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97,720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정정택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25~27일 새터민 청소년과 함께하는 ‘하나되는 희망 브릿지’ 캠프를 운영한다. 우수 대학 탐방, 탈북 출신 상담사와의 멘토 강연, 한지 전등 만들기 등 새터민 청소년의 환경 적응과 진로 모색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칠보초, 녹색어머니 연합 교통 캠페인 실시 경기도칠보초(교장 김석진) 에서는24일 오전 8시부터 8시50분까지 ‘수원 서부지구 녹색 어머니 연합회’ 캠페인을 벌였다. 캠페인에는 서부모범운전자회 회장 이세웅 외 20명, 서부 녹색어머니회 회장 전소영 외 32명, 칠보초등학교 녹색어머니회원 70명 그리고 호매실 파출소에서 3명의 경찰관님들께서 동참해주셨다. 그리고 칠보초등학교 교장 김석진 선생님, 교감 권경숙 선생님을 비롯하여 담당교사 민은숙 선생님과 각 칠보초 부장 선생님들이 참석하심으로써 약 140여명가 마음을 한데 모아 이루어낸 대규모의 캠페인이었다. 사실 학교 앞 횡단보도는 전혀 위험해보이지 않는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성큼성큼 4걸음만 떼면 건널 수 아주 짧은 거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이곳에서는 철저히 신호를 지킬 수밖에 없다. 곧 지각할 것 같은 학생들은 물론, 눈앞에 서 있는 버스를 놓칠 것만 같아서 불안한 어른들까지도 발을 동동 굴리면서 신호를 기다린다. 운전자 역시 편도 1차선의 좁은 도로에서 신호를 일일이 지키고 있기가 따분한가 보다. 횡단보도 접근 시 안전선을 준수하지 못하고 자꾸 횡단보도를 침범하여 대기하는 차들도 종종 있었다. 언제든지 안전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이 좁은 구역에서 칠보초등학교 녹색어머니들의 노란 깃발은 모두에게 교통규칙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주는 진정한 신호등인 것이었다. 며칠 전 방과 후 퇴근길에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아이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신호를 무시하며 길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 그 아이는 길을 건너면서 나를 한 번 쳐다보았고, 나는 안타까움에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물론 바쁘고 급한 일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 그러나 교통안전사고의 위험 앞에선 그 어떤 융통성도 허용해선 안 된다. 내 안전과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면, 이를 지켜줄 수 있는 법과 규칙도 진심으로 존중해야 한다. 오늘 칠보초등학교 녹색어머니들과 함께한 교통 캠페인은 본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직원, 학부모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지역사회의 모든 이들에게 교통규칙준수의 소중함을 자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학교 앞 그곳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여유로운 웃음으로 길을 건너고 안전한 행복이 피어 샘솟는 사랑의 구역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평범한 소재에서 거대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힘 난 개인적으로 황석영 작가를 무척 싫어한다.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대문호 운운하는 얘기가 있지만, 그의 글 스타일이 너무도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생각이나 말 자체를 크게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말만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대단한 작가다! 지옥도 같은 세상을 능청스럽고, 냉정하게 그리고 있다. 온 세계를 뒤덮은 보통 사람들의 고단하고 쓸쓸한 일상을 드러내면서, 어째서 대지에 펼쳐진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는 변화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나게 한다. - 황석영 책의 뒷표지에 실린, 이 책 『닭털같은 나날』에 대한 황석영 작가의 추천사 같은 글귀였다. 아마도 이 이상 이 작품을 명확히 규명할 말은 없는 듯 하다. 정확한 수치자체가 추산이 안 될 정도로 거대 인구 국가인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생각해 봤을 때, 난 처음에 중국인 작가가 쓴 작품이라면 스케일 역시 매우 클 거라 생각했다.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읽을 때도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읽어 보니 그 생각은 여지 없이 깨지고 말았지만, 두 작품은 내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다. 작품의 소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가) 흔히 접하기 쉽지 않은 특별한 직업의 세계를 다루어야 한다거나, 잠시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작품을 치밀하게 구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읽어 본 위화의 소설과 류진운의 소설은 모두 너무도 평범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얼핏 보면 '어떻게 이런 것이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지인들과 만나 시간 때우기 용으로나 가능할 법한 한담 정도의 이야깃거리들이 소재가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정도 얘기만 들어보면 작품의 깊이도 없어 보일 수 있고, 작품이 던져주는 메시지 또한 미미할 것이라 생각하기 쉬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장에 떨어지는 몇 방울의 가랑비를 의식하지 않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옷이 흠뻑 젖는 것과 같은 이치로, 두 작품은 내게 가랑비 같은 역할을 해 준 듯 했다. 작품의 처음에서 점점 끝으로 가면서 어느새 감동과 깨달음이라는 커다란 변화가 내 온 몸을 흠뻑 적셔 주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세 편의 중편을 들여다 보자면……. 먼저, 한 가정의 일상 생활 속에서의 작은 바람-사실 그 바람들은 조금도 과욕은 아니었다. 아이를 조금 더 괜찮은 유아원에 보내려는 부모의 마음이나 방법은 옳지 않았지만 뇌물을 써서라도 집에서 너무도 먼 직장을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옮겨 보려 한 것이나, 실패한 시장경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10원에 아등바등하는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다-과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벌어지는 가족 구성원들간의 자잘한 다툼들을 그린 「닭털 같은 나날」은, 작품의 제목이 주는 희화적인 느낌만큼 어쩐지 서글프기까지 한 상황을 무리없이 한 편의 코미디처럼 그리고 있었다. 읽어 보면서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걱정들이랑 똑같은 걸 고민하고 있나 싶기도 했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정에서 보이는 사소한 다툼 역시 그들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다음으로, 한 정부(공산당) 기관에서 인사이동 사태를 두고 벌어지는 기관 구성원들간의 담합과 모반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군상들과 그들의 심리와 행동의 양태를 그린 「관리들 만세」역시 유쾌하다 못해 뼈 아픈 공감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것 같았다. 뇌물이 통하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내가 밀려나지 않으려면 저 자식을 밀어내야 하는 그런 약육강식의 세계'에 다름 아닌 모습들이 비단 그들만의 세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솔직히 말하자면 흡사하다 못해 너무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선 신물이 올라올 정도였다고나 할까? 마지막으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로 세 번째 중편인「1942년을 돌아보다」이다. 제목만큼 특이한 이 중편 소설은, 1942년에서 1943년에 걸쳐 중국 하남성에 밀어닥친 대기근 사건과 연관시켜, 공산당과 국민당의 싸움으로 국내 정세에 관심을 기울일 틈이 없었던(?) 장개석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소설이다. 사실 소설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생소할 정도로, 대기근으로 인해 무려 300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사건을 취재하는 형식으로 구성한 독특한 글이었다. 작가는 여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신문지상에 발표된 기사들을 게재하고 또 적절히 자신의 생각들을 나타냈다. 곳곳에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개가 사람 시체를 먹는 것은 물론이며 나중엔 사람이 사람까지 먹는 지경에 이르러도 오로지 체제 유지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던 장개석 정부와 지도층의 생각에 회의를 갖게 했고 그들의 잘못된 생각들이 그와 같은 대재앙을 불러 일으켰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물론 이 과정들이 밖으로 모조리 까발려 놓고 고자질하는 형식의 그런 투정들이 아니라 여러 신문 기삿글과 당시 증인들을 통한 생생한 증언 등의 다양한 참고 자료들을 통해, 당시 대기근이 얼마나 혹독했으며 그에 못지 않게 정부가 얼마나 이 사태를 철저히 외면해 왔는지, 뿐만 아니라 이를 보다 못한 미국 언론인이 오죽했으면 미국에서 기사를 게재하여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가 들어오는 지경이 되어 버린 그 현실을 통탄해마지 않고 있었다. 그처럼 장엄하고 화려한 곳에서, 말쑥하게 옷을 입고 커피를 마시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던 소수가, 세계 대다수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짓는(210쪽) 그런 국제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소수-중국 인구에게 300만은 분명 소수는 맞는 듯 하다-의 아픔은 외면되는 것이 당연하며, 통치자가 되기만 하면, 피부색과 민족에 관계없이, 세계 일류의 의식주와 교통 수단을 누릴 수 있는(225쪽) 그런 위정자들이 그들의 아픔을 이해해 줄 리 없으며(아마도 이 점은 우리 나라의 위정자들도 조금의 예외적인 모습을 보이진 못한 것 같다)-, 1942년 중국에도 '맛있는 커피'가 있었다-장개석과 그의 참모자인 미국인 스튜어트가 다투는 것을 보며 뭘 그리 다투냐고, 그냥 잠시 앉아 맛있는 커피나 마시자며 둘을 화해시키려던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의 말에서 화자가 따온 것-는 사실(227쪽)에서 그런 국제 사회의 분위기에 편승한 중국 정부와 그런 의식을 가진 위정자들이 있는 한, 한쪽에선 굶어 죽어가도 다른 한쪽에선 자신들이 뭘 먹어야 하는지를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상한 사회가 바로 그 당시의 중국이었단 사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이 발벗고 나서서 자선모금공연을 벌여 거둬들인 수익금이 곧바로 이재민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단계적인 수탈과 중앙 관리들의 착복-구호금을 은행에 입금시켜 이자를 챙김-과 마지막 단계에서 17%라는 어마어마한 수수료를 낸 나머지 푼 돈들만 고스란히 쥐어지는 상황(283쪽)에서도 중국 사회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결국엔 1943년 하남성에 침공한 6만의 일본군이 30만의 중국 대군을 섬멸한 데에는 하남성 사람들의 활약(?)-일본군이 군량을 방출하여 하남성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제해 줌으로써 민심을 돌리게 하고 만 셈이 되어 버렸다. 기근과 기아의 공포에서 놓여 난 그들은 기꺼이 매국노 아닌 매국노가 되어 버렸다. 작가는 말했다.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을 것인가, 라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런 반역 행위를 하게 된 그 근저에는 중국군 장교의 한 마디가 크게 작용을 했고 이 말은 바로 극심한 대기근을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해 버린 장개석 위원장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결론을 내렸다. "백성들이 죽어도, 땅은 역시 중국인 것이다. 만약 군인이 굶어 죽으면, 이 나라는 일본군에게 접수되어 관리될 것이다." (292쪽) 난 황석영 작가와 같은 전문 작가가 아니다. 물론 비평가도 아니다. 그래서 더 거창하고 고상한 말로 류진운의 작품을 더 이상 그럴 듯하게 논할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가벼운 소재라도 충분히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으며 시대의 아픔과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가진 사람만이 작품 속에 오롯이 담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할 어려운 과제들이 참으로 많다. 그 가운데 공통적으로 한국이나 미국이나, 학부모나 학생이나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이 '공부"가 아닌가 싶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공부가 좋아서 하다 보니 결과가 잘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못하는 학생들은 “공부가 어려워 죽겠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들이 “공부는 너무 어려워. 난 공부에 소질이 없나 봐”라고 자포자기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좀 이상하다. 사람은 다양하다.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키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설사 공부의 ‘소질’이라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정도의 차이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이같은 공부에 대한 경험은 성장과정에서 대부분이 누구나 해봤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로?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주눅이 들 정도로 어렵다는 아이들의 호소를 듣기도 한다. 먼저 주눅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를 하게 되면 간단하고 쉬운 문제부터, 복잡하고 창의적인 문제까지 단계적으로 다루게 된다. 공부하면서 계속 질문은 바뀌게 되고, 그 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수준에서는 돈이란 말로 대부분 통하지만 중학교에 들어서면 화폐란 단어로 바뀌는 것처럼 단계가 높아지는 것은 단순히 다루는 정보가 양적으로 늘어나는 게 아니라 더 깊이 있고 폭넓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규칙을 다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직 공부가 덜 된 상태에서 단계에 맞지 않는 문제를 푼다면 자신이 제대로 익히고 이해하지도 않은 규칙을 사용할 것을 요구받는 셈이다. 누구나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모두는 빨리 빨리 하면 성공할 것처럼 선행학습을 하게 된다. 그것이 곧 승리를 가져다 줄 것처럼… 영화 '어거스트 러쉬'를 보면, 작곡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어린 주인공이 악보 사용법을 처음 익힌 후 척척 교향곡을 만들어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모차르트 같은 천재는 한 번 만에 뭐든 잘하지. 그런데 저 아이도 엄청난 천재야”라고 주위 사람들이 감탄한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모차르트도 장시간 집중적으로 단계를 밟아 음악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낼 작품을 작곡 할 수 있었다. 태어나서 곧바로 작곡을 하는 사람은 지구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다. 결국 공부란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서 새것을 배워 토대를 더 탄탄히 할수록 덜 어렵다. 속도는 교육에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조금 느리게 배운 사람이 더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훌륭한 교육 스케줄은 배우는 사람에게 흥미와 흥분을 끌어낼 정도로 조금은 어려워야 한다. 하지만 좌절이나 실망을 느낄 정도로는 어려운 것은 문제가 된다. 어린 아이에겐 죽을 먹인 후 충분히 소화가 이루어지면 밥을 먹이는 단계에 들어서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이치이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가 각자 흥미와 소질이 다르기 때문에, 배우는 분야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해에 태어났다고 해서 모든 분야의 단계를 밟아나가는 속도가 같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우리는 경제성을 무시할 수 없어 같은 연도 출생이라는 이유로 같은 공간에 몰아넣고 동일한 시간 동안, 같은 진도로 여러 과목을 배우게 하면 당연히 ‘어려워서 죽겠다’고 하는 이들이 속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라 할 것이다. 지금의 교육제도가 과연 구성원들이 잘 배우는 것에 정말 관심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학생들을 바쁘게 쪼아대는 겉모습 때문에 학교는 반복과 훈련의 장소라고 오해받고 있다. 실제로 학교는 반복 훈련을 많이 시켜주지 않는다. 어김없이 기계처럼 진도를 나가고 있다. 왜냐하면 같은 진도를 나가야지만 ‘성적’을 매기는 중간평가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정적 편의를 위해 마련된 장치가 부과하는 어려움은 공부 본연의 어려움이 아니다. 교육은 중간 평가로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대신, 배움의 스케줄을 최대한 개별화시켜, 충분히 그리고 풍부하게 반복 훈련할 기회를 줘야 한다. 공부를 정말로 돕고자 한다면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얼마 전 모 대학에서 주최한 고등학생 논술대회 심사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심사 후 학생들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글이 많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특히 식상했던 점은 참가 학생들이 학원과 개인 교습 등 타인에게 지도받아 타의적으로 숙련된 판에 박힌 글이 많았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의 가슴 깊은 속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동감하는 글이 많지 않은 것은 우리 논술 교육의 현주소라는 생각에 혼란스럽기까지 하였다. 올해에도 전국 각 대학의 수시 모집을 거치면서 학생들이 제출하는 자기소개서의 대필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해 총선 즈음에서는 후보자들의 학위 논문 표절과 일부 학자ㆍ연예인들의 학위 논문 표절로 논란이 심화되고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 바도 있다. 일부 외국 언론은 이를 과장하여 ‘한국은 표절 공화국’이라고 대서특필하기도 하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과거 일부 학생 사이에서 행해지던 자기소개서 대필이 이제는 전국적으로 만연해 일반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일선 고교에서는 자기소개서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표절과 대필은 대학입시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는 일이다. 이 자기소개서 대필은 비단 대입뿐만 아니라 취업 시에도 비일비재하다는 지적이 많은 게 현실이다. 사실과 다르게 쓰인 자기소개서, 다른 사람이 대필한 자기소개서가 진학과 취업의 성패와 진퇴를 결정한다면 이는 제도적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가장 공정해야 할 대입과 취업 전형에서 버젓이 이와 같은 일탈이 허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이 도덕적 해이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하지만 하도 깊이 뿌리박힌 관행이라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대학과 기업에서 모집에 응시하는 학생들과 취업자들에게 추천서가 아닌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전형에 응하는 응시생으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 출생 과정과 장래의 희망이나 계획, 대학과 회사ㆍ기업의 전형에 응하는 이유 등을 작성하여 제출하게 함으로써 피전형자가 그 대학과 기업에서 요구하는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다. 특히 대학 입학과 기업 입사 후 발휘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 잠재력을 파악하려는데 근본적 목적과 취지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기소개서의 목적과 취지 및 필요성에 비추어 보면 그 전제로서 당연히 자기소개서는 응시자 본인이 스스로 작성하여야 한다. 원래 자기소개서의 특성 상 다른 사람이 쓸 수도 없는 것이다. 자기소개서를 다른 사람이 써 준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가 도덕적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식자들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금년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전형제도 개선 방안에서는 정시 모집을 늘이고 수시 모집을 줄이는 기본 방침을 보이고 있다. 근래 우리나라 대학입시제도에서 시험을 통한 모집 이외에 입학사정관 제도를 대폭 도입하고 있다. 입학사정관 전형 등의 새로운 제도의 특징을 살펴보면 시험점수 등 객관적인 자료에 의한 선발이 아닌 응시생이 작성해 제출한 자기소개서나 교사추천서 등의 서류심사, 면접이나 인성검사 등 계량화되지 않은 주관적인 자료에 의한 선발을 예정하고 있는데, 이는 선발 주체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 못지않게 응시생 측의 정직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업의 자기소개서 요구도 이와 같은 취지에 따른 것이다. 이와 같은 비평가적인 주관적 자료는 선발 주체의 구성원 선발에 대한 권위와 선발 대상 측의 제출서류에 대한 진정성을 담보할 때에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전형자와 피전형자의 정직성과 진솔성을 바탕에 깔고 전형에 임하여야 하는 제도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행 대학 입학과 기업 취업에서 선발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선발 주체의 권위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응시생들이 제출하는 서류의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그 제도적 장치 이전에 정직ㆍ청렴이라는 인성을 함양하는 도덕적 노력과 함께 대필한 자기소개서의 범죄성을 자각하는 것도 필요하다 할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대입과 취업에서 자기소개서 등을 대필하는 자가 많아서 우려를 하는 사회적 분위기임에도 정작 당사자들은 이를 대체로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누가 뭐래도 대학 입학과 기업 취업 과정에서 자신의 경력을 은폐하고 거짓으로 작성하고 심지어 표절ㆍ대필까지 하는 행위는 분명한 범죄다. 실정법을 위반한 처사인 것이다. 대학과 기업이 응시생에게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전제는 당연히 자기소개서의 정직성과 직접 작성을 예상하는 일이기 때문에 대필한 자기소개서는 결국 위계(僞計)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소개서는 사실대로 진솔하게 작성해야 하는 것이 대전제이다. 미사여구나 교언영색은 절대 금물인 것이다. 이러한 위계에 의하여 대입과 기업 취업을 방해하면 실정법위반이 되는 것이다. 상아탑이자 지성의 전당인 대학 입학과 청운을 품고 입직하는 장래가 구만리같은 학생들과 취업예정자들이 시작부터 거짓과 은폐가 만연하는 것은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성적만 보지 않고 인성을 두루 살펴서 훌륭한 학생을 뽑겠다는 입학사정관제의 취지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다. 우리 대입과 취업의 전형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반증인 것이다. 현재 우리 대학과 기업의 자기소개서 요구는 분명히 의도와 목적은 아주 좋지만, 현실적으로 문제점이 많다. 따라서 올바른 방법으로 개선책이 요구되고 있다. 대하에서 요구하는 응시생과 기업에서 요구하는 취업자들이 타당성을 담보하여 ‘선발’될 수 있도록 시스템이 혁신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자기소개서 등이 대필 만연화로 무용론까지 대두되는 마당에 이와 같은 대필과 표절은 부정행위로 간주해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다. 자기소개서는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가감 없이 대학과 기업의 전형자들에게 내보이는 것이다. 즉 고객들에게 내보이는 상품설명서와 같은 것이다. 거기에 표절과 대필 등 거짓이 내재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특히 우리는 교육과 학교가 정작과 청렴을 가르치는 것이 본질인 이상 학생들에게 정정당당하게 입학하고 취업을 하도록 해야 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행태를 버리고 올바른 길로 서울을 가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미래의 주역으로서 우리나라를 이끌 학생들에게 부끄러운 성공보다 깨끗한 패배가 더 아름답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교육과 학교의 역할과 소임이 빨리 가도록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가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도 내면화하여 한다. 이제 우리도 자기소개서, 교사 추천서, 학교장 추천서, 봉사활동 확인서 등도 발급자와 학생ㆍ취업희망자들이 아주 떳떳하고 공정하게 발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 공문서를 전형 기관인 대학과 기업에서 신뢰하고 전형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묵시적 ‘공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제도와 국민적 신뢰도를 확립하는 것은 ‘내 아이 좋은 대학 보내는 것’, ‘내 아이 좋은 회사ㆍ기업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교육부는 국민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지향하는 정부3.0 기조에 따라 중고생 학부모들이 자녀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자녀의 진로선택을 지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카카오톡 등 스마트폰 앱을 통해 자녀가 실시한 직업적성검사 등의 결과표를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검사종류는 커리어넷에서 직업적성검사, 직업흥미검사, 진로성숙도검사, 직업가치관검사 등 총 4종이 제공된다. 커리어넷은 교육부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위탁하여 1999년부터 운영하고 있으며 진로심리검사, 사이버 진로상담, 학과 및 직업정보 등 진로 서비스를 무료 제공하며, ’13년 8월말 현재 가입자 수 732만 명, 연간 심리검사 294만 건을 실시하는 종합진로 정보망이다. 커리어넷의 심리검사는 이미 PC버전을 통해 연간 294만 여 건이 실시되고 있으나 그 결과를 검사 당사자인 학생들만 열람을 할 수 있어 학부모가 이를 확인하려면 자녀에게 프린터로 출력을 하도록 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이를 해소하고자 카카오톡, 라인, 마이피플 등 3종의 메시징 앱을 이용하여 결과를 열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열람을 위해서는 학부모와 자녀가 같은 메시징 앱을 이용하여야 한다. 자녀는 메시징 앱 외에 커리어넷 검사 앱을 설치해야 한다.커리어넷 검사 앱은 구글 Play 스토어(안드로이드폰) 또는 애플 앱스토어(아이폰)에서 ‘커리어넷’으로 검색을 하면 설치할 수 있다. 교육부는 현재 학부모와 자녀가 모두 스마트폰을 이용하여야 하고, 동일한 앱을 설치하여야 하는 등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2014년 하반기부터는 카카오톡 등의 메시징 앱을 포함하는 “전용 스마트폰 앱”을 개발하여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활용하면 학생은 PC로 커리어넷에서 검사만 하면 그 결과를 학부모의 스마트폰이나 PC에서 검사결과를 공유할 수 있으며, 결과도 누적 관리 및 열람이 가능해 진다. 향후에는 자녀의 적성심리검사 결과조회 서비스 뿐만 아니라 자녀의 관심직업, 관심학과, 학부모용 콘텐츠(드림레터), 정부의 진로교육 주요 정책에 대한 홍보 등 다양하게 용도를 확장하여 활용 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이번 서비스가 스마트폰을 교육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로서 검사 결과를 소재로 부모와 자녀가 가정 내에서 진로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스마트폰 3500만시대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많이 활용하는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진로관련 검사를 제공하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메시징앱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고 그냥 카카오톡, 라인, 마이피플이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으며 그중에서카카오톡은 많이 사용하지만 라인이나 마이피플은 많이 이용하지 않아 활용도가 얼마나 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자녀와 아버지, 어머니가 카카오 친구가 되어야 하는데 관련 어느 정도나 카카오 친구가 되고 있는지 분석해 볼 필요가 없다.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가 친구로 될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오히려 부모님들이 많이 사용하는 공인인증서를 활용한 학부모서비스를 통하여 자녀의 진로검사를 종합적으로 보는 것이 더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고 본다. 각각의 심리검사를 스마트폰으로 보여져좁은 상태에서 단편적으로보는 것보다는 학부모서비스를 통하여 종합적으로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본다.학부모서비스를 통한 진로심리검사 확인은 결과 코드번호를 교사가 입력만하면 학부모들이 언제든지 어디서든 학생의 의사과 관계없이 볼수 있다. 또한 초등학생들이 많이 검사하는 아로 주니어와 아로주니어 플러스 결과도 학부모들이 스마트폰을 통하여 확인하게 하는 것도 검토해보아야 하겠다. 초등학생때부터 진로에 대한 관심이 주어지고 있으니까.
광양여중 2학년 김연희 학생이 지난전라남도교육청에서 주관한 ‘중학생 봉사활동 우수사례 대회’에서 중학생 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연희 학생은 2009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온 가족과 함께 토요일을 이용해 순천 별량면에 있는 ‘섬돌요양원’에서 지금까지 7년 남짓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 양은 섬돌요양원에서 유리창 닦는 것은 기본, 방 청소와 할머니, 할아버지 안마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양현숙 섬돌요양원장은 “연희의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며 “예쁘게 성장해 어두운 곳을 환하게 밝혀주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고 정이 메마른 곳에 웃음과 행복을 전했으면 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연희 학생은 지난해 광양여중 봉사왕에 뽑히기도 했다. 김광섭 교장은 “생활 속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연희 학생은 학교 생활도 성실하고 교우관계가 원만해 누구나 호감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요즈음 같이 우리 사회의 인성교육 부재에 안타까워하고, 요즘 청소년들의 생활 태도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우리 청소년들에게 희망이 있음을 기대 해도 좋다는 귀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김천과학대(총장 이은직)는 대학 중심의 평생학습 활성화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하고 있는 ‘어르신 원예치료과정’ 작품 전시회를 29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김천시립미술관 2층 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어르신 원예치료과정’을 수료한 지역 어르신 30명의 작품 360여 점이 전시된다. ‘어르신 원예치료과정’은 만 60세 이상의 지역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꽃과 식물을 만지고 심어보는 다양한 원예활동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스트레스 감소를 통해 삶의 활력은 물론 성취감과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특화 프로그램으로 올해로 3년째 운영 중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지난 8월 2일 첫 강의를 시작으로 10월 25일까지 12주, 총 18시간 과정으로 운영됐다. 신석기 성인학습지원센터장은 “지역 어르신들에게 여가활동 기회를 제공해 삶의 질을 높이고 활기찬 노년생활을 유도하기 위해 이번 프로그램과 전시회를 마련했다”며 “지역의 평생학습 중심대학으로 더욱 책임 있고 내실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 안산 모 중학교에서의 학부모 교육 강사 초청이 있었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전 교사가 수업을 공개하고 학부모의 자질 향상을 위해 외부인사 초청 특강을 갖는 것이다. 지난 1학기에 부천에서 한 번의 강사 경험이 있었기에 긴장과 떨림, 준비 스트레스가 좀 덜하다. 그래서 경험과 경력을 중요하다는 것 아닐까? 해당 학교에서 공문으로 요청한 사항은 자녀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역할, 가정에서의 자녀교육, 혁신학교 준비를 위한 학부모의 역할 등이다. 이 학교는 교직원, 학생, 학부모 등 교육공동체가 혁신학교를 갈망한다. 낙후된 지역여건에서 벗어나 침체된 학교를 혁신교육으로 한 번 번듯하게 일으켜 세우려는 것이다. 내용은 그 동안교육과 관련된리포터 중, 학부모가 자녀교육을 위해 알아두면 좋은 내용을 간추려 보았다. 기사 내용이 생활 속에서 이야기를 꺼내고 이론적으로 뒷받침 된 것이기에 생생하기만 하다. 시의성이 있어, 기간이 경과되었다고 버릴 내용이 아니다. 교육에 있어 유용한 기사라는 이야기다. 내용 꼭지는 5개로 잡았다. 첫째 꼭지. ‘누군들 부자되기 싫어할까?’ 목표와 계획, 기록 그리고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야기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이라는 마크 매코맥의 저서를 인용하고 있는데 새겨들을 만하다. 바로 목표와 계획 유무에 따라 인생, 삶의 질, 사회적 수준이 달라진 것이다. 기자는 여기서 목표와 계획 이외에 ‘기록의 힘’ ‘실천이 힘’이 중요한 것이다. 둘째 꼭지.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 자녀들이 주위 친구들과 함께 갈 수 있도록 지도해 달라"고 당부한다. 혼자서만 앞서가지 말고 공부 못하는 급우들을 가르치면서 가라는 말이다. 급우들간 서로 경쟁자인데 이 말이 맞을까? 맞다. 우리는 읽은 것의 10%, 들은 것의 20%, 본 것의 30%를 기억하고 보고 들은 것의 50%, 말하는 것의 80%를 기억한다. 말하고 행동하면 90%를 기억한다. 그러니까 내가 공부한 것을 혼자만 알지 말고 주위의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친구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나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된다. 셋째 꼭지. 교육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려면? 서울대 진동섭 교수의 말씀이다. 그는 ‘행운 찾기’보다는 ‘행복 만들기’를 하자고 주장한다. 네 잎 클로버는 찾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나 세 잎 클로버는 지천에 깔려 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운을 찾으려 한다. 주위에 널려 있는 행복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행복은 거저로 주어지지 않는다. 행복은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다. 학창 시절, 감명 깊게 들은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어록에서 ‘국가’ 대신 ‘학교’를 넣는다. 하나. “학교가 여러분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으십시오!” 학교에서 가져갈 것만 챙기면 구성원 사이에 갈등과 불만이 커지게 된다. 학교를 위해 구성원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열정을 발휘해 능력껏 기여한다면 가져갈 내 몫도 커지게 된다. 다시금 ‘학교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학교란 ‘관계’다. 구성원 간 ‘바람직한 관계’를 맺기 위해선 그들 사이에 ‘경계 세우기’와 ‘상호 존중’이 필수다. ‘경계 세우기’는 구성원들 간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하여 명확한 구분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구성원 각자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 넷째 꼭지. 교육에도 워룸이 필요하다. 학생이 잘못을 저질러 가정의 협조가 필요한 경우, 부모가 자녀의 잘못을 인정하면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협조 아래 지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자식을 두둔하고 학교를 탓하면 교사는 학생 지도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필자는 학부모들에게 강조한다. 아이들 보는 앞에서 선생님 흉보지 말라고. 그것은 교사가 잘 나서가 아니라 내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고. 부모가 앞장서 교사를 흉보는 순간 교육은 이미 끝난 것이라고. 잘못된 가정교육이 학교교육까지 망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현명한 부모는 자녀 앞에서 결코 교사 험담을 늘어놓지 않는다고. 마지막으로 학부모에게 묻는다. 아등바등 돈 벌면 무엇하냐고? 이미 자식 교육은 망쳤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잘 살려고 노력하냐고? 결국엔 제2세의 미래를 밝게 하자는 것 아니겠냐고?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고 부모와 교사에게 겁 없이 대드는 그런 자식 길러서 어디다 쓰겠냐고? 자기 편안함만 추구하느라 규율과 규칙, 질서 파괴를 일삼는 자식에게는 공부는 무슨 소용이 있냐고? 공부보다 사람됨이 우선 아니겠냐고? 다섯째 꼭지로 혁신학교 이야기다. 혁신학교의 개념, 혁신학교에서 중점을 두는 수업과 평가, 수업시간 학습의 주체가 되어 배움의 기쁨을 느끼는 학생들. 혁신학교 운영에 있어 학부모의 역할 등을 이야기하며 특강을 마치었다. 학부모는 학교교육의 동반자다. 동반자가 되려면 상호 이해와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학부모 교육, 행복한 교육공동체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광양여중 학생들이 독서의 달을 맞이하여 독후감 경시대회와 독서감상문 공모전에서 상을 휩쓸었다. 광양교육지원청은 지난 9월 27일 제19회중학생 독후감 경시대회 시 예선 대회는 중학교에서 선발된 51명의 학생들이 참가, 광양여중은 2학년 윤주희, 3학년 김지원 학생이 금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전라남도광양평생교육관에서 실시한 독서 감상문 공모전에서 자유글쓰기 부문 대상은 안소연(3학년), 금상 박현지(3학년) 동상 백은경(3학년) 학생이 차지하였다. 이같이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은 평소 독서교육을 실천하면서 쓰기교육도 소홀히 하지 않고, 각종 체험학습을 하면서 체험한 것을 내면화 하기 위하여 기록하는 습관을 갖도록 지도한 덕분이라 생각한다.
13일, 청주팔백리 회원들이 경주의 파도소리길로 생태문화답사를 다녀왔다. 오전 7시 17분 흥덕구청을 출발한 관광버스가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휴게소와 경부고속도로 평사휴게소에 들리며 바닷가로 향하는 사이 송태호 대표의 인사말, 김춘곤 대장의 일정소개, 강태재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상임고문의 삼남의 길목에서 신중한 선택을 해야 했던 충청인의 기질과 역사와 문화를 다양한 시각에서 민중과 지역중심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1천℃ 이상의 뜨거운 용암이 빠르게 식으며 부피가 수축하면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닥처럼 표면에 틈이 생긴다. 절리로 불리는 이 틈이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받으면 단면의 모양이 4~6각형 기둥모양의 주상절리로 발달한다. 제주도에만 있는 줄 아는 주상절리가 남동해안에도 많다. 31번 국도를 달리다보면 울산 북구 산하동의 강동화암주상절리(울산기념물 제42호)를 비롯해 경주시 양남면 바닷가에서 주상절리를 연달아 만난다. 하서항에서 읍천항까지의 양남주상절리(천연기념물 제536호)를 이은 바닷가 산책로가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다. 11시가 넘어 하서항이 있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읍천항을 시발점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읍천항을 목적지로 하면 오른쪽 풍경을 바라보며 걷고, 읍천항에 도착해 벽화를 감상하며 여유를 누릴 수 있어 좋다. 파도소리길 안내도를 보고 방파제 앞으로 가면 지역의 특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이 있다. 이곳 할머니들의 순박한 인정에 이끌려 두 번이나 문어를 사갔다. 벽화를 구경하며 하서항을 돌아서면 바로 해파랑길의 10코스와 겹치는 양남주상절리가 시작된다. 기울어진주상절리부터 누워있는주상절리, 위로솟은주상절리, 부채꼴주상절리 등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길가에 솟아오른 바닷가에 대해 자세히 공부할 수 있는 현장도 있다. 이곳은 2009년까지 군부대의 해안작전경계지역에 위치해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다. 그런 까닭에 1.7㎞의 파도소리길에 초소 등 군인들이 경비를 서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고, 기암괴석과 해안선이 멋들어진 이색적인 풍경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바닷가의 주상절리군을 따라 소나무가 늘어선 산책길이 천혜의 절경을 자랑한다. 경치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산책하는 내내 바닷바람과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작은 언덕위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양남주상절리를 대표하는 길이 10여m의 ‘부채꼴 주상절리’를 만난다. 돌기둥이 장작처럼 차곡차곡 쌓여 구부정하게 석축을 이룬 오른쪽 끝에 육각형 모양의 주상절리 수백 개가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부채꼴주상절리는 국내에서 처음 발견되었을 만큼 희귀하다. 바위는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부채꼴주상절리도 보는 사람에 따라 백두산 천지, 꽃을 피운 해국, 여인의 주름치마를 연상시키며 ‘동해의 꽃’으로 불린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중앙의 움푹 팬 웅덩이로 파도가 하얗게 부서져 흘러드는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 ‘느린 우체통’이 입구에서 맞이하는 전망대가 가까운 곳에 있다. 이곳에서 읍천항 방향의 아름다운 바다풍경, 흰색과 빨간색의 등대가 가깝게 보인다.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를 걷거나 하얀 건물과 해송사이로 나무 데크 길을 따라가면 산책로의 끝부분에 출렁다리가 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몽돌과 갈매기들이 화음을 연주하는 몽돌해변과 벽화마을로 조성된 읍천항을 만난다. 물 위로 올라온 배(읍천갤러리호), 등대사이를 한가롭게 오가는 어선이 읍천항의 풍경을 여유롭게 만든다. 읍천항 150여 동 건물의 담벼락에 그린 벽화가 세상을 너그럽게 만들며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시멘트 위에 그린 그림이지만 옛날 학생들이 걸상으로 사용했던 의자에 앉아 여유를 누린다. 활어직판장에서 구입한 회를 안주로 소주도 취하지 않을 만큼 마신다. 읍천항을 나와 감포 방향으로 달린다. 여행의 여유를 누리며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한다. 월성원자력발전소를 지나면 오른쪽 바다의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과 왼쪽 산기슭의 감은사지(사적 제31호)가 가까이에 있다. 문무대왕릉은 삼국통일의 위대한 업적을 완수하고 죽어서도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고 유언한 문무왕의 수중릉으로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불린다. 갈매기들의 쉼터인 문무대왕릉 앞 바닷가에서 왼편의 감포 방향을 바라보면 이견대(사적 제159호)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견대는 감은사지를 완공시키고 바다의 용이 된 아버지가 절에 출입할 수 있도록 금당의 뜰아래에다 동쪽 바닷가로 구멍을 뚫은 신문왕이 용을 만나 옥대(玉帶)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만들 대나무를 얻은 곳이다. 감은사지(感恩寺址)는 왜병을 진압하고자 사찰을 건축하던 문무왕이 죽자 아들 신문왕이 682년에 완공시켰는데 삼층석탑과 금당터가 잘 보존되고 있다.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은 2중의 기단에 사각형의 동·서 두 탑을 같은 규모와 구조로 쌓아올렸다. 석탑이 만든 그늘에 앉아 강태재 고문으로부터 탑의 층수가 9층·7층·5층·3층으로 변화하는 과정, 단순하지만 강한 모습을 보이는 감은사지석탑과 작지만 균형미를 갖춘 석가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청주로 향했다.
강마을의 들은 절반쯤 비어 있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들 풍경은 조각보의 다양한 색감처럼 그렇게 변화무쌍하다. 가을이면 서늘한 들꽃이 핀다. 진보라의 꽃향유와 연보라의 여뀌꽃 그리고 오이풀이 산야를 장식한다. 쑥부쟁이와 흰 구절초. 여뀌꽃으로 압화엽서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가을소식을 전했다. 행복한 가을되기를 기원한다.
풍요로움이 넘치는 천고마비의 계절에 청명한 날씨가 이어지니 유명 관광지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럴 때 자연풍경과 함께 주변의 문화재까지 찾아보면 일석이조다. 잠깐만 시간을 내면 찾아볼 수 있는 문화재가 청주순치명석불입상(淸州順治銘石佛立像)이다. 순치명석불(충북유형문화재 제150호)은 시민들의 쉼터인 김수녕 양궁장과 가깝고, 이정골 저수지나 신항서원에 가려면 지나쳐야하는 용정동 선돌골마을 입구의 작은 개울 옆 논가에 서있다. 도심 가까이에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지만 안내 부족으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은 게 아쉽다. 석장승 모습을 하고 있는 높이 316㎝, 머리높이 70㎝의 석불 입상은 네모난 돌기둥을 깎아 선으로 얼굴과 상체를 조각했다. 마을 수호신의 기능을 겸했던 민간의 불상이 청주의 미소로 불리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언뜻 보면 공을 들이거나 신경 쓰지 않고 대충 돌에 선을 만들어 얼굴 모양을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양쪽의 귀가 없고 목이 짧아 균형이 맞지 않는데도 큼지막한 이마, 긴 눈썹, 내려뜬 눈, 도드라진 눈두덩이, 짤막한 코, 반달모양의 입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정감이 느껴진다. 소리 없이 빙긋이 웃는 그런 웃음이 미소다. 순치명석불의 꾸밈이 없는, 그래서 순수하고 아름다운 미소가 찾아온 사람들을 빙그레 웃게 한다. 조성연대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으나 석불의 몸통부분 아래에 '순치9년11월16일입(順治十一月十六日立)'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조선 효종 3년(1652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은 원래 이 근처 마을이 장승배기였고, 석불이 2개였는데 홍수에 멀리 떠내려간 것을 찾아와 지금의 자리에 세웠다고 얘기한다. 순치명석불에서 600여m 거리의 이정골마을 북쪽 끝에 신항서원(莘巷書院)이 있다. 신항서원(충북기념물 제42호)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와 고려 후기의 학자로 성리학 발전에 공헌한 목은 이색을 비롯한 아홉 선현을 추모하는 서원이다. 선조 3년(1570년)에 유정서원으로 세워졌고, 1660년에 신항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57년 복원하였다. 조선시대의 사액서원은 왕으로부터 편액, 서적,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으며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이다. 묘정비는 신항서원의 건립경위와 제향 인물에 대해 기록한 비석으로 우암 송시열이 비문을 지었다. 계개당은 평소에는 선비들이 공부하는 강학의 기능을 담당하고 제향 때는 선비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강당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신항서원의 사당인 구현사에는 중앙의 율곡 이이를 중심으로 목은 이색, 남계 경연, 강수 박훈,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송재 한충, 천곡 송상현, 서계 이득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현대인의 멍에는 일과 시간이다. 그 중 교사의 굴레는 교실이다. 아침 출근에서부터 저녁에 귀가하기까지 교실을 벗어난 교사는 존재할 수 없다. 더구나 담임이 되면 교실과 학생과의 관계는 더욱 밀착된다. 그런데 블록타임제 하의 연속 두 시간 수업은 교실에서 교사의 활동을 강화시키고 있다. 쉬는 시간에 교실에 앉아서 학생들과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다 보면 학생의 고민과 교사의 고민이 아름답게 봉우리를 맺게 되는 경우도 나타난다. 쉬는 시간은 짧지만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학용품을, 복장을, 눈으로 다리미질 해 보면 변화의 새로움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교사가 교실에 앉아서 학생과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는 그런 시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또 선생님의 의복도 양복에서 평상복으로, 칠판의 백묵도 다양한 형태의 색상으로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교복 주름의 각이 변하여 곡선화되고 고급화된 모습이다. 연필도 칼로 깎아서 쓰던 것이 심만 교체하면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책걸상도 높낮이 형식으로 자유롭게 변화를 보인다. 이처럼 교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모습들이 교사에게는 새로운 고뇌를 만들게 한다. 학생들을 쳐다보고 학생들의 내면을 꿰뚫어 내는 고뇌 없이는 학생의 수업을 원만하게 재미있게 이끌어 나가는데는 한계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특히 수준별 수업을 하는 경우 상반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반 하반을 이끌어 가는 교사의 내면의 심리는 어떠할까? 잠자는 학생은 잠을 자게 모른 척 해야 할까? 아니면 회초리로 다스려야 할까?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니다. 중하반을 이끌어 가는 교재가 특별하게 마련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교사 자신의 노하우로 과연 중하반의 수업을 원만하게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고뇌는 더욱 깊어만 갈 수밖에 없다. 교실에 앉아서 천정을 쳐다보고, 가을 하늘의 높은 수심을 읽어 가면서 칠판을 또 쳐다보고 잠자는 학생의 뒷모습에 시선을 붙인다. 교실의 고뇌가 깊을수록 교사의 영혼의 샘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오히려 넘쳐 흘러 내를 이루어 뭇 학생들의 학습 영역을 넓혀 주는 것이다. 갑남을녀의 삶의 고뇌는 가슴의 벽을 갉아 먹지만, 교사의 교실 고뇌는 학생의 마음을 쳐다보는 심령술이 된다. 코미디를 배워서 자는 이를 깨우는 달인이 될 수 있고, 사극의 주인공이 되어 뭇 학생들의 시선을 모으는 배우가 될 수 있고, 탈춤을 배워 교사와 학생이 같이 하는 협동학습을 만들 수 있고, 동영상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아서 현장에서의 따분함을 넘어 먼 나라의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전하는 교수법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교실에 들어가는 교사의 고뇌의 깊이는 풀리지 않는 미적분 심화 문제를 풀기 위해 다양한 구상을 하듯이, 교직 인생 나이테는 새로운 교구재와 반비례되고 있는 현실을 늘 예의 주시해야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변혁과 국제화는 기승을 부리고, 다양한 영역과 MOU체결로 공생공존을 부채질하는 상황에서 교사 본연의 업무는 배우고 가르치는 다변화 모색이 지속되지 않고서는 자신의 존재를 학생들 앞에서 바르게 선보일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될 수 있다는 준엄한 시대적 계고장이 내 책상 앞 PC화면에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때문에 오늘도 교무실에서나 교실에서나 고뇌의 봉우리를 어떻게 아름다운 행복의 꽃으로 피워 볼까 또 고뇌하고 되뇌어 보면서 저 높은 가을 하늘의 푸른 창공을 향해 애드벌룬을 띄워 본다.
요즘 세대 차이 구별은 매우 단순하게 할 수 있다. 전화번호부를 모르면 젊은 세대이고, 알면 늙은 세대란다. 과거 80년대만해도 전화번호부를 외워야 칭찬을 많이 받는 직장인이 있었다. 이런 직업도 이젠 거의 사라지고 없다. 70년대 초 필자가 대학 시절 느낀 것은 광주 전일도서관에 가면 의과대학 학생들을 많이 자주 만난 기억이 되살아 난다. 의과대학생은 수많은 의학 용어를 외우다 보면 스스로를 외우는 기계로 생각한단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없으면 못살 것 같은 컴퓨터가 지속적으로 저장하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머리에서 외우고 잊기를 되풀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과대학에 들어가려는 학생은 외우기를 즐기고 이것을 잘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의과대학 과목중에서도 해부학은 외우는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한다. 1000개가 훨씬 넘는 해부학 용어를 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의사가 되면 영어로 쓴 책과 논문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환자와는 우리말로 하지만 동료 의사와 말하거나 의무 기록은 영어를 쓰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생한테는 발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철자가 중요하다. 발음이 틀리면 조금 창피하게 느낄 수 있지만 철자가 틀리면 시험 성적이 나빠 낙제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영어교육에서도 이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실제로 학생들의 영어 공부하는 방식을 살펴 보면 말하는 것 보다는 쓰는 것에 치중하는 것도 바로 시험 점수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정책 담당자나 교사들은 실제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험이 아닌 의사소통 능력이라 강조한다. 하지만 시험에선 역시 철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이런 모순을 반복하는한 별스럽게 영어교육 개선을 외쳐도 영어실력 향상은 요원한 일이 아닐런지? 요즘 아이들은 우리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침대에 눕는 순간까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그 마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니 마법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신체 일부가 된 사이보그처럼 되어가고 있다. 사고 등으로 팔이나 다리를 잃은 자리에 로봇 팔이나 다리를 연결한 것처럼 스마트폰은 이미 대한민국 아이들에게 몸의 일부가 되고 있다. 나아가 음성 명령만으로 검색·전화·촬영을 할 수 있는 구글 글래스나 손목에 차거나 입는 웨어러블 컴퓨터의 등장은 상징적인 사이보그 인간의 우려를 가속시킨다. 스마트폰이 수첩과 백과사전을 대신하고, 인터넷이 암기와 사고 등 뇌의 기능을 대신해 주면서 뇌를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로 인하여 뇌는 점점 더 무뎌지고, 스마트폰에 중독된 우리는 사색이나 깊은 상념에 젖기도 힘들다. “인터넷에 기억 장치를 아웃소싱하게 되면서 뇌가 기능을 잃고 있다”는 니컬러스 카의 지적은 우리의 현실을 뼈저리게 통감하게 한다. 의과대학에 재학중인 제자가 하는 말이 해부학 책을 아무리 읽어도 용어가 안외워져 힘들었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해부학 실습실에서 그 구조를 만지면 잘 외워진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어린 아이가 얼굴을 만지면서 낱말을 외우는 원리와 마찬가지이다. 코코코, 눈눈눈 하는 놀이를 떠올리면 이해가 된다. 게다가 친구들과 그 용어로 이야기를 하면 더 잘 외워진다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외우는 것과 같다. 따라서 해부학 용어도 머리로 외우지 않고 손과 입으로 외운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어려운 단어를 외운 이야기를 만들면 그것을 매뉴얼화하여 친구 학생에게 알려주는 좋은 친구도 생겨난다는 것이다. 어떤 해부학 선생님은 그것을 만화로 그려서 학생들에게 공짜로 퍼뜨리니 훌륭한 선생이 이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해부학이 외우는 과목이듯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활용이 되려면 완전히 외우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해부학에서 외우는 것이 이해가 뒤따라야 하듯 구구단도 외워야 한다. 둘다 일찍 배워야 되고 외워야 하고, 또한 원리를 이해하여 제대로 응용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시간 낭비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처음부터 무작정 전화번호부를 무턱대고 외우는 것은 좋은 공부가 아니듯 영어도 무턱대고 외우라면 괴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의과대학생이 사람 몸을 이해하면서 외우는 것이 좋은 공부가 되듯이 영어도 무작정 외우라니 이는 불가능한 일이요, 무거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아이의 꿈을 키우고, 보다 더 쉽게 이해하도록 만화로 전달하고, 아이들이 단어를 제작하도록 하고, 선조들이 서당에서 한문을 외우듯 소리내서 외우고, 대화하면서 공부한다면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영어 실력은 분명히 향상될 것이라 생각된다.
맑고 드높은 가을 하늘이다. 바람도 쾌청하다. 뉴스를 들으니 전국의 지자체 축제도 가을에 집중적으로 벌어진다고 한다. 그 숫자만도 2천개가 넘는다. 학교에서도 가을 축제가 있다. 해마다 하는 학교도 있지만 예산과 준비 관계로 격년제로 하기도 한다. 그러나 체육대회는 해마다 한다. 학사일정에 잡혀있는 소중한 교육적인 행사다. 밤밭에 자리 잡은 율전중학교, 오는 24일 가을운동회를 한다. 작년까지 명칭이 체육대회였는데 올해부터 이렇게 명칭이 바뀐 것이다. 홍보차 교문 현수막도 미리 내걸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명칭을 왜 바꾸었을까? 체육부장이 바뀌어서? 아니다. 담당부장으로부터 그 이유를 들어 보았다. 첫째, ‘체육대회’라는 명칭은 학생, 교직원, 학부모 등 교육가족 공동체 모두가 함께 어울리며 활동하고 즐겨야 하는 행사임에도 이름 자체에서 전문 체육인의 대회(전국소년체육대회, 전국체육대회 등)를 연상하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명칭을 운동회로 바꾼 것이다. 둘째, ‘체육대회’라고 하면 그 행사의 주체가 체육과목으로 한정되는 좁은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체육교사들이 주인이 되고 타 교과나 다른 교사들은 객이 되는 느낌을 준다. 학교 행사는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그러므로 이런 행사는 체육교과만의 행사가 아니다. 율전 교육가족(학생, 교직원, 학부모 등) 모두가 주체이며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의 전환이 있어야 된다는 필요에서 가을 운동회로 바꾸었다. 넷째, 함께 어울리며 즐기는 행사에는 '체육대회'보다 '운동회'라는 명칭이 더 적합할 것으로 생각되어 변경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면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학생들에게는 추억을’ 남겨 주는 소중한 행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운동회 종목도 많이 개선하였다. 작년 같은 경우, 축구 결승이 있었다. 이런 경우, 결승에 올라가는 반만 해당하지 나머지 반은 무료하기 그지 없다. 올해는 이런 것 다 뺐다. 체육대회의 경쟁과 이기심 보다는 함께하고 즐기는 운동회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것을 넣었다. 구체적인 경기 종목을 살펴본다. 반 대표가 출전하는 경기로는 이어 달리기, 장애물 달리기, 단체줄넘기, 슬라이드 비행접시 5종이다. 반 전체가 참가하는 경기는 골든벨 줄넘기, 스피드줄다리기, 전략줄다리기, 8자 줄넘기, 줄다리기 5종이다. 또 홀수반은 청군이고 짝수반은 백군이다. 부상으로 주어지는 상품도 푸짐하다. 거기다가 특이하게도 ‘상쇄금지 스마트 상벌점제 바른 이해를 위한 O, X 퀴즈’도 있다. 체벌이 금지된 요즘의 학교현장, 학생을 제어하는 유일한 장치가 상벌점제다. 학생선도위원회도 있지만 일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것들은 상점과 벌점으로 통제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규정을 제대로 모른다. 규정을 알고 지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궁여지책으로 짜낸 것이 학생들에게 규정을 공부하게 하는 것. 그것을 게임식으로 테스트 하는 것이 O, X 퀴즈다. 재작년엔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퀴즈 맞추기 대회를 가진 적도 있다. 그러고 보니 율전중학교의 이번 가을 운동회,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교육공동체 단합도 꾀하고 반별 협동심도 기르고 학창시절 추억도 남겨 주고. 상벌점제도 미리 공부하게 하여 학교생활에 있어 질서도 지키게 하고.
“제자들이 경기도 어려운데 회사에서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여 성실하게 살고 있는 것이 고맙기만 하지. 초교시절에도 공부 잘하고 모범적이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그 생활이 변함이 없구나!” 제자와 함께 하는 북한산 등반을 마치고 은사인 최승화 교장(낙원중)의 말이다. 스승을 위한 제자들의 안내가 정성스럽다. 코스도 사전 답사도 하고 음식점도 미리 예약해 두었다. 47세의 여 제자는 단풍이 들지 않았을까 보아 걱정도 많았다 한다. 스승님께 좋은 풍광을 보여주려는 마음에서다. 중학교 교장 네 명이 일요일 북한산을 찾았다. 동료 최 교장이 주선한 것이다. 최 교장 제자는 지난 5월에도 스승의 날을 앞두고 북한산 둘레길을 안내한 적이 있다. 당시 신록과 봄꽃에 흠뻑 취했었다. 그러니까 제자와 함께하는 산행은 이번이 두 번째다. 수원에 근무하는 교장 세 명은 화서역에서 8시 모여 출발하기로 했고 집결지는 쌍문역 11시다. 지하철역에 제자 두 명이 나왔다.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우이동 버스 종점으로 간다. 거기에서 택시로 도선사까지 가서 산행을 시작한다. 모두 교장을 배려한 일정이다. 가다보니 인수봉이 보인다. 자일을 이용해 오르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저 곳에서 산악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는데…. 젊음이 좋긴 좋구나!’ 혼자서 중얼거린다. 동료 교장 한 명은 “우리가 저 인수봉에 오를 수 있을까? 그저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지!”한다. 헐떡고개까지 올라가는데 나이는 못 속이나 보다. 제자들은 앞장 서 가는데 교장들은 낑낑 댄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지만 돌계단 오르는 것이 숨이 가쁘다. 50대 후반인데 40대와 체력이 같을 리가 없다. 휴식하면서 물을 마시며 재충전하는 것이 고작이다. 10월 중순 북한산 단풍은 20∼30% 정도 물들었다. 붉은색보다는 노란색 계통의 잎이 많이 보인다. 백운대 휴게소에서 두부에 김치를 올려놓고 싸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위문에 도착하니 사방에서 모여든 등산객이 인산인해다. 백운대까지 줄서서 올라가야 한다. 백운대를 올라가는데 걸어가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다. 수도권에서 건강을 관리하며 가을산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다. 요즘 산행에는 남녀 구분이 없다. 구미 산악회에서 온 단체 산행과 가족단위 산행도 보인다. 내려오는 사람 중 누군가가 말한다. “백운대 정상까지 다녀오려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나”고. 갈등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어 북한산성을 따라 산행이 계속된다. 대동문에서는 자리를 깔고 과일로 시장끼를 채운다. 2시가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제자들이 준비한 귤, 감, 사과를 먹으며 학창시절 이야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정성껏 음식을 준비한 제자들이 고맙기만 하다. 하산길은 통일교육원 쪽이다. 국립 4‧19묘역도 돌아보고 기념관도 둘러보았다. 4‧19 정신이 자유, 민주, 정의다. 불의에 항거하고 부당한 공권력에 대항하는 정신은 오늘날에도 이어져야 하리라 생각한다. 제자들이 왜 이 곳을 코스로 정했을까? 교육자인 교장들을 생각한 것이리라. 이제 저녁시간. 식사 후 교장들이 저녁값을 치른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이 핀다. 스승의 번개팅 요구에모임을 성사시키고 정성껏 안내를 한 제자들이 고맙다. 스승과 제자들의 좋은 관계가 이어지는 세상이 그립다. 1978년 여주 북내초 5학년 3반 학생들이다.
제94회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에서 충남 서산의 서령고(교장 김동민) 카누부가 금메달 3개를 획득하는 등 쾌거를 이룩했다. 해마다 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서령고등학교 카누부(감독 박창규, 코치 최승기)는 2013년 10월 19일부터 21일까지 경기도 미사리 카누경기장에서 실시된 대회에서 C-1 1000m(최지성), C-1 200m(최지성), C-2 1000m(이중협, 이아름)조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올해 초, 전국카누선수권대회에서도 뛰어난 성적으로 활약해온 서령고등학교 카누부는 전국체전을 앞두고 한 달 전부터 현지적응 훈련을 비롯한 합숙훈련을 하며 치밀하게 준비하는 등, 무더운 여름날씨 속에서도 성실히 연습한 결과 눈부신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이번 전국체전에는 스케쳐스에서 선수들이 입을 파카 등 물품을 기증했으며 본교 학생과 학부모 , 동창회 및 교직원들이 직접 경기장을 찾아 열띤 응원전을 펼쳐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승진 ◆행정사무관 △황선환 순천대 △주재표 제주대 △조한근 충남대 △남기준 한국교통대 ■전보 ◆서기관 △구영실 평생직업교육국 △이재철 경남과학기술대 △김헌재 경상대 △강창호 공주대 △김원필 광주교대 총무과장 △강학래 전남대 △장영오 진주교대 총무과장 △정영태 창원대 △고계석 춘천교대 총무과장 ◆행정사무관 △김민선 △박종필 △서병국 △양현오 △최민호(이하 기획조정실) △김지용 △박진하 △배진숙 △채희종 △최 경(이하 교육정책실) △권지영 대학지원실 △홍수영 대학지원실 △장세은 평생직업교육국 △배효진 평생직업교육국 △김동안 교육정보통계국 △김은수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이창훈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신중훈 국립특수교육원 △김정열 국사편찬위원회 △김상조 경남과학기술대 △박봉현 경상대 △송종황 서울과학기술대 △류광철 한국교원대 ◆기술서기관 △이소영 교육정책실 ◆보건사무관 △정희권 지방교육지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