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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교과부의 원죄…무분별한 교사양성기능 부여 소통 없는 일방적 평가기관 위주 일정도 문제 3주기 교원양성기관 평가가 끝나고, 그 결과가 발표된 지도 비교적 오래되었지만 이 곳 저 곳 모임에 다녀보면 여전히 평가 결과에 대한 뒷담이 무성하여 그 후유증이 크게 남아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범대학장들 모임이나 교육대학원장들 모임에 나가 보면 많은 분들이 평가의 부당성을 토로하기도 한다. 물론 드물게는 평가의 당위성을 인정하고 차제에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반성적 발언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1, 2주기 평가 때와는 달리 유독 3주기 평가에 말들이 무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보면 평가담당기관과 피평가기관과의 소통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인 것으로 생각된다. 즉 쌍방향적 소통과 이해를 위한 양자 간 노력이 필요했지만, 결과로 보았을 때 평가기관의 일방향적인 독주가 평가 후 후유증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금번 3주기 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우선, 교원재교육기관인 교육대학원에 교사양성 기능을 부여해 온 교육과학기술부의 원죄를 지적하고 싶다. 교원인력수급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채, 교과부는 그간 무분별하게 특수대학원인 교육대학원에 교사양성기능을 부여해 줌으로써 교사가 지나치게 과잉공급 됨에 따라 목적대학인 사범대학 학생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고, 공급된 다수의 예비교사들이 압력집단화 될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게 되었다. 그간 대학에서 원했기에 양성기능을 부여해 왔다고 교과부는 변명할지 모르나, 교과부가 교원양성 정원 조정권을 가지고 있기에 교과부의 원죄는 피할 수가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교과부가 평가의 로드맵에 따라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원죄를 일정 부분 인정하고 그에 따라 대학 현장의 아픔을 어느 정도 감싸 안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했다. 둘째, 3주기 평가의 내용 및 방법은 1, 2 주기와는 상당부분 다르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1, 2주기 기준에 따라 준비를 해 왔다. 물론 2009년도에 확정되지 않은 평가 기준이 부분적으로 제시되기는 했지만 계속 손질 중인 상태여서 피평가기관의 불안감은 여전했다. 그리고 2009년 12월, 최종 확정된 평가편람이 장관 결재 후 각 대학에 통보되었다. 1, 2 주기와는 다른 평가편람을 보고 많은 대학들이 당혹해했다. 법이 바뀌어도 상당기간 입법예고를 하는데, 평가내용과 방법이 대폭 바뀐 편람에 따라 반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내에 평가보고서를 제출하게 함은 피평가기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지나치게 평가기관 위주의 일정표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평가결과 활용을 포함해,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전국교육대학원장협의회에서도 교과부 및 교육개발원에 공문을 보내 재고를 요구한 바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또한 쌍방향적 소통과 이해를 무시한 평가기관의 일 방향적 독주였다. 셋째, 교원양성기관 평가가 3주기까지 왔을 정도면, 그간의 부분적 평가 오류에 대한 반성과 함께 대학 현장의 불만이 꽤 수렴되어 평가의 노하우가 축적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1, 2 주기 평가의 연장선상에서 어느 정도 일관성 있는 평가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평가의 내용과 방법 그리고 배점 등에 있어서 이전의 두 평가와 확연히 차이가 났다면, 이것은 동일 평가기관에서 행한 1, 2 주기의 평가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수시로 바뀌는 평가준거와 배점에 많은 대학들이 계속 희생을 당해야 하는가? 예컨대 금번 평가에서 교육대학원의 전임유무에 대폭 배점을 하여 거의 모든 교육대학원을 우수권에서 배제시킨 점이다. 이런 평가의 결과는 그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반증이다. 기말고사 평가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C학점 이하를 받았다면 교수가 잘못 가르쳤거나 난이도가 잘못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금번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평가는 가히 혁명적 평가라 할 만하다. 이 또한 소통의 부재를 의미한다. 무성한 말들만큼이나 할 말이 많지만 큰 줄거리 몇 개만 지적해 보았다. 그 이유는 앞으로라도 평가담당기관이 피평가기관의 여론에 귀를 기울이라는 점을 촉구하고자 함이다. 즉 소통을 하라는 얘기다.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방법이 잘 못되면 결과도 안 좋은 법이다.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성도 좀 고려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교원양성기관의 경우도 아전인수 격 해석과 비판에만 매달리지 말고 차제에 자체적 구조조정 노력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하리라 본다.
자연의 바위 하나, 풀 한 포기조차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조화를 이룬 풍광. 녹우당이 있는 연동마을, 현산고성 주변을 원림으로 조성하고 풍류를 즐겼다는 금쇄동과 문소동, 수정동. 세속의 뜻을 버리고 정착하여 노후를 보낸 보길도 부용동. 시 속에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빚어낸 남도의 끝자락 해남을 찾아 나선다. 고산 윤선도와 관련된 유적지로는 생가 터인 서울 연지동과 명동성당 앞의 집터, 고산이라는 호를 짓게 된 남양주시 수석동, 유배 생활 중에 황학대를 즐겨 찾던 부산 기장군 죽성리, 간척 사업을 통해 백성들의 어려운 생계를 해결해 준 진도군 굴포리, 유배지였던 경북 영덕군 우곡리와 전남 광양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적지들이 주로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정해진 곳이었다면 고산 문학의 산실인 해남은 자연을 사랑한 시인 스스로가 선택한 곳이기에 그 가치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 해남까지는 승용차로 달려도 6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이다. 녹우당까지는 이미 답사 경험이 있지만 이번 답사는 땅끝마을을 지나 보길도까지를 일정으로 삼았다. 호남고속도로를 따라 광주, 다시 나주와 영암을 지나 해남을 향해 달려간다. 넓은 들녘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문화 유적을 알리는 이정표가 조밀하게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호남이 유구한 문화의 중심지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고산의 유적이 산재한 해남땅 해남은 한반도의 가장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고산 윤선도의 고장이라고 할 만큼 그와 관련된 문화 유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해남읍에서 가까운 곳으로 윤선도의 고택인 녹우당이 있는 연동마을, 현산고성 주변에 원림을 조성하고 정자와 각을 지어 놓고 풍류를 즐겼다는 금쇄동과 문소동, 수정동 유적지, 세속의 뜻을 버리고 제주도로 은둔을 하려다 보길도의 아름다움에 빠져 정착하여 노후를 보냈던 보길도 부용동 등 어느 곳 하나 그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윤선도는 이곳을 왕래하며 그의 문학 속에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빚어 넣었다. 해남읍에서 대둔사로 향하는 806번 지방도로를 따라 4㎞ 정도 달리면 왼쪽으로 덕음산 자락에 자리 잡은 윤선도의 고택 녹우당이 있는 연동마을을 만날 수 있다. 원래 이곳은 해남 윤씨 녹우당으로 사묘와 제단이 있어 사적 167호로 지정된 곳이다. 녹우당에는 윤씨의 종가인 녹우당과 고산사당, 어은초의 묘와 사당 등이 있다.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는 고택은 지금도 후손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그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고택 앞에는 윤선도가 이곳에 거주하면서 심었다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마치 고택의 수호신 마냥 늠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유적관리사무소 뜰에는 어부사시사가 새겨진 시비가 있어 문학도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시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씩 새겨져 있다. 시 구절을 읽다 보면 고산의 자연에 대한 정취가 그대로 손끝에 묻어나는 것을 느낀다. 윤선도는 십여 년의 유배 생활과 낙향, 자연 속에서의 은둔 생활을 통해 우리 국문학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당대 최고의 문학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시에도 뛰어났지만 한글 시조를 통해 국어의 아름다움을 한껏 발휘한 당대 최고의 국문학 작품을 남겼다. 금쇄동에서 쓴 오우가와 보길도 부용동에서 쓴 어부사시사는 국문학의 백미로 일컬어진다. 그는 유교 사상에 불교와 도교인 노장 사상을 가미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적 사상을 완성하였으며 마치 신선처럼 자연과 동화된 삶을 추구하며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완성하였다. 윤선도의 삶은 곧 문학이라고 할 만큼 그는 풍부한 감수성과 진솔한 삶을 문학으로 꽃피운 시인이었다. 오우가와 어부사시사의 고향 이러한 고산 시가 문학의 원천은 자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세상의 혼탁한 현실보다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을 선택한 시인으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공존하고자 했다. 그는 부용동과 금쇄동 같은 원림을 조경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서구의 조경이 인위적이고 조작적이라면 동양의 조경은 자연의 바위 하나, 풀 하나가 자연의 섭리를 저버리지 않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조화를 이루어 시공을 초월하는 풍광을 엮어내는 것이다. 특히 윤선도가 조성한 보길도의 부용동은 담양의 소쇄원, 영양의 서석지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정원으로 불릴 정도로 천혜의 자연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유명하다. 다음날 보길도로 출항하는 첫 배를 타기 위해 새벽에 눈을 떴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승선 준비를 하고 있다. 해상왕 장보고의 이름을 단 여객선은 힘찬 고동소리와 함께 선착장을 빠져나와 넓은 바다를 향해 힘찬 물질을 시작한다. 다도해의 아침 풍경은 살아있는 바다 냄새를 물씬 토해내고, 물살에 비껴가는 작은 섬들이 점점이 눈에서 멀어져 간다. 그렇게 40여 분을 달렸을까. 배 앞머리로 보길도의 관문인 청별항이 시야에 들어온다. 눈앞에 펼쳐진 보길도의 아름다운 전경을 바라보면서 윤선도가 왜 이곳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짐작하게 되었다. 청별항에 도착하여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보길도에 대한 관광 안내도를 건네주며 여행 코스까지 설명해 주는 아저씨. 친절한 시골 아저씨에게서 넉넉한 마음과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함께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보길도의 참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은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들이다. 청별항에서 세연정, 고산 윤선도 문학체험공원, 동천석실, 낙서재, 곡수당 등을 둘러보는 코스야말로 윤선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여행지일 것이다. 처음 도착한 곳은 산 중턱의 바위 위에 올라앉은 동천석실이다. 개울을 건너 우거진 나무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른다. 산새들의 지저귐이 더 없이 정겹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신선들이 거주한다는 동천(洞天)의 의미가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석문, 석제, 석천, 석폭, 석대, 석교 등 다양한 이름을 지닌 자연 그대로의 정원을 지나면 바위 위에 터를 잡은 한 칸짜리 정자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윤선도는 동천석실을 부용동 제일의 절경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부용동의 전경이나 격자봉의 모습은 자연에 은둔한 노인을 시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으리라. 이곳을 수시로 찾아와 책을 읽으며 신선처럼 자연을 벗 삼아 소요했을 윤선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보길도의 참모습을 찾다 낙서재는 윤선도가 보길도에 정착하면서 제일 먼저 지은 건축물로 살림집이라고 한다. 현재는 집터와 무너진 돌담만이 남아 있어 옛 모습을 알기는 어렵지만 발굴팀에 의하면 그 규모는 제법 컸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윤선도는 낙서재에서 주로 생활을 했으며 생애의 마지막도 이곳에서 마감하게 된다. 낙서재는 격자봉의 소은병 아래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골짜기와 산봉우리는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낙서재우음(樂書齋偶吟)이라는 한시를 보면 낙서재가 강학과 독서를 즐기며 은둔하고자 했던 선비의 공간이었음을 알게 한다. 세연정(洗然亭)은 우리나라의 삼대 정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원림이다. 자연과 인공이 조화롭게 결합된 이곳에는 두 개의 연못이 있다. 계곡에서 흘러드는 맑은 물이 모이는 세연지(洗然池)와 그 옆에 인공 연못으로 조성한 회수담(回水潭)이 다투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윤선도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연못에 암석으로 섬을 만들어 혹약암, 유도암, 사투암, 귀암 등의 이름을 짓고 연못에 배를 띄워 어부사시사를 노래하며 풍류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두 연못 사이에는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은 세연정(洗然亭) 터가 있었는데, 1992년에 원형이 복원되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세연정 뒤쪽에는 최근 윤선도의 시비가 세워졌다. 둥근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어부사시사를 계절별로 적어 놓아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시인의 안빈낙도하던 삶을 되새기게 한다. 그 외에도 무희들이 춤을 추었다는 동대와 서대, 귀암 위에 설치된 비홍교, 국내 유일의 석조보인 판석보는 유적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가 되고 있다. 유적관리사무소 맞은편에 있는 고산유물전시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주변 경관을 고려하여 단층 한옥 건물로 지어진 유물전시관에는 주로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 선생의 관련 유품과 작품 4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제240호)과 해남윤씨 가전고화첩(보물 제481호), 윤고산 수적 및 관계문서(보물 제482호), 지정 14년 노비문서(보물 제483호) 등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은 유물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위태롭게 지탱해오던 교사의 권위가 학교에서 사라졌다. 체벌금지 이후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충격적인 일이 초ㆍ중학교에서 연달아 발생했다. 대부분의 교육자들이 예견하던 일이라 방지대책부터 세워야 하는데 교육발전을 부르짖던 사람들이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이제 교육은 백년지대계가 아니다. 사회적인 요구에 의해 결정된 사항에 교육자들이 왈가왈부할 틈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 교권이 추락하며 교육이라는 큰 대들보가 서서히 좀먹는 현실을 지켜보는 것도 힘이 든다. 뻔히 알면서 답답한 심정을 풀자고 바위에 달걀 부딪치기를 할 수도 없다. 교육자들끼리라도 뜻과 마음을 모으며 해결책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것마저 쉽지 않다. 사람치어 놓고 삿대질한 여교사가 비난받고, 여교사가 교실에서 자살한 사건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어 어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하루를 보냈다. 이 땅에서 교육자로 얼굴 들고 살아가는 것을 탓할 뿐 대책이 없는 것도 부끄러웠다. 모두가 스스로 교직의 위상을 떨어트리며 손가락질 받는 일이라 원망이 앞서기도 했다. '여교사가 사람을 치어놓고 부축하기는커녕 삿대질을 하고 누군가를 불러오더니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났다. 교감승진을 위해 4년 전부터 근무평정으로 고심하던 여교사가 이번에도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교실 창틀에 스카프로 목매 자살했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르며 산다. 상황에 따라 경중이 다를 뿐 이해와 용서가 기본이다. 진실이 감춰진 경우도 있고 속사정이나 진위를 정확히 알지 못해 두 사건의 잘잘못을 얘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해진 사건의 전말로 보면 교육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물론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점수를 내어 승진을 결정하고, 관리자의 주관에 의해 일방적으로 평가되기 쉬운 구시대적 근무평정 제도에 문제가 있다. 그렇더라도 이번 일로 담임을 맡았던 1학년 학생들이 받을 충격과 모든 교사들이 아이들 가르치는 것은 뒷전이고 승진에만 매달린다는 오해로 교육계가 받을 불신을 생각해봐야 했다. 승진에 신경 쓰지 않고 아이들을 사랑하는데서 행복을 찾는 교사들이 더 많다. 교육자도 평범한 인간이다. 하지만 학교 밖에서까지 일반인보다 도덕적이고 모범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받는 것도 사실이다. 학생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가 바로 자신이며 누구에게나 희망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도덕불감증과 승진이라는 틀에 얽매인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개인의 욕심이 문제다. 학생이나, 교육자나, 사회나 자신의 이익만 앞세우면 결국 고난의 길을 걷는다. 큰 틀에서 넓게 바라봐야 진리가 보인다. 그걸 깨우치느냐 그렇지 못하냐가 '늘 행복을 누리며 즐거워하느냐, 아등바등 몸부림치며 어려워하느냐'를 결정한다.
지금 대부분의 중학교는 2학기 기말고사 기간이다. 3학년의 경우, 15일 고입시험을 앞두고 최종적으로 공부한 것을 정리하는 기회도 된다. 평가를 소중한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 현장은 그게 아니다. 이미 고입이 확정된 학생들은 이번 시험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고입 성적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고 하니 그냥 엉터리로 보는 학생도 있다. 시험지 받자마자 문제를 읽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답안지에 표기한다. 어떤 학생은 5지선다 중 4번에 모조리 기둥을 세우기도 하고 지그재그로 답을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시험 보는 것이 아니라 장난을 치는 것이다. 모 학교에 근무할 때는 모범생인 학생회장이 엉터리로 기말고사를 보아 선생님들이 경악한 적도 있었다. 교사가 그 학생에게 그렇게 한 이유를 물었다. 그 학생 왈 "학창시절 마지막 시험인데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이것도 기성세대가 이해하란 말이가? 결국엔 그 학생, 선생님들 다수의 의견에 의해 졸업 때 각종 수상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우리 학교, 오늘이 기말고사 이틀째다. 교육활동에 동참하기 위해 학교에 온 학부모 명예감독들에게 교장은 당부한다. 엉터리로 시험보는 3학년 학생들이 나오지 않도록 학부모님들이미리미리 살펴보고 지도해 달라고. 교사들에게는 유의사항을 교감 선생님이 이미 쪽지를 보냈다. 필자는엉터리로 시험에 응하는 것을 이렇게 비유한다. 그것은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까지 최선을 다해 정성껏그린 멋진 그림을마지막에 먹물로 가위표 하여작품을 망치는 것과 같다고.기성세대는 학생들에게올바른 삶의 자세를가르쳐 줄 의무가 있다고. 특히 고입과는 관계 없다고 엉터리로 시험보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삶'이 어떤 것이지 알려주어야 한다. 학창시절의 자기 그림을 아름답게 그리고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해야 한다.무성의하게, 아무런 의미 없이, 아무렇게나 세상을 살아가도록 방치해 두어서는안 되는 것이다. 문제를 읽지도 않고 엉터리로 답하면 20점에서 30점 정도 형편 없는 점수가 나온다. 보통 때 잘했어도 이렇게 한 번 하면3학년 교과 평어가최하위 등급으로 나온다.본인은 청소년기 한 때의 장난으로 했는지 몰라도 자기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 학교에 수 십년간 보관이 된다. 교장은 학부모님들께 자식들에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가르쳐 달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그 당부의 말씀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직까지 엉터리로 시험을 보는 학생이 있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다. 교육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견하고 그에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이게 바로 교육자가 할 일이다.
7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박영아 교과위원(한나라당) 주최로 '교원능력개발평가 성과와 과제'란 주제로 교육정책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오명성 대전 용산고등학교 교장은 토론회에서교원능력개발평가는 객관성 및 공정성 확보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제상 경주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원능력개발평가 운영 성과와 선진화 방향'이란 주제발표를 했다.
교육 거시지표로 미래 전망, 위상 높일 것 행정 독립 유지, 지자체 협력 방안 찾아야 “학력, 교육경쟁력 등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거시지표를 내놓아 상위 교육연구기관으로서 KEDI의 위상을 정립할 것”이라고 강조한 김태완 한국교육개발원(이하 KEDI) 원장은 “창의적이고 혁신적 미래 인재를 키우려면 교원 사기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6일 취임 1년을 맞은 김태완 원장(사진)을 만나 국내외 교육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11월로 취임 1년을 맞으셨는데, 뒤돌아 보신다면. “20년 만에 돌아온 KEDI는 교육과정, 직업교육, 평생교육이 분리되고 정책만 남아있어 정체성과 위상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KEDI가 진정한 싱크탱크가 되기 위해선 한국개발연구원(KDI)처럼 거시지표를 내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학력, 교육경쟁력, 공정성, 복지수준 등 다른 연구기관들이 할 수 없는 미래를 전망해야 상위기관으로서의 위상이 정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 작업의 기초를 세웠고 앞으로 여기에 맞춰 연구해 나갈 생각입니다.” - 교육정책 현장 착근 지원을 위해 학교 방문을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현장을 돌아보며 느끼신 점, 교원정책에 어떻게 담아내실 지 궁금합니다. “교장선생님과 교사들의 열정이 의기투합할 때 좋은 학교는 만들어집니다. 올 한해 방문한 10여 개 학교들은 그야말로 ‘잘’하는 학교들이었음에도 교사들의 사기가 낮았습니다. 시험성적 올리는 교육을 계속하는 한 교사들의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는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여 교원사기를 진작할 수 있는 정책 연구를 해 나갈 것입니다.” - 말씀하신대로 여전히 우리 교육은 학력과 점수 중심 풍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KEDI에서도 미래교육기획위원회를 만들어 창의적 인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셨는데요. “점수에 의한 서열화, 사지선다 평가가 계속되는 한 창의적 인재를 키우기는 어렵습니다. 사고력을 키워, 생각을 발전시키는 교육을 해야 창의성은 발현될 수 있습니다. 미래교육기획위원회는 그런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과학‧기술‧문화‧예술 등 교육 외적 분야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 사회 전체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창의적 인재를 길러낼 수 있습니다.” - 교육행정과 일반행정의 협력을 취임 인터뷰 때 언급하셨습니다. 진보교육감 시대에 더 강조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1989년 KEDI에서 제 첫 연구가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육계는 중립과 독립성을 이야기합니다. 차이점이라면 지자체와의 협력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정치권은 이 문제에 있어 즉흥적이고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협력하는 방향으로 교육계 의견을 수렴하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 사회통합위원회 시간강사특위위원장을 맡고 계십니다. 시간강사 등 고등교육 연구를 비롯해 내년 KEDI의 중점 연구와 계획에 대해 짚어주시지요. “시간강사제 개선은 지난달 말 교원지위 인정, 1년 단위 계약, 전임강사 1/2수준 대우, 4대 보험 등을 포함해 입법 예고되었습니다. 규제개혁위원회와 국회통과 절차가 남아있어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등교육은 대교협을 제외한 다른 교육연구기관에서의 연구가 거의 없는 만큼 KEDI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미국 연방 교육과학연구소(IES)와 공동으로 정책 개발, 학술행사 등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교육 문제는 국제적으로 공통된 상황인 경우가 많습니다. GELP(Global Education Leadership Program), 교육 ODA 포럼, FTA 연구 등을 통해 함께 문제를 풀어낼 예정입니다.”
“하루 120건 이상의 문자를 보내는 경우 흡연과 음주, 성적인 행동, 물리적인 싸움 등 좋지 않은 습관 갖게 될 가능성 2배 이상 높아” 스마트폰과 트위터, 그리고 페이스북 등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로 우리사회 구성원들 간 커뮤니케이션 형태도 변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의 등장으로 가장 눈에 띄게 바뀐 커뮤니케이션 형태는 기존의 면대면(面對面) 커뮤니케이션이 줄어들고, 수시로 문자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문자 커뮤니케이션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문자 메시지는 가장 빈번히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됐다.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지속되는 문자 보내고 받기는 청소년 문화가 된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 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는 청소년들의 문자 메시지 사용이 약물과 흡연, 그리고 폭력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 미국 청소년의 약 20%가 문자중독에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문자중독에 빠진 청소년들의 경우 일반 청소년들보다 폭력적인 행동이나 약물, 흡연 등 좋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의과대학(Case Western Reserve School of Medicine)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하루 평균 120건 이상의 문자를 보내는 청소년들은 흡연과 음주, 성적인 행동, 물리적인 싸움 등 좋지 않은 행동이나 습관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일반 청소년들보다 약 2배에서 3.5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최근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JFK 메디컬센터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잠들기 전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청소년들의 경우 낮 시간에 기분 장애나 인지적 활동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밤에는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피터 폴로스 박사는 청소년들이 밤늦게까지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인터넷을 사용하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불안, 우울증, 학습장애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소셜미디어의 사용이 올바른 수면활동을 거스르는 자극을 제공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앞서 소개한 두 연구들은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의 경우 이러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기들의 과도한 사용이 건강과 학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잠들기 전 인터넷과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등 전자 미디어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서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부모들은 컴퓨터를 자녀들의 침실에서 치우고 자녀들에게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 시간을 설정해 자녀들의 전자 미디어 사용을 지도해야 한다. 또 평상시에도 자녀들이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도록 이끌어야 한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기기의 발달은 그 기기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BS(사장 곽덕훈)가 연평도 학생 학습지원에 나섰다. 6일 EBS는 연평도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는 인천 운남초등교를 방문, 초∙중∙고생 128명을 위한 EBS 방송학습교재 685권과 미취학 아동을 위한 동화책, DVD, 캐릭터 장난감 등을 전달했다. 또 EBS는 ‘연평도 피해 주민 돕기’ 성금 모금 ARS 번호(060-700-0110)를 자막 방송하고, 임직원 대상으로 성금을 모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보낼 예정이다.
아이스 케키 ! 1968년 7월 어느 날 여름 방학을 일주일가량 남긴 우리 6학년 교실 풍경은 여늬 날과 조금도 다름없습니다. 아침 아홉 시에 시작한 수업이 오후 4시가 되어서 해가 설풋이 기울었지만, 끝날 줄을 모릅니다. 오늘은 산수시험을 봐서 자기 목표 점수를 넘지 못한 사람은 운동장을 열 바퀴 돌기로 약속을 한 날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쉴 시간이 되어도 한 문제라도 더 풀어 보느라고 나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때의 6학년들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중학교라도 3 : 1이 넘는 경쟁을 해야 하는 중학교 시험을 보아서 입학을 하여야 했기 때문에 요즘의 고3학생들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젊은 선생님의 무서울 만큼 엄한 지도를 받으면서 날마다 교과서를 외우고 문제 지를 몇 장씩 풀어서 그 틀린 문제를 공책에 옮겨 적으면서 다시 외우는 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공부해야 입학시험을 잘 치를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5월 15일 스승의 날 행사를 치르고 나서 바로 그날 저녁부터 학교 교실에서 잠을 자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정식 시간이 시작되었지만, 사실은 8시가 되면 벌써 공부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약 40분 정도 쉴 시간을 주고서는 오후 5시가 되도록 잠시 화장실에 다녀올 시간을 제외하면 밖에 나가는 것조차 허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후 5시에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학교에 오게 하였지만 너무 먼 곳에 사는 아이들이 힘이 들어서 얼마 후에는 아주 아침에 도시락을 두 개 싸 가지고 와서 점심과 저녁을 먹고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 때 우리 학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시골 학교 이어서 각자가 자기 앞에 조그만 호롱불석유 등을 놓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밤 11시까지 외우고 또 외우는 공부는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이라도 너무 힘들어서 11시가 되면 저절로 떨어져 잠이 들곤 했습니다. 물론 처음 며칠은 잠자라고 하면 킥킥거리고 장난을 치는 아이들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지친 아이들이 잠을 안자면 낮에 졸다가 선생님께 혼이 나기도 하여서 밤에 잠을 자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벌써 두 달 가까이 교실에서 밤낮 없는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점점 싫증을 느끼고 한 둘이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때는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런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포기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날씨는 섭씨 30도를 넘은 기온이 오후가 되어도 좀 채 식을 줄을 모르고 들판을 건너오는 바람도 시원한 기운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날씨가 가물어서 너무 오래 비가오지 않아 달구어진 들판에서는 더운 김만 올라오나 봅니다. 오후 네 시경이면 날씨가 보통 때는 벌써 시원하게 느낄 만한 시간이었지만 이날을 유난히 더워서 열어 놓은 창문으로 더운 김이 확확 끼쳐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길 건너가게집 앞의 도로에서 “아이스 케키 ! 아이스 케키 !”하는 아이스 케키요즘의 아이스 바처럼 생긴 얼음과자(빙과)를 파는 아이의 외침이 들려 왔습니다. 이 때는 아이스 케키를 구두닦이 통보다 좀 큰 통에 담아 가지고 매고 다니면서 팔았었습니다. “선생님, 저기 아이스 케키 장사하는 아이가 박성호 인데요.” 누군가가 이렇게 선생님께 일러 바쳤습니다. 아마도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 경재였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금방 호랑이 같이 변하셔서 “뭐야 ? 박성호라고 ? 그 녀석 부모님은 어떻게든 가르쳐 보겠다고 공부만 하면 대학까지 라도 보내겠다고 하시는데 공부는 하지 않고 아이스 케키 장사를 시작했단 말이냐?” “야 ! 경재, 그리고 반장 병규 빨리 가서 잡아 가지고 데려 와 !” 같은 마을에 사는 경재와 반장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벌써 교실 문을 나설 정도로 빨리 달려 나갔습니다. 이 무렵 우리 고장에서는 모두 가난했기 때문에 중학교에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중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가정이 반 이상이었고, 또 중학교에 가려고 하여도 시험에 떨어져서 못 가는 아이도 있어서 전체의 약 1/3 정도만이 중학교에 진학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반에서 가장 부잣집의 아들인 박성호는 중학교에 갈만한 성적이 안 되어서 부모님들은 늘 걱정을 하시고, 선생님께 특별히 부탁을 한다는 말씀을 드리기까지 하여서 선생님도 늘 관심을 가지고 더 주의를 주어 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공부를 하지 않고 어디 도망쳐 버려서 찾고 야단이 났었는데, 엉뚱하게 아이스 케키 통을 둘러매고 장사를 나선 것입니다. 잠시 후에 경재가 달려 와서는 소리칩니다. “선생님, 성호가 안 오려고 버티고 뒹굴어서 못 데려 오겠어요.” 이 말을 들으신 선생님은 곧 학급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기운이 센 기영이를 불러서 “야 ! 안기영, 가서 끌고 와.” 하고, 말씀을 하시자 공부하기 싫어서 눈치만 살피고 있던 기영이가 스프링이 튀듯 뛰어 나갔습니다. 선생님은 그 보습을 보면서 “기영이가 궁둥이가 근질거려서 어떻게 참고 앉아 있었던 거야. 나가라니까 저렇게 신바람이 나서 번개 같이 뛰어 나가는데.....” 하시면서 웃으십니다. 아이들도 잠시 머리를 식히면서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운동장에는 경재가 성호의 케키 통을 둘러매고 기영이가 성호를 껴안고 밀면서 교실을 향하여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창 너머로 그 모습을 보면서 낄낄거리기도 하고, 무어라고 떠들면서 소란스러워 졌습니다. 성호는 교실 문 앞에 와서 다시 한 번 기를 쓰고 안 들어오려고 문지방을 붙들고 버티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박성호 ! 이제 이 교실에 안 들어 올 거야? 지금 안 들어오면 아주 이 교실에는 못 들어오는 거야. 어떻게 할 거야. 교실에 들어와서 꾸중 듣고, 매를 맞더라도 학교를 다닐 거야. 아주 달아나서 학교를 그만 둘 거야? 기영이 놔 줘. 스스로 결정하게....” 선생님이 꾸지람을 하시자 성호는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곁눈질을 하면서 선생님의 눈치를 살핍니다. “빨리 결정 해 ! 너 때문에 지금 한 시간은 손해가 났어. 지금 50명이 한 시간이면 50 시 간이야. 너 혼자는 이틀을 잠을 안자고 보충을 해주어야 해. 알겠어?” 선생님의 호령이 떨어지자, 성호는 슬금슬금 교실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선생님은 성호를 교탁 앞에 세우시면서 “자 ! 오늘은 성호가 여러분의 친구로 여기 온 게 아니라, 아이스 케키 장사로 온 것입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의 불쌍한 친구 성호를 위해서 우리가 아이스 케키를 사 주어야 하겠지요.” 선생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다는 듯이 몇 몇 아이들이 힘찬 소리로 “예 !” 하고 소리쳤습니다. 선생님은 성호를 교탁이 가리지 않은 쪽으로 세우고, “자, 여기 친구들이 너의 아이스 케키를 모두 사 주기로 하였으니 고맙지? 그렇지만 너는 아직 친구들에게 아이스 케키를 사라는 말을 하지 않았거든 그러니까 여기서 아까 저기 길거리를 다니면서 외치듯이 힘차게 아이스 케키를 세 번 외치도록 한다. 어서 !” 선생님의 호령에 성호는 다시 기가 죽어 고개만 숙이고 있고, 같은 반의 친구가 어려운 꼴을 당한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는 듯이 여학생 몇 명은 책상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숨어서 킥킥거리고 있습니다. 남자 친구들은 성호가 어떻게 할까 지켜보면서 비웃음을 보냅니다. 다른 아이들은 돈이 없어서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중학교입니다. 그런데 집에서 보내주겠다는 데도 공부를 하기 싫어서 중학교를 못 간다는 친구를 보면서 부러움과 미움이 겹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아마도 선생님도 이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성호에게 이렇게 혼을 내주시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긴 본래 성호의 성격이 활달하지 못해서 앞에 나오면 말을 잘 못하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벌을 받는 일이고, 더구나 아이들 앞에서 아이스 케키를 사라고 외치라니 성호도 힘이 들것입니다. 아마 나라고 하더라도 그 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올 리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커다란 매를 들면서 “지금까지 팔았으면서 여기서는 왜 못해. 그렇게 말 도 못하고 짊어지고만 다니면 누가 사 주겠어. 큰 소리로 외쳐야 하는 거 아냐” 하고 때릴 듯이 하시자 성호는 몸을 움츠리면서 “아이스 케키 ” 하고 소리를 내었지만, 앞에 앉은 아이들이 겨우 들을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소리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누가 사러 오겠어? 더 큰소리로 !” 하시자 성호는 자기를 때리시는 줄 알고 목을 잔뜩 움츠리고 주저앉듯 하였습니다. “안 때릴게. 넌 이번에 아주 큰 공부를 하는 거야. 남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거든. 더구나 물건을 팔아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어. 그러니까 멀리 갈 것 없이 여기서 큰 소리로 외치면 여기 있는 것을 모두 선생님이 사 줄 거니까 어서 해 봐.” 하고 다시 독촉을 하자, 성호는 용기를 내어서 조금 큰 소리로 “아이스 케키 !” 하고 소리 쳤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더 큰 소리로 하라고 하셨고 “아이스 케키 !” 이번에는 제법 큰 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책상 밑으로 들어간 여자아이들이 못 참겠다는 듯이 킥킥거리자, 다음 번 소리는 다시 적어 졌습니다. 선생님의 호령을 듣고서야 두 번 더 큰 소리로 “아이스 케키 !” “아이스 케키 !” 를 외치고서야 성호는 자신의 자리로 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은 아이스 케키를 모두 하나씩 먹으라고 통을 열었습니다. 우리 반의 아이들이 모두 하나씩 먹고도 몇 개가 남았습니다. 선생님은 통을 매고 교실을 나서시면서 “나도 아이스 케키 장사를 나가야지. 제자 덕분에 이것도 매어 보겠구나.” 하시면서 교무실로 가셨습니다. 우리들은 성호 덕분에 한 시간은 쉬게 되었고, 공부 시간에 아이스 케키까지 먹게 되어서 신바람이 났습니다. 익살스런 영래가 “야 ! 박성호 ! 날마다 짊어지고 와. 그럼 우린 날마다 케키 먹을 거 아니냐?” 하자 아이들은 “와아 !” 하고, 합창을 하면서 웃음보따리를 풀어놓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말썽꾸러기 성호는 공부 시간에 도망을 쳐서 아이스 케키를 파는 짓은 물론 말썽을 부리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좋은 중학교는 아니더라도 면내에 있는 사립 중학교에 합격을 하여 중학생이 되었고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으니, 아이스 케키 장사는 아주 잘 한 셈이었습니다.
-컴퓨터 교육을 마치면서 11월 한달 동안 컴퓨터 교육을 받기로 하고 신청을 하여 다행히 등록이 되었다. 공공기관에서 무료로하는 교육이지만 내가 컴퓨터를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므로 워드는 그럭저럭 익혀서 한다지만 엑셀 프로그램 같은 경우 이용했으면 싶지만 도무지 문외한이니 알수가 없어서 이용이 불가능하였다. 만약에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면 아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워드로 작성된 문서도 일일이 수작업으로 작업을 하여야 하는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엑셀을 좀 배워서 편하게 이용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번 강좌를 듣게 되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무용프로그램으로 이것을 이용하면 여간 편리하고 대형 자료를 쉽게 분석하거나 자료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열성적으로 참여하려고 마음 먹었건만 한 시간은 빼먹고 말았다. 다른 일이 겹쳐서 부득이한 사정이었다. 엑셀을 강의 듣는 중에 프린트물이 아주 충실하여서 잘만 연습을 하면 충분히 이용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강의를 하시는 분이 너무 사두르는 통에 따라 갈수가 없다. 흔히 가르치는 사람이 저지르는 오류인데, 역시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부지런히 따라 해보았지만, 가끔은 엉뚱한 기호를 눌러서 엉뚱한 계산이나 표시가 나타나곤 하였다. 이럴 때에 차근차근 하나하나 표시를 찾아가는 방법부터 익혀주었더라면 충분히 익힐 수 있었을 것이다. 흔히 가르치는 사람이 일으키는 오류란 바로 배우는 사람이 자기처럼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가정을 가지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낯선 고장에 가서 전화로 지금 어디인데 어떻게 찾아가야 하느냐고 길을 물으면 가르쳐 주는 사람은 이 동네를 잘 아는 자기 기준으로 길을 가르쳐 준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으면 (왼쪽으로) 소방서 방향으로 (약 50m 쯤 내려)오면 상일 상회가 나오는데 (그 상회를 끼고 골목길로) 세집 건너 파란 대문집이니까 그리로 오시오” 여기에서 ( ) 속의 말을 빼고 가르쳐 주기 쉽다. 그러면 이 동네를 잘 아는 자신이야 당연히 소방서는 어디 있고 상일 상회는 어디에 있는지 아니까 그냥 찾을 수가 있지만, 낯선 동네에 온 친구는 0 (어느 방향에 소방서가 있는지?) 0 (얼마쯤 거리에 일상상회가 있는지?) 0 (일상상회에서 어디로 가야 파란대문집이 나오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쉽게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가르치는 사람이 잘 가르치는지 잘 못 가르치는지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지어 교사들까지도 이런 오류를 범하기 쉽다. 모르니까 배우러 왔고, 학생이고, 묻는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친절하게 조목조목 가르쳐 주어야 한다. 자신이 알고 있으니까 다 알것이라고 생각하고 “이것도 몰라?” “알겠지?”만 외친다면 배우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고역일 수 밖에 없다. 언제 어디에서나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좀더 배우는 사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차분하게, 아니 좀더 세밀하게 가르쳐 주는 법을 잘 알고 가르치고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세삼스럽게 느꼈다. 선생님이야 무슨 기호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겠지만, 배우는 입장에서야 어디에 있는지 찾다보면 선생님은 이미 눌러서 다음 작업을 하고 있으니 하나 놓치면 그만이고 다음을 따라 갈 수가 없어지고 만다. 이런 경우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무슨 기호는 어디에 있으니 찾아보세요, 찾으셨으면 눌러서 다음 “00000을 찾아 눌러주세요” 식으로 가르쳐 주셨더라면 좀더 충분하게 익힐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쉬움이 많았다. 열심히 가르쳐 주셨지만, 잘 아는 사람도 있지만 부진아도 있고 처음 접하는 사람이야 당연히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나도 교직에서 40여년 동안 저렇게 오류를 범하면서 살았겠지 싶어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 인터넷 뉴스에서 충격적인 보도를 보았다. 50대 초등학교 여선생님께서 목을 메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이다. 정말 슬프다. 같은 교육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슬프기 그지 없다. 온 교육가족이 같은 심정으로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 원인은 구체적으로 밝혀져야 알겠지만 보도에 의하면 “A씨는 교감승진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근무평점을 학교장에게 부탁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 같은 우발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학교 관계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다.” 만약 근무평점 때문에 그랬다면 이번 일을 계기로 근무평점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약 20년 전의 일이다. 그 때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10년 선배되는 선생님께서 교장실에서 나온 후 돌아가신 일이 있었다. 이 선생님께서는 평소에 근평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씀한 것이 생각난다. “근평을 ‘수’면 다같은 ‘수’지, ‘1수’, ‘2수’ ‘3수...’는 무어냐? ‘1수’, ‘2수’ ‘3수...’를 없애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렇다. 근평이 선생님의 승진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근평이 선생님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선생님들마다 나름대로 학생들의 교과지도, 생활지도 등 최선을 다해 교육활동을 해 왔는데 마지막 근평으로 인해 승진이 좌절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번 기회에 승진에 대한 근무평정의 반영은 그 과감하게 손질했으면 한다. 1수, 2수, 3수 하면서 줄을 세워 승진점수에 반영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 어떨까? 10년 선배 선생님의 의견대로 ‘수’를 받은 선생님은 똑같은 점수를 주어 근평이 선생님의 승진을 가로막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면 좋겠다. 아니면 근평으로 인해 선생님이 승진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손질했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 제3의 비슷한 불상사가 발생할지 모른다.
미국은 도입하자는 데 우리는 폐지(?) 공교육 선도할 초등교원에 투자해야 지난달 21일자 뉴욕 타임스에 게재된 논설('Teaching for America')에서 칼럼니스트 토마스 L. 프리드먼은, 미국의 공교육을 앞지르는 나라로 싱가포르, 한국, 핀란드 세 나라를 들었다. 그 이유를 프리드먼은 최고 수준의 인재가 교직으로 진출한다는 데서 찾았다. 또 그는 하버드대학 교수 토니 와그너의 의견을 소개하면서, 미국 공립학교교육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웨스트포인트를 모델로 하는 ‘National Education Academy’를 창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쓰고 있다. 이 기사를 보고 느낀 바가 많았다. 와그너 교수의 ‘National Education Academy’ 창설 제안은 그동안 교육대학 통폐합 논의가 나올 때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던 바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같은 세계 대국이 우리나라 국립교육대학과 같은 모델을 도입하려고 하고 있는데 오히려 우리나라는 미국 식자들이 부러워하는 제도를 버리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교육대학 통폐합 논의는 우리나라 초등교육의 근간이 달린 중대한 문제 이상 그저 한두 가지 당장 눈에 띄는 문제에만 치중해 가볍게 제도의 존폐를 운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나라의 교육대학 제도는 교사양성 모델로서 훌륭한 제도다. 물론 과밀한 커리큘럼 구성에서 오는 과중한 학습 부담, 불충분한 교육·학습시설, 현대화되어야 할 교수법 등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교육대학 시스템은 존속되고 더 강화되는 것이 마땅하다. 현행 교육대학 체제는 ‘합리성’(rationality)과 ‘정당성’(legitimacy)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교육제도가 특별히 중요하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초등교육의 사회적 중요성에 걸맞게 초등교원의 양성 역시 우수한 인재를 특별히 선발, 특별한 교육과정에 의해 특별한 교육 환경 안에서 양성되는 것이 합당하다. 종합적으로 볼 때 앞으로 우리나라 교사양성제도는 지금의 국립교육대학 모델을 더 강화시키고 또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본다. 지금 이상으로 초등교원 양성의 엘리트 교육기관화를 강화시키는 것이 옳다. 교육대학교를 소수정예 엘리트 교육을 위한 ‘사관학교’(academy)화해 소수 정예의 인재를 받아들여 최상의 교육을 베풀어 이들 엘리트 초등교원 집단이 우리나라의 공교육을 선도하고 개혁하면서 대한민국의 공교육의 레벨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한다. ‘국립교육아카데미’에 입학하면 최상의 교육과 국가적인 지원을 받고 또 졸업과 동시에 안심하고 초등교원으로 진출하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젊은 인재들이 앞 다투어 국립교육아카데미에 입학하고자 할 것이다. 최상의 인재를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최적의 교육을 베풀어주면, 우리나라 공교육은 절반 이상 성공이 보장된다. 이와 같이 초등교원을 위한 ‘국립교육아카데미’ 모델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그 다음 단계로 중학교 교원 양성, 그리고 고등학교 교원 양성도 이 국립교육아카데미 모델로 흡수하면 된다. 지금 있는 교육대학들도 해체해 이른바 ‘거점 국립대학 체제’로 흡수하자는 ‘과격’한 논의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그와 정반대로 교육대학 체제를 한층 더 강화해 ‘국립교육아카데미’로 발전시키자는 제안은 일견 비현실적인 ‘공상’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교육대학 체제를 해체, 초등교원 양성제도를 국립종합대학 체제 내로 흡수하자는 주장도 일종의 ‘공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상’에는 합리성(rationality)과 정당성(legitimacy)이 현저하게 결여되어 있다. 미국의 교육학자나 오바마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 교육을 칭찬하고 그로부터 배우자고 발언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그저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왜 세계 최강의 국가인 미국의 지도자들이 그런 발언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사람들이 우리의 호감을 사기 위해 그런 말을 할 리는 만무하다. 분명히 그들이 보기에 현재 한국 공교육 시스템에는 미국 공교육 체제에는 없는 장점들이 존재한다. 필자는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질 높은 교사 집단이며 또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지금의 교육대학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대한체육회(회장 박용성)는 6일 서울올림픽파크텔 올림피아홀에서 '학교체육발전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 방안'이란 주제로 학교체육진흥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발제가 끝난 뒤 박주한 서울여대 교수의 사회로 학교체육발전을 위한 종합토론이 펼쳐졌다.
1학년9반 기본반 수학수업. 오늘의 주제는 순열조합 경우의 수. 교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교과교실로 들어오는 학생들과 김한승(사진) 교사는 일상적 이야기를 하며 친근하게 수업을 시작한다. “기본반 수업의 핵심은 학생들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이에요. 초등학교에서 배웠을 법한 내용부터 시작해 어렵기만 한 수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거죠. 그래도 지루해할 때는 중간 중간 재미있는 이야기로 쉬어가면서 수업을 이끌어 가는 것이 필요해요.” 원묵고의 수학과 수준별 수업은 3+1체제(상·중·하 3개의 수준별 수업에 1반을 추가해 4개반으로 세분화 시키는 것)로 기본반을 두 개 학급으로 나눠 개별지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물론 교과서도 수준별로 재구성했다. “학생 실력에 맞는 교재를 개발했어요. 저를 비롯한 많은 선생님들이 교과연구 동아리 활동을 통해 다양한 교재를 만들어 수업에 활용하고 있어요.” 학습 요소를 추출하고, 목표 도달도에 맞게 만들어진 ‘맞춤형’ 교재가 기본반 학생들로 하여금 ‘포기’하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합의 법칙, 곱의 법칙에서부터 소인수 분해 개념까지 다시 일깨워 주는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수업시간의 탄력적 운영도 필요해요. 우스갯소리도 해야 하죠. 오늘 이야기한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 이야기도 그런 차원이에요.” 김 교사는 교과교실에 걸려있는 오일러 사진을 보며 함수, 삼각함수 등 교과서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그의 업적을 소개하며 이런 대단한 수학자 때문에 우리가 고생(?)한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노래방과 학원을 거쳐 집으로 가는 경우의 수, 만화책과 시집을 살 경우의 수 등 실제 벌어질 법한 일을 사례로 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결국은 교사의 열정인 거 같아요. 얼마나 열심히 가르치는 지는 아이들이 제일 먼저 느끼니까요. 심화반 아이들에게는 실력으로, 기본반 아이들에게는 버리고 가지 않는다는 관심이 서로 통하면 수업은 잘 이뤄질 수밖에 없어요.” 아침학교, 교과 수업, 방과후학교의 빡빡한 일정 가운데 자율형공립고 운영팀장까지 맡아 쉴 틈조차 없었을 것 같은 김 교사는 지난 주 교과부 교육연구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당분간 아이들과 직접 상호작용하는 수업을 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수업에 임한 김한승 교사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서울 ‘개방형 자율학교’ 1호로 2007년 문을 연 중랑구 원묵고등학교. 원묵고의 첫인상은 커다란 교실 창문에서 느껴지는 그대로 ‘자유와 열림’이었다. 벽의 절반 정도 크기로 만들어진 넓은 창문 너머로 원묵고의 특별한 교육과정을 엿봤다. # 인성함양 프로젝트 1, 2학년 체험 중심 차별화된 전일제 봉사 원묵고 학생들은 지난달 21일 경기도 용인시에 소재한 ‘농도원’으로 체험활동을 다녀왔다. 중랑구(구청장 문병권) 자원봉사센터와 함께 구내 조손가정 및 한부모 가정 등 아동 33명과 원묵고 학생 40여명이 ‘어우러짐’ 체험활동을 한 것이다. 목장견학, 송아지에게 건초주기, 젖 짜기, 아이스크림과 치즈 만들기 등 자원봉사자 교육 위주로 진행된 체험을 통해 결손가정 아동들은 “알프스 소녀가 된 것처럼 꿈같은 하루를 보냈다”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지난 7월부터는 이 아이들과 ‘하하! 호호! 즐거운 요리교실’도 진행하고 있다. 1:1 결연을 통한 형제·자매 멘토를 형성하고 매월 둘째 월요일 원묵고 가사실습실에서 정기적으로 만난다. 아이들은 서로 마음이 맞는 언니, 오빠들과 휴대폰 번호도 교환하고 고민도 이야기하는 등 남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 이렇듯 인성교육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원묵고의 첫 프로젝트는 봉사활동이다.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진건농협과 ‘1교1촌 자매결연’을 맺는 등 1학년의 경우 학급별 농촌체험 봉사활동을, 2학년은 중랑노인전문요양원에서 노인공경 봉사활동을 한다. 이와 유사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학교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별활동 시간이 아닌 평일 정규 수업 시간에, 하루 종일 봉사활동에 나서는 것은 자율형 공립학교이기에 가능했다. 송지연 교사는 “인성을 기르는 데 봉사만 한 게 없다는 것이 교사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라면서 “형식적인 봉사와는 차별화된 시스템 속에서 봉사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이 변하고 공동체의식이 향상되는 것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다나(1학년) 학생은 “요리교실에 초대받은 어린 동생 한 명이 샌드위치를 엄마 생신이라며 소중히 싸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며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다”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溫故知新 전통지킴이- 예절교실, 가야금 필수 원묵고에서는 학생들의 기본적 인성교육을 위해 예절교실이 운영된다. 학생들은 평소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마음가짐, 몸가짐, 인사하기 등의 교육을 통해 예의를 배운다. 이러한 교육 때문인지 원묵고 학생들은 인사성은 물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었다. 민경주 교사는 “예절교육은 1학년 남녀 모든 학생에게 연중 4시간 가정시간을 활용해 교육과정 내에서 이루어진다”며 “전문 강사를 모셔 바른 자세 및 공수인사법, 우리나라 절하기와 다례교육 등을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 교사는 “예절교육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과 자기절제 등을 배워서 인지 학생들의 정서가 많이 순화된 것 같다”며 “우리 아이들은 정말 착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개교 이래 학생들은 정규 음악시간에 북이나 가야금, 장구를, 방과후학교에서는 판소리 풍물 등을 배우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특히 1학년 학생들은 일주일에 1시간씩 재량시간에 가야금 수업을 받고 있어 아리랑과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중에서 자진모리를 기본으로 연주할 수 있다. 김주경 교사는 “가야금을 통해 국악에 대한 아이들의 호감이 높아졌다”며 “전문 강사인 송정아 교사가 산조 가야금뿐 아니라 풍류 가야금, 17현 25현 개량가야금 연주를 들려줘 감상능력도 많이 발달했다”고 귀띔했다. 김 교사는 “가야금은 소리가 맑고 깨끗해 정서적으로 차분해지고, 양손을 섬세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지적발달에도 도움이 된다”며 “가끔 2, 3학년 학생들도 점심시간에 가야금실에 와 1학년 때 배웠던 가야금을 연주하며 행복해한다”고 덧붙였다. # 실력함양 프로젝트 수준별수업 교육과정 혁신 학업성취도 중랑구 1위 2010학년도부터 교육과정 혁신학교로 전교과 교과교실제를 운영하고 있는 원묵고는 교육과정 자율의 폭이 넒은 자율형 공립학교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학습 격차가 큰 과목인 수학, 영어, 과학 과목을 전 학년에 걸쳐 수준별 수업을 실시하고, 수학과 영어의 경우 ‘학급 수+1’의 운영체제를 통해 좀 더 밀도 있고 내실 있는 수준별 수업이 진행된다. 50분 2회 연속수업인 블록타임제를 전교과, 전학년에 도입해 1일 학습 교과목 수를 줄임으로써 교과교실제로 인한 학생들의 이동을 최소화하고 2시간 연속수업을 통해 다양한 교수-학습 모형을 적용한 수업을 하고 있다. 또 1학년 기술‧가정, 국사, 음악, 미술과목에 집중이수제를 도입해 이수 단위수가 낮은 과목의 밀도 있는 수업 또한 꾀하고 있다. 박평순 교장은 “지역 특성상 입학 시 대부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낮은 편이지만 교사의 열정과 교육과정 혁신학교, 방과후학교 운영 등으로 학습능력이 괄목할 만한 향상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1일 발표된 2학년 학생들의 전국학업성취도평가(7월 실시) 결과 서울 전체 고교 중 상위 30%, 중랑구 1위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방과후학교 방학중학교- 강사 선택제, 특기적성 교육 아침학교, 방과후학교, 토요학교, 방학중학교 등 원묵고의 방과후학교는 연중(年中)체제로 다양하게 운영된다. 아침학교는 정규 수업 전 도서관 활용을 통한 독서‧토론‧논술교육과 체육‧음악 동아리 활동이 이루어진다. 토요학교는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토요 휴업일)에 오페라, 뮤지컬 감상을 비롯 학생들이 원하는 체험활동 위주로 실시된다. 방과후학교는 강사 선택제를 통해 학생 선택권이 보장되며 40여 개 다양한 전문 강좌 개설 및 수준별 운영, 외부 강사를 활용한 다양한 특기적성 교육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물론 방학 중에도 연속적으로 강좌를 운영, 사교육 요구를 학교로 흡수하고 있다. 박 교장은 “‘1인 1운동’ ‘1인 1특기’를 장려해 학생들이 자신만의 ‘끼’를 찾도록 도와주고 싶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처음엔 ‘내가 왜 공모 교장에 응모했을까’ 싶을 정도로 힘도 많이 들었지만 학력신장과 전인교육을 동시에 이뤄내는 공교육의 저력이 보이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지난 3년을 소회했다. 오전 7시30분 아침학교로 시작해 오후 8시30분 방과후학교로 하루가 마감되는 원묵고. 빠듯한 일정이지만 이 곳 원묵고의 교육과정을 ‘원해서’ 온 교사와 학생들의 표정엔 열정과 자유로움이 묻어났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생각과 수많은 체험으로 스스로를 창조적 인물로 만들어 가고 있는 학생들. 그런 학생들의 꿈을 향한 한걸음을 지원하는 교사들의 모습에서 공교육의 미래와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루소’와 ‘헤르바르트’들이여, 황금에 배팅하는 시대에 우리는 교육에 목숨 걸어야 한다. 이게 우리의 첫사랑이자 운명이기에 그렇다." 수업하러 교실 문을 여는 순간, 그 상황이란 옛날 동네 서커스를 보러갔을 때 기억을 방불케 한다. 커튼을 쳐놓은 상태에서 교실 형광등은 꺼져 있고 여기저기 엎드려 자는 아이들과 삼삼오오 책상에 걸터앉아 떠드는 아이들. 스위치를 켜면 바닥에 점점이 버려져 있는 휴지와 과자 봉지들, 서커스가 시작되려면 아직 먼 모양이다. 나는 큰 소리로 막이 올랐음을 알린다. 그러나 그 소리는 소음에 묻히고 결국 작은 지휘봉으로 교탁을 두드려 관객을 집중시킨다. 그제야 선생의 무대 등장을 깨닫고 서있던 아이들이 객석에 앉는다. 자다 깨어난 또 다른 아이는 어슬렁거리며 납골함 같은 사물함에서 교과서를 꺼내온다. 그래도 다행이다. 여전히 앞뒤로 히죽거리며 떠드는 소리는 가라앉지 앉는다. 오랜만에 만난 동네 친구들처럼 흥겹다. 배우는 처음부터 핏대 올려 시작할 필요 없다. 그냥 관객의 소리와 신체마임을 구경하면 된다. 무대와 객석이 바뀐 셈이다. 한참 후에 누군가 내지르는 소리, “야! 조용히 해!” 그제야 아이들은 자신의 시간이 3교시에 와있음을 알아챈다. 다양화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아이들의 욕구와 인권도 각인각색이다. 자는 아이는 여전히 고개를 꺾은 채 자고 있다. 더 이상 잔소리는 효험이 없다. 식상한 모노로그를 시작하면 분명 1막 3장의 잔소리 극으로 끝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앞자리에 눈이 초롱초롱한 아이가 나를 예의 주시한다. 관람하는 태도가 좋다. 수준 높은 관객이 훌륭한 배우를 만드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 갈급한 몇 명의 눈망울을 위한 나만의 연기가 펼쳐진다. 거침없이 소리의 강약을 주어가며 더러 휘몰이로 더러는 진양조로 객석을 압도한다. 1인 3역을 하며 다중인격, 복화술까지 선보인다. 그래도 자는 아이는 여전히 꿈속에서 돌아올 줄 모르고 델타파의 신호만 방출한다. 관객모독이 아닌 무대모독을 생각하며 나는 서랍 속 우황청심환을 떠올린다. 문득 혈압에 이상이 있지 않는가 걱정을 한다. 배우는 몸으로 먹고사는 ‘노가다’인데 몸이 망가지면 큰일 아닌가. 성대 결절 또는 하지정맥류라도 생기면 끝이다. 불현듯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동창의 부고 문자가 가슴에 뜬다. 그러고 보니 콩팥과 간, 위장과 허파가 자신이 없다. 노후한 차량처럼 카센터에라도 가봐야 하는가. 잠시 판서를 멈추고 창밖을 본다. 하늘엔 푸른빛이 흐릿하고 구름이 무상하다. 요즘은 수업이 전투고 생활지도도 전투다. 손톱 깎아라, 복장 단정히 해라, 수행평가를 제대로 해라 등등 신경전이 일상화되었다. 휴전하면 편하다. 수업을 듣건 말건 사고를 치건 말건 너는 너 나는 나 하면 선생은 편하다. 수업시간에 노트북 가지고 들어가서 자료화면만 클릭해주다가 애들이 심드렁해 할 쯤 동영상 하나 보여주면 끝난다. 지금은 이미지와 영상의 시대니까, PMP로 야동과 야설을 탐구하며 문명의 진보에 발맞추면 좀 어떤가. 정말 휴전하는 선생이 늘어간다. 아이들이 색조화장을 하고 치마가 짧아져도, 거짓말을 하며 선생에게 따져도, 애들끼리 왕따와 폭력이 일어나도 초연하다. 아이의 가정에 심각한 일이 있어도 물어볼 필요도 없다. 행동장애나 심신장애로 괴로워해도 그저 특이행동만 면박을 하면 그만이다. 따뜻한 차 한 잔, 따뜻한 밥 한 끼를 같이 하며 품으로 끌어안는 선생은 고리타분하다. 환자에게 실력과 신뢰를 겸비한 의사가 절실한 것이라면, 바른 삶을 살고자 교실에 와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선생은 아이들을 인술로 돌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희망 설계사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그렇게 놔주질 않는다. 밤이면 네온사인이 번득이고 밤늦게까지 부모는 자본주의의 치마폭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선생도 시간이 끝나면 세상 밖으로 사라지고 그리하여 ‘루소’는 없다. 물질적 욕망이 출렁거리는 세상에 어쩌면 우리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고 있는지 모른다.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눈을 뜨기 힘든 상실의 시대. 황금을 찾아 엘도라도로 떠난 부모는 돌아오지 않고, 아이들은 게임으로 들어가 나오지를 않는다. 가정이 해체되고 아이들의 미래가 분해된다. 푸르른 숲 위로 태양이 떠오르건만 아이들은 여전히 그믐밤이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미래에 대한 도면이 없는 시대. 교육학 한 권 윤리학 한 권을 읽지 않고 살아가는 ‘결손’의 시대에 우리는 산다. 선생마저 게으르고 나침반이 없다면 이 ‘결핍’을 감당할 수 없다. 세상이 황금에 배팅하는 시대에 우리는 교육에 목숨 걸어야 한다. 가슴 찡하게 종아리도 때리고 보듬고 울어도 봐야 한다. 이게 우리의 첫사랑이자 운명이기에 그렇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루소’와 ‘헤르바르트’들이여, 교육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어야 하지 않은가!
황당한 조선일보 머릿 기사 "선생님이 그러는데...북한 짓 아니래요" 오늘 아침 집으로 배달된 조선일보를 보는 순간 매우 화가 났습니다. 필자가 교사이기 때문에 더 그랬다고 생각하면서도 억울한 마음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이 기사를 접하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연평도 사건이 마치 선생님 탓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마음이 상했습니다. 일찌기 접하지 못한 국가적인 재난을 일선 학교 현장으로 돌리는 처사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국가적 변혁기, 어른들도 헷갈려요 우리나라의 문제는 어느 것 하나 명쾌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의 독립 과정이 그렇고 남북 문제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평화통일을 원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주변 강대국의 이해 관계에 따라서 이용당하거나 본래의 뜻이 잘못 전달되어 오해를 부르는 경우조차 허다했습니다. 지금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변혁기입니다. 어른들도 헷갈리는 상황이 비일비재합니다. 각종 언론 매체나 방송에서 보도되는 것조차 제대로 검증된 소식인지, 그 소식의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채 소문이 진실인 것처럼 여과 없이 알려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중대한 사안에 대하여서는 국가에서도 일선 교단에 분명한 지침을 내려서 교단의 각기 다른 해석을 막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 스스로가 교육과정의 한 축을 맡고 있지만 선생님 각자의 정치적 성향이나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주입식 교육으로 국가적으로 중대한 시사문제를 일사분란하게 지시했던 과거 시절로 돌아가자는 뜻은 아니지만 해석의 범주에서 오해가 생기지 않을 만큼의 틀을 제공해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문제를 교단에 떠넘기다니 천암함 사태나 연평도 피격 문제는 다분히 정치적 문제입니다. 각 분야에서 국가를 이끌어 가는 리더들의 잘못이나 판단 착오와 같은 오류는 적당히 넘겨서 재발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지엽적인 문제를 일선 학생들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를 공개하여 그것이 마치 교직에 몸담은 현직 교사들의 잘못인 양, 대서특필하는 자세는 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을 가르쳐도 오답률은 상존합니다. 늘 복습하지 않는 이상, 잊어버리는 게 교육 현상입니다. 똑 같은 문제를 어른들에게 질문했다 하더라고 오답률은 존재합니다. 현장 교사들이 더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는 논지였다면 그래도 수긍이 갈 기사였습니다. 마치 천안함 사태나 연평도 피격 사건이 마치 현장의 선생님들이 잘 못 가르친 결과인 것처럼 대서특필한 조선일보의 행태는 분명히 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간 안보 교육 포기한 적 없어 필자는 교단에 서 있는 30년 동안 어느 학교에 근무하던지 간에 통일 안보 교육 행사와 계기 교육을 소홀히 하는 학교에 근무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특정한 사람과 인터뷰 한 내용이 마치 전체의 의견인 양 보도하는 행태도 잘못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교사들이 마치 통일 안보 교육이나 시사 계기 교육을 내팽개친 것처럼 보도한 사실에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주변 단체들의 협조로 매년 치르는 통일 안보 글쓰기나 포어, 포스터 그리기 행사까지 하다 보면 교육과정을 침해하기까지 하는 현실을 너무 모르고 쓴 무책임한 기사입니다. 언론은 사회의 등불,정론으로 사회 통합을 선도해야 언론은 상처를 드러내기 전에 그것을 치유할 길도 함께 제시할 때 공감을 얻어냅니다. 정론을 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극히 일부의 사건을 전체인 양 오도하는 보도는 얻은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습니다. 국론을 분열시키는 보도 태도는 고쳐야 마땅합니다. 상처 받은 사람이 너무나 많은 현실에서 추후 그 같은 사고가 나지 않을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기사를 작성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교권은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사사건건여론의 뭇매를 맞게하는 이 나라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그래도 서 있는 그날까지 교사 본연의 임무를 방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서로 탓하기 전에 자숙하고 상생할 길을 찾아서, 대안을 제시하는 언론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갈망합니다.
원주 평원초등학교(교장 정대인)는 지난 11월 25일(목) 학부모 500여명, 내빈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원한마음 예술제를 실시하였다.마술, 바이올린 연주, 연극 등 다양한 공연을 통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정대인 교장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창의와 인성교육 목표를 실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말하였다.
무상급식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이 불과 1년도 안 된다. 그런데 지금은 교육계의 최고 화두로 교육을 망칠 나쁜 정책이 되어 소모적 논란 속에 있다. 직영이면 무조건 좋은 줄 알고 찬성했던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써 직영의 숨은 문제를 알고 ‘직영이든 위탁이든 학부모가 선택한다’고 주장해 직영 1년 유예를 얻어내고 비로소 선택권을 찾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난데없이 튀어 나온 무상급식은 국민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무상은 곧 세금 부담일 것을 알고 있기에 ‘학부모는 무상급식을 원치 않는다’며 살만한 애들은 부모가 부담하고 어려운 학생에게 석식과 더 많은 혜택을 주자고 했지만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정치교육감들은 ‘급식도 교육’이라며 ‘보편적 복지’를 들먹이고 의무교육엔 급식도 포함되어야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미 충북이 시작했고 서울도 내년부터 초등 4개 학년을 무상으로 하겠다며 의회에서 힘으로 친환경무상급식조례를 통과시키려한다. 교육청 예산으론 능력이 안 되니 시나 자치구를 압박해 자신들의 선심성 공약을 관철시키려하는 것이다. 그것도 소득별이 아니라 무조건 학년별 확대여야 한다니, 세월만 가면 전체무상이 된다는 로드맵 하에 강제하면 된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가. 초등학생부터 전면무상이 되어 예산이 쓰이다 보면 중‧고교, 저소득학생의 지원 확대는 스톱되니 오히려 피해를 보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보편적 복지란 말인가. 우리는 교육시키러 학교 보냈지 밥 먹이러 보낸 거 아닌데 한정된 예산에서 부자들까지 공짜로 밥을 먹이면 애들 교육여건은 열악해 질것이 불을 보듯 뻔 하지 않나. 요즘 무상에 찬성하는 사람들 보면 학교에 눈먼 돈이 너무 많다고 그 돈 아끼면 밥은 얼마든지 먹일 수 있다고 한다. 너무 무책임한 말이다. 잘못 쓰는 돈은 절약해 교육력을 높이는데 써야지 영어, 과학 활성화, 체육활동비를 줄여 무상급식비로 책정하다니 공교육 발전은 지금 멈춰진 상황이 아닌가 싶다. OECD국가 중 스웨덴, 핀란드를 빼곤 무상급식을 하는 나라가 없다는데 인구 1/10, GNP 3배에 세금이 40%인 우리와 비교도 안 되는 나라인 핀란드를 툭하면 모델로 들고 나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 영국, 일본 같은 선진국도 하위 49%, 16%, 1.7%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수익자부담인데 우리가 100% 무상을 하자고 하니 무책임한 정치인들은 아마 국민을 바보로 아는 모양이다. 또 직영을 하던 영국과 일본도 개혁 첫걸음으로 직영의무를 버리고 단위학교 자율에 맡기는 추세다. 이렇게 위탁이 대세인데도 다른 나라에서 버리는 정책을 죽기 살기로 목을 매는 의도역시 모르겠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전면 무상급식은 세금급식이고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경직성 경비로 교육재정의 블랙홀이 되어 국가와 교육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렇게 전면무상급식은 저소득층이 오히려 피해를 보는 정책임에도 서민정당이라는 민주, 민노당이 올인하는 것은 스스로 자충수를 두는 결과를 초래 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제도는 정의롭지 않기 때문에 깨어있는 국민이 난국을 현명하게 판단하고 행동에 나설 때 반드시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바이다. 우리 모두 국가와 교육의 미래를 위해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매년 한 번씩 학교 축제를 한다. 우리 학교에서도 학교 축제를 봄에서 여름 사이에 한다. 학교 축제란 무엇일까? 학교 축제를 하는 본질적 의도는 무엇일까? 학교 축제란 학교에서 학생들의 학교생활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의 유대감을 형성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다. 그런데 이 본질적 의도에 맞게 하는 학교가 과연 전국에서 얼마나 될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학교 축제는 각 학교의 장기 자랑과 체육대회가 있다. 장기자랑을 하는 학교 축제를 보면 일부 동아리와 일부 집단만이 활동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딜러리가 되는 일이 허다하다. 쉽게 말해서 구경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지루하고 지겹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참여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 장기자랑을 보는 것으로 인해서 유대감을 키운다는 의도도 모순이라고 볼 수 있다. 체육대회를 하는 학교 축제를 보면 이 역시 마찬가지로 일부 학생들만이 반 대표로 뽑혀서 다른 반과의 대회를 한다. 반 대표에 뽑히지 않은 학생들은 응원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역시도 지겨워한다. 일부 학생들은 선생님의 서술한 경계의 틈을 타서 노래방이나, pc방을 가는 일이 허다하다. 물론 학생들이 학교 축제를 기다리고 원하고, 빨리 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렇게 바라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축제 때는 수업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대다수 학교 축제들의 본모습이다. 그런데도 앞으로 이런 의미 없는 학교축제를 하는 것은 지양 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필자는 학교축제가 없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한 가지 떠오르는 방안을 말하고자 한다. 학교 축제는 모든 학생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모든 학생들이 이날의 추억을 잊지 못할 감동의 축제 방안을 마련하는데 제고 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 축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학교와 학생들 간의 협의 사항을 끌어내서 축제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학교 축제가 여전히 학교 수업을 안 하는데 쓰이는 날로 자리 잡혀서 없느니만 못한 학교축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