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78,210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읍‧면 학교 못지않은 열악한 근무 환경 가산점 지원 끊겨 교사들 기피하게 돼 ‘불공평’…주민청원으로 동→읍 환원키도 경기도의 한 도농복합지역에 위치한 6학급 소규모학교 A초는 수년 째 극심한 교원 수급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 학교에 10년 간 전입해온 30여 명의 교사 중, 관내전입교사는 4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관외(18명), 신규교사(11명)였다. 면과 시의 경계에 위치한 이 학교는 사실상 농어촌소규모학교와 다를 바 없이 주변 환경이 열악하다. 논과 산으로 둘러싸인 학교 주변에는 편의점이나 인가를 찾아보기 힘들다. 통학버스가 운영되기는 하지만 버스가 진입하지 못하는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자전거나 도보로 등교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A초가 이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행정구역상 ‘동’지역에 위치해 있어 교사들에게 승진 가산점이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A초에서 불과 4km 정도 떨어진 C초의 경우 행정구역상 면지역에 위치한 까닭에 승진가산점을 적용받고 있다. 그러나 이 학교 주변은 아파트 단지는 물론 상가나 마트 등 편의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어 오히려 A초보다 좋은 환경이다. A초 B 교장은 “교사 부족으로 업무량이 많고, 교통이 좋지 않은 등 보통의 농어촌 소규모학교가 안고 있는 고충을 똑같이 겪고 있으면서도 교사들이 얻는 혜택이 없어 기피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 소재지라는 이유만으로 방과 후 학교 지원금, 승진가산점 등 농어촌 소규모학교들이 당연히 받는 혜택이 전무하다”며 “지역 특성은 감안하지 않고 단순히 행정구역을 기준 삼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린벨트에 위치한 경기의 D초도 비슷한 상황이다. E교장은 “승진가산점이 없다 보니 전입희망자는 극소수고, 타의에 의해 온 나머지 관외전입, 신규교사들은 최단기간만 근무하고 전출을 희망하기 때문에 교사 이동이 잦다”며 “학교 안정화와 교육활동에 늘 애로사항이 있다”고 털어놨다. 농어촌 승진가산점은 보통 도서벽지 접적지역, 농·어촌 접경 및 공단지역에서 근무한 경력을 인정해 부여하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동소재지 학교들도 가산점 대상에 포함된 적이 있었지만 2009년 2월 28일 대부분 적용기간이 만료돼 현재는 읍이나 면 소재지 학교들만 리스트에 남았다. 가산점 부여 대상 학교는 도교육청 인사위원회가 실사를 통해 일정기간을 지정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일부 면이나 읍 소재지 학교도 도시화 된 경우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사례도 있었다. 교육청은 앞으로도 동 소재지에 대한 추가 가산점 지정은 없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으나 예외의 경우도 있다. 동 소재지임에도 주변 환경이 읍‧면 소재지만큼 열악하다고 판단되면 교육감이 ‘접경지역 학교’로 특별 지정해 가산점 부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앞선 소규모 학교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 부분이다. 교육청에서 특별지역으로 지정하면 얼마든지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음에도 관심 부족으로 학생과 교사들을 불평등한 교육환경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청 관계자는 “지정 전 실사를 나가 접경지역 해당여부를 평가하고 반영하고 있어 형평성 문제는 없다. 모든 접경지역학교에 가산점을 부여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급기야 동에서 읍으로 행정구역을 환원하는 아이러니한 사례까지 나타났다. 경기 F초가 위치한 지역은 최근 주민 6000여 명의 청원으로 ‘동’이었던 행정구역을 다시 ‘읍’단위로 환원했다. 이 지역은 2007년 시청 건립과 함께 동으로 승격됐다. 그러나 교육환경이 악화됨은 물론 세금을 더 내야하는 등 불이익이 발생하자 지역 주민들이 행정구역을 환원해 달라는 서명운동에 나선 것이다. 이 학교 G교사는 “실질적으로는 농촌지역임에도 시청이 들어온다는 이유로 행정구이 면에서 동으로 바뀌어 그동안 받았던 승진가산점이나 농어촌소규모학교 지원이 끊겨 학교가 많은 피해를 봤다”며 “해당 학교의 다양한 사정을 고려한 유연한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주민 청원은 최근 받아들여져 이 지역은 동에서 읍으로 전환된 최초의 사례가 됐다. 학교는 내년부터 다시 승진가산점이나, 소규모학교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기도내 각급 학교의 9시 등교가 전면 시행에 들어갔지만 교육현장의 찬반논란과 갈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교총은 9시 등교에 대한 합의 도출을 위해 정부 등에 공청회 개최를 제안하고, 경기도교육청에는 학교별 설문조사 결과 공개를 요구했다. 교총은 경기 지역 학교의 89%가 9시 등교를 시행한다는 경기도교육청의 발표에 대해 1일 보도자료를 내고 “겉으로는 자율을 내세웠지만 인사권을 가진 교육감의 강제화에 따른 결과적 수치일 뿐 다수의 교원과 학생, 학부모의 동의나 자발적 동참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갑작스런 정책 시행으로 벌써 학교현장에서는 대체 프로그램 부족, 등교시간 편차에 따른 생활지도 곤란, 늦은 하교로 인한 학생 고충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학교 구성원의 삶과 교육과정의 변화를 가져오는 현실을 도외시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도내 A고 교장은 “고3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가 많이 흐려졌다. 지도가 어렵다”고 토로했고, B중 교장은 “점심시간이 한 시간이나 늦춰지고 하교 시간도 늦어져 불편을 겪고 있다”며 “밀어붙이기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내 일부 소규모 학원에서는 예상대로 ‘아침반’을 개설해 학생 모집에 나서는 실정이다. 교총은 “수업의 시작과 끝은 학교장이 정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는데도 교육감이 나서 사실상 일률화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정부 등이 공청회를 통해 등교시간에 대한 국가․사회적 합의 도출과 추진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교총은 향후 9시 등교에 따른 폐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관내 초․중․고교의 학생, 학부모 설문결과를 받는 대로 이를 분석해 발표할 예정이다.
교육당국·현장 90분간 허심탄회한 ‘소통’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2일 한국교총 초청 정책간담회에서 “5‧31교육개혁의 큰 틀을 이제는 인성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양옥 교총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강조한 인성교육으로의 패러다임 변화 의지를 이 자리에서 다시 듣기를 기대한다”고 말한 것에 대한 화답이다. 황 장관은 “경제, 경쟁, 자유 중심이던 5‧31의 공과를 검토하고 그간 상실했던 인성교육을 중심에 두며 재정립하는 일에 교총과 함께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정책간담은 인성교육 강화와 교육근본 회복을 위해 학교현장과 교육행정 당국이 허심탄회 소통하고 진정한 협치를 구현하고자 마련됐다. 서울 우면동 교총회관에서 열린 이날 간담회에는 교총 회장단과 17개 시도교총 회장‧사무총장, 초‧중등‧대학교수회 및 직능단체 대표, 그리고 교육부 주요 실국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장관 취임 후 첫 교총 방문에서 단순 상견례가 아닌 한 시간 반 가량의 현안 논의가 이어진 부분은 교육부와 교총이 현장 중심, 교원 중심 정책 파트너십을 한층 견고히 한 의미도 크다. 안양옥 회장은 환영사에서 “5‧31 교육개혁의 재조명과 인성교육을 강조한 것에 교육계의 관심이 높다”며 정책간담에 쏠린 현장의 기대를 대변했다. 이어 “과도한 수요자 중심에서 탈피해 교원, 학생이 하나 되는 길을 모색하고 인성교육이 교육의 중심이 되도록 정책을 펴달라”고 당부했다. 또 “9시 등교 문제 등을 법치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교육 법치주의를 실현하고 규제 중심의 고등교육 정책도 지원 중심으로 전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안 회장은 “내년 우리나라 주관으로 인천에서 열리는 세계교육포럼을 계기로 보수, 진보를 아우르는 교육통합과 교육한류의 기폭제가 되도록 힘을 모으자”고 제안했다. 본격적인 정책간담에서 교육계 현장 대표들은 △인성교육 패러다임 전환 △교육 법치주의 확립 △교원 양성·임용·연수체제 개편 △지원 중심 고등교육 정책 전환 △교원 전문성 신장 및 사기 진작 과제 추진 등을 건의하며 교육부의 지원, 정책 추진방안을 물었다. 이에 황우여 장관은 “교실은 이념 갈등을 심는 장소가 돼서는 안 되고 순수한 교육으로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장이 돼야 한다”며 “헌법 가치를 중심으로 교실의 질서, 평화가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충돌 상황에 대해서도 “교육법에 모든 규정이 있는 만큼 이에 따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교원의 역할을 중시하면서 “현 정부의 창의인재 양성과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은 현장에서 교원이 긍지와 열정으로 임할 때 실현된다”며 “교원이 최고의 교육전문가로 대접받을 수 있게 양성, 연수, 임용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황 장관은 “명예퇴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해 교육부가 최대한 수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며 교육감과의 협조도 이뤄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교총은 이날 질의 내용 등을 포함한 정책건의서를 황 장관에게 전달하고 반영을 요청했다.
“아이들이 예뻐 보이기는커녕 밉게만 느껴져요.” “주중에 너무 힘들어 주말에는 아무것도 못해요.” “모두 학교 교육 탓만 하는 것이 화가나요.” “요즘은 사람 만나 이야기 하는 것도 귀찮고 힘들어요.” 많은 교원들이 신체적, 정신적 탈진상태, 즉 ‘소진증후군’을 겪고 있고 이것이 학생 교육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힐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림대 자살과 학생 정신건강 연구소(소장 홍현주‧한림대 의대 교수)가 지난달 29일 개최한 ‘학생 정신건강과 교사소진’ 포럼에서 이재영 서울 중동고 교사는 ‘교사 소진증후군의 현황’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그는 “학생 생활지도 붕괴, 교권 추락, 과도한 업무,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 교사간 경쟁과 평가, 교사를 바라보는 사회의 모순적 기대치로 교사들은 날로 힘겨워지고 있다”며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일방적으로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교직의 특수성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하고 싶은 일은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자신감 상실과 두려움에 소진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사는 “교사의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고갈은 교육에 대한 열의와 학생에 대한 관심을 잃게 만들어 교육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며 교사 소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강조했다. ‘교사소진예방전략’을 발표한 명지병원 김현수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연수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의 아픔을 소개했다.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A교사는 주말 내내 수업 준비에 매달리다 일요일 밤이 되면 허망함에 눈물을 쏟았고 작년에 처음 학교에 가기 싫다는 생각에 스스로 당황했다고 토로했다. 교직 12년차 B교사는 ‘좋은 선생님이 되자’고 결심하고 학생들에게 화를 안 내려 안간힘을 썼더니 화병까지 생겼다고 말했다”며 “학생 못지않게 교사도 상처받고 아픈데 관심이 덜하다보니 교사 치유 프로그램이나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고지적했다. 김 과장은 “돌봄 역할까지 맡아야 하는 무거운 부담에 성적도 올려야 하고 인성 지도는 물론 상담과 과도한 행정업무 등 교사에게는 너무 많은 일이 주어진다”며 “더 안타까운 것은 힘든데, 그것도 모른 채 묵묵히 일하며 자신을 죽여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치유를 위해 교사는 스스로 위로하는 것에서 출발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교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사 소진의 치유포인트는 ‘서로 알아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교사가 행복해지기 위한 조언도 귀띔했다. 김 과장은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하지만 동시에 내 책임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말 것. 내가 모든 걸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 것, 하지만 내가 가르쳐야 할 모든 것을 준비할 것. 교사라는 직업을 대단하다고 생각할 것, 하지만 세상의 작은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교총(회장 안양옥)과 교육부(장관 황우여)는 2일 오후 서울 우면동 교총회관에서 ‘인성교육 강화 및 교육근본 회복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인천시교육청의 초등학교, 중학교 1학년 중간 및 기말고사 폐지 방침에 대해 한국교총과 인천교총이 기초기본교육을 약화시키는 비현실적인 방식이라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한국교총과 인천교총은 1일 성명을 통해 “기초학력 형성시기인 초·중학교는 총괄평가와 진단평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잠재력을 발굴한다는 취지로 초등학교부터 과정평가인 수행․서술형 평가만 시행한다는 것은 비현실적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또 교총은 “초등학생들의 창의력과 잠재력은 사실적 지식습득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지 기초 기본지식도 없는 가운데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며 “학생이 도달해야 할 학업수준과 목표를 위해 교사들의 협력 수업과 공통으로 출제한 중간․기말고사를 ‘일제고사’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시켜 공론화 과정도 없이 폐지하는 것은 학생들의 정확한 학업수준 파악과 보정교육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등배 인천교총 회장은 “학생들의 중간, 기말고사를 폐지하면 도대체 학생들의 객관적인 학업성취도 수준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지 인천시교육청은 인천시민과 교육계에 답해야 할 것”이라며 “교육감 공약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시행에 앞서 공청회 개최 등을 통해 정책 추진 여부를 결정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국교총이 2011년 전국 초․중․고교 교원 465명을 대상 ‘학생평가 관련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1.9%가 초등학교 중간․기말고사 폐지와 수시 평가 체제에 대해 반대 한 바 있다. 한편 인천시교육청은 7월 올 2학기부터 초등학교의 지필고사 형식의 중간·기말고사를 전면 폐지해 수행·서술형 평가로 전환하고, 중학교는 고입전형에 내신이 반영되는 것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젊은 선생님들은 수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컨설팅을 의뢰한다. 그리고 새로운 수업 기술을 배우기를 원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선생님 수업 기술에 이러이러한 것이 좋다고 일러준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감을 갖는다. 어떤 선생님들은 마음속에 담고 있는 어려움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때도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그냥 한참 들어준다. 그 선생님은 미안해하다가도 응어리가 풀렸다고 고마워한다. 그런데 며칠 전에 나이 지긋한 선생님을 만났다. 경력도 제법 많은 선생님이 컨설팅을 의뢰해서 놀랐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조심스럽게 정보를 나누었다. 그러더니 컨설팅 끝물에 내 손을 붙잡고 애원하듯 질문한다. 수석교사 생활이 궁금하다고 한다. ‘어떻게 힘든 것은 없나요. 저도 수석교사를 하고 싶어서요’ 하면서 속내를 털어놓는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이런 질문을 하는 선생님들을 몇 번 만났다. 대개 이런 선생님들은 본인 신상과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명확한 답을 원한다. ‘편하다, 힘들다’ 둘 중에 하나를 요구한다. 아니 은근히 편한 길이니 들어오라고 권유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나는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린다. 답을 알 수도 없어 그렇겠지만, 세상일이 두부 자르듯 구분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답은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라지는 것이지,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현 상황을 말하고 싶다. 수석교사제는 교육계에서 1981년부터 30여 년간 간절하게 원하던 제도다. 수업 전문성을 지닌 교사가 우대받는 교직 분위기 조정을 위해 법안이 만들어졌다.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현행 1원화된 교원 승진체제를 교수 경로와 행정 관리 경로로 2원화 체제로 개편한 것이라고 홍보했다. 수석교사(master teacher)는 경력 15년 이상의 교사들이 지원하고, 선생님들의 교수·학습 지도 지원을 맡도록 했다. 올해로 도입 3년차다. 그러나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교육 당국의 지원 미비로 지위가 불확실하고 역할이 모호하다. 그러다보니 기존 학교 시스템에서 융화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모양새다. 가슴앓이를 심하게 하는 수석선생님은 학교에서 하루하루가 버겁다고 한다. 교수·학습 지도 지원의 업무 구조가 없으니, 일도 없고 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학교의 수직적 구조에 끼어들지 못하니, 하루 종일 침묵 모드로 지낸다. 소통이 단절되니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든다. 가슴은 답답하고, 어디 기댈 데도 없다. 그저 왕따 당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이런 문제는 수석선생님이 업무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생긴다. 한직에 몰려 있고, 조직에서 존재감이 없다. 당연히 영향력이 줄어들고 급기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이다. 반면에 수석교사로 훌륭한 길을 가는 분도 있다. 높은 식견과 인자한 인품을 지니고 선생님들의 교육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교육적 가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을 보면 우리 교육계의 발전 동력을 느끼게 한다. 사실 나도 수석교사의 길에 망설이다가 뛰어들었다. 이유는 내가 선생님들을 지원할 수 있는 자격과 역량을 갖추었는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조건이나 환경을 모두 갖추고 시작하는 것은 거의 없다. 목적을 갖고 떠나는 여행보다 정처 없이 떠나는 여행에서 많은 것을 느낄 때가 있듯이, 수석교사라는 길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수석교사로 늘 교직 생활을 성찰하며 가는 긴장감이 행복하다. 마찬가지다. 지금 수석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선생님들은 혹독한 현실의 들판에 나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고난의 짐을 짊어지려고 해야 한다. 수석교사는 상시 수업 공개 등으로 누군가에게 보이고, 새로운 면류관의 무게도 감당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본능적으로 더 긴장하고 위축된다. 꽃방석인 줄 알았다가 가시방서임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할은 힘들게 하지만, 결국은 초라한 조연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내 생각은 다른 구석도 있다. 수석교사제는 현재는 법령의 일부 미비한 시행으로 아픔이 있지만, 우리나라 교육계에 발전의 동력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근대교육 이후 교직 체계의 변화로 미래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의 핵심 리더 역할이 기대된다. 그렇다면 막중한 사명감과 비전이 함께 해야 한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 명성을 얻고 편리함을 보장받기 위한 선택한 것이라면 수석교사의 길을 말린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동료 선생님들과 희망을 만들어가겠다면 기꺼이 선택을 권한다. 새로운 교직 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열정만 있다면 지금 망설임 없이 선택하기를 바란다.
지난 8월 29일(금) 교육부는 2015학년도 올해 마지막으로 지정하는 하위 15%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19개교를 발표했다. 매년 교육부는 4가지 절대 지표(재학생 충원율 90%, 취업률 50%, 전임교원 확보율 61%, 교육비 환원율 100%) 중 2개 이상을 충족하지 못한 대학을 '학자금대출제한대학'으로, 모두 충족하지 못하거나 경영컨설팅 이행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대학을 '경영부실대학'으로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학자금 대출제한대학의 경우, 2015년 신입생과 재학생의 학자금 대출이 제한되고 경영부실대학의 경우, 신입생이 국가장학금 받는 것에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들 발표대학 중 관내 대학 3개교(4년제 2개교, 전문대 1개교)가 포함되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더군다나 3개교 중 2개교는 오랜 전통이 있어 매년 이 지역의 많은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지금까지 관내 모(某) 대학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해 온 한 아이의 경우, 본인이 목표하는 대학이 부실대학에 포함되자 크게 실망하는 눈치였다. 특히 지역의 인재가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올해부터 새로 신설된 지역 인재전형을 목표로 하는 이 학생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수시모집에서 이들 대학은 적지 않은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 대학의 경영 잘못으로 피해 보는 쪽은 학생과 학부모이다. 따라서 대학 측은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을 최소화시킬 필요가 있으며 대학 나름대로 강도 있는 자구책을 마련하여 ‘경영부실대학’이라는 불명예를 떨쳐버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들 대학은 대학입학 홍보 시 수험생에게 이 사실을 묵인하기보다 구체적인 대책 안을 제시하여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신뢰를 줘야 할 것이다. 수험생 또한 대학 결정을 내리기 전에 선택한 대학이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 혹은 경영부실대학인지를 꼼꼼하게 잘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튼, 우리 아이들이 잘못된 대학 선택으로 결코 후회하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현대는 '생각의 시대'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모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로댕(1840~1917)이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유명한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 수 있었을까. 아마 턱을 괸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아마도 퀭한 눈은 꺼질 줄 모르는 액정을 향하고 다른 한 손은 관성적으로 스크롤을 내리고 있을 터다. 이미 인간의 기억과 계산 능력을 뛰어넘은 기기가 우리 모두의 손에 들려 있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란 칭찬이 더는 미덕이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이같은 시대에 우리의 두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거에도 생각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최근 김용규가 쓴 '생각의 시대'는 ‘생각’에 경쟁력이 있다고 말한다. ‘지식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고 이제 ‘생각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선언이다. 남과 다른 발상, 고정관념을 뒤집는 독창성, 나열된 지식의 이면을 꿰뚫는 혜안이 필요하다. 사실 여기까진 좀 뻔하다. 이미 정보화 시대에 ‘Think different!’가 경쟁력이란 것은 수 많은 사람들이 떠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생각을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답은 고대 그리스에 있다. 야생의 인간이 생각을 발명한 시기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다.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이 시기를 인류 정신사의 거대한 축이 이동했다고 해서 ‘축의 시대’라고 이름 붙였다. 저자가 이 시기를 지목한 이유는 이 때 발명된 생각의 도구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 책으 주요 내용은 지식과 생각의 탄생 과정을, 그리고 책의 3분의 2에 달하는 3장은 다섯 가지 생각의 도구, 즉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스모스(수), 레토리케(수사)의 개념과 사용법을 상세히 설명했다.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 발상의 전환을 돕는 ‘은유’,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원리’, 정신을 구조화하는 ‘문장’, 만물의 현상을 쉽게 패턴화하는 ‘수’, 설득의 수단인 ‘수사’를 잘 쓸 수 있다면 생각에 능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방법도 적었다. 은유와 수사의 응축인 시(詩)를 암송하고, 원리를 탐색하는데 적격인 추리소설을 읽으라고 권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것도 일찍부터 생각의 근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니 한번쯤 실행해 볼 일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직 생각 도구를 쓰기 전인데도 녹슨 머리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철학과 신학, 문학을 오가며 방대한 이야기를 요리조리 꿰는 솜씨가 너무 탁월하기 때문이다. 로댕이 만일 지금 태어나 이 책을 읽었다면 2개의 뇌, 즉 지식 창고인 스마트폰과 생각도구를 장착한 두뇌를 조각하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을 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 같다. 젊은이들이 어려운 시대에 이 '생각의 시대'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9월이 시작되는 첫날 9월1일은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방재의 날'이다.일본은 우리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재해가 많다. 이 자연재해와 싸우는 일이 생존과 직결된다. 그런데 일본의 방재의 날이 9월1일이 된 배경에는 오래전 우리 민족의 큰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지금은 많이들 잊고 있지만 91년전 1923년 9월1일, 일본의 관동(간토)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불운하게도 점심 식사 준비로 인해 거의 전 가정에서 불을 때고 있던 시간대라서 지진의 여파는 곧바로 대화재로 이어졌고, 도쿄, 요코하마 지역을 비롯한 관동 지역 일대가 궤멸되다시피 한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사망자, 행방 불명자가 14만 명, 이재민 340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재난이었다. 그런데 재난의 혼란 속에 계엄령이 시행되었고, 사회 불안 속에서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이상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유언비어 속에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하였다.', '우물에 조선인이 독을 넣었다.'는 등의 근거도 없는 낭설이 경찰 조직의 비상 연락망을 통해 확대되면서 자경단이나 경찰관에 의해서 조선인과 조선인으로 의심받았던 중국인이나 일본인까지도 학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살해된 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3000명에서 6000명까지 이야기되고 있고, 그 이상이라는 설도 있다. 심지어 조선인을 구분하기 위해 발음하기 힘든 일본어를 시켜 보는 과정에서 일본의 외딴 지방에서 올라온 일본 사람들도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학살 사건은 대부분이 불문에 부쳐지고 아직까지도 진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사실로 존재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좀 더 윤택한 생활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 갔던 초기 이주자들과 소수이기는 했지만 소중한 인재였던 조선인 유학생들이 그 재난의 희생자가 되었다. 하지만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으로 불려지는 이 사건에 대해 일본 정부는 9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어떠한 사과의 말 한마디도 없었다. 1923년 당시 일본은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고 있었다. 한반도와 대륙 진출에 혈안이 되어 있던 일본 정부와 군부의 강력한 군수정책으로 민간경제는 위축될 수 밖에 없었고 일본 국민들은 언제 전쟁이 벌어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진이 일어나자 자국민들의 민심이 크게 동요할 것을 염려한 일본 정부가 그 증오의 대상을 조선인들에게 돌리려 하기 위해 이같은 책동을 벌인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 같은 엄청난 만행이 있었음에도 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유언비어가 있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수를 축소하여 발표하고 학살을 자행한 자경단원 일부를 연행하여 조사하였으나 이는 형식상의 조치에 불과하였다. 또, 기소된 사람들도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죄방면 하였다. 무려 6000여명이 넘게 학살된 이 만행으로 사법적 책임을 진 사람이나 단체는 전무하고 도의적 책임을 진 사람이나 기구도 전혀 없었으나 양심적인 소수의 일본인은 이를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러한 대학살의 만행이 있었다는 것도 모른 체 아직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이었던 당시 미국 등 서구나라에서는 대규모 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을 돕자는 캠페인을 벌여 성금모금을 하였다. 실제로 일본에 많은 후원을 했었다는 것이다.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당시 큰 지진이 일어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만을 전달받고 피해자들을 돕자고 나선 미국 국민들의 순수한 인간애는 몇년이 지나지 않아 진주만 공습이 되어 돌아왔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당시 일본의 자경단들이 선동을 하기 위해 외치던 구호가 바로 " 조선인들을 죽여라." 였다. 그런데 9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일본의 수도 도쿄 한복판에서 이같은 소름끼치는 선동구호를 들을 수 있다. 일본 우익들은 재일 한국인들에 대해서 이른바 '헤이트스피치'라 일컬어지는 인종 차별적인 가두 선전 활동, 혐한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7월 유엔 인권위에서 이 같은 헤이트스피치, 혐한시위를 금지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권고를 받았음에도 일본 정부의 어떠한 조치도 없이 혐한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백주 대낮에 도쿄 한 복판에서 '조선인들을 죽여라'라고 외치는 일본 우익들을 보면서 90여년전 실제로 조선인들을 학살했던 일본인들의 광기를 또다시 느낄 수 있다. 지각 있는 일본인들조차 자신들이 일본인이라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었다는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사건의 광기가 또다시 일본에서 불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리나라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신세대젊은이들의 잦은 비행과 사건 사고를 접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마음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문명의 발달로 살기가 너무 편리하고 좋아졌는데도 일부 청소년들의 마음과 영혼이 너무 나약하고 사람의 본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학교에서는 집단 따돌림과 인성을 저버린 행동으로 자살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가장 안타깝다. 군에서 병영생활을 하면서도 그대로 연장되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 군 생활을 견뎌내지 못하고 우울증까지 겹쳐 자살하거나 총기사고로 국민을 놀라게 하더니 집단구타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을 바라보면서 무엇이 문제의 원인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첫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을 소홀히 해 온 것 같다. 유치원에서 글자를 가르치거나 영어를 가르치기보다 자연 속에서 인성을 배우도록 해야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숲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꽃과 곤충을 관찰하고, 시냇물에서 노니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모래성을 쌓으며 자연을 배우는 교육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한다. 가장 위대한 스승은 자연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화로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생존경쟁과 황금만능사상을 우선시 하는 어른들의 삶을 그대로 배우고 있다. 친구를 경쟁자로만 여기고 1등만 강요받으며 자랐지 않았는가? 같이 자라는 세대들을 적대시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컴퓨터, TV, 스마트폰 같은 문명의 이기(利器)가 사람사이의 정을 멀게 하고 비인간화로 가는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문명을 잘 이용하며 살아가려면 인간성을 회복하고 사람의 정을 그리워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성현들의 말씀이 담긴 고전을 가르치는 마음공부가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새로운 것은 옛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가느라 옛것을 무시하고 버리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아이들의 마음을 살찌우는 교육에 소홀히 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비슷하다.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살다간 조상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주옥같은 고전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우리조상들의 삶에서 우러나온 사자소학이나 명심보감 같은 문장하나라도 가르치는 정책이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심보감의 문구를 가르쳤더니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필자 앞에서 머리 숙여 반성하는 학생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경험이 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해야 인성이 싹트고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주위사람에게 시키지 마라! (己所不欲 勿施於人)만 가르쳤어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성을 간직하지 않았을까?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마음이 황량해져가는 신세대들에게 부족한 마음공부를 시켜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국운이 융성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는 흐르는 물처럼 삶의 정거장을 뒤로한 채 떠나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벌써 4년이란 세월이 광야에서 훌쩍 지나갔다. 많은 학생들과 선생님들과의 만남은 소중하였다. 다시 만날 기약은 꼭 하지 않았지만 내가 뿌린 씨앗이 어떻게 자라는가는 지켜 볼 예정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광양은 빛의 도시입니다. 미래에도 빛을 발할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공부하고 있는 여러분들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이번 9월 1일자로 광양여중에서 공모교장으로 2010년 9월 1일 부임하여 근무를 마치고 이번에 순천동산여중으로 전근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생활은 행복했습니다. 내 꿈이 8월말까지 행복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이 이뤄졌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소박할지라도 크고 작은 꿈이 있지요. 그러나 그 꿈이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 좌절하게 됩니다. 이때 이 벽을 깨는 길은 없을까요?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꿈을 꾸지 못하고 심지어 수업시간에도 가끔 잠 자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여러분과 헤어지는 마지막 시간에 한 여성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엿장수의 딸로 시골에서 태어나 사회의 편견과 냉대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녀는 절망뿐인 현실을 희망의 내일로 바꾼 사람입니다. 그녀의 과거는 분노가 가득했고, 삶에 반항하였으며 차별을 받으면서 오기가 넘치기도 하였답니다. 이런 그녀가 하버드대 박사, 소장, 동기부여 강사, 베스트셀러 작가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그녀의 희망이 만든 오늘의 수식어는 많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한 번뿐인 인생인데 그걸 어떻게 살다갈까? 이것을 바로 내가 결정한다는 거죠."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또한, "내 미래까지도 짓밟는 그런 삶은 절대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딱 한 번 뿐입니다. 가발 공장 직공에서 미국 육군 소령을 거쳐 하버드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희망의 증거가 된 희망연구소 서진규 소장은 1999년 쓴 자전 에세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오늘도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여자란 이유로 차별과 구박을 받으며 자란 그녀는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발 공장 직공과 식당 종업원으로 일을 하던 중 미국에서 가정부를 구한다는 구인 광고를 보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떠났지요.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미국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해 아이도 낳았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 그녀는 현실 도피처로 군대를 선택하여, 이후 미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기까지 20여 년간 군인으로 몸담으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고 이후 마흔 둘의 나이에 하버드대에 입학해 59세의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진규 박사는 ‘군대는 참 평등하다’며 ‘개인의 실력을 인정해 주고 자발적으로 일을 하는 태도나 성과에 대해서 보상 등의 대우가 굉장히 달랐다’면서 누군가를 의지하기 보다는 늘 스스로 이겨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딸인 조성아씨도 미군 육군 소령으로 근무하고 있지요. 대학 시절 ROTC 생활을 하고 졸업 후 4년의 의무기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4년간 군 생활을 하고, 또 하버드대에 입학해 어머니가 걸어온 발걸음을 그대로 밟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삶을 곁에서 지켜봐 온 딸 조성아씨는 “어렸을 적 어머니의 복제인간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그는 10개월간의 한국 근무를 끝으로 미 육군을 그만두고 또 다른 도전을 계획하고 있는데, 어린 시절부터 간직했던 외교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떠나는 자리에서 우리 학교 학생들도 미래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서진규가 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는 책을 꼭 읽어 보고 꿈꾸길 기대하여 봅니다. 유튜브에서 서진규 박사를 검색하면 여러 개의 동영상이 있습니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또 자신이 만일 지금 이 시간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녀의 삶의 영상을 다시 한 번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희망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딱 한 번 뿐인 인생을 멋지게, 신나게, 행복하게 살기 소망해 봅니다. 나와 함께 3년동안 이 광양여중에서 호흡하고 밥을 먹었던 광양여중 모든 소녀들이 어제보다는 오늘 더 많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갈망하고 꿈꾸길 바라면서,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과 평안이 늘 함께 하기를. 2014. 8. 29 광양여중을 떠나면서
인간의 생각이 긍정적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도박꾼과 선거꾼이 지닌 공통점이 있다. 노름꾼은 다른 사람들은 다 잃어도 자기만은 딸 것이라 믿는다. 이같은 터무니없는 망상에 이끌려 도박판에 계속하여 들어간다. 선거에 중독된 사람들도 밑도 끝도 없이 당선 100% 확신으로 선거판에 뛰어든다. 이번에는 자기 차례라고 확신한다.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고통이 따르게 된다. 이 두 부류는 영국 출신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로저 스크루턴이 대표로 꼽는 비양심적인 낙관주의자의 상징이다. 스크루턴은 최근 발간된 '긍정의 오류'를 통하여 지금 세계 경제의 목을 죄고 있는 ‘신용 경색’이야말로 이런 양심에 털 난 낙천주의자들이 꾸민 ‘최상의 시나리오 오류’라고 지적하다. 그러기에 몇 년 후에 우리 나라도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는 전문가도 있다. 지나치게 비관적인 인간도 살아가는데 문제지만 너무 낙관적인 인간은 더 큰 재앙이라는 것이 스크루턴이 주장하는 요지이다. 특히 입으로는 소통이라면서 마음으로는 불통인 지도자들을 향해 그는 “헛된 희망의 자리에 진정한 희망을, 복수의 자리에 용서를 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건 이후 갈등의 정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거짓 희망을 유포하는 자들, 자유 민주주의가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 주장하는 도식적 의회주의자들은 염세주의자들보다 더 위험한 낙천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눈꼽만큼도 믿어 의심치 않는 오류가 저지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절대 지지 않는다. 그 위험에 대해서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철저한 자기 확신과 무책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인물 유형 아닌가. 인간 집단이 저지르고 있는 낙천주의적 오류를 스크루턴은 여섯 가지로 분류하여 잘 정리했다. 첫째,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난다는 주장의 오류, 둘째, 유토피아 오류, 셋째, 제로섬 오류, 넷째, 계획의 오류, 다섯째, 움직이는 정신의 오류, 여섯째, 총합의 오류다. ‘오류’란 단어 앞쪽의 명제들은 대부분 인류 발전의 원동력으로 제시돼 온 것들이지만 파란불을 빨간불로 바꿔놓고 들여다보면 180도 거꾸로 해석할 수 있는 대뇌 속 ‘씽크 홀(Think Hole)’이다. 세상을 너무 쉽게 살아왔다거나, 대체로 건전하고 온건한 방향으로 세계 발전을 내다본 사람이라면 ‘나는 혹시 낙관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볼 일이다. 지구를 덮어오며 점점 커질 거대 권력, 질병과 고령과 무능력과 죽음 같은 인류의 오랜 적들을 정복할 능력을 키워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저자는 에둘러서 조언한다. “약간의 염세주의는 온갖 소음이 가득한 세상에서 지혜의 목소리 역할을 할 것이다.” 이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제발 적절한 비관의 효용을 숙고하시라고 말하는 쓴 약 같은 책이 바로 '긍정의 오류'이다.
e수원뉴스 시민기자 2박3일 워크숍을 다녀왔다. 사전에 참가 신청은 하였지만 하루 전까지도 참가여부는 미지수였다. 시민기자가 작업이 아니라 근태처리를 하는 교육공무원이기에 망설였던 것이다. 고심 끝에 연가를 받았다. 도대체 e수원뉴스 시민기자 워크숍이 무엇이길래? 이번 기회에 내가 시민기자 워크숍에 참가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가 자발성이다. 시민기자 누가 시킨 것 아니다. 본인이 좋아서 하는 것이다. 때론 기사쓰기가 어려워도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기사는 출고된다. 이 세상 일 누가 강제로 시키면 짜증이 난다. 성과도 나타나지 않는다. 타율적인 인간은 발전이 없다. 그러다가 기사쓰기를 게을리 하게 된다. 기사를 쓴다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편협된 기사는 독자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둘째 수원사랑의 정신이다. 내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고장에 대해 관심이 없다. 관심이 부족한 사람은 주위 대상과 현상에 대해 애정이 없다. 그러나 수원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이 사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수원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수원에서 나온 자칭 수원 토박이다. 그러나 자만해서는 안 된다. 공부를 게을리 하면 타지 사람보다 수원에 대해서 잘 모른다. 부단한 공부가 필요한데 시민기자 활동을 수원에 대해 공부하라고 자극을 준다. 셋째, 2007년 10월 초창기부터 활동한 원년 멤버요 으뜸기자다. 2007년은 참으로 뜻이 깊다. 서호중학교에서 새내기 교장 출발을 한 것. 고교시절 수고학보 기자를 하고 교육신문 리포터를 했지만 교직이라는 것이 우물안 개구리다. 사회인들과 교류의 시간이 많지 않다. 시민기자 경력을 몇 년 쌓으면서 워크숍을 통해 역량 강화의 좋은 기회가 되었다. 김우영 주간을 비롯한 주위 분들의 도움도 컸다. 그래서 3년 연속 으뜸기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으뜸기자가 워크숍에 빠질 수 없다. 넷째, 워크숍을 통해 수원시정을 알게 되고 시장과 자연스런 만남이 있다. 시민으로서 시정을 알게 되면 이해가 깊어진다. 수원시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을 해 줄 수도 있다. 요즘 세상,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 이번에도 염태영 시장이 워크숍 현장을 찾았다. 시민기자 격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토크숍를 통해 시민기자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형식적이 대화가 아니다. 염 시장의 장점 하나, 형식과 격식 파괴다. 이번에도 스피드 퀴즈에서 기자들과 한 마음이 되었다. 다섯째, 워크숍은 치유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일에 푹 빠져 지내는 것이 행복이다.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까? 더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연구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이야깃거리가 많다. 필자의 경우, 교장에서 장학관으로 전직하여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진도에 가서 장기간 근무하여 몸과 마음이 피폐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자연 기사 쓰는 횟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워크숍을 통해 활력을 얻는 것이다. 이번 워크숍, 예년과는 다르게 문화탐방도 있고 토크쇼도 있었다. 작은 레크리에이션은 기자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었다. 지적재산권의 종요성도 새삼 깨달았다. 문당 환경 농업마을에서는 귀농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워크숍을 기획하고 세심히 준비한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6개월간 정들었던관사 자취방, 오늘 밤이이 방에서 마지막 날이네!" 전보 발령 소식을 듣고 자리에 누우니 감회가 새롭다. 그래도 퇴근 시간 이후 나를 반겨주던 곳이다. 나만의 휴식처다. 내일을 재충전하던 곳이다. 자취방을 내 나름대로 꾸미느라 공간배치도 해 보았다. 안 하던 물걸레질도 하면서 정을 붙였다. 지난 3월 발령 당시, 이 곳에서 오래 머물고자 생각하였다. 최소 1년에서 2년.그리하여 중고 텔레비전도 사고 인터넷을 연결하여 컴퓨터도 설치하였다. 퇴근 후 시간을 뜻있게 보내고자 함이었다.또 리포터인지라 직장에서 못 쓴 기사를 쓰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가 있었다. 그것은 국가적인 불행이었다. 사고 당일 밤, 출근 복장으로 진도 팽목항으로 사고 수습을 나갔다. 특이한 사실은 심야시간인데 목포에서 진도가는 중요 사거리마다 교통경찰관이 배치되어 있었다. 대형 사고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사가 체험학습을 맡고 있어 진도 수습 업무를 전담하였다. 사고 당일부터 7일간 근무를 시작으로 4박5알, 3박4일 간격으로 근무하다보니 44일정도를 근무하였다. 팽목항 근무를 오래하여 지인들은 '팽목항 근무 전담 장학관'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7시 팽목항으로 출발! 희생자 수습 지원 업무를 비롯해 차량지원, 상황실 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야간 근무조 교대까지 마무리 지으면 밤 10시다.숙소에 귀가하여 잠자리에 들면 11시다. 그러니까 하루 17시간을 근무한 것. 그 영향이었을까 몸에 몸에 무리가 왔다. 체중이 8kg이나 줄어 들었다.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건강이 우선이다. 건강을 해쳤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결단의 순간이다. 결국 집 가까이 가기로 결정하였다. 윗분들의 허락을 받고 전보내신서를 썼다.종합검진을 받으니 병명이 나왔다. 몸 추스리기가 우선이다. 그래서 직장을 옮겨야하는 것이다. 자취생활의 좋은 점은 홀로 생각에 잠길 수 있다는 것. 자신을 되돌아 보고 침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가족간의 대화가부족하다. 아내가 해 주는 따뜻한 밥 대신 전기밥솥이 해 놓은밥으로 아침과 저녁 그리고 다음날 아침을 해결한다. 그래도 6개월동안 아침밥을 안 먹은 적은 별로 없다. 제대로 챙겨 먹은 것이다. 옷장을 열어보니 겨울옷과 여름옷이 섞여 있다. 넥타이는 10여개가 있고 목도리도 보인다. 겨울과 봄, 여름을 이 곳에서 보낸 것이다. 3개월이 동시에 나온 달력을 보니 두 장을 떼어냈다. 찬장에는 아내가 반찬응 담아 준 밑반찬통이 여러개 보인다. 이젠 빈 그롯이지만 아내의 정성을 담았던 그릇이다. 정을 붙이려고 의정부시청에 연락하여 의정부 안내지도, 의정부시 소풍길, 의정부 가이드 북을 받았다. 이 자료는 전입한 동료 장학관에도 전달하여 함께 적응하기로 했다. 그러나 교장을 하던 사람은 무보직 장학관이란 것에 적응하기 힘들다. 대우가 교감 수준이다. 능력 발휘에도 한계가 있다.'빛 좋은 개살구'라는 표현이 맞을 듯 싶다. 그 동안 따뜻이 대해준 민주시민과 동료 장학관과 장학사, 주무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특히 보잘 것 없는 능력을 인정해 주시고 말 한마디에도 덕담을 건네 주신 교육국장님, 부교육감님께 존경을 표하고 싶다. 북부청사 직원 여러분 모두가 고맙다. 이들은 어려운 이웃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제 9월 1일이면 지역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장으로 출근한다. 다행히 교육장, 국장이 오래 전부터 아는 분들이다. 건강에 유의하면서 마음 편하게 근무하라고 일러 주신다. 함께 근무할 중등 장학사들도 품성이 좋고유능한 분들이다. 필자는 장학사 4년 반, 교감 3년 반, 교장 6년 반, 그리고 장학관 6개월간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이제는 새로운 근무지에서 실천이 남았다.
직선제 교육감의 가장 큰 폐단이 그대로 드러났다. 인사철만 되면 선거 과정에 도움을 줬거나 교육적 성향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원칙과 상식을 뛰어넘는 사람에게 선심성 자리를 주는 일이 되풀이 됐다. 이는 다른 어느 곳보다 합리적 절차와 객관적 합의가 중시되는 교육계에서 교육행정을 이끌고 모범을 보여야 할 교육감의 권한 남용으로 비춰졌고 그로 인해 교육 전반에 대한 불신과 오해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에 새롭게 교육감으로 당선된 분들은 앞 다퉈 공정한 인사시스템 도입을 공언한 바 있기에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논공행상 논란과 인사부정 비리로 얼룩졌던 전철을 일소하고, 능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가치중립적인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9월 1일자로 단행된 각 시도교육청 인사 내용을 살펴보면 형평성 시비 및 코드인사 논란이 재연됐다는 점에서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 평교사를 장학관(연구관)으로 발탁해 전직 임용한 사례가 4개 시․도, 9명에 이르고 무자격공모교장 출신을 주요보직에 임용한 사례도 2개 시․도, 2명으로 한국교총 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다. 교육 전문직의 꽃으로 불리는 장학관(연구관)은 엄격한 자격 조건을 갖추고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 부단한 연구와 열정으로 오랜 기간 준비해야 가능하다. 장학사(연구사)가 되고서도 7~8년간 업무 경험을 쌓고 능력을 인정받아야 오를 수 있는 꿈같은 자리다. 평교사가 두 단계를 뛰어넘어 장학관으로 임용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이 같은 승진이 가능한 것은 현행법상 평교사에서 장학사(연구사)로의 전직은 공개전형에 따른 객관적 임용 절차를 따르고 있으나 그 보다 높은 장학관(연구관)은 일정 자격만 갖추면 교육감의 지명에 의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감은 개별 시․도의 현장 교육자들을 대표한다. 교육감의 인사권도 어디까지나 현장 교육자들의 공감과 소통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래야만 교육감의 영(令)이 서고 교육자로서 존경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 정상화의 핵심은 코드인사의 적폐를 교육감부터 털어내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교육감의 직무 수행 능력은 인사를 보면 알 수 있다.
학교에 아이들의 9시 등교를 강행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먼저 수업시간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할 것이다. 현행 교육과정에서의 단위 수업 시간은 학생 발단단계를 고려해 초등학교 40분, 중학교 45분, 고등학교 50분을 기준으로 정했다. 점심시간, 아침활동시간등 파행 필자가 전에 재직하던 학교 수업 운영방식은 8시 40분 등교, 9시에 1교시 시작이다. 20여 분 간 담임교사의 출석 점검, 간단한 아침 훈화 등을 하고 수업에 들어간다. 이는 학생 가정환경, 즉 도시와 농촌, 맞벌이 부모 비율, 교통난 등에 따라 편차가 많기에 확인 차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9시 등교를 한다면 이러한 시간을 포함해 9시 30분 정도 1교시 수업을 들어갈 수밖에 없다. 9시 30분에 1교시를 운영하면 초교는 1 단위 교과 시간 40분, 10분 휴식 3번, 4 교과 시간 운영을 하도록 돼있어 190분을 오전 시간에 사용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점심 식사는 12시 40분이 된다. 중학교의 경우 1 단위 수업시간 45분이니까 오후 1시, 고등학교의 경우 오후 1시 20분에 점심식사를 하게 된다. 학생이 원한다 해서 9시 등교를 해야 한다는 말은 그럴 듯하나, 그 학생들에게 점심시간 여부를 놓고 질문을 다시 던져봐라. 어떤 반응이 나올까? 점심시간 마친 뒤 쉬는 시간 없애도 되겠니? 마지막 수업 시간 늦춰도 되겠니?’ 등에 대해 같은 반응이 나올지 의문이다. 학교는 교과수업 시간이 점심시간 이상으로 충실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점심을 먹이기 위해 수업시간을 조정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교실배식을 하는 학교보다 급식실 배식을 하는 학교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현재는 이른 등교로 무리 없이 급식실 배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9시 등교를 강행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교육과정 단위시간 준수라는 고민과 점심시간 확보라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또 학교의 아침시간은 나름대로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이 있다. 독서활동, 건강달리기, 자치활동, 교내봉사, 한자공부, 방송영어 등 다양하다. 그런데 학교가 9시 등교를 강행한다면 기초교육과 인성교육이 가능한 이런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 9시 등교 강행으로 인해 교과 수업시간을 위한 획일적 학교운영이 될 것은 뻔하다. 학생 수면부족 문제도 못 풀어 9시 등교를 주장하는 사람은 청소년기 수면부족이 정서적인 면과 학습 효율적인 면에서 나쁘다는 연구 이론을 들어서 합리화한다. 10대들의 뇌는 9시간 이상 잠을 자야 학생들이 최상의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수면시간과 패턴은 가정환경, 학습 부담, 인터넷과 스마트기기 중독, 운동 습관 등에 따라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아이들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은 등교시간이 아니라 부모의 공부 강요, 방과 후 학원 및 과외공부, 스마트폰, 게임 등이 더 큰 이유인 것이다. 진정 학생들에게 공부라는 굴레를 벗겨주려면 사교육에 몰입하는 제도를 바꿔줘야 한다. 주지교과 점수 위주의 줄 세우기 입시 제도를 바꾸면 저절로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학교 스포츠, 예술 활동, 자치활동 등 학교 활동의 성과를 반영하고 교과 수업 시간을 줄여주는 제도적 뒷받침 마련이 훨씬 필요하다.
올해 대입전형이 6일 수시모집을 시작으로 막을 올린다. 60만 명 수험생들은 초등학교 입학 후 12년간의 기나긴 여행 끝에 목적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된다. 서울대 정책방향에 모두가 흔들려 그러나 학생들은 ‘스카이, 서성한이, 중경외시’ 등 전국 200여개 대학 서열부터 생각하게 된다. 대학 서열화는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박혀 갖은 폐단을 낳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지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 그동안 고교 현장에서는 3500여 명을 선발하는 서울대의 대입 정책 방향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국 대학교 모집인원의 1% 정도의 서울대가 수능에서 제2외국어 반영과 한국사 필수 등을 이야기 할 때 고교 교육과정은 소수 학생들을 위해 1학년 때 배웠던 교과를 3학년으로 변경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현 대입전형은 일부학생들을 위한 방식이며, 고교 교육현장에서 학생 선택을 제한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3학년도부터 도입된 수시지원 횟수 6회 제한 문제만 봐도 그렇다. 물론 지난 2010학년도 한 수험생이 61회나 지원하는 등의 문제를 경감하고 실질적인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부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복수 지원한 학생이 여러 곳 합격한 경우 합격날짜에 따라 이동할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서열에서 밀리는 학교는 최초 합격자보다 예비 합격자가 더 많이 나오는 일이 생기고 있다. 이 학생들은 시작부터 패배감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또 현재 일반 고등학교는 비평준화 또는 평준화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비평준화지역 소재 고교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교육과정과 교육환경을 고려해 입학이 가능하지만, 더 많은 수를 차지하는 평준화지역 소재 고교 학생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결정된 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이런 경우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교과가 다양하지 못하고 정해진 일부 교과를 이수할 수밖에 없다. 학교 상황에 따라 교과이외 활동으로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이 매우 차이가 크게 발생하고 있다. 일부 고교의 경우 상위 10% 학생들이 주요활동들을 주도하고 수상 실적에서도 각종 교내 경시대회 수상을 독점하고 있다. 이처럼 고교 교육현장은 여건에 따라 많은 차이가 발생하고 있지만 학생선택은 매우 제한적이고 무시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입전형과 학교 교육에서 대다수 학생들은 소외되고 일부 상위권 학생들이 교육의 과정과 결과를 독점하는 문제는 하루빨리 해결되야 한다. 대학 서열화가 더욱 강화될수록 학생들은 자신의 꿈과 미래에 대한 진로 결정보다는 대학의 이름을 보고 진학을 결정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진로진학상담교사 역할에 큰 기대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학교 교육이 정상화 돼서 학생들이 개개인에 적합한 진로를 계획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꿈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데 있다고 사료된다. 다행히 지난 해 전국 중고등학교 5520개교 중 5215개교(95.4%)에 진로진학상담교사가 배치됐다. 각 학교는 진로진학상담교사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그 성과가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이제라도 학생들을 교육의 패배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꿈과 끼를 생각하고 자신이 결정하는 미래를 일궈갈 ‘꿈의 디자이너’로 양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근 사회과학에서 많이 사용하는 개념 중에 거래비용이라는 개념이 있다. 통상적으로 거래비용이란 시장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거래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일컫는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재화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생산비용에만 초점을 맞추었지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재화의 생산 외에 교환 당사자를 찾아 거래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때 발생하는 모든 비용이 바로 거래비용이다. 여기에는 생산자나 소비자가 적당한 거래 당사자를 찾는 데 소요되는 비용, 사고 싶은 적당한 물건을 찾는 데 들어가는 비용, 거래 당사자들이 협상을 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 계약 체결 후 이를 어기지 못하도록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등이 모두 포함된다. 우리가 거래비용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거래비용이 높은 나라는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도 부쩍 많이 사용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이란 신뢰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러한 신뢰는 궁극적으로 한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거래비용을 낮춰주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이렇듯 한 나라의 발전에 있어서 거래비용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거래비용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왜일까? 생산비용과 달리 거래비용은 측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래를 하는 한 거래비용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거래비용이 높게 되면 한 사회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잦은 정책변화와 복잡한 제도, 사회적 비효율 초래해 거래비용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를 둘러싸고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정책은 거래비용을 발생시킨다. 정부가 만든 새로운 정책에 대처하기 위해 사람들이 유형·무형으로 지불해야 하는 모든 비용이 거래비용인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고려하는 비용은 실제 사업을 추진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일 뿐, 사회 구성원들이 지불해야 되는 다양한 형태의 거래비용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시 말해서, 정책 입안자들의 시각에서는 거래비용이 ‘0’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상당한 비효율이 발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이다. 정부가 입시제도를 바꾸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용역비, 회의비, 정책홍보비, 관련 인건비 등 그리 높지 않다. 그렇지만 한번 입시제도가 바뀌게 되면 여기에 적응하기 위해서 학부모와 학생들은 엄청난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정책변화가 야기하는 거래비용이다. 제도 변화가 잦으면 잦을수록 거래비용은 올라가게 된다. 따라서 정책을 변경시킬 필연적인 이유가 없는 한, 정책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거래비용을 ‘0’로 가정하면 정책변화가 낳는 효과만 눈에 보이기 때문에 잦은 정책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실제 거래비용이 엄청난 규모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가 복잡해도 거래비용은 올라간다. 입시제도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사회가 지불하는 거래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입시전형에 대한 정보획득비용, 각각의 전형에 대비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 등의 규모는 엄청나다. 이는 공교육 예산과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사교육 비용 외에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정책의 입안과정에서 이러한 거래비용이 거의 ‘0’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입장에서도 거래비용을 신경 쓸 이유가 없으므로 갖가지 이유로 입시제도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입시제도는 단순할수록 좋다. 교육 불평등 심화시키는 거래비용[PART VIEW] 복잡한 입시제도가 야기하는 높은 거래비용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보획득비용을 포함한 거래비용 지불 능력이 계층 간 매우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복잡한 입시제도는 거래비용을 통해서 계층 간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입시제도를 단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입시제도만 거래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교육개혁 정책은 거래비용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거래비용은 정부가 지불하는 비용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국민의 뜻과는 무관하게 정부가 너무 많은 교육개혁을 시도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거래비용이 높아질수록 그 나라의 사회경제 발전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교육정책을 만드는 데 거래비용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 프로필 _ 하연섭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와 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교육부총리 정책보좌관, 연세대학교 국제처장을 역임한 바 있다. 재무행정, 제도분석, 비교정책, 교육정책이 주요 관심 분야이며, 저서로 제도분석: 이론과 재정, 재정학의 이해등이 있다.
첫째 “언제 밥이나 한번 합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 말을 한두 번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말을 하는 쪽에서는 이 말의 친화적 효능을 상당히 믿는 눈치이다. 그러니까 이 인사법이 이처럼 널리 만연되어 있는 것 아닐까. 그런데 듣는 쪽에서는 이 말에 대한 신뢰가 그다지 높지는 않다. 그저 말로만 던져 보는 립 서비스(lip service) 정도의 관심일 뿐, 실제로 밥을 먹자고 연락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말처럼 맥 빠지는 거짓말이 없다고 한다. 이를테면 ‘빈말 인사’라는 것이다. 서로가 그렇게 되지 않을 줄 다 알면서 주고받는 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유독 한국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얼마 전 어떤 영어 신문의 칼럼 (editorial)에서 보았는데, 미국인들도 친밀해지려는 의도를 이런 표현으로 한다고 한다. “Let’s have lunch someday” 하고 당장이라도 같이 밥 먹을 듯 말해도, 그 someday는 언제일지 모르는 someday일 뿐이라는 것이다. “We’ll have to do lunch someday”라고 말하면 제법 강한 의지가 표명된 것 같지만, 이 경우도 실제로 함께 밥을 먹게 되는 장면에 이르게 되는 것을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친화적 매력을 주는 인사말로 다가오는 것은 ‘밥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특별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 한번 봅시다”라고 하거나 “언제 한번 연락합시다”라고 하는 것에 비해서 ‘언제 한번 밥을 먹자’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서로 공유하게 되는 일, 즉 ‘밥을 같이 먹는다’는 일이 암시하는 ‘상대와의 진한 일체감’, ‘상대에 대한 강력한 대화지향의 태도’가 각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제 밥이나 한번 합시다”라는 인사말대로 실제 식사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 장면을 상정해 보면 이 말의 친화적 효과를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이 잘 지켜지지 않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지, 이 인사말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상대가 믿음을 주는지 안 주는지 살피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내 진정성만 강조하여 ‘언제 밥이나 한번 하자’는 인사를 오늘도 남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빈말로서도 일정한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인사말을 버리지 않고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요컨대 ‘밥’이 소통이나 대화에 어떤 활성 효과를 불어넣는 힘은 크고 중요하다. 그런 뜻에서 밥의 힘을 새롭게 주목해야 한다. 둘째 인문학적 물음으로 바꾸어 보자. ‘밥’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밥을 먹어야 산다. 우리들의 생물학적 삶을 담보하는 ‘밥’의 가치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아니, 그 이상의 가치로 밥은 하나의 이데아를 이룬다. 밥은 소중하다. 배가 고플 때는 생각해 볼 틈도 없이 소중하고, 배가 부를 때에 밥에 관해서 명상을 해 보아도, 밥은 나의 욕구와 상관없이 소중하다. 이런 인식은 인간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과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아이들이 먹을 것(밥) 가지고서 장난치면, 철이 나지 않았다고, 철딱서니 없는 짓이라고 야단을 쳤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을 웃긴답시고 출연자로 하여금 밥에 얼굴을 처박게 하거나, 밥으로 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오면 어르신들은 혀를 찬다. 그뿐인가. 밥은 먹거리 그 이상의 가치, 영양 효과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그래서 이렇게 믿었다. 밥을 남겨서 버리게 하면 죽어서 아귀가 있는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밥은 어쩔 수 없이 사회성을 띠기도 한다. 보릿고개 허기 기운으로 가물가물하던 그 가난하던 시절에 “밥 먹었니?”, “밥 먹었느냐?”, “진지 드셨습니까?” 하고 오로지 밥으로만 인사나 안부를 묻던 관습이 바로 그러하다. 밥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던 때의 인사말이다. 지금도 경상도 사투리로 “니, 밥 묵었나?” 하고 말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밥 안부를 인사로 앞세우던 그 배경에는 밥 못 먹은 사람에 대한 밥 대접을(비록 한 덩어리의 찬밥이라 하더라도) 중요한 사회적 실천 덕목으로 여기던 우리네 가치관이 스며있는 것이다. 이처럼 밥은 사회적 나눔의 의미를 강렬하게 표상하는 것이었다. 움치고 뛰어도 우리는 밥의 영토를 벗어날 수 없다.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밥 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비루하게 여기는 것은 허영심의 일종이다. 밥은 삶의 굴레이기도 하지만, 밥이야말로 삶의 실존을 담보하는 매우 거룩한 조건이다. 누가 밥을 무시하랴. 그럴듯한 위엄도, 명예로운 의식(儀式)도, 강렬한 이념의 실천도, 그 어떤 거룩한 전쟁(聖戰)도, 그것을 막아내는 지혜로운 외교도, 아주 고상한 교육도, ‘밥’으로 지켜지는 삶이 있고서야 가능하다. 이렇게 밥의 총체성을 좀 너그럽고 따뜻하게 이해하려고 든다면, 즉 우리들 삶과 밥의 상관성을 좀 더 다채롭게 연결하고 이해하면서, 삶과 밥 사이를 상호 통섭의 생각으로 다가가면, 먹기 위해서 사느냐, 살기 위해서 먹느냐 하는 이분법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전자 안에 후자가 들어 있고, 후자 안에 전자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의 결정적 경지란 무엇일까. 밥으로 소통을 삼고, 밥으로 감사를 느끼고, 밥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경지이어야 하리라. 그러기 위해서라도 밥을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셋째 초등학교 4학년 때, 내 선생님은 사범학교를 갓 졸업하고 온 갓 스무 살의 총각 선생님이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가난한 시골 농촌학교였는데, 가정 형편상 중학교 진학을 마음에 품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 진학률이 30% 정도 되었을까. 선생님은 가끔 저녁 무렵에 어린 제자들을 당신의 하숙집으로 불러서 저녁상을 차리고 함께 밥을 먹었다. 그리고 책도 읽어 주고, 역사 이야기도 해주고, 수학공부도 가르쳐 주며, 우리의 공부 의욕을 북돋아 주었다. 가정 형편상 중학교 진학이 여의치 않던 우리에게 실력을 길러 어떻게 해서든 중학교를 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나는 공부도 공부지만 선생님과 함께 밥상에 앉아서 먹은 저녁 밥맛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하숙집 주인에게 별도의 부탁을 하여 어린 제자들의 밥상을 차리게 했을 것이다. 그 해 늦가을 선생님이 군대에 가던 날, 우리들 모두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런 이별 경험은 내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PART VIEW] 대학시절 은사이던 K 교수님은 당신의 ‘문학’ 강의가 종강되는 날, 대학생 제자들을 학교 앞 음식점으로 불러서 밥 한 끼를 사주셨다. 우리는 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화답을 드리며 그 밥을 먹었다. 선생과 제자 사이에 놓인 밥이란 무엇인가. 그 밥을 매개로 사제가 서로 자유로운 인격으로 친화하여 무언가를 나누게 하는 것이다. 훗날 제자들의 마음에 흘러갈 풍경이 아름다울 것이다. 그때 우리가 느꼈던 선생님에 대한 그 친숙함이란 얼마나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그날 선생님과 나눈 대화의 자유로움은 우리들의 자존을 저만큼 고양시켰다. 나도 선생 된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선배 교수 중에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노모에게 드릴 용돈과 제자들에게 밥 사줄 돈은 내 벌이에서 미리 떼어 놓아야 한다. 내가 아껴 쓰고 남으면 그때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될 것 같지만, 이 두 가지 일은 그렇게 해서는 좀체 이뤄지기 어렵다.” 얼마나 아름다운 실천의 지혜가 담긴 말인지. 제자에게 대접한 한 그릇의 밥은 나중에 열 그릇도 넘게 나에게 돌아온다. 제자에게 열 그릇의 밥을 되돌려 대접받았다는 뜻이 아님은 누구나 이해하리라. 제자를 위해 베푸는 밥 한 그릇, 그것이 스승과 제자의 일생을 아름다운 소통으로 묶어 주는 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노년의 스승과 장년의 제자가, 가르치고 배웠던 세월을 까마득히 뛰어넘어, 밥상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풍경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인생 전체로 보면, 이렇게 세월을 더해가며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제자는 오로지 스승의 복이다. 그 복을 감사히 여기는 스승은 제자에겐들 복이 아니 될 수 없다. 전통사회에서와는 다른 현대사회에서의 바람직한 사제 모델을 이렇게 만들어 갈 수는 없을까. 밥의 힘은 이래저래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