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4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최순영 (민노당)의원이 추진하는 체벌금지법에 반대하는 교원들이 87%나 된다는 설문조사결과를 보고 그래도 올곧게 가르치겠다는 열정이 보인다는 생각을 하였다. 조인스 닷컴이 전국 성인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도 “교사의 체벌이 교육적으로 효과 있다.”는 응답이 70%였고 “제한적 체벌을 허용해야 하므로 체벌금지법제화에 반대 한다.”는 의견이 75.3%였다고 하니 법제화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미국도 23개주가 체벌을 허용하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그러면 체벌을 권장하자는 것이냐고 반문 할지 모르지만 꼭 필요할 때 올바르게 쓰자는 것이다.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잘못된 체벌은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체벌은 독이 되기 때문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기우이지만 선생님의 감정이 격해서 체벌을 해서는 안 된다. 즉 기분이 나쁘다거나 화풀이 형태의 체벌을 가해서는 더 더욱 안 된다. 체벌은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는 것이다. 약이 되는 체벌마저 법제화한다면 학생들의 올바른 습관을 형성해주는 공중도덕, 질서교육, 예절교육, 정직교육 등의 올바른 민주시민으로 기르는 인성교육을 방관시해야만 할 것이다. 체벌을 받는 학생이 자기의 잘못을 알고 뉘우치는 벌은 자기통제능력이 부족한 어린 학생들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도벽성이 있는 학생에게 스스로 반성 할 수 있는 체벌을 가해 바로잡아 주어 도벽성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면 그 체벌은 약이 되는 것이다. 도벽성을 방치하여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는 도둑으로 지탄을 받게 된 다음 뒤늦게 후회하며 부모님께 그때 때려서라도 버릇을 고쳐주지 않았다고 원망 섞인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학생들 중에는 야단한번치지 않아도 되는 모범생이 있는가 하면 말로 하는 훈육으로는 통제가 되지 않는 불량학생도 있는 것이다. 모두가 모범생이라면 체벌자체가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무조건 법만 만들어 놓으면 교육이 잘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논리이다. 가정교육부터 바르게 자녀를 키우면 학교교육에서도 사랑의 매도 필요 없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모든 악(惡)이 법이 없어서 난무하는가? 법 만능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체벌을 없애자면 어려서부터 좋은 버릇을 길러주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생활습관이 몸에 배야하고 정직하게 올바르게 사는 모습을 어른들 부터 모범을 보여주어야 아이들이 보고배우는 것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을 명심하고 가정교육만 잘 해도 학교체벌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학부모와 어린이들에게 소탈하고 마음 넉넉한 할아버지였다. 이른 아침, 교문 앞 도로에서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교통지도를 하는 학부모들에게 환갑을 넘긴 교장선생님은 늘상 손수 탄 커피를 날랐다. 겨울철에는 커피가 식는다고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주곤 했다.' 8월 28일저녁에 세계일보의 홈페이지를 방문 했었다면, "우리 교장선생님은 '우렁각시'에요"라는 제하의 기사가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올라있는 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보던 중 눈에 띠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기에 그 출처를 찾아보니 바로 세계일보였다. 교육관련 뉴스 중 산교육을 실천하는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올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 구일초등학교의 임융태 교장선생님의 이야기이다. 임교장선생님은 위에 소개한 내용외에 학부모들이 사용하는 대여섯평 남짓한 교내 녹색어머니회 사무실을 언제나 말끔히 정리하고 고생하는 학부모들을 대신해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책상을 닦아주기도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밖에 여러가지 선행과 검소한 생활, 학생들을 위한 산교육 등이 기사에 자세히 올라있다. 요즈음 같이 교장, 교감, 교사 가리지 않고 교원들을 폄하하는 내용의 기사들이 넘치고 있는 때에, 임교장선생님의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임교장선생님 뿐 아니라 더 많은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이 시대에 보이지 않는 훈훈한 교육을 실천을 하고 있을것이다. 교사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동안 보도된 교사의 비리나 잘못된 행동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실제로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단 하나의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 확대 보도되기 때문에 교사집단은 모두 나쁜 집단으로 몰리고 있다고 본다. 더 많은 교원들이 학교에서 잘못보다는 교사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열정을 가지고 산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 세계일보의 기사는 정말로 오랫만에 보는 훈훈하고 정감있는 기사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런 교장선생님과 교사들이 전국에는 아주 많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달아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지 하나의 사례가 아니고 발굴되지 않은 사례는 훨씬더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넣어 주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또하나 아쉬움이 있다. 29일에 임교장선생님은 정년퇴임을 하게 된다. 그 흔한 퇴임식조차 하지 않고 조용히 교단을 떠날 것이라고 한다. 좀 더 산교육을 실시하는 모습을 지켜 보아야 했는데,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앞으로 제2, 제3의 임교장선생님 같은 분들이 교단에 많이 나타나 주길 기대하면서 한편으로는 세계일보이외의 언론들도 교원들의 산교육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해 주길 기대해 본다. 기사원문보기
서울특별시 교육청의 경우, 9월 1일자의 인사는 대부분 교감, 교장, 전문직을 대상으로 한다. 교감승진, 교장승진을 근간으로 이로인해 공석이 되는 전문직 임용등이 주요인사 내용이다. 이는 타 시·도의 경우도 비슷한 것으로 보이며 이미 많은 시·도 교육청은 9월1일자의 인사를 단행했다. 실제로 대전시교육청과 충청남도교육청의 경우는 지난 18일에 인사를 실시하였다. 나머지 시·도 교육청들도 대부분 지난주에 인사를 실시하였다. 그런데 유독 서울시교육청의 인사가 늦어지면서 승진을 앞둔 교사와 교감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물론 연초에 대략의 윤곽발표가 있긴 했지만 모든 인사가 그렇듯이 변수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급학교에서는 해당학교의 교사나 교감이 승진대상자에 포함된 경우 전체교원들의 관심사가 된다. 물론 해당자가 없는 경우에는 관심의 정도가 덜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하루빨리 인사결과가 나오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3월인사, 9월인사 모두 서울시교육청이 늦어지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 교사들의 이야기다. 이렇게 서울의 인사가 늦어지는 이유중에 하나는 교육부의 전문직 인사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즉 원래 지방에서 근무하다 교육부에 들어온 전문직들이 원래소속되었던 시·도로 돌아가지 않고 서울에 잔류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부의 전문직을 서울시 교육청에서 몇 명 배정받을 것인가에 따라 인사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결국은 교육부의 인사가 끝난후에 서울시교육청의 인사가 단행된다고 한다. 물론 학교현장에서 그 내막을 정확히 알길은 없지만, 교육부의 전문직 인사가 28일에 실시된 것을 보면 서울시교육청의 인사가 교육부 인사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8일 이후에나 인사결가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인사를 임박해서 단행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라고 본다. 승진하는 교원이나 수평이동하는 교원, 전문직 할 것없이, 새로운 곳에 대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준비없이 허둥지둥 이동하는 것은 결코 교육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교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해결방안은 간단할 것으로 보인다. 즉, 교육부의 인사를 앞당기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서울시교육청의 인사도 당연히 다른 시·도 교육청처럼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인사와 관련하여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간단히 생각하면 쉽게 해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교원들을 생각하는 인사시기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육인적자원부는 8월말로 정년퇴임하는 2천227명의 교원에 대해 훈ㆍ포장 및 표창을 수여했다고 28일 밝혔다. 정길생 건국대 총장 등 4명이 청조근정훈장을, 류정목 서울상봉초등학교 교장 등 735명이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정헌무 부산주례여고 교사 등 547명은 홍조근정훈장을, 경북교육청 도승회 교육감 등 2명이 국민훈장동백장을 받았다. 정년퇴직 교원의 경우 재직기간 33년 이상인 교원에게 근정훈장, 재직기간 30년 이상 33년 미만 교원에게 근정포장, 재직기간 15년 이상 30년 미만 교원에게 대통령ㆍ국무총리ㆍ교육부총리 표창이 수여된다.
요즘은 수업 중이건 쉬는 시간이건 학생들의 관심은 오직 휴대폰뿐인 것 같다. 책상서랍 속에 한 손이 들어가 있는 학생이 있다면 그는 분명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그러잖아도 요즘 '바다이야기'라는 사행성 도박게임 이야기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판에 학생들마저 어려서부터 이런 중독성 게임에 빠져든다면 이는 정말 큰일이다. 학교에서는 핸드폰 게임으로, 집에서는 컴퓨터 게임으로 날을 지새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뭔가 국가적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의 오랜 경험에 비춰볼 때 학생의 핸드폰 사용은 정말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돈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학업에 결정적으로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고, 또 금방 새 핸드폰을 갖고 싶어한다. 그러나 핸드폰은 고가인데다가 그 후의 통화료 또한 만만찮다. 수업시간에 전화가 오거나 문자를 주고 받다보면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선생님 말씀에 집중해야 할 정신을 핸드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생의 핸드폰 사용에 찬성을 하는 사람들은 신변에 위험이 닥쳤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이것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좀더 일찍 귀가를 하거나 위험한 곳을 피해 다니면 된다. 또 호루라기를 갖고 다니는 방법도 있을 수 있고 공중전화나 길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그리고 보통의 평범한 청소년들은 신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특별히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편리성의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즉 수학 여행이나 야영을 갔을 때, 아니면 친구들과 놀다가 늦었을 때 부모님께 쉽게 연락을 취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친구들끼리의 정보 교환도 쉬워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은 구실에 불과할 뿐 핸드폰이 없어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부모님과의 통화라면 학교 공중전화를 이용해도 되고, 친구들과의 정보교환이 목적이라면 집 전화나 인터넷을 이용해도 되기 때문이다. 현대인으로서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핸드폰 사용은 그런 권리 이전에 학습권과 교수권이 우선 시 되어야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우리학교에서는 올해부터 학생들의 휴대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도록 수시로 교육하고 있으며 부득이하게 휴대폰을 가져온 학생들이 있을 경우, 아침에 담임선생님께서 수거를 해서 교무실에 보관했다가 종례시간에 되돌려 주고 있다. 이렇게 하니까 수업 시간에 벨이 울려 수업이 중지되는 일도 없어졌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수업 태도가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학생들의 핸드폰 사용은 불필요하다.
학교 서열화를 조장하는 중점학교.시범학교 운영과 우열반 편성 금지, 방학 중 보충학습과 교사 과외 단속... 중국 교육부가 다음달 1일 개정 의무교육법 시행을 앞두고 최근 전국의 각급 교육행정기관을 통해 초중학교에 하달한 규제 내용이다. 한국 못지 않게 교육열이 높은 중국의 일선 교육현장에서도 한국과 매우 유사한 비교육적 난맥상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교 운영에 관한 약간의 의견'이란 제목으로 발표된 이 문건은 의무교육에 해당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지만 고등학교도 규제에서 예외는 아니다. 교육부는 먼저 공공교육자원을 특정 학교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점학교, 시범학교의 운영을 금지시켰다. 각급 지방 교육행정기관은 중점학교나 시범학교를 지정해 교육기자재와 우수 교사를 집중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명문대 입학자 수를 늘리는 데 주력, 교육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같은 맥락에서 우열반 운영도 금지했으며, 학생들로부터 이런저런 명목으로 잡부금을 거두는 행위도 못하게 했다. 의무교육 대상인 초등학교와 중학교 입학시 근거리 무시험 배정을 원칙으로 정해 성적을 근거로 학생을 모집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규제키로 했다. 이에 따라 초.중학교는 어떤 형태의 입학시험도 실시해서는 안 되며, 입학한 뒤 교내에서 치러지는 각종 시험성적도 공개할 수 없다.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이와 함께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의 틀을 벗어나 입시과목의 수업시간을 임의로 늘리고 음악, 미술, 체육 등 비입시과목을 줄이거나 폐지하는 행위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방학기간이나 쉬는 시간에 실시하는 보충학습을 금지하고 교사의 영리를 목적으로 한 과외수업 행위도 단속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2010년까지 농촌지역 초.중학교 9년 과정의 완전 의무교육을 목표로 교육재정을 늘려가고 있지만 초등학교에서부터 잡부금 전횡을 일삼는 바람에 자녀교육을 포기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도시는 도시대로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학교가 서열화되고 우수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은 좌절을 겪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인천송월초등학교(교장 장영애)는 25일 인천 중구 신포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의 도움을 받아 4학년 전체 어린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강화에 위치한 삼흥리 마을과 ‘농촌사랑 1校 1村 자매결연’을 맺고 방문 및 에서의 1일 농촌 체험 학습을 통해 농촌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농촌 사랑의 마음을 키울 수 있는 뜻 깊은 행사를 가졌다. ‘농촌사랑 1교 1촌 자매결연’제도의 활성화 위해 송월초교에서는 농번기 때에 일손 돕기를 비롯 환경보호 봉사활동과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앞장서 구매하는 등 농업·농촌 발전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였으며. 삼흥리 마을에서는 편안하고 쾌적하게 쉴 수 있도록 깨끗한 환경을 조성하며, 친환경 및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제공하고, 농촌체험에 필요한 프로그램 등을 마련 삼흥리를 찾는 학생들에게 농촌 체험의 장으로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어린이들은 송이버섯의 재배농장을 방문 버섯재배 과정을 실제로 체험한 후 자신들이 딴 버섯을 가지고 요리실습을 하는 등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으며 앞으로 매년 이런 체험활동을 할 것을 약속하고 돌아왔다. 이 활동에 참가했던 최일호 교사는 “어린이들이 우리 농업과 농촌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농촌에 대한 정서를 함양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며, 우리 모두의 고향인 농촌이 도시와 더불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상호 교류 활동 기회가 증진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요즘 리포터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새단장을 하느라 분주합니다. 제일먼저 눈에 띄는 것이, 그동안 낡은 나무판자 때문에 걸을 때마다 삐걱 이는 소리를 내던 교실복도를 타일로 교체한 것입니다. 학생들의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방학중에 말끔히 공사를 끝냈더군요.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타일복도를 걸으며 아이들은 마냥 즐거워합니다. 우선 소리가 안 나서 좋고 청소하기도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복도가 나무일 때에는 왁스를 먹이고 윤을 내느라 여간 고생을 한 게 아니거든요. 이제는 물걸레로 쓱쓱 밀기만 하면 되니 정말 격세지감을 느낄 만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심해야될 일도 있습니다. 타일이 워낙 미끄럽기 때문에 자칫 넘어질 염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복도가 끝나는 부분마다 경사지게 마무리를 했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성이 상존합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매사 조심해서 걷고 절대로 급하게 뛰거나 장난을 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더불어 바닥이 견고한 슬리퍼로 바꿔 신는 것이 좋겠습니다. 흡착이 뛰어난 슬리퍼는 저렴한 가격으로 시중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앞으로도 좁았던 교문을 활짝 넓히는 동시에 굽은 진입로도 곧게 펴게 됩니다.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학교를 보며 리포터는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나라의 정원은 어디를 가나 모두 천편일률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네모진 벽돌처럼 잘 다듬어진 생울타리와 둥그렇게 기형적으로 전정(剪定)된 향나무들을 볼 때마다 참 의아하단 생각이 든다. 왜 사람들은 나무들이 생긴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걸까. 제멋대로 마음껏 가지를 펼치며 성장한 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은 정녕 모르는 것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정원사 아저씨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교정의 정원수들을 열심히 가지치기하고 있다. 나는 가끔 정원수의 신세나 학교 아이들의 신세나 서로 비슷하다는 상념에 빠질 때가 있다. 똑같은 교복, 똑같은 머리모양, 똑같은 책걸상, 모두가 똑같이 선호하는 특정 대학, 똑같은 교육 과정이 어쩌면 전정 가위를 들이대어 모두가 똑같은 아름다움을 연출하도록 강요당하는 정원수의 신세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창조주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 세상에 똑같은 것이 둘이나 있도록 허용치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하찮은 풀 한 포기, 구르는 잔돌 하나, 나무 한 그루마다 그 태어난 의미와 존재 이유 또한 다 다른 것이다. 하물며 자라나는 아이들임에랴. 아이들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른 나무와도 같다. 우후죽순이란 말처럼 비 온 뒤의 죽순이 시시각각으로 쑥쑥 성장하듯이 아이들 또한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먹고 자란다.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은 모두가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윽박지르고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한번쯤 반성해 볼 일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우리 학교 도서관 대출 순위 3위를 기록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나무'란 책을 읽고 더욱더 확고해졌다. '나무'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현실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자율화와 창의력 배양은 지금의 제7차 교육과정의 교육 목표와도 묘하게 일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책에 더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남과 다른 생각,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을 키워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에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는 후텁지근한 날씨에 한 줄기 소나기처럼 청량감을 주었다. 또한 '나무'를 읽은 뒤 정작 교사인 나부터 그런 상상력에 무척 메말라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우선 나부터 항상 뭔가 독특한 생각을 해 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나서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아이들에게도 그전보다는 융통성 있는 대답과 질문을 하도록 유도해 보았다. 처음엔 당황해서 쭈삣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던 아이들도 차츰 어른들이 바라는 모범답이 아닌 진짜 자기들만의 생각을 말하려고 애썼다. 어떤 아이는 직접 학교 도서관에서 '나무'를 찾아서 읽어보곤 나한테 그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선생님, 나무에 있던 내용을 저도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특히 나무와 대화를 나누거나 정서적 교감을 하는 장면은 저도 상상을 해봤던 장면이거든요. 그런데 '나무'에 진짜 그런 내용이 있더라구요. 얼마나 반갑던지....." 이처럼 '나무'는 그동안 머릿속의 창의력이 시나브로 메말라가던 나와 아이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무한한 상상력을 일깨워준 고맙고도 기능적인 책이었다. 따라서 나는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올 여름이 가기 전 꼭 베르나르 베르베르(이세욱 역)를 만나 보라고 권하고 싶다. 첫째,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 모든 것이 시시하게 보일 때.둘째, 대화 시에 마땅한 소재가 없어 텔레비전 연속극 이야기만 하게 될 때. 그때가 바로 지적 일탈이 가득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때라고 말이다.
'내 자식만큼은 나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치열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기러기 아빠'의 사례나 자녀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저지르는 학부모들만 보아도 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발표에 의하면 2003년도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규모는 총 13조 6천억 원으로 1인당 285만원이라고 한다. 이것은 공교육 예산인 24조 9천억 원의 절반을 넘는 액수이다. 그나마 2004년과 2005년은 EBS 수능강의 때문에 연간 사교육비가 각각 2900억 원 정도씩 줄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일신하는 동시에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 2월 17일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발표하였다. 발표 내용의 골자는 공교육을 정상화하여 사교육비를 경감시킨다는 것이 그것이다. 중요 대책으로 e-learning 체제 구축과 교육방송에 대한 지원강화 등이었다. 폐일언하고 공교육의 일차적인 목표는 학생들에게 지식 정보화시대를 살아갈 덕성과 지식을 균형 있게 갖춰주는 일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오직 명문대학에 대한 입학과 대학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를 희망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학교와 학부모의 요구가 상충되는 데서 모든 교육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편리와 풍요를 추구하는 학생들과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학교 현실 또한 이러한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여기에다 설상가상으로 지식의 수명과 주기마저 급격하게 짧아지면서 학교의 권위가 추락한 것도 공교육 붕괴의 한 요인이 되었다. 내면의 정신적 사고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에만 더 열광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공교육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반면 사교육시장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선택의 문이 무한정 열려있고, 학습집단을 자유자재로 설정하여 가르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때문에, 학업 성취도를 쉽게 높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뿐만 아니라 사교육은 공교육에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최상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절대적 호감을 받고 있다. 맨 처음 교육시장에 신자유주의 개념이 들어왔을 때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던 많은 사람들은 시장경제원리를 경계했었다. 그러나 2006년 현재 세계가 이미 무한 경쟁 속으로 진입했고, 그로 인해 각 나라들에서 입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결국 공교육은 시대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길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따라서 무한경쟁 시대에 공교육기관만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안일한 생각은 버리고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너나없이 총력을 기울여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우리의 공교육시장이 사교육시장과 경쟁할 수 있도록 교육 여건을 충분하게 갖추어줘야 한다. 지금의 낡은 교육 시설을 첨단시설로 교체해주고 새로운 교육자료의 개발과 학습방법 구안을 서둘러 보급해야한다. 아울러 수업을 잘 하는 교사들에 대한 충분한 인센티브가 주어져야한다. 둘째로 학생이 학교를, 학교가 학생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과감한 개방이 이루어져야한다. 그동안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평준화제도 또한 이 시점에서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학생의 모집, 수준별 수업의 활성화, 교육과정의 내용과 편성 등에 대한 선택권도 일선 학교에 돌려주는 것도 검토해 봐야 한다. 점차 단위학교장의 책임경영제가 확대되는 추세에서 개인의 능력과 취향에 맞는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모든 커리큘럼이 대학입시 위주로 되어 있는 지금의 교육현실 타파는 두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 셋째로 교육의 주체인 학교와 교사들의 의식 변화이다. 즉 변화의 물결에 대한 적극적 수용이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본인이 근무하는 학교와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냉철한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 교사들은 사회의 지도층으로서 높은 자긍심과 시대적 소명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여 아이들을 가르쳐야한다. 또한 새로운 수업 기술과 학습 내용을 습득하기 위해 각종 연수를 비롯한 자기개발에 게을러서는 절대 안 된다. 변화된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을 읽고 꾸중보다는 부드러운 친화력으로 그들을 포용하여야 한다. 앞으로 나라의 운명은 분명 교육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교육을 잘 시키는 나라는 흥할 것이요, 교육을 잘못 시키는 나라는 망할 것이다. 특히 사람밖에 기댈 것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지금처럼 세계 속에서 뒤쳐지지 않고 당당하게 세계의 일원으로 우뚝 서려면 반드시 공교육을 내실화 하여 유능한 인적자원을 무한정 생산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국민 모두가 똘똘 뭉쳐 낡은 관념과 관습을 몰아내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교육환경을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여야한다.
이제 계절로는 처서도 지나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2학기를 앞두고 인사이동 발표가 끝나고 설레임으로 새 학기를 준비하면서 어떤 분은 교장으로, 교감으로 관리자로 자리를 바꾼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요즈음 학교의 권위가 무너지고 그 가운데 학교장의 권위, 교사의 권위 모든 것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는 때가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의 자리는 외로우며 구습에 젖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잘 적응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학교도 교육 조직이다 보니 지도자로 교장이 있고 교감, 교사가 역할을 수행하며 학교 교육이 전개됩니다. 그런데 최근 학교를 흔드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교육 분야는 위기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요즈음 세상이 부패하고 무능하고 흔들리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도 원칙이 없는 지도자들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칙과 고집은 다릅니다. 지도자의 능력은 변할 수 없는 원칙에 근거하며, 원칙은 인간의 가치와 품위를 높여주고 발전시키는 보편적인 원리에 근거합니다. 위기의 상황을 새로운 역사의 기회로 삼았던 많은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원칙이 있었습니다. 인간 역사가 유지되고 발전하는 근본적인 요인은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기 때문인데, 이 원칙은 인간이나 사회에서 멋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허락한 우주의 법칙, 즉 자연법칙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는 ‘오로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원칙과 기준이야 말로 역사와 사람을 바로 세워나가는 절대적인 능력이다’라고 했습니다. 지도자는 ‘이것 때문에 산다’는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것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죽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오늘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확고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핵심 가치와 원칙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은 가식이 없으며, 모든 것을 솔직하고 정직함이 주는 능력으로 자신있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느 초임 교장 선생님은 섬 지역 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부임하였는데, 정말 엉망으로 근무하는 교사가 있어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지라 수 차례 타일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말을 들어주지 않아 고민하던 끝에 하루 저녁은 마음을 강하게 먹고 다음과 같이 교사에게 접근하였다고 합니다. “난 이제 교장도 되었고 나이로 봐 살 만큼 살았으니 더 이상 욕심이 없다. 단지 너 같은 교사는 교직에 남겨둘 수 없으니 이제 나하고 너하고 저 바다에 가서 빠져 죽는 길 밖에 없다.”고 진지하게 접근을 하였답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태도를 바꾸며 “교장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한 번만 참으라고 졸라대어 하는 수 없이 그날 밤 밤을 세우며 대화를 해 선생님으로부터 앞으로 교육을 잘 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교장 선생님이 몸으로 가르친 것은 원칙이었습니다. 학교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이상 더 있겠습니까. 민주화 과정에서 얻은 것도 많지만 권위가 많이 무너지면서 가장 급속도로 변한 것이 교육현장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현장을 살리는 일에 앞장 서야 할 분들이 오늘 새롭게 자리를 옮긴 교장, 교감, 교육장님을 비롯한 여러 계층의 관리자들이라 믿습니다.
최근 일어난 몇몇 소수의 체벌 사례는 아직도 교육현장에서 잘못된 체벌의 관행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학생들의 인격과 의견을 무시한 무조건적인 감정 풀이식의 체벌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특정 사립학교에서는 체벌 교사가 교장이나 이사장과 친인척들로 구성되어 처벌을 면하는 사례도 있어 더더욱 문제가 되었다. 정작 체벌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우리 교육현장은 체벌에 의존해 왔고, 현재까지도 일부에서는 체벌이 학생들의 처벌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그만큼 체벌에 대한 의견도 분분한 것이 사실이다. 교육부는 최근 일련의 체벌 사태를 두고 체벌금지법을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교육현장의 의견을 무시한 채 무조건적인 체벌 금지법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교육현장의 교사들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교사들을 법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는 그런 집단으로 오도하는 것은 자칫 우리 선생님들이 교육자로서의 권위와 자존심을 상당히 깎아 내리는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교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학교현장에서도 이런 교육부의 지침에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한편으론 학교현장의 의견을 무시한 채 무조건식의 법제정은 교사들의 권위와 자존심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겠다는 발상은 학교현장의 선생님들을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것 아니겠어. 체벌의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 무조건 금지하는 법을 만든다는 것은 학교현장의 모습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린 것 같아.” “맞아요, 체벌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 교육환경이 매우 열악한 우리 교육현실에서는 아이들을 제대로 이끌기 위해서는 때로는 체벌이 필요한데. 너무 선진국형 모형만 따라 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게 맞는지 아무런 검증도 되지 않았는데.” “하지만 체벌이 단순히 교육적이 아니라, 폭력으로 비춰진다는 것이 문제에요. 대다수의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감정을 실어 학생들을 매질한다는 것은 문제가 분명히 있다고 봐요.” “체벌 규정 자체를 없애면 과연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변할지 무서워요. 그래도 대다수의 아이들이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체벌이 폭력적이고 비교육적인 것이라면 퇴학이나 정학은 과연 교육적인지 묻고 싶어요. 정작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 중에서 그나마 가장 잘 사용하면 교육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앞으로 그것을 법으로 금지한다면 결국 퇴학, 정학 등이 주요 벌의 수단으로 사용될 건데, 이건 정말로 아이들에게 비교육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 교육부에서는 그런 점들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요.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대다수의 선생님들은 체벌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의견을 내놓았다. 특히 체벌이 가지고 있는 비교육적인 부분은 인정하면서도 아직까지 우리 교육의 환경에서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체벌을 법으로 제정하면 마지막 수단은…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정말로 체벌을 해야될 때가 있다. 대다수의 학교 현장의 선생님들은 체벌의 폭력적인 부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회초리를 드는 경우는 상당한 정도로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학생의 인권 등이 문제시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체벌을 해서 따끔하게 잘잘못을 가려 앞으로 반성의 기회를 갖도록 아이를 유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제시하고 있는 체벌 금지법이 실시된다면 과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될 지 불 보듯 뻔할 일이다. 결국 그런 아이들은 학교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벌을 받게 된다. 그 벌인 즉은 자퇴, 전학권고, 정학, 봉사 활동 등이 거론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학교내에서 봉사활동 등의 처벌은 학생들에게 그다지 경각심을 줄만한 정도의 처벌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심한 경우에는 정학이나 퇴학까지도 가게 되지만, 실제 최근 학교 현장에서 퇴학은 규정상으로 없기 때문에 전학을 권고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결국 그런 전학은 악순환의 반복이 되고, 대다수의 경우는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 가끔은 회초리를 들어 주십시오! 가끔은 아이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때도 많다. 개인적으로 체벌은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잘 회초리의 유혹을 받을 때가 많다. 특히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지시를 따라 주지 않을 때, 학생으로서의 신분을 뛰어 넘어 과도한 행동이나 말로 분란을 일으킬 때는 참을성의 한계를 스스로 감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끔은 아이들에게서 매를 들어달라는 이야기도 듣곤 한다. “선생님 그러지 말고 회초리를 드십시오. 말로 되지 않은 아이들은 매로 다스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놈아 내가 회초리를 들기 시작하면 그것도 마치 중독성이 있어 끊기 어려운데 그래도 괜찮겠냐?” “선생님 그래도 아이들이 말로 해서 무조건 듣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가끔은 따끔하게 혼이 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해서는 안되겠지요.” 물론 최근 몇 년간 아이들을 회초리로 다스린 적은 없다. 처음 발령받고 감정에 못 이겨 몇 번 회초리로 아이들을 다스려 본 적은 있었지만, 정작 효과는 미비하였다. 이후로 그런 상황에 반복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지금은 회초리를 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런 과정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도 겪어야만 했다. 교육은 강제로 뜯어 고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아이들 교육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알아서 변화되지 않는 한 결국 생채기를 낼 수밖에 없고, 서로간에 불신만 쌓여 가게 된다. 체벌은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교육부의 안처럼 법으로 금지해서 선생님들의 사고와 행동을 자꾸만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그런 처사는 정말로 비교육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인내를 가지고 서로를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매년 4-5월과 8-9월이 되면 학교에 비상이 걸리기 일쑤다. 아폴로눈병 등 유행성 눈병이 번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대체로 새학기가 시작되는 때다. 그동안 교직생활을 해 오면서 눈병때문에 비상이 걸리지 않았던 해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만큼 학교는 유행성 눈병의 사각지대이다. 비단 학생들 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생들 사이에 유행성 눈병이 번지면서 이의 영향을 받아 교사들 역시 눈병에 감염되는 경우가 생긴다.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다른 동료교원들에게 전염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 다음주가 되면 전국의 거의 모든 학교가 개학을 할 것이다. 개학후에는 반갑지 않은 유행성 눈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올봄에도 한참 눈병으로 애를 먹었다. 학생들 중에 눈병이 발병하면 기하급수적으로 그 숫자가 늘어난다. 전교생의 1/3정도가 눈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눈병이 번지는 이유는 당연하다. 학교가 여러학생들이 집단으로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접촉이 빈번하고 같은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기 때문이다. 먼저 감염된 학생이 완치될 만하면 다른 학생이 시작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에 그 기간이 1-2개월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눈병뿐 아니라 학교는 각종 전염성 질병의 사각지대이다. 감기만 해도 그렇다. 환절기에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학생과 교사들이 많다. 계속 전염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에 특별한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도 그 대책마련이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눈병이 번지면 교육청에서는 눈병 예방대책을 각급학교에 배포한다. 물론 번지기 전에도 배포된다. 그러나 학생들이 이를 철저히 지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충분히 교육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교육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등교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 뿐이다. 다른 학생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조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학부형들도 많다. 학생들 공부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다. 억지로 학교에 등교를 하면 학교에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 그 학생들을 따로 격리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학부모들의 항의 때문이다. 학교에 등교했으면 당연히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옳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교실로 들여 보내면 이번에는 눈병에 걸리지 않은 학생들의 학부모가 항의를 한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눈병 문제는 일단 감염이 되면 대책이 없다. 따라서 예방교육을 좀더 철저히 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질병이 그렇듯이 예방을 철저히 한다고 감염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어쩔수 없이 감염되는 경우가 나온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는 눈병이 번지면 교육청에서는 매일같이 눈병감염학생수를 보고하라고 한다. 그것이 교육청에서 하는 조치의 전부이다. 눈병은 연례행사처럼 발생한다. 결국은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유행성 눈병을 예방하려면 비누를 사용해 흐르는 수돗물에 손을 자주 씻고 수건이나 컵 등 개인 소지품을 다른 사람과 함께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눈에 부종이나 충혈, 이물감 등이 있을 경우 손으로 비비거나 만지지 말고 즉각 안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다.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서 눈병을 퇴치하는 수밖에 없다. 모든 학교와 교사, 학부모가 다같이 노력할때 유행성 눈병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최선을 다하는 예방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자료 개발 등은 교육청에서 발벗고 나서 주어야 한다. 최선을 다하는 교육이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도 많다” “언론의 빅뉴스도 많다” 등등이 우리 시대의 교육의 언저리가 아닌 지 되새겨 본다. 어디를 쳐다보아도 교육의 길은 보이지 않고,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한국 교사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 것이 오늘인지. 한국 교사의 진정한 얼굴은 어디에 있는 지 그것이 의심스럽다. 50대는 한국 교사의 얼굴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교단에 발을 내디디면 그 때의 나이는 남성은 30대에 접어들고, 여성은 20대 후반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이때부터 교사의 길을 걸으면서 5년 간은 학생 지도과 교재 연구에 몰두하는 시간이 되고, 그 후 5년은 가르침에 요령을 터득해 가는 시기이기도 하고, 교사로서의 길을 조금씩 생각해 보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남성은 40대에 가까워지고, 여성은 30대 후반으로 접근하게 된다. 이렇듯 교직에 발을 뻗고 나면 세월은 어느 새 40대의 길로 접어들어 자신의 뒷걸음을 회상하게 된다. 이때부터 진급에 대한 자신의 위상을 찾기 시작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중히 여기면서 동시에 자신의 실리도 추구해 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불혹이라는 나이는 자신을 주변에 조화시켜 나가면서도 자신만을 위한 길을 가야 하는 시기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면 지천명이라고 하는 50대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야망도 어느 정도 정해지든가 아니면 정체되는 길로 가는가 하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또 나이 어린 후배 교사들이 들어옴으로써 그들에 대한 삶의 본보기를 보여 주어야 할 나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행동도 말도 참으로 조심스러워져야 한다. 50대는 교육의 간판스타의 위상에 들어야 한다. 이 시기는 교육계에 발을 내 디디고 난 후 정상의 위상을 자랑하는 시기이다. 이순이라는 나이는 이미 정리를 하는 시기이기에 50대는 교육의 최정상의 위치라 할 수 있다. 학생을 지도하는 인성교육에 있어서나 교과서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나 최상의 베트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50대는 이 시대의 교육계의 간판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썩고 부패했다고 퇴출당하고 정리 해고의 대상 1호라는 보이지 않는 오명까지 입에서 입으로 오가는 우리의 현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존경받아야 할 대상이 존경은커녕 지탄의 대상으로 간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교직을 수행하는 데 방만한 자세로 임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미래를 내다볼 줄 모르는 현실안일주의를 추구만 했기 때문일까 그 답은 어디에 있을까? 50대에게 물어보면 시대를 탓하고, 40대에게 물어보면 교육부를 탓하고, 30대에게 물어보면 사람을 탓하고, 20대에게 물어보면 실력을 탓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 교사의 얼굴은 부활의 50대다 세월을 안고 달려온 지천명 교사! 그들이 한국의 고난의 짐을 다 헤쳐온 시대의 얼굴이다. 6.25 이후의 암울한 가난과 배움의 황무지에서도 그래도 배움을 추구한 세대들의 집단이 50대다. 그들은 신세대의 전자 장비를 잘 다루지 못해도 신세대의 신지식을 고루 갖추고 있지 않아도 교육이 무엇이며, 진정한 삶의 실용 교육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에서 신세대에 비해 새로운 부활을 꿈꾸고 어려운 상황도 극복해 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일지 몰라도, 학교에서 교장이 '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한 나라의 우두머리였던 왕이 누리는 절대 권력에 일개 학교 교장 자리를 견줄 수야 없지만, 학교라는 특수 집단 속에서 교장 자리는 가히 절대적이라 할 만큼 힘을 가진 자리였고 그에 따라 교장 개인이 누리는 위세 또한 막강했던 것이다. 그래 그 시절, 교장이 갖고 있는 막강한 힘 앞에서 쩔쩔매는 교사들의 움츠러든 모습을 떠 올리노라면,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왕 앞에서 잘 보이거나 살아남으려 머리 조아리는 신하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교장 자리가 그렇게 대단하다 보니, 뜻 가진 사람이라면 너도나도 교장 한번 해 볼 욕심에 아이들 가르치는 본업보다는 승진에 필요한 점수 따기에 혈안 되기 일쑤였다. 상전벽해라 했던가. 세상이 좋아지고 또 좋아져서 한 나라의 대통령도 자신이 가진 권력에 상응한 힘의 사용에서 한계를 느낄 정도로 백성들의 힘이 커진 나머지 옛날처럼 고분고분 따라주지 않으니까, "못해먹겠다"고 투정하는 판이 되다보니 학교인들 별 수 있겠는가. 교장 노릇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권위의 추락을 맛볼 수밖에. 일례로, 도덕적 권위나 전문적 지식 없이 구시대적 관료의식과 형식적 권위로만 조직을 이끌고자 할 경우, 목소리가 한껏 커진 선생님들로서는 아무도 그 지시나 명령에 순순히 따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 관리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개선과 개혁을 당당히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상황이 이렇게 바뀌다 보니 학교 책임자로서 교장의 말이 평교사들에게 잘 먹혀들지 않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고 그로 인해 소신 있는 교육행정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경우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래 옛날에는 서로 해보려고 달려들던 그 대단한 교장자리도 요즘은 '못 해먹을'자리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시대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관리자는 조직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과감히 부정되고 비판받아 마땅하기에 능력 없고 무소신한 관리자로서의 교장들까지 덮어놓고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문제는 낡은 계급적 권위나 질서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기존 관리자에 대한 불신풍조가 학교사회를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조직으로 거듭나게 하는 발전적 지양의 형태로 나아가기보다 이기적 보신과 현실적 안주를 우선하는 일부 교사들의 자기합리화 세태를 조장하는 등 예기치 않은 부정적 폐해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옛날처럼 우리 교단이 본연의 염불보다, 승진이나 치부 같은 잿밥에 눈이 어두워 서로 교장교감 되려고 지나치게 경쟁하고 그로 인한 조직 또는 개인간의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결코 방치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경쟁체제 속에서 스스로의 능력을 키워 자기성장을 도모하는 차원의 경쟁유인책은 교육발전을 위해서도 장려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최근의 일선 교단분위기는 공교육위기나 학교붕괴, 교권추락과 같은 현실적 위기와 맞물려, 위기타파를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욕과 고민보다는 그럭저럭 이 혼란과 무질서적 상황을 넘기고 보자는 현실안주적인 시각과 명철보신의 태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래 웬만큼 가진 것 있고 먹고 살만한 경우, 일만 많고 해먹기 힘든 교장 교감 되려하기보다는 주어진 시간, 교실에 들어가 수업이나 해주면 임무를 다한 것으로 여기는 '편한 교사'로 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학년 초에 학급 담임을 임명하고 싶어도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고, 부장 보직교사를 임용하고 싶어도 과중한 업무에 책임만 무겁다보니 해 보겠다 덤벼드는 사람 아무도 없는 나머지, 한 사람씩 붙들고 담임 좀 해 달라, 부장 좀 맡아 달라며 교장 교감이 사정하고 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지기까지에 이르렀다. 지나친 기우일지는 몰라도 이대로 가다가는 일할 사람 부족으로 학교기능이 정지될 수도 있고 학교무용론이 대두될까 두렵기조차 하다. 교장 교감의 허세적인 권위, 독선과 위압적인 태도는 바로 잡혀져야 마땅하고 그런 관리자가 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과거에 얽매인 일부 교장 교감의 구시대적 작태를 청산하여 새로운 학교 지도력을 구축하는 일과는 별도로 어떤 이유로건 학생교육에 대한 선생님들 개개인의 책임과 열정의 불길이 식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학교관리에서 드러나는 지도력의 위기가 단순히 교장이나 교감 같은 관리자 그룹의 무능이나 잘못에 있다기보다, 마땅히 해야 할 직분을 소홀히 한 채 편하게만 살려는 일부 이기적인 사람들에 의해 충동질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에 유념하면서, 오로지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 본연의 목적을 중심으로 학교 구성원 모두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지도력의 구축이 이루어져서, 흔들리는 학교교육이 바로서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어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얼마 전 교육위원으로 당선된 J 교육장의 친필 편지다. 그의 글씨 처음으로 보았다. 며칠 전, 하계 교감연수회에서 있었던 그의 말이 떠 오른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글씨체를 악필이라고 말한다. 지금보니 악필은 아니고 개성이 있다. 자세히 보니 정감이 가는 글씨체다. 그는 특강에서 본인의 경험을 털어 놓는다. 초등학교 때 하도 글씨를 못 써 담임 선생님께서 겨울 방학 숙제로 글씨 쓰기를 내어 주셨다고 한다. 자기 나름대로 악필을 고쳐 정성껏 과제를 해 갔는데 어떻게 되었을까? 담임 선생님의 한 마디 말에 그는 악필 교정을 포기하고 말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 네가 쓴 것 아니지? 네가 이렇게 잘 쓸 수 없어! 누가 대신 써 주었니? 솔직하게 말해 봐!” 만약, 담임 선생님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너, 정말 잘 썼구나! 그래 너도 잘 할 수 있구나! 이렇게 네가 글씨를 잘 쓰는 줄 선생님은 미처 몰랐단다. 앞으로 계속 잘 할 거지?” 담임 선생님의 한마디 말이 그에게 있어 악필과 명필의 분수령이 되었던 것이다. 전자가 그에게 좌절과 포기, “맞아, 역시 나는 안 돼!”라는 실망감을 준 데 반하여 후자는 희망과 자신감, “그래, 나도 할 수 있어!”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 주는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가 학생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다. 학생에게 잠재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인정하는 그 한마디, 그것이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 절대 필요한 것이다. 학생뿐이랴. 몇 년 전 정년퇴임한 L 교육장. 그는 도교육청 장학사 시절, 교육감 훈치사를 담당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어른도 칭찬을 좋아한다고 한다. 한 번은 교육감 치사를 써서 결재를 받는데 초안 문구를 교육감이 고치더라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고친 글이 더 좋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감님, 그렇게 고치니 글이 더 자연스럽고 좋아졌네요.”라고 했더니, 교육감이 미소를 지으며 “그래, 정말 좋아졌어? L 장학사 글 보는 안목이 높은데….”라고 칭찬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 이후론 교육감과 염화미소가 통하여 훈치사 결재가 원만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칭찬은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고 그의 능력을 인정하는 긍정적 에너지로 가득 찬 말이다. 격려는 어려움에 처한 상대방에게 용기를 복돋워주고 다독거려 주는 말이다. 또한 칭찬은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고 삶을 윤택하게 하여 주니 칭찬의 ‘말 한마디’는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필자도 교사 시절, 전문직 시험에 몇 차례 떨어져 의기소침해 하고 있을 때, 도교육청 모 장학관이 “이 부장, 힘 내! 이 부장은 충분히 할 수 있어!”하면서 어깨를 두드려 준 적이 있었다. 그 덕분인지, 재기에 성공하여 장학사를 거쳐 오늘 여기까지 와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에 의하면 격려가 칭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한다. 칭찬은 결과만을 놓고 평가하는 것이지만 격려는 상대방이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의지를 북돋아 주고 행동의 동기를 불러 일으켜주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라 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칭찬과 격려가 활기차게 살아 움직였으면 한다. 그 칭찬과 격려의 ‘말 한마디’에 우리가 사는 곳은 즐겁고 행복하고 살맛나는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29일, 서울시 교육청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하여 주요 언론에 기사화가 된 적이 있다. '금년 말(지난해 이므로 2005년말을 이야기 하는 것임)까지 시내 모든 초·중·고등학교의 교실에 최신 천정형 냉·난방 기기를 설치'라는 제하의 기사였다. 많은 학교의 학생들과 교원들이 잔뜩 기대를 걸었었다. 실제로 그 당시에도 일부 학교에서는 천정형 냉·난방 기기가 설치된 학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 추진상황은 감감 무소식, 도리어 금년 들어서는 '좋은 학교 만들기 자원학교'를 선정하여 일부의 학교에만 예산들 투입하고 있다. 그 학교들도 시설 개, 보수에는 예산을 사용하지 않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이 원하는 사업에는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미 개학을 한 학교들의 요즈음 현실은 정말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교실 천정에서 돌아가고 있는 3-4대의 선풍기로는 무더위를 이기기 어렵다.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땀을 뻘뻘 흘리는 학생들로 가득찬 학교의 교실에서 정상적으로 수업을 한다는 것은 보통의 인내를 가지고는 어림없는 일이다. 주변의 학교를 살펴 보아도 지난해에 발표한 사업이 진행된 학교를 찾기 어렵다. 교실환경개선을 하겠다고 발표만 해놓고 시행하지 않고 있는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이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이미 교사들은 지난해의 발표를 잊고 있었다. 언제 그런 발표가 있었느냐는 반응이다. 그런 발표가 있었더라도 믿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공교육이 부실하다고 난리법석이지만 이런 것 하나만 보더라도 여건이 완비되지 않았다는 것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학원가면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데, 학교는 왜 이러냐'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교사들만 보면 에어컨 설치는 언제 하느냐고 묻곤 한다. 그 당시 서울시 교육청의 발표는 냉·난방 시설만이 아니었다. 교실의 조명을 현재 150룩스 기준에서 300룩스로 향상시키는 사업도 함께 진행한다고 했었다. 그 문제 역시 감감 무소식이다. 책임지지도 못할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것도 발표한지 1년여가 지나고 있다. 현재의 추세라면 금년 말까지도 사업 진행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얼마전 학교평가관련하여 학부형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중 학교에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 어느 학부형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시내버스만 타도 에어컨이 설치되어 쾌적하고 시원한데, 학교교실에 에어컨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학교 교실에 에어컨을 설치해 주십시오.' 지난해에 서울시교육청에서 발표한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여기를클릭하십시오.
지난 목요일 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TV를 시청하게 되었다. 웬만해서 TV를 시청하지 않던 내가 TV를 시청하게 된 동기는 막내 녀석의 성화 때문이었다. 막내 녀석은 꼭 보아야 할 프로그램이 있다며 모 TV 방송사의 코미디 프로그램에 채널을 맞추었다. 그리고 막내 녀석은 TV를 시청하는 내내 재미가 있어서인지 연신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의 마지막 코너는 교사인 나에게 불쾌감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내용인즉 꼴통학생들과 그 아이들을 명문대학으로 진학시키려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재미있게 풍자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지켜보던 막내 녀석이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아빠도 학교에서 형, 누나들을 저런 식으로 때려?" 순간 막내 녀석의 갑작스런 질문에 할 말을 잃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플라스틱 깔때기로 학생들의 머리를 때리는 선생님의 그런 모습이 초등학교 학생인 막내 녀석에게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녀석에게 그 내용에 대한 상황 설정을 이야기해 주었지만 녀석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계속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학생체벌 문제가 사회 이슈로 되고 있는 작금 그와 같은 장면은 시대적 조류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더욱이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어 시청률 또한 높은 걸로 알고 있다. 한편으로 초등학교 막내 녀석의 눈에 우리나라 모든 선생님들이 그런 식으로 비추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특히 그들의 대화 내용 중에는 비속어가 많아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이 그것을 배워 무분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어느새 막내 녀석은 대화에 나온 몇 개의 비속어를 암기라도 하려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물론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전해주려는 메시지는 공감할 수 있으나 거기에 따른 어휘사용과 선생님의 지나친 행동은 우리의 학교 현장을 오히려 왜곡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TV 프로그램의 이 코너를 두고 지금 네티즌들의 공방이 뜨거운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현실성을 배제한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무조건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하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극도로 불안한 시기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따라서 국민들의 입에서는 세상을 한탄하는 쓴 소리만 나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국민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방송사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웃는 그날까지 방송사는 노력하라”
온 나라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난리법석이다. 경마, 경륜, 경견, 카지노 등 레저의 허울을 쓴 도박장에 ‘한몫’ 잡으려는 사람들이 몰리더니 그 와중에 ‘바다이야기’가 터진 것이다. 최근 도박성 성인오락실이 주택가 깊숙이, 심지어는 온라인 도박 게임으로 안방까지 파고들어 급기야는 세탁소와 약국보다 오락실이 많아지는 판국이 되었다. 온 나라가 ‘도박공화국’이 된 책임은 '조사하면' 다 나오겠지만 이처럼 국민을 도박판에 빠지게 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문화관광부를 비롯한 정부다. 정부가 경쟁적으로 IT관련 게임산업 육성정책을 내놓으면서 성인오락실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며, 불법 도박기구를 방치하고 대책 없이 상품권을 남발한 것이 도박 바람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이런 한심한 사태는 마치 우리 교육계의 모습과 흡사하다. 정부는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고 사교육 절감 방안을 추진한다면서도 오히려 우리사회를 도서관이나 학교보다 학원이 더 많은 ‘사교육공화국’으로 만들었고, 이 불명예스런 이름의 중심에 교육부가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비 비중이 정부 한해 예산의 약 6%로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한 나라, 사교육비와 불안정한 교육 정책으로 ‘기러기가족’을 양산하고 원정출산을 떠나게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고3생들이 학원에서 수능대비 집중 과외를 받겠다고 요구하면 며칠씩 단축수업을 하는 고등학교도 있다고 한다. 학교 교육과정을 포기하고 이 자리에 사교육을 불러들이는 현실이 경악스럽지만 이는 수시로 변하는 입시제도 하에서 입시에 목을 매야 하는 공교육의 서글픈 현주소다. 공교육의 내실 확보를 명분으로 한 7차 교육과정이 오히려 사교육 의존을 더욱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한 것, 사교육비를 절감시키겠다면서 오히려 학원 설립 기준과 강사 채용 기준을 계속 완화시키는 정책이 그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도입한 조기영어교육 때문에 이제는 중고교의 ‘교실붕괴’ 현상이 초등학교로 옮겨가는 조짐도 보인다. 최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방과후학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방과후 학교가 문제점도 있겠지만 공교육을 살릴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이것이라도 갖고 가야한다, 재정 지원을 할 테니 꼭 성공시켜 달라"고 말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는 결국 학교가 학원화되어 공교육의 위기만 가속시킬 우려가 크다. 바다이야기로 야기된 ‘도박공화국’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드러나자 정부는 이참에 사행성 오락을 뿌리 뽑겠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우리말 속담으로 ‘늦은 밥 먹고 파장(罷場)가는’식의 미봉책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그동안 현실을 무시한 교육정책이나 과정은 책임지지 않으면서 그 잘못된 결과는 교사와 학교에 책임 지우려 하는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교육부이기 때문이다. 세탁소와 약국보다 오락실이 많은 ‘도박공화국’, 학교보다 학원이 많은 ‘사교육공화국’이란 부끄러운 오명은 언제나 벗을 수 있을지.......
가끔 글쓰기 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컴퓨터실에 가게 된다. 요즈음 아이들 연필로 쓰는 것 보다 컴퓨터 타자로 글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컴퓨터실로 가게 된다. 물론 아이들이 글쓰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사로서 아이들이 좀 더 다양한 도구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정작 컴퓨터실에 들어서면 기분이 나빠진다. 무엇보다 기계가 돌아가면서 뿜어내는 케케한 냄새와 뜨거운 열기, 도난방지를 위해 환기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닿아 놓은 창문과 커튼으로 인한 컴컴하고 음습한 분위기, 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정작 반수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고물덩어리 컴퓨터 앞에 앉아야만 하는 우리 아이들이 처한 현실 때문이다. 컴퓨터 들여만 놓고 정작 업그레이드는… 학교현장에 새로운 운영체제를 탑재한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상관이다. 그 이전에는 몇몇 컴퓨터 관련 선생님들만 컴퓨터를 만질 수 있었지, 대다수의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컴퓨터는 그저 성적 처리용 기자재이거나 전시용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상관으로 많은 컴퓨터가 학교에 공급되었고,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컴퓨터가 애매모호한 용도로 제공되었다. 불과 6-7년 전이었으니 아마도 새천년을 즈음해서 일선 학교에 많은 컴퓨터가 공급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컴퓨터 관련 일을 학교에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년 새롭게 들어오는 컴퓨터 때문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새삼 떠 오른다. 당시에는 그런 새로운 운영체제와 프로그램을 탑재한 컴퓨터에 아이들도 교사들도 선 듯 나서서 다루기 어려운 점들이 많았었다. 따라서 컴퓨터 관련 교사 연수가 봇물 쏟아져 나와 성행 했었다. 물론 지금도 그 때보다는 덜하지만 많은 컴퓨터 관련 연수가 진행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즉 그렇게 들어온 신형 컴퓨터는 불과 2-3년 사이에 시대에 뒤떨어져 가는 구형 컴퓨터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대당 백만원이 넘는 컴퓨터들이 제대로 사용 가치에 부응하기도 전에 고물덩어리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들여놓은 컴퓨터를 모두 폐기처분하고 새로운 컴퓨터를 다시 들여놓는다는 것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낳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시킬 예산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었다. 선생님, 제발 인터넷 속도 좀 올려 주세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다수 학교 현장의 컴퓨터실에 갖추어져 있는 컴퓨터들은 컴퓨터 교체 시기를 놓친 사양이 뒤떨어진 컴퓨터가 대부분이다. 물론 신설학교나 정보화 관련 학교는 다행히 최근 나온 컴퓨터를 갖추어 놓을 수 있는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학교는 사양이 현저하게 떨어진 컴퓨터를 갖추어 놓고 방치하다시피 한 경우가 허다하다. “선생님 제발 컴퓨터 좀 바꿔주세요. 이거 원 타자 연습 밖에 할 게 없으니…” “여기가 컴퓨터실이 맞기나 한가요. 차라리 컴퓨터 고물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네요.” “이놈들아 그래도 몇 년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돈을 들여 구입한 컴퓨터들인데, 모두 고물로 취급하다니….” “사용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몇 년전에 몇 백만원 주고 사면 뭘해요.” “인터넷도 제대로 안 될 뿐더러, 된다손 치더라도 이거 원 속도가 너무 느려서….” “나라 경제가 어려우니, 어쩌겠니. 그렇다고 학교에서 뾰족하게 살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업그레이드를 하자니 그 비용도 만만치 않고….” 아이들의 성화에 반 핑계로 겨우 넘어가기 일쑤이다. 다행히 한글 타자 프로그램이나 한글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서 글쓰기 정도만 겨우 할 정도였다. 학교 장학행사나 외부 손님들이 와서 인터넷을 활용을 수업실연을 보여줄 경우에는 그날 학교는 컴퓨터 바꾼다고 일대 아수라장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론 고물덩이 컴퓨터 한 대가 학교의 얼굴일 수도 있다? 아이들이 학교를 불신하고 믿지 않아서 사교육비가 증가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우리 현실이다. 컴퓨터 공급 문제부터도 그렇다. 갈수록 많은 정보를 컴퓨터를 통해서 배우고 익혀가는데, 그런 아이들에게 이전 구닥다리 컴퓨터를 들이대놓고 수업을 한다면 이는 곧 우리 학교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격이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불신하고 외면하는 하나의 결정정인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들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 교육행정의 현실은 그런 기반을 제대로 닦고 있지 못하는 듯 하다. 고물덩어리가 되어 버린 컴퓨터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학교를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건 분명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선생님 PC방 가서 숙제 하게, 자율학습 좀 빼 주세요. 학교 컴퓨터로는 이거 원 숙제를 할 수가 없으니….” “숙제 하려고 PC방을 간다 말이가, 집에가서 하지.” “집에 컴퓨터가 고장나서 말이에요. 제발 좀 허락해 주세요. 숙제 못하면 수행평가 점수 못받는단 말이에요.” 수행평가 때문에 PC방에 가야하는 우리 아이들이 있는 한 학교는 아이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경우지만, 허다하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학교 현장의 현실이다. 물론 나라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무조건 학교에 신형 컴퓨터를 공급해 줄 수 없는 상황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신중하게 컴퓨터 공급 계획을 세우고 집행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일선 교육 행정 당국이 적재적기에 컴퓨터를 공급하고, 나아가 업그레이드 문제도 고려했다면 조금 더 재정적인 낭비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불만도 감소시켜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컴퓨터는 분명 하나의 학습 수단이다. 수단이 목표를 전도해서는 안 되지만, 때론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 수단이 전부로 간주될 수도 있다. 가끔은 그런 우리 교육현실이 개탄스럽지만, 그것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정작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는 학교 환경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