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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11월 12일, 수능일이다. 수능일은 대입을 앞둔 수험생은 물론 그의 가족과 일가친척, 학교와 교직원 그리고 지역사회까지… 온 나라가 연중 가장 신경이 날카로운, 범사롭지 아니한 하루임이 분명하다. 이때만 되면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수년, 아니 수십 년을 오직 그 날을 위해 갈고닦았는데 하필 컨디션이 최악인 상태로 시험에 임하는 수험생의 심정은 어떨까하는 것이다. 많지 않은 경우다, 개인의 문제니 어쩔 수가 없다는 식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쁜 일진이 평생의 운명에 검은 그림자를 덧씌운다는 건 참혹하다. 수능 시험을 연 1회로 끝내버릴 것이 아니라 2회 정도, 즉 11월 초에 한 번 보고 다시 2~3주 뒤에 두 번째 시험을 봐서 둘 중 높은 점수를 쓰게 하는 건 어떨까. 출제·비용 문제 등은 거론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수능 100여 일을 앞둔 지난 8월, 한 입시업체가 주관하는 2016학년도 대학 수시전형 입시 설명회가 있었는데 이 자리에 초등생 학부모들이 3분의 1을 넘었단다. 요즘은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참석은 기본이고 미취학 자녀의 학부모들이 먼저 설명회장에 도착해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진지하게 경청하는 경우가 일반화 되었다고 한다. 입시업체 관계자들이 “별로 대수롭지 않는 현상”이라고 답변할 정도다. 7~8년에서 길게는 10년 후의 입시 경향을 미리 알아서 그에 맞춰 자녀 학습 계획을 세우고 차근히 실천해야 그나마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게 이유다. 그야말로 ‘원하는 일류 대학으로 향하는 개인 맞춤형 공부’다. 가수 김용복의 노래처럼,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 눈사람처럼 커지고 싶던 그 마음 내 마음’이어야 할 어린 아이들이 벌써부터 내신과 수능이라는 커다란 족쇄 하나씩을 발목에 채우고 살아야 한다니 너무도 안타깝다. 중국 송(宋) 나라에 어리석은 농부가 있었다. 모내기를 한 이후 벼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 궁금해서 논에 가보니 다른 사람의 벼보다 덜 자란 것 같았다. 농부는 궁리 끝에 벼의 순을 잡아 빼보니 약간 더 자란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식구들에게 하루 종일 벼의 순을 빼느라 힘이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하자 식구들이 기겁했다. 이튿날 아들이 논에 가보니 벼가 하얗게 말라 죽어버린 것이다. 농부는 벼의 순을 뽑으면 더 빨리 자랄 것이라고 생각해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했다. 과욕이요 어리석음이다. 맹자 ‘공손추 편’에 나오는 알묘조장에 관한 얘기다. ‘揠苗助長’. ‘빨리 크게 하려고 곡식의 고갱이를 뽑아 올린다'는 말로 “성공을 서두르다가 도리어 일을 망친다”는 뜻이다. 공자도 “서둘러 가려다 오히려 이르지 못한다[欲速則不達]”고 했고 우리 속담에도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세상사 말처럼 쉽지 않은 게 문제다.
누군가 내 말을 안 듣고 버틸 때 “너 나한테 개기냐?”고 말한다. 물론 좋은 감정으로 말하는 것도 아니고 점잖은 말도 아니다. 사실 ‘개기다’라는 말은 표준어가 아니었는데 지난해에 표준어가 됐다. 다만, 원래의 표준어인 ‘개개다’와는 뜻이나 어감 차이가 있는 별도의 표준어로 등재됐다. (1)개개다: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를 끼치다 ¶ 비빌 언덕이 따로 있지 능력도 없는 나에게 개갤 거야? (2)개기다: (속되게)명령이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버티거나 반항하다 ¶ 일도 하기 싫은데 그냥 개기지 뭐. ‘개기다’를 써야 할 상황이 있긴 하지만 속된 말이므로 되도록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 또 누군가 자꾸 귀찮게 할 때 “왜 자꾸 추근거리니?”라고 말한다. ‘추근거리다’도 원래는 표준어가 아니고 ‘치근거리다’가 표준어였다. 이제는 ‘추근거리다’도 표준어로 인정됐다. (3)치근거리다: 성가실 정도로 은근히 자꾸 귀찮게 굴다. ‘지근거리다’보다 거센 느낌을 준다 ≒치근대다 ¶ 열심히 공부하는데 치근거리지 말고 네 공부나 해. (4)추근거리다: 조금 성가실 정도로 은근히 자꾸 귀찮게 굴다 ≒추근대다 ¶ 오늘은 바쁘니까 추근거리지 말고 너 혼자 가. 치근거리거나 추근거리면서 귀찮게 하는 것 말고 괜한 사람을 ‘꼬시는’ 경우도 있다. ‘꼬시다’는 원래 표준어가 아니었으나 이것도 지난해 표준어가 됐다. 물론 ‘꾀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니 점잖은 말은 아니다. (5)꼬시다: ‘꾀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 (6)꾀다: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속이거나 부추겨서 자기 생각대로 끌다 ≒꼬이다 ¶ 그녀는 돈 많은 홀아비를 꾀어 결혼했다. 꼬시거나 꾀는 행위는 ‘꾐’이다. ‘꾀임’은 틀린 표기다. ‘꼬시다’, ‘꾀다’와 비슷한 말이 ‘꼬드기다’이다. (7)꾐: 어떠한 일을 할 기분이 생기도록 남을 꾀어 속이거나 부추기는 일 ¶ 친구의 꾐에 빠져서 허송세월을 보낸 적이 있다. (8)꼬드기다: 어떠한 일을 하도록 남의 마음을 꾀어 부추기다 ¶ 친구를 꼬드겨 게임을 했다. 주변에는 나쁜 일을 하도록 꼬시거나 꼬드기는 사람도 있지만, 일을 하지 못하게 훼방을 놓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훼방 놓는 것을 ‘딴지 건다’고 한다. ‘딴지’도 원래 표준어가 아니었다. ‘딴죽’만 표준어였는데 ‘딴지’도 이제는 표준어다. ‘딴지’와 ‘딴죽’은 약간의 의미 차이가 있다. (9)딴지: (주로 ‘걸다’, ‘놓다’와 함께 쓰여)일이 순순히 진행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거나 어기대는 것 ¶ 그 사람이 왜 자꾸 내 일에 딴지를 거는지 모르겠다. (10)딴죽: 이미 동의하거나 약속한 일에 대하여 딴전을 부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약속해 놓고 이제 와서 딴죽을 치면 어떻게 하니? (11)어기대다: 순순히 따르지 않고 못마땅한 말이나 행동으로 뻗대다 (12)딴전: 어떤 일을 하는 데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나 행동 ≒딴청 주변에서 누가 말도 안 듣고 개기거나 귀찮게 추근거리고 나아가 나쁜 일을 하도록 꼬시고 사사건건 딴지를 걸더라도 옳은 일은 해내고야 말겠다는 배짱이 필요하다.
제겐 인생을 바꾼 두 번의 만남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고교 후배로 만나 12년간 공을 들여 완성한 제 인생 최고의 걸작, 우리 와이프를 만난 것이고 또 하나는 바로 교사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거꾸로 교실을 만난 것입니다. 올 한해는 제 인생에서 가장 짜릿하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행복한 이야기를 많은 분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입니다. 3년 전, ‘남자는 태어날 때, 사랑하는 아이가 태어날 때, 그리고 죽을 때 딱 3번만 병원에 간다’고 이야기 하시던 아버지께서 소화가 잘 안되신다며 병원에 가보자고 하시더군요. 속으로 ‘우리아빠 많이 약해지셨네’하며 병원에서 이것저것 진찰을 받고 있는데 의사가 저를 호출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굳어진 표정, 떨리는 목소리를 아버지는 바로 알아차리셨습니다. 그리고 의사에게 솔직한 답변을 요구하셨습니다. ‘매우 위험한 단계’라는 말에 화를 내고 나와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침묵하던 아버지가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아들아, 아빠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다. 내 삶에 자부심도 있고…. 그런데 오늘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내 삶이 너무 후회스럽다. 넌 꼭 너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살아라.” 무슨 말인지 생각할 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여름이 됐고 우연히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를 보게 됐습니다. ‘내 생애 가장 무서운 노래’가 주제였는데 그때 이적이 부른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들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내 삶을 바보처럼 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거꾸로 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꼭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거꾸로 교실은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학생의 교실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 중심이고 변화의 작은 촛불 하나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저의 작은 이야기가 여러분의 촛불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자네가 맡아줘야겠네….” 학기말이 되면 언제나 교장선생님은 나를 부르신다. 나는 소위 말하는 폭탄제거반이다. 키 187에 초등학교 교실엔 어울리지 않는 건장한 덩치, 누가 봐도 강인한 인상의 외모 탓에 학교에서 말썽 부리는 아이들은 항상 우리 반이었다. 하지만 올해만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 새로 올라오는 5학년…. 그 녀석들은 끝을 알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 지금까지 봐온 4학년은 지난 1년 내내 단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적이 없었다. 집중이라는 것은 모를뿐더러 수업시간 10분이 지나면 온 몸을 흔들어 대고 20분이 지나면 교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이 다반사였다. 선생님은 하루 종일 소리 지르고 아이들 잡으러 다니느라 진땀을 빼는 그런 반이었다. 속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도대체 어떻게 학급을 운영하기에 저렇게 난장판이 될까라고 생각하겠지만 4학년의 사정을 아는 우리들은 담임선생님이 딱해 보였다. 학교 폭력 가해 학생으로 강제 전학 온 아이와 극도의 산만함과 자폐증상을 보이는 아이, 모둠활동 자체를 버섯 먹기보다 더 싫어하는 아이, 그리고 다문화 가정의 아이까지…. 누구하나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려볼까 100번을 고민했지만 교장선생님도 그 말을 하시기까지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었을까를 생각하니 도저히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 한번 부딪쳐 보자 나에겐 거꾸로 교실이 있으니까’ 다짐했다. 거꾸로 교실을 시작한 것도 올해로 3년이다.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꿔 버린 거꾸로 교실과의 만남은 처음 도착한 아프리카의 낯선 여행지에서 인생의 목표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전의 나는 학교에서 맡은 일 잘하고 관리자, 선후배 선생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학생들에게는 그냥 무서운 그런 교사였다. 그렇게 반복되는 생활에 적응하고 교사로서의 보람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 쯤 무엇인가 학생들을 위한 새로운 수업을 해보고 싶었다. 배움의 공동체, 아이 눈으로 수업보기, 주제중심 통합수업 등 다양한 수업방법을 책과 연수를 통해 만났지만 가슴속에 울림을 주지는 않았다. 기존의 방법이 아닌 나만의 새로운 방법을 만들고 싶었다. 여기저기 워크숍도 다니고 연구회도 찾아다니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책이 바로 살만 칸의 ‘나는 공짜로 공부한다’이다. 살만 칸은 칸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초등 1학년부터 대학생까지 활용할 수 있는 지식지도를 만들고 전 세계 누구나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 동영상을 무료로 배포하는 교육자이다. ‘아, 바로 이거다!’ 강의 동영상을 제공한다는 것은 방과 후에 돌봐줄 사람이 없는 우리 아이들에겐 정말 큰 의미가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아이들, 엄마 또는 아빠가 안 계신 아이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시집 온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경제적 이유, 시골의 교통 여건상 사교육의 혜택을 받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은 과제를 다 못해 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수학이나 사회 과제를 내주면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는 물론이고 수업 시간에 열심히 참여하는 성실한 아이조차도 과제를 못해오곤 했다. 안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인데 숙제 안 해 왔다고 선생님께 혼날 때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동영상을 만들어 재밌게 볼 수 있게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새로운 수업에 대한 고민만 거듭하던 중 서재에 얌전하게 꽂혀있는 ‘관점을 디자인하라’ 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말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어울려 사는 것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린 왜 수업 시간 학생들의 이런 욕구를 차단하고 조용히 선생님의 강의만 듣게 만드는 것인가? 과연 학생들의 본성을 억누르는 강의가 얼마나 좋은 영향을 줄까? 교실 수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교실 수업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싶었다. 그리고 결심 했다. 학생이 행복한, 사람이 중심인 수업을 해보자. 그것이 바로 거꾸로 교실이다. 기존의 강의식 수업에서 교사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던 지식이나 개념을 간단히 동영상으로 만들어 미리 보고 온 후 실제 수업에서는 협업을 중심으로 학생 스스로 의사소통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가는 수업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3월, 우리 아이들을 만났다. 우선 딱딱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진진가 게임을 했다. 그동안 무섭게 보이고 싶었던 나의 이미지, 그래서 어렵게만 느껴졌던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를 깨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5가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칠판에 적어 놓고 그 중 사실이 아닌 내용을 질문을 통해 찾아보게 하는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선생님은 무서운 사람이다’라는 말을 적어놓고 아이들이 진진가 게임을 못 맞추게 했다. “얘들아, 선생님은 무서운 사람이 아니란다. 선생님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야. 그리고 너희들도 그렇다는 걸 알고 있어. 그래서 선생님은 너희들과 함께 따뜻한 교실을 만들고 싶어. 너희가 중심이 되고 너희가 즐거운 수업을 해보려고 해. 그 수업의 이름을 거꾸로 교실이라고 한단다.” 아이들과 거꾸로 교실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고 싫어하는 과목이 무엇인지 조사 해 봤다. 역시 예상대로 수학과 사회가 선택됐다. 그렇게 수학과 사회를 거꾸로 교실로 운영하기로 결정하고 며칠 동안 수업을 구상했다. 드디어 첫 수업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한 수업을 시작했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동영상을 전부 보고 와 줬다. 간단히 동영상에서 본 내용을 확인하는 익히기 문제를 해결하고 모둠별로 익힘책을 풀어 보게 했다. “모둠별로 모르는 부분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서 스스로 해결해 보세요”라고 말했지만 아직은 서로 공부하는 것이 어색한지 혼자서만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러다 슬슬 모르는 것이 나오니 친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서로 모르는 것을 친구들과 함께 해결하면서 익힘책을 풀어나갔다. 여기저기서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에 열심히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도와줬다. 예전 수업에서는 강의를 하느라고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지 못했는데 이제는 학생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줄 수 있다. 특히 이전 학년에 배우지 못했던 개념이나 잘 모르고 있던 오개념을 정확히 파악 할 수 있었다. 그 부분을 해결해 주니 모든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됐다. 그렇게 첫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피드백을 받아봤다. “얘들아 오늘 거꾸로 교실을 처음 해 봤는데 어떤 거 같아?” “재미있어요!” “좋았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니?” “동영상을 미리 보고 오니까 수업이 쉬웠어요.” “친구들과 함께 문제를 푸니까 편했어요.” “모르는 것을 친구가 알려주니까 더 쉽게 이해돼요.” 그렇게 몇 주가 지나니 아이들이 거꾸로 교실에 완전히 적응을 했다. 동영상을 통해 자신의 속도에 맞게 익혀 온 배경지식을 가지고 수업시간에 친구들과 서로 도와가며 행복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의 수업이 떠올랐다. 이렇게 수업시간에 행복해하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데 그동안 아이들에게 좌절감만 준 것은 아닌지…. 내 수업에서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특히 수업시간만 되면 10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던 아이들이 2시간 블록타임으로 운영되는 수업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공부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같이’의 ‘가치’를 알아가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기말고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걱정되는 것이 있긴 했다. 동영상을 통해 자기의 속도에 맞게 공부하고 수업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공부를 하긴 했지만 ‘성적이 좋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학생들의 성취도도 만족할 만큼 아주 좋았다. 특히 수업시간에 적응하지 못했던 아이의 성적이 놀랄 만큼 좋아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수업에 전혀 참여하지 않던 아이가 블록타임제로 운영하는 시간에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푹 빠져 배우는데 성적이 안 나올리 없었다. 한편으론 아이들을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가 조금은 부끄러웠다. 기말시험을 마치고 1학기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1학기 동안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니?” “거꾸로 교실이요!” “거꾸로 교실 중에서도 뭐가 제일 좋았어?”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게 좋았어요.” “그럼 2학기 때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2학기 때는 다른 과목도 전부 거꾸로 교실로 하고 싶어요.” “그래 그럼 한번 해보자.” 그렇게 열심히 학기말 성적처리를 하며 1학기를 마무리하고 있는 나에게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군에서 가장 큰 학교에 근무하는 선‧후배들의 전화였다. “선배 잘 지내시죠? 어쩐 일이세요?” “응, 잘 지내지. 저기….” “무슨 일이세요? 말씀해보세요.” “이번에 우리학교에서 한 녀석이 전학을 가는데 너희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어.” “아! 네….” “그런데 그 녀석이 우리학교에서, 아니 우리 지역에서 가장 힘들다는 아이야.” “네? 힘들어요?” “응.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 여기저기서 새로 전학 오는 아이에 대한 우려와 걱정의 문자들, 그리고 위로의 전화들이 걸려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곧 방학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학생이 우리 반에 전학을 왔다. “안녕. 이렇게 만나게 되서 정말 반가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교실에 온 걸 환영해.” “아. 네….” “새로 전학 와서 아마 학교 적응하기 힘들 테지만 선생님이 열심히 도와줄게. 아 그리고 우리 반은 거꾸로 교실을 하고 있거든. 거꾸로 교실이 뭐냐면….” 전학생에게 거꾸로 교실에 대한 설명만을 전하고 그렇게 방학을 맞이했다. 그리고 거꾸로 교실 캠프와 연수 등 1달의 방학이 어느새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됐다. 사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하지…. 에라 모르겠다, 거꾸로 교실이 있으니까’라고 마음먹고 1학기 진행하듯 그렇게 수업을 시작했다. “여러분 동영상 잘 보고 왔죠? 자 이제부터 모둠별로 활동을 시작해주세요.” “선생님 저는 동영상 못 봤는데요.” “아 그래? 어쩌다 못 봤니?” “저는 스마트 폰이 없어요. 집에 컴퓨터도 엄마가 게임한다고 버리셨어요.” “아 그렇구나. 그럼 학교에 와서 편할 때 컴퓨터실에 가서 볼래? 아님 선생님 스마트 폰 빌려줄게 선생님 걸로 볼래?” “선생님꺼 빌려주신다고요? 진짜요?” “아 그럼 공부하는데 당연히 빌려줘야지.” “네 좋아요. 선생님걸로 볼게요.” 그렇게 스마트 폰을 빌려주고 자기 속도에 맞게 동영상을 보면서 노트정리를 해보라고 권해주고 모둠활동을 도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 “선생님 저 동영상 다 봤는데, 저도 모둠 활동 같이 해도 되요?” “그럼 당연하지. 어서 이리와.” 그렇게 새로운 전학생과의 2학기 첫 거꾸로 교실이 진행됐다. 처음엔 쭈뼛쭈뼛 어색해 하던 아이가 친구들의 자세한 설명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 학교 어떤 것 같아?” “좋은 것 같아요.” “다행이다. 뭐가 좋은 것 같아?” “음…. 수업이 재미있어요.” “진짜? 와 고맙다.” 매일 아침 반갑게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아주는 우리 반 친구들, 수업시간이 끝난 줄도 모르고 쉬는 시간까지 친구들과 즐겁게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행복하다. 자기 인생 처음으로 수업과 모둠활동에 열심히 참여했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고 노트정리도 한다고 자랑하듯 말하는 전학 온 친구의 말에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큰 감격을 느꼈다. 오늘도 수업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수업을 구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이 중심인 교실,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거꾸로 교실을 꿈꿔 본다.
한국교총(회장 안양옥)과 서울삼성썬더스(단장 김성종)가 기획한 ‘Special day' 이벤트가 28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교총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한 교사, 학생, 학부모 1000여 명이 초대돼 열띤 응원전을 펼치며 가을밤을 뜨겁게 달궜다.
얼마 전 낯선 신문 하나를 우편으로 받았다. 군산문인협회보 제3호다. 지난 6월에 이어 두 번째 받은 신문이다. 군산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5년 동안 근무하면서 백일장 참가 등 이런저런 일들로 그 지역 문인들과 소통하고 교류했던 터라 되게 반가웠다. 그런데도 군산문인협회보를 ‘낯선 신문’이라 말한 것은 군산문인협회(회장 김철규)가 3개월 단위(2015년 3월 창간)로 발간하는 신문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인단체가 내는 신문이라 낯설다고 말한 것이라 해야 옳다. 그만큼 문인단체가 신문을 내는 것은 희귀한 일이다. 필자의 과문(寡聞)인지 몰라도 한국문인협회나 한국작가회의 등 이 땅의 양대 산맥이라 할 문학단체에서도 신문을 정기적으로 발간한다는 소식은 접해보지 못했다. 그 산하 어느 지부에서도 신문을 내는 건 본 적이 없다. 아, 전북문인협회가 전북문인협회보를 제18호까지 발행한 바 있다. 군산문인협회보 발간은 군산문인협회 회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일어난 변화로 알고 있다. 그곳 회원이 아니라 저간의 사정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런 모습은 모름지기 회장을 맡으려면 그래야 한다는 롤모델로 상기하고 싶을 정도이다. 회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늬만 회장인 사람을 심심찮게 봐와서다. 하긴 월급은커녕 자기 돈 써가며 봉사해야 하는 문인협회장을 맡으려고 곧잘 선거까지 치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 현상을 의아해하면서도 임기 동안 뭔가 업적을 일궈내면 그래서였구나 수긍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를 제법 봐와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필자는 ‘한별고신문’⋅‘전주공고신문’⋅‘녹원신문’(군산여자상업고등학교) 등 학교신문을 제작해온 지도교사로서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너무 잘 안다. 그 일을 서울도 아니고 전북도 아니고 회원 수 60여 명(군산문학 제26호 기준)에 불과한 중소도시 군산의 문인들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응당 축하하고 박수치며 환영할 일이다. 말할 나위 없이 신문 발간이 쉽지 않아서다. 우선 인쇄비 부담이다. 8면짜리 타블로이드 올컬러 신문이면 부수에 따라 차이야 나지만, 1년 4차례면 7~8백만 원에 이른다. 문인단체로선 동인지 인쇄비도 안 되는 지자체 문예진흥기금말고는 재원이 없다. 인쇄비외 이런저런 취재활동 및 신문제작에 따른 경비도 만만치 않다. 회원들이 십시일반 부담하는 회비라고 해봐야 동인지 인쇄비도 충당되지 않는 것이 거의 모든 문학단체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더구나 군산문인협회는 매년 시상금 300만 원의 군산문학상도 시행하고 있다. 동인지 발간이라든가 송년의 밤 행사 등 돈 들어갈 일은 많아도 어찌어찌 문학회가 꾸려지고 있는 형국이라 할까. 군산문인협회 나아가 대한민국 문단의 역사를 새롭게 쓴다는 뿌듯한 자부심이 없으면 못할 일이다. 전북문인협회 산하 14개 지부 어디서도 못한 신문 발행을 군산문인협회가 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한문으로 표기된 제호와 작품 발표가 너무 많은 점이다. 작품 발표의 장(場)인 동인지가 아니라 신문인 만큼 보도성 기사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끝으로 회장이 바뀌어도 군산문인협회보 발행은 계속되길 기대해본다. 지자체와 지역 기업들의 지원도 활발해졌으면 한다. 아자, 군산문인협회보!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다. 하지만 틈만 있으면 정치인들은 이념논쟁에 사생결단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를 좌빨, 친일 이념으로 갈라놓고 지역과 계층으로 갈라놓은 것은 정치인들의 표심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 국민들은 좌빨이 무엇인지, 친일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후손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는 나라, 빚 줄이고 살림살이 늘리는 일, 아들 딸 취직하고 결혼하여 잘 사는 것을 행복의 척도로 알고 이를 위해 실천하는 정치를 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틈만 있으면 좌빨, 친일 이념논쟁 망령이 되살아난다. 특히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좌빨, 친일, 지역갈등 논란이 거세진다. 정치인들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를 쪼개고 나누는 것이다. 연일 확대되는 한국사 교과서 문제도 이념논쟁의 예외는 아니다. 한국사 교과서를 만드는 문제는 역사교육을 잘 하자는 문제지 정당 지지율과 무슨 관계가 있나? 한국사 교과서에 교원은 없고 정치인끼리 이념 지지율 게임만 한다. 우리 사회 좌빨 연좌제는 전두환 대통령 때 폐지했다. 되돌아보면 연좌제는 고려시대 반역자들에게 3족을 멸하는 데서 유래하여 조선시대까지 유지되다가 갑오경장 때 “범인 이외에 연좌시키는 법은 일절 시행하지 말 것”(罪人自己外緣坐之律一切勿施事)”으로 개혁이 되어 역적도 삼족을 멸할 수 없고, 역적과 교분이 있다고 하여 연대책임까지 지는 일은 벌하지 말자고 한 일이었다. 하지만 6.25가 발생하여 남과 북이 번갈아 점령하면서 적에게 내통하는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다시 만든 법이 연좌제였다. 이 법이 1980년 국보위에서 폐지했다. 그러나 정치적 이념논쟁으로 되살아났다. 친일 문제도 정치적인 연좌제다. 그토록 존경하는 독립투사 안중근의 아들 안중생도 일제의 압박과 회유에 굴했으니 친일 연좌제 올가미를 씌워야 하지 않나? 친일 독재의 상징으로 몰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그러나 헌법에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체제를 완성한 대통령이다. 민족 동란인 6.25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대통령이다. 일제 36년 모든 것이 바꿔진 나라, 해방이 되었지만 나라를 세운다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인가? 당시에도 좌우 이념 논쟁으로 사회불안이 극심하고 글을 아는 사람이 부족하여 과거의 행적을 불문에 부치고 사람을 등용했던 것이 오늘날 친일논란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필자도 당시 건국대통령이라면 과거를 불문하여 인재를 등용하는 화평정책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남북통일의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국민을 좌빨과 친일로 가르는 대통령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 안중근은 독립투사,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독재의 상징으로 평가하고 있지 않을까? 세계는 우리처럼 반세기가 넘은 과거를 정치쟁점화는 나라가 많지 않다. 인권의 고향이라고 하는 미국의 경우, 인디언에 대한 피의 살육과 약탈로 미국 독립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에게 5명의 흑인 사생아 논란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건국에 힘쓴 대통령으로 존경한다. 8천만 명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모택동도 중국의 국부로 존경받는다. 과거를 지우개로 지울 수는 없지만 세계 여러 나라는 역사의 아픈 기억들을 치유하며 하나 되는 노력을 게을리 않았다.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경우 나치에 부역한 사람들의 평가도 화합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동의해준 많은 정치인들의 수고에 대한 결과였다. 이러한 노력이 통일 독일을 이루고 세계 부강의 나라로 발돋움하고 있지 않는가? (독일의 경우 뉘른베르크 재판 등 2차 세계 대전 나치 범죄에 대한 재평가가 몇 차례 있었다. 1970년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수용소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나치의 잘못을 사죄했다. 1997-98 연방토론에서는 모든 국방군 장병을 싸잡아서 범죄인으로 처단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모든 국방군 장병들을 범죄인으로 판단하는 것이나 조국 방위라는 미명 하에 국방군의 모든 범죄적 책임을 면하게 하는 것은 잘못이다. 등 논의가 거세었다. 하지만 독일의 범죄적 과거의 해석 도는 극복 문제는 각 당의 당리당략의 도구가 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극명한 독립국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우 과거청산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백인 지배층의 피비린내 나는 인종분리정책으로 얼룩진 남아공은 1994년 흑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집권한 뒤 과거청산에 착수했다. 만델라는 1996년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 과거 정부에서 자행한 인권침해 범죄를 조사했다. 이 위원회는 진상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추구했지만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무게를 두지는 않았다. 대신 화해를 추진했다. 가해자는 죄를 고백하고 사죄하면 사면을 받았다. 피해자는 보복 대신 진실규명과 피해보상에 만족해야 했다. 좋은 정치란 무엇일까? 그것은 이념이 사라질 때다. 나라를 나누고 쪼개는 정치인들의 이념 논쟁,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정치인들의 이념논쟁,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쟁과 닮은꼴 아닌지 묻고 싶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실제 선생님의 사례를 각색해 만들었습니다.
추위를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저녁이 되니 날씨가 제법 싸늘하다. 가을이 도망간 느낌이다. 이럴 때 감기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선생님들이 건강해야 잘 가르칠 수가 있다. 옷을 두텁게 입고 몸관리를 잘 했으면 한다. 독도를 아직도 탐내는 나라가 있다. 갈수록 노골적이다. 어린 학생들에 자기들의 땅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정말 탐욕이 끝이 없다. 양심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일본에서 약 7년간 살다가 온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아직도 일본은 한국 사람들을 보면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면서 무시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양인을 만나면 간을 빼줄 것처럼 친절하게 하고 상냥하게 군다고 한다. 얼마 전 기사를 읽었다. “일본의 영토 주권 침해가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이제는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온 국민이 한 뜻으로 독도 사랑·바로알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지당한 말씀이다. 독도를 국가기념일로 제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땅을 빼앗고자 하는 이웃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있을 수는 없다. 온 국민이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 독도사랑이 곧 나라사랑이다. 힘이 없으면 또 빼앗긴다. 우리의 땅은 우리의 힘으로 끝까지 지켜야 한다. “교총과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독도학회 등 93개 단체는 22일 오전 11시 서울교대 종합문화관에서 ‘2015 독도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교총이 각계 시회단체를 주도해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지정해 2010년 첫 전국단위 기념식을 치른 이래 올해가 6번째 행사다.” 이 소식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자라나는 우리 학생들은 물론 온 국민들에게 독도는 우리 땅임을 철저하게 가르쳐야 하고 독도를 끝까지 지켜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 관계되는 전문가들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잘 홍보해야 한다. 독도의 날에 기념식으로만 그치면 안 된다. 언론이 앞서 독도의 날 기념식을 생중계해 야 하고 온 국민이 함께 하는 독도에 관한 행사가 이어져야 하겠다. 학교에서도 독도 주간을 정해 독도에 관한 행사도 많이 해야 한다. 과학주간이 있듯이 독도주간도 교육부에서 추진해보는 것은 어떨까? TV도, 신문도, 인터넷도 독도의 날을 전후해 대대적인 홍보와 행사를 통해 독도에 대한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도 많이 만들어 보급해야 하고, 가수들도, 작곡가, 작사들도 대한 노래를 많이 만들어 내어 보급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 관심을 골고루 가져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땅을 엿보는 이들이 스스로 포기할 때까지 우리 땅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독도 지키기를 위한 정책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교총에서 정한 독도의 날이 이제 국가적인 차원에서 독도의 날을 정해서 국토 지키기에 앞장 서 주기를 당부한다. 지금 당장 서둘러야 할 문제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나라를 잃고 나면 정치고, 경제고, 사회고...아무것도 소용없다.
우리 주변에는 중·고등학교 시절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였는데도 지금은 어렵게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게 된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국내 유수의 대학을 나왔는데도 자기 가정을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사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외국 유학을 다녀와 토익 점수도 만점에 가까워 스펙이 빵빵하기로 유명한데도 제 갈 길을 가지 못하는 사람도 허다하다. 사회에 나온 뒤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데도 매달 그 돈이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지 모르겠고 현재 수입으로는 저축은 커녕 주택담보 대출금 이자 갚기에도 버겁다는 것이다 . 그런데 학창시절 중하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스펙도 신통치 않았던 한 친구는 겨우 4년제 대학을 나와 회사에 들어갔다. 매달 받는 월급을 쪼개 어려서 배운 습관대로 꼬박꼬박 모으니 제법 목돈이 마련됐다. 그 돈을 다시 주식과 펀드, 부동산 등 각종 투자상품에 투자하여 몇 배로 불어났다. 이처럼 동창회에 나가보면 "쟤는 나보다 공부도 못했는데 왜 저렇게 잘살지?" 싶은 동창이 꼭 있게 마련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유태인은 그들의 자녀에게 어려서부터 소위 생존교육이라는 경제교육을 시킨다. 우리 부모들은 국·영·수만 잘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듯 자녀들에게 학교 공부를 시키느라 열심이다.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도 1등으로 떵떵거리며 잘 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이를 인생의 우등생으로 만드는 비결, 우리 아이를 일찌감치 부자의 싹으로 키우는 비결은 바로 경제 교육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국영수를 가르치는 시간의 5%는 경제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실제 중학교 초등학교에 재학중인 3남매를 두고 있는 어떤 아버지는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체계적인 경제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면서 아이의 성향이나 연령에 따라 방법도 달라야 한다고 전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대학생이 되니 상당한 자본금이 만들어진 것이다. 용돈을 받는다는 것은 아이가 처음으로 수입을 올리는 것과 똑같다. 그 용돈을 올바로 관리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쓰는 습관이 생기다보면 어린이 돼서도 수 백만원, 수 천만원도 쉽게 거덜내게 될 수 있다.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물에 빠진 아이가 수영을 배우지 못하면 익사하기 쉽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쓰는 법을 제대로 배워야 건강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돈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다루는 기술이 필요하다. 아이가 어릴 땐 돈 쓰는 부모의 철학과 가치관이 바로 아이를 통해 나타난다. 아이가 용돈을 관리하는 기술을 제대로 터득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돈의 관념과 경제활동에 대해 지속적이고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가정에서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금융교육은 바로 용돈관리이다. 용돈을 주었는데도 생활태도가 게을러 걸어서 갈 수 있는데도 학교 등교하는데택시비로 지출하는 것은 올바른 생활태도가 결코 아니다. 또 아침밥은 먹지 않고 학교 앞 구멍 가게에서 과자를 사 입에 물고 오는 것이 바람직한 학교생활의 출발이 아니다. 학업 성적이 뛰어난 아이보다 경제 개념이 투철한 아이로 키우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있는 유산이 될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SNS 등이 범람하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조금 긴 글은 읽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신문·책 등 활자 매체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11년 추적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신문 읽기가 수능 성적은 물론 ‘좋은 직장’ 취업률도 높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거나 부모의 학력이 낮은 학생이라도 신문만 잘 읽으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결과"라고 직능원은 밝혔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실증적인 자료이다. 4000명 조사 대상 가운데 한 명인 회사원은 충남 한 고교와 H대를 졸업한 뒤 현재 천안에 있는 금융회사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현재 약 43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고 한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매일 5~10분씩 신문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온 친구들에 비해 취업이 잘된 건 분명하다면서도 "부모님의 후광이나 사교육 덕분은 아니었다고 자신감을 표혔했다. 이 부모의 월평균 소득은 200만원 미만이었고 그가 받은 사교육은 고교 시절 월 15만원에 다닌 단과 학원이 전부였다. 그는 중학교 시절 집에서 신문을 구독하면서 자연스레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고교 때는 학교 선생님들의 신문을 챙기는 당번을 하면서 틈틈이 신문을 펼쳐봤다고 한다. 강씨는 "지금은 매일 출근 직후 회사에서 구독하는 신문을 본다"고 말했다. 예컨대 부모의 소득이 월 200만원 미만이지만 신문을 구독한 학생은 가구 소득이 월 200만~400만원이라도 신문을 읽지 않은 학생보다 수능 과목별 평균 점수가 3~4점씩 높았다. 취업 시장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200만원 미만 소득에 신문 구독 가구 학생의 '좋은 직장' 취업률은 31.3%로, 200만~400만원 소득에 신문 비구독 가구 학생들(27.1%)보다 높고, 400만원 이상 소득인 비구독 가구 학생(31.4%)과 엇비슷했다. 특히 신문을 구독한 학생들의 현재 월평균 임금은 신문을 구독하지 않은 학생보다 10만원 더 많았다. 한 선임연구위원은 "부모의 소득 수준뿐 아니라 학력 수준을 따져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면서 "이 같은 사실은 신문 읽기가 자녀 교육의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또한, 똑같은 양의 책을 읽었더라도 신문을 구독한 학생의 경우 모든 과목에서 상대적으로 수능 성적이 높았다. 이는 신문 구독이 독서와 무관하게 성적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독서를 전혀 하지 않더라도 신문을 구독한 학생은 신문을 보지 않고 평균 수준의 독서를 하는 학생과 비슷한 성적 향상을 보였다고 했다. 특히 수리와 외국어 영역에서 이런 경향은 더 두드려졌다. 책은 보지 않고 신문만 구독한 학생들의 외국어 영역 평균 점수(91.29점)는 문학책 10권을 읽었지만 신문을 구독하지 않은 학생들(87.96점)보다 오히려 높았다. 교양서적 6~10권을 읽었지만 신문을 구독하지 않은 학생(91.49점)과는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고교 시절의 독서도 신문과 마찬가지로 수능과 취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특히 문학서적보다 교양서적의 효과가 더 컸다. 고교 재학 시절 교양서적을 11권 이상 읽은 학생의 경우 '좋은 직장' 취업률은 44%로 한 권도 읽지 않은 경우(24%)보다 20%포인트 더 높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직능원)은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신문 읽기와 독서 습관이 향후 학업·취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2004년 고등학교 3학년(1986년생) 학생 4000명을 전국에서 무작위로 표집했다. 직능원은 이 학생들이 당시 고교 입학 후 3학년 여름방학 기간까지 문학·교양 서적을 몇 권 읽었는지, 집에서 신문을 정기 구독하는지 여부 등을 기록했다. 또 유전적·환경적 요인의 영향도 알아보기 위해 부모의 소득 수준, 학력 수준과 독서량도 함께 조사했다.이후 직능원은 학생들의 수능 성적, 대학 진학, 졸업 후 취업 현황, 월평균 임금 등삶의 주요 지표들을 11년 동안 매년 추적 조사했다. 수능 성적과 진학 대학은 정보 공개 동의하에 교육부·교육과정평가원의 공식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4000명 가운데 대학 비진학자 등을 빼고 수능 성적이 확인된 경우는 약 2200명이었다. 2014년 현재 다니는 직장은 직능원 측이 직접 개별 연락을 취해 설문 조사했다. 총 1700여명이 설문에 응했다.
“어이쿠! 아야.” “조금 있다가 흔들라니까.” “다른 사람이 따기 전에 서둘러야지.” 벌써 망에 가득 채워졌는데도 욕심이 앞서 검붉게 벌어진 밤송이를 보게 되면 욕심이 앞서 계속하여 밤나무를 흔들게 된다. 오랜 만에 토실토실한 알밤 수확의 즐거움으로 흡족한 미소를 만면에 띠우며 높은 곳으로 오르고 있었다. 아래쪽 보다는 위쪽으로 갈수록 씨알이 굵고 실했다. 아내와 나는 아침 일찍 등산화와 긴팔 옷 그리고 장갑 등으로 단단히 준비를 하고 밤따기 체험을 하기 위해 공주로 출발했다. 어릴 때 해마다 밤따기를 하던 추억이 늘 이맘때만 되면 아련히 그리워지기 때문에 몇 년을 벼루다가 이번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체험장 주위에는 전국에서 밤따기 체험을 위해 몰려든 관광버스의 수에 놀랐고, 가족단위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달라진 농촌체험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아내와 나는 서둘러 체험장 입구에 가서 밤을 주워 담을 망을 구입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이 많은 사람이 밤을 주워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주워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했다. 입구에는 유치원에서 단체로 온 꼬맹이들도 많았다. 밤을 따기도 하고 떨어진 밤송이를 벌려 알밤을 줍는 아이들의 환희에 찬 들뜬 목소리가 산골짜기에 넘쳐났다. 요즈음 알밤 따기 이벤트 행사가 전국적으로 많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밤 생산의 50%는 충남에서 나고, 그 중에서도 공주에서 80%는 생산이 된다고 한다. 전국에 널리 알려진 밤의 고장 공주, 특히 공주시의 특산품으로 유명한 정안 밤은 공주시 정안면 농가에서 생산하는 지역 특산품이다. 정안면의 1100여 농가 중 60% 정도가 밤나무 재배 농가일 만큼 정안면은 공주밤의 주산지이며 연간 160억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특산품의 고장이다. 정안 밤이 이렇게 유명해진 까닭은 차령산맥 주변에 위치하여 밤나무의 생육에 적합한 기후와 토질이 형성되어 당도가 높고 고소한 정안밤 특유의 맛이 있으며 저장력이 타지역 밤보다 우수해 오래두고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하여 전국에서 대형버스를 이용하여 체험하기 위해 오는 곳이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까지 살았던 고향은 골짜기 마다 매화꽃이 만발하고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피는 매화골 면소재지에 살았다. 면 소재지 동네이기에 동네가 꽤나 컸다. 그리고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은 서로가 입소문으로 동네 모든 사람들이 알고 기쁠 때나 슬플 때 서로가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인정 많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황악산과 민주지산 및 삼도봉이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동네 앞 냇가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늘려 있어서 미역 감고 고기잡이 하는 데에는 안성맞춤이었고, 아름다운 꽃들이 사계절 만발하는 골짜기마다 과일나무로 철철이 향기가 넘쳐나는 전형적인 산동네이었다. 집에서 4Km 정도 떨어진 골안 비실 기슭에 우리 감나무와 밤나무 단지가 있었다. 감이나 밤을 따러 갈 때는 온 식구가 함께 갔다. 우리 집에서 너무나 멀기 때문에 감이나 밤을 따러 갈 때에는 원적 가는 것처럼 맛있는 반찬을 준비하여 밥을 싸가지고 갔다. 우리들은 아버지가 밤을 털 때 주로 알밤을 줍고, 벌어진 알밤은 양쪽 발로 밟아 벌려서 꺼낸다. 그러나 밤송이는 일일이 그곳에서 다 꺼낼 수가 없기 때문에 밤을 털고 난 다음 어머니와 아버지가 한 곳에 모아서 가마니에다가 밤송이를 가득 발로 밟아 가며 담는다. 빼곡히 채워진 밤송이는 밤나무 가지로 입구를 틀어막고 단단히 묶어서 소의 등에 양쪽으로 두 가마씩 네 가마니를 얹는다. 소를 앞세운 아버지는 지개에 밤송이 한 가마니를 등에 지고 우리는 알밤 주은 것을 통에 넣어 산길을 따라 집으로 오는 것이다. 오는 길이 멀기도 하였지만 너무 무겁기 때문에 항상 쉬는 곳이 두어군데 있다. 그곳 쉬는 곳에는 보리수나무가 있어서 우리는 보리똥 열매를 맛있게 따먹고 바알갛게 익은 보리수 가지를 꺾어서 집으로 가지고 오기도 하였다. 골짜기를 따라 올라오는 가을바람에 아름답게 휘날리던 억세 풀과 누렇게 익은 벼 사이로 요상하게 생긴 허수아비가 흔들리는 모습사이로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훠이~훠이~” 양재기를 두드리며 온 산에 참새 쫓는 메아리 소리에 참새들은 신바람이 난 듯 더욱 힘차게 날아다니던 정경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 온다. 따가지고 온 밤송이는 우리 집 뒤 안 감나무 아래 그늘진 곳에 가마니를 덮어 오래도록 두었다가 밤송이가 검붉게 변하였을 때 빨래방망이 같은 것으로 두들기면 쉽게 밤을 꺼낼 수 있었다. 밤을 보관하기 위해 소금물에 담가 두었다가 독에 넣어두기도 하고, 땅을 파서 모래가마니에 넣어 밤을 보관하였다. 아이들 가을 소풍 때나 운동회 때 어느 가정이든지 찐 계란과 찐 밤은 단연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지금은 축제에서 밤 막걸리, 구운 밤, 밤 국수 등 푸짐한 밤 요리를 맛볼 수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먹을거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나 똑 같이 준비하는 찐 밤 이었지만,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지금은 그 때의 맛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지난번에 벌초하러 가면서 우리 밤나무단지와 감 밭을 살펴보니 밤나무는 고목이 되었고, 감나무도 시커멓게 변하여 몇 개만 달랑 붙어서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이 밤나무와 감나무단지에서 든든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의 젊음을 볼 수 있었던 곳인데 세월은 어쩔 수 없나보다. 밭둑에 썰렁함이 묻어나는 고목이 된 감나무에 덩그렇게 달려있는 월하와 둥시는 언제 짬을 내어 딸 수 있단 말인가? 공연히 어릴 때 부모님이 따다주시던 밤과 감을 생각하니 부모님이 그립기만 하다. 그래도 자식들을 위해 그 먼 곳까지 멀다하지 않고 함께 밤 따기를 하던 그 아름다운 추억이 묻어나는 소중함을 안겨 주었는데, 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였는지…. 과욕을 부려 많이 땄던 토실토실한 알밤은 가족끼리 함께 온 꼬맹이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며 내려오는 길을 뒤돌아보니 억새풀 사이로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여보!, 이번 추석에는 아이들과 함께 성묘하러 갑시다.”
충남교육청(교육감 김지철)은 10월 24일(토) 천안두정고등학교에서 도내 중ㆍ고등학생 200명이 참여한 가운데 제4회 중ㆍ고등학생 역사골든벨대회를 개최했다. 올바른 역사관 확립과 나라사랑 정신 함양을 주제로 개최된 이번 대회는 학교대회와 시·군대회를 거쳐 선발된 도내 중ㆍ고등학생 200명이 학교와 시·군을 대표해 평소 자신의 역사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대회 결과 서령고등학교 2학년 한승우군이 금상 정재훈 군이 은상을 받았다. 역사골든벨대회는 우리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묻는 문제뿐만 아니라 각종 계기 교육자료와 지정도서를 선정해 출제했다. 특히 ‘독도의 역사이야기’와 ‘일본군 위안부’ 바로알기, ‘역사저널 그날’ 등을필독도서로 지정하여 교과서 이외에서도 문제를 출제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우리역사의 기본 지식 외에 별도의 준비 없이도 지정도서를 읽고 문제를 풀 수 있었으며, 우리 역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출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이 대회를 통해 학생들의 우리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과 영토침탈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충남교육청은교육과정과 연계한 역사교육, 계기교육 강화를 통해 우리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 제고와 주변국의 역사 왜곡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12년부터 역사골든벨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당정협의회를 갖고 학제개편을 제안했다. 학제개편을 통해 현재 만6세인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5세로 낮추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행 6-3-3-4제를 5-3-3-4제로 개편하는 것이 골격이다. 당정은 이같은 학제 개편을 통하여 저출산 고령화 대책과 함께 입직 연령를 낮춰 청년실업을 줄이겠다는 목적이다. 이는 수년 내에 도래될 대입 정원과 고졸 학생수의 역전 현상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일반 여론과 교육계의 반응은 신중론이 우세하다. 교육계에서는 교육적 관점보다 경제적 관점이나 정치적 관점에 치우친 학제 개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학제 개편은 순수하게 교육적 논리로 접근해야 한는 원칙론이다. 실제로 교육부는 ‘전혀 논의한바 없다’며 한 발짝 물러섰고 교육학계에서도 ‘성급하게 추진할 일을 아니다'는 반응이다. 아직은 일반 여론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학계에서는 5세 아동의 초등학교 입학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학제개편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길 경우 막대한 행·재정적 부담과 혼란을 감수해야 한다. 언젠가는 개편해야 할 사안이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아울러, 5세 아동의 초등학교 입학에 대해서 발육 상태가 좋아 신체적 정신적 발달이 과거보다 빨리진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변화가 취학을 가능하게 할 만큼 타당하게 변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반론도 많다. 현재 우리나라 아동들이 지적(정신적), 신체적(육체적) 발육과 성숙이 불균형적 형태를 보인다고 걱정하는 학자들도 다수다. 세계화 시대인 현재 OECD 국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만6세로 취학 연령을 설정하고 있다. 단, 예외적인 경우에만 5세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한편 21세기 세계화 시댈르 맞아 국가 간 인적교류가 빈번해진 오늘날, 초・중등학교의 학제, 교육과정, 수업연한, 취학연령, 학기제 등의 기본적인 학제는 국제적 표준(global standard)에 부합하도록 구안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현재 사회진출 연령을 낮춘다는 이유로 초・중등학교의 수업연한을 단축하려는 학제 개편방안은 재고돼야 한다. 학제개편을 너무 가볍게 보고 근시안적으로 접근하려는 당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게 사실이다. 만약 이번에 정부가 제안한 안대로 학제 개편이 단행되면 여러 가지가 변하게 된다. 학교 교육과정과 시스템, 패러다임 등이 획기적으로 변하게 된다. 우선 시행 첫해 초등학교 입학생은 5년제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되고 이들이 5년의 초등교육과정을 마친 시점에서는 기존 6년제 초등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과 함께 졸업하게 된다. 한 해에 두 학년이 일시에 졸업하는 것이다. 초등학교를 5년 이수, 6년 이수 학생이 동시에 졸업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3년간 중학교 생활을 같이 하게 되지만 각기 다른 교육과정을 이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한꺼번에 낮출 경우, 시행 첫 해에는 만6세와 만5세가 하나의 학년이 되므로 이들은 대학입학과 취업에서 지속적으로 다른 연령대의 학생들보다 불이익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첫 졸업생들은 학제 개편을 통하여 저출산 고령화 대책과 함께 입직 연령을 낮춰 청년실업을 줄인다는 정부 방침에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공산이 크다. 오히려 청년 실업이 가중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경쟁률이 우선 자연적으로 2:1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학입학 예정자의 폭발적 증가로 재수생이 양산되고 취업하지 못한 대졸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물론 만5세 입학 등 학제 개편에 대해서 많은 학자, 교육전문가들이 백가쟁명식으로 다양한 해결책을 제하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다. 학자들과 교육전문가들은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입학자를 매년 4분의 1씩 늘리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경우 오랜 시간이 소요돼 입학연령 단축의 당초 취지를 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또 경제적으로 중상류층 5세 아동은 그렇지 못한 5세 아동에 비해 발달정도가 빠를 수 있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에 입학 했을 경우 하류층 아동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역기능도 우려되고 있다. 특히 취학연령을 낮추고 초등학교 학제를 5년제로 개편하면 교원수급에도 비상이 걸린다. 현행 교원배치기준을 감안할 때 첫 번째 졸업생이 배출된 이후에는 기존 교원에 비해 6분의 1정도가 과원교사가 된다. 도입 첫해에 많은 교사가 필요하지만, 5년 뒤에는 이들이 과원 교사가 돼 큰 난관에 봉착한다는 논리다. 남아도는 교원들을 해고할 수도 없고 또 신규 교사 임용 인원 수도 적체돼 교원정책은 큰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예비 교사 양성 대학교인 교육대학교에도 영향이 미쳐서 운영에 비상이 걸릴 전망이다. 학제 개편과 만5세 입학이 우리 교육 정책과 교육행정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우려가 없지 않은 것이다. 물론 교육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시적 혼란을 장밋빛으로 보고 있다. 학제 개편 등 큰 교육 개혁에는 약간의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혼란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학제 개편에 앞서 학급당 학생 수를 단계적으로 줄여, 교원 과원 사태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막대한 재정투입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편, 초등학교 수업연한이 5년으로 단축되고 만5세 입학이 되면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초등 유휴교실 발생이다. 반면 중학교는 대규모 학급증설과 학교 신설이 불가피하다. 교육 재정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제 개편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치밀한 기획과 사전 준비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학제 개편과 만5세 입학은 불가피한 시대적 트렌드(trend)이다. 다만 이와 같은 학제 개편과 만세 입학이 연착륙하려면 교육과정과 교원 및 시설적인 측면에 앞서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제 개편을 위한 교육과정 개편 계획, 중장기 교원 수급계획, 학생 수용 및 시설 배치 계획, 교육 재정 지원 계획 등의 세부 실천계획이 차질 없이 수립, 실행돼야 한다. 현재 정부의 학제 개편에 관한 정책결정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학제 개편과 만5세 입학이 정상적으로 도입되려면 앞으로 10년 뒤쯤인 2020년 중반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학제 개편과 만 5세 입학 지원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과 부대 지원 계획 수립과 실행 등이 치밀하게 수립돼 실행되는 것이 우선돼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중요한 교육 정책이 임기응변식, 조변석개식으로 수립, 추진돼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반증인 것이다.
제64회 수원포럼 참가기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이다. 부족함은 아는 사람은 겸손하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일 줄 안다. 상대방의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한다. 자신의 부족함은 알고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은 두뇌를 꾸준히 써야 한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치매에 걸릴 일이 없다. 지난 주 수원시청이 주관하는 제64회 수원포럼에 참가하였다. 강사와 주제가 솔깃하였기 때문이다. 대중음악평론가이자 팝 칼럼니스트인 임진모 강사의 ‘대중음악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다. 대중음악은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온다. 대중음악 가수에 대하여 궁금증이 많다. 임진모 강사는 누구보다 그들의 세계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발걸음은 시청 별관으로 향한 것이다. 강사의 평범한 첫마디가 인상적이다. 택시를 탔을 때 기사에게 “음악 꺼 주세요!”라는 말은 제발 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음악은 우리의 삶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거부하는 사람은 삶을 포기한 사람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클래식이든 가요이든 국악이든 팝이든 어떤 음악이든지 수용할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꼭해야 할 일 두 가지를 든다. 바로 책 읽기와 음악 듣기. 독서는 시각적 활동을 통해 머리를 살찌우는 일이다. 음악 듣기는 귀를 통하여 가슴을 살찌우는 일이다. 예술을 통하여 감성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 그는 영화를 보는 것보다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준비한 PPT를 보니 싸이, 마돈나, 조용필, 아이유 등이다. 가수에 대해 세세히 알고 있으니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우리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내용도 그는 알고 있다. 자연히 그의 강의 속으로 빠져든다. 그가 말하는 가수는 하나의 예다. 그 가수의 활동을 통해 무엇을 배우는 가가 오늘 강연의 주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싸이와 마돈나 이야기. 세계적인 스타 마돈나가 자신의 단독 공연에 한국의 싸이를 초청한 것. 마돈나는 1958년생이니 50대 후반이다. 싸이는 1977년생이니 20년 차이가 난다. 그러나 그 수준으로 볼 때 두 사람의 차이는 감히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멋지게 무대위에 선다. 마돈나는 왜 싸이를 특별초대 가수로 맞이했을까? 바로 마음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스타는 그 당시 ‘강남 스타일’과 말춤으로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싸이를 자신의 공연무대에 끌어들인 것이다. 그 무대에 서기 전에 마돈나가 싸이에게 한 말이 인상적이다. “무대에서 내 몸 어디를 만져도 좋아!” 유튜브에 떠 있는 그 공연을 반복하여 보았다. 정열적인 공연에 싸이와 마돈나의 동작이 척척 맞는다. 마돈나의 행동 중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 싸이의 말춤 가랑이 사이로 마돈나가 기어들어간다. 왜? 그 자리를 찾아온 관객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기 위해서다. 이게 바로 프로라는 것 아닐까? 다음은 조용필의 경우다. 그는 1968년에 데뷔했다. 첫 히트곡은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다. 무명시절을 무려 7년이나 보낸 것.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 7년의 세월을 기다려 줄까? 그것을 참고 기다렸기에 ‘위대한 탄생’이 나오고 부단한 노력 끝에 조용필은 ‘가왕’이 된 것 아닐까? 조용필에게도 실패는 있었다. 2003년 제18집 ‘Over The Rainbow'가 바로 그것. 강연에 따르면 뽕기(뽕짝)로 타켓을 기성 세대로 하였는데 철저히 실패작으로 끝났다는 것. 10년 뒤 나온 제19집 ’Hello'. 여기에 그 유명한 ‘바운스’가 들어가 있다. 바운스는 말이 우리 가요이지 세계인의 입맛에도 맞는 것이다. 음악의 흐름이 세계적인 것인데 우리 가사를 붙인 것 같다고 강사는 평한다. 음악에서 젊은이들의 흐름을 외면하면 실패라는 교훈을 받았다. 수원포럼. 참석자 대부분이 시청 공무원들이지만 수원시민들의 참여를 바라고 있다. 강연 주제도 좋고 강사도 괜찮은 사람들이다. 다음 달 26일(목)에는 안도현 시인의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시민들의 평생교육의 장을 마련해 준 수원시청에 감사드린다.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다.
‘가을은 가을은 노란색 은행잎을 보세요~ 가을은 가을은 빨간색 단풍잎을 보세요~ 가을은 가을은 파란색 높은 하늘 보세요~’ 동요 ‘가을’의 가사처럼 알록달록 물든 단풍과 유난히 파란 하늘이 멋진 풍경을 만들었다. 요즘이 자연을 만끽하며 가을 정취를 즐기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여행만큼 때가 중요한 것도 없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가을도 금방 지나간다. 10월 20일, 청주행복산악회원들이 산림휴양도시 봉화의 청량산으로 단풍산행을 다녀왔다. 자연이 빼어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곳에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진다. 청량산(높이 870m)은 명승 제23호로 지정된 도립공원으로 청정도량 청량사를 장인봉을 비롯한 12봉우리가 둘러싸고, 원효대사·최치원·공민왕·김생 등 역사적인 인물들의 유적지가 많다. 특히 가을철 산 전체를 붉게 물들인 단풍이 최고의 볼거리다. 아침 7시 용암동 집 옆에서 출발한 관광버스가 중간에 몇 번 정차하며 회원들을 태우고 봉화로 향한다. 충남 보령에서 경북 울진까지 내륙을 관통하는 고속도로가 생기면 청주의 동쪽에 위치한 봉화가 가까운 이웃인데 중부고속도, 평택제천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거치느라 고생을 한다. 천등산휴게소에 들르며 부지런히 달리는 차안에서 행복을 스스로 만드는 산행을 하자는 달콤 회장님의 인사, 석진 산대장님의 산행안내와 다음 산행장소 소개가 이어진다. 중앙고속도로 풍기IC를 빠져나온 관광버스가 5번 국도에 들어서자 길가의 과수원에 붉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영주 시내를 지날 때는 차창 밖으로 고추 자루가 늘어선 장날 풍경이 펼쳐졌다. 영주에서 청량산까지도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 10시 35분경 청량폭포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가뭄 때문에 올해 단풍은 예년만 못하다. 목마른 대지가 얼마나 애간장을 끓이면 나뭇잎까지 바싹 타들어갔을까. 차에서 내려 짐을 꾸리고 장인봉과 선학봉, 산자락을 물들인 단풍을 바라보며 청량사 입구를 지나 입석까지 계곡 옆 데크 길을 걸었다. 일행 중 퇴계 이황의 13대 후손인 분이 퇴계가 청량산의 멋진 경치에 놀라 입 벌리고 왔다가 좋은 경치를 남이 알까봐 입 다물고 갔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길가에 서있는 입석을 구경하고 왼쪽 산길로 접어들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입석에서 청량사로 가는 산길은 비교적 평탄하고 고즈넉해 산행하기 좋다. 초입에서 만나는 토굴의 기왓장에 달나라를 다녀온 세상 무속행위 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라는 글이 써있다. 청량산 산행은 산허리에서 산중턱의 청량사와 청량사를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들을 노송 사이로 바라보는 게 최고의 멋이다. 설선당 가기 전에 청량정사(경북문화재자료 제244호)를 만나는데 안내판에 의하면 퇴계 이황이 청량산에 다녀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고 구한말에는 의병투쟁의 근원지였다. 황토벽에 ‘솟대와 시 그리고 나그네’가 써있는 약차를 그냥 먹는 집이 옆에 있다. 청량사(淸凉寺)는 66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청량산 기슭의 열두 봉우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이만한 풍경을 지닌 사찰이 없을 만큼 경치가 좋다. 큰 사찰이었으나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유리보전(경북유형문화재 제47호)과 응진전만 남았다. 본전 앞에 오래된 소나무가 한 그루 서있고 유리보전(琉璃寶殿) 현판은 공민왕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청량사를 구경하고 청량정사 뒤편으로 가면 경일봉 아래의 절벽 중간에 신라의 명필 김생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김생굴이 있다. 김생암이라 부르는 암자를 짓고 10년간 글씨 공부를 하였다는 곳으로 바로 옆에 있는 김생폭포는 가뭄으로 말라 절벽만 보인다. 김생굴 앞에서 청주의 다른 산악회원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도 나눴다. 김생굴을 지나면서 제법 경사가 급한 산길이 이어져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야한다. 보살봉으로 불리는 자소봉(높이 840m) 정상은 높은 철계단 끝에 있어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탁립봉 방향의 산줄기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명소다. 자소봉에서 내려와 탁필봉 못미처에서 일행들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생긴 모습이 마치 붓끝을 모아 놓은 것과 같다는 탁필봉(높이 820m)을 지나 철계단을 오르면 벼루에 먹을 갈 때 쓸 물을 담아두는 그릇을 닮았다는 연적봉(높이 846m) 정상의 소나무들이 멋지다. 방금 지나온 탁필봉과 자소봉의 봉우리가 키 재기를 하고 있는 모습도 이채롭다. 청량산은 높이에 비해 기암절벽이 많아 험준하다. 능선에서는 조망이 없는데다 하늘다리까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산길이 이어진다. 청량산 산행의 묘미는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하늘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하늘다리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현수교로 깎아지른 봉우리 사이를 다리에 하나에 의지해 건너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산세와 풍경 또한 절경이다. “덜컹덜컹” 다리가 내는 소리에 가슴 졸이며 추억사진을 남기는 사람들의 표정도 다양하다. 하늘다리를 건너 선학봉을 내려선 후 다시 철계단을 올라 의상봉으로 불리는 장인봉(높이 870m)으로 간다. 태산의 꼭대기봉과 이름이 같은 장인봉(丈人峰)이 청량산의 최고봉이다. 뒤편으로도 산길이 연결되지만 선학봉 삼거리까지 왔던 길을 내려간다. 두들마을까지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이 한참동안 이어진다. 가뭄에 땅이 말라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한다. 두들마을은 언덕 위에 있는 청량산의 턱밑마을이라 오두막과 비탈밭에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숭고한 삶이 그대로 담겨있다. 두들마을에서 임도로 청량폭포 입구까지 내려와 청량교까지 길가의 가로수들이 만든 단풍을 만끽하며 걸었다. 각종 조형물과 표석도 추억남기기에 한 몫 한다. 3시 30분경 주차장에 도착해 짱구 부회장님이 준비한 육개장을 안주로 맛있는 뒤풀이를 하고 4시 10분 청주로 향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사를 여행에서 배운다. 평택제천고속도로 천등산휴게소만 들르며 부지런히 달려왔지만 중부고속도로 오창IC부터 도로공사로 정체되는 바람에 예정시간이 한참 지난 8시 20분경 집 옆에 도착했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일상이면 얼마나 지겨울까. 청주행복산악회원들 때문에 더 즐거웠던 하루였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실제 선생님의 사례를 각색해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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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총이 수당 인상·무급휴직제 도입 등을 교원 사기 진작을 위한 필수 과제로 제시하며 정부의 조속한 도입을 촉구했다. 더불어 특별승급제 도입, 본인 및 대학생 자녀 학비 지원 등 실질적 처우 개선 방안 마련도 재차 강조했다. 22일 오후 2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원 및 공무원의 인사정책 협의기구’(이하 협의기구) 제4차 회의에서 교총은 주무부처인 인사혁신처와 교육부에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인사·보수 개선 핵심과제를 강력히 요구했다. 교총은 담임·보직 수당 현실화를 이번 협의기구에서 실현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교권 추락과 학교폭력 등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담임·보직 기피 현상을 개선할 적절한 보상체계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직공무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격하돼 온 교장·교감의 처우 개선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무급휴직제 도입 역시 이번 협의기구에서 반드시 관철할 핵심과제다. 교총은 무급휴직이 교원의 수업역량과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재충전의 기회도 부여하는 훌륭한 기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교육당국 주도로 이뤄지는 기존 연수제도나 일부 교원에게만 제한적으로 부여되는 유급휴직, 연구년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현장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교육성과 창출을 위한 특별승급제도 제안했다. 현행 공무원보수규정에 따르면 교육공무원도 특별승급의 대상이 될 수는 있으나, 교육부 내에 특별승급심사위원회조차 구성돼 있지 않는 등 유명무실한 상태다. 교총은 국가시책 실현과 우수한 교육성과 창출에 기여한 교원의 공로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공교육 강화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밖에 2013년 7월 교원 퇴직준비휴가 폐지 이후 충분한 적응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문제 개선을 위한 연가 허용 방안과 교원 본인 및 대학생 자녀에 대한 학비 지원 방안 등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이재곤 교총 정책교섭국장은 "인사혁신처와 교육부도 교총 제안에 대해 일정 부분 공감의 뜻을 내비쳤다"며 "다음 달 중 가시적인 성과를 내도록 막바지 협상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협의기구는 공무원연금 협상과정에서 "양보와 희생을 감내한 교원 사기 진작과 자존감 회복을 위한 보상 방안이 필요하다"는 안양옥 교총 회장의 제안으로 인사혁신처 내에 설치, 7월부터 본격 가동됐다. 교총은 실질적 인사개선 방안을 위해 지난 6월 ‘교원 보수인사정책 개선 추진위원회’(위원장 진재구 청주대 교수)를 구성해 현장 의견 수렴과 협상 논리 개발에 주력했으며, 지난달 14일에는 15개 인사‧보수 핵심과제를 인사혁신처에 공식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