든 정신과 물질을 미친 듯이 흡수해 버린 것 같았던 우리 근대사 속 어딘가에서도 이런 뼈아픈 절규들이 있겠다는 생각에 “이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 가운데 서양보다는 동양의 독자들이 슬픔을 깊이 통감하며 이해한다” 는 파묵의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서한을 다시 읽어보게 됐다. 살인자가 누구인지 밝혀가는 과정에서 사건을 파헤쳐가는 주인공 ‘카라’ 이외에 ‘올리브’ ‘황새’, ‘나비’로 불리던 세밀화가, 죽은 몸, 살인자, 수다쟁이 방물장수, 악마, 말 개, 심지어는 빨강 등 다양한 21가지 ‘나’가 등장해서 화자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주인공이 바뀌는 구조로 해서 같은 사건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돼, 마치 초등학교 운동장의 정글짐 속에 들어간 것처럼 가로 세로가 동시다발적으로 머릿속에 짜 올라지는 느낌이었다. 당시의 시간, 공간 및 내면의 깊이가 생동감 있게 전달됐다. 그러기에 소설을 읽고 난 다음엔 오히려 ‘단일 시점으로 된 다른 소설들이 도대체 세상을 온전히 그려낼 수가 있기나 하는 건가?’ 라는 근본적 의구심마저 들었다. 숨 막히는 전개속도와 방식으로 인해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매우 몰입되게 되어 있어서, 범인이 누구일지 궁금해서 빨리 넘기고 싶기도 했는데,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작가가 애정과 정성을 들여서 서술한 이스탄불의 풍경과 이슬람 문화, 세밀화가들의 세계, 당시 그들이 바라보던 세상에 대한 이해에 있었다. 수업 준비를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목적은 뒤로 제쳐 두고, 읽고 있는 열흘 동안 온통 감동과 지적 만족감으로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는 같은 책을 읽은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의 간절함 때문에 한동안 쩔쩔맸다.
학교가 다시 무너지고 있다. 전남의 한 중학교에선 50대 여교사와 여학생이 서로 머리채 잡고 싸우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경기도 어느 중학교에선 말 듣지 않는 학생을 교사가 112에 신고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학교의 살풍경스런 모습은 경기도 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이어 11월 1일부터 서울시교육청이 모든 초·중·고에서 체벌을 전격 금지한 후 벌어진 일들이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학급전체 웃통 벗기기 사건’이 벌어져 체벌금지 찬성론자들에게 빌미를 주고 있다. 11월16일 청주의 어느 남고에서 아무개 교사가 창문을 연 채 떠든다며 남학생 28명의 웃통 벗기기 체벌을 가한 것. 나 역시 전문계고에 근무하며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들을 왕왕 보고 있다. 그로 인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화와 혼내고 싶은 충동을 더러 겪어온 터라 그 교사를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만약 10월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이렇듯 언론에 노출돼 온 세상이 다 아는 사건으로 비화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체벌이 지금은 기사 가치가 충분한 사건으로 ‘변질’된 세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대응해야함을 강조하고 싶다. 또 그 교사만의 잘못인지, 그로 하여금 그런 체벌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공부하는 기계’ 만드는 입시지옥 등 우리 사회의 유·무형 압력은 없었는지 다 같이 생각해볼 때이다. 그 교사뿐 아니라 교원 전체가 체벌금지라는 ‘악덕환경’ 속에서 말 듣지 않는 학생들을 대하고 지도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학교 현장이다. 체벌금지는 시대착오적이거나 십분 양보해도 시기상조다. 과거 무너진 학교의 원인중 하나는 김대중 정부가 섣불리 발표한 체벌금지 조치였다. 이제 겨우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데, 다시 그런 빌미가 제공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많은 교사들의 바람이다. 그렇다고 교사 편하자고 체벌 허용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경제적 수준 향상과 함께 민주주의가 신장되는 과도기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은 자유보다 방종이다. 체벌금지는 그런 사정을 간과했던 실패한 정책의 사례로 꼽히고 있다. 초등학생마저 선생님에게 손바닥 몇 대 맞은 걸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벌어진 것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학생들 인권보호차원에서 접근한 체벌금지로 보이지만, 착각은 금물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성교육을 통한 ‘인간육성’보다 성적 올리기에 매몰된 학교현실에서 생활지도마저 손 놓는다면 무너진 학교 재현은 시간문제다. 그것은 누구 책임인가? 물론 당연히 학생의 인권도 소중하다. 그렇게 학생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수능시험 부정사건이후 전국 각 급 학교로 확산된 교내시험 2인 감독 제도부터 없애야 맞다. 또 지금과 같이 성적지상주의의 ‘공부하는 기계’ 양산을 목표로 하는 학교시스템을 바꾸는 게 선결과제이다. 극히 일부 때문 전국의 대다수 학생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처럼 심각한 인권침해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학생들이 맘껏 뛰놀거나 이런저런 하고 싶은 일들을 원천적으로 못하게 하는 것처럼 인권침해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서울시교육청이 ‘문제 학생을 교실 뒤로 보내 서서 수업시키기’ 같은 체벌대체방안 등 매뉴얼을 함께 제시했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급진적인 조례안 제정이나 체벌금지 같은 교칙 시행보다는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것이 대안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미 시행중인 ‘체벌 3수칙’ 같은 지침이 철저하게 지켜지는지에 대한 철저한 지도 감독이 그것이다. 폭행 따위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학교의 장과 해당 교사에 대한 일벌백계의 징계도 병행되어야함은 말할 나위 없다.
‘굶지 않을’ 권리‗ ‘전면 무상급식’ 아냐 교육 통한 보편성 증진은 기초학력 향상 대선 공약과는 관계없이 집권 중반기에 들어서면서 MB 정부가 화두로 내세우는 ‘공정사회’는 그 외형적인 매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잠재된 문제가 있다. 우선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공정’이 분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공정은 일차적으로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덕목과 행위의 문제이다. 고대 희랍의 정의의 개념이 그러했고, 동양에서도 상고시대부터 그러했다. 따라서 공정의 룰은 황금률의 준수와 같은 것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황금률은 너무 형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설명해 주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같은 맥락에서 보편성 문제의 한계를 들 수 있다. 일반성(generality)과는 달리 보편성(universality)은 예외나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영어로 ‘universal suffrage’라고 하는 ‘보통 선거권’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보편성 개념은 적용의 예외나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절차적인 형식원리이지 그 자체가 행위의 선악이나 정책의 옳고 그름을 정당화해주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성 개념을 절대 선으로 보고 적용대상의 보편성을 확대해석하는 경우 크나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좌파 교육감들이 주장하는 무상급식 전면 실시이다. 모든 사람은 생존의 권리가 있다는 보편적 명제는 ‘모든 사람은 굶지 않을 권리가 있다’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명제가 ‘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는 명제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굶지 않아야 한다는 보편성은 자력으로 생존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예외 없이’ 국가가 돌보아야 한다는 당위로 해석해야 옳다. 그렇지 않고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것은 보편성의 원리를 그릇되게 해석하는 논리적 결함과 함께 재정낭비와 효율성과 같은 사실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이와 같은 왜곡을 방지하고 보편성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적어도 다음 두 가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보편성의 소극적 의미로서 이를테면 모든 사람의 최소 생계를 보장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보면 좌파 교육감들의 무상급식 전면 시행은 보편성을 잘못 적용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편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보면 보편성은 최소 생계 수단의 제공을 넘어서 모든 사람이 자생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교육적으로 보면 모든 학생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자생력을 갖도록 기본능력과 개인 나름대로의 창의력을 갖출 수 있게 하는 일이다. 바꿔 말하자면, 교육을 통하여 보편성을 증진시키는 일은 아이들의 기초학력을 향상시키는 일이지, 잣대를 잘못 적용하여 무상급식 전면 실시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교육청은 무상급식의 무리한 확대에 그치지 않고 이른바 ‘3무(無)학교’ 프로젝트 중 하나로 ‘학습준비물 없는 학교’라 하여 학용품 비용을 무상 지급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학생 1인당 연간 6만원씩 지급하여 약 330여억 원의 예산이 추산된다. 이 프로젝트는 무상급식과는 달리 서울시장도 적극 동조하고 있어 실행에 행정적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유 있는 집안 아이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이 조치도 보편성을 잘못 적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편적 복지를 명분으로 시행한 정책들을 국가재정이 허락하지 않을 경우 철회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일어난 프랑스 연금개혁안과 영국의 예산 삭감에 대한 심각한 저항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보편적 복지의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여기서도 확인된다.
교권은 교사의 권위요 권리다. 그것을 교사가 지키지 못하는 것은 교사 자신의 영역을 지키지 못한 바보였기 때문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폭력을 당해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도 교사들의 단결이 없이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은 교권을 지키려는 교사들의 의지 부족이다. 2000년도에 광주의 모 고등학교에서 수능을 합격하고도 학교에 학생이 나오지 않자 교사들이 회의를 열어 학생을 퇴학시켜 버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이 학교를 어떻게 보았기에 학교의 규칙을 예사로 어기고, 교사를 어떻게 대하기에 교사에게 욕설을 가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한발짝 더 나아가서 교사를 때리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아들이 부모를 때리거나, 잘 모시지 못하는 자를 사람들은 후래자식이라고 뒤에서 욕설을 하는 것이 우리네 풍속이다. 군사부일체는 무엇인가. 부모와 스승은 하나임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스승을 때리는 학생을 학교 현장에서 그대로 보고 있다면 교권을 지키는 교사들의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마땅히 교칙에 따라 엄한 처벌과 동시에 교권에 대한 도전을 넘어 형사처벌까지 고려해야 한다. 교사가 어찌 학생을 형사처벌 하겠느냐고 하는 의식이 우리네 인심이어서 지금까지 교내처벌이라는 것으로 지금까지 관례처럼 취급돼 왔다. 아직도 어리니까 학교에서 교화시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등등이 한목소리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것들이 결국 화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연속적으로 터지는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폭언과 폭력은 이미 도를 넘었다.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학교 현장의 주인으로서의 위상을 바로잡지 못하면 학교는 더욱 겉잡을 수 없이 난무하게 돼 버린다. 일선 학교의 고 3학년의 복장과 태도는 어떠한가 학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진학이 최고다라는 슬로건하에 학생들의 태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학교도 적지 않다. 그 결과 무엇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후배 학생들에게 나도 3학년만 되면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안이한 사고방식을 만들어 내고 만 것이 아닌가? 사실 그렇게 돼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의 학교 추세다. 목표제일주의가 만들어 내는 배경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만 달성하면 그만이다라는 안이한 사고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의식을 망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교사 폭력에 대한 기사가 일간지에 대서특필로 나올 때마다 진정한 교사의 권위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 놓았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교사의 권위는 교사가 지켜야 한다. 교사에게 함부로 대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학생에 대한 강경대응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교권이 무너진 상황에서 학습권에 대한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한다고 해도 그것은 허울 좋은 소리에 불과하다. 바른 태도에서 바른 정신이 나오게 마련이다. 올림픽의 정신은 무엇인가? 건강한 육체에서 건전한 정신 아닌가? 학교에 등교할 때 교복도 입지 않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교내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안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의 모임이라면 진정한 학교로 거듭나기 어렵다. 교권에 대한 도전은 그 무엇보다 바로잡아야 한다.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을 보편화시켜버린 것은 교사들의 잘못이다. 엄격하게 다스리지 못한 학교의 책임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충북 괴산의 화양계곡에 머문다. 말 그대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계곡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곳은 일찍부터 수많은 시인과 묵객, 선비들이 찾아와 시상을 다듬던 곳이다. 나는 시인도 아니고, 그림도 손방이다. 게다가 점잖은 선비도 아니니 다듬을 생각도 마음도 없다. 그저 산에 오르고 내려오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있다. 아니 경관에 흠뻑 젖어 호사를 누린다. 산은 깊은 곳에 앉아 있어서 하늘처럼 깨끗하다. 암벽은 모두 말라 있어도 틈에서는 여지없이 물을 생산한다. 계곡에 앉아 있는 암반은 흐르는 물길과 잠시나마 인연을 함께 하려고 몸 전체로 어루만진다. 하지만 물길은 뒤도 안 돌아보고 야속하게 이별의 소리를 내며 달아난다. 미지의 세계로 달리듯 한층 더 생기 있게 흐른다. 아름다운 곳에 가면 옛 선조의 일화가 남겨 있듯, 이곳에서도 우암 송시열 선생의 역사와 만난다. 우암 선생이 효종의 죽음을 애달파 하며 새벽마다 엎드려 통곡하였다는 읍궁암은 여전히 묘한 울림이 있다. 그때의 슬픔이라도 전하는 듯 반들거리는 몸으로 햇살을 튕겨 낸다. 수정처럼 맑은 물에 모래 또한 금싸라기 같아 금사담이라 했다는 풍경은 흔한 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우암이 머물렀다는 암서재의 풍경은 화양계곡에서도 백미(白眉)라 할만하다. 금방이라도 우암 선생이 앉아서 책장을 넘길 듯하다. 동행하는 후배는 자연이 베푸는 풍경에 숨이 막힌다면서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후배가 뜬금없이 옛날 사대부의 사치를 못마땅해 한다. 깊은 산속에 자연을 훼손하고 집을 지었다는 이유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우월을 통해 자연을 소유하겠다는 오만을 부렸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곳에 집을 지으면서 아랫사람들을 못 살게 굴었을 것이라고 제법 구체적으로 회고를 한다. 순간 나는 우리의 진부한 삶이 끝없는 순환에 벗어나지 못함을 느낀다. 그것은 빈약한 관념으로 타인의 삶에 비난의 침을 꽂는 못된 버릇이다. 우리는 그때의 시간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우리는 그 시간에 관하여 주절거릴 특권이 없다. 직접 보지 못했던 과거의 삶을 예단하려는 것은 또 다른 의식의 폭력이 아닐까. 물론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욕망을 이루지 못하면 금방 세상이 무너질 듯 다가온다. 그러나 추운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면 마음을 포근히 하는 봄을 기다리는 것도 인간뿐이다. 부질없는 탐욕이나 공허한 욕망을 버리고 봄을 기다리는 소박함도 선비들의 삶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들이라고 이러한 소망이 없었겠는가. 온갖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더라도 고요한 계절의 울림을 타고 흐르는 나직한 음률에 가슴을 적시고 싶은 삶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 머묾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일상의 안일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바위 절벽 위로 우뚝 선 누각은 풍광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속세로부터 멀리 벗어나서 절제와 단아한 삶을 살기 위한 마음의 표현이다. 선비는 벼슬을 하면서 대의에 맞지 않으면 스스로 물러났다. 물러난 것이 아니라, 낙향을 했다. 낙향은 현실에 대한 또 다른 대응 방식이다. 당파성에 매몰되어 허약한 논리로 자신을 치장하던 생활을 돌아본다. 정의와 신념의 파도와 싸웠지만, 밀려온 현실의 힘에 무너져 버렸다. 소통하겠다고 말하지만 야만적으로 변하는 언어의 세상에서 더 이상 존재의 의미를 못 찾는다. 이제 현실의 치열함을 벗어나고, 삶의 욕망도 잠재운다. 그리고 한적함 속에서 자연을 벗 삼아 정신을 다듬는다. 그들은 현란한 말보다 침묵하는 내면의 풍경을 들여다보면서 삶의 충만함을 느낀다. 우암이 굳이 물 건너편에 누각을 지은 것도 자연과 교감을 하는 은둔의 길을 가기 위함이다. 선비들이 정자를 지은 것도 자연의 훼손이 아니다. 정자는 치장도 없이 열려 있다. 열림은 풍광을 오롯이 담기 위한 장치다. 열려 있기에 물소리가 들리고 계곡의 풍치가 몰려온다. 열려 있다는 것은 자연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열고서 자연을 채우고, 채우기 위해서 비워내는 정신의 과정이 시작된다. 그들은 비움으로써 정신의 충만을 즐긴다. 열려 있는 누각에서 세상을 향해 여전히 치열한 내공을 다지고 있다. 아울러 치장이 없는 것은 절제와 검약의 삶과 통한다. 그것은 선비의 삶이고, 정신이다. 따라서 선비들은 정자를 지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울창한 숲과 정신적 은유를 즐기기 위한 자리이다. 선비는 정자에서 정신의 가치를 맑게 했다. 그래서 정자는 별천지가 된다. 세상사는 욕망과 쾌락이 있어 좋기도 하지만, 우리를 해롭게 하는 나쁜 소식도 많다. 자연이 생성․소멸하는 생존의 의미는 아름다움이 있고, 삶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자연이 보여주는 정직하고도 확연한 진리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깊은 진리의 함축성을 느끼게 된다. 현대인은 뒤늦게 속도와 시간에서 벗어나겠다면 또 다시 아등바등 살아간다. 우리는 모두 물질의 풍요를 채우면서 오히려 마음의 괴로움에 빠져 있다. 이곳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때로는 지극히 맑고 고독한 평화가 풍요롭다는 인식이다. 산속에서 한가로움을 즐기다보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불환삼공지락(不換三公之樂)이란 옛말이 그대로다. 푸른 나무, 푸른 산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달빛 속에서도 의연하게 솟아올라 있는 봉우리들을 본다. 그 모두가 단단한 침묵으로 나에게 묻는다. 어느덧 나도 산중에 있는 이름 없는 봉우리가 되어 말을 건네고 있다.
요즘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는 '교실붕괴'의 모습은 학교교육 위기에 둔감해진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옛날 같으면 감히 상상도 못할 학생에 의한 교사의 구타가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러한 교실붕괴의 원인에 대해서는 교육개혁 정책의 실패, 전통적 학교교육의 한계 등 다양한 시각이 있다. '붕괴'라고 하는 과격한 표현이 뜻하는 바대로 일선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작금의 모습들은 우리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과 절망감을 확산시키고 총체적인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교실 붕괴의 원인을 밝히고 그에 대한 대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교실붕괴'란, 전통적인 교실의 모습과는 달리 교사의 지시나 통제가 학생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기 때문에 교사가 의도하는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을 뜻하는 말로, 그 원인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가장 큰 원인은 교권의 추락을 들 수 있다. 그간 경제논리를 바탕으로 진행되어 온 일련의 교육개혁은 교사의 권위를 높여주기 보다는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교사의 권위를 크게 손상시켰다. 둘째, 입시위주의 획일적 교육을 들 수 있다. 입시를 위해서는 성적을 기준으로 한 '한 줄 세우기'가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시와 통제에 의한 수업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수업에 대해 지겨움을 느끼게 되고 그 지겨움이 급기야 개방화시대와 맞물려 '펑'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셋째, 급격한 시대의 변화에 학교와 교사가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급격한 사회변화에 빠르게 적응해 가는 학생들의 요구에 학교와 교사가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학생들과의 갈등이 표출된 것이다. 넷째, 교실붕괴에 대해 앞을 다투듯 경쟁적으로 다루는 언론도 문제이다. 이는 국민의 알권리를 만족시키기보다는 일반인들의 교육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켜 교실붕괴 현상을 오히려 촉진시키는 쪽으로 작용하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다섯째, 체벌금지로 인해 학생의 인권은 크게 향상된 반면, 상대적으로 교사의 권위는 그만큼 추락했다. 앞에서 제시한 교실붕괴 현상이 계속해서 악화되는 것을 막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를 새로운 교육체제나 방식을 구축하기 위한 자극과 동인으로 삼아야한다. 구체적인 해결대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원의 사기진작과 공교육 정상화 방안이 그것이다. 교실붕괴 현상은 교원들의 헌신이나 사명감 없이는 결코 막을 수 없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먼저 교원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교권이 회복되어야 한다. 체벌을 당했다고 신고하면 경찰이 출동하거나, 학부모가 교무실로 찾아와 교사에게 항의하는 행위를 제도적으로 철저히 막아야 한다. 둘째,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수업형태와 재미있는 교재가 개발되어 활용되어야 한다. 이제는 우리교육이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 즉 '여러 줄 세우기'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허용적이고 개방적인 수업분위기를 조성하여 학생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을 학습하도록 하는 'to learn how to learn'이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셋째, 교육예산을 대폭 확대하겠다던 정부의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화장실 가기를 꺼릴 정도로 교육환경이 열악한데 비해 학교 밖에는 화려하고 말초적인 유혹이 차고 넘친다. 교육은 백년대계이다. 학생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의 모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언론 및 사회 전체가 학교교육을 지원해야 한다. 교실붕괴의 문제를 흥미차원으로 다루지 말고, 원인과 해결대책을 진지하게 제시하여 학교교육이 바로 서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 교실붕괴를 치료하고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정부, 언론, 학부모, 지역사회가 오늘의 학교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연계하여 대처해 나가야 한다. 특히 '교권회복'에 가장 큰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왜냐하면 교권회복이 선행되어야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고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도 보장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교원들도 변화된 교육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동시에 우리 학생들에게 적합한 새로운 교수학습방법을 연구하고 구축하는 일에 자발적인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어떤 사람이 토론을 잘 하는 사람일까? 토론을 잘 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 그 첫째가 토론 주제에 대한 내용 전문성이다. 둘째, 토론의 형식, 절차, 방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셋째, 토론의 철학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G20 정상회의를 끝나자마자 제4기 원탁토론 전문과정에서는 'G20 정상회의 평가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전문가 토론을 가졌다. 윤창현(서울시립대 교수), 김용기(삼성경제연구소 전문위원), 조원희(국민대 교수), 이해영(한신대 교수)가 출연하였다. 앞의 두 토론자는 G20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뒤의 두 토론자는 G20의 성과를 평가절하하는 주장을 펼쳤다. 과연 결과는 어떠했을까? 청중에 따라 판단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긍정적인 평가를 한 분들의 주장에 공감이 갔다. 그 이유는 상대방의 공격에 대해 논리적 근거와 수치를 제시하며 때론 적절한 비유를 들어가며 상대 주장의 모순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이해영 교수는 G20정상회의의 경제적 효과, 경호안전 특별법 제정에 부정적으로 말한다. 강제력과 구속력이 없는 국제포럼에 불과한 토크쇼라 평한다. 심지어 G20을 동네 반상회에 비유하면서 반상회 한 번 했다고 부자되는 것 아니다라고 말한다. 또 국제기구인 UN과 G20에 참여하지 못한 여타 G170이 소외되었다는 엉뚱한 주장을 펼친다. 이에 대한 윤창현 교수의 반대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일반 국민들이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은 아시안게임, 올림픽과는 모임이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개최지 대한민국과 서울의홍보 효과는 전세계 뉴스로 타전되어 토크쇼 비유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반상회 폄하에는 'G20 정산회의 합의를 어길 수도 있으나 그러면 다른 나라의 비난을 받게 된다' '합의 사항 위반 시 벌칙 조항은 없으나 그렇다고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면서 '개별과 빈곤 100가지 과제' '금융 안전망 구축' 'IMF 문턱 낮추기'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한다. 이번 모임에 소외된 나라에 대하여는 냉엄한 국제 현실에 대하여 말한다. 국가들 사이에서는 페권이 작동한다고. 정글 속의 맹수를탓할 것이 아니라 정글을 이해하고 정글 속에서 살아남을 힘을 길러야 한다는 말이다. UN이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현실적 대안으로 G20이 등장한 것이다. UN에서도 가입 회원국이 모두 참가할 없기에 상임이사국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강대국이나 약소국이 모두 평등하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민주적이라 볼 수 있으나 국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잘못된 평등 논리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 결국 토론의 승부는 전문성에서 갈라진다고 본다. G20 정상회의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폄하하다가는 그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에게 판정패 당하고 마는 것이다. 청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혜롭게 판단한다. 토론을 잘 하려면 해당 분야에 대해 전문지식이 뛰어나야 한다. 그 뿐 아니다.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도 깊어야 한다. 적절한 비유로 청중의 공감을 얻고 상대방을 다운시키는 언어의 힘과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 여유도 갖고 있어야 한다.
학교 현장에 오랫동안 근무하다 보면 별별 일을 다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담임을 맡고 있으면 한 학년에 한해서 일어나는 일을 경험하게 되지만 학생부에 있으면 3개 학년 전체 학생에게 일어나는 자잘한 일을 만나게 된다. 남자 학교에서는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것은 폭력이고, 여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성관계인 것 같다. 학교 현장을 쳐다보고 있는 사회인의 인식이 공교육이 무너진다고 하는 외침의 소리를 낸지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보편화된 일이 돼 버렸다. 그런 가운데 학교의 변화는 수업 잘하는 최고 교사를 찾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수업을 잘 하려고 해도 수업에 대한 이미지가 대입시와 관련돼야만 그것이 좋은 수업이라고 문서상으로 평가할 뿐이다. 수업이 학생의 만족도만 최고이면 그것으로 좋을 것 같지만 수업이란 궁극적으로 실용적 현실적용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한쪽의 만족으로만 최고라 할 수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학생 중심으로 수업을 하면 학생이 나아갈 대학입시에 대한 중심이 소홀하게 되고 대학입시 중심으로 수업을 이끌어 나아가고자 하면 학교 수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어느 저울에 맞추어야 할 지 모호한 상황. 이것이 학교 현장이다. 학부모가 학교에 이런 전화를 한 분이 있었다는 제보가 있었다. 겨울 방학 중 방과후수업을 하는데 모 선생님이 발음이 이상하니 방과후 수업을 빼 달라는 전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왜 여태껏 방과후 수업을 한 교사를 갑자기 겨울방학에는 빼 달라고 했는 지. 그것이 참으로 의심스럽다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리고 그런 학부모 전화가 오면 당사자에게 바꾸어 주어 그 당사자와 충분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맹목적인 학부모의 전화 그것도 신분을 밝히지 않고 전화를 교장실로 교감에게로 학년부장에게로 하는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학부모의 행위는 전화를 추적하여 꼭 대상을 밝혀 교사 당사자는 물론 학부모 당사자도 그 바람직하지 못한 일거수일투족은 해결하여야 한다고 본다. 교사가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로 교단에 서 있다면 단호히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고 학부모 또한 신분을 밝히지 않고 함부로 전화를 학교에 하여 교사에 대한 권위를 추락시키는 일을 일삼는다면 그에 대한 명예훼손을 감수해야 한다. 이제는 옳고 그름을 명백하게 밝혀야 할 때다. 교사가 수업에 대해 올바르지 못하다면 그것은 똑바로 고치도록 해야 하고 그래도 고치지 못하면 그것에 대한 학교장의 징계를 독려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교사에 대한 감정으로 또 일시적인 생각으로 학교에 전화를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월권행위에 대해서는 학교의 교권 수호의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학부모가 학교에 대하여 무자비하게 간섭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학교의 주체성의 수호라는 입장에서 맞서야 한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니기 싫은 학생이라면 학생이 맞는 학교로 보내야 한다. 교육청에서는 수 천만 원을 투자해 대한학교를 만들었다. 대한학교에 투자하는 그 비용을 일반학교에 투자하면 일반계 학교의 교육환경이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학생 개개인의 취미와 특성을 고려해 학생이 맞는 학교에 가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학교 현장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 가고 있다. 교사는 교사답게 처신하야 하는 것이 학교 현실이고, 학부모는 무분별하게 전화를 할 때면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받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시대의 요구다. 학교에 투서의 전화를 할 때면 반드시 신분을 밝히고 전화를 하여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문서로 신분을 밝혀 투서를 하면 된다. 학교 교사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은 교장의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만 교실 수업은 교사의 절대권이다. 그 외는 학교 부서에 배당된 재량권에 의해 맡은 업무를 행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못마땅한 일이 있으면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일차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교육청에 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교육부에 순서를 밝으면 된다. 학교에서 하는 학생 지도에 대한 것이며, 수업에 대한 것 등등은 학부모가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 직접 학교에 내방하여 목격하면 된다. 수업도 직접 참여하면 된다. 그것도 엄연히 공개돼 있다. 그런데도 오지도 않고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신분을 밝히지 않고 전화를 한다는 것은 마땅히 익명에 대한 투서로 인한 형사처벌을 받을 것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매년 이맘때 쯤이면 교장승진대상자, 교장연수대상자, 교감승진대상자, 교감연수대상자 선정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출한다. 교원의 근무성적평정과 맞물려 같은 시기에 진행된다. 어쩌다가 좀 늦은 시간에 교육지원청을 방문하게 되었다. 학교교사들의 퇴근시간은 이미 한참 지났지만 아직도 교육지원청은 대낮처럼 불이 밝았다. 장학사들도 많이 남아있고 일반직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 한 곳에 일이 있어 들렀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들이 여럿 보였다. 다름아닌 관내 교감선생님 들이었다. 늦은 시간에 무슨일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평정자료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그날 만이 아니고 벌써 여러날 교육지원청에 퇴근후에 들러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담당 장학사도 그 자리에서 열심히 정리하고 확인하고 있었다. 일만 보고 그대로 나오기 미안해서 같이 두어시간 머물면서 도울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주었다. 지금은 정보화시대이다. 모든 것이 전산으로 처리되는 시기이다.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는 기본이고, 각종 결재도 전산으로 진행되고 있다. 교사들의 복무도 전산으로 처리되고 있다. 각종 물품 구매도 전산으로 처리되고 있다. 예전에 비하면 업무가 간소화된 것만은 사실이다. 업무가 예전에 비해 늘었기에 간소화는 되었지만 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전산으로 처리되면서 업무의 간소화는 실현되었다. 문제는 승진명부작성을 위한 업무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승진명부 작성에 필요한 각종 서류는 대부분이 인사기록카드에 등재되어 있는 것들이다. 인사기록 카드에 모두가 기재되어 있다면 간단히 전산처리가 가능할 것이다. 학생들의 성적을 교무업무시스템에서 불러내어 내신성적을 간단히 해결하는 것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 교원들의 승진에 필요한 기록이 모두 인사기록카드에 기재되어 있는데, 왜 별도로 서류를 제출하고 그것을 일일이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한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근평자료가 인사기록카드에 기록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 부분만 별도로 작업하여 합산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수작업을 통해 수많은 자료를 작성하고 작성된 자료를 또 검토하는 문제는 실로 심각한 시간낭비가 아닐 수 없다. 기본적으로 인사기록카드에 기록된 내용을 그대로 활용하면 될 것이다.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장학사나 교감선생님들이 안타까워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를 왜 복잡하게 처리하는지 그것이 이해가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한가지 더 지적을 한다면 매년 정기인사이동도 마찬가지이다. 인사이동 대상교사가 직접 모든 서류를 NEIS에서 작성하도록 하면 될 일을 교사들에게 서류를 받아서 교감이 입력하고 있다. 서류를 받아서 입력하는 것과 본인들이 직접 입력하는 것이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다. 꼭 서류를 받아놔야 한다면 본인들이 입력한 후 서류를 출력해서 제출하면 될 것이다. 고등학교, 대학교 입시에서 원서작성도 모두 온라인 상에서 처리하는데 학교의 인사관련 업무는 아직도 제자리라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보화 시대에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부터 개선해야 업무의 간소화와 잡무경감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주호 교과부장관이 학생들이 가고싶은 '즐거운 학교'가 되어야 교권도 확립되고 학교교육이 제대로 된다고 했다고 한다. 백번 옳은 이야기이다.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없다. 학교가 즐겁다면 학생들은 당연히 가고싶은 학교가 될 것이다. 학생들이 가고싶은 학교라면 더이상 말이 필요없다. 이상적인 학교상은 당연히 가고싶은 학교일 것이다. 그래야 학교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즐거운 학교'를 어떻게 만드냐이다.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고 수업시간에 잠만자고 수업을 방해하는 것이 즐거운 학교는 아닐 것이다. 학생들이 억지로 학교에 오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시켜 즐거운 학교로 만드느냐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학생들이 즐거워할 학교를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이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야 한다.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이들을 적절히 융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즐겁게 등교할 수 있는 학교가 될 것인지 쉬운 문제는 아니다. 학생들이 즐거워 한다면 당연히 학교에서의 체벌은 사라질 것이다. 학생이 즐거우면 교사들도 당연히 즐거워질 것인데 이렇게 즐거운 학교에서 체벌이 왜 필요하고 벌점이 왜 필요하겠는가. 이런 학교야 말로 우리가 꿈꾸는 학교이다. 결과적으로 '즐거운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을 하지만 그 과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학교에 맡겨놓기에는 너무나도 큰 숙제이기 때문이다. 즉 정책적인 방향에서 검토한 후 학교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제시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학교가 즐거워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지 않는 교원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즐거운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선언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즐거운 학교를 만들 것인지 다양한 방안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어떻게 경감할 것인지 다른 정책과의 연계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현장과의 소통 문제, 학생과 교사들의 소통문제 등 다양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하나씩 실타래를 풀어나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추진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대학시절 민방위 훈련으로 착각학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북한의 공군 조종사가 미그21기를 이끌고 우리나라로 내려온 사건이었다. 지금도 이(리)웅평이라는 당시 공군 조종사의 이름이 선명하게 기억된다. 갑작스런 싸이렌 소리와 함께 당시의 민방위본부에서 '이 상황은 실제상황입니다.'라고 했었다. 갑작스런 상황으로 모두가 당황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북한 조종사가 귀순했다는 발표를 들었었다. 그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달라진 것은 시대가 변했을 뿐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필자가 학창시절에는 안보교육이 가장 중요한 교육이었다. 필자뿐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독자들이 예전의 안보교육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반공이라고도 했고, 멸공이라는 이야기도 했었다. 중학교때 도덕관련 과목이 두개로 나누어져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마도 과목명이 '민주생활'과 '승공통일의 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와는 시대가 많이 변한 것이 사실이지만 남북이 대처하고 있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군대를 갔을때 분단상황이 정확히 인지되었었다. 또한 국가안보가 정말로 왜 필요한지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지금의 현실도 남북대처 상황에서 안보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연평도에 폭탄이 떨어진 것은 우리 앞에서 일어난 현실이다. 그 현실을 인식했기에 학생들에게 안보교육이필요한 것이다. 훈련상황이 아니고 실제상황이었던 것이다. 사실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에게 안보교육이 다소 부족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관련교과에서는 나름대로 안보교육을 했겠지만 예전만은 못하다는데에 공감을 할 것이다. 서울의 초·중·고에서 `안보 계기교육' 을한다고 한다. 도덕이나 사회교과 위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창의적재량활동 시간 등을 활용하여 계기교육을 하도록 유도한다고 한다. 학생들의 안보의식과 평화의식을 고취하고자 학교별 교과협의회와 학교장 승인을 거쳐 내달부터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늦긴 했지만 전적으로 환영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학생들도 정확히 알고 이에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우리나라가 군사적으로 대치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점과 안보의 중요성, 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학생들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뿐 아니라 교사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평화정착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고, 평화통일의 당위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계기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교육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언론에서는 서울시교육청이 안보교육을 실시하는 것에 대해 이례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안보교육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본다. 최소한 학생들이 안보의 필요성이라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국제정세와 남북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불투명한 상태에서 안보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학생들이 잘 모르는 안보관련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계속해서 북한의 위협성 발언이 계속되고 있다. 연평도에서는 실제상황에 따른 대피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안보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과 이에 따라 안보의식을 확고히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일회성으로 그치지 말고 계속해서 안보관련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을의 주인공 단풍. 추운 바람이 불어오자 기다렸다는 듯 오색빛깔로 온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멋진 풍경이 유혹하는 창밖으로 자주 눈길을 보내고, 마음이 들떠 일손이 잡히지 않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이맘때면 유명한 산과 관광지는 자연과 벗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도로에 늘어선 차량과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이 즐거워야 할 단풍 길을 고생길로 만드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꼭 멀리 나가야 멋진 풍경을 만나는 것도 아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단풍물결이 산과 들을 지나 시멘트 문화로 삭막해진 도회지를 알록달록 단풍세상으로 만든다. 찬바람이 겨울을 재촉하는 계절에 차량과 사람에 시달리지 않고 도심에서 단풍을 즐겨보자. 그런 곳이 바로 인천대공원 안에 있는 인천수목원이다. 인천수목원은 도서해안과 육상의 주요 식물종을 수집ㆍ전시ㆍ보전ㆍ연구하고, 도시녹화의 다양한 정보는 물론 사람들에게 휴식과 자연체험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테마식물원지구, 희귀자생ㆍ비교식물원지구, 도시녹화식물원지구의 40개 전시원이 수목원을 구성한다. 1월 19일부터 12월 말까지 수목원의 자연ㆍ탐방ㆍ특강교실이 다양하게 진행된다. 사이트에서 사전예약하면 말린꽃을 이용해 책갈피를 만드는 꽃누르미교실(화~일), 숲속의 생물을 조심스레 찾아보고 관찰하는 숲속 생물 찾기(화~금), 재미있는 안내를 받으며 수목원을 돌아보는 수목원해설가와 함께 하는 인천수목원탐방(화~일), 다섯 가지 감각을 이용해 수목을 체험하는 오감체험, 새 먹이주고 새집 달아주기를 체험하는 겨우살이학교(겨울철), 수목원 탐방 및 자연 관찰 프로그램 매미학교(여름철)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인천대공원에 들어서면 가을 향취가 가득하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활기가 넘친다. 수목원 관람은 제1안내소의 방명록에 이름과 주소를 기입하면서 시작되는데 전시수목을 보호하고 관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 3000명만 입장을 허용한다. 테마식물원지구는 삶의 질을 증진하기 위해 여가와 교육에 적합한 주제를 감각, 계절, 용도, 이야기 등으로 공간을 구분하고 일반인이 나무와 쉽게 친해질 수 있게 테마 중심으로 전시하였다. 이곳에 후각ㆍ청각ㆍ미각ㆍ촉각ㆍ시각적으로 독특한 식물이 자라는 오감원, 사철의 식물들이 계절별로 심어져있는 사계원, 일반인들이 나무와 쉽게 접할 수 있는 나무백가지원, 약용ㆍ식용ㆍ자재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실용식물원, 문학ㆍ예술과 관련된 식물들로 구성된 문화식물원 등 17개 전시원이 있다. 테마식물원지구와 이웃하고 있는 회귀자생ㆍ비교식물원지구는 인천시의 육지 및 서북부 도서해안 식물종의 생태환경을 자생지 특성을 고려하여 사구식물과 내륙식물로 공간을 구분하고 유사한 특성 및 형태의 식물을 모아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전시하였다. 비교식물원, 희귀자생원, 해안사구원 등 5개 전시원을 이색적인 산책길이 연결한다. 특히 하늘로 곧게 뻗은 대왕참나무 산책길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대공원에 있는 수목원이라 가족나들이객이 많다. 이곳에서 광명시 철산동의 나철욱씨 가족을 만났다. 산책길을 부모님 손을 잡고 걸으며 신이 난 현일(7), 현민(4) 형제의 얼굴에 행복이 넘친다. 올레를 걷듯 흙냄새를 맡으며 낮은 언덕을 넘으면 인천자생식물을 활용하여 도시녹화와 관련된 자연친화적 녹화기법을 분야별로 다양하게 제공하는 도시녹화식물원지구를 만난다. 향토식물원, 도시녹화견본원, 자연생태원, 계류ㆍ연못원 등 18개 전시원이 있다. 나무다리에 걸터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보거나, 억새가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벤치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것도 여유다. 단풍을 매단 나무와 달리 겨우살이에 들어간 식물들 때문에 을씨년스러운 수목원을 돌아보고 제2안내소를 나서면 공중전화 부스를 닮은 좁은 공간에 책이 가득한 숲속의 도서관을 만난다. 기증된 도서로 운영되는 숲속 도서관은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자연 속에서 지적호기심을 해소하는 곳이라 소중하다. 그 앞의 장미원은 화려한 장미와 하늘로 물을 뿜는 분수의 물줄기가 조화를 이룬다. 초등학생, 연인, 할머니의 손을 잡은 꼬마까지 분수에서 물장난에 열심이다. 수목 및 도시녹화 정보를 교육하는 수목원정보센터와 탐방을 안내하고 관련정보를 제공하는 탐방객안내소를 차례로 만난다. 안내소에 마련된 옛 생활모형 전시실에서 아이들은 나무 쌓기를 하며 즐거워하고, 어른들은 옛 추억에 젖는다. 이외에도 인천대공원에는 사라져가는 식물을 비롯해 다양한 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자연생태원, 열대식물 등 희귀식물을 만나는 식물원, 동물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만질 수 있는 어린이동물원, 한여름에는 물썰매장으로 변신하는 사계절썰매장,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녹색 잔디밭 야외음악당이 있어 도심 속의 자연쉼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 폭포의 시원한 물소리가 주변의 숲과 어우러지는 호수와 조각품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조각원 둘레로 이어지는 느티나무 길은 바쁘게 사는 도시인들이 천천히 걸으며 사색하기에 좋다. *교통안내 ①시내버스 : 인천대공원 정문쪽, 남문(동물원쪽), 남문(청소년수련관쪽)하차 ②전철 : 인천대공원 정문 하차 ③자가용 ▶영동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 서창JCT → 부천, 인천대공원방향 → 고가도로 → 지하차도 옆 차선 → 우회전 → 인천대공원 진입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 장수IC → 대공원삼거리 좌회전 → 인천대공원 진입 *Tip자료 ①전화 : 032)440-5877~8 ②사이트 : http://grandpark.incheon.go.kr/icweb/html/web23/023.html ③수목원 입장 및 주차 : 무료입장, 소형차 2000원 ④참고사항 : 사전 예약신청(개인관람은 현장에서 접수), 체험 전 탐방객안내소에 신분증제시하고 접수상황 확인 ⑤주변 볼거리 : 인천대공원, 애보박물관, 시청광장 음악분수, 로데오거리, 소래포구, 송도유원지, 자유공원, 차이나타운
‘창의인재양성’ 교육과정 목표 맞지 않아 자국 언어로 교류 시 상대방 이해 폭 커 2007년에 개정된 교육과정이 현장에 적용되기도 전인 2009년 12월에 다시 개정되었다. 개정 배경으로는 학생들의 학습 부담 경감, 체험 활동을 통한 창의적 인재 양성, 기초 과목의 강화 및 진로 적성에 적합한 핵심 역량 증대, 자율적 교과목 운영을 들었다. 이렇게 교육과정이 개편되면서 소위 제2외국어가 생활·교양 영역 안으로 흡수되었으며, 외국어(영어)는 영어로 표기가 변경되었다. 기존의 명칭 표시를 살펴보면 영어를 괄호 안에 넣어서 외국어의 한 부분으로 보았던 것을 독립시켜 놓았고 외국어는 없어졌으며 제2외국어가 다른 여러 과목들과 함께 묶여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2009개정교육과정의 개편과 함께 2014 대입수능시험 개편안도 소개되었으며, 여러 차례 공청회를 거쳐 이제 최종적 결정이 내려질 시기에 다다랐다. 그런데 2009 개정교육과정과 2014 수능개편안 간에는 서로 모순되는 부분이 드러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2007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되기도 전에 2009개정교육과정으로 개정하게 된 배경을 묻는 질문에 교과부는 “학생의 지나친 학습 부담을 감축하고 학습흥미는 유발하며, 학습하는 능력과 폭넓은 인성을 기르는 ‘하고 싶은 공부, 즐거운 학교’로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한 ‘미래형 교육과정 구상안’을 제안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 당국에서는 제2외국어를 수능 시험에서 배제하려 하고 있다. 즉, 외국어는 영어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이다. 우리는 현재 글로벌 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하나의 시장이 되어 무한 경쟁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어느 나라와도 우방 관계가 될 수 있고 또 동시에 우방 국가였던 나라가 경쟁상대가 되는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구상에 있는 다양한 나라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것은 외국어의 학습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바로 우리와 다른 것을 이해하고 학습하며 나아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준다. 외국어의 학습을 통해서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고 이렇게 다름을 학습함으로써 고정적인 틀에서 벗어나 창의성을 기를 수 있다. 외국어 학습은 우리의 포용력을 높이고 사고방식을 유연하게 해준다. 만약에 수능시험에 제2외국어가 배제되면 고교에서의 제2외국어 교육은 황폐화될 것이며, 영어 일변도의 교육으로 우리의 사고방식은 축소 지향적이 되고 말 것이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창의 인재양성이라는 교육과정의 목표와도 거리가 멀게 되는 것이다. 또한 현행 수능에서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는 제2외국어를 배제하겠다는 것은 학생들의 선택권을 빼앗는 것이며 폭넓은 인성을 기르고 학생들이 원하는 공부를 하도록 하겠다는 교육과정의 취지와도 맞지 않다. 제2외국어는 우리에게 영어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와 가까이 접하고 있는 세계 2위 강대국이 된 중국을 비롯해 경제 강국인 일본을 배워야 하며, 우리나라가 긴밀하게 경제적 교류를 하고 있는 중동 국가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영어만으로 이들 모든 나라들과 교류를 하고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겠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현지 언어를 구사하면서 교류를 할 때 친밀감을 줄 수 있으며 더 깊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2외국어가 배제되고 사탐 과목에서 선택하는 교과목수가 줄어들면 수능시험은 결국 국어, 영어, 수학 세 과목에 의해 결정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국영수 중심의 공부를 하게 될 것이고,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며 결국에는 사교육시장만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경감시키겠다는 의도와는 정반대로 가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은 국영수 과목에서 오는 것이지 선택과목인 제2외국어 때문에 오는 것이 절대 아니지 않은가.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진정으로 경감하기 위한 것이라면 현재의 수능개편안과 같이 시험 과목수를 줄이려는 정책보다는 고교에서의 선택 교과목을 확대하고 수능시험에도 다양한 교과목을 설치해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교과목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개편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교육과정이 구성되고 운영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고교교육을 총결산하는 수능시험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될 것인지 장기적인 안목에서 관찰하고 연구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제2외국어교육정상화추진연합 집행위원장
원주 평원초등학교(교장 정대인)는 지난 11월 26일춘천교육대학교 3학년 15명을 대상으로 2010학년도 참관 실습을 마쳤다. 김미령(춘천교대 실과교육과 3학년) 교생은 "한 달 동안의 짧은 실습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으며 예비교사로서 더 많은 능력을 키워야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제자 사랑이 덧없는 일인 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예 아영일 이뻐하게 되어버렸다. 집 나이로 쉰 여섯, 1년만 있으면 규정에 따라 ‘원로교사’가 될 처지이건만 그 열정이, 정열이 스스로도 놀라울 뿐이었다. 사실 학생기자 지원서를 가지러 온 아영일 처음 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벌써 2년 전 ‘총애’했던 제자 다혜를 본 듯해서였다. 딱히 어디가 닮았다 말할 만큼 도장 찍어 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내게 아영인 다혜였다. 아영이 무난하게 면접을 통과했음은 물론이다. 다른 애들 5명과 함께 합격했지만 나는 다른 3학년 기자들을 제끼고 아영일 곧바로 편집장에 임명했다. 다른 기자들보다 하나라도 더 일을 가르치고 싶었다. 쉬는 토요일, 법질서 지키기 웅변대회가 은파공원 수변무대에서 열렸다. 관내 행사이고 아는 분이 두 번씩이나 학교에 찾아와 부탁했다. 나는 심사위원, 학생들은 청중으로서의 참가가 예정되어 있었다. 참가 희망한 학생은 자그만치 180여 명이나 되었다. 출석 체크 등 도우미가 필요해 아영일 불렀다. 당연히 기사 작성을 위해선 현장취재도 해야 했다. 아영인 쉬는 토요일인데도 선선히 따랐다. 하긴 아영인 지난번 르포때 갑자기 아파 빠진 적이 있었다. 이를테면 내게 빚이 있는 셈이었다. 마침내 그 날. 나는 학교에 들러 가야 할 사정이 생겼음을 알았다. 이미 만들어 놓은 출석카드를 학교에 두고 온 것이었다. 혼자 점심 먹을 일이 심란했다. 오후 2시까지 현장으로 오라고한 아영에게 전활 걸었다. “맛있는 것 사줄테니 좀 일찍 학교로 와라!” 온다는 시간이 10분쯤 지났는데도 아영인 오지 않았다. 사무실 문을 잠그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다시 전활했다. 학교에 와 있다는 대답이었다. 휴대폰을 막 닫고 계단쪽을 보는데 웬 아가씨가 내려오고 있었다. 쉬는 토요일 졸업생이 학교에 올리 없는데, 누굴까? 그런데 오, 마이 갓! 웬 아가씨는 아영이였다. 아영인 제법 퍼머기 있는 트레머리와 연초록색 자켓, 핫팬츠 차림의 뾰족구두까지, 익히 보던 얼굴인데도 못알아볼 정도의 ‘화려한 변신’을 한 모습이었다. “아니, 너 지금 어디 놀러 가냐? 누가 보면 선생님 애인인지 알겠다!” 나는 면접때 매니큐어 칠한 것조차 학생기자로서 결격사유가 된다 강조했던 근엄한 표정으로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음식 주문후 잘못을 깨달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 측은해 더 이상 나무라진 않았지만, 27년 만에 처음 겪어본 일이라 그 멍멍함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많은 학생들에게 학교신문 기자의 화려한 자태를 그대로 노출시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옷 갈아 입고 올 시간은 안되고, 다른 기자들도 없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진퇴양난이었지만, 나는 행사장으로 가는 그 짧은 시간 운전중에도 댄스음악을 틀고 볼륨까지 높였다. “헐, 선생님 짱인데요!” 아영인 언제 혼났냐는 듯 이내 생글거리며 말했다.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설마 뾰족구두의 화려한 변신이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아영인 오늘 또 내 뒤통수를 치고 말았다. 10일 전쯤 예고해준 백일장 참가인데, 자격증 시험 때문 못간다는 것이었다. 쟁쟁한 다른 애들 제쳐두고 참가신청서 낸 거였는데……. 젊은 시절 선배들은 충고했다. 제자를 사랑한 만큼 절망감도 큰 거라고. 이제 그런 걸 후배들에게 충고해줄 나이요 경륜인데, 정녕 내게 제자 사랑은 운명인가? 그렇다면 나는 어느 영화 속 주인공처럼 크게 외치고 싶다. “이제 애들 그만 이뻐할래!”
최근 수능시험이 끝난 고3 아이들이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여 시내를 배회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심지어 일부 아이들은 진한 화장과 더불어 손톱에 매니큐어까지 하여 행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수능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 그나마 양호했던 교복까지 변형하여 입고 다니는 아이들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수능시험이 끝나면 마치 고등학교 학창 생활이 모두 끝난 것처럼 생각하는 아이들의 생활지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무질서한 행동을 일삼게 될 것이고 자칫 이것은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학생인권조례로 체벌이 금지된 상황에서 학생의 행동을 제재할 수 있는 뚜렷한 조치가 없는 것도 학생 생활지도에 걸림돌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3학년 기말고사 시험이 끝난 뒤, 몇 명의 아이들이 학생부로 불려 왔다. 학생부장 책상 앞에 서 있는 아이들 모두가 염색한 것으로 보아 두발 불량 때문에 온 것 같았다. 학생부 선생님의 훈화에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딴전을 피웠다. 그리고 한 아이는 3학년인데 굳이 교칙을 준수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불만인 듯 입을 실룩거렸다. 교사들은 고3 아이들의 이와 같은 무질서한 행동이 1·2학년 후배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졸업한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그간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해 온 아이 중 일부가 이 기간에 탈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그리고 대학 진학상담 못지않게 인성지도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수능 이후, 고3 아이들에 대한 인성지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학교 나름대로 수능 이후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으나 프로그램 대부분이 아이들의 관심과 거리가 먼 이념교육과 강의 등으로 일관되어 과연 얼마나 큰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긴다. 겨울 방학 때까지는 아직 기일이 많이 남아 있다. 수업일수를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조기 방학을 시행하는 것도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수능 성적 발표일(12월 8일)까지는 가채점 결과를 가지고 정시 모집에 따른 진학지도가 철저히 이뤄져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일정은 학교의 일방적인 프로그램보다 그간 입시공부로 지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무엇이 적당한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프로그램(문화공연, 음악공연, 체험학습, 대학탐방 등)이 무엇인지를 물어 실천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전보다 학생체벌이 많이 줄어든 것에 반해 교사의 말을 무시하고 대드는 학생 수는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최근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까지 일어나 교사와 학생이 법정 공방까지 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작금의 이런 모습에 일부 교사는 ‘이제 제자가 원수(怨讐) 되기는 시간문제’라며 개탄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이런 아이들을 무조건 방치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이런 아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교사의 마음 자세가 아닌가 싶다. 나아가 학부모와 사회단체에서도 수능 수험생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사랑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쪼록 고3 수험생들이 수능 이후 남아도는 시간을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의 장(場)으로 만들게 되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