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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민주노총 공공연맹 소속 전국학교 비정규직노동조합원 10명은 20일 오전 11시께 자신들의 고용문제와 관련, 고영진 경남도 교육감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고 교육감의 집무실에 사전 예고없이 진입, 한때 점거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남지역 공립유치원 교사 출신 노조원들인 이들은 그러나 고 교육감이 면담을 수락하자 수분 만에 집무실에서 철수했다. 잠시 동안의 소란 뒤 열린 면담에서 노조 관계자는 "앞서 진행된 이승무 경남 부교육감과의 면담에서 이 부교육감이 고용승계를 골자로 하는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교육감이 나서서 고용승계를 이행토 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고 교육감은 이에 대해 "경남교육청은 해당 인력의 계약연장에 대한 법적 의무가 없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교육 한가족'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이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학교 폭력’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욱 농후해지고 있다고 '교육신문'과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인천광역시 교육청에서는 2006학년도의 핵심 사업으로 학교 폭력 예방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교장단 회의, 교감과 학생부장 회의를 연이어 개최하여 일선 학교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학생들의 폭력에 대한 지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캠페인이 오히려 교사들의 사기를 위축시키고 학생들의 지도에 필요한 회초리조차도 외면해 버리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최근에 학교 폭력에 대한 지도가 교육부나 일선 교육청이나 한결같이 지시 일변도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다. 문서화된 지시는 일선 학교에서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때 실천 가능한 것이다. 교사에게는 회초리를 들지 마라, 언어를 공손하게 사용하라, 수업을 학생의 요구에 맞게 하라 등등. 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학생들의 인성을 바로잡아 바른 행동, 바른 언어를 쓸 수 있는 지도를 할 수 있도록 충분하게 교사들에게 시간이 주어지고 있는 지.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자문해 볼 일이다. 이런 현실에서도 실학 정신의 바탕으로 한 폭력 예방을 위한 바른 교육은 도덕 교과와 윤리 교과를 시험으로 평가하지 않고 토론학습, 협동학습, 체험학습, 케이스문제 중심 수업 등등으로 진행하여 이 교과목이나마 학생들에게 진정한 인성을 바로 인식시키는 방안은 어떨 지. 너무 타이트한 수업 시간, 너무 분주한 학교 생활이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들의 지도에 짜증을 불러 일으키게 해서는 자연처럼 조화를 이루어 내는 지도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교과에 대한 과목 축소 또는 확대를 생각해 보되 현실에서 학생들의 수업 거부가 일어나고 있는 것과 같은 교실 현장은 무엇 때문일까? 과연 교사들에 대한 무능 때문일까? 아니면 지나친 학업에 지친 피로 때문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인즉 학업에 대한 절대적인 관심 부족과 공부로 승패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형이하학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일까?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학생 지도에 진정으로 지도할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이 없어서 학생들을 폭력 현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인가? 학생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기 때문인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의 여지가 있지만 그래도 폭력에 대한 예방책으로는 학생들에게 바른 인성을 교육시킬 과목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부분의 교과 과목을 공부하는 경우 학생의 평가를 시험을 치루어 점수대로 평가하니 도덕 점수가 40점 이하로 나타날 수 있고, 윤리 점수가 40점 이하로 나타나는 학생도 있다. 그런데 진정 이 학생들의 도덕적인 인성의 객관도가 타당도 면에서 신뢰할 수 있을까?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도덕·윤리 교과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현 시점이라고 본다. 2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1963년도에 '반공, 도덕' 과목이 신설되었고, 7차 교육과정에서는 고등학교에서는 '도덕, 윤리와 사상'으로 교과목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도덕에 대해서, 윤리에 대해서 느끼는 감도는 폭력을 앞지르고 있다. 아무리 윤리 의식을 강조해도 폭력이라는 단어를 따라잡을 수 없다면 윤리와 도덕 교과목의 교수 학습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늘어나는 학생들의 악행이 학교를 불신으로 사회의 이슈로 떠오르는 시점에 학교는 학교대로의 처방이 있어야 한다. 도덕·윤리 과목에 대한 수업 방법을 개선하여 학생들의 EQ를 높이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학교 폭력도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처럼 서서히 정화되어 가지 않을까?
학교의 이상 유무, 가장 궁금한 사람은 누구일까? 학부모, 학생, 교직원 모두 학교를 사랑하겠지만 그 중 교장이 아닌가 싶다. 학교 최고 책임자인 만큼 어깨도 무겁다. 출근하여 당직자에게 이상 유무를 최초로 보고 받는 사람도 교장이다. 그런 교장들에게 한 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 재학생 또는 졸업생이 방과 후 야간 시간에 학교에 들어와 당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교실에 물건을 두고 왔으니 문을 열어달라고 하고 당직원은 안 된다고 하고···. 그것뿐일까? 그들은 학교 유리창을 깨거나 당직실에 돌을 던지는 등 당직자를 놀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리포터가 아는 모 중학교는 몇 년 전 야간마다 교실 유리창 수십 장이 깨져 학교장을 비롯한 교직원이 밤새워 순찰하여 학교를 지킨 적이 있고 모 중학교는 아예 CCTV 카메라를 설치하여 학교 시설물을 보호하기도 하였다. 일요일인 오늘, 수원 칠보산 등산길에 인근 학교를 들렀다. 우연치 않게 경비용역업체 소속의 당직원 B씨(70세)를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가 혀를 찬다. 당직근무를 하다보니 야간에 졸업생들이 학교에 들어와 음주, 흡연, 함부로 침뱉기 등을 하는데 그냥 볼 수 없을 정도라 한다. 또, 그 중 일부는 애정행각(?), 폭죽터뜨리기 등으로 당직자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잡을라치면 동작이 빨라 잡기도 어렵고 설사 잡아도 법적으로 처리하기도 어려워 학교 선생님께 알리면 철저히 지도하려 않고 그냥 어물쩍 넘어간다는 것이다. 하기사 교권이 떨어져 학생들에게 교사의 지도가 먹혀들어 가지 않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누가 이런 일을 앞장 서 지도할까? 그러다 보니 야간의 학교 공간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교육이 존재하지 않은 공간'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학교는 밤새 안녕하신지?˝의 걱정거리는 사회와 교육계의 무관심 속에 교장과 당직원의 골치덩어리로 자리잡은 지 오래된 것이다. 다만,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것뿐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없을까? 물론 있다. 재학생들에게는 전 교직원들이 학생 생활지도를 강화하여 모교 사랑의 정신을 일깨우고 사회질서와 법규를 준수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졸업생 지도는 지역교육청이 실태를 파악하여 교육청 차원에서의 지도 대책을 강구하고 초·중·고교가 연계하여 더 이상 요선도 학생이 발생되지 않도록 정보를 공유하여 적극적인 생활지도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교육의 사각지대로 변한 심야의 초·중학교, 더 이상 모르는 체 할 수는 없다. 용역업체에 맡겼다고, 학교에서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다. 60세에서 70세의 용역업체 노인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그 일이 힘들고 해내기 어려운 너무나 벅찬 일이기 때문이다.
전국교수노동조합은 17일 "보편적 인권으로서 노동 기본권은 공무원과 교원을 포함한 모든 근로자에게 보장돼야 한다"며 대학교수노동조합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연합뉴스) 교수노조는 이날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전원회의실에서 열린 인권위 주최 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한다.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논리를 펴고 있지만, 교수나 교사의 특징은 다른 여타분야의 직종과 달리 학생들을 교육하는 고유의 업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권보장이라는 것은 교수나 교사를 전문가가 아닌 단순한 노동자로 볼때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교수와 교사는 당연히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이다. 그런데도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가 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보고 싶다. 현재의 여건이 어렵다면 노동권이 아닌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개선해야 할 것이다. 노동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미 합법화 된 교원노조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많다는 것이다. 합법화 되면서 학교현장에서 갈등과 반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최소한 교원노조의 합법화 이전에는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교사들 간의 인간적인 교류가 현저히 줄었다. 서로가 속한 교원단체의 이익을 찾기 위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원들간의 갈등은 큰 문제다. 학교현장의 현주소이다. 교원노조의 합법화로 인해 학생, 학부모, 동료교사들까지 불안감을 안겨준 경우도 많았다. 물론 합법화의 이면에는 어떤 경우라도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단서조항이 있지만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나타날 수 도 있다. 교수노조가 합법화되면 대학에도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기 어렵다. 이번의 교수노조의 요구도 교원노조의 경우처럼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불안감을 가중시킬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교수, 교사 모두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업무이기 때문이다.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쟁의행위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쟁의행위를 할 경우, 어떤 형태로든 학습권이 침해받을 가능성이 높다. 노동권 보장 쪽으로 매달릴 것이 아니라 그와 유사한 형태의 모임을 통하여 교수들 모두가 한목소리를 낸다면 쟁의행위가 아니더라도 문제의 해결이 의외로 쉽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전문성을 훼손하지 않고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청주시내의 한 중학교가 졸업생 등이 사용했던 참고서를 모아 농촌지역 중학교에 전달해 미담이 되고 있다. 19일 충북도교육청에 따르면 청주 주성중학교(교장 김태의)는 지난 14일 괴산 청천중학교에 국어 등 5개 과목 참고서 350권을 전달했다. 이 참고서는 최근 졸업한 3학년 학생들과 교사들이 남긴 것으로 새 책으로 구입한다면 250만원 어치에 해당한다. 주성중 관계자는 "졸업과 동시에 참고서를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전통인데 때마침 청천중학교가 '학습 활성화를 위해 참고서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해 흔쾌하게 건넸다"며 "상태가 모두 양호해 사용하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년째 자체 교복물려주기 운동도 벌이고 있는 이 학교는 도.농 교류를 위해 앞으로도 매년 참고서를 수집해 소규모 농촌 학교에 전달할 계획이다. 전교생이 73명에 불과한 청천중측은 "3학년 진급 대상 학생은 20여명 뿐"이라며"넉넉하게 참고서를 보내준 주성중 교사와 학생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오늘 졸업식이 있었다. 어제 늦게까지 선생님들께서 졸업식장을 정리하고 꾸민 탓인지 한결 식장이 정돈되고 매우 격식이 있어 보였다. 졸업식을 한 시간여 남겨 두고 있을 즈음 식장을 둘러보시던 교장선생님께서 한 가지 의견을 제시하셨다. 그것은 부모님과 함께 앉는 졸업식을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모여 있던 모든 선생님들께서는 교장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하였고 곧 작업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어렵지 않았다. 학부모 석으로 뒤에 놓아두었던 의자를 아이들 의자 옆으로 옮기면 되었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참석하실 것을 대비하여 의자를 넉넉히 준비하였다. 안내를 받아 아이들 옆으로 부모님들께서 속속 앉으셨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 하셨으나 곧 나아지셨고 부모님들께서는 옆에 앉아 있는 자녀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시는 등 분위기가 매우 화기애애하였다. 드디어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졸업장 수여 시 사회자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니 모두 앞으로 나왔다. 여느 졸업식처럼 ‘000외 ooo명!’ 하면 졸업생 모두가 일어서고 대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약간 좁은 공간이었으나 모두 앞으로 나와 설 수 있었다. 교장선생님께서 한 명 한 명에게 졸업장을 주시면 아이들은 졸업장을 받아들고 들어가면서 담임선생님과 악수를 하였다. 참으로 어느 졸업식에서도 보지 못하였던 가슴 뭉클한 광경이었다. 학교장상으로 아이들의 특기를 칭찬하는 상을 하나씩 주었다. 뜻밖의 상을 받은 아이들은 모두 싱글벙글하였다. 아이들이 한 명씩 앞에 나가서 상을 받을 때 부모님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고 상을 받고 들어오면 어깨를 토닥거려 주거나 안아주기도 하였다. 동창회나 이웃한 관계기관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장학증서나 중학교 교복 맞춤권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그동안 보아 온 졸업식은 진행되면서 소란한 면이 없지 않았다. 심지어 졸업식이 거행되는 동안 교사가 일어나서 한 시간도 참지 못하여 움직이고 옆 친구와 얘기하는 아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조용한 식장에서 소리를 낼 수 없어 검지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동작을 수없이 하여야 했었다. 그러나 오늘 졸업식은 달랐다. 부모님들이 옆에 계셔서 그런지 아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만약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소리 내거나 움직이려고 하면 부모님들께서 조용히 하라고 타이르시는 것이 보였다. 졸업생들이 그러하니 재학생들도 덩달아 진지한 분위기였다. 상장 수여 등 식 전체가 졸업생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진행되어지기 때문에 졸업식 노래를 부르는 것 외에 참여하는 활동이 거의 없는 재학생 좌석은 자기들 나름대로 지루함을 이기기 위한 방편으로 가위, 바위, 보 등 각종 놀이가 동원되는 것을 보아왔기에 이와 같은 졸업식 광경이 새롭게 보였다. 졸업식인데도 불구하고 부모님께서 함께 일을 나가시는 가정의 어린이들은 졸업식이 끝날 때까지 혼자 앉아 있어야 했다. 또 아이들의 아버지, 어머니께서 모두 직장 일로 참석을 못하게 되어 손자, 손녀 졸업식에 참석하게 되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식장 뒤에서 졸업식 참석만 하고 가시려다가 아이들에 손에 이끌려 옆자리에 앉기도 하셨는데 젊은 학부모들과 함께 아이들 옆에 앉으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조금 부자유스러우신 듯 일어나서 다시 뒤로 나오기도 하셨다. 또 식이 끝난 후에는 부모님께서 오시지 않고 혼자 앉아 있던 아이들을 선생님들이 찾아가서 축하의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앉아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동안 뒷바라지 해 주신 데 대하여 무언의 사랑을 표현했고 또 부모님들은 대견한 아이들을 사랑의 눈으로 내려다보며 진실한 사랑을 나누었던 오늘 졸업식 광경이 앞으로 어느 학교를 가더라도 졸업식이 다가오면 꼭 생각나는 일이 될 것 같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교원들도 승진심사 시 음주운전, 과속운전, 신호위반, 과태료 미납, 범칙금 미납 등 준법정신이 하나의 기준으로 등장하여 검증이 강화될 지도 모른다." 얼마 전 지역교육청 교감과 학생부장 연수 모임에서 학무국장님의 말씀이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승진할 사람은 줄서서 대기하고 있는데 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니 이런 기준이라도 만들어 탈락기준으로 삼을 만하다. 사실, 음주운전은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 본인의 목숨만 잃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까지 해치는 것이니 절대로 하여서는 안 된다. 술을 조금이라도 입에 대었으면 아예 운전대를 잡지 말고 대리운전이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경기도 교원 징계 중 '음주운전이 최다'라는 통계도 보았다. 2003년부터 작년 8월까지 경고에서 해임 등 징계를 받은 교원이 총 261명인데 이 중 64.8%가 음주운전이라는 것이다. 교원들은 음주운전하다 적발되면 다중의 처벌을 받는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개망신(?)' 당하며 징계받고, 승진 불이익에 형사처벌까지 받고, 거기에 정기인사 시 전보조치 당하고. 리포터가 아는 어느 교직 선배님의 몇 년전부터 하신 말씀. "술 몇 잔 하고 택시요금 3만원, 아깝게 생각하지 말라. 오히려 돈 300만원 벌었다고 생각하라"며 후배들에게 충고를 해준다.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중차대한 것이다. 요즘 교육계, 정년단축의 여파로 일찍 교장이 된 사람은 중임하고도 임기가 남아 장학관으로 가고자 하나 '하늘의 별따기'라 한다. 사실, 장학관 자리는 임기가 남는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다. 교육의 품질을 관리하는 장학사를 지도하는 중요한 직책인 것이다. 억지 정책을 만들어 강행하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교감과 교장 승진, 장학사(연구사) 전직, 장학관(연구관) 전직 등에 있어 음주운전 여부 검증 장치를 두어 우리 교육계에서만큼은 음주운전은 완전히 뿌리뽑아야 한다고 본다. 어찌 교육계뿐이랴!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적용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우리는 성숙한 국민이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고위공직자 승진에서 음주운전으로 탈락한 사례가 보도되었는데 언론들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위법사실의 문제점이 드러났음에도 임명을 강행한 대통령의 무원칙 인사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코드 맞는 장관에게는 준법여부를 적용하지 않고 실무자급에만 엄격히 적용한 형평성의 문제를 꼬집은 것이다. 교원, 고위직도 아니고 대통령과 코드 맞는 장관도 아니다. 참여정부는 코드가 맞지 않는 교원집단은 물론 하위직에까지 엄격히 잣대를 들이댈지 모른다. 그러나 저러나 여하튼 '음주운전' 안 된다. 지난 15일부터 각시도의 정기 인사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각급 학교의 송별회와 환영회가, 또 각종 부서 모임 등에서 술잔이 오고갈 기회가 잦아지기에 염려가 되어 하는 말이다.
'교육만 알고, 행정능력이 좀 떨어진다고 해서 교육부에서 교육전문직으로 전문성을 발휘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교육전문직이 교육만 아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교육부총리는 행정도 달인이고, 교육에도 달인인가.' 그동안 교육에만 매달렸던 교육전문직을 폄하하는 듯한 김진표 교육부총리의 발언에 대한 일선교원들의 반응이다. 교육전문직은 교육 분야에서만은 최고의 전문가이다. 사회가 세분화되고 점점더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위기에서 교육을 잘 알고 있는 교육전문직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럼에도 '교육부의 전문직은 해당 좁은 분야에만 전문성이 있고 그걸 토대로 다른 걸 만들어 내는 능력이 태부족' 이라고 말했다는 것에 대해 일선교원들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보고 있다. 교육부총리가 누구인가. 교육부의 수장이 아닌가. 교육부의 수장이라면 우리나라 교육계 전체를 대표하는 것 아닌가. 그런 교육부총리가 교육전문직을 폄하했다는 것은 곧 교원을 폄하하는 발언을 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다. 교육전문직들이 실제로 능력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이것을 외부로 알리고 비판하는 것을 교육부총리가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학교 교사인 A교사는 '교육부의 전문직이 교육정책 수립 등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우리가 볼때는 교육전문가가 아닌 경제전문가가 교육부총리이기 때문에 도리어 교육발전이 잘 안되는 것으로 본다. 이런 의식을 가진 교육부총리가 교육부의 수장이니 교육이 제대로 될리 없다. 교육부 장관은 반드시 교육전문가가 해야 한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전문직들도 모두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교육 분야에서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최고의 전문가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필요없는 존재인양 폄하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교육부총리는 전문직은 물론, 교원들에게 사과해야 옳다. 행정능력을 발휘하는 일반직 출신들은 그들대로 능력을 발휘하고, 전문직은 전문직대로 능력을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전문직의 교육적 능력과 일반직의 교육적 능력은 서로 같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전문직의 교육적 능력과 일반직의 행정능력은 서로 비슷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들을 적절히 조화시켜 교육정책을 수립한다면 이상적인 교육정책이 수립될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능력을 폄하하거나 비판한다면 교육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영어 전문교육기관을 표방한 한 업체가 제주도의 후원을 받고 있는 것처럼 허위 광고를 하고 학생들을 모집한 사실을 안 학부모들이 사기라고 주장하며 검.경찰에 고발키로 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S초등학교 학부모 2명은 17일 오후 K그룹이 제주국제영어마을을 운영 중인 북제주군 소재 J수련원을 찾아 시설 등을 둘러 본 뒤 K그룹 관계자들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영어캠프에 참가한 자신의 아이들을 데려갔다. 이들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나눠준 공문에 '제주도청 후원'이라고 돼 있어 믿고 아이들을 보냈는데 이럴수가 없다"며 "완전히 거짓된 정보를 제공한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은 또 "시설이 열악하다거나 아이들이 숙식 문제로 고생을 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며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외국인 선생님들은 다 어디 가고 원어민 강사가 1명 밖에 없느냐"고 따졌다. 학부모들은 이어 "어떻게 거짓된 공문을 학교로 발송해 학부모들을 기만했는지 그 과정을 밝혀야 한다"며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검찰이나 경찰에 이 같은 사실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K그룹 관계자들은 학부모들에게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채 "학생들이 집에 가기 싫어할 정도로 이곳 생활을 즐거워하고 있다"며 "교육프로그램 운영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K그룹은 지난해 말 J수련원과 장소 계약을 체결한 뒤 일부 시설을 보완한 뒤 학생 1인당 80여만원을 받고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수도권과 인천, 충청권 지역 학생 260여명을 모집해 영어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K그룹은 이 과정에서 홈페이지에 마치 제주도가 후원하고 있는 것처럼 제주도지사의 사진과 환영사를 올리고 제주도 로고를 사용하다 문제가 불거져 제주도가 이를 제재하자 지난 16일 이 같은 내용을 삭제했다. 또 각 학교에는 '제주도청 관광국 외국어지원팀 품의', 제주국제영어마을 운영비 지원', '제주도청 후원 아래 2005 제주국제영어마을 개최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내 학생과 지도교사를 모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제주국제영어마을 관계자의 친인척이 제주도청과 제주도교육청의 고위 공무원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주도 및 교육청과의 유착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학사모) 강원본부는 17일 중.고 신입생에 대해 오는 4월까지 교복을 입지 않고 등교하더라도 학교측에서 제재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강원도교육청에 요청했다. 이강선 학사모 강원본부장은 이날 강원도교육청을 방문, "대기업 제품 교복의 원가를 공개, 거품을 빼려고 한다"며 "신학기를 맞아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가 구성될 때까지 신입생에 한해 교복을 입지 않더라도 학교측에서 제재를 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도교육청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며 "마침 오늘 학교폭력 예방 관련 초.중.고 교장 및 전문직 연찬회가 열려 강원지역 학교 교장들에게 우리의 주장이 잘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강원본부장은 "대기업 제품 교복으로 인해 아이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며 "교복값 인하에 대해 교육당국의 소극적인 자세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교복을 구입할 수 있는 기간이 너무 짧다 보니까 대기업 측이 개학까지만 버티면 된다는 식"이라며 "개학 후 4월까지 20% 가량 교복값 거품을 뿌리 뽑겠다"고 덧붙였다.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가 교복을 채택하는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물론, 신입생이 당분간 교복을 입지 않아도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할 것을 각 학교에 당부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주호영(朱豪英) 의원은 17일 "날치기 통과된 개정 사학법은 용어의 사용이 부적절하고 조문 상호간 모순되는 등 법으로서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판사 출신인 주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학법을 재개정하지 않고는 시행일인 7월1일부터 도저히 시행될 수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주 의원은 개정법의 문제점으로 ▲'또는'으로 표현할 부분을 '과'로 잘못 사용한 것(20조 2의1항) ▲'중에서'라고 표현할 것을 '및'으로 잘못 표기한 것(25조 3의2항) ▲해임 학교장의 재임용 연도가 조항마다 '3년'과 '5년'으로 표기돼 상호 모순되는 점(54조 3의1항2호, 같은조 2항) 등을 거론했다. 주 의원은 "이 모두가 제대로 된 준비와 검토없이 무리하게 날치기 처리한 결과"라며 "부실법을 그대로 두는 것은 국회의 수치이니, 하루빨리 여당 스스로 개정에 나서 잘못된 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장학관.교육연구관 ▲초등교육과장 임완희 ▲과학실업정보과장 황봉현 ▲보령교육장 김창순 ▲부여교육장 조유연 ▲태안교육장 오창근 ▲당진교육장 최동식 ▲초등교육과 인사담당 양효진 ▲초등교육과 유아특수담당 유장식 ▲교육과학연구원 교수학습지원부장 정규상 ▲학생회관 예술진흥부장 조병수 ▲교육연수원 오선규 ▲충무교육원 구영회 ▲〃 조재영 ▲서산교육청 학무과장 문희봉 ▲연기교육청 학무과장 김영진 ▲부여교육청 학무과장 임재무 ▲당진교육청 학무과장 이상돈 ◇장학사.교육연구사 ▲초등교육과 이을용 ▲ " 이인수 ▲ " 전호숙 ▲중등교육과 노재거 ▲ " 최인섭 ▲ " 서정문 ▲ " 이영이 ▲ " 이현복 ▲과학실업정보과 백운기 ▲ " 오창호 ▲ 교육정책홍보과 박미애 ▲ " 이재영 ▲교육과학연구원 정영규 ▲ " 정지원 ▲ " 유미숙 ▲교육연수원 오병익 ▲ " 김성수 ▲ " 강양희 ▲ " 이하영 ▲충무교육원 조기성 ▲ " 오능근 ▲ " 박병동 ▲외국어교육원 최순옥 ▲ " 공순택 ▲ 천안교육청 고미영 ▲ " 박혜숙 ▲ " 김영조 ▲ " 장경수 ▲ " 박상식 ▲공주교육청 상희구 ▲ " 오광식 ▲보령교육청 나상무 ▲ " 이병례 ▲아산교육청 김언중 ▲서산교육청 정호영 ▲ " 황연종 ▲ " 유병관 ▲논산교육청 김순옥 ▲ " 구미숙 ▲연기교육청 신열호 ▲부여교육청 정희순 ▲서천교육청 유미선 ▲ " 최규학 ▲청양교육청 조중철 ▲ " 위영란 ▲홍성교육청 복기헌 ▲ " 이석구 ▲ " 박우진 ▲예산교육청 인정인 ▲ " 진영순 ▲태안교육청 김종석 ▲당진교육청 안흥식 ◇초등교장(유치원 원장) ▲천안백석초 송인철 ▲천안직산초 이남현 ▲천안오성초 유용조 ▲천안부영초 임방수 ▲천안서초 김경숙 ▲천안 삼은초 이병미 ▲천안 용정초 조남식 ▲공주중동초 고경환 ▲공주 주봉초 편범희 ▲공주 석송초 김석제 ▲공주 호계초 서재원 ▲보령 관창초 최종민 ▲보령 광명초 양달호 ▲보령 미산초 이중문 ▲아산 영인초 이봉원 ▲서산 서동초 이성주 ▲서산 학돌초 김기상 ▲서산 해미초 송인성 ▲서산 운산초 최원식 ▲서산 반양초 윤신중 ▲논산동성초 권화선 ▲논산중앙초 서대식 ▲논산 노성초 김영헌 ▲논산 은진초 정양주 ▲논산 양촌초 박영복 ▲논산 동산초 구영석 ▲금산 금산초 김달원 ▲조치원명동초 윤규철 ▲부여 대왕초 조흥수 ▲부여 세도초 김영구 ▲부여 남산초 성평모 ▲홍성 광동초 김연태 ▲홍성 신당초 엄기정 ▲당진 신평초 오병환 ▲당진 한정초 박법배 ▲당진 기지초 강종구 ▲당진 원당초 최항묵 ▲천안인애학교 하상근 ▲강경황산초 최재거 ▲서산 부춘초 정헌찬 ▲천안용곡초 김항중 ▲천안신촌초 석순경 ▲천안신부초 허은 ▲천안봉서초 유의열 ▲공주 왕흥초 이은방 ▲공주 학봉초 이순구 ▲공주교동초 서성길 ▲공주봉황초 윤무섭 ▲보령 송학초 이종권 ▲서산 서림초 이병옥 ▲논산 왕전초 오창영 ▲논산 도산초 윤효순 ▲계룡 금암초 변재의 ▲연기 금남초 이병웅 ▲부여 부여초 강대봉 ▲부여 구룡초 윤영환 ▲부여 양화초 이희일 ▲홍성 용봉초 이석춘 ▲예산 삽교초 김중기 ▲태안 백화초 고종영 ▲태안 파도초 김용혁 ▲당진 고산초 최영식 ▲당진 합덕초 김택일 ▲금산 금성초 오제신 ▲서천 마동초 강서구 ▲천안용소초 권혁운 ▲천안업성초 양문석 ▲논산 가야곡초 고석모 ▲금산 남일초 박천순 ▲예산 덕산초 박승천 ▲당진 순성초 정도영 ▲천안 수신초 이남섭 ▲천안 신계초 조휘완 ▲천안 도하초 이시우 ▲천안 양대초 김영관 ▲아산 음봉초 이용래 ▲아산 백석포초 김동수 ▲서산대진초 박민규 ▲서산 동암초 이인규 ▲서산 운신초 주내영 ▲서산 차동초 박재헌 ▲서산 고성초 김진성 ▲논산 감곡초 권인원 ▲논산 호암초 김동식 ▲논산 광석초 임규중 ▲논산 이화초 강희산 ▲금산 상곡초 한상구 ▲연기 쌍류초 서종숙 ▲연기 연남초 최병재 ▲서천 비남초 정하철 ▲서천 서남초 홍남표 ▲서천 문산초 홍문표 ▲예산 봉산초 이규성 ▲태안 송암초 박종만 ▲당진 천의초 한길동 ▲당진 송악초 강현구 ▲당진 조금초 남궁진 ▲당진 도성초 김현규 ▲당진 남산초 이병호 ▲서산성봉학교 김세중 ▲보령 명천유치원 백진숙 ▲당진 용연유치원 강윤숙 ◇중등교장 ▲천안여중 이언구 ▲천안부성중 김용환 ▲천안용곡중 오병률 ▲천남중 김정식 ▲장기중 김준환 ▲천북중 최정호 ▲영인중 심성래 ▲고북중 이호순 ▲금암중 이재승 ▲부리중 전명환 ▲연서중 김영중 ▲남성중 김양선 ▲홍성중 김원호 ▲면천중 김성삼 ▲천안여고 민완기 ▲충남예술고 김영천 ▲천안쌍용고 류창기 ▲천안신당고 안창모 ▲병천고겸병천중 김복희 ▲공주생명과학고 이석구 ▲대천고 이병직 ▲진산공고 서승태 ▲부여정보고 조소연 ▲홍산농공업고겸홍산중 윤평로 ▲청양농공고 천장옥 ▲청양여정보고 한석문 ▲광천정보고 강옥균 ▲공주정명학교 박민종 ▲천안동여중 박성건 ▲온양중 이정희 ▲조치원여중 변재열 ▲추부중 전병서 ▲정산중 지희순 ▲홍성여중 김중태 ▲삽교중 지병규 ▲천안공고 김완식 ▲충남체육고 이광필 ▲부여여고 인동환 ▲예산여고 류일호 ▲합덕산고 최문기 ▲예산전자고 손영원 ▲천안북중 임양택 ▲공주여중 김정희 ▲조치원중 백성기 ▲세도중 서광원 ▲용남고 김두식 ▲계룡고 김영현 ▲금산여고 조남강 ▲강경중 홍순승 ▲서면중 임재희 ▲금마중 박종호 ▲대술중 차용문 ▲고덕중 서용석 ▲신암중 전대흥 ▲창기중 이용언 ▲당진중 김락중 ▲순성중 남상원 ▲충남해양과학고 유병학 ▲운산공고 윤선규 ▲부석고 황하영 ▲홍성공고 이중배 ▲신창중 신희자 ◇초등교감(유치원 원감) ▲천안 김해영 김석진 장석구 설정순 오용근 이후배 김준표 손옥균 강태범 이윤대 천명희 김용진 한근 ▲공주 유영욱 이범규 김용겸 강태구 박천명 박은종 송여준 ▲보령 김종권 백은숙 전영배 ▲아산 윤은진 박학진 장인숙 ▲서산 최희경 김혜경 김창규 박상길 유제영 김형란 김범석 ▲논산 황선춘 전창식 윤종학 이재홍 이혜주 ▲연기 문추인 ▲부여 임호영 오정환 문제명 유창열 남기화 ▲서천 신안순 구자덕 김종숙 이혁수 임수혁 ▲청양 박윤선 임충묵 ▲홍성 서동식 조황영 이능세 이승연 김태영 ▲예산 장황훈 최병석 박란수 ▲태안 윤봉호 ▲당진 길동환 이미경 ◇중등교감 ▲천안 이덕훈 안상기 박돈희 ▲공주 김주한 ▲보령 황의호 서용문 김종범 이주대 ▲아산 박길웅 김승철 ▲서산 서뢰석 정명광 이성우 이종렬 ▲논산 조일형 오종근 ▲금산 이성대 가권순 ▲부여 오순옥 ▲서천 박노원 ▲청양 이명근 ▲홍성 박용자 이영교 ▲태안 정용주 ▲당진 강미애 원동규 박상익 윤용복 ▲천안공고 신구현 ▲공주공고 황우배 ▲대천여고 천윤철 ▲논산고 이선범 ▲강경고 이태주 ▲공주대 노수영 최지석 ▲청양농공고 김동식 ▲청양여정보고 이상규 ▲목천고 남궁환 ▲천안신당고 한상규 ▲계룡고 박진상 ▲용남고 이회원 ▲예산전자공고 조영운 ▲부여전자고 황연수 ▲갈산고 구재기 ▲홍성공고 이근종 ▲태안고 정기홍
매년 5월이오면 교사들을 참으로 괴롭다. 신문이나 방송사에서는 무슨 큰 일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너도나도 교사들의 비리며, 알량한 봉투 사건 등을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마치 이 세상에서 교사라는 것들이 모두 없어져 버려야 할 몹쓸 인간들인 것처럼 떠들어대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교사의 조그만 잘 못이 그렇게 요란스럽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겠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언론에서 떠드는 그 사람들은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사람들일까? 만약 학교에 보내는 분들이라면 그렇게 하면 자기 자식이 학교에 가서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는 하는 것일까? 그렇게 못된 사람으로 몰아 부치는 집의 자녀가 학교에 와서는 그런 잘못된 사람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려 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아이는 이미 교육을 받을 준비도 안되고, 받으러 하지도 않을 것인데 과연 교육은 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 착잡하기만 하다. 오죽했으면 [5월이 되면 도지는 병]이라는 글을 써서 신문에 기고를 했겠는가? 사실 스승의 날은 1960년대 어려웠던 시절에 강경여상이라는 시골 학교에서 청소년적십자단원들이 시작한 행사다. 그 뜻이 갸륵하여서 이듬해에는 전국의 청소년 적십자단체가 있는 학교로 확대되었고, 이것이 모든 학교로 퍼져 나가면서 기념일로 지정이 되었던 것이다.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정년을 맞는 나는 그 때 [스승의 날]을 전국에 퍼뜨린 청소년적십단 단원의 한 사람으로 시내에서 간부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을 만들어낸 사람 중의 하나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진정으로 좋은 뜻에서 생겨난 스승의 날이라는 행사가 도시에서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학교 입시에서 벗어나 무시험진학을 하게 되면서 학교에서는 밤늦게까지 입시공부를 시키는 일이 없어지고, 가정에서는 가정교사라는 것을 두어서 특별 지도를 하는 일이 줄어 둘었지만, 내 자식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이나 노력도 아끼지 않겠다는 교육열성은 드디어 치맛바람으로 학교를 휩쓸기 시작한 것이다. 오직 내 자식만은 남다른 특별 대우를 받고 싶다는 생각, 남의 자식보다 차별 대우를 받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순수한 정이 담긴 선물이 아닌 [뇌물]성 봉투가 오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흔히 촌지라고들 하지만 그것은 촌지가 아니다. 촌지의 사전적 의미는 이다. 여기에서라면 쯤으로 해석을 하면 좋을 말이다. 그런데 이런 자그마한 마음이나 정성이 아닌 [뇌물]을 주고받는 다는 것이 매년 이 무렵의 문제점으로 언론을 들뜨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면서 스승의 날이라는 의미는 살려 가자는 여러 가지 방안이 나오기도 하고, 여러 차례 논의가 되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2월로 옮겨서 우리 전통 풍습인 [책거리]로 생각하게 하자는 의견도 나왔었다. 그러나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어버이날에 자식들에게 부담이 많으니 어버이날을 없애고, 명절에 인사드리는 것만으로 하자는 것 같은 이상한 모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반대를 해왔었다. 그렇지만 매년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교육부로부터 내려오는 공문은 교사라는 자긍심을 깡그리 뭉개어 버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스승의 날 행사를 없애고 평상과 같이 수업을 하는 학교도 생겼다. 아니면 아주 그 날을 효도 방학이나 현장 학습일로 지정을 하여서 수업을 하지 않고 휴업을 하기도 하고 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학부모로부터 뇌물성 봉투 -소위 말해 촌지-를 받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촌지를 받을 수 없도록 아예 학교를 쉬어 버리겠다는 방침인 것이다. 그렇게 삐딱한 마음으로 학교를 쉬지 말고 차라리 노동절처럼 스승의 날은 교직에 몸담고 있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해서 하루쯤 쉬는 날로 하면 어떤가? 그렇다고 전국적으로 모든 사람이 다 쉬는 날이 아니므로 국가 휴일에 대한 규정에 문제가 되거나, 다른 생산에 차질 같은 것이 일어나지도 않는 것이니 좋은 방안일 것 같다. 제발 교사들을 몹쓸 사람으로 만들지 말고, 차라리 하루 편안히 쉬게 해준다면 스승의 날 본래 취지는 아니지만, 오히려 마음 편하게 해주는 효과는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요즘 어디를 가나 영화 '왕의 남자'가 화제다.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 '원시인'이라며 면박을 주기도 한단다. 이제는 '왕의 남자'를 '보았느냐 안 보았느냐'를 넘어 '몇 번 보았느냐?'로 그 사람의 문화수준을 가늠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린다. '왕의 남자'가 관객 천만 명을 돌파하였다. 영화관마다 '왕의 남자' 표를 구하기 위한 인파로 줄이 길게 늘어 서 있다. 이런 추세라면 아마 우리나라 영화 사상 최고, 최대의 흥행 영화라는 기록을 남길 듯싶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한두 번도 아니고 다섯 번, 열 번, 아니 스무 번도 넘게 보는 일명 '왕의 남자, 폐인'들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그동안 축구에만 미쳐 살다 처음으로 영화란 것에 미쳐본다."(닉네임 ‘각시탈공길 님), "혼을 빼놓았소. 흥분, 숨 막힘, 뭔지 모를 끓어오름, 그리고 진하게 시린 가슴… 내 생에 있어 또 다시 어디에 미쳐 있을 일이 있을까요."(두루마리 님) 등 많은 네티즌들이 월드컵과 비교하며 자기도 모르게 이 영화에 빠져들고 있다고 했다. 또한 오늘로 20번째 관람하고 왔다는 '자유의 감옥'님은 오늘도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며, "왕의 남자 향기가 너무 짙습니다. 가시질 않아요"라고 말했다. 도대체 '왕의 남자'의 무엇이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내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이 영화에 중독 되어 보고 또 보고 하는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극장으로 달려가 사람들도 만나보고, 한 인터넷 카페 '왕의 남자'에 올라온 감상과 평을 두루 읽었다. 자칭 자신들을 '왕남 폐인'이라고 당당하게 밝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볼거리가 풍성하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영화다', '가슴을 울린다. 여운이 있다. 카타르시스가 있어 좋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 이번엔 안 울어야지 이를 악물어도 또 울고 만다. 휴지나 손수건이 꼭 필요한 영화다', '주인공격인 네 사람 모두 슬픔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광대는 왕으로 왕은 광대로 둔갑하게 만들어 극적 긴장성을 형성한다', '보면 볼수록 의문이 많이 남는 영화다. 공길과 장생은 왜 그랬을까? 또 연산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끝없는 의문이 자꾸만 영화관을 찾게 만든다.' 사람마다 진단은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훌륭하다', '대단하다'는 평보다는 무언가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다는데 동의하고 있었다. 그것이 대체 무엇일까? 무엇이 사람들의 심금을 이다지도 울리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폐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듣다보니,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다른 영화와 달리 '왕의 남자'만의 독특한 마력을 굳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줄타기'이다. 물론 광대들의 '1차적인 줄타기'가 이 영화의 재미를 한층 더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2차적인 줄타기'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와 허구 사이에서의 줄타기, 또 하나는 인물과 인물 사이에서의 줄타기다. 우선 이 영화가 어디까지 역사이고 어디까지 허구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왕의 남자'는 분명 실존인물의 일대기를 다루거나 과거를 재조명하려는 '역사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역사와 무관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전통 사극일 뿐이다. 사극 열풍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류의 주역으로 손꼽히는 드라마 '대장금'이나, 현재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서동요'와 마찬가지로 '왕의 남자'는 무엇보다 먼저 풍부한 상상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인물 '장생'은 가공인물이다. 그러나 '공길'은 실존인물이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 공길(孔吉)의 이 말에 왕은 불경하다 하여 곤장을 쳐서 유배하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보인다. '연산군일기'에 딱 한 번 등장하는 이 기록에 이런 저런 풍부한 상상력과 구성진 이야기가 덧붙여져 영화 가 탄생한 것이다. 이 밖에도 장녹수, 인수대비, 내관 김처선, 이조판서 성희안, 광대, 경극 등을 두고도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역사와 허구 사이에서의 줄타기가 이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는 평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줄타기는 인물과 인물사이에서의 줄타기다. 물론 연산과 중신 등 다른 인물들 사이에서의 줄다리기와 줄타기도 볼만하지만, '왕의 남자'를 보고 또 보게 만드는,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하는 가장 핵심적 장치는 바로 '장생과 공길의 줄타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길이라는 인물에게 관심이 집중된다. 단순히 예쁜 남자라서 그럴까? 아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움에 대한 자기 투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길의 미모는 동방신기나 현빈, 원빈과 같은 꽃미남과는 사뭇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아니마'(남성 속에 있는 이상적인 여인상)가 있다. 공길이 가진 '아니마'는 여성보다는 모성, 그리고 모성이 만들어낸 사랑이라는 판타지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잘 포장된 판타지를 제공하는 단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한 방송사가 토론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는데, 마광수 교수는 "사람들은 거울을 통해서 만족을 꾀하는 '나르시시즘'이 내재" 되어 있고, "여자든, 남자든 모성애를 동경한다. 자궁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궁을 그리워한다"고 하여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공길의 '아니마'는 영화 속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패거리들을 배부르게 하기 위해 원치 않는 매춘을 하고, 장생을 구하기 위해 낫을 들고, 어미를 잃은 연산을 가슴을 열어 보듬어 주는데, 이것이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공길 속에 내재해있는 '아니마'라는 블랙홀에 양반들도 빠져들고 연산군도 빠져들고 장생도 빠져들고 심지어 관객들도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마치 사랑의 신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것처럼…. 다만 장생의 사랑법은 남색하는 양반이나 연산군과는 달랐다. 그것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아련하게 적시는 것이다. "양반의 눈이, 자신들의 재주가 아니라 공길의 몸에 가있다는 것을 눈치 챈 장생은 일부러 줄에서 떨어져 공연을 중지합니다. 그리고 맞지 않아도 될 매를 벌어가면서까지, 양반의 손에서 공길을 구해냅니다. 궁으로 들어간 장생은 공길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연산 때문에 당황합니다. 그러면서 놀랐을 겁니다. 공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결코 형제애만은 아니란 걸 알게 되었으니…. 등을 돌린 채 이불을 걷어내고 자고 있는 공길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장생은 잠시 갈등했을 겁니다. 어느 양반처럼 혹은 연산처럼 공길을 품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공길도 그걸 원하고 있는지도 몰랐고요. 하지만 그런 욕망을 누를 수 있는, 육체적 사랑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사랑이 장생에게는 있었을 것입니다." '왕의 남자'를 열 번이나 보았다는 40대 후반 남자 '폐인'의 평이다. 정말 공길에게 향한 장생의 이틋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동성애였을까? 우정이었을까? 형제애였을까? 동지의식이었을까? 아마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기에, 뼈를 깎는 아픔으로 욕망을 꺾어 아로새기고, 공길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내던지고 기꺼이 희생하며, 그것을 우정, 또는 형제애, 아니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가치로 승화시켰기에, 보고 또 보아도 슬프고 아프고 아름다우며 두고두고 아련하게 여운이 남는 것은 아닐까? 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장생과 공길의 줄타기를 통해 관객은 단순히 연인 간의 로맨스보다 훨씬 진하고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을 만끽하는 게 아닐까 싶다. 중년의 남자 '폐인'은 열 번을 보고도 또다시 영화가 그리워진다면서 여운처럼 한 마디 덧붙였다. "허허허, 넉넉한 장생이 그립습니다. 슬픈 눈의 공길이 자꾸만 그립습니다."
2006학년도 새 학기가 곧 시작될 것이다. 지금 학교에서는 졸업식이 거행되고 있다. 3년 동안 혹은 6년 동안 다니던 정든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꿈을 찾아 힘차게 교문을 나서고 있다. 8살짜리 꼬마로 입학해 6년 동안 열심히 몸도 크고 지식도 자랐다. 제일 막내둥이에서 이제는 제일 맏형, 맏언니가 되어서 졸업을 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입학할 때는 어린 티가 보이다가도 졸업할 때 쯤 되면 체격도 커지고 지식도 인격도 몰라보게 성숙되어 졸업을 하게 된다. 대학교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1학년 때는싱싱하고 어려보이다가 4학년이 되면 체계적인 학식이 몸에 밴 의젓한 어른의모습이 되어 사회로 진출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유치원이 빠진 것 같다.처음 유치원을 보내는 엄마 아빠들의 마음은 얼마나 설렐까. 만만치 않은 교육비 때문에 걱정을 하면서도 학부모가 되었다는 뿌듯함에 가슴이 벅찰것이다. 유치원생이 된 아이들은또래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선생님들로 부터 단체생활의 예절을 배우고, 시간을 지키는 법, 혼자서 식사하는 법, 친구들과 사이좋게 노는 법, 교통질서 지키는 법 등 다양한 기본생활 태도를 배우게 될 것이다. 이렇게 교육에 의해서 아이들은 인격과 학문을 닦으며 성장하여 우리나라의 일꾼들이 되는 것이다.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전문 지식을 쌓고 전문 기술을 익혀 직업을 갖게 되고 그 기술 그 지식으로 경제적 자립을 이루게 된다. 교육은도덕적인 사람을만들고 이 사회에 유익한 인간을 길러낸다. 교육이야 말로 인류발전의 원동력이며 질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한 기반이 된다. 이제 곧새 학기가 시작된다.모든 학교가 졸업식을 끝내면 또 입학식 준비를 하게 된다. 신입생을 배정 받고 배치고사를 치루고 반 편성을 하게 된다.담당 업무와 담임이 결정된다. 공립학교에서는 5년에 한 번씩 학교를 옮겨야 하기 때문에 대략 5분에 1정도의 선생님들이 해마다 이맘때면 자리 이동을 하게 된다. 우리 학교 영어 선생님 한 분도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났고 한 분은 1년간 어학연수를 위해 미국에 체류할 예정이란다.두 분의 영어선생님이 새로 오셔야 한다.교과협의회를 거쳐 담당학년과 학급을 조정하는 작업이 남았다. 또 3학년을 맡아야 할지 아니면 1학년을 맡는 것이 어떨까 생각 중이다. 새로 오시는 선생님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되기 때문에 아직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철저하게 교재연구를 해야 자신감이 생기고 수업을활기차게 이끌어갈 수가 있다. 학생들에게 동기유발을 시킬 수 있도록 수업을 재미있게 이끌어가는 것도 수업성공의 요건이다. 올 해는 지난해 보다더 향상된 질 좋은 수업을 해야겠다고다짐해본다. 교재는 몇 권 정도가 좋은지. 수업 진도는 어떤 속도로 나가야 좋은지. 기본단어를 숙지케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짜야 하는지. 3학년에서 짚고 넘어가야할 문법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계획을 세워 실천해볼 생각이다.듣기 말하기는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지 또 교사의 일방적인 설명보다 학생들이 참여하는 능동적인 수업은 어떻게 가능한지도 짚어볼 것이다.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나는 3월 첫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파이팅'이라는 말이 국적 불명의 가짜 외래어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이 말이 두루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 번 시험 삼아 인터넷에서 이 단어를 검색해 보았더니, '파이팅'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사이트, 카페, 블로그'가 얼마나 많은지, 그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책, 음악, 게임, 이미지, 동영상' 등에도 이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어,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신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훈련을 마친 뒤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태극전사들, 경쟁은 결국 팀이 이기기 위해서 펼치는 것일 뿐이다”(일간스포츠) “영화배우 박중훈씨가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자, 주변에서 경비근무를 서고 있던 전투경찰들이 박씨와 기념사진을 찍겠다며 몰려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세계일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귀기울여 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대입 수험생들 모두 파이팅!” “쾌유를 기원합니다. 파이팅!” “아빠, 오늘 하루도 승리하세요. 파이팅!” 이렇듯 ‘파이팅’이라는 말은 어느새 각종 경기장은 물론이고, 신문·방송, 심지어 우리 생활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그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서도, 병원에서도, 심지어 교회와 가정에서까지 무분별하게 쓰고 있습니다. 'fighting'은 분명 '싸움'을 뜻하는 영어로, 상스런 표현입니다. 모두들 알고 애용하시는지 모르고 애용하시는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이것은 엄연한 국어 파괴 현상’이라며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파이팅, 파이팅 하면 어디 싸움난 줄 안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슨 호전적인 쌈닭들입니까? 시도 때도 없이 파이팅 외치게……” 하며 목소리를 높이더군요. “이제 그것이 얼마나 살벌한 구호인지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무의미한 구호인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얼빠진 짓인지 되돌아봅시다. 이제 '파이팅'은 끝내기로 합시다. 21세기에는 상황이나 맥락에 맞는, 분명한 우리말 구호로 새 세상을 가꾸어 나갑시다.” 리의도 교수의 주장입니다. 물론 일부 학자들은 파이팅(fighting)이 전투나 격렬한 싸움을 할 때 쓰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어에서 그러한 것이고, 우리 국어에서는 그런 의미보다는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내는 감탄사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핸드폰, 선팅, 백미러, 포볼’처럼 한국식 영어로 정착했기에 사용해도 무방하지 않느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최용기 학예연구관은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이 말은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입니다. 영어에서 이 말은 호전적인 뜻으로 ‘싸우자’ ‘맞장 뜨자’는 정도의 뜻만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위와 같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계속하자’ 뜻으로는 속어로 ‘키프 잇 업’(keep it up)을 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파이팅’은 출처가 모호한 가짜 영어인 셈입니다. 이런 국적 불명의 가짜 외래어가 우리말을 더 갉아먹기 전에 우리말의 순수성을 살려 새 말을 만들어 가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참고로, 이 말은 일본외래어 ‘흐와이또’, ‘화이또’(영어의 'fight’)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쓰이고 있는 굳이 표현하자면, ‘2차 외래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어떤 유식한(?) 우리나라 사람이 여기에 ‘ing’를 붙여 동명사형으로 바꿔, 더 엉터리 영어를 만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위도 모르고, 그동안 우리 국민은 그것이 맞는 표현인 줄 알고, 미국사람들도 두루 쓰는 세련되고 멋있는 표현인 줄 알고 주체성 없이 너나할 것 없이 따라 쓰다보니 이렇게 널리 퍼진 것입니다. “'파이팅'은 영어 어법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미상 외국인에게 거부감을 주는 말이다.”(대한매일 2002. 3. 23), “우리 정서에 맞는 우리만의 구호를 찾아내는 일이 필요하다.”(한겨레 2002. 4. 20) 등 응원이나 상대방 격려의 뜻으로 쓰이는 '파이팅'은 원래의 뜻과도 다르고, 격려의 뜻에도 쓰기 곤란하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자, 마침내 국립국어원이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원래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에는 ‘Fighting’의 순화어가 ‘힘내자’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지난 2004년 ‘모두가 함께 하는 우리말 다듬기’(http://www.malteo.net)를 통해 일반 국민의 참여로 ‘파이팅’을 ‘아자’로 다듬었습니다. 그러나 순화어 ‘아자’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낱말에 대해 투표를 해서 결정하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이용하다보니 일부 계층의 의견만 수렴되었다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아자’보다 더 좋은 ‘아리아리’, ‘지화자’ 등의 표현들이 탈락되었다는 것이지요. ‘아자’의 유래와 어원도 논란거리입니다. 감탄사 '아'와 '자'의 합성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어원과 유래가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요즘 퍼지고 있는 ‘아싸’와 마찬가지로 ‘아자’도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일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이는 ‘아자’의 어원을 ‘아작내다’라는 북쪽 사투리에서 찾고 있는데, 그 표현이 너무 과격하지 않느냐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아내’라는 표현 외에도 ‘집사람, 안사람, 부인, 마누라’ 등 여러 표현을 함께 쓰는 것처럼, ‘아자’라는 순화어와 함께 ‘아리아리’, ‘힘내자’, ‘영차’, ‘잘해라’, ‘지화자’, ‘얼씨구’,‘뛰어’, ‘가자’, ‘최고야’, ‘어기여차!’ 등의 멋진 우리말을 두루 쓰면 더욱 좋을 듯합니다. 특히 ‘아리아리’는 ‘아리랑’의 앞부분에서 따온 말로 ‘여러 사람이 길을 내고 만들어간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예술적이고 도덕적인 우리 민족다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말이 없어서 외국어를 빌려다 쓰는 것이라면 문제 삼기 어렵지만, 분명 우리의 좋은 말을 숱하게 두고도 국적불명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디로 보나 주체적이지 못한 태도입니다. 프랑스의 경우, 쓸 수 있는 불어가 있음에도 영어를 쓰면 벌금까지 물리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모국어’를 지켜내자는 줏대 있는 정책이지요. 반면 우리의 경우, 한자나 영어 대신 우리 고유의 말을 살려 쓰자고 하면, ‘촌스럽다’, ‘평범하다’는 반응들을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들 무의식 속에 ‘우리 것은 천하고 남의 것은 고상하다’는 사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옛날에야 우리나라가 못 살고 가난했으니, 다시 말해 세계사의 뒷전에 머물러 있어야 했으니 외국 것이 좋아보였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제는 당당하게 세계사의 선봉에 서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직도 이런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세계인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한번 한다면 해내고야 마는 대한민국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말글 바로 알고 바로 쓰기’에 모두들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그게 바로 나라사랑이고 겨레 사랑입니다. 전에 한 교육정보업체에서 설문조사를 하였더니, 수능시험을 앞 둔 후배들에게 선배들이 가장 해주고 싶은 말로 ‘넌, 할 수 있어’를 꼽았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파이팅’이라는 국적 불명의 용어 대신 멋진 우리말로 된 현수막으로 응원과 격려를 해 줄 수 있는 세상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초·중·고 교장, 고교 교감 임지 지정은 교육감이, 초·중학교 교감 임지 지정은 교육장이 행하고 있다. 리포터는 개선안으로 고등학교는 현행대로 교육감이 하고 초·중학교 교장 발령에 있어서는 교육감은 지역만 발령내되 학교 지정은 교육장이 행했으면 한다. 가뜩이나 교장의 입지가 축소되는 현실에서 교장 품격 떨어지는, 교육감 권한이 축소되는 것이 훤히 보이는데 웬 엉뚱한 제언인가? 그 이유는 현행처럼 교육감이 초·중학교장의 임지까지 지정할 경우, 인사의 인적 반영요소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합리적인 인사를 행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도 교육청 단위에서 관리하는 초·중·고는 대상 인원이 과다하고 범위가 넓어 초·중학교 교장 개개인의 학교경영 능력 등 개별 특성 파악이 어렵다고 본다. 행정체계도 초·중학교는 지역교육청의 관할 아래 통제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인사 시에는 지역교육장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분권화에 발맞추고 권한의 하부 이양 측면에서, 또 행정체계에 맞게 시도교육청은 고교 교장·교감의 임지지정을, 지역교육청은 초·중학교에 대한 학교 지정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2월은 교육계에 있어 가히 인사의 계절이다. 벌써 경북, 제주, 부산, 대구교육청은 관리직 인사를 단행(15일)했고 다른 교육청도 조만간 인사 발표가 이어질 것이다. 이제 많은 학교의 교장·교감이 바뀌어 학교 경영의 패러다임도 변하고 3월의 새학년도를 준비할 것이다. 학교에서 바람직한 교육적 변화는 당연히 있어야 하고 그렇게 되어야 교육이 발전한다. 그러나 '인사가 만사'란 말이 있듯이 잘못된 인사는 학교교육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여기서 잘못된 인사란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않은 인사를 말하는 것이다. 교장과 교감이 화합형으로 제대로 만났을 때 학교는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다. 그렇게 되도록 교육청은 인사를 하고 조장적(助長的) 역할을 하여야 한다. 지역교육청에서 초·중학교 교감 인사를 할 경우, 여러 요인을 감안하고 있다고 본다. 우선, 교장을 중심에 두고 그 학교 교장과의 조화여부에 최대한 초점을 맞춘다. 지역교육청에 배정받은 교감을 적재적소에 배치, 교장을 잘 보좌하도록 하여 해당 학교를 발전시키려는 것이다. 기준을 교장에 두고 교감을 맞추는 것이다. 예컨대 교감 인사시 반영되는 요인으로는 교육철학, 경력, 거주지, 성별, 건강, 성격, 업무 추진능력, 출신 학교, 경영마인드, 조직 장악력, 출신지, 인간관계, 장학 능력, 전문직(장학사, 연구사) 경험 여부, 교육활동 공적, 주요 활동영역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 시 되고 중요히 다루어야 할 것은 교장·교감의 교육관이다. 교장·교감이 호흡이 맞는다는 것은 교육철학이 맞는 것이다. 여기에 전 교직원이 뜻을 모을 경우, 학교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화기애애한 학교 분위기 속에서 교감은 교장을 보좌하고 교직원은 학생교육에 열성을 다한다. 그렇지만 교장과 교감이 뜻이 안 맞을 경우, 보이지 않는 교육력의 손실은 엄청나다. 교직원간의 갈등은 물론이거니와 불협화음으로 학교 분위기가 영 말이 아니다. 그 피해는 엉뚱하게 학생에게 돌아간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것을 예방하려면 첫단추인 인사배치를 잘해야 하는 것이다. 시도 단위에서 학교장의 임지를 지정할 경우, 교장의 교육실적 등 여러 가지 종합되고 검증된 능력을 감안하여 행한다고 본다. 위 10 여가지 인사 반영 요인은 물론, 학교와 지역사회의 여건, 심지어 모 교원노조의 활동상황까지도 감안하고 있으니 인사는 마치 종합예술과 같은 것이다. 시도교육청은 인사 시 모든 관련 정보를 동원하여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려고 힘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교장이 전보 발령 받을 학교에 이미 근무하는 교감의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당 교장과 학교에만 초점을 맞추었지 그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감의 요소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교장을 그 학교에 발령했을 경우, 그 학교 교감과 잘 어울릴 수 있는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교감이 교장에게 맞추면 되지 교감이 뭐 그렇게 대단한 존재냐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맞추어야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맞추는 것 보았냐고? 얼핏보기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더 좋은 교육을 위하여는 인사를 할 때는 이런 작은 사실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감은 교장의 지시와 명령을 받아 그것을 단순히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면 간단한 문제이다. 그러나 학교현장은 그렇지 않고 복잡하게 돌아간다. 교장과 교감이 뜻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교장의 위치와 능력도 중요하지만 교감도 중요한 것이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중요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학교라는 조직체는 원활히 돌아가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교장의 중요성만 강조되었지 상대적으로 교감의 역할을 간과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교감더러 교장에 맞추라는 말이 통용되다시피 했다. 교장과 교감이 갈등이 있는 경우, 일차적으로 교감 잘못이라고 꾸짖는다. 교장을 기준으로, 교장을 중심에 두고 교감에게 억지로라도 맞추라고 한다. 교감에게 묵시적으로 요구되는 '벙어리 3년,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 타령이 여기서 나온 것은 아닌지? 또 '교감의 재직기간과 미니스커트는 짧을수록 좋다'는 말도 그래서 생겨난 것은 아닌가 한다. 그러나 호흡은 혼자서만, 일방적으로 맞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와 박자와 리듬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서로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교육장이 학교장의 초·중학교 임지 지정을 행할 경우, 관련 정보를 많이 알고 있으므로 교장과 교감의 여러 인사 요소를 종합적, 복합적, 심층적, 다면적으로 고려한 인사가 가능하다고 보기에 이런 제언을 하는 것이다. 교육장이 교육감보다 개별 학교와 지역사회 여건 그리고 교직원의 구성 등에 관한 정보를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교장 임지를 지정할 경우, 지금보다 더 좋은 인사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인사,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만치 반영할 요소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고 본다. 교육장이 초·중 교장 임지지정을 할 경우, 법률적인 검토 문제가 뒤따른다면 정부 차원에서 사전에 보완하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본다. 교육부에서는 교육혁신 차원에서 면밀히 검토하여 주었으면 한다.
지난 3년간의 교육정책이 전교조에 휘둘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6일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가 주최한 ‘노무현 정부 3년과 평가와 과제’토론회에서 남승희 명지전문대 교수(바른교육권실천행동 공동대표)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다. 주제발표에서 남 교수는 “교육기본법에는 어떤 정치적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명기돼 있고 교육관계법과 교원노조법에도 교원의 정치적활동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나 전교조는 탄핵반대, 민노당지지 등과 같은 정치행위를 하고 있다”며 “이는 모두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또 남 교수는 “전교조가 교육정책의 수립과 시행과정에 전면에 나서면서 교육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혼란과 불신을 팽배케 했으며 전교조의 일방주의에 대한 우려도 확산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남 교수는 “이같은 불법행위와 연가 투쟁 등과 같은 학생의 학습권 침해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교장단과 전교조, 학부모간의 갈등을 방관자적 입장에서 바라보기만 했다”며 그동안 교육부의 명확하지 않은 태도에 대해서 비판했다. 또 남 교수는 정부의 교육정책이 평등교육 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교원정책이나 학교자치 등 교육정책의 핵심 보다는 개정사학법처리나 대학입지제도 통제를 통해 정부의 권한을 확대해 평등교육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 남 교수의 설명이다. 이같은 문제 해결에 대해 남 교수는 “정부는 명확한 교육정책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고 각 교육주체간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강조점을 평등성에서 수월성으로 옮겨가면서 다양한 교육적 요구를 정책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등록금 인상문제로 전국적으로 대학측과 총학생회측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부산지역 대학들의 등록금 갈등이 총학생회에 등록금 납부하기 운동으로까지 번져 학교 운영의 차질마저 우려되고 있다. 부산대 총학생회는 "17일 오후 대학 본관 앞에서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성토대회를 개최해 학교측의 일방적인 신입생 8%, 재학생 7.7%의 학부 등록금 인상 결정 철회를 요구하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부산대 총학생회는 등록금 인상의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해 재학생 및 신입생 1만7천여명의 가정에 발송한 설명문을 통해 학교측의 일방적인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등록금을 총학생회로 직접 납부해 줄 것을 당부했다. 동아대 총학생회도 학교측이 제시한 학부 등록금 6% 인상안에 반대해 이날 오후 등록금 현물납부 시위를 벌였다. 총학생회 측은 이날 오후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뜻을 대학측에 전달하기 위해 등록금 대신 전공서적, 경운기, 트럭 등 현물을 학교 경리과에 전달했다 거부당했으며 등록금 243만원을 모두 동전으로 바꿔 교내 은행에 납부하기도 했다. 부산교대 총학생회도 학교측이 제시한 신입생 등록금 11.37% 인상안에 대해 "학교측에 이미 등록을 마친 신입생들의 등록금 환불을 요구하고 재학생들에게는 등록 연기 투쟁에 함께 나설 것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부산.울산.경남 지역 9개 대학으로 구성된 21세기 부산.울산.경남지역대학생연합은 17일 오후 부산시내 서면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 촛불 문화제를 개최해 시민들에게 등록금 인상의 부당성을 알릴 계획이다.
매년 5월이 오면 교사들은 참으로 괴롭다. 신문이나 방송사에서는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너도나도 교사들의 비리며, 알량한 봉투 사건 등을 앞 다투어 보도하면서 마치 이 세상에서 교사라는 것들이 모두 없어져 버려야 할 몹쓸 인간들인 것처럼 떠들어대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교사의 조그만 잘못이 그렇게 요란스럽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겠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언론에서 떠드는 그 사람들은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사람들일까? 만약 학교에 보내는 분들이라면 그렇게 하면 자기 자식이 학교에 가서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는 하는 것일까? 그렇게 못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집의 자녀가 학교에 와서는 그런 잘못된 사람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려 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아이는 이미 교육을 받을 준비도 안 되고, 받으려 하지도 않을 것인데 과연 교육은 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 착잡하기만 하다. 오죽했으면 ‘5월이 되면 도지는 병’이라는 글을 써서 신문에 기고를 했겠는가. 사실 스승의 날은 1960년대 어려웠던 시절에 강경여상이라는 시골 학교에서 청소년적십자단원들이 시작한 행사다. 그 뜻이 갸륵해서 이듬해에는 전국의 청소년 적십자단체가 있는 학교로 확대되었고, 이것이 모든 학교로 퍼져 나가면서 기념일로 지정된 것이다.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정년을 맞는 나는 그 때 ‘스승의 날’을 전국에 퍼뜨린 청소년적십단 단원의 한 사람으로 시내에서 간부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을 만들어낸 사람 중의 하나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진정으로 좋은 뜻에서 생겨난 스승의 날이라는 행사가 도시에서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학교 입시에서 벗어나 무시험 진학을 하게 되면서 학교에서는 밤늦게까지 입시공부를 시키는 일이 없어지고, 가정에서는 가정교사라는 것을 두어서 특별 지도를 하는 일이 줄어들었지만, 내 자식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이나 노력도 아끼지 않겠다는 교육열성은 드디어 치맛바람으로 학교를 휩쓸기 시작한 것이다. 오직 내 자식만은 남다른 특별대우를 받고 싶다는 생각, 남의 자식보다 차별 대우를 받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순수한 정이 담긴 선물이 아닌 ‘뇌물’성 봉투가 오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흔히 촌지라고들 하지만 그것은 촌지가 아니다. 촌지의 사전적 의미는 ‘속으로 품은 자그마한 마음’이다. 여기에서라면 ‘속으로 품은 조그만 정성’ 쯤으로 해석을 하면 좋을 말이다. 그런데 이런 자그마한 마음이나 정성이 아닌 ‘뇌물’을 주고받는 다는 것이 매년 이 무렵의 문제점으로 언론을 들뜨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면서 스승의 날이라는 의미는 살려가자는 여러 가지 방안이 나오기도 하고, 여러 차례 논의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2월로 옮겨서 우리 전통 풍습인 ‘책거리’로 생각하게 하자는 의견도 나왔었다. 그러나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어버이날이 자식들에게 부담이 많으니 어버이날을 없애고, 명절에 인사드리는 것만으로 하자는 것 같은 이상한 모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반대를 해 왔었다. 그렇지만 매년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교육부로부터 내려오는 공문은 교사라는 자긍심을 깡그리 뭉개어 버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스승의 날 행사를 없애고 평상과 같이 수업을 하는 학교도 생겼다. 아니면 아주 그 날을 효도 방학이나 현장 학습일로 지정해 수업을 하지 않고 휴업을 하기도 하고 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학부모로부터 뇌물성 봉투, 소위 말해 촌지를 받을 수 없도록 아예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렇게 삐딱한 마음으로 학교를 쉬지 말고 차라리 노동절처럼 스승의 날은 교직에 몸담고 있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해서 하루쯤 쉬는 날로 하면 어떤가. 그렇다고 전국적으로 모든 사람이 다 쉬는 날이 아니므로 국가 휴일에 대한 규정에 문제가 되거나, 다른 생산에 차질 같은 것이 일어나지도 않는 것이니 좋은 방안일 것 같다. 제발 교사들을 몹쓸 사람으로 만들지 말고 차라리 하루 편안히 쉬게 해준다면 스승의 날 본래 취지는 아니지만, 오히려 마음 편하게 해주는 효과는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