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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수원 칠보초, 아빠와 자녀가 함께하는 미니올림픽 열려 경기 칠보초(교장 양원기)에서는10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권선구청 옆 근린공원에서 '아빠랑 놀자' 미니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비록 5월 가정의 달은 지나갔지만, 가정의 소중함은 언제 강조해도 지나칠 리가 없다. 칠보초 가족들을 위해 화합과 만남의 장을 만들고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하여학부모회 ‘아빠랑 놀자’에서 미니올림픽 행사를 기획한 것이다. 입장식 및 개회식이 끝나고 오전 1부 행사로는 봅슬레이 외 5종 경기가 진행되었다. 아빠와 함께 노는 시간을 어색해 하는 자녀들도 있었지만, 이내 하나가 되어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은 이를 지켜보는 사람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였다. 점심 시간에는 서로 싸온 도시락을 나누어 먹으면서 참가 가족들끼리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끼리의 친분이 부모님들간의 친분도 쌓아가는 계기가 된 것이다. 점심 식사이후에는 2부행사가 진행되었다. 바구니탑 쌓기 외 5종 경기가 펼쳐졌는데, 1부 행사 때보다 승부욕이 한껏 불타오름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자녀들과 함께하는 만큼 부모님들께서는 승부에 집착하시기 보다는 매너 있는 스포츠정신으로 경기에 임하셨고, 자녀들 또한 페어 플레이로 펼쳐 나가시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동참하는 모습이 보기 아름다웠다. 2부 행사가 끝난 후에는 자유로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약 40여가족이 참여하였기에, 경기만으로는 모든 가족과 인사를 나누기 힘들지 않을까? 우려하여 마련된 시간이었다. 이로써 모든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이 서로 즐거운 마음으로 미니올림픽을 마칠 수 있었다. 이번 미니올림픽을 통해 아이들은 부모님들과 스포츠를 통해 원활하게 소통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특히나 바쁜 업무로 인해 함께 놀기는커녕 같이 식사하기도 힘든 아빠와 이렇게 하하호호 웃으면서 놀 수 있었다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크나큰 행복이었다고 한다. 아무쪼록 이번 행사를 통해 아빠와 자녀간의 소통이 더욱 활발해졌기를 기대하고, 앞으로도 이러한 여운이 쭉 이어져서 아빠와 함께 행복하고 밝은 미래를 꿈꿔 나가는 칠보초 학생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수원시립교향악단, 수원 칠보초 강당에서 작은 콘서트 열어 1일 오후 3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경기 칠보초(교장 양원기) 강당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이 칠보초를 찾아온 것이다. 아름다운 하모니를 통해 마음의 평안함을 느끼고, 음악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칠보초와 수원시립교향악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음악회에는 칠보초 학생, 학부모, 교직원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 모두가 초대되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수준 있는 음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한 셈이다. 200여명의 학생, 학부모, 교직원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현악 4중주, 목관 5중주, 금관 4중주 등 3개 팀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였다. 학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그리고 본교 교직원들까지 한데 모여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영화에 나올법한 배경음악에서부터 저명한 음악가들이 작곡한 교향곡까지 다양한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각각 다른 수준의 청중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특히나 인상깊게도 바이올린, 플롯과 같은 악기는 친숙하지만 트럼본, 호른 등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악기들은 직접 소개해주고, 소리가 나는 원리도 같이 설명해주어서 학습효과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비록 다양한 청중이 한 데 모였지만 나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과중한 학업 혹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고 심적인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번 행사를 담당한 이우람교사(5-5, 문화예술부장)는 “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인 강당에서 연주가 열려 편안하게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행사를 주최하는 시립교향악단의 모든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칠보 관현악부 소속의 학생은 “ 관현악부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데 현악 4중주를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으며 나도 열심히 연습해서 훌륭한 연주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라면서 소감과 함께 자신의 꿈에 대한 포부도 밝혔다. 모두에게 친숙한 곡 ‘오 샹젤리제!‘을 앙코르 곡으로 들으면서 음악회는 마무리되었다. 6월의 첫 날을 멋진 음악회와 함께 시작한 칠보초등학교와 칠보 주민들 모두가 행복한 하루가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스승의 날이 있던 5월도 지나갔다. 매년 스승의 날을 전후해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들의 권위를 세워주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약화되고 있는 선생님들의 권위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주장들이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이런 주장에는 선생님들의 권위가 약화되고 있는 것이 외부 환경의 변화때문이고, 그렇기에 선생님의 권위는 선생님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다. 그리고 교원들 역시 그러한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생각이 과연 타당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권위의 바탕은 전문성과 헌신 영국의 교육철학자인 피터즈에 따르면 교사는 직위상의 권위와 전문지식의 권위, 전문가적 권위를 갖고 있다고 한다. 직위상의 권위는 국가에 의해 교원자격을 갖고 교사의 직위에 있는 교사에게 제도적으로 부여하는 권위를 가리킨다. 전문지식의 권위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교과에 정통하고, 체계적인 지식을 갖고 있을 때 인정받게 되는 권위다. 전문가적 권위는 교사가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한 적합한 교육방법을 동원해 잘 가르칠 때 가르치는 전문가로서 인정받는 권위다. 여기에 도덕적 권위를 추가할 수 있다. 도덕적 권위는 교사가 교직생활에 헌신하며 학생들의 역할모델이 될 때 인정받는다. 훌륭한 교사라고 칭송받는 교사가 갖는 권위는 제도적으로 부여되는 직위상의 권위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세 가지 권위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사람들이 아무리 선생님의 권위를 세워주려 해도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세워줄 수 있는 권위는 직위상의 권위뿐이기 때문이다. 전문지식의 권위나 전문가적 권위, 도덕적 권위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제도적으로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생님들 자신의 끊임없는 연찬(硏鑽)과 헌신적인 교직생활의 결과로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이 선생님들에게 자녀들을 잘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사랑의 회초리를 만들어 드린다고 해서 교사들의 권위가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교원예우 규정을 만들고, 교권보호조례를 제정한다고 해서 학생들이나 학부모가 선생님들을 이전보다 더 존경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는 선생님들이 교과 실력이 뛰어나고,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넘치며 적합한 교수방법으로 가르침에 헌신하면 권위를 인정하고 존경하며 따른다. 그런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질서를 유지하는 데 회초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매년 스승의 날을 계기로 선생님의 권위를 세워주자는 다짐도 필요하고 외침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선생님들의 권위가 저절로 세워지지는 않는다. 실력과 전문성 그리고 헌신이 뒷받침되지 않는 직위상의 권위는 사상누각(砂上樓閣)과 같다. 스승의 날을 성찰의 기회로 이제부터 스승의 날이 있는 달에는 우리들이 선생님으로서 스스로 권위를 세우기 위한 노력을 어느 정도 기울였는지 돌아보는 기회를 갖도록 하자. 교과지식을 심화시키기 위해 평소에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고 있는지, 새로운 교수법을 터득하고 기술을 활용하려고 노력했는지 등을 점검해 보자. 그리고 학생들의 세계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학생들과 몇 번의 대화를 했는지 헤아려 보자. 학생이 배운 것을 모르겠다고 찾아왔을 때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었는지, 고민을 털어 놓을 때 시간을 내서 경청하기보다는 시간이 없다는 투로 귀찮은 표정은 짓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그렇게 스승의 날을 선생님들이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자신들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평소에 열심히 노력하였는지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날로 삼아 보자. 그럴 때, 올해 한국교총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원들 스스로 압도적으로 답했듯이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진정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적극적인 사고와 열정이 있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BS 다큐멘터리 최고의 교수를 읽고 영어를 전담하고 있어서 다른 담임들에 비해서 시간의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난 일과 중에 이비에스 교육 방송을 들을 수 있는 행운을 가진 교사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듣게 된 방송이지만 방학을 이용해서 이비에스를 하루 종일 듣다보면 매일매일 한권의 고급스런 잡지를 읽은 것처럼 마음이 부자가 된 느낌이 든다. 이 책도 이비에스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5년 전인지 4년 전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매일 2시부터 3시까지 이비에스에서 진행되는 ‘책만세’ 라는 프로에서 알게 된 책이다. 이 프로는 매일매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소개해주는 그런 프로다. 이 책의 진행자는 이 책을 소개시켜 주면서 이 책은 초등학교 교사보다는 대학 교수들에게 더 많은 교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책이라고 했다. 나는 이 멘트를 들으면서 ‘ 누구에게 라고 딱 못박을 건 그 무엇도 없다. 단지 내가 어떤 관점으로 접근할 것인가가 문제지 ‘ 라고 생각하며 이 책을 사서 읽어보았다. 과연 이 책은 나에게 교사로서 멘토의 역할을 제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중한 책이었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나간 곳이 한 페이지 안에서도 5-6문장을 훌쩍 넘어섰다. 교육이란 화두는 그만큼 우리에게 식상하리만큼 회자되는 이야기인고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교육에의 새로운 관점과 교사로서 내가 느꼈던 나의 교육 현장을 이야기하면서 이 책의 내용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정리해보고자 한다. 좋은 교육자의 가장 기본 요건은 배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한다고 한다. 난 이 책에서 배움과 교육이란 것에 대해 그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 첫 번째, 교육과 교육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받았다. 하버드 대학교 화학과 교수 D. 허슈바흐 교수는 교육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얼마나 배웠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었느냐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교육의 주된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주는데 있으며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며 인간적인 사회란 조부모도, 부모도, 아이도 학생인 배우는 사회라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 좋은 교사에 대한 정의였다. 좋은 교사란 끊임없이 공부하는 교사, 학생을 위해서 자기 시간을 늘 비워두고 준비하는 교사. 이런 정의는 그동안 수없이 들어왔던 이야기였지만 내가 새롭게 좋은 교사의 조건으로 감명깊게 읽은 부분은 벤터빌드 의과 대학교 재닛 노던 교수의 교수업 이었다. 그녀는 의과 대학 학생들에게 휴먼 스토리 수업을 도입했다. 그녀에게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은 곧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환자들과 그 환자들을 종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의학지식 이전에 환자와 그 환자들의 가족을 사랑할 수 있는 감정을 의대생들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휴먼스토리 수업을 전개한 것이다. 난 그녀의 교수법을 읽으면서 나 교사야말로 병이 아닌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을 성장시키고 치료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난 그 아이와 그 아이가 가진 모든 환경을 그 가족들 까지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난 한번이라고 가져본 적이 있던가 하고 말이다. 아니 그렇게까지 내 아이의 모든 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야한다는 인식조차도 가지지 못했었다. 셋째, 평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해답이었다. 동국 대학교 석좌 교수 조벽 교수님은 평가란 학생을 평가함과 동시에 내 수업자체를 평가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한다고 말했고 벤터빌드 대학의 재닛 노던 교수는 나는 절대 시험으로 학생들의 순위를 매기거나 그들을 열등감에 빠뜨리거나 자포자기하게 하거나 혹은 자만심에 휩싸이게 하고 싶지 않다. 시험이란 단지 나와 학생들이 효과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했는지 확인하는 수단이라고 평가를 정의했다. 내게 평가는 그냥 아이들의 등급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리고 항상 시험이 끝나고 나면"왜 이렇게 아이들은 공부를 안 하는 거야. 정말 속상해. ”라며 동료 교사들과 함께 아이들의 나태함만을 탓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 글속의 교수들은 아이들의 평가를 위해서 정말 많은 고민들을 하고, 그 평가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기위해 고심하는 사람들이었다. 교직 경력 20년째, 교실에서 아이들과 씨름한다는 것, 아직은 사고가 형성되어 가는 아이들이기에 그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보람있는 만큼 때로는 지치고 힘든 일이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어쩜 더 철든 학생들을 가르쳤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학 강단이라는 곳이 아닌 내가 있는 초등학교 이 곳에서도 그들이 하고 있는 교사로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아니 어쩜 내가 교사로서 느꼈던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있었던 게 아니라 나에게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단 한 번도 이 책속의 그들 같은 열정으로 교사 생활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았다. 대답은 당연히 노우였다. 내가 그들 같은 열정으로 수업을 준비해보고, 수업을 해보고, 그들 같은 열정으로 학생을 대해본 적이 있었던가? 부끄럽게도 단 한 번도 그러하지 못했다. 아니 이 책을 읽고서야 좋은 교사에 대한 상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기 보다는 앞으로 내게 주어진 교사로서의 시간들을 이 책속의 앞서간 선배들의 실제를 교훈삼아 열심히 성실로 메꾸어 나가면서 어제보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교사라는 이름으로 살고싶다 라는 다짐을 이 책을 읽으며 하게 되었음을, 그런 소중한 기회를 얻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학생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규칙을 어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에는 말로 타이르지만, 계속 규칙을 어기면 벌을 내려야 한다. 벌을 받으면서 규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규칙을 어겨도 벌을 주지 못한다. 벌을 주는 것이 인권과 관련이 있다. 말 그대로 체벌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을 하면 당연히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그 교육조차도 체벌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벌은 분명히 교육이다. 교육은 학생의 미래 삶을 다듬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벌이 학생의 행동과 생각에 내면화되어야 한다. 올바른 사람을 만들기 위해 선생님은 끊임없이 담금질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간혹 ‘벌을 세운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벌’이 목적어이고, ‘세우다’가 타동사로 쓰인 것이다. 이 어법은 이상하다. ‘벌’ 잘못하거나 죄를 지은 사람에게 주는 고통.- 엄한 벌. - 벌을 내리다. - 벌을 받다. - 벌을 주다. - 벌이 무겁다. - 나는 오늘 숙제를 안 한 벌로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었다. 흔히 ‘벌’을 ‘세우는’ 것으로 말할 때, ‘벌을 서다’라는 관용구가 보여야 한다. 위 사전의 용례에서 보듯, ‘벌’은 ‘서다’라는 동사와 호응하지 않는다. ‘벌’은 ‘받다’와 ‘주다’만 호응한다. 그리고 ‘서다’가 목적어를 취할 때는 ‘들러리를 서다./보증을 서다./주례를 서다.’ 등의 예만 보인다. 따라서 ‘벌을 세우다.’는 쓰지 말아야 한다. ‘벌’과 관련된 동사는 ‘벌서다’와 ‘벌쓰다’가 있다. ‘벌서다’ 잘못을 하여 일정한 곳에서 벌을 받다. - 수박 서리하다 들킨 아이들은 원두막에서 한두 시간 벌서곤 하였다. ‘벌쓰다’ 잘못이 있어 벌을 받다. ‘벌을 세우는’ 것은 ‘벌서다’의 표현에서 영향을 입은 듯하다. 즉 ‘벌서다’의 사동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벌서다’의 사동사는 ‘벌세우다’이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학생을 벌세웠다.’라고 해야 한다. ‘벌쓰다’의 사동사는 ‘벌씌우다’이다. 역시 ‘선생님은 학생을 벌씌웠다.’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이때의 ‘쓰다’는 ‘죄를 입다.’, ‘형구나 굴레 따위를 목에 걸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 ‘누명쓰다’나 ‘칼을 쓰다’의 ‘쓰다’처럼 사용한 것이다. ‘벌서다’와 ‘벌써다’를 사동사로 사용할 때는 ‘학생이’ 목적어가 된다. 일부 사전(한글학회편 ‘우리말 큰사전’, 1992)에는 ‘벌서다’는 올라 있지 않다. ‘벌쓰다’만 올라 있다. 그래서 ‘벌서다’는 표준어가 아니고, ‘벌쓰다’라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등에 ‘벌서다’가 표제어로 올라 있다. 많이 사용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참고로 ‘벌을 씌우다’라는 관용구가 있다. 이는 ‘벌을 받게 하다.’라는 뜻으로 ‘당장 걱정이 담임선생이 남아 있으라고 했는데 무슨 벌을 씌울 일이 있는 것도 아닐 것이요 집에 같이 가자고 할 것인데….’라고 한다.
6일, 지인들과 충남의 서남쪽 바닷가에 위치한 서천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서천공주고속도로가 개통되며 해돋이 마을 마량리가 청주에서 2시간여 거리로 가까워졌다. 군산에서 가까운 마량포구는 주변에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아 가족 여행지로 좋다. 가까이에 동백정ㆍ서천해양박물관ㆍ홍원항ㆍ춘장대해수욕장, 남쪽으로 장항항ㆍ금강하굿둑ㆍ한산모시관ㆍ신성리갈대밭ㆍ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북쪽 바닷가로 부사방조제ㆍ무창포해수욕장ㆍ남포방조제ㆍ죽도보물섬ㆍ대천해수욕장이 있다. 마량포구는 왜목마을과 함께 서해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낮은 구릉지가 대부분인 삼면이 서해와 접해 아름답고 바다로 길게 튀어나온 포구가 동쪽의 비인만을 바라보고 있어 포구에서 바라보면 동쪽 바다에서 붉은 해가 떠오는 것처럼 보인다. 해돋이를 하는 방파제에서 포구 뒤편의 서천해양박물관과 서천화력발전소가 가깝게 보인다. 또한 1816년 조선 연안을 탐사하던 영국 해군 맥스웰 대령이 마량진 갈곶에 정박해 성경 한 권을 첨사 조대복에게 전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포구에 우리나라 최초로 성경이 전래된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 성경전래지를 테마로 해양ㆍ문화유적지 사업이 추진된다. 마량포구 뒤편의 서쪽 바닷가 언덕에 수령 500여년의 동백나무 85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서천화력발전소 옆으로 산책로를 따라가면 중층누각 동백정을 만난다. 정자에 올라서면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된 동백나무숲과 서천화력발전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의 정자에서 해송사이로 바라보이는 기암괴석과 작은 섬이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석양이 서해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해넘이는 동백이 붉게 꽃을 피운 봄철에 더 아름답다. 홍원항은 춘장대해수욕장과 동백정 사이 움푹하게 들어간 바닷가에 위치한다. 전경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작은 항구지만 주꾸미, 전어, 꽃게 등 먹거리가 많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가을철 전국에서 전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으로 전어축제가 열리는 9월 말부터 10월초까지는 차량들이 꼬리를 문다. 장항항에서 4회째 맞이하는 꼴갑축제가 열렸다. 꼴뚜기의 '꼴'과 갑오징어의 '갑'을 합성한 축제의 이름이 재미있다. 홍원항에서 장항까지는 30여㎞ 거리다. 외국인들의 민속공연을 구경하고 행사장에 마련된 먹거리 코너로 갔다. 꼴뚜기와 갑오징어, 삼합두루치기(갑오징어, 꼴뚜기, 삼겹살)를 판매하고 있다. 축제가 열리는 곳은 음식 값이 비싸지만 달고나, 뽑기 등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볼거리들이 많다. 한때는 장항역이 종착역이었던 장항선이 지금은 익산까지 연결되고 예전의 장항역은 화물만 취급하는 장항화물역이 되었다. 금강하구의 강변도로를 달려 장항에서 17㎞ 거리에 위치한 한산모시관(http://www.hansanmosi.kr)으로 간다. 모시풀이 심어져 있는 모시관은 '세계 문화유산 한산모시로의 초대'를 주제로 열릴 한산모시문화제 준비로 바쁘다. 이곳에서 아름답고 섬세한 한산모시 제직과정과 모시제품 전시장을 구경하고 모시떡을 먹었다. 모두 수공으로 이뤄지는 모시의 제직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올, 한 올 가는 실들이 모여져 옷감이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여름철을 대표하는 모시옷, 모시이불의 값이 만만치 않다. 모시는 천연섬유로 만든 우리 민족의 전통 옷이고 한산모시는 품질이 우수하여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모시를 대표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했다. 서양에 실크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모시가 있다. 단아하고 청아한 한산모시의 제사ㆍ제직과정(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이 2011년 11월 28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한산모시관을 나와 금강의 물가에 있는 금강 제2경 신성리갈대밭으로 갔다. 서천군과 군산시가 만나는 금강 하구의 제방도로에 올라서면 드넓은 갈대밭과 금강의 물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연친화적인 갈대밭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지로 많이 알려졌고, 최근에는 자연학습장과 사진촬영장소로 인기가 높다. 금강하굿둑이 건설되기 전에는 무성한 갈대들이 제방 너머로 드넓게 형성된 농경지까지 뒤덮었지만 갈대공원이 조성되며 길 양옆으로 갈대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강바람이 불어오면 어른만큼 키를 키운 갈대들이 초록물결을 이루고, 근처의 금강 하굿둑에 둥지를 튼 철새들이 갈대밭 위를 한가롭게 나는 모습이 이채롭다. 갈대숲에 들어서자 갈대들이 몸을 비비며 내는 소리와 숲속에서 새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햇볕을 머금은 파란 하늘, 하늘과 맞닿은 갈대밭, 갈대밭 옆으로 흐르는 금강의 물길, 물길 옆에 덩그러니 놓인 원두막…. 갈대밭 산책길을 걸으면 물가에서 온갖 시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원두막을 만난다. 원두막에 앉아 행복과 호흡한다.
세계를 리드하는 리더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인쉬타인 케네디 힐러리등 이름만 들어도 그 이름들의 name value를 알 수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고전 독서를 통해 그들의 지적, 심적 소양을 높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고전을 읽고 천재가 되었다는 수많은 위인들이 있습니다. 고전이 천재를 만들어주는 기계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고서는 고전을 읽어나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생각하는 과정이 보통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요즘같이 입시위주의 암기식 지식 교육이 판치는 우리 교육 현실에서 고전 읽기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전 읽기를 통해 아이들은 사고의 확산과 인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대의 사고의 결과물인 고전의 내용이 바로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바른 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본, 미국 등 세계를 리드하는 지도국의 역할을 한 나라들의 공통점 또한. 바로 공자님 말씀인 논어를 연구하고 그 말씀을 그들의 국가 속에서 실천한 나라들이 세계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본 학습 목적이 있습니다. 미래 인재로서 성장할 우리 아이들에게 동양고전의 정수인 논어를 읽고 생각하고 실천하게 함으로써 그들 인생의 빛나는 기초를 닦아주자는 목적입니다. 어차피 입시라는 제도권 밖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교육의 현실이라면 입시에서 자유로운 초등학교 교실에서 깊이 있게 논어를 읽고 생각하게 하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인생에서 귀한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 어떨까요? ▣ 논어 ! 초등학교 교실에서 언제,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 지도시간: 정규교과 시간을 침범하지 않기 위래서 매일 아침 자습 시간을 활용하여 지도한다. 무엇보다 하루를 시작하는 소중한 아침시간에 일 년간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학습활동을 계획하여 꾸준히 아이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학습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이기에 난 아침자습시간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수석이면서 이년간 담임을 고집했던 이유도 아침시간에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활동을 계속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만드시 가르쳐 주어야 하고 전해주어야할것이 있다면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가르치고 전해주어야 한다. 시간이 없어서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해야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교사들의 의무이다. ◆ 이렇게 지도했습니다. 1. 논어를 소리 내어 읽게 합니다. 2. 읽은 내용 에서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정리하게 합니다. 3. 글속에 담긴 주요 내용의 의미를 현대적의미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질문을 던집니 다.이 활동에서 교사의 창의적 역량이 제일 중요한데 이 활동 단계에서 교사는 - 아이들에게 생각의 물꼬를 트게 해 줄 사고력 있는 질문을 연구해야합니다. - 아이들에게 지적 성장과 함께 인성을 길러줄 다양한 실천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4. 내용을 깊게 이해한 글을 암기하며 내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합니다. 그리고 생활 속 에서 그 교훈을 실천하게 합니다.
걸림돌과 디딤돌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말한다. 프랑스 혁명사를 쓴 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카알라일(1795-1881)의 말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남긴 데에는 그럴만한 사건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집필한 프랑스 혁명사 원고는 2년에 걸쳐 이미 완성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가 외출한 틈에 난로를 피우려던 하녀가 불쏘시개를 찾다가 노랗게 퇴색된 원고뭉치를 휴지인 줄로 알고 기름을 부어 다 태워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너무 기가 막혀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실의에 빠진 채 지냈습니다. 2년 동안 쓴 원고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다시 써야겠다는 의욕도 용기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알라일은 거리를 걷다가 미장이가 벽돌을 한 장씩 쌓아 벽을 만드는 것을 보고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영감을 얻은 그는 "더 좋은 작품을 쓰라는 신의 뜻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부터라도 한 장씩이라도 다시 쓰기 시작해야겠다."며 곧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는 또 다시 집필에 착수, 7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새로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계적인 불후의 명작인 프랑스 혁명사입니다. 그것은 처음에 쓴 것보다 훨씬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구덩이에 빠졌다. 하지만 평지려니 하고 지낸다. 이런 평상심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독서의 힘이다. 책을 읽으며 허물어지는 마음을 하루하루 다잡는다." -한밤중에 잠깨어정민 교수가 만난 정약용의 맨 얼굴 본문 중에서 내 인생의 디딤돌이 된 아이 필자는 현재 전남학습연구년제 교사로서 '난독증 극복으로 행복한 학생 만들기'라는 주제로 자율연수 중이다. 난독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2학년 짜리 우리 반 아이 때문이었다. 엄청난 학습 의욕을 가진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글자를 인식하지 못하였으며 책을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고통을 지켜보며 내 마음도 멍들어가던 2011년이었다. 나는 정말 무식한 방법으로 아이와 몸부림쳤다. 교과서 속의 동화를 날마다 읽어주고 따라 읽게 하며 나중에는 줄줄 외울 정도가 되자 비로소 책을 읽게 된 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말로 물어보면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만 활자로 된 지문에는 답을 쓰지 못했다. 그 아이에게 매달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다른 아이들에게는 수업결손이 늘 따라왔고 책만 보면 땀을 흘리고 머리 아프다는 아이만큼 나도 함께 자괴감과 내 무능 앞에 교사로서 정체감에 시달렸다. 기존의 학습부진아를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 자료를 아무리 투입하는 양적인 축적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나는 그 아이가 가진 학습부진 요인이 기존의 학습도구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스스로 내리기에 이르렀고 다양한 경로와 책을 통해 그 아이의 증세가 바로 '난독증'임을 알게 되었다. 특수교육의 대상도 아닌 전형적인 난독증으로 괴로와 하는 모습임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미안하고 슬펐다. (난독증이란? '지능과 시력, 청력 등이 모두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언어와 관계되는 신경학적 정보처리 과정의 문제로 인해 글을 원활하게 이해는 데 있어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증상' 미국의 경우 학생의 약 15% 정도가 난독증 장애로 정부지원으로 검사 및 교정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선생님, 책을 보면 머리가 아파요! 난독증을 가진 아이들은 부모와 선생님으로부터 너무 많은 상처를 받는다. 본인이 아무리 책을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아이. 그로 인해 벌어지는 학습부진의 상처는 정서장애, 인격장에를 너머 자존감의 손상으로 연결되는 무서운 결과를 내재하고 있음을! 부모와 선생님도 단순히 늦터지는 아이로, 기다리면 되는 줄로 알거나 게을러서 그런 거라고 치부당하는 현실이 비일비재하다. 보통의 학습부진아동에 비해 난독증을 지닌 아이들은 학습의욕과 호기심이 대단하다. 그런 만큼 절망감도 깊다. 30여 년 가까운 교단에서 문자미해득아를 가르치며 '난독증'때문이라는 진단보다는 지능이 따라오지 못해서, 부모의 무관심이나 게으름 탓이라고 오해를 받으며 가정과 학교에서 주변인으로 살면서 상처에 울고 힘들었을 제자들! 심지어 6학년 때 만난 학생은 1년 동안의 막고 품는 식의 무식한 방법으로나마 책을 읽고 졸업을 시키기도 했다. 초임교사 시절에 만난 4학년 아이들 10여 명도 문자미해득아였다! 늦가을에 만난 그 아이들과 나는 해가 지도록 교실에서 책을 읽어주고 따라 읽기를 반복했다. 청각 훈련과 시각 훈련이었던 셈이다. 거기다 받아쓰기까지 시켰으니 돌이켜보면 무식했던 그 방법이 바로 난독증을 해결하는 기본 방법이었던 셈이다. 비록 가르친 아이들 중에 문자미해득아로 내보낸 아이들을 단 한 명도 없지만, 보다 전문지식을 알고 가르쳤다면 그 아이들의 오늘이 얼마나 좋아졌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미안하고 죄스럽다. 특히 책을 읽는 기쁨 대신 책이란 고통을 주는 것으로 책과 멀어진 인생을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무식한 선생은 그 자체만으로 죄인이 아닌가! 그런 아픔과 절망이, 난독증조차 모르고 난독증인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교단에 섰다는 우울함과 자괴감이 나를 공부하는 교사로 내보냈으니 제자는 내 인생의 디딤돌이 되고도 남는다. 내 반 아이가 난독증인것도 모른 채 무조건 교재를 투입하고 가르친답시고 닥달해 온 30년이 미안하고 죄스러워 선택한 '난독증' 공부로 인해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주제와 관련된 세미나나 워크숍을 찾아다니고 구하기 힘든 책들을 찾아내어 읽으며 정보의 바다를 뒤지는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아직도 현직교사를 위한 난독증 전문가 연수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에 힘이 빠지기도 했다. 5~6세만 되어도 누구나 쉽게 한글을 깨치는 우수한 글자를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에도 깨치지 못하며 문자미해득아라는 오명을 둘러쓰고 상처받는 아이들, 국가에서는 기초학력반 구제라는 명칭으로 방과후학교 예산까지 편성해서 노력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성과에 의문을 갖게 했던 그 아이는 바로 나의 디딤돌이 되었다. 책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은 기초학력부진의 악순환에서 헤어날 수 없다. 뒤늦게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독해 능력이 뒤처져서 다시 학습 곤란을 겪기 때문이다. 난독증 학생 구제를 위한 국가적 프로그램 절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가진 다른 재능에도 불구하고 국,영, 수로 판별되는 성취도 평가의 그물망에 모두 걸려서 허우적댄다는 사실이다. 학교 교육이 대부분 문자 위주의 교육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의 재능을 재거나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과 기회가 시급하다. 한줄서기 교육이 아니라 여러 줄 세우기 교육이 절실하다. 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이제라도 유치원,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난독증 치료 프로그램이 빨리 도입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니, 성인층에도 난독증이 있음을 생각하면 중 고등학교까지 조사해야 한다. 지난 5월 북유럽 4개국 해외연수를 통해 만난 모든 교육기관과 평생교육기관에서는 어떤 교사도 '난독증' 아동을 다 파악하고 있었고 단 한 명의 난독증 학생을 위해 따로 인력을 배치하고 있었다. 1명의 난독증 학생을 파악하기 위해 그 학교 전체 학생 160명을 전문가 진단을 받게 했다는 답변을 들었을 때, 나는 이것이 바로 선진국이라고 감동했다. 그리고 정말 부러웠다. 단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 그것은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민주주의의 모습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목도했으니 책과 문헌 속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가슴 치는 현장을 보며 우리 교육의 현실을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가르친 아이들 중에서 누가 난독증이었을까? 우리나라 학생 중에서 난독증을 가진 학생들의 통계라도 있는 것일까? 2011년 11월 전국 1045개 초 중등학교 기초학력 미달 학생 5만 6천여명을 대상으로 학습부진의 원인을 찾는 조사에서 1만1천여명이 난독증, 정서불안 등 정서행동 발달 문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 보고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전수조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후속조치가 매우 시급한 사항이기도 하다. 난독증을 가진 학생들을 판별해 낼 전문적인 프로그램도 중요하고 바로 투입이 가능한 조치가 이어져야 한다. 서양에서는 이미 난독증에 대한 연구가 백년을 넘었다는데 우리의 경우는 일부 대학에서, 그리고 일부의 전문 병원에서나 치료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2009년 대구교육청에서 지자체와 MOU를 맺어서 극히 일부 학교에서나마 난독증 판별을 하고 치료를 위한 연구학교를 운영하여 성과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경우 학부모가 직접 병원 상담을 통해 치료하는 실정이다. 아직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서는 난독증 학생을 위한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전수 조사를 실시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현장의 선생님들과 관리자들마저 생소해하는 단어가 바로 '난독증'이다. 전문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모든 학교에서 난독증 진단을 받게 하는데는 막대한 예산이 들 것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교육사업보다고 시급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난독증을 지닌 아이들은 질병이 아님에도 학습부진아 취급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으며 울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국가는 그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방과후학교 기초학력보충반 예산의 일부만 가지고도 충분하리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난독증을 공부하면서 만나게 된 문헌과 책을 통해서 난독증은 결코 질병이 아니며 빠른 진단을 통해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속적인 노력으로 많은 효과를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한글의 뛰어난 체제 덕분에 영어를 쓰는 나라보다 난독증 비율이 낮은 편이다.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소리글자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모든 언어를 글자로 표현 가능한 엄청나게 우수한 글자를 만드신 세종대왕님의 혜안에 다시금 감사를 드린다. 다행히 국가에서도 난독증에 관심을 가지고 정책들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방향을 잡았으니 속도를 높여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난독증 학생들을 구하는 사업은 표나는 사업이 아니다. 그 성과도 금방 나타나지 않는 장기사업이다. 보이지 않는 뇌의 문제를 다루는 정신적인 사업이다보니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정책에 밀리면 언제 투입될지 모르는 사업이 될 수도 있다. 다빈치, 아인슈타인, 에디슨도 난독증 너무나도 유명한 다빈치나 아인슈타인, 에디슨도 모두 난독증을 이긴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나 선생님이 아닌 그들 스스로를 이겨낸 사람들이다. 유명한 영화배우인 톰 크루즈 역시 난독증으로 대본을 제대로 읽지 못해 다른 사람이 읽어준 대본을 외워서 연기한 것으로 유명한다. 난독증 아이들은 뒤집어 말하면 천재가 될 아이들이다! 엄청난 노력의 대가들이기 때문이다. 천재란 노력의 산물이니! 이제 얼마남지 않은 선생으로서의 삶을 다시 돌아서서 잠시 멈춤으로 서서 공부에 몰입하다보니 교실이 보이고 아이들이 더 잘 보이는 지금. 아이들이 보고싶다. 그리고 그립다. 난독증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상처를 보는 눈 하나를 더 가지게 되어서 감사하다. 난독증이라는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 일어설 수 있게, 바르게 걸을 수 있도록 안내자가 될 확신의 나무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컨설팅 장학이 전면 시행되고 있습니다. 컨설턴트로서 의뢰 선생님들의 마음에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컨설팅을 위한 세 가지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이야기 하나. 수업 연구대회 입상을 위한 컨설팅 혹은 유기한적으로 특정교과의 교수법 향상 및 학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컨설팅이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컨설팅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추구하는 컨설팅은 한 번의 인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생각을 나누는 교육 동지로서의 인연을 추구하는 컨설팅을 추구합니다. 컨설팅의 관계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컨설턴트라고 생각합니다. 의뢰인 선생님들은 컨설턴트에게 무언가 물어보는 것을 매우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뢰인 선생님들은 무언가 질문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상대의 시간을 빼앗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다. 의뢰 선생님의 경우 교육 경험이 적어서 이 것 저 것 궁금하고 물어볼 것들이 많은데 그 모든 걸 다 물어본다는 것에 대해 염치없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컨설팅의 유한적인 모습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멘토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의뢰인에게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언제든지 밤이든, 낮이든, 일요일이든, 휴일이든 선생님을 위한 제 마음의 문이 열려있어요 언제든 궁금하신 것이 있으면 연락하세요.” 그렇게 먼저 컨설턴트인 내가 다가갈 때 의뢰 선생님들이야 당연히 기뻐하지 않으실까? 이야기 둘, 컨설턴트로서 평소에 다양한 교육활동 및 교육정보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만의 교육 스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스토리에서 교육적 의미를 찾아내어 의뢰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풍성하게 준비해야합니다. “이렇게 해보세요.”가 아닌 이미 내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천해본 교육 자료의 ABC를 전달해 드릴만큼의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언제든지 누군가 요청할 때 자료를 열어 보일 수 있는 준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그렇다고 늘 컨설턴트에게 성공적인 경험만 있을 수 는 없을 것입니다. 실패도 훌륭한 스토리고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실패 속에서 찾은 경험을 교훈을 전해드리는 것도 훌륭한 컨설팅의 자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멘토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도 좋은 컨설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셋, 교단의 학습 문화 만들기를 위한 교육지원청의 노력 및 지원도 중요합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려는 멘토 교사의 노력만으로는 교단의 학습문화를 만들어 가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리적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인식을 가진 자와 주려고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컨설팅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늘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같은 학교 동료 직원끼리의 컨설팅이 더 어려운 것을 보더라도 컨설팅의 시작은 그 무엇보다 ‘배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자발적인 학습에의 욕구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의 일 년은 내 전 교직생애로 볼 때 4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대학 입학 전 고등학교까지 정규 교육과정 12년의 1이라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신규교사들이 적극적으로 경력자 선생님들의 노하우를 전수 받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 소중한 아이들의 일 년을 담당하는 우리들이기에 컨설팅장학을 통해 경력선생님들의 교육에 대한 노하우를 내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기울이는 분위기 조성에 교육지원청 및 학교관리자들의 더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교육청 관 주도의 장학대신 컨설팅장학은 의뢰인과 멘토의 개인 동기적이고 비형식적이고 자유로운 만남입니다. 의뢰인과 컨설턴트의 격의 없는 만남으로 시작되어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이루는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이 컨설팅장학이 기존의 장학과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생학습이 개인의 역량을 좌우하는 미래사회 대비 가장 바람직한 장학의 모습이 컨설팅 장학이 아닐까합니다.
6월의 산 산에 간다 그자리에 언제나 변함없이 있는 너에게로 간다 아무리 펀안한 곳에 있어도 온 종일 너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낼 수가 없다. 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몸살나게한다. 망설임과 주저 끝에 결국은 떨치고 일어나고야마는 것을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지고말 내 자아의 허망함 앞에 쓴 웃음을 흘릴 수 밖에 없임이야. 언제나 말없이 그자리에 있어주는 산 너에게는 청랑함이 있어 좋다 너는 언제나 그 때에 맞는 최고의 풍경을 보여 주어 좋다 이 유월 너에게서는 비릿한 듯하면서도 생명의 원기를 키워주는 밤꽃의 진한 항기가 넘쳐난다. 말없는 6월의 청산아 그 자리에 언제나 있어 주어서 고맙다. 네가 있어 내가 푸르러간다. 네가 있어 내가 산이 되어간다. 너를 탐닉하는 보잘 것 없는 인간 군상들 중의 일인인 백산이 2012. 6..10일 산 너를 위해 한 자 남긴다
한 때 텔레비전에서 전 국민의 마음을 울리고 울렸던 드라마 대장금, 제빵 왕 김탁구, 그리고 헬렌켈러의 공통점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대장금 에게는 한상궁이 그리고 김탁구에게는 팔봉선생이 그리고 헬렌켈러에게는 설리반이란 위대한 스승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그 곳에는 반드시 사람 혹은 책이 있다고 하는데 대장금과 탁구와 헬렌켈러의 인생을 바꾼 것은 바로 사람 스승이었습니다. 조선이 낳은 위대한 학자 정약용 밑에서도 많은 이들이 수학했지만 정약용에게도 등 돌리고 욕한 자들도 많다고 하니 위대한 스승이라고 모든 이의 마음을 변하게 할 수 는 없나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 아닌가 합니다. 모든 스승은 리더입니다. 관리자만 리더가 아니라 모든 교사는 작게는 한 학급에서 많게는 전 교생의 영혼을 책임지는 리더입니다. 리더인 스승이 갖추어야할 모습을 역사 속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리더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 시키는데 가장 강력한 도구는 바로 이야기 즉 스토리입니다. 리더는 스토리 텔러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스토리란 길고 역사적 무용담이나 영웅담을 을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루스벨트는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테리, 오늘은 선물이라는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마틴루터 킹은 I have a dream 이라는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뒤 흔들어 역사의 줄기를 바꾸었습니다. 스승인 리더가 들려줄 메시지는 무엇보다 리더인 자신이 몸소 실천하며 보여줄 수 있는 진정성을 가진 것들 이어야함 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의 제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로 그들의 마음을 울려줄까 어떤 이야기로 삶의 방향을 잡게 할까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는가를 늘 생각하는 리더가 바로 우리 교사의 모습 이어야합니다. 리더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실천해 나갑니다. 조선의 대표적 과학자 장영실 그리고 완벽한 물 순환 시스템을 적용하여 경회루 앞 인공 연못공사를 완공시킨 박자청도 노비출신이었습니다. 노비 장영실을 중국 유학시켜 천문학 기술을 익히게 하고 박자청의 뛰어난 실력을 인정해 무반 관리 직위를 내릴 당시 신분과 명예를 중시했던 신하들의 온갖 만류를 이겨낸 리더 세종이 겪었을 어려움을 생각해봅니다. 또한 세종은 박자청의 부음을 듣고 사흘간 조회를 중지 시킬 만큼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합니다. 개인의 호불호에 의한 사사로운 감정이 아닌 아이들 하나하나의 영혼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세상 그 어떤 일에도 아이들의 마음을 지켜가는 일을 위해서라면 과감히 스승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스승은 가져야합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12년간의 학업 성취도에 따라 한 사람의 일생이 크게 바뀌는 대한민국 교육현실에서 초등 중등교육은 각기 12분의 6 그러니까 학생들의 2분의 1의 시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의 일 년은 내 전 교직생애로 볼 때 4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12분의 1의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사로서 내가 지금 겪는 난관들을 시행착오라 쓴웃음 지으며 넘겨버릴 시간조차 아쉬워해야합니다. 매스컴을 통해 들려오는 갖가지 교육관련 기사들에도 울분을 터뜨리거나 낙심하거나 공분을 터뜨리며 누군가를 원망하기에도 아까운 아이들의 시간을 우리는 지금 책임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시절이 더 어려울수록 역사 속 리더의 모습을 교훈삼아 더 굳건히 교사의 자리를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단체전 세계 제패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첫 여성 태릉선수촌장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종합 7위를 일궈내는 등 한국의 스포츠사를 새롭게 써내려간 이에리사(58‧사진)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 체육인을 대표해 19대 국회에 진입한 그가 11일 아침 일찍 한국교총을 찾았다. “(정치인이 됐다는 것을) 아직은 실감하기 어렵다”는 이에리사 의원은 “선수촌장, 교수(용인대)를 거쳐 국회의원까지 활동 폭과 깊이가 한층 확대돼 기대된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는 책무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상임위로 문화체육관광위와 교과위를 희망했다는 그는 “엘리트·학교·생활·장애인 체육에 이르기까지 체육과 교육을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고리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의원 연구단체를 만들어 체육정책 전반에 검토를 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특히 그는 학교폭력의 문제를 건강한 스포츠 활동을 통해 해결하는 미래지향적 대안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지덕체가 아니라 체덕지라고 해야 한다고 매일 말하고 다닌다”는 그는 “페어플레이 정신 등 스포츠 특유의 장점을 활용해 인성교육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7일 발족한 새누리당 ‘아이가 행복한 학교 만들기’ 특위(위원장 정우택 최고위원)에도 이름을 올린 이 의원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교총과 선생님들이 고군분투하고 계심을 잘 알고 있다”면서 “초선이라 아직 미약하지만 체육계와 학교체육을 대표한다는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 만큼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성실하게 하나하나 풀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을 키우거나 가르칠 때 아이의 눈을 조금 ‘고급’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된다. 외국의 유명 작가의 전시회가 개최되거나, 유명 미술관의 콜렉션이 한국에 온다고 하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아이를 데리고 가지만 막상 가보면 인산인해로 숨이 막힌다. 어두컴컴한 전시관에 들어가면 유명하다는 그림 앞에는 사람이 가득하고, 도록에서 여러 번 본 그 그림이 있기는 한데, ‘봤다’는 마음속의 인증샷만 했을 뿐, 너무 많은 전시작품 때문에 집중도 안 되고 기억에 남는 것은 복잡한 전시실의 혼잡뿐이다. 그래서 내 삶과 미술적 눈높이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알 수 없게 된다. 생활과 예술이 분리된 덕분에 생긴 부작용이다. 미술 눈높이기는 우리가 매일 보는 일상적 생활 소품 속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오창섭 등이 지은 ‘생활의 디자인’(현실문화)은 무심히 보고 지나치던 철가방, 명조체, 칠성사이다, 바나나맛 우유, 모나미볼펜과 같은 친숙한 생활소품들을 대상으로 디자인적 관점에서 물건의 유래, 현재적 의미,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 등 미술적 지남력을 선사하고 있다. 저자는 벤야민을 언급하며 “비록 가까이 있다 해도 그것을 그 자체로 경험하지 못하고 멀리 있는 무엇인가를 통해 지각하게 되면 삶과 괴리된다”고 한다. 그러한 디자인은 일상의 삶과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그런 아우라적 지각방식이 아닌 “기억의 흔적의 지각방식을 통해 디자인을 보자”고 제안한다. 일상의 문제로 어디 찾아가서 책 펴들고 이해하려 애를 쓰는 ‘저기’의 방식이 아닌 일상의 생활 속 ‘여기’의 관점에서 디자인을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사례가 제작시기 미상의 배달용 철가방이다. 저자는 이토록 오랜 세월 원형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디자인적으로 형태와 기능이 완벽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밝은 금속판은 색상이 밝고 번쩍여서 기름진 중국음식을 청결하게 하는 효과가 있고, 기능적으로 봐도 뚜껑이 위가 아닌 옆에 달려서 슬라이딩 개방을 하면 낮은 높이의 음식그릇을 여러 개 한 번에 빼기 쉽다. 또 가방이 흔들거려도 쉽게 열리지 않는다는 것, 금속재질이라 세척이 용이하다는 것도 디자인적 장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런 실용적, 미학적 장점이 철가방의 원형이 수 십 년째 그대로 보전되게 했으며 오늘도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이유다. 두 번째 흥미로운 것은 소주병이다. 한국영화를 많이 본 외국 영화인들 중에 소주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영화에 몰입하다보면 주인공들이 마시는 소주병의 푸른빛이 그렇게 궁금하고 마셔보고 싶어진다고 한다. 특히 홍상수의 영화를 많이 본 팬들은 한국을 찾으면 꼭 소주병을 찾는다는 소문도 있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소주병은 독특한 자리를 갖는다. 맥주병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색과 크기지만 소주병만큼은 우리나라에만 있다. 소주가 지금의 유리병에 담기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지만 현재의 360ml 용기에 담긴 원형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주류업체인 진로가 주도한 디자인인데, 자원절약차원에서 소주 업체가 병을 공유하면서 이 디자인이 일반화됐고 우리에게 ‘소주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완성했다. 소주 한 병에 소주잔으로 7잔반이 나오는데 그것이 마법의 용량이다. 둘이 먹으면 반 잔, 셋이 먹으면 한 잔 반, 넷이 먹으면 또 반잔이 모자라는 구조로 꼭 한 병을 더 시키게 만들기 때문이다. 상품 디자인이 미학적 가치뿐 아니라, 함께 짝을 짓는 잔의 용량을 고려해서 구매를 촉진시키는 기능도 있어야한다는 것을 교육하는데 탁월한 예다. 한편 목욕 시 때를 밀기 위해 사용하는 이태리타월은 이태리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다. 부산의 한 직물공장을 운영하던 사람이 수입한 까칠한 천의 활용방안을 고민하다가 천을 들고 목욕탕에 가서 우연히 때밀이에 제격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상품화하게 되었다는 유래가 소개된다. 이 책을 덮고 미술과 디자인은 책 펴놓고 정색하고 앉아서 공부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먼저 일상에서 시작해도 된다. 매일 보고, 손에 들고 사용하는 많은 생활 속의 물건들이 하나같이 깊은 뜻이 있는 명품들이었다. 오랜 시간 사람들 손때를 탈 수 있다는 것, 디자인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미학적으로, 기능적으로 충분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큰 결심하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뽑아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는 것보다, 지나가다 쓱 손에 잡히는 이태리타월이나 솥뚜껑 불판을 보면서 생활디자인 속에 우리가 알아야 할 미술의 정수에 대해 읊는다면 진짜 내공 있는 고수가 지나치듯 무심코 한 수 펼치는 것 같은 효과도 있지 않을까. 미술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을 뿐.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윤광준의 생활명품산책(생각의 나무), 수집미학(박영택 마음산책)
최근에 교무실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학부모였다. 자녀가 학교에 간다고 나갔는데, 가는 도중에 교통 사고가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병원인데 지금 치료비를 대신 내줬으니, 입금하고 병원으로 찾아오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전화한 곳은 병원이라고 했다. 학생의 아버지는 직장에서 잠시 외출하여 은행에 입원비를 입금하러 갔고, 혹시나 해서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급히 학생을 찾아 보니 교실에서 멀쩡히 앉아 있었다. 급히 학부모에게 다시 연락을 취했다. 실제로 입원비를 입금했는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2-3년 전쯤에는 대부분의 학부모에게 전화연락이 갔던 보이스피싱 사건이 발생했었다. 학교에 걸려오는 전화가 몇 백통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사건이 심각한 상황이었기에 학생들에게 휴대전화를 돌려주고(아침에 등교하면 휴대전화를 수합하고, 하교할때 돌려주고 있음)부모에게 연락을 하도록 하였다. 학부모 전체에게 문자메시지를 일괄 발송하기도 했다. 교내에 방송으로 이런 사실을 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전화가 걸려왔었다. 오후에 또다시 보이스피싱으로 보이는 전화가 학부모들에게 간 것이다. 오전보다는 다소 줄어들긴 했어도 오후에 다시 전화를 받은 학부모 들이 여럿 있었다. 대략 1/3정도의 학부모들이 이런 전화에 시달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보이스피싱이 학교앞까지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일들이 최근에 자주 발생하고 있다. 얼마전에 이런일도 있었다. 학부모라고 하면서 전화가 걸려왔다. 학생의 학년반은 잘 모르지만 지금 학생을 빨리 보내줘야 한다는 전화였다. 전화한 사람은 이모라는 사람이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서 심하게 다쳤다고 했다. 학생을 ○○병원 앞으로 오도록 해달라는 구체적인 이야기도 했다. 학생을 찾아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혹시나 해서 담임교사에게 부모에게 전화를 해 보라고 했다. 부모님 모두가 직장에서 아무일 없이 업무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경우도 학생을 이용해서 학부모에게 돈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싶었다. 무사히 넘어가서 다행이긴 했지만, 학부모들은 학생들에게 무슨일이 생겼다면 상대방의 요구에넘어가기 쉽다.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들이 똑 같을 것이다. 막상 학생들의 울음소리가 섞인 녹음 내용을 들려주면 실제로 오인하기 쉽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를 녹음했어도 갑작스런 상황에서는 자기 자녀로 오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 목소리가 녹음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다급함이 앞서기 때문에 모든 가치판단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는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학교에 전화를 걸어서 확인을 요청한다. 이때 전화를 받은 교사는 재빨리 움직여서 확인을 해 주어야 한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학부모들은 실제로 아이가 학교에 없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전화를 받는 교사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따라서 전화를 받은 교사는 반드시 자신이 직접 확인을 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게 되면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오게 되고 기다리다 지친 학부모들이 피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간혹 보이스피싱으로 보이는 전화들이 걸려온다.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그나마 학생이 학교에 있을때 전화를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학부모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일선학교에서는 학교와 학부모의 긴밀한 연락체계를 다시한번 점검하여 학부모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한 학교의 역할이 매우 크다 하겠다.
지난달 13일 청주삼백리 회원들과 답사했던 정북동토성 일원을 3일 오후 아내와 다시 돌아봤다. 청주의 북부지역인 이곳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네모배기샘, 큰샘으로 불리는 '돌꼬지샘'부터 들려야 한다. 샘은 기찻길 옆 시골마을인 정상동의 길가 가까이에 있다. 이 샘을 기준으로 위쪽은 `정상(井上)', 아래쪽은 `정하(井下)', 북쪽은 `정북(井北)'으로 행정구역이 나눠진 것이 돌꼬지샘의 위상을 알려준다. 돌꼬지샘에서 위쪽인 정상동이 서울(한양) 방향이고 아래쪽인 정하동이 청주 방향임을 알고 나면 예전에는 모든 것이 서울 위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청주로 나들이를 하려면 이곳을 지나야했던 오창 사람들이 '청주에서 술 마시는 것보다 돌꼬지샘에서 물 마시는 것이 좋다.'고 말했을 정도로 돌꼬지샘의 물맛이 좋았다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돌꼬지샘에서 가까운 북서쪽 방향에 '청주정북동토성(사적 제415호)'이 있다. 넓은 들판 길을 걸어 토성으로 간다. 미호천 물가에 위치한 정북동토성(井北洞土城)의 축조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돌화살촉·돌창·돌칼 등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에 의해 삼국시대 초기인 2~3세기경 평지인 미호천변평야의 중심에 네모지게 축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1744년에 상당산성의 승장으로 있던 영휴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견훤이 궁예의 상당산성을 탈취하고 작강(鵲江-까치내) 옆에 토성을 쌓고 창고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측한다. 정북동토성은 남북이 약간 긴 직사각형이고, 남문자리와 북문자리의 좌우 성벽이 엇갈리게 축조된 독특한 형태로 우리나라 초기의 토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예전의 토성은 성안의 중심부를 동서로 가로 지르는 농로가 20여 호의 민가가 있던 북쪽과 경작지가 있던 남쪽을 구분했는데 2007년부터 정비 사업이 이루어지며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2014년에는 토성 인근에 역사교육관이 세워질 계획이다. 토성에서 청주를 대표하는 우암산과 부모산의 모습이 또렷하다. 미호천 제방에 올라서면 좌우의 정북동토성과 작천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제방을 내려서 물가로 가면 여기저기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포근하다. 이곳 무심천과 미호천의 합류지점에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온갖 식생들이 살림을 차린 모래톱이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작천보가 만들어지며 수상 레저활동을 해도 될 만큼 수량이 증가했으나 낚시 등으로 주변이 오염되어 수질 개선이 시급하다. 제방을 따라 걸으면 좌우로 펼쳐지는 정상동과 정하동의 농촌 풍경, 무심천과 쓰레기장을 매립해 만든 문암생태공원, 새들이 큰 날개를 펴고 이동하는 모습이 평화롭다. 충북선 철교 위를 빠르게 달려가는 기차도 만난다. 마애는 석벽의 그림이나 불상, 비로사나(비로자나)는 불교의 진리를 신격화한 법신, 좌불은 앉아있는 불상이다. 무심천의 지류인 발산천 입구에 청주정하동마애비로자나불좌상(충북유형문화재 제113호)이 있다. 정하동마애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시대의 특징이 엿보이는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자연암반에 선각된 마애불의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있다. 또한 관모를 쓴 비로자나불이라 주목받고 하단의 돌출된 부분을 이용하여 연화대좌를 조각한 것도 특이하다. 왜 이곳의 길가에 석불이 조성되었을까? 이곳이 바로 청주읍성과 한양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그동안 이 길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이 불상 앞에서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빌었을 것이다. 좌불 옆 수령이 오래된 참나무에 말벌이 있다. 말벌은 다른 벌들보다 크기가 커 위협적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자연이 놀이터였다. 답사 길에 만난 말벌이 친구들과 산에서 놀다 벌에 쏘여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교육전문가들은 앞으로 스마트러닝이 대세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자교과서를 이용한 수업이 곧 도입될 전망이다. 지금도 전자교과서가 있지만 단순하게 기존의 교과서를 옮겨 놓은 형태이기에 더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곧 종이교과서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교과서 없이 전자교과서로 수업이 진행되고 학생들이 수업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교실 수업의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즉 쌍방의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수업이 진행될 것이다. 현재의 수업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은 교육전문가들 만이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교사들 대부분이 앞으로의 수업형태 변화를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들이 스마트기기를 가지고 수업에 참여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느정도 효과적일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도 다양한 학습자료를 활용하여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이 매우 많다. 컴퓨터를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신이 직접 제작한 자료들을 활용하기도 한다. 우리학교에서도 일부교사들은 기존의 컴퓨터 활용 수업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활용하는 교사들이 많다. 기존의 컴퓨터 활용 수업은 교사가 아무리 자료를 잘 만들더라도 학생들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문제와 교사가 컴퓨터 근처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교사들이 시도하고 있는 것이 타블렛을 이용한 수업이다. 타블렛PC를 활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장비가 고가이고, 교실에 가서 장치를 연결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 간단히설명하자면타블렛 장치는 기존의 마우스 대신에 펜 마우스를 쓸수 있는 장비이다. 이 장치는C에 간단히 연결하여 활용한다. 수업자료 제작도 기존의 마우스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된다. 교사가 칠판에 수업하는 것처럼 펜 마우스가 분필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판서가 쉽다는 것이 장점이다. 타블렛 장치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면 기존의 PC를 이용하는 것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칠판에 판서를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 시각적으로 관심을 끌 수 있어 수업효과가 좋다고 한다. 필자도 간혹 활용을 하는데 단순히 PC를 이용하는 수업보다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쉽고 수업분위기도 좋다. 펜 마우스를 이용하여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장비를 교사들이 직접 구입하여 활용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예산문제로 직접 구입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예산으로 구입을 하면 좋겠지만 실질적으로 이런 부분까지 예산을 편성하기 어려운 것이 학교의 현실이다. 그래도 수업방법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교사들은 개인적으로 구입을 해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수학, 과학 등의 수업에서는 타블렛 장치가 매우 효과적이다. 지금은 유선 타블렛을 쓰고 있지만,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장비가 다소 고가이긴 해도 무선 타블렛 장치를 활용할 수 있다면 수업효과는 더욱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무선 타블렛을 사용하면 타블렛 장치를 들고 다니면서 수업 진행이 가능한 엄청난 장점이 있다. 즉 교실 앞쪽의 화면을 교사가 직접 보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수업이 가능한 것이다.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고, 해당학생 옆에가서 개인지도도 가능하다. 어떤 자리에 교사가 있어도 타블렛 장치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궁극적으로 모든 교사들이 무선 타블렛을 활용하게 된다면 학교수업은 상당히 진일보할 것이다. 교사들은 수업에 변화를 주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이런 교사들의 노력에 예산만 조금더 지원이 된다면 훨씬더 신바람 나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어머니는 늘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고 하셨지요. 나의 꿈은 마틴 루터 킹처럼 세상의 불평등을 없애는 데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의 말이다. 세상에 가장 훌륭한 선생님은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의 한마디가 자녀에겐 꿈이며 희망이 된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경제규모만큼이나 우리 국민들의 우수성이 세계무대에서 입증되고 있다. 이러한 인재들의 배경에는 우리나라 어머니만이 갖고 있는 자식을 위해 헌신적인 존재였다.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을 비롯한 정경화, 정명화, 정명훈의 어머니, 최근의 피겨 여왕 김연아 어머니까지 공통점은 한마디로 헌신적인 자식 사랑이다. 오직 자녀를 위해서는 자기 희생을 아끼지 않으신 어머니들이다. 훌륭한 어머니의 삶은 자식들로부터 받는 것보다는 베푸는 것을 천명으로 삼았으며, 끝없는 자기희생 속에서 자녀를 위해 묵묵히 몸을 바친다. 그러기에 우리의 가슴속에 담긴 어머니의 모습은 숭고한 아름다움 그 자체다. 최근 한국인의 글로벌 리더 등장은 세계인들로부터 놀라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받고 있으며, 또한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있다. 그래서 학부모들 사이에 글로벌 인재 만들기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조벽 교수는 "김용 등 한국계 미국인들의 부눈부신 성공은 '인성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은 한국 부모의 교육열과 미국의 열린 교육시스템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 만들어낸 결실"이라고 말한다. 사실 부모의 자녀교육에 기본인 인성교육 없이는 글로벌 인재를 기를 수 없다. 조벽 교수는 글로벌 인재에게 필요한 세 가지는 창의성, 전문성, 인성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인성이며, 인성이 바탕이 되어야 창의성과 전문성을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성은 단순히 도덕이나 윤리 개념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정, 모험심, 호기심, 자신감, 가치관 등을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이며, 이러한 인성은 대부분이 가정의 부모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한 자녀의 배경엔 부모의 헌신적인 삶이 있으며, 반면 문제 학생의 가정엔 반드시 가정의 결손 요인이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인성이 중요함에도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있어서 인성보다는 지식교육에만 몰두하고 있다.특히 학생들이 직접 체험하는 봉사활동이나 타인을 존중하는 배려심등에 중요성을 두지 않은잘못된 교육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로, 우리나라 부모 특유의 교육열로 많은 한국계 미국 학생이 고등학교까지는 각종 상을 휩쓸며 수재로 자라나지만, 대학에 들어가 홀로서기를 시작할 때 인성적 토대가 허약해 여지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인재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삶의 목표가 뚜렷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삶에 대한 뚜렷한 목적과 열정을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걸 해야겠다는 열정이 생기면 공부하지 말라고 해도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한다.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는 "시각장애로 할 수 없는 것도 많지만, 그것 때문에 이룬 일도 많다. 시각장애 때문에 오히려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끈기가 생긴다”고 말하고, 그가 내세웠던 ‘3C형 인재'는 실력(competence), 인격(character), 헌신(commitment)이라고 했다. "교육열이 뜨거운 한국의 부모들은 이 중에서 자녀의 실력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던 그는 “이 세상에 주기 위해 공부할 때 자기의 성공도 찾아온다”고 했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글로벌 인재육성을 위해 초등학교는 영어교육을, 중등학교에서는 지식과 외국어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 교육만 충실히 하면 글로벌 인재가 된다고 학생들은 믿고, 친구들과 협동과 배려보다는 이기기 위한 경쟁중심의 지식교육을 해온 것이다. 그 결과 교육의 왜곡현상인 학교폭력은 학교를 넘어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었다. 이제 와서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뼈아프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머릿속에 담긴 지식이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그것들을 얼마만큼 체험하여 인성으로 변했느냐가 중요한 시대다. 또한 미래사회는 혼자서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별로 없다. 다양한 지식과 능력을 지닌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하고 연구하는 팀워크를 이뤄야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이러한 미래 환경과는 상관없는 정답 지상주의에 빠진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은 자신보다는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더 생각할 줄 아는 공동체 의식과 기본 생활 습관, 민주 시민 의식 및 세계 시민 의식을 함양하고 바람직한 가치관을 확립하여 자율적이고 통합적인 인격을 형성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방법적 측면으로는 이성과 지식교육이 아닌 감성과 체험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성은 감성을 통해마음을 움직여 행동으로 나타나는 개인적 특성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인성교육은 학생 개인의 감성을 자극하여성찰을 통한 공감과 감화가 이루어져 마음을 움직이게 해야 하는 것이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 엊그제가 토요일이었는데 또 토요일 아침이다. 커텐을 열었다. 푸른 산, 푸른 나무, 푸른 잔디가 희망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은 푸른 하늘로 동참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들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특징이다. 또 이들은 언제나 말이 없다. 침묵을 지킨다. 자기의 할 일만 한다. 보아주면 보아주는 대로, 보아주지 않으면 보아주지 않는 대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산은 역시 대장부답다. 나무를 잘 길러낸다. 뿌리가 굳어지게 한다.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한다. 기둥과 들보의 재목을 이룰 때까지 가슴에 품는다. 땅 속에 품는다. 기운을 준다. 누가 뭐라 해도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소신껏 한다. 자기의 사명을 알아 자기의 사명만 다한다. 제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이리저리 옮기지 않는다. 나무가 시들어간다고 냇가로 가지 않는다. 가지와 잎이 무성하지 않다고 아우성치지 않는다. 기둥과 들보의 재목이 되었다고 자랑을 하지 않는다. 깃발을 흔들며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선생님은 산과 같다 싶다. 언제나 학생들이 있는 곳에서 떠나지 않는다. 학생이 있는 곳에 선생님이 계신다.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따로 놀지 않는다. 약한 자들에게 뿌리가 견고하도록 흔들리지 않도록 돌본다. 가지가 가늘고 잎이 시들어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가슴으로만 앓는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을 살리는 길인지 몰두하며 머리를 맞댄다. 그리하여 가지와 잎이 무성하도록 정성껏 돌본다. 기둥과 들보의 재목이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오직 그들을 가슴에 품는다. 생각대로 따라오지 않아도 안달을 내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직 최선만 다한다. 학생들이 나라와 세계의 기둥과 들보의 재목이 되도록 잘 가르치고 잘 이끈다. 언제나 푸른 희망을 안고 살아가도록 힘을 실어준다. 세계를 가슴에 안고, 미래를 가슴에 품는 푸른 꿈의 학생들이 되도록 애쓴다. 우리 선생님은 물을 잘 다스리는 자와 같다. 물을 잘 다스리면 샘의 근원이 풍부하고 흐름이 길어서 물을 대는 이로움이 많다. 요즘처럼 가뭄이 심해도 물을 잘 다스려왔기 때문에 물을 대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잘 다스린다. 지혜가 풍부하고 지식이 풍성하도록 이끈다. 학생들의 지혜와 지식이 우리나라와 세계에 이로움을 줄 수 있도록 잘 가르친다. 또 우리 선생님은 가장 기르기 어려운 사람을 기르는 자다. 나무도 동물도 식물도 기르고 다스리기 어려운데 사람을 기르기는 더욱 어렵다. 이 어려운 일을 감당하는 분이 바로 우리 선생님이다.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은 언제나 자부심을 느낀다. 긍지를 갖는다. “사람을 잘 기르면 뜻과 기운이 크고 식견이 밝아서 충의로운 선비가 나올 것이니, 잘 기르지 아니 할 수 있겠는가?” 명심보감 성심편에 나오는 말씀이다. 사람 기르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큰 뜻을 품은 인재를 키우고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키우고 지혜가 많아지고 지식이 풍성하며 식견이 밝고 혜안이 넓어 나라를 바로 세워 나가는 충성된 참된 인재를 기르는 것이 교육이다. 이를 맡은 이가 우리 선생님이다. 교육이 바로 서면 나라가 바로 서고 교육이 흔들리지 않으면 나라가 흔들리지 않는다. 교육이 힘이 있어야 나라가 힘이 있게 된다. 산이 나무를 잘 기르듯이, 물 관리자가 물을 잘 다스리듯이,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잘 기르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요 우리들의 몫이다. 이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둥과 들보의 재목이 수십 년이 걸려야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인재를 기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내다보고 참고 인내하면서 말없이 묵묵히 기르면 된다.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인재가 나올 때까지.
학교현장에서 갈수록 학생들 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교사라면 누구나 다 직접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거의 포기상태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그래도 교사이기 때문에 학생들 지도를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라는 곳은 학생지도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여건이 달라졌다고 학생지도에 소홀히 할 수 없는 곳이 바로 학교인 것이다. 날마다 전쟁을 치르는 곳이 학교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 학부모들로부터 자주 받는 전화가 있다. 자녀가 학교에서 벌점을 받았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는데, 자녀에게 물어보니, 벌점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무슨일로 벌점을 받았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벌점받을 행동을 하는 아이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한다. 벌점을 어떤 교사가 무슨 이유로 부여 했는지는 담임교사와 해당교사만이 알 수 있다. 담임교사를 통해 확인해 보면 벌점을 받은 이유와 해당학생에게 벌점을 부과한 교사가 누군지 알 수 있다. 최종적으로 확인하면 해당학생이 집에가서 부모에게 발뺌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벌점이 잘못 부여된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다음날 해당학생과 이야기를 해보면 부모님에게 야단 맞을 것을 염려하여 집에가서 벌점받은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학생지도를 위해 마지막으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벌점 부과이다. 학생이나 학부모는 벌점을 주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이야기 하지만 학생지도를 위한 수단이 거의 사라진 현실에서 벌점은 그래도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학교의 현실이다.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벌점을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하고 궁리를 하지만 교사들 입장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형평에 맞게 벌점을 부과해야 하기 때문에 안타까울 때도 종종 있긴 하다. 벌점이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해당 학생들은 특별지도를 받게 된다. 이때 심한 경우는 학부모 소환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참석률은 높지 않다. 그래도 절차를 거쳐 학생들을 지도하지만 그 지도가 쉽지는 않다. 특별히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벌점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벌점을 많이 받아도 특별교육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학생교육은 학교와 가정의 연계가 잘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나름대로 지도를 하지만 학부모들의 협조가 없이는 지도가 어렵다. 학교의 방침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학부모 소환시에 적극적으로 응한다면 해당학생들은 학교지도를 쉽게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벌점 뿐 아니라 학생들이 집에와서 이야기하는 내용만으로 학교를 불신하지 말고 좀더 정확한 파악을 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교사라도 근거없이 벌점을 주거나 학생들에게 필요이상의 지도를 하지는 않는다. 교사를 믿고 학교를 믿는 풍토 조성에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나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만리장성의 길이를 종전보다 2배 이상 늘였다. 중국 국가문물국의 조사 결과 그 길이가 2만 1천196.18㎞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물론 만리장성 늘이기는 처음이 아니다. 2009년엔 압록강 하구 쪽을 늘인 바 있다. 한국 역사학계는 중국의 시도가 학문적으로는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중국이 새로 발견했다는 유적들은 기존 만리장성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명나라나 고구려의 유적이라는 것이다. 만리장성 확장은 중국이 고구려·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이른바 ‘동북공정’의 연장으로 볼 수 있는 분명한 역사 왜곡이다. 2002년 이후 중국은 이를 통해 고구려 역사를 빼앗는 역사 침탈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 측 억지 주장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터무니없는 주장이 계속 될 때는 우리도 역사적으로 검증할 준비를 해야 한다. 정부 차원과 역사학계 등에서 연구가 필요하다. 중국의 역사 왜곡 사건을 신문 및 방송에서 보도하면서 ‘억지’ 주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잘 안될 일을 무리하게 기어이 해내려는 고집을 부릴 때 ‘억지를 부리다’라고 한다. 이는 ‘억지 눈물/억지를 쓰다/멀쩡한 꿩을 보고 닭이라고? 억지도 가지가지이구려.’ 등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 단어를 쓸 자리에 간혹 ‘어거지’를 쓰는 경우가 있다. ○ 이번 파문은 휘발성이 강한 예민한 사안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통합진보당 구 당권파의 어거지에 질려 있다(중앙일보, 2012.06.05.). ○ 그리고 청구권 행사의 시효만료론이 보조적 근거로 활용되었다. 공적인 피해는 물론 사적 피해까지 국가가 뭉뚱그려 받았으니 개인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으며, 시효도 지났다는 어거지 논리였다(내일신문, 2012.06.01.). ○ 드라마선 삼촌·조카, 실제 연령은 조카가 위… ‘나이 역전 캐스팅’ 그럴 듯? 어거지? KBS 주말연속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는 중견배우 김상호와 유준상이 작은아버지와 조카로 나온다. 중략 언뜻 보면 삼촌과 조카까지는 아니어도 꽤 나이 차가 있어 보이는 이 두 배우의 화면 밖 실제 나이는 그 반대다(한국일보, 2012.04.29.). 여기서 보듯 ‘어거지’는 언론 매체에도 쓰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전에 없는 단어다. ‘억지’가 바른 말이다. 표준어 규정 제25항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의미가 똑같은 형태가 몇 가지 있을 경우, 그 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면, 그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 이는 어휘적으로 형태를 달리하는 것을 표준어로 정한 것으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억지’를 표준어로 삼고, ‘어거지’를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어거지’를 많이 쓰는 이유는 받침 때문으로 보인다. ‘억지’보다는 ‘어거지’가 발음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 중국 만리장성 ‘억지 늘이기’는 역사 왜곡 중국이 만리장성의 길이를 종전보다 2배 이상 늘였다. 중국 국가문물국의 조사 결과 그 길이가 2만 1천196.18㎞로 확인됐다는 것이다(부산일보, 2012.06.07.). ○ 그 모습이 웃긴 염나리는 조용히 태강의 행동을 지켜본다. 갑자기 태강은 염나리를 끌고 무대 앞으로 나가 ‘롤리폴리’ 노래에 맞춰 억지로 커플 춤을 춘다(매일경제, 2012.06.07.). ○ 각급 학교 식중독예방시스템을 특정업체로 밀어주려했다는 의혹은 엉터리 제보와 억지 감사의 합작품이었다는 지적이다(인천신문, 2012.06.05.) ‘ 억지’는 단일어로도 사용할 때, 통사적으로 동사 ‘쓰다(공적인 일을 추진하는 데에는 억지를 쓰면 안 된다./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마구 억지를 쓰는 버릇이 있다.)’와 ‘부리다(억지를 부리다.)’와 잘 어울린다. 그리고 다른 단어와 결합하여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데도 적극적이다. ○ 억지공사(바람직하지 못하거나 잘되지 아니할 것을 억지로 하는 일.) ○ 억지다짐(억지로 하는 다짐. 그놈한테 억지다짐을 받아 봐야 소용이 없는 일이다.) ○ 억지떼(주로 윗사람에게 무리하게 부당한 일을 요구하거나 고집하는 짓. 동생은 좋은 물건만 있으면 억지떼를 써서라도 가지려 든다.) ○ 억지소리(조리가 닿지 아니하는 말. 억지소리 하지 마시오.) ○ 억지웃음(웃기 싫은 것을 억지로 웃는 웃음. 억지웃음을 꾸미다.) ○ 억지투정(주로 윗사람에게 불만이 있어 떼를 쓰는 짓. 억지투정을 부리다.) ○ 억지힘(무리하게 쓰는 힘.) 워낙 ‘억지’를 많이 쓰는 세상인지 이 단어는 우리 속담에도 보인다. ○ 억지 춘향(이) - 억지로 어떤 일을 이루게 하거나 어떤 일이 억지로 겨우 이루어지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억지가 반벌충이다 - 실패나 손실에 굴하지 말고, 초지일관으로 밀고 나가라는 말. ○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 - 남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억지로라도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이 낫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