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4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선생님과 어른들을 존경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없음을 명심하고 우리가 실추시킨 교권을 우리가 일으켜 세우는데 앞장선다. -우리는 우리 자식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과 어른들을 낮추는 어떠한 언행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시는 선생님의 어떠한 교육적 지도도 적극 지지하며 불미스러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성지도와 생활지도에 헌신적으로 노력하시는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학교와 일관된 가정교육을 통해 참된 인간성 함양에 동참한다. 2001년 11월 대전 월평동에 위치한 서대전고등학교에서 열린 ‘스승존경 결의대회’에서 학부모와 동문, 지역주민이 채택한 결의문이다. 학부모들은 때려서라도 사람을 만들어 달라며 회초리도 전달했다. ‘학교붕괴’라는 유행어가 탄생할 즈음 열린 이 결의대회는 인근 학교는 물론 전국으로 확산돼 나갔다. ‘사랑의 매’ 전달이 이어지고, 선생님 구두 닦아 드리기와 선생님께 편지쓰기 운동도 일어났다. 스승의 은혜에 금연으로 보답한다며 담배 화형식을 갖는 학교도 나왔다. 교권회복 운동의 메카가 된 서대전고가 스승존경 운동을 시작한 것은 선생님들이 기(氣)를 펼 수 있게 해줘야 학교붕괴도 막고 공교육도 살릴 수 있다는 오원균 교장의 신념에서 비롯됐다. 오 교장은 학부모 대표들에게 “교사들이 뒤탈을 우려해 수업 중에 아이들이 엎드려 자거나 말거나 내버려둬서야 교육이 되겠느냐”며 선생님 존경의 필요성을 역설해 나갔다. 이 말에 공감한 학부모들이 주축이 돼 스승존경 결의대회를 연 것이다. 결의대회 이후 선생님들의 사기는 오르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툭 하면 걸려오던 학부모들의 시비전화도 사라졌다. 신바람이 난 선생님들은 수업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고, 아이들의 눈동자는 빛났다. 학교가 제대로 돌아간 결과는 시험성적이 말해줬다. 2003학년도 대입수능시험의 평균 점수가 8점이나 올랐다. 전국 평균 점수가 전년대비 3.2점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선생님 존경하니 성적은 저절로 올라’라는 제목의 보도가 줄을 이었다. 서대전고는 스승존경 운동을 펼치면서 지역 명문고로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이 운동을 주도하고 스승존경운동중앙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오 교장은 지금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여러 시․도에 스승존경운동협의회가 만들어지면서 전국적인 교육시민사회운동으로 승화될 것 같았던 스승존경운동이 침체에 빠졌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사기진작에 1차적인 책임이 있는 교육부나 교육청은 언론의 관심이 멀어지자 덩달아 이 운동을 외면하고 있다. 오 교장은 “스승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사기를 높여주면 교실붕괴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이 올해도 우리의 숙제다. / 이낙진 leenj@kfta.or.kr
필자는 2006년 새해 벽두에 본란을 통해 2006년 한 해는 무너진 교육의 기강과 규율이 바로 서고, 추락한 교원의 사기와 권위가 회복되는 해로 만들어야 하며, 법과 원칙을 지켜야 손해 보지 않는다는 행위준칙이 지켜져야 우리 교육에 미래와 희망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새해가 열릴 때마다 금년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와 발전에의 희망과 정성과 열성을 다하려는 다짐으로 출발하지만, 기대와 희망과 다짐이 충족되기란 어려운 모양이다. 여전히 교육에서의 기강과 규율은 비틀거리고, 교원들의 사기와 권위는 뒷걸음질치고 있다. 교육은 국가발전 전략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으며, 여건의 개선 없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교육계를 휘감고 있다. 이제 다시 2007년을 열면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교육의 주체들이 서로 네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내 탓이 무엇인가를 성찰하면서 새해에 관한 설계를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 지난 2006년은 어느 해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우리 교육계의 절실한 과제들의 논의와 논쟁이 이루어졌다. 교원능력개발평가제 시행에 대한 논란, 교육인적자원부장관 임명 파행, 학교급식 파문,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 공무원연금법 개악 시정 촉구, 학급총량제 도입에 따른 열악한 교육환경 논쟁, 지방교육자치제의 정체성 혼란 문제, 열악한 교육재정 극복의 시급성, 수석교사제 도입, 학제 개편 등 교육제도와 정책에 관한 논의 및 논쟁, 교사 폭행,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등의 교원과 학생의 인권침해 논쟁, 통합논술 도입에 따른 대학입시의 타당성 제고 논쟁, 공교육 정상화 등 숱한 과제로 교직사회의 불안정과 교육의 이해 혹은 관련 집단 간 의견의 상충이 심화된 해였다. 이러한 논쟁과 이견들은 그 자체로 생산적일 수 있다. 논쟁과 논의와 타협 및 설득을 통하여 보다 나은 방안이 도출되고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논쟁과 논의만 무성했지 어느 것 하나 교육이해 집단 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다시 2007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금년 한 해는 어떤 주제로 고민하는 해가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필자는 ‘공교육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해’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교육의 역사를 통하여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의 교육에 대한 신뢰는 매우 높았다. 교육은 개인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으로 여겼으며, 교육이 국가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신뢰는 지난 IMF 시점을 정점으로 최근 10여년 사이에 불신의 곡선이 거의 직선을 그리는 양상으로 진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된 이유는 다양하지만, 핵심적인 요인은 우리 교원들과 정부라고 생각한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우리 교육자들에게 그 1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과 학생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그 변화를 생산적으로 이끌기 위한 교육자들의 노력과 분발이 미흡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개선․혁신․개혁과 같은 이야기만 나오면 거부감을 보이고 회피하려는 행태를 교육자들이 지니고 있다는 사회인과 학부모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교육자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다시 한 번 점검할 일이다. 정부 또한 교육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교육예산 GDP 6% 확보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국가발전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과 신뢰감을 떨어뜨리고 있다. 교육은 투자 없는 결실을 기대하기 어려운 공적 기업이다. 과대 과밀학급을 해소하고 학급당 학생 수를 1명이라도 줄이기 위한 투자, 교사 대 학생 비를 줄이기 위한 투자, 교사의 수업시수를 OECD 수준으로 접근시키는 등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 유능한 교원 양성을 위한 투자, 교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투자, 사교육이 아니더라도 상급학교 진학과 학생 개개인의 적성 및 잠재능력 개발이 가능한 공교육에의 투자, 학교경영과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 없이 교원들의 희생과 교육애를 호소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 처사다. 교원들로 하여금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주면서 열성을 다 해 학생 교육과 지도에 힘쓰자고 호소하는 것이 순리에 맞는다. 지난 2006년과 마찬가지로 2007년에도 교육계에 풀기 어려운 과제들에 대한 논쟁이 무성할 것이다. 교원능력개발평가제, 수석교사제, 교육자치제, 입시제도 등의 제도에 관한 논쟁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수준 교육과정의 부분 개편과 더불어 어떤 인간을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등 교육의 본질 추구 논쟁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교육에 관한 이 모든 논의와 논쟁들이 교육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최효찬 | 저자, 비교문학 박사 조선시대 최초의 사립학교 건립 진 리프먼 블루먼은 인재를 중시하는 리더십으로 '관계지향적 리더십'을 들고 있다. 관계지향적 리더십은 다른 사람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돕는 데 보람을 찾는다. 여기에는 협력형, 헌신형 그리고 성원형 스타일이 있다. 협력형 스타일의 사람은 팀을 구성해 협력하며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헌신형 스타일은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데서 진정한 만족을 얻는다. 성원형 스타일은 다른 사람들의 성취감을 북돋워 주거나 스승처럼 조언하고 자신이 동일시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업적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갖는다. 즉, 관계지향적 리더십은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는 '엄마형 리더십'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관계지향적 리더십은 다름 아닌 가문의 기획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덕목이다. 명문가의 초석을 닦고 자녀교육에 앞장선 가문기획자들은 통상 가부장적일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오히려 여성적인 엄마형 리더십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예컨대, 퇴계는 아들과 손자, 조카뿐만 아니라 형의 외손, 질녀, 형의 사위, 형의 손자, 조카의 글공부와 어려움을 힘닿는 대로 보살폈다.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이지만 퇴계는 먼저 일가의 큰 어른으로서의 역할도 다했던 것이다. 퇴계는 맏형의 외손자가 공부를 게을리 하자 닭 한 마리와 생선을 보내며 학문에 힘쓰기를 당부하기도 했다. 가문의 CEO가 어떠한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명문가로서의 위상과 명성이 달라질 수 있다. 파평 윤씨 노종오방파의 명재 윤증(1929~1724) 가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이 가문은 단순히 자녀교육에 그치지 않고 이를 체계화해 조선시대 최초로 사립학교를 만들었다. 즉, 명재가문은 이미 4백 년 전에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원스톱' 영재교육 시스템을 도입한 가문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는 퇴계 이황이 자신의 가문이 아니라 후학양성을 위해 도산서원을 세운 것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퇴계의 경우 68세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사상을 전하는 후학양성에 취지를 두고 도산서원을 설립해 300여명에 이르는 제자를 배출했다. 체계적인 교육 커리큘럼 마련 명재가문의 경우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문중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시에는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립 문중학교인 '종학당(宗學堂)'을 세워 후손들의 교육에 전념했다. 당시 공교육으로 서울의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 사립학교로는 서원과 서당이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양반가는 대부분 스승을 두고 과외를 했는데, 명재가문은 당시 사교육의 폐해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문중학교인 종학당을 설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00년을 이어오는 명재 윤증 가문의 자녀교육 비결은 가문의 전통을 세우고 자녀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가문의 기획자'에 있었던 것이다. 명재가문에 교육의 토대를 놓은 이는 명재의 백부인 동토 윤순거(1596~1668)로, 이 가문의 인재산실 역할을 해온 종학당을 세운 사람이다. 윤순거는 노종오방파의 정신적 전통과 인물양성에 기틀을 다진 인물로 종학당을 건립하고 서책과 기물을 마련하여 자제들을 가르치고 가문의 규칙을 마련한 주역이다. 종학당은 관학인 성균관과 대조를 이루는 사학(私學)의 대표적인 기관으로 요즘의 초·중·고와 대학이 함께 있는 종합캠퍼스와 같다. 10세 아이부터 과거를 보는 청소년들까지 연령과 학문에 따라 단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는 당시 서당 등의 교육현실에 비춰보면 크게 진일보한 것이다. 종학당은 동토의 아우인 윤선거와 윤선거의 아들인 명재가 차례로 학장에 오르면서 본 궤도에 올랐고 명성을 크게 얻었다. 종학당은 문중의 자녀들뿐만 아니라 인근에 사는 청소년들도 입학할 수 있었다. 즉, '가문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지역의 교육기관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동토는 근대적인 교육체계가 없었던 당시에 가문 차원에서 체계적인 자녀교육 커리큘럼과 프로그램을 만든 '사교육의 기획자'였던 것이다. 동토 윤순거는 아우인 윤선거와 함께 가문의 규칙인 종약과 가훈을 만들었다. 종약에는 종학당의 교육지침과 운영에 관련된 내용도 들어있다. "바야흐로 자라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한번 잘못되어 어릴 때 교양이 바르지 못하면 어리석고 어둡게 되는 것이니 이는 매우 두려운 일이다. 이제 약 10세 이상의 자제를 모두 한 당(堂)에 모아서 스승을 세우고 글을 외우게 하고 읽게 한다. 학업과 학예를 갈고 닦게 하여 반드시 인재를 길러내는 일이 필요하다." 윤순거가 종학당을 세우며 이같이 후학에 전념한 것은 병자호란 때 아버지 윤황이 척화를 주장하다 귀양살이를 하고, 숙부인 윤전(尹火全)이 세자교육을 담당하던 시강원 벼슬을 지내다 강화도로 피난갔다 순국하는 등 불행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윤순거는 벼슬을 사양, 향리에 은거하여 종학당을 세우고 후학들을 교육하는데 전력했던 것이다. 이러한 집안내력이 윤황-윤순거-윤증으로 이어지면서 향리에 은둔하며 후학양성에 힘을 쏟는 가풍이 생겨났다. 명재는 인조, 효종, 현종, 숙종 등 4대에 걸쳐 임금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았지만 정승에 오른 역사상 보기 드문 인물이다. 그의 학문적 세계는 양명학파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명재는 양명학자로 강화학파를 형성시킨 정제두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400여 명의 과거합격자 배출해 종학당은 명재가 백부 윤순거와 부친 윤선거에 이어 3대 학장(당장)에 부임하면서 명성을 드높였다. 선비교육과 함께 과거시험 준비가 모두 종학당에서 이루어져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명성이 높아지며 학생들이 늘어났고 150년 후에는 동토의 5대손인 윤정규가 건물을 더 지어 확대 개편했다. 종학당은 조선후기 들어 최고의 명문사립대학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종학당의 규정이 적혀있는 종법에는 아주 구체적으로 종학당의 운영지침을 마련해놓고 있다. 종학당은 일반서원이나 서당과는 달리 교육과정과 목표를 설정하고 철저한 규칙과 규율 속에서 교육이 이루어졌다. 때문에 파평 윤씨 가문의 종인들 대부분이 종약의 규율아래 체계화된 프로그램과 엄격한 규칙에 따라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종법에는 공부의 근본인 독서에 대해 독서의 의의, 독서의 순서, 독서의 방법 등으로 나눠 자세하게 강조하고 있다. 독서는 예나 지금이나 공부의 기본이지만 독서에도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종학당은 교칙이 엄격했다. 여기에는 일용(日用, 하루에 할 일)·야매(夜寐, 밤에 잠자는 것)·지신(持身, 몸가짐의 방법)·사물(四勿,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독서지서(讀書之序, 독서의 순서)·독서지법(讀書之法, 독서의 방법) 등이 포함돼 있다. 또 먼동이 트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 부모의 처소에 가서 안부를 여쭈어야 한다. 밤에는 늦게까지 공부하고 잠자리에 들고 밤에 잘 때에는 부모님께 밤새 안녕하시기를 여쭙는다. 요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할 뿐만 아니라 저녁에도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1564년경 야트막한 니산(泥山) 아래에 터를 잡은 파평 윤씨 일가가 명문가로 우뚝 서고 또 자녀교육 문화를 주도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종학당에서 이루어진 체계적인 교육에 힘입은 바가 컸다고 할 수 있다. 파평 윤씨는 조선시대에 전주 이씨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과거합격자를 배출한 성씨로 기록되고 있다. 조선시대 과거 합격자가 기록돼 있는 국조방목(國朝榜目)에 따르면, 조선 건국이후 갑오경장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300여 성씨에 1만 4624명이 합격했다. 이 가운데 전주 이씨가 844명을 배출해 가장 많고 파평 윤씨 412명, 안동 권씨 359명, 남양 홍씨 324명, 안동 김씨 310명 등의 순이다. 종학당은 1646년 설립된 이후 과거가 폐지될 때까지 46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고 시호(諡號, 죽은 뒤에 공덕을 기려 임금이 내린 이름)를 받은 인물이 9명이다. 특히 윤황, 윤선거, 윤증은 3대가 모두 시호를 받았다. 한 가문에서 이같이 걸출한 인물이 배출된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실용적 학풍으로 시대 앞서가 명재가문의 특징은 백의정승 집안답게 실용적인 학풍이다. 종학당은 이재(理財)에 대한 과목을 개설해 토론하는 시간을 별도로 가졌다. 지금으로 보면 17세기에 이미 경영학을 가르친 것이다. 또 유교사회의 폐단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제사의 허례허식을 개선해 제수품의 수를 줄였다. 당연히 제사상도 작은 것(68×99)으로 바꾸었는데, 이런 전통은 아직도 내려오고 있다. 예학을 중시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명재가 집안의 부녀자들이 잦은 제수품 준비로 너무 혹사당한다며 간소화했다고 한다. 요즘 표현으로 대학자인 명재는 페미니스트였던 것이다. 명재의 9대손인 이은시사(離隱時舍) 윤하중(尹昰重)이 천문학을 연구한 것도 실용을 추구하는 가풍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명가의 종손이 천문학을 연구했다는 것 자체도 눈길을 끌지만 더 파격적인 것은 천문학을 연구한 윤하중은 음력설 대신 양력설을 지내고 모든 행사를 음력이 아닌 양력을 기준으로 치르는 전통을 만들었다. 심지어 출생신고도 양력으로만 한다. 아직도 음력설을 쉬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다. 윤하중은 연구에 그치지 않고 〈성력정수(星曆正數)〉라는 천문학 책을 펴내기도 했다. 여기에서 그는 1년 동안 1분의 시간이 느리게 계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1년이 365일 5시간50분인데 365일 5시간49분으로 계산되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실용적인 가풍에 따라 요즘도 명재 집안에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 대신 공대출신이나 기업경영자, 의사 등 실용적인 학문이나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명재의 실용적인 가풍을 이어 후손가운데 두 명이 굴지의 대기업 회장에 올랐다. 한국야쿠르트 창업주인 윤덕병 회장은 명재의 8세손이다. 윤 회장은 전문경영인이 소신대로 회사를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일체 경영에 간섭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35년 동안 대표이사가 단 3명에 불과할 정도로 전문경영인이 소신 있게 일하는 회사로 키웠다. 또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을 때도 대리인을 참석시켰다. 마치 명재가 임금이 불러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웅진 그룹 윤석금 회장도 이 집안 출신이다. 윤 회장은 기업에서 인재육성에 대한 철학과 고집으로 '인사 파격'이라고 불릴 만한 사건을 많이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종학당에서 인재를 키웠듯이 윤 회장은 기업을 이끌고 갈 사장을 키워내는 데 남다른 안목을 갖고 있다. 매년 여름방학 때면 명재의 후손들은 종학당에 모여 명재의 가르침을 받는다. 이른바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문중교육의 전통이 수십 년째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매번 400여명이 교육을 받는다. 400년 전에 자녀교육을 체계화한 가문답게 자녀교육의 지침을 담은 〈훈강〉이라는 교재도 매년 새롭게 만든다. 선비정신을 실천하며 '파평 윤씨 주식회사'의 방향을 정립한 윤순거, 윤선거, 윤증 등 가문 CEO들의 가르침은 아직도 후손들의 정신 속에 깊숙이 남아 마음의 등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자녀교육을 위한 여성적 리더십 흔히 유럽의 귀족들이나 명가에서 자녀교육을 언급할 때는 언행의 신중함과 절제미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명문가에도 명재가의 경우처럼 엄격하고 철저한 규율이 존재했고 종법이라는 문서로 체계화되어 전승돼오고 있다. 명재가문은 근대적인 교육체계가 없었던 당시에 가문 차원에서 체계적인 자녀교육 커리큘럼과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대로 인재를 배출할 수 있도록 했다. 퇴계 이황이나 청계 김진, 명재 윤증 등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요즘 지식사회의 감성시대에 각광받는 관계지향적 리더십, 즉 여성적인 리더십으로 지속가능한 가문경영의 초석을 쌓았다. 오늘날에는 이들처럼 아버지가 엄마형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자녀교육의 전면에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자녀교육에 열정을 가진 극히 일부 아버지들에게 해당되고 있다. 대부분의 가정은 어머니가 직장일이나 비즈니스로 바쁜 아버지를 대신하면서 자녀교육의 CEO로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른바 '대치동 엄마'들처럼 자녀교육에 열정적인 어머니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요즘에는 가정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섬세하고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엄마형 리더십이 각광받고 있다. 학교교육을남성들보다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여성적 리더십이 한 몫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가 자녀교육에 임할 경우 기존의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적 리더십으로는 오히려 자녀교육도 못하고 부자관계마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들도 섬세하게 보살피고 이끌어주는 엄마형 리더십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500년 전에 가문의 기획자들은 이미 그런 리더십을 발휘해 새 세상을 열었다. 이제 자녀교육에 나서는 모든 아버지들도 엄마형 리더십으로 무장하자!
김철호 | 저자 [문제] 괄호 안에서 자연스러운 표현을 고르시오. 1. 딸아이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용돈을 (주기로|건네기로) 약속했다. 2. 고마운 마음에 만원짜리 한 장을 (주었지만|건넸지만) 노인은 한사코 받지 않았다. 3. 젊은 사서는 내가 신청하지도 않은 책을 태연히 (주는|건네는) 것이었다. 4. 아이가 어머니에게서 받아 온 편지를 선생님에게 (주었다|건넸다). [풀이] ‘주다’의 다양한 쓰임새 한국어에서 ‘주다’만큼 쓰임새가 다양한 낱말도 드물 것이다. 상대에게 물건을 가지도록 건네는 일, 돈·요금·봉급 따위를 지불하는 일, 먹을 것이나 영양을 공급하는 일, 일이나 책임을 맡기는 일, 권리나 지위 같은 것을 부여하는 일, 도움이나 혜택을 제공하는 일, 고통·해·창피 따위를 겪게 하는 일에도 ‘주다’가 쓰인다. 이밖에도 주의나 언질 같은 말을 하는 일, 전화를 하거나 연락을 취하는 일, 점수나 학점을 매기는 일, 상이나 벌을 받게 하는 일, 시간이나 여유를 허락하는 일, 속이나 정을 내보이는 일, 감동이나 겁, 느낌 따위를 느끼게 하는 일, 세례나 안수를 베푸는 일, 몸에 힘을 쓰는 일, 액센트나 변화 같은 영향을 가하는 일, 눈이나 귀를 일정한 방향으로 돌리는 일, 눈치를 보내는 일, 자식을 남의 집 며느리나 양자로 들이는 일, 몸이나 마음을 이성에게 허락하는 일 등등, ‘주다’의 대상에는 거의 제한이 없어 보인다. ‘건네다’는 ‘건너다’에서 온 말 한편 ‘건너다’의 어간 ‘건너-’에 사동접미사 ‘-이’가 붙어서 생겨난 ‘건네다’는 크게 세 가지 뜻으로 쓰인다. 첫째, ‘건너다’에서 나온 사동사라는 태생에 충실하게, 사람이나 물건을 ‘건너가게 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다. ‘건네다’가 이렇게 본래 의미로 쓰이는 경우에는 ‘건네다’보다는 ‘건네주다’의 꼴을 취할 때가 많다. “사공이 나룻배로 여인을 건네주었다”, “아이를 업어서 징검다리를 건네주었다” 등이 그 예다. 또 한 가지는 “말을 건네다”, “인사를 건네다” 같은 경우다. 이럴 때는 상대에게 말을 붙이거나 인사를 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건네다’는 “물건을 건네다”나 “돈을 건네다”에서 볼 수 있듯이 ‘무언가를 남에게 넘겨준다’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이 글에서는 이 용법에 한정해서 ‘주다’와 비교하기로 한다). 주의는 ‘주고’ 인사는 ‘건넨다’ ‘준다’나 ‘건넨다’나, 뭔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일을 가리킨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런데도 한국어에서는 이 두 낱말과 어울리는 대상들 사이에 비교적 엄격한 구별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넘겨줄 때에는 “돈을 준다”고도 할 수 있고 “돈을 건넨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건너가는 것이 돈이 아니라 말[言]이면 ‘준다’는 안 되고 ‘건넨다’만 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말 중에서도 인사나 수작 같은 것은 ‘건넨다’고 하지만 주의나 언질 같은 것은 ‘준다’고 한다는 점이다. 이런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누구나(?) 좋아하는 ‘돈’을 예로 들어보자. “돈을 주었다”와 “돈을 건넸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예컨대 “어머니가 아이를 잘 봐달라며 담임선생에게 돈봉투를 주었다”와 “~ 돈봉투를 건넸다”는 어디가 어떻게 다른 걸까. 한번 ‘준’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주었다’나 ‘건넸다’나, 돈이 교사의 손으로 넘어간 사실을 가리킨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둘 사이의 차이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상황에서 생겨난다. 즉, 교사가 돈을 받아서 ‘꿀꺽’ 해버렸다면 ‘주었다’가 어울리고, 정색을 하면서 돌려주었다면 ‘건넸다’가 좀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다’의 대상이 된 사물은 한번 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반면, ‘건네다’의 대상은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 십상이다. 그래서 “돈봉투를 주었지만 손사레를 치며 받지 않았다”보다는 “돈봉투를 건넸지만 손사레를 치며 받지 않았다”가 훨씬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이다. ‘주다’는 소유권 이동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무엇이든 ‘주면’ 그 사물은 새 주인을 섬기게 된다. 첫머리에서 ‘주다’와 어울릴 수 있는 것을 여러 가지 살펴보았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주다’에 의해 소속이 바뀐다. 누군가한테 돈을 ‘주면’ 그 사람이 돈의 새 임자가 되고, 권리를 ‘주면’ 그 사람이 권리의 소유자가 된다. 남에게 ‘준’ 상처나 모욕은 고스란히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 된다. 주의나 언질도 한 쪽이 다른 쪽에게 일방적으로 주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어서, 상대가 무언가를 돌려주고 말고 할 것이 없다. ‘건넨’ 것은 돌아오는 것이 정상이다 이에 반해 ‘건네다’는 단순히 어떤 물건의 소재가 다른 사람 손으로 바뀌었음을 뜻한다. 이때 사물의 소유권 자체에는 변동이 없어서, 건너갔던 것은 다시 주인에게 돌아오는 것이 정상이다. 흔히 “줬다 뺏는 법이 어딨냐” 하듯이, 한번 ‘준’ 것을 도로 가져오려면 ‘빼앗는’ 방법밖에는 없다. 반면 ‘건네준’ 것은 도로 ‘건네받으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한테 말을 ‘건넸는데’ 상대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말을 건네면 말이, 인사를 건네면 인사가 돌아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공이 ‘건네준’ 여인도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어 있다. ‘주다’는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이며 자기완결적이다. “몸 주고 마음 주고 정도 주었지만” 운운하는 노랫말에서도 보듯 ‘주는’ 행위는 그것으로 그만이어서, 그에 상응하는 것이 돌아오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것이(이를테면 배신이나 보복이) 돌아온다. 이에 반해 ‘건네다’는 쌍방향적이고 대칭적이며 순환적이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 ‘건넨’ 것과 똑같은 것이, 또는 그에 상응하는 것이 돌아오게 되어 있다. ‘건네다’는 소유권과 무관할 때가 많다 그런데, ‘주다’와 ‘건네다’ 사이에는 소유권과 관련해서 좀더 근본적인 차이가 숨어 있다. 앞에서 ‘주다’는 소유권 이동을 전제로 한 낱말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건네다’에서는 애초부터 소유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여인을 ‘건네준’ 사공이 여인의 주인이 아니듯이, 어머니의 편지를 받아서 선생님에게 ‘건네는’ 딸에게도 편지와 관련한 권리가 전혀 없다. 영어로 치면 ‘주다’는 ‘give’고 ‘건네다’는 ‘pass’다. 영어사용자들이 식탁에서 “Give me the salt”라 하지 않고 “Pass me the salt”라고 하는 이유는, ‘give’가 소유권의 존재와 그 이동을 전제로 한 말인 데 반해 ‘pass’는 소유권과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동료에게 공을 넘길 때 ‘give’한다 하지 않고 ‘pass’한다고 하는 까닭도 이와 같다. 공을 넘겨주는 선수나 넘겨받는 선수나 결코 공의 임자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건네다’는 구체적, ‘주다’는 추상적 ‘건네다’와 ‘주다’ 사이에는 또 한 가지 중대한 차이가 있다. 누구한테 뭔가를 ‘건네기’ 위해서는 우선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야 한다. 그리고 ‘건네주는’ 사람이 ‘건네받는’ 사람에게 몸소 물건을 넘겨주어야 한다. 이에 반해 뭔가를 ‘주는’ 일은 서로 만나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장은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도 다른 직원을 시키거나 자동이체를 통해서 얼마든지 직원에게 급료를 ‘줄’ 수 있다. 당사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이를테면 공개적인 글을 통해)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일도 가능하다. ‘건네는’ 행동은 구체적이고 ‘주는’ 행위는 추상적이다. ‘주다’는 한 인간에게서 다른 인간에게 뭔가가 건너가고 넘어가고 흘러가는 온갖 경우를 두루 싸잡아 가리키는 말이고, ‘건네다’는 그 중에서 신체의 실질적인 움직임을 동반한 경우만을 지칭한다. ‘건네다’는 ‘주다’의 부분집합이다. 두 낱말의 상대어가 공히 ‘받다’임을 생각하면 이 점이 한층 분명하게 드러난다. 점잖은 글말로 물러난 ‘건네다’ 이렇게 ‘주다’와 ‘건네다’ 사이에는 의미심장한 차이가 숨어 있지만, 입말에서는 ‘건네다’를 쓸 곳에 ‘주다’를 쓰는 일이 흔하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주다’가 ‘건네다’에 비해 발음이 쉽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워낙에 ‘주다’의 쓰임새가 넓다 보니 한국어사용자들의 무의식 속에 “‘주다’는 모든 사물에 쓸 수 있다”는 단정적 사고가 자리 잡게 된 연유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입말에서 ‘건네다’를 썼을 경우 말하는 이의 점잖은 성격이나 지긋한 나이를 느끼게 한다. ‘건네다’가 ‘주다’에 눌린 까닭 ‘인간人間’을 풀면 ‘사람 사이’가 되듯이,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사회를 이루어 서로 뭔가를 주고받으며 사는 존재다. 하기야 그렇게 모여 사는 과정에서 말이라는 것도 생겨났을 테니, ‘주다’의 용법이 다종다양한 것도 더없이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사람의 성정이 저마다 다른 탓인지, 내가 누구에게 무언가를 해주어도 상대가 똑같이 갚아 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 듯하다. 아니면, 사람이 서로 제각각이다 보니 자신이 받은 만큼 고스란히 돌려주기보다는 받은 것에 모자라게, 혹은 그보다 넘치게 돌려주는 일이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쓰임새의 가짓수에서 ‘주다’가 ‘건네다’를 압도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은 아닐는지. [요약] 주다 -양자의 직접적인 대면과 신체행동이 따르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두루 가리킴 -소유권의 존재와 그 이동을 전제로 함 -일방적, 비대칭적, 자기완결적 건네다 -양자의 직접적인 대면과 신체행동이 따르는 경우만을 가리킴 -소유권 불변을 전제로 하거나, 소유권과 상관없음 -쌍방적, 대칭적, 순환적 [답] 1. 주기로 2. 건넸지만 3. 건네는 4. 건넸다
2000년 4월 7일 새벽,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 위치한 운봉산에 화재가 발생했다. 초속 12~20m의 강풍을 타고 번진 불은 9일간 계속되며 고성 일대에 산림 피해액만 350억이 넘는 큰 피해를 입혔다. 이른바 '고성산불'. 첫 발화지인 운봉산 인근에 자리 잡고 있는 오호초등학교도 불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김철정 교장을 비롯한 11명의 교원은 새벽에 학교로 달려와 학내전산자료가 입력된 컴퓨터 본체와 학적부 등 주요 자료만을 옮길 수 있었고 불길에 휩싸이는 학교를 바라봐야만 했다. 교사들 노력으로 전소(全燒) 위기 면해 8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거센 화마(火魔)가 지난 후 뼈대만 남은 창고와 급식시설이 모습을 드러내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만 다행히 본관 건물은 외관만 그을린 채 멀쩡해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현재 오호초의 교장으로 재직 중인 장원진 교장은 당시 교감으로 그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밤중에 당시 군청에 근무하던 동생의 연락을 받고 학교로 가보니 불이 이미 학교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어요. 긴박한 상황에서 본관 창문을 꼼꼼히 점검한 덕분에 전소(全燒)를 막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의 틈만 있었어도 모두 다 사라질 뻔했죠. 그리고 당시 관사에서 자고 있던 교사를 대피시킬 수 있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장 교장은 이 학교 33회(1962년) 졸업생이다. 모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의욕에 불타올랐지만 갑작스럽게 발생한 재난 앞에서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에 학교를 되살리는 데 앞장섰다. 학교를 5개 구역으로 나눠 매년 하나씩 복구를 해나갔다. '학교 되살리기 5개년 계획'을 실천한 것이다. "제한된 예산으로는 복구에 모든 걸 집중할 수 없었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의 교육이 우선이었으니까요." 위기 상황이었던 만큼 교직원과 학생들을 동원할 수도 있었지만, 수업에 지장을 줄 수 없었기에 장 교장은 굳이 인부를 부르지 않아도 될 때는 학교 기사와 함께 직접 일을 해 나갔다. 그래서 학교를 찾은 사람들에게 일꾼인지 교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 끝에 이제 학교는 제 모습을 찾았다. 오히려 불타기 전보다 더 아름다운 학교로 변했다. 지금은 학교를 찾는 사람들은 학교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장미와 연산홍으로 둘러싸인 교정, 운동장 한 쪽에 마련되어 있는 수목원과 분수공원은 오호초의 자랑이다. 뒷산에 남아있는 산불의 흔적을 보지 못한다면 불이 났던 곳인지 전혀 의심할 수 없다. 작년 여름 고성을 찾았다가 오호초에 들렸다는 이시연 전주교육청 초등교육과장은 "우연히 들린 학교가 너무 아름다워 부럽네요.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학교가 되길 바랍니다"라는 글을 학교 홈페이지에 남기기도 했다. 장 교장은 5년간의 오호초 생활을 마치고 2004년 교장으로 승진하며 다른 학교로 옮겼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2006년 초빙교장으로 다시 부임했다. 그간의 노력이 주민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모교라는 애착이 있긴 하지만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당연한 일인데 칭찬을 받으니 더 어깨가 무겁습니다." 올해부터는 야생화단지 조성, 과학교육을 위한 간이 기생대·암석원·식물원의 시설 보강으로 학교공간을 다양한 체험 학습의 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3F 운동, 드럼 수업 등으로 내실 다지기 지난 해 부임하면서 장 교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학교의 외관이 아닌 내실을 다지는 것. 지방의 소규모 학교(현재 6학급 75명)가 대부분 그러하듯 오호초도 점점 줄어드는 학생 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속초시가 15분 거리에 있어 학생을 유지하는 데 더욱 힘든 형편이다. 또한 학생의 20% 이상이 결손 가정 아동들이고, 50여 가구에 불과한 재학생들의 사교육비가 연간 8000여만 원이 소요돼 이를 보완하는 것도 시급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자를 중심으로 한 특색교육과 독서, 정보, 영어, 리코더에 대한 인증제인 '오호금별제'를 실시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작은 실천으로 큰 보람을 갖자는 '3F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3F 운동은 '나부터(From I)', '지금부터(From Now)', '작은 일부터(From Small)'를 통해 기본 생활 습관 형성과 봉사, 공동체 의식을 배양하는 따뜻한 심성을 함양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학생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학교에 다니면 뭔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평준화를 강조하다보니 학교마다 갖고 있는 특색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뛰어난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르다는 말을 듣게 해주고 싶어요. 학생은 교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호초의 특색 있는 교육관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드럼 수업이다. 사물놀이, 댄스스포츠, 풍선 아트 등 특기적성 교육을 하고 있지만 장 교장은 직접 배우고 있는 드럼을 작년 9월부터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퇴직 후 '실버악단'을 구성해서 봉사활동을 다니고 싶은 욕심에 배우기 시작한 드럼에 푹 빠진 장 교장은 학생들과 같은 기쁨을 나누기 위해 지원자를 뽑아 드럼 수업을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저보다 배우는 속도가 빨라요. 이젠 점점 긴장이 된다니까요. 앞으로 조금만 있으면 고성군에서 하는 행사에 우리 '드러머'들이 단골로 출연할 것 같네요. 좀 더 익숙해지면 색소폰도 배워 수업을 하고 싶어요." 직접 구입한 드럼을 학교에 놓고, 방과 후는 물론 주말에도 아이들과 함께 한다. 생소한 악기를 접한 아이들은 한번 드럼을 치면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모른다. 5학년인 최자은 양은 "처음엔 신기하기만 했던 드럼을 치다보면 정말 신나고, 땀도 흘릴 수 있어서 좋아요. 처음엔 무섭던 교장선생님이 지금은 하나도 안 무서워요"라며 웃었다. 장 교장은 드럼이 한 대 뿐이라서 많은 아이들이 함께 하지 못해 올해는 한 대를 추가해 더 많은 학생들을 가르칠 예정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흥이 나고 속초에서 일주일에 두 번하는 드럼 레슨도 더 열심히 받게 됐다고 한다. 2년 전 오호초에서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한 박진우 교사는 "일요일에도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에 나오시고, 또 자비를 털어 식사와 간식을 함께 하시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우리 교사들에게도 행정업무에 대한 부담 없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시는 교장선생님을 만난 것이 행운이에요"라고 말했다. 학교의 모습을 바꿔 누구든지 즐겁게 찾을 수 있게 하고, 학생들에게는 인성교육과 함께 다양한 특색교육을 하는 장 교장의 이러한 노력들은 지방 소규모 학교의 경우, 학교가 주민과 하나가 되고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소신에서 시작됐다. 학교가 중심이 되면 학교의 황폐화를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졸업생 수가 3000여 명 정도입니다. 그 중에 저는 20년 가까이 다니고 있으니 제일 오래 다니는 거죠. 그만큼 더 열심히 해야 되겠죠? 지역 주민들이 모두 선·후배고 제자들이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지만 적극적인 도움을 주고 있어 누구나 찾고 싶은 학교를 만들고 싶습니다." 장 교장은 마지막으로 지방의 소규모 학교를 살리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전국의 많은 교원들에게 올 한해는 함께 소중한 결실을 맺길 바란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 엄성용 esy@kfta.or.kr
이동웅 | 울산여고 교장 한 제자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제자와 함께하는 자리는 다른 어떤 자리보다 순수하고 부담이 없어 좋다. 그래서 이런 초대를 앞둔 날이면 마냥 마음이 설렌다. 함께 초대된 분은 제자의 담임이었던 최 선생님, 그리고 지인인 강 선생님이었다. 음식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던가? 과거 학교시절 이야기며, 세상 살아온 이야기, 또 살아갈 이야기 등 모처럼 모든 일들을 다 잊어버리고 있는 말, 없는 말 다 털어놓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특별한 자리로 우리를 초대한 제자 하 선생은 학성여중에 근무할 당시의 제자로 명문대 약대를 졸업했다. 이후 본인의 적성을 고려하고 사회에 더 큰 봉사를 하고자 의과대학에 진학해서 소아과를 전공한 후 개업의로 10년간 환자를 돌보다가, 다시 정신과 전문의 4년 과정을 거쳐 지금은 부산의 어느 정신과 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좀 별난, 그러나 특별한 제자와 함께하는 자리라 잘 못 먹는 술도 마시고, 서로 헤어지기 아쉬워 밤늦게까지 찻집에 들려 또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오랜만에 가져보는 편안한 시간이었다. 하 선생은 앞으로 울산에 정신병원과 양로원을 세워 울산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사회활동을 하면서 일생을 보내려고 병원부지까지 준비해 놓았다는 이야기도 했고, 여러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자기 나름의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부모가 자신의 생각에 자식을 맞추느라 자식이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며, 부모들이 우리의 좋은 교육제도를 마다하고 자식들을 멀리 외국으로 보내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 또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이 아이들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긴다며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학교도 함께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며, 부모도 교사 못지않은 교육전문가이니 학교가 그 전문성을 학교 안으로 끌어 들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등 여러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냥 어린 제자라 생각한 하 선생과의 대화로 학교 안에서만 생각하는 필자가 우물 안 개구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문 안과 교문 밖의 온도차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으며, 나 자신이 진정한 교육자로서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했다. 도리어 내가 제자로부터 회초리를 맞는 자성의 시간으로, 솔직한 충고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성공을 일구어 내고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하 선생의 모습이 자랑스러워서 시간을 내서 우리 학교 교직원과 학부모,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해달라고 부탁도 했었다. 다음 날 점심 식사를 하고 막 들어오는데, 바로 전날 즐거운 대화를 나눈 하 선생이 오전 서울에서 위암 수술을 받았다는 비보가 전해진다. 눈앞이 캄캄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제의 자리는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그리운 사람을 보고 가려고 미리 마음먹고 정한 자리였음이 분명하다. 그 넉넉한 여유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삶의 목표와 철학이 남다른 까닭인 것이었다. 위로받아도 부족한 처지에 타인을 편안하게 해주고자 자기 몸 생각하지 않고, 내색 하나 없이 늦게까지 시간을 내준 하 선생이 안쓰럽고 한편으론 밉다. 내가 진정 이렇게 가르쳤냐고 가까이 있으면 큰소리 내어 꾸짖고 싶은 심정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면서도 남을 먼저 배려하려고 애쓰며, 모든 사람에게 비전을 제시해주는 보기 드문 큰 그릇 하 선생. 스승보다 크게 성공하여 항상 자랑스러웠고, 그를 통해 교직의 보람을 느끼며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한, 강한 자부심을 나에게 심어준 하 선생인데 그런 하 선생에게 위암이라니! 그러나 현실을 어떻게 부정할 수 없어 너무 안타까웠다. 나의 자랑스러운 제자 하 선생! 빠른 쾌유를 빕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너무 열심히 살아왔기에 잠깐 쉬어가라는 강한 메시지로 생각합시다. 이제까지 쉼 없이 달려온 하 선생에게 뒤도 한번 돌아보고, 자신을 사랑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으로 생각합시다. 그래서 지금의 그 열정과 통찰력으로 생각한 바를 꼭 이루어내야 합니다. 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말입니다. 하 선생은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지금까지처럼 모든 걸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빨리 회복해서 늘 그랬듯이 즐겁게 사회 활동하는 좋은 모습 꼭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 선생만이 가진 특별한 향기를 우리 사회를 위해서 꼭 피워 내리라 확신합니다.
박준용 | 한양대 강사, 영화평론가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은 강원도 탄광촌의 도계중학교에 임시 음악교사로 부임하게 된 한 트럼펫 연주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배우 최민식이 연기하는 주인공 현우는 교향악단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류에서 밀려난 트럼펫 연주자. 재능은 없어도 자존심은 있어 자괴감에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처지도 못되면서 음악 학원에서 용돈이나 벌라는 친구의 말에는 자존심 상해한다. 돈을 위해 음악을 하면 안 된다고 믿는 그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밤무대에 서는 일만은 끝내 피하려고 한다. 그런 주인공 현우에게 겨울은 길기만 했다. 교향악단 연주자를 꿈꾸었던 미래는 암담할 뿐, 현실의 벽에 부딪쳐 보내야만 했던 연인은 주위를 맴돌며 맘을 아프게 하고 나이든 홀어머니에게 효도도 못하고 걱정만 끼쳐드리는 형편이다. 그에게 인생은 늘 그렇게 캄캄한 겨울일 것만 같았다. 탄광촌에서 만난 순수한 열정 하지만 꽁꽁 언 땅 밑에서도 자연은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듯이 겨울은 고요히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떠나보낸 옛 연인 연희(김호정)가 결혼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던 날, 현우는 강원도 탄광촌에 있는 중학교 관악부 교사 자리에 지원한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부임한 첫 날. 낡은 악기, 너덜너덜한 악보, 까까머리에 얼굴은 새까만 아이들이 모여 있는 초라한 관악부를 보는 순간 한숨만 나올 뿐이다. 게다가 올해 전국경연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강제 해산해야만 하고, 현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망 없는 레이스에 돌입해야 한다. 우승은 턱도 없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담겨 있는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그는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잊고 있었던 자신의 옛 모습을 떠올렸기에 아이들의 음악에 대한 사랑까지 포기하게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선생님이 굳은 신념과 이상을 품고 교직을 시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요즘 세상에는 현우처럼 어쩔 수 없는 생활의 한 방편이나 일종의 안정된 직업으로 교직을 선택하는 이들이 더 많을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교사가 일상적인 직업들과 달리 사람, 곧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변화무쌍한 존재인 아이들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는 특수한 성격의 일이라는 데 있다. 이런 까닭에 교육이란 언제나 학생은 물론 교사 본인도 이런 살아있는 만남을 통해 보다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고 성숙되어 갈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결국 교직이란 어떻게 시작하느냐 못지않게, 영화 속 현우의 변화처럼 그 열린 가능성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느냐에 그 궁극적인 성패의 여부가 달려있다. 비현실적 공간에서 현실 깨달아 아이들과 대회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지만 그래도 여전히 옛 사랑의 그림자에 가슴이 저리는 현우. 그런 현우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맑은 심성을 가진 마을약사 수연(장신영)의 배려로 현우는 언 땅을 녹이는 따뜻한 봄기운을 느낀다. 현우를 이해하고 바라봐 주는 순박한 사람들도 그의 곁을 지켜 준다. 잘하든 못하든 좋아하는 거 계속 하자는 친구의 술주정, 기나긴 겨울을 보내야만 봄이 오는 거라는 수연의 넋두리,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자신의 울부짖음에 "넌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무뚝뚝하게 내뱉는 엄마의 한 마디를 가슴깊이 되새기며 말이다. 현우는 그제야 알게 된다.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얼어붙었던 마음에 사랑의 싹이 움트고 있음을. 희망은 아직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겨울을 보낸 현우에게 어느덧 꽃피는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화 속의 도계는 탄광촌이면서도 잿빛 가루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마을이다. 자잘한 상처들로 가슴 속 깊이 할퀸 현우는 도계에 오자마자 "잘 데는 있으세요?"라고 묻는 속 깊고 착한 아이를 만난다. 동네 사람들도 대부분 착하고 순박한 심성을 갖고 있다. 마치 현우를 위해 준비된 듯한 이 공간은 도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상적인 시골 이미지로 채색된 듯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곳의 실제 일상일 것 같은 탄광촌의 고단한 인생이나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의 고민은 살짝 스치고만 지나간다. 하지만 감독이 현우의 구부정한 뒷모습에 카메라를 집중하며 쌓아 올려가는 일상의 모습들은 잔잔하고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한계를 통해 희망과 가능성 찾아 드라마틱한 삶과는 거리가 먼 남자 현우. 그가 서울대를 졸업했다고 믿으면서 열심히 연습하는 아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주지도 못하고, 하다못해 단 한 번의 우승마저도 주지 못한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이에게 "내가 너희한테 우승할 수 있다고 하면 그건 사기치는 거야"라고 말하며 김을 빼 버리는 현우는 어찌 보면 자격미달의 교사다. 하지만 아이들의 현실적 한계와 이후 발전 가능한 꿈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주는 선생의 길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꿈이 지나치면 곧 직면하게 될 차가운 현실에서의 고통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 반대로 현실의 한계만을 강조한다면 아이들의 가능성을 그 싹부터 밟아버리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 이상의 꿈을 품으려는 아이들에게 현우는 먼저 지극히 당연한 '현실'을 말한다. 그런데 실은 그게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인 것이다. 삶의 사소한 장애물들에 무수히 발이 걸려 넘어지고 눈물은 가슴 속으로 뚝뚝 떨어지는 그런 현실 말이다. 엄청나게 화려하고 잘난 삶을 꿈꾼 것도 아닌데 인생은 그렇게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냥 주저앉아 있으라는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현우는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를 품게 하지 않으면서 바로 그 지점, 그 현실로부터 시작한다. 희망과 가능성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오늘의 수고에 의해 내일의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패배감을 녹이는 인내와 용기 제대로 소리도 나지 않는 악기를 들고도 최선을 다해 연습에 열중하는 관악부 아이들. 어머니가 집을 나가서 할머니와 살고 있는 재일은 할머니에게 트럼펫을 들려주겠다며 어려운 곡을 연습하고, 용석이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닥쳐도 '케니 G'처럼 유명해지고 싶다며 의지를 다진다. 이렇게 가난한 형편에도 꿈을 품고 사는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들이 이윽고 현우의 마음속으로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광부인 용석의 아버지는 용석이 그토록 되고 싶어 하는 연주가의 꿈이 그들의 형편에선 감히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것을 알기에 용석의 손에서 트럼펫을 뺏는다. 그런 사정을 알게 된 현우는 관악부 학생들을 데리고 탄광촌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는 아버지들 앞에서 엘가의 'Pomp And Circumstances(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한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너무도 행복한 얼굴로 열심히 연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들은 시커먼 탄가루가 묻은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친다. 용석의 아버지가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이 장면은 두고두고 가슴을 찡하게 한다. 영화 은 제목 그대로 꽃이 피어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정직한 영화이다. 아무리 겨울이 매서울지라도 결국 그것이 지나가면 봄이 온다는, 이를 악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그저 잠잠히 기다릴 수 있는 인내와 용기만 있다면 봄은 오고 꽃이 피어난다는 자연의 순리를 영화는 담담하게 말해준다. 또한 이 영화는 자신의 삶을 책임지지 못했던 한 어른이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로 인해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기존의 교육현장을 다룬 영화들이 주로 열정을 가진 교사에 의해 학생들이 변모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준데 비해 이 영화는 순수한 학생들의 열정이 패배감에 젖어 있던 한 선생을 변화시킨다는 설정으로 신선한 자극과 감동을 준다. 실제로 이 영화는 퇴직 후 폐광촌으로 내려가 도계중학교 관악부를 지도한 어느 교사가 아이들과 지낸 1년을 기록한 TV 다큐멘터리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제작되었다는 전언이다.
신태식 | 본사 교육전문직 특강 교수 문제 ① 교사가 학생을 망친다는 말이 있다. 개성이 강하고 다양한 사고를 지닌 요즘 학생들은 교사의 지시나 학교교칙에 대해 대체로 순응적이지 않다. 이에 학생들과 교사 간에는 대립과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이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과 같이 체벌을 통해 학생을 지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로 인해 교사와 학생 간에는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학생은 학교와 교사가 싫어서 등교를 거부하거나 탈선을 하게 된다. 얼마 전 D지역에서 지각한 학생에 대해 200대의 체벌을 행함으로써 매스컴에 보도된 사건 등이 이 같은 사례에 해당된다. 학생지도와 관련하여 교사의 체벌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논하고, 교사의 지시에 반항적인 학생들에 대한 효과적인 지도방안을 논술하시오. Ⅰ. 序論 우리 속담에 '귀여운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라는 말이 있다. 영국의 속담에도 '매를 아끼면 자식을 버린다'는 말이 있다. 이는 모두 자녀를 올바르게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채찍을 가해야 한다는 자녀교육관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체벌과 관련하여 최근에는 체벌 당한 학생의 학부모들이 체벌한 교사를 고소하는가 하면 폭행까지 하는 등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이에 교육적 견지에서 체벌은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사랑으로 학생을 지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Ⅱ. 本論 (1) 체벌 찬성론 비판 교육에 있어 체벌은 행동수정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 체벌을 긍정하는 견해는 분명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행동수정의 효과는 지속적이지 못하고 일시적이며 오히려 악영향만을 초래할 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또한 현실적인 입장에서 살펴봤을 때 다인수 학급이라는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학생들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체벌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다수 아동에 대한 교사의 지도능력에 관한 문제로 결국 지도교사의 전문성과 자질에 직결된다. 교사가 교수·학습 및 지도 방법에 있어 탁월한 전문성을 갖고 있다면 체벌이 아닌 다른 인간적이며 교육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체벌 반대론 옹호 교육이란 전인적 인간의 육성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체벌을 사용하는 교육은 학생들의 정신적·정서적인 영역에 깊은 상처를 주게 되어 결국 인격의 성숙을 가져올 수 없게 하는 큰 결함과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쿠닌과 겜프도 벌을 많이 사용하는 학급에서는 벌이 오히려 비행을 증가시키며 문제를 더욱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또한 체벌은 인간 그 자체가 목적인 교육에서 학생들을 수단시 할 수 있다. 많은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으로 한 학생을 본보기로 체벌하거나 수업 진행의 편리함을 위해서 체벌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결국 한 인격을 수단시하는 것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형성이라는 교육적 의의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체벌을 받고 자란 학생들은 부정적인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어 사물의 부정적인 면만을 바라보게 되며 주체성과 창의성, 적극성 등을 잃게 되어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없게 된다. (3) 체벌 대체 방안 그러므로 교육의 목적이 인간행동의 바람직한 변화에 있다면 그 방법은 가장 교육적인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교사는 우선, 학생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 교사는 학생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행동변화를 위해 여유를 가지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학부모와의 상담이나 전임교사나 친구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반항적 행동을 보인 학생의 원인을 분석하여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끝으로 학생의 장점을 찾아 지속적으로 칭찬해 줌으로써 자아 정체성 확립과 자신감을 갖도록 격려해야 한다. Ⅲ. 結論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는 말과 같이 학생에 대한 교사의 사랑과 기대는 학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체벌을 통해 학생을 변화시키려는 교사도 있지만, 체벌은 정서적·정신적으로 성숙된 인격형성에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주게 되고 나아가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생에 대한 믿음과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체벌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학생의 인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교육적 목적으로 행해지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 위 문제의 논술유형은 옹호논박형과 대안제시형이 결합된 형태로서, 논점을 제시하면 체벌반대에 대한 나름대로의 논리를 옹호논박형 형식(상대방의 견해, 주장과 비판, 나의 주장과 논거제시)에 따라 서술한 후 효과적인 지도방안을 제시한다면 설득력 있는 답안이 될 것이다. 문제 ② 교사평가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Ⅰ. 序論 학생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교육부는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위해 2005년 5월부터 교원평가제를 시험적으로 운용하고, 이르면 2007년부터 전면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전교조 등 교직단체는 평가기준의 객관성 부족 등을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교사들이 합의가 없는 교원평가제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Ⅱ. 本論 교사평가제를 찬성하는 입장은 우선, 교사들 간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교육의 질 향상으로 공교육의 신뢰회복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평가기준이 명확하지 못할 때는 측정이 가능한 영역인 실적에 맞춰짐으로써 평가의 목적이 변질될 수 있고, 교사 간 과열 경쟁으로 상호불신을 유발할 수도 있다. 또 우수교사에 대한 사기부여를 통해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 교사들의 사기저하는 물론 무력감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교사평가 결과의 악용으로 교사의 불안과 학교의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 교원평가의 목적이 교사의 전문성 신장에 있다면 다수 교사가 희망하는 수석교사제 도입이나 획기적인 보상체제를 도입하여 현장의 교사의 사기를 높여주어야 한다. 또 법정 교원 확보를 비롯한 교육여건 개선과 교내 자율장학 활성화를 통해 교사들이 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밖에 윈윈전략 차원에서 수석교사제와 교사평가제의 동시 도입 등도 고려해 볼 만 한다. Ⅲ. 結論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권위를 부여받는 유교적 윤리는 새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가치관이다. 하지만 교사들이 합의가 전제된 평가기준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교사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은 학교현장의 불만과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는 만큼 합의된 평가기준 마련과 수석교사제 도입 등 획기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협력해야 할 것이다. 교사들 또한 권위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제자들과 학부모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위 문제의 논술유형은 옹호논박형인데, 논점에 따라 제시하면 옹호논박형 형식에 따라 서술하면 될 것이다. 주의할 점은 논술자가 반대 입장을 취할 때는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다. 건전한 대안이 없는 반대는 찬성자를 설득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 ③ 과외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학교에서의 과외해소 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 Ⅰ. 序論 과외는 학생들의 특기나 적성 계발은 물론 교과의 보충·심화학습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획일화된 공교육을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과외교습 금지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과외가 전면적으로 허용되고, 학벌주의에 편승한 학부모들의 교육열로 과외는 교육 불평등은 물론 양극화 심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입시제도의 변화에 따라 교육병리현상의 주범으로 자리 잡은 과외문제가 다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Ⅱ. 本論 1) 문제점 과외 문제는 우선, 실질적인 교육기회의 균등한 보장이 어렵다는 점이다. 농·산·어촌과 대도시, 계층 간 과외 접근의 격차로 인해 학생 간의 서열화를 심화시킨다. 또 시험위주의 전달식 교육으로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과 자율적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가로막음은 물론 지식기반사회에 필요로 하는 창의력이나 자기 주도적 학습력 신장이 어렵다.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어렵게 하고, 가정에는 과외비 부담을 가중시키며, 사회적으로는 계층 간의 위화감 조성이나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2) 과외의 발생원인 과외가 과열되는 원인은 지필시험 위주의 평가 및 대학선발제도, 경쟁력이 약한 학교수업의 질, 열악한 교육여건, 다양한 교육수요에 대한 학교의 대응력 부족 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학을 졸업해야만 인간대접을 받을 수 있고 출세할 수 있다는 학벌사회의 만연에 있다. 3) 해결방안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학교에서는 첫째, 학교교육의 내실화화가 필요하다. 학교는 학생의 전인적 발달 위해 N세대에 맞는 즐겁고 재미있는 수업,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이나 특별활동 등을 활성화하여 학생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는 건전한 학교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둘째,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방과 후 학교의 활성화를 통해 교과의 보충·심화는 물론 특기·적성 계발 프로그램의 지속적 운영으로 과외 수요를 학교가 수용해서 경쟁력 있고 신뢰 받는 학교로 거듭나야 한다. 셋째, 전문성 신장을 위한 교사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미나나 교과연구회 활동, 전문서적 탐독, 대학원 진학 등을 통해 교사의 자질함양을 위해 노력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사랑과 열정으로 학생들을 지도해야 한다. 끝으로 e-learning의 교육적 활용이 필요하다. 유비쿼터스 시대를 맞아 EBS 강의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교육 콘텐츠(서울 : 꿀맛닷컴)를 활용하여 교육격차를 해소해 나가야 한다. 그밖에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와 지원(mentor)제도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Ⅲ. 結論 과외는 학교 이외의 사회구조에서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이긴 하나 학교와 교사의 노력에 의해 해소될 수 있다. 과외는 학생은 물론 가정, 학교, 사회에 많은 문제를 유발하는 만큼 누구에게나 균등한 교육기회 제공을 위해서라도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 학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교사는 전문가로서 사명감과 열정으로 학생을 지도하며, EBS 등 인터넷 등을 최대로 활용하게 함으로써 과외의 역기능을 해소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위 문제는 대안을 제시할 때 일반적인 대책이 아닌 학교에서의 대책이란 점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대책은 원인분석에서 간단히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시각에서 대책을 제시해야 하겠지만, 본 문제의 경우 학교에서의 대책이므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에 한정해서 논해야 할 것이다.
해마다 연말이면 언론에 10대 뉴스가 등장한다. 한국교육신문도 한 해 교육뉴스를 정리하여 발표하고 있다. 나 자신도 10개를 꼽아 보며 한해를 정리 반성하고새해를 맞을 준비를 한다. 모 일간지의 경우, 국내외 10대 뉴스가 선정되었는데 국내 뉴스는 그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2006년이 격변의 한 해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미친 아파트값, 북 핵실험 강행, 한미 전작권 갈등, 반기문 유엔총장,수영 박태환-피겨 김연아 새별 우뚝, 구속영장법-검 갈등, 취업난, 한국영화 흥행 기록 등 사회 변화에 무딘 교육자이지만 공감이 간다. 한국교육신문의 경우, 12월 18일자 제목이 시선을 끈다. "개악은 빠른 걸음, 개선은 소걸음" 참여정부의 교육에 대한 무지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10대 뉴스 중 교육자치 붕괴, 공무원연금법 개악 급물살, 통합논술 확대, 수석교사제 도입 등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나의 10대 뉴스는? 월별 주요 메모를 훑어보니 무려 20여가지나 된다. 그 중 중요한 것을 순서대로 꼽아본다. 1. 교장 강습 중 분임장으로 활동, 교육대토론회 출연하고 한교닷컴 기사 모음집 발간(7,8월) 2. 안산송호중에서 수원제일중으로 근무지 이동, 새로운 교장과의 만남(3월, 9월) 3. 교육칼럼집 '연(鳶)은 날고 싶다' 출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19위 랭크(4월) 4. 교장 말까지 듣지 않는학생지도하다가학부모로부터 곤혹 치룸(10월) 5. 한교닷컴 기사 '휴가냐 투표냐?'로 인해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제재 받음(7월) 6. 경인일보 칼럼리스트로 데뷔, '오늘과 내일' 교육관련 글 부정기적 게재(연중) 7. 중3 딸 가영이가 미국 국무성 교환학생으로 출국, 잘 적응하고 성적까지 우수함(2학기) 8. 보훈교육연구원 주관,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으로 러시아, 중국 방문(8월) 9. 경기중등봉사활동교육연구회 회장으로동계세미나 주관(12월) 10. 교총과 한교닷컴 활동 등이 발판이 되어 도교육청 기획홍보 담당 장학관 응시(7월) 하나하나 살펴보니 올해도 엄청난 일이 많았다. 그냥 평탄한 한 해가 아니었다.삶에 대한 태도가 그대로 나타난다. 이 뉴스들은 삶의 자양분, 정신적인 각오, 인생관의 재정립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정신적 성숙, 인격 완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이 작업은앞으로도 연말이면 계속 될 것이다.
오늘은 방학 넷째 날입니다. 3학년 선생님 중 한 분은 정시원서도 끝나 편히 쉴 수 있는 방학이지만 1,2학년 보충수업을 돕기 위해 학교에 나오십니다. 그것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가장 일찍 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방학이라 부산에서 출퇴근하시는데도 말입니다. 몇 시에 집에서 나오느냐고 물으니 아침 6시면 나온다고 하네요. 이와 같은 선생님이 계시기에 학교는 더욱 빛이 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이제 방학이 되어 조금 마음의 여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평소에 가져보지 못한 분야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교육공무원승진규정 개정안입니다. 교육부에서 입법예고한 개정안을 보았습니다. 개정이유, 개정내용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여러 선생님의 인사개정안에 대한 의견도 읽어보았습니다. 교육공무원승진규정 개정안을 보고서 교육부가 현재의 승진안이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여론수렴을 나름대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서 나름대로 문제점에 대한 대책으로 개정안을 만들어 놓은 흔적이 여기저기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의 경력, 근평, 연수점수, 가산점으로 구성되는 승진규정 골격은 지금과 다름없이 유지한다는 것은 아주 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역별 가중치를 바꾸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승진규정 개정안이 무엇보다 공정한 기회가 밑바탕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개정이유를 읽어보니 현행 연공서열중심 승진 구조를 능력중심으로 개선하기 위해 경력평정 반영기간 및 비중을 축소한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의 경력에 대한 승진안이 어떻게 바뀌어왔습니까? 20년에서 25년으로 바뀌었다가 또 30년으로 연장이 되었다가 지금은 25년으로 앞으로는 20년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25년, 30년으로 경력을 늘였을 때에는 뭐라 했습니까? 그 때도 능력중심으로 개선하되 경력자를 우대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능력중심으로 개선을 한다고 하면서 경력자를 홀대하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을 보면서 50대 중반을 달리는 저로서도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것도 경과규정을 둔 것도 아니고 1년씩, 1년씩 줄여가는 연차적도 아닙니다. 교육은 경륜인데 경력자를 홀대하다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교육의 질서를 세워가는 분도 연장자이고, 학교의 갈등을 잠재우는 분도 50, 60대이고, 20대에서 60대까지 분포되어 있는 학교에서 그나마 학교를 안정되게 이끌어가는 데 주역을 하시는 분이 50, 60대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선생님들을 홀대하는 승진개정안은 학교를 세우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면서 승진규정은 왜 이렇게 자주 바뀝니까? 신중을 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안 그래도 위, 아래도 모르는 학교현실인데 그렇게 하면 30대, 40대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하겠습니까? 선배선생님으로 보이겠습니까?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우습게보지 않겠습니까? 50, 60대를 가볍게 제쳐야 자기들이 살 길이라고 할 것 아닙니까? 50,60대 선생님들을 뒷방 늙은이 취급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어서야 어떻게 학생들에게 사람됨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있겠습니까? 학교를 어디 대기업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젊고 유능한 사람 과장, 부장 않히고 얼마 안 있어 퇴출시키고. 이런 방식을 학교에까지 적용하려는 발상은 아닌지? 다음은 근무성적 평정방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근무성적 평정방식에 다면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평정점수 상향 조정, 반영기간 확대 및 평정결과의 공개 등을 통해 평정의 객관성, 신뢰성,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은많은 무리가 따른다고 봅니다.현실적으로 볼 때 많은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평정점수를 100점으로 높여 놓고, 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해 놓으면 선생님들은 학교생활에 재미를 잃게 됩니다. 언제나 ‘근평’이라는 족쇄에 채여 항상 긴장 속에 학교생활을 할 것 아닙니까? 교장, 교감 눈치보고, 동료교사 눈치보고 해서야 제대로 근무가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자진함이 없어집니다. 소신이 없어집니다. 비굴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면 안 됩니다. 10년은 말도 안 됩니다. 지금 2년을 해도 승진을 앞두고 있는 선생님들끼리 서로 피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근평으로 인해 돌아가신 분도 있지 않습니까? 10년 전 10년 선배의 한 선생님께서 근평문제로 교장실에서 나온 이후로 쓰러져 돌아가셨습니다. 그분께서 살아계실 때 저에게 하소연한 말씀이 지금도 쟁쟁합니다. ‘수’면 다같은 ‘수’를 주어야지 ‘1수, 2수’하면서 점수차를 주어 사람을 힘들게 만드냐고 하시더군요. 근평으로 인해 승진의 꿈을 꾸고 계시는 선생님들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들에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5년 정도의 근평 가운데 2년 내지 3년의 근평을 본인이 선택해서 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수의 폭도 줄여야 합니다. 1수와 2수의 간격이 0.5점은 너무 큽니다. 소수셋째자리에서 결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그렇게 큰 차이를 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으뜸과 버금이 정말 구분이 안 되는 데 점수 폭을 크게 한다든지 근평을 공개한다든지 하는 것은 교장, 교감을 죽이는 길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쉽게 수긍하겠습니까? 싸움만 부추기고 갈등만 초래할 것 아닙니까? 연수성적 높이기를 위한 지나친 점수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연수성적 평정방식을 변경하고 연구실적 요소별 점수를 상향조정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연수성적이 승진에 필수조항이고 실제 선생님들의 현장연구를 중심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연수성적은 향상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연구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연구가 활발해집니다. 그리고 자격연수 한 번으로 승진의 영향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들마다 자격연수를 받는 년도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고 대상도 다르며 가르치는 교수도 다릅니다. 그런데 공정성이 떨어지는 자격연수 그것 하나 가지고 승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처음부터 승진의 꿈을 꾸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포기할 수는 없고 상담자격연수라도 받으려고 애를 쓰지 않습니까? 그런 부작용을 없애줘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자격연수 성적도 일반연수와 똑같은 수준으로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차라리 자격연수는 연도에 관계없이, 일반연수는 10년 이내에 받은 것 중 둘이나 셋을 반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직무와 관련된 연수는 더욱 강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연수를 많이 받는 선생님들에게 학점을 인정해주는 폭을 넓혀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선생님들께서 지속적인 연찬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연구점수도 그렇습니다. 연구점수를 딴다고 수업에 지장이 있고 경쟁이 치열해진다고 해서 연구점수 3점은 그대로 둔 채 연구실적 요소별 점수를 높인 것은 연구점수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박사학위 받으면 3점 만점도 문제가 많습니다. 선생님들이 학교에 연구하는 것은 학문 연구가 아닙니다. 학생들의 실제 수업에 도움이 되는 현장연구가 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의 교수학습방법 문제. 교수학습자료개발문제, 학생들의 생활지도문제 등 현장에서 필요한 문제들을 고심하고 그것을 붙잡고 연구해서 사례중심으로 발표하고 수업에 도움이 되는 자료 만들고 하는 실제적인 연구가 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것을 한두 번 연구하고 끝내고 하면 연구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박사학위를 부추기는 듯한 점수 상향은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박사학위를 3점으로 인정해 주려면 적어도 연구점수 상한선을 3점에서 10점으로 높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형식적인 연구보다 실제적으로 교육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각종 연구대회의 방향을 바꿔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봅니다. 가산점 항목 및 점수 기준을 명부작성권자가 시․도 실정에 따라 정하도록 하였더군요. 그것도 가산점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 동안 벽지점수와 연구학교점수, 농어촌 점수 등이 사실상 승진을 좌우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심지어 벽지 교장, 벽지 교감으로 부르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벽지점수, 연구학교점수, 농어촌점수 등은 모든 선생님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볼 때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승진하고 싶은 선생님 치고 누가 벽지 가고 싶지 않은 분이 있습니까? 연구학교에서 근무하고 싶지 않은 선생님이 어디 있으며 농어촌에 가고 싶지 않은 선생님이 어디 있습니까? 거기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 이와 같이 기회가 주어진 자만이 혜택을 입는 그런 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느 선생님이든 누구든지 승진의 꿈을 가지신 분은 똑같은 기회를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가산점을 주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연구학교를 해서 가산점을 보태고 싶어도 울산의 경우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의 과반수의 동의를 얻고 학운위를 심의를 거쳐야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동료선생님을 잘못 만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뜻있는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교육에 관한 어떤 연구들을 하게 해서 그에 대한 평가로 점수를 부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역가산점은 사실상 더 확대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역마다 특색이 있지 않습니까? 16개 시도마다 특색 있게 부가점을 인정해 주되 그 점수 폭은 더 넓히는 방향으로 나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야 16개 시도마다 지역가산점의 활용으로 교육의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번에 입법 예고된 승진개정안을 실적 위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좀더 신중을 기해서 여러 의견들을 겸허히 수용해 개악이 아니라 개선이 되었으면 합니다. 100%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수긍을 할 수 있는 승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교사말씨란 교사가 교실에서 사용하는 특별한 성격의 의도적인 언어사용을 지칭하며, 주로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이는 대화의 주제를 현장 상황 즉 교실 상황으로 한정함으로써 대화의 맥락이 제공되고 대화상대자 즉 학생의 수준에 맞는 언어사용을 위해 학생을 위해 언어를 단순화시키고 조정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당연 학생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어야 하고, 서로의 의견차를 좁혀 줄 수 있어야 하는 등 수업지식 전달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까지 함께 조절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교실에서는 어떤 말씨가 사용될까? 오늘 버스에서 큰소리로 나누는 중학교 여학생들의 대화는 실로 충격이었다. 선생님에게 오늘 혼이 나는 상황을 묘사하는데 그들의 대화는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가 아니었다. 나는 학생이 무조건 교사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교현장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와 그 지식을 전달받는 학생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의 상황은 친구들끼리의 다툼보다 더 심한 욕설과 비방의 말투가 오고 갔다. 학생들의 대화만 듣고 이를 판단하기에는 성급하지만 교사말씨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 하였다. 교사란 교과지식을 전달해야 함은 물론이고 인생 선배로써도 인격적인 부분까지 가르쳐 줄 것이 많은 사람이다. 학생들이 이해를 잘 못한다면 천천히 말해보고, 반복하여 말해보고, 다른 방법으로도 말해보고, 또는 휴지를 길게 두어 말해볼 수도 있고, 크고 분명하게 말해보기도 하고, 다른 예시도 들어보는 등 조금 더 참고 넓게 학생을 포용할 줄 아는 인성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 중심 교육에서 학습자 중심의 교육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수업시간에 더욱 더 강조되어야 할 것이지 생활 지도 면에서는 조금 예외일 수도 있다.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공경심이 무너지면서 학생들의 말씨도 많이 무너졌다고 본다. 어른이고 자신에게 어떠한 지식을 전달해주는 교사에게 지나치게 무례한 말투와 태도를 쓰는 것 역시 고쳐져야 할 점이다. 우수한 교사란 교사가 이미 되어있는 상태가 아니라 우수한 교사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대학교육을 통해서 교직과정을 듣고 열심히 수업을 끝내지만 이것이 우수한 교사양성과정의 최종단계가 될 수 없다. 우선 학생을 책임지는 교사가 조금 더 바뀌면 학생들도 변화를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규과정을 제외한 현장실습을 통해서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고 경험하고 난 뒤, 학생들을 관리하고 이끌 수 있는 비언어적인 요소까지 이해할 수 있는 교육 역시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교사연수기간에 그 교과목에 관한 교육뿐만 아니라 교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해 교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대처방안들도 생각해보는 시간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학교란 예쁜 정원이 꾸며지고, 운동장에 인조잔디가 깔리는 그런 학교가 아니다. 교사는 학생에게 부드럽고 따뜻하게, 학생은 교사에게 존경심을 담아부드럽고 공손한 말씨를 사용했으면 한다.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 신뢰하고 서로를 존경하는 그런 학교가 아름다운 학교란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2005.1.19 수 맑음 하우라역까지는 버스로 갔다. 4루피였다. 택시를 탔으면 50루피 이상 주어야 했을 것이다. 하우라 역 대합실에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바나나와 포도를 사먹으며 옆에 앉은 인도 아줌마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대합실은 무척 컸으며 엄청난 사람들로 붐볐다. 여기도 예외없이 까마귀가 대합실 안까지 날아 들어 천장 밑에서 잠자리를 찾고 있었다. 저만치 한국인인 듯한 두 젊은 여성이 보인다. 담요까지 가지고 여행하는지 배낭의 크기가 내 것의 세 배는 되어 보였다. 프래트폼을 확인하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는 제 시간에 도착했다. 나의 좌석은 17번이었다. 18번 19번 좌석에 아까 그 한국여성들이 자리를 잡았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하나는 의정부의 모 고등학교 영어교사고 또 한 사람은 안양의 모 중학교 보건교사라고 했다. 둘은 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장동료라고 했다. 그 여교사들이 담요하나를 빌려주어 야간 열차 추위를 견딜 수 있었다. 기차는 문을 닫아도 사방에서 바람이 들어와 밤에는 무척 추웠다. 기차를 타기 전에 담요를 하나 준비하지 않은 게 후회 되었다. 다음날 10시 30분 도착예정인 기차가 오후 1시 30분에야 도착했다. 3시간 연착한 것이다. 우리는 16시간 30분 동안 기차를 탄 셈이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나는 인도의 자연환경과 농촌 풍경을 보기 위해 밖을 많이 내다 봤는데 아무리 달려도 산이 없는 것이다. 가도가도 끝없는 벌판이다. 그 광활한 대륙은 바로 인도의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라나시 역에 도착하니 역 건물 한쪽에 여행자 안내소가 있다. 여자 영어교사가 곧바로 가서 물어본다. 그들은 Shanti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소개시켜 주더란다. 우리는 오토릭샤를 세 내어 샨티로 왔다. 30루피. 내가 팁으로 10루피를 더 주었다. 자체식당을 운영하는 규모가 큰 숙박업소였다. 식당은 제일 위층 라운지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갠지스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50루피 짜리 방도 있는데 욕실이 없다. 100루피 방을 사용하기로 했다. 100루피면 우리 돈 2,600원 정도인데 왜 한푼이라도 더 아끼려고 바둥댔는지 모르겠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관습을 따르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이 숙소에서는 캘커타 비비디박 기차표 예매소에서 만났던 이스라엘 대학생을 다시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갠지스강 가를 걷다가 역시 캘커타 기차표 예매소에서 만났던 젊은 대학생 커플을 다시 만나 함께 보트를 타기도 했다. 보트값은 1시간에 30루피(780원)였다. 우리는 10루피씩 냈다. 보트를 타며 갠지스강의 풍경을 여러장 필름에 담기도 했다. 우리보다 하루 먼저 바라나시에 왔던 사람들인데 코스가 비슷하다보니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여관 가까이에는 그 유명한 마니까르니까 가트가 있다. 시체를 화장하는 곳이다. 인도인들에게는 성스러운 곳이다. 계속 밀려드는 시체를 10여 군데서 계속 화장하고 있었다. 하루 수백구씩의 시체를 24시간 365일 화장을 한단다. 전국에서 모든 주검이 간지스 강가로 오는데 올 수 없는 주검은 현지에서 화장되어 재를 가지고 와서 여기에서 의식을 치룬단다. 또 6가지에 해당하는 주검은 화장하지 않고 그대로 갠지스 강 물속으로 빠트린단다. 그들은 바로 브라만, 임신한 여자, 어린이, 죄를 많이 지은 사람, 나쁜 질병에 걸린 사람, 그리고 코부라에 물려죽은 사람은 화장을 할 수 없단다. 누군가가 열심이 설명해 주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장하는 곳 위쪽으로는 여러채의 건물의 있는데 그곳엔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단다. 화장풍습에 대해서, 임종을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하고 안내하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꼭 나중에 돈을 요구하니 조심해야 한다. 한 사람이 다가와 뒤에 건물에 300여 명의 임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을 위해 장작을 사야 한다며 계속 돈을 요구한다. 그들은 그 건물에서 먹고 자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데 죽지 않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단다. 나는 50루피를 주었다. 한 사람이 물러가면 또 다른 사람이 다가와서 같은 말을 되풀이 하기 때문에 적당히 피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화장하는 광경을 자세하게 보고 있었다. 불가촉천민들(Untouchable)이 비단처럼 보이는 화려한 천으로 감싼 시체를 들것에 메고 시가지와 골목을 가로질러 화장터로 운반한다. 이들은 여럿이서 큰 소리로 무슨 주문을 소리 높이 외치며 빠른 걸음걸이로 화장장으로 향하는데 그 주문은 ‘라마신은 알고 계신다“라는 뜻이란다. 시체는 화장장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가 자리가 생기면 곧 장작을 가슴 높이 만큼 쌓고 그 위에 올려진다. 돈이 없는 사람은 장작을 많이 사지 못해 낮게 쌓기도 하는 것이다. 장작을 쌓고 시체가 올려진 다음에는 상주가 불쏘시개에 불씨를 얹어 시체 주위를 여러 차례 돌며 쏘시개에 불이 살아나면 장작에 불을 붙인다. 장작에 얼른 불이 붙지 않으니까 빨리 불이 붙도록 휘발성 물질을 장작에 뿌리기도 하는 것 같았다. 쌓인 장작의 아랫부분에 불을 붙이면 곧 불이 타기 시작하는데 시체의 다리부분이나 머리 부분 일부분에만 불이 타오르면 일꾼들은 긴 대나무 장대로 시체를 이리 밀고 저리 밀며 시체가 타도록 불길을 잡아준다. 누가 상주인지 누가 아들인지 알 수도 없다. 시체와 함께 많은 사람이 와서는 멀찌감치 지켜보기만 한다. 우는 사람도 없고 어떻게 하라고 소리지르거나 지시하는 사람도 없다. 그냥 조용히 지켜볼 따름이다. 여자 가족들은 여기에 올 수 없단다. 장례를 치룰 동안 가족들은 열흘동안 밥도 먹지 않고 웃지도 않고 지내다가 상주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 나머지 가족들도 밥을 먹기 시작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되찾는다고 한다. 화장장 주변엔 강아지 소 염소들이 기웃거리다가 강아지는 타고 남은 시체 덩어리를 얼른 물고 가기도 하고 소나 염소는 시체를 싣고 왔던 들것에 장식했던 꽃들을 모조리 먹어치우기도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본체만체한다. 나는 시체가 고기 한 점으로 될 때까지 타는 과정을 여러 차례 지켜보았다. 대나무 장대로 밀고 당기고 불길을 당겨 붙이고 해도 끝까지 타지 않는 고깃덩어리는 남게 된다. 제일 타지 않는 뼈가 가슴뼈라고 하니 우리 몸의 장기를 보호하려고 조물주는 가슴뼈를 튼튼하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구경하는 사람들은 예사롭게 웃고 잡담하며 지켜볼 뿐이다. 여자들도 많이 구경하는데 그들은 외국의 관광객들이다. 어린 계집아이들은 시체를 태우고 남은 장작의 숯을 땔감에 쓰려는지 열심히 모으기도 한다. 처음 보는 광경이지만 인도인들이 성스럽게 생각하는 장례 문화이고 또 많이 들어왔던 일이라 새삼 놀라지는 않았다.
2006년 마지막 며칠을 앞두고 교육계에 무시무시한 핵폭탄이 떨어졌다. 그 폭발력은 가히 위력적이다. 그 폭탄의 투하자는 또 국민들은 그 엄청난 폐해를 알고 있을까? 바로 교육부에서 입법 예고한 교원승진규정 개정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개정안을 본 지금 일선 학교는 그야말로 '난리'다. 더 정확히 말하면 농산어촌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중 승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현재 학교에 머물러야 할지 떠나야 할지 잠 못이루는 밤을 지새고 있다. 일말 기대를 거는 것은 이 핵폭탄이 아직 터지지 않았다는 것인데, 참여정부의 태도로 보아 여론 수렴은 하는 시늉만하고 그대로 터뜨릴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동안 정부가 교단흔들기를 계속하고 교단황폐화를가속화시키는 역할을 거리낌 없이 행해 왔기에 하는 말이다. 이것이 그대로 통과되면 교단은 어떻게 변할까? 개정안의피해 교사는 누구일까?현재 교사들의 동향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피해 교사는 승진을 앞두고 있는 경력 20-25년 사이의 농산어촌 소규모 학교 교사다. 이들은 예상못한 급격한 개정안으로 승진 자체가 불투명하게되었다. 현재 소규모 학교에 그대로 머무는 경우, 2-3년 안에같은 경력의 도시대규모 학교 교사들에게역전 당하는것이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농산어촌 소규모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부가점을 취득하고자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고있으나 이제 경력이 낮아지고근평 반영기간과 비중이늘어나 부가점은 맥을 못추게 되었기 때문에 구태어 농산어촌에 근무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수년 간의 근평 반영이 승진을 좌우하는 커다란 요소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즉, 농산어촌에 근무하는 소규모 학교의 교사들이 최대 피해자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1등 수를 받는 교사 하나만 유리하고 나머지 교사들은 모두 피해자가 되었다. 바로 이들이 인근의 대규모 학교나 도시 학교로 이동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농산어촌 점수보다 근평이 막대한 영향을 미치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농산어촌소규모 학교의 교육황폐화는 명약관화하다. 현재와는 반대로 경력교사는 적고 신규내지는 저경력 교사로 채워지게 된다. 그 대신 대규모 도시학교는 고경력 교사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학교에 평정대상자가 많을수록점수 간격이 좁아 상대적으로 승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교육을 살려야 하는데 교사들을 승진 경쟁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10년이라는 장기간의 근평 올가미를 씌워 꼼짝 못하게 하니 승진을 염두에 둔 교사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리포터는 이 개정안을 개악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있다.금방 적용하지 말고 경과기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적용하며 적어도 올해 근평 적용은 기존대로 하자는 것이다. 근평 반영기간도 최대 5년으로 하고 그 중 2개 정도를 선택하면 무난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근평비중도 하향 조정해야 한다.100점은 너무 크다. 경력 20년 만점은 그 이상 경력교사를 몰아내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교육은 젊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규교사, 중견교사, 고경력교사 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교단의 특성이다. 그것을 무시할 때 교단은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지난 번 정년단축 때 뼈저리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경력 25년 만점, 아무런 부작용이 없으므로 그대로 두어야 한다. 연구점수와 학위점수를 분리하고연구점수의 상향조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학위점수의 상향조정은 교육의 질을 크게 향상시키지 못한다. 대부분의 교사가 석사 학위인데현장에서는 박사 학위까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말이 박사지 그 질마저 높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부장관에게 묻고 싶다. "이번 승진개정안은 개혁이라는 미명하에교육을 지금보다 더죽이자는 것인데, 어찌하여 이런 졸속 법안을 교육계의 의견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불쑥 입법예고를 하였는지?" "장관은 교육의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이게 수년간대학교수로 지낸 교육을 아는 사람의교육현장 이상향인지? 이것이 국민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는 길인지?지난 정권의 정년단축에 이은 교육쓰나미를 획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방학식이 있는 날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3학년 여자 어린이들 서너 명을 만났다. 얼굴도 귀엽게 생겼고 공부도 잘하는 리더그룹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교감선생님!” 하고 다가오면서 다정하게 접근해 오는 것이 무슨 부탁이라도 하려는 느낌을 받았다. “교감 선생님! 우리 4학년 때 이○○선생님이 담임하게 해주세요. 네!” “교감선생님! 꼭 부탁해요. 꼭이요.” 하면서 애교까지 부리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였지만 순수한 청탁이라서 부담은 없었다. “ 그래 알았어.” 라고 한 다음 교무실로 들어왔다. 올해 신규 발령을 받아 4학년을 담임했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우리도 초임 때 그랬듯이 신규교사는 대개 4,5학년을 담임을 맡는 것이 보통이고 관행처럼 굳어온 것 같다. 저학년과 6학년 담임을 경력교사로 배치하다보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4,5학년을 맡아왔다. 이○○선생님은 올2월에 공주교대를 나와서 운 좋게 고향에서 경력교사들이 선호하는 농진 지역인 본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키가 6학년아이들 보다도 작아 처음 보는 이들은 선생님인지 몰라보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과 섞여서 놀고 있으면 아이들 같아서 어린이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외모가 앳된 선생님이라도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아이들을 잘 다루고 수업을 재미있게 이끌기 때문에 아이들이 잘 따르고 좋아하는 것 같다. 지난 6월에 연구수업을 한다기에 4학년 교실에 들어섰는데 교실환경도 잘 꾸며 놓았지만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밝았고 선생님과 공부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보였다. 아이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 색다른 감동을 받았다. 한 시간 동안 공개수업을 하는 모습이 신규교사라기 보다는 경력자처럼 자신감에 넘쳐 수업을 이끌어 나갔으며 아이들과 호흡이 아주 잘 맞았다. 2학기가 되어 여선생님 한분이 시내학교로 전근을 가고 연세가 드신 선생님이 부임해 오셔서 전근가신 선생님이 맡았던 학예, 도서, 특기적성, 영어교육까지 힘에 벅찰 정도의 일을 맡게 되었는데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러나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경력자도 감당하기 힘든 업무를 별무리 없이 추진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대견스럽게 느꼈다. 각종대회출전과 작품응모도 열심히 하였고, 독서행사추진을 하면서 영어잔치에 학교대표로 나갈 아동들을 정말로 열심히 지도하여 금상1명, 우수상2명, 장려상2명으로 전원수상을 하였으며 여덟 번째 발간하는 학교문집을 만드는데 3개월 동안 원고수집과 편집에 전념하여 수준 높은 문집을 만들어 방학식날 아이들 가정에 배부하였다. 연구부장의 말을 들어보면 학습 부진아 지도도 가장 열심히 하였다고 한다. 학교소식지인 신문도 만들었고 실험실습 위주로 수업을 빼놓지 않고 하여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3학년 아이들이 옆 반에서 선배인 4학년을 가르치는 이 선생님을 내년 4학년담임으로 예약을 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이 보는 눈이 너무 정확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러다가는 4학년 전문선생님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된다. 학년담임 배정을 교감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의 담임 예약을 받고 보니 걱정도 된다. 이 선생님의 희망도 있을 것이고 학교실정도 감안해야 하는데 예약한 3학년 아이들이 새 학년 담임 발표하는 날 실망을 안겨주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학이 끝나면 이 선생님에게 3학년 아이들의 주문을 전해주고 부탁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받아들일 지가 의문이다.
우리학교 교문 왼편에는 약 백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한그루 있다. 올봄 부임당시 나뭇가지를 많이 잘라내어 덩그러니 서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았다. 분명 나무에 이상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연인즉 은행나무가 고사(枯死)되어가는 증상이 나타나서 지난해 동문회에서 은행나무를 살리기 위한 성금을 모아 나무병원에 의뢰하여 치료를 하였다고 한다. 나무가 병든 원인은 교문담장을 만들기 위해 시멘트콘크리트로 기초를 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나무뿌리에서 맑은 물과 영양분을 빨아드려야 나무가 잘 자랄 텐데 시멘트의 독성이 뿌리를 상하게 하여 뿌리를 살리는 치료를 하고 영양제도 놓았으며 가지치기도 하였다고 한다. 올 여름방학에는 시멘트담장을 헐고 콘크리트기초를 캐내어 새로운 흙을 넣고 자연석을 쌓아 교문을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으로 은행나무는 녹색의 잎이 살아나오고 있어 고사 직전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교육도 이 은행나무처럼 시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아무리큰 나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 그중에서도 작은 실뿌리가 수분과 영양분을 빨아드려 공급해주어야만 싱싱한 잎이 나오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법이고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교육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려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실뿌리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실뿌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태아에서 세살까지 교육이 이에 해당 될 것이고 가정교육과 기초교육이 뿌리에 해당하지 않을까? 학생들에게 교육을 하는 이 나라의 교사들도 뿌리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우리교육현실을 살펴보면 이런 분야보다는 모든 사람이 대학을 가야하고 학생들의 타고난 소질과 꿈은 간과한 채 소위 일류대학에 몇 명을 합격시키느냐에 교육이 정점에 서있고 모든 교육이 지식위주의 입시교육에 맞추어져 있어 지덕체(智德體)의 조화로운 인간을 기르는 균형을 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땅속에 보이지 않는 뿌리는 무시된 채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아름다운 꽃과 열매만 따려고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모습에 비유된다. 공교육 보다는 사교육에, 역사교육보다는 컴퓨터교육에, 국어교육보다는 영어교육에 인생을 걸고 외국유학과 어학연수를 보내며 과열경쟁 속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씨앗은 작지 않은가? 그러나 작은 씨앗을 잘 관리하여 튼실한 싹을 틔워야 성장이 잘되고 좋은 결실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태교에서부터 세 살까지의 가정교육이 매우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이 분야에 대한 교육은 너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유아교육도 성장발달에 알맞은 교육보다는 지나친 교육열에 새싹이 웃자라거나 잘못 자라고 있지 않는지 점검해보아야 하고 기초교육인 초등교육도 정체성을 키우며 조화롭게 이루어지는지 진단해 보아야한다.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은 아이들이 어리다고 소홀히 생각하여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소나무분재도 실뿌리가 나무의 생(生)과 사(死)를 결정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동안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교육을 고쳐보겠다며 수많은 교육공약을 내세워 강력한 개혁을 추진해 왔으나 우리교육이 건강하게 발전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도 비전문가가 교육개혁을 하려했으니 정확한 진단에 기초하지 않은 개혁으로 교육이 지치고 시들어가고 있다면 너무 비관적인 표현일까? 눈에 보이는 한건주의에 빠져 기초 보통 교육보다는 고등교육에 치중하였고 교육일선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기 보다는 개혁의 대상으로 삼아 스승의 권위를 심각하게 손상시켰으며 너무 많은 간섭을 하여 학교현장은 안정보다는 불안감을 안고 교단이 흔들리고 있어 공교육이 설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정권차원에서 교육을 고치려면 현장의 소리를 수용하여 학교현장이 신바람이 나도록 교사의 사기를 올려주는 일(치료)을 해야만 교육의 실뿌리는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고 아름다운 꽃과 알찬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강원도교육청은 29일 '2006 강원교육을 빛낸 올해의 스승'으로 도내 초.중등교사 6명을 선정했다. 수상자는 합창을 지도하면서 각종 대회에 입상과 수차례 연주회를 가진 춘천 봄내초 한규희 교사를 비롯해 양구 대암중 이광명, 횡성 우천초 김상숙, 원주고 이시영, 강릉 노암초 이영숙, 강릉 명륜고 최연집 등이다.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육현장에서 전념하는 우수교사를 발굴해 표창함으로써 교원의 사기진작 및 스승을 존경하는 사회 풍토를 조성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수상 교사에게는 상패와 상금 200만원씩이 수여된다.
해마다 연말이면 어느 집단이고 겪는 일이지만 이번만은 유독 교직 사회에 인사에 관해 말이 많다. 교육부에서 교원에 대한 인사규정을 대폭 수정하여 그야말로 혁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현장 교사들의 생활 리듬을 바꾸는 듯 하다. 농어촌 지역에서 근무하여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더 받아야 하는 나이든 교사들은 이제는 농어촌에 소재한 학교에 근무하지 않아도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되어 다시 시내로 들어가려고 한다. 교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는 요즘, 직업 인간으로서의 교사 모습과 자연의 모습으로서 교사를 견주어 보게 한다. 교직 사회의 승진 회오리는 교단의 젊음화 열풍 환상 교직 사회가 노후화 되었다고 하여 혁명에 가까운 인사 태풍을 통해 쇄신의 열풍을 교육부에서는 일으키려고 하고 있다. 현장 교사들의 걱정은 젊음의 피 수혈에 있음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나이든 노교사들의 마음은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많은 교사가 이 시대의 교단에 조응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고는 하지만, 이들을 위해 교직 사회에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으려는 교육부의 노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신세대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신형 교구재가 젊은 교사들을 돋보이게 만들고 구세대들은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조차도 도외시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얻기 위해서 농어촌 학교에 전보내신을 내었지만 갑자기 다가온 새로운 시행령의 개정으로 인해 승진에 있어 노교사들에게 불리하게 되자 다시 시내로 되돌아가는 현상이 마치 철새의 이동과 같이 느껴져 뒷맛이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 사람은 태어나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면서 직업을 갖게 된다. 그 많고 많은 직업 유형 중에서 교직이라는 한 영역을 지켜가면서 자신의 삶의 발판을 다져나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그런 생활인의 과정을 새로운 각도로 바꾸어 보려고 하는 교육부의 안간힘이 현장에서 일하는 교사들에게는 많은 심적 부담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승진을 위해 여태껏 쌓아둔 점수는 어느 새 사라지고 자신의 위상이 추락되고 있음을 감지한 교사는 한숨을 쉬며 교단을 지켜가고 있다. 어느 직장인들 계층 없는 곳이 있겠느냐만은 그래도 교사는 교사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타인을 위하는 봉사정신이 그래도 타 직종에 비해 많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승진은 그 집단의 질서를 지켜가는 수단이고, 질서는 곧 자아의 내면의 질서를 받아들이게 하여 자신이 설 수 있는 위치를 정립하게 된다.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는 지식의 덩어리를 상황의 변화에 따라 흐름에 따라 조응시킬 수 있고, 또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만들 수 있는 자리다. 하지만 승진을 위해서 존재하는 노교사가 된다면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푸른 교사라는 의미는 퇴색되고 말 것이다. 교사도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지만,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그 길을 찾아 노력하는 것은 좋으나, 지나친 자신의 실리에 따라 움직이는 교사가 된다면 시대에 부합되는 분명한 교사는 될 수 없는 것이다. 동시에 교육부도 지나친 노교사에 대한 기피 현상을 벗어나 노교사의 젊음화를 부추길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젊은 교사라고 해서 자라나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학생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 교단의 젊음화도 좋지만 노교사의 노하우를 살리지 못하는 절름발이 교육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교사의 승진에는 경험과 연구가 우선시되어야 한국 교직 사회에 교사들의 우수한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선 듯 “이것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 아닌가 싶다. 교직 사회는 늘 연구하는 풍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몇 년 가르치고 나면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하여 책상 앞에 앉아 바둑이나 두고, 인터넷이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교사가 된다면 학생으로부터 학부모로부터 동료 교사로부터 우수한 교사라는 평가를 받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세상은 돌고 돌아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인간이 인간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틀은 고정되어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교육이라는 전철을 밟고 굴러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미래를 밝히는 교육자들의 터전도 내년에도 항상 둥근 해와 같이 밝게 빛나길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