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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속에서 희망을~” - 강원 오호초

강원 오호초 고성산불 피해 극복 지역 명물로 부활!
모교 출신 장원진 교장 '드럼 수업'하며 변화 이끌어




2000년 4월 7일 새벽,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 위치한 운봉산에 화재가 발생했다. 초속 12~20m의 강풍을 타고 번진 불은 9일간 계속되며 고성 일대에 산림 피해액만 350억이 넘는 큰 피해를 입혔다. 이른바 '고성산불'. 첫 발화지인 운봉산 인근에 자리 잡고 있는 오호초등학교도 불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김철정 교장을 비롯한 11명의 교원은 새벽에 학교로 달려와 학내전산자료가 입력된 컴퓨터 본체와 학적부 등 주요 자료만을 옮길 수 있었고 불길에 휩싸이는 학교를 바라봐야만 했다.

교사들 노력으로 전소(全燒) 위기 면해
8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거센 화마(火魔)가 지난 후 뼈대만 남은 창고와 급식시설이 모습을 드러내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만 다행히 본관 건물은 외관만 그을린 채 멀쩡해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현재 오호초의 교장으로 재직 중인 장원진 교장은 당시 교감으로 그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밤중에 당시 군청에 근무하던 동생의 연락을 받고 학교로 가보니 불이 이미 학교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어요. 긴박한 상황에서 본관 창문을 꼼꼼히 점검한 덕분에 전소(全燒)를 막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의 틈만 있었어도 모두 다 사라질 뻔했죠. 그리고 당시 관사에서 자고 있던 교사를 대피시킬 수 있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장 교장은 이 학교 33회(1962년) 졸업생이다. 모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의욕에 불타올랐지만 갑작스럽게 발생한 재난 앞에서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에 학교를 되살리는 데 앞장섰다. 학교를 5개 구역으로 나눠 매년 하나씩 복구를 해나갔다. '학교 되살리기 5개년 계획'을 실천한 것이다.

"제한된 예산으로는 복구에 모든 걸 집중할 수 없었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의 교육이 우선이었으니까요."

위기 상황이었던 만큼 교직원과 학생들을 동원할 수도 있었지만, 수업에 지장을 줄 수 없었기에 장 교장은 굳이 인부를 부르지 않아도 될 때는 학교 기사와 함께 직접 일을 해 나갔다. 그래서 학교를 찾은 사람들에게 일꾼인지 교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 끝에 이제 학교는 제 모습을 찾았다. 오히려 불타기 전보다 더 아름다운 학교로 변했다.

지금은 학교를 찾는 사람들은 학교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장미와 연산홍으로 둘러싸인 교정, 운동장 한 쪽에 마련되어 있는 수목원과 분수공원은 오호초의 자랑이다. 뒷산에 남아있는 산불의 흔적을 보지 못한다면 불이 났던 곳인지 전혀 의심할 수 없다. 작년 여름 고성을 찾았다가 오호초에 들렸다는 이시연 전주교육청 초등교육과장은 "우연히 들린 학교가 너무 아름다워 부럽네요.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학교가 되길 바랍니다"라는 글을 학교 홈페이지에 남기기도 했다.

장 교장은 5년간의 오호초 생활을 마치고 2004년 교장으로 승진하며 다른 학교로 옮겼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2006년 초빙교장으로 다시 부임했다. 그간의 노력이 주민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모교라는 애착이 있긴 하지만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당연한 일인데 칭찬을 받으니 더 어깨가 무겁습니다."

올해부터는 야생화단지 조성, 과학교육을 위한 간이 기생대·암석원·식물원의 시설 보강으로 학교공간을 다양한 체험 학습의 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3F 운동, 드럼 수업 등으로 내실 다지기
지난 해 부임하면서 장 교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학교의 외관이 아닌 내실을 다지는 것. 지방의 소규모 학교(현재 6학급 75명)가 대부분 그러하듯 오호초도 점점 줄어드는 학생 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속초시가 15분 거리에 있어 학생을 유지하는 데 더욱 힘든 형편이다. 또한 학생의 20% 이상이 결손 가정 아동들이고, 50여 가구에 불과한 재학생들의 사교육비가 연간 8000여만 원이 소요돼 이를 보완하는 것도 시급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자를 중심으로 한 특색교육과 독서, 정보, 영어, 리코더에 대한 인증제인 '오호금별제'를 실시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작은 실천으로 큰 보람을 갖자는 '3F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3F 운동은 '나부터(From I)', '지금부터(From Now)', '작은 일부터(From Small)'를 통해 기본 생활 습관 형성과 봉사, 공동체 의식을 배양하는 따뜻한 심성을 함양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학생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학교에 다니면 뭔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평준화를 강조하다보니 학교마다 갖고 있는 특색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뛰어난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르다는 말을 듣게 해주고 싶어요. 학생은 교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호초의 특색 있는 교육관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드럼 수업이다. 사물놀이, 댄스스포츠, 풍선 아트 등 특기적성 교육을 하고 있지만 장 교장은 직접 배우고 있는 드럼을 작년 9월부터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퇴직 후 '실버악단'을 구성해서 봉사활동을 다니고 싶은 욕심에 배우기 시작한 드럼에 푹 빠진 장 교장은 학생들과 같은 기쁨을 나누기 위해 지원자를 뽑아 드럼 수업을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저보다 배우는 속도가 빨라요. 이젠 점점 긴장이 된다니까요. 앞으로 조금만 있으면 고성군에서 하는 행사에 우리 '드러머'들이 단골로 출연할 것 같네요. 좀 더 익숙해지면 색소폰도 배워 수업을 하고 싶어요."

직접 구입한 드럼을 학교에 놓고, 방과 후는 물론 주말에도 아이들과 함께 한다. 생소한 악기를 접한 아이들은 한번 드럼을 치면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모른다. 5학년인 최자은 양은 "처음엔 신기하기만 했던 드럼을 치다보면 정말 신나고, 땀도 흘릴 수 있어서 좋아요. 처음엔 무섭던 교장선생님이 지금은 하나도 안 무서워요"라며 웃었다.

장 교장은 드럼이 한 대 뿐이라서 많은 아이들이 함께 하지 못해 올해는 한 대를 추가해 더 많은 학생들을 가르칠 예정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흥이 나고 속초에서 일주일에 두 번하는 드럼 레슨도 더 열심히 받게 됐다고 한다.

2년 전 오호초에서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한 박진우 교사는 "일요일에도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에 나오시고, 또 자비를 털어 식사와 간식을 함께 하시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우리 교사들에게도 행정업무에 대한 부담 없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시는 교장선생님을 만난 것이 행운이에요"라고 말했다.

학교의 모습을 바꿔 누구든지 즐겁게 찾을 수 있게 하고, 학생들에게는 인성교육과 함께 다양한 특색교육을 하는 장 교장의 이러한 노력들은 지방 소규모 학교의 경우, 학교가 주민과 하나가 되고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소신에서 시작됐다. 학교가 중심이 되면 학교의 황폐화를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졸업생 수가 3000여 명 정도입니다. 그 중에 저는 20년 가까이 다니고 있으니 제일 오래 다니는 거죠. 그만큼 더 열심히 해야 되겠죠? 지역 주민들이 모두 선·후배고 제자들이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지만 적극적인 도움을 주고 있어 누구나 찾고 싶은 학교를 만들고 싶습니다."

장 교장은 마지막으로 지방의 소규모 학교를 살리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전국의 많은 교원들에게 올 한해는 함께 소중한 결실을 맺길 바란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 엄성용 esy@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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