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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넨 것은 돌아오게 되어 있다 (건네다 : 주다)

본지는 이번 호부터 한국어 뉘앙스에 관한 ‘아 다르고 어 다른 한국어’를 연재합니다. 사전도, 교과서도 설명해주지 않는 유사어 사이의 뉘앙스 차이에 대한 해설입니다. 그동안 무심코 써왔던 낱말이나 문장들의 의미를 세밀하게 따져보고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가며 한국어에 대해 학습하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 편집자 주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문제] 괄호 안에서 자연스러운 표현을 고르시오.
1. 딸아이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용돈을 (주기로|건네기로) 약속했다.
2. 고마운 마음에 만원짜리 한 장을 (주었지만|건넸지만) 노인은 한사코 받지 않았다.
3. 젊은 사서는 내가 신청하지도 않은 책을 태연히 (주는|건네는) 것이었다.
4. 아이가 어머니에게서 받아 온 편지를 선생님에게 (주었다|건넸다).

[풀이]
‘주다’의 다양한 쓰임새
한국어에서 ‘주다’만큼 쓰임새가 다양한 낱말도 드물 것이다. 상대에게 물건을 가지도록 건네는 일, 돈·요금·봉급 따위를 지불하는 일, 먹을 것이나 영양을 공급하는 일, 일이나 책임을 맡기는 일, 권리나 지위 같은 것을 부여하는 일, 도움이나 혜택을 제공하는 일, 고통·해·창피 따위를 겪게 하는 일에도 ‘주다’가 쓰인다. 이밖에도 주의나 언질 같은 말을 하는 일, 전화를 하거나 연락을 취하는 일, 점수나 학점을 매기는 일, 상이나 벌을 받게 하는 일, 시간이나 여유를 허락하는 일, 속이나 정을 내보이는 일, 감동이나 겁, 느낌 따위를 느끼게 하는 일, 세례나 안수를 베푸는 일, 몸에 힘을 쓰는 일, 액센트나 변화 같은 영향을 가하는 일, 눈이나 귀를 일정한 방향으로 돌리는 일, 눈치를 보내는 일, 자식을 남의 집 며느리나 양자로 들이는 일, 몸이나 마음을 이성에게 허락하는 일 등등, ‘주다’의 대상에는 거의 제한이 없어 보인다.

‘건네다’는 ‘건너다’에서 온 말
한편 ‘건너다’의 어간 ‘건너-’에 사동접미사 ‘-이’가 붙어서 생겨난 ‘건네다’는 크게 세 가지 뜻으로 쓰인다. 첫째, ‘건너다’에서 나온 사동사라는 태생에 충실하게, 사람이나 물건을 ‘건너가게 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다. ‘건네다’가 이렇게 본래 의미로 쓰이는 경우에는 ‘건네다’보다는 ‘건네주다’의 꼴을 취할 때가 많다. “사공이 나룻배로 여인을 건네주었다”, “아이를 업어서 징검다리를 건네주었다” 등이 그 예다. 또 한 가지는 “말을 건네다”, “인사를 건네다” 같은 경우다. 이럴 때는 상대에게 말을 붙이거나 인사를 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건네다’는 “물건을 건네다”나 “돈을 건네다”에서 볼 수 있듯이 ‘무언가를 남에게 넘겨준다’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이 글에서는 이 용법에 한정해서 ‘주다’와 비교하기로 한다).

주의는 ‘주고’ 인사는 ‘건넨다’
‘준다’나 ‘건넨다’나, 뭔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일을 가리킨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런데도 한국어에서는 이 두 낱말과 어울리는 대상들 사이에 비교적 엄격한 구별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넘겨줄 때에는 “돈을 준다”고도 할 수 있고 “돈을 건넨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건너가는 것이 돈이 아니라 말[言]이면 ‘준다’는 안 되고 ‘건넨다’만 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말 중에서도 인사나 수작 같은 것은 ‘건넨다’고 하지만 주의나 언질 같은 것은 ‘준다’고 한다는 점이다. 이런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누구나(?) 좋아하는 ‘돈’을 예로 들어보자. “돈을 주었다”와 “돈을 건넸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예컨대 “어머니가 아이를 잘 봐달라며 담임선생에게 돈봉투를 주었다”와 “~ 돈봉투를 건넸다”는 어디가 어떻게 다른 걸까.

한번 ‘준’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주었다’나 ‘건넸다’나, 돈이 교사의 손으로 넘어간 사실을 가리킨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둘 사이의 차이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상황에서 생겨난다. 즉, 교사가 돈을 받아서 ‘꿀꺽’ 해버렸다면 ‘주었다’가 어울리고, 정색을 하면서 돌려주었다면 ‘건넸다’가 좀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다’의 대상이 된 사물은 한번 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반면, ‘건네다’의 대상은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 십상이다. 그래서 “돈봉투를 주었지만 손사레를 치며 받지 않았다”보다는 “돈봉투를 건넸지만 손사레를 치며 받지 않았다”가 훨씬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이다. ‘주다’는 소유권 이동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무엇이든 ‘주면’ 그 사물은 새 주인을 섬기게 된다. 첫머리에서 ‘주다’와 어울릴 수 있는 것을 여러 가지 살펴보았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주다’에 의해 소속이 바뀐다. 누군가한테 돈을 ‘주면’ 그 사람이 돈의 새 임자가 되고, 권리를 ‘주면’ 그 사람이 권리의 소유자가 된다. 남에게 ‘준’ 상처나 모욕은 고스란히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 된다. 주의나 언질도 한 쪽이 다른 쪽에게 일방적으로 주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어서, 상대가 무언가를 돌려주고 말고 할 것이 없다.

‘건넨’ 것은 돌아오는 것이 정상이다
이에 반해 ‘건네다’는 단순히 어떤 물건의 소재가 다른 사람 손으로 바뀌었음을 뜻한다. 이때 사물의 소유권 자체에는 변동이 없어서, 건너갔던 것은 다시 주인에게 돌아오는 것이 정상이다. 흔히 “줬다 뺏는 법이 어딨냐” 하듯이, 한번 ‘준’ 것을 도로 가져오려면 ‘빼앗는’ 방법밖에는 없다. 반면 ‘건네준’ 것은 도로 ‘건네받으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한테 말을 ‘건넸는데’ 상대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말을 건네면 말이, 인사를 건네면 인사가 돌아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공이 ‘건네준’ 여인도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어 있다.
‘주다’는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이며 자기완결적이다. “몸 주고 마음 주고 정도 주었지만” 운운하는 노랫말에서도 보듯 ‘주는’ 행위는 그것으로 그만이어서, 그에 상응하는 것이 돌아오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것이(이를테면 배신이나 보복이) 돌아온다. 이에 반해 ‘건네다’는 쌍방향적이고 대칭적이며 순환적이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 ‘건넨’ 것과 똑같은 것이, 또는 그에 상응하는 것이 돌아오게 되어 있다.

‘건네다’는 소유권과 무관할 때가 많다
그런데, ‘주다’와 ‘건네다’ 사이에는 소유권과 관련해서 좀더 근본적인 차이가 숨어 있다. 앞에서 ‘주다’는 소유권 이동을 전제로 한 낱말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건네다’에서는 애초부터 소유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여인을 ‘건네준’ 사공이 여인의 주인이 아니듯이, 어머니의 편지를 받아서 선생님에게 ‘건네는’ 딸에게도 편지와 관련한 권리가 전혀 없다.
영어로 치면 ‘주다’는 ‘give’고 ‘건네다’는 ‘pass’다. 영어사용자들이 식탁에서 “Give me the salt”라 하지 않고 “Pass me the salt”라고 하는 이유는, ‘give’가 소유권의 존재와 그 이동을 전제로 한 말인 데 반해 ‘pass’는 소유권과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동료에게 공을 넘길 때 ‘give’한다 하지 않고 ‘pass’한다고 하는 까닭도 이와 같다. 공을 넘겨주는 선수나 넘겨받는 선수나 결코 공의 임자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건네다’는 구체적, ‘주다’는 추상적
‘건네다’와 ‘주다’ 사이에는 또 한 가지 중대한 차이가 있다. 누구한테 뭔가를 ‘건네기’ 위해서는 우선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야 한다. 그리고 ‘건네주는’ 사람이 ‘건네받는’ 사람에게 몸소 물건을 넘겨주어야 한다. 이에 반해 뭔가를 ‘주는’ 일은 서로 만나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장은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도 다른 직원을 시키거나 자동이체를 통해서 얼마든지 직원에게 급료를 ‘줄’ 수 있다. 당사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이를테면 공개적인 글을 통해)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일도 가능하다.
‘건네는’ 행동은 구체적이고 ‘주는’ 행위는 추상적이다. ‘주다’는 한 인간에게서 다른 인간에게 뭔가가 건너가고 넘어가고 흘러가는 온갖 경우를 두루 싸잡아 가리키는 말이고, ‘건네다’는 그 중에서 신체의 실질적인 움직임을 동반한 경우만을 지칭한다. ‘건네다’는 ‘주다’의 부분집합이다. 두 낱말의 상대어가 공히 ‘받다’임을 생각하면 이 점이 한층 분명하게 드러난다.

점잖은 글말로 물러난 ‘건네다’
이렇게 ‘주다’와 ‘건네다’ 사이에는 의미심장한 차이가 숨어 있지만, 입말에서는 ‘건네다’를 쓸 곳에 ‘주다’를 쓰는 일이 흔하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주다’가 ‘건네다’에 비해 발음이 쉽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워낙에 ‘주다’의 쓰임새가 넓다 보니 한국어사용자들의 무의식 속에 “‘주다’는 모든 사물에 쓸 수 있다”는 단정적 사고가 자리 잡게 된 연유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입말에서 ‘건네다’를 썼을 경우 말하는 이의 점잖은 성격이나 지긋한 나이를 느끼게 한다.

‘건네다’가 ‘주다’에 눌린 까닭
‘인간人間’을 풀면 ‘사람 사이’가 되듯이,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사회를 이루어 서로 뭔가를 주고받으며 사는 존재다. 하기야 그렇게 모여 사는 과정에서 말이라는 것도 생겨났을 테니, ‘주다’의 용법이 다종다양한 것도 더없이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사람의 성정이 저마다 다른 탓인지, 내가 누구에게 무언가를 해주어도 상대가 똑같이 갚아 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 듯하다. 아니면, 사람이 서로 제각각이다 보니 자신이 받은 만큼 고스란히 돌려주기보다는 받은 것에 모자라게, 혹은 그보다 넘치게 돌려주는 일이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쓰임새의 가짓수에서 ‘주다’가 ‘건네다’를 압도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은 아닐는지.

[요약]
주다
-양자의 직접적인 대면과 신체행동이 따르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두루 가리킴
-소유권의 존재와 그 이동을 전제로 함
-일방적, 비대칭적, 자기완결적

건네다
-양자의 직접적인 대면과 신체행동이 따르는 경우만을 가리킴
-소유권 불변을 전제로 하거나, 소유권과 상관없음
-쌍방적, 대칭적, 순환적

[답]
1. 주기로 2. 건넸지만 3. 건네는 4.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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