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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정부와 여당에서 ‘학교폭력 예방·근절 대책’차원에서 청소년 보호법을 개정, 학교 생활지도부장에게 제한적으로 특별 사법경찰권을 부여하고 교외 단속 활동비를 지원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학교폭력 발생 시 사법경찰권을 부여받은 교사가 관련 학생의 부모에 대해 출석을 요구할 수 있거나 특별한 사유 없이 불응할 경우 벌금형에 처할 수도 있다. 이 법안에는 공익근무요원 대상자 중 교사자격 취득자, 교·사대 졸업자, 심리학 전공자를 인턴 상담교사로 활용,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한 중학교 등에 배치되는 등 늦은 감은 있지만 학교폭력 예방을 위하여 정부가 발 벗고 나선 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교육계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등 사회 일각에서도 사법적 전문성이 없는 교원 신분으로 경찰권을 행사할 경우 통제할 상급자가 없을 뿐 아니라 자칫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인권침해나 남용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정책을 추진하든지 추후 발생될지 모르는 부작용 등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선행된다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현재 산림보호, 식품위생, 환경, 세무 등의 직무 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이 부여되어 있어 실효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사들이 유흥업소, PC방, 노래방 등 청소년 유해업소를 다니면서 선도활동을 하고 싶어도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에 출입을 거부당하거나 심지어는 업주로 부터 협박마저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전에 리포터가 홍보(2006.2.12일자)한 대로 최근 영국 정부는 교육개혁안을 발표하면서 교사들에게 학교 밖에서도 술, 마약 등 학생들의 ‘부적절한 물건’을 압수하거나 불량 학생들을 통제할 수 있는 ‘강제 지도권’을 부여하는 '사회적 존경 회복 운동(Respect Action Plan)'을 전개하고 있는 추세로 우리나라에서도 학교폭력예방을 특단의 조치가 절실한 때이다. 최근 여당과 정부가 학교폭력예방 대책으로 도입한 ‘스쿨 폴리스’ 제도와 교내 CCTV 설치 등이 학생들의 인권이나 교권 침해의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은 것에 비해 교사에게 제한적인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것은 학생 생활지도를 위한 보다 실제적이고 강력한 처방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에 앞서 시급한 것은 무단결석과 학교 내에서 일탈적 행동을 일삼고 선량한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주며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에 대하여 등교정지나 강제퇴학 등의 제재 권한을 부여하고, 관련 학생의 부모에게도 책임을 물어 학교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어쩌면 위험부담이 뒤따르는 유해업소나 우범지역에서의 단속권 부여에 앞서 학교 내에서의 강력한 법적 지도권 강화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차제에 교사의 기본적인 사명이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의 품성을 바르게 지도하는 것이라고 할 때 사법경찰권 행사를 교사 본연의 교육적 사명이라 하기 어려움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학교 내외에서 발생하고 있는 학교폭력에 대비하여 평상시 교사의 적극적인 지도나 상담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하고 자문해 볼 일이다.
이제 신학년도의 시작이다. 교직경력 4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에도 언제나 이때쯤이면 마음이 설렌다. 나와 함께 생활하게 될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일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매년 입학식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호기심을 가지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교육자로서의 자부심과 함께 무한한 책무를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어엿한 세계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기초적인 소양을 쌓아줘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입학시즌만 되면 볼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이 생겨나고 있다. 1,2월생의 아이를 둔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입학유예를 신청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도 16명의 적령 아동 중에서 입학유예를 신청한 아이들이 4명이나 된다. 입학유예를 신청하는 학부모들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주된 이유가 ‘1년 더 키워서 학교에 보내면 더 잘 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인 것 같다. 이러한 경우는 자녀를 적게 두는 요즈음 젊은 부모들 자녀교육관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내 자녀를 다른 아이들보다 시작부터 더 우수한 상태에서 출발시키고자 하는 부모들의 이기심과 과잉보호의 전형인 것이다. 이런 부모들의 자녀관은 우리 아이들의 바른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기 자식만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짧은 안목 속에서 입학유예를 거쳐 입학한 아이들이 과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다년간의 현장경험과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비공식 통계자료 등을 통하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이미 나와 있다. 입학유예 기간을 거쳐 입학한 아이들의 대부분이 학습태도가 엉망이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막무가내 식 대장노릇을 하려 들고, 이미 여러 번의 선수학습을 통해 학습한 내용들이다 보니 학습에도 흥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어 결국에는 학교생활 자체가 시들해져버리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관점에서 부모가 ‘내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식으로 생각해버리는 것은 아이들의 가능성을 잘라버리는 아주 위험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가정과 유치원에서 나와 ‘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협력자, 조력자 역할 정도에 만족해야 한다. 부모들의 과잉보호는 이제 정말 사절이다. 언제까지 아이들을 신발을 신겨주고 숟가락질을 대신해서 아침을 먹이는 유아로만 놓아둘 것인가.
미국 교원단체 전미교육협회(NEA)의 퇴직회원들은 1983년 ‘NEA 퇴임교원회’를 조직, 현직 교사들과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공교육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수한 교원 인력을 퇴임 후에도 교육에 적극 활용하는 미국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퇴임교원의 다양한 사회활동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신규교사와의 멘토링이다. 버지니아 주는 신규 교사들을 그 지역 퇴직 베테랑 교사들과 짝지어주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퇴직교사의 숙련된 경험을 학교현장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NEA 홈페이지(www.nea.org) 최근 자료에 따르면 교직생활 첫 해를 맞은 햄프턴 랭글리 초등학교의 에이미 링크 교사는 “3학년 첫 수업에 들어서면서 매우 긴장되고 불안했지만 멘토 선생님 덕분에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멘토링 프로그램 공동창시자는 수 라이블리과 루탄 켈럼 교사. 이들은 “프로그램에 참가한 20명의 멘토 교사들이 맡은 역할은 60여명에 달하는 신임교사들에게 지도와 조언을 해주는 것”이라며 “멘토 교사들은 신임교사를 평가하거나 신임교사의 수업에 끼어들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신임교사들은 누군가에 의해 평가 받는다는 두려움 없이 편하게 문제를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만족해합니다. 멘토 교사가 수업에 같이 들어가도 감독교사가 들어왔을 때 보이는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필요할 때 편하게 멘토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지요.” 멘토 교사들의 가장 큰 역할은 신임교사가 교직생활의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용기를 북돋아주는데 있다. 신규 교사들은 멘토 교사들이 자신감 향상에 큰 도움이 되고 있으며 교사 책상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학부모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등 모든 일에 실질적인 조언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 멘토링 프로그램은 신규 교사들이 다른 학교에서 숙련된 교사들의 수업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멘토링 프로그램의 성공 뒤에는 햄프턴 지역협회와 버지니아 교육협회, 교육청과 지역 대학들의 참여가 있었다. 멘토 교사들의 교육, 신규 교사들의 타 학교 견학시 대리교사 채용, 소정의 멘토 교사 월급 등은 관련 단체의 지원금으로 충당했다. 프로그램 관계자들은 “멘토링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매번 신규 교사가 들어올 때마다 들여야 하는 교육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이 27일 교육격차해소 방안을 발표했다. 2008년까지 서울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교육여건이 취약하지만 ‘좋은 학교’로 발전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학교를 ‘좋은 학교 만들기 자원(自願)학교’로 선정, 8000여 억원을 지원하고 지역별로 교사의 질적 평준화를 맞추기 위해 우수교사를 학력부진학교에 배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선 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은 무리한 교사 평준화 추진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어 실제 추진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어떤 혜택이 있나=교육청은 우수교사 확보가 ‘자원학교’의 성패의 열쇠라는 점에서 ‘자원학교’에 근무하는 우수교사에게는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우선 ‘자원학교’ 중 공립학교 교사에게는 교육격차 해소업무에 공적이 있다고 인정, 지정 기간 동안 월 0.01점(총점 1.25점 한)의 경력가산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또 ‘자원학교’ 근무 교사는 근무성적을 최소 일정등급 이상으로 보장하고 이 중 근무실적이 탁월한 20%의 교원은 ‘수’등급을 부여키로 했다. 이밖에도 교과전담 추가배치, 전보유예율 완화 등 근무여건 개선과 수당지급, 포상 및 해외 연수 기회 부여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다. 이같은 유인책에도 불구하고 우수교사의 자원이 부족할 때는 교육청이 반(半)강제인 전략적 배치도 할 계획이다. ◇문제점은 없나=교육청의 이같은 계획에 대해 일선 학교·학부모의 반응을 엇갈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교육여건이 좋고 우수교사가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강남, 서초, 강동지역에서는 ‘역차별’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가산점 남발과 계획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교사들이 의문을 표하고 있다. 서초구 서울고 김 모 교사는 “중·고등학교의 경우 사립학교 비중이 70%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공립학교 교사에 대한 인센티브만으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뿐더러 인사고과로 교사를 유인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구로구 고덕고 박진철 교사는 “우수교사에 대한 기준도 명확치 않을뿐더러 소위 ‘우수교사’를 인위적으로 배치한다는 것은 교육수요자에게 또 다른 차별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청 관계자는 “현장의 우려를 접하고 있으며 제기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결책을 논의 중에 있다”며 “사안별 문제보다는 교육격차 해소와 교육기회 균등, 소질과 능력 개발이라는 큰 목표에 주목해 달라”고 당부했다.
교원 인사정책이 또다시 교직계의 뜨거운 쟁점이다. 교육혁신위원회가 상반기 중으로 교원 인사정책의 로드맵을 확정․발표하기로 하고, 이의 일환으로 교원승진제 등을 주제로 지역별 순회 토론회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직사회의 최고의 관심은 학교교육력 제고에 집중되고 있다. 학교교육력 제고의 지름길은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교사의 전문성 신장과 관련한 논의의 중심에는 언제나 교원승진제가 있으며, 이의 혁신방안 검토과정에서 ‘수석교사제’가 최적의 대안으로 빠짐없이 제안돼 왔다. 교원승진제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수석교사제는 그 동안 한국교육개발원과 학계, 그리고 OECD 교원정책검토단 등에서 교직경력 다원화 차원에서 강도 높게 권고한 대표적인 방안이다. 현행 교원자격체계는 2급 정교사→1급 정교사→교감→교장으로 이어지는 단선형 경력구조로 해방이후 지금까지 40년 간 운영돼 왔다. 단선형 경력구조에서 승진이란 곧 관리직 진출을 의미하기 때문에,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를 희망하는 대다수 교사들의 요구를 반영하기가 불가능하다. 현행 교원승진제는 교사들이 교직생애 동안에 관리직으로 진출하는 승진에 억매이게 하고 가르치는 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구조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학교교육의 본질적 기능은 교육활동을 전개하는 교수중심과 학교운영에 필요한 행정을 지원하는 관리중심의 일로 이원화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원화된 업무를 단일한 구조 속에 혼재시킴으로써 교수직과 관리직의 역할과 특성, 차이점을 차별화하지 못해 만성적인 소화불량에 걸리게 했다.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 그 자체에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직무를 수행하기보다 관리직 획득을 위한 승진경쟁에 뛰어들도록 유인하고 있다. 결국에는 교사들이 과열된 승진풍토 속에서 교감과 교장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무능한 교사로 간주돼 근무의욕 및 사기를 저하시키는 왜곡된 교직풍토를 낳았고 승진기회를 하나의 통로로 제한함으로써 승진 적체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현실적으로 교사 자격이 2급 정교사에서 1급 정교사로 직급이 변화되고 경력이 높아져도 교사의 역할과 직무 내용은 전문화, 세분화되지 못하고 있다. 교사의 직급이 변해도 직무의 성격이나 곤란도 등에 있어서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권한과 책임에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 교사가 교직생활 동안에 자신의 전문성을 어떤 수준으로 유지․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교직경력별 관심 및 요구 수준을 반영한 자격 관리체계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와 같이 일원적 교원자격체계로는 교사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 등을 심화․발전시키는데 미흡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병리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수석교사제’이다. 수석교사제는 교원 자격체계의 다원화 차원에서 현행 2급 정교사, 1급 정교사 위에 수석교사를 새롭게 추가해 교사의 직무를 확대하고 이에 다른 권한과 책임(수업장학, 현직연수, 신규교사 지도 및 상담활동 등)을 부여함으로써 교수직과 관리직을 분리․이원화하자는 것이다. 교사가 교단에서 오랜 경험을 축적하고 계속 교단에 머물며 자긍심과 보람을 가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교사가 교육활동과 학교경영 중에서 자신의 적성과 능력 등에 따라 경로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교수직과 관리직 간의 조화와 균형을 이뤄 교사의 전문성 신장은 물론 학교교육력 제고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교단에서 자랑스럽게 가르칠 수 있는 길을 찾고, 나머지 일부 교사들만 관리직으로 진출하도록 교원승진․자격체계의 혁신적인 개편이 필수적이다. 관리직 우위의 교직풍토를 교수직 중심의 교직풍토로 혁신하는 지름길은 ‘수석교사제’ 도입이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교육혁신위원회가 주최하는 교원정책개선토론회가 지난달 21일 서울(본지 2월 27일자 보도)에 이어 28일 전주에서 열렸다. 혁신위는 이달 2일(대구, 교원양성), 3일(광주, 연수와 후생복지), 7일(승진), 9일(승진) 지역 토론회를 가진다. 교원승진 분야에 대한 전주 토론회서도 서울 지역과 마찬가지로 수석교사제와 교장선출보직제가 논의의 중심에 섰다. 전주토론회서는 전체 패널 6명 중 4명이 수석교사제 도입에 적극 찬성하거나 공론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광삼 변호사는 “현재의 교직은 지나치게 평면화 돼 있어 직무동기와 만족도를 증대시키기에 역부족”이라며 “과열된 승진구조를 완화하고 우수한 교사들이 교직을 떠나지 않고 교장에 못지않은 존경과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수석교사제 등 다단단계적인 직위를 도입함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석교사제가 교직의 매력을 높이고 우수교사의 능력 개발을 독려하고 직무수행에 대해 실질적으로 보상할 수 있어야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며 “수석교사제 이외에도 자격을 다단계하거나 관리직과 교수직으로 이원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볼만하다”고 덧붙였다. 박세훈 전북대 교수는 “수석교사제의 도입은 이미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지만 재원과 위상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시행을 유보하고 있다”며 “교수직과 관리직의 이원화를 통해 보다 전문적인 직위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교사들에게 동기부여도 제공할 것이며 승진문화도 많이 완화해 줄 것”이라고 발표했다. 김종진 진안중 교장은 “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수석교사제가 반드시 도입돼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석교사제는 세계 여러 나라서 다양하게 실시하고 있고 OECD 검토단도 권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김명성 전주 KBS 보도팀장은 “수석교사제에 대한 교원들의 호응도는 높은 게 사실이지만 교장의 위상과 충돌한 가능성이 크고 또 다른 직책으로 전락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하며 “교장선출보직제와 동일선상에서 공론화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찬홍 전주여고 교사와 양민숙 익산교육시민연대 사무국장은 발제문에서 교장자격증 폐지를 주장하며 수석교사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국회 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과 이해찬 국무총리는 개정 사학법의 핵심인 ‘개방이사’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이군현 의원은 우선 “98년 이해찬 총리의 교육부 장관 시절에 정부 입법으로 제안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에는 초중등학교를 제외한 대학에만 이사의 3분의 1 이상을 공익이사, 즉 지금의 개방이사로 선임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에도 한나라당이 공익이사의 대학 자율성 침해 문제를 제기하자 이 총리는 ‘분규사학에만 한시적으로 참여토록 하고 문제가 많지 않은 대학에는 내보낼 필요가 전혀 없다. 분규가 해결되면 정이사 체제로 가게 법령 개정안을 보완하겠다’고 답변했었다”며 98, 99년 교육위 회의록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국무총리가 된 후 입장을 번복한 것은 현 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한 것 아니냐”고 공격했다. 이에 이해찬 총리는 “당시 대학 비리가 심각한 반면 초중등은 그 정도가 덜해 우선 대학에 개방이사를 넣어 투명성을 제고하려는 취지였고 이어서 초중등도 하려고 협의 중이었다”고 밝혔다. 또 “당시는 시급한 분규 사학의 투명성 제고 취지에서 말한 것”이라며 “나아가 모든 사학에 개방이사를 도입하는 것은 비리를 예방하는 선제적 효과가 있어 타당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군현 의원은 개방이사 도입이 현 정부의 ‘코드인사’用이라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 의원은 “개정사학법은 개방이사를 도입하며 임원승인취소요건에 학교운영에 중대한 장애를 야기한 때, 비위사실을 방조한 때 등 추상적인 내용을 추가했다”며 “이는 개방이사를 투입해 학교 시끄럽게 하고 정부가 중대한 장애가 있다고 보고 코드에 맞는 임시이사를 내보내고 임기제한도 없애 장기화하면서 돈 대주겠다는 거 아닙니까. 정부가 코드인사를 임명하려는 의도가 아닙니까”라고 지적했다. 이해찬 총리가 “그렇지 않다”고 답하자 이 의원은 2003년 이후 현 정부가 4년제 대학에 내보낸 임시이사 현황자료를 제시하며 반박했다. 그는 “정부가 선임한 203명의 이사 중 현 정부의 장차관급 인사가 7명, 각종 위원회 인사가 30명, 당 출신이 5명 등 42명이고 김대중 정부관련 인사 11명을 합치면 53명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수도권 대학인 경기대, 광운대, 단국대, 한국외대, 세종대에는 총 50명의 이사를 내보냈는데 이중 21명이 전직 장관, 열린우리당 공동의장, 강원도 지부장, 대통령비서실 수석 등 여당 출신”이라며 “완전히 친여당 인사로 수도권 대학이 접수됐다고 보는데 코드인사가 아니라고 하니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 아닙니까. 결국 사학법 개정안은 임원승인 취소 요건을 추상화하고 완화해 결국 정부가 코드인사를 교체 임명하려는 의도”라고 추궁했다. 그런데 이 총리는 답변에서 ‘양식론’을 내세웠다. 그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양식 있고 정직한 사람으로 누가 선임했는지 비교적 잘 선임한 것”이라며 “이런 분들에게 학교를 맡기는 것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 도대체 왜 잘못됐다고 지적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답했다. 이군현 의원은 “문제가 없다는 것은 정말로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수분야 전문교육이라는 특수목적고 설립 목적에 맞는 교과과정을 갖췄어도 운동장 규모 등 일반고교 설립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특목고 지정 거부는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특별6부(이윤승 부장판사)는 국내 유일의 미술고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H학원이 서울시 교육감을 상대로 낸 특목고 지정신청 거부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일반고교 설립 기준 미달을 이유로 특목고 지정을 거부한 처분은 정당하다"며 항소를 기각했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학교는 교지와 체육장의 면적이 고교 설립기준에 미달했지만 운영난에 처한 학교를 정상화하려는 정책적 차원에서 인가됐는데 인가된 뒤에도 시설 부족 상태가 해소되지 않았다. 예술 계열 고교의 특수성을 감안해도 피고의 거부 처분은 교육행정에서 인정되는 재량권의 범위에 속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목고 지정에 있어 특목고의 설립 취지나 목적에 부합하는 설비기준의 충족 뿐만 아니라 지식ㆍ기능 등의 일반학습과 균형적인 신체발달에 필요한 교지 및 체육장 등 시설의 완비 여부도 심사대상이 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현행 법령 체계는 교육감이 특목고 지정에 대한 판단을 함에 있어 특수분야의 전문적 교육에 필요한 사항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전인교육이 가능한지 전반적으로 고려하도록 해 대상 학교가 고교의 일반적 설립 기준을 충족했는지도 함께 판단하도록 한 것으로 풀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초ㆍ중등교육법과 '고등학교이하 각급학교 설립ㆍ운영규정'은 학교 설립에 관해 준칙주의에 따라 일정한 기준을 규정한 반면 특목고와 특성화고교의 지정은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교육감이 특목고를 지정할 권한이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고특목고 지정 요건이나 절차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H학원은 국내 유일의 미술 전문교육 고교를 설립해 1994년 일반고로 인가받았으며 2003년 특목고 지정을 신청했지만 서울시교육청이 '학교시설 부족 문제가 해결된 후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해당 학교는 인가 당시 교지와 체육장의 면적이 기준에 미달됐지만 교육청은 학교 운영난 해소를 위해 시행하던 '학교 운영개선 방안'에 따라 기준을 완화해 적용, 일반 예능계 정규학교로 인가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크고작은 속설을 많이 접하게 된다. 학교 또는 교육과 관련된 속설들이 그것인데, 교육 전체와 관련된 속설이 있는가 하면 특정한 학교에만 내려오는 전통적인 속설(?)들이 있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없다. 다만 매년 또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횟수가 자주 있다는 것 뿐이다. 말 그대로 '속설 (俗說)'일 뿐이다. 그 중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속설은 바로 '입시 때만 되면 날씨가 추워진다'는 것이다. 특히 수능 때가 되면 그런 속설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입시 때의 속설은 언론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속설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입시한파가 찾아 왔습니다.'라는 보도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여기에 예전에는 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선발고사까지 입시한파에 가세하여 정말 잘 맞았었던 것 같다. 또 한 가지 속설은 '개학때만 되면 날씨가 더워지거나 추워진다'는 속설이다. 많은 교사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기상대 자료를 살펴보니,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의 3월 2일 아침최저기온이 영상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올해도 갑자기 눈이 내리고 나더니 기온이 떨어져서 아침 기온이 영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3월 2일이 따뜻한 시기는 아니지만 간혹은 영상의 날씨를 보일 수도 있는 시기임에도 영하를 기록했다는 것은 이런 속설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닌지 싶다. 단위학교에서도 이런 속설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연인지 알수 없지만 맞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학교의 야외행사나 체육대회등 실외행사를 할 경우, 유난히 그날만 되면 비가 온다는 속설을 가진 학교들이 적지않다. 때로는 그런 속설을 없애려고 일기예보를 통해 행사일을 변경하지만 변경한 날에 비가내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오래 전이지만 리포터가 중학교에 재학중일 때의 일이다. 그때 인근의 중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그 학교에 교장으로 부임만 하면 교장이 병이나 사고로 사망한다.'는 것이 바로 그 소문이었는데, 실제로 리포터가 다니던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그 학교로 발령받은 후 1년만에 암으로 돌아가신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 이후 연속은 아니지만 리포터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그 학교 교장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간혹 들었었다. 일선학교의 교사들은 그 속설의 진원지를 다양하게 분석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것이 학교명과 교장선생님 이름이다. '학교명에 설 이나 우 자가 들어가 있으면 행사 때마다 비나 눈이 온다.'든가 교장선생님이 바뀐 뒤로 이름에 우자가 들어 있어 비가 온다는 것이다. 그만큼 속설 때문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은 '학교의 기능직 공무원이 울타리에서 뱀을 잡았는데, 그 이후부터 행사만 할려고 하면 비가온다.'는 이야기도 한다. '학교가 예전에 공동묘지였기 때문에 그렇다'는 등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도 가지가지이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없는 원인들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속설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임에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행사는 대략 1년에 1-2회 하게 되는데, 2-3년에 한번만 비가 내려도 매년 그랬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잘 아는 바와 같이 학교행사를 제때에 실시하지 못하면 학사일정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실제로 속설이 잘 맞는 경우도 있고 보면 학교의 속설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속설은 속설로 끝나야 하겠지만 특히 불길한 속설은 맞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입시때 추워지거나 행사때 가끔 비가 내리는 것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특정 학교에 교장선생님이 돌아가신다거나 교사가 자주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는 등의 속설은 빨리 사라져야 할 속설들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100일과 개학을 하루 앞 둔 제87주년 삼일절. 그래서 일까? 집집마다 개학을 준비하는 부모들과 아이들의 손이 분주하기만 하다. 아침 일찍 아이들의 새학기 준비물을 점검하고 난 뒤 태극기를 게양했다. 방학이기에 홍보가 되지 않은 때문일까. 국경일인데도 불구하고 아파트 단지 내 태극기를 게양한 가구는 몇 집뿐이었다. 하물며 주차장에는 방학의 마지막 연휴를 즐기기 위해 떠난 탓에 한산하기만 하였다. 그 어떤 곳, 누군가로부터 ‘태극기를 달자’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TV를 켜자 모든 방송사는 지나칠 정도로 독일 월드컵 100일을 앞두고 편성한 프로그램 방영에 열을 올리는 듯 했다. 왠지 모르게 3월 1일 삼일절이 월드컵으로 인해 퇴색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삼일절 기념사에서 노 대통령이 밝힌 바와 마찬가지로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문제에 이르기까지 지난 일에 대해 추호의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일본의 뻔뻔스러운 행동들이 아직까지 자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삼일절의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 고취되어져야 하지 않을까. 2002년 월드컵 때 보여준 전 국민의 하나가 된 함성은 지금도 들리는 듯 하다. 또한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리기 위해 전국방방곡곡에 울러 퍼진 그 날의 함성 또한 이에 못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은 매스컴에서 흘려 나오는 월드컵과 관련된 노래들을 잘 따라 부르며 흥얼거린다. 그런데 삼일절 노래를 제대로 부를 줄 아는 아이는 거의 없다. 하물며 삼일절이 어떤 날인지 조차도 모른다고 한다. 매년 삼일절이 방학중에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홍보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부모 또한 아이들에게 삼일절의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탓에 아이들은 국경일을 마치 노는 날로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동계 올림픽 때,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 은메달을 획득하여 경기장에 태극기가 게양되면서 울러 퍼지는 애국가 소리에 조국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바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 마음은 큰 것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국기를 다는 것’ 자체가 바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인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 보여준 그 날의 함성과 1919년 3월 1일 전국에 울러 퍼진 그 날의 함성을 잊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이 될 수 있으리라.
오늘 세종문화회관에서 거행된 87주년 3.1절 기념식에 다녀 왔다. 7천만 우리국민들에게 35년동안 씻어낼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주고도 지금도 진정한 반성을 하기는커녕 핑계를 늘어만 놓는 우리의 이웃인 일본.....일본을 이끌어가는 수상을 비롯한 정치인 및 우익인사들에게 87주년을 맞이하는 3.1절 기념식은 다시한번 우리를 추슬려보게 해준 좋은 행사였었다. 수상의 신사참배나 교과서 왜곡은 차치하고라도 엊그제 시마네현에서 "독도는 일본의 영토" 라고 억지주장을 하면서 시작한 독도의날 행사가 있었지만 아이들은 가르치는 우리 교사들은 독도에 대하여 과연 얼마나 자세하게 알고 있으며 일본의 억지 주장에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할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우려가 된다. 본 리포터도 일반적인 시사 상식 문제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본인 나름데로 공부를 하여 젊은이들과도 겨루어 볼 만한 상당한 수준이라고 자부하여 왔고 TV방송의 퀴즈대회에도 몇번 참여하적도 있지만 며칠전 한교닷컴 홈페이지에 를 보고 나서 나 자신에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독도에 대하여 깊이있게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수가 있는가' 하고 반성을 한 적이 있었다. 독도는 신라 때부터 우리 고유의 영토인데도 상당수 아니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독도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어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여기에 좋은 해답이 있다. 우선 선생님들 모두가 를 필독 한 후 시간을 내어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퀴즈 대회를 하거나 평가를 실시하여 아이들이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확실한 신념을 심어 주었으면 한다. 더구나 내용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로 구성되어 있어 잠간의 휴식시간에 아이들에게재탕,삼탕 보여주어도 아이들이 좋아 할것이다. 국어 수학 등 지적인 공부를 잘한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을 쌓게 하여 주는 일 또한 우리 교사들의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새학기부터 서울의 중ㆍ고교 1,2학년 주요 과목 시험에서 서술ㆍ논술형 문제의 배점이 40%이상으로 늘어난다. 1일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1학기부터 중학교 1학년과 2학년, 고교 1학년과 2학년을 상대로 국어와 사회, 수학, 과학, 영어 등 5개 교과 학습을 평가할때 서술ㆍ논술형 수행평가 항목 배점 비율을 40%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는 학교생활기록부 위주의 대입 제도가 도입되는 2008학년도에 맞춰 학생부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취지로 풀이된다. 서술ㆍ논술형 평가는 작년 하반기부터 중학년 1학년과 고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만 이뤄졌으며 서술ㆍ논술형 비율도 30% 이상이었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금년부터 교과학습 평가시 서술ㆍ논술형 비중은 40%이상이 기준이지만 학교측이 교과별 특성을 고려, 방법 및 비율은 자율로 결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시 교육청은 채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학교측으로 하여금 채점 결과를 즉시 공개하고 이의신청을 설정, 운영토록 할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서술ㆍ논술형 평가가 중ㆍ고교 전체 학년으로 확대되고 배점 비율도 50%까지 늘어난다. 이를 위해 작년 6월 서술형ㆍ논술형 평가 예시문항을 개발, 보급했으며 평가 전문성 신장을 위한 교사연수도 실시했다. 이와 함께 올해에는 중ㆍ고교 서술ㆍ논술형 우수 문항을 발굴, 서울교육포털시스템 '문제은행' 코너에 탑재할 방침이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단편적 지식을 측정하던 선택형 지필평가 중심의 평가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해 사고력과 문제해결력 등 능력을 평가할 수 있도록 서술형과 논술형 평가로 변화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
쇼핑몰에서는 호루라기, 가스총, 전기 충격기 등 위급한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호신용품의 판매가 증가한다. 콜택시, 열쇠제조, 경비 업계 등은 생각지도 않은 특수 때문에 호황을 누린다. 도장에는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호신술을 배우려는 여성들이 늘어난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세상 살아가는 얘기다.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고 매스컴을 장식한다. 나약한 여자들이 희생자인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만 있겠는가? 최근에 사람들을 긴장시켰던 성폭력 사건만 해도 여럿이다. 오랫동안 잡히지 않아 애를 태우던 연쇄 성폭행범 '발바리' 사건이 있었고, 초등학교 4학년 어린 여학생을 이웃의 신발가게 주인이 성폭행하려다 무참히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초등생과 여고생 등 8명에게 성폭력 및 성추행한 현역 군인과 1년여 동안 전국을 돌며 24차례나 연쇄 성폭력을 저지른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초등생 살해사건의 범인은 지난해 6월에도 같은 동네의 5살짜리 여자 아이를 성추행한 뒤 구속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사람이고, 전국을 돌며 성폭행을 저지른 범인도 2004년 같은 죄로 복역하고 출소한 지 불과 열흘 만에 또 다시 범행을 시작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우리 이웃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국 곳곳에서 나이 어린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성추행, 성폭력 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아이들이 밖에서 마음대로 놀지 못하는 세상을 어른들이 만들고 있다. 아이들이 걱정돼 부모가 교문 앞으로 마중을 나와야하고, 집에서 기다리며 조바심을 해야 한다면 행복한 세상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다 그렇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 하지만 요즘 몇 명의 정신 나간 어른들이 흙탕물을 만든 작금의 사태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그렇다고 그들만 탓할 수도 없다. 우리 모두가 평소에 힘이 약한 아이들이나 여성들을 보호하는데 소홀했다. 어른이라는 것, 어쩌면 남자라는 것이 부끄럽다. '남자는 다 도둑* 이다'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이 기회에 정부에서는 성폭력을 추방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을 수립해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폭력이 왜 여자들만의 문제인가? 정치, 종교, 교육, 사회단체 등 지도층의 남자들이 모두 나서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요즘 교육현장에서 양성평등교육이 이뤄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우리 교사들이 발 벗고 나서 아이와 어른이, 여자와 남자가 서로 존중하면서 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같이 노력해야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남자들이 환영받는 세상이 만들어 진다.
정진환 | 동국대 교수 1. 서론 문화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의미한다고 보면, 교직문화는 교사, 학생, 학부모, 학교행정가 등 학교 사회 구성원들이 수업, 생활지도, 구성원 간의 인간관계 등 학교 전반에 대하여 판단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기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교사문화' 혹은 '학교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주로 교사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교직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 혹은 성향 등을 대상으로 했다. 이러한 개념은 학교 혹은 교사들의 문화를 정(靜)적인 차원에서 묘사할 수는 있지만 학교와 교사들 가운데 있는 변화의 움직임이나 에너지들이 일어나고 부딪히며, 이런 것이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내거나 좌절하는 현상에 대한 동(動)적인 차원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교직문화라는 개념은 동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교사들을 교육 변화의 주체로 세우고 그들의 자발적인 교육적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내어 이를 통해 교육 개혁을 이룰 것인가에 그 초점이 있다고 하겠다. 비교적 최근까지 교직문화는 교육계의 핵심 이슈가 아니었다. 이는 그동안 우리 교육계가 대학입시나 학벌 문제 등 너무도 크고 중요한 문제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 비해 교직 문화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작은 문제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 교직문화는 결국 교사들의 의식이나 책무성 문제와 연결되는데 이것을 문제 삼기에는 우리 교육계의 민주화 진행 속도가 너무 늦었고, 교사가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학교의 민주화 등이 어느 정도 진척이 되고, 교원 노조의 합법화와 함께 이제 교사들도 단지 약자의 위치가 아닌 어느 정도의 책무성을 물을만한 힘을 가진 집단이 되었으며, 교육계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입시나 학벌 등 거대 담론과 함께 학교 현장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이 함께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교육 주체들 가운데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특히 학교운영위원회의 출범과 함께 학부모들이 선언적인 교육주체에서 구체적으로 학교의 교육에 관여하는 실질적인 교육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학부모들에 의한 교사들의 책무성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교사들 내부에서도 비록 교사들이 처한 상황이 여전히 어렵고 힘겨운 상황이긴 하지만 이제는 교사들이 교육환경과 여건만 탓하고 있어서는 안되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라도 교사들이 새롭게 변하고 교직에 대한 전문성과 책무성을 강화하는 모습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 상황 가운데서 교사들 스스로 무언가 이 시대에 응답하고, 책임 있는 반응함을 통해 교사의 권위를 다시 확보하고 교육을 책임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움직임들이 맞물리면서 오늘날 교직문화 개선은 우리 교육계의 매우 중요한 과제로 주목받고 있다. 2. 활기찬 교직문화의 개념 및 특징 가. 공적 활동 중심의 개인주의 '활기차다'란 말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행동하거나 애쓰는 과정의 원천이 되는 정기(精氣)를 말한다. 이는 곧 만사를 생성하는 근원이 되는 기운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서 기운이란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오관(五官)으로 느껴지는 현상이다. 따라서 활기란 바야흐로 어떤 일이 일어나려는 역동적인 분위기라 할 수 있다. 이에 교직문화를 정의 하자면 '교사가 아이들과 학교교육에 헌신하며 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명감과 열정을 지속하고 증진시킬 수 있으며, 이 가운데 발생하는 갈등을 성숙하게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분위기와 내적인 힘'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에 덧붙여 활기찬 교직문화는 교사가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동료교사들로부터 훌륭한 교사로 존경받으면서 교육의 보람과 자기만족감에 젖어 행복한 교직생활이 조성되는 문화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제 이러한 우리 교직문화의 특징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고 하겠다. 교사들은 정보 공유 및 활용 부족, 대화 부족 등의 개인주의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공적인 성향의 대화만을 위주로 하는 전형적인 개인주의 현상이 강하고 교사 간 관계의 정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 이와 같은 공적인 개인주의란 전형적으로 인간관계가 배제된 업무활동 중심의 개인주의를 말하는데 교무실, 학년실로 나누어져 같은 실에 근무하지 않으면 업무 외의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고 1년이 지나도록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는 고립, 불안감, 능력에 대한 확신 부족, 자아에 대한 타인의 간섭 배제 등이 내포되어 있다. 특히 교실 개방이나 다른 사람의 간섭으로 인하여 자신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경우는 자신의 교수능력이 평가되고 이에 대해 비난을 받을 것을 불안해하는 현상으로 나타나다. 나. 교과별, 학년별 우리주의 교과별, 학년별 상호작용 속에서도 개인의 고민거리 등과 같은 사적인 문제에는 전혀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지나친 개인주의 중심의 문화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라는 결합체를 통하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나아가 하나의 인맥을 형성하는 교직의 생존원리는 승진하고 난 뒤 더욱더 강한 작용을 한다. 특히 같은 과목으로 구성된 선후배간의 질서는 다른 조직에서는 볼 수 있는 인맥과도 동일하다. 이런 문화적 상화들은 지금 교육조직에서도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 신뢰 없는 형식적인 만남 학교는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등으로 구성된 사회적 복합체이다. 다른 조직처럼 학교 조직 역시 인간관계의 핵심적인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학교 내 다양한 구성원들이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고 나아가느냐에 따라 학교교육의 질이 달려 있다. 이런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지 않을 때 학교는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교사는 학생들의 문제가 있을 경우에만 학부모들과의 만남을 원하는 형식적인 만남을 하며, 이 형식적인 만남은 신뢰의 관계가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결국 학교공동체를 구축하지 못하는 빌미를 제공하며, 나아가 학교교육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과오를 범하게 하고 있다. 3. 교육공동체의 과제 가. 교사의 과제 (1) 교육적인 사랑 교사에게 중요한 것은 학생을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과 사랑일 것이다. 교사와 학생 간에 따뜻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야 교육이 이루어진다. 교육적인 사랑이 있는 교사는 겸손하며, 학생을 내려다보지 않고 존중한다. 교육적인 사랑이 있으면 학생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교육적인 사랑은 생각의 유연성을 키워주며 학생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교육적인 사랑은 마음을 열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게 한다. 교육적인 사랑은 학생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우한다. 그러나 교육적인 사랑이 없으면 이미 교육은 기대하기 어렵다. (2) 의식 변화를 위한 노력 교사들은 항상 새로운 학생을 만나 그들의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교육현장에서 함께 생활한다. 교사들의 주변에는 온통 어린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과 지역사회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의식과 생활, 그리고 가치관은 이전보다 많이 변해 있고 또 사회변화에도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교사들의 의식과 가치관은 변화에 적절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단단한 껍질 속에 갇혀있는 것 같다. 최소한 시대변화에 따른 학생들의 의식과 행동 변화를 이해하고 앞장서서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가치관이 변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전문성 확보를 위한 자기 연찬 교사에게 중요한 것은 교사의 역할 수행을 위해 갖춰야할 바람직한 교사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교사는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가르치고 있는 교과와 해당 영역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물론 교수-학습 지도방법과 기술, 그리고 학생에 대한 정보 등에 관해서 전문적인 식견과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21세기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지속적인 자기 연구와 자기 개발을 위한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교사가 담당 교과에 대한 실력과 권위를 인정받고 훌륭한 교사로서 존경받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자기연찬이 필요하다. 교사들은 자기 갱신과 발전을 위해서도 낡은 생각과 지식들을 털어 버리고 새로운 생각과 정보들을 채우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4) 사명감과 긍지의 소유자가 되자 교사에게는 교직을 선택하여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감사하고 학생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교직에 대한 소명의식이 중요하다. 아무리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확고한 교육자의 신념과 교육에 대한 사명감이 부족하다면 교육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교사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교육 혁신을 실천하는 변화의 촉진자여야 함을 알아야 한다. 교사는 교육을 통해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교사는 교육을 선도하는 교육 주체로서 학교와 교직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와 실천이 필요하다.[PAGE BREAK]나. 학교장의 과제 (1) 학력신장을 으뜸으로 하는 교장 학교의 존재 이유는 누가 무어라 해도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일이다. 그리고 교육은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므로 학력신장은 학교교육의 으뜸이 되어야한다. 우리나라는 교육만이 본인과 가문의 번영과 행복을 기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를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높은 교육열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도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 예로 학원교육의 문제점이다. 학원에 자녀를 보내야만 성적이 오르고, 성적이 오르니 학부모의 마음은 안정된다는 것이다. 사실, 학원교육은 깊은 사고를 요하는 것보다 요점정리를 잘 익히게 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성적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학원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들은 상급학년으로 진학하면서 요점정리에는 익숙해졌지만 혼자의 힘으로 깊이 사고하고 판단하는 힘이 부족하여 성적이 떨어지며, 그로 인한 심리적 갈등으로 자살까지 이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중요한 학력신장이건만 교사들이 학력신장에 소홀했다고 징계를 받는 일은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징계가 사무처리 잘못과 운동선수 인솔시 출장비 지출문제 등의 사유이니 자연스럽게 학생의 학력신장은 관심 밖으로 밀리게 되어 학력은 사교육기관인 학원에서 책임지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더구나 학교장도 학생들의 학력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학기말 또는 학년말 시험 결과를 결재하면서 우리 학교 학생들의 학력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거나 평소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보고 학력의 정도를 가름 하는 경우가 많다.(소규모학교에서는 전체 학생의 학력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기 쉽지만 대규모 학교에서는 곤란함) 영국 대부분의 초등학교 교장은 자랑스럽게 학생 개개인의 학력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수시로 그 향상도를 체크하거나 변화 모습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 학급담임이 학생을 훤히 꿰뚫고 있듯이 학교장이 모든 것을 기록해 놓고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관찰한다고 한다. 또, 학생들 간에 학력에 관한 경쟁심을 길러야 한다는 취지에서 과거 우리들이 즐겨 사용해오던 월말고사를 실시하여 성적에 의한 한 줄 세우기 교육도 실시하며 그 결과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이 교장의 주요 업무라고 한다. 학교교육의 기본목표는 훌륭한 인재양성에 있으므로 학력신장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며 학교가 경쟁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학교장의 첫 번째 임무일 것이다. (2) 성공적인 지도자로서의 교장 우리는 학교장의 위치에 안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연세가 높아지고 근력도 옛날 같지 않다보니 마음도 약해져 무기력해지거나 안주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도자는 구성원들과 함께 생각하고 당면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여야하며, 구성원 간에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성공적인 학교경영이 되도록 앞장서서 실천하는 지도자가 되어야한다. 이상주(전 교육부 장관)는 지도자 이론으로 'Victory 이론'을 제시하였다. 즉, 지도자는 비전을 가져야하고(Vision), 도덕성과 성실성을 유지하며(integrity), 용기와 결단력을 겸비해야한다(courage)고 하였다. 그리고 너그러이 관용하거나 포용하는 힘을 갖고(tolerance), 모든 일은 개방하고 공정하게 하며(open), 조직운영에 책임을 져야함은 물론(responsibility), 긍정적인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yes)고 하였다. 성공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학교장이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것 같다. '평범한 교사는 말을 하고, 좋은 교사는 설명을 하고, 위대한 교사는 감동을 준다'는 말이 있다. 학생을 존중하고 몸소 실천하는 교사는 감동을 주는 교사가 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학교를 경영해 나가는 교장도 감동을 주는 교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원과 학생을 존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학교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감동은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의 실천하는 행동에서 우러나기 때문이다. 다. 학부모의 과제 교육개혁의 성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단위학교이다. 단위학교가 변화되지 않고 있는데 교육개혁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위학교의 개혁과 발전이 구성원들 스스로에 의해서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면 학부모의 건전한 학교 참여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왜 우리 교육현장에서의 학부모의 역할은 이렇게 위축되고 왜곡되어 왔는가? 가장 큰 원인은 학부모에게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유야 많겠지만 학부모 단체의 일원으로서 일차적인 책임은 학부모 자신에게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문제에 접근하는 순서에 맞을 것이다. 그것은 학부모의 내 자녀 이기주의 일수도 있고, 교육주변 여건 탓일 수도 있다. 단위학교 안에서 선생님과 학부모가 학교와 학생의 문제를 놓고 서로 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은 우리 교육현실의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학부모들이 교육에 대해 의견을 말할 기회도 없고 정당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해도 감정적 비난과 불만 토로 정도에 그치고 마는 실정이다. 학부모들을 모아 놓고 이런저런 말이 많아질수록 말썽의 소지가 된다는 생각을 가진 교사도 있다. 그러나 학부모 모임을 성의껏 기획하여 학교와 학부모가 서로 이해하는 폭을 넓히면, 그 이해를 기반으로 다음 단계로 학교교육을 위해 할 역할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학부모 모임이 학부모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가 자발적으로 학부모를 학교교육의 파트너로 끌어 들이고자하는 의지를 반영하여 활동을 기획한다면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라. 교육행정기관의 과제 (1) 학교를 교육 중심으로 바꾸기 교사들이 학교에서 힘들어하고 좌절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학교의 중심이 아이들 교육이 아니라 보고와 감사, 외적으로 보이기 등의 부분이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사들의 일상을 보면 급한 보고와 공문처리로 인해 수업이나 생활지도가 밀리는 경우가 많고, 정한 업무 시간 외에 학교에 남아서 일을 처리하는 부분도 보면 수업준비나 생활지도, 교육과정상 필요한 행사를 준비하기 위한 것보다는 감사나 행정지도를 받기 위해 자료나 보고서를 준비하는 일, 외적으로 보이기 위한 행사를 준비하는 일 등이 많다. 이 외에도 학교의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학교의 중심이 아이들이나 교육이 아니라 외적으로 보이고 보고하기 위한 것임이 드러날 때 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자존감이 흔들리는 것을 많이 경험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쌓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교육보다는 행정 쪽에 자신의 중심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승진에 뜻을 두고 있는 교사들의 경우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차원에서 교육기관으로서의 학교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이 성격에 맞게 학교의 체계는 물론이고 교육부나 교육청의 체계 개편이 시급하다. (2) 합리적인 의사 결정 구조 정착 학교 내에서 교사들을 교육의 주체로 세우고 그들의 사명감과 교육적 열정을 지속적으로 제고해 주기 위해서는 교사들을 학교 교육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즉 교사들이 아이들과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한 생각과 열정이 그대로 학교 교육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그 부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3) 공정한 평가 체계 만들기 교사들의 자발성과 교육에 대한 헌신성을 높이기 위해 교사들에게 부과된 행정 잡무의 짐을 덜어주고 교사들의 자율성을 높여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조치들은 모두 교육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잘 하려는 사람들이 더욱 열심히 하도록 하는 조치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 교육에 대해 이미 의욕을 잃어버리고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진 교사들이나 교사로서 도무지 자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조치들은 이러한 부적격 교사들이 더욱 교육에 등한히 하고 아이들에게 피해를 미치는 행동을 하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교육을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는 짐을 벗겨주는 작업과 함께 열심히 하지 않는 교사들을 열심히 하도록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하다. 평가는 반드시 교육에 열심을 잃어버렸거나 아이들에게 심각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부적격 교사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과 교육에 대해 열심을 가지고 있는 교사들도 지금의 평가 체계 속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지친다. 본인은 승진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는 교사라 하더라도 자기 주변에서 전혀 아이들과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가지지 못한 교사들이 오직 승진 점수 따기에만 몰두하여 교장이 되는 것을 보면서 힘들어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많이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과 교육활동에 열심히 임하는 교사들에게 어떤 식이든 정당한 평가와 보상이 주어질 수 있는 평가 체계 마련도 시급한 실정이다. 마. 교원단체의 역할 교직문화개선을 위해 교원단체가 제일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회원교육 및 관리를 강화하는 일이다. 현재 교직 사회 내에서 전교조 조합원이 10만, 교총 회원이 20만명에 이르기 때문에 양 교원단체가 회원들에 대한 교육과 관리만 엄격하게 해도 교직문화는 판이하게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양 교원 단체는 회원들의 질적 수준보다는 양적 성장에 집중했기 때문에 현재 교단 내에서 교원 단체 소속 교사와 일반 교사간의 차이를 찾아볼 수가 없다. 전교조의 경우 비합법 시절에는 회원 수가 만 명을 겨우 넘겼지만 학교와 우리 교육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컸다. 그들은 적은 수를 가지고도 학교의 민주화와 비리 척결에 앞장섰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일반 교사들 가운데 전교조 교사는 정의로운 교사였고, 학생 중심으로 사고하고 실천하는 교사였다. 물론 이런 원칙들이 때로 너무 과도하여 학교 내에서 갈등이 있긴 했지만 분명한 것은 전교조 교사들은 그들 나름의 분명한 색깔을 소유했고, 그렇기 때문에 도덕성을 보유했고, 그것이 영향력이 되었다. 그러나 합법화 이후 몇 년 사이에 조합원 확대에 집중하여 지금은 10만 조합원을 보유했지만 도덕적인 선명성 면에서 영향력은 많이 감소했다. 물론 아직까지 전교조 조합원 가운데서 학교와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정의롭고 사랑이 많은 교사들이 있긴 하지만 이것이 전체 색깔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전교조 분회만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교육을 잘할 것인가 하는 것보다는 상부에서 내려온 투쟁 지침들을 전달하거나 조합원 내부의 친목 형태로 모일 뿐이다. 전교조 회원으로서의 정체성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교사로서의 특징에 의해서가 아니라 연가투쟁과 같은 투쟁을 통해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총의 경우는 처음부터 회원들의 소속감 없이 시작되어서 일부 정치적인 관심을 가진 교사들만 드러날 뿐 학교에서 교총 회원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하기 때문에 별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교원단체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은 회원들에게 요구하는 아주 수준 높은 지침을 정하고 그 지침에 따른 교육을 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침에 동의하지 않거나 그대로 행하지 않는 교사들에 대해서는 탈퇴를 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침이라는 것은 상부의 명령에 따른 투쟁에 참여하는 식의 내용이 주가 되어서는 안되고 교사로서의 사명감, 학교에서 교사로서 아이들과 동료교사들에 대한 태도, 수업과 생활지도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 등의 내용이어야 한다. 이런 것이 약간 종교적인 성격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러한 정체성이 없으면 교원 단체는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 정치적인 영향력은 이러한 도덕적이고 국민들의 정서에서 나오는 지지를 얻지 못하는 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4. 결론 활기찬 교직문화의 방향은 자존감이 무너진 교사들에게 필요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들 속에 있는 교사로서의 선한 의지를 자극시켜 다시 교사로 의욕을 되찾도록 돕는 쪽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활기찬 교직문화를 이루기 위한 일을 전개함에 있어서 교직사회가 안고 있는 딜레마 상황이다.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용하자니 교사들을 자극하게 될 것 같고, 교직사회의 정서를 존중하게 되면 자기 개혁운동이 힘들어지는 상황, 제도적 형식적 틀에 있어서는 교직사회가 사회적인 책무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답해야할 때이지만, 내적으로는 어느 때보다도 교직사회가 에너지를 상실하고 있는 이 딜레마 상황에 우리는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활기찬 교직문화를 위한 교육주체들의 중지와 지혜를 모아야할 중요한 시점에 있다고 하겠다.
이창희 | 서울 강현중 교사 '초등학교 교장이 학생을 상습적으로 성추행 했다며, 학부모들과 시민들이 고발해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학생에게 폭력을 휘두른 교사가 경찰에 구속되었다.' '학생을 체벌한 교사가 학생들의 신고로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받고 있다.' '학생을 상습적으로 체벌한 교사가 벌금형을 선고 받고 교내 게시판에 사과문을 게재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내용이지만 교육계 현실이다. 물론 외부로부터 비난받을 만한 사건들이긴 하지만 사소한 것까지 문제 삼는 사회적 분위기가 다소 원망스럽다. 교권의 사전적 의미와 현실 이렇듯 최근의 교육현장은 외부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면서 교권실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려만큼이나 향후에는 이런 현상들이 더욱더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는 교권을 누가 가져다주길 기대하기보다 교원들이 스스로 찾아서 얻어야 하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하면 교권실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권을 이야기함에 있어 교권침해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교권실추의 선봉장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교권실추' 이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교육계에 던져진 현실적인 과제이다. 본고에서는 필자가 수집한 교권침해에 의한 교권실추의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 현실적으로 교권확립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교권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1. 교사나 교수가 가지는 권위와 권리. 2. 종교상의 권위와 권력. 두 가지 의미가 있지만 교사에게 의미 있는 교권은 첫 번째 경우이다. 또한 교권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까지 곁들인 백과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정치나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주적으로 교육할 권리'로 요약 되어 지고, 이어지는 설명에 가서는 '교권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교육자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교육하는 것으로, 남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 이는 근세 이후의 대학자치와 같은 맥락이다. 둘째, 교육행정은 정권이양과 관계없이 독립성을 가지며, 정치세력으로부터 중립성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좀 더 확대해석 한다면, 교권은 넓은 의미에서 교육을 할 권리와 교육을 받을 권리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권을 이야기함에 있어, 교육할 권리만 주장해서는 곤란하며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사전적 의미만으로 볼 때는 최소한 교사가 학생을 지도함에 있어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으며, 교육행정 역시 정권이 바뀌더라도 그 독립성을 유지해야 교권이 존중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이렇듯 교권이 명확하게 정의 되지만, 현실은 이론과는 상당한 괴리를 보인다. 정치논리, 경제논리 등으로 교권이 흔들리는 경우가 흔해졌기 때문이다. 도리어 교권확립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지고 비현실로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현실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교권침해의 현주소 최근 들어 교권실추라는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그 빈도가 잦은 것은 교권실추를 가져올만한 원인을 제공하는 요인들이 그만큼 다양해 졌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이 교권실추를 가져오는 최대원인이 바로 교권침해이다 보니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교권실추가 교권침해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교권침해는 교육관련 이해집단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일상의 일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즉 학부모와 학생의 인식 변화 및 사회적 분위기 변화에 편승하여 교권침해는 급속도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그 유형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1. 교육행정기관에 의한 교권침해 지금도 교원이라면 '교원정년단축'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면서 가르치는 일에만 매달렸던 수많은 교사들을 일시에 교단에서 몰아내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정년단축 그 자체도 교권을 외면한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로인해 학생과 학부모, 특히 교사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들이었다. 교권을 외면한 잘못된 교육정책 하나 때문에 교육과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을 남기게 된 것이다. 교권을 무시한 이 정책을 성공적으로 보는 이는 최소한 교육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5월에는 스승의 날을 전후하여 일선학교의 촌지수수를 단속한다는 명분아래, 서울시 교육청에서 암행감찰을 실시했다. 교육청의 여직원을 학부모로 가장시켜 일선학교를 방문토록 한 다음, 촌지를 건네고 그를 받은 교사를 현장에서 적발한 것이다. 이는 교권침해수준을 넘어 교사에 대한 인권침해까지 가져온 심각한 사건이다. 교원을 보호하고 계도해야할 교육행정기관에서 이러한 교권침해를 태연히 일삼는다면 마음 놓고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는 교원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2. 언론에 의한 교권침해 좀 시간이 지났지만 서울의 A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던 B군은 모범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불량스런 학생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굣길에 교문 앞에서 낯모르는 젊은 청년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때려준 적이 있느냐', '아이들에게 돈을 빼앗은 적이 있느냐'는 등의 질문이었다. B군은 친구와 싸울 때 이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친구나 후배들의 돈을 빼앗은 경우는 없는 것 같았다. 결국 B군은 '돈을 빼앗은 적은 없고 친구를 때려준 적은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 청년이 여러 가지 질문을 더 했지만 B군은 대답할 것도 별로 없고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이틀 후의 학교 교무실 분위기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침묵 속에 침통함이 이어질 뿐이었다. 모 일간지에 '서울의 A중학교 B모군이 친구들을 수시로 괴롭히고 상습적으로 폭행을 가했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 것이다. 학교이름이 이니셜로 나왔지만 해당교육청과 인근 학교에서는 바로 예측이 가능했다. 인근 주민과 학부모들도 예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관내 경찰서에서도 연락이 왔다. 담임교사를 비롯한 관련교사들에게 출두를 요구했다. 교사들을 죄인 취급하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학교를 불신하는 학부모까지 가세하면서 학교는 초토화 되다시피 하였다. 그 젊은 청년은 일간지 사회부 새내기 기자였고, 뭔가 기사거리를 찾다가 그 학생을 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B군의 이야기가 과장보도로 이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그 학교는 수도 없는 경위서를 교육청에 제출하게 되었다. 경찰에서도 여러 번 다녀갔고 역시 서면 경위서를 보냈다. 반성문과 다름없는 서류를 여러 번 보냈다. 담임교사는 그 일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로 병원치료를 받았으며, 교장과 생활지도부장 역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필요 이상으로 기사 쓰기에 갈증을 느끼던 초보 기자의 잘못된 기사 찾기가 이런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언론의 본질은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망각한 언론의 행태 때문에 여러 관련자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사건이었다. 나중에 그 기자가 담임교사에게 유선으로 사과를 하긴 했지만 이미 떨어진 교권을 회복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2005년 10월말부터 11월 초에 걸쳐 SBS에서 연속기획으로 방송했던 '위기의 선생님'에서는 교육계의 현실을 왜곡하는 내용이 여과 없이 방송되어 외부로부터 교사들이 호된 홍역을 치렀다. 그중에서도 교사들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은 '철밥통 선생님'이라는 타이틀로 교사들을 우롱하고 무시하는 보도를 냈던 부분이었다. 교육계를 중심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도중에 사과 비슷한 방송을 한다고 했지만 사과가 아닌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 방송이었다. 또한 어느 초등학교 교사의 인터뷰를 앞, 뒤 정황은 삭제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부분만 일부 편집하여 방송했다가 해당교사의 반발로 방송사가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방송사의 게시판에는 뉴스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댓글이 3000여건 이상이나 올랐었다. 언론에 의한 교권침해의 현주소이다.[PAGE BREAK]3. 학부모와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요즈음의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사소한 다툼도 그대로 지나치는 법이 없다. 교사의 작은 실수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학교와 교사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사례들을 어느 학교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때로는 교장, 교감, 담임교사와 대화를 하면서 대화내용을 녹취하여 그 내용을 협박의 도구로 삼기도 한다. 학교와 교사를 상대로 고소·고발을 스스럼없이 하기도 한다. 전화 통화내용을 녹취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이용하여 불특정 다수인을 동원하는 경우가 일상화 되어가고 있다. 중학교에 근무하는 A교사는 수업 중에 황당한 경험을 했다. 원활한 수업진행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소란을 피우는 학생에게 주의를 여러 번 주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소란을 피워 좀 큰 소리로 야단을 쳤다. 다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하더라는 것이다. 학생이 교사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욕설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소란한 아이니까 자기들끼리 그러는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간단히 주의를 주려고 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 욕설의 종착점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 학부모 면담까지 했다고 한다. 학생에게 체벌을 가한 것도 아니고 그냥 꾸지람을 좀 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제는 교권침해의 현장에 학생까지 가세하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4. 동료교사에 의한 교권침해 교권침해는 비단 학부모나 학생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아껴주어야 할 동료교원 사이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교장, 교감 등의 관리자와 평교사, 평교사와 평교사 사이에서 교권침해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 C중학교의 부장교사인 D교사는 4년 전의 일을 잊을 수 없다. 그날은 새학기도 시작되고 해서 부장교사 협의회 겸 저녁식사를 했다. 물론 교장, 교감도 함께한 자리였다. 술잔이 오고가면서 당시의 학교문제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그런데 그중에 D교사보다 서너 살 위인 부장교사가 자신의 의견에 반발한다고 욕설과 함께 D교사의 뺨을 때렸다. 이로 인해 D교사는 고막이 터져,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법정에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서 헤어나기 어려웠다고 한다. 취중에 일어난 일로 접기에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교사가 교장, 교감 등의 관리자에게 행한 교권침해 사건은 간혹 있었지만 동료교사에 의해 교권을 침해당하는 일은 흔하지 않은 경우이다. 이 사건은 해당학교 교원들이 나서서 원활한 해결책을 찾았기에, 그나마 더 큰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이렇듯 교권침해사건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교육행정기관, 언론, 학부모와 학생, 동료교사에 의한 교권침해 등 실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총의 자료에 의하면, 2004년 1년 동안 교총이 접수·처리한 교권침해사건은 191건으로 2003년도의 95건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이를 유형별로 보면, '학교안전사고 피해' 51건(26.7%), '부당행위 피해' 40건(20.9%), '신분문제 피해' 26건(13.6%), '교원 간 갈등 피해' 24건(12.6%), '명예훼손 피해' 17건(8.9%), '기타' 33건(17.3%) 등이다. 교총에 접수되지 않은 것까지 감안하면 교육 현장에서의 교권침해관련 사건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교권은 교육권이며 교사의 권리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교사는 교육할 권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학생의 학습권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교권인 것이다. 반드시 교권은 지켜져야 하고 침해받으면 안되는 이유이다. 교육계가 함께 찾고 지켜야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교권을 누가 가져다주기를 기대하던 때는 이미 지났다. 교육계가 함께 찾고 사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들 스스로 교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함은 당연지사다. 나아가서는 학부모와 학생의 의식변화가 필요하다. 권리만 주장하여 교권침해를 가져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육계 스스로 교권을 지키고 잃어버린 교권을 찾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물론 이렇게 하기가 현실적으로 쉬운 것은 아니다. 교권침해사건이 발생하면 학교와 교원은 항상 약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약자라는 한탄만 할 수는 없다. 끝없는 노력만이 약자에서 강자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인 것이다. 교권을 강하게 하고 이를 수호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학교장의 강한 의지와 떳떳함이 필요하다. 교권관련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특히 학부모와 관련된 경우는 객관적이지 않은 주장을 펼치는 학부모에게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한다. 학교장은 학교의 최고경영자이다. 학부모에게 사과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정중히 사과해야 하겠지만 부당한 요구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전체 교원의 교권은 단위학교에서부터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교육행정기관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교권침해관련 사건이 발생하면 교육행정기관에서 적극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도리어 교원단체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매우 크다. 가령 언론에 의한 교권침해사건이 발생할 경우 교육행정기관의 의지보다는 교원단체에서 나서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교육행정기관에서 보도내용에 동조하는 인상을 주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객관성 없는 보도라면 발 벗고 나서야 하는 것이 교육행정기관의 의무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셋째, 교권관련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일선학교는 물론 교육행정기관에서조차 자꾸 숨기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특히 일선학교에서는 그에 따른 후속조치 때문에 사소한 사건이라도 절대 함구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제는 이를 숨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숨기는 것은 결코 교권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떳떳하게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넷째, 교사들 스스로 교권확립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사소한 것에 매달리기보다 좀 더 큰 안목을 가져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교권을 확립해야 할 집단들은 교사집단이다. 교사가 교육권을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스스로의 노력만이 교권확립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교육수요자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학생들을 사랑으로 가르치고 사랑으로 대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또한 교권침해를 받을 만한 원인을 사전에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모두의 공감이 교권의 바탕 교권 확립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내부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교권확립을 위해서는 사회적·국가적인 조건이라는 벽을 넘어야 하는 어려움은 있다. 그러나 사회적·국가적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현실이라면 교원 자신이 먼저 교권확립을 위해 전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의 질은 결코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아니더라도 교사집단 스스로 교권확립을 위해 노력하면서 아울러 사회적·국가적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해야 할 것이다. 교육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교사는 전문직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아야 하며 부당한 간섭도 받지 말아야 한다. 또한 교육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교직이라는 전문직 특성에 비추어 보면 교사의 전문성을 추구하기 위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또한 그에 합당한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교권이 확립되어 있다고 해서, 교육자나 교육행정이 독선적인 판단을 내리고 독주해도 좋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교권확립의 배후에는 항상 국민의 의사가 뒷받침 되어야 하며, 국민 전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올바른 교육목표 달성에 주력해야만 교권의 바탕은 더욱더 공고히 다져질 수 있는 것이다.
강정훈 | 경기 과천고 교사 지난 2003년 15세의 한 중학생이 어머니 시신과 6개월 동안 함께 살다가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에 너무도 충분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필자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부분은 일부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에서 교사와 학교에 대한 비난조의 기사였다. '15세 중학생이 어머니 시신을 6개월 동안 옆방에 두고 함께 보냈다. 학교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웃도, 친구도, 선생님도 그 오랜 시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조선일보 2003년 12월 6일)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중학교 3년생이 어머니가 숨지자 시신과 함께 6개월이나 생활했으나 학교, 동사무소, 친구나 이웃 등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아 모르고 지낸 것으로 드러났다.(중략) 송 군의 학교에선 송 군이 지난 5월 28일 "어머니 병이 악화돼 간호해야 한다"며 조퇴하고 6월9일 이후 6개월여 무단 결석했는데도 찾지 않다가 고교 입학원서를 쓸 무렵인 11월 중순쯤부터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경향신문 2003년 12월 6일) '문제는 여섯 달 넘게 학교를 결석했던 송 군을 담임선생님이 찾을 때까지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다는 점입니다. (중략) ⊙ 기자:동사무소에 이사신고를 하지 않아 송 군을 찾기가 어려웠다고는 하지만 학교 측 태도 역시 안타깝기만 합니다.'(2003년 12월 5일 KBS뉴스) 잘못 사용된 촌철살인의 힘 위의 기사를 보면 담임교사나 학교 측에서는 송 군에게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학교에 나오지 않는데도 학교에서 방치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기사였다. 그리고 이런 보도가 나가자마자 인터넷에서는 담임교사와 학교를 비난하는 내용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오마이뉴스와 동아일보의 보도로 진실이 밝혀졌다. 담임교사의 경우에는 용인에서 이천까지 출퇴근하면서도 매일같이 찾아다녔고, 3학년 부장교사의 경우도 7번이나 송 군을 찾았었고, 시장에게 송 군을 도와달라는 편지까지 썼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체를 찾게 된 날도 직접 보일러를 고쳐주기 위해서 찾아왔을 정도로 교사들과 학교는 송 군에게 정말 수많은 관심과 노력들을 기울여왔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은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왜곡된 기사를 내보내고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던 사건이었다. 미디어는 촌철살인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사용되어지느냐에 따라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따라서 미디어는 어떤 사실을 이야기할 때 매우 신중하고 정확한 사실을 근거하여 말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미디어는 학교와 교사들을 다루면서 왜곡되고 편향된 시각을 반영하는 사례들이 무척 많다. 최근 학교나 교사들을 다루는 미디어가 매우 많이 늘고 있다. 학생들이 보는 만화책에는 학원물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학교 이야기를 다룬 내용들이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사람들이 교육에 관심을 가지면서 학교에 관련된 내용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런 학교 이야기들 속에는 어김없이 교사가 있고, 그런 교사의 모습들은 긍정적인 부분도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많은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교사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그리고 신문이나 뉴스보도에서 보이는 교사의 모습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상업성 속에 감춰진 살신성인 예전에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교사들에 대한 묘사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오히려 주제에서 좋은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드라마들이 많았었다. 필자 역시 어릴 적 호랑이 선생님 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선생님을 꿈꾸었던 시절이 있었고, 도시락을 못 싸온 학생을 위해 자신은 굶으면서도 자신의 도시락을 내어주거나, 수업료를 내지 못한 학생을 위해 월급을 털어서 수업료를 내주는 교사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들이 자주 등장했었다. 그러나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나 드라마의 교사 모습들과 비교해보면 과거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사들을 순수한 사랑의 대상이 아닌 애정행각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교사 역시 제자들을 제자로서 바라보기보다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교사들의 촌지문제나 타락한 모습들, 폭력의 장이 되어버린 교실에서 무능하고 나약한 교사로 묘사하는 내용들이 과거와 비교해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인기 있었던 드라마 로망스에서는 10대 남학생과 여교사와의 사랑을 다루었었다. 물론 이런 설정들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성한 배움의 장소인 교실에서까지 욕망에 사로잡힌 교사가 학생과 키스를 하고, 둘이 여관에 가는 장면은 교원단체의 많은 항의를 받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소재의 드라마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로망스 이후 많은 드라마가 '남학생과 여교사'의 소재를 가져오고 있다. 실제 작년 10월 SBS 뉴스에서는 요즘 대중문화 주요 코드로 남제자와 여교사가 부각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공언한 바 있다. 실제로 SBS의 건빵선생과 별사탕, KBS의 러브홀릭이 이런 소재를 활용하고 있으며, 영화나 CF에서까지 이런 소재들을 차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아무리 특별한 내용도 자꾸 반복하다보면 일반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청소년들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디어 매체에서 여교사를 계속 반복해서 애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다보니, 이제는 학교에서도 여교사가 남학생들에게 더 이상 존경과 배움의 대상인 '교사'로서 바라보기보다 '애정 쟁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학생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실제로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이런 일들에 대한 사례들이 주변에서도 속속 이야기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여교사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촌지문제를 비롯한 교사들의 비윤리적 측면에 대한 영화들 역시 교사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다. 2003년 영화 선생 김봉두를 비롯해서 많은 드라마 역시 촌지를 받는 교사가 소수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당연한 관행처럼 이야기한다. 또 몽정기2에서는 여제자의 몸매를 음흉하게 훑어보는 교사들과 제자들의 육탄공세를 즐기는 교생선생님들을 다루고 있고, 최근 나온 연애의 목적에서는 애인 있는 남교사가 역시 애인이 있는 교생과 육체적인 욕망을 즐기는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이런 비윤리적인 모습들의 등장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오히려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헌신적으로 교육하고 있는 정직한 선생님들의 경우에도 이런 드라마 때문에 학생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부작용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교육은 학생과 교사 사이에 신뢰감과 믿음이 절대적 요소이다. 따라서 이런 내용들은 교사의 가장 큰 무기를 빼앗는 결과로 작용되고 이로 인해서 교육현장에 찬물을 붓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부 영상매체의 학원물 상당수는 폭력과 결합한 내용들이 많다. 학교나 교실 안에서 온갖 폭력이 난무하고 심지어 수업시간에도 폭력을 행사하는 내용들이 빈번하다. 문제는 이런 폭력의 현장 한쪽에는 교사의 모습이 어김없이 무능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 주인공인 청소년들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교사가 영상에서 교실을 주도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교사는 폭력이 난무하는 교실에서 학생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허수아비처럼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 교사는 그냥 있으나 마나 한 것처럼 학생들에게 무시되어진다. 이런 교사의 모습 속에서 어떤 권위를 찾을 수 있겠는가? 이 밖에도 영상에서 그리는 교사의 존재는 답답한 존재, 고지식한 존재, 이기적인 존재로 그려지기도 하고, 교사가 학생들의 놀림의 대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 시트콤에서는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서 교사는 엉뚱하고, 눈치 없고, 히스테리를 많이 부리는 캐릭터로 등장하여 항상 학생들의 놀림을 받는 대상으로 등장한다. 사람들은 평범한 이야기보다 특별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이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는 평범하기보다는 특별한 내용을 다루어야 사람들에게 선택되어진다. 그래서 정상적인 남녀의 사랑보다는 불륜이나 동성애 또는 엄청난 나이차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일반적인 학교의 모습보다는 특별하거나 독특한 학교들을 소재로 한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교사보다는 엉뚱하고 놀림당하는 교사, 정직하고 능력 있는 교사보다는 비윤리적이고 나약한 교사가 영상의 소재로 선택되어진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특별한 이야기에 자주 접하다보니 특별한 이야기가 마치 보편적인 일상사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PAGE BREAK]자극적 내용으로 교사 왜곡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매체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는 객관적인 사실을 보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뉴스는 보도되는 내용 그대로 사실로서 사람들을 각인시키며, 이는 학교 현장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뉴스에서조차 학교를 왜곡된 모습으로 보도한다거나 어떤 사건을 너무 크게 부각시켜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할 때가 많다. 특히 체벌에 대한 논란이나 교육 붕괴의 책임을 교사에게 전가시키는 태도들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 비해서 체벌은 체감할 정도로 많이 줄었다. 우리의 교육에서 체벌은 전통적으로 용인되어오는 학교현장의 문화였다. 그래서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나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자녀나 제자가 잘못을 하면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최근 체벌논란은 교사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사의 체벌을 다룬 뉴스들을 보면 대체로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원인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이런 보도는 폭력적인 교사의 처벌을 다룬 내용들이 많다. 대부분의 언론이 교사가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이로 인해서 학생들이 전치 몇 주의 부상을 입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학부모가 흥분한 상태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한다. 그러나 이 때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교사가 왜 때렸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학생은 별 잘못이 없고 아무 이유 없이 때리는 교사는 매우 비이성적이고 심지어 비인간적인 대상으로 취급되며, 이로 인해서 흥분한 독자와 시청자들은 교사 개인보다는 교사 전체를 화풀이 대상으로 취급한다. 두 번째 문제점은 체벌을 폭력으로 단정 짓는 태도이다. 체벌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논란의 대상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의 보도내용을 살펴보면 체벌하는 교사를 미개인으로 취급하거나 매우 비이성적인 교사로 보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체벌에 대해서 앞으로 지양해야 할 산물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의 교육문화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시킬만한 교육시스템은 가동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한순간에 체벌문화를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며 사회적인 합의도 중요하다. 따라서 언론은 현재의 체벌 문화를 무조건 정죄하기보다는 가급적 체벌문화를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체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보도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비난에만 초점을 맞추는 보도 SBS에서는 지난 2005년 10월 24일부터 11월 8일까지 8시 뉴스에서 '위기의 선생님'이라는 시리즈의 기획물을 내놓았다. 그 첫 방송에서 방송사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교 소속감, 교사의 사기 및 열의, 교사 헌신도가 OECD국가에 비해서 매우 낮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세 가지가 낮기 때문에 공교육 붕괴가 일어나고 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시리즈를 시작한다는 기획의도와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후의 방송들로 하여금 많은 교사들이 사기와 열의를 잃었으며, 학생들에게 헌신하던 많은 교사들을 허탈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말 교단 개혁을 위해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했을까'라는 의문과 왜곡된 보도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충분했다. SBS에서는 처음 기획의도를 밝히는 부분에서 학부모의 울분과 아이들이 가기 싫어하는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 교사들의 과중한 업무나 고충, 존경받는 선생님도 함께 보도하면서 우리교단이 나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목적을 밝혔다. 그러나 실제 계속 되는 시리즈의 대부분은 교사에 대한 비난들이 주를 이루었다. 제목들도 매우 자극적이다. '교단개혁 시급', '상처받는 아이들', '체벌, 사랑의 매인가?', '엄마는 도우미?', '처벌은 솜방망이', '철밥통 교사직', '찬조금 또 다른 촌지', '학교보다 학원이 좋아요', '아이가 불모인가요?' 등이다. 그러면서 뉴스 내용도 매우 일부의 이야기를 보편적인 이야기로 둔갑시켜서 보도하고 있는 것도 매우 많았다. 물론 일부의 이야기일지라도 한 두 명의 교사 때문에 수십 명의 학생들이 아파할 수 있기에 우리가 안고가야 한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기에는 시리즈 내용들이 너무 과장되고 편향되며 치중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많은 시리즈물 편성에서 교사의 고충을 다룬 기획물(선생님, 행정중심 환경에 부담 느껴)과 존경받는 선생님(선생님 사랑해요)을 다룬 내용, 그리고 대안을 담은 내용(이런 평가 어때요)은 겨우 한 편씩에 불과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내용으로 보도된 '위기에서 기회로' 역시 마지막 장면에서 정말 희망을 보여주는 메시지보다는 제 식구 감싸기를 비난하는 내용으로 모든 시리즈물을 마무리하였다. 정말 실제로 많은 부분을 할애해야 할 부분들은 한 편씩으로 생색 정도로 그치고 비난 내용으로 가득 찬 시리즈물에서는 바람직한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교사들에 대한 불신만 높아지고 학교교육보다 학원 교육을 홍보하는 듯한 시리즈물들은 교사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은 물로 교육환경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디어에 의한 부작용 줄여야 방송이나 신문은 독자들과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해야 한다. 그 동안 학교나 교사들은 순수하고 깨끗하며, 검소한 교육자나 스승으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상하는 이런 평범한 이야기는 이제 쉽게 주목받지 못한다. 따라서 좋은 선생님, 고생하는 선생님은 더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단지 순수하게 인식되어왔던 교사가 순수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만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지나칠 이야기도 교사의 행동은 뉴스의 기사가 될 수 있다. 또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이런 소재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학교나 교사를 다룬 미디어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또 미디어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교사의 권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교사의 가르치는 일부 기능을 미디어가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교사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던 아이들이 이제 교사가 아니라도 컴퓨터 속이나 텔레비전 속에서 교사의 기능들을 일부 담당할 수 있다. 따라서 미디어시대에 교사의 권위가 계속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교사 스스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첫째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참다운 인생의 스승으로 서야 한다. 지식 전달은 이제 교사만이 아니라 미디어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따라서 교사는 미디어가 할 수 없는 인생의 조력자와 인간됨을 가르치는 진정한 인생의 스승으로 남아야 된다. 학생들이 고민하고 있을 때 들어주고, 아파할 때 위로해주며, 괴로워할 때 어루만질 수 있는 역할들을 같이 감당해야 한다. 둘째로 교사의 권위는 교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미디어에서 교사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약화시키더라도 교사가 제대로 서 있다면 이를 만회할 수 있다. 수업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수업하고, 학급에서는 아이들에게 사랑과 헌신으로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면 아무리 미디어에서 교사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있어도 아이들은 자신의 선생님을 진정한 스승으로 생각할 것이다. 셋째로 미디어에 대해서 가르쳐야 한다. 미디어에서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들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미디어를 보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학생들로 길러야 한다. 앞으로도 미디어에 의한 교권약화는 계속되어질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러한 정보가 왜곡되고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보다 학생들 스스로 분별해서 판단할 수 있는 성숙한 학생들이 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따라서 학생들이 미디어의 특징들과 생리들을 알 수 있도록 교육한다면 미디어에 의한 부작용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교사는 개혁 대상이 아닌 주체 미디어도 이 땅의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같이 노력해야 한다. 첫째, 미디어는 그 영향에 대해서 항상 고민해야 한다. 많은 미디어가 좋은 기획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제작되거나 만들어지지만 가끔씩은 의도와는 다르게 교육에 방해가 되거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때가 많이 있다.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태도를 가지게 한다던지 교사의 권위를 떨어뜨려 학교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하고, 청소년들의 잘못된 가치관이나 습관형성을 일으켜 학교에서 많은 어려움을 가지게 한다. 둘째, 공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상업성을 추구해야 한다. 일부 미디어의 경우 시청율과 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서 윤리적 양심을 버리고 공익성을 해치거나 개인 또는 특정 집단에게 해가 되는 내용들을 담아내고 있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는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적 회사임과 동시에 엄청난 영향력과 파급력을 끼치는 공익성을 같이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공익성과 상업성을 함께 추구할 수 있는 적절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셋째, 교사는 교육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많은 언론들이 교사를 교육개혁의 대상으로 취급하여 교사를 매우 적대시하는 보도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교사의 순수한 동기에 의한 마음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 교사를 억지로 제도와 규제에 의해서 끌고 가는 교육개혁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교육개혁의 주체로서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주위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교육에 관련된 미디어보도 방식의 고민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보도처럼 일부 교사를 비난하고 문제시하여 교사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오히려 교사집단의 반발을 불러와 역효과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집단이기주의에 흘러가지 않도록 교사에 대한 감시와 견제기능에 충실하되 긍정적인 방식의 방법으로 우수사례와 대안들을 제시하는 역할들에 대해서도 높은 비율이 할당되어야 한다. 이처럼 올바른 교육의 필수적인 항목인 교사의 권위는 미디어만의 노력도 교사만의 노력으로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교사는 스스로 낮아지면서 학생 한 명, 한 명을 아름답게 섬겨주는 진정한 스승으로 거듭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미디어를 통해서 항상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또 미디어 역시 미디어의 강력한 힘을 무책임한 비난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교육의 내일을 위해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합리적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이 두 가지의 노력들이 함께 되어질 때 비로소 우리 교육은 지금보다 더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박의수 | 강남대 교수, 한국교육철학회장 근래에 와서 교직에 대한 선호도가 급격하게 높아져서 교원임용시험의 경쟁률은 가히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이는 교사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교직의 권위 회복을 위하여 다행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은 결코 교육을 위하여 좋은 일로만 볼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교육의 성공을 위한 필수 요건 IMF파동 이후 직업 세계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의 회오리는 대부분의 직장에서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조기 퇴직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따라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신분보장이 잘 되는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진 것이다. 공무원과 더불어 교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은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희구하는 것이 평범한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볼 때, 그런 태도를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교육을 위하여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어떤 직종을 막론하고 개인적 차원에서든 공적 차원에서든 그 일을 창조적으로 수행하여 자아를 실현하고 공공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사람들은 일 자체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교직은 학생에 대한 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없이는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다른 직업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더욱이 교육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지식기반사회에서 교육혁신을 통하여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1차적 책임은 바로 교사에게 있음을 상기할 때 교사의 투철한 사명감과 올바른 교직관은 교육의 성공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그렇다면 교직이 다른 직업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이며, 바람직한 교사의 역할과 자세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전문직인가, 일반직인가? 1999년 교육부가 발표한 교직발전종합방안(시안)을 보면 교원정책방향의 첫째로 '전문직으로서 교원의 위상 강화'를 들고 있다. 이는 교직이 전문직이거나 적어도 전문직이어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직이 전문직이라는 데에 공감하는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될 것인가? 전문직의 기준은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양하지만 대개 ① 장기적인 교육과 고도화된 능력 ② 엄격한 자격증 제도와 어려운 입문 과정 ③ 전문적 지식과 기술 ④ 폭넓은 자율성의 행사 ⑤ 자율적 통제와 권익 보호를 위한 조직 ⑥ 높은 사회적 위세와 경제적 보상 ⑦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상의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교직은 자격증 획득에 필요한 과정과 소요되는 시간, 직무 수행상의 자율성, 사회적 위세와 경제적 보상 등에 있어서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타 전문직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이 현실이라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와 직무 수행을 위한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다. 기대하는 역할과 업무의 수준은 높은데 반하여 그에 상응하는 권위와 자율성과 보상은 낮은 편이다. 또한 교직 업무의 주된 대상이 미성년자들이며, 그들의 연령대가 낮을수록 그에 비례하여 교사의 사회적 지위도 낮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현상이 교사들로 하여금 전문가로서의 자긍심을 갖지 못하게 하고, 교직의 전문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교육은 다음 세대의 조화로운 발달과 성장을 돕는 활동이다. 따라서 교직은 올바른 인간이해와 교사의 전문적 식견을 바탕으로 수행된다. 교사는 인간의 심리적·생리적·사회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충분한 기초지식과 교과에 대한 전문지식, 학생생활과 교과를 효율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방법 개발에 관한 전문적 능력, 그리고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정을 지닌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직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전문직이다. 성직인가, 노동직인가? 오늘날 모든 직업은 원칙적으로 평등하며 직업에 귀천이 있을 수 없다고 볼 때, 목사나 승려처럼 전통적인 성직조차도 하나의 직업으로 전락(?)해가는 판국에 교직을 성직이라고 주장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직이 일반 근로직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남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교사라는 직업이 일반 근로자처럼 단지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직과는 달라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봉급을 받는다는 점에서 교사도 노동자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교직은 다른 근로자들처럼 노동을 통하여 경제적 가치만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을 대상으로 육체적·정신적 성장을 도와주고, 보다 높은 수준의 자율적·도덕적 인간으로 끌어올리는 활동이다. 그런 점에서 교직을 담당하는 교사에게는 성직자에 준하는 특별한 사명감과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교사에게 성직자와 같은 윤리적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직업 자체가 고귀하고 성스러워서가 아니라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서이다. 교직의 업무는 단지 교과지식을 전달하고 윤리적 규범을 익히도록 하는 일 뿐만 아니라 3D 업종에 가까운 정도의 단순하고 힘든 노동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나 교육은 그 대상이 어릴수록 모방에 의한 학습에의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교사는 행동으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따라서 모방의 대상이 되는 교사의 삶과 행동양식은 교육효과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또한 교육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참된 의미의 권위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교사의 행동이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은 곧 교육 효과와 직결된다. 케르셴슈타이너는 '교육자 정신의 본질은 인간을 사랑하는데 있다'고 보고 인간 사랑을 교육현장에서 실천한 전형적 교육자로 페스탈로치를 들고 있다. 페스탈로치는 그의 명성이 절정에 달하였던 이페르덴 시절에도 '어떻게 하면 가난한 사람 자신이 자기 자신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가난한 어린이의 학교에서 내가 직접 보여주지 않는 한 그 방법은 학교에서는 필요한 것일 지라도 생활에는 아무 쓸모가 없고 내가 한 일의 성과도 반감되고 말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빈민의 어린이들을 위하여 고뇌하고 헌신했다(케르셴슈타이너, 문형만역, 교육자론:35). 역사적으로 위대한 교육자들은 이처럼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고 교육에 대한 열정을 몸으로 실천한 실천가에게서 발견된다. 따라서 교직은 성직은 아닐지라도 성직에 가까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을 요구한다. 교직만의 전문적인 특성 교직도 하나의 직업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생계유지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문적 식견을 필요로 하는 전문직으로서의 특성을 갖는다. 이에 더하여 교직은 어떤 전문직과도 다른 교직만의 특수성을 지닌다. 첫째, 교직은 인간을 대상으로 인간의 조화적 발전을 돕는 활동이라는 점이다. 칸트는 '인간은 교육을 필요로 하는 유일한 존재'이며, '교육에 의하여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라고 했다. 따라서 교사 자신이 우선 참된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 교직은 주로 인간의 정신적 측면의 발달, 즉 지·정·의의 조화로운 발달을 돕는 활동이다. 물론 신체적 측면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주된 관심은 정신적 측면에 집중된다. 인간의 정신적 측면을 다룬다는 말은 곧 감정의 교류가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뜻이다. 일방적 작용이 아니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나와 너'의 참된 인격적 만남, 영혼과 영혼의 만남을 통하여 참된 의미의 인간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교사 자신이 인간을 사랑하고 교직을 사랑하지 않으면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셋째, 교직은 미성숙한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교사의 인격과 가치관과 태도가 그대로 교육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때로는 의도되지 않은 잠재적 교육과정이 더 크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인간의 학습은 반드시 교사가 계획하고 의도한 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교직의 어려움이 있다. 교육은 결코 머리와 사고의 산물인 이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참된 교육은 지식교육과 인격교육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온전한 앎에 도달하려면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손발로 실천하는 세 차원의 기능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 인식(지)과 믿음(정)과 실천(의)이 조화를 이루어야 온전한 앎에 도달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지식교육과 인격교육은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 페스탈로치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마음은 어린이들의 마음에 달려 있다. 그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그들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다. 어린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어느 때나 내 얼굴에서 이것을 알아차리고, 내 말 가운데서 이것을 느낄 것이다." 이 구절은 교육에서 '감정이입'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사의 마음, 정열, 사랑, 교육적 에로스가 교육의 성패를 좌우한다. 넷째, 교직은 교육기관의 운영주체가 개인이든 공적 기관이든 관계없이 본질적으로 공적 활동이다. 이는 학습자가 누구이든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이며, 동시에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은 학습자의 자유의지와 자율성을 존중하고 궁극적으로 자유인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하며 결코 특정 이데올로기나 도그마를 주입시켜서는 안된다. 때때로 교사의 지나친 열정이 자신의 믿음이나 가치를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있음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또한 공적인 활동이라고 해서 학습자의 개성을 무시하고 모든 학생에게 획일적인 교수법이 적용되어서도 안된다. 학습자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것과 교직이 공적 사업이라는 것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학생 개개인이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될 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회와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자율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개혁과 교사의 자세 지금까지 교직이 왜 전문직이어야 하며, 왜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을 요구하는가, 그리고 다른 전문직과 다른 교직의 특수성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어쩔 수 없이 원론적 차원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며, 실천 가능한 해법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교원평가 문제, 대학입시문제, 고교 평준화 문제, 과열과외와 과다한 사교육비 문제, 교실붕괴, 학교폭력, 교사의 과다한 업무부담, 형성평가의 문제, 열악한 교육시설과 근무환경, 획일화된 통제 등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열거하면 한이 없다. 이런 문제들은 서로 얽히고설켜서 서로가 원인이 되고 원인이 결과가 되어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더욱이 이런 문제들은 국가적 차원의 교육정책 혹은 제도와 연관된 것으로 학교단위는 물론 학급이나 일개 교사의 입장에서는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절망하고 주저앉아서 정책이나 제도가 개선되기만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먼저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본질적인 문제와 비본질적인 문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교육문제가 무엇인가? 예를 들어 과다한 사교육비 문제는 사회적 문제일 수는 있지만 교육적 문제는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그렇게 돈과 시간을 들이고도 결국 가르쳐야 할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배울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데 있는 것이다. 대학입시 문제의 경우도 변별력이 문제가 아니라 중등학교 교육이 파행으로 치달아 전반적으로 학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따라서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하여 교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물론 이 문제는 대학이 더 큰 열쇠를 쥐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초·중등교육에 국한하기로 한다. 제도개혁도 정책적 지원도 다 필요하다. 그러나 일선에서 교육을 담당할 현장의 교사가 실천하지 않으면 어떤 제도나 정책을 도입해도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경험했다. 개혁은 일종의 궤도 수정이다. 궤도를 수정하려면 몇 배의 에너지가 더 소모된다. 개혁을 하겠다고 하면서 그에 따르는 어려움과 고난을 감수할 의지가 없다면 백약이 무효다. '작은 일부터, 나부터' 자세로 "모름지기 교육개혁의 성패는 그것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실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선생님들 한 분, 한 분이 얼마나 교육애를 가지고 자신의 의지와 열정을 불태우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백번 해봤자 안 된다는 허무적 패배주의, 힘만 들 것이 뻔한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무사안일주의, 남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돈 될 것도 없는 일에 내가 왜 앞장을 서느냐는 소아병적 이기주의가 판치는 작금의 교단 풍토를 쇄신하지 않고서는 우리 교육은 정녕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경향신문, 2005.10.31)라는 어느 교감선생의 지적이 백번 옳다. '제도가 그렇고 정책이 이런데 나 혼자 무슨 수로 개혁을 할 것인가!' '나는 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못하게 한다.' 이것은 게으름에 대한 일종의 변명에 불과하다. 아더 콤즈는 이것을 개혁을 가로막는 일종의 '신화'라고 했다. 이와 같은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한 희망은 없다. '작은 일부터 나부터'의 자세로 시작해야 한다. 우리들 교사는 적어도 교실이라는 자유의 공간이 있다. 일단 교실 문을 닫으면 교사의 작은 왕국이 전개된다. 마음만 먹으면 교실 안에서는 교사가 홀로 주관할 수 있는 개혁의 가능성과 다양성이 무한하다. '가능한 한 조용하게 허세 부리지 말고' 지금 당장 나부터 개혁에 착수해 보지 않겠는가? 개혁의 성과가 미미할 지라도 스스로의 교직 생활은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창조해 가는 행복이 교육자의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글·사진 | 박하선/사진작가, 여행칼럼니스트 고생 끝에 허락된 왕국과의 첫 만남 여기는 티벳 고원의 서부 변방. 불같은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해발 4000m의 고원에서 나무 한 그루 없는 주변의 산들이 하얀 사막처럼 빛나고 있다. 온 천지가 텅 비어있어 마치 오수(午睡)속의 적막함 같을 것을 느끼게 한다. 세 갈래의 갈림길 옆에 텐트를 치고 지나가는 트럭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린 지도 이틀이 되었다. 말로만 들어온 '구게 왕국'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오늘도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모래언덕에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기만을 눈이 빠지게 지켜보고 있다. 그것은 마치 구약성서에서 한 예언자가 신의 계시를 받고 성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분위기라고나 할까. 우리에게는 이름조차 너무도 생소한 이 구게 왕국. 9세기 한때 중앙 티벳의 '랑 다르마'왕의 불교에 대한 박해로 인해 흩어져 있던 추종자들을 모아 '예쉐 오(Yeshe O)'라는 사람이 866년에 창건한 왕국이다. 불교의 보존과 전래에 역점을 둔 이 왕국은 예쉐 오 왕 자신도 결국 왕위를 버리고 중이 될 정도로 불교가 크게 번성해 티벳 전역에 다시 불교의 부흥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17세기 카시미르 사람들의 침공으로 멸망하기까지 서부 티벳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역할을 해 왔던 곳이다. 300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 그 흔적들은 인도와의 국경을 지척에 두고 산속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자다'와 '사파랑'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마을들은 워낙 꼼꼼하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사전 정보 없이는 그냥 지나치기가 쉬운 곳이다. 또 설사 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교통이 워낙 불편해 목전에서 포기하는 경향이 많은 오지 중의 오지로 통한다. 3일째 되는 날도 역시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웬만한 거리 같으면 걸어서라도 도전해 보겠지만 150㎞가 넘는 험악한 산길이다. 사실 구게 왕국에 대한 사진 한 장 구경한 적이 없을 정도로 사전 정보가 미흡했지만 그러한 왕국이 있다는 말만 듣고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려서 아까운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누룽지와 육포로 연명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날은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한낮이 다 되었을 때 트럭 한대가 모래먼지를 날리면서 이쪽으로 방향을 잡고 다가서고 있었다. 부리나케 짐을 챙겨서 길을 막고 차를 세우니 군용 트럭이었다.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3일을 기다린 마당에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화물칸에 올라타고 구게 왕국을 향해 계곡으로 빨려 들어갔다. 세월과 함께 흩어져가는 흙빛 도시 험악한 산길에 얼마를 몸부림쳤을까. 협곡으로 접어들면서 주변의 산세가 변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웅장하게. 수많은 골이 패인 흙빛의 산들이 마치 거대한 신전처럼, 또는 병사들이 사열을 받고 있는 자세로, 아니면 섬세한 조각으로 장식된 위엄 있는 왕궁이나 장군들의 얼굴 등등이 천의 모습을 띠고 한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구 속의 혹성이라더니 이곳을 두고 한 말인가. 이러한 것들이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에 의해 생겨난 자연적인 것이라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거대한 제국 속에 빨려 들어온 듯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그저 입만 딱 벌어질 뿐이다. 역시 왕국이 있을 법한 곳이다. 이것은 구게 왕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전초전으로 그 왕국의 위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으며, 또 그 왕국을 찾아가는 우리를 맞아 일종의 대 환영식을 베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자다' 마을은 아주 조그마한 동네였다. 눈에 보이는 것 거의가 흙빛이었지만 마을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톨링'이라는 사원의 모습이 제일 먼저 관심을 끌었다. 예쉐 오 왕의 명을 받고 인도에서 공부하고 있던 '린첸 상포'가 978년에 돌아와 불교의 부흥을 위해 지은 많은 업적 중의 하나다. 또한 1040년에 인도의 유명한 학자 '아티샤(Atisha)'가 이 구게 왕국으로 건너와 티벳 전역에 불교의 부흥을 꾀하면서 이곳 톨링 사원에 2년 동안 머물었던 기록도 가지고 있다. 천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연적인 것인지, 아니면 인위적인 것인지는 몰라도 많이 훼손되고 파괴되어 있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순례자들이 있어 이곳 촌장인 듯한 노인네가 열쇠를 가지고 와서 본전 옆 건물을 열어주곤 했다. 옳거니 하고 그 순례자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그 노인네가 가로막고 절대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이방인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카메라 때문에 그럴지도 몰라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하면서 살살 구슬려도 보고 화를 내보이기도 하면서 통사정을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문 옆에서 고개만 내밀고 입맛만 다시다가 끓어오르는 울화를 달랠 겸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 저기 부서진 성곽과 불탑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흙으로만 만들어진 것들이라 천년이라는 세월을 지탱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도처에 토굴들도 많다. 지금은 모두 비어 있거나 아니면 가축들의 보금자리나 창고 같은 것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왕국 시절에는 물론이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토굴에서 생활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사실 지금 주민들이 살고 있는 흙집들도 말이 집이지 토굴이나 다름없을 정도지만. 시간의 깊은 잠 속에 빠져있는 왕궁 구게 왕국의 본산은 이곳 '자다' 마을에서 17km 더 깊이 들어가 있는 '사파랑'에 있다. 그러니까 그곳에 왕궁이 있는 것이다. '사파랑'으로 가는 차편이 없어 간략한 짐만 챙겨서 걸었다. 불볕이었지만 구게 왕국의 하이라이트인 왕궁을 보게 된다는 기대가 앞서다 보니 참을 만 했다. 그러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매고, 또 수많은 협곡을 넘나들면서 몸이 파김치가 되었을 때는 '사람이 이러다 죽는 모양이구나' 했다. 악전고투 끝에 이 구게 왕국의 성채 바로 밑에 섰다. 벌집 같은 수많은 토굴과 몇 채 안되는 사원, 그리고 도저히 그냥은 오를 수가 없어 보이는 산꼭대기에 외롭게 떠있는 왕의 거처 등이 쥐죽은 듯한 고요 속에서 우리를 맞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마귀의 성'처럼 제법 으스스한 분위기로 다가왔고, 우리는 그 '마귀의 성'에 들어가 뭔가를 찾아내기 위해 한판 승부를 치러야만 하는 주인공이 되는 기분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성채를 카메라에 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우리를 불렀다. 이곳 관리인이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드물어서인지 반가운 기색이었다. 이 거대하고 소중한 왕국의 성채를 이 사람 혼자서 관리하고 있다는 말에 그저 놀랄 뿐이다. 그는 단순한 관리인이 아니라 불화를 그리는 젊은 화가로서 이곳 사원내의 많은 단청이나 불화를 자신이 직접 보수하거나 새로 그렸다고 자랑했다. 입장권 얘기가 나왔다. 자그마치 우리 돈 4만 원 정도다.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지만 결국 사람 좋은 관리인 덕택에 할인에 할인을 거듭해서 중국인 요금으로 낙찰이 됐다. 물론 내부의 촬영을 일절 허락해 주지 않은 것이 애석했지만. 관리인을 따라 들어간 성내는 다섯 채의 사원을 빼고는 온통 토굴뿐으로 텅 비어 있었다. 사원 내부의 벽면마다 엄청난 벽화들과 불상들이 있었다. 부조된 불상들은 대부분 파괴되어 떨어져 나간 모습이지만 벽화들은 그런 대로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내부가 너무 어두워 자세히 살펴보기가 힘들었지만, 벽화의 성격이 그 유명한 돈황의 '막고굴' 벽화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전형적인 티벳 불교의 그림 양식과 인도와의 접촉이 많다 보니까 그림 속에 인도인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등이 우선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디에서 떨어져 나온 불두인지는 몰라도 그 위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 세월을 얘기해 준다. 내부의 분위기가 천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처음으로 깨어난 듯 제법 으스스하기까지 했다. 이방인의 발길을 잡는 천년의 고독 왕국의 성채에서 곧바로 내려오니 강변에 마을이 있었다. 이곳이 '사파랑'이라는 곳인데 '자다'보다도 더 작고 별 특색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이 마을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바로 이 위에 구게 왕국의 성채가 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이 마을 쪽으로 돌아 왔더라면 협곡을 건너는 등의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어느 민가에 들려서 버터차를 얻어 마시고 간단한 요기를 한 후 다시 성채로 올라왔다. 시간이 너무 늦었고 또 아침의 왕궁도 보고 싶어서 이곳 관리인의 숙소에서 '참파(티벳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미숫가루)'를 얻어 먹어가며 하룻밤을 신세 지기로 했다. 오고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몸은 극도로 피곤한데 누워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 다시 '자다'까지 걸어가야 할 일이 꿈만 같아서 일까? 아니면 이 구게 왕국에 들어오기도 힘들지만 한번 이방인이 들어오면 다시는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말이 떠올라서일까? 버터를 태워 밝히는 불빛이 천년의 고독을 희롱하는 것을 지켜보는 가운데 구게 왕국의 밤은 깊어만 갔다.
정영수 | 인하대 교수·교육학 3월의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매년 맞이하는 새 학기이지만 우리는 늘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올해에는 정말로 존경받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한다. 지난 한 해 동안 교직사회는 교원평가제도 도입, 사립학교법 개정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갈등 상황이 노출되고 이를 통해 교원들의 사기가 많이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미래의 주인공인 학생들의 삶을 준비시킨다는 사명감으로 무장하면서 새로운 한 해를 멋지게 만들어 보고자 하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새 학기에 다짐하는 우리의 각오를 다음과 같이 다져보고자 한다. 첫째, 좋은 선생님이 되자. 바람직한 교사상에 대한 연구도 많이 있었고, 현장에서의 직접 경험을 통해서도 우리는 어떠한 선생님이 정말로 학생들로부터 존경받고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선생님인가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한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이에 대하여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선생님은 무엇보다도 학생들과 인격적인 만남이 가능한 선생님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의 믿음이 형성되면 교육은 이미 절반 이상 성공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를 위해서 올해에는 마치 기업의 고객 중심 영업 전략과 같이 ‘학생에게로 먼저 다가가는 선생님’이 되도록 노력해보자. 그리고 재미있는 수업을 진행해 보려는 노력을 함께 해보자. 특히 요즈음의 신세대 학생들은 재미있는 수업을 절실하게 갈망하고 있다. 이미 오래 전에 독일의 교육철학자 헤르바르트는 “수업에 있어서 지루함은 금물”이라고 하였다. 재미있는 수업을 하고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선생님이 있는 학교는 절대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는다. 둘째, 정보화 시대에 대비한 교육을 하자.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현대는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통적 모습의 교육을 고집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학교가 사회의 변화를 외면하고 전통적 방식의 교육을 고집한다면 머지않아 학교의 기능과 역할을 다른 사회기관이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의 고유한 교육적 기능과 역할을 비교육적 사회기관에 무책임하게 넘겨줄 수는 없다. 오늘날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에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창의적 사고이다. 남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지식의 덩어리를 그대로 전달하고 그것을 답습하는 형태의 교육에서는 사회 발전의 새로운 비전을 찾을 수 없다. 기존의 사고를 뛰어넘는 생산적 사고와 창조적 사고를 어떻게 계발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올 한 해 동안 고민해보자. 우리의 교육현장은 독립적이고 단편적인 정보를 일방적으로 주입시킴으로써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여 삶 속에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식의 생산성을 높이는 교육은 획일적인 지식 전수식 강의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풍부하고 다양한 학습자료를 접하고 스스로 이 자료들을 탐구하고 적용하여 과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하는 과정 속에서 기존의 문제해결 방식을 개선하거나 전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낼 수 있는 창의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셋째, 세계화 시대에 대비한 교육을 하자. 오늘날 우리는 국경이 없는 무한 경쟁사회 속에 살고 있다. 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우수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곧 국가의 존속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바로 개인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앞으로 우리가 경쟁해야할 상대는 국내의 또는 학교 내의 동료학생이 아니다. 학교 내에서 또는 국내에서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좁은 안목으로 교육을 할 수는 없다. 앞으로의 교육은 학습자 개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고로 개발시킬 수 있도록 교사가 다양한 동기부여를 하고 학생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국제경쟁은 더욱 질 높은 전문 인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우리 선생님들은 고급인력을 양성, 공급하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질 높은 고급 전문 인력을 배출하기 위하여 학교교육은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교육과정의 운영을 시도하여야 한다. 선진국의 교육과정운영을 벤치마킹하여 교육과정의 국제화를 이룰 때에 우리의 국가경쟁력은 그만큼 높아지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신아연 | 호주 칼럼니스트 이웃에 사는 한 한인 가정의 자녀가 올해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호주에서도 의대나 치 의대에 진학하려면 대학입시에서 최상위권의 성적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전 과목에 걸쳐 1등급에 해당하는 고득점을 받아 의대에 진학하게 된 그 학생과는 대조적으로 한 반이었던 한국 유학생 하나는 2등급을 받고도 같은 대학 의예과에 나란히 합격했다. 대학마다 유학생 모집 정원을 별도로 두고 있기 때문에 이 학생은 비교적 낮은 성적으로 입학허가를 받은 것이다. 일반 호주 학생들과 유학생들 사이에 입시선발기준의 차등을 두는 이유는 유학생들의 언어적 핸디캡을 고려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유학생 카테고리에 가산점을 부가해 주는 대신, 국내 학생들보다 비싼 학비로 대가를 지불하도록 함으로써 수험생들 간의 불공평함을 상쇄하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지원한 같은 호주 학생들 사이에도 합격 커트라인의 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 차등대우의 기준은 대학 등록금을 자비로 마련하느냐, 정부의 융자를 받아 지원하느냐에 있다. 말하자면 호주대학은 유학생뿐 아니라 국내 학생들에게도 소위 ‘돈 많은 집’ 자식들에게 더욱 많은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교육당국은 등록금을 자비로 내는 학생과 정부에서 융자를 얻어 학자금을 마련하는 학생들의 합격 점수를 다르게 적용하고, 동점일 경우 학비 자비부담 학생들에게 우선 입학 혜택을 주되, 대학마다 두 집단 간의 대입 커트라인 격차를 최고 5점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합격점수를 백분율로 계산하여 융자학생이 최소 80점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학과를, 학비 자비 부담자에게는 75점의 커트라인을 적용하는 식이다. 하지만 문제는 각 대학이 애초 마련된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데에 있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올해 입시에서 각 대학의 최소 10개 학과에서 5점 편차 기준을 무시하고 두 그룹의 학생들 간의 합격점수 차를 임의로 적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례로 한 대학의 모 과는 학자금 정부보조 희망 학생의 경우 합격 커트라인을 98점으로 적용한 데 반해, 학비 자비부담자에게는 80점을 적용했다. 두 그룹 간에 무려 18점이나 편차가 벌어진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의대를 비롯하여 고득점자가 많이 몰리는 이른바 인기학과 일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어서 해가 거듭할수록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호주의 대학들이 등록금 자비 부담 유무를 놓고 입학 점수 커트라인을 이처럼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 이유는 각 대학이 봉착하고 있는 재정난을 부족한 정부 지원으로는 효과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학생 유치를 통한 재정마련으로 한계가 있는 부분을 국내 학생들을 통해 메우기 위한 자구책으로 등록금 마련 방식에 따라 입학점수에 차등을 두어 재정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호주에서는 가정 형편과 큰 상관없이 대부분의 학생이 학자금 융자를 받아 대학을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자금 융자를 받게 되면 당장 목돈을 마련할 필요 없이 대학에 다닐 수 있을 뿐 아니라 융자금 상환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융자받은 학자금을 갚아나가야 하지만 연 수입이 일정 금액(3만 5천 호주 달러-한화 약 2천 8백만원) 이하일 경우에는 융자금 상환을 일시 정지할 수 있다. 학자금 융자에 대해서는 이자를 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원금에 대해서만 수입의 일정부분에서 갚아나가되,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도중에 일자리를 잃게 될 경우, 직장이 있다 하더라도 수입이 충분치 않을 경우 상환을 무기한 미룰 수 있다. 한마디로 공부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하는 일은 없도록, 의욕과 동기를 격려하기 위한 취지를 가진 제도이다. 따라서 별다른 사유가 없는 한 대부분의 학생은 정부에서 융자를 얻어 대학 진학을 하는 것이 관례로 굳어져 왔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지금까지 대학생들에게 대출해 준 융자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약 130억 호주 달러(우리 돈 약 10조원)를 넘어선 지경이다. 정부 재정의 상당한 금액이 대학 융자금으로 지원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으로는 충분한 재정이 할당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결과 정부는 대학이 자체적으로 재정 확보를 강구할 것을 촉구하고자 학비 자비 부담 학생에게 특혜를 주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정부로서는 지금까지 융자에 의지해서 대학 진학을 계획하던 학생들 중 다수를 점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비 부담 생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듦과 동시에,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부담도 더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 셈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호주 대학은 ‘성적순’이 아닌 ‘재산 순’이며 돈으로 학위를 살 수 있게 된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입시생들 간에 위화감이 조성되는 것은 물론,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낸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과 동일한 결과를 얻는 데 따른 허탈감도 무시할 수가 없게 되었다.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성적을 낸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과 같은 결과를 얻는 것에 대한 불공평함이 어린 학생들에게 상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80점만 받고도 갈 수 있는 학과를 또 다른 학생은 98점의 높은 성적을 내야 갈 수 있다면 열심히 노력하는 자체가 허망한 노릇이겠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의 재정확보라는 명분으로 학비 자비부담 학생의 수요와 이들에 대한 점수 혜택을 점차 늘여가고 있는 현상이 심화할수록 머지않은 미래에 호주 대학은 교육의 질적 저하를 필연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현실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공부하지 않는 학생,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대거 받아들인 후 대학 교육기간 내에 이들의 실력을 향상시키지 못한다면 결국 준비되지 못한 인력이 사회로 나오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