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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새 학기, 교사들에겐 가장 부담스러운 시기다. 입학식을 필두로 이어지는 각종 행사와 쏟아지는 행정업무, 아이들과의 관계 맺기부터 크고 작은 다툼에 학부모들과의 상담까지 어느 것 하나 녹녹한 게 없다. 한 손엔 교과서를 한 손엔 휴대폰을 움켜쥐고 발걸음을 재촉했던 일상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경험이다. 그래서일까? 교사들은 개학이 다가올수록 밤잠을 설치는 등 불안한 심리상태를 겪는다. 경력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어 보인다. 심지어 개학 첫날부터 모든 일이 엉망으로 꼬여버리는 악몽에 시달린다는 교사들도 있다. 이번 호는 새 학기, 교사들이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적 과제를 살펴보고 그 원인과 대책을 모색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풍부한 현장성과 전문성을 갖춘 전현직 교사들의 축적된 경험치에서 비롯된 노하우를 통해 교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를 실증적으로 들여다보고 정확한 진단과 정책적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대강의 주제는 학생들과 관계맺기, 학교폭력 대응, 교육과정 구성과 평가, 학부모 상담하기, 그리고 교권침해 대응으로 잡았다. 3월, 교사와 학생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1년 학급 분위기가 좌우된다. 올해부터 학교폭력업무가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됨에 따라 교사들의 업무도 달라진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 뜻하지 않은 실수를 낳을 수도 있다. 학부모와의 첫 대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경력이 적은 교사들에게는 가장 힘든 관문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자칫 갈등이 불거지고 교권침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 것인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교육당국에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해 본다. 최근 언론에서 교원들의 명예퇴직 희망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 자료에 따르면 명예퇴직교원수가 퇴직교원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평생직장이라 여겼던 교직을 정년 이전에 떠나는 숫자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은 사회적으로도 선호하는 직업이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장이다. 이들이 교단을 떠나고자 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교권 추락과 더불어 힘들어진 교육현장, 학생·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를 들고 있다. 교권침해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닌 것 같다. 교권침해 또한 시대적 흐름과 사회적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현상의 하나로도 보인다. 우리의 교육현장이 왜 힘들어 지고 있을까? 흔히들 오늘날을 4차 산업혁명시대 혹은 인공지능의 시대라고 한다. 컴퓨터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의 활용이 확대되고 일상생활에서 첨단장비나 시스템, 인터넷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가정의 형태도 대가족에서 핵가족, 아니 1인 세대 가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과학과 의술의 발달로 급격하게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들은 교육분야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과수업 외 돌봄과 급식, 방과후교육 등 복지 및 보육 관련 일들이 상당부분 학교 교육의 한 영역이 되었으며, 그에 따라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들이 학교라는 울타리 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학교나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역할, 기대치 또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최근 교육활동 침해 사안을 보면 교과교육 관련 교육활동에 대한 불만보다 오히려 보육과 돌봄, 급식 등 복지영역과 관련된 분야에 대한 불만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초임교사가 충분한 예비지식과 대처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상처받고 무너지고 있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게 한다. 경력교사 역시 달라진 학생·학부모와의 관계,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충분한 대처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힘들어하고 있다. 급격한 사회변화에 가려졌던 사회정의와 전통·윤리의식에 대한 교육의 소홀은 개인주의 팽배와 더불어 학생의 일탈된 행동, 학부모의 지나친 교육활동 관여, 이해와 배려 없이 권리만을 주장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인간관계의 출발점인 가정의 구성과 생활 모습 변화는 마땅히 가정에서 이뤄져야 할 기본적인 인성교육조차 학교 교육에 미루고 의존하는 기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교권’이란 용어 사용은 적절한가? 대구시교육청에서는 ‘교권’이란 용어 대신 ‘교육권’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교육권’은 교사의 존엄성과 학생 교육에 관한 권리, 학생의 인권과 학습 받을 권리, 학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책무성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교육여건과 환경 변화는 교사의 권위를 의미하는 ‘교권’만을 요구하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권에 대한 용어 사용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교육권’이 왜 중요한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도 않는다’는 말은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믿음은 교사를 위한 권위이기 이전에 교육이 이뤄지기 위한 토대요 근간’임을 뜻한다. 교육권은 선생님과 학생·학부모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믿음의 표시이어야 한다. 학교에서 교사의 권위가 무너진다는 말은 교육을 지탱하는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물론 과오를 저지른 교사는 학생·학부모의 비난을 받고, 필요하면 처벌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공유해야 할 교육권만은 지켜져야 한다. 교육권 침해 원인과 그 대책은? 개정된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2019.10.17. 시행) 제15조에서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상해와 폭행·협박·모욕·명예훼손·손괴,「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제2조 제1항에 의한 성범죄,「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제44조의7 제1항에 따른 불법정보유통 행위, 그 밖에 교육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행위로서 교육활동을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제한하는 행위 등을 들고 있다. 교권침해 유형별 업무처리 매뉴얼과 대응책은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보급한 자료에 잘 안내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법률적·행정적 관점에서의 교육활동 침해행위 유형과 대책보다 학교현장에서 교사가 힘들어하는 내용을 교육공동체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 학생과 교사가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까? 학생이 교사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학생은 자기 행동에 대한 교사의 이해 부족과 제재·차별 대우·자기에게 주어지는 불이익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교사는 교육적 차원에서 지도하고 질책하는 행위를 간섭과 통제로 받아들이고, 반항하며, 거부하는 행동들을 힘들어 한다. 교육활동 주체인 교사와 학생의 만남은 눈높이를 맞추는 공감대 형성과 소통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교사 주도의 적극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조건을 갖추고 교육에 임하는 것은 아니다. 교사가 먼저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한 후 스승으로서 진실된 애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인내하고 노력한다면 대부분의 갈등상황은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 학부모는 왜 민원을 제기할까? 교육권을 침해하는 일부 학부모는 대부분 자기 자녀의 문제점은 접어두고 학교(교사)의 대응이나 결정을 문제 삼고 있다. 문제 상황에 대한 객관적 판단 없이 권익만 주장하고, 직접 연관성도 없는 교사의 과거 사소한 문제까지 끌어와 괴롭히는 경우, 개인적인 갈등문제를 학교와 교사를 대상으로 해소하려 하는 경우, 사안을 빌미로 교사나 학교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 학부모 간 야기된 문제에 학교와 교사를 끌어들이는 경우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교육권 침해 관련 갈등상황은 이성적인 면보다 감성적인 면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사안이 발생했을 때는 문제상황의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학부모는 무엇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해당사자나 학교 관계자가 직접 학부모를 만나 대화할 필요가 있고, 주장이 타당하고 합리적이라면 적극 수용해 주어야 한다. 요구나 방법이 사회통념상 부당하다면 그 부당함과 수용할 수 없음을 명확하게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도록 하고 왜곡된 주장만을 끝까지 고집했을 때 어떤 결과가 얻어지는가를 인지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학부모가 신뢰하고 납득할 수 있는 사람 즉, 학부모와 친분이 있는 사람, 직접적인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퇴직교원이나 변호사·경찰·관련 분야 전문가를 통해 불합리한 점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교권보호위원회나 학생폭력대책심의위원회 개최 등 법과 행정 절차에 명시된 사안 처리과정을 엄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교원에 대한 협박성 전화나 방문·폭언·폭력적 행위 등의 교권침해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행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증거자료의 확보가 사안 처리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참고로 학부모들이 교원을 대상으로 민원을 제기할 때 가장 많이 거론하고 있는 법령이 「아동학대처벌법」과「성폭력 관련 법령」이다. ● 교사는 과연 반성할 부분이 없을까? 일부 교육권 침해 사안을 보면 교사의 평소 안이하고 습관적인 행동과 태도가 교육권 침해를 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학생을 대하는 태도, 평소 혹은 수업 중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잘못된 언행, 학생들에게 군림하려는 권위적인 모습, 사랑과 소명의식이 배제된 직업의식, 교육적인 문제를 학부모에게 일방적으로 책임 전가하려는 사례 등을 들 수 있다. 또 관리자나 동료 간 협조나 배려 없이 자신의 권익만을 챙기려는 사례, 동료 간 소통하지 못하고 업무적으로 갈등을 야기하는 경우도 교육권 침해와 직무관련 스트레스의 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육권 보호와 침해 예방을 위한 골든타임은 언제일까? 표 1은 2019학년도 대구의 교권침해 상담 현황이다. 특이한 점은 학기 초인 3월에는 전화상담이 집중되나 학기 중인 5~6월과 10~11월에는 대면상담이 많다는 것이다. 방학 중에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다가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대면상담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학기 초가 교육권 보호를 위한 노력의 중요한 시점을 암시해 준다. 만약 교사·학생·학부모가 첫 대면을 하는 학년 초에 어떤 문제성이 감지되었다면 덮어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학기 초에 감지되었던 문제점들이 결국 심각한 사안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간헐적 폭발장애(분노조절장애)·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학생 등 특별한 경우에는 학년 초 적극적인 상담을 통해 문제점과 지도방안을 학부모와 공유하고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교육적·행정적 지원대책을 강구한다면 추후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을 충분히 예방하고 해소해 갈 수 있다. 학생지도에서 예견되는 사안의 사전 예방과 극복은 교사로서의 보람과 긍지를 느끼게 하지만, 사안 발생 이후에는 깊은 상처와 사후 조치만 남길 뿐이다. 교육권 보호를 위해 추진되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교육권은 학생을 중심에 두고 학교(교사)와 학부모가 각각의 역할을 인지하고 공감대가 형성될 때 지켜질 수 있다. 학교현장의 어려움과 교육권 보호의 중요성이 심각하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지만 교육권 보호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교나 교육청의 주도적인 노력과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째, 교사는 확고한 교직관과 자존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교사로서의 소명의식과 내성(?)을 키워야 한다. ●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감화시키고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교육력을 키워야 한다. ● 갈등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교사로서의 자존감과 능동적인 상황대처역량을 가져야 한다. 둘째, 국가와 교육청은 교육현장의 위기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능동적인 교육행정을 펴나가야 한다. ● 교육권과 정당한 교육활동 보호에 대한 책무성과 더불어 범사회적인 인식 개선 시책이 필요하다. ● 상처받은 교원을 즉시 치유하고 정상 복귀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화된 지원대책이 필요하다. 셋째, 가장 가까이서 직접 피해교원을 보호하고 지원해 줄 수 있는 관리자의 마인드가 중요하다. ● 전문성을 갖춘 학교 단위 교육권 보호 전담자 지정이 필요하다 ● 교사가 믿고 도움을 받으며 의지할 수 있는 관리자와 동료가 필요하다. 넷째, 교육현장과 연계된 교사 양성제도의 개선과 체계적이고 자생적인 교육권 보호 역량 강화 노력이 중요하다.
3월 새 학기, 교사들에겐 가장 부담스러운 시기다. 입학식을 필두로 이어지는 각종 행사와 쏟아지는 행정업무, 아이들과의 관계 맺기부터 크고 작은 다툼에 학부모들과의 상담까지 어느 것 하나 녹녹한 게 없다. 한 손엔 교과서를 한 손엔 휴대폰을 움켜쥐고 발걸음을 재촉했던 일상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경험이다. 그래서일까? 교사들은 개학이 다가올수록 밤잠을 설치는 등 불안한 심리상태를 겪는다. 경력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어 보인다. 심지어 개학 첫날부터 모든 일이 엉망으로 꼬여버리는 악몽에 시달린다는 교사들도 있다. 이번 호는 새 학기, 교사들이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적 과제를 살펴보고 그 원인과 대책을 모색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풍부한 현장성과 전문성을 갖춘 전현직 교사들의 축적된 경험치에서 비롯된 노하우를 통해 교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를 실증적으로 들여다보고 정확한 진단과 정책적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대강의 주제는 학생들과 관계맺기, 학교폭력 대응, 교육과정 구성과 평가, 학부모 상담하기, 그리고 교권침해 대응으로 잡았다. 3월, 교사와 학생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1년 학급 분위기가 좌우된다. 올해부터 학교폭력업무가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됨에 따라 교사들의 업무도 달라진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 뜻하지 않은 실수를 낳을 수도 있다. 학부모와의 첫 대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경력이 적은 교사들에게는 가장 힘든 관문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자칫 갈등이 불거지고 교권침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 것인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교육당국에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해 본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폭법’) 도입과 강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일진의 집단 구타나 지속적인 신체학대, 조직적인 금품갈취는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민원소송의 폭발적인 증가와 피해 회복의 저해, 더 교묘하고 새로운 양상으로의 변질 등 갖가지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다. ‘별일 없겠지’ 하고 방심하면 한 번씩 터져서 큰 어려움을 주는 것이 학교폭력 사안이다. 경쟁적 사회 분위기가 지속되고, 한편에서는 가정이 붕괴하였으며, 곳곳에 스트레스가 만연해 있는 현실이니 학교폭력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사안이 발생하더라도 정도가 약하도록 예방해야 하고, 발생했다면 초기 대처부터 잘해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개정 법률을 이해하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논하고자 한다. 학폭위 지원청 이관 및 자체 종결제 시행 2020년 3월부터 단위학교 자치위원회를 지원청의 심의위원회로 이관하여 조치를 결정한다. 이전에는 수업과 교육전문가인 교사들에게 고도의 법적·행정적 절차를 맡기니 양쪽 다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이로 인해 단위학교 자치위원회의 절차상 하자나 결정에 대한 민원과 소송이 극심하여, 보다 전문적인 관리가 가능한 지원청으로 조치 결정권을 넘긴 것이다. 단위학교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심각한 사안에 대한 법적 절차를 진행하기 수월해 졌으며 학폭 사안 처리의 전문성과 일관성 등에 장점이 있다. 하지만 초기 대처와 조사를 해야 하는 학교의 부담은 여전하다. 그야말로 지원청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한 지원청 관내의 자치위원회 심의 건수가 연간 수백 건이었던 곳이 부지기수라서 큰 혼란이 예상된다. 경미한 폭력, 단위학교 자체해결로 지원청의 부담 줄여야 힘의 우위에 따라 강자가 약자를 집단적이고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심각한 폭력이 학폭법 강화의 주된 대상이었다. 그런데 학교폭력 사안의 상당수는 대등한 관계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하거나, 쌍방 가해적인 요소가 적지 않다. 따라서 갈등 예방 및 해결방법을 교육하고, 경미한 사안은 회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골절 등 심각한 상해나 보복이 아니면서, 우발적 사안에 신속한 보상이 이루어졌다면 자체해결을 권한다. 기존에는 자체해결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었고, 자체해결 이후에도 자치위원회 개최를 요구하면 반드시 개최해야 했다. 이제는 피해보상 약속이 어겨지거나, 새로운 폭력 사실이 밝혀지는 등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체종결 이후에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적용되어 학폭위 개최를 요구할 수 없게 되었다. 제1~3호 조치사항을 이행한 가해학생 생활기록부 입력 유보 1호(서면 사과), 2호(접촉·협박·보복 금지), 3호(교내봉사)의 경미한 조치를 이행한 가해학생에 대해서는 1회에 한하여 생활기록부 입력을 유보한다. 다만 동일 학교급에서(초등은 3년 이내) 다시 다른 학교폭력으로 가해학생 조치를 받은 경우, 이전에 입력이 유보된 조치사항을 포함하여 모두 입력한다(출처 : 2020년 교육부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 생기부 기재는 자사고·특목고·학생부종합전형 등 일부 입시전형이나 졸업 직후 취업 시 생기부를 요구하는 특수한 경우 이외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입학 후에는 이전 학교의 생기부조차 상급 학교에서는 볼 수가 없고, 2년 후에는 모두 삭제한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마치 전과기록이 생기는 것처럼 두려워 해 반성과 화해보다는 수많은 민원을 야기해 왔다. 이번 개정으로 인해 1~3호 처분 수준의 비교적 경미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런 부작용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교육활동 침해 예방 교육과 학교폭력예방 교육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교사를 보호하는 체계가 확립되어야 교사가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다. 학교폭력과 교권침해는 관련된 법령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교육하여 예방할 것을 권한다. 폭행·상해·협박·명예훼손·모욕·손괴·성폭력·불법정보유통 등 교사에 대한 교육활동 침해행위가 학생을 향하면 학교폭력이 된다. 또한 성인이 되어서도 부당한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법교육을 사전에 실시해야 한다. 개정 교원지위법에 따른 교육활동 침해 예방 교육자료(교육부 2020)에서는 기존의 학교폭력예방 교육자료보다 훨씬 상세하게 폭력 관련 법령을 안내하고 있다. 물론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폭력을 예방하는 것은 도덕성 발달에 따른 최선의 방안이 아니다. 따라서 어울림 프로그램(http://doran.edunet.net) 등을 활용하여 ‘공감·의사소통·갈등해결·감정조절·자기존중감·폭력인식 및 대처’ 역량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개의 학교에서는 충분히 교육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한 많은 폭력사안은 그것이 폭력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개념 부족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최소한의 필수 개념이라도 정확히 안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사자 뒤에서 험담을 하거나(명예훼손·모욕), 전송받거나 들은 정보를 공유만 했다든지(불법정보유통), 때리려는 시늉만 한 것(폭행)도 불법행위로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개의 학생들은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쉬워,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촉법 연령인하, 중 1부터 형사처벌 추진 2019년 9월, 중학교 1학년 여학생들이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을 노래방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구타하는 동영상이 유포되었다.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하루 만에 20만 명이 서명하고 교육부 장관이 직접 답변(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2785) 하면서 각종 법개정에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12월에는 가족에 대한 험담을 했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동급생 여학생을 흉기로 살해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만14세 미만의 형사사건 미성년자는 강력범죄를 저질러도 교내 징계는 출석정지 10일이며 학교폭력이나 교권침해의 경우에만 강제전학이 최대의 조치였다. 소년법에 따라 재판을 받으면 전과기록이 남지 않으며 비밀이 보장된다. 대개는 보호관찰대상이 되거나 보호시설에 위탁되는 정도였다. 영악한 아이들은 이를 알고 악용하여 오히려 강력범죄를 방조한다는 우려가 많았다. 교사들은 그 이상의 조치를 할 수 없어 교육을 포기하게 되고, 교육활동 침해뿐만 아니라 학교폭력 또한 묵인되는 사태가 심각해지곤 했다. 따라서 심각한 범죄에 대해서는 중1부터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이 추진 중이다. 소년원 송치는 마치 대안학교처럼 기숙형 위탁교육기관 형태로 운영되는데, 최대 2년이며, 중학생이 송치되는 일은 흔치 않다. 대안학교 위탁과 마찬가지로, 기존 소속 학교에 학적이 남아 졸업할 수 있다. 하지만 소년원에 송치되면 오히려 범죄를 학습하여 나온다는 우려가 컸다. 그래서 경찰에서는 최대한 학교에서 감당하기를 원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소년범 감호 인프라 대폭 확충하고 지원해야 그런 학생들을 학교에서 최대한 지도할 방법을 연구해야 하지만, 범죄 수준의 심각한 행위를 학교에서 계속 보호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교사의 부담은 둘째 치더라도, 다른 학생들의 피해가 너무 컸다. 교사의 지도가 매우 어려운 학생이라면, 보다 전문적인 기관을 통해 교육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인프라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소년원에서 질병 관리가 어려워 암이 악화되거나 실명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6호 소년보호시설 지도사가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강제추행하여 충격을 주었다. 우리나라는 보호관찰관 1인당 114명을 담당하는데, 이는 해외 주요 국가의 4배에 달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장관은 국민청원 답변에서 적극적으로 인력을 충원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소년원의 수용률도 130% 정도로 높고 교육환경이 열악하다. 그러니 ‘교화와 보호’라는 원래의 목적에 충실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통학형·기숙형 보호 교육기관이 더욱 확충돼야 할 상황이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 등은 성인 강력범죄자 예방을 위해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여러 매체를 통해 강조해 왔다. 하지만 혐오시설이라는 선입견과 인력·인프라 부족으로 인하여 갈 길이 멀다. 교사의 작은 관심이 큰 사고 예방한다 특히 3월은 새로 맺게 된 관계 속에서 서로를 파악하며 긴장하는 시기이다. 그 과정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소리 없는 전쟁을 치루기도 한다. 크게 싸우지 않으면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센 척’을 하거나, 자신이 따돌림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약해 보이는 학생을 먼저 은근히 따돌리는 분위기를 조장하기도 한다. 이런 갈등의 씨앗이 나중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까지 번지기도 한다. 뻔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 같아도 다양한 예방 교육자료를 교실에 게시해 놓고, 종종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이를 통해 사안 발생 시 교사의 주의 감독 의무에 대한 책임으로부터도 상당 부분을 구제받을 수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말 한마디 더 건네며 상담기록을 남기자. 그러면서 교사가 학교폭력에 많이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종종 드러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학급회장 선거만 하더라도 단순히 인기투표로 할 것이 아니라, 후보자들의 공약에 학교폭력예방과 갈등 중재 방안이 포함되도록 한다면 학교폭력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인정욕구가 강한 학생들이 그릇된 방법을 사용하기 전에, 바람직한 역할을 부여하고 격려해 주면서 학급의 기여자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테면 힘 좋은 아이를 학급 경호부장으로 임명한다든지, 특정 아이를 지켜주는 역할을 맡긴다든지 하는 방법이다. 물론 교사의 도움을 악용하지는 않는지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작은 관심으로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학교폭력 대응 체계의 발전을 기원하며 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심각한 사안은 학교폭력심의위원회·경찰서·법원에서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사안은 교육적 접근으로 학생들끼리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교사의 예방활동과 초기 감지 및 대처가 중요하다. 행정적 성과 및 성적 상위권 학생들의 진학 실적과 폭력으로부터 학생을 보호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우선인가. 우리나라는 전 분야에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는 한편에 많은 부작용이 있어 왔다. 이번 법 개정으로 생길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향하고 있기를 기원한다.
3월 새 학기, 교사들에겐 가장 부담스러운 시기다. 입학식을 필두로 이어지는 각종 행사와 쏟아지는 행정업무, 아이들과의 관계 맺기부터 크고 작은 다툼에 학부모들과의 상담까지 어느 것 하나 녹녹한 게 없다. 한 손엔 교과서를 한 손엔 휴대폰을 움켜쥐고 발걸음을 재촉했던 일상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경험이다. 그래서일까? 교사들은 개학이 다가올수록 밤잠을 설치는 등 불안한 심리상태를 겪는다. 경력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어 보인다. 심지어 개학 첫날부터 모든 일이 엉망으로 꼬여버리는 악몽에 시달린다는 교사들도 있다. 이번 호는 새 학기, 교사들이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적 과제를 살펴보고 그 원인과 대책을 모색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풍부한 현장성과 전문성을 갖춘 전현직 교사들의 축적된 경험치에서 비롯된 노하우를 통해 교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를 실증적으로 들여다보고 정확한 진단과 정책적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대강의 주제는 학생들과 관계맺기, 학교폭력 대응, 교육과정 구성과 평가, 학부모 상담하기, 그리고 교권침해 대응으로 잡았다. 3월, 교사와 학생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1년 학급 분위기가 좌우된다. 올해부터 학교폭력업무가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됨에 따라 교사들의 업무도 달라진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 뜻하지 않은 실수를 낳을 수도 있다. 학부모와의 첫 대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경력이 적은 교사들에게는 가장 힘든 관문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자칫 갈등이 불거지고 교권침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 것인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교육당국에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해 본다. 봄방학이라고 부르던 2월이 교사에게 가장 바쁘고 중요한 달로 바뀌었다. 3월 정상적인 교육과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당연히 2월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새 학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지내느냐가 1년 교육을 좌우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이런 흐름에 따라 대부분 시·도교육청에서는 2월 중 1주를 ‘새 학년 준비기’로 편성하라고 권장하고 있다. 새 학년 준비기인 2월, 교사는 새로 담당하게 된 학년과 업무를 배정받고, 학생 맞이 준비를 위해 교실 환경구성, 학급 세우기 활동, 새 학년도 교육과정을 계획하고 있다. 새 학년을 준비하는데 1주일의 시간은 길지 않다 보니 늘 부족함을 느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가 2월에 꼭 해야 할 일은 1년 동안 교육과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동학년 선생님과의 논의이다. 과거 학년 부장 업무로서 교육과정을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동학년과 공동체를 기반으로 교육과정 논의가 이루어져야 효과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새 학년을 준비하면서 학년 선생님과 함께 교육과정 협의할 때 고민했으면 하는 사항을 몇 가지 나누고자 한다. 교육과정 재구성의 목적을 잊지 말자 10년 전부터 학교에서 교육과정 재구성이라는 용어가 강조되고 있다. 교육과정 재구성 초기에는 주제 중심이 대세였다. 학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과 비전을 바탕으로 주제를 선정하고 이 주제에 어울리는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매칭하고, 수업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니 30차시 이상이 기본이었다. 초창기, 역량 있는 교사들의 교육과정 재구성 모범사례가 주변에 알려지면서 교육과정 운영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이런 이유로 교육과정 재구성이 유행처럼 학교에 퍼지게 되었다. 선도학교에서 교육과정 운영 우수사례가 학교현장에 일반화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실제 운영했던 선생님의 역량과 학교 환경은 함께 가져오지 못하고 프로그램 내용만 가져와서 운영하는 바람에 본래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고 교육과정이 무늬만 재구성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연구부장이 “학년별로 한 학기에 1개 주제를 선정하여 30차시 분량의 교육과정 재구성 계획을 마련, 학기 초에 1개 이상 꼭 운영해야 한다”는 지침을 만든 경우도 있었다. 학년 및 교사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하라’는 식으로 다른 학교의 프로그램을 복사해 적용하다 보니 실제로 운영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교가 많았다. 교육과정 재구성 형식화의 끝판왕이다. 연수에서 만난 선생님들이 왜 교육과정 재구성을 해야 하는지, 우리가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회의감 섞인 질문을 많이 받은 것이 그 반증이다. 교육과정 재구성은 왜 하는가의 본질적인 고민 없이 교육의 유행처럼 운영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단순히 몇 차시 이상, 교과 간 통합 등의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함께 가르쳤을 때 학생들의 배움에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교육과정 재구성의 본질은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학생들이 잘 배울 수 있도록 학생들의 환경과 교사의 전문역량에 맞게 수업을 설계하는 것’이다. 즉, 교과서대로 가르치는 것보다 우리 학생들이 처한 환경(지역적·학력 수준)과 교사의 교육과정 운영 역량을 고려하여 수업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 학생들의 배움에 더 도움이 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현장에서 교육과정 재구성을 장시간의 프로젝트로만 국한하지 않고, 차시 통합·차시 축소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는 분위기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과정 재구성의 형식에서 벗어나 본질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교육과정 운영은 평가계획서에서 시작된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평가계획서를 작성한다. 최근 훈령 및 나이스 개정으로 학년 단위에서 학급 단위로 평가계획서를 운영하는 학교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교육과정 운영에서 평가계획서는 어떤 의미일까? 평가계획서가 확정되는 절차를 살펴보면 엄청나게 중요한 문서임이 확실하다. 학교에서 평가계획서의 확정 절차는 동학년(교과)에서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분석하여 평가계획서를 작성한 후, 학교 학업성적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학교장 결재를 받아 정보공시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또한 교육청에 따라서는 평가계획서를 모든 학생에게 배부하는 곳도 있다. 그런데 평가계획서가 행정적인 절차에 따른 형식적 문서로만 존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평가계획서는 교육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교사에게 평가계획서는 한 학기 동안 전체 교육과정 운영의 설계도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평가하는 방법·시기·내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배우는 목표·순서를 명료화하는 교육활동 설계도인 것이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한 학기 동안의 학습 안내서 역할을 한다. 학기 초에 가정으로 배송되는 ‘배워야 할 학습의 목표·방법·순서 안내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이런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평가계획서가 많다. 평가계획서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다음 사항을 살펴야 한다. 첫째, 가르치고 있는 내용을 반영하고 있는가? 교사가 학생에게 가르치고 있는 내용이 누락되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과거에 교과 영역별로 한 개씩만 한다는 관행과 수행평가에 적합한 성취기준만 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둘째, 가르치는 순서대로 제시되고 있는가? 평가계획서는 단순히 평가의 안내만이 아니라 학습 안내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교과서 영역의 순서가 아니라 실제 학습하는 순서대로 안내되어야 한다. 셋째, 학년군 단위로 평가계획을 수립하고 있는가? 2009 개정 교육과정부터 교육과정 성취기준이 학년군으로 제시되고 있다. 국정 교과는 교육과정 성취기준이 명료하게 제시되어 누락되는 경우가 없다. 하지만 검인정 교과인 경우에는 학년군이 서로 협의하여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협의하지 않으면 중복 및 누락되는 경우가 생긴다. 중복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으나 누락되는 것은 문제가 된다. 따라서 학년군 단위의 학생평가계획서를 수립해야 한다. 넷째, 평가계획 외에 평가기준안과 평가지는 학기 중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만들어야 한다. 과거에는 평가계획서를 제출할 때 평가기준안과 평가지를 함께 제출해 결재를 받아 운영했다. 아직 교육과정 운영을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데 평가문항을 만드는 일은 어렵고, 만든 문항도 실제 교육과정을 운영했을 때 활용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육과정과 친해지자 필자가 교육과정을 제대로 마주한 것은 교대 4학년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였다. 제6차 교육과정을 다룬 3권의 해설서를 외워야 했다. 교직에 들어와서 교육과정을 다시 살펴본 것은 서·논술형 평가문항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평가문항을 개발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분석하여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을 추출한 후 내용별로 문항을 개발하는 것이다. 평가문항의 고민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어떤 내용을 배워야 할까?’로 이동하였고, 수업형태도 바뀌게 되었다. 되새겨 보니 요즘 말하고 있는 교육과정-수업-평가 일체화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평가에서 시작되었지만 수업의 변화와 교육과정 재구성으로 확장된 것이다. 교육과정이 개정될 때마다 교사의 교육과정 기획력을 강조하고 있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창의적으로 운영하여 국가 수준 교육과정의 목표에 도달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교사는 교육과정 문해력을 갖춰야 하고, 이를 위해 교육과정과 친숙해져야 한다. 그렇다면 교사는 교육과정을 어떻게 바라볼까? 교실에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교사들의 운영 방식은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교과서 중심형이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이다. 둘째, 교육과정 기반형이다.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교과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수자료를 찾고, 개발하여 수업을 운영하는 교사이다. 셋째, 교육과정 확장형이다. 교육과정을 교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내용을 수정 및 확장하는 교사이다. 넷째, 교육과정 무용론이다. 교육과정 자체가 학생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어 교육내용으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하여 교육과정 내용을 새롭게 만들어 운영하는 교사이다. 교사의 교육과정 운영 형태가 교과서 중심형에서 탈피하여 교육과정 기반형과 확장형의 관점으로 발전하고 있다. 교사의 역할이 교육과정 운영 주체로 변화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다만 일부에서 제기하는 교육과정 무용론은 경계해야 한다. 필자가 속한 연구회에서는 평가를 중심으로 연구하다 보니 교사가 성취기준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교사 옆에 교육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나 현실은 교과서만 있고, 교육과정은 많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교수평 카드’를 개발하여 교사의 교육과정 문해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학생 평가 신뢰성 확보 방안을 고민해보자. 학교에서 교사는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을 평가하고 피드백을 통해 성장시키고 있다. 과정중심평가가 강조되면서 교사는 학생 성장에 도움이 되는 평가를 위해 고민이 커지고 있다. 반면 학생과 학부모들은 평가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다고 한다. 교사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신뢰성을 확보할 방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학생 평가 신뢰성 확보를 위한 몇 가지 실천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평가전에 명료한 수행과제와 평가기준을 안내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평가를 위해 평가기준안(성취기준·수행과제·채점기준·평가기준)을 사전에 제시하여 학생들이 평가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채점기준은 학생들에게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며, 교사에게는 학생들의 평가결과를 기록하는 동시에 피드백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정교화된 채점기준은 교사에게는 수업연구를 활성화시켜 주고, 학생에게는 학습과 평가의 안내서 역할을 한다. 둘째, 객관성보다는 타당성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학생 평가결과에 대한 민원 때문에 평가의 타당도보다 객관성·공정성을 우선하는 평가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농구 평가는 드리블·패스·자세·참여도를 평가해야 하는데 타당성보다는 객관성에 비중을 두다 보니 자유투 몇 개 중에 몇 개, 레이업 슛 몇 개 중에 몇 개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평가의 교육적 기능을 확보할 수 없다. 앞으로는 객관성보다는 타당성에 무게를 둔 정확한 채점기준을 학생에게 설명하고, 평가과정에서 발견된 필요한 요소들을 통해 적절히 피드백함으로써 학생 평가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더 유의미한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모둠활동 시 ‘무임승차 효과’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협력이 핵심역량으로 떠오르면서 모둠평가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모둠평가는 학생 상호 간의 협력을 통해 상생 가치를 내면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사의 의도와 다르게 모둠 구성원에 따라서는 활동에 참여하지 않거나 다른 모둠원에게 미루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잘하는 친구 한 명이 수행과제를 완성하고 평가받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평가가 가진 본연의 목적인 성취 정도를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평가과정에서 불공정함을 가르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행과제에 모둠과제와 개인과제를 융합하여 제시하면 ‘무임승차 효과’를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사보고서 형태의 평가를 할 때 조사보고서 제작까지는 모둠원이 함께하고, 발표문 쓰기를 통해 개인 평가를 하게 되면 실제 모둠활동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발표문을 쓰기 어렵게 되므로 모든 학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넷째, 일회성 평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번의 평가로 학생 성취정도를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당일 학생의 컨디션이 평가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실기평가인 경우는 더하다. 따라서 일회성 평가에서 벗어나 평가횟수를 늘려 줘야 한다. 최근 들어 현장에 포트폴리오 평가가 확산되는 것도 학생의 성취정도를 보다 면밀하게 살피고, 피드백하기 위해서이다. 1차 평가에서 부족한 부분을 피드백해야만 2차와 3차에서 보다 나은 성취를 얻을 수 있다. 평가가 학습동기를 부여할 수 있고, 또 평가가 운에 따라 결정된다는 부정적 인식도 줄일 수 있다. 이는 재학습과 재평가의 선순환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사는 교육과정 운영 전문가이다. 학기 초 작성하는 형식화된 교육과정 재구성에서 벗어나 만들어가는 교육과정 운영으로 내실화해야 한다. 관행적으로 만들어져 온 평가계획서를 교사·학생·학부모에게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문서로 변화시켜야 한다. 교사가 창의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서는 교육과정 문해력을 갖춰야 하며, 교육과정과 친해져야 한다. 평가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신뢰받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3월 새 학기, 교사들에겐 가장 부담스러운 시기다. 입학식을 필두로 이어지는 각종 행사와 쏟아지는 행정업무, 아이들과의 관계 맺기부터 크고 작은 다툼에 학부모들과의 상담까지 어느 것 하나 녹녹한 게 없다. 한 손엔 교과서를 한 손엔 휴대폰을 움켜쥐고 발걸음을 재촉했던 일상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경험이다. 그래서일까? 교사들은 개학이 다가올수록 밤잠을 설치는 등 불안한 심리상태를 겪는다. 경력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어 보인다. 심지어 개학 첫날부터 모든 일이 엉망으로 꼬여버리는 악몽에 시달린다는 교사들도 있다. 이번 호는 새 학기, 교사들이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적 과제를 살펴보고 그 원인과 대책을 모색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풍부한 현장성과 전문성을 갖춘 전현직 교사들의 축적된 경험치에서 비롯된 노하우를 통해 교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를 실증적으로 들여다보고 정확한 진단과 정책적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대강의 주제는 학생들과 관계맺기, 학교폭력 대응, 교육과정 구성과 평가, 학부모 상담하기, 그리고 교권침해 대응으로 잡았다. 3월, 교사와 학생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1년 학급 분위기가 좌우된다. 올해부터 학교폭력업무가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됨에 따라 교사들의 업무도 달라진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 뜻하지 않은 실수를 낳을 수도 있다. 학부모와의 첫 대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경력이 적은 교사들에게는 가장 힘든 관문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자칫 갈등이 불거지고 교권침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 것인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교육당국에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해 본다. 들어가는 말 교사가 학부모를 대하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비유로 표현하자면 ‘소 닭 보듯’, ‘쥐가 고양이 보듯’, ‘고양이 쥐 보듯’ 유형이다. 소 닭 보듯 유형은 “저분들은 오늘 왜 저렇게 많이 오셨나? 할 일이 별로 없으신가 보네”하는 분들이고, 쥐가 고양이보듯 유형은 ‘두려워서 떠는 분’, 고양이 쥐 보듯 유형은 ‘신병들 모아놓은 조교같은 분’이다. 다 누군가의 ‘갑’이거나 ‘을’이거나 ‘타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학부모와 교사는 자전거의 두 바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전거길 산책을 좋아하는 필자는 여러 가지 자전거 구경을 한다. 유모차 달린 자전거나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타는 자전거도 있고, 바퀴가 자동차 바퀴만큼 뚱뚱한 자전거도 있다. 심지어 누워서 타는 자전거까지 보았다. 하지만 외발자전거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타기가 어려워 묘기에 가깝다보니 가끔 TV에 나올 때 보거나, 예전에는 서커스단에서나 구경했다. 교사와 학부모는 두 발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따르릉 따르릉 우리를 버팀목으로 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교사가 슬기롭게 대해야 하는 파트너 중에 학생, 동료와 함께 학부모가 있다. 교사가 이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서로의 소통이 원만하지 못한다면 아주 힘든 상황에 부닥치기 쉽다. 개학 첫날 준비 학부모 관계의 첫 단추는 3월 첫날, 아이들을 통해 보내는 담임소개서와 명함이다. 둘째는 학부모총회이고, 셋째는 학급신문 등을 통한 학부모와의 소통이다. 학부모와의 갈등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노성비(노력 대비 성과)’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가 없을 때 잘해야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해결이 손쉬운 법이다. ● 교사가 영업 사원도 아닌데 왜 명함을? 필자가 명함을 필수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렇다. 3월 첫날, 아이들에게 명함을 주며 부모님께 전해 드리라고 했더니, 학부모총회가 끝나고 한 분이 “담임선생님께 명함을 받으니 학부모로서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참 좋았습니다”라고 했다. 정식 명함도 아니고 종이에 칼라로 출력해 잘라서 만든 명함이 학부모에게 이런 소중한 역할을 했다니 많이 놀라웠다. 용기를 얻어 이참에 학교 근처 인쇄소에 가서 명함을 정식으로 만들었다.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개학 첫날, 아이들에게 두 장씩 나누어주고 “한 장은 본인 지갑에 넣고 한 장은 집안 어른께 가져다 드리라”고 했다. ● 담임소개 가정통신문 가정통신문을 연중 정기적으로 보내지는 못하더라도 첫날 담임소개 가정통신문은 꼭 준비하는 것이 좋다. 글을 잘 안 써봐서 걱정이라면 ‘가정통신문 뚝딱 만들기’ 팁을 참고하길 바란다(https://cafe.naver.com/ket21/9327). 가정통신문에는 학급운영 교육관, 교육활동 계획, 소식지 발행 목적, 교사의 메일과 휴대폰, 학부모총회 안내, 전화 가정방문 안내, 수시 상담을 권장하는 내용 등이 담기면 좋다. 색지에 출력해 학교 봉투가 아닌 한지 봉투를 구입해 아이 편에 보냈다. 저녁에 바로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 신뢰 구축의 첫걸음 학부모총회 보호자와 신뢰를 구축하는 첫걸음은 다름 아닌 3월 학부모총회이다. 1차 학부모총회 때는 개별 면담을 지양하고, 학부모와의 래포 형성을 목표로 한다. 커피포트와 따뜻한 차도 준비해둔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책상을 가운데로 마주보게 하고 책상 앞에는 미리 받은 참석통지서로 학생 이름과 보호자 성함을 함께 붙여둔다. 학부모에게 학급운영 방식 간단히 설명한 다음 돌아가면서 각자 소개와 자녀가 올해 이렇게 변화했으면 좋겠다는 점과, 자녀의 장점, 학교에 대한 건의사항을 말해 달라고 한다. 그리고 발표된 내용을 수첩에 기록 하면서 적극적으로 경청하면 2차·3차 학부모총회 때 변화되는 모습을 나눌 수 있어 효과적이다. ● SNS를 활용한 학기 중의 일상적 소통 시험을 앞두고 학부모께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답신이 왔다. 감히 말하건대 ‘학부모와 소통하지 않는 것은 재앙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요즘은 군대 중대장의 제1업무는 ‘군부모와 소통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20세 넘어 군대에 간 자녀에게까지 간섭하니 이런 용어가 생긴 것 같다. 미성년자를 돌보는 담임교사와 성인을 돌보는 중대장 중 누가 더 부모와의 소통에 힘을 기울여야 할까?
3월 새 학기, 교사들에겐 가장 부담스러운 시기다. 입학식을 필두로 이어지는 각종 행사와 쏟아지는 행정업무, 아이들과의 관계 맺기부터 크고 작은 다툼에 학부모들과의 상담까지 어느 것 하나 녹녹한 게 없다. 한 손엔 교과서를 한 손엔 휴대폰을 움켜쥐고 발걸음을 재촉했던 일상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경험이다. 그래서일까? 교사들은 개학이 다가올수록 밤잠을 설치는 등 불안한 심리상태를 겪는다. 경력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어 보인다. 심지어 개학 첫날부터 모든 일이 엉망으로 꼬여버리는 악몽에 시달린다는 교사들도 있다. 이번 호는 새 학기, 교사들이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적 과제를 살펴보고 그 원인과 대책을 모색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풍부한 현장성과 전문성을 갖춘 전현직 교사들의 축적된 경험치에서 비롯된 노하우를 통해 교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를 실증적으로 들여다보고 정확한 진단과 정책적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대강의 주제는 학생들과 관계맺기, 학교폭력 대응, 교육과정 구성과 평가, 학부모 상담하기, 그리고 교권침해 대응으로 잡았다. 3월, 교사와 학생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1년 학급 분위기가 좌우된다. 올해부터 학교폭력업무가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됨에 따라 교사들의 업무도 달라진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 뜻하지 않은 실수를 낳을 수도 있다. 학부모와의 첫 대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경력이 적은 교사들에게는 가장 힘든 관문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자칫 갈등이 불거지고 교권침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 것인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교육당국에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해 본다. 한 해의 시작! 선생님들에게 한 해의 시작은 1월이 아니라 3월이 아닐까 싶다. 선생님은 아이들과의 만남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2월은 새로 만날 아이들로 생각이 많지만, 이 두근거림이 봄보다 좋다’라는 최서연 선생의 글처럼, 왠지 모를 긴장과 설렘이 함께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미국 오하이오 마이애미 대학의 더글러스 브룩스 교수는 교사들의 첫날을 비디오로 녹화해 모니터링하는 연구과정을 통해 노련한 교사와 서툰 교사의 차이를 발견했다. 초임 교사들은 첫날부터 해당 과목의 중요한 문제를 흥미 위주 활동으로서 시작했고, 일 년 내내 진도를 쫓아가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이에 비해 노련한 교사들은 앞으로 친구들과 어떻게 보내야 하며, 아이들과 어떤 약속들이 선행되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어떤 공부를 하게 되는지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뛰어난 나무꾼은 무작정 도끼로 나무를 자르지 않는다. 도끼날을 갈아 더 많은 나무를 자를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이치와 같다. 새내기 교사는 종종 ‘빨리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려고 한다. 친구 대하듯 장난치는 아이들의 장난을 받아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대화가 반복되면 교사와 학생 간의 거리감(어려움) 상실이 오며, 여러 가지 면에서 학급경영의 차질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안타깝게도 ‘지시가 통하지 않는 교실’과 ‘시끄러운 교실’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3월을 마치게 되면, 3월의 혼란스러운 모습 그대로 1년이 흘러가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까지 학급경영이 지속되어 버린다. 더욱 계획적으로 3월을 보내야 하는 첫 만남 프로젝트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째, 바람직한 관계 맺기를 위한 기초 다지기 3월, 아이들과 행복한 한 해를 원한다면 먼저 학급의 기반이 될 4가지 원칙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 선입견을 품고 아이를 대하지 않는다. 교사가 아이를 처음으로 대면하기 전, 학생에 대해 이미 가지고 있는 사전 정보를 ‘선입견’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문제 아동을 대할 때는 이전 학년 선생님과의 연락을 통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게 된다. 더불어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겐 교과 성적의 ‘후광 효과’로 그 아이의 은밀한 따돌림을 오랜 시간 동안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은 쉬지 않고 변화해가는 존재이다. 무엇보다 선입견 없이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는 새 학기, 새로운 마음으로 다르게 살아보려는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인다. ● 3월 첫 만남이 부담스러운 아이들 마음을 배려한다. 관계가 친밀해지면 내성적인 아이들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마음을 연다. 학기 초, 아직 마음을 열기에는 짧은 시간인데, 첫날부터 자기소개를 억지로 시킨다거나 키 순서대로 세워서 자리 배치를 한다면 아이들은 시작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갈 것이다. 3월 첫 만남 프로젝트 동안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억지로 부담을 주는 활동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 3월 첫 만남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학생들은 새 학년에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싶어 한다. 준비가 잘된 수업에서 학생들은 누구도 고함지르고 다투지 않으며, 진정한 배움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러려면 매일 매일 학생들의 생활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아울러 안정되어야 한다. ● 일체감을 느끼기 위해 ‘청유형’ 언어를 쓰도록 한다. “종쳤다. 자리에 앉아라”, “책 꺼내라고 했지!”, “이제 준비물을 꺼내라”, “제발 자기 자리 아래 좀 정리하면 안 되겠니?”, “벌써 몇 번째 말하는 거야!”…. 교사는 이런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한다. 기대하는 행동을 하도록 아이들에게 분명히 전달하지만 다른 어떤 것을 함께 전달하게 된다. 언어가 연상을 유발한다면 우리는 무의식중에 무엇을 함께 전달하고 있을까? 우리는 ‘명령하는 말’들이 ‘나 대 너’의 관계를 지속시킨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 말에 숨어있는 메시지는 ‘너희는 내 통제하에 있으므로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에 대한 부정적 연상이 있는 학생들은 반항적이거나 비협조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아이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위해서 평어체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가능하다면 교실에서는 청유형 언어를 쓰는 것이 좋다. 둘째, 3단계 ‘성장형 교사’로 성장하는 4가지 제안 해리 왕(Harry K. Wong)이 초등교사인 아내 로즈메리 왕(Rosemary T. Wong)과 함께 쓴 책 The first days of school(좋은 교사되기)에는 교사가 ‘환상(Fantasy) → 생존(Survival) → 성장(Mastery) → 영향(Impact)’의 단계를 거쳐 성장한다고 했다. 초임 교사의 대부분은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 성공하는 교사라는 순진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들은 기준·평가 또는 학생의 성취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다. 오직 즐거운 활동으로 학생들을 즐겁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나 학부모에게 상처를 받고 2단계 생존형 교사(혹은 생계형 교사)로 접어든다. 그들은 학생들이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학습지를 풀고, 비디오를 보는 등 바쁘게 지내도록 애쓴다. 이제 학생들이 배우고 성취하는 것은 목적이 아니다. 그저 직업이기 때문에 가르치고 생존의 목적은 월급일뿐이다. 하지만 3단계 ‘성장형 교사’들은 학급경영 방법을 잘 알고 있다. 2020년 새 학기, 3단계 ‘성장형 교사’로 나아가고 싶은 분들에게 다음 세 가지 제안을 드린다. ● 학생들의 성취에 관심이 있으며, 맡은 학생들에게 높은 기대를 한다. 교실의 학생들이 내 자녀라면, ‘아이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이것저것 다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우리 반 학생들이 ‘올해 이것만은 꼭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것이다. ● 학생들의 성장이 곧 교사의 성장 목표가 된다. 성장하기 위해 관련 도서를 찾아 읽고, 전문적인 공부 모임에 참석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학생들의 배움은 그들의 임무이며, 학생들의 성취는 그들의 성장 목표가 된다. ●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교사는 3월에 진도를 나가기보다 학생들이 갈등상황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학생들 간에 또래 중재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 ‘처벌’보다는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아이가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다 5교시 수업에 늦게 들어왔다. ‘처벌’에 집중한다면, 청소를 시키거나 반성문을 쓰게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다면, 되물어볼 것이다. “어떻게 하면 5교시 수업에 늦지 않을 수 있겠니?” “먼저 마음을 얻어라, 그다음에 가르쳐라.” 훌륭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의 저자 토드 휘태커가 했던 말이다. 2020년 3월 2일, 아이들과의 첫 만남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진도만 나가느라 바빴던 ‘새 학기 학급경영’에 새로운 변화가 바로 ‘진도보다 관계 세우기’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다만 조심할 것은 ‘첫 만남 프로젝트’가 자칫 괜찮아 보이는 활동을 나열하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1년 동안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은지, 새로 만날 아이들과 어떤 교실을 만들어가고 싶은지 더 깊이 생각하고, 그 가치와 철학을 꿰어나가는 활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좋은 활동을 다 해야 한다’, ‘학기 초에 꼭 해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지 않는다. 학기 초, 어떻게 놀이로 아이들을 만나는지 관심 있는 선생님이라면 관련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2020년 새 학기에는 학생들의 소중한 권리가 꿈틀거릴 수 있는 교실, 모두가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평화로운 교실, 학생과 교사 모두가 존엄함을 지닌 한 명의 인격체로 대우받는 교실의 모습에 다가가길 기대해 본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말해도 좋지만,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 실천하지 않으면서 말만 하는 것, 지혜로운 이는 그 잘못을 안다.’(잡아함경 제48) 가르치는 사람의 딜레마 가르치는 사람이 직면한 딜레마 중 하나는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것만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그리 못하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로라도 가르쳐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말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의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더 많이 배운다. 따라서 실천하면서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바른 삶의 자세 중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없는 것이 늘어난다. 자신이 행하지 않는 것은 가르치지 말아야 할까? 말로만 가르치면 효과가 별로 없는 것일까? ‘롤모델링만 하고 말로써는 가르치지 않는 것’과 ‘자기는 그리하지 않으면서 말로 가르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일까? ‘마시멜로 실험’의 저자 미셸과 그의 제자 리버트(Mischel and Libert, 1966)가 수행한 간단한 실험을 통해 가르치는 사람이 취해야 할 길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 실험 이외에도 유사한 실험들이 있다(Mischel, 2015: 267-269). 미셸과 리버트는 10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보상에 대한 기준을 세울 때 무엇을 받아들이는지 영향력을 살펴보기 위해 볼링 롤모델이 ▲자신과 아이에게 똑같이 엄격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아이에게는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는 경우, ▲자신에게는 너그럽고 아이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취하는 경우의 세 가지 시나리오로 나눠 실험했다. 그 결과 볼링 롤모델이 방을 떠난 후, 아이가 혼자서 볼링을 하도록 했을 때 첫 번째 시나리오를 거친 아이들이 자기보상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취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를 거친 아이들은 모델이 자신에게 엄격했던 것을 보았지만, 테스트에서 자신에게 여전히 관대함을 보였다. 세 번째 시나리오를 거친 아이들의 절반은 교육받은 까다로운 기준을 지키고, 절반은 모델에게서 보았던 자유로운 기준을 적용했다. 이 연구 결과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예상한 대로 ‘엄한 기준을 롤모델 자신과 아이에게 동시에 적용해야 아이가 따라 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행동과 다른 말로써만 가르치는 것의 효과에 관한 것이다. 아이들은 본대로가 아니라 어른이 말을 통해 가르친 대로 따를 가능성이 더 크다. 롤모델이 자신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도 아이에게는 너그러운 기준을 적용하도록 했더니 아이는 혼자 있을 때 자신에게 너그러운 기준을 적용했다. 롤모델이 자신에게는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아이에게는 엄한 기준을 적용한 때도 절반 가까이 되는 아이들은 들은 대로 엄한 기준을 적용했다. 이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 말로 가르치는 것이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용지식과 역량, 바른 삶의 자세 등은 비록 가르치는 사람이 실천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입으로라도 가르치면 아이들이 그리할 가능성이 크다.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은 가르침의 중요한 방법이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가르치려고 하면 가르칠 수 있는 것이 크게 줄어든다. 또한 몸소 실천하는 것 자체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실험에서처럼 비록 몸소 실천은 하지만 아이들에게 다른 기준을 적용하도록 허용하면 아이들은 그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자신이 행하지 않으면서 말로 가르치려고 할 때는 심적 갈등이 따른다. 부처님도 그러한 사람은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니 더욱 혀가 굳는다. 이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지상의 여행을 하는 동안 끝없이 겪어야 하는 갈등’이다(박남기, 2017: 90). 스스로 사표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실천과 가르침 사이의 괴리가 줄고 갈등도 줄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EBS 교육대토론 ‘교사의 길’(2018년 8월 10일) 토론회에서 교직단체 대표들은 더이상 자신들에게 ‘스승이라는 굴레(?)’를 씌우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나의 직업인으로 보아달라는 이 말은 스스로 행하기 어렵지만 옳은 길을 가르치더라도 손가락질하지 말고 직분에 따른 것임을 이해해 달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원칙론자가 되기 위한 조건 교대 교수들에 따르면 강의 중에 자는 학생, 떠드는 학생, 교재와 심지어 필기구류도 없이 몸만 오는 학생, 세 번 결석은 자기 권리라며 대놓고 결석하는 학생, 중간에 살짝 사라지는 학생 등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입학 때의 각오와 달리 보고서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한 자세로 임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교대 성적이 아니라 임용시험 성적이 임용시험 합격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임용시험 제도를 개선하면 좋겠지만, 그 전에 교수들이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교대와 사대에서는 무시험검정으로 국가자격증인 교사자격증을 수여하므로 적성이나 자질이 교사로서 적합해 보이지 않는 학생은 면담이나 기타 방법을 통해 학생의 마음자세와 상황을 파악한 후, 다른 길로 안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 강의에서는 그러한 학생이 생기면 경고를 하고,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특별 면담을 한 후 F학점을 주거나 아니면 진로를 바꾸도록 유도한다. 물론 강의 첫 시간에 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강의 진행 중에도 필요할 경우 다시 한 번 그에 대해 주의를 환기한다. 교사가 되기 위해 교대에 진학한 성인이기 때문에 모두 최선을 다해 강의에 임한다. 대부분 교수가 법에 따른 그 역할을 하지 않은 채 학생들이 제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불평만 한다. 왜 적용하지 못하는지를 물었더니 결국은 가르치는 사람의 자세였다. 법이 부여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자신이 먼저 원칙에 어긋남이 없이 강의를 진행해야 한다. 강의를 철저히 준비하여 질 높은 경험을 제공해야 하고, 강의에 늦지 않아야 하며, 세 시간짜리 강의를 두 시간 남짓하고 일찍 마치는 일도 없어야 한다. 강의를 녹음(때로는 녹화)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따라서 수업 중 언어 사용에도 유의하여 학생들에게 흠을 잡히지 않아야 한다. 만일 자신은 그리하지 않으면서 문제 학생들을 원칙대로 처리하면 학생들도 곧바로 교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보복을 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려워하여 강하게 하지 못하는 교수도 일부 있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결국 학생 문제가 아니라 가르치는 우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등학교 수업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수업 중에 자는 행동, 교사에게 대드는 행동, 팀 프로젝트는 게을리하고 자기 개인 수행평가만 열심히 하는 행동, 친구들과 자주 충돌하는 행동 등 문제행동을 기록하지 않고 좋은 학생인 것처럼 기록하는 것은 일종의 공문서위조이다. 교사는 국가를 대신하여 학생들의 학생부 교과와 비교과 기록을 정확하게 해야 함을 알리고, 이를 제대로 수행한다면 많은 학생의 성실성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만일 일부 교수들처럼 자신의 성실성 때문에 학생들의 문제행동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이는 학생 탓이 아니라 교사 탓이다. 교사는 원칙론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다 보니 게을러질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어린 제자들은 더욱더 그러할 가능성이 크다. 원칙론을 적용하더라도 가르치는 교사나 배우는 학생 모두 인간으로서 그러한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며 따스한 원칙론자가 된다면 학생들이 배울 것을 제대로 배우도록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나오며 가르치는 길목에 선 사람은 가능하다면 행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치자. 하지만 행하지 않는 것이라도 옳은 것은 가르치는 것이 더 낫다. 행하지 못하면서 가르칠 때 심적 갈등이 생기거든 배우가 연기하듯이 우리도 교사라는 직업을 연기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자. 현실 속의 교사는 노력은 하되 어쩌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사회도 그들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지혜로운 사람’이기를 기대하며 비판하는 대신, 그들은 행하지 못하더라도 가르쳐야 하는 숙명을 가진 직업인임을 받아들여 주자. 실천하지 못하면서도 자녀에게는 바른길을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이 말이 더 와닿을 것이다.
'레트로(Retro)'에 주목하는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 지친 현대인들이 아날로그 감성을 찾고 있다. 다시, 인문학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작은 동네 서점들에서 인문학 도서가 인기를 끈다. 아마도 인간만이 지닌 ‘온기’를 다시금 느끼고 싶은 까닭일 듯하다. 교육현장에서 오랫동안 인문학 발전에 힘을 쏟아온 우한용 서울대 명예교수가 교육현장의 감각을 살려 인문학을 소설로 조명한다. 첫 회는 ‘우주적 존재인 인간’의 의미를 추구했고, 제2회는 ‘접촉하는 인간’을, 그리고 이번 호에서는 ‘희망하는 인간’을 화두로 소설을 엮어간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내 존재를 인문학적으로 성찰하는 소설을 만나보자. 편집자 신천강 선생 팀원들한테 베레모를 선물 받은 이인문 교감선생은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아르헨티나 출신 젊은 의사가 쿠바 혁명에 참여해서 혁명을 성공하게 한, 체 게바라가 썼던 베레모였다. 더구나 베레모 앞에 황금빛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한국에서 별은 좀 불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더구나 붉은 별은 중공군이나 인민군을 연상하게 했다. 이걸 쓰고 나가 교감 이미지를 ‘확 뒤집자!’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이따금 하는 생각이었다. 교사를 위한 인문학도 그런 발상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아무튼 아랫배에 힘을 주고, 베레모를 약간 옆으로 기울여 쓰고는 학교에 출근했다. 교무실에는 연구부장이 먼저 나와 있었다. “야아, 교감선생님 멋지십니다. 아직도, 혁명을 꿈꾼다는 뜻입니까?” “혁명이랄 것은 없지만, 한번 내 이미지를 바꾸어 보고 싶어서.” 연구부장은 대답을 하지 않고 책상 서랍을 뒤적이고 있었다. 교감 이미지가 어땠는데 어떻게 바꾼다는 것인가? 사실 자율연수 담당은 연구부장인데, 연수 다녀온 선생들 만나는 자리에 연구부장을 배려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지나간 일이었다. 그리고 모임을 더 가지자는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아도 상관이 없지 싶었다. 서운해 하지 않을까? “오늘 연구학교 연구발표가 있지요? 준비는…?” “신천강 선생이 잘할 겁니다.” 교감선생에게 베레모를 선물한 신천강 선생은 충청서부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공부하는 중이었다. 교감선생은 신천강 선생을 ‘즈믄 가람’ 선생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에게서 ‘월인천강지곡’의 이미지를 읽어내는 터였다. 사람이 원만하고 무던했으며 헌신적이었다. “이게 발표용 자료인데 읽어보시지요.” ‘문학의 장르와 국어교육’이라는 제목 아래 대여섯 페이지에 달하는 글이 실려 있었다. 교감선생이 발표 문안을 눈으로 훑어 읽고 있을 때 교장선생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교장선생은 별이 달린 베레모를 쓴 교감선생을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입술이 벌룽거리는 걸로 봐서는 무슨 이야긴가 하려는 것 같았는데, 억지로 참고 있는 눈치였다. “교감선생님, 교장실로 와서 차나 한잔합시다.” 연구부장이 잘 걸렸다는 표정이 되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한 방 먹게 생겼는데 어디 견뎌보라 하는 표정이었다. 사환에게 커피를 시키고 교장선생은 교감선생에게 자릴 권했다. 서서 간단히 이야기를 듣고 나가려던 속을 들킨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잘 아시는 것처럼, 나도 음악을 통해 세상을 한번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닙디다.” 교장선생은 머리를 쓸어올렸다. 부글거리는 베토벤 머리를 연상하게 하는 헤어스타일이었다. 베토벤도 나폴레옹을 흠모한 나머지 ‘에로이카’를 작곡했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러나 영웅 찬가는 금방 후회로 돌아가는 법이라서, 베토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 교직경험에 비추어본 생각인데, 교육은 총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교육혁명이 있다고 해도 피를 흘려선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르치는 젊은이들은 희생 대상이 아니잖습니까?” “제가 말입니다, 별 달린 베레모 하나 썼다고 나를 혁명분자로 보지는 마시길 바랍니다만…. 아니지요?” “하기야, 나치 ‘하켄크로이츠’의 기울어진 고리문양과 불교의 ‘만자’는 거기가 거기지요. 인간이 이용하는 기본 문양이니까 말입니다.” 교감선생은 메모지에다가 만자 卍와 하켄크로이츠 卐를 연달아 그려보고 있었다. 방향이 좌우만 다를 뿐 기본도형은 동일했다. 그런데 하나는 원만하고 조화로운 길상해운(吉祥海雲)을 상징하고, 다른 하나는 인류잔혹사(人類殘酷史)를 나타내는 악의 심벌로 의미가 고착된 것이었다. 상징이라는 게 현실의 지평을 벗어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허위의 그림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별에 대한 집단기억이 왜곡되어서, 우리는 별을 제대로 못 보는 건지도 모릅니다.” 교감선생이 말했고, 그 말을 들은 교장선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튼, 교감선생님한테는 그 모자 안 어울립니다.” 당장 벗어 치우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교장선생님께서 쓰실랍니까? 이 베레모 거저 드릴 테니 말이지요.” 교감선생이 베레모를 벗어 탁자 위에 놓고 교장선생 앞으로 슬그머니 밀어놓았다. “교육적으로 생각했을 때, 아이들에게 총을 들고 게릴라전에 나서라고 부추길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게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 일인데, 죽음을 강요하는 교육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하는 얘깁니다만….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혹은 구상하는 그런 교육이라야 하지 않겠나, 말하자면 나는 평화교육이 내 교육철학이랄까, 그렇습니다만….” “위장된 평화보다는 투쟁으로 쟁취한 자유가 더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한동안 둘은 긴장된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교장이 먼저 찐덕덕거리는 침묵을 제치고 말을 꺼냈다. “인문학자의 별을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윤동주의 ‘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쳐야 할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 베레모는 교감선생님 손주한테나 주시지요.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교감선생은 입을 다물고, 탁자 위의 베레모를 무연히 바라보았다. “오후 연구발표 잘 챙겨주세요. 그 운영비 따오느라고 교감선생님도 애쓰셨고…. 기왕 공부하는 선생님들 만들자는 건데….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교장선생이 베레모를 집어 교감선생 손에 쥐여 주었다. 이인문 교감선생은 교무실로 돌아와서 책상 앞에 앉았다. 연구부장이 교감선생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연구발표 요지를 읽다가 이게 생각나서…. 시에서는 상상력이 시간을 뛰어넘는다고 이야기하면서 시 제목만 예시했길래, 이 시집을….” 연구부장은 낡은 시집 한 권을 교감선생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정음사에서 발간한 서정주의 신라초라는 시집이었다. “한국성사략(韓國星史略), 한국별의 간결한 역사, 서정주의 시인데 한번 보세요.” “연구부장께서 날 공부시키시네. 아무튼 고맙소.” 별로 고마운 어조가 아니었다. 이인문 교감선생은 시를 대충 읽어보았다. 천오백 년 내지 일천 년 전에는/ 금강산에 오르는 젊은이들을 위해/ 별은, 그 발밑에 내려와서 길을 쓸고 있었다./ 그러나 송학(宋學) 이후, 그것은 다시 올라가서/ 추켜든 손보다 더 높은 데 자리하더니,/ 개화 일본인들이 와서 이 손과 별 사이를 허무로 도벽해 놓았다. 그것을 나는 단신으로 측근(側近)하여/ 내 체내의 광맥을 통해, 십이지장까지 이끌어 갔으나/ 거기 끊어진 곳이 있었던가,/ 오늘 새벽에도 별은 또 거기서 일탈한다. 일탈했다가는 또 내려와 관류하고, 관류하다간 또 거기 가서 일탈한다./ 장(腸)을 또 꿰매야겠다. 시 첫 줄이 어디선가 읽은 듯한 기시감에 휘말리게 했다. 40년도 더 지난 그 무렵, 루카치라는 헝가리 철학자가 쓴 책의 첫줄이 그것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대강 이런 뜻이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별과 길로 상징되는 이 문장의 친숙함은 이인문 교감 자신이 추구한 ‘희망의 가능성’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히는 것이었다. 연구발표가 시작되었다. 교장선생은 어쩐 일인지 발표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발표자 신천강 선생은 문학의 장르에 따라 취급하는 인간사가 다르다는 것과, 장르별로 시간이 어떻게 운용되는가를 설명했다. 서정주의 한국성사략을 두고는 시적 장르의 무시간성 혹은 초시간성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시로 예를 들었다. 사람은 시간과 더불어 성장하고, 사회는 시간과 더불어 그 형태를 갖춰간다면서, 동화에서 그런 성장의 문제를 시간 측면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고, 그런 구조의 동화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교육적이라는 주장도 내세웠다. 휴식이 끝나고 토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임이랑 선생의 노래가 있었다. 한솔희 선생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임이랑 선생이 ‘사월의 노래’를 불렀다. 이인문 교감선생은 노래를 들으면서 뭔가 수첩에 메모를 했다. 토론자의 토론이 끝나고, 사회를 맡았던 연구부장이 이인문 교감선생에게 강평을 부탁했다. “앞에서 우리에게 청아한 노래를 들려준, 임이랑 선생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노래 가운데, ‘아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그런 구절이 나오지요? 그 별이란 게 뭡니까? 희망입니다. 희망, 그게 혁명을 이끌어냅니다.” 이인문 교감선생은 가방에서 별이 달린 체 게바라의 베레모를 꺼내 썼다. 그리고는 물었다. “어떻습니까?” “야아, 멋있습니다.” 참여자들이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쳐댔다. “사실 사월은, 뭐랄까 상당히 무서운 달입니다. 신동엽 시인은 ‘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갈아엎는 달, 사월은 일어서는 달’이라고 노래했습니다. 갈아엎고 일어서는 일은 미래의 희망을 위해서입니다. 교육도 미래를 위한 기획입니다. 미래를 교육한다는 것은 희망을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소망하는 인간 ‘호모 스페란스 (homo sperans)’를!” “교감선생님, 잠깐, 사회자의 직권으로…. 말씀을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구부장이 천연되어 나가는 교감선생의 이야기 허리를 접고 들었다. 이인문 교감선생은 알았다면서, 연구부장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했다. “책에 쓴 걸 다시 이야기하기는 좀 거시기합니다만, 그러나 교육이 희망의 교육, 미래를 설계하는 교육이 되자면 교육철학의 근본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교육은 아직도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를 넘어서야 합니다.” 이인문 교감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청중 가운데 손을 들고 발언 기회를 달라는 늙은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구부장이 간단하게 말씀하시라며서, 자기소개를 한 다음에 발언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나는 현제명 교장의 동기생 되는 박정한입니다. 아까 한국성사략이라는 시를 인용했는데, 그게 희망과 그 실천과정에 나타나는 거리감과 격차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성 생활사를 서술하고 있는 시라는 겁니다.” 이인문 교감선생이 손사래를 치고 나섰다. “물론 희망의 별에 성적 이미지가 배제될 수는 없을 겁니다만, 선생님처럼 시 전체를 그렇게 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견도 있다는 정도로 접수하고 우리들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인문 교감선생의 어조는 강했다. 불청객 박정한은 입을 다물었다. “과거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미래보다 과거가 더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는 기억입니다. 거기 비하면 희망은 미래입니다. 미래를 위해 과거는 링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리비도라는 무의식의 지하실에서 벗어나 더 나은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의식의 최전선에 교육의 지표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들고 빛나는 꿈의 계절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들 여러분이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을 보듬어 안아야 할 테고. 그래야 희망의 교육이 틀을 잡습니다.” 연구부장이 청중들에게 박수를 유도하는 사이,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반전으로 점철되었던 영웅의 삶은 막을 내렸지만 남은 자들의 갈등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왕위를 놓고 벌인 전투에서 전사했다. 왕위는 라이오스 시절부터 왕가에서 헌신해온 이오카스테의 남동생 크레온의 차지가 되었다.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에게는 성대한 장례를 베풀었지만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시민들의 본보기 차원에서 방치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지내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는 명령도 내렸다. 그런데 폴리네이케스를 장례 지낸 흔적이 발견되었다. 크레온을 격분시킨 오이디푸스의 맏딸 안티고네 크레온은 격분했다. 태생적으로 그는 오이디푸스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과거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내어 국가적 위기에 빠진 테바이를 단번에 안정시켰다. 라이오스의 살해자임이 밝혀지기 전까지 그는 지혜로운 군주로 인정받았다. 반면 어부지리로 왕이 된 크레온은 자신의 정통성과 카리스마를 백성들에게 인정받아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첫 번째 영이 완전히 무시당했다는 사실은 그에 대한 도전이었다. 병사들을 시켜 색출해낸 범인은 오이디푸스 생전 그를 시중 들었던 안티고네였다. 안티고네는 이오카스테의 혈육이자 크레온 본인의 조카이기도 했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모두 죽은 뒤 테바이 왕가에 남은 오이디푸스의 맏딸이었다. 크레온은 이미 자신의 막내아들 하이몬과 안티고네를 결혼시키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정략결혼으로 크레온 왕가를 완성하려던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권위와 명예, 왕위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했던 안티고네를 국법 위반으로 처단해야 하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크레온은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결단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크레온은 지배자들의 전유물인 충성서약을 받고 싶었다. 대개의 경우 지배자들은 부조리한 주장을 들이밀며 선택을 강요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제안은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강자들은 “다 그렇고 그런 것”, “원래 그런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약자들을 협박한다. 다들 그렇고 원래 그렇다는 것들 중 실제 그런 것은 얼마나 될까. 어쩌면 하지 말아야 할 부조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사(修辭)일 것이다. 윤리적 도리 안테고네 VS 절대 권력에 눈먼 크레온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주장에 반대한다. 죽은 사람이라면 그가 이승에서 무슨 짓을 했건 매장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죽은 사람의 영(靈)이 안식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든 폴리네이케스는 죽었고, 그가 다시 모욕을 당해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크레온의 말은 하늘의 이치와 어긋나기 때문에 따를 수 없다.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법이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크레온이 아니라 신들조차도 따라야 하는 법도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폴리네이케스를 ‘매장하라, 하지 마라’ 하는 것은 크레온의 입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크레온의 권한을 넘어선 일이다. 군주의 권력은 사실 군주의 권리가 아니라 권한이다. 군주의 권한은 백성의 행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는 권력이고, 그 권력은 어디까지나 헌법과 법률에 지정된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크레온의 시대로 말한다면 하늘의 이치와 자연의 섭리, 제우스와 포세이돈과 하데스의 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크레온은 자신의 권한을 사유화하여 권리로 만들고 싶어 했다. 안티고네는 바로 그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협박하지만 실제로 이 논쟁을 주도하는 자는 안티고네이다. 안티고네는 친동생 이스메네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홀로 망자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 무모한 결정이었고, 대놓고 죽음을 각오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이익을 저울질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추구해야 할 윤리적 도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반면 안티고네를 이용해야 하는 크레온은 갈등한다. 안티고네와 하이몬의 결혼을 통해서만 권력이 완벽해지지만, 안티고네를 죽이지 않으면 왕의 위엄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그럽고 자애로운 어버이와 피도 눈물도 없는 절대 권력자 사이에서 선택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도리’ 그런 면에서 크레온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철저한 기회주의자이다. 과거 그는 오이디푸스의 결백을 알면서도 오이디푸스를 추방했고, 콜로노스 오이디푸스에서는 자신이 추방한 오이디푸스를 다시 데려와 이용하려고 시도하며, 그의 딸을 납치하기도 했다. 조카의 시신을 이용해 군주의 위엄을 드러내려 했고, 정략결혼으로 왕권을 강화하려고 한 그는 어찌 보면 오늘날의 전형적인 정치가이다. 겉으로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 모든 행동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폴리네이케스를 매장한 이는 ‘매수되어 그런 일을 했을 것’”이라며 돈 핑계를 댄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회주의자들의 세계관일 뿐이다. 자신이 비난하고 조롱했던 오이디푸스를 닮아가는 크레온과는 달리 안티고네는 당당하게 크레온의 억지 주장을 논파한다.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금지하는 크레온의 실제 명령은 자신의 말이 자연의 이치와 하늘의 섭리보다도 더 높다는 오만의 선언이다. 오이디푸스의 졸렬한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권력이라는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명예를 헌신짝처럼 내던진다. 하지만 딸들은 아버지를 위해 굳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가문의 명예와 위신을 생각한다. 두 딸은 오이디푸스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고 신들의 사랑을 회복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오이디푸스를 일으켜 세우고 갱생의 기회를 만든 주역이 바로 안티고네였다. 그는 이제 권력자의 부당한 명령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앞두게 되었다. 한때 눈먼 오이디푸스를 모시는 데 힘을 합쳤던 두 자매는 이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이별한다. 이스메네는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복종해야 하며, 크레온은 강자이고 우리는 약자이기 때문에 강자의 지배에 따라야 한다는 것, 그것을 자연의 질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안티고네가 생각하는 자연의 질서와는 다르다. 안티고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도리가 있으며 그것은 내가 여자라서, 약자라는 이유로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로도 쉽지 않지만, 그 말을 지키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 평생 저주 속에서 살게 된 크레온 불행한 소식은 예언자와 함께한다. 오이디푸스가 범인이었음을 예견했던 테이레시아스가 다시 나타났다. 테이레시아스는 경고한다. “인간은 실수하더라도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고칠 줄 알고 고집을 피우지 않는 자는 행복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오(Antigone, 1024-1028).” 안티고네의 처형을 고집했던 크레온에게 하이몬의 음성이 겹쳐진다. “한 가지 사고방식만을 고집하지 마십시오. 오로지 당신 자신의 말만 옳다고 생각하시니까요. 자신만이 지각 있고, 언변과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한번 속내가 드러나면 텅 비어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됩니다(Antigone, 705-709).” 이에 크레온은 “돈만 밝히는 자라며, 장님을 모욕하고 어린 아들한테 분별을 배워야 하냐”며 격분하지만, 예언자의 말이 이번에도 실현될까 두려워한다. 나약해진 크레온은 마음을 돌려 안티고네를 구하러 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안티고네는 이미 ‘신부의 침대도 없이 (…중략…) 죽은 자들의 무덤으로’ 내려갔다(Antigone, 917-920). 하이몬은 크레온이 보는 앞에서 옆구리를 찔려 죽은 약혼자 옆에 쓰러졌고, 그 소식을 들은 부인 에우리디케는 남편을 저주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모든 것을 가진 듯했던 크레온은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평생 저주와 후회 속에서 삶을 살게 되었다. 그에게 약간의 지혜와 분별력만 있었다면 행복을 추구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 높은 사람들의 화려한 언변 속에는 얄팍한 속내가 숨어있다. 크레온은 말로는 대의를 논하고 정의를 말하지만, 이면에 담긴 의도는 따로 있었다. 반면 안티고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언행은 담백하면서도 묵직하다.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가면서도 하늘의 이치를 따랐던 사람들의 삶은 설화나 민담에서 보여주듯 큰 무게로 드러난다.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이며, 그중 가장 큰 지혜는 경건한 마음을 갖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그 경건함은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고 오만을 피하는 데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오만일 것이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가장 큰 관계는 시간과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시간이 우리 편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한번 일어난 잘못된 결정은 되돌릴 수 없다. 우리의 결정이 늘 최선일 수 없고, 인간은 언제나 잘못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의 결정이 최선이기를 기도하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결정이 과오로 이어졌다면, 그때는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배운 사람으로서 그리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또 하나의 덕목이라면 자신의 삶에 충실해지는 것, 그리고 내가 저지를 수 있는 잘못에 대한 겸허한 자세일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은 나이가 들면 어떤 것이든지 자신의 지난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길 원한다. 자신의 삶이 ‘성공’했음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시기가 바로 한 인간의 퇴행이 급속도로 시작되는 시점일 것이다. 성공은 한 개인의 노력과 적절한 운의 결합이고, 온전히 내 노력만으로 무언가가 이루어지는 일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크레온은 자신이 지혜로운 군주임을 과시하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성공을 인정받고 싶었던 유약한 기회주의자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면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 또한 온전히 내게 달린 몫이다.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은 자리를 탐하려고만 할 뿐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소포클레스는 비극을 통해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가 견지해야 할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제안한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비극이라는 공공매체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공공매체를 통해 웃음과 풍자를 전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소포클레스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묘사하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모습을 고민하게 한다.
대학원 입학 후 첫 수업 날, 지도 교수님께서 자신을 지리적으로 소개해보라고 하셨다. 그때 날 소개했던 말은 “한국·영국·미국, 3개의 국가를 이름에 품고 있는 곽영미 입니다”였다. 다행히 교수님께서 단번에 이름이 외워졌다고 말씀해주셨고, 촌스럽다고 싫어했던 내 이름이 지리교사인 내게 퍽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지는 내 이름처럼 3개의 국가를 품고 있는 곳이다. 내 짧은 경험이 그 국가를 모두 대변해주지는 못하겠지만, 학생들의 집중도와 흥미를 높이고 교과서 밖의 지식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업 중에 내 여행 경험을 많이 이야기해준다. 그런데 북한은 여행 경험도 없을뿐더러 잘 알지도 못하고, 이산가족의 아픔을 직접 겪고 있지 않아서 종종 그 단원의 수업이 빈껍데기 같이 느껴진다. 그 북한을 곁눈질로나마 볼 수 있다니! 날래날래 가야지~! #1. 중국 고속철을 경험하다. 비행기로만 이동해도 되지만 중국의 고속철을 타보고 싶어서 굳이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장춘 롱지아 공항에 내려 기차역으로 이동하려고 하니, 우리나라처럼 공항에서 역까지 바로 연결되는 길이 없었다. 무려 10분 정도를 걸어 장춘 롱지아 역에 다다르니 홍등과 새빨간 글자들이 중국임을 실감케 해주었다. 이곳에서 바로 고속철이 출발하는 것은 아니고, 길림역으로 가서 고속철로 환승해야 하는데 공항도 아닌 기차역에서 짐 수색이 공항만큼이나 깐깐했다. 일반열차를 타고 길림에서 내려, 앞서 탄 열차의 5배의 가격을 주고 훈춘행 고속철을 탔다. 훈춘은 연변 조선족자치주에 있는 중국의 최동단 도시로, 만주어로 변경이란 뜻이다. 1998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중국의 고속철도는 드넓은 대륙을 포용하기 위해 스위스·독일·프랑스·일본·캐나다에서 기술을 인수하고 제휴하여 2008년에는 시속 305㎞의 베이징~텐진 고속철도가, 2009년에는 세계 최장이라는 우한~광주 고속철도가 개통되었다. 창밖의 풍경만 조금 다를 뿐 한국의 KTX나 SRT와 다를 바 없어 큰 감흥은 없었지만,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줄 거리 하나는 마련했으니 그것으로 됐다. #2. 선을 못 넘는 녀석들 2012년, 태국 치앙콩에서 라오스로 넘어가려 하는데 폭이 좁은 강이 국경이어서 배를 타고 1분 남짓 가면 됐었다. 육안으로도 라오스가 보이는데 태국 출입국 관리소에서 도장을 안 받아와서 뱃삯을 또 내고 돌아가서 도장을 받아왔던 기억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가장 강하게 국경의 힘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 중요성을 간과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국경이라고 하면 철저하게 막혀있는, 폐쇄적 공간을 떠올렸나 보다. 짐이나 몸을 수색하는 엑스레이도 없고, 높은 담이나 철조망도 없고, 무장한 경찰도 없는 평화로운 강가는 내게 국경의 이미지를 다시 인식하게 해주었다. 국가에 따라서는 국경이 그저 ‘선(line)’일 뿐인 평화로운 곳도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유럽 여행할 때처럼 국경의 존재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넘어가는 곳도 많다. 하지만 내가 서 있는 이 국경은 뭔가 숨 막히고 가슴 한편이 아련하게 아파지는 장소였다. 훈춘에서 버스를 타고 두만강 하류에 위치한 권하세관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북한으로 들어가기 위해 출국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차들이 있었다. 이곳은 북한 나진-선봉에서 약 50㎞ 떨어져 있는 국경 출입로로 육로와 해로의 이동을 모두 관장한다고 한다. 트럭에 실려 이동하는 컨테이너가 중국과 북한 사이에 무역이 활발함을 보여주었지만, 나는 저 너머에 있다는 북한을 그냥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런 상황은 방천을 지나 도문변경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폭도 넓지 않고 수심도 그리 깊어 보이지 않는 두만강 너머,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과 군데군데 김부자 사진과 찬양 문구가 있는 건물들이 보였다. 이 두만강 강변공원을 걷다 보면 다리 색이 반반 나뉜 도문대교를 볼 수 있는데, 주황색 부분까지가 중국이고 파란색 부분이 북한이다. ‘선을 넘는 녀석들’을 보면 프랑스와 독일 국경이 있는 다리에서 한발씩 걸쳐놓고 사진을 찍던데 이곳은 그런 행동이 불가능하다. 인터넷에 보면 중국령까지 다리를 건너보기도 하던데 이날은 문이 닫혀있었다. 우리를 향한 북한의 마음이 닫혀있듯이…. #3. 한눈에 삼국을 바라보다(一眼望三國) 훈춘역에 내리자마자 붉은색 한자가 눈에 들어왔다. 중국어도 모르는 내가 이 글자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한글·영어·러시아어로도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변 조선족자치주에서는 모든 간판에 한글을 위(왼쪽)에, 한자를 아래(오른쪽)에 쓰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러시아어까지 3개 국어로 써진 간판들이 정말 많다. 아무리 국경이라지만 왜? 이유는 바로 저렴한 물가였다. 러시아인들이 훈춘시에서 싸게 생필품을 구입해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러시아풍 건물로 가득 찬 러시아 거리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한글과 한자가 같이 쓰여 있어 외국인 듯 한국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글씨뿐 아니라 삼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방천이다. 방천은 사구 사이에 둑을 만들어 길을 냈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며 중국·북한·러시아의 국경이 만나는 곳이다. 기념품 가게에 들어서자 중국·북한·러시아의 국기와 물건이 모두 있어 지금 어느 나라에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기념품 가게를 나와 노란 미니버스를 타고 용호각으로 이동했다. 용호각의 원래의 이름은 망해각이라고 한다. 1886년, 청과 러시아 국경문제 협상 당시 청의 대사였던 오대징이 과음하는 바람에 협상에 패하여 중국 영토를 표시하는 토자패가 동해까지 닿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5㎞ 앞두고 동해를 차지 못한 만취의 슬픔을 가진 용호각에 오르면 벽에 써진 글자처럼 일안망삼국(一眼望三國)할 수 있게 되는데, 삼국 국기가 있는 곳에서 보이는 중앙의 흰 건물까지가 중국 영토, 왼쪽의 호수와 평원은 러시아 영토, 오른쪽의 두만강을 통해 러시아의 핫산과 연결되는 철교 너머는 북한 영토이다. 삼국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이름의 특성과 비슷해서일까,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4. 장백산? 백두산! 백두산은 동서남북 방향으로 동파·서파·남파·북파 코스가 있다. 동파와 남파 코스는 북한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지는 두 개다. 백두산에 오르려면 연길에 숙소를 잡는 것이 보통인데, 숙소에 백두산 예약을 부탁하면 한자가 가득한 버스 타는 곳 확정 문자를 받을 수 있고, 조선족이 운영하는 민박에 머무르면 한국어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서파 코스는 많이 걸어야 하는데다가 무려 1,442개의 계단이 있다고 해서 연길에서 이도백하로 이동 후 천지 가까이 차로 이동할 수 있는 북파 코스를 택했다.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서 백두산 중국식 명칭인 장백산이 크게 적힌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뒤 줄 서서 기다리면 큰 버스를 타고 산 초입까지 이동할 수 있다. 나는 대략 20분 정도 기다려서 버스를 탔는데, 인구대국 중국인들의 단체관광과 운 나쁘게 겹치면 4~5시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단다. 대형 버스에서 내리면 다시 표를 구입해서 하얀 봉고차로 환승 후, 천지 입구까지 이동하는데 다들 알다시피 높은 산을 올라가는 도로는 구불구불! 그런데 허술한 도로 가드레일 옆 아찔한 낭떠러지가 보이고, 웬만한 롤러코스터 저리 가라 식의 노브레이크 커브 운전에 몸이 막 흔들리는데, 기사 아저씨가 10분 타이머를 맞춰놓고 운전하시는 게 아닌가! 덕분에 고도에 따라 변하는 백두산 식생의 모습은 제대로 눈에 담지 못하고 비명으로 가득 채웠던 봉고차와 이별했다. 봉고차에서 내려 마치 제주 올레길 같은 나무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탄성을 자아내는 천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천지를 보기엔 7~8월이 적기이지만 백두산 날씨는 워낙 변덕스러워서 산 밑에서의 날씨로 산 위의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데, 운이 좋았는지 맑고 눈부시게 푸르른 천지가 날 반겨주었다. 추울까 봐 챙겨간 등산 점퍼가 무색하게 날씨가 따뜻했고, 화산이 만들어낸 신비스러운 천지 부근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의 차가운 촉감이 꿈이 아님을 실감케 해주었다. 좁은 천지에 가득한 사람 때문에 급하게 사진을 촬영하고 북한 쪽 백두산도 열심히 눈에 담았다. 북한은 천지의 물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인지 천지로 향하는 계단이 눈에 띄었다. 제한속도 30㎞를 지키는 것이 맞는 것인가…. 봉고차를 타고 하산하면서 심한 멀미에 시달렸다. 유황의 매캐한 냄새와 삶은 달걀의 비릿한 냄새가 가득한 온천 지대를 지나 장백폭포에서 백두산 물의 기를 받는 것으로 백두산 관광을 마무리했다. #5. 남쪽 동무, 반갑습네다. 북한 식당 여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 이후 여파가 있을 만도 한데 연길에는 여전히 영업 중인 북한 식당이 꽤 있었다. 천지의 감흥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북한 식당을 방문했는데 정말 남남북녀인 것인지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어여쁜 북한 여종업원들이 인사를 해주니 신기함에 피곤이 사르르 녹았다. 음식도 생각보다 큰 이질감이 들지 않았고 맛있었다. 기름진 중국식 음식을 먹다가 북한 식당에 오니 긴 외국여행 끝에 한식당을 찾아온 느낌이었다. 종업원들이 ‘동무’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이 신기해서 음식보다도 그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사진도 찍었는데, 결국 “사진은 찍지 마시라요”라는 날카로운 책망을 들었다. 다른 외국인에게는 대화도 좀 후한 것 같은데 남한 사람인 나에게는 말도 아끼는 것 같았다. 최근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 철수 시한이 임박하여 중국에 문 닫는 북한 식당들이 많다고 하던데, 잘 있으려나 궁금하네. 북쪽 동무! #6. 중국의 학교 탐방 연길의 북한 식당을 찾아가는 길에 룡정중학교 건물이 눈에 띄었다. 직업병(?)이 발동하여 운동장 밖에서 학교를 살펴보았다.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학생들은 체육복을 입고 삼삼오오 모여 있다가 가방을 메고 교문을 빠져나오곤 했었다. 교무실로 보이는 ‘교수 청사’라는 건물이 하나 따로 있었고, 퇴근하신 선생님들도 계시는지 불 꺼진 곳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학교 외벽 게시판에 있는 ‘우수교사 풍채’였다. 중국은 무슨 기준으로 우수교사를 선정하는지, 그리고 그들도 초상권이 있을 텐데 이렇게 사진을 공개적으로 붙여놓아도 되는지 궁금했다. 다음날은 중국의 대학 캠퍼스를 거닐어보고 싶은 생각에 연변대학을 방문했다. 연변대 정문 맞은편에 대학가 상점들을 집대성한 듯한 ‘대학성’이란 건물이 재밌었고 한국 프랜차이즈 기업들도 많이 보였다. 자매결연을 한 것인지 서울대학교 정문이 새겨져 있는 연변대 정문을 지나 지리과가 있는 건물도 찾아보고 학생식당에 들러 음료수도 사 먹어 보며 캠퍼스 투어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에필로그 여태까지 다녀온 여행지 중 글을 쓸 장소를 정하고 집필을 반 정도 했을 때 우한 폐렴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시의적절한 것인지 하필 중국 여행기를 쓰고 있을 때 중국발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나서 마음 아프긴 하지만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가치가 충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번 여행에서 연변 조선족자치주 일대만 둘러봤는데, 역시 대국은 대국이다. 중국 지도를 펼쳐보니 이번 여행지가 어찌나 조그마한지!
양귀자의 단편 한계령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집안에서 동생들을 책임지느라 숨 가쁘게 살아온 큰오빠 이야기가 소설의 주요 뼈대 중 하나다. 소설에서 작가인 여주인공은 25년 만에 고향친구 박은자의 전화를 받는다. 은자는 주인공에게 고향을 떠올리는 출발점 같은 존재였다. 은자만 떠올리면 고향 기억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 것이다. 은자는 부천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노래 부르는 ‘미나 박’으로 나름 성공했다며 꼭 한번 찾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현실의 은자를 만나면 고향 추억으로 가는 표지판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 만나는 것을 망설인다. 이즈음 주인공은 ‘항상 꿋꿋하기가 대나무 같고 매사에 빈틈이 없는’ 50대 큰오빠의 말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동생들이 성장해 자리를 잡아 ‘장남의 멍에’를 벗자 허탈해하면서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큰오빠는 아버지가 찌든 가난, 빚, 일곱 자녀를 남겨놓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와 함께 안간힘을 쓰며 동생들을 거둔 터였다. 은자는 곧 클럽 가수 생활을 그만두고 카페를 차릴 것이라며 그만두기 전에 꼭 한번 오라고 거듭 전화하지만, 여주인공은 은자는 만나지 않고 노래만 듣고 올 수는 없을까 궁리한다. 작가는 이런 마음을 원미산 진달래꽃을 통해 절묘하게 담았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더라고, (중략) 남편은 원미산을 다녀와서 한껏 봄소식을 전하는 중이었다. 원미동 어디에서나 쳐다볼 수 있는 기다란 능선들 모두가 원미산이었다. 창으로 내다보아도 얼룩진 붉은 꽃무더기가 금방 눈에 띄었다. 진달래꽃을 보기 위해서는 꼭 산에까지 가야만 된다는 법은 없었다. 나는 딸애 몫으로 사준 망원경을 꺼내어 초점을 맞추었다. 진달래는 망원경의 렌즈 속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났고 새순들이 돋아난 산자락은 푸른 융단처럼 부드러웠다. 망원경으로 원미산을 보듯, 먼 곳에서 은자의 노래만 듣고 돌아온다면… 마침내 주인공은 미나 박 공연 마지막 날 나이트클럽에 간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은자로 보이는 여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이었다. 여주인공은 노래를 들으며 큰오빠의 지친 뒷모습이 떠올라 눈물을 흘린다. 한계령은 소설집 원미동 사람들에 나오는 단편 중 하나다. 원미동 사람들은 작가가 1986년 3월~1987년 8월 발표한 11편의 소설을 담고 있는데, 경기도 부천 원미동을 무대로 80년대 서민들의 애환과 삶을 잘 형상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책은 100쇄를 넘길 정도로 사랑을 받아 우리 시대의 고전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부천시 원미구는 2007년 원미산 입구에 양귀자 ‘글비’를 세우면서 위에 인용한, 진달래가 나오는 소설 대목을 세겨 넣었다. 부천종합운동장 뒤 원미산 진달래공원엔 10∼20년생 진달래 수만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야생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계령’ 하면 4~5월 강원도 깊은 산에서 만날 수 있는 노란 한계령풀도 떠오를 것이다. 진달래와 함께 떠올리는 아련한 고향의 추억 동요 ‘고향의 봄’에도 나오지만, 진달래는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고향의 꽃이다. 전국 어디서나 자라는 데다, 진달래에 얽힌 추억이 한둘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진달래는 볼 수 있는 기간이 열흘에서 보름 정도로 길지 않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에 가장 잘 들어맞는 꽃이기도 하다. 진달래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와 가까운 꽃이다. 진달래꽃이 만발한 음력 3월 3일 삼짇날,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쳐 먹는 풍습이 있었다. 진달래는 먹을 것이 없던 시절 꽃잎을 따서 허기를 채운 꽃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 철쭉은 독성 때문에 먹을 수 없어 ‘개꽃’이라 불렀다. 진달래꽃을 본 김에 꽃잎을 따먹어보니 약간 시큼한 맛이 났다. 진달래는 우리 숲이 점점 우거지면서 점차 밀려나고 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은 “이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고 말한다. 과거 우리 숲에 소나무와 진달래가 많았던 것은 숲이 우거지지 않아 척박한 산성 토양이어서 그런 것인데, 숲을 잘 보전하면서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들이 크게 자라 소나무와 진달래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달래가 줄어드는 것은 우리 강산이 그만큼 푸르고 비옥해졌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진달래는 다섯 장의 꽃잎이 벌어져 있지만, 아래는 붙어 있는 통꽃으로, 가지 끝에서 3~6개의 꽃송이가 모여 다른 방향을 향해 핀다. 나무껍질은 매끄러운 회백색이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양끝이 좁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곳은 강화 고려산·대구 비슬산·창녕 화왕산·여수 영취산 등이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피어나는 진달래·철쭉·산철쭉 진달래와 철쭉·산철쭉·영산홍은 모두 진달래과에 속하는 봄을 대표하는 꽃들이다. 진달래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기 때문에 진달래와 나머지 철쭉류를 구분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철쭉은 꽃과 잎이 함께 핀다. 진달래는 ‘진한’ 분홍색이지만 철쭉은 ‘연한’ 분홍색으로, 진달래와 달리 꽃잎 안쪽에 붉은 갈색 반점이 선명하다. 잎도 진달래는 길쭉하고, 철쭉은 둥근 잎이 5장씩 돌려나는데 주름이 있다. 피는 시기도 진달래는 3~4월이지만, 철쭉은 5~6월이다. 산철쭉은 꽃이 철쭉보다 색깔이 ‘진한’ 분홍색이고, 잎은 진달래와 비슷한 긴 타원형이다. 피는 시기는 진달래, 산철쭉, 철쭉 순이다. 여기에다 공원이나 화단에서 꽃이 작으면서 화려한 색깔을 뽐내는 원예종 영산홍이 있다. 영산홍은 일본에서 철쭉·산철쭉을 개량한 원예종을 총칭하는 이름이라 ‘왜철쭉’이라고도 부른다. 영산홍은 대체로 입이 작고 좁으며 겨울에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 반상록이 많다. 정리하면, 산에서 잎이 없이 꽃만 피었으면 진달래, 잎과 꽃이 함께 있으면 철쭉이나 산철쭉이다. 그리고 꽃이 연분홍색이고 잎이 둥글면 철쭉, 꽃이 진분홍색이고 잎이 긴 타원형이면 산철쭉으로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다 공원이나 화단에서 꽃이 작으면서 화려한 색깔을 뽐내고 있으면 영산홍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산철쭉과 똑같이 ‘진한’ 분홍색으로 피는 영산홍도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도 구분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애호가들은 그냥 산에 있으면 산철쭉, 화단에 있으면 영산홍 정도로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픔은 어떻게 명화가 되었을까 그림은 힘이 세다. 사람들을 감동에 몸을 떨게 할 수도 있고, 눈물울 흘리게 할 수도 있다. 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아픔을 치유해주기도 한다. 그림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작가 서문에서 치유미술관은 가상공간인 '소울마음연구소'의 내담자 일지를 묶은 형식으로 전개한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내담자는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유명화가들이다. 빈센트 반 고흐,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를 비롯해 15명으로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인물들이다. 그들 모두 마음이 아파 고통을 받았던 화가들이다. 그들을 인터뷰하고 상담치료를 병행하는 형식으로 엮었다. 읽기 쉽고 공감이 가는 대목이 많으면서도 화가들이 겪은 아픔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들이 그림 작품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림으로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며 울고 절규하는 소리가 들릴 듯한 장면들이, 때로는 내 아픔 같기도 하고 쓰다듬고 위로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게 하는 책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학 작품이나 그림, 영화를 비롯한 모든 장르의 예술 작품의 시작은 아픔과 상처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은 글이나 그림에 덜 매달린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픈 사람이 병원을 찾듯, 상처가 깊은 사람이 치유의 방법으로 그림이나 글쓰기, 음악으로 힐링하는 일은 당연하다. 오히려 꽁꽁 감추거나 피하려다 잘못 되는 경우가 많음을 생각하면 예술 작품을 오로지 미적 만족만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도 하다. 그 그림이, 그 노래가, 그 글이 나오기까지 작가가 직면한 내면까지 살펴볼 수 있다면 최상의 독자가 되고도 남으리라. 그림 속에 드러난 아픈 아이 마음 읽어주세요 요즘은 학교 현장에서도 상담기법으로 미술치료나 음악치료 기법이 많이 활용되어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현직에 있을 때 학생이 그린 그림으로 학부모 상담을 실시하여 좋은 효과를 보며 폭력적인 성향을 인지하고 사전 예방 교육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그 학생은손과 발이 없는 그림을 아무렇지 않게 그리곤 했다. 집에서 받은 상처를 친구들에게 투사하며 건드리거나 때리는 일이 비일비재 해서 가정폭력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학부모외 심층 상담을 거쳐 아버지의 폭력을 줄이는 계기가 되어 밝아진 모습으로 진급했다.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문제가 더 크다는 데 교육의 어려움이 산재한다. 때로는 입학식 첫날 그린 그림을 가지고 그 자리에서학부모 상담을 실시한 경우도 있었다. 부모는 모르는 아이의 상처 받은 내면 세계를 설명해주니 깜짝놀라던 그 학부모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날마다 고운 옷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잘 차려 입히고 잘 먹이던 이면에는 고통 받는 엄마의 모습을 아이에게 투사하여 대리만족하듯 공부로 내모는 모습을 교정하는데 여러 달이 걸렸었다. 자식이 남들보다 특별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은 탈이 나기 마련이다. 가족의 얼굴 표정이 없거나 손발이 없거나 매우 작게 그리거나 어두운 색으로 떡칠해버리는 모습을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된다. 치유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지속적인 상담과 미술 치료법을 병행하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 반대로 매우정형화된, 정돈된 그림을 그리는 아이도 아픈 내면을 드러낸다. 그런 아이들은 학습력도 뛰어나고 매사에 빈틈 없고 적극적이다. 다만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다소 차갑거나 매몰찬 성향을 읽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어렸을 때 접근하는 게 좋다. 일찍부터 성취가 아닌 성공에 길들여지거나 지나치게 물질에 밝은 성향까지 보여준다. 이는 모두 학부모 상담 과정에서 드러난 부모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부모가 은연중에 학생 앞에서 성공을 습관적으로 말하거나 모든 것의 가치를 돈에 두는 발언을 습관적으로 한 게 원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학생에게는 뭐든 1등을 해야 하고 돈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서 어린 아이답지 않음에 놀라 따뜻한 동화를 자주읽어주었다. 집에서는반려동물을 기르도록 부모에게 부탁했는데 받아들여서 키우고 있다는 사진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림은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마음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최상의 도구였다. 수행평가의 도구를 넘어서, 그림대회 상을 받기 위한 그림을 넘어서는 마음을 치유하는 미술 시간은 많을수록 좋다. 글이나 그림은 바로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그리움'을 표현하기 위한 시작이 '글'이요, '그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발음조차 비슷하지 않은가. 그리움. 글, 그림! 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로 하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간절함, 그리거나 쓰지 않거나 노래를 부르지 않거나,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꼭꼭 숨기고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일 것이다. 엘리자베타 시라니가 레니의 작품을 모사한 베아트리체 첸치 1662년를 배경지식 없이 그림으로만 보았을 때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되었다. 실제 작품을 접할 수 없는 책 속에 등장하는 그림이지만, 몽환적이고 사실적인 빼어난 묘사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림에 대한 글을 읽고 자세히 보고 처절한 아픔으로 피흘리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시라니의 아버지는 술주정꾼으로 시라니가 그린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시라니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 시라니는 베아트리체 첸치 1662년를 그리며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여 원작보다 더 애잔하게 그려서 유명해졌다고. 열일곱 살 시라니가 아버지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그림으로라도 표출하지 못했다면, 그 아픔은 자신의 내면을 공경하는 극심한 우울증이나 조현병, 공황장애에 시달렸거나다른 사람에게 투사시켜분노조절장애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을 거리는 추측을 해본다. 다행히 상처 받은 자신의 아픔을 처절하게 표현하며 피흘리는 베아트리체 첸치를 그리며 치유받았으리라.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양산을 든 여인1875, 모네의 그림은 매우 아름답고 몽환적인 그림이다. 모네가 사랑한 첫사랑 카미유의 그림이라서 그런지 얼굴 표정까지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반면에 카미유를 잃고 두 번째 맞이 한 아내 수잔을 그린 비슷한 그림인 야외 스케치에는 수잔의 얼굴 윤곽만 있을 뿐이다. 저자는 카미유를 잊지 못한 상처 때문에 수잔의 얼굴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고 해석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에는 침묵을 학교에서도 종종 가족을 그리게 하면 얼굴 윤곽만 그리거나 어둡게 칠하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은 분명히 아픈 상처를 자기도 모르게 드러낸 것이므로 면밀하게 관찰하고 상담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미술치료는 이제 상담기법의 필수 항목임을 간과해서는 안 되리라. 표현되지 않은, 감추인 무의식에 가라앉은 마음의 상처까지 볼 수 있는 도수 높은 안경을 끼는 일은 이제 선생님에게도 꼭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아픈 아이들이 넘치므로. 초등학교 미술 시간이 전부여서 학창 시절이 거의 없는 나는 그림을 그려볼 기회가 없었기에 그림은 늘 동경의 대상이다. 고학년을 많이 가르쳤기에 수채화 그림을 배우기 위해 학원을 다니며 기법을 배워 지도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는 아이들의 그림을 제대로 보는 심미안이 없이 그림 대회에 나가서 높은 등급의 상을 받게 하는데 치중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리 반 전체 30여 명의 학생들이 거의 모두 최우수상부터 장려상을 휩쓸어 교실 뒷면 빼곡히 상장을 전시한 적도 있었다. 내면을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충실한 보고 그리기 기법을 지도한뒤늦은 부끄러움을 이 책을 보는 동안 느꼈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최고상을 수상한 제자는 화가의 길로 갔고 디자인을 전공하는 제자도 있으니 내 진심에는 나쁜 의도가 없었음을! 자유인이 된 지금 새롭게 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그림을 배우는 것이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나의 내면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나의 상처와 아픔을 햇볕에 말려주는 일을 그림으로 해소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것 같아서다. 그래서 책을 고를 때에도 습관적으로 그림 에세이를 즐겨보려고 노력하는편이다. 간접 경험으로라도 그림에 대한 배고픔을 해소하고 싶은 본능적인, 때로는 의식적으로 찾는다. 이 책은 작가가 화가들을 직접 상담하며 화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치유해가는 과정을 변해가는 그림과 함께 실어서 의학적인 전문지식이 없거나 그림에 문외한인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매우 접근성이 뛰어난 책이다. 아니, 정신과 상담과 미술치료 기법을 혼합하여 아픔이 많은 화가들의 그림을 분석하고 깊이 파고든,저자의 전문성으로 친절하고 일반적인 언어로 서술해서 더 좋은 책이다. 이 책 덕분에 화가의 일생을 알지 못하고 그림을 함부로 평가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다.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침묵할 일이다. 그것이 그림이든, 사진이든, 한 편이 시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일탈까지도.
[한국교육신문 정은수 기자]교육부의 마스크 수거에 대한 현장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올바른 교육을 위한 전국교사연합(올교련)’은 2일 입장문을 배포하고 학생 안전을 위협하는 교육부의 졸속행정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올교련은 입장문을 통해 “교육부의 조치가 학생안전을 위협하는 졸속행정인 이유는 마스크 수급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마스크를 수거했기 때문”이라면서 “전염병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적지않은 데다 교육청에서는 각 학교 저소득층 가정 학생의 마스크 수요를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에서 단순히 학교가 마스크를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어렵게 확보한 마스크를 수거하는 조치는 특히 저소득층 가정 학생의 안전을 위협하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적법한 의견조율과 투명한 과정 없이 조치가 시행됐다”면서 절차적 문제도 꼬집었다. 이들은“서울시교육청을 예로 들면조희연 교육감의 명의로 예고도 없이 긴급 문자를 발송했으며 교육청 책임자들마저 기자들의 전화를 받고서야 사실확인에 나서는 추태를 보였다”면서 “이는 교육부의 조치가 적법한 내부 의견조율을 거치지 않고 은밀하게 시행됐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또“수거된 마스크의 행방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올교련은“(교육부는) 각급 일선 학교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마스크를 어렵게 확보한 과정 역시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면서 “정확한 회수 이유와 의사결정 과정을 밝히고 수거한 마스크의 행방을 공개해야 한다”고 해명을 촉구했다.
[한국교육신문 정은수기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시·도교육청의학생용 마스크 회수령이1일부터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국으로 확대된다. 교육부는 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마스크 수급 안정화 조치 계획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초·중·고교의 마스크 비축량을 일부 수거해국민에게 우선 공급하고, 개학 전까지 학교 비축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중대본의 마스크 수급 안정화 조치에 따른 것으로, 학교·농협·우체국 등 공공기관 물량 전체에 적용되며, 일반 시장을 통해 국민들에게 공급된다는 것이 교육부의 설명이다. 초·중·고교에서 수거예정인 마스크 물량은 총 580만 개다.전국 초·중·고교 비축량 약 1270만 개 중 긴급돌봄교실(학생·교직원용 10일 분량)에 사용할 물량과 소규모 학교는 제외했다. 지역별로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이 160만 개, 대구·경북을 제외한 12개 시·도가 420만 개를 수거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중대본은 일반 시민에게 우선 제공되는 초·중·고의 학교 마스크는 개학 이전에 전량 신규 마스크로 다시 비축하며, 개학 이후 학생들에게 마스크를 공급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조치하기로 했다”며“유·초·중·고 개학 이후에도 충분한 양의 마스크를 제공해학교 내 코로나19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필요한 학생들에게 빠짐없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마스크 수급 안정화에 이번 주가 매우 중요한 만큼, 중대본 조치에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긴급 돌봄교실에 필요한 마스크는 이미 확보한 상태로, 교육부는 개학 전까지 마스크 재비축을 완료할 것이며, 학교에서 추가로 요청한 마스크 물량도 적극 확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대본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정부가 개학 전까지 재비축을완료할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마스크 공급이 부족한 현재 상황에서 이뤄질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현재 일부 시·도교육청에서학교별로 마스크를 자체 조달해 비축했거나, 주문 이후 한 달 넘게 받지 못한 학교도 있는 실정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대학처럼 진로와 적성에 맞춰 교과목을 선택하고 이수기준을 성취하면 졸업을 인정하는 교육제도이다. 이미 미국·유럽의 주요 국가·호주·뉴질랜드 등 서구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중국·홍콩·일본이 시행 중이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고교학점제를 2025년에 전면 실시할 계획이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고교학점제에 회의적이든, 공감하든 대부분 교사는 시행착오를 걱정한다. 해방 이후 내려온 고교 교육과정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사회의 경제 및 사회·문화적 측면과 연관되어 있으며, 쟁점에 합의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까닭이다. 더구나 시행 시기에 급급하면 학생부종합전형 지지자와 수능 정시 지지자 간에 일어났던 갈등보다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즉, 고교학점제는 교육과정 변경에 그치지 않고 대학 서열화가 뚜렷한 교육현실에서 개인의 지위 및 가족 이동과 소비패턴까지 바꾸는 사회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제도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나 교육청 등 정책당국은 고교학점제의 당위성만 말할 뿐 적극적으로 교사와 학부모 등 여러 계층이나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검토했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교육청 일각에서는 아직 고교학점제가 확정되지 않아 기괴한 ‘교육적 괴물(monster)’이 될 수 있는데도 특정한 방식을 선호하는 듯하다. 교사들의 우려는 지나친 것일까 다수의 교사는 고교학점제에 대한 인식이 낮고, 반대하는 교사도 상당하다. 서울시교육청이 2018년에 일반고와 자율고의 재직 교원 1,461명에게 찬반 의사를 물었는데, 반대는 36.1%였고 찬성은 25.9%였다. 유동적 응답자인 보통은 38.0%였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인지도’도 학생이 과목을 선택하여 이수하는 제도로만 단순하게 알고 있거나 ‘전혀 모른다’는 응답자도 34%에 달했다. 특히 찬성하는 교사들도 교과 강사의 충원 및 시설 인프라는 그만두고라도 ‘성취평가제’, ‘이수학점 요건’, ‘대입 수능의 연계’ 등의 이유를 들어 ‘2025년 전면 시행’에는 회의적이었다. 교사들의 우려는 지나치지 않다. 물론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자유로운 과목선택이나 성취평가제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대학 서열화가 여전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크며, 수능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는 한 갈등의 소지가 크다. 즉, 고교학점제 틀에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학생의 욕망과 그 기대를 채워주고 싶은 부모의 열망을 사회적으로 공정하게 분배하는 방향을 깊게 고민해야 한다. 고교학점제는 올해부터 전국 마이스터고 51곳에 처음 도입되는 데서 그 윤곽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교과이수 단위는 총 180학점으로 지금보다 대략 10% 정도 줄어든다. 그 점은 큰 무리가 없다. 성취수준은 절대평가로 각각 20%인 A·B·C·D·E 5등급으로 구분하여 가장 낮은 수준인 E를 낙제수준으로 정해 재이수를 열어두었다. 문제는 기초학력수준인 성취수준 하위 20%를 이수기준으로 정한 데 있다. 그 기준의 근거가 합리적이지 않다. 즉, 고교학점제를 도입했을 때 예상되는 여러 문제를 보면 그처럼 기준을 쉽게 정하지 못한다. 굳이 2025년까지 가지 않아도 지금 학교에는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인 학생이 적지 않은데 학력저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격차의 간극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그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평가원 노은희 연구팀은 고교학점제에서 교과이수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나 연구보고서(2019)에서 이수기준을 40%∼60% 성취수준인 보통 학력수준으로 제시한다. 즉,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재이수·유급·미졸업을 염두에 둔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는 교과마다 성적 부풀리기가 성행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더구나 한국의 교육문화에서 어떤 학부모가 자식의 유급이나 미졸업을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러니 교사는 학교의 위상이나 학부모의 민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절대평가인 성취평가제의 취지를 왜곡하여 난이도가 낮은 문제로 평가하거나, 점수를 후하게 주기 위해 성취기준에 따른 평가기준을 느슨하게 정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전 고교에 확산될 가능성이 커 ‘도덕적 위험(moral hazard)’도 피할 수 없다. 또한 대학입시에서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학생부종합전형에 의존하게 되면 학생부 ‘교과별 세부능력특기사항’ 등 교사의 정성적인 기록이 중요하게 된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은 자식이 학점만 이수하면 된다는 그릇된 생각에 더욱 학원으로 몰리는 상황이 나타날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역선택이 가속화될 위험이 큰 것이다. 즉, 과목이수를 위한 사교육은 더욱 성행할 것이고, 그 대가를 학생부 기록으로 보상받으려고 할 것이다. 우리가 더욱 의심해봐야 할 절박한 문제는 사교육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저소득층이나 도서벽지학교 학생들의 결핍을 해소하기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또 학교는 학생들에게 더욱 쉬운 문제로 평가할 수 있어 학력저하의 악순환은 저소득층과 도서벽지 학생들에게 집중될 것이다. 결국 기존에도 심각한 교육문제였던 ‘수포자’, ‘교과서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 ‘창의성 저하’ 등의 문제는 악화될 가능성이 크고 그마저도 사교육에 접근할 기회가 많은 학생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교육격차의 간극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이러한 기우는 지나치다고 보기 어렵다. 과거 이명박 정부부터 실질적으로 학생부종합전형을 시행하였고, 그 취지는 학생의 흥미와 적성을 살리고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선의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교육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2019년에는 대입에서 학생부전형이 70%가 넘는데도 초·중·고 학생의 2018년 1인당 사교육비는 역대 최고인 29만1000원으로 나타났다. 초·중·고생 모두가 증가했으며 고등학생은 32만1000원으로 전년보다 12.8% 증가했다. 하지만 교육부나 교육청은 많은 국민들의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요 쟁점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가급적 빠르게, 전면적으로 시행한다는 장밋빛 의지만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과연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가고 있나?”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는 국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나 미국·핀란드·싱가포르·캐나다·프랑스·영국은 지금 우리의 고교학점제 구상과 다르다. 성취평가제를 하지만 학점이수에 매우 엄격하다. 노은희 연구팀의 권고처럼 이수기준은 일반적으로 일반적으로 ‘보통’ 학력수준이다. 국민의 교육받은 권리를 단순히 ‘교육기회 보장’이 아닌 실질적 학력수준을 갖추도록 책임지는 ‘실질적 평등’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재이수 프로그램을 통해 엄격하게 재평가하거나, 그래도 이수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유급을 시켜서라도 일정한 학력을 갖추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처럼 필수과목을 영어만 하거나, 영국의 GCSE (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처럼 영어·수학·과학 3과목을 필수로 하고, 20개가 넘는 선택과목 중 2과목을 선택하여 최소 4과목이 40% 성취수준에 이르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독일의 아비투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핀란드 일리오필라스툿킨토처럼 언어·외국어·수학·사회·과학을 개별적 또는 통합적으로 치루는 경우도 있다. 외국의 고교졸업고사는 우리나라 수능과 비교할 수 있다. 객관식은 수능보다 쉽다고 할 수 없지만, 분절적·사실적 지식을 평가하는데 그치지 않고 개념적 사고를 묻는 서술형·논술식 문제가 위주이다. 독일은 국가교육과정이 없어 각 주가 주관하는 논술식 아비투어 시험에서 300점 만점에 최저 150점을 받아야 대학에 응시할 수 있다. 이처럼 각 국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고교학점제를 시행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막기 위해 제도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고교학점제의 교과별 이수학점 기준을 성취수준의 하위 20%로 정하겠다’는 발상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짐작하건대 2025년에 전면 시행될 고교학점제는 ‘공정성 시비’를 더욱 깊게 할 가능성이 크다. 수시 학생부전형을 통해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과 학부모의 욕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는 장단점을 가진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고교학점제를 ‘학생의 흥미와 진로를 살리는 유일한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학생의 진로가 고등학교 때 정해져야 한다’는 논리도 절대적이지 않다. 고교학점제도는 장단점을 가진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교육부나 교육청이 시행을 몇 년 앞두고 시범학교 운영·강의실 확충·진로교사 충원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차라리 전면 시행을 미루더라도 공개적 논의를 통해 폭넓은 국민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더구나 교육청 일각에서 나도는 소문을 종합하면 현재 우리의 고교학점제는 교육선진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시행하는 고교학점제의 모습과 다르다. 고교학점제가 귤화위지(橘化爲枳) 즉, 귤이 위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상황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더 많은 공개적 논의와 깊이 있는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졸업고사라고 할 수 있는 수능을 자격고사화하지도 않은 채, 이수학점에서 필수와 선택을 어떻게 할까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도 없이, 또 수능을 학생들의 고등사고력을 키우고 학력저하를 막기 위해 서술형이나 논술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서 시행만 서두르는 것은 잘못이다. ‘오로지 학점이수로만 고교학점제를 채우겠다’는 것은 결국 ‘대학진학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주도하며, 평가요소는 교과 세부능력특기사항으로 하겠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 결정은 옳지 않다. 교육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큰 파문을 일으키며 국민 대다수가 불신하고 있는 학생부종합전형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속내가 어떻게 국민의 의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고교학점제 윤곽을 재검토해야 한다 고교학점제의 윤곽을 재검토해야 한다. 선진국 대다수처럼 낙제기준 등급을 E등급인 성취수준 하위 20% 비율보다 상향하여 보통학력 수준인 C등급으로 하고, 학력저하를 막기 위해 재이수자의 성적부진 원인을 찾아내 ‘개별화 맞춤형 학습’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실질적 고교졸업의 효과를 도모하고 학교 간 편차를 막기 위해 수능을 절대평가인 졸업시험으로 전환하고, 서술식·논술식 고사로 문제유형을 바꿔서 고교학점제가 고등사고력을 키우는 교육과정이 되게 해야 한다. 당장 수능 출제 유형을 바꾸기 어려우면 과도기를 두고, 우선 대학별 논술고사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여 완충하겠다는 발상도 고민해야 한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교육당국은 고민을 하지 않고 있는지, 아니면 하더라도 공개적이거나 공식화할 수 없는지를 다수의 국민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뿐아니다. 교육부나 교육청이 지난 10년 동안 크게 확대된 학생부종합전형을 처음 도입할 때,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운 희귀한 전형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경쟁교육’, ‘잠자는 아이들’, ‘수포자’ 등 여러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신약(神藥)처럼 홍보하던 기억이 데자뷔 되어 몹시 우려스럽다. 지금부터라도 교육부와 교육청은 국민에게 외국에서 시행하는 고교학점제의 보편적 구조 및 장단점을 사실적으로 설명하고 한국의 정치적·경제적·사회문화적인 특수성을 최대한 고려하여 시행할 수 있도록 교육전문가를 비롯해 각계각층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으로써는 교육적 갈등과 혼란을 줄이고 고교학점제를 안정적으로 연착륙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한국은 지금 수축사회에 진입했다고?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의 저자 홍성국의 강의를 접하고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평소 경제나 정치에 대한 책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었지만 책 제목이 신선한충격으로 다가와서이끌렸다. 딱딱한 주제와 무거운 전망들을 담고 있어서 읽는 내내 가라앉게 하는 책이었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세상에 대한 불안을 알고 2020년을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거의 모든 사회 현상을 부정적인 틀 안에 집어넣고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장 관심이 가는 심리적 측면에는 대안 제시나 타개책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이는 저자가 경제 분야에 오래 몸을 담았다는 점을 생각하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심리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니니 살짝 언급만 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으리라.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책을 쓰는 사람 또한 있을 수 없으니. 저자는 사회적자본 부족과 부의 양극화, 사회적 갈등, 도덕적 해이를 한국이 수축사회로 진입하게 된 원인으로 꼽으며, 현재 한국은 혁명적 수준의 구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한 4가지 관점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존재해왔던 해묵은 문제임을 생각하면 특별한 진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심화되고 있음이 더 문제가 아닐까. 저자는 한국 사회가 수축사회 진입을 늦추기 위해 채택해야 할 핵심 관점을 5가지로 요약해 제시한다. 수축사회로 인식을 전환하는 것, 사회 전체를 거대한 생태계로 파악하여 대안을 마련하는 것, 입체적 혁명, 미래에 대한 집중, 사회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비전이 그것이다. 저자는 팽창사회적 해법으로는 수축사회로 진입을 완화할 혁명적 수준의 구조적 원칙을 마련할 수 없다고 말한다.그런데도 한국의 리더 그룹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팽창사회라는 틀에서 이해한다고 지적한다. 수축사회는 역사적 필연이므로 수축사회에서 벗어나게 할 묘책은 없다는 것. 그러나 수축사회에 대한 인식이 강해지면 수축사회 진입 속도를 늦추고, 경쟁국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다며 향후 5년간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경기회복보다 수축사회를 어떻게 대비하느냐가 될 것이라 말한다. 이 5년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진단이다. 수축사회의 특징과 해법은? 중세시대, 대규모 전쟁 후, 산업의 극적인 전환으로 인한 기존 산업의 몰락이 수축사회의 원인) 저자가 제시하는 수축사회의 5가지 특징도 매우 수긍이 가는 지적이다. 1. 원칙이 없다: 이기주의 2. 모두가 전투 중: 입체적 전선 3. 눈앞만 바라본다: 미래 실종 4. 팽창사회를 찾아서: 집중화 5. 심리게임: 정신병동 특히4차산업혁명이 수축사회의 불을 당기고 있다는 지적도 신선하다. 그 증거로는 공급과잉, 무한대의 효율성 경쟁, 산업의 재편, 과거형 산업의 몰락, 과학기술전쟁으로 도래한 뷰카 시대는 양극화 + 개인주의 + 위험사회로 표현한다. 저자는 수축사회로 진입한전환의 시대에 필요한 생존 전략 역시5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한다. 1. 원칙을 세우고 지켜라 2. 미래에 집중하라 3. 창의성이 답이다 4. 남다른 무기를 개발하라 5. 사람을 조심하라 코로나19가 세상을 강타하고 있다. 안타까운사람들 소식이 하루가멀다하고 눈과 귀를 어지럽힌다.의심 증상이 없는 나 같은 소시민마저 외출을 자제하고 스스로자가격리를 하게 만들고 있다. 대인기피증이 올까 두렵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낯선 택배기사님이나 마스크를 하지 않는 이웃 주민을 볼 때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걱정이다. 세계가 이웃처럼 가까워진 정보시대지만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마음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코로나19로 마음은 이미 수축사회가 되었다.제발 코로나19가 수축사회를 앞당기는 불씨가 되지 않기를!
'자유인'을 향한 첫 출발선에서 교직 38년을 포함 공직 생활 41년 4개월을 뒤로 하고 퇴직한지 1년이다. 마치 무중력 상태로 떠 있는 느낌이다. 공식적으로 일하지 않아도 되는 데도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아서 도서관을 찾는 삶이 일상이 되었다. '교육'이라는 제목이 들어가지 않은 책을 골라 읽기로 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퇴직한 학교 홈페이지를 들락거리고 새 소식이 올라왔나 검색까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습관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놀라는 중이다. 오랜 시간 몸에 밴 관성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으니 물리학은 삶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1년 동안 이곳저곳에서 정년퇴임을 축하하는 식사 초대에 다녀왔다. 마라톤 완주를 잘했다며 소소한 자리에 꽃다발, 때론 정성스런 편지와 선물들이 배달되니 실감이 난다. 따로 퇴직 기념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고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찾는 이들에게 얼굴을 내밀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건 당연한 도리이리라. 문제는 술을 전혀 하지 못하는데 그런 자리에 가야 하니 힘들다. 술과 수다를 싫어하니 이래저래 사람 만나는 걸 기피하는 내 성향을 다시 확인하며 사람은 쉽게 바뀔 수 없음을 깨닫는다. 아니,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크게 충격을 받거나 힘든 일을 겪거나 특별한 터닝포인트가 발생하지 않는 한! 결국 아무도 나를 바꾸지는 못한다. 사건이나 사람이 나를 바꾸도록 자극할 수는 있으나 결국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가르치는 제자를 변화의 물가로 이끌 수는 있으나 그가 물마시기를 거부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 물을 먹고 싶도록 갈증 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게 교육의 힘이고 교사의 자질이다. 필요를 절감하게 하는 능력을 갖추는 노력이계속 되어야 하는이유다. 세상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며 변화의 속도를 가늠할 수 없으니 더욱 그렇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상식과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학교와 교사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할 능력을 겸비해야만 한다. 퇴직을 하니 좋은 점은 새벽에도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다음 날 아침 출근 때문에 책 속으로 마음 놓고 빠질 수 없었던 그 많은 시간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니 행복하다.읽다 자다를 반복해도 좋은 '자유인'은 오랜 갈망이었다. 다시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 어린아이처럼 책을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특히 의무감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무 때나 말을 걸지 않는 책이라는 친구는 우리 집 고양이처럼 말이 없어서 좋다. 이런 성정으로 38년 동안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선생 노릇을 해낸 게 신기하다. 일방통행이지만 마음이 통하는 최상의 친구는 책이 분명하다. 그에겐 실망할 일이 드물어서 좋다. 언제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안해하지 않고 상처 주지 않고 내려놓을 수 있으니. 이 책은 퇴직한 첫날제일 먼저 고른 책이다.주변 사람들은6개월쯤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고, 좋아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라고들 조언한다. 그럼에도 다시 집어든 것이 책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집어든 책이다. 은퇴자의 공부라니! 쉬거나 놀거나 여행을 다니기는커녕 공부하라고 채근한다. 아니, 은퇴는 삶의 여정이니 공부는 당연한 거라고 떠민다. 퇴직은 남의 일로 알고 살아 왔는데 원치 않는 일이지만 현실로 다가왔다. 아직 기대수명이 만만치 않게 남아있으니 저자의 권학편을 꼼꼼히 챙겨서 읽었다. 이 책에는 독서와 글쓰기로 인생 2막을 연 세 사람의 저자가 등장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며 달라진 삶을 적고 있다. 진솔하고 꾸밈없는 일기를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소박하고 단출하다. 옆집 아저씨가 살아온 이야기를 막걸리 한 잔 나누며 들려주는 듯한 담백함이 좋다. 전문 작가가 아닌, 아마추어에 가까운 작가만의 풋풋하고 어설픈 소박함이 좋은 책이다. 마지막 인생의 동반자, 책 '공부하는 은퇴자에게는 정년이 없다'는 부제 아래 윤영선, 윤석윤, 최병일 세 사람이 공저자로 참여하여 집필한 책이다.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필력 또한결코 얕지 않으면서도 전문가인 척 하지 않는 겸손함이 좋다. 그러니 설교하거나 강요하는 글이 아니라 걸어온 길을 복기하여 써내려 간 점이 편안하게 다가선다. 정년퇴직이나 조기퇴직으로 원치 않는 퇴직을 하며 겪은 마음고생을 견뎌낸 과정도 진솔하게 풀어내어 안타까움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정체성에 시달리는 대목에선 한숨마저 나왔다. 나 역시 지금 그러하니. 이해한다는 말은 바로 지금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으면 가슴으로 느낄 수 없으니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낱말이 분명하다. 날마다 보던 동료 직원들, 귀엽고 사랑스런 제자들, 떠들썩한 교실, 이른 아침 문을 열고 일찍 오는 아이들을 기다리던 도서실의 익숙한 냄새가 벌써부터 그립다. 하느님은 세상 어디에나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는데, 학교는 그 어머니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곳이니 인간이 만든 조직 중 최상이 아닌가! 은퇴자는 인간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고 살아야 할 일터로부터 배제된 사람이다. 기대수명이 현저히 늘어났지만 법률적으로 사회적으로, 아니 경제적인 이유가 더 정직한 표현이다. 그러니 직장을 떠난 사회의 이방인으로 무중력이 주는 헛헛한 느낌을 빨리 지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삶의 균형감각을 잃고 허무해지거나 우울감으로 힘들어질 수 있으니. 마치 뿌리 없는 나무처럼 둥둥 떠 있는 듯한 상태를 얼른 이길 수 있는 방편을 찾는 노력이 절실함을 깨닫도록 도움을 준 이 책이 고맙다. '공부에 빠져서 행복하다'는 윤영선씨, '공부로 삶을 바꾸었다'는 윤석윤씨, '공부로 세상과 통한다'는 최병일씨의 공통점은 독서와 글쓰기다. 다행히 나는 이 분들과 공통점이 같아서 안심이 된다. 공부를 좋아하는 점에서 그렇고 책을 읽고 나누기를 좋아하는 점도 닮았다. 나도 세상이라는 학교에 적응을 잘하여 인생의 진정한 마무리를 잘 하고 싶다. 빈 가지로 서서 쉬는 듯 보이는 겨울나무도 결코 쉬지 않는다. 새 봄을 기다리며 수액을 조절하며 새순을 낼 준비로 바쁘다. 겨울나무가 그럴진대 나도 자연의 일부이니 그렇게 살아가리라. 내게 주어진 그 자리에서 나무처럼 말없이 제 할 일을 다 하며 다시금 화단의 저 매화처럼 내 인생의 새 봄을 노래하리라! 자유로운 영혼이 속삭이는 생명의 소리를 빠짐없이 기록하리라.
박근혜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출발한 자유학기제, 입시위주교육, 성적지상주의 교육을 타파하고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운다는 취지로 시작 되었지만 예산이 줄어 들면서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어쩌면 자유학년제로의 확대를 마냥 환영할 일은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예산 없이 운영한다면 자유학년제의 기본취지와 달리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계속 예산이 감축되어 교부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비해 예산이 대략 20%정도 감축되었다. 아직은 그래도 운영 할만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도 않다. 일단 예산에서 30%까지만 개인위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외부강사를 활용하는데 그 이상의 예산을 쓰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2500만 원의 예산을 받았다면 30%인 750만 원만 개인위탁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다른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 운영비로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일까. 일단 전문성을 갖춘 강사를 활용한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이 쉽지 않다. 강사를 활용할 수 있는 일부 프로그램 외에는 모든 것을 교사들이 직접 지도해야 한다. 자유학년 프로그램은 주제선택활동, 예술활동, 체육활동, 진로활동, 동아리활동 등이 있다. 따지고 보면 서로 유사성이 있다. 동아리활동에서 체육, 예술, 진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분류하여 운영을 해야 하니, 교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교과수업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어렵다. 굳이 그렇게 할려면 자유학년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운영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교과시간을 줄이면서 자유학년제를 하고 있는데, 교사들에게 부담만 가중된다면 결국은 예전의 동아리활동을 확대해 놓은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물론 교사들이 전문성을 쌓아 놓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들이 있다. 중등의 경우 교과 외의 전문성을 갖춰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추후에 예산지원이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하여 운영하라는 취지는 이해가 되나 예산없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업무폭주에 자신의 교과수업을 위한 연구, 연수활동 시간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유학년제 운영을 위한 프로그램의 전문성까지 갖추라는 것은 과도한 요구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일선학교에서 매우 잘 운영되고 있는 스포츠클럽의 예를 보더라도 만약에 예산이 지원되지 않으면 지금처럼 잘 운영될 수 없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강사비기 매년 지원되기에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중학교 3학년에서 스포츠 클럽할동을 2시간 해야 하는 학교들이 있다. 1시간은 창의적체험활동을 순증하여 활용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 교사들이 직접 지도를 하는데, 전문성이 없지만 주당 평균시수가 적은 교과에서 담당하고 있다. 당연히 파행적인 스포츠클럽활동이 되고 있으며 시간 채우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자유학년제 프로그램 운영도 이런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예산 없이 운영하라고 하면 운영은 될 수 있으나, 프로그램의 질은 장담하기 어렵게 된다. 무조건 30%까지만 예산을 활용해야 하는지 교육청에 문의를 했다.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보다 더 강사비로 지출하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돈은 있으나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일부 프로그램의 운영비에 나머지 예산이 대폭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잘 하는 학교들도 많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들이 더 많다고 본다. 결국 운영비를 교부해주고 이제와서는 없어질 수 있으니 교사들이 직접 하라는 것인데 교사들이 그렇게 까지 전문성을 갖추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제약조건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진로교과를 줄여서 자유학년제 시간을 확보하지 않도록 하라고 한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가능하다는 단서조항이 있긴 하지만 강제성이 있어 보인다. 자유학년제에 진로활동이 별도로 편성되고 진로교과 연계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별도의 진로프로그램도 운영하는데, 무조건 진로교과를 줄이면 안된다고 한다. 학교의 상황이 다 다르고 1학년의 교육과정에서 감축교과를 찾기 어려운 교육과정이라면 진로교과 활용은 필수적이다. 진로교과를안 줄이면 어떤 교과를 줄여야 할지 난감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들이 분명히 있다. 이런 학교들까지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최소한의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 마저도 훼손하는 것이다. 다양한 수업, 다양한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도 교사들로서는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기고사를 치르지 않을 뿐 준비하고 평가하고 해야 할 일들은 다른 학년보다 결코 적지 않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당초의 자유학년제 취지는 시험부담, 학습부담에서 벋어나서 자신의 꿈과 끼를 키울 수 있는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한 학기는 신나는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몇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당초 취지는 사라져 가고 있고, 학생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자유학년제의 기본취지가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결국 학생들의 부담, 교사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제도라면 존재 가치가 크지 않다. 예산 지원을 계속하고 학교에서 자유롭게 예산을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기본적인 것만 규제하고 자율성을 주어야 한다. 교육과정도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기본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학교에서 직접 설정하여 운영하도록 해야한다. 모든 학교의 자유학년제가 똑같이 운영되는 상황에서 무슨 꿈과 끼를 기를 수 있겠는가.
학생 다수 모이면 감염 예방 불가능 사태 심각 대구‧경북 별도 관리 필요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정부가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됨에 따라 ‘긴급돌봄’을 제공할 방침인 가운데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학교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교총은 돌봄교실 지원 및 각종 방역제품 수급 문제해결이 급선무라며 조속한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교육부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예비 유치원생'과 '예비 초등학생'은 입학 예정인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신청하면 재학생과 마찬가지로 긴급돌봄을 받을 수 있으며 26일까지 신청자를 받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관련된 행‧재정적 지원이 미흡한 상황에서 긴급 돌봄을 수용할 경우 학생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교총은 25일 17개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고 입학식이 연기된 예비 초등 1학년 입학자 중 돌봄 요청자 수용 문제에 대한 명확한 지침과 기타 돌봄교실 운영과 관련된 방역 및 행‧재정적 지원을 요구했다. 또 마스크, 손세정제 등 학교단위 구매가 불가능한 물품들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교육청 단위로 구매한 후 각급학교에 물품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한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정부의 별도 컨트롤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의 한 초교 A교장은 “수요조사가 완료되지는 않았지만 일부 학교들은 긴급돌봄 신청자가 40명 이상 나온 것으로 안다”며 “한두 명은 마스크 끼고 어떻게 해보지만 몇십명의 아이들이 다닥다닥 모여 돌봄을 받고 급식을 이용하는 것은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결코 안전한 운영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예방을 위해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고 집안에 머물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긴급돌봄에 보내는 등 상반된 지침을 내리는 것 자체가 교육당국이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A교장은 “확진자와 관련이 없는 학교는 방역도 학교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학교가 할 수 있는 건 체온계로 발열체크하고 한번 씩 손 소독을 시키는 것일 뿐인데 어떻게 안전한 운영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적어도 대구‧경북 지역은 정부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며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기 전까지는 개학도 더 미뤄 안전이 확보된 상황에서 학생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교원 명예퇴직이 급증하자 교총이 생활지도 체계 회복을 주문했다. 2월말 기준으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명퇴 신청 교원은 666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8%(649명)나 증가했다. 2018년과 비교하면 2030명이나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2월말 명퇴 신청자 수는 2017년 3652명, 2018년 4639명, 2019년 6020명, 2020년 6669명으로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교총은 17일 이에 대해 "대규모 명퇴 신청의 가장 큰 원인이 교원의 사기 저하와 생할지도 붕괴 등 교권 추락에 있다"면서 "정부와 교육당국은 교원 사기 진작과 생활지도체계 회복, 교권침해 예방을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교총이 지난해 5월 스승의 날 기념으로 전국 유·초·중·고 교원 5493명을 대상으로 모바일로 실시한 ‘교원 인식 설문조사’ 결과 교원들은 ‘학생 생활지도 붕괴 등 교권 추락’(89.4%)과 ‘학부모 등의 민원 증가에 따른 고충’(73.0%)을 교원 명퇴 급증의 이유 1, 2위로 꼽았다. ‘최근 1∼2년간 교원들의 사기가 떨어졌다’는 응답도 87.4%에 달해 역대 최고로 나타났다. 2009년 55.3%였던 것과 비교해 10년 새 32%p나 증가한 수치다. 아울러 사기 저하로 인해 나타나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학생 생활지도 기피와 관심 저하’(50.8%)라고 밝혔다. 교권 추락과 사기 저하가 학생지도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교총이 지난해 발표한 ‘교권회복 및 교직상담 활동 실적 보고서’에는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원인 1순위가 ‘폭언·욕설’에서 지난해 처음 ‘수업 방해’로 바뀐 것이 눈에 띈다. 학생 생활지도 체계가 무너져 ‘정당한 교육활동’까지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을 드러낸 것으로 교권침해가 이제는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교총은 이런 상황에 대해 “교원들이 떠나가는 교단에서 미래교육의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면서 “지난해 개정된 ’교권 3법‘을 단위학교에 안착시켜 교권 강화와 교권침해 예방조치로 교단을 안정시켜 교육의 기본과 본질이 확립되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정부와 시·도교육청에 “실질적인 학생 생활지도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제시하는 등 교원의 ‘생활지도체계 회복’을 위한 대책 마련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교육신문 정은수 기자]지난달 2일 K-에듀파인 개통 직후 현장에서는 학교 업무가 마비돼 몸살을 앓았다. 이후 서비스 지연은 해결됐으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K-에듀파인 적용 초기 현장에서 교원들이 호소한 주요한 문제들은 해소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학교 업무를 마비시켰던 서비스 지연은 교육부의 설명대로 지난달 10일부터 과부하 문제를 해결한 상태다. 또 “한글 ODT(개방형 표준 파일 포맷)가 설치돼 있으나 버전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뜨는 오류는 ODT 편집기를 따로 설치하고 추가 기능에서 ODT 사용을 설정해주는 것으로 해결이 가능해 현재는 대부분의 큰 불편은 해소됐다. 교사들은 전면도입을 서두른 것이 화근이라는 입장이다. 지난달 몇몇 교사 단체에서 K-에듀파인 문제를 비판하면서 “완성 후 테스트를 거쳐 오류를 수정한 뒤에 도입해야 하는데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도입을 서두른 게 불상사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과부하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도 크고 작은 불편함은 여전히 남았다. 세종의 A교사는 “지금은 초기보다 오류가 없어지고 시스템은 안정됐지만, 기능상 불편함은 여전하다”면서 “예를 들어 공문 작성 시 관련문서를 일일이 찾아 기입해야 하는데 문서를 선택해 입력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기의 B교사는 “아직도 전입한 교사의 공문이 안 열려 두 부서 일을 혼자 하고 있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전남의 C교사도 공문을 수정할 때 붙임파일을 수정할 수 없어 문서 자체를 회수하고 처음부터 다시 작성해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장애인 접근성이 개선되기는커녕 후퇴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시각 장애인 교사는 “공문을 읽기 위해 음성 안내에 따라 원하는 메뉴를 클릭해야 하는데 메뉴도 기존보다 복잡해졌고 음성 안내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공문 하나 보는 데 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교육부는 시각장애인 교사들의 지적에 개선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관계자는 “전면 적용을 하려다 보니 초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재는 단계적 접근으로 전환해 현장 적용성과 편의성을 최대한 고려한 단계적 구축을 하고 있다"”면서 “1월과 같은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큰 문제는 해결이 됐지만, 5월까지 단계적으로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모니터링하면서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부도 “장애의 재발 방지를 위해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분석·평가해 최적화하기 위한 외부전문가를 포함한 ‘K-에듀파인 성능점검단’을 운영하고 학교현장의 교직원이 포함된 ‘K-에듀파인 프로그램 품질점검단’을 구성해 학교회계 뿐 아니라, K-에듀파인 전 영역에 대한 종합점검을 통해 품질을 제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