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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행복하게 살고싶은 모든 분께 * 1999년 8월 31일 적은 글을 2015년 4월 1일 다시 올립니다. 안녕 하십니까 ?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고, 누구보다도 잘 살 수 있는 우리 한국인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대하여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썼습니다. 부디 이 글을 읽어보시는 모든 분에게 저의 글이 도움이 되어 준다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잘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민족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잘살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나 자신의 뿌리가 바로 우리 민족이기 때문에, 내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민족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와 손재주를 갖고 태어났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이 너무나 좋아,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식물은 지구상의 어느 나라보다도 영양분이 풍부할 것이고, 그러한 동식물을 섭취하고 자라는 우리들의 두뇌와 손재주는 어느 민족보다도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조건도 있지만,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민족은 이 땅에 정착한 이후 점점 게으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 환경이 너무나 좋아서, 자연의 어려움을 극복할 생각은 전혀 안 했고, 그러한 마음이 점차 습관화가 되어 평소 커다란 위험한일이 닥치지 않으면 비상시를 대비하는 어떠한 노력도 안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큰 위기를 당해도 당할 그때 뿐 세월이 흐르면 얼마 안 되어서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맙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 땅에 정착한지 반만년이 되는 동안 우리는 외적의 침략을 928번 당했다고 배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범한 적이 없었다고 배웠습니다. 우리는 이런 민족의 특징을 학창시절에 "우리 민족의 특징은 은근과 끈기다.“ 그리고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의 정신을 지녔다.” 즉, 이 지구상에는 많은 나라가 있지만, 우리 조상들처럼 그렇게 외적의 침략을 많이 받아도 망하지 않고 버티고 온 나라는 우리민족밖에 없다. 과거에 커다란 왕국을 건설하고 천하를 지배하던 민족이 오늘날 지구상에서 흔적조차 없을 정도로 사라졌음에 반하여 우리는 그렇게 외침을 받고도 망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은 오직 우리 민족성의 특징이 은근과 끈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 배웠습니다. 학창시절 그러한 것을 배우던 그 당시는 우리민족성의 은근과 끈기에 대하여 항상 자부심과 긍지를 가졌습니다. 또 그렇게 민족성을 후손들에게 전해준 조상님께도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들은 점차 자라면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민족이 끊임없이 타민족의 침략을 계속 받은 것은, 은근과 끈기 때문이 아니고 게으른 생활태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외적의 침략을 한번 받았으면, 두 번 다시 침략을 안 받기 위하여 힘을 길러야 될 것인데,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지나고 나면 쉽게 잊어버리는 생활 태도를 점점 갖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민족의 민족성처럼 되어 오늘날 우리들에게 전해져 내려 왔습니다. 또 힘을 가지지 못 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할 생각조차 못했던 것입니다. 그저 힘을 어느 정도 비축하면 우리 민족끼리만 서로 힘을 겨루고 상대방을 정복하고 했지만, 다른 민족을 침략할만한 힘을 비축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것과 비슷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도 많이 발견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 땅에서 살아온 44년의 세월동안 한 번도 우리나라가 강국이 되어 본적이 없고, 강국이 되어 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을 못 보았습니다.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해야 하는데, 우리들은 그저 자기만 잘 먹고 잘 살아 보려고 애만 썼을 뿐, 나라를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I M F도 바로 이러한 우리 민족의 이기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앞에서 말한 이러한 우리 민족의 특성을 잘 알고 고칠 것을 고친다면, 우리는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부강한 국가를 갖게되고 국민 모두가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자기만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지금보다도 더욱 더 모두가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민 모두가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자연환경 조건이 너무나 좋아 열심히 노력을 안 해도 적당하게 살 수 있게 되어 있고, 머리와 손재주가 좋다보니 열심히 노력하여 잘 살려고 하지 않고, 잔머리를 굴려 잘 살아보려고 하는 게으른 마음을, 조상들 대대로 가져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지게 되었고, 오늘날 노력을 열심히 안 한 결과,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자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국민이 이기적인 생각만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이기심은 애국심과는 전혀 반대적인 생각이어서, 애국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국민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러한 것은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을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잘 분석하여 고친다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면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봅니다. 1. 우리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출을 많이 하여 경제를 발전시켜 외화($)를 많이 벌어 와야 합니다. 수출을 많이 하기 위하여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두 가지 조건이 가장 중요 하다고 봅니다. 즉, 제품의 가격이 저렴하거나, 기술력이 우수하여 우수한 제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제품의 가격이 저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임금이 낮아야 되는데,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이미 올라버린 임금을 낮출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임금과 더불어 물가도 같이 올랐기 때문에, 임금을 내린다고 해도 물가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근로자의 생활이 안정이 안 됩니다. 따라서 임금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면 그 다음 조건인 기술을 발전 시켜야 되는데,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술자를 많이 양성하여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기술자 양성과 가장 관계가 깊은 기술, 공업 교육은 모두들 관심조차 갖지 않습니다. 기술, 공업 교육이 잘 되려면, 어릴 때부터 기술, 공업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해야 합니다. 기술, 공업의 중요성을 잘 깨닫고, 각자가 갖고 있는 소질과 적성을 최대한 발휘 할 수 있도록 잘 키워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기술, 공업 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면 자연히 노하우 (KNOW-HOW)도 생기게 되고 그러한 것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점차 전문가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현재처럼 대학교 진학을 한 후에, 기술자를 키우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한 제도에서는 아무리 우수한 소질과 재주가 있어도, 대학교 진학을 못하면 쓸모가 없고, 대학교 진학을 위하여서는 전공부분인 기술, 공업보다는 도구과목에만 치중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입시에서 제외된 기술, 공업은 할 생각조차 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진학을 하였다 해도, 전혀 기술과 공업에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연구하겠습니까? 사람의 두뇌는 20세를 정점으로 점점 쇠퇴한다고 하는데, 한참 두뇌가 발달할 청소년기에는 전공공부를 안 하다가, 20세 이후에 갑자기 전공을 공부하여 기술자가 된다는 것은 기적과 가깝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늘날 기술자가 부족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것은 기술자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것이겠지만, 여기에서는 외화 ($)를 벌어들이는 것과 관계가 가장 깊은 기술, 공업의 예를 들어서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학교에서 서양의 신식 학문을 배웁니까? 그네들이 갖고 있는 우수한 기술을 연구하여 보다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고,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기 위해 그네들의 언어인 영어 등의 외국어도 배워야 하고, 수학, 과학도 배우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영어, 수학, 과학은 알고 보면 모두가 기술, 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요 한데, 즉, 서양학문을 배우는 목적은 기술, 공업을 공부하기 위해서인데 현재 우리나라의 기술, 공업 교육은 어떻습니까? 일반인이 알고 있기로는 "기술자 양성을 위해서 공고와 공대를 발전시키면 된다" 하는 데 대단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기술, 공업 교육은 공고 , 공대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중학교, 남자 인문 고등학교에서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차 공대 진학할 학생은 기술, 공업을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 하는데, 이런 학생들조차 대학교 진학관계로 기술, 공업 공부를 안 하고 있습니다. 뿐 만 아니라, 공대에 적성이 있어 공부를 하다가도 성적이 안 좋아 진로를 변경시키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공대에 진학한 학생들조차 소질과 적성보다는 성적으로 진학했기 때문에 기술, 공업의 기초적인 지식부족은 물론 중요성을 인식 못하여 참다운 기술자가 양성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학생들에게는 이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장차 공대에 진학할 학생들도 많을 것인데, 우리나라 제도에서는 여학생에게는 기술, 공업 교육을 받을 기회 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학생들도 교육만 잘 받으면 우수한 기술자가 나올 수 있을 것인데도 단지 잘못된 교육제도 때문에 ... 여고생들이 기술, 공업을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영어 수학, 과학은 무엇 때문에 배우는지? 지금 이 글을 읽는 어머니 중에서 어른이 된 지금, 깊이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학창시절 열심히 배웠던 내용이 지금 얼마나 실생활에 적용이 되는지 ? 지금 필요한 지식이 과연 무엇인지? 내 자녀들에게는 어떠한 공부를 시켜야 하는지?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했건만 왜 나라의 경제가 이렇게 어렵게 되었는지? 점점 갈수록 살기가 어렵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대학교를 졸업해도 취직 못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 그런데 비하여 어릴 때부터 자기의 소질을 잘 찾아 소득이 높은 사람의 원인은 무엇인지? ... 어머니들이 알아야 할 것은, 공부란 학교에서 배우는 도구과목이 전부가 아니라, 오히려 그 도구과목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전공 분야의 공부가 진짜 공부라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장차 사회에 나아가 직업현장에서 필요한 지식은 바로 이 전공분야의 공부이지, 도구과목의 공부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전공분야의 공부는 부모가 볼 때는 쓸데없는 장난 같고, 노는 것 같고, 괴팍한 생각만 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게만 비칩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공부란 학교에서 공부하는 내용만 공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잘 살려면 반드시 대학교 진학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생각이 기술자 양성을 막아 버렸고, 그 결과 오늘날처럼 국력이 약하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I M F라는 사태를 갖고 오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회에서는 기술, 공업적인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보다는 판, 검사, 변호사, 약사, 의사 같은 전문 직장인이 보수와 대우가 좋다 보니, 중, 고등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대부분 공부의 목표를 이런 곳에 초점을 두고 공부를 합니다. 이런 직종은 외화 ($) 획득과 거의 관계가 없는 직종입니다. 심지어 장차 수출과 직접 관계가 되는 공업을 전공할 공대에 다니는 학생들도 고시 공부를 한다는 사실은 이런 것을 증명하는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 국민들이 누구나 다 외화 ($) 획득에 신경을 안 쓰고, 그 결과 달러 부족이 되어 I M F 라는 경제 위기가 닥친 것이 아닙니까? 사실 우리에게는 I M F도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더욱더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가 기술을 개발 안 하고 있을 때, 인구대국인 중국과 인도가 경제 발전을 시킨다면, 우리는 앞으로 두 번 다시 수출을 하기 힘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도 더욱 어려운 경제 현실에 부닥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면서도, 사유재산을 부분적으로 인정하여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공업을 발전시키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이 무엇 때문에 공업을 발전시키려는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 때문에 우리에게 어떤 영향이 오는지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중국은 과거에 소련이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수정 자본주의를 받아들인다고 발표했을 때 강하게 비판한 나라가 아닙니까? 그런 중국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공업을 발전시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중국이 왜 공업을 발전시키려고 노력을 하겠습니까? 그네들 역시 수출을 하여 외화($)를 벌어들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중국은 지금, 홍콩의 경제 발전 위에 대만의 기술, 공업을 받아 들여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만약 중국이 공업화된다면, 우리는 수출에서 경쟁 상대가 안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할 때, 수출이 잘 된 이유가, 기술력보다도 값싼 노동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수출이 가장 안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기술력 부족도 있지만, 88 올림픽이후 임금이 엄청나게 올랐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중국은 앞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 조건 외에 값싼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은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 전에 하루빨리 기술, 공업에 소질이 많은 사람을 찾아내어 양성하도록 제도가 되어야 합니다. 즉, 기술, 공업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늦어도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기술, 공업을 익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기술, 공업 교육의 중요성을 잘 지도하여 그 분야의 소질과 적성을 가진 사람을 키우고 사회에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어느 무엇보다도 우대하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우리 민족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우수한 두뇌와 손재주를 잘 활용하여 잘살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 대부분의 국민들이 세금을 잘 안 내고, 간접세가 너무 많다. 우리 국민들이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라를 발전 시켜야 되고 나라의 발전을 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그 하나는 세금을 잘 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앞에서 말한 외화 ($)를 많이 획득하는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세금을 안내고, 나라의 발전이 안 된다면 그 피해는 전부 우리 국민에게 다 돌아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나라 발전의 근본이 되는 세금을 우리 국민 누구나 다 적게 납부하려고 애씁니다. 그 결과 국민들이 세금을 적게 내다보니, 세수가 적고 그러다 보니 정부는 변칙적으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서 간접세를 자꾸만 만들어내고 하는 악순환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단지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죄(?) 하나로 세계에서 제일 세금이 많이 붙은 비싼 기름을 써야 하나? 의료보험, 국민연금은 나라가 부강하게 되어서 국가가 무상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혜택이 되도록 복지 정책을 세워야 되는데, 반강제적으로 월급에서 떼야하나? 안 그래도 월급만 갖고는 생활하기도 고달픈데..... 이러한 모든 것은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 나 자신보다는 나라의 발전이 먼저라는 마음가짐이 부족해서라고 봅니다. 애국심이란 딴 뜻이 아닙니다. 단지 자기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 나라와 관계가 있을 때, 자기 자신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애국심이라 봅니다. 우리 국민은 이런 마음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 자연히 나라의 발전이 안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국민연금의 형평성을 고르게 하기 위하여 수입금을 성실하게 신고하라고 했을 때, 신고 금액을 볼 때 성실하게 신고한 사람들이 몇이나 됩니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도 밝혀지기까지는 거짓말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마음을 없애고, 애국심을 키우면서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자신이 현재 못산다고 생각이 들면 자신에게 지나친 이기심이 없는지? 또 애국심이 없지 않는지 잘 생각해본 후 자신이 받은 교육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자신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얼마나 실사회에 적용되었는지 ? 실사회에서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한국 사람이 못사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교육이 잘못 되어서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열심히 공부를 한 내용이 실사회에 적용이 된다면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바꾸어 말하자면,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2세들에게 실생활에 적용이 되는 공부만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세우자는 것입니다. 상급학교 진학, 그 중에서 대학교 진학은 자기의 전공부분을 공부하기 위한 과정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만약 자기의 전공을 갖기 위해, 대학교 졸업을 안 해도 될 것 같으면, 대학교 입학을 위한 공부보다는 전공공부를 하기 위한 공부에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 만약 우리 국민이 이렇게 살았다면 국가도 발전하여 지금쯤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대학교 입시 때문에 전혀 실생활에 적용되지 않는 도구과목공부에만 시간을 다 뺏기고 맙니다. 이 글을 읽어보시는 부모님들은 다시 한 번 더 조용히 생각해보십시오. 학창시절에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였던 내용이 지금 자기의 맡은 일에서 얼마나 적용되는지? 현재의 직장생활에서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현재의 직장을 선택할 때 소질과 적성에 따라서 했는지? 그렇지 못했다면 그것 때문에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는지? 이러한 생활을 또 그대로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지? 어떻게 하면 현재보다도 더 나은 생활을 자식들에게 물려 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지금 우리가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I M F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생각해보셨습니까? 그런 것은 단지 정치하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도 안 해본 것은 아닙니까? 또 이 글을 읽어보는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까? 저는 이런 말을 쓰고 싶습니다. 우리의 바지 호주머니는 오른쪽, 왼쪽 두 개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른쪽 호주머니에는 100만원의 돈이 있고, 왼쪽 호주머니에는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도 못했던 많은 돈이 있습니다. 10억이 될 수도 있고 100억, 1000억 상상도 못할 정도의 많은 돈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상 대대로 오른쪽 호주머니에 있는 돈만 쓸 줄 알았지, 왼쪽 호주머니는 만져볼 생각도 안 한 채 평생을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왼쪽 호주머니 한번만 만져 보려고 시도만 하여도, 그것을 발견할 것인데,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이것과 같이 지금까지 생각하고 살아온 큰 틀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하나둘 생겨서 잘 살고 있는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들이 특수한 경우라고만 생각하고,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해 왔다고 다 좋은 것, 최상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의 결과를 보고 여러 가지로 문제점을 분석하여,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문제점이었다면, 과감히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어야 지금보다 더욱 나은 생활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 단지, 현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새로운 생각을 갖는 것을 무척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치고 맙니다. 우리는 하루빨리 좋지 않은 현실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생각을 가져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살기 좋은 나라를 건설하고 그 속에서 행복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앞에서 말한 이외에 우리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 여러 분야에서 고쳤으면 하는 것을 몇 가지 적고 마치고자 합니다. 1. 도로에서 자기 차의 속도가 늦을 경우, 될 수 있으면 뒷 차에게 자리를 양보 위해 도로의 바깥쪽에 붙여 운행합니 다. 차선이 하나일 경우 제일 앞의 차가 늦게 달리면 그 뒤의 차들은 자연히 늦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차로 인하여 뒤따르는 차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합니다. 만약 그러한 운전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러한 실력을 갖출 때까지 도로에서의 운행을 자제합니다. 도로가 2개 이상일 때 늦게 가는 차량은 2차선으로 통행하고 1차선은 자기보다 고속으로 통행하는 차량에게 양 보합니다. 1차선이라도 소통이 잘 된다면 자연히 도로의 정체 현상은 줄어 들 것입니다. 도로의 한쪽이라도 쉽게 소통되어 정체 현상이 줄어들면 도로 전체의 소통도 원활하게 될 것입니다. 도로가 혼잡한 이유는 빠른 차, 늦은 차가 뒤엉켜 서로가 못 가기 때문입니다. 2.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것보다는 근본적인 원인을 잘 분석하여 두 번 다시 안 생기게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매일 같이 부정부패를 저 지르는 사람들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보는 우리 국민들은 누구나 다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도 그러한 원인을 잘 분석하고, 그 원인을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부정부패의 원인이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의 도덕성에도 관계가 되겠지만, 그것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 이 자기의 일에 자신을 못 가지다보니 금, 권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부정부패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상, 누가 그 자리에 가도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다 더 자기의 맡은 일에 자신을 가질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진 로를 결정하여, 전공 부분을 공부하도록 합니다. 즉, 어떤 사람이 자기의 일에 자신이 있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면, 부정 부패란 거의 소멸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 자기 자신만 잘 살려는 이기심을 하루 빨리 버려야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 민족은 가만히 두어도 잘 살 수 있는 민족입니다. 즉, 두뇌와 손재주가 좋기 때문에 약간만 노력해도 잘 살 수가 있습니다. 굳이 남에게 손해를 안 주어도, 자기의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잘 살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자기의 진로를 빨리 결정하여, 그 분야의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에 종사할 수 있고, 자기 일에서 어느 누구보다 우수한 실력을 갖춘다면,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 어, 남보다도 더 나은 생활을 하려고 자기의 이익만 챙기는 그러한 사람들이 감소할 것이고, 그러면 사회는 자연히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4 우리 국민이 어려울 때 그 기회를 틈타 이익을 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어려울 때는 조그마한 도움도 큰 힘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어려울 때 조그마한 어려움도 커다란 어려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 중에서 어느 누구, 또는 전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서로가 돕도록 노력해야 이 사회가 빨리 안정을 찾아서 다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어려움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불행이 자기의 행복이라는 식으로 치부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이 땅에 살고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또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의 그러한 행동을 언젠가는 다른 곳, 다른 방법으로 더 크게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잊 어서는 안 됩니다. 5. I M F 라고 근로, 기술자를 혹사해서는 안 됩니다. I M F의 원인은 앞에서 말했듯이, 기술자 양성을 소흘히 해서 그런 것인데, 마치 근로기술자가 노력을 적게 해서 그런 것처럼, 교묘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작업시간을 올리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어, 턱없이 시간을 늘렸습니다. 그러면서도 형편이 어렵다는 구실로 오히려 임금을 삭제하는 것 은 근로자가 한 직장에서 오래 못 있게 하는 이유가 되고 맙니다. 이러한 것은 단기적으로는 이익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기술의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고, 결국은 기업의 경영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자들은 이것을 잘 모르는지 , 단기간의 이익만 생각하느라고, 보호하고 우대하기는커녕 새로운 조건에서 일하기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일할 사람은 도처에 깔려 있다고 하면서.... 우리가 경제 위기에 닥쳐 있을 때나, 경제가 잘 발전 될 때나 항상 경제 발전의 원동력은 기술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경제 위기일수록 기술자를 양성해야 합니다. 기술자는 앞에서 이야기 한 것 과 같이 한곳에 오래 있어야 KNOW-HOW가 형성됩니다. 저는 기업체의 구조조정에서 제일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근로기술자의 보호라는 것입니다. 임원들은 구조조정을 하여도 기업의 발전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근로 기술자를 잃으면 기업의 장래는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항상 구조조정의 대상은 주로 근로자부터 시작됩니다. 이런 풍토에서는 기업의 발전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당장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는 먼 후일까지 생각하여 신중히 결정을 내리면 좋겠습니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우리의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것은 또 우리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6.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공부에 시달리게 하지 말고, 대학교 보내려고 목표를 갖지 마십시오. 우리 부모들은 누구든지 자녀를 행복하게 키우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게 온갖 배움의 장소에 내보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장차 학생들이 자라면서 한참 공부에 재미를 가져야 할 청소년 시기가 되면 공부에 한없는 싫 증을 내게 하는 원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청소년은 이시기에 한창 대학교 입시를 공부해야하기 때문에, 이러한 공부들은 원해서 하는 것보다는 마지못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는 더욱 더 공부에 싫증을 냅니다. 대학교는 어디까지나 자녀가 잘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과정이지 목표가 아닙니다. 자녀의 장래 희망직업이 대학교를 졸업 안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자녀를 꼭 대학교 보내려고 하지 마 시고, 차라리 직장에서 필요한 전공공부를 스스로 열심히 하도록 기르십시오. 그렇게 하면 자녀도 행복하게 잘 살고, 나라도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는 자녀를 잘 키우려고 노력한 모든 행동이 학생들에게 공부에 싫증을 내게 하는 주원인이 되고, 부모 와 자녀 간에 거리만 멀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7. 무슨 일을 하든간에 항상 일의 분석을 철저히 하고, 문제점을 잘 분석하여, 장래에도 후회 않는 일을 실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그냥 막연히 웃 불만 끄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버리고, 진행할 때 생기 는 여러 가지 문제점도 사전에 면밀히 잘 분석하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요 한 것은 항상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여 철저히 준비를 해 놓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새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8.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이 재임기간을 마친 후 하나같이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제 생각에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그렇게 된 이유가, 대통령이 되기 전의 대통령 되기 위한 공부가 부족했다고 봅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된 후에 맡은 일에서 제 능력을 다 발휘 하기는 어렵다 봅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된 사람이 자기의 맡은 일을 잘해보려고 노력을 해도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는 배우는 지식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우리의 교육이 잘못된 결과, 아무리 학력이 우수하고 좋아도, 실사회에서 적용되지 못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나라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대통령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어느 부서든지 다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자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과연 어느 정도의 자기 전공분야에서 전문 지식을 갖추었는지? 전공지식보다는 그것을 갖추기 위한 공부만 열심히 하지 않았는지? 9. 야외로 소풍가는 것은 좋지만 제발 자연보호를 꼭 했으면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어떤 논이든지 물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물이 깨끗했습니다.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80년대 이후 우리의 국토는 너무나 변해버려, 지금은 물이 깨끗한 곳이 별로 없습니다. 왜 갑자기 우리의 땅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더구나 90년대 접어들어서 자가용이 증가하다 보니, 행락 객이 늘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깨끗한 곳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물이 깨끗하고 환경이 좋으면 우리도 살기 좋을 것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 까요? 이러한 모든 일들은 애국심이 부족하고 남을, 후손을 생각 안 해서라고 봅니다. 우리도, 독일의 라인 강의 기적을 일으킬 때의 독일인의 마음, 즉, 비옥한 땅이 있어도 그 땅은 후손에게 물려주 기 위하여 아끼고, 바위산을 가꾸어 포도농사를 했다는, 그리고 많은 매장량의 석유가 있으면서도 후손들을 위하 여 아낀다는 미국인들처럼 후손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면, 우리의 자연도 깨끗이 보호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0. 내 개인만 잘살려고 하기 보다는 우리 국민들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뉴스를 보면 끊임없이 범죄가 일어납니다. 강도, 도둑, 사기꾼, 이런 모든 범죄는 I M F가 일어난 이후 더욱 숫자가 늘어만 납니다. 현재 상태라면 앞으로도 더욱 일어날 확률이 많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사건의 피해자라면 어떻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잡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난 원인을 잘 분석하여 그 원인을 없애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동기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빈부의 차가 너무 심하게 나서 생기는 거라고 봅니 다. 따라서 이러한 일이 안 생기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 누구나 다 잘사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합니 다.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비결은 이렇게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생각할 수 있으며 실천하기 쉬운, 간단 한 겁니 다. 오히려 이것이 생각과 실천이 어려운 것이라면, 우리 국민이 누구나 다 받아들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너무나 생각과 실천이 쉽기 때문에 오히려 더 거부당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주변 사람에게 교육제도 개선, 교통제도 개선, 세금 제도 개선 등의 생각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대 부분이 부정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하는 모든 사람이 머리가 우수하고, 유명한 대학교수, 전문가가 많은데 왜 그러한 생각을 못 했겠느냐고, 그것은 그렇게 해봤자 안될 것 같으니 생각을 안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한마디로 제 의견을 일축 해버립니다. 저도 제 생각이 다 옳다고는 안 하겠습니다. 단지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보다 더 행복한 생활을 하기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 를 연구한 결과, 이렇게 바꾸면 지금보다는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건의 할 뿐입니다. 일단 지금보다 더 행복한 인생을 원한다면 새로운 생각으로 개혁을 시도해 보십시오. 위와 같은 제 생각의 실천이 우리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마지막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을 하고 마치겠습니다. 행복하십시오. 모든 것은 마음속에 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sonedu 심재헌
우리는 공부를 무엇 때문에 하는가 ? * 2000년 12월 3일 적은 글을 2015년 4월 1일 다시 올림 존칭 략 우리의 자녀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가르치는 근본이유는 무엇인가 ?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대로 공부를 하면 잘살게 될까 ?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자녀를 교육시키는 사람이 있을까 ? 공부란 무엇일까 ? 공부는 왜 해야 할까 ? 공부란 과연 괴로운 일일까 ? 공부를 할수록 재미가 붙고 열심히 할 수 있는 공부는 없을까 ? 나는 공부의 가장 큰 목표는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본다. 행복하게 잘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돈이다. 따라서 공부는 다른 목적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 한 것 중의 하나가 돈을 잘 벌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돈을 벌이는 것에 앞서서 사람답게 사는 것도 중요하다. 즉 인성 교육이 바로 된 다음에 돈을 잘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성은 효도, 애국심, 공중도덕 등 공동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인간의 도리를 말한다. 인성이 바로 된 다음에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돈을 벌어 들여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돈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국내에서 통용되는 원화(₩) 화폐이고 또 하나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달러($)화폐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해외에서 $를 벌어 와야 하고 그 벌어들인 $를 가지고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들을 외국에서 구입해야 한다. 만약 $가 없다면 우리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없다. 오늘날이 조선시대 대원군 때처럼 쇄국정책으로 일관하고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 거의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국민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기술 공업 제품 즉 휴대폰, 냉장고, 에어컨, 텔레비전, 컴퓨터, 자동차, 시계 각종 오디오, 비디오 등 생활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제품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하여 들어온 부품 및 원자재로 만들었거나 완제품을 수입하여 쓰는 경우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없어서는 안 될 에너지원인 석탄 석유도 역시 그렇다. 이러한 제품들을 수입하여 오려면 ₩는 소용이 없다. 따라서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누군가가 $를 많이 벌어 와야 한다. 문제는 그 $를 어떻게 벌어 오느냐 하는 것이다. $를 벌어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관광을 발전시켜 $를 벌수도 있고, 스위스처럼 은행을 빌려주어 $를 벌수도 있고, 제품을 만들어 팔아 $를 벌수도 있다. 그러면 냉철하게 생각해보자. 우리의 입장에서 가장 많은 $를 벌어들이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길 밖에 없다. 이러한 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고 세계 어느 나라든지 산업 혁명을 하였다면 다 같은 생각일 것이다. 제품을 잘 수출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 한 가지가 꼭 필요하다. 제품의 가격이 저렴하거나 아니면 제품의 질이 우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가격의 저렴함은 기대하기 어렵다. 즉 우리가 경제개발을 시작할 당시부터 88년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는 임금이 낮아 어느 정도 수출이 되었으나 그 이후 노사분규 갈등으로 말미암아 엄청나게 높아진 임금 때문에 우리의 수출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다. 그러면 제품의 질은 향상 되었는가 ? 제품의 질이 우수하려면 많은 우수한 기술자를 배출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였는가 ? 그 답은 아니다 이다. 우리의 교육제도는 우수한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은커녕 우수한 실력을 갖춘 기술자들도 그 기술을 없애도록 하는 소질 말살의 교육제도이다. 이렇게 기술자를 양성은커녕 말살시키는 교육제도이다 보니 어느 누가 $를 벌어온단 말인가 ?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경제 위기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고, 현재의 대책으로 보면 장기적으로 볼 때 또 더한 경제위기를 가져오지 않을까 두렵다. 여기서 나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과목의 목적들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조선시대 우리조상들이 배웠던 학문을 구학이라 한다면 우리가 오늘날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문은 신학 또는 양학이라 한다. 이러한 양학을 배우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서양의 발달된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생활에 활용하고 나아가 그들보다 더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과목들은 직접적으로 그러한 목적에 필요한 학문이 아니라 그러한 학문을 하기 위한 기초를 기르는 도구과목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도구과목은 자기의 전공방향에 따라서 필요할 수도 있고 전혀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초도구과목의 공부를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교육은 바람직한 교육이 아니다. 도구과목의 공부를 일률적으로 강조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도구과목의 공부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만 있으면 된다. 즉 전공에 관계없이 우리가 TV나 신문 또는 각종 매스컴에서 제공하는 정보만 과목별로 기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국가에서 필요한 사람은 전공지식을 갖춘 사람이지 도구과목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 아니다. 도구과목의 지식을 아무리 갖추어도 전공부분의 지식을 갖추지 못한다면 나라는 절대로 발전 할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과목별로 구체적인 공부의 목적을 보면 국어는 우리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남에게 나의 의견을 말할 줄 알고, 글로 표현할 줄 알고, 남의 말을 듣고 이해할 줄 알고, 남의 글을 보아서 이해 할 줄 알면 된다. 더 이상은 알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고문, 현대문, 시 같은 것은 그 분야를 전공하지 않을 사람은 일생을 통하여 몇 번 사용할지 의문이다. 이러한 것은 괜히 배우는데 많은 시간 낭비만 되고 실용성이 없다. 한문도 실용성이 없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배울 필요는 없다. 수학은 세 가지의 목적이 있다. 하나는 생활에 필요한 간단한 산술계산이고, 또 하나는 서양의 기술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기초적으로 필요한 간단한 지식이고, 마지막으로 수학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고차원적인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간단한 산술지식만 있으면 되고, 기술 문명을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과학에 필요한 수학이나, 고차원적인 수학은 해당되는 사람만 공부를 하면 된다. 현재처럼 일률적으로 모든 학생에게 수학을 강요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공부에 염증을 느껴 자신이 갖고 있는 소질조차 사장시키고 만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는 모든 학생이 배울 필요는 없다. 외국어는 우리가 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거나 수출을 할 때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외국어는 꼭 필요한 사람만 공부하고 모든 학생들이 배울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외국어는 배우기가 쉽지 않아 불필요한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도 성과도 거의 없을뿐더러 실용성이 없다. 자기 전공에 따라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외국어를 굳이 강요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사회 곳곳에서 잘못된 교육제도로 말미암아 오히려 이러한 것이 학문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니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사회의 목적은 우리가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일반 상식들을 배우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러한 일반 상식은 우리의 주변에서 각종 매스컴이나 정보 매개체를 통하여 받아들이는 정보에 대하여 이해를 하면 되는 것이다. 사회 중에서 국사의 공부 목적은 우리 조상들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살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를 잘 분석하여 결과가 좋으면 계속 전승 발전시키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오늘날 우리들 생활과 비교하여 좋지 못한 것은 고치는데 있다. 세계사는 우리들과 비교하여 어떤 점이 좋은지 안 좋은지 잘 분석하여 좋은 것은 잘 분석하여 우리도 그네들 못지않게 좋은 결과를 갖고 오도록 하여야겠고 좋지 못한 것은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배우는 과목이다. 과학은 서양의 우수한 기술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필요한 과목이다. 즉 서양의 기술 문명은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과학적 원리를 적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실사회에 사용하고 있는 각종 기술제품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러한 제품들을 만들 때 적용된 이론을 배우는 것이 과학이다. 이러한 과학은 이론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기술과 결합이 되어야 그 학문의 목적에 부합된다. 즉, 과학은 과학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기술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필수기초이다. 기술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이러한 외국어, 수학, 과학을 기초로 하여 외국의 우수한 기술 문화를 받아들이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기술과목도 어디까지나 기술 공업을 하기 위한 도구 과목이다. 단지 도구과목 중에서 가장 종합적인 도구 과목일 뿐이다. 이러한 기술 공업이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를 벌어들일 수 있는, 우리로서는 유일한 과목이다. 학교에서 배운 기초적인 기술교육을 바탕으로 하여 저마다 자기의 소질에 맞는 전공을 택하여 공부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체육, 음악, 미술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순화 시켜주고 휴식을 하는데 도움을 주면 된다. 이러한 과목이 부담이 되어 학생의 공부의욕을 떨어뜨린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종합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교과목은 전공 공부를 하기 위한 도구과목으로서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도구과목은 사람에 따라서 필요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으니 일률적으로 배울 필요는 없다. 이러한 도구과목이 부담이 되어 전공과목을 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두뇌가 우수하고 손재주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경쟁을 하여 $를 벌어들이도록 하여야겠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편안히 달러($)를 벌어올 수 있도록 뒷받침이 되어 주어야 한다. 이렇게 교육을 실시한다면 공부도 재미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인생도 즐겁고 여러 가지로 좋을 것이다. 왜 이렇게 공부를 하지 않고 미래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현재의 교육제도를 택할까 ? 지금부터 우리자녀들을 행복하게 키우려면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우리의 자녀들이 현재 제도대로 공부를 하면 인생이 행복하게 되겠는지 내가 말 한대로 하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무엇보다도 우리 부모들 자신들이 생각해보면 된다. 학교 다닐 때 공부가 재미있었는지? 열심히 노력하여 행복하게 잘되었는지? 현재 자기의 직업이 만족한지? 현재의 삶의 질에 만족하는지? 학창시절에 배운 지식이 얼마나 쓰이는지? 하루 빨리 생각을 바꾸고 교육제도를 바꾸어 우리의 자녀들을 행복하게 키우자. 자녀가 행복하면 우리도 행복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대학교 입시를 없애야 한다. 대학교 입시를 실시한다 해도 현재처럼 도구과목으로 실시할 것이 아니라 전공과목으로 실시해야 한다. 교육부 정책에서 대학교 교육에 관한 모든 것을 제외 시켜야 한다. 대학교 교육에 필요한 모든 것은 대학교에 맡겨야 한다. 아울러 대학교에 관한 모든 예산을 없애고 그 예산중의 일부만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투자하면 한국교육의 앞날은 무한한 발전이 있을 것이다. 끝으로 대학교 에 관한 것이 변화한다면 그것 때문에 생긴 여러 가지 제도는 자연히 없어지겠지만 자연히 안 없어진다면 그로 인하여 생긴 여러 가지 병폐 즉 논술고사, 수행평가, 학생부, 봉사활동, 내신성적, 듣기평가, 보충수업, 자율학습, 등 모든 것이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현재 실시하고 있는 교육개혁은 전면 수정해야하고 7차 교육과정도 다시 한 번 더 검토를 해야 한다. 나의 생각이 너무나 비약적인 것이 많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볼 때 결코 헛소리는 아닌 것 같다. 나의 글을 잘 읽어보고 나와 의견이 같다면 실천을 하여 배움의 기쁨보다는 고통 속에 빠져 있는 많은 우리의 자녀를 구해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이 다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sonedu 심재헌
요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욕을 많이 먹는다.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관련해 졸지에 세금 도둑으로 몰리고 있다. 연금은 빚이고, 미래 세대의 원망이며, 그로 인해 연금 수혜자인 공무원은 세금 도둑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이 정의의 사명인 것처럼 휘두른다. 언론은 국민연금과 비교하며 공무원들이 지나치게 특혜를 많이 받고 있다고 몰아붙인다. 정부와 언론의 영향을 받은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혈세 운운하며 연금을 줄여야 한다고 떠든다. 공무원연금의 성격도 모르고 액수도 모르면서 국민연금과 비슷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턱대고 더 내고 덜 받는 대안을 제시하고, 그 수치까지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억울한 면이 많다. 평생 국민의 부름을 받고 일하는 직업 공무원으로서 세금 도둑의 누명을 쓰는 것이 억울하다. 심지어 흥분을 잘하는 사람은 공무원 월급도 세금으로 줘서는 안 된다고 막말을 한다. 국가가 공무원을 채용해서 부려 먹었으면 임금을 줘야 한다. 그 임금은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다. 정당한 집행도 거부하는 것은 곤란하다. 연금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은 퇴직금이 없다. 대신에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애초에 국민연금과 다를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이 통과 될 때도 낯 뜨거운 질타를 받았다. 법이 통과된 언론은 기사 제목으로 교사를 예시했다. 신문들은 ‘교사가 10만원 받으면 과태료 5배’ 등으로 제목을 달고 법안 통과를 보도했다. 덧붙여 ‘논란이 일었던 법적용 대상에는 언론사 직원과 사립학교 교원도 포함하기로 최종 결정했다’며 교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법이 통과되어 청렴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법이 우리 사회를 청렴하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는 공감한다. 하지만 교사의 비리는 새 발의 피다. 그렇다고 교사의 비리를 옹호할 뜻은 없다. 우리 사회를 좀먹는 엄청난 비리들이 고위 공무원 등이 많은데 피라미 같은 교사들을 언급하며 법안 설명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 기사를 보면 그동안 교사의 비리가 만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교원만 깨끗하면 청렴한 사회가 된다는 인상이다. 이렇게 어수선한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은 한술 더 떴다. 어이없는 동영상까지 만들어 촌지 근절 대책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10만 원 넘으면 파면이나 해임도 가능하고, 촌지 받은 사실을 신고하면 최고 1억 원의 보상도 준다는 것이다. 김영란법보다 더 무섭다. 홍보 동영상은 더 기가 막힌다. 학부모와 교사가 돈을 주고받는 장면에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오버랩 된다. 여기에 연출한 교사의 모습은 탐욕스러움 그 자체다. 사실 학교에 금품을 주고받는 촌지 문화는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졌고, 학부모나 교사들도 인식이 많이 변했다. 그런데도 이러한 정책을 발표하고, 과장된 행위를 하는 동영상을 만드는 것은 서울시교육청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교직 윤리 헌장’이 발표되고, ‘공무원으로서 청렴의 의무와 공무원의 행동강령의 규정’ 등을 발표할 때는 마음이 착잡했다. 교직 사회를 잠재적 촌지 수수 집단으로 매도하거나, 비리의 주범인양 취급해 씁쓸한 기분이 든다. 공무원연금 개혁도 마찬가지다. 꼭 개혁이 필요했다면 정부가 솔직히 입장 표명을 했어야 한다. 평생을 국민의 봉사 자리에서 일해 온 공무원들을 세금 도둑이라며 망신을 주기 시작한 것부터 잘못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직은 직업 선호도 1위에도 든다. 2011년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교사는 OECD 국가 중 가장 우수한 교사 집단으로 꼽는다. 교육 강국으로 알려진 핀란드도 상위 20%가 교단에 서지만, 한국은 5% 인재가 교단에 선다. 이런 것이 우리 교육의 힘이고, 국가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우수한 젊은이들이 교직을 희망하고, 교단에 들어와 그들의 열정을 태울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나서야 한다. 교사들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미래의 희망인 어린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다면 결코 학생이 행복할 수 없고, 국가의 미래가 불행해진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몰아치는 정책은 교육력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교사가 교직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을 가질 때 우리 교육은 한층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최소한의 노후 보장 시스템도 빼앗아가고, 비리 집단으로 몰아 자존심마저 짓밟는다면 우리 교육의 미래는 아득해질 수 있다. 정책 실행을 위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보다 묵묵히 일하는 당사자들의 상처부터 생각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꿈알에 꿈을 담아요꿈을 꼭 이룰거예요 용인 제일초등학교 진로교육을 위한 비전스쿨 운영 비전선포식 용인 제일초등학교(교장 홍정표)는 3월 31일(화) 비전 선포식을 통해 학생들의 꿈을 키우는 활동을 가졌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날 비전 선포식은 자신이 가진 비전의 가치를 탐색하고 실천 계획을 발표하며 신천의지를 다졌다. 나의 꿈을 자랑하는 “꿈자람 카드”는 학교에 전시하였으며, 일 년동안의 나와의 약속을 담은 “드림 편지”는 제일 꿈알(타임캡슐)에 일 년동안 품었다가 겨울방학식 때 다시 열어보게 된다. 홍정표 교장은 “제일초등학교의 비전 선포식은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좀 더 구체화하고 친구들 앞에서 다짐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A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특수학교 학부모가 자녀가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했다며 교장은 물론 담당교사와 보조강사 및 공익근무자까지 11명을 상대로 10억여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학교 측은 1년 가까이 곤욕을 치렀다. 결국 학부모의 오해와 고의성이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무혐의 처리됐지만 교사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학부모는 자녀의 가방에 소형 녹음기를 숨기고 교사 등 학교 관계자들의 말을 모두 녹취, 증거로 제출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B 학교 C 교사는 지난해 학교에 휴직계를 냈다. 첫아이를 임신했던 그는 수업 중 한 학생이 느닷없이 머리채를 잡아 밀치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유산했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이 실수로 한 것이니 참아야 한다는 말만 했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학부모로부터 정식 사과도 받지 못했다. 경기도 D 초등학교 특수학급 교사 E 씨의 경험은 충격적이다. 그는 수업 중 한 학생이 갑자기 동료 학생을 폭행하는 것을 보고, 이를 뜯어말리다 온몸에 멍이 드는 폭행을 당했다, 덩치가 큰 가해 학생을 힘으로 막을 수 없었던 E 교사는 피해학생을 온몸으로 껴안고 바닥에 뒹굴었다. 힘으로 당해낼 수도 없었지만, 가해학생을 때릴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은 피해학생을 몸으로 감싸는 것뿐이었다.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는 특수교사의 교권 이처럼 특수교육현장에서는 학생들의 돌발행동으로 교사의 신변에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 특수교사는 기간제 교사를 포함 1만 7992명. 법정 교사 확보율은 61.1%로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 공약에서 교사 정원을 대폭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지난해 476명을 늘린 것이 고작이다. 반면 특수교육 대상자는 지난해 말 현재 8만 7278명. 매년 2,400여 명 씩 증가하는 추세다. 장애아 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지는 데 비해 특수교사 교권 보호와 정원 증원 등 지원대책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반 학교와 달리 장애아를 대상으로 하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 보니 사안이 발생해도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우발적으로 하는 행동들을 모두 교사 폭행으로 몰고 갈 수도 없는데다, 장애를 가진 학생이 교사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했다 할지라도 장애에서 비롯된 우발적인 것이었다면 이를 폭행으로 볼 수 없다는 인식이 많아 교사들로서는 하소연도 못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특수교사들의 겪는 정신적·육체적 피해는 일반학교보다 더 심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또 학교 측 역시 이를 교권침해 등 폭력 사건으로 처리할 경우 학부모들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을 우려, 가급적 교사의 희생을 요구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도가니'이후 커진 불신, 무조건 참고 견디는 교사들 특수교사들의 가슴앓이는 이뿐만이 아니다. 학부모들의 예민한 반응도 교사들을 힘들게 한다. 극히 일부의 사례지만 교육활동 과정에서 학생이 조금만 상처가 나거나 일탈행동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다툼이 생길 경우 ‘폭력교사’로 내몰려 학부모들의 항의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서울의 한 특수학급 교사 F 씨는 “장애 정도가 심한 학생은 수업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지도하는 과정에서 자칫하다간 체벌교사로 몰리기 쉬워 조심스럽다”고 털어놨다. 그는 “학생이 다쳤다면 교사에게 책임을 묻게 되지만 반대로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당했을 때는 학교안전공제회에서 치료비 받는 게 고작”이라며 “폭행 등 교권침해를 당해도 무조건 참고 견뎌야 하는 등 두 번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교사들은 ‘도가니’ 사건 이후 학부모들이 학교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 같다면서 부모로서 가슴 아프고 불안한 심경은 이해되지만 많은 교사들이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학무모들 반응은 다르다. 장애학생이 일으킨 폭력이 기질적인 과잉행동이나 장애 때문에 나타난 경우, 이를 가해자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장애학생의 과잉행동에 대한 원인은 무시한 채 결과만 가지고 폭력으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경기도교육청은 특수교육대상자와 특수학교 교사들 간 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전담하는 ‘특수교육분쟁솔루션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장애학생의 부적응행동으로 인한 가·피해자 간 교육 분쟁을 해결할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중재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시행 1년이 지난 지금 ‘특수교육분쟁솔루션위원회’에 접수된 사건은 단 2건. 그것도 장애학생과 교사와의 폭력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폭력이 줄어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폭위’를 통해 자체적으로 해결한 경우가 많아 실제 접수 건수는 극히 적었다”며 “올해부터 장애아동 심리 치료 등 적극적인 예방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한 건도 없었던 장애학생의 교사폭행 중재 요청[PART VIEW] 장애학생들의 특수교사에 대한 폭력은 의도성이 없거나 매우 낮다. 또한 그 원인에 있어서도 장애 유형에 따라 천차만별이듯 일반 학생과는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비록 의도성이 없거나 원인이 다르다고 해도 교사들에 대한 물리적 폭력이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를 구조적인 측면에서 해결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교육부도 “장애학생의 문제행동으로 교사들이 상처를 입은 경우 치료비를 보상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 같은 일이 줄어들 수 있도록 교사와 학부모, 학교 측이 공동으로 노력하는 예방대책 마련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나사렛대학교 류재연 교수는 “지속적인 폭력 행사가 나타나서 교육적인 중재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별도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해 해당 특수교육대상자를 부모와 함께 일정한 의료 및 중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동방학교 송재민 교장은 “장애학생 보호를 위한 인권교육 및 제도적 정책은 물론 특수교사의 교권보호에 대한 법률적 기준도 마련돼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폭력을 행사한 장애학생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 때문에 피해를 보는 다른 학생들의 인권과 교사들의 교권 역시 보호받아야한다”면서 “문제학생에 대한 약물치료 등 학교의 행정력을 강화하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는 4월 20일는 장애자의 날이다. 차별 없는 교육을 목적으로 제정된 지 35년을 맞았다. 장애 학생의 인권과 특수교사의 교권이 함께 보호받는 지혜를 모야야 할 때다.
우여곡절 끝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2015년 3월 3일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고질적인 공직자의 부패와 비리를 예방하고,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며,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것이므로 그 취지는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동안 공무원들이 금품 등을 받아도 직무관련성이 없다며 방면되는 뉴스에 혀를 찼던 국민들에게 이제 대가성 없이도 공무원들이 돈 받으면 처벌된다는 것은 시원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김영란법이 국회에서 심의 과정을 거치면서 공무원뿐만 아니라 언론인이 들어가고, 사립학교 교직원이 들어가고, 나중에는 사립학교 임원까지 순식간에 포함된 것에 헌법을 공부해 온 필자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립학교 교직원과 임원들에 관하여 한번 생각해보자. 그들은 공무원이 아니라 민간인이다. 아무리 사립학교 교원이 공립학교 교원과 비슷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한다고 해도, 전자는 사인에 의하여 임면되고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고, 후자는 공무원으로서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다(헌법 제7조 제1항). 이 차이는 매우 본질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전자는 ‘사립(私立)’인 것이다. 사립학교는 왜 국가 재정지원을 받게 되었을까? 아마 국회의원들(특히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은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사립 초·중·고가 공립학교처럼 운영되고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으므로 교육공무원에게 부과하는 책임을 그들에게도 부과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립학교는 ‘사립’인데도 왜 국가의 그와 같은 재정지원을 받게 되었을까? 그 원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그 재정 지원금의 명칭은 사립학교가 스스로 자립하지 못했다는 취지인 ‘재정결함보조금’이 맞는가?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과거사를 지니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사립학교 수는 2011년을 기준으로 4년제 대학의 78.7%, 전문대학의 93.2%, 고등학교의 41.5%, 중학교의 20.5%를 차지한다. 국가는 1960년대 말부터 중학교 의무교육을 위해 필요한 공립학교가 턱없이 부족하게 되자, 강제적으로 사립학교에게 무시험으로 배정된 학생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수업료는 동결시키라는 조치를 행하였다. 1974년부터는 고교 평준화 정책으로 사립학교에게 학생 선발권을 폐지시키고, 수업료도 공립학교만큼만 받도록 강요하였다. 그 결과 수업료 수입이 막히고 적령인구가 많아져 시설은 더 확충하여야 하는 사립학교로서는 운영난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국가는 자신의 정책에서 비롯된 사립학교의 재정손실을 보충하는 돈을 사립학교에게 지급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 돈은 국가의 의무교육과 평준화 정책에 따라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교육비 지원금인 것이지, 사립학교가 번창하라고 주는 돈이 아니었다. 스스로 설 수 없게 된 사립학교, 누구의 잘못인가? 그러므로 사립학교의 입장에서는, 너희가 국가의 지원금으로 유지되고 있으니 공립학교 교직원에 대한 규율은 마찬가지로 너희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논거에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강요된 공교육 제도의 틀 안에서 많은 사립학교가 자율성이 도태되고 공립학교화 되었고, 현 교육 환경에서 이제 평준화 정책 전으로 돌아가 수업료가 자율화 되고 학생선발권이 주어지더라도 많은 사립학교가 스스로 자립하기 어려운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이는 결국 사립학교를 장려하고 발전시키는 정책이 우리나라에서 근본적으로 부재하였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국가는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실현시킬 의무의 주체로서 스스로 국공립학교를 많이 만들어서 그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사립학교를 강제로 동원하여 그 의무를 보조케 하는 편법을 써오면서 사립학교에 대한 재정 지원을 해왔던 것이다. 한편 모든 사립학교가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사립초등학교와 사립대학교의 운영비는 정부로부터의 아무런 지원이 없으며, 자율형 사립고나 특목고도 마찬가지이다. 김영란법에 포함된 금품수수 금지의 범위 이러한 국가의 사립학교에 대한 재정지원 배경을 인식하면, 국가의 재정지원을 근거로 사립학교에 대한 규제를, 재정지원에 관계된 감독과 무관하게, 포괄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합리성을 지니지 못한다. 그러면 왜 김영란법이 주목되는 것일까. [PART VIEW]우선 김영란법이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위법행위’를 금지한다는 점에서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각 급 학교의 입학?성적?수행평가 등의 업무에 관하여 법령을 위반하여 처리?조작하도록 하는 행위”는 금지되지만(제5조 제1항 제10호), ‘법령을 위반하도록 하는 청탁’은 김영란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자유로이 허용되었다고 볼 수 없다. 김영란법의 영향력은 ‘금품수수 금지’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ㆍ후원ㆍ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 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안 된다.” 또, 그 이하의 금액에 해당하는 경우는 “직무와 관련하여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이를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중요한 예외가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수수한 금품 등이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것이라면 전혀 금지되지 않는다. 무엇이 ‘사회상규’인가. 형법 제20조(정당행위)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하고, 대법원은 이를 “국가질서의 존중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국민일반의 건전한 도의적 감정에 반하지 아니한 행위”라고 한바 있다. ‘사회상규’는 하나의 법률용어로서 자리 잡아 왔지만, 위 형법 규정이 일단 위법한 것으로 판단된 범죄를 놓고 사정 상 위법성을 면해줄 수 있느냐(위법성 조각사유)를 따지기 위한 것인데 비하여, 김영란법의 사회상규는 바로 처벌 여부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좀 더 명확한 개념이 사용될 필요가 있었다. 다양한 금품수수 형태와 내용을 불명확하고 예측가능 하지 않은 기준으로 형사 처분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필연적으로 법의 자의적 집행과 형평성 문제를 동반한다. 이러한 불명확성 문제가 김영란법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규제 대상이 너무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포괄성은 나아가 친족 범위에까지 미쳐, 과연 가족이 돈을 받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에 미친다. 입법과정에서 공무원 등의 배우자로 규율대상 가족이 한정되었지만, 과연 그것이 합리적이거나, 형평에 맞느냐 하는 의문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한때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었다는 우리나라의 예절과 덕성이 나날이 훼손되어, 공직의 청렴도와 순수성이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는 못 미칠지언정 부정부패는 없는 정도여야 할 텐데, 수치심을 유발하던 공직 풍토마저 땅에 떨어진 듯 극기야 김영란법이 항생제로 고안되어, 투입되었다. 이는 결국 많은 공직자들에게 과거에 학교에서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반영한다. 최근에는 극기야 법률로서 인성교육을 강화하기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법치가 아니라 예와 덕으로써 사회질서를 추구하는 문화에서 살아왔다. 그것은 법 만능주의는 결국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요령과, 타인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는 태도로 연결되고, 사람들의 정서를 피폐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식이 오늘날의 고도화된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타당하기 어려우나, 필자는 적어도 우리 교육자들이 김영란법에 상관없이 학생들에게, 성적이 좋고 나쁘건 간에,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며, 이를 바탕으로 각자가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에게 떳떳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교육해 주기를 부탁하는 바이다. 프로필 _ 김명웅 연세대학교 법대 졸업 서울대학교 석박사 과정 수료(헌법학) 미국 워싱턴주립대학 법학박사 과정 수료 (전)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부장연구관) (현)한국사학정책포럼 공동대표
너희가 남긴 것들 드넓은 세상을 향해 크고 아름다운 꿈을 꾸며 힘찬 날갯짓을 준비하던 너희들을 차가운 바닷속에 묻어 버린 어른들은 밥을 먹어도 허기가 지고 마음속 채워지지 않는 커다란 슬픈 구멍 하나 짊어지고 그렇게 너희가 떠난 그 뒤의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단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차가웠을까? 얼마나 목 놓아 외쳤을까? 얼마나 애타며 기다렸을까? 너희가 떠난 후 어른들은 그토록 당연하던 내 하루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내 옆의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내가 행여 마음으로라도 행한 잘못을 돌아보게 되었단다. 허물 많은 이 땅의 어른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고 오늘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옷깃을 여미게 한 너희들은 영혼의 어버이였고 영혼의 스승이었음을 ------------------------------------------------------------------------------------ 2015년 4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 일주기를 맞는다. 할 수만 있다면 2014년 4월 16일 이전으로 시간을 돌려, 헐거워지고 허술해진 이 나라 곳곳의 빈틈을 꼭꼭 메워 미처 피지도 못한 너희들의 꿈을 그리고 웃음을 다 되돌려 놓고 싶다. 하지만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우리가 과거로부터 얻을 것은 미래를 살아갈 삶의 교훈뿐이다. 교훈 없는 기쁨은 순간의 화려하고 달콤한 축제로 끝나지만, 가르침 가득한 슬픔은 또 다른 성장을 위한 멈추지 않는 삶의 원동력이 된다. ‘세월호’라는 차가운 배 안에서 차마 피지 못하고 사라져간 꽃 같은 너희들이 지금 우리 남겨진 대한민국 어른들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 우리 어른들이 울음을 그치는 일이며 원망을 그치는 일이며 사회를 향한, 지도자를 향한 불신의 언어를 멈추는 일은 아닐까! 너희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을 하나하나 헤아려보고 되짚어보며 우리의 옷깃을 여미고 새로운 다짐과 실천을 통해 너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 살아있는 자의 의무임을 기억하는 이 땅의 어른들이어야 하리라. 너희들의 죽음이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지금 우리가 목을 놓아 눈물 흘리는 일보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지탄하는 일보다 우선해야 할 일임을 기억하며 교사인 내게 세월호가 남긴 교훈을 풀어 헤치려 한다. 내 배는 지금 아름다운 순항 중인가? 세월호에 선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이 있었다면 학교라는 배에서 삶의 바다라는 학생들의 항해를 책임지고 있는 나는 교사라는 선장이다. 내 배는 지금 아름다운 순항 중인가? 학교라는 배에 승선한 그들의 영혼을 건강하게 성장시키기 위한 책임에 소홀하지 않은 나인가? 그들의 지력과 지혜를 무럭무럭 알차게 성장시키는 책임에 나의 시간과 땀방울을 기꺼이 내어주는 선장인가? 쉽게 숫자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 정신과 지혜의 성장이기에 때론 이런저런 교육 현장의 어려움들을 앞세우며 학생들의 성장에 대한 선장의 책임을 내려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니, 세월호의 선장을 탓하기조차 두려워진다. 그와 함께 무책임한 선장의 행위에 대해 선장 개인의 직업윤리에 대한 책임만을 비난하고 벌주기에 앞서 이젠 개인의 반사회적 문제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연대적 책임에 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스쳤다. 군부대의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 묻지 마 칼부림 사건 등 내가 무심히 넘긴 이웃집 아이의 외로움이, 사회 부적응이 어느 날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분노의 칼을 휘두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노의 칼끝에서 최고의 정성을 들여 키워낸 내 아이가, 사랑하는 내 가족이 상처를 입고 있다. 개인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사회적 문제로 양산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준석이라는 선장의 부도덕한 소양이 불러온 엄청난 참사를 통해 우리는 배워야만 한다. 그리고 뼛속까지 기억해야만 한다. 아픔으로 소리치고 있는 내 이웃의 문제를 그네들만의 문제로만 치부하며 외면하는 대신에 이웃의 문제를 내 가족의 문제처럼 지켜보고 함께 고민하고 염려해주는 것이 사랑하는 내 가족을 지키는 또 다른 지혜라는 것을. 분노의 칼끝은 누구를 겨누고 있는가 각종 보도를 통해 접하게 되는 이 땅 젊은이들의 가슴 아픈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교사로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한 사람의 일생에서 절대적 시간 양을 차지하는 학교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무심히 넘긴 어느 학생의 마음의 상처가 지금 오늘 사회에 대한 분노의 결과를 초래하진 않았을까?’에 대한 가슴 찔림이 있어서다.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무심히 던진 상처의 말 한마디가 지금 사회의 어느 곳에서 곪아 터진 상처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아닌지 가슴이 섬뜩해진다. 또한 배의 침몰을 직감하고 죽음의 위기를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질서를 지키고 선내에서 기다리라는 선원들의 안내방송을 그대로 따른 학생들이 오롯이 희생자로 남았음은 더욱 마음을 서늘하게 하였다. 양심을 저버린 선장의 어처구니없는 지시와 안내를 너무나 잘 따라준 대가가 너희들의 귀하디귀한 목숨 값이 되었음에 남은 자들의 안타까움은 더욱 크기만 했다. 그 안타까움 뒤에 남은 것은 물음이었다. 삶의 연륜과 경험을 앞세워 전하는 어른들의 충고가 가지는 허점은 정녕 없는 것일까? 어른의 경험과 지혜라는 명목으로 너희들의 삶의 틀을 지나치게 결정하고 구속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우리 어른들이 선택하지 않은 노란 숲 속의 또 다른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어른들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제는 옳다고 굳게 믿었던 일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너희들 마음 깊숙한 곳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너희들의 눈높이에서 너희들을 존중하며, 어른으로서 먼저 경험한 삶의 지혜를 안내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소중한 너희들의 목숨 값으로 미생의 어른이 가슴으로 얻은 소중한 교훈이다. 그리고 너희들이 남긴 더 긴 깨달음은 다음의 시로 대신하며 다시 옷깃을 여민다. 더는 슬픔의 눈물이 아닌 희망의 결의로 너희들이 못다 한 이 세상을 채워가는 삶을 살아야겠노라고.
얼마 전 통번역학과 출신 대학 동기와 만나 영어 학습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적이 있다. 그는 “점수를 받기 위해 이 공식 저 공식 외우다 보니 이게 영어인지 수학인지 하는 의문이 든다”면서 “한국말로 할 때 계산하면서 말하지는 않는데, (영어는) 공식을 외워서 계산하게 하니까 부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이런 공식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러나 이는 영자신문기자로서 외국인들과 인터뷰를 하고, 영어 기사를 쓰는데 한 번도 장애요소가 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교과서에 밑줄을 치고, 소위 말하는 ‘공식’을 외우던 그 시간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점수 따기 훈련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해당 언어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양질의 인풋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대다수 중고등학교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간과된다. 영어수업의 큰 목적은 시험에서 최대한 많은 점수를 따내는 것으로 변질된 지 오래이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영어 사교육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과감히 도입된 EBS 수능 연계 정책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암기식 학습법을 고착화시켰다. 고3들의 상당수는 수능 연계 EBS 교재를 1년 내내 공부하고, ‘영어공부’가 아닌 ‘문제풀이’ 훈련을 받는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윤 모양은 고3 시절, “학교 수업은 아예 다 EBS로 했다”고 말했다. 문제풀이식 수업 외에 공교육에서 회화 과정을 준비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이다. 윤 양은 원어민 교사 부족, 회화 수업을 하기엔 많은 학생 수 등의 한계로 참여의 한계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영어 ‘스펙’의 허상 이런 식의 단기간에 점수 올리기는 대입 이후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대학원 진학, 취업, 승진 등 ‘영어 스펙’이 필요한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기묘한 것은 이 과정에서 ‘영어실력’과 ‘영어 스펙’은 분리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영어가 필수적인 업무에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토플, 토익 등 ‘영어 스펙’은 기본으로 요구된다. 토플과 토익은 더 이상 영어실력을 알려주는 잣대가 아닌 그저 그 사람이 영어교육에 일정 수준의 시간과 돈을 소비했음을 알려주는 인증 도장에 불과한 것이다.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는 이모 대리는 처음 입사 당시 토익 점수를 제출했으나, 다른 직무로 전환할 때 영어 면접과 작문을 봤다고 한다. 즉, 기업체에서도 토익 점수가 반드시 영어 실력을 보증해주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교육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는 중고등학교, 더 나아가 초등학교 시절까지 이어지는 경쟁적인 문제풀이 풍토 탓이 크다.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고광윤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는 것은 영어공부가 아니라 시험공부”라고 잘라서 말한다. 그는 “학원은 기출문제 빼내서 어떤 식의 문제가 나오는지, 영어를 못 해도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우리나라 사람들 토플, 토익 점수는 뻥튀기가 크다”고 지적한다. 방향 잃은 영어교육[PART VIEW] 영어를 “제대로 못 쓰는 것” 역시 문제이다. 서울의 한 대학 영어교육과의 최 모 교수는 “사람들은 논리적인 사고와 영어교육은 별개라는 인식을 많이 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영어 말하기 능력 외에 비판적인 사고력이 필요하다”면서 중고등학교에서 입시에 없다는 이유로 토론 수업을 간과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영어를 배웠지만 영어를 쓸 수 없다, 영어를 말할 수는 있지만 영어를 통해 자기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지는 못한다…. 이는 영어 사교육에만 연간 6조 원이 넘는 돈을 퍼붓는 대한민국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전문가들은 영어 매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고 교수는 영어 학습에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양질의 영문 서적 혹은 영자신문을 많이 읽는 것을 추천하면서 “아이만 똑똑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영어학습을 위한) 환경을 만들고 지속해주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영어가 단순히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되는 도구라는 점이다. 언어 습득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문제 풀이에 치중한 영어 공부로는 당장 필요한 점수를 얻을 수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학교 시험용 영어공부, 토익점수용 영어공부에 추가로 실제로 영어를 쓰기 위한 공부를 따로 하는 촌극이 계속해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
과학교육의 목표는 소수의 전문가인 과학자나 기술자 양성이 아니다. 운동선수가 되든, 가수가 되든, 평범한 회사원이 되든 삶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과학적 소양(scientific literance)’을 지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적 소양은 과학 내용을 읽고 쓸 줄 아는 정도의 ‘과학의 문해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미국과학진흥협회은 ‘프로젝트 2061’에서 과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의 특징으로 첫째 과학·수학·기술이 한계를 지니고 있는 상호 연관된 인간의 활동임을 인식하고, 둘째 과학의 중요한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며, 셋째 자연 세계에 친숙하고 자연계의 다양성과 향상성을 모두 인식하고, 넷째 과학적 지식과 과학적 사고방식을 개인과 사회를 위하여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 지식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수행할 수 있느냐’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과학적 소양’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과학 기술 문명의 미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초·중·고 과학교육은 ‘모든 이를 위한 과학(science for All)’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학교현장에서 과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현장에서 학습된 과학교육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가장 먼저 과학교사가 과학과 교육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교수하여 학생들이 실생활에서 과학적 소양이 발현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다행히 새롭게 바뀐 교육과정에서는 세심한 교수-학습이 이루어지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할 때부터 학생들이 과학적인 지식 생성 활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나의 단원을 ‘재미있는 과학’, ‘과학 탐구’, ‘과학 더하기’, ‘과학 생각 모음’의 네 단계로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매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정 구성 단계부터 세심하게 제시된 지도 요령 개정된 초등학교 3~4학년 군의 과학 교육목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 발달단계를 고려한 활동 중심 과학 수업으로 과학 탐구에 필요한 기초 탐구능력을 기른다. 둘째, ‘물질과 에너지’ 분야에서는 물체의 무게, 물체와 물질, 액체와 기체, 소리의 성질, 자석의 이용, 혼합물의 분리, 거울과 그림자, 물의 상태 변화의 기초개념을 이해한다. 셋째, ‘생명과 지구’ 분야에서는 지구와 달, 동물과 한 살이, 동물의 생활, 지표의 변화, 식물의 한살이, 화산과 지진, 식물의 한살이, 지층과 화석의 기초 개념을 이해한다. 또한 초등학교 3~4학년 군은 관찰·분류·측정·추리·예상·의사소통 등 기초 탐구 기능 향상을 위한 활동을 개념 이해만이 아니라, 개념이 실생활에서 구현되어야 비로소 성취 기준을 이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초등학교 5~6학년 군의 교육목표는 다음과 같다. [PART VIEW]첫째, 기초 탐구 과정과 함께 통합 탐구 과정이 포함된 활동을 통하여 과학 탐구에 필요한 탐구능력을 길러야 한다. 둘째, ‘물질과 에너지’ 분야에서는 온도와 열, 용해와 용액, 산과 염기, 물체의 빠르기, 전기의 작용, 여러 가지 기체, 렌즈의 이용, 연소와 소화의 기본 개념을 이해한다. 셋째, ‘생명과 지구’ 분야에서는 날씨와 우리 생활, 식물의 구조와 기능, 태양계와 별,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 지구와 달의 운동, 생물과 환경, 생물과 우리 생활, 계절 변화의 기본 개념을 이해한다. 즉, 5~6학년 군은 3~4학년의 기초 기능은 물론 문제인식?가설설정?변인통제?자료변환?자료해석?결론 도출?일반화 등의 통합 탐구 기능이 보다 중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3~4학년 군과 마찬가지로 탐구 활동은 실생활에서 구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정리해보자면, 교사는 학생들의 과학적 소양을 키우기 위해 기본적 개념 이해와 탐구 활동은 물론, 학습이 이루어진 후 이와 같은 활동적 소양이 생활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교사는 학습 내용 성취 기준도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탐구활동에서 요구되는 기능과 통합적 사고 과정도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다 세심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이미 현장에서는 많은 교사들이 이를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교사의 호불호에 따라서 과학 활동 내용이 달라지고, 어느 한 분야에 치우쳐서 지도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학생의 과학적 소양 향상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따라서 모든 학생들이 과학과 성취 기준에 도달하고, 과학적 소양을 향상할 수 있도록, 교사들은 교수-학습활동이 현장에서 치우치지 않고 잘 이루어질 수 있게 노력하는 길 밖에는 없다. 물론 행·재정적 지원 역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사진 _ 한국교총 제공 한국교총이 오는 5월 인천에서 열리는 세계교육포럼을 앞두고 미국 교육부와 양대 교원단체를 방문, 국제 교육교류 협력 기반 조성 및 유대 강화를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안양옥 교총 회장은 이번 방미를 통해 “현재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세계교원단체(EI)의 혁신을 위해 미국 교원단체에 공조를 제안,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의미를 전했다. 국내 교원단체장이 미국 교육부 및 교원단체들을 연쇄 방문한 것은 57년 만에 처음 있는 일. 안 회장은 이번 방미 기간 중 버지니아주 콜번 런 초등학교, 마샬 고등학교, 조지메이슨 대학교 등을 찾아 미국 교육의 흐름과 고민도 파악했다. 지난 설 연휴 기간 5박 6일의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온 안회장은 지난달 서울시교육청 출입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방미 결과를 설명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제 교총은 교육부, 교원노조와 경쟁적 협력 체제를 구축해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높이고 교육한류 확산에 공헌할 필요가 있다”며 “교원 전문직주의 회복을 위해 교총이 국제 교육외교 무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영란법 대상에 사립교원이 포함된 것에 대해 외국에서는 이해를 못할 것”이라며 “부패를 척결하자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교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것은 자긍심 하나로 헌신하는 교사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겨줬다”고 지적했다. 안 회장은 “이번에 미국에 가보니 교육부 장관 직속으로 교원단체 담당관실을 신설해 교원의 사기진작 방안을 강구하고 교원단체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려는 모습이 인상적 이었다”며 “우리나라도 교육부가 교원단체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한다”고 밝혔다. 교사 해외파견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안 회장은 “교사들이 다른 나라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교사들이 개도국에 진출해 봉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그는 “우리 교육 시스템이 상위 5%에 드는 수재인 교사들을 둔재로 만들고 있다”며 “미국 자원봉사단체인 평사봉사단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우수한 교사들을 세계로 내보내는 교원 한류 프로젝트를 수립해야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3년 전 동남아 석유부국인 브루나이에 가보았더니 필리핀 사람들이 교사를 하고 있더라”고 상기한 뒤 “우리 교사가 뒤질 이유가 없다. 서독 광부, 베트남 국군, 중동 노동자에 이은 제4의 인적 수출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사 선발 때 지금보다 두 배 정도 더 뽑아 이들을 미국은 물론 해외에 1~3년 동안 파견하거나 현지 교사로 임용하면 임용 적체 등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안 회장은 또 “일선 중·고교를 방문해 보니 미국은 무상급식이라는 개념이 없이 학생들은 모두 돈을 내고 점심을 해결하는 구조였다”며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돈을 써야지 무상급식 등에 대규모 재원을 투입해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세계교원단체(EI)와 함께 5월 인천에서 열리는 세계교육포럼(WEF)에서 법외노조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안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교육 행사에서 우리나라 교육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국내 문제를 불거지게 하는 것은 안타깝다”면서 “행사는 행사대로 하게 놔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이번 미국 교육계 방문 의미는. “미 교육부는 장관 직속 교원단체담당관실을 신설해 양 단체와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있다. 교총 성격의 NEA, 전교조 성향의 AFT도 정책 방향과 이념, 회원 성향이 다르지만 서로 폄훼하거나 편가르기를 않고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고 있어 큰 시사점을 얻었다. 이와 달리 우리는 대립적 삼각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국제적 위상 강화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제 교총과 전교조도 건전한 경쟁관계로 나가야 하고, 대립·견제를 넘어 교원을 위해 협력하는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아울러 정부와 교원단체도 공생공존의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 올해 인천 송도에서 세계교육포럼이 열리고 교총은 2016년 아세안교육자대회를 유치했다. 교육 한류를 주장한 교총의 준비는.“이미 교총은 국제협력본부를 설치, 대규모 국제 행사에 준비하고 있다. 교육부도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대외 역량을 키우고 교육 세일즈에 나서야 한다. 얼마 전 황우여 교육부 장관을 만나 그래서 교육부에 국제협력실을 신설하고 국제교직정상회담에 교육부와 교총이 함께 참여할 것을 요청했다. 이번 주미대사관 방문 때는 2015 세계교육포럼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공식 초청장을 미 교육부 장관에게 보낼 것도 요구했다. 정부와 교원단체가 국제 대회 유치를 계기로 교육 한류 확산에 적극적인 역할을 나누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 57년 만에 NEA, AFT 등 양대 교원단체를 방문했다. 뭘 느꼈나. “미국도 교원들의 교원단체 가입이 줄어 고민이더라. 특히 초임 1~3년 교원들의 이탈이 심각한 수준이다. 계약직이다 보니 보수와 근무조건이 열악한 탓이 크다고 들었다. 이 때문에 NEA는 지난해부터 조직 강화 차원에서 교원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신설, 운영하고 있다. 1,300여 명의 교사가 각 주 전역을 돌며 150개의 워크숍을 제공, 조직운동가 양성에 나서고 있다. 아울러 NEA와 AFT는 초임교사의 연봉을 올려서 이직을 최소화하는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3년 정도만 지나면 연금이 안정적이라 저지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우리가 연금 개악을 저지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수 교원 유입이라는 인사정책적 측면과 교원의 특수성을 반영한 ‘올바른 연금개혁’을 통해 한 단계 발돋움하는 교총을 만들 것이다.” - 방미 중 교총의 ‘인실련’과 같은 ‘인성교육연맹’(CEP)을 방문했던데.“우리의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성격인 인성교육연맹(Character Education Partnership)은 1993년 창립, 우수 인성학교 선정 지원, 교원 연수 프로그램 제공 등에 앞장서는 민간단체다. 진정한 전문직주의는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맥을 같이 한다. 인실련과 프로그램, 자료를 공유하고 인성교육의 국제적 확산에 협력하는 MOU도 맺을 것이다.” - 미국 교육의 고민은. “콜빈 런 초등학교와 마샬 고등학교, 조지메이슨 대학교 등을 살펴보면서 그들도 우리처럼 공교육의 사교육화 문제로 고민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방과후학교에 사기업이 진출해 공교육의 입지를 흔드는 우리와 닮아있었다. 미교육부나 교원단체도 이 문제가 정규교사를 축소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더라. 또 교원평가와 관련해서는 교원 스스로 평가를 하는 National Board of Teachers Certification을 통해 자기평가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1년 과정으로 교원 스스로 자기평가를 한 후, National Board에서 사전 우수교사로 평가된 동료교사가 교사의 자기평가를 토대로 자격증을 받을 능력과 자질의 심의를 거친 후 자격증이 주어지는 방식이다. 교총이 주장하고 있는 자기평가(self-reflected appraisal)와 같은 것으로 우리 교육정책에도 적극 반영해야 할 것으로 본다.”
따뜻해진 날씨에 운동장에 부쩍 학생들이 늘었다. 계단에서 운동장까지, 축구공으로 거리낌 없이 장난치는 남학생들의 생기 있는 모습에서 아슬아슬함이 느껴진다. “교외활동이 많아지는 계절이면 교사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 안팎에서 아이들의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4월은 겨우내 웅크렸던 몸을 펴고 추위에 하지 못했던 체육활동과 더불어 체험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신백현중학교도 올해 첫 체험학습을 앞두고 있다. 세월호의 아픔, 전화위복의 계기 돼야 벌써 1년이 지났다. 단 한명의 학생도 돌려보내지 않고 삼켜버렸던 세월호의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꽁꽁 얼었던 땅은 질척함을 남긴 채 다시 꽃을 피우고 있다. 사건 이후 많은 학교들이 계획했던 수학여행과 체험학습을 전면 백지화하는 등 후폭풍이 거셌다. 신백현중은 학교마다 몸을 사리고 무조건 피하려고만 했던 체험학습을 지난해 10월, 경기도에서 제일 먼저 재개했다. “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을 원하는 학생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소진형 교장은 다양한 교육경험을 무조건 제재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심 끝에 체험학습 과정을 준비 단계부터 새롭게 바꿨다. 전교생 또는 학년별로 실시하던 기존의 야외학습과 달리 모든 것을 학급별로, 학생들 스스로 계획해 결정하게 하였다. 아울러 전문가를 초빙해 전 교원을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한 후, 학급별로 2명의 교원이 동행하여 안전을 책임, 관리하도록 했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학생들은 반별로 관심사에 따라 스스로 정한 현장학습 프로그램에 더욱 큰 흥미를 느꼈고, 적은 인원을 통제하는 교사들의 책임감도 커져 오히려 안전에 더욱 신경 쓰게 됐다. 반신반의 했던 학부모나 교사, 학생들 모두 만족한 체험학습이었다. 소 교장이 추진한 방법은 이후에 교육청에서 정한 현장체험학습 안전 매뉴얼과 거의 흡사했다. 이와 같은 특별한 노력으로 성남 신백현중은 2015년 안전교육 연구 시범학교로 선정됐다. 재미있는 안전교육, 실질적인 안전대책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 교육시스템과 교육과정 전반에 관한 총체적인 반성과 전환을 모색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에 교육부는 최근 7대 안전교육 표준안을 발표했다. 7대 영역은 생활안전, 교통안전, 폭력·신변안전, 약물·인터넷 중독, 재난안전, 직업안전, 응급처치 등으로 그 아래 25개의 중분류, 52개의 소분류로 구성돼 있다. 체계적이지만 무척 광범위한 내용이라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교과수업만도 벅찬데 안전교육에 얼마나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까. “과학 시간에 전해질에 대해 배우는 단원이 있습니다. 우리 몸에 전류가 흐를 수 있는지 간단한 실험을 하는데 이때 재난 안전 수업도 곁들여 진행합니다. 몸에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낙뢰가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시키고, 아울러 대피요령도 알려주는 것입니다.” 교과부장 윤경림 교사는 따로 시간을 내 안전교육을 하기보다 과목마다 수업내용과 안전교육을 연계시키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학생들이 안전교육을 지루해 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1등 7만원, 2등 4만원, 3등 3만원 등 상금을 걸고 반 대항으로 실시한 안전캠페인에 학생들의 호응이 높았다. 김재우 학생(2학년)은 “안전구호, 피켓 만들기 등 캠페인 기획부터 모든 준비를 우리들 스스로 하면서 안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며 ‘안전캠페인 학급별 경연대회’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매월 4일은 신백현중 안전점검의 날이다. 이달은 봄철 산불 예방 운동을 하고, 전교직원 대상 안전교육 및 심폐소생술을 실시한다. 반복을 통한 체득만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실질적인 안전교육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교장선생님과 하이파이브, 친구와 프리허그를 소 교장은 등교시간, 교문에 서서 아이들과 하이파이브로 인사를 한다. 처음엔 쭈뼛거렸던 학생들도 이제는 교장 선생님께 직접 건의사항을 말하는 등 친근함을 느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험 보는 날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초콜릿 음료 나눠주기’,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캐릭터 인형 프리허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매일 아침 등굣길 풍경이 떠들썩하다. “이것이 바로 소통입니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파악하는 것이 학생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아침맞이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한 소 교장의 말이다. 2015 안전교육 연구 시범학교로 지정된 성남 신백현중학교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08:35 a.m. “따르르릉” “감사합니다. ○○초등학교 교감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당신들 말이야 왜 학교에서 돈을 내라는 안내장을 많이 보내는 거야? 도대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가 없잖아? 못사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말라는 거야?” 술을 지긋하게 드신 목청 큰 목소리의 학부모 민원전화로 아침을 연다. 세상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학교를 상대로 풀어가는 학부모들이 늘어나는 모습이다. 아마도 담임선생님께서 새 학기에 시작하는 방과후학교 신청 안내장을 내보낸 모양이다. 작년에는 학교 담장의 장미덩굴이 보행자의 통행을 막는다며 ‘학교에서 왜 담장에 장미를 심느냐? 다른 걸로 심든지, 아니면 뽑아버리던지 하지 않으면 관할 구청에 민원 넣겠다’라고 지역 주민의 협박성 항의전화를 받기도 하였다. 늘 있는 학부모 민원전화지만 오늘처럼 아침부터 술주정을 하는 경우에는 정말 속이 상한다. 한바탕 소란과 함께 해맑게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하기 위해 교문으로 나선다. “효도하겠습니다!” 청정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다보면 언제 그러했냐는 듯 좋지 못한 일들은 한꺼번에 사라진다. 그래도 아이들이 있어 행복한 순간들이다. 09:00 a.m. 이 시간에는 교장선생님, 행정실장과의 미팅이 있다. 이번 주 1주일간은 올해 학교예산에 대해서 좀 더 숙고할 사안에 대해 협의하기로 되어있다. 물론 1월 초에 2015학년도 학교예산에 대한 조정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교장선생님께서 새로 부임하시고 나서 당신의 교육철학 및 학교경영철학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추가 조정이 불가피하다. 오늘은 교무부 예산에 대해서 집중 점검하는 날이다. 학사달력, 학교교지, 동아리발표회, 학습준비물, 졸업식 등의 항목에 대해 대폭 조정이 이루어졌다. 올해 새로 부임한 행정실장은 다행히도 학교예산에 대한 통찰력이 좋고 예산처리절차에 대해서도 상당히 합리적인 편이어서 교장선생님 또는 나와의 의견 조정이 예년보다는 원활한 편이다. 간혹 깐깐한 행정실장과 더 깐깐한 교장선생님이 서로 만나면 중간에 끼어서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하는 건 교감이다. 가끔 나는 내가 박쥐 또는 고래 싸움에 끼어든 새우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끼어들지 않으면 살얼음판 같은 교장선생님과 행정실장의 분위기를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교장과 행정실과의 줄다리기 뿐만은 아니다. 교장과 교사들과의 줄다리기에서도 가운데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하는 것 역시 교감이다. 힘들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간사함이 아닌 중용의 박쥐, 철갑의 등을 가진 새우다’라고. 10:00 a.m. 오늘은 어떤 공문이 왔을까? 부지런히 업무포탈을 검색한다. 어김없이 어마어마한 양의 공문이 줄을 서있다. 여기저기 공문을 분류하고 지정한다. 공문게시에 올라온 수많은 공문들도 꼼꼼히 살펴본다. 보고해야 할 것, 선생님들께 공지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눈에 힘을 꼭 준채로 살펴본다. 11:15 a.m. 접수공문도 확인했으니 이제부터는 결재 올라온 것을 처리할 시간이다. 물론 하루 종일 컴퓨터에 앉아 결재하지만, 매일 아침에는 특히 전날 상신된 보고공문이나 내부결재 건을 유심히 살펴보고 처리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출장을 나가시는 선생님도 무려 18명이나 된다. 오늘 오후에는 학교가 절간처럼 고요할 것 같다. 12:00 p.m. 시끌시끌한 급식실. 줄을 길게 늘어선 채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 배식을 받는 아이들, 조심스럽게 식판을 들고 이동하는 아이들로 급식실은 마치 개미집처럼 느껴진다. 작년에 의자를 새로 교체한 이후로 급식실 소음도 많이 줄고 아이들도 쉽게 의자를 밀고 당기는 모습이다. 담임교사들의 지도하에 학급별로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이 흐뭇하다. 2:27 p.m[PART VIEW] “교감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너무 죄송해서 어쩌죠?” “네, 무슨 일이신지 어서 말씀해 보셔요.” 5학년 학급으로 담임을 맡고 있은 김 선생님이 얼굴이 파래져서 허둥지둥 교무실로 들어온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저희 집에 급한 사정이 생겨서 제가 학교에 나오기 힘든 상황입니다. 내일부터 학교에 나오기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하죠? 정말 죄송합니다.” 학기 초라서 여기저기 신경 쓸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이제 겨우 한시름 놓은 학년배정, 업무배정에서 뜬금없이 문제가 발생했다.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을 잠시 접어두고 사정을 들어보기로 한다. “좀 전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마침 집에 있던 큰 아들이 급히 병원으로 모시고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뇌출혈이라고 하더래요. 일단 급히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상태인데…. 아직은 위급한 상태여서 앞으로 좀 지켜봐야 알 수 있대요. 집안에 달리 병간호할 사람이 없어서 제가 옆에서 간호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짧은 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이는 김 선생님의 모습에 나도 마음이 착잡하였다. “네, 선생님. 그렇군요. 속상하시겠어요. 학교는 걱정하시마시고 얼른 병원부터 가보세요. 나머지 일처리는 차차 추스르면 되니까요. 어머님이 얼른 쾌차하시기를 바랍니다.” 거듭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며 김 선생님이 교무실을 나서기가 무섭게 나는 얼른 5학년 체육 전담을 맡고 있는 정 선생님을 호출한다. 부랴부랴 정 선생님께 임시담임의 역할을 맡기고 5학년 부장에게 기간제 체육전담교사를 구할 때까지만 동학년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한다는 말을 전달했다. 3:05 p.m 급한 불을 끄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6교시가 끝났으니 학생들도 하교를 했을 시간. 학교를 둘러보기로 한다. 교무실에서 내려다본 학교운동장은 인조잔디를 걷어내고 마사토로 다시 작업 중이라서 삭막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단 공사 중인 운동장을 비롯해서 학교 주변을 둘러보기로 생각한다. 얼른 공사를 마쳐야 체육시간이 수월해질 텐데…. 아이들이 운동장이 없어서 축구도 못하고 체육시간도 여의치 않은 것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중앙현관을 나오자마자 우선 눈에 들어오는 건 본관 건물 앞에 있는 줄지어 늘어선 60여개의 야생화 화분이다. 물론 곧 따뜻한 봄이 오면 새싹도 돋고 꽃도 피겠지만, 아직은 추운 날씨에 온통 황토빛 마른 잎뿐이다. 그러고 보니 화분들도 색이 바래서 모두 제각각이다. 당장 다음 주에는 화분 페인트칠부터 시작해서 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듯하다. 주차장 쪽을 둘러보니 배수로 덮개가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다. 요것도 한 번 손을 봐야 할텐데…. 내일 아침 회의 때 교장선생님께 상의를 드리고 여기저기 손 볼 것들은 조치하기로 마음먹는다. 수첩에 재빨리 기록을 하고, 그 옆에 있는 구름사다리, 정글짐 등 놀이 기구를 둘러보기로 한다. 작년에 안전기준에 통과했긴 하지만 그래도 미심쩍어 한 번씩 흔들어보며 꼼꼼히 살펴본다. 이제 교실을 둘러볼 차례. 3개의 건물에 걸쳐 있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둘러보는데 15분이나 걸린다. 중간 중간에 선생님들과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교무실로 돌아오면 25분~30분은 족히 걸린다. 그래도 심심치 않은 것은, 요즘 스마트폰에 만보(10,000보)기 기능이 있어서 학교를 둘러볼 때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면 몇 걸음을 걸었는지 체크가 가능하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지. 오늘은 벌써 7825보나 걸었다. 학교를 둘러보고 서둘러 교무실로 향한다. 3:32 p.m. 이크! 회의시간이 지났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교육과정협의회 날이다. 다음 달에 있을 월중행사를 얼른 출력하고…. ‘교무부장이 건네준 중요 협의사안 목록을 어디에 두었더라…. 그래, 여기에 있었네.’ 얼른 교감수첩과 함께 챙겨서 거울 앞을 쓰윽 지나며 매무새를 확인한다. 넥타이는 삐뚤어지지 않았는지, 머리는 헝클어지지 않았는지, 감색 양복 어깨 위로 보기 싫은 비듬이라도 떨어지지 않았는지 여기저기 훑여보고 회의실로 향한다. 이렇게 시간이 촉박할 때에는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학교에서 채신머리없이 뛰어다닐 수도 없고 회의실이 있는 5층까지 성큼성큼 올라간다. 오늘 회의의 주요 주제는 학교운동장 공사에 따른 한마당체육대회 실시 여부와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몇몇 부장은 학교의 전통에 따라 1학기에는 힘들더라도 2학기에는 체육대회를 해야지 않겠냐는 의견이고, 몇몇은 2학기에는 동아리발표회가 있으니 올해는 체육대회를 취소하면 어떻겠냐고 한다. 의견은 분분한데 교장선생님께서는 체육대회는 운동장공사가 끝나는 대로 서둘러서 실시하고, 2학기 때는 계획대로 동아리발표회를 하면 어떻겠냐고 한 술 더 뜨신다. 부장교사들은 교장선생님의 강력한 말씀에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이다. 결국 내가 총대를 메고 나선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맞기는 합니다. 매년 근로자의 날에 부모님들과 함께 체육대회를 하는 것이 참으로 뜻있는 일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운동장 공사는 5월 30일쯤에 끝난다고 하니, 근로자의 날에는 불가능하고, 또 6월이 되면 날씨가 더우니 체육대회 준비기간에도 너무 덥고 힘들 듯합니다. 차라리 운동장 완공 기념으로 연습이 필요 없는 달리기, 줄다리기 등으로 학년별로 간단하게 체육대회를 하면 어떨까요, 교장선생님?” 이 말을 들은 부장교사들은 얼굴에 잠깐 화색이 돈다. 물론 교장선생님께서는 표정이 밝지는 않으시지만 내 말에 수긍하시고 모두에게 의견을 물으신다. 대다수의 찬성에 힘입어 체육대회에 대한 안건은 25분 만에 종료가 되었고, 기타 여러 가지 자잘한 문제들로 30여 분간 회의가 더 진행되었다. 4:55 p.m. 오늘 회의는 좀 늦게 끝났다. 오후에 올라온 결재 건수를 확인해보고 처리한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마무리된다. 이제는 퇴근준비를 해야 할 시간. 문득 지난 주말에 집에서 본 영화가 생각난다. ‘The core’라는 미국영화인데 미국 특유의 영웅영화라고 할 수 있는 SF 영화이다. 내용인 즉 지구자기장의 변화로 초래된 지구멸망의 순간을 피하기 위하여 정예특공대가 지구 내부의 핵에 침투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이다. 그 중 한 대원이 갈팡질팡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대장에게 이러한 대사를 하였는데, 그 말이 참으로 기억에 남는다. “Leadership needs responsibility, not ability.” 그렇다. 지도자의 능력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 하는 것이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겠는가?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보낸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며 집으로 향한다.
교감의 역할 재정립 필요 ‘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때에는 그 직무를 대행한다.’ 우리나라에서 교감직은 법적 지위이며, 그 역할까지도 위와 같이 법(초·중등교육법 제20조 2항)으로 규정해 놓고 있는 독특한 제도를 취하고 있다. 그만큼 교감의 역할을 중시하고자 하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 교감들이 법적 지위에 걸맞은 위상을 갖고 있는지,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왜 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교감 역할에 대한 정립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 2항에 의하면 교감의 역할은 크게 ‘교장을 보좌하는 역할’과 ‘직무 대행 역할’로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교감의 ‘역할 영역’에 대한 것일 뿐,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과 직무를 수행하는지에 대한 ‘역할 내용’은 아니다. 이처럼 직무 수행에 대한 모호한 규정으로 인해 교감 본인들은 물론, 교장과 교사들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교감의 역할과 직무에 대한 판단은 상당히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개별 학교의 상황이나 그 학교의 교장, 교사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결국 ‘교감의 역할 수행 모습은 우리나라 학교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교감은 교장과 협동적이고 생산적인 관계를 구축하여, 학교발전을 위한 시너지 효과를 내는가 하면, 교장과의 역할 갈등 및 부조화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하는 교감들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상당 부분 교감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교감의 역할 정립 부족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교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 교감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교감은 학교의 총책임자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학교의 총책임자인 교장을 ‘보좌’하는 위치이고, 교사들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자리이다. 즉, 교감의 지위는 중간관리자의 역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교감은 교감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중간관리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중간관리자의 리더십’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교감에게 필요한 리더십 중간관리자인 교감의 리더십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Bridges, 1992; Sergiovanni, 2001). 첫째,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다. 서번트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이다.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앞에서 이끌어주며, 구성원들을 돕고 지원하는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교감은 우선적으로 교장이 학교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섬겨야 하는 위치이다. 이를 위해 교감은 교장과 학교의 교육목표 및 철학을 충분히 공유하며, 학교발전을 위해 힘써야 한다. 아울러 교사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교육적 임무와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지원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교감의 역할은 결코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 역할이 아니다. 오히려 교감은 교장과 교사를 어떻게 돕고 지원할지,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세심하게 살필 수 있어야 하며, 필요에 맞게 돕고 지원할 수 있는 전문적 역량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정의적 영역에 대한 역할을 구체적 지침으로 규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교감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는데 필요한 높은 수준의 역량과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분산적 리더십(distributed leadership)이 필요하다. 분산적 리더십이란 리더가 독단적으로 리더십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과 함께 리더십을 공유하는 것이다. 즉, 총체적 책임은 리더가 지되 적절한 권한 위임을 통해 구성원들의 역량을 개발하고, 전문성을 촉진하여 학교 및 조직의 발전을 도모하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리더십을 공유한다고 해서 리더의 역할과 위상이 결코 낮아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리더십 수행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학교 교육활동의 특성 상 교감은 직접적으로 교육활동을 수행하지 않는다. 다만, 교사들의 교육활동을 통해 학교의 목표가 이루어지고, 교사들이 역량을 적극 발휘하면서 수행할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교감은 교사들에게 적합한 권한 위임을 통해 교사들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물론, 교감이 교사들에게 분산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장의 분산적 리더십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교장 역시 교감이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적절한 권한 위임을 해줄 때, 교감이 마음껏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 질 것이다. 셋째, 퍼실리테이션 리더십(facilitation leadership)이 필요하다. 피실리테이션 리더십은 구성원들을 섬기고 돕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구성원들이 목표 달성을 위해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촉진하는 리더십이다.[PART VIEW] 예를 들어, 교직원회의 시간에 교원들이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하고 협의해 나갈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이다. 이러한 리더십 역할은 교장, 교사보다 중간적 위치에 있는 교감이 감당하기에 적합하다. 또한 학교공동체 활성화와 학교의 변화 및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고립주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교감의 피실리테이션 리더십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느 조직에서든지 구성원들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촉진하고 개발하는 것은 그 조직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교감의 퍼실리테이션 리더십은 교사들 뿐만 아니라 교장에 대해서도 필요하다. 교장이 학교 운영과 관련하여 다양한 계획과 전략을 마련할 때, 교감이 그 계획과 전략이 추진될 수 있도록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한다면 그 학교의 성공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부교장으로서 교감의 위상 강화 어느 학교든 학교의 변화나 발전을 위해서는 교장과 교사를 포함하여 학교구성원 모두의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학교의 중간관리자인 교감의 역할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체로 교감의 역할에 대해 크게 주목하지 않거나 간과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학교 변화나 발전을 위한 중요한 동력을 소홀히 다루어 온 것이다. 이제 교감이 적극적으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인식의 전환과 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교감이 학교에서 중간관리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서번트 리더십, 분산적 리더십, 퍼실리테이션 리더십 등이 필요하다. 교감들이 이러한 리더십을 갖출 수 있도록 교감 양성, 선발, 연수 과정에서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교감이 이러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권한과 지위가 부여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교감에 대해 법적 지위는 부여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정립이 미흡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제도적 정비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감이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하고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는 교감의 역할 및 지위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며, 부교장직(vice-principal)에 대해서도 검토해 볼 시점이 되었다고 본다. 부교장은 교장의 아래 직급이 아니라, 교장직군에 위치해 있으면서 교장을 보좌하면서 교장과 공동 책임을 지는 위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교감의 위상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교감이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그 역할을 수행하게 되며, 교장의 관할 하에 좀 더 재량껏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부교장직은 교감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교감의 역할과 위상을 정립하는 하나의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감은 학교라는 조직의 심장이다. 교감의 역할에 따라 학교의 활력이 달라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교감은 고달프다.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고 걸핏하면 교육청에 불려 다니고, 쏟아지는 공문도 모두 교감 몫이다. 이 뿐인가, 교장과 교사들 틈바구니에서 동네북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심지어 이제는 수업까지 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교육부도 교육청도 교감을 위한 정책적 배려에는 인색하다. 그들은 말한다. 교감은 짧을수록 좋다고. 교장이 되는 날을 손꼽으며 오늘도 가득 찬 물동이 지고 외줄을 탄다. 우리나라 교감들이 겪고 있는 고충과 애환을 진솔한 목소리로 들어본다. 이번 좌담회에는 서울수서초 김영봉 교감, 서울노일중 이소영 교감, 서울경기여고 이건재 교감세분이 참석,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좌담회 참석자 : 서울수서초 김영봉 교감, 서울노일중 이소영 교감, 서울경기여고 이건재 교감 사회자 = 학기 초라 바쁠 텐데 함께 자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교감선생님들은 교감이란 자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교감은 네모다’ 한번 해볼까요? 이건재 교감 = 저는 ‘종갓집 맏며느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종갓집 맏며느리는 챙겨야 할 사람도 많고 집안 궂은일도 도맡아 하잖아요. 관리감독자로서 학교의 모든 일을 챙겨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합니다. 김영봉 교감 = 저는 변화를 이끌어 가는 ‘개척자’로 표현하고 싶네요. 학교 교육활동의 동력은 교감이죠. 변화를 추구하고 이끌어 가는 힘은 교감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그런 점이 개척자와 닮았어요. 이소영 교감 = 교감은 ‘숲’이죠.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숲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숲처럼 많은 교사들을 포용하고 교사들이 힘들 때 쉬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감의 몫이고 앞으로도 그런 교감이 되고 싶어요. 이건재 =교감은 교장과 교사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도 해야 하고, 방패막이 역할도 해야 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사들의 분위기를 파악해 교장에게 먼저 귀띔도 해줘야 하고, 또 갑작스레 발표되는 정책들이 교사들의 반발을 사지 않도록 사전에 분위기도 잡아줘야 하죠. 하지만 법적으로는 ‘교감은 교장을 보좌해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그 직무를 대행한다’고 명시돼 있을 뿐 제도적으로 교감에게 주어진 권한은 없는 실정입니다. 자존감 살려주는 교장이 최고 … 요령 피우는 교사는 밉상 이소영 교감 = ‘중간다리’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학교는 수많은 학생과 교사들로 구성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마다 교장과 교사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교사들에게 동력을 불어넣는 역할도 해야 하죠. 그래서 저는 교감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촉진자(facilitator)라고 말하고 싶어요. 김영봉 = 말이 ‘중간다리’지 어떨 땐 ‘동네북’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저는 민원인 상대가 가장 힘들더라고요. 민원이 들어온 날은 거의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잘잘못을 분명히 가려 처리하면 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아요. 특히 경력이 짧은 교감선생님들은 어려움이 크실 겁니다. 학교로 찾아오는 분들 상당수는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는 경우가 많아 말이 안 통할 때가 종종 있지요. 실제로 어느 교사가 말썽을 피우는 아이의 소매를 붙잡고 교무실에 데려갔다가 체벌 교사로 몰려 곤욕을 치른 적이 있어요. 학부모가 폭행을 했다고 민원을 제기한 것이죠. 이 학부모가 ‘학생을 강제로 끌고 간 것은 잘못한 것이죠?’라며 넌지시 던진 말에 교사가 덜컥 ‘그럴 수 있겠네요’라고 말한 것을 녹음해 교육청에 체벌 교사로 민원을 제기했더라고요. 이 일로 교감인 제가 감사까지 받았죠. 무혐의 처리됐지만 아찔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소영= 학부모들이 학교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자녀 문제와 직결되면 상황이 꼬이는 경우가 많았어요. 학부모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말을 떠올리곤 하죠. 이건재= 전 교감 경력이 짧아 그런 ‘아찔한 경험’은 아직 못했습니다만 요즘 처리해야 할 공문이 너무 많아 진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교육청에서 오는 공문은 예전보다 조금 줄었다고 하던데 구청이나 복지관 등 외부 기관에서 오는 것은 여전히 많아요. 교감들이 겪는 공문 스트레스는 거의 트라우마 수준입니다. 교감 처우개선 시급 … 방학 내 근무해도 연가 못 받아 김영봉= 교감들이 처리하는 업무 강도에 비해 처우는 너무 인색한 실정입니다. 수당만 해도 그래요. 교사에서 교감으로 직급이 상승해도 호봉에 변화가 없습니다. 교감에서 교장으로 승진해도 마찬가지여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직급보조수당도 교감이 25만 원 받는데 교사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요. 그뿐인가요. 학교성과급에서 S 등급을 받은 평교사보다 B 등급 받은 학교의 교감 성과급이 더 적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한국초중고교감회에서 그간 여러 차례 정부에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데 아직 이렇다 할 변화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이건재 = 연가 문제도 꼭 지적하고 싶어요. 일반 교사들과 달리 방학 때 교감들은 매일 학교에 나와야 합니다. 방학을 이유로 교사들에게 연가를 주지 않는다는데 그러면 방학 때 매일 출근하는 교감들은 왜 연가를 쓰지 못하게 하는지 알 수 없어요. 연가보상비 한 푼 주지 않으면서 말이죠. 사회 = 그래도 교감은 곧 교장 아닌가요. 승진이 보장된 자리인데. 이소영 = (웃으며) 세상에 정해진 게 어디 있나요.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논문도 쓰고 대학원도 열심히 다녀야 합니다. 드러내놓고 말하기 뭐 하지만 우리도 남모를 고충이 있답니다. 김영봉= 학위 가산점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평교사 때 석사학위를 취득했더라도 교감이 되면 대학원에 다시 가야 합니다. 교감 자격을 취득하고 난 뒤에 학위를 받아야 점수로 인정되거든요. 이게 교장 승진과 직결되다 보니 부작용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소영= 교원 승진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저도 인식을 같이 해요. 지금은 교사- 교감- 교장으로만 이어지는데 그러다 보니 승진을 앞둔 교사들의 심적 부담이 너무 큽니다. 꼭 교감이 아니더라도 평교사에서 승진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를 만들면 승진 적체도 해소하고 교사들의 만족도도 높아질 것 같아요. 이건재 교감= 평교사가 교감을 거쳐 교장으로 승진하는 단일 트랙보다는 수석교사나 진로진학상담교사 등 그동안 제외됐던 트랙을 통해서도 승진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줘야 합니다. 즉, 교사가 교장으로 승진하는데 꼭 교감을 거치지 않고도 될 수 있는 새로운 제3의 길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교단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 = 교장공모제는 대안이 될 수 있나요. 김영봉 교감= 양면성이 있죠. 교육부나 진보진영 교육감은 좀 확대했으면 하는 것 같은데 반면에 여자 교감선생님이나 자기 PR이 약한 분들은 교장공모제를 힘들어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공모 교장 비율은 지금보다 더 낮췄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건재 교감= 맞습니다. 교장공모제는 각자 자신이 놓여 있는 위치에 따라 판단이 다른 것 같아요. 특히 당초 도입 취지와 달리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차제에 공모 교장의 재임기간도 교장 임기에 포함시켜 ‘승진 교장’과 형평성을 맞추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다는 생각입니다. 김영봉 교감 = 요즘 경기도에서 교장과 교감을 수업에 참여시키고 있습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학교의 필요에 의해서 자율적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만. 교감이 꼭 수업해야 하나 … 학교 자율에 맡겨야 이소영 교감 = 교육청이나 교육감이 직접 나서서 강제할 성격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또 교감들의 업무량이 많아 직접 교단에 서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겠어요? 이건재 교감 = 학생들이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이 하는 수업을 진심으로 원하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교실에서 40~50여 년간 떨어진 세대 차이를 극복한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어쩌면 학생이나 교감 모두에게 재앙이 아닐까요. 꼭 이분들까지 수업에 직접 나서야 하는 절박한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사회 = 교감은 학교에서 2인자인데 교장선생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건재 교감= ‘인간적인 교장을 잘 만나야 한다’거나 ‘궁합이 잘 맞는 교장을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도적으로 교장과 교감의 책임과 권한을 명백히 규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에 따르면 모든 책임과 권한은 기관장인 학교장에게 귀속돼 있고 교감은 단지 보조 관리에 지나지 않아요. 저는 차제에 교장과 교감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영봉 교감 = 교감 위임전결을 규정을 만들어 책임과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부교장제는 긍정적 대안으로 평가합니다. 사실 학교현장에서 교장과 교감의 상하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강한 것이 사실이거든요. 이소영 교감= 교장과 교감의 관계가 어느 한 쪽으로 일방적인 통행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수직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선후배 정도로 확립이 돼 갈등이 생겨도 서로 의사소통으로 해결해 나가고. 또 배려와 관심, 사랑이 넘치는 그런 관계가 됐으면 좋겠어요. 권위 있는 자리지만 목에 힘들어 가면 교사들 외면 김영봉 교감 = 너무 우리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요(웃음). 요즘 학교운영이 쉽지 않죠. 꼭 바뀌었으면 하는 정책들을 하나씩만 꼽아 볼까요. 이건재 교감= 뭐니 뭐니 해도 교원 명예퇴직 아닐까요. 평생 교직에 헌신한 분들이 명예롭게 교단을 떠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합니다. 예산 부족 때문이라는데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봐요. 돈이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이겠죠. 이소영 교감= 저도 돈 이야기 좀 할게요. 학교에 예산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학생들이 쉴 만한 나무 벤치 하나 만들 여력이 없는 실정입니다. 대통령께서 교육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지 직접 보셔야 해요. 미래를 짊어질 바른 인재를 키워내는 데는 교육 시스템뿐 아니라 경제적 지원도 매우 중요합니다. 김영봉 교감= 그렇죠.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이 시급합니다. 이소영 교감=교육에 대한 재정 지원이 부족하면 아이들 교육과정도 축소될 수밖에 없잖아요. 학습준비물 예산으로 1인당 1만 원씩 나오기는 하지만 턱없이 부족해요. 요즘 인성교육을 많이 강조하는데 어디 입으로만 되나요. 인성교육에도 재정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이건재 교감= 전 좀 각도를 달리해서 교원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지금 학교와 학교, 지역과 지역 간의 격차가 매우 심한데요, 교원 배치기준을 완화시켜 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특히 소규모 학교는 교원 배치기준을 좀 더 완화해서 더 많은 수의 교사들이 근무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사회 = 끝으로 후배 교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소영 교감=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학생들에게 올인 하는 정말 열심히 하는 교사들이 많아요. 그런 후배들을 보면 너무 신나고 기쁘죠. 하지만 가끔 선후배를 떠나 나이 운운하며 태만한 교사들을 마주할 때면 좀 안타까워요. 김영봉 교감=자신의 일에 열심인 교사나 학생 관리를 잘하는 교사들이 좋더라고요. 반대로 요령만 피우는 선생님들은 좀 꺼리게 되죠. 이건재 교감= 제가 교감에 임용되자 선배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교감은 권위 있는 자리다. 그러나 교감으로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이 굳어지는 순간 실패한 교감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말 국회는 여야 합의로 인성교육진흥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금년 7월부터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인성교육이 의무적으로 실시된다. 인성교육 교과목 수업시간이 법으로 정해지고, 학교는 총예산의 일정 비율을 인성교육에 반드시 써야만 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게는 정책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인성교육을 지원할 책무가 주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연초에 열린 대한민국 교육계 신년교례회는 ‘2015년을 인성교육의 원년으로 삼자’는 분위기로 한껏 고무되었다. 인성교육을 법제화한 것은 사실상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다. 인성교육조차 머리로 달달 외울 것인가? 인성교육을 법적으로 강제하게 된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학생들의 인성이 나빠져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언제부턴가 예의나 배려, 정직, 협동, 공감, 책임, 자존과 같은 좋은 인격과 착한 품성이 실종되어 가고 있다. 버릇이 없고 남들과 더불어 살 줄 모르며 자신의 일을 알아서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귀한 존재로 여기지도 않는 청소년들이 시나브로 우리 사회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 결과 사회 전반적으로 경쟁심과 폭력성이 점점 더 난무하게 되었다. 학교교육이 입시 준비에 몰두하는 동안 인성교육이 등한시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정치권과 교육 당국이 인성교육의 중요성에 눈을 크게 뜬 것 자체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무엇보다 현행 입시 위주 학교교육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으면 인성교육의 효과 역시 의식이나 습관으로 내면화되기 어렵다. 자칫하다가는 인성교육조차 머리로 달달 외우고 답하는 형태로 왜곡될 개연성이 있다. 무엇이 좋은 인성인지를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일상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별개다. 위대한 선인(先人)들이 지행일치(知行一致)를 그렇게 강조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지식과 행동의 일치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굳이 인성교육진흥법 같은 특별한 노력 없이, 현재와 같은 비정상적 학교교육의 정상화만으로도 인성교육에 대한 기대는 높아질 수 있다. 인성교육의 강화는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전반적인 개혁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현모양처는 명함도 못 내미는 세상 학교교육의 정상화만으로도 인성교육은 여전히 미흡하다. 사람으로 태어나 세상의 일원이 되도록 만들어지는 과정이 사회화(社會化, socialization)라면, 사회화의 일차적 주체는 누가 뭐래도 부모와 가정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어릴 때 집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것이 한 사람 평생의 인성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는 의미다. 가정은 그저 식구끼리 함께 먹고 자는 생존의 공간만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세대와 세대 사이에 정서적 교감 및 문화적 전승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는 문화에 따라 육아 방식은 얼마든지 달라지지만 좋은 인성을 배양하는 데는 ‘양성, 3세대(both sexes, three generations)’ 가족이 가장 낫다고 주장하였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우리나라에는 양성, 3세대 가정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조부모의 존재와 역할은 나날이 미미해지고 있다. 배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가는 줄 알지 ‘할머니 손이 약손’인 줄은 모르는 세태가 되었다. 자녀를 명문 대학에 보내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회자(膾炙) 되는 것은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에 이어 할아버지의 재력’이다. 돈 없는 할아버지는 용도가 없다는 뜻이다. 조부모에게 손주 양육비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발상도 장기적으로는 가족 사랑을 금전화(金錢化) 할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혼의 급증은 인성교육을 위한 양성 부모의 책임을 전반적으로 약화시킨다. 한부모가정에서 일탈 청소년이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설령 양쪽 부모 모두 있긴 하지만 사실상 유야무야(有耶無耶)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이는 맞벌이 부부가 크게 늘어난 탓이다. 언제부턴가 현모양처는 명함도 못 내미는 세상이 되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 유난히 긴 나라 가운데 하나로서,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인성을 가르칠 여력과 여유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직장인들에게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 혹은 ‘주말이 있는 삶’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는 조건 하에서 아이들의 친구는 스마트폰이고 아이들의 선생은 텔레비전일 수밖에 없다. 동네가 학교이고 골목이 교실이었던 시절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에 덧붙여 사회교육의 중요성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마을의 어른, 친척, 이웃, 동무들의 관심과 정성이 합쳐져 한 개인의 인성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시나브로 생활주변에서 아이들을 구경하기 어려워졌다. 동네는 학교이고 골목은 교실이었던 시절은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곳에서 동네 아저씨의 칭찬이나 꾸지람을 받던 일,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사귀던 일, 그곳에서 놀이나 게임을 하면서 이기고 지는 법도 함께 익히던 일을 요즘 아이들은 도대체 알기나 할까? 인성교육을 위한 사회적 공간 자체가 소멸되고 있다 익명성과 폐쇄성을 미덕으로 삼는 아파트 단지가 과거 동네가 담당하던 사회교육을 수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고층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사회문화적 공간으로서 골목의 기능적 등가물이 되기에는 도저히 역부족이다. 골목이 놀이터에 가까웠다면 엘리베이터는 오직 이동과 운반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피아노나 태권도, 미술, 영어 등을 가르치는 각종 학원 차량들이 아이들을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로 실어 나르는 통에 아이들의 삶은 점점 더 끼리끼리 실내화(室內化)가 되어 간다. 이로써 인성교육을 위한 사회적 공간 자체가 소멸되고 있는 것이다.[PART VIEW] 구미 선진국의 경우, 종교기관도 사회교육에 있어서 귀중한 일익을 담당한다. 주 5일 등교가 일찍부터 정착된 그곳에서 일요일의 의미는 토요일의 그것과 뚜렷이 구분된다. 토요일에는 다들 신나게 놀지만, 일요일에는 대개의 경우 주일학교를 포함하여 성당이나 교회에서 반나절을 보내는 것이 오랜 관례이고 문화다. 그리고 일요일의 나머지 절반은 새로운 한 주를 차분히 준비하는데 할애된다. 물론 우리나라도 외형상 세계 굴지의 종교 대국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인성 함양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는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인성교육진흥법의 제정 취지에는 백번 공감이다. 그러나 학교교육을 통한 인성 함양 정책은 인성교육을 또 하나의 주입식 암기과목으로 전락시킬 소지가 크다. 혹은 그것은 계획과 실적만 난무하는 전시형(展示型) 교육행정으로 귀결될 공산이 없지 않다. 지난 1월 27일에 열린 인성교육진흥법 시행령 토론회는 그럴 가능성의 일단을 이미 보여주기도 했다. 2015년이 인성교육의 진정한 원년이 되기 위해서는 인성과 인성교육 자체를 원점부터 논의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인성교육의 성공은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가 서로 어떻게 분업하고 협력하느냐에 달려있다.
01. 내가 ㅅ 선생을 만난 것은 K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이었다. 나는 28세 신참 교사였고, ㅅ 선생은 나보다 서너 살 더 위의 훈훈한 선배 교사였다. ㅅ 선생은 학생들과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굳이 선생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과학 선생인 그는 귀찮은 실험들을 재미있는 실험으로 끌어가려고 허다한 준비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공을 차고, 이런저런 야영 프로그램에 기꺼이 학생들과 어울렸다. 그는 ‘소명’을 말하지 않았지만, 특유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그저 어디에도 강박 되지 않고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즐겼다. 그의 열정은 상당히 쿨(cool)한 것이어서 열기보다는 그야말로 신선하고 서늘한 것에 가까웠다. 그해 가을 ㅅ 선생은 경주로 2학년 수학여행을 인솔해 갔다. K 고등학교는 그전 해에 지역 폭력조직에 학생들이 연루되어 홍역을 치렀던 처지이라, 교장선생님은 학생 지도에 각별한 관심과 정성을 쏟으라고 당부했다. 여행 인솔의 대표 책임을 맡은 교감선생님은 여행 중에 교칙을 어기는 학생은 처벌을 면할 수 없음을 여러 번 공지하였다. 경주에서의 첫날 저녁, ㅅ선생은 자기 반 몇몇 장난꾸러기들이 숨겨 둔 술 몇 병을 뒤져서 압수했다. 예상한 대로 학생들은 수학여행에 ‘일탈의 의식’을 다채롭게 준비해 왔던 것이다. ㅅ 선생은 별일 없는 것처럼 자기 반 아이들과 더불어 수학여행의 일정을 진행해 나갔다. 학생들이 더 은밀하게 숨겨 두었던 술도 ㅅ 선생은 기막히게 찾아내어 아이들을 주눅 들게 했다. ㅅ 선생은 또래 아이들의 일탈 문화를 알고 있었다. 살벌한 경고나 꾸중이나 체벌은 없었다. 다만 분별력 없는 음주는 사고를 일으킬 수 있고, 해롭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강조했다. 3박 4일 여행의 마지막 날 밤, ㅅ 선생은 술을 압수당한 학생들을 조용한 방으로 모이게 했다. ㅅ 선생의 앞에는 제자 녀석들로부터 압수된 술이 놓여 있었다. ㅅ 선생은 아이들을 향해서 말했다. 일탈의 정서나 영웅 심리로 술을 마시는 것은 위험하고 해롭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술에 다가가지 말라.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담임인 ㅅ 선생을 주목했다. 술은 어른이 계시는 가운데서 반듯한 태도로 예를 갖추어 배워야만 바른 습관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ㅅ 선생은 녀석들에게 딱 한 잔씩 술을 따라 주었다. 놀라고 당황한 것은 학생들이었다. 이런 장면을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제법 엄숙한 의식 같기도 했다. 처음에 킥킥거리던 녀석들도 이 이상한 의식에 진지하게 참여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금지된 술을 선생님께 바른 예법에 따라 한 잔씩 받은 녀석들은 무언가 의미 있는 경험을 한 것 같았다. 대단한 인정을 받은 느낌이었다. 좀체 잊기 어려울 경험이었다. 이렇게 한 잔씩의 순서가 끝나고 ㅅ 선생은 남은 술에 대해서는 영원한 압수를 선언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다른 아이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그렇게 수학여행은 끝났다. 그런데 학교로 돌아오자마자 여기저기 수학여행에서 생긴 사고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부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 밤, 그러니까 ㅅ선생이 술 한 잔씩을 자기 반 학생들에게 내려 주던 바로 그 시간, 다른 반 학생들 일부가 몰래 여관 바깥으로 나가 술을 마시고 싸움을 벌인 것이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 학생들의 음주 행위들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학교는 징계와 처벌을 시작했다. 징계를 받는 학생들로부터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ㅅ 선생님 반도 선생님이 주는 술을 마셨다는데, 그 아이들은 왜 처벌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물귀신 작전이라고나 할까. 학교는 위반자에 대해서 예외를 두지 않았다. ㅅ 선생의 반 아이들도 처벌 대상에 올렸다. ㅅ 선생이 학교 당국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학생들 앞에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자신도 징계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정신이 자유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로서 강박 되는 것을 싫어했던 그의 ‘자유 실천’은 이렇게 상처를 입었다. 징계를 자청함으로써 그는 비로소 다시 교사로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교사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계몽적 강박(should be 의식)에서 자유롭고자 했던 것이다. 1978년에 있었던 일이다. 정답이 딱히 있는 일은 아니리라. 억압이 시대정신처럼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그 학생들도 이제는 쉰 살 중반의 초로들이 되었겠다. 그때 그 일은 연륜과 더불어 어떤 감화의 꽃으로 마음에 남아 있을까. 그들에게 ㅅ 선생님은 어떤 사도(師道) 가치로 각인되어 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ㅅ 선생은 ‘자유로운 열정’을 지닌 교사이었다. ‘강박 되지 않는 교사 의식’을 가짐으로써, 교사로서의 존재론적 자유를 보전하려 했던 사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02. 수학여행은 팔색조와도 같은 다채로운 경험의 공간이다. 고통스럽고 기상천외한 경험들도 여기에 기꺼이 합류한다. 교실 밖에서 자연과 역사와 문명을 직접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므로 중요한 교육의 장이라고만 수학여행을 이해하는 것은 교과서적인 모범 답안에 해당한다. 현실의 수학여행은 그런 모범 답안만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고등학생쯤 되면 ‘세상’에 대한 발칙한 도전과 기성의 질서에 대한 반항적 일탈을 시도하고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호기심 저쪽에 놓인 ‘어른 세상’으로 넘어가 보려는 영웅 심리가 작동한다. 수학여행으로 하여금 통과제의(initiation)의 관문을 삼고, 수학여행에 기대어 불온한 음모들이 꾸며져서, 마침내 수학여행에서 해방구(解放區)의 쾌감을 기대한다. 이는 청소년기 특유의 ‘보이지 않는 문화’로 엄연히 존재하고 소통된다. 이를 일종의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어찌 교육이 관심 가질 일이 아니라고 도외시만 할 것인가. 모범 답안으로서의 수학여행만을 고수하다 보면, 수학여행 폐지론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막상 ‘수학여행 폐지론’ 앞에서 주춤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범 답안의 바깥에 있는 수학여행의 여러 현상도 교육이 챙겨서 보듬어야 하는, 또 다른 교육의 영토임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은 모범적 기대와 이상적 모드(mode)로 기획되지만 그렇게만 수행되지는 않는다. 일탈과 역작용의 과정 속에서도 교육적 소통과 교육적 실천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교육적 실천(pedagogy)이 있음으로써 우리는 다시 우리의 아이들의 일탈과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고단한 교육 현실에서 다시 감동과 희망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렇게 우리를 추동하는 힘이 바로 열정이다. 교사의 열정이다. 교육을 긴 흐름으로 보면 ‘절대적으로 나쁜 경험’이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떤 특정의 경험을 결정론적으로 나쁘다고 규정해 놓으면 그 이후의 교육적 지도가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마련되기가 어렵다. 여기에 진정한 인간 발달과 전인교육을 고민하는 교사들의 열정이 필요하다. 어떤 특정의 단계에서 ‘나쁜 경험’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좋은 경험’과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 그것을 교사의 열정 이외에서 기대하기란 어렵다. 좋은 열정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교사의 존재론적 자유를 존중받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유가 열정에 진정성과 창의를 부여한다. 그 진정성과 창의가 우리들의 열정에 신뢰와 감동을 선사한다. ㅅ 선생의 ‘자유로운 교육 실천’이 그런 암시를 준다. [PART VIEW]그러나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ㅅ 선생이 겪었던 것처럼, 교사로서의 존재론적 자유를 구하기 어렵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사회의 통념에 따라, 교사이기 때문에 교사다워야 한다는 규범적 도식과 계몽적 강박 안에서 ‘열정’을 요구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양성이 넘치는 사회임에도 교직은 단일한 모범적 열정 모드에만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교사다’를 ‘나다움’의 자유로운 열정으로 실천하려 하는 교사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교사의 존재론적 자유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열정은 가르치는 일의 낭만성을 풍부하게 해 줄 것이다. 나아가서는 교육으로 하여금, 교사로 하여금 삶의 불완전함을 용인하는 관용성의 윤리와 너그러움의 미학이 있는 자리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No one ignorant of geometry may enter(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마라).’ 약 2,500년 전, 탁월한 수학자, 철학자. 천문학자 등 당대 최고의 지성이 모였던, 플라톤이 세운 ‘아테네 학당(Academia, School of Athens)’ 입구에 쓰인 문구이다. 그들은 수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임을 이미 알았다. 당시, 수학은 현대 수학과 동일한 틀로 이미 확립되어 있었다. 유클리드(Euclid)의 ‘원론(Elements)’이다. 수학은 인류 문화유산 중 최고이며 영원한 가치를 지닌다. 모든 국가가 사라지고, 모든 이념이 퇴색되어도 수학은 사라지거나 퇴색될 수 없다. 당대 최고의 수학을 소유한 민족이 세계를 경영했지만, 수학은 요란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온통 수학이지만 수학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경제학, 공학, 의학에 재화가 몰리지만 수학은 태초부터 가난하다. 수학은 ‘수학적 논증으로는 영원히 접근할 수 없는 진리가 있음’을 증명한다.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함은 수학의 능력이며 동시에 진리 앞의 겸손이다. 예술을 하기 위해 수학을 떠난 제자에 대해 ‘예술 할 만큼의 상상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수학할 만큼의 상상은 부족했다’며 흔쾌히 보낸 큰 수학자의 독백은 무엇을 뜻하나? 수학은 상상이고, 사상이며, 철학이고, 예술이다. 아날로그 수학엔 정신과 영혼이 필수적이다. 수학은 이론일 때 아날로그이고, 구현되어 감각하게 되면 디지털이다. 급한 마음에 디지털에 들뜨지 않고, 차분히 아날로그로 뜸 들어야 한다. 아날로그 교육 없는 스마트 교육은 결코 스마트 할 수 없다. 디지털에 아날로그가 없는 것은 공허할 뿐만이 아니라 불가하다. 교육에 신념과 사상, 철학과 예술이 있어야 한다면, 아날로그가 교육의 기초를 굳건히 받쳐야 한다. 아날로그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권한다. 디지털 교육의 성패는 아날로그 교육의 성패에 달렸기 때문이다. 수학은 이론일 때 아날로그이고, 구현되어 감각하게 되면 디지털이다. 기초체력과 기본기 없이 고난도 기술이 가능할까? 기초과학 없는 기술이 퍼스트 펭귄이 될 수 있을까? 아날로그는 내용이고 디지털은 수단이다. 디지털은 아날로그의 결과이며 구체화이다. 세계를 호령하던 톨레미 왕이나 알렉산더 대왕은 수학의 힘과 아름다움을 알았다. 탁월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왕만 다니는 길이 있듯이 수학을 배움에도 왕도(王道, royal road)가 있을 줄 알았다. 수학자는 그들에게 분명히 일렀다. ‘왕이 통치하는 나라엔 왕도가 있어도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고. 급한 마음에 디지털에 들뜨지 않고, 차분히 아날로그로 뜸 들어야 한다. 아날로그 교육 없는 스마트 교육은 결코 스마트 할 수 없다. 수학에 관심을 권한다. 그림 안에 수학이 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Non mi legga chi non e matematico(수학자가 아닌 사람은 내 책을 읽지 마라)’라며 미술에서 수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림 속으로 들어 온 수학을 살펴보자. 궁궐의 화려한 단청과 절집의 대웅전 꽃 창살을 수학적으로 감상해 보면, 색이나 모양으로는 감지할 수 없었던 깊은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한국의 깊고 그윽한 전통 문양과 이슬람의 화려하고 다양한 문양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지만, 거기에 스며있는 수학적 원리는 동일하다. 실제로 수학은 한국의 전통 문양이건, 이슬람 문양이건 가능한 띠(frieze) 문양은 일곱 개뿐이고, 가능한 벽지(wallpaper) 문양은 열일곱 개뿐 임을 증명한다. 단청, 한복, 도자기 등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에서 일곱 개 각각의 띠 문양 모두와 열일곱 개 각각의 벽지 문양 모두를 찾아 제시하는 것은 우리 전통 문양의 다양성을 수학적으로 과시하는 결과가 된다. 문양의 수학적 접근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기준에 근거하며, 패턴의 특성을 수치화하기 때문에, 현대 감각에 맞는 전통 문양 디자인을 풍부하게 생산할 수 있게 한다. 즉, 수학은 아날로그적으로 확립된 문양 생성 과정을 프로그램화하여 디지털 컴퓨터를 활용하여 다양한 문양을 디자인할 수 있게 한다. 수학, 암호의 정체를 밝히다 영국의 수학자 튜링(A. Turing)이 ‘이미테이션 게임’을 통해 에니그마(ENIGMA)의 암호를 푼 것은 수학의 힘이었다. 그 전쟁에서 수학은 어느 전투함이나 폭격기, 어느 탱크보다 전쟁의 승패를 크게 좌우했다. 인간의 사고 과정을 기계로 모방(imitation)하는 ‘튜링 기계(Turing machine)’는 컴퓨터의 원조가 되었다. 튜링이 적용한 그 아날로그 수학이 요즈음의 첨단 디지털 컴퓨터로 진화하여, 당시의 특급 비밀인 암호 해독 기법은 이제 장난감이 되었다. 아날로그 수학은 디지털 컴퓨터를 가능하게 하고, 그 디지털 컴퓨터는 다시 새로운 아날로그 수학을 견인하여 더 강력한 힘을 얻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수학자 줄리아(G. Julia)는 복소수 함수의 되먹임(feedback)이 흥미 있는 현상을 유발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수학적 발견이 수학의 역사에서 잊힐 리 없다. 수십 년 후, 디지털 컴퓨터가 이 아날로그적 현상을 보여준 것이 프랙탈(fractal) 도형이다. 무한히 자기를 복제하는 모습을 디지털 기법으로 관찰하는 일은 즐겁다. 어느 화가도 그리지 못했던 가상의(virtual) 풍경을 그려내는 디지털 기술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 시각화를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invisible) 아날로그 수학을 잊으면 그 비주얼은 허상일 뿐이다. 디지털은 감각할 수 있는 아날로그일 뿐이다. 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 수학[PART VIEW]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는 자기들의 벗은 몸을 가렸다. 프라이버시 문제였고 정보 보호 행위였다. 정보 보호는 인류의 출현 당시부터의 문제였던 것이다. 정보가 돈이고 권력인 이 시대에는 정보 보호 이론은 더욱 불가피하다. 그 이론인 암호학(Cryptology)은 수학이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작동하여 안전(security)과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전자서명(digital signature)과 전자화폐(electronic money) 등 암호학적(cryptographic) 기법은 모두 아날로그의 디지털 구현이다. 인류의 호기심은 카시니 하이훤스(Cassini-Huygens)호로 하여금 토성과 그 위성사진을 실시간으로 지구에 보내게 한다. 생생한 사진을 우리가 보게 됨은 정보 통신 기술의 덕이다. 통신 이론인 부호론(Coding Theory)도 수학, 즉 아날로그 이론에 기초한 디지털 기술이다. 만에 하나 외계에 지성이 있다면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나 영어일 수 없다.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은 수학이다. 실제로 인류는 1974년 외계를 향해 아레시보 메시지(Arecibo message)를 전파로 보냈다. 두 소수(prime number) 23과 73의 곱 1679를 이진법으로 나타내어 인간, 지구, 태양계 등에 관한 정보를 소개했다. 아날로그 내용을 디지털 방식으로 전송한 것이다. 그 전파는 이 시간에도 전 우주에 퍼질 테고, 외계에 지성이 있다면 그들은 인류의 메시지를 이해할 것이다. 수학은 이 지구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성교육 이제는 실천이다-1- 인성교육의 참된 전개를 위한 제언 인성교육진흥법시행령에 바란다 얼마 전,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칠만큼 반가운 소식을 접하였다. 인성교육진흥법의 국회 통과. 지난 11년간 학교현장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제는 교육과정 및 교과서 연구를 하는 연구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편을 잡으면서 경험했던 부정적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흔히 정부가 교육과 관련한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하면, 그에 따른 부담은 단위 학교와 교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특히 교육 정책의 본질과 목적을 망각한 채, 단순히 실적 쌓기 위주의 행정 처리는 현장의 교사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교사들을 포함하여 정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이 사전에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러하질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실적 쌓기 인성교육은 교육 아닌 업무 예를 들어 연구자가 몸담았던 인천의 한 학교에서는 인성교육과 관련하여 해당 교육청으로부터 다양한 업무 협조를 받았다(‘반드시’ 해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사실 이를 ‘협조’라고 말하기도 어렵긴 하다). 인성과 관계된 각종 주간을 만들어 이때에는 보다 ‘열심히’ 인성교육에 관심을 갖고 실행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그 주간이라는 것이 ‘친구사랑 주간’, ‘인성교육 실천주간’, ‘언어 사용 개선 주간’, ‘생명존중 주간’ 등으로 사실상 교사들이 평소에 실천하던 범교과적 인성교육과 다를 바가 전혀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이러한 ‘협조’ 사항들이 단위 학교로 ‘내려’오게 된다면, 그 학교의 인성교육 ‘업무’ 담당자는 매우 바빠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학년의 교사들도 인성교육 ‘업무’ 담당자로부터 요구받은 내용을 학년 교육과정에 반영하거나 관련 활동들을 실행하기 위하여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러하듯, 업무 협조를 ‘요구’한 입장에서는 증거자료, 소위 말하는 실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단위 학교의 교사들은 각종 자료를 만들고 제출하며 성공적인 인성교육 사례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그러나 과연 이 자체가 인성교육의 본질에 해당하는지는 숙고해 볼만한 문제이다). 연구자가 보기에, 감히 예측해보지만, 이러한 상황은 인성교육진흥법시행령이 제정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더 안 좋아질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인성교육과 관련한 지침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매뉴얼은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교과별 혹은 교과 간 인성교육은 어떻게 시행해야 하는지, 학교 급별에 따른 인성교육 적용안은 어떻게 다른지, 효과적인 인성교육의 기준은 무엇이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어떻게 전개되는지, 그러한 프로그램을 평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개발되었는지, 그 도구는 질적 및 양적으로 접근 가능한지, 그리고 이 모든 부담을 교사‘만’이 지고 가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사실상 공유된 정보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위에서 지적된 문제들은 정책 과제로 논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과물들을 바로 현장에 투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자료가 현장에 투입되기 위해서는 보다 구조화되고 자세히 안내된, 즉 ‘친절한’ 형태로 제시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러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2월 27일 금요일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인성교육진흥법시행령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주요 내용으로 ‘인성교육 종합 계획 수립’, ‘인성교육진흥위원회 구성 및 운영’, ‘인성교육 평가’, ‘교원의 연수’, ‘전문 인력 양성기관의 지정’ 등 인성교육과 관련한 제 사항이 폭넓게 논의되었다. 그러나 교육부가 보도 자료로 배포한 내용을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단위 학교와 교사들의 부담이 상당히 커지겠다는 것이었다. 비록 ‘안’이기는 하지만 시행령에서 논의하는 주요 대상이 학교와 교사이기 때문이었다. 제발, 학교와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향후 인성교육이 어떻게 전개되든지 간에 그리고 인성교육진흥법시행령이 어떠한 방식으로 제정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먼저 그것을 주도적으로 담당할 단위 학교와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에 이들의 목소리를 대표한다는 심정으로 다음과 같은 제언을 감히 하고자 한다. 첫째, 인성교육은 단위 학교와 교사들만의 책임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학생들이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다름 아닌 가정이다. 가정의 노력 및 주도적 수준의 참여가 수반되지 않는 인성교육은 이미 실패한 것이나 진배없다. 지금도 인성교육의 주책임을 학교로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를 중심으로 한 시행령이라는 강력한 프레임이 제시된다면, 교사들의 부담은 그야말로 급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생 간 폭력, 심지어 때로는 사제 간 폭력도 학교로 귀책사유를 묻는 마당에 인성교육에서 그리고 시행령 자체에서 가정이 인성교육을 ‘지원’하는 측면에서만 언급이 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정은 학교와 마찬가지로 인성교육의 주체로 올라서야 하며, 이를 향후 인성교육과 관련 시행령이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선진국의 인성교육 성공 사례를 생각해 볼 때, 인성교육은 해당 공동체의 적극적 참여 더 나아가 범정부 차원의 노력을 요구한다. 언론이나 방송 등을 활용한 효율적 홍보나 국가수준의 캠페인 혹은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즉, 모두가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범국민적 인성교육 방안이 추진되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책임 소재의 분할이 아닌, 미래 대한민국 사회를 이끌어갈 학생들을 위한 거룩한 투자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저 일회적인 인성교육 프로그램의 제작 및 배포가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인성교육에 대한 철학을 대한민국 곳곳에 심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인성교육 실시와 관련하여 학교 현장에 불필요한 공문 생산과 소모적인 실적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 [PART VIEW]1분 1초를 학생들의 인성과 교육을 위해 힘쓰는 교사들에게 행정적인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의 교사들은 새로운 교육 정책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를 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교사들이 해당 정책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여러 가지 행정 업무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성교육 자체의 본질과 목적을 생각해 볼 때, 지나친 행정 업무나 협조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 꼭 문서로 확인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언급하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정적 특성을 지적하는 말 중 ‘냄비근성’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인성교육과 관련한 이와 같은 광풍(狂風)이 냄비근성 속에 파묻히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인성교육은 그저 단위 학교와 교사들만이 하는 것이 아닌 문자 그대로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교육으로 접근되어야 하고, 인성교육 자체의 본질과 목적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추후 시행령 제정과 실제 인성교육 전개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친다.
인성교육 이제는 실천이다-4-동아리 탐방 인성교육 우수동아리, 창의인성교육MIE네트워크 ‘사고 치기 전에 명퇴하자’는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 번하던 대한민국 평범한 교사들 서넛이 모인 모임이 ‘창의인성교육MIE네트워크’의 첫 모습이었다. 어찌하든 선한 교육을 해보고자 이리 저리 뛰어다니다 진이 다 빠져, 번아웃(burnt out) 상태에 놓였던 교사들. ‘잘 하는 척’, ‘아무 일 없는 척’, ‘괜찮은 척’ 하던 모습을 버리고, 자기 교실의 문제점을 포장 없이 ‘날 것’으로 드러내자 거짓말처럼 ‘해결 방법’이 떠올랐다. 인성교육 성패의 핵심은 교사 ‘무례, 무지, 무책임,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끄집어낼 수 있는 ‘동기’는 쉽게 찾아질리 없었다. 머리를 쥐어짜도 찾을 수가 없던 어느 날, 한 선생님의 의도치 않은 ‘뜻밖의 고백’이 학생·교사·학교가 살아나는 교육변화의 키워드를 발견하는 단초가 되었다. “악다구니 표정과 말로 아이들과 싸우는 게 너무 싫고, 지쳤어요. 그런다고 아이들을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냥 제가 말투, 표정, 단어 구사 등을 확 바꿔봤죠.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말랑말랑해지고, 급기야는 편지와 선물까지 받는 이변이 생겼다니까요.” 이 변화에 담긴 ‘비밀’은 무엇일까? 그렇다. 인성교육의 시작과 끝은 교실 밖이 아니라 교실 안에서, 학생이 아니라 교사가 먼저 실천해야 하는 것이었다. 인성교육의 출발점은 교사의 ‘자기 점검과 변화 의지’, 인성교육의 전개는 ‘인격교육’, 인성교육을 불사르게 하는 동력은 ‘가치와 의미에 대한 교육’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원리를 교실 안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하면 그만이었다. 아이를 살리고 또 아이를 죽이는 것은 거창한 프로그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 눈빛, 표정이면 족했는데, 우리는 너무 멀리서 인성교육의 정답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선생인 나한테 무례하게 구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자기 인생에 대해 무책임하고 무기력하게 사는 태도만큼은 도저히 눈 감아 줄 수 없었죠. ‘창의인성교육MIE네트워크’라는 교사학습공동체를 운영한 이유도 딱 하나입니다. ‘엎드려 퍼져 있는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아이들 앞에서 당당히 서서 교육하는 교사이고 싶다’는 소망 하나였죠.” 3년째 모임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임병권(인천 가정여자중학교) 교장의 말처럼 따뜻한 가슴이 모이니 인성교육의 지평이 보였다. 교사가 먼저 행동·태도·말을 변화시켜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창의인성교육MIE네트워크’는 “인성교육 성패의 주역도 교사이며, 인성교육 전개의 최대 수혜자도 교사”라고 강조한다. 이런 믿음이 없이 ‘자기 문제 해결’만을 위해 모였다면 이 모임은 벌써 흐지부지 깨졌을지도 모른다. 인성교육은 학교교육과정 안에서, 학생들 삶의 저변 곳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믿음으로 ‘함께 모였고, 고민했고, 움직였기’에 학생·교사·학교가 상생할 수 있는 ‘키’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고군분투에 보답이라도 하듯, 출범한 해인 2013년에는 창의·인성교육 부문 인천시 대회 ‘우수상’, 2014년에는 전국 인성교육 교사 동아리부문 ‘교육부 장관상’이 품속으로 들어왔다. 아이들 앞에 당당한 교사로 서고 싶었다 ‘창의인성교육MIE네트워크’의 대표적 프로그램은 매일 의미 있는 SC(Story and Contents)를 찾아 기록해 보는 ‘1인 1 인성자서전’이다. “쓰기를 강조한 것은 인성교육 역량을 함양시키기 위해 의도한 것입니다. 보고, 듣고, 읽는 모든 과정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 있죠.” 김애란 회장(인천청라고 교사)은 인성교육이 진정한 교육적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삶의 면면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며, 아울러 삶의 역량으로 체화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비록 ‘교사동아리’지만 학교교육과정과 동떨어지지 않으려고 많은 관내 교장·교감 선생님들을 자문위원으로 모시며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PART VIEW] 현재 창의인성교육MIE네트워크는 2014년 관내 8개교 초·중·고 교사들이 함께 모여 운영했던 성과를 모아, 초·중·고 벨트형으로 이루어지는 교사학습공동체 형태와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전개하고 있다. 또한 2015년에는 창의인성교육MIE네트워크 거점 학교인 인천청라고의 또 다른 교사동아리인 청라인문학교사독서토론동아리 ‘담쟁이(회장 백재암)’와 교육 콘텐츠를 공유하며 활동할 계획이다. 인성교육은 학교교육과정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더 나아가 학교 급별로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스스로 학생들의 모델이 되기를 자청한 교사들의 노력은 애초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성관련 강의, 창의인성교육 관련 컨설턴트 활동 등 교육활동의 지평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당연히 학생들에게도 성장과 변화에 대한 또 다른 동기부여를 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어렵다, 불가능하다’며 주저앉으려는 직원들에게 “해 봤어?”라고 늘 말했다는 고 정주영 회장. “에이, 뭐. 이정도면 됐지”라며 머무르고 싶은 순간에 떠올려야 할 ‘의미 있는 SC’가 아닐까.
1년간 자살사망자가 15,000명이라고 할 때, 자살시도자는 15만~30만 명이고, 자살을 계획한 사람은 200만 명이며, 자살을 생각한 사람은 500만 명의 분포를 나타낸다고 한다. 또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35,184명인데 비해, 같은 기간의 자살 사망자 수는 71,916명으로 2배 가까이 높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현재 국민정신건강은 심각할 정도로 피폐해져 있다. 특히 최근에는 청소년 자살 비율은 예사롭지 않다. 15세부터 19세 사이의 청소년 사망자 중 자살한 청소년은 최근 10년 사이에 13.6%에서 28.2%로 2배가 증가하였다. 특히 15세 이후 급격히 증가하는 경향이 있어, 15~19세 사이의 자살사망자가 10~14세 사이의 자살사망자보다 6배가량 많다. 그러나 10~14세의 사망원인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이 3위이며, 자살 관련 행동이 10~15세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살예방은 초기 청소년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살, 남겨진 자들에겐 고통의 시작 청소년 자살은 뒤에 남겨진 가족과 친구, 교사들에게 매우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남겨진 사람들은 공포, 분노, 죄책감,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미리 알아차렸다면,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간과해버린 것’에 대해서 큰 중압감을 느낀 채 살아가게 된다. 상실감과 공허감, 불신감이 지속되며 각자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고통스러운 상실로부터의 회복에는 1년 내지 2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청소년기 자살 예방의 어려운 점은 일상생활에서 생길 수 있는 생활상의 부정적 사건에 의해서 충동적으로 예측불허하게 자살이 촉발된다는 점이다. 청소년 자살은 성인과 다른 특징이 있다. 성인은 우울증 등 기존의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이 많은 반면, 청소년은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분노·좌절·회피 등의 심리적 갈등과 정서적 요인에서 충동적인 자살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들은 어떤 문제 상황에 닥쳤을 때, 다른 합리적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할 뿐 아니라, 자신의 괴로움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자살행동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역주민의 적극적 참여로 자살률을 낮춘 성공 사례 안타까운 청소년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보다 앞서 자살예방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던 나라들을 보면 자살률 감소에는 법칙이 있었다. 핀란드는 자살한 사람들의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고 우울증 치료를 증대시켰으며, 영국은 지방자치단체 협약을 통해 우울증 치료를 증대시켰다. 일본의 경우에는 주민 밀착형사업 추진으로 자살률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성공근접사례가 있다. 강서구의 ‘지역밀착형 주민참여 자살예방사업’, 성남시의 ‘자살시도자에 대한 응급의료시스템’ 구축, 가평군의 ‘자살고위험군 집중관리’ 등은 자살률을 감소시킨 성공적 사례이다. 특히 2011년 자살자수가 서울시 2위였던 강서구는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지역주민의 회복을 돕기 위해 안전망 및 지역 자원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를 구축하여 자살률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다. 이를 위해 강서관내 복지관 12개, 경찰서 및 지구대 11개, 소방서 및 안전센터 6개, 응급의료센터 3개가 연합하여 자살 고위험군, 정신질환 고위험군에 대한 지역 안전망을 형성하고, 자살예방지킴이 활동자를 306명 확보하는 등 모니터링과 사례관리를 실시하였다. 또한 자살자수가 많은 동에 생명사랑간담회를 실시하여 자살고위험군 및 정신질환고위험군의 현황 및 문제점을 공유하고 연계방법을 논의하여 응급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은둔형 비활동자, 독거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였다. 강서구의 이러한 노력은 2010년 154명, 2011년 155명이던 관내 자살자수를 2012년에는 125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강서구의 성공사례의 법칙을 요약하면, ‘정확한 현황 파악 → 현장밀착 및 주민 참여전략 → 지역사회 기관협의체의 지도 → 고위험군에 대한 집중관리’라고 할 수 있다. 강서구의 자살률 감소 성공사례를 단위학교에서 벤치마킹한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 학생, 학부모,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생명존중 및 자살예방교육 ○ 학생 개개인에 대한 신속 정확한 파악 ○ 위험군에 대한 체계적 개입 ○ Wee 센터, 정신건강증진센터, 병원 등 지역사회 기관 연계 부모와의 관계가 청소년 자살률을 결정한다[PART VIEW] 부모와의 좋은 관계는 청소년 자살에 대한 대표적인 보호요인이다. 하지만 부모와의 관계에서 갈등과 스트레스를 경험하면 오히려 자살 위험이 증가한다. 실제로 청소년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이유에 대해 청소년 7만 4000여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한 결과, 가족 구성원과의 갈등이라는 답이 36.6%로 가장 많았고, 친구와의 갈등이 25.6%, 학업 문제가 12.2%로 나왔다. 따라서 자살 예방 교육은 학생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자녀와의 올바른 대화방법 및 양육법에 대한 부모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평소 생업종사 등을 핑계로 자녀를 방치하거나 무관심한 부모일수록 학부모교육을 꼭 받도록 하여, 자녀들의 자살 예방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유도해야한다. 학생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이 제일 중요하다. 물론 교육을 실시했다고 해서 자살을 모두 예방하긴 어렵다. 우울증과 자살은 그 원인이 개인의 성향, 생활상의 부정적 사건 등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부터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자살의 가장 많은 원인을 차지하는 가족구성원(부모 등) 및 친구와의 갈등은 학생 개개인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갖지 않으면 파악조차 어렵다. 결국 자살예방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 한명한명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이다. 교장, 교감, 담임교사, 교과교사, 보건교사, 상담교사, 행정실직원, 학교보안관에 이르기까지 학생에 대한 세심하고 정성스런 관심을 갖고 성의 있게 대할 때 자살 청소년을 한 명이라도 더 줄일 수 있다. 정서행동특성검사 결과를 그냥 지나치지 말자 초1, 초4, 중1, 고1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정서행동특성검사는 매년 5월에 실시된다. 정서행동특성검사는 건강검진과 같다. 혈압이 높게 나오면 조심하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오면 관리를 하는 것처럼, 정서행동특성검사 역시 청소년들의 우울감이나 불안감, 자살경향성 등을 체크해보고 적극적으로 예방활동을 벌여야 한다. 또한 학교가 위치한 지역사회에 어떤 기관이 있는지 알아보고, 긴밀한 협조체제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대표적인 지역사회의 아동청소년 정신건강관련시설은 해당지자체 정신건강증진센터와 지역교육청 wee센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