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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방학 중 각종 캠프(14개반) 합동 개강식 서림초등학교(학교장 이병로)는 2011년 새해 벽두부터 인성이 바탕이 되는 창의 인재를 키워내기 위한 독서, 기초학력, 충남학부모교육도우미제 캠프 등 14개 캠프, 참여 인원 200명 학생들을 대상으로 1월 4일 학교도서관에서 교직원과 학부모, 캠프 참여 학생들이 같이한 가운데 합동 개강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개강식을 가진 14개 반은 정원 20명인 독서캠프 6개 반과 정원 10명인 기초학력증진반 6개 반을 운영 총 12개 반이 운영되며 또한 충남학부모교육도우미제로 운영되는 파랑반 2개 반이 포함되어 있으며 운영기간은 짧게는 1주 길게는 4주 프로그램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3가지 종류의 캠프의 운영을 위해 학교에서는 부족한 예산을 마련 학생들의 교재와 실습 재료 등을 구입했으며, 교사들은 학년별로 방학 전부터 캠프 운영을 위한 교수 방법 및 교수 계획을 구안하는 등 캠프 운영을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해왔다. 또한 많은 학생들이 겨울 방학 중에도 등교하게 됨에 따라 학생들의 등하교 안전 통학 및 각종 안전 확보를 위한 '안전선생님'이 활동하게 되며 청결한 학습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청소 용역도 방학 중 활용되고 있다. 창의․인성 교육의 추진을 위해 혹한기인 겨울방학 중에도 각종 캠프 운영을 주관하고 있는 이 교장은 “방학 중에도 미래 사회를 개척해 나갈 인재 육성이라는 공교육의 책무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각종 캠프 운영에 여념이 없는 교사와 관계자들을 격려하였다.
새해 첫날 신문부터 엉터리 국어 표현을 보았다. 2011년 1월 1일 중앙일보 신문에 ‘마굿간’이라는 표기가 보인다. 그것도 표제어로 활자도 제법 크게 나왔다. 이는 ‘마구간’이 바른 표기다. 이는 한자어이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표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간단하고 쉬운 표기다. 신문뿐만 아니다.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MBC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이 프로는 가수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심사위원 앞에서 직접 노래를 하고 즉석에서 합격과 불합격의 판정을 내린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가수지망생의 노래 실력과 함께 심사위원의 심사평도 화제가 되고 있다. 2011년 1월 1일 12시 30분 스페셜 방송분에서도 심사위원으로 나온 가수 신승훈은 출연자에 대해 미래 가능성까지 보고 선발한다며 멘토를 자원했다. 그러면서 계속 ‘가르키고 싶을 만큼 욕심나는 ~’ 표현을 하고 자막에도 이렇게 썼다. 참 어이없는 말이고, 황당한 자막이다. 이정도면 실수라기보다는 방송 사고에 가깝다. 이 부분은 ‘지식이나 기능, 이치 따위를 깨닫거나 익히게 하다’는 뜻의 ‘가르치다’를 써야 할 자리다. ‘가르키다’는 사전에 없는 말이다. 참고로 우리말에 ‘가리키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손가락 따위로 어떤 방향이나 대상을 집어서 보이거나 말하거나 알리다.’라는 뜻이다. 신문과 방송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국어정서법에 대한 인식은 위험한 구석이 있다. 학교는 연말에 방학을 앞두고 학생생활기록부 작성을 한다. 학급담임 및 교과담임은 학생의 학교생활에 대해 문장 기술로 기록을 남긴다. 학생의 미래와 관련된 것이어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이 일을 하다보면 정서법이 틀리는 경우도 있고, 문장 수식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지적을 하면 보통 선생님은 지적에 대해 고마워하고 고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일부 선생님은 자신이 국어선생이 아니기 때문에 흉이 되지 않는 문제라고 한다. 국어정서법의 올바른 사용은 문제는 국어선생님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어문 규정은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표준 발음법 포함),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으로 구성되어있다. 어문 규정은 교육인적자원부가 관리하지 않는다. 문화관광부 소속의 ‘국립국어원’에서 이 업무를 맡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이 규정은 교육과 관련되어 있어 잘못 관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관광부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어문 규정이 교육을 시키는 차원을 떠나서 전 국민이 반드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법에 맞지 않은 언어 표현이 난무하는 것은 매사를 자의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부정확한 표현, 다듬어지지 않은 말을 아무 죄책감 없이 사용한다. 어법에 맞는 언어 표현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적 의무 사항이다. 바른 언어생활은 한 순간에 실현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꾸준한 국어 학습이 있어야 한다. 특히 독서 습관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국어 학습은 국어사전을 활용하면 효과가 크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사전을 펴보는 습관이 없어졌다. 말의 정확한 용법을 알기 위해서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학교에서도 국어 시간에 사전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 없다.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시험 준비에 몰두하다보니 소홀이 되고 지나친다. 국어 시간에 사전을 활용한 어휘 학습은 시험 준비보다 더 중요한 기본 습관의 범주다. 모든 것에는 기본이 있듯이 올바른 국어사용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 사전을 활용한 수업을 안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일상생활은 물론 바른 국어 교육을 위해서라도 커다란 반성이 있어야 한다.
인류의 오랜 꿈은 무병장수였다. 의술의 발달로 그 꿈은 이루어졌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100세 쇼크'란 단어를보니 갑자기 노후가 걱정된다. 이명박 대통령도 신년 특별연설에서 '노년층 복지'를 강조했다. 정부에서도 '100세 쇼크'에 대비해 새로운 복지정책을 만든다는 소식이다. 노후가 철저히 준비된 사람은 수명 연장이 축복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장수가 오히려 재앙이 된다. 오늘자 신문을 보니 '장수(長壽) 리스크'란 말이 나온다. 오래사는 것이 위험하니 이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경우, 은퇴후 생활기간이 예상보다 배 가까이 늘었는데 절반이 노후 재테크를 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실한 노후 준비를 지적하고 있다. 길어진 노후에 양로시설 입주자도 보증금을 빼내 생활비로 충당한다는 보도이다. 심지어 대기업 간부 출신도 택배기사, 경비직에 도전한다고 한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의강창희 소장의 '100세 준비 5계명'이 눈에쏙 들어온다.①현역 기간을 최대한 늘려라 ②부동산 줄이고 금융자산 늘려라 ③소득의 삼층밥을 지어라 ④건강관리가 진짜 재테크다 ⑤100세 준비는 20대부터. 여기서 삼층밥은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말하는 것으로 노후 소득원을 삼중장치로 해 놓으라는 조언이다. 오늘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것이 현실로 다가온 느낌이다. 다행히 공무원은 연금제도가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퇴직 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오늘의 화제다. 가장 확실한 노후 대비는 평생 현역이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명예퇴직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필자는 얼마 전 IMF 때 명예퇴직한 분을 만난 일이 있다. 그 분은 이렇게 말한다. "그 당시 직장이라는 나무를 끝까지 붙들고 있었어야 하는데 나무에서 그냥 내려와 버렸다." 후회하고 있다는 말이다. 직장이 바뀌더라도 보수가 적더라도 직장생활을 계속 해야 노후생활이 보장된다는 말로 들린다. 직장에서 승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오래 다니느냐인 것이다. 오래다니는 것이 경쟁력인 것이다. 노동력을 갖고 노동시장에서 오래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 노인들은 직장 취업에 있어 눈높이를 낮추고 과거의 체면을 버려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정부에서는 청년일자리 만들기가 우선이지노인 일자리는 그 다음으로 여기고 있는 듯 하다. 과거엔 일찍 세상을 떠날지 모를까 봐 불안해 했는데 지금은 너무 오래 살지 모르는 위험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필자의 경우, 62세에 정년퇴직하여 20년을 더 산다고 가정했는데 100세까지 수명이 연장된다니 기쁨이 아니라 충격으로 다가온다. '100세 쇼크'에 충격을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100세 쇼크'에 대비해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새로운 교육의 과제가 등장했다. 여기에서도 유비무환은 그대로 적용된다. 준비된 교육이 필요하다. 준비된 노후, 준비된 사람은리스크를 잘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의 한 사람이라 그런지 “헌신적 선생님들이 희망을 만듭니다”라는 어느 신문 ‘올해의 스승상 시상식’ 기사는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러나 그런 일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사를 ‘껄짝’ 취급하는 경우가 많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얼마전 (사)한국효도회 전라북도지부가 주관·시상한 제4회효도편지쓰기 시상식에 다녀왔다. 물론 내가 지도한 학생들이 상을 받게 되어 인솔한 것이다. 지난 해 7월 10일부터 9월 15일까지 실시한 공모전(기간이 연장되었다곤 하나)인데, 시상식은 연말이 다되어서야 열렸다.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괜히 왔지 싶은 생각이 물밀 듯 밀어닥쳤다. 이례적으로 교육감이 직접 참석, 시상하여 눈길을 끌었지만 회장인사·격려사·축사, 심지어 사회자 멘트 어디에서도 지도교사 노고에 대해 고맙다는 의례적 인사 한 마디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백행(百行)의 근본이 ‘효’임을 강조하는 주최측은 학생들의 수상에 교사의 지도가 숨어 있는지는 모른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학생 대상 시상식에서 “지도해주신 여러 선생님” 같은 격려·위로의 말 한 마디 없겠는가? 그런데 의외로 그런 경우가 많아 씁쓸함을 더해준다. 군산교육발전진흥재단(이하 진흥재단)의 예체능 장학생 선발도 그중 하나다. 먼저 군산시의 예체능 장학생선발사업에 대해선 찬사를 보내고 싶다. 여러 지자체들이 하는 성적위주의 수월성 교육 예산지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진흥재단에서는 2008년 135명 1억 5900만 원, 2009년 187명 1억 6,800만 원 등 예체능 분야 우수학생 322명에게 총 3억 4,6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지난 해 필자가 추천한 제자 2명도 각각 40만 원과 30만 원의 장학금을 받은 바 있다. 말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다. 장학금 받고 기뻐하는 제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교사로서의 보람이 충만하지만, 그러나 아쉬운 점은 있다. 초ㆍ중학교나 전문계고에서 학생들이 혼자서 음악ㆍ미술ㆍ체육, 그리고 백일장대회나 공모전에 나가 상을 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장학금 신청 자체가 교사의 도움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셈이다. 사정이 그런데도 학생들을 장학생이 되게 한 교사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묵묵히 헌신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의 사기를 꺾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학생들이 감사해 하고 학부모들이 고마워하는 전화 따위 인사조차 없는 것도 주최측의 그런 자세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억측일까? 당연히 교사들이 꼭 뭘 바라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체능 분야 특기지도는 수업처럼 의무사항이 아니다. 학생들 재능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교사로서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닌 이유이다. 학생대상의 백일장이나 공모전을 실시하는 지자체 및 중앙부처의 지도교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길 기대한다.
매년 4, 5월 중 공시하는 학교 교육과정 운영계획, 특별활동 및 체험활동 일정 등을 내년부터 2월에 공시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그러나 교원 인사나 학급편성 일정 상 무리가 따른다는 일선의 비판이 일고 있다. 교과부는 초·중등학교의 교육계획 공시 시기를 앞당기는 내용의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5일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그동안 매년 4월에 공시하던 교과별(학년별) 평가계획에 관한 사항이나 5월 중 공시하던 교육과정 편성․운영․평가계획, 교과․재량․특별․체험활동계획, 교육운영 특색사업계획, 방과후학교 운영계획 등이 모두 2월에 공시된다. 시도교육청과 학교의 준비기간을 고려해 실제 적용은 내년부터다. 3월 교원 인사이동 등으로 공시 내용이 변경된 경우에는 변경 정보를 다시 학교알리미 사이트에 올리도록 할 예정이다. 이밖에 마이스터고와 특서와고 졸업생의 진로현황을 별도 항목으로 신설해 졸업생의 진로현황을 상세히 공시하도록 했다. 또 ‘학교규칙’ 항목과 ‘학교규칙 외 학교운영에 관한 규정’ 항목을 통합해 공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은 “교원 인사시기를 무시한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한다. 서울 대방중 이창희 교사는 “2월 인사로 교장이 바뀌고 교사가 새로 전입해 오는 상황에서 교육계획은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다시 고치면 된다지만 학교의 신뢰성을 해치고 업무만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3월 중순경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장은 “인사를 12월로 앞당기든지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대인은 세계 26위의 평범한 지능지수를 가지고(유대인의 평균IQ는 95. 한국인의 평균IQ는 106으로 세계2위) 세계 0.1% 인구로 15%가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 냈다. ‘아인슈타인, 에디슨, 마르크스, 프로이트, 스필버그, 카프카’ 이들 모두가 유대인이다. 이들 말고도 미국 유명 대학 교수 중 30%가 유태인이며, ‘미국을 지배하는 것은 백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초강대국 미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와 같이 평범한 아이도 세계 최강의 인재로 키워내는 유대인들의 교육방법은 우리교육에 주는 시사가 크다. 그들의 교육 원칙은 분명히 우리와는 달랐다. 먼저 교육의 기본적 인식이 단순한 암기나 자기 아이 중심의 성적을 올리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으로 존중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 격려해주며, 약점보다는 강점을 더욱 칭찬하여 학습동기를 강화시키고, 인내심을 가지고 오래 기다려 주고는 교육방법이다. 한 마디로 남보다 뛰어난 아이가 아니라 남과 다른 아이로 키우는 교육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다른 아이와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를 찾아내어 그 점을 발전시켜주기 위해 노력한다. 결코 자녀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은 것을 배우며 판에 박은 듯이 자라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즉, 개성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것이 아이의 장래에 유익하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놓고 우열을 다투는 한, 승리는 소수만이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하면서 모두 공존할 수 있다. 이 같은 점은 우리의 자기 자식만의 이기적 교육방식과 대조를 이룬다. 유대인 교육의 특징은 탈무드식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핵심은 바로 ‘질문과 토론’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짤막한 이야기 형식으로 된 탈무드의 내용을 하나 읽은 후 각자의 생각대로 논리적 공격과 방어를 한다. 상대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치밀하고 빈틈없는 방어 논리를 개발하는 동안 진짜 사고력과 사고력이 키워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매일 이 토론을 해온 아이들은 갈수록 왕성한 호기심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녀교육에 관심은교육의 과정보다 결과인 성적에만 있다. 그 대신에 유대인의 부모들은 자녀교육을 위하여 ‘질문과 토론’에 더 신경을 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유대인 부모들은 선생님의 말씀에 말없이 듣기만 하는 것보다는 “궁금한 건 언제든지 질문하라”고 격려한다. 이처럼 유대인 부모들은 우리의 부모와는 달리 자녀가 스스로 의문점을 찾아내고 해답을 찾아가는 자기주도적 학습 자세가 자녀의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능력으로 믿고 있다. 이처럼 유대인의 교육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학교보다는 학원에게 맡긴 나머지 성적 중심의 근시안적인 경쟁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선생님 강의에 귀 기울여 듣고 많이 기억하여 빨리 답을 찾아내는데 교육의 초점을 두는 반면에 유대인의 교육은 스스로 질문을 하여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발견하는데 초점을 둔다. 그 결과 이제까지 우리 교육은 높은 점수만 맞추는 ‘집어넣은 교육’으로 헛 똑똑이만 키워낸 셈이다. 이제는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할 수 있는 ‘끄집어내는 교육’ 즉, 유대인의 탈무드식 교육에 주목해야 한다. 탈무드식 자녀교육의 핵심 원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사면 벽을 책으로 채워라. 즉 어린 시절의 강렬한 집중력을 텔레비전에 빼앗긴 아이는, 책 읽은 아이를 평생 못 따라간다. 둘째, 독서 후에는 반드시 ‘탈무드식 토론’을 나눠라. 읽은 내용을 잘 정리하는 암기나 다독이 아니라, 책과 다른 의견을 찾아내는 토론이 창의력을 키운다. 셋째, 무엇을 배웠는지 묻지 말고, 무엇이 궁금한지 물어라. 의무적으로 ‘오늘의 질문’을 찾아내는 습관이, 평생 자기주도적으로 성장하는 핵심 원동력이다. 넷째, 공동체의 규율과 예의범절을 엄격하게 가르쳐라. 예의범절이 몸에 밴 아이가 나가서 사랑 받고, 커서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중심에 설 수 있다. 다섯째, 경제 조기교육으로 돈의 가치를 알게 하라.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함을 알려주고, 어릴 때부터 저축하게 한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서도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다. 이런 비법이 당장은 자녀학습에 효율을 올릴 수도 있지만 임기응변에 불과한 나머지 학생의 장기적인 삶이나 학습력에는 반드시 역효과를 나타낸다. 이제는 우리도 교육 선진국으로 차근차근히 기초를 다지는 교육, 그리고 학생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고 해결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갖고 기다리며 격려해 주는 여유와 인내가 필요한 교육을 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유대인 교육은 오늘날 비틀어지고 왜곡된 우리교육의 현실을 잘 지적해 주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 독특한 선거 체험을 하였다. 살고 있는 아파트 동대표가 된 것이다. 능력이 있어서라기 보다는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억지춘향이 식으로 나선 것이다. 우리 동(棟)은 몇 년간 대표없이 지냈었다. 다행히 동 대표 단독 후보가 되어 주민들 찬반투표로 진행되었다.같은 출입구를 쓰는 대다수 주민들이 동의를 하여 주어 동대표가 되었다.이제 동 주민들의 민원을 듣고 봉사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 대표 회장을 역임한 퇴직한 교직선배가 권유를 한다. 이왕 봉사하는 것, 동 대표 회장에 출마하라고. 동 대표회장은 아파트 주민들이 직선으로 뽑는 것이다. 필자는 이 아파트로 이사온 지얼마 안 되어 주위 사람들과 인간관계가 넓지 못한 것이 약점이다. 회장후보로 두 명이 나왔다. 12월 29일이 선거일인데 하루 전날 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국회의원이나 시의원도 유권자를 찾아다니면서 선거운동을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타박을 주신다. 그러고 보니 선거에 출마한 사람치고는 너무 무사태평이다. 아니다. 주민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부랴부랴 배부용선거 홍보물(A4 1/2)을만들었다. 선관위에서 붙인 공보물에는 기호, 성명, 사진, 학력, 경력 등은 있지만 공약이 없다.그렇다.선거공약을 만들자."주민들의 작은 민원도 크게 듣겠습니다" "쾌적하고 행복한 아파트를 만들겠습니다" "저비용 고효율로 주민 부담을 줄이겠습니다" 퇴근 후 아내와 같이 홍보물을 돌리는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밖으로 나온 주민들은 별로 없다. 날은 어두워오고 이대로 가다가는 성과가 없을 것 같다. 궁리 끝에 지하주차장 입구에서 아파트를 향하는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며 전단지를 건네었다. "이번 회장에 출마한 기호 2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거 당일,필자와 아내는 하루종일 출장이다. 세대주를 대표하여 딸이 투표를 하였다.투표결과가 궁금하다. 관리사무소에 들어서니 이미 개표가 끝났다. 676세대 중 142세대가 투표에 참가하여 투표율은 21%. 필자는 112표를 득표하여 79%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선거관리위원들이 축하인사를 건넨다.동대표 회장이 된 것이다. 그 다음날 조그마한 당선사례 전단지를 만들었다. 국회의원, 시도의원 흉내를 내는 것이다. 당선사례 용지는 엘리베이터 입구에 한 장 씩 붙였다. 그러면서 선거에 당선된 정치인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다. 만약 내가 국회의원이 되어 당선사례를 붙인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주민들의 다수가 필자를 지지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공직에 있어서가 아닐까? 그것도 교직에 몸담고 있어서 청렴도를 믿은 것 같다. 공직자가 부패하면 그 나라는 망하고 만다. 아직도 교원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좋은 것 같다. 관리소장을 통해 공동주택 관리규약을 이메일로 받았다. 동대표 회장의 법규상의 임무를 알기 위해서다. 그래야 맡은 바 일을 수행할 수 있다.동별 대표자 등의 해임사유도 나온다.법령이나 규약을 위반하거나 업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할 경우이다. 함께 당선된감사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 분과 어느 정도 의견일치를 보았다. 사사로움을 버리자,주민들의 이익과 공익을 생각하자, 규정(규약)대로 하자, 잘못된 관행은 타파하자,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자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이제 임기 2년간 동대표들과뜻을 모아 쾌적하고 행복한 아파트를 만들어야 한다. 사사로운 이익 추구는 절대 금물이다.동대표나 동대표 회장이나 봉사직이다. 입주자들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선거공약을 지키며 봉사하려 한다. 오늘 출근하여 지역교육지원청에 겸직허가 신청을 하였다.
요즘 보도되는 교실 붕괴 기사는 그걸 끝까지 다 읽을 수 없게 한다. 그만큼 반인륜적·패륜적인 내용들이다. 학교의 살풍경스런 모습은 경기도 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이어 지난 해 11월 1일부터 서울시 교육청이 모든 초·중·고에서 체벌을 전격 금지한 후 벌어진 일들이다. 그런 가운데 “서울·경기 교육감, ‘선생님 희롱’ 교실서 교사 체험해보라” 같은 신문사설은 그나마 교사들에게 위안을, 학부모들에겐 공감을 주고 있다. 세상에 학생들이 여교사를 성희롱하고, 주먹과 발길질을 예사로 하는 지경의 교실이요 학교라니, 할 말을 잃는다. 급기야 보수성향 교원노조들이 ‘체벌금지 불복종’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그들은 서울시 교육감에게 “난장판이 된 수업을 제재할 권한도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공교육을 정상화하라는 것인지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그 주장에 보수·진보를 떠나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지금 ‘막장교실’ 현실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필자는 학생들을 그렇게 날뛰게 하는 것이 진보인지 묻고 싶다. 해결책은 하나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소위 진보 교육감들이 ‘저질러’ 놓은 ‘막장교실’을 스스로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현재는 서울에서만 체벌금지가 이루어졌는데, 언론에 보도되는 ‘막장교실’ 문제는 가히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소위 진보 교육감들의 체벌금지를 포함한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현장과 괴리되어 있음을 뜻한다. 사실 체벌금지는 시대착오적이거나 십분 양보해도 시기상조다. 과거 무너진 학교의 원인중 하나는 김대중 정부가 섣불리 발표한 체벌금지 조치였다. 초등학생마저 선생님에게 잣대로 손바닥 몇 대 맞은 걸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벌어진 것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이제 겨우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데, 다시 그런 빌미를 교육감들이 나서 제공하고 있으니,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말할 나위 없이 김대중정부때보다 더 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게 문제다. 바로 학생들의 ‘밥’이 되고 있는 교사들의 교권문제가 그것이다. 그렇다고 교사들 편하자고 체벌 허용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다시피 경제적 수준 향상과 함께 민주주의가 신장되는 과도기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은 자유보다 방종이다. 체벌금지는 그런 사정을 간과했던 실패한 정책의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걸 소위 진보 교육감들이 앞장서 되풀이하고 있다. 학생들 인권보호차원에서 접근한 체벌금지로 보이지만, 착각은 금물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성교육을 통한 ‘사람새끼 길러내기’보다 성적올리기에 매몰된 학교현실에서 생활지도마저 손놓는다면 무너진 학교 재현은 시간문제다. 원칙적으로 학교에서의 체벌은 금지되어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교사의 권위가 이 지경이라면 공교육 활성화는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학생들 날뛰게 하는 것이 진보가 아니라면 막장교실 심화에 일조한 교육감들은 체벌금지를 전면 철회하기 바란다.
“교장이 교사 하나하나를 기억해주고 믿어주며, 이해할 때 학교는 희망이 있다. 군불을 때야할 때 불쏘시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게 관리자의 역할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그 자리가 더러 술이라도 오가는 자리라면 더욱, 친구들은 예의를 구하지 않고 말을 한다. “우리 같은 놈은 개고생 하는데, 선생은 방학이 있어서 할 만 할 거야. 안 그냐?” 하하 맞는 말이다. 그래서 선생이 부러운 것이라면 맞다. 선생에게는 펑펑 놀 수 있는 방학이 있으니까. 그러나 해즐리트의 말처럼 그것은 무식의 소산이다. 그들에게 아니라고 반박해봤자 무엇 하겠는가. 술 취한 자의 면책특권인 것을. 나는 그냥 웃어넘긴다. 그러나 야박한 말이지만, ‘선생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라는 말로 논박을 끝내고 싶다. 얼마나 고되고 팍팍했으면 그 같은 말이 속담이 되었을까. 만약 선생이 편해서 할 만한 직업이라고 말하는 ‘교사’가 있다면 그는 분명 명품은 아니다. 초등과 중등이 서로 다르겠지만, 인문계 고교 같은 경우엔 방학 중에 보충학습을 해야 한다. 부장은 부장대로 긴급한 공문이 도착하면 출근해야 하고, 교장과 교감도 교대로 출근하여 학교를 관리해야 한다. 모두 바쁜 셈이다. 중요한 것은 그 하루를 어떻게 사는가에 있다. 창의적 사고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작년보다 나은 가르침을 펼칠 것인가, 또는 작년보다 어떻게 행복한 학교를 만들 것인가 역동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새해는 밝았어도 작년과 다를 바 없이 신학기가 시작된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변화 없는 학교, 변화 없는 선생들처럼 절망적인 권태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바쁘게 살아야 한다. 신학기의 교재 분석을 하고, 교과연구모임에 참석하며 교실 수업에 필요한 연수와 강습을 받으면 얼마나 유익한가. 이러한 일들이 우리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기에. 그러나 일부는 승진을 위한 점수 따기, 성과급에서 유리한 등급을 확보하기 위해 바쁜 경우가 더 많다. 대학원도 그래서 다닌다. 더욱이 대부분의 관리자나 교육전문가들이 다 그렇게 점수 관리를 해서 그 자리에 올랐다니, 언어도단이다. 그래서 신년에는 남에게 잘 보이려고 행세하거나 개인의 평안만 챙기려는 교사들이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뒤에서 빈정대며 남을 헐뜯는 이들도 냉수마찰하기를 바란다. 그런 다음 신학기에는 모든 선생들이 야생의 쿵쾅거리는 심장으로 아이들을 맞았으면 좋겠다. 또한 선생들은 방학을 통해 무서운 독서를 하기를 바란다. 대형서점에 갔을 때 수 만 권의 책들 앞에서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 보라. 얼마나 부끄러웠던가. 방학 중에 책과의 연애는 필수코스이다. 실력이 없는 선생은 고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하여, 신학기에는 관리자가 변해야 한다. 초·중등을 막론하고 일부 학교는 관리자가 문제의 중심에 있는 경우가 있다. 고생고생해서 교장이 되었으니 좀 쉬겠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자기 스타일대로 하겠다는 건지, 어떤 합리적인 교육철학도 청사진도 없이 지위만 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경우, 학교는 절단난다. 유령이 사는 건물처럼 황량하고 생기가 없어진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교장이 달라져야 학교가 산다. 어미 닭이 알을 품어야 새 생명을 태어나게 하듯, 교장은 선생의 내면에 들어있는 무한한 가능성들이 빛을 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선생에게 뛰어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장이 그것을 이끌어내 주지 못한다면 선생과 교장은 불행하다. 교장이 선생 하나하나를 기억해주고 믿어주며, 이해할 때 학교는 희망이 있다. 군불을 때야할 때 불쏘시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게 관리자의 역할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관리자들은 선생을 원칙에 따라 길들이고 통제하려는, 대결구도의 대척점에 맞서 있는 존재라는 게 안타깝다.
올해부터 교직원 비리가 발생한 서울지역 학교의 실명이 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서울시교육청은 3일 이같은 방안을 담은 교육비리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교육청은 일반 시민 누구나 볼 수 있는 홈페이지 ‘알림마당’에 모든 감사의 개요, 결과, 조치사항 등을 공개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교육청 소속 교직원만 볼 수 있는 ‘교육청 업무방’에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종합감사 결과만 공개해왔다. 특히 교장·교감 등 소속 교직원이 개입된 비리 사건이 발생한 학교는 홈페이지에 실명으로 공개된다. 다만 비리를 저지른 교직원의 실명 등 개인정보사항은 제외하기로 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감사결과 공개를 통해 감사의 투명성과 비리 예방 효과를 높이고, 일반시민과 자료를 공유해 유사한 사례를 제보받을 수 있어교육비리 척결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밝혔다.
16개 시도교총과 국방부가 협약을맺고 학생들에게 교육적 가치가 큰 군 유적지와 군 시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안보프로그램 개발을 추진한다. 교총은 지난달 28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건의서를 교과부와 국방부에 보냈다고 밝혔다. 교총이 안보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북한 공격에 의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드러난 국민 및 학생들의 무뎌진 안보, 국가정체성, 공동체 의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11월 안앙옥 교총회장과 김태영 당시 국방부장관이 정책간담회를 통해 이같은 내용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북한의 연평도 불법 포격으로 장관이 교체돼 교총은 안보교육 프로그램을 재추진하기 위해 다시 건의문을 보낸 것이다. 건의문에는 국방부와 안보교육 프로그램 및 매뉴얼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초등 18단위, 중등 24단위 이상 이수토록 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이나 개별학교나 학급, 동아리 단위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총은 이를 위해 교과부에도 협조 건의서를 보냈다.
한국교총은 간접체벌을 반드시 허용하고 교육적 체벌을 학칙에 명문화할 것을 주장했다. 교총은 지난달 31일 서울시교육청이 출석정지나 유급은 도입하되 간접체벌에 대해서는 반대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정확히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교육청의 대안이 ‘교실 현장의 일탈행위의 즉각적인 제지를 통한 학생 학습권 보호와 교사의 교수권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현장교사들의 의견은 외면한 채, 주로 문제행동 학생의 중·단기적 처방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총은 “비교육적 직접체벌은 지양하되 손들고 서있기나 팔굽혀 펴기, 벽보고 서있기 등 간접벌은 반드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대법원 판결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면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경우에는 학교장의 위임을 받은 교사의 체벌이 허용된다”며 “학칙을 통해 교장이 공개된 장소에서 교육적 체벌을 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와 ! 교문이 달린다 ! 1973년 “영차 ! 영차 !” 아이들의 함성이 운동장에 가득 합니다.전교생이 1,000명을 조금 넘는 이 학교에서 가을 체육대회도 아닌 12월말, 겨울방학을 2,3일 남겨 놓은 날 이었습니다. 때 아닌 줄다리기 소리에 아이들은 모두 의아해서 유리창으로 몰려가서 운동장을 내려다봅니다. 운동장에는 4,5,6학년 남자아이들이 모두 나와서 줄다리기 줄을 잡고 당기고 있습니다. 양쪽으로 편을 나누어서 당기는 것이 아니라, 두 편으로 나누어서 줄을 잡아당기기는 하지만 방향은 같은 쪽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와 ! 교문이 달린다 !” 어떤 아이의 입에서 탄성이 올랐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그 소리를 들으면서 “저렇게 큰 교문이 막 끌려가네 ?” 하기도 하고, “와 ! 힘세다 ! 저걸 끌고 가 ?” 하고 감탄을 하기도 합니다. 읍내에서 두 번째로 큰 이 학교는 그 동안 늘어나는 아이들을 가르칠 교실이 없어서 여기저기 교실을 짓다보니, 학교 앞을 지나는 길과 그 사이에 있는 논들을 건너서 산비탈에도 교실을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학교인데도 8개 교실은 길과 논둑길을 걸어서 건너가야 했습니다. “건너편에 분교에서 왔습니다.” 선생님들은 곧잘 건너편의 교실에 있는 것을 분교라고 불렀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이 교실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으면 “건너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면 논둑길을 다니다가 빠져오곤 해서 탈이야 !” 하고 걱정들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걱정거리였던 이 교실을 위해서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교육청에서 도와주어서 가운데에 있는 논들을 메꾸고 운동장을 늘려서 이젠 논은 없어졌지만, 길은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길로는 약 400여 채나 되는 동네의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학교지만 두개의 학교 모양으로 살수 밖에 없는 이 학교의 처지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분교는 언제 없어지나 ?여름엔 덥고, 문을 열어 놓으면 시끄럽고, 겨울엔 햇빛 하나 안 들어서 시베리아인데다가 골짜기에서 내리 부는 바람은 왜 그리도 차가운지 원....” 이 교실을 맡아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부득이 건넌 편의 교실에서 본관으로 건너오기 편하게 운동장의 한 중앙에 위치한 곳에 교문을 만들었습니다. 그 교문은 졸업생 중에서 돈이 많은 재일교포가 한 분이 고향을 방문한 기념으로 만들어 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살기를 10여 년이나 되어서 교육청에서는 이젠 이런 상태로 학교를 운영할 수 없다는 교장 선생님의 간절한 소원을 들 주어서 길 건너의 교실과 땅을 팔아서 본관에 새로운 교실을 지어 주게 되었습니다. 새 교실이 완성되고, 아이들이 모두 새 교실로 옮겨온 뒤에는 이제 교문이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교문을 옮기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커다란 교문을 어떻게 들어다 놓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선생님들과 교장 선생님은 이 문제를 놓고 여간 연구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교문을 해체하여서 다시 쌓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아무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은 이 교문을 그대로 가져다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 큰 교문을 안 부셔지게 쓰러뜨릴 수가 있습니까?” “쓰러뜨리기만 하면 가져가는 방법은 있겠소?” “글쎄요 ? 쓰러뜨리기만 한다면 끌어 갈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럼 되었소. 끌고만 갈 수 있다면 쓰러뜨리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하고 교장 선생님은 반가운 표정이셨습니다. “어떻게 끌고 갈 수가 있겠소 ?” 다른 선생님이 질문을 하자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쌓는 그림을 보지 않았소. 우리도 그렇게 끌고 갈 수야 있을 것 아니겠소?” “그럼 교문 밑에다가 통발 목을 넣고 끌고 가자는 말이 아니오 ?” “그렇게라도 옮겨야 지요 ?” “당신이 혼자서 한번 해 보시오.” “왜 제가 혼자 합니까? 전부 협조를 해야지요?” 선생님들의 입씨름이 계속 되었습니다. “알겠소. 그렇게 하면 가져 갈 수는 있겠고, 쓰러뜨리는 것은 저기 고개 너머 의 석물 공장에 부탁을 하여서 도르래를 써서 하면 될 것 같으니까, 한 번 해봅시다. 부셔지면 그때 가서 다시 쌓으면 될게 아니겠소?” 하고 교장 선생님은 이야기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교문은 어마어마하게 커서 가로, 세로가 약 2 m나 되는 큰 덩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문의 밖은 자기벽돌을 써서 마치 커다란 그릇과 같이 매끈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교문을 부셔서 다시 쌓지 않으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가기를 한 주일이 되었을까, 드디어 석물 공장의 장비가 와서 교문을 쓰러뜨리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커다란 삼발이 기둥이 세워지고 굵은 쇠고리들이 교문을 감쌌습니다. 그리고 도르래가 한바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계속 감아 올라갔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교문을 세운 밑 부분을 깨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빙 둘러서 깨뜨려진 교문은 도르래의 힘으로 조금씩 들어 올려지면서 천천히 쓰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학부형도 여러분이 나와서 모두 걱정을 하면서 조심조심하라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조심, 조심, 천천히 하시오 !” 교장선생님이 소리를 치실 때는 교문이 비스듬히 눕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만약에 저렇게 큰 덩치가 쿵 쓰러진다면 부셔지고 말 거야.’ 모두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교문은 별로 큰 소리도 없이 슬그머니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교문 기둥은 모두 세 개나 되었습니다. 이걸 모두 쓰러뜨리는데 거의 하루가 걸렸습니다. 교문을 쓰러뜨려 놓고서 이걸 끌어갈 일을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밑에다가 나무들을 바쳐서 끌고 간다고 하지만 원채 무거운 이걸 끌고 가는 동안에 나무들이 견뎌 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습니다. 이렇게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날씨는 왜 그리도 추운지 견디기 어려울 만큼이나 강추위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녹아서 운동장은 질펀하였다가 얼음으로 덮였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교장 선생님은 교문을 옮길 테니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오라고 4,5 6학년 선생님들을 방송으로 부른 것입니다. 선생님들도 “이렇게 추운데 아이들이 어떻게 그걸 끌어간다고 야단일까 ?” 하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은 “지금 보니까 땅이 얼어서 교문 밑에다가 나무를 받쳐 넣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까, 아이들을 두 패로 나누어주시오.” 하고 선생님들에게 부탁을 하고서는 줄다리기 줄을 가져다가 교문을 끌 수 있도록 걸었습니다.4학년이상의 아이들이 모두 늘어서니까 운동장이 꽉 차는 것 같았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여러 번 주의를 주셨습니다. “교문이 저렇게 크기 때문에 만약에 너희들이 한쪽에서만 힘을 주어 끌어 버리면 다른 쪽의 아이들이 다칠 염려가 있으니까 꼭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 주어야 한다. 알겠지 ?” 아이들은 모두 큰 소리로 “예.” 하고 대답을 하였지만 지금도 곁의 친구와 장난을 하는 아이, 뭐라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자 ! 선생님이 이 기를 가지고 흔들면 많이 흔드는 쪽은 더 힘을 내어서 끌고, 같이 흔들면 같이 지금 힘을 쓴 만큼 계속 끌고 가라는 표시이니까 계속 힘을 쓰도록 알겠나 ?” 선생님의 주의 듣고서 손짓을 주의해서 보면서 아이들은 힘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엔 교문이 얼어붙은 것인지 영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한 참을 온힘을 다해서 끌자 간신히 교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영차, 영차.” 아이들의 함성을 따라 교문은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 가고 있었습니다. 한번에 몇 Cm씩 끌려가는 것을 보고 언제 다 끌고 갈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때 지휘를 맡은 선생님이 “그만.” 하고 호루라기를 불어서 중지를 시키고 나서, 기를 들고서 교문 위로 올라섰습니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하여서 선생님이 하는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데 선생님이 올라가면 움직일까 ?”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기분들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위에 올라가서 소리쳤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조금씩 끌고 가니 힘이 더 듭니다. 그러니까, 이제 선생님의 손을 잘 보면서 계속해서 끌고 가기로 하겠습니다. 만약 이렇게 흔들면 힘을 쓰지 말고 그쳐 주세요.” 하고, 기를 들고서 자동차경주의 시작 신호처럼 힘껏 아래로 내리쳤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손을 보면서 다시 줄을 잡고 힘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생님은 기를 들어서 앞으로 가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교문은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자 ! 좀 더 힘을 써 !” 소리와 함께 선생님은 점점 더 빨리 기를 흔들어 대었습니다. 선생님은 더 힘을 쓰라고 기를 계속 앞으로 흔들었습니다. 아이들은 교문이 끄는 대로 따라 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라워서 더욱 힘을 주어 끌어갔습니다. 아이들이 힘을 쓰기 시작하자 교문은 점점 속도가 붙어서 점점 교문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위에서 지휘를 하시는 선생님의 머릿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듯 팔랑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달려 ! 달려 !” 옆에서 아이들을 지도하시던 선생님들도 신이 나서 소리를 치셨습니다. 아이들은 “영차, 영차.” 소리를 지르며 온힘을 다해서 줄을 당겼습니다. 정말 교문을 끌고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개미들이 커다란 먹이를 끌고 가듯이 교문은 얼어붙은 운동장에서 썰매를 타듯이 미끄러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신바람이 나서 끌고 달리고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였습니다. 교문은 순식간에 자기가 옮겨 앉을 자리까지 달려갔습니다. “와 ! 교문이 달려간다!” 교실에서 소리치는 소리가 응원이라도 된다는 듯이 교문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세 개가 모두 날라져 갔습니다. 한번 경험을 한 아이들과 선생님은 이젠 별로 힘들지 않게 나머지 두 개를 날랐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더욱 기운을 내어서 슬슬 끌다가 점점 빨리 걷게 되고 나중에는 아예 달리기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땀이 베고 웃음과 자기들이 이루어 내었다는 기쁨이 가득하였습니다. 힘이 든다고 꾀를 부리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이제 자기 혼자의 힘으로 교문을 끌고 간다는 생각을 한 듯이 모두들 줄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이틀이 지나고 월요일에 우리들이 학교에 갈 때에는 교문은 벌써 의젓한 모습으로 제자리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마치 “여기가 내 자리야, 어떠니 ?” 하고 뽐내듯이 서 있는 교문을 본 많은 아이들은 저렇게 큰 교문을 자기 손으로 끌어 왔다는 뿌듯한 자신감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첫키스는?, 첫경험은?, 초경은?” 아마도 직장내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성희롱에 으로 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아직까지 순수하다고 믿고 싶은 중학생들이 내뱉은 말이다. 그것도 수업 중에 자신들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장난치듯 던진 말이라니 해당 교사가 받았을 충격도 걱정이지만 ‘막장교실’의 적나라한 풍경을 보는 것같아 허탈할 따름이다. 패륜과 다름없는 교권 침해 사례는 비단 이번만은 아니다. 최근에도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교재를 지참하지 않은 것을 꾸짖는 교사에게 학생이 주먹으로 폭행했으며 강원도의 한 중학교에서는 3학년 남학생이 수업시간에 일찍 들어오라고 훈계하는 40대 여교사의 멱살을 잡고 밀치며 폭행했다. 심지어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5학년 학생이 싸움을 말리는 50대 여교사를 폭행한 일도 벌어졌다. 고등학생부터 초등학생까지 교사를 우습게 아는 ‘막장교실’의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교사에 대한 권위 실종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지난 5월 한국교총이 발표한 ‘2009년도 교권회복 및 교직상담 활동실적’에 따르면 교사에 대한 학생ㆍ학부모의 폭언ㆍ폭행사건은 2009년 108건으로 3년전인 2007년 79건에 비해 30건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안의 성격상 드러내놓고 밝히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사건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막장교실’의 고삐풀린 풍경은 일부 교육청이 체벌금지 조치를 단행한 이후부터 부쩍 증가하고 있다. 학생 인권 보호의 핵심이 체벌금지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적절한 대체프로그램도 없이 일방적으로 단행된 후유증이 결국 교실을 무법천지로 만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교육 선진국도 체벌을 금지하고 있지만 학생의 일탈 행위에 대해서는 학부모 고발, 유급, 등교정지 등 강력한 제재 수단을 통하여 교권을 보호하고 있다. 혀를 차게 만드는 ‘막장교실’의 안타까운 풍경은 교육을 정치논리로 접근한 결과임에 분명하다. 교육은 정치놀음이 아니라 교사놀음이다. 즉 교사의 역할의 역할이 그만큼 크고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처럼 교사를 궁지로 몰아넣고 학생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게 한다면 교육을 망치겠다는 의도나 다름없다. 분명하게 말한다. 교사의 자존심을 짖밟고 교실을 막가파식 패륜으로 몰아간 원인을 밝혀내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정치권은 ‘막장교실’의 출구전략으로 한국교총이 앞장서 추진하고 있는 교권보호법 제정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희망속에 맞이하는 신묘년 새아침이밝았지만 고3 담임으로서 정시모집 전형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마음이 그린 가벼운 것도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웠던 수능시험으로 인해 점수 대폭락의 안타까움 속에서 치러졌던 이번 정시모집은 원서 마감 직전까지 치열한 눈치작전이 펼쳐질 정도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속에서 진행됐다. 가, 나, 다군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정시모집 전형의 시작과 함께 사운을 건 사교육업체의 수강생 모집 광고전도 시작됐다. 정시모집 지원을 아예 포기했거나 재수를 감수하고 상향지원을 한 학생들이 주요 고객이다. 규모가 큰 메이저 업체에서부터 지방 중소도시의 소규모 학원에 이르기까지 광고전은 그야말로 총성없는 전쟁과 다름없다. 「EBS 강사진과 최고의 학원이 만났다.」 요즘 흔히 보는 일간지의 사교육업체 광고 카피다. 지방의 영세 학원들도 수강생을 모집하는 현수막이나 전단을 제작할 때는 EBS 강사 출신이 강의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어떤 식으로든 EBS 강사를 보유하고 있어야 영업이 된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EBS는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다. 그래서 사교육의 폐해를 줄여 공교육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2004년부터 수능방송을 시작했다. 교육 당국은 EBS 강의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수능 반영률을 70%이상 끌어올리는 무리수까지 뒀다. 그런데 그런 EBS가 이젠 오히려 사교육의 가장 강력한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으니 주객이 전도돼도 한참 전도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같은 아이러니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EBS 강사는 대개 공모 형식을 통하여 선발된다. 문제는 공교육 교사이든, 사교육 강사이든 지원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교육 강사 가운데는 EBS를 지렛대로 삼아 자신의 명성을 쌓겠다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EBS는 강좌마다 강사의 약력에 소속 기관까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사교육 업체나 강사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홍보수단이 있을리 만무하다. 공신력이 생명인 수능시험에서 특정 강의와 교재의 내용을 70%이상 반영한다는 발상도 문제다. 학생들은 싫든 좋든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EBS 강의를 듣고 교재를 사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학교 수업시간에도 교과서 대신 EBS 교재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온통 공교육을 EBS에 예속시켜놓고 정작 강의는 사교육 강사에게 맡긴다면 이는 사교육 시장을 키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과목별로 수십권씩 되는 EBS 교재를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아이들에게 사교육 업체는 교재별로 핵심 내용만 요약해서 강의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말하자만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열린 것이다. 게다가 EBS 강사가 진행하는 특강은 학생들이 줄을 잇는다고 하니 사교육 업체로서는 오히려 EBS가 고마울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처럼 EBS 강의와 교재를 믿고 공부해도 성적이 떨어지면 학생들의 반발심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EBS 강의와 교재만으로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자연스럽게 사교육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은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교육 당국을 비롯한 EBS 측은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대응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특히 사교육 창궐의 빌미를 제공하는 EBS 강의만큼은 공교육 교사로 제한하는 조치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실 조금만 발품을 팔아도 수업 잘하는 교사들을 찾는 것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례로 시도교육청별로 진행되는 수업연구대회 입상 교사들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학교장의 학교경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교원들과의 원만한 인간관계 형성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그 기초는 학교장과 교원 상호간의 신뢰라고 할 수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그의 저서「신뢰(Trust)」에서 신뢰를 ‘공동체의 타 구성원이 보편적인 규범에 기초하여 예측가능하고 정직하며 협동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라고 정의하면서, 이러한 신뢰는 단순히 윤리적 가치를 뛰어넘어 사회적 자본으로서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적 번영을 가져오는 필수요소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신뢰를 학교경영의 성공요인으로 보고 있는 이유를 보면, 먼저 신뢰는 교원의 능력과 협력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다. 학교와 학교장에 대한 높은 신뢰는 교원의 업무 몰입도 및 창의성을 제고시킬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동료교원들과 협력하려는 의사도 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둘째, 학교조직 내 신뢰는 학교의 변화에 대한 교원들의 수용성을 높인다. 교원은 학교나 학교장을 신뢰하지 않거나 자신들이 신뢰받고 있지 않다고 느낄 때 변화에 저항하고 소극적인 근무태도를 보인다. 반면, 학교장에 대한 신뢰가 높으면 교원들은 학교교육의 목표와 비전 달성을 위해 스스로 동참하게 된다. 셋째, 신뢰는 학부모나 학생들의 요구에 대한 교원의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교원은 신뢰를 통해 의사결정 과정이 간소화되어 학생이나 학부모의 요구에 보다 신속하고 자신감 있게 대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뢰를 기반으로 한 학교장은 교원들에게 학교경영의 갈등과 문제점을 이해시키거나 설득하는데 필요한 노력을 줄일 수 있다. 그러므로 학교장은 교원들과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야 선진화된 학교경영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교원들이 학교나 학교장에 대한 신뢰 수준은 신뢰의 대상과 신뢰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고려하여 평가할 수 있다. 먼저 신뢰의 대상이라 하면, 학교조직에서의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를 모두 포함한다. 수직적인 관계는 학교장과 교감에 대한 신뢰를 의미하고, 수평적인 관계는 동료교사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다음으로 신뢰의 구성 요소에 대하여 심리학자 미쉬라(Mishra) 교수는 면접기법을 활용하여 ‘능력, 공정성, 개방성, 관심과 배려’라고 하였다. 그 첫 번째 구성 요소인 ‘능력’은 학교장의 학교경영 능력이나 학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믿음을 뜻한다. 두 번째 ‘공정성’은 학교장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고 학교정책의 운영이나 관리가 일관성 있는지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개방성’은 학교교육계획 및 교육과정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교육정보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학부모, 학생, 교사들과 수평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지와 관련된다. 마지막 구성 요소는 ‘관심과 배려’는 교원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며 학교경영의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하고 있는지를 뜻한다.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신뢰야말로 모든 조직의 기초 자산이다”라며 신뢰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이처럼 신뢰는 학교장의 성공적인 학교경영을 위한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이유는 이미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신뢰가 교원의 업무성과와 관련하여 몰입도, 학교에 대한 애착관계에 밀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교원으로부터 신뢰받는 학교장의 경영조건을 무엇일까? 첫째는 교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학교장이 교원들로부터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교원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존중과 배려는 일회성이 아닌 학교조직문화로 정착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장은 교원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있다는 인식이 교원들 사이에 확산되면 학교 내에 신뢰 구축이 용이하게 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학교장은 교원들에 대한 믿음을 분명하게 표현해야 교원들이 학교교육을 위해 헌신적인 교육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따라서 학교장은 교원들에게 학교업무 실행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위임함으로써 교원 스스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또한 학교장은 교원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학교장들은 교원들과 의사소통 역량이 낮아 이들과의 신뢰 형성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원들과 의사소통 역량 제고를 위해 학교장은 많은 시간을 갖고 교원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학교장은 교원들과의 신뢰 구축은 독백이 아니라 대화임을 알고 항상 상대방의 상황과 입장에서 생각하여 이해하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만 교원들 역시 학교장과 학교의 관점을 이해하고 신뢰하여 학교의 교육정책에 잘 따르게 된다. 만약 학교장이 교원들의 말에 귀 기우리지 않고 자기 말만 되풀이 한다면 교원들과의 신뢰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는 학교장의 일관성 있는 학교경영의 실행이다. 학교경영의 일관성 역시 학교장의 신뢰성을 구축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다. 학교장의 신뢰도를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학교교육이 계획한 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교원들은 학교장의 말을 경청하고 행동을 주시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 둘이 일치할 때 비로소 신뢰감이 형성된다. 일관성 있는 학교경영을 위해 학교장은 학교가 지향하는 비전과 목표, 그리고 경영 원칙을 갖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교원과 형성해야 한다. 공감대 형성을 위해 학교장은 교원들에게 학교의 모든 교육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부정적인 정보를 숨기거나 보기 좋게 꾸며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학교장은 교원들과 합의된 경영전략이나 원칙들을 일관성 있게 실행해나가야 한다. 셋째는 교원의 노력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교원들은 자신의 노력을 공정하게 인정받을 때 학교를 신뢰하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 따라서 교원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해서 교육성과에 기여한 만큼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기대하고 있다. 동시에 실패 또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적절한 학교장의 관리가 필요하다. 넷째, 교원에 대한 통제와 신뢰의 균형이 확보되어야 한다.아무리 학교장이 교원들에게 신뢰를 불어넣기 위해 노력한다 하더라도 학교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교육적 성과를 도출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비록 학교장이 외부로부터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학교경영자로 평가받을지라도 학교내부의 갈등 속에서는 신뢰를 조성할 수 없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교원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할 때 비로소 학교장을 신뢰하게 된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하에서 학교는 능동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해야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원들이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원들이 학교교육 목표 달성을 위해 자율적인 협력과 노력은 신뢰라는 탄탄한 기초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학교장은 교원들 간의 신뢰가 학교경영의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다시한번 생각해야할 것이다.
2011년 새해 신묘년이 밝았다. 찬란한 희망의 해가 떠올랐다. 새해의 밝고 환한 햇살은 우리에게 소망을 준다. 우리나라 모든 분야에 소망의 빛을 비추어준다. 특히 교육을 향한 햇살은 더욱 눈부시다. 새해의 교육은 더욱 빛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해의 교육이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육의 주체인 우리 학생들에게 바라는 바가 크다. 우선 학생들 모두가 건강했으면 한다. 육체적 건강 없이는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새해에는 체력단련에 더욱 힘을 쓰면 좋겠다. 체력이 곧 실력이다. 체력이 없으면 노력이 뒷받침될 수 없고 노력이 없으면 학력향상을 가져올 수 없다. 또 정신적 건강도 중요하다. 학생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어두운 생각은 몰아내야 한다. 밝은 생각으로 가득차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도 없애야 한다. 긍정적인 사고를 길러야 한다. 건전한 사고는 정신적 건강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건강에도 힘을 써야 한다. 다음은 학생들 모두의 성장과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먼저 육체적 성장이 있어야 한다. 키도 많이 자라야 한다. 체격도 좋아야 한다. 체력도 좋아야 한다. 육체적인 성장은 기본이다. 그러므로 고른 영양섭취와 운동은 필수다. 배우는 학생이 먹는 일과 운동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인격적 성장이 있어야 한다. 인사할 줄 모르는 학생은 인사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청소할 줄 모르는 학생은 청소 잘하는 학생이 되었으면 한다. 게으른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하지 않는 학생은 바른말, 고운말을 하도록 해야 한다. 남을 괴롭히는 사람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 하나의 성장은 학력의 향상이 있어야 한다. 학력 향상의 기본은 기초학력 신장이다. 기초가 없으면 학력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기초부터 튼튼히 하도록 했으면 한다. 기초를 잘 다져야 높은 빌딩을 세울 수 있듯이 기초를 잘 닦아 놓으면 학력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선생님들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 선생님들은 우선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지 않으면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하나 바랄 것은 선생님들의 열정이다. 선생님들의 전문지식을 학생들에게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열정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바른 생활을 위한 지도에도 열정이 필요하다. 새해에는 선생님들의 열정이 더욱 빛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 학부모님들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 학부모님들은 우선 자녀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면 한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낸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혹시 옆길로 가지 않는지, 혹시 나쁜 짓을 하지 않는지 유심히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자녀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 중의 하나가 따뜻한 사랑이다. 따뜻한 말 한 마디, 따뜻한 손 길, 따뜻한 가슴을 원하고 있다. 새해에는 좋은 학부모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일본의 고교 입시에서「자신의 생각을 쓰세요」등 그림이나 여론 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학생 자신의 고찰력을 보는 문제가 눈에 띄게 출제되고 있다. 12 월상순에 공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국제 학력 조사(PISA)에서, 15세의「독해력」실력 회복 경향이 보였는데, 이러한 수험 환경의 변화를 이유로 드는 식자도 있다.「자신의 생각」을 문제가 내년 봄 입시의 키워드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2010년 봄 오사카 부립고등학교의 입시국어문제에서는, 「생물 진화 캘린더」가 등장했다. 기점의 설날에는「생명의 탄생」이 있고, 7월 2일에 산소 출현, 11월 4일에 다세포 생물 탄생이 계속 된다. 그리고 포유류 탄생은 12월 2일, 산업혁명은 섣달 그믐날의 23시 59분 59초……. 이처럼 생물의 진화의 과정을 시간의 개념을 뛰어넘어「1년」으로 응축해 설명한 것이다. 문제는 이 캘린더를 보고, 「어떠한 것이 밝혀지는지, 「인류」「탄생」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쓰세요」라고 물었다. 우리 인류는 극히 최근, 지구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면, 정답이 된다. 이 문제에 관련해서「인류의 장래를 생각하는데 어떠한 일이 중요한가」라고, 50자 정도로 쓰게 하는 설문도 있다. 오사카부 교육위원회의 담당자는「정보를 집약하고 생각하여 표현하는 힘을 보고 있다. 이처럼 최근 몇 년 연구를 거듭한 문제를 도입하고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09년에 실시, 12월에 공표된 PISA로, 일본의 15세는「독해력」로 8위로 전회의 15위에서 2000년의 수준까지 회복했다.「배우는 내용을 늘리는 신학습 지도 요령의 본격 실시 전에 향상한 것은, 수험으로(응용력을 중시한다) PISA형의 문제가 증가한 것이 한 요인이 아닌가」라는 견해이다. 베넷세 교육연구개발센터 카마타 메구미 타로 수석연구원은 지적에에 의하면, 고교 입시에서는 이번 봄, 오사카부외, 아오모리현이나 사이타마현, 이와테현, 카나가와현, 토치기현등에서「생각하는 교육을 중시하는 문제」를 묻는 문제가 나왔다. 아오모리현은 침팬지의 행동이 테마였다. 2마리의 침팬지가 상대에게 쥬스를 배달시켜 줄 때, 요구가 있었을 때에 밖에 행동하지 않는 것을 도해로 나타내 보여, 인간 사회에 옮겨놓고 무엇을 생각할까를 물었다. 대답은, 「서로 돕기」등의 언어가 키워드가 된다. 이러한 입시의 선구가 된 것은 중고 일관교의 입시에서 볼 수 있다. 문부과학성에 의하면, 1999년부터 설치가 인정된 공립 중고 일관교에서는 지식을 보는 학력 시험이 아니고, 응용력을 보는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도쿄도립안수관중등교육학교에서는 이번 봄, 사전에 있는「길」이라는 말의 의미를 제시하고, 생각한 것을 500자 이상 600자 이내에서 쓰게 했다. 야나기사와 타다오부교장은「논리적으로 사고하여,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카마타씨는 PISA형의 고교 입시 문제에 대해서, 「전체에서 보면 아직 적지만, 몇년 전보다는 증가하고 있다. 문장을 출제하는 것보다도 자신의 언어로 쓰게 하는 것이 특징으로, 입시가 바뀌면 수업도 바뀐다. 향후는 더욱 사고력이나 표현력을 기르는 수업이 확산되어가는 것은 아니겠는가」라는 견해이다.
서울시교육청의 방과후학교 관련 발표를 두고 논란이 크다. 논란의 핵심은 학교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이미 학교운영위원회까지 통과된 사안에 대해 시 교육청에서 감사까지 하겠다는 것은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을 한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일리있는 이야기이다. 방과후 학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방과후 학교가 시작될 때도 논란이 컸었다. 방과후 학교운영을 통해 학생들의 학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가와 방과후 학교운영이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인가에 대한 논란이었다. 당시에는 그 어떤 것도 검증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논란을 불러 일으킬만 했다. 몇년이 지난 현재상황도 그때와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방과후 학교 운영을 통해 사교육이 줄었다는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학생들의 학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는 증거도 찾기 어렵다. 그동안 양적으로 엄청난 팽창을 해온 것이 방과후 학교였다. 각 학교별로 수강생 유치에 나섰고 인근 학원과의 한판 승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과후 학교로 인해 그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분석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도리어 외고입시제도를 조금 바꾸고 나서 사교육비가 현저하게 줄었다고 한다. 그 어떤 처방으로도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었는데 입시제도를 바꾸니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결국 사교육비 경감은 방과후 학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입시제도의 개선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알려주는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학교평가와 학교장 평가에 방과후 학교 운영실적을 반영한다고 했었다. 당연히 학교장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학교장 뿐 아니라 학교 구성원 모두가 방과후 학교의 양적팽창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질적인 문제를 고려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의 서울시교육청 발표는 방과후학교의 양적인 팽창에 제동을 걸고 있다. 지나치게 교과위주의 수업에도 제동을 걸고 있다. 어쩌면 이 방향이 맞는 방향일 수도 있다. 효과 측면에서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된 양적팽창을 지켜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계속된 인위적인 경쟁을 유발시키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측면도 작용했을 것이다. 학생들의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은 좋지만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억지로 참여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것을 감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의 서울시교육청 발표를 계기로 양적인 팽창보다는 질적인 팽창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수강생이 전교생의 몇%라는 식의 비교보다는 어떤 강좌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또한 이를 통해 학생들의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한다. 학교장과 함께 전체 학교구성원들이 어떻게 고민하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경쟁력확보도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사교육과의 한판승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의 질적인 문제를 짚어 보아야 한다. 과연 현재의 학교교육이 질적으로 사교육과 견주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서울시내 여러학교들이 방과후 학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의 접근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공정사회구축을 위해서는 실천에 앞서 그 원칙과 철학을 바로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후진하던 차가 즉시 전진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불공정 관행과 의식에 찌든 공동체에서 공정을 외친다고 하루아침에 공정사회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땅이 기름지고 좋아야 씨앗이 잘 자라는 법이다. 그렇기에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교육을 통해 공정성에 대한 가치를 미래세대에 심어주는 것은 토양을 다지는 일이다. ‘앵그리(Angry) 사회’에서 ‘페어(Fair) 사회’로 공정사회를 위한 교육의 기능은 ‘내재적 기능’과 ‘외재적 기능’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외재적 기능은 교육을 통해 피교육자의 ‘능력’을 길러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회적 이동을 성취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다. 반대로 내재적 기능은 교육을 통해 어떻게 피교육자의 인성을 올바로 가꿀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공정과 관련된 교육의 논의는 주로 전자에 집중되고 있다. 교육은 ‘사회경제적 계층이동 사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 주로 지적되고 있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면, 교육의 기회 불균형이 심화될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소외계층 출신이라도 “내게도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공정사회 아니겠는가. 그러나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만이 공정사회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이점만을 너무 강조하면 교육의 기능과 목적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교육은 인간을 전인적 인격체로 키우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정사회의 주춧돌을 놓는다는 점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속적인 인성교육의 뒷받침 없이 어떻게 공정사회가 이루어지겠는가. ‘불공정’에서 ‘공정’으로 나아가는 길이 불연속선보다 연속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후세대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꾸준히 공정의 가치를 파급시켜야 한다. 교육이 공정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인프라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교와 선생님의 ‘권위’가 바로 서야 한다. 인성교육이 실종된 학교의 현실을 보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권위의 붕괴’다. 선생님의 말에 승복하지 않고 오히려 대드는 데서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권위의 붕괴’는 교실붕괴의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하다. 즉, 권위가 붕괴되니까 인성교육이 붕괴되고 또한 인성교육이 실종되니까 권위의 붕괴는 더욱더 심해지는 것이다. 물론 권위붕괴의 원인은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다. 인간존중과 평등, 인권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호흡한 학생들이 ‘권리’ 개념을 자신들에게 편한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받아들여 선생님의 권위에서 비롯되는 징계와 벌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또한 학부모들도 자신의 자녀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교사의 교육적 판단보다는 자녀의 말만 신뢰하는 나머지 학교와 교사의 권위 존중보다는 자기 자신의 독선과 아집을 내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가 하면 교육자로서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나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나 하는 교사 자신들의 반성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권위는 영어로 ‘오소리티(Authority)’인데, 어원적으로 말하면, 저자(Author)와 같은 어원을 갖는 라틴어의 ‘아욱토르(Auctor)’에서 비롯된 ‘아욱토리타스(Auctoritas)’로서 고대 로마인들은 ‘원천’, ‘기원’의 뜻으로 사용했다. 이것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권위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결정과 판단의 ‘원천’으로 작용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공정사회의 기초를 놓기 위해서는 교육에서 이런 의미의 ‘권위’가 바로 서야 한다. 욕설과 폭력이 만연한 학교, 잠자는 학교, 교권이 무너진 학교, ‘왕따’교실 등은 학생들을 이끄는 학교와 교사의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학교에서 권위에 대한 존경심을 올바로 배우지 못하면 선악의 구분도, 공정과 불공정의 구분도 배울 수 없다.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학교의 권위를 바로 세워나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권리’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나머지 ‘권위’를 경시하는 풍조가 있다. 이른바 ‘권리만능주의’의 병폐다. 이런 풍조가 교육 현장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어 유감이다. 학생들의 인권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의 결과로 경기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물론 교육계의 합의가 존재하는 한, 체벌금지와 같은 규정을 명문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계의 합의도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추진하는 인권조례가 학생들의 인성교육의 차원에서 어떤 효과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점에는 의문이 크다. 학생이 인권을 가진 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에서 학생은 학교와 교사의 지도와 훈육을 통해 인권 못지않게 의무와 책임의식을 함양함으로써 인성을 도야하고 완성시켜 나가야 하는 존재다. 이런 인식은 교육에 관한 서구의 고전적 전통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교육을 ‘파이데이아(Paideia)’라고 했는데, 어원적으로는 ‘Paidos+Agein’의 합성어로서 “아이를 인도한다”는 뜻이다. 로마인들은 교육을 ‘Educatio’라고 불렀으며, 오늘날 영어 ‘Education’의 어원이 되었다. 이것은 ‘e+ducare’의 합성어로서 “학생의 선천적 자질을 밖으로 이끌어내어 길러준다”는 뜻이다. 이처럼 교육의 의미에 맞게 인도(引導)의 개념을 받아들일 때는 인도자의 ‘이끎’, 즉 ‘권위’를 따라야 한다. 지시와 조언을 하는 교사의 권위에 승복한다고 함은 단순히 노예에게 요구되는 ‘맹종’이나 ‘묵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횡단보도를 건너갈 때 아이들이 보호자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상황과 유사하다. 어린이 혼자 길을 건널 때 얼마나 두려움을 느끼겠는가. 보호자의 손을 잡고 건널 때 안도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해 아직까지 성숙하지 못한 자신의 직관적 판단보다 믿음직한 선생님의 올바른 조언과 지시를 따르며 자기반성과 판단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권위에 대한 복종의 의미다. 공정사회, 제대로 된 ‘인성교육’ 필요해 공정사회의 튼튼한 기초를 놓기 위해서 교육이 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이 있다. 그것은 인성의 가장 기본적인 규범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다. 공정사회에 필요한 ‘좋은 인성’을 갖기 위해서는 배려의 정신도, 양보의 정신도, 봉사의 정신도 중요하다. 또한 정직과 인내의 덕목도 길러져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기초가 있다. 그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건축물을 세워도 모래성이 될 뿐이다. 바로 그 기초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이른바 ‘위해원리(Harm principle)’이다. 공정사회를 떠받치는 좋은 인성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도덕적 감수성(Moral sensitivity)’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도덕적 감수성’이란 내가 하는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며, 다른 사람의 심정과 처지를 ‘섬세한 마음으로’ 헤아리는 능력을 말한다. 남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고도 그에 대한 반성과 죄책감이 없다면, 이것은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감(共感, Empathy)능력’이 부족해 초래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우리 청소년들의 경우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를 깨닫는 경우가 드물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디스트’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도덕 불감증의 사람들이 많으면 결코 공정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이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 내야 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외부로 표현할 수 있을 때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연히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도 그 말을 들을 때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을 받고 있으며 적어도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언어 관행이 학생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형성될 때 비로소 공정사회의 튼튼한 기초가 놓여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 현실을 보면 우려되는 점이 있다. 우선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교육과정 개편이 그것이다. 국 · 영 · 수로 학교교육을 편중되게 만들고 도덕과목을 위축시키는 식으로 인성교육을 경시하는 교육과정을 만들면서, 어떻게 좋은 인성의 소유자가 자라나기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또 하나는 체벌금지를 비롯해 학생인권을 최우선 교육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일부 교육감들의 접근방식도 수정되어야 한다. 한 인간을 도덕적 존재로 만들고 가꾸는 적극적 의미의 인성교육과 인권침해를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는 소극적 의미의 인권교육은 유사점이 있지만, 같은 것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의 인품을 다루는 교육기관이기에 ‘권리’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의무’와 ‘책임’도 함께 다루는, 포괄적인 방식으로 인격을 도야시키는 훈련의 장(場)이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인교육을 책임지게 된 교육의 수장들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특정가치를 최우선적인 교육어젠다로 내세우면 ‘편식하는 아이’처럼 ‘권리’만 알고 ‘책임’과 ‘의무’는 모르는, 불균형적인 인격체롤 길러 낼 위험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교육의 수장이라면 인권 문제만을 생각하기보다는 전인교육의 차원에서 인성교육 문제에 접근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정교한 방식으로 제시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