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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공정택)이 논술지도 활성화를 위해 논술지도매뉴얼을 발간, 일선학교에 배포했다고 31일 밝혔다. 이번에 중·고교에 배포된 논술지도교사 매뉴얼은 교과 교육 과정에서의 논술 교육부터 입시에 대비한 논술지도까지 총괄적인 논술 지도 방법을 담았으며 학생의 수준과 단계에 맞춰 지도할 수 있도록 초·중·고급 3단계로 구성돼 있다. 각 주제마다 구체적인 예문과 함께 적용할 지도방법이 나와 있는 등 학교현장에서의 실질적인 활용도를 높였다. 매뉴얼은 제1부 총론에서는 논술교육의 의의와 방향을 소개, 논술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게 했고 제2부 초급과정의 논술지도에서는 논술의 핵심인 독해능력 기르기, 문장쓰기 지도 등의 내용을, 제3부 중급과정 논술지도에서는 논제 분석과 논거 마련, 개요작성 등의 지도 방법이 담겨있다. 제4부 고급논술지도에서는 동서양 고전읽기 지도, 교과서 속에서 문제 찾기, 사회적 이슈 정리하기, 실전논술 쓰기 등을, 제5부는 논술평가의 실제로 이루어져 있다. 시교육청은 교육부 논술고사 가이드 라인을 반영, 2학기 중에 인문·사회 영역, 문화·예술 영역 등 영역별 논술읽기자료 3종을 발간·보급할 계획이며, 10월 1일부터는 시교육청의 사이버 가정학습 포털사이트인 꿀맛닷컴에서 ‘사이버논술 교실’을 개설·운영하기로 했다. 또 겨울방학부터 논술교사 연수를 방학 때마다 600명씩30시간으로 확대해 지속적으로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시중의 논술 관련 참고서들과 달리 이번 매뉴얼은 교사용 지도서로서의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면서 “교사에게는 논술교육은 학교가 책임진다는 풍토를 조성하고 학생·학부모에게는 믿음을 심어줘 논술교육에 대한 신뢰를 높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논술지도 매뉴얼은 영어로 된 제시문, 수학ㆍ과학과 관련된 풀이과정이나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를 낼 수 없도록 한 교육부의 논술 가이드라인이 나오기 전 내용검토가 끝나 이와 배치되는 부분이 포함돼 있어 학교 현장에서의 혼란이 예상된다.
교육부는 퇴출을 전제로 한 부적격 교원의 범위를 ①성적 조작, 성범죄, 촌지 등 금품 수수등에 의한 도덕적·윤리적 문제 교원 ②민·형사상, 행정상 중대 비리·범법 행위 교원 ③약물, 알코올 중독, 정신 장애 과도한 폐쇄 성향, 고질적 신체 질환 등으로 직무 수행이 곤란한 자를 제시했다. 이들 요건에 해당하는 교사들은 교단을 지키며 계속 교육자로서 교직에 봉사하는 것이 부적합하므로 교직을 떠나도록 조치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인 것 같다. 그러나 이 대책안의 시행에 앞서 우선 몇 가지 검토가 필요하다. 위에 예시한 부적격 교원의 범위 요건이 결과 위주이며, 이러한 결과가 오직 교원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정하고 대처하고자 하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부적격 교사의 범위를 명시한 세가지 요건 중 3번에만 한정시켜 논평하고자 한다. 심리학에서는 인간 행동의 원인을 개인적 특성, 환경 특성, 그리고 개인적 특성과 환경간의 상호작용 효과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석한다. 이들 간에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인과관계란 원인 없이 결과가 나타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나는 3번 요건을 결과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근원, 즉 교직 환경 특성을 분석해볼 때 과연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은 책임이 없는가. 3번의 요건을 결과로 보고 관련 당사자를 피해자로 해석한다면 가해자는 누구인가. 10년, 20년, 30년 동안 교직에 봉직해 오면서 자의 반 타의 반 교사가 경험했던 과로, 피로, 직무 불만족, 사기 저하, 직무 스트레스와 탈진에 따른 심리적․신체적 질환과 갈등을 건실하게 해소하고 위로하고 치료하고 예방하기 위한 배려와 대책이 교육계에서 언제 시행된 적이 있었는가. 법원은 상사의 질책 때문에 발생한 정신 질환 또는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이나 자살을 산업재해로, 만성피로 증후군도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라고 인정했다. 사업주는 직장인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에 따른 건강 장해에 관한 예방조치를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부의 지침이다. 이와 같은 법원 판례와 노동부 지침에서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은 과연 자유로운가. 나는 교육계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고 본다. 제2, 제3의 부적격 교사 발생을 예방하는 데에는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 따라서 교육부는 교직에 진출할 당시에는 적격교사였으나 어떤 원인, 과정, 결과로 부적격 교사가 되었는가를 연구해 부적격 교사가 양산되는 것을 예방하고 치료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원인 진단 없이 결과만으로 재단하고 처리하는 것은 당근은 없고 채찍만으로 교원 인사관리를 하겠다는 균형감각을 상실한 해법이다. OECD는 우수한 인적 자원이 한국의 교직에 진출하고 있지만 재직하는 동안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바로 이 점이 부적격 교사 양산을 조장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방학마다 실시되는 교원 연수는 전적으로 학생에 대한 학습지도 역량을 강화시키는 연수로만 진행되고 교사 자신의 정신·신체 건강 증진을 위한 연수는 빠져있다. 이제 연수 방식은 학생을 위한 연수와 교사를 위한 연수로 확대, 개편되어야 하며 동시에 교장, 교감, 장학사 등 관리직 연수 내용도 현대 감각에 맞게 실질적인 내용 위주로 확대, 개편되어야 한다. 오로지 학생만을 위한 현행 연수 체제로는 부적격 교사의 양산을 예방하거나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초·중등 교사가 심각한 직무 스트레스나 탈진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의 교사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구미 국가에서는 NEA, ILO 등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이 치료․예방 대책 수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육부가 추진해 온 교원 정년 단축, 교사 평가론, 부적격 교원 대책의 기저는 ‘교육 흔들기’였다. 부적격 교사 대책안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교원의 자질 개발과 복지 대책이 포함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 학교 참 독특합니다. 개량 한복을 입고 교실을 향하는 학생들에게 무슨 행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씨익 웃습니다. 그리고는 “교복 때문에 그러느냐”는 대답을 들려줍니다. 그렇습니다. 개교 3년째를 맞는 수원칠보중(교장 박평제)은 개량 한복이 교복입니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자는 교장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된 됐는데 아이들이 처음에는 거부감을 많이 느꼈다고 합니다. 학원이나 거리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하지만 이젠 워낙 알려지고 익숙해지다보니 오히려 편안하다고 합니다. 이 학교의 우리 것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교가가 민요풍의 경쾌한 가락인가하면 학교 행사에서도 우리 악기로 연주한 곡이 사용됩니다. 다가올 학교축제도 전통문화체험을 가미해 장승 다듬고 세우기, 전통놀이 체험, 전통공연으로 꾸민다고 합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또한번 놀랐습니다. 전교생이 책을 들고 복도로 몰려나와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입니다. 이유를 물으니 수업받으러 간답니다. 이 학교는 교사가 학생들이 있는 교실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교사가 있는 교실로 이동해 수업을 받은 ‘교과교실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덕수업을 받은 도덕실은 바닥이 온돌이고, 옛날 서당에서 썼을 것 같은 좌식 책상이 놓여져 있습니다. 학생들은 앉아서 수업을 받는데, 도덕과 예절교육을 한꺼번에 하기 위한 이유라고 합니다. 수학실에는 칠판이 삼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문제 풀이가 가장 중요한 교과라는 교사들의 의견에 이렇게 꾸몄답니다. 학생들은 회전식 의자를 돌려가며 친구들의 문제풀이를 지켜봅니다. 영어실에선 LCD모니터를 통해 영화를 보면서 회화를 배웁니다. 교실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는 셈입니다. 각 교과별로 모여 있다보니 교과협의회가 자연히 활성화되고 수업에 기울이는 열정이 더 강화된다고 합니다. 반면 학교 행정력이 약화되는 점도 있고 쉬는 시간마다 학교가 어수선해지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교과교실제 운영이 학생들의 창의적인 사고 향상을 가져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박평제 교장선생님은 “원론적으론 모든 학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고 교실이 변해야 교육이 변한다”고 설명합니다. 아, 한가지 잊었습니다. 이 학교의 인사말은 ‘사랑합니다’입니다. 학생들이 선생님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하는,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학교, 칠보중학교입니다. -------------------------------------------------------------------------------------- 이 코너는 독자 여러분이 한교닷컴(www.hangyo.com)의 ‘우리 학교를 말한다’ 코너에 직접 올리신 내용을 중심으로 꾸며집니다. ‘우리 학교를 말한다’에 직접 학교자랑을 올리시면 특색있는 학교를 선정, 취재를 통해 학교를 소개해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문의=(02)3463-1879
최근 교육부가 ‘부적격교원대책’을 입법예고하면서 교원단체와 학부모 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사태가 발생했다. 교원단체들은 ‘합의 없이 입법예고할 수 있느냐’고 따졌고, 학부모 단체는 ‘언어폭력이나 신체폭행을 가한 교사는 왜 부적격 교원에서 제외했느냐’고 따졌지만, 문제의 본질에서는 이견이 큰 듯하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입법예고한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점’에 대해 사과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학부모 단체에서 주장하는 부분, 즉 교사의 폭력문제가 이견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언어․신체적 폭력을 가한 교사를 부적격 교원의 범주에 포함시켜 교단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이견이 첨예하다. 학교에서 학생에 대한 폭력이 있을 수 없으나 학부모단체에서는 폭력이 존재하고 있다고 꾸준히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를 근절시키기 위한 교육당국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을 부적격교원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폭력과 체벌의 구별이 애매하다는 데에 있다. 이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폭력’은 ‘난폭한 힘’으로 설명되어 지고, 다시 ‘난폭’은 ‘몹시 거칠고 사나움’으로 설명되어 있으며, 체벌은 ‘몸에 직접 고통을 주는 벌’로 설명돼 있다. 이렇듯 사전적 의미로만 볼 때는 최소한 학교에서의 폭력은 존재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할 것이다. 학생을 교육하는 교사가 ‘난폭한 힘’즉 ‘몹시 거칠고 사납게’ 학생을 지도한다는 것에 쉽게 수긍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체벌을 가했다고 할 때, 학생이 수긍하면 교육적인 체벌이 되겠지만, 학생이 수긍하지 않으면 폭력으로 비화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일례로 A, B 두 교사가 똑같은 체벌을 가했을 경우, A교사는 체벌이 되고 B교사는 폭력이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부적격교원의 범주에 폭력이 포함된다면 B교사만 퇴출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폭력과 체벌은 구분이 어렵다. 그렇다고 체벌을 완전히 금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교사들도 체벌을 가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에 공감한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체벌을 가해야 하는 경우가 꼭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에서 왜 체벌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한 이유이다. 부적격 교원대책과 관계없이 이미 일선 학교와 교육당국에서는 폭력을 금하고, 체벌근절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시내 모든 초․중․고교에 ‘체벌 없는 학교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2006학년도에는 이와 관련한 시범학교 운영이 계획돼 있어 체벌 없는 학교가 가시권에 들어와 있는 상태이다. 서울의 일부 고교에서는 체벌을 없애기 위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생활지도 방안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사안 관련 학생을 상시지도 하되, 정도가 지나친 경우는 ‘푸른교실’을 별도로 개설해 여기에 입교시켜 지도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들 고교 외에도 대부분의 중․고교에서는 ‘학생체벌조정위원회’나 ‘생활지도위원회’, ‘학교분쟁조정위원회’ 등을 설치해 체벌관련 내용을 다루고 있다. 즉 체벌과 관련된 제반 고충의 처리, 체벌 없는 교육풍토 조성을 위한 학생 지도방법의 연구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위원으로는 교사 학부모, 학생대표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 체벌을 금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서 폭력을 부적격 교원의 범주에 포함시킬 경우 학교 스스로의 자정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학교교육력제고를위한협의회’에서 잠정적으로 협의한 ‘폭력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는 것과 ‘폭력문제는 부적격 교원 대책과는 별도 처리하는 방안’을 고려한다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하겠다. 학교 내에서의 폭력과 체벌은 근절돼야 한다. 다만 학교 스스로 이를 근절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무조건 부적격 교원으로 분류한다면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체벌인지 폭력인지는 양심 있는 모든 교사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모두 태우는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영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공립학교의 아카데미 전환 정책이 10월에 출간되는 백서에 의해 한층 박차가 가해 질 것으로 내다보인다. 8월 28일자 선데이 타임즈에 따르면 그동안 아카데미의 손익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때, 정책 폐기까지 고려한 적이 있을 정도로 흔들렸던 블레어 수상은 아카데미 전환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지방교육청의 개입을 완전 봉쇄하는 내용을 골자로 담은 10월 백서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레어 수상은 97년 총선에서부터 ‘교육개혁’을 최대공약으로 삼았고, 그러한 개혁의 일환으로 ‘정부 재정지원에 민간인이 운영’하는 아카데미라는 형태의 학교가 지난 2002년 9월부터 도입됐다. 아카데미 학교는 8월 현재까지 17개교가 개교했으며 14개교가 완전 가동을 하고 있다. 노동당 정부는 이런 형태의 학교를 2010년까지 200개교로 늘리겠다는 청사진을 밝힌바 있다. 이런 학교들을 하나 개교시키기 위한 정부의 지원액은 2천만 파운드(400억 원)이며 이 정책을 실현 하기위해서 교육부가 계상한 예산은 약 10조원에 이른다. 이러한 정책을 선호하는 세력은, 피폐되어가는 학교에 대해 아무런 손을 쓰지 않고 있는 공립학교에 대해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는 학부모들이며, 반대 세력은 아카데미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게 되는 지방교육청과 고용조건이 불안해지는 교사 노조 등이다. 이러한 찬반 양대 세력간의 표면상 논쟁점은 공교육을 민간업자에게 맡길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이라든가, 투자액에 대한 효율성이라든가 하는 것들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논쟁의 초점은 과연 아카데미가 학생의 성취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아카데미가 설립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포괄적인 비교연구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가 없었고, 발표된 연구들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사례연구에 지나지 않아 어느 한쪽 세력을 승복시키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따라서 아카데미 효율성의 논쟁은 지난 3년 동안 끊이지를 않았다. 이러한 논쟁과는 별도로, 정부의 고민은 법령 개정의 문제로, 스폰서가 자신의 돈을 투자하여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지방교육청이 주어진 법적 지위를 이용하여, 관내 공립학교의 아카데미 전환에 비협조적이거나 또는 그것을 저지하고자 하면 전환이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혼란들로 인하여 야심적으로 시작했던 정책도 ‘조심스러워지는’ 스폰서들에 의해 3년째 들어와서는 호응도 시들해지고 신설 학교 수의 증가 속도도 둔해졌다. 하지만 지난 주 발표된 전국 중등학교 졸업생 평가시험의 결과가 나옴으로서, 최초로 아카데미 졸업생이 나오게 되었으며, 전국적으로 비교할 수 있고 또한 포괄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자료가 만들어 졌다. 이 결과에 의하면, 14개 아카데미 중에서 10개교는 공립학교 때 하향세를 보이던 학교 성적을 상향세로 뒤집었으며, 2개교는 동일, 2개교는 지속적 하향세를 멈추지 못했다. 더구나 상향세로 돌아선 10개교 중에는 전국 어느 중등학교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상승세를 나타낸 학교가 수 개교에 이른다. 교육부내 아카데미 정책의 추진 팀장인, 아도니스경은 “이 결과는 아카데미 정책이 작동한다는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제 200개교까지 확대한다는 정책에 대해 더 이상 망설여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우리는 이제 아카데미가 작동한다는 확고한 물증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러한 주장에 반해 전국교사노조 위원장 시놋트씨는 “시험의 결과는 학교장의 리더쉽과 효율성, 교사, 학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아카데미라는 학교의 신분과는 하등관계가 없다. 학교성적의 변화를 아카데미 전환 탓이라고 주장하는 정부의 모양새는 마치 불어오는 바람이 자기들이 입으로 불어서 바람이 불어온다고 주장하는 꼴이다”라고 정부의 주장에 냉소를 보냈다. 하지만 이러한 노조의 주장은 왜 다른 공립학교는 그러지 못하고 아카데미로 전환한 학교가 그러한 성적을 올렸는가에 대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주 시험 결과의 발표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보류상태에 놓여져 있던 10월 국회상정 백서에, 블레어 수상은 사인을 했다. 블레어 수상은 최근 수상관저에서 열린 잠재적 스폰서들이 모인 사적 회의에서 “궁극적으로는 모든 공립학교를 아카데미로 전환하고 싶다”라는 사견을 밝힌바 있다. 공립학교를 인수받아 아카데미로 전환하고자 하는 스폰서는 약 4억원의 조성금을 투자해야하고 정부는 이에 40억원 상당을 투자한다. 현재 런던지구에 7개의 아카데미 신설을 추진하는 아크 재단은 비영리업체로 등록되어 있으며, 기부금 모금 디너파티에서 20억원을 모금했다. 이 파티에는 리챠드 기어같은 배우들을 초청해 그와 함께 춤을 추는 기회를 ‘모금 상품’ 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왕따 문제 해결은 학교 하기 나름'이며 '가르치기 나름'이라는 교육적 믿음 하에 호주의 각급 학교는 '왕따 퇴치 전국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18일 멜버른을 시발점으로 시드니, 브리스번, 퍼스 등 전국 대도시로 확산된 학내 왕따 방지 프로그램의 공식 명칭은 '보다 좋은 친구 (Better Buddies) 운동'. '보다 좋은 친구 운동'은 폭력과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창졸간에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해 오던 자선 재단 ‘알란나 앤 메델라인’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동 보호로까지 활동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시작됐다. 왕따 방지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이 재단의 존 버트랜드 이사장은 출범식을 통해 "호주 학생들 6명중 1명꼴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전하며 "학창시절에 왕따를 경험한 학생들은 오랜동안 그 영향을 받으며 우울증은 물론 자살까지 초래할 수 있다"며 왕따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지난 2000년 멜버른 지역의 학교를 중심으로 첫 시행을 한 후 점차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5년째에 접어든 지금까지 전국 700개 학교가 동일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개별적 상황을 해결해가며 적극 동참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호주 어린이들은 매주 약 700명, 매일 14명 꼴로 폭력이나 범죄, 가정 내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재정적, 심리적, 정서적 보호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지역사회와 학교에서 심신의 상처를 입은 어린이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어두운 성장기와 나아가 희망없는 미래를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교사와 학생들로 하여금 소외된 아이들을 큰 품으로 보듬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전국에서 추진 중인 왕따 방지 프로그램의 핵심 내용은 '고학년 학생과 저학년 학생의 일대일 짝짓기'이다. 이는 동급생끼리 친구가 되는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학년차가 나는 학생들간에 교차적, 입체적으로 친구관계를 맺게 되면 결국 한 학교에 다니는 학우들 모두가 우정의 그물망에 엮기게 되어 왕따현상은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한 학교 울타리에 있는 전 학생들이 나이와 학년에 관계없이 소그룹별로 학교 행사에 참여하면서 아래 위 구분없는 우정의 디딤돌을 쌓게 하겠다는 것이다. 1학년 신입생과 6학년 졸업반 어린이가 짝이 되어 글짓기 시간을 가지고, 1, 3, 5학년 어린이들이 함께 요리 실습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학년이 뒤섞인 상태에서 소풍이나 야외학습을 나가도록 해서 고학년생이 저학년생을 돌보고 챙기는 경험을 자연스레 할 수 있게도 한다. 이런 교육과정과 학교 환경을 통해 어린이들은 마음의 빗장을 서스럼없이 열게 되고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의 호소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외동이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보다 좋은 친구' 프로그램의 나이차 짝짓기를 통해 우정을 넘어 마치 혈연같은 유대 의식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이점도 가진다. 자기와 맺어져 있는 저학년이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경우 누나나 형, 언니, 오빠의 입장이 되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게 되면서 성숙한 역할관계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믿는 절친한 관계에서 왕따를 시키는 일은 없다. 친구끼리 따돌리거나 친구 집단 내에서 왕따 현상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즉 감정이입, 상호 보살핌, 상대에 대한 존중, 남과 내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차이점을 수용하는 자세 등 긍정적 측면의 정서와 가치를 강화시키는 훈련을 받으면 왕따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이고 어두운 정서는 자연히 누그러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간접 경험 차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겪는 어린이, 폭력이나 도박에 노출되어 있는 아동, 가출 등으로 거리를 헤매는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아동 도서를 선정하여 책을 읽은 후 독후감 발표와 사례 분석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이를 위해 각급 학교는 지속적으로 저학년 학생과 고학년 학생을 한 명씩 짝지워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여 지속적인 정서훈련을 시킬 예정이다. '보다 좋은 친구' 운동은 학원에서 펼치는 '배움과 조화로운 삶 (learning and well-being)'의 최고 모델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교사와 학생이 일치가 되어 밝고 긍정적인 교육환경 조성에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학별 논술시험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에 따라 앞으로 대입전형에서 비중이 높아질 구술ㆍ면접고사가 어떻게 실시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부분 입시전문가들은 2학기 수시모집부터 각 대학들이 면접ㆍ구술고사를 새로운 전형 요소로 추가하고 상위권 대학들의 경우에는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영어와 한문, 수학, 과학 등 통합교과형 면접고사를 실시하는 등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합교과형 면접ㆍ구술 도입될 듯 = 각 대학들은 이번 2학기 수시모집부터 면접ㆍ구술고사를 새로운 전형 요소로 추가하고 문제 난이도를 더 높여 수험생간의 변별력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서울대는 이번 2학기 수시 모집에서 지역균형 선발전형의 경우 인문계 지원 수험생에 대해서는 영어와 한자가 포함된 지문을 제시하는 형태의 면접고사를 실시하고 자연계 지원학생에게는 수학 및 과학과 관련된 내용을 질문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외 1학기 수시에서 면접ㆍ구술고사를 시행한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미 영어, 수학과 관련된 심층면접을 시행했는데 이런 경향은 2학기 수시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고교 1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의 경우에는 수시모집이 올해 2학기 수시모집과 비슷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면 된다. 정시모집에서는 내신과 수능 모두 9등급제가 도입되면서 수능은 변별력이 떨어지고 내신은 학교간 학력 차가 반영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대학들은 우수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대학별고사로 논술고사나 면접ㆍ구술고사를 강화할 방침이었는데 이번 교육부의 논술 가이드라인 발표로 논술보다는 면접 구술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형 요강을 보완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 2008학년도 입시에서 대학들은 9등급으로 제공되는 내신과 수능을 점수화하면서 논술고사와 면접 구술고사까지 가능하면 많은 전형 요소를 다양하게 활용, 우수 학생을 선발하고자 할 것이다. 결국 수험생 입장에서 보면 논술고사에서 영어 지문은 없어지겠지만 수능 외에도 면접에서 영어 지문이 그대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영어 공부는 여전히 그 비중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성학원 이영덕 평가이사는 "이번 2학시 수시에서 고려대와 서강대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고3 수험생은 영어 공부를 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서울대와 연세대를 지원할 경우에는 영어 면접 대비를 여전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술 영어지문 없어지지만 유형은 다양화될 듯 = 논술시험에서 영어지문은 사라지겠지만 그 유형은 다양화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최근 논술고사에 해당되지 않는 가이드라인 기준으로 ▲단답형 또는 선다형 문제 ▲특정 교과의 암기된 지식을 묻는 문제 ▲수학이나 과학과 관련된 풀이과정이나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 ▲외국어로 된 제시문의 번역이나 해석을 필요로 하는 문제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지난 1학기 수시모집에서 논술을 시행한 대학의 문제를 분석해 보면 첫째와 둘째 항목에 해당되는 문제는 거의 없는 것으로 입시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고려대와 이화여대, 중앙대, 동국대 등 은 수리논술을 시행했는데 교육부의 세번째 논술 가이드 라인때문에 2학기 수시부터 일부 대학의 수리논술 출제방향이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대의 1학시 수시 수리논술 일부 문제는 본고사라기보다는 논술고사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데 일부 문제는 논술고사 기준에 맞게 보완, 출제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리논술은 수와 식을 이용한 풀이형 문제가 아니라 수학적인 기본 개념을 활용, 수학적인 사고를 평가하는 서술형이나 논술형으로 유형이 바뀌어 출제될 것으로 보인다. 수험생 입장에서 단순히 수학이 아닌 수학적인 개념이 응용된 형태로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될 것이다. 언어영역에서 제시된 영어지문은 앞으로 출제될 가능성이 없어졌다. 따라서 대학들은 우리말로 된 언어영역의 지문을 더 다양하게 제시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개발할 것이다. 정시모집의 논술고사 유형인 일반 논술형 문제의 길이를 줄이고 문항 수를 늘려서 출제할 가능성도 있다. 종전 수시 논술고사에서는 대체로 문제 유형이 요약형과 논술형으로 출제되는데 이런 유형이 더 다양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고교 1학년생 뿐 아니라 고교 3학년까지 모든 수험생들은 입시 전략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현재 고교 2학년과 3학년의 경우 정시모집에서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정시에서는 수능 비중이 절대적인데다가 논술도 대체로 일반 논술형태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수시모집에서 논술고사를 시행하는 대학들은 출제방침을 정부의 논술고사 기준에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2007학년도부터는 논술고사에서 영어지문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수학이나 과학지식을 바로 평가하는 문제를 출제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수시 논술고사는 반영 비율이 낮아질 가능성도 높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교원연수·평가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통합적 교원평가제' 도입을 제안해서 교원평가제를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학부모 단체와 협력해 관련 내용을 담은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기존에 교육부에서 주장했던 평가안의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단지 수업능력뿐 아니라 생활지도, 학급경영, 학부모와 의사소통 등 다양한 영역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기존의 평가안과 다소 차이가 있는 점이다. 오히려 기존의 평가안에서 더 후퇴한 느낌이 든다. 교원들의 의견은 교사가 교사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여건이 조성된 후에나 교원평가를 논의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여건 개선을 위한 별다른 노력 없이 또다시 평가를 하기 위해 '통합적 교원평가제'의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수긍이 가지 않는다. 이 내용을 좀더 확대 해석하면 교원평가제를 도입해야 교원의 재교육인 연수가 활성화 될수 있다고 잘못 보는 것은 아닌가 싶다. 또다른 교원평가 문제를 들고나와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일이 생길까 염려스럽다. 우선은 모든 교육적 여건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다음에야 교원평가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관련법안 제출이 당론으로 정해진 것인지 이주호 의원 개인의 의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좀더 시간을 두고 검토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싶다. 이 의원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오래전부터 검토를 했었는지, 아니면 최근에 이슈를 가지고 정리를 한 것인지 궁금하다. 최소한 어떤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집중적인 검토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고 본다. 빠른 실행을 목표로 졸속 추진되는 정책이 성공한 예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조전혁 / 인천대 교수,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공동대표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과 관련한 논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대통령의 ‘나쁜 뉴스’라는 평가에 정부․여당 그리고 일부시민단체들은 ‘막말’까지 동원해가며 서울대 때리기에 나섰다. 이에 대해 서울대 교수협의회, 전국국공립대학교수협의회 등은 "서울대 입시안 파동은 대학의 순수한 교육적 개혁조치를 정치적으로 해석해 호도한 것이고 헌법이 보장한 대학의 자율성 침해로 규정한다"며 "이와 유사한 정부 간섭에 강력 대처해 나가겠다"는 말로 서울대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모 경제단체가 주최한 모임에서 통합교과형 논술을 강행할 뜻을 피력했고 나아가 “고교평준화 제도도 재고(再考)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단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논술고사 논란뿐만 아니라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고교등급제 논란 등 대학의 학생선발 방법의 변경은 어김없이 사회적 저항이라는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신뢰할 수 없는 내신, 변별력 없는 수능제도’ 하에서, 대학으로서는 ‘최소한도’의 자율성을 발휘한 고심(苦心)과 타협의 산물이다. 사실 대학의 자유는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의 하나다. 물론 우리 헌법은 공익을 위한 기본권 제한을 허용한다. 그러나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나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것이 과연 공익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이에 대한 명확한 논증이 없이 서울대의 입시안을 규제할 경우, 정부는 ‘대학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신입생 선발과 관련한 대학의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규제의 잣대를 들이대 왔다. “논술고사는 사실상 본고사 부활이다” “고교등급제는 차별이다” 등 규제의 논리도 다양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이러한 규제논리는 합리적이고 타당한가? 안타깝게도 정부의 그 어떤 규제논리도 비합리적이고, 타당하지도 않으며 나아가 반헌법적이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교육과 관련한 많은 실증연구결과는 정부의 규제논리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먼저 “평준화는 과연 평준화에 기여했는가?”라는 질문에 정부는 결코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다. 유독 교육부만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다양한 교육자료들은 학력격차가 현재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이며 나아가 확대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몇 가지 증거를 들어보자. PISA 2000년도의 읽기성적을 전국의 고등학교별 평균점수로 살펴보았을 때 전체 150개 학교 중에서 최상위권 학교와 최하위권 학교간의 평균점수차가 무려 200점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다시 인문계 학교만을 비교해 볼 경우에도 150점의 격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자료는 전국의 고등학교별로 실로 엄청난 학력격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2001년도 치러진 전국규모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도 동일한 결과를 나타내었다. 조사대상 175개 고등학교 중 최상위 10%에 속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전체 대상학교 중에서 무려 39.4%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고려대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입시자료를 분석한 결과도 학교별 학력격차 현상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전국 1847개 고등학교 중에서 수능성적 상위 10%에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학교가 823개나 되며, 재학생 전원이 수능성적 상위 10% 이내에 들어 있는 학교가 3개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능점수를 통한 분석 역시 우리나라 고등학교간의 학력격차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증명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은 ‘고교등급제는 인권침해(人權侵害)’라고 주장하면서 학력격차를 입시사정에 반영한 일부 대학에 대해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거꾸로 뒤집어보면 그들의 공격논리와 정확히 같은 논리로 공격당할 수밖에 없다. 앞서 소개한 고려대 입시자료 분석에 따르면 823개 학교의 ‘전교 1등’들은 나머지 학교의 전교 50등에도 미치지 못한다. 극단적으로 재학생 전원이 수능성적 상위 10%에 속하는 3개 학교에 간다면 이들의 성적은 최하위를 기록할 것이다. 다소 과장하면 ‘무늬만 1등급’인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무늬만 1등급과 진짜 1등급을 차별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고교등급제 포기는 더 많은 수의 ‘진짜 2등급’과 ‘진짜 3등급’에게 역차별을 강요하는 인권차별이다. 아울러 이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학력차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대학의 직무유기가 아닐까. 필자는 고교등급제 반대론자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다. 고교등급제 반대론자들의 인권차별 주장도 옳다. 그러나 똑같은 논리로 그 대척점(對蹠點)인 고교등급제를 포기하는 것 역시 인권차별이다. ‘어떤 것이 옳고, 정확히 그 반대도 옳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그렇다. 고교등급제에 대한 찬반논쟁은 어쩌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다른 한 편으로 고교등급제 반대론자들은 현재와 같은 학벌주의, 대학서열화 체제 내에서 고교등급제는 서열화를 더욱 강화하고 때마침 맞물린 대학의 선발권 강화는 등급제를 구조화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일부 강경론자들은 이러한 폐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대학마저 평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사실 우리 사회에 학벌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학벌주의가 심각하다는 주장은 어쩌면 피해자(?)들의 과장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예컨대 작년 국정홍보처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학벌주의에 대한 설문조사는 이런 가능성을 증명한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7.7%가 “우리사회에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이 심각하다”고 대답한 반면, “실제 사회생활에서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31.9%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우리사회에서 학벌주의가 실재보다 과장되어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민간부문의 빠른 성장은 최근 대부분의 사회영역에서 민간부문이 정부부문을 압도하게끔 만들었다. 능력에 근거하지 않은 학벌주의는 결국 기업 및 단체의 경쟁력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고도지식산업사회에서는 개인의 창의력과 능력이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아래서 학력주의는 논리적 근거를 잃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최근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내 모그룹의 신입사원 특강시리즈에 참여하고 있다. 수강생 프로필을 통해본 신입사원들의 출신대학 분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소위 ‘스카이 대학’ 출신은 전체의 20%에 채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공계 신입사원의 경우 사회적으로 명문취급을 받지 못하는 어느 지방대학 출신이 가장 많았다. 학벌주의는 실재보다 과장되어 있거나, 사회변화에 따라 빠르게 완화․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와 논거가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벌주의에 따른 폐해를 부단히 주장함으로써 사회적 공포를 유발․조장하고, 이를 고교등급제 반대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전형적인 ‘저급(低級) 정치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독일, 프랑스 등 우리보다 앞선 나라에서도 문제점이 많아 포기하려하는 대학평준화까지 주장하는 것은 그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케 한다. 혹시 이들은 “계급(階級)이 국가나 국민보다 우선되는 가치다”라는 사회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의 현 교육시스템은 ‘국가에 의한 교육독점’과 ‘평준화’가 잉태한 저주받은 기형아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원인을 그대로 두고 어떠한 교육정책에 관한 논의도 결국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교통시스템 자체가 잘못돼 있는데 신호등 한두 개를 고친다고 교통흐름이 나아지겠는가. 오히려 고치려고 나서면 신호체계는 점점 꼬여만 가고 운전자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킴으로써 전체 교통흐름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고치고 또 고쳐도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교통체계와 비유하자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나 고교등급제 금지는 녹색신호가 교통사고를 부른다고 섣불리 예단하고 모든 신호등을 적색으로 바꾼 격이다. 일견(一見) 좋은 취지의 정책이 ‘항상’ 왜곡된 결과를 초래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시스템적 결함’ 때문이다. 현 교육시스템의 가장 큰 결함은 ‘좋은 것을 추구하는 인간본성’을 억압하는데 있다.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과 사회의 본질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좋은 학교를 원하고, 학교가 좋은 학생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모두가 좋은 것만을 추구해서 문제가 생기니 차라리 좋은 것을 없애자’는 식과 다름이 없다. 그 구체적인 증거의 하나가 고교평준화가 초래한 ‘하향불평준화(下向不平準化)’다. 그 어떠한 사회시스템도 유인(誘引)구조가 허약할 경우 생산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사회주의 경제가 왜 망했는가? 사회주의가 내거는 평등, 공평 등의 구호들은 절절(節節)이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호소력을 가졌지만 사람의 행동을 유발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유인구조는 사회적 자원을 낭비시킨다. 사교육의 기승, 공교육의 피폐는 바로 이러한 잘못된 유인구조에 기인한 바가 크다. 현재의 교육시스템 하에서는 학생도, 교사도 학교교육에 충실할 이유가 없다. 학교가 학생들의 놀이터거나 낮잠장소가 된 것도, 교사들이 관료화되고 학교가 관청화된 것도 바로 이런 잘못된 유인구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교육이 지속적으로 황폐화되고 있는 또 다른 주요요인은 교육의 국가독점이다. 우리 교육시스템은 공급주체인 국가가 교육의 유인구조를 결정하는 실로 편향적인 시스템이다. 일반 시장에서라면 유인구조는 거의 절대적으로 소비자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에서 교육소비자인 학부모와 학생은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 그동안 수많은 교육개혁실험이 있었지만 모두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식정보산업사회에서 개인의 능력과 창의성 개발은 필수적이다. 때문에 현대의 교육소비자들은 보다 다양한 소비자욕구에 부합되는 교육을 원한다. 그러나 최종교육공급자인 일선학교는 이러한 소비자의 욕구에 맞추어 변신할 수 있는 능력도 의욕도 없다. 예컨대 학생들이 중국어, 일본어, 서반아어를 제2외국어로 수요하더라도 기존교사의 수에 맞추어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그런 시스템이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공급이라도 수요를 창출했으면 좋으련만,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 공급과 수요가 각자 따로 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우리의 교육 게임은 모든 교육주체가 피해자가 되는 ‘잃는 게임(loser's game)’을 피할 수 없다. 현재 비난받고 있는 대학도 역시 피해자의 하나다. 사회에서는 불량품을 양산한다고 아우성이고, 불량원료(?)를 최소화해 품질관리를 하겠다고 하면 차별이니, 정부정책에 따르지 않는다느니 온갖 비난을 쏟아 붓고 간섭한다. 대학인들 국․영․수 문제풀이 기술자를 선발하고 싶겠나. 문제는 획일화된 교육과정과 정부간섭에 있다. 세상이 어떻게 또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 지에는 눈과 귀를 닫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고집스레 강요하는 시민사회단체들도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양하고 독특한 가치와 커리큘럼이 서로 경쟁하고, 대학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까지 자율성이 신장되고 그에 걸 맞는 책임을 지지 않는 한, 우리 교육 시스템에서 엇박자는 계속될 것이고 사회적 혼란과 국론 분열은 가중될 것이다.
이민정 / 한국교총 교육정책연구소 연구원 사회적으로 파장 일으킨 고교 등급제 작년 9월, 교육부는 일부 사립대가 수시전형에서 고교등급제를 실시하였다는 전교조와 일부 학부모단체의 의혹제기를 토대로 서울시내 몇 개 사립대를 대상으로 고교등급제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2005학년도 수시1학기 전형과정에서 일부 대학이 고교간 학력 차이를 학생들의 서류평가에 반영하는 형태로 고교등급제를 실시한 것이 밝혀졌다. 이 대학들은 고교 내신성적을 불신하여 학교생활기록부 교과성적의 실질반영률은 낮추는 반면 서류평가, 논술․면접의 영향력은 높이고 지원자 출신고교의 최근 3년간 해당 대학의 입학자수, 수능점수 등을 서류전형에서 반영한 것으로 나타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고교등급제는 출신 고교의 진학실적이나 수능성적 등을 토대로 고교의 등급을 매기고, 이 등급에 따라 대학입학 전형시 특정고교 출신 학생들의 내신성적에 가산점이나 감점을 부여하여 고교간 학력수준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기여입학제․본고사와 더불어 '3불정책'으로 금지되고 있는 사항이다. 이러한 전형방법은 학생 개인의 능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학생 개인과 관련 없는 외적 요소에 근거한 평가로 공정한 전형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학교간의 학력격차를 무시한 채 학생을 선발한다면, 우수한 학생들이 역차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고교등급제는 간단히 거부할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이 글에서는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의 관점에서 고교등급제를 둘러싼 쟁점들을 살펴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개선방향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실재하는 학력차 무시가 오히려 차별 고교등급제는 1999학년도 대학입시부터 특수목적고 출신 학생에게 적용되던 비교내신제가 폐지되고, 2002학년도 대입전형부터 다양한 전형기준과 학교생활기록부의 반영이 강조되면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대학이 요구하는 특정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미리 선발하기 위하여 도입된 수시모집제도가 각 대학들의 성적 우수학생을 선점하기 위한 조기입학제도로 변질되면서, 대학 측에서의 고교등급제의 필요성은 높아졌다. 내신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능성적 없이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고교등급제는 대학으로서는 상당히 필요성이 높았던 제도였다. 대학을 비롯한 고교등급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측의 도입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간 학력차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므로 이러한 차이를 대입전형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특목고 학생들의 내신성적과 일반고 학생들의 내신성적을 동일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차별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해당 대학에 지원한 학생과 학교 측에서 학생성적에 대한 정확한 판단자료를 제공해야하나, 실제로 고교에서 제공하는 전형자료들은 내신 부풀리기 등으로 변별력이 부족하고 신뢰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교등급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2008학년도 이후부터는 내신과 수능 성적이 9등급으로 표기됨에 따라 두 중요한 전형자료의 변별력이 더욱 약화될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내신 반영비율 또한 확대해야 되기 때문에 대학 나름의 내신성적에 대한 판단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적이지 못한 제도로 용납 어려워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고교등급제의 실시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내신성적이 전형자료로서의 효용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학 자체의 우수학생 선발 기준을 만들려는 시도 자체는 바람직하나, 학생 개인의 성취와는 무관한 고교등급제는 교육적이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렵다. 우선, 고교등급제는 학생 개인의 성적이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출신학교 학생들의 성취수준이든 진학실적이든 외부기준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므로 공정하지 못하다. 특히 평준화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전국의 고등학생의 약 60%가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받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없다. 대학입학이 학생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출신학교나 거주지역에 의해서 영향 받게 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또한 고교등급제는 대학이 원하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고자 하는 수시모집의 취지를 부정하고, 오히려 경쟁적으로 다른 대학보다 먼저 성적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 원래 수시모집제도는 학업성적이라는 획일화된 학생선발기준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특기와 적성, 경력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여 대학교육에 다양성과 창의성을 더하고자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였으나, 우수학생의 기준을 성적으로만 판단하는 대학들의 안일한 태도로 인하여 그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입시준비가 가정환경, 사교육 등 배경변인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현실에서 고교등급제 도입은 교육여건이 불리한 처지의 학생들이 선발될 여지를 차단할 우려가 있으며 이는 계층간․지역간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 문제 일반적으로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대학의 고유 권한이며 대학의 자율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고교등급제를 비롯한 기여입학제, 본고사 등 그 실시 여부는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정부차원에서 항상 규제가 있어왔으며, 현재까지도 3불정책과 같은 입장을 고수하며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대학입시에 규제를 가하게 되는 것은 학생선발을 위한 교육적 필요가 아니라 사회적인 필요에서부터 출발한다. 대학에서의 학생선발은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후 개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사회적 선발까지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집단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 또한 존중해야 하지만 사회적 공공성도 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고교등급제 문제도 이러한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 사이의 갈등에서 출발한다. 대학의 학생선발 편의를 위하여 고교등급제를 활성화 할 경우, 대학에서 선호하는 지역과 학교로의 학생 이동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겐 위화감을 조성하게 되어 지역간․계층간 갈등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학교간 학력차로 인하여 대학들이 원하는 학생을 선발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심각한 사회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전형방법을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하기는 어렵다. 즉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은 대학교육의 사회적 공공성의 가치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고교등급제 문제에 한해서는 대학의 자율성보다는 사회적 공공성 측면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입시가 사회에서의 선발기능을 대신한다고 보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러한 기능을 어느 정도 담당하고 있는 만큼, 학생선발에 공정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 학교별 학력차가 존재한다고 해도 학교별 등급을 결정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고교등급제는 대학입시에서의 사회적 공공성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교등급제를 실시한 일부 대학의 문제를 가지고 지나치게 대학을 공격대상으로 삼아 갈등을 증폭시켜 대학의 자율성을 위축시키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PAGE BREAK]여전히 존재하는 학교 간 학력의 격차 대학입시에서의 사회적 공공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여전히 학교간 학력차 문제는 남아있다. 교육에 있어 평등은 소중한 가치이지만, 이는 교육기회의 평등이지 교육결과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공공성을 위한 정부의 입시규제나 변별력을 약화시키는 조치들 또한 바람직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고교등급제도 학생선발에 대한 변별력이 확보되지 못하여 고교간 학력격차를 변칙적으로 반영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실질적인 학력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도외시하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나 불평등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목고나 성취수준이 높은 학교 재학생의 경우는 역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학력차이는 인정하되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학교와 학생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지역간․학교간 학력차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교육여건을 비롯한 외부 환경으로부터 발생한 것은 아닌지, 지역간․학교간 학력차를 줄이고 모든 학생의 학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살펴보고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이다. 고교등급제 논쟁은 대학의 고교 내신성적에 대한 불신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고교 내신성적 자료가 학생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였다면 고교등급제는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학교생활기록부를 교과성적 위주의 서열화 자료가 아닌, 학생의 학업성취기준 도달 정도에 대한 객관적 제시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대평가로 성적을 표기할 경우 학교간 학력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고교등급제, 본고사를 비롯한 내신 이외의 다른 대학별 전형들이 불가피해진다. 둘째, 고교 교육과정 평가에 대한 객관성․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학년별․교과별 교육과정에 따라 학업성취기준을 개발하고, 이에 근거하여 학생들의 성취도 수준을 엄정하게 평가하여 교사평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셋째, 이렇게 작성된 고교 학업성취 결과를 대학별․모집단위별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 측은 다양한 전형방법 개발해야 대학은 학생선발에 있어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도록 자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첫째, 대학은 성적위주의 학생선발에서 대학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을 선발하는 데에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활용하여야 한다. 대학교육에 필요한 자질을 타당하고 신뢰롭게 평가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모집단위별 특성을 반영하여 다양한 전형방법을 개발․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대학의 학생선발은 그 자체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적 선발기능도 어느 정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공공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학교간 학력차를 반영하여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이라면 누구든 적절한 고등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불리한 계층에 대한 배려 또한 필요하다. 고교등급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지역간․학교간 학력격차를 없애는 것이지만 이는 실제로 불가능한 것이다. 다만 학생 개인의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교육여건 불평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학력격차의 문제에 대해서는 교육기회의 평등한 제공 차원에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수준에서 학력진단 평가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부진학생에 대한 책임지도를 강화하고 학생의 수준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 및 다양한 교수․학습자료를 개발하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불평등한 교육여건으로부터 학력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소외지역,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 학대를 통하여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대학의 학생선발은 일반적으로 대학의 자율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는 일정 부분 사회적 선발기능을 대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대학의 자율성과 더불어 사회적 공공성 또한 확보될 수 있어야 한다. 고교등급제는 대학의 고교 내신에 대한 불신, 학생선발의 변별력 저하 등으로 인하여 대학이 자율적으로 개발한 전형방법이지만 학생 개인의 성적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고교 등급을 나누고 이를 전형에 반영한 것은 공평하지도 신뢰롭지도 못하다.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에서는 신뢰로운 내신성적을 산출할 수 있어야 하며, 대학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교육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학생평가기준을 만들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정부 차원에서 학력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신현호 / 경기 안산 단원고 교사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의 일부 사립대학들의 통합형 논술을 통한 학생선발과, 특목고학생들을 동일계 선발이 아닌 특기자 선발로 확대함으로써 특목고 특혜라는 신(新)고교등급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잘하는 학생이 피해보는 것은 문제 논란의 핵심은 내신을 강화하여 대학입시를 치름으로써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비를 절감하자는 취지이다. 그렇지만 대학입장에서는 학교마다 실력이 다른데 일률적인 내신적용과 내신의 비중 강화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를 살펴보면 평준화지역, 비평준화지역, 특수목적고, 자립형사립고, 실업계고 등 다양한 형태가 있고, 학생들의 학력도 도농간, 강남북간의 차이에서 보듯이 지역별, 학군별, 학교별 차이가 완연하다. 일부 대도시에만 평준화가 존재하지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고등학교는 비평준화 지역에 있다. 이렇게 다양한 교육과정과 학력차이를 무시하고 동일하게 학교 내(內) 상대평가를 통하여 입시에 비중을 높인다는 것도 비정상적인 말이다. 교육부의 2008 학년도 대학입시안이 상대평가로 인한 내신비중의 강화로 인하여 현재 고1 교실은 큰 혼란을 맞고 있다.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고액의 사교육과, 고위층자녀로 무장된 듯한 여론과 언론의 비판은 어이없을 정도다. 3불 정책(본고사 금지, 기여입학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을 찬성하는 쪽이 기득권층이라고 하는 의견이 있는데, 노력하여 공부를 잘하는 것도 기득권층인지 묻고 싶다. 필자가 특목고에서 학생을 지도한 경험에 따르면 그들은 어려서부터 바른 가정교육과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학생들로 대부분 서민의 자녀이고, 바른 국가관과 창의성을 지닌 이 나라의 인재임에 틀림이 없다. 내신 비중의 확대는 곧 이러한 수월성 교육을 받고 있는 일부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등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학교 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평준화라는 말은 참 듣기 좋은 말이지만, 똑똑한 인재를 키워 성장시키는 것도 국가의 몫인데, 잘하고 열심히 하는 학생에게 피해가 간다면 이 제도도 문제가 있다. 모든 고교 내신 동일취급은 부적절 이 때문에 고교등급제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교등급제를 반대하는 논리는 잠재적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어려운 가정환경․사회적 조건과 교육인프라 등의 제약으로 인하여 가능성의 기회조차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 대학에 농어촌 전형이나, 서울대 입시안의 예를 들면 어려운 지역의 실정을 감안하여 지역할당제 등으로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 그런데 열심히 공부하고 잘하는 학생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특목고의 경우 일반계고처럼 학생들이 0.05%, 0.1%라는 내신을 받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목고 학생들의 내신경쟁은 너무 치열하고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 있어서 전교 1등의 석차백분율도 7~8% 정도이다. 따라서 정시모집의 일반전형으로는 일반계고 학생들에게 내신성적에서 뒤져 수능이나 논리력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도 입시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만회해 주기 위한 특목고에 일부 쿼터를 정해 선발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것이 신(新)고교등급제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전국 2095개의 고등학교에서 서울대에 수시든, 지역할당이든, 정시든 진학시킨 고등학교는 823곳이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고교의 내신을 동일하게 취급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이것이 평등에 어긋나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횡포라 운운하는 것은 진정으로 노력하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본다. 학생 선발의 권한은 대학에 맡겨야 고교등급제를 그 대학에서 실시하든 실시하지 않던, 대학은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여 살아남아야(?)하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 그 대학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시스템을 못 갖추고 일부지역에 편향적이라면 그 대학은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것이고 지역주의 대학으로 낙인찍혀 사회적 인식이 추락하고, 대학으로서의 위상의 실추와 나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실력이 있는 학생이 그 대학을 못 갔다면 그 좋은 실력으로 자신을 뽑아주는 더 좋은 대학을 가서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면 되는 것이다. 고교등급제는 평등지상주위와 학력지상주위를 부추기는 일부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더 이상 이런 소모적인 논쟁은 없어야 하겠다. 고교등급제와 관련하여 학생 선발권과 관련한 일련의 사항은 대학에 맡기는 것이 옳으며, 우리는 그 대학에 대하여 건전한 비판과 조언을 하고 늘 지켜보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글 | 박하선/사진작가·여행칼럼니스트 필리핀 북단에 위치한 원시 세계 이른 아침에 닭 우는 소리에 잠을 깬다. 한 마리가 목청을 돋우자 여기저기서 경쟁을 하듯 울어 댄다. 선잠을 깬 상태에서도 그 소리가 제법 구수하게 느껴진다. 이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면 잠자리에 누운 채로 머리맡의 담배를 찾아 물었을 것이지만, 나는 그냥 누워서 멍청하게 허공만 쳐다보면서 여기가 어딘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목청이 찢어져라 계속되는 그 닭들 울음소리에 그만 구수함도 사라져서 모기장을 걷고 잠자리에서 빠져나온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저놈의 닭들에게는 일요일도 없는 모양이구나' 하고 투덜대면서 창문을 열어본다. 야자수 너머로 동이 터 오고 해변의 물결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온다. 여기는 필리핀의 외딴곳 '엘니도'라는 곳이다. 요 며칠 동안 원시의 꿈에 젖어 이곳저곳을 헤맸고, 이 한가로운 어촌의 한 코티지에서 들려오는 저 물결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자리에 들지 않았던가. 아, 오늘도 그 원시의 세계에 묻혀 지낼 수 있다는 것을 그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엘니도의 아침을 시작한다. 오늘도 코티지 안주인이 점심으로 마련해 준 샌드위치와 바나나 몇 개만을 들고서 전세를 낸 방카를 타고 무인도들을 찾아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나선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을 등지고 야자수들 사이에 들어서 있는 마을의 집들에서 아침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또 길가의 조그마한 구멍가게들이 정겹다. 어젯밤 몇몇 여행자들이 들어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던 곳은 밤늦도록 있어서인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선착장에는 간밤에 그물을 쳐 고기를 잡은 어선들이 돌아와서 마을 사람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리고 있다. 양손에 다랑어(Tuna) 한 마리씩을 집어 들고 물길을 걸어 나오는 소녀의 웃음이 해맑다. 그걸로 아침식사를 마련할 모양이다. 생선 값을 물어보니 물어 본 내가 죄스러울 정도로 거저나 다름없다. 아직도 이곳 엘니도 사람들은 세속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이 '엘니도'라는 곳은 필리핀에서도 가장 사람의 때가 덜 묻어 자연관광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팔라완' 섬의 북단에 위치한 오지다. 이 일대는 빼어난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교통이 불편한 오지여서 세계 각국 여행자들이 이 엘니도를 방문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물론 그 덕택에 아직껏 때묻지 않은 비경이 고스란히 간직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그 어원은 스페인어의 '제비가 있는 섬'이라는 것에서 유래한 것인데, 그 옛날 스페인 모험가들이 이 땅을 방문하여 제비가 대리석 섬들 사이를 날고 있는 것을 보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태초의 모습 그대로의 무인도 소금쟁이 같은 모양의 방카를 타고 비취빛 바다 위를 달린다. 늙은 방카 주인과 조수인 그의 아들,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만 탄 방카는 통통거리며 제법 잘 달린다. 넓은 곳에 나오니 수심이 50m나 되어서 아무리 맑은 바다라지만 물밑은 보이지 않는다. 사방에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이 흩어져 있다. 그 섬들마다 한결같이 수백 미터쯤의 수직 암벽이 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조그마한 백사장이 하얗고 가늘게 빛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저 무인도들의 그림 같은 백사장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40여분 걸려서 어느 무인도의 백사장에 닿는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 밑에 자리한 조그마한 백사장. 눈부시게 빛나는 고요가 감돌고 있어서 찰랑되는 물결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내가 이 백사장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은 아닐진대 그 어느 누구도 다녀간 흔적이 없다. 백사장 주변의 바위들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돋아 있고 몇 그루의 야자수를 제외하곤 온통 밀림이어서 한발자국도 들어설 수가 없을 것 같다. 무늬를 그리는 투명한 물밑으론 수많은 산호들과 그 사이를 오가는 열대어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 모든 것이 마치 태초의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 이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곳은 비단 이곳만이 아니다. 요 며칠 동안 찾아다녔던 섬들의 백사장마다 이처럼 원시의 멋을 한껏 풍기고 있지 않았던가. 그림 같은 백사장에 투명한 바다를 눈앞에 두고 어찌 보고만 있을 손가. 부담 없이 이 원시의 분위기에 몸을 던져 보는 거다. 수영이야 잘하든 못하든 아무 관계가 없다. 또 굳이 수영복도 필요 없다. 보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데 알몸이라고 해서 거칠 것이 어디 있겠는가. 어쩜 이 원시적 분위기에선 수영복을 입는다는 것 그 자체가 죄악일지도 모른다. 속인들이 만들어 놓은 관습을 벗어 던져 놓고 한때라도 대자연 앞에 솔직한 내 자신을 들어내 놓는다는 것도 멋스러운 일이다. 이래서 나 자신도 원시가 되는 것이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찾아오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오늘날 이 엘니도를 찾아오는 여행객들은 꽤 되지만 그림 같은 무인도의 백사장이 수도 없이 많아 모두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에 몇몇 섬을 제외하곤 자신만의 시간을 침해당하는 일은 드물다. 어촌에서 빌려 온 장비로 스노클링을 하면서 원시의 투명한 바다에서 형형색색의 산호들을 들여다보거나, 손에 잡힐 듯한 열대어들과 친구가 되면서 마음껏 즐긴다. 특히 알몸으로 물속을 헤치고 다니거나 백사장을 거닐다 보니 더없이 홀가분하다. 이때의 기분은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알몸일 때 가장 솔직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부부간의 갈등, 아니면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이런 곳에 와서 서로 알몸으로 한 며칠 지내면서 대화를 나누어 보도록 추천하고 싶다. 모든 것이 절로 풀려서 서로 잃었던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낙원 한켠에 공존하는 세속의 모습… 자외선이 강해서 피부가 금방 그을린다. 물놀이에 지치면 비취 파라솔을 대신하는 야자수 그늘에서 가져온 점심을 먹고 낮잠을 한숨 멋들어지게 자도 방해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가 다른 무인도의 원시의 낙원을 찾고 싶어 다시 방카를 타고 열대의 바다를 헤쳐 나간다. 한 무리의 물고기 떼가 짙푸른 해면 위로 연달아 뛰어 오른다. 다랑어인 듯싶다. 섬이 가까워지면 물빛이 다시 비취빛이 되면서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 보석처럼 맑은 물을 보면 그 어떠한 청량음료도 이렇게 맑지는 못할 것 같아 그냥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이 엘니도의 모든 섬들이 무인도인 것만은 아니다. '미니록'과 '팔랑가시안'이라는 두 섬에는 고급 리조트 시설이 되어 있다. 일본과 필리핀에 있는 두 기업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이 두 리조트 시설은 최고급이어서 서민들이 이용하기는 좀 벅찬 곳일 뿐만 아니라 투숙객이 아니고서는 허가없이 이곳에 상륙도 못하게 한다. 투숙객들에게 최대 안락한 분위기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사전에 엘니도 어촌에 있는 사무소에 들려서 무선으로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지만, 원시의 낙원 한 곳에 세속의 모순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 잠깐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하고 얼른 그 자리를 떠나온다. 편안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그곳이 좋을 것이다. 이 리조트의 프로그램에도 신혼부부를 무인도에 데려다 주는 것이 있다. 모든 것을 준비해서 백사장의 야자수 그늘에 내려놓고 방카를 비롯한 그 어느 누구도 약속 시간까지는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해서 둘만의 밀월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연상케 하는 아주 기막힌 시간이 될 것이다. 꼭 신혼부부가 아니더라도 투숙객이 원하면 점심 식사를 비롯하여 하루를 무인도에서 보낼 수 있도록 식탁까지도 운반해 주고 목이 마르다면 직접 야자수에 올라 야자도 따 준다. 좀 사치스러운 것이기는 해도 그러한 서비스에 젖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낙원에 온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원주민의 흔적은 텅 빈 오두막 뿐 이곳의 모든 무인도가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곳에는 바나나 잎으로 엉성하게 만든 텅 빈 움막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무인도에 표류해서 살다가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동화 속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지만, 알고 보니 제비집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기거한 곳이다. 이곳 엘니도의 이름에서 보듯 이곳에는 제비들이 많다. 그래서 제비집도 당연 많다. 예로부터 중국요리에서는 '제비집 스프'를 최고급으로 치고 있기 때문에 그 제비집들이 아주 고가로 팔린다. 그래서 이곳 원주민들은 철이 되면 이 섬 저 섬을 옮겨 다니면서 몇 날이고 절벽에 붙어 있는 제비집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철이 아니어서 이렇게 텅 비어 있는 채로 두 마리의 고양이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원히 간직해야 할 원시의 멋 발길을 어디로 돌려도 비취빛 맑은 바다와 인적없는 눈부신 백사장이 있어 꿈속 같은 곳이기는 하지만 이곳 엘니도는 분명 천국의 섬은 아니다. 단지 원시의 멋이 살아 숨을 쉬고 있는 이 시대의 숨겨진 보물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온갖 것에 잔뜩 찌들어 지친 몸을 쉬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그래서 결국 엘니도는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곳이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이 좋은 곳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한다면 뭇사람들이 뭐라고 말할까. 그것은 단지 엘니도의 원시적인 멋이 영원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엘니도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봤던 열 가지 주지사항 중 마지막 문구가 잊히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그 어느 것도 건드리지 말라" "발자국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남기지 말라" "추억 외에는 그 어느 것도 가져가지 말라" "시간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죽이지 말라" 이렇게만 지켜진다면 엘니도의 멋은 영원할 것이다. *엘니도의 환성적인 사진들을 새교육 9월호를 통해 확인해 보세요.
이상익 / 영산대 교수, 철학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교원의 권위는 추락할 만큼 추락하여, 더 추락할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초중등학교의 경우 얼마 전까지는 ‘촌지 문제’가 교사의 권위를 추락시키던 주범이었는데, 최근에는 ‘성적조작 문제’까지 불거져 교사들의 권위를 또 한번 거꾸러뜨렸다. 대학에서는 ‘성희롱’이나 ‘연구비 유용’ 등이 교수들의 권위에 먹칠을 하는 단골 소재로 등장한 지 오래되었다. 그리하여 교원들의 권위나 사회적 위상은 나날이 추락하는데도, 요즘 교직을 원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증가하여, 교직에 진입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고 한다. 교사의 위상은 추락하고 있는데도 교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느는 까닭은 무엇일까? 현실적으로 보자면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간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답변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 까닭을 “교직은 ‘철밥통’으로 불황기 최고 인기직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매우 현실적인 답변이겠지만, 또한 매우 위험한 답변이기도 하다. 이들의 생각에 의하면 교육은 서비스산업이요, 교직은 서비스업종일 뿐이다. 그렇다면 시세(市勢)에 따라 부동(浮動)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들에게 우리의 교육을 맡겨둘 수 있는 것인가? 우리의 교육현실을 개선하고자 조금이라도 고심한다면, 우리는 고육책(苦肉策)으로 다른 답변을 찾아내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사후적(事後的)으로라도 ‘교직의 사명’을 새롭게 각성시킴으로써, 이해(利害)에 부동하는 서비스업종과 교직을 차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근래의 ‘교원평가제’에 대한 논란도 근원적으로 교육 또는 교직의 본질에 대한 인식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필자가 대략 알기로는, 교원평가제를 찬성하는 논리는 교육의 질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원들을 평가하여 차등적으로 대우해야 하며, 교원의 평가에는 수요자들인 학생이나 학부모도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짐작하기에 이러한 논리의 저변에 깔린 전제는 ‘교육은 서비스산업’이라는 것이다. ‘교육의 경쟁력’ 운운하는 것도 그렇고, ‘수요자(고객)의 평가’라는 것도 그렇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생각이 점차 확산되고 있으며, 대학교육은 이미 시장경쟁의 논리에 내맡겨져 있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구태의연하게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가’하는 물음을 다시 던져본다. 우리는 흔히 교육을 ‘지식기능 교육’과 ‘인격덕성 교육’으로 대별한다. ‘지식기능 교육’은 피교육자가 원하는 지식과 기능을 전수하는 것이니, 이 측면에서는 교육은 서비스 산업과 유사하다. 외국어를 가르치고 컴퓨터를 가르친다는 점에서는 공교육기관은 저자거리의 사교육기관과 다를 바가 없다. 요즘에는 사교육기관에서 더 잘 가르친다는 소문도 공공연하다. 그렇다면 공교육기관을 폐지하고, 사교육기관에 일임하면 좋을 것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인격덕성 교육’이 교육의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격덕성 교육’은 피교육자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교육자의 입장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교육해 가는 것이다. 이는 ‘고객’이 원치 않는 것도 강요하는 것인바, 이 측면에서 교육은 서비스 산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사교육기관에 인격교육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또 인격교육에서는 피교육자를 한 사람 한 사람 감화시키는 것이 중요할 뿐, ‘교육의 경쟁력’이란 애초에 어불성설(語不成說)인 것이다. 교육을 단순히 서비스산업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데에 교직의 특수성이 있다. 그리고 교직의 이러한 특수성은 결국 교원 개개인을 ‘독자적인 권위체’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교사는 시세(時勢)나 주변의 평가에 영합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숙한 학생들은 교사의 심모원려(深謀遠慮)를 이해하지 못하고 호오(好惡)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지금 논의되는 방식의 교원평가제란 부적절할 수 있다. 요컨대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교원평가제에 대한 찬반은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교육을 서비스산업이라고 인식한다면 당연히 교원평가제를 시행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을 서비스산업 이상의 것이라고 한다면 교원평가제의 시행은 부적절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교원이 교직을 단순히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여긴다면 그에게는 교직이란 서비스업일 것이다. 서비스업 종사자는 고객의 평가를 달게 받아야 한다. 그런 교원이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면 그것은 ‘무사안일주의’로 밖에는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
이대영 / 서울시교육청 공보담당관실 장학사 최근 2008년 논술고사를 둘러싼 본고사 논쟁이 한창이다. 그러면서 꼭 나오는 이야기는 ‘대학별 논술고사는 공교육만으로는 준비가 안 되고, 사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마치 공교육의 한계성과 사교육의 우월성을 대조하는 듯한 이러한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 공교육 신뢰회복의 방안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속성을 비교하면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공교육에는 경쟁이 없고, 사교육에는 경쟁이 있다고 한다. 교사는 ‘철밥통’으로 신분이 보장되고, 학원강사는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한다고도 한다. 공교육은 원하는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일정조건이 갖춰진 일반 다수를 위한 것이고, 사교육은 원하는 부분을 원하는 대상에 맞춘 교육으로 본다. 교사는 잡무가 많지만, 학원강사는 잡무 없이 수업에만 전념하면 된다고 알고 있다. 공교육에는 투자가 별로 없지만, 사교육은 적극적인 투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전인교육을 해야 하지만, 학원은 오직 시험을 잘 치르는 방법만을 가르치면 되기 때문에 사교육이 공교육을 능가한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공교육과 사교육을 보는 시각의 일 부분이다. 이런 현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입시가 치열한 교육현실에서 우리의 학부모․학생들은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사람은 공교육은 항상 ‘피해자(被害者)’고 사교육은 ‘피의자(被疑者)’로 지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인 논리는 우리 교육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공교육도 어떤 의미에서는 사교육을 도입하였다. 특기적성교육이란 명목으로 행하는 교과관련 방과후교육활동, 학원강사를 동원한 교육방송(EBS) 강의, 일부 학교에서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시행하는 논술특강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기존의 인식을 거꾸로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장점이 많은 사교육이 오히려 부실한 공교육 때문에 악으로 매도당하는 ‘피해자(被害者)’라고 말이다. 공교육이 사교육의 치열함과 서비스 정신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수입면에서도 교사와 강사는 대조된다. 학원강사는 돈을 많이 벌고 교사는 봉급이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위 언론에서 말하는 억대 수입을 올리는 스타강사는 극소수이다. 그들을 학원강사 전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 상당수의 학원강사는 현직교사보다 적은 수입에 신분보장도 안 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현직교사 못지않은 잡무에도 시달리고 있다. 강의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기간, 소위 수명도 짧다. 굳이 공교육이 사교육과 경쟁을 하려면 상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교육은 환경적으로 좋은 조건이다. 대상은 공부하려고 제 발로 찾아오는 적극적 수요자이다. 스스로 선택하는 강좌이니만큼 어느 정도 대상의 수준도 비슷하다. 강사를 다른 업무로 이끄는 제약하는 공문도 없다. 넓은 범위보다는 좁은 범위를 세분화해서 깊이 있게 가르칠 수도 있다. 공무원으로서의 품위유지 의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게 강의한다. 그러면 학원강사는 어떤 생각, 어떤 상황인가. 학원강사는 학생을 소비자로 본다. 따라서 자신의 강의를 상품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 상품을 소비자가 우선적으로 선택하게하기 위해서 최선의 마케팅을 하는데, 수업의 질은 기본이고 수업의 디자인과 효율성, 수업의 개성과 차별성 등 학생들을 감동시키고 정서를 자극하려는 노력을 한다. 심지어는 사생활도 접고 오로지 재미있는 수업방법의 연구에만 몰입하는 강사들도 많다. 학생이 질문하면 학원강사들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물론 그 문제와 연관된 참고자료를 학생에게 준다. 참고서의 선택도 단순히 부교재로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학원강사는 거의 모든 참고서를 자신이 검토하고 코멘트를 달아 수강생들에게 적절한 참고서의 선택을 도와준다.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교재와 프린트물 제작하고, 수강생 모집 전략을 짜며, 홈피나 싸이월드, 카페, 블로그의 수강생 질문에 답변을 달아준다. 그들 나름대로의 잡무(?)인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는 주말이 없다. 오히려 주말이면 수업이 더 많아진다. 한가로이 휴일을 즐길 여유가 없다. 여유를 가지면 다른 강사에게 지기 때문이다. 흔히 학원강사는 지식을 파는 장사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강사들에게 학생들은 스승의 날 꽃을 선물한다. 졸업 후에도 지속적으로 찾아오고, 군에 입대한다며 작별인사를 하기도 한다. 학원강사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기도 하며, 자신의 진로에 대하여 진지하게 자문을 구한다. 학원사회를 정글이라고 한다. 무서운 정글에도 꽃은 핀다. 이것을 공교육에 종사하는 주체인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반면에 교사는 어떤가? 물론 학교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이라고 해서 비판의 말들이 많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경쟁은 적절한 긴장을 가져온다. 적절한 긴장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 어떤 사회치고 경쟁 없는 사회가 있던가? 그리고 학교도 교육은 서비스라는 인식을 가져야만 한다. 이젠 교사라는 권위 의식보다는 학생을 서비스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을 정서적으로 자극하여 진심으로 존경받을 수 있다. 우리 한번 사교육과 치열한 경쟁을 해보자. 기왕에 입시교육도 공교육이 하려고 하면 오히려 사교육보다 나을 수 있다. 공교육에는 검증 받은 우수한 인적자원과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교사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만능이다. 개성과 실력에서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우수하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의 수능모의평가는 이미 그 신뢰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았고, 입시자료집의 발간이나 입시 설명회도 이제 어느 사교육기관에도 뒤지지 않는다. 최근 서울시교육연구원이 펴낸 입시자료집은 사교육의 전문가들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그러니 사교육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인식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입시교육도 전인교육도 할 수 있다. 서술형 평가의 예시문항 같은 것은 사교육에서는 할 수 없는 분야이다. 공교육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가자. 통합형 논술고사가 시행되면 공교육에서는 대처가 힘들고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교육 강사가 할 수 있는 일을 교사는 왜 못한단 말인가? 모든 교과 선생님들이 팀을 짜서 영어교사는 영어논술을, 수학교사는 수리논술을, 과학교사는 과학 관련 심층면접 문제를 왜 가르치지 못한단 말인가? 특기적성 교육시간에 수준별로 분반수업을 하면서 각각 해당분야에 대한 논술강의를 하면 된다. 하루 이틀 공부하면 충분히 논술의 경향과 방향을 잡아 가르 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일부 학교는 이런 수업방식을 시행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학원에서 찾아보기 힘든 예체능 교사들도 충분히 논술강의에 참여할 수 있다. 예술 전문가에게 예술적 지식을 배운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중에 누가 통합교과적 논술에 강할 것인가? 각 교과 전공별로 50~100명의 전문가가 포진해 있는 학원이 어디 있는가? 교사가 해당 대학을 찾아가서 논술경향을 듣고자 한다면 어느 대학이 마다하겠는가? 투철한 교직관과 깊이 있는 교과지식을 가진 우수한 교사들을 왜 무능하다 하는가? 국가가 도와주고, 교육청이 도와주며, 교사 스스로 인식을 바꾼다면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못할 리 없다. 학원강사가 능력도 우수하고 시간도 많아서 지도를 잘 한다는 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교사는 그렇게 안 해도 별 지장이 없지만 학원강사는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신아연 / 호주 칼럼니스트 "영어 선생님은 4시에 만나기로 되어 있고, 과학 선생님은 6시 40분이니 두 시간 반 동안 어떻게 기다리지?" "종이 울렸는데 저 학부형은 왜 아직 자리를 뜨지 않는 거야? 이번 면담 후에 바로 다음 면담이 있어서 시간이 늦어지면 낭팬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여유 있게 순서 안배를 할 걸 그랬나 봐." "일본어 선생님은 6시부터 저녁을 드시기로 되어 있으니 우리도 그 시간동안 식사를 하고 오는 게 좋겠어요. 어차피 밤 8시 반 까지는 학교에 있어야 할 테니까 우선 밥부터 먹고 오자고요." 한국과는 반대로 1학기 겨울방학을 마치고 7월 중순 경부터 2학기가 시작된 호주 퀸스랜드 주의 한 고등학교의 어느 이틀간의 저녁풍경이다. 평소라면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한산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이건만, 이 날만은 3시 30분경부터 학부형들이 몰고 온 차들로 교정이 다시금 붐비기 시작해서 밤늦은 시간까지 좀체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날은 자녀들의 학교생활과 학업성취도를 교사들로부터 전해 듣고 자녀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전교 차원의 면담일로 지난 한 학기 동안 궁금했던 모든 것을 털어놓기 위해 학부형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호주의 각급 학교는 학기말과 학년말 두 차례에 걸쳐 전 학부형과 전 교직원이 자리를 함께 하는 면담(Parent Teacher Interviews)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각 학과 담당교사는 물론이고 담임과 학부형이 정식으로 상견례를 하는 기회도 학기말에 주워지는 첫 번째 면담시간을 통해 이뤄진다. 면담은 학기말과 학년말에 담임교사 및 학과 담당 교사의 요청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학부형 측에서 신청을 할 수도 있다. 면담을 희망하는 학부형들은 1학기 성적표와 함께 각 가정으로 보내오는 인터뷰 신청 용지에 원하는 시간을 적어내면 다른 학부형들과 겹치지 않는 한에서 학교 측에서 안배를 하여 최종 면담 시간을 통보하는 것으로 주선된다. 면담 기간은 보통 학기가 시작된 지 1주일쯤 후이며 2일간에 걸쳐 실시된다. 하루의 수업을 마친 교사들은 4시부터 8시까지, 저녁식사 시간 30분을 빼고는 꼬박 4시간을 학부형들에게 제시할 시험답안이나 성적산출근거 자료, 학생들의 품행이나 행동발달 상황 등을 체크한 기록표를 꼼꼼히 준비하고 상담에 임하는 고된 시간을 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 각 가정에 할당된 면담시간은 최대한 10분이기 때문에 부모들 또한 묻고자 하는 요지를 잘 정리해서 교사들을 만나야 한다. 중언부언했다가는 자칫 알고 싶은 것을 놓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시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신청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잠재력이 있는 학생인데, 수업 중에 꾀를 부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집중해서 최선을 다한다면 다음번 시험에는 꼭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집에서도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교우관계는 무난합니다. 또래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고, 누구보다 명랑한 성격이라 급우들의 인기를 끌지요." 이 학교 10학년(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의 과학 교사를 만나기 위해 면담 신청을 했다는 마이클씨(43)는 앞 사람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3~4분 늦게 시작된 면담이 기어이 10분을 채우지 못하고 말허리를 잘렸다며 아쉬워했다. 자기 뒤에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학부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야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들의 과학 성적이 무난하고 학교생활에도 별 무리가 없다고 하니 다행이라며 만족해했다. 전 교직원과 전 학부형들을 대상으로 하는 면담장소는 체육관이나 강당을 이용한다. 마치 군부대의 면회 장소처럼 긴 평상을 줄맞춰 늘여놓은 후 각 과목 담당 교사들의 명패를 꽂아 놓는다. 60여명이 넘는 교사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며 10분 간격으로 드나드는 학부형들을 맞이한다. 강당의 단상 한쪽에는 교무주임이나 학생주임이 매 10분마다 면담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종을 친다. 종이 울릴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학부형들과 뒤이어 교사들을 만나러 들어오는 학부형들로 순간 혼잡이 빚어지기도 한다. 강당을 무시로 오가며 학부형들과 인사를 나누고 교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도 이틀을 함께 보낸다. 웅성대는 강당에서 잡음을 무시해가며 두 귀를 모아 자녀들의 시험성적과 결과에 대해 설명하는 교사들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머리가 서로 닿을 듯 집중하는 진지한 광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학부형들은 만나고자 하는 교사들의 시간순서를 거듭 확인하며 강당 로비에 비치된 커피와 차, 다과 등을 나누며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선생님들의 스케줄과 같이하여 저녁식사를 한 후 다음 시간을 대비하기도 한다. 호주의 각 학교는 한 해 두 차례 치러지는 일제 면담기간을 가장 중요한 학내 행사로 꼽는다. 교사와 학부형, 학생 간에 충분한 의사전달과 협력, 교류의 기회를 마련한 후 학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정돈된 상태에서 다시금 한 학기 수업을 진행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1년에 두 번 주어지는 공식적인 일제 면담기간이 지나게 되면 특별한 사안이 없는 한 학부형들이 교사를 만날 기회는 좀체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기회를 잘 활용하지 않으면 1년 내내 심지어 아이의 담임선생 얼굴도 모른 채 지나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면담기간 외에는 체육대회나 학예회 등 학내 행사가 열릴 때에도 담임선생을 만나 인사를 하거나 자녀가 상을 받았다 해도 보통은 선생님을 따로 만나지 않는다. 이처럼 교사와 학부형간의 공개된 장소, 공개된 시간 속의 만남이 주어지는 호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간혹 불거져 나오는 촌지 문제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교장과 교감, 주임교사, 평교사 할 것 없이 전 교직원이 한 장소에 한데 모여 학부형들을 만나고 엄격하게 짜여진 시간표대로 앞 뒤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봉투'를 건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 학기 초만 되면 학교를 찾아가서 선생님을 만나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하고, 교사들 또한 학부형들을 만나고 싶어도 공연한 오해를 살까 염려하는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도 호주와 유사한 투명한 면담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정호 / 서울 양화초 교사 각 대학의 졸업식이 한창이던 지난 7월초 중국 교육계에는 신동이라 불리던 한 대학생의 퇴학 소식에 술렁였다. 심양공업대학에 재학 중인 왕쓰한(王思涵)이라는 학생은 지난 2001년, 14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대학입시에 참가하여 대입 커트라인을 상회하는 점수를 받고 이 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월반을 하여 영재중학교에 입학한 후, 6년인 중고등학교 과정을 4년 만에 끝내고 불과 14살에 대학에 들어간 소위 ‘영재’ 학생이었다. 중고 과정 4년에 마치고 대학입학 그러나 이 학생의 화려한 경력은 여기서 그치게 된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여 대학 첫 해에는 3과목이나 낙제를 받았다. 이후 4년간의 대학 과정동안 낙제된 과목의 수가 늘었고, 마침내 졸업을 해야 할 올해 7월 성적불량으로 졸업자격을 상실하고 학교 측으로부터 퇴학통보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동으로 불리던 한 소년의 몰락은 중국 교육계 내에서 현행 영재교육의 방식이 과연 영재를 길러내기 적합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영재교육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현재 중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점수와 등수로 모든 학생들을 일률적으로 평가한다는데 있다. 중국의 국가적 특성상 즉, 많은 인구와 많은 학생,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대학 및 취업기회로 인하여 학생들에 대한 점수화 및 서열화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시험점수에만 의존하는 평가 및 선발방식은 중국 교육의 여러 방면에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영재교육에 있어서도 영재교육의 본래 취지에 맞게 영재성을 지닌 학생들을 발굴하여 그 영재성을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육이 아닌, 반복적인 암기와 쉴 틈 없이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교육을 통하여 남들보다 시험에 빨리 합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방식이 문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앞에서 언급한 이 학생의 경우 그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 일은 공부와 잠이 전부였다고 할 정도로 어린 나이 때부터 또래들의 몇 배에 달하는 집중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하루에 고작 4~5시간의 잠을 자고 공부한 결과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시험대비 교육방식이 문제로 지적 하지만 이 학생이 대학에 입학한 후 이전과는 달리 모든 일을 자기 스스로 처리해야 되었고, 학습조건 역시 과거 영재학교에서는 한 반에 14명 정도의 소수학생을 대상으로 교사가 집중적인 지도를 하기 때문에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될 뿐이었는데, 대학에서는 한 강의실에 몇 십에서 많게는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동시에 강의를 듣게 되면서 이 학생은 자연히 교수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때문에 교사에 의존한 교육에 익숙하던 그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특히 영재교육의 특성상 수학이나 영어교육에만 집중한 탓에 다른 과목들, 즉 지리나 정치 등 사회과학에서는 수업을 전혀 따라갈 수 없었다. 또한 학습 외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대학 동료들과도 나이차 때문에 교류가 원만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는 친한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와 잠이 전부이던 그에게 대학은 한숨이 전부인 세상으로 변했다. 그 결과 그는 학교 측으로부터 퇴학을 명받아 특별한 배려 조치가 없는 한 이전에 사회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입학한 대학을 졸업장도 받지 못한 채 마쳐야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번 일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중국 교육계에서는 그동안 진행되어 온 중국 교육, 특히 영재교육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영재교육은 교육의 중요한 한 흐름으로 자리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다양한 유형의 영재학교들이 속속 세워지고 있는데, 이들 학교는 대량의 신동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영아부터 유치원생,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북경의 한 영재학교의 경우 10살이 될 때까지 대학생 수준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9개월의 영아부터 10세에 이르는 160여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잘못된 영재교육에 아이들만 상처 이렇듯 졸속으로 다량의 지식전수만을 목적으로 세워진 이 영재학교의 난립 및 그를 통한 영재 만들기 교육 열풍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 때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교육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옛말에도 있듯이 200의 능력을 가진 학생들에게는 100정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나머지 100의 능력은 여유분으로 남겨 놓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상황은 200의 능력을 가진 아이에게 300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개인의 능력을 초과하는 기대로 인하여 아이들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둘째, 각급 학교들이 사적인 이익만을 너무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교들 즉,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는 이들 영재성을 지닌 학생들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영재학생이 몇 단계의 월반을 통하여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 중․고등학교에서 월반하여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학교의 큰 명예로 생각하고 이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정작 대학을 들어갈 경우 이들에 대한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 학교생활 및 학업에 적응하지 못한 채 결국 낙오되는 경우 많다. 셋째, 중국인들 사이에 만연된 신동콤플렉스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이 다 신동, 영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영재성을 지닌 아이들은 그에 합당한 영재교육을 받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지만 현재 중국의 실정은 영재성이 보인다는 주관적인 부모의 생각으로 이들에 대한 집중적인 영재 만들기 교육을 통하여 영재 만들기가 한창이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영재는 결국 부모에게 뿐만 아니라 아동 본인의 일생에 큰 손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영재교육 장치 및 교육방법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사이비 영재교육 열풍은 학부모들에게는 일시적인 자부심과 만족감을 가져다 줄 수 있을는지는 모르나 아이들 당사자에게는 결국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신동학생의 경우처럼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신동도 아니고, 평범한 학생도 못되는 상황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하는가? 이러한 결과를 놓고 현재 중국 교육계에서는 학생 본인의 태만 탓으로 돌리기 보다는 전반적인 영재교육 시스템의 문제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희태 / 대구 다사초 교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 모든 부모는 자기아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기아이와 다른 아이를 비교해서 어떤 점이 뒤떨어진다고 말하면 그 부모의 가슴은 너무나 아플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말을 듣는 아이 본인의 마음도 몹시 상할 것입니다. 유명한 음악가 정명훈의 부모는 공부 못하는 자식을 꾸중하였지만 담임선생님의 격려로 오늘날 성공한 음악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의 장점과 특기가 무엇인지를 어릴 때부터 찾아서 꾸준히 칭찬하고 격려하면 아이들은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본의든 그렇지 않든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지나친 꾸중을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교육적 행위가 될 것입니다. 꾸중할 일이 있다면 몇 번의 주의와 아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말했을 때만 꾸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수준에서 아이들을 보게 되면 꾸중이 있을 수 있으나 아이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못하지만 늘 기다리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게 되면 스스로 잘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교육에서 아이들이 즉각 잘할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입니다. 미숙한 아이들에게 한두 번 기회를 주고 어떻게 잘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어떤 일로 잘못하게 될 경우는 선생님의 지도 부족이라는 겸손한 생각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말에서 비롯되듯이 지금은 비록 미숙하지만 장차 뛰어난 제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아이들에게 무심코 던진 선생님의 말씀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결과가 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더욱이 여러 아이들 앞에서 하는 말씀은 더더욱 교육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들은 어떠합니까? 가정환경이나 교육환경이 다른 학교보다 열악한 처지의 아이들입니다. 겉으로는 좋은 차와 좋은 옷을 입고 다닐지 모르지만 결코 우리 아이들이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몇몇 우리 아이들은 숙제를 제대로 못한다고 하시는 말씀을 제가 들었습니다만 가정학습 여건이 부족한 결과이지 아이들의 잘못은 없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가정학습을 할 수 있는 학습수준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학습이 부진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정학습 과제를 해결한다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가정학습의 분량과 질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을 활용 할 수 없는 가정환경이라면 인터넷 조사 학습은 도저히 할 수 없잖습니까? 그렇다면 학교 컴퓨터실에서 할 수 있도록 선생님의 선처가 필요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우리학교의 교육을 책임지고 계시는 두 어깨가 얼마나 무거우십니까? 선생님의 역할에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선생님의 무한한 칭찬과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꼼꼼히, 천천히 아이들을 바라보신다면 지금은 미숙하지만 앞날에는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칭찬으로 가득한 말은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가지게 한다는 신념이 필요합니다. 저는 학부형들께 사석이나 공석에서 틈나는 데로 우리 선생님이 제일 능력이 뛰어난 선생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에 대한 오해 소지가 있을 시, 그것은 교육적 지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선생님을 대변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여 학부모로부터 존경받는 학급경영을 하기 바랍니다. 학부형에게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기 위한 저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 학부모에게 어떤 것이건 간에 요구하지 않는 선생님입니다. 비록 교육적일지라도 학급 일로 학부형의 역할과 기능에 의지하는 선생님은 존경받을 수가 없습니다. 학부형 입장에서 보면 가정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나 아이들 돌볼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공동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데 필요하거나 학습지 같은 것은 모두 학교 예산으로 구입하지 않습니까? 일부 학교의 학부형은 선생님이 말하지 않더라도 척척 해주는 경우가 있겠지만 우리 학교는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둘째, 선생님은 비교육적인 꾸중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 학부형들은 선생님이 어떻게 말씀하는지를 아이들이 전하는 말을 통해 알게 됩니다. 예를 들면 귀걸이를 하는 아이에게 다방 아가씨 같다고 말하면 그 아이는 큰 상처를 받습니다.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아이에게는 충격을 주게 됩니다. 앞으로 잘할 것이라는 농담은 모르지만 실망과 열등감을 갖게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셋째, 아이들이 듣건 말건 간에 선생님 사이에 오고가는 말은 반드시 존대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께서 동료선생님을 존대하지 않는다면 누가 선생님을 존경하겠습니까? 선생님께 존칭을 쓰지 않는다면 듣는 선생님은 얼마나 마음이 상하겠습니까? 햇병아리 교사가 되기 위한 교생실습 때 친구끼리지만 존댓말을 사용해야 된다는 교생지도 선생님의 첫 번째 교육지도가 현장에서의 예절교육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쌓이는 경력과 함께 벌써 잊고 계신 분이 적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는 사회적인 시각이 늘 존재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말과 행동은 언제나 교육적이어야 합니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존경받는 스승 되기가 무척 어려운 세상입니다. 이 어려운 환경에서 살신성인하시는 선생님에게 무한한 존경의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곽해선 | 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eon.net) 흔히들 우리나라는 빈부차가 크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혹 그렇다면 얼마나 그런가? 최근 들어서는 어떤가? 전보다 격차가 커지고 있을까 줄어들고 있을까? 빈부차를 알아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크게는 재산 크기와 소득 크기로 알아볼 수 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집이나 땅 같은 부동산 혹은 현금·예금·증권 같은 금융자산을 합한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달마다 혹은 해마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즉 소득 크기로 알아보는 방법이다. 먼저 재산 크기로 알아보자. 극소수의 사람이 사유지 절반 소유 최근 화제가 된 뉴스로, 우리나라의 땅 소유 편중도가 얼마나 심한지 알려주는 흥미로운 통계치가 발표됐다. 행정자치부에서 2004년 말 현재 전국의 토지 소유 현황을 조사해 발표한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은 총 99642㎢. 전체 국토 가운데 사유지가 전체의 57%이다. 사유지를 나눠 갖고 있는 사람 수는 모두 1397만 명. 우리나라 총인구 4871만 명 가운데 28.7%에 해당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전 인구의 71.3%에 해당하는 3474만 명이 제 땅을 한 평도 갖고 있지 못하다. 반면 극소수 사람들이 엄청난 면적을 소유해 큰 부를 누리고 있다. 면적을 기준으로 볼 때 전체 사유지의 51.5%를 국민 가운데 상위 1%에 해당하는 48만7000명이 소유하고 있다. 서울시 면적의 48.7배다. 상위 5%의 땅 부자들이 소유하는 토지 면적은 전체의 82.7%, 서울시 면적의 78.5배나 된다. 땅 소유자들끼리만 놓고 봐도 편중도가 심하다. 면적 기준으로 상위 1%(13만9000명)가 전체 사유지의 31%를, 상위 5%가 전체 사유지의 59%를, 상위 10%가 73%를 소유하고 있다. 상위 100명이 전체 사유지의 0.7%(서울시 면적의 0.6배)를 갖고 있고, 이들의 평균 소유면적은 115만 평. 서울 여의도 면적(254만 평)의 절반이다. 심각한 땅 소유편중 보여주는 통계 토지 가액으로 따지면 편중도가 더 심하다. 2004년 공시지가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토 전체의 평가액은 1771조 원이다. 공시지가란 이른바 '지가 공시 및 토지 등의 평가에 관한 법률'이 규정한 절차에 따라 감정평가사라는 자격증을 갖고 있는 전문가가 매년 1월 1일(기준일) 현재 땅 시세를 조사해 공시한 토지 1㎡ 당 평가액. 공시지가는 보통 민간에서 땅을 거래할 때보다는 가격이 낮지만 거래의 기준값이 되고, 정부에서 개발 목적으로 토지를 수용할 때 땅 주인에게 보상해주는 금액의 기준이 된다. 전체 국토 가운데 사유지는 공시지가 평가액으로 전체의 65%에 해당한다. 공시지가 평가액 기준으로 보면 상위 1%가 37.8%를, 상위 5%는 67.9%를 소유하고 있다. 토지보유자들끼리만 놓고 따지면 가액 기준으로 상위 1%가 전체 사유지 가액의 22%를, 상위 5%가 44%를, 상위 10%가 56%를 소유하고 있다. 상위 100명이 차지하고 있는 사유지의 평균가액이 1인당 510억 원이나 된다. 사업자 가구에서 부집중도 높은 편 소득 크기로 빈부격차를 알아보려 할 때는 정부 통계기관에서 내놓는 소득배율지표를 활용하면 편리하다. '10분위 소득배율(혹은 소득 10분위배율)', '5분위 소득배율' 같은 것인데, 소득 크기로 빈부차를 나타내는 지표다. '10분위 소득배율'은 소득이 가장 높은 10% 해당자('10분위'라고 한다)의 평균소득이 소득 최하위 10% 해당자(1분위)의 평균소득보다 몇 배나 큰지 나타내는 지표다. 10분위 소득배율은 이렇게 구한다. 사람들이 일정 기간 올린 소득을 크기 순으로 최하위 10%(1분위)부터 최상위 10%(10분위)까지 10개 계층으로 나눈다. 그래놓고 최상위 10%의 소득 평균치를 최하위 10%의 소득 평균치로 나눈다. 이렇게 하면 최상위 10%의 소득이 최하위 10%의 소득보다 몇 배나 큰지 나타낼 수 있다. 당연히 10분위 소득배율 수치는 소득격차가 높을수록, 부의 집중도가 높을수록 커진다. 5분위 소득배율(혹은 '소득 5분위배율')도 10분위 소득배율을 구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구한다. 사람들이 일정 기간 올린 소득을 크기 순으로 5개 계층으로 나누고 상위 20%(5분위)의 소득 평균치가 하위20%(1분위) 평균 소득의 몇 배나 큰지 구한다. 5분위 소득배율은 상위 20% 해당자(5분위)의 평균소득이 하위 20% 해당자(1분위)의 평균소득보다 몇 배나 큰지 나타냄으로써 소득차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통계청이 매월 전국의 표본 가구(농가 혹은 어가가 아니면서 근로자와 자영업자, 무직자를 포함)를 '전국 가구'로, 도시 거주 2인 이상 근로자가구 표본을 '도시근로자가구'로 규정해 '가계수지동향'을 조사하고 분기별로 발표한다. 이 통계에 5분위 소득배율로 파악한 소득분배 동향을 싣고 있다. 5분위배율 산출을 위해 통계청은 표본으로 고른 가구에 매달 가계부를 쓰게 하고 있다. 통계청이 올해 5월 19일 발표한 '2005년 1/4분기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전국 3470개 도시 거주 근로자가구의 5분위 소득배율은 5.87(배)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0.17포인트 증가했다. 소득 5분위배율이 5.87배라는 것은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에 비해 5.87배 많다는 뜻이다. 실제로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 도시근로자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658만7300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6% 증가했다. 반면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는 2.5% 늘어난 112만3000원에 머물렀다. 도시근로자가구의 5분위 소득배율은 1/4분기 기준으로 1997년 4.81에서 외환위기 여파로 98년 5.52로 올라선 이후 99년 5.85, 2000년 5.56, 2001년 5.76, 2002년 5.40, 2003년 5.47 등을 기록했다. 그랬던 것이 2004년엔 5.87로 도시근로자가구를 상대로 5분위 소득배율을 조사해 발표하기 시작한 지난 198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 됐다. 지난 25년을 두고 보면 소득 격차가 작년에 가장 크게 벌어졌다는 얘기다. '전국 가구' 기준으로도 올해 1분기 소득 5분위배율은 8.22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0.47포인트 증가했다. 이것 역시 이 분야 통계조사를 시작한 지난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통계청이 '가계수지동향'과 따로 조사 발표하는 '가구소비실태조사결과'도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2000년 말 기준으로 전국의 2인 이상 비농어가 2만7000가구를 상대로 한 이 조사에 따르면, 가구별 5분위 소득배율이 2000년 6.75로 5년 전인 1996년에 비해 2.01포인트 높아졌다. 근로자가구보다는 사업자가구에서 소득격차나 부의 집중도가 높은 편이다.(통계청, 2000년 가구소비실태조사결과, 2002년 4월 발표) 통계로 보여지는 것보다 심각한 격차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가 해마다 커져 이젠 세계 13위권 안에 든다. 그렇지만 소득분배가 나빠지고 있어서 많은 국민들이 나라 경제 규모가 성장하더라도 자신의 재산이나 소득은 함께 늘어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많은 수의 국민은 나라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자신과 자신의 가구는 상대적으로 가난해진다는 생각을 하는 쪽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질까? 통계청 말로는, 고소득 계층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데 비해 저소득층의 소득은 증가세가 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왜 그런가? 오늘날 일부 학자나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세계가 점점 더 머리 좋고 열심히 일하는 소수와 머리도 좋지 않고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 다수의 사회로 옮아가고 있어서일까? 세계가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일하는 소수 엘리트와 그렇지 못한 다수로 대별되는 20:80의 사회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일까? 다른 나라에서라면 혹 모를까 우리나라에선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선 근로소득에 비해 땅과 집 같은 부동산에 기반을 둔 자산소득의 격차가 너무 크고, 자산소득의 성장세가 근로소득의 그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땅 소유나 금융자산 편중도에 다른 자산 보유 격차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부로 실감하는 빈부격차는 소득격차 통계로 나타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다. 실제로 한국은행과 국민은행이 조사해 밝힌 통계만 봐도, 2002년 현재 국내 소득 상위 5%의 부자들이 갖고 있는 금융자산은 전체 개인 금융자산 총액의 38%, 상위 20% 가구의 금융자산이 전체 개인 금융자산의 71%를 차지한다. 소득 상위 20% 가구의 평균 금융자산은 소득 하위 20% 가구의 평균 금융자산에 비해 62배나 많다.(삼성경제연구소 CEO Information, 외환위기 5년 한국 경제의 흐름과 과제, 2002. 11. 27) 현실이 이렇다 보니 통계청이 발표하는 빈부차 관련 통계, 특히 소득격차 통계는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분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소득격차를 분석하는 지표로 소득배율지표 외에 흔히 쓰는 '지니 계수(Gini coefficient)'라는 것이 그 대표적 예다. 지니 계수란 이탈리아의 통계학자 지니(C. Gini)가 제시한 소득 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숫자로 0에서 1까지 표시하는데, 0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포가 균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균등하지 않다. 보통 0.4를 넘는 소득 분배는 매우 불균등한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도시근로자의 가계 소득을 대상으로 구해본 지니 계수는 지난 1996년 0.290, 97년 0.283에서 98년 0.316, 99년 0.320, 2000년 0.317, 2001년 0.319로 높아졌다. 외국과 비교하면 2000년 우리나라의 지니계수(0.317)는 일본(99년, 0.301)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미국(0.460), 대만(0.326) 보다 낮다.(재정경제부 국정감사 자료, 2002. 9. 12) 지니계수로 보면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나라의 소득분배는 미국, 대만보다 균등한 편이다―이렇게 말한다면 듣는 이로서는 당연히 실감이 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니계수 산출 방법에도 문제가 좀 있다. 국내 도시 가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무직 가구의 비중(표본 기준)은 1996년 7.6%에서 2000년 12.7%로 급증했으나, 이들 무직 가구의 존재는 지니계수 산출 작업에서 제외된다.(한국개발연구원, 분배 관련 통계 개선 방안 보고서, 2002. 11. 12) 지니계수 산출에 이용하는 통계청 도시가계조사도 무직자나 자영업자 같은 비근로자가구와 1인가구, 농어가 등 비도시가구는 통계에 넣지 않는다. 서민층의 상대적 박탈감 한층 커져 빈부격차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게 마련이다. 다만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돈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기에 유리하고 재산의 사적 소유와 상속을 법으로 보장하므로 빈부격차가 커지고 고착되기 쉽다. 우리나라에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커지는 이면에 부자들의 탈세와 법제의 허점을 악용한 재산 증식 행위가 만연해, 서민층의 상대적 빈곤과 심리적 박탈감을 한층 키우고 있어서 특히 문제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고치는 쪽으로 법제도를 고치고, 조세나 사회보장 관련 정책을 적극 구사해 빈부격차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서민층의 불만은 당연히 빈부격차에 비례해 커질 것이고 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목원대가 총장 정년 문제로 비롯된 학내갈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다른 지역대학 곳곳에서도 총장 선출방식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활발하다. 31일 대전지역 대학들에 따르면 목원대 교수협의회는 최근 학내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발단이 된 총장 선출방식부터 개선해야된다고 보고 개선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교협 산하에 '총장선출방식 개선위원회(가칭)'를 상설 기구로 발족, 집행부(5명), 각 단과대 대표(7명) 등이 참여한 가운데 총장 선출의 절차와 방법 등을 논의키로 했다. 앞서 지난 6월부터는 '목원대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시스템에 대한 문제와 개선과제'라는 교수협의회 자체 연구과제를 공모, 연구가 진행중인 상태이다. 교수협의회 이창수 회장은 "내달 1일 개최예정인 교수평의회에서 최종 의결을 거쳐 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이라며 "위원회에서 결정된 선출방식은 이사회에 전달, 반영토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남대의 경우는 교수협의회, 직원노조, 학생 등이 전 구성원이 참여하는 대책기구를 발족키로 했다. 내달 6일 발족하는 한남대 '총장선출 개선위원회'는 교수대표 6명, 직원대표 4명, 조교대표 4명, 학생대표 4명 등 전 구성원이 참여해 총장 선출방식을 마련키로 했다. 그동안 교수협의회가 주축이 돼 총장 직선제 관철을 요구해왔으나 직원, 학생 등의 지지부족으로 탄력을 받지 못 해왔다. 교수협의회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정관에 별도의 총장선출 규정이 없다보니 이사회가 구성원들의 의견수렴, 동의 절차 등 없이 총장을 임명, 학내갈등의 요인이 돼왔다"며 "연말까지 각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합리적인 총장선출방식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상반기에 신임 총장을 선출해야하는 공주대의 경우는 지난달 1일 '총장선출규정개정 연구위원회'를 발족, 운영에 들어갔다. 이는 최근 개정 공포된 교육공무원법에 따른 것으로 현행처럼 교수 직접 선거로 총장을 선출할 지 총장 임용추천위원회에서 간접으로 선출할 지 여부 등을 검토, 결정하게 된다. 이밖에 같은 시기 새 총장을 선출해야 하는 한밭대는 일단 차기 총장을 직선으로 선출하기로 방침을 정했으나 공무원직장협의회 등을 중심으로 선거 과정에 직원들의 참여 등 새로운 총장 선거 방식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이다. 대전지역 한 대학 관계자는 "총장 선출 과정은 대학 민주화의 매우 중요한 척도"라며 "올 2학기에는 총장 선출 방법 개선 문제가 지역 대학가의 뜨거운 이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