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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요즈음 부의 양극화 현상으로 실업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이에 기인하여 미국에서도 폭동이 일어나고 영국에서도 이러한 행동이 거듭되어 세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배경에는 젊은이들의 고통이 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글로벌화 되면서 세계속의 한국 위상이 높아지면서 외국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화, 노래, 역사, 드라마를 보고 배우려는 계층이 확산되고 있어 새로운 한국어 교사라는 직업이 주목 받고 있다. 나라 안에만 있으면 이러한 현상을 보고 느끼기 어렵다. 필자는 1987년 유학시절부터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어를 가르쳐 본 경험에 비추어 지금은 엄청난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이는 매년 실시하는 한국어능력시험 응시자 수의 증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문자가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찌아찌아어를 지키기 위해 바우바우시는 2008년 훈민정음학회와 한글 사용 및 한글교사 양성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한글을 도입하였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 바우바우시에 첫 한글교사로 다녀온 정덕영(50)씨는 한글을 가르치면서 겪은 경험을찌아찌아 마을의 한글학교란 책으로 펴낸바 있다. 국어 교사가 꿈이었던 이정민 교수는 대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9년부터 2년간 몽골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한 후 전공을 바꿨다. 연세대 교육대학원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지난해 경희대 한국어교육학과가 배출한 1호 박사가 됐다. 그는 올 9월 프랑스 파리 7대학 동양학부 한국학과에 연구교수로 부임한 이후 학부생과 대학원생 200여 명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프랑스어도 거의 못하는 이 교수가 파리에 온 지 1년 만에 국립대 연구교수가 되자 교민사회는 들썩였다는 것이다. 이정민 교수처럼 국내 대학의 한국어 교육학과 석박사 학위 졸업자들이 한류 열풍을 타고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대학으로 진출하고 있는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다. 1990년대 후반 중국 유학생들이 몰려오면서 시작된 국내 대학의 한국어교육과 열풍은 2000년대 들어 외국인 유학생은 물론이고, 국내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번져 나가고 있다. 한국어교육학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효율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경희대 한국외국어대 계명대 등 전국 50여 개 대학의 학부 또는 대학원에 설치돼 있다. 각 대학 한국어학과 석사과정에는 국어국문학과는 물론이고 다른 외국어 전공 졸업자까지 몰려 입학 경쟁률이 평균 10 대 1을 넘어선다. 그 이유는 취업률이 높고 해외 진출 전망도 밝기 때문이다. 경희대 한국어학과 학부생의 경우 지난해 60%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전국에 140개가 넘는 대학부설 한국어학당이 있는 데다 해외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도 2009년 14곳에서 올해 31개국 60곳으로 늘어 한국어 강사 수요가 점점 늘고 있어 홰외진출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도전하여 볼만한 기회가 주어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세종학당을 2013년까지 전 세계 120곳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같은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읽어 남이 하지 않는 언어를 공부하는 것도 좋은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가고싶어 하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는 물론, 우리 나라의 전통적 문화로 노래 지도, 사물놀이 지도, 태권도 등을 몸에 익히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이런 인재는 일반 외교관이 못하는 일을 하는 자부심도 갖게 될 것이다. 만일 일본에 가고자 한다면 한국어를 전할 수 있는 정도의 일본어 수준이 절대로 필요하다. 한국어를 지식으로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박사학위가 있다할지라도 이를 전달하는 통로는 그 나라의 언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처럼 해외에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기는 뜨겁지만 이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훌륭한 한국어 교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지원하는 행정은 조금 뒤떨어진 느낌이다. 정비가 요청된다. 왜냐하면 이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자신이, 또 예산을 담당한 사람들이 이런 분야에서 가르쳐 본 경험의 축적이 전무한 가운데 있으니 일이 잘 추진될리가 만무하다. 이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분들의 분발과 예산을 담당하는 부서의 획기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는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일과 매우 상관관계가 높기 때문이다.
홍준형 한국공법학회 회장은 7일 연세대에서 ‘대학과 국가의 책임-우리 시대 대학문제의 공법적 조명’을 주제로 ‘2011년 한국공법학회 추계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필자는 지난 8일 '경인교대 제20회 동문 재회의 날'(장소 경기캠퍼스)을 취재할 일이 있었다. 오전에는 경인교대 총동문 한마음 축제에 동참을 하고 오후에는 이 행사에 참석, 사진 촬영을 하였다. 각 대학마다 동문 재회의 날이 있다. 졸업한 지 20년, 30년, 40년만에 흩어져 있던 동기들이 모여 현재의 근황을 이야기 하면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당시 가르침을 주셨던 은사님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소중한 날이다. 총장으로부터 모교의 소식도 들으면서 애교심도 갖게 된다. 필자는 경인교대 14회 졸업(1975.3 입학, 1977.2 졸업)이라 4년전인 2007년이맘 때 4회선배,24회 후배들과 함께 이 행사를 가진 바 있다. 인천캠퍼스에 있었던 행사에개인사정으로 참석치 못하였다.다행이 모교 은사님 다수가 참석한 이번 행사에 참석하여 뜻깊은 시간을 지켜볼수 있었다. 식순 중 총장님 말씀, 모교에 장학금 500만원 전달, 축시 낭송도 인상적이지만 아무래도 하일라이트는 은사님 말씀이 아닐까싶다. 이미 정년 퇴직을 하여 70, 80세가 넘으신 은사님들이 교단 경력 40년의 교장 또는 교단경력 30년의 교장, 교감, 교사에게 주는 말씀은 무엇일까? 학창 시절 과학교육과 교수였던 김현재 은사님은 철학자 사르트르의 명언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하신다. "우리 인간의 삶은 출생에서부터 무덤까지 돌진한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즉, 인생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인데 우리는 교직을 선택하였다." 선택(Choice)은 기회(Chance)이며 변화(Change)이고 도전(Challenge)이다.교직사회에서 뒤떨어져 불평만 늘어놓는다면 직무유기다.기회를 선도하는 사람에게는 변화가 일어난다. 변해야만 살 수 있는 것이다. 변화를 포용하고 이끌어야 함을 강조한다. 퇴직후 NLP 교육심리를 전공하고 있는 은사님은 이런 말씀도 하신다."도전하는 사람은 죽음을 향한 돌진에서도 느림을 선택할 수 있다." "정년 후 30년이 기다리고 있다." "교직에 있을 때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되자." "B와 D 사이의 C, 내가 주인이 되자." "우리나라 교육의 변화를 우리가 이끌어내자." 교직에서 일부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거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교육의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변화를 주도하고 선도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교직 뿐 아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삶을 선택하고 도전하라고 충고한다. 마크 매코맥의 '하버드 대학 경영대학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에서는 목표와 계획 유무에 따라 인생, 삶의 질, 사회적 수준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중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아주대 이민규 교수는 '실행이 답이다'라는 책에서 '평범한 사람과 성공한 사람의 차이는 지식이 아니라 실행에 있다'고 강조한다. 필자의 경우, 학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목표와 기록, 실행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있다. 생활철학으로서 긍정적, 능동적, 적극적, 자율적, 교육적, 창의적인 생활을 할 것을 학교 홈페이지 인사말을통해 파급시키고있다. 우리 학교 학생분 아니라 교직원, 학부모까지 나아가 우리 국민 전체가 그런 생활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도전정신을강조하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만이 성취할 수 있다'라는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전임 서호중학교에서는 교문 입구 게시판 상단에이런 문구를 넣어 등하교하는 학생들이 보도록 하였다. 실제 예도 든다. 도전 하지 않았을 경우, 우리가 얻는 것은 제로이다. 그러나 도전에 성공했을 경우, 100을 거둘수 있다. 설혹 도전에 실패했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제로가 아니다. 도전하지도않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유한한 우리의 삶, 은사님들의 깨달음을이어받아 실천할 수만 있다면 교육의 위대함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는훨씬 지혜로운 삶을 살고 있지않을까?선택(Choice), 기회(Chance), 변화(Change), 도전(Challenge)을 생각해 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전호숙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 회장은 8일 충남 예산유치원에서 ‘제5회 정기대의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제11회 시․군회장단 직무연수 평가 및 2012년 사업계획’ 등이 논의됐다.
김금호 경남 창원 석동초 교장은 지난달 소속 교원 48명 전원을 교총회원에 가입시켜 회원 가입률 100%를 달성했다. 김 교장은 교육전문직 단체인 교총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태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은 11일 서울중앙우체국에서 ‘21세기 창의 인재 양성 포럼’을 개최한다. 포럼에서는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 이호성 경총 상무 등 각계 전문가들의 발표와 토론이 있을 예정이다.
보도에 의하면, 전국의 고3 수업 시간에 절반이 EBS교재를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월 24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임해규(한나라당) 의원이 전국 15개 시도교육청(경기도 제외)으로부터 제출받은 결과다. 이 현황에 따르면 2011년도 전국 고등학교 3학년 정규수업에 EBS 교재를 사용하는 학교가 조사 대상 1,866개교 중 50% 정도다. 두 곳 중 한 곳은 EBS 교재를 사용한다는 말이다. 영역별로 살펴보면, 외국어영역은 51.7%(960개교), 언어영역은 51.4%(954개교), 수리 48.0%(891개교)로 중요 과목의 활용도가 비교적 높았다. 뿐만 아니라 사회탐구 45.3%(841개교), 과학탐구 41.8%(775개교)로 전교과 시간에 EBS 교재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통계는 놀랄 일이 아니다. 교육당국은 사교육 절감 대책으로 ‘EBS 강의 수능 70% 연계 출제’ 방침을 수시로 밝혔다. 금번 9월 모의평가 때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EBS 수능 교재와 연계를 강화해 출제했다고 재차 확인했다. 당시 평가원은 언어영역이 76%로 가장 높은 연계율을 보였으며, 수리 가·나 70%, 외국어(영어) 70%, 사회탐구 70.9%, 과학탐구 70%, 직업탐구 70.6%, 제2외국어·한문 70% 등의 연계율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금번 통계는 성공한 정책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규 수업 시간의 EBS 교재 사용 통계는 씁쓸한 현상이다. 전국의 수험생이 학교 수업은 소홀히 하고, 천편일률적으로 EBS 교재 문제 풀기에 매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학교의 교육이 입시위주의 문제풀이로 변했다. 교육적 특색도 없고, 개성도 없다. 교실에서 학생의 창의력은 물론 교사의 역할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EBS에 집중은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은 공교육을 해치는 꼴이 되었다. 교육 방송도 마찬가지다. 이는 주입식, 획일적인 훈련에 지나지 않는다. EBS 방송으로 사교육을 잡겠다는 의지도 빗나갔다. 과거에 EBS와 연계된 문제는 영역을 가리지 않고 상당수가 매우 어려웠다. 수리는 과목 특성상 연계 효과가 제한적이어서 어려움이 더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EBS 교재 공부를 위해 학원을 찾기도 한다. EBS 교재를 활용하면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던 당초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지금 고3 교실에서 교과서나 수업 노트로 공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여타 참고서도 필요 없다. 전 과목 EBS 실전모의고사만 있으면 해결이 된다. 참 편리하고 간결해서 좋다. 수업은 교과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선생님의 수업 노트가 빛을 내야 한다. 목표가 대학에만 맞춰져 있으면 생각을 확장시켜 줄 수 없다. 학습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학습자 스스로가 학습의 참여부터 목표 설정 등 자발적 의사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참고서도 마찬가지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보다 학습자가 선택하고 스스로 완벽하게 소화하는 능력도 키워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부지런하고 두뇌는 뛰어나지만, 스티브 잡스같은 창조적 인재가 나오지 않고 있다. 왜 그런가. 수능 시험 문제 풀이에 익숙한 학생은 결국 대학에서도 달달 외우는 공부만 한다. 성실해서 학점도 최고다.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만들어진 인재가 아니다. 그는 컴퓨터만 잘하지 않고 다양한 공부를 하러 다녔다. 그는 예술가이자 전문가이자 공상가였다. 그는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창조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다. 인류가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했다. 21세기 필요한 인재는 창의성을 지닌 복합형 인재다. 다수 영역의 지식을 갖추고 그것을 현실 문제 해결에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재여야 한다. 창의성을 지닌 복합형 인재는 고차적 사고와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길러진다. 문제를 제기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 그리고 대화와 토론 등을 통해 자기표현에 능통한 사람을 길러야 한다. 작년에도 수능 시험이 끝나고 아이들은 EBS 수능 교재를 쓰레기 치우듯 버렸다. 아이들은 교과서는 버리면서 아까워했다. 혹시 대학에서도 볼 수도 있다고 보관하는 아이도 있다. EBS 수능 문제집은 미련을 두지 않았다. 아무 쓸모없는 책이다. 수능 연계 출제라니 울며 겨자 먹기로 가지고 있었다. 교육 당국이 학교 교육 정상화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합리적 기준도 없는 70% 연계 출제 방침부터 버려야 한다. 일방적으로 비율을 정해 놓고 압박을 주는 것은 교육 당국의 태도가 아니다. 그리고 EBS 교육방송의 성공으로 공교육이 위축되는 것은 심각한 현상이다. 그것이 사교육비를 절감시키는 길이라고 해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올해 광주지역 자율형 사립고(자사고)가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적용한 다자녀 가정 자녀 특별전형이 비경제적 배려대상자에게 오히려 피해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9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김선동(한나라당) 의원이 분석한 외고 및 자사고 특별전형 입학생 현황에 따르면 올해 숭덕고, 송원고, 보문고 등 광주지역 3개 자사고가 '다자녀 가정자녀' 전형으로 뽑은 인원은 59명에 이른다. 숭덕고가 32명으로 가장 많고 송원고 20명, 보문고 7명 등이다. 특히 전체 정원의 20%를 선발하는 사회적배려대상자(사배자)를 모두 충원한 숭덕고는 다자녀 가정자녀가 조손가정, 다문화, 장애인 등 비경제적 대상자 35명의 91.4%를 차지했다. 송원고도 비경제적 대상자 24명 가운데 다자녀 가정자녀가 20명에 달했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장애인, 다문화 가정 자녀가 이른바 부의 상징이 돼 버린 '다자녀 가정자녀'와 같은 테두리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 의원은 "저출산 대책으로 다자녀 가정 자녀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좋지만 이 때문에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가 피해를 받고 있다"며 "다자녀 가정자녀 전형을 폐지하거나 별도 정원으로 분리해서 선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외고와 자사고 등 특목고 전형에서 국가보훈대상자와 기초생활수급자 등 경제적 배려대상자, 다자녀 가정 자녀와 조손, 장애인 등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 등을 10-20% 선발하도록 했다.
울산지역 고등학교 전체 학급의 12.3%가 학생 수 40명 이상인 과밀학급으로 나타났다. 울산시교육청은 최근 학교별 학생 수 현황을 조사한 결과 고등학교의 과밀학급 비율이 전국 평균인 4.5%보다 7.8%포인트 높았다고 9일 밝혔다. 지역 내 초ㆍ중학교에는 과밀학급이 없다. 또 지역 전체 52개 고교 가운데 학생 수 1천260명 이상인 과대학교는 17%인 9개교였다. 특히 울산지역 5개 구ㆍ군 중 남구의 고교에 과밀학급의 45%, 과대학교의 55%가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과밀학급과 과대학교가 많으면 수준별 학급 편성 등 다양한 교육을 하기가 어려워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우려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남구지역은 학생 수 감소에 따라 2013년 이후 과대ㆍ과밀현상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며 "북구 매곡동 등 신흥 주거단지가 생기는 곳에는 고교를 신설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장애학생들이 서울시내 고등학교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한다. 서울시교육청은 10일 고교 3학년 장애학생 50명이 서울 25개 고교에 인턴사원으로 처음 출근한다고 9일 밝혔다. 장애학생들은 서울시교육청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공동 추진하는 '커리어 점프 희망일자리 만들기'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준비와 현장 직무 적응을 마쳤으며 앞으로 3개월간 각 학교에 2명씩 근무한다. 학생들은 간단한 사무행정, 교내외 환경 정비, 매점 운영 등의 업무를 맡으며 인턴십이 종료되면 평가 결과에 따라 관련 기관에 정식 채용될 예정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전국 시도교육청 중 처음으로 시도되는 장애학생 인턴십 프로그램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달 17일부터는 특수학교 고3 학생 40명을 추가로 선발해 서울시교육청 도서관과 평생학습관에 인턴사원으로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성규 이사장은 "이번 사업은 취업이 어려웠던 지적ㆍ자폐성 장애학생의 학교영역 일자리를 창출한 좋은 사례로 앞으로 장애학생 직업교육과 고용연계가 안정적으로 구축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글로벌 교원양성 거점대학'(GTU)과 `해외 교사 인턴십' 사업 설명회를 10일 오후 3시30분 이화여대에서 개최한다. GTU는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교ㆍ사대를 지정하고 해당 대학은 교원의 해외진출을 위한 교육ㆍ연구를 하는 사업이다. 해외인턴십은 사대 재학생ㆍ졸업생을 미국 버지니아주의 페어팩스카운티 산하 교육청과 대학 등으로 파견해 현지 교사자격증 취득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경인교대 동문 모임에는 만남, 새로움, 즐거움, 참다움이 있습니다" 경인교대 총동문회(회장 한기전)는10월 8일(토) 09:00 경인교대 경기캠퍼스 운동장에서 ‘2011 경인교대 총동문 한마음 축제’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역대 총둥문회장과 지역회장, 정동권 경인교대 총장과 모교 교수 등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이 날 축제에는 경기, 인천, 서울 지역의 동문 300여명이 참가하여 09시 졸업기수별 게임 단체스키타기, 긴줄넘기, 링던지기, 간이골프, 색뒤집기, 가슴을 펴고 등을 즐기며 동문들의 화합과 결속, 친목을 다졌다. 개회식에서는 전년도 총동문회,서울, 경기 , 인천지역동문회 임원에 대한 경인교대 총장 감사패 전달과 유공교원에 대한 총동문회장 감사패수여가 있었다. 이어 열린 단체 경기에서는 참가자를 청백팀(홀수 졸업기 청팀, 짝수기 백팀)으로 나누어 큰공바운드, 사람옮기기, 줄다리기, 큰공굴리기, 풍선기둥 만들기, 계주를 하며 동문들의 단합된 힘을 보여 주었다. 폐회식에서 참가상으로 1등 18회, 2등 20회, 3등 10회, 9회가 선정되어 상금을 받았다. 이긴 백팀 전원에게 소정의 상금이주어졌고 아슬아슬하게 진 청팀에게도 다음에 잘 하라고 격려 상금이 수여되었다. 이 날 참가자들이 동심으로 돌아가한마음이 되어 즐긴 축제 모습을 카메라로 스케치해 본다.
한 위대한 자의 죽음이 온 세상을 울리고 있다. 그를 애도하는 물결은 국경을 넘어, 민족을 넘어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애플,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홍옥같은 붉은 하나의 사과이다. 내가 판단하기로는 이 사과를 브랜드 마크로 사용하면서 역사상 세상을 향하여 역사상 가장 많은 변화를 일으킨 인물이다. 나의 애플사와 경험은 1993년 일본에서 재외동포교육기관에 근무하는 시점으로 올라간다. 그때 매킨토시 노프북 컴퓨터를 300여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잘 아는 선교사의 소개를 받아서. 그러다가 근무 임기를 5년 마치고98년도에 귀국하여 보니 한국에는 애플 컴퓨터가 전혀 보급되지 않아 매킨토씨로 작성한 파일 교환이 어려운게 아니라 안되었다. 그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또 다양성이 존재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이사 다니면서 귀찮은 물품이 되어 어디선가 그냥 버린 것이다. 지금은 그때 출력한 일부 자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좋은 것이었지만 주변 환경이 허락하지 않으니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이처럼 환경이란 삶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애플사 창립자이자 전 CEO인 스티브 잡스가 5일(현지시간) 향년 56세로 세상을 떠났다.블룸버그 AP통신 등 외신은 이날 애플 발표를 인용해 스티브 잡스 전 CEO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애플 이사회는 성명을 통해 "오늘 스티브 잡스의 타계 소식을 전하는 것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잡스의 명석함과 열정, 에너지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진보하게 해준 원천이었다. 세계는 스티브의 덕분에 진보했다"고 밝혔다. 또 애플은 "그의 사랑하는 아내 로렌과 그의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놀라운 유산에 감사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스티브 잡스는 극적인 인생을 살다 간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05년 6월12일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서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얘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잡스는 이날 연설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3가지 얘기를 했다. 여기에는 그의 인생 전체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아래는 잡스의 연설문 전문이다.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오늘 저는 제 인생의 세가지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저 세가지 이야기뿐입니다.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하다가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제 미래를 위해 대학을 나온 양부모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됐었죠. 하지만 제가 태어난 순간에 여자 아이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들은 한밤중에 이런 전화를 받게 됩니다.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입양하시겠습니까?” 양부모님은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죠” 그런데 양어머니는 대졸도 아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안 나와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몇 달 후 양부모님이 저를 대학까지 가르치겠다고 약속한 후에야 친어머니는 입양에 동의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순진하게도 바로 이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6개월 후 대학생활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 보였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 대학교육이 그것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알 수 없었습니다.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을 쏟아 붇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되돌아 보았을 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 후엔 재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을 그만두고 보다 더 흥미 있어 보이는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기숙사에서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5센트짜리 콜라병을 팔아 끼니를 때우기도 했습니다. 일요일이면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을 걸어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순전히 호기심과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훗날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드리죠. 당시 리드칼리지는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와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 그림들…손으로 아름답게 그린 서체 예술이었습니다. 정규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으므로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세리프와 산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글자체의 요소인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표현해낼수 없는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어서 전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 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 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PC에는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가 미래와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 등 그 무엇이든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가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여러분의 가슴을 따라 살아갈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모든 차이를 빚어냅니다.
오늘은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한글이 만들어진 날이 아니다. 훈민정음 반포 565돌을 맞이한 날이다. '한글'은 '큰 글, '세상에서 첫째가는 글'이란 뜻을 담아 주시경 선생이 20세기에 만든 말이다. 세종대왕이 1443년 창제한 글자는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의 반포는 1446년에 이루어진다. 3년 가까운 보완기간을 거쳐 발표된 셈이다. 한글날은 이 반포일을 기준으로 삼았다. 한글은 국어가 아니다. 한글은 문자의 이름이지 '한국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라는 얘기다. 일본 문자의 이름은 가나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다. 한글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만든 창의적인 문자이다. 다른 언어권 부족도 쉽게 익혀 쓸 수 있다. 이에 역사적으로 19세기 중국에서는 한글을 수입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청나라 위안스카이는 중국의 높은 문맹률이 어려운 한자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의 문자를 중국의 소리글자로 도입하려 한 것이다. 그당시 조선문자 도입 계획은 망한 나라의 글이라는 반대에 부딪쳐 백백지화 되었다고 한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그때 결정을 후회할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세계는 IT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한국이 위상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등, 국운 상승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좋은 기회를 통하여 한국문화를 즐기려는 한류 현상이 뿌리를 내리려면 한국어의 보급이 뒷받침 되어야 장기적으로 가능하다. 한국어를 배움으로 역사와 문화 다방면으로 접근이 가능하며 더우기 한국인과 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한국인의 정서를 맛보게 됨으로 감성이 작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약 10여년을 일본인 및 재일 동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88올림픽을 계기로 NHK방송이 한국어 강좌를 열기 시작하였으며, 이 무렵에는 한국의 역사, 한일관계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로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점차 배우는 층이 확산되어 갔으며, 한류의 확산과 더불어 중년 여성층이 한국어에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일본인의 경우는 한국어 배우기가 한국인이 일본어 배우기와 마찬가지로 쉬운 점이 많다. 그 이유는 한자음을 잘 읽어내면 단어가 확충되고 어순이 비슷하기에 그렇다. 그리고 일본어의 어원이 되는 것들이 한국어에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가장 보라을 느낀 것은 한 재일 동포가 한국어로 자기 이름을 쓰게 되었다고 눈물흘리면서 감격하는 모습이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이 남편과 결혼하여 한국어를 배우는 여성도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하는 것이었다. 약 2,3시간이면 한국어로 자기이름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나의 강의에 대학교수, 언론사. 기자, 대학강사 등이 참여하였다는 것을 내 일생의 보람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한국어 변론대회를 실시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잊지못할 추억이 되고 있다. 매년 이맘때나 되어야 우리는 한글에 관심을 가지는데, 한국인보다 한글을 더 사랑하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일본인 노마 히데키교수는 한글을 '유라시에 나타난 기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촉망받는 미술학도였지만 한글의 매력에 빠져 30년간 한글 연구에 몰두, 한글의 탄생이라는 연구를 한 것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한 '한글의 탄생'은 마이니치신문사가 주관하는 아시아태평양상 대상을 수상했다. '한글은 우수하다' 라고 주장하면 외국에서 볼 때, 자기네 세계를 자랑하는 것밖에 안보이게 된다. 그러면 진가를 판단하기가 어려워지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기준에서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한국어판 출간을 위해 방한한 노마 교수는 한글을 인류 문화 유산이라는 보편적 객관적 시각에서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일본학자의 한글 사랑은 정작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한글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 남부 Wee센터, 다문화 가정을 위한 가족기능 강화프로그램 - 인천남부교육지원청(교육장 이재훈) Wee센터에서는 관내 다문화가정 17쌍을 대상으로 가족 상담과 미술치료를 제공하는「사랑이 꽃피는 우리집 만들기」프로그램을 8일부터 5회기에 걸쳐 실시한다. 다문화가정 집단상담 프로그램은 결혼이주 등으로 점점 증가하고 있는 다문화가정 세대의 부모 및 자녀들에게 올바른 한국문화의 이해와 자녀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따라 마련되었는데, 다문화가정 부모의 특성상 한국어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감안하여 사진과 그림을 이용한 집단미술치료를 활용하여 사진을 통한 의사소통 및 자녀관계 개선에 프로그램의 목표를 두고 있는데 우리가족 그림, 소금놀이, 집단 피자 만들기, 우리 가족 액자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가족 내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활동 후 쌓여진 유대감을 바탕으로 가족 내 문제 사항을 해결하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가족상담 치료도 병행한다. 남부교육지원청은 다문화가정에 대한 다각적 프로그램 제공을 통해 부모-자녀 관계를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긍정적 자아정체감을 형성하고 학교와 사회에서 적응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교수학습방법개선을 통한 수업역량강화 - 인천교육연수원(원장 백완희)은 초ㆍ중등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122명을 대상으로 10월 5일부터 12일까지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직무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이번 직무연수 교육과정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문법 지도 방법 및 개선 사례」에 대한 영역별 강의 등 초ㆍ중등학교의 학교급별 특성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또한 원어민 보조교사와의 Co-teaching 우수사례를 통해 교수방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Lesson Planning & Presentation 시간에는 원어민들이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를 가지고 직접 학습지도안을 작성해서 그룹별로 수업시연까지 하는 기회도 갖게 되며. 또한, 이번 연수에서는 연수내용을 수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현장경험이 풍부한 우수 현직교사 및 원어민 보조교사들을 강사로 초빙하여 사례 중심으로 진행된다. 한편 EBS 영어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원당중 김민정교사의「Content-Based Instruction」수업은 2가지 과학실험을 통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언어의 4영역을 동시에 지도하는 총체적 언어 접근법(Whole Language Approach)의 모형을 보여준 수업으로 연수생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겨주었다. 한국전통문화체험을 통한 한국문화이해 시간에는 천사무용단(원장 신영자) 단원들을 초빙하여 전통의상 등을 직접 입어보고 체험해보는 시간과 한국무용, 살풀이, 사물놀이, 검무, 태평무 등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가졌다. 외국어교육부 정의정 부장은 "이번 연수를 통해 원어민 보조교사로서의 역량을 강화하고 교수ㆍ학습 지도능력을 신장하여 인천의 영어 학력향상에도 일조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죽어서도 희망으로 남은 스티브 잡스 2011년 10월 6일 한 미국인의 사망 소식으로 지구촌이 들끓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사람들은 희망을 이야기했다. 열정적인 삶을 살다간 스티브 잡스! 그는 죽어서도 희망의 메세지를 남기며 현실에서 뿐만 아니라 가상 공간까지 도배를 하고 있다. 21세기의 불사조, 스티브 잡스 그의 삶은 한 편의 장편소설보다 더 소설적이고 실험적이며 장엄하기에 감동하는 것이리라. 그에겐 사생아로 태어난 불우한 어린 시절이 아무런 제약이 될 수 없었고 젊어서 저지른 실수에도 넘어지지 않았으며 학창 시절마저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든 상황이 보통 사람의 잣대로 보면 불행 덩어리였지만 그는 그것을 모퉁이 돌로 삼아 철저하게 일어섰다. 특히 죽음의 문턱조차 철저히 즐기며 자신과 싸워 이겼으니 그는 이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한계를 뛰어넘은 '불사조'라 불려도 되리라. 17세에 접한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라는 구절을 생각하며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그날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삶기 위해 스스로를 늘 채찍하며 살았다는 잡스.. 자아정체성이 확립되는 청소년기에 자신을 무장하는 금언 한 줄의 힘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교실에서 버린모퉁이 돌, 세상의 돌기둥으로 필자는 특히 그의 학창 시절 이야기에 놀랐다. 어린 시절 호기심이 강해 늘 말썽을 부린 스티브 잡스. 집 구석에 놓인 바퀴벌레약을 먹고 거의 죽을 뻔한 이야기도 그렇고 정학과 무단결석을 밥 먹듯 하면서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 공부는 싫어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 일을 사랑했다는 스티브 잡스. 그러니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교실에서 말썽을 부리고 공부하기를 싫어하더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은 행동을 하더라도 그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만은 확실하게 파악하여 도움을 주는 선생이 되어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학교 현장는흔히 첫인상이 나쁜 아이나 사사건건 순종적이지 못한 학생은 그가 가진 장점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많음을 반성하게 된다. '어느 구름에 비 올른지 모른다.'는 옛 어른들 말씀을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아이는 누구를 막론하고 각기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지닌 위대한 존재들임을 스티브 잡스는 보여주었다. 학교는 보통교육이 근간을 이루는 곳이니 매우 특출한 아이나 그 반대에 속한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재미없는 공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의 학창 시절이 순탄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사랑하며 몰입하며 다양한 공부를 하며 자신의 재능을 꽃 피웠으니,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자로서 부끄러움마저 든다. 날마다 떠들고 까불며 친구를 귀찮게 하면서도 창의성과 호기심이 남다른 우리 반 아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교실의 모퉁이 돌이 세상을 떠받치는 돌기둥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훈계를 할 일이다. 실패자도 일어설 수 있는 사회 문화적풍토 중요 그의 성공 뒤에는 실수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도약의 발판을 제공해주는 학벌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 문화적 배경도 한몫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에다 공교육에서 도태된 학생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편견과 사회적 냉대로 철저하게 망가지거나 울분을 삭이지 못해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연대해야 살아남는 이나라에서가난이라는 무거운 짐까지 지고 있다면 그가 잡스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사생아로 태어난 불행도, 대학을 자퇴하고도, 젊은 시절을 방황하면서도 일어설 수 있는 토양을 가진 사회적 저력이 부럽다. 돈이 없어도 그가 가진 아이디어를 담보로 창업할 수 있는 나라, 사생아라는 편견으로 왕따를 당하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는 인권 존중 사회, 실수한 것을 두고두고 헤집어서 인격 모독으로 생매장 시키지 않는 인간적인 사회였기에 가능하진 않았을까? 자존감을 기르는 교육 그는 자신의 일을 철저하게 사랑한 사람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사랑한 것이다. 마치 일과 연애하듯 살다 갔으니 굵고 짧았지만 결코 후회가 없었으리라. 일을 연인처럼 사랑했으니 그의 머리에는 늘 아이디어가 넘쳤으리라. 월급을 받기 위한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일을 꿈꾸며 현실로 만든 것이다.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스스로 발견하여 끝없이 그 길로 매진하며 죽음에 직면하고도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라 했다. 그에겐 죽음도 특허품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어버이나 선생님은 자녀들의 소질과 재능을 발견하여 부단히 격려하며 그 일을 사랑하는 직업으로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사명이 있다. 특정한 직업으로 내몰거나 재능과 상관 없이 밀어붙이는 일을 서슴치 않는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는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를 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는 자신을 철저히 시랑했기에 위기와 절망 속에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고 죽음마저도 달려들지 못하게 했다. 가정과 학교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이 바로 자존감을 길러 주는 일이다. 한 번 뿐인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사춘기나 자아정체감이 형성될 때까지 자라도록 도와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영혼이 건강한 사람으로 길러야 한다. 지식은 풍부하되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영혼이 가난하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현실이 어려워도 부정적이거나 포기하는 일이 드물다. 자신을 믿으니 시련도 지나갈 뿐이며 날마다 새로운 태양이 뜬다고 확신한다. 한 개의 가능성만 있어도 아흔아홉 개의 난관을 뚫는다. 그러나 자존감이 약하거나 부족한 사람은 그 반대다. 모든 것이 부정적이니 손쉽게 자기를 놓아버린다. 치열한 삶의 태도를 존경한다 그의 삶이 감동을 주는 것은 슬프도록 불우한 여정을 온몸으로살아낸 치열한 삶의 태도 때문이다. 인간적인 애잔함과연민을 느끼게 하면서도 죽음의 순간까지 숙연한 삶의 자세를 견지한 한 인간의 수도승 같은 모습은 차라리 아름답다. 처절하게 시간을 쪼개 쓰면서 '뛰어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피카소의 격언을 모토로 삼아 혁신과 창의성의 전범을 보인 그를진심으로 존경하며 서툰 졸시를 바친다. 아름다운 가을 날, 굵고 짧은 삶을 마감한 당신 지구 반대쪽에 있으나 내 마음은 당신이 누운 그 곳에 당신을 애도하는 꽃 한 송이 당신의 영전에 바치노라! 나도 당신처럼 내가 서 있는 교실을, 아이들을 지금보다 더 뜨겁게 사랑하리라! 지구라는 같은 집에서 당신과 함께 숨쉬며 살고 있었다는 기쁨에 감사하고 당신처럼 불우한 이 땅의 젊은이들도 당신의 뜨거운열정을 닮아 긍정의 달인이 되기를!
금당초등학교와 금당 학부모회는 5일(수요일) 금당초등학교(교장 김한석) 과학실에서 학부모 회장 및 임원 그리고 학부모회원을 대상으로 ‘북아트 만들기’와 ‘NIE교육’을 주제로 학부모회 연수를 실시하였다. 김한석 교장은 인사말을 통해 '가정교육을 함에 있어 타인과의 관계에서 꼭 필요한 사람,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 행복해지는 삶을 사는 태도를 갖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모두가 행복해 지는 길‘이라며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학부모님들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학교 교육의 참여가 행복한 교육공동체를 만드는 지름길일 것'이라며 학부모의 참여와 협력을 부탁하였다. 이날 연수에 참여한 한 학부모는 ‘NIE 교육에 대해서 막연히 듣기만 했는데 오늘 연수에 참여하고 보니 쌓아두기만 하던 신문을 버릴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좋은 교재로 활용하겠다.'라고 하였고 북아트 만들기에 참여한 또 다른 학부모는 '아이들에게 책의 역사와 유래를 알고 실제로 책을 만들고 내용을 채워 가는 과정이 너무 유익 했다.'며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학부모회 임원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핬다. 앞으로 금당초등학교는 학교 교육 전반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 학부모회의 활성화를 통해 금당교육발전을 이끌 수 있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예정이며 10월 말에도 올바른 학부모회 운영을 주제로 연수를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 10월 5일 전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비보가 전해졌다. 애플사의 CEO이자 에니메이션 회사 픽사의 대표를 지낸 컴퓨터계에서 혁신가로 불리우는 스티브 잡스의 타계 소식이 그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으로 5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삶과 그의 인생 역정이 우리의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고 하겠다. 애플 컴퓨터 회사는 컴퓨터계에서 혁신적인 회사로 통한다. 아이맥에서 부터 시작해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까지 누구나 사용하기 쉽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로 전세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아이 시리즈는 스티브 잡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사람들은 일반적인 컴퓨터와는 뭔가 다른 애플의 이런 점들에 환호하고 열광하였다.그래픽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던 아이맥 컴퓨터부터 아이팟 터치와 현재 스마트 폰의절대적인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아이폰시리즈 등은 혁신과 창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 교육은 혁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세상을 이끌어 나갈 인재양성도 무척 중요하고, 새롭게 생각하는 창의적인 사고를 중요시하는 것이다. 미래사회에서는 지식중심의 사회가 아니라 많은 정보를 어떻게 자신만의 것으로만들어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배움 중심 수업이고 지금의 교육이 그렇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의 교육은 현재창의, 인성을 강조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비록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창의와 인성을 어떻게 교육시키느냐가 과제로 남았다. 교과부와 각 시도 교육청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창의, 인성을 지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체험학습을 지원하고, 교과연구회를 통해 연구하고, 다양한 모델학교를 시범 운영하여 창의성과 인성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 교육은 뭔가를 알려주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고 다르게 생각하여 새롭게 바꾸는 아이디어를 개발 시키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정보화와 미디어로우리가 배우고 알수 있는 길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것들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내것으로 만들수 있도록 지도하고 교육시켜야 하는 것이 지금의 학교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컴퓨터계의 큰 별이 짐을 아쉬워 하고있다. 세계 각국의애플 관련 회사와 상점에는 한 시대의 혁신가를 잃은 아쉬움을한 송이 국화 꽃과 그가 만든 아이폰, 아이패드 화면으로 달래고 있다. 그는 모범생이 아니었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1주일만에 입양되었고, 구슬러야만 학교에 가는 문제아 였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6개월 만에 자퇴서를 냈고. 회사에 들어가서는 인도여행을 간다며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와 성공을 거듭한 끝에 세계에서 제일 가는 혁신적 기업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우리교육도 이제다양한성공과 실패의 경험들로 새로운 세계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인재를양성해 나가야한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연설을 마무리한이 한마디는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교육의 방향을 말해 주고 있다. " 항상 갈망하면서 우직하게 나아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스티븐 잡스 연설 전문 오늘 나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 중 한 곳에서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이 내가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우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들에게 내 인생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닌, 그저 세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얘기는 점(點)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리드 대학을 첫 6개월 다닌 후 그만두었습니다. 그후 18개월 정도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진짜로 그만두었습니다. 내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제가 태어나기 전이었습니다. 내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나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내가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모두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났을 때 나를 입양키로 한 부부는 여자아이를 원했다며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대기자 명단에 있던 내 부모(양부모)는 한밤중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가 있는데, 아이를 원하십니까?" 부부는 "물론입니다"이라고 말했습니다. 내 생모는 나중에 내 어머니(양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내 아버지(양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모는 이 때문에 최종적인 입양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 달 후 내 양부모가 나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이것이 내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17년이 지난 후 나는 대학에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순진하게도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비싼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자 계급의 내 부모는 저축한 모든 돈을 내 대학등록금에 썼습니다. 6개월이 지난 후, 나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내가 내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는 내 부모가 그들이 한 평생 저금한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믿고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때는 다소 두려웠지만, 되돌아보면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결정한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 그 순간, 나는 내게는 흥미가 없었던 필수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어졌고, 내게 흥미롭게 보이는 다른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낭만적인 건 아니었습니다. 나는 기숙사에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 방의 바닥에서 잤습니다. 음식을 사기 위해 5센트씩 주는 콜라병을 되돌려줬고, 일요일 밤에는 해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제공하는 좋은 식사를 먹기 위해 도시를 가로질러 7마일을 걸어가곤 했습니다. 나는 그게 좋았습니다. 이렇게 내 호기심과 직관에 따라 부딪친 것들 중 많은 것들이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들로 나타났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리드대학은 아마도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예교육을 제공하는 대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서체였습니다. 나는 학교를 그만 뒀고, 정규과목들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 지를 배우기 위해 서체과목을 듣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와, 다른 문자조합사이에 다양한 크기의 사이공간넓이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고, 나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이 중 어떤 것도 내 인생에서 실제로 응용될 것이라는 어떤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했을 때,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맥에 디자인했고, 맥은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첫번째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만일 내가 대학에서 그 과목을 청강하지 않았다면, 맥은 결코 다양한 글자체나 font사이의 사이공간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윈도우는 단지 맥을 복사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아름다운 글자체를 갖지 못했을 겁니다. 만일 내가 대학을 그만 두지 않았다면, 나는 서체과목을 등록하지 않을 것이고,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과 같은 아름다운 글자체를 갖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내가 대학에 다닐 때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연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보니 이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되돌아 볼 때 점을 연결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점들이 언젠가는 여러분 미래에 어떻게든 연결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리고 그 무엇이든, 그 무엇인가에 대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나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그것이 내 인생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나의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나는 인생에서 일찍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찾았습니다. 우즈(스티브 우즈니액, 애플 공동창업자)와 나는 내가 20살 때 우리 부모님집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이 지난후 애플은 차고에서의 우리 둘에서, 4천명 이상의 직원을 가진 20억 달러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인 맥킨토시 컴퓨터를 1년 빨리 시장에 출시했는데, 그 때 나는 막 30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을까요? 애플이 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나와 함께 회사를 운영할 내가 생각하기에 능력이 많은 사람을 고용했고, 첫 해 무렵쯤엔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에 대한 관점이 차이가 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우리는 추락했습니다. 그때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의 편에 섰고, 그렇게 나는 30살에 쫓겨났습니다. 그것도 매우 공식적으로 쫓겨났습니다. 나의 성인으로서의 전 인생의 중심이었던 것이 사라지고, 그리고 그것은 참혹했습니다. 몇 달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할 지 정말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기업의 전 세대로 물러나는, 내게 전해졌을 때 바톤을 떨어뜨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데이비드 팩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났고 그들을 그렇게 못살게 군 데 대해 사과했습니다. 나는 아주 공식적인 실패자였고, 심지어는 도망쳐 떠나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가 천천히 내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내가 했던 일을 사랑하고 있다. 애플에서의 사건이 그것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았습니다. 나는 거부 당했지만, 나는 아직도 내 일을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지금까지 내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 가장 최고의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성공한 것에 대한 부담이 다시 모든 것에 확신할 수 없는 초보자의 편안함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것은 내 인생의 가장 창조적인 기간 중 하나로 들어갈 수 있도록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이후 5년동안 나는 NeXT라는 회사와 Pixar라는 이름의 또 다른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내 아내가 된 멋진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에서 첫번째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사건의 놀라운 반전 속에서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나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현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린과 나는 멋진 가족을 이뤘습니다. 만약 내가 애플에서 해고 당하지 않았더라면, 이 중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끔찍한 맛의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했던 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인생은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내가 계속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내가 했던 일을 내가 진심으로 좋아했었던 것을 내 자신이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여러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훌륭한 관계에서처럼, 그것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17살이었을 때, 나는 이 비슷한 인용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날인 것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그 후 33년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내가 오늘 하려고 하는 일을 하고 싶어할까?" 그 답이 여러 날 동안 "아니오"라고 이어질 때, 나는 무언가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겪은 바로는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모든 자부심, 모든 좌절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런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당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무언가 잃을 것이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하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숭이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따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약 1년 전 나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나는 아침 7시30분에 스캔을 받았고, 췌장에 분명한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췌장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 거의 확실하다면서, 내가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내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죽음의 준비하라는 뜻이죠. 그것은 앞으로 10년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단지 몇 달 안에 말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결정됐으니, 그것이 가족을 위해 가능한한 쉬운 일일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라는 뜻입니다. 나는 그 진단을 하루종일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나는 목구멍을 통해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몇 점의 세포를 췌장에서 떼어내 조사를 했는데, 의사들은 놀랍게도 나의 경우 매우 드물게도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종류의 췌장암임이 밝혀졌다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이것이 내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몇십년간은 그렇기를 바랍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살았기 때문에, 나는 이제 죽음이라는 것을 유용하긴 하지만, 지적 개념만으로 알고 있었던 때보다는 좀 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 천국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조차 거기에 가기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죽은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목적지입니다.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죽음은 생명의 가장 훌륭한 창조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교체를 만들어 내는 매개체입니다. 죽음은 낡음을 청소하고 새로움을 위한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 이순간, 그 새로움은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날,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을 그 때, 여러분들도 점차 낡음이 되고 청소될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이것은 진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통념에 의한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내가 젊었을 때, "전세계 목록"이라는 놀라운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그 책은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스튜워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그는 시적인 면들을 가미해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데스크탑 출판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타이프라이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 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나타나기 35년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 번 개정했고, 결국 그 책의 역할을 다 했을 때 최종판을 내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내가 여러분의 나이 때입니다. 그 최종판의 뒷표지에는, 여러분이 탐험여행을 하다가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타기 위해 손을 드는 곳과 같은, 이른 아침 시골길을 찍은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그 밑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Stay Hungry. Stay Foolish) 이것이 그들이 책을 더 이상 찍지 않기로 하면서 한 작별의 메시지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나는 나 자신에게 늘 이러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졸업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그러기를 바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 감사합니다. 스티브 잡스 연설문 원문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Truth be to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ve got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found out later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go to college. This was the start in my lif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far more interesting.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지난 10월 5일 도학초등학교(교장 박영선)에서는 겨울철을 앞두고 화재예방을 위한 소방훈련을 실시하였다. 이 날 영원 소방서에서 구급차와 소방차 및 소방대원 3명을 지원하여 어린이들이 실제로 화재를 진압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소화기구 사용법을 배우는 체험시간을 가졌다. 전교생이 참여한 이 번 소방훈련은 소방대원의 지도로 개인별로 소화기를 사용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높은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소방차가 화재를 진압하는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칠 때는 어린이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초기화재 진압을 위한 장면을 목격하기 위한 모형 화재현장을 통해 소화기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으며 화재로 인한 재산피해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되었다. 이 훈련을 통해 화재예방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려는 의지를 다지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