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97,205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안양옥 한국교총 회장이 17일자로 사퇴한다. 이에 따라 박찬수(60‧대구 오성고 교장) 수석부회장이 회장 직무대행을 수행한다고 교총은 16일 밝혔다. 안 회장은 퇴임의 변에서 “누구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만큼 이를 지키고자 사퇴한다”며 “대한민국 교육을 발전시키고 교육현장의 정치장화를 막기 위해 법과 제도를 변화시키는데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지난 2010년 6월 20일, 전 회원 직선으로 제34대 회장에 당선된 후, 2013년 제35대 회장에 연임하면서 6년간 교총을 이끌어왔으며 임기를 3개월여 남긴 상태에서 사퇴하게 됐다. 회장 직무대행은 제34‧35대 회장 선거에서 안 회장과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당선된 박찬수 수석부회장이 맡게 된다. 박 직무대행은 “교육현안과 난제들이 많은데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며 “17만 현장 회원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교육정책에 신속히 대응하고 교단의 안정과 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약력은 △건국대 영어영문학과 졸 △영남대 교육대학원 교육행정학 석사 △대구 경명여중 교사, 대구 오성중 교장, 대구 오성고 교장 △제34․35대 교총 수석부회장 △대한사립중고교장회 부회장 △대구사립중고교장회 회장 △한국청소년연맹 대구총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이다. 제36대 교총 회장 선거는 6월 10일~19일 온라인(휴대폰, PC, 이메일) 투표로 선출되며 당선자는 20일 발표된다.
서령고등학교(교장 김동민)가 2016학년도 학교도서관에서 사서도우미로 활동할 12분의 학부모님께 임명장을 수여했다. 본교 학습지원센터에서 진행된 이날 수여식에는 김동민 교장선생님과 한승택 교감선생님, 김영화 선생님께서 참석해 어머님들께 감사하와 격려의 말씀을 전했다. 학부모 사서도우미는 3월 7일부터 본격적인 근무에 들어가 오전과 오후 두 시간씩 대출 및 반납업무를 맡게 된다. 1, 2. 3학년 총 12명의 어머님들이 근무조를 편성하여 1년 동안 봉사를 하게 된다. 이번 사서도우미의 운영으로 학생들의 독서능력을 향상은 학교와 지역공동체간의 대화와 소통이 활발해 질 것으로 기대된다.
요즘 모 방송사의 주말 대하드라마 ‘장영실’이 큰 인기다. 미천한 노비로 태어나 조선을 15세기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강국으로 만든 그의 삶이 소설보다 더 극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역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오늘날 우리의 민낯을 발견할 수 있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더불어 개방적으로 인재를 등용한 세종의 혁신적 리더십이 어떻게 빛을 발하는 지도 자세히 알 수 있다. 특히 세종16년 6월 24일 세종실록에 따르면,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정말 획기적인 시계였다. 그 이전의 물시계는 낮에는 상대적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한밤중에는 빨리 움직이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나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로 인해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비로소 국가표준시가 결정되었다. 시대와 인물의 극적인 만남 조선이 장영실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하마터면 그런 천재성이 초야에 묻혔을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신분적으로 불리해서 주목받기 힘든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의 조상은 중국인이었다. 8대조 장서(蔣壻)는 12세기에 살았던 송나라 사람이다. 이 시대에는 송나라가 금나라에 의해 멸망했다가 부활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앞의 송나라를 북송, 뒤의 송나라를 남송이라고 부른다. 이 같은 격동의 시대에 장서는 전쟁을 피해 고려로 망명해 충남 아산에 정착한다. 이것을 계기로 장서는 아산 장 씨의 시조가 되었다. 장영실은 고려 멸망 2년 전인 1390년경에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양반이었지만 어머니가 기생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는 자동으로 노비가 되었다. 그래서 장영실도 동래현에서 공노비 생활을 해야 했다. 동래현에서 장영실이 담당한 일은 무기제작이었다. 당시는 한반도 해안과 동지나해에서 왜구의 활동이 극심했다. 그래서 해안 경비가 매우 중요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해안가인 동래현에서 무기제작에 탁월한 소질을 보였다. 시대 분위기에 맞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손재주가 좋다는 소문이 파다하자 장영실은 한양으로 스카우트되었다. 그의 나이 20대 중반이었다. 그는 상의원에 배속되어 의류, 보석, 무기 등을 제작했다. 그런 그를 과학기술자로 바꾸어 놓은 것은 바로 세종대왕이었다. 세종은 1421년 장영실을 명나라에 파견했다. 그곳의 천문관측시설을 둘러보고 돌아와서 똑같이 모방하라는 것이 세종의 명이었다. 세종은 장영실의 견학을 돕고자 명나라에 공문을 보내 협력을 요청했다. 이렇게 세종의 관심과 지원을 계기로 장영실은 과학기술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획기적인 신분 해방 세종은 단순히 장영실의 견문을 넓혀주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노비신분까지 해방시켜주었다. 오로지 과학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신하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의 신분을 해방시켜주었던 것이다. 장영실은 고을 사또보다 높은 정5품 벼슬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는 과학연구와 생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다.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되면서부터 장영실은 과학기술 개발에서 놀라운 성과들을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 중 하나가 바로 자격루다. 드라마 ‘장영실’에서는 장영실이 소현옹주와 소위 썸을 타는 장면이 묘사된다. 드라마 속에서 소현옹주는 남편과 사별한 뒤 장영실을 은근히 좋아하며 과학연구를 도와준다. 또 드라마에서는 장영실의 사촌형인 장희제가 장영실을 견제하고 훼방을 놓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허구로 지어낸 것들로 현실적으로 왕의 누나와 사랑을 나누고 사촌형제와 갈등을 빚을 정신적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자기한테 기대를 걸고 있는 임금을 위해서라도 장영실은 과학연구에 온 정신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은 자격루, 옥루, 일성정시의, 현주일구 같은 객관적인 성과물들로 잘 증명된다. 신분적 제약에 관계없이 그를 발탁한 세종도 대단했지만, 임금에 대한 은혜를 갚고자 열심히 연구한 장영실도 대단한 사람이다. 그래서 조선왕조와 장영실의 만남은 서로에게 큰 행운이었다. 안타까운 실수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1442년이었다. 당시 세종은 46세이고 장영실은 53세였다. 장영실은 세종이 탈 가마의 제작을 책임졌다. 바로 이 가마가 부서진 것이다. 세종이 탄 상태에서 가마가 무너졌던 모양이다. 당시 세종은 체중이 너무 과한 편이었다. 세종의 체중 변화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가마를 제작했다가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장영실은 관직을 빼앗기고 법정 최고형인 곤장 100대를 선고받았다. 만약 세종에 의해 감형 받지 못하고 곤장 100대를 다 맞았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세종은 그동안 그의 공적을 감안하여 공직에서 내쫓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 후 장영실이 어떻게 됐는지는 전혀 확인할 길이 없다. 장영실은 조선이 낳은 최고의 과학자였다. 그는 노비신분에서 종3품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겨우 가마 제작에서 범한 사소한 실수 하나 때문에 인생이 무너지고 말았다. 관직을 빼앗기고 곤장을 맞은 것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자신의 과학적 명예가 일순간에 무너졌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천재과학자 장영실은 그렇게 비통함 속에서 여생을 살다가 쓸쓸히 죽어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김 교수님, 인구는 과학입니다. 엄청나게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지방대학의 미래를 생각해 봅니다. 무엇보다 앞으로 대학에 갈 학생들이 극심하게 줄게 되어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제가 작년에 퇴임한 중학교를 생각해 보면 2010년도 재학생이 1천명에 달하였으나 올해는 재학생이 360여명 남짓한 숫자로 줄어들었답니다. 이 지표만 보더라도 인구감소는 불을 보듯 뻔하며, 인구 고령화가 먼 훗날의 일만은 아닙니다. 금년을 정점으로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는 마치 일본의 1996년과 같은 상황이지요. 향후 15년간 무려 400만명이 감소하며, 소비 핵심계층인 30~50대 중반 연령대도 230만명이 감소합니다. 동기간 중 이 연령층이 우리보다 더 많이 감소하는 나라는 일본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뿐이라고 합니다. 1990년 6월 일본 후생성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일본의 합계출산율이 1.66명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보다 낮고, 1995년을 피크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면서 일손 부족과 복지비용 증가로 경제 성장에 큰 지장이 있을 것이다." 이런 발표 후 정부가 그동안 인구 정책을 어떻게 했기에 이 지경까지 이르렀냐는 국민들의 비난이 빗발쳤고, 후생성은 여성의 사회참여가 증가하면서 결혼 필요를 못 느끼는 독신여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가 여성 단체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책이 획기적으로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6년 후 경제활동인구는 거짓말처럼 줄어들기 시작했고, 1980년대 5% 부근이던 성장률도 연평균 1%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꺼져 가는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재정을 퍼부었으나 인구절벽 앞에서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국가 빚만 잔뜩 키운 결과를 초래했지요. 뒤늦게 고령화의 심각성을 인식했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지금 일본은 노인 인구 비중 26%, 중위연령은 46.5세로 세계에서 가장 늙은 국가가 되었습니다. 아베노믹스니, 마이너스 금리니 추진해 봐야 이미 늙은 사회에 회춘은 불가능하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의 경우 고령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입니다. 인구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 2.1명이 1983년에 무너졌지만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산아제한 정책은 1990년대 말까지 유지되었습니다. 그 결과 2005년에 출산율이 1.1명 이하로 떨어지면서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전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현재 노인 비중 13%는 2060년에 40%가 예측됩니다. 일본을 제치고 사실상 세계 1위가 되지요. 현재 41세인 중위연령은 늙었다는 유럽과 반년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이 역시 45년 후에는 58세가 되어 대망의(?) 세계 1위가 될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지금 태어난 아이가 사회 중추가 되는 40대 중반에 이르렀을 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늙은 사회가 되어 있다는 말이됩니다. 인구절벽은 '설마'가 아니라 '반드시' 옵니다. 우리 사회에 고령화 경고가 울린 지 10년이 넘어가지만 그동안 보육예산을 늘린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대책은 없었습니다. 작년 출산율은 1.24명으로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고, 고령화의 폐해는 앞으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 찾아올 것입니다. 소비와 주택판매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저성장은 필연이지요. 2060년에는 군입대 연령층이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어 나라를 지킬 인력마저도 반 토막 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미래세대는 참 불쌍하지요. 이들에게 40~50년 후 늙어빠진 사회를 넘겨주는 것은 더 미안한 일입니다. 선거철마다 기초노인연금 인상 공약이 나오는데 이런 행태가 지속되면 엄청난 국가 빚까지 물려주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출산율이 올라가도 그 효과는 수십 년 후에 나타나는데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갔다고 봅니다. 통일이 되면 나아지겠지만 완전한 해결책은 아닐 것 같습니다. 2015년 북한은 중위연령 34세, 노인 비중 9.5%로 아직 젊은 편이지만 역시 고령화를 피할 수 없으며, 2060년까지 생산가능인구, 소비핵심인구 모두 감소하게 됩니다. 마지막 남은 카드는 이민을 받아들이는 길이 있습니다만, 얼마 전 여당 대표가 고령화를 걱정하면서 조선족 이민 이야기를 꺼냈다가 역풍을 맞았는데 이 나라의 장래를 책임질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조선족만의 이민이 아닌 이민 이야기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난한 노인들의 생활도 돌보아야 하지만 노인연금 같은 포퓰리즘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총선 복지 공약 그대로라면 2060년 나랏빚은 5500조라는 기사도 눈에 보입니다.(매경2016.3.14) 정치의 계절을 맞이하여 한 나라의 경제와 미래가 한 시대의 정치인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며, 우리 국민들의 인식 수준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볼 때 국가 장래와 밀접한 인구교육은 꼭 실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끝난 이세돌과 알파고의 역사적 대국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 경기에 전세계가 주목한 느낌을 받았다. 일본과 중국 국영방송도 이세돌의 '1승'을 인간의 승리로 받아들여 보도하는 것을 보았다. 이 시합이 벌어지기 전 이세돌은 자신의 승리를 대국이 있기 전 5 대 0, 최소한 4 대 1을 자신하던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하지만 이 9단은 인공지능에 맞서 인간 바둑세계의 낭만을 지켜낸 ‘인류 대표’로 우뚝 서 있다. 한편 상대인 알파고를 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승리를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이 시합이 벌어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은 외신기자를 비롯하여 바둑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낙네들까지도 알파고가 무엇인지, 이세돌이 누구인지를 알 정도가 되었다. 대국이 진행될수록 기자들과 바둑기사들의 반응은 크게 달라졌다. 첫날은 믿기지 않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셋째날이 지나면서 이세돌은 도전자가 됐고 인공지능의 위력을 받아들이게 됐다. 아무리 현실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장 기자와 바둑기사들 모두 '멘붕 상태'를 경험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네번째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이 승리함으로 이를 인간의 승리로 간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곧 '알파고'는 한국의 '스푸트니크 모멘트'가 돼 곧 대한민국의 미래에 긍정적 영향을 주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푸트니크 모멘트는 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 미국이 받은 경각심을 뜻한다. 소련보다 앞서 있다고 믿었던 미국은 이를 계기로 각성하고 과학기술, 항공우주,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를 대대적으로 늘렸으며, 1958년에 미 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했다. 이후 1969년 최초의 달착륙도 성공했고 결국 국가 번영을 가져왔다. 한국도 '알파고'를 구글이 인수한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 이름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가져올 위협과 거대한 시대 변화에 대한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공지능이 현존하는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의견이 토론되고 있으며 인공지능 개발에 더욱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나 기업, 관계자 등 소수만 인식하고 있었던 '인공지능 기술과 원리'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이를 통해를 전 국민이 인공지능이 무엇인가를 학습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인공지능의 결론은 결국 '터미네이터'와 같은 인류의 종말이 올 것이란 부정적 전망도 역설적으로는 긍정적이다. 이런 부정적 전망은 결국 인공지능 기술의 악용을 견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단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경기가 아니라 진정 한국이 알파고 충격을 '알파고 모멘트'로 승화하기 위해선 우리 후세가 맞이할 미래를 위해 어떤 교육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가야 한다. 후세들이 맞이할 미래는 우리 세대와 다르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인공지능을 대표하는 신기술이 일자리를 위협하고 일상을 변화시킬 것도 분명하다.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기존 직업 중 47%가 사라진다고 했다. 인공지능회사들은 먼저 금융과 의료 분야를 공략할 것이다. 이 분야는 노동집약적이면서 전문가를 쓰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여전히 교육 현장은 20세기 산업화 시대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침 여덟 시에 학교 가 공부하고 학원 가고, 또 학원 가고, 또 학원 가고, 집에 와 숙제하다 잠드는 게 현실이 아닌가!. 모든 게 공부를 잘 한다 못한다로 압축되고 만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사라질 일자리를 잡고자 혈안이 돼 있는 대학교육도 문제다. 이젠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까보다 그 직업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교육은 창의적이고 협업 사고를 가로막는 교육을 강요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떤 일자리는 기계와 경쟁하며 사라질 것이고 어떤 일자리는 기계와 협업해서 더 가치 있는 일을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교수라는 직업마저도 위협받고 있다. 인공지능은 교수가 강연한 걸 갖고 학습해서 훨씬 더 잘 할 시대가 올 것이다. 인간은 늘 새로운 걸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계는 책임을 지는 주체는 아니다. 책임과 신뢰가 필요한 일은 마지막까지 인간 몫으로 남을 것이며, 교육과 과학의 연결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현실이다.
한국교총이 주최한 교육계대표자 1차 회의가 15일 오후 서울 우면동 교총회관에서 진행됐다. 교총은 9일주최했던 이준식 교육부장관과 현장교원들과의 대화에서 논의되지 못한 추가의견들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기위한 첫 자리로 마련됐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소위 ‘불법 찬조금 및 촌지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즉 학교 현장에 잔존해 있는 청렴 저해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공익제보센터(1588-0260) 확대 설치, 불법 찬조 및 촌지 수수에 제보에 대해 상근 시민감사관 특별 점검, 모바일 상품권 반환 요청 방법 공지, 공여자 처벌 등이 ‘불법 찬조금 및 촌지 근절대책’의 핵심이다. 이번 서울교육청의 ‘불법 찬조금 및 촌지 근절대책’은 현 교직 사회의 문화와 현실과 전면 배치되는 처사다. 탁상행정의 표본인 것이다. 현재 학교현장에서 촌지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교원 스스로 촌지를 요구하지도, 받지도 않는 상황에서 매년 3월 신학기마다 되풀이 되는 촌지 근절대책 발표로 아직도 촌지가 상존하는 것처럼 사회 일반에 그릇된 인식을 줄 우려가 있는 전시 교육행정인 것이다. 이런 탁상행정은 학교현장이 아직도 불법찬조금과 촌지수수가 공공연히 받는 것으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줘 전체 교직사회를 잠재적 촌지 수수 집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물론 원칙적으로 불법찬조금과 촌지는 학교 현장에서 사라져야 한다. 실제 교육 현장, 학교 현장에서 불법 찬조금, 촌지 등은 대체적으로 근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행정 기관들이 해마다 학년 초, 학기 초, 5월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이벤트성 대책을 발표해 마치 학교현장이 불법찬조금과 촌지가 난무하는 집단으로 오도되는 부작용을 가져오고, 부정적인 인식을 조장해 오곤 한다. 이는 학교 현장을 부적절한 일탈 집단으로 왜곡, 오도하고 현장 교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정이다. 이번 대책의 보도자료에서 서울교육청이 밝혔듯이 최근 3년 동안 불법찬조금이나 촌지사건이 서울시 전체에서 2013년 10건, 2014년 8건, 2015년에는 6건에 불과함에도 학교 불법찬조금 및 촌지근절대책을 발표하는 것은 행정의 잘못된 실적주의가 아닐 수 없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을 태울 우려도 없지 않다. 즉 이런 형식주의적 대책 말고도 불법 찬조금, 촌지 등을 근절할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이번 서울교육청의 불법 찬조금, 촌지 근절 대책의 기관별 추진과제도 재고돼야 한다. 이를 기관별로 형편에 알맞게 추진하면 되지, 이를 학교별, 기고나별로 불법찬조금 및 촌지근절 대책 계획 수립, 학교 출입구와 교무실 등에 현수막 게시, 자체점검 체크리스트 작성 등 학교와 교원들의 자긍심과 명예, 사기를 저하시키는 행정 편의주의를 실행해서는 안 된다. 당장 서울교육청 관내 교원 외에도 전국적으로 교원들이 이 대책에 분개하는 이유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교원들이 법령의 위배나 도덕적 일탈 행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에 따른 합당한 처분을 받아야 한다. 또한 불법 찬조금 징수 학교, 촌지 수수 교사 및 학부모에 대한 ‘쌍벌제’ 적용 또한 당연하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불법 찬조금, 촌지를 근절하여 학교와 교원들을 징계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하여 우리 학교와 교직 사회, 교육 환경을 청렴하게 하고 나아가 한국 교육을 바로 세우고 청정(淸淨)한 교육을 지향하는데 본질적 목적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절대 안 된다. 서울시교육청이 깨끗한 공직·교직사회를 만들기 위해 먼저 모범을 보일 것을 촉구한다. 서울시교육청의 ‘불법찬조금 및 촌지근절 대책’의 주무부서장인 감사관은 높은 도덕성으로 공직에 모범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감사관은 음주 감사 등을 이유로 감사원으로부터 해임 요구를 받은 감사관이 청렴 및 공직기강을 바로잡고 감사를 한다는 것은 학교현장에서 볼 때 어불성설이다. 이야말로 ‘바담풍’ 고사와 다름 아니다. 결국 서울교육청의 ‘불법 찬조금 및 촌지 근절대책’은 총론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 실행 방안이 학교와 교원들을 지탄받아야 할 집단, 사람으로 사전 단정하고 대책을 실행하는 듯한 오류 메시지를 사회 일반에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교원 사기와 관련된 정책을 입안, 집행할 때에는 제반 여건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1년에 몇 건 이와 같은 일탈된 행동이 학교와 교원들에게서 발생한다고 하여 전 학교, 교원들에게 이와 같은 대책을 실행하다는 것은 선량한 학교, 교원들의 자긍심, 사기, 명예 등을 한 없이 실추, 저하시키는 그릇된 교육행정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서울교육청은 이번 대책 실행에 대한 단위 학교, 교원들의 자율적 실천에 맡겨야 한다. 학교와 교원들의 사기와 자긍심, 정체성을 높이는데 행정력을 경주해야 할 교육청이 그 반대로 탁상공론을 펼치는 것은 재고돼야 할 것이다.
대학과 전공을 선택할 때 예전엔 입시 경쟁률만 따진 반면, 이제는 ‘취업률’을 보는 시대가 됐다. 앞으로는 ‘발전 가능성’이 키워드가 될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발 빠르게 대학 학문 분야가 진화하고 있다. 유명 사립고에 다니는 3학년 딸과 1학년 아들의 입시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다는 한 학부모가 나에게 상담을 요청해 왔다. 이처럼 자녀가 공부를 꽤나 잘 하고 있다하더라도 진로지도에 어려뭉을 겪고 있는 부모들이 생각보다 많다. 단지 성적이 좋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학생은 내신 성적도 좋고, 나름대로 포트폴리오를 쌓아온 덕분에 명문대 입학 가능성이 높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들을 흘려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몇 개월 전부터 엄마들 사이에서 서울대 경영학과, 고려대 영문학과 등이 아닌 ‘서강대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등 이름도 낯선 학과, 전공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리고 있다. 처음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아이가 졸업할 즈음이면 위상이 달라져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3~4년 전 융합형 인재가 이슈가 되고, 극심한 취업난이 문제가 되면서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다양한 전공을 접목해 융합 학과를 개설하고, 취업이 잘되는 현장형 인재를 키울 수 있는 전공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전공을 개설하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가 되면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경향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걸러졌고, 내실 있는 학과와 전공이 살아남았다. 융합과 관련된 전공은 해마다 늘어 5년 전 15개에서 현재는 40여 개나 된다. 자연 계열의 융합 전공이 많아졌지만, 요즘에는 인문 계열을 바탕으로 예체능, IT 등과 융합한 전공도 눈에 띈다. 기업가 정신, 리더십을 갖추도록 교과목을 구성한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의 앙트러프러너십(혁신기업가) 전공, 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 등은 특성화 학과로 불리지만 정시 합격선이 해당 대학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서강대의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는 인문학과 문화 예술에 첨단 기술공학을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특화된 학부, 여러 융합 학과 가운데서도 단연 튄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미래 인재를 키운다는 비전을 갖고 있는데, 최근에는 외국어고 출신 학생들의 지원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 학과에 입학 하면 먼저 인문학, 예술, IT 분야에 대해 두루 배운 뒤 2년 후에는 예술 기반의 아트 트랙과 공학 기반의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5년제 학과를 운영하는 전공도 생겼다.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학부 3년 반+석사 과정 1년 반 과정을 통합하여 운영한다. 기업과 연구 협력을 하기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삼성 입사가 보장된다는 메리트도 있다. 아주대 소프트웨어융합학과는 2012년에 신설된 학과로 융합이 가능한 산업 분야 전반에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 목표다. 이 학과생들은 수험생 같은 타이트한 학과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2학년부터 심화 전공을 수강하고, 핵심 교과목에서 C학점을 받으면 모두 F로 처리돼 재수강을 해야 한다. 3학년부터는 현장 실무 교육이 강화돼 다양한 인턴십을 받을 수 있다. 융합의 바람은 꼭 전공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교양 과정에서도 융합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경희대에서는 교양 대학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개설해 전교생이 전공에 상관없이 이 교양 대학에서 3분의 1 이상의 수업을 소화해야 한다. 교양 대학에서는 자연+우주+기술, 역사+문화+소통 등 그야말로 전 분야를 아우르는 수업이 이뤄진다. 장래 어떤 분야가 새롭게 부각되고 어떤 분야가 사양길에 접어들 것인가를 예측하는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꾸준한 탐색을 하여 자신의 길을 닦아 나간다면 길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2016년 2월 16일은 시인 윤동주 70주기다. 기획된 것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으나 윤동주 조명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먼저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 두 달 만에 5만 부가 팔렸다는 소식이다. 1955년 옛 활자체 그대로 살린 복제 출판본 시집인데, 가히 폭발적 반응이라 할만하다. 영화 ‘동주’는 2월 17일 개봉했다. ‘사도’의 이준익 감독이 초저예산 5억 원을 들여 흑백필름으로 연출한 ‘동주’ 역시 흥행몰이중이다. 3월 12일 기준 100만 명을 돌파했으니, 손익분기점은 넘어선지 이미 오래 전이다. 보통 상업영화라면 그깟 100만 명 할 수 있지만, ‘동주’로선 대박에 다름아닌 숫자이기도 하다. 3월 20일부터는 서울예술단 제작의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공연도 앞두고 있다. 뮤지컬도 시집이나 영화처럼 흥행할지 귀추가 주목되지만, 그가 간지 70년이 된 오늘 윤동주 조명이 활발하고 그에 대한 대중일반의 반향이 뜨거운 건 사실이라 해도 시비할 사람이 없을 듯하다. 필자도 윤동주를 고교에서 가르칠 때 유념한 것이 있다. 군산여상이나 전주공고같이 특성화고 시험에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답이 되도록 주관식 문제를 꼭 냈던 것. 수능보다 취업이 먼저인 특성화고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그 정도는 교양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소신 때문 그리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KBS TV가 3월 6일(일) 밤 8시 고정프로 ‘장영실 쇼’ 대신 공사창립특집다큐 ‘불멸의 청년 윤동주’를 방송한 것은 시의적절성이 돋보인 편성이라 할만하다. 해외촬영 등 제작 기간이 필요한 다큐멘터리를 사전 기획한 그 안목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쩌면 공영방송 KBS만이 해낼 수 있는 프로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불멸의 청년 윤동주’는 짧기만 한 그의 생애(1917~1945)를 내용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김용택⋅이정록⋅공광규 시인의 좌담 형식과 마광수⋅김응교⋅송우혜 등 논문이나 평전 저자들의 인터뷰, 그리고 유고 시집이 빛을 보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다. 사실은 고교에서 윤동주를 가르쳐온 교사로서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이번 다큐에서 그의 삶이 비교적 생생하게 전달되었던 것. 가령 윤동주가 다닌 용정의 은진중학교가 일제의 간섭을 피할 수 있던 치외법권 지역이었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동경유학을 위해 부득이 창씨개명(일본명 ‘히라누마도쥬’)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새롭게 다가온 것은 윤동주의 외국에서의 유명세 소식이다.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일본어⋅중국어 등 이렇듯 많은 언어로 발간된 우리 작가가 얼마나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그 위상에 절로 감탄이 생겨난다. 특히 일본에서의 윤동주 현상은 아이러니와 함께 부끄러움도 느끼게 해준다. 예컨대 훼손된 윤동주의 묘지를 발굴해낸 것은 우리 학자나 정부가 아닌 일본교수에 의해서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포커스를 그리 맞춘 탓도 있겠지만, 마치 윤동주가 한국인 아닌 일본 사람인가 할 정도로 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뜨거운 걸 엿볼 수 있어서다. 우리 선열(先烈)에 대한 자세를 스스로 반성하고 점검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 도지사대 영문과 일본인 동기생들을 2명이나 찾아 인터뷰하는 등 해외촬영에 들인 수고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간간이 내레이션으로 처리한 시편들도 오랜만에 대하는 것들이라 잔잔한 감흥을 준다. 그의 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이렇게 시가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가 가슴을 파고든다.
이 도로는 안전한가?...공무원들의 현장 확인 행정이 필요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보도는 안전한가? 혹시 걸어가다가 움푹 파인 곳에 걸려 넘어지면 어떻게 하지? 그렇다면 보도를 잘 살피고 걸어가야지….’ 오늘 우리 아파트에서 출발하여 일월저수지를 지나 천천동 푸르지오 아파트옆 보도를 거닐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정천중학교 옆길을 지나 정천 지하차도를 지난다. 그러면 화서역에서 율전역으로 통하는 덕영대로가 나온다. 나는 지금 천천동 00치과를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내 아내는 수원시내에 있는 모 초등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아마도 지난 달일 것이다. 그 학교에 3월 1일자로 부임 발령을 받은 교사가 미리 새 학년도 준비를 하려고 출근을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잠시 외출했다가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다친 원인은 보도 관리 불량. 의사 진단 결과 슬개골 골절로 진단 12주가 나왔다. 울퉁불퉁한 도로나 파인 보도를 걷다가 주의를 하지 않으면 넘어져 다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본인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학교 교육에 차질을 가져온다. 교감은 그 교사가 입원해 있는 동안 어린이들을 대신 가르칠 기간제 교사를 급히 구해야 한다. 새 학년 새 학기부터 대타가 뛰는 것이다. 꿈과 희망에 부풀어 등교하는 어린이들을 임시 선생님이 맡는 것이다. 1년 농사 시작을 자칫 잘못하다간 농사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친 교사의 마음은 어떠할까? 우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원망한다. 도로 관리 부실로 자기가 다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무원에 대한 미움이 싹튼다. 담당 공무원이 현장을 둘러보고 미리 도로의 위험성을 제거했다면 사고를 미연에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원망이 더 확장되면 국가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진다.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우리 아파트에서 목적지까지 빠른 걸음으로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내가 걸은 보도에서 위험한 곳은 없었나? 눈을 크게 뜨고 유심히 살펴보니 몇 군데 보인다. 대부분의 인도가 지자체의 관리로 안전이 유지되고 있으나 사람의 통행이 빈번하지 않은 곳은 위험한 곳이 발견되었다. 보도 옆 자전거 도로가 위험하다. 시멘트 바닥이 부서져 자갈 같은 돌이 널부러져 있다. 움푹 파인 곳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져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재산상의 손해를 가져오고 인명이 다치는 것이다. 차도와 아파트를 구분 짓는 경계석이 있다. 바로 그 옆 보도쪽에 굵은 볼트가 나와 있다. 걷다가 이 볼트에 걸려서 넘어지면 중상이다. 그런데 이 볼트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내가 발견한 것만 열 곳 정도가 된다. 아마도 공사 후 뒤처리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보도 위에 나온 이 볼트를 잘라내야 한다. 느티나무 가로수 아래가 위험하다. 나무 물빠짐을 위하여 쇠로 된 보호대를 놓여져 있다. 그런데 이 보호대가 없어진 것이 여러 개 눈에 띤다. 몰지각한 사람들이 고물로 가져갔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놓여져 있는 것이라도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 느티나무 옆을 지나가다가는 사고가 나게 되어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고 있는 공공시설물의 안전점검이 필요하다. 우리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리 공무원들이 책임지고 있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안전의식이 투철하면 대형사고도 막을 수 있다. 안전으로 인한 시민들의 원성이나 민원을 받으면 안 된다. 공무원들의 발로 뛰는 현장 확인 행정이 필요하다.
지난 토요일 ‘기러기 리더십’에 대한 동영상을 보았다. 감동이 되었다. 기러기의 리더십을 가지면 좋은 리더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선생님들은 보람을 느낀다. 수많은 리더를 길러내기 때문이다. 세계를 선도해서 이끌어갈 리더를 길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리더십의 유형 중에서 ‘기러기 리더십’을 가지면 좋은 지도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V자형을 그리며 날아가는 맨 앞의 리더 기러기는 많은 기러기들을 이끌어가야 한다. 여정이 너무나 멀고 길다. 40,000Km나 되는 여정이다. 따뜻한 곳, 먹이를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험한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이런 여정을 비행할 때 리더는 참 중요하다. 리더가 용기가 없으면 모두가 힘을 잃게 된다. 기러기의 리더는 무엇보다 용기다.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 가장 앞에서 역풍을 맞는다. 아무도 경험하지 않는 역풍을 스스로 맞으며 낮아간다. 이런 용기가 없으면 리더가 될 수 없다. 기러기의 리더는 협력의 리더다. 함께 가도록 이끈다. 혼자 날아가는 것보다 함께 날아가면 71%나 쉽게 날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함께함이 중요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리더는 언제나 동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리더가 그러하니 함께 따르는 기러기도 펠로우십을 잘 발휘해 함께 한다. 함께 날아가다 일행 중 총에 맞아 떨어지거나 아프거나 해서 떨어지면 동료들은 외면하지 않는다. 기력을 잃은 기러기가 회복할 때까지 함께 힘을 북돋워준다. 기러기가 회복되면 함께 떠난다. 또 동료 기러기가 죽으면 함께 슬픔을 나누고서 나서 다시 떠난다. 그리고 리더가 힘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러면 뒤에서 따르는 기러기들을 응원한다. 울면서 따라오는 것은 힘을 잃지 말라고 응원을 보내는 메시지다. 아무도 조롱하지 않는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 아무도 핀잔을 주지 않는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모두가 힘을 다시 내도록 한다. 얼마나 보기 좋은 기러기떼들의 행진인가?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있지만 그 중에는 힘이 남아도는 자가 있는가 하면 힘이 모자라는 자도 있다. 그럴 때 힘이 남아도는 자는 공동체의 힘이 모자라는 자의 짐을 더 짊어질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가 있다. 우리 선생님들은 모든 학생들에게 기러기의 리더십을 기를 수 있도록 잘 지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아침이다.
2016 바람개비 동아리 영월, 태백 지역 답사 방송대 관광학과 여행 동아리 ‘바람개비’. 올해 첫 정기 답사로 영월, 태백을 다녀왔다. 무려 40명이 참가했는데, 대학교 여행 전문동아리의 여행은 일반인들과 어떻게 다를까? 답사지 선정과 당일 진행 등은 그 수준면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동아리 회원에 가입하여 처음으로 동행하였다. 여행 떠나는 날, 기대와 흥분이 너무 컸었을까? 마치 초등학생 시절,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이처럼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몇 차례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았다. 밖은 아직 깜깜한 어둠이다. 아마도 새로운 사람들과의 동행이기에 새로운 출발이기에 그런가 보다. 아니다. 여행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류역 환승주차장에서 40명이 전세버스에 환승, 답사 일정에 나섰다. 여행의 목적지는 무려 다섯 곳이다. 영월의 청령포(淸泠浦), 태백의 황지(黃池), 검룡소(儉龍沼), 석탄 박물관, 추전역이다. 답사 일정표를 보니 출발지, 이동시간, 문화관광해설사 동행, 소요시간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귀가 시간은 밤10시로 예정되어 있다. 하루 동안 빡빡한 답사 일정이다. 대학교 관광학과 여행 동아리의 여행 답사는 어떻게 다를까? 일반인들이 이 동아리에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첫 답사 참가이기에 곰곰이 기록을 남겨 보았다. 다른 친목 동아리에 적용할 만한 것이 여러 개 보인다. 상대 동아리의 좋은 점을 받아 들인다는 것은 발전하는 동아리의 특징 중 하나이다. 첫째, 여행 답사 준비가 철저하다. 연간 계획은 새 학년도가 시작하는 2월에 이미공지되었다. 연간 회원 모집과 3월 참가자 모집도 마찬가지다. 동아리는 눈높이와 생각이 비슷해야 한다. 그래야 모임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버스에서 나누워 준 당일 답사 안내계획서, 목적지 지도와 안내 소개책자, 김밥, 떡, 과일 등을 보니 운영진의 노고가 짐작이 간다. 둘째, 이동 버스 안에서의 활동이다. 임원진 소개에 이어 각 학년별 참가자가 자기 소개를 한다. 동문 선배들도 참가하여 격려의 말을 건넨다. 여행 동아리 ‘바람개비’의 의미도 알려준다. 동류의식을 강화하는 것이다. 빙고 게임, 가위 바위 보 게임 등 레크리에이션을 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작은 선물을 선사한다. 이 때 선물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게 배려를 한다. 셋째, 여행 목적지 선정이 교육적이다. 대학 교과서에 나오는 지리여행이 기본이 된다. 흥미와 놀이 위주의 관광이 아니다. 우리나라 자연지리를 공부하는 여행이다. 여행사나 지자체에서 추천하는 곳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다. 태백팔경 중 우리가 선정한 곳은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와 한강 발원지 검룡소 두 곳이다. 넷째, 답사하면서 사진 기록이 습관화되어 있다. 요즘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촬영 기록을 남긴다. 물론 디지털 카메라도 있다. 기록한 사진은 카페나 밴드에 실시간으로 탑재하여 교환한다. 여행 정리 단계에서는 우수 포토는 시상을 한다. 일 년에 한 번 ‘바람개비’라는 오프라인 책자를 발간하여 영구 기록으로 남긴다. 다섯째, 회칙에 근거하여 동아리를 운영한다. 팀장을 비롯해 운영진 몇 몇이 자의적으로 운영하고 회원들이 따라오는 형태가 아니다. 참가비 정산 원칙도 세워져 있다. 이 날 참가비는 5만 5천인데 정산 결과 1인당 1만 5천원씩 즉석에서 돌려준다. 참가비 운영이 투명한 것이다. 점심식사는 태백의 별미 물닭갈비로 하였는데 1인분에 6천원으로 실속 있는 음식 선정이다. 이밖에 빡빡한 일정은 장점인지 단점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루 다섯 곳을 답사하자니 시간적 여유가 없다. 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서둘러야 한다. 버스가 기다려주지 않으니 생리작용은 미리 챙겨야 한다. 저비용에 여러 곳을 둘러보고 일찍 귀가할 수 있으니 장점이 되지만 체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무리가 될 수 있다. 이 날 동행한 8년차 문화관광해설사 두 명은 베테랑으로 여행공부를 심화시켜 주었다.
3월 8일, 청주행복산악회원들이 겨울산이 아름다운 진안의 운장산에 다녀왔다. 운장산(雲長山)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구름이 오래 머무는 산으로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정천면·부귀면, 완주군 동상면에 걸쳐있다. 운장산이 위치한 진안군은 1000m에 육박하는 산들이 많은 고원지대로 인근의 무주군, 장수군과 함께 호남의 지붕이라 불리는 진안고원을 이룬다. 이곳을 지나면 우리가 가끔 사용하는 ‘무진장’을 떠올린다. ‘무진장 많다’의 무진장(無盡藏)은 양적이나 질적으로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나타내고, ‘무진장 멀다’의 무진장(茂鎭長)은 진안고원이 오지 산간지방으로 만들어 교통이 무척 불편했던 무주, 진안, 장수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말이다. 아침 7시 용암동 집 옆에서 출발한 관광버스가 중간에 몇 번 정차하며 회원들을 태우고 남쪽으로 향한다. 서청주IC로 들어서 중부, 경부, 통영대전고속도로를 교차하는데 구름에 달 가듯이 희미하게 보이는 햇살이 흐린 날씨를 예고한다. 인삼랜드휴게소에 들르고 금산IC를 빠져나와 55번 지방도를 달리는 차안에서 달콤 회장님이 초창기멤버로 오랜만에 참여한 공월산님을 환영하고, 석진 산대장님이 산행안내와 다음 일정을 소개했다. 구름이 많이 끼고 해를 반나절 밖에 볼 수 없다는 운일암반일암을 차창 밖으로 구경하고 9시 25분경 피암목재에 도착했다. 운장산(높이 1126m)은 높이에 비해 등산코스나 거리가 부담스럽지 않다. 느린마을양조장(운장산휴게소)이 위치한 피암목재는 능선에서 바로 산행을 시작하는 비교적 쉬운 코스의 들머리다. 피함목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면 피함목재에서 활목재까지 1시간, 활목재에서 서봉까지 30분, 서봉에서 중봉까지 30분, 중봉에서 동봉까지 30분, 동봉에서 내처사마을까지 1시간 거리다. 대불리독자동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활목재까지 1시간 동안 고도를 높이는데 초입에서 가는 눈발과 찬바람을 만났다. 조망이 좋은 곳에 발걸음을 멈추고 왔던 길을 뒤돌아보면 가까이는 장군봉, 멀리는 대둔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활목재에서 서봉까지는 직선에 가까운 깔딱 고개가 가파르게 이어져 숨을 헐떡이며 땀을 쏟는다. 운장산 정상에서 높이가 고만고만한 서봉(높이 1022m), 중봉(높이 1126m), 동봉(높이 1133m)을 차례로 만난다. 처음 만나는 서봉은 큰 암봉으로 아래에 조선 중종 때의 성리학자 운장 송익필이 수도했다는 오성대가 있다. 칠성대는 운장산에 살던 스님과 선비를 시험하기 위해 내려왔던 북두칠성의 일곱 성군에 대한 전설이 전해온다. 서봉은 예사롭지 않은 위용이 느껴지는데 주변의 산세를 굽어 살피듯 중봉과 동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최근에는 서봉을 칠성대로, 중봉을 운장대로, 동봉을 삼장봉으로 부른다. 운장산은 그 자체로도 산세가 빼어나고 정상은 호남의 명산들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멋진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흐린 날씨지만 굽이굽이 펼쳐진 산자락 사이로 두 귀를 쫑긋 세운 마이산도 보인다. 서봉에서 중봉까지는 비교적 산행이 수월하지만 중봉에서 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제법 거칠고 위험한 구간도 지난다. 유난히 많은 산죽이 산행을 즐겁게 하고 동쪽의 물은 금강, 서쪽의 물은 만경강으로 흘러간다는 것도 재미있다. 정상이 좁은 동봉은 표석이 서있던 자리만 남아있어 아쉽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맛있는 커피도 마셨다. 늘 그렇듯 하산 길은 여유롭다. 석호 후배님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2.9㎞ 거리의 내처사마을 주차장에 1시 40분경 도착했다. 먼저 내려온 회원들과 현장에서 부친 전과 오징어찌개를 안주로 뒤풀이를 했다. 인정 많은 대포님은 하나라도 더 팔아주려고 시골아낙들이 등산객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장소를 떠나지 못한다. 내처사동 초입의 높이 15m, 수령 300년의 소나무 보호수를 구경하고 2시 30분 청주로 향했다. 금산IC로 들어선 관광버스가 통영대전고속도로 인삼랜드휴게소에 들르며 빠르게 달리더니 경부고속도로 남청주IC를 빠져나온다. 수시로 변하는 날씨를 어떻게 알겠는가. 뒤늦게 태양이 반짝하고 얼굴을 내민다. 가끔은 거꾸로 하는 것도 재미있다. 평소와 달리 출발지부터 내려줘 4시 30분 집에 도착했다.
우리 학생들이 날마다 하는 일이 공부다. 얼마전에 전국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시험을 치뤘다. 이 성적을 바탕으로 자신이 진학할 대학을 찾게 될 것이다. 공부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라는 단어를 사전을 찾아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스스로 공부를 규정하여 그 개념 속에서 살고 공부라는 활동을 하는데 이 활동에는 많은 차이가 난다. 그러다 보니 공부가 힘들고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관심도 적다. 내가 존경하는 한 정신과 의사는 “공부는 기억이다.”라고 정의를 한다. 대학을 다니기까지 그리고 의사가 되기 까지 엄청난 양의 정보를 기억하는데 투자하면서 얻을 결론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분은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으며, 시험지를 받아보면 분명히 공부를 한 것인데, 영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공부라는 것은 일단 내가 새로운 지식을 입력하는 단계가 있다. 그리고 해마나 측두엽에 잠시 기억을 하는, 창고에 저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필요할 때 끄집어내는, 회상을 해야 하는 출력을 할 수가 있어야한다. 결론적으로 기억과 저장, 출력(입력-저장-출력)이 3단계가 공부이다. 이것을 뇌과학적으로 보면 기억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신피질이 제일 위에 있고 그 아래 변연계에 해마가 있고 편도체가 있다. 이것의 작동에 의하여 공부가 이뤄진다. 기억을 잘하기 위해서 감정과 기억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만일 원시인들이 생활할 때 “저쪽 강가에 갔더니 딸기밭이 있더라. 좋다. 신난다.” 그러면 그것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또 가고, 내년에도 거기에 가야지 딸기를 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기억도 해마에, 또는 장기기억인 측두엽에 저장을 해야한다. 한편 좋은 기억 뿐만 아니라 나쁜 기억도 저장해야한다. ‘사자는 무섭다. 그 쪽 숲속에 가면 사자가 있다.’ 이것도 기억해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래야 다음에 거기에 안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피해야하는 것으로 생존의 비결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편도체와 해마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기억을 잘하려면 감정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과 연계를 하는 기억을 우리가 ‘감정 기억’이라고 한다. 우리는 모든 이야기를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감동적인 기억을 영원히 간직한다.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 국민교육헌장을 영어로 번역하여 외우도록 지도한 영어 선생님이 기억난다. 그리고 일리아드·오딧세이를 수업하기 전에 이야기 해 주신 선생님도 기억하고 있다.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기억은 그만큼 감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억을 하려면 가급적 대뇌의 많은 부분을 써야 한다. 인간에게는 오감이 있다. 이 오감을 사용해야 한다. 듣고, 보고, 모든 신경을 동원해야 한다. 특히 그냥 외우는 것보다 말로써 이야기하면서 외우는 것도 좋다. 옛날 서당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몸을 좌우로, 앞뒤로 흔들면서 하는 것을 보았다. 이는 리듬을 이용한 것이다. 무엇인가를 생산해 내기 위해서는 들어있는 것을 다시 새롭게 연결짓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학도 암기라는 뜻은 무언가가 창고에 들어가 있어야 풀어내지,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으면 어떻게 풀어내겠는가? 기억을 할 때 중요한 것은 나무를 그리듯이 그려야 한다. 나무를 그릴 때는 큰 나무 밑동을그린 다음에 가지를 그리고 잎을 그리는 순서를 갖는다. 이것을 프레임 오브 레퍼렌스(Frame of Reference)라고 한다. 그렇게 그려나가야 기억이 고구마 줄기처럼 붙어서, 훨씬 더 기억하기가 쉽다. 또한 기억에는 ‘기억의 간섭’이라는 현상이 있다. 새로운 기억은 그전의 기억을 방해하는 경우가 나타난다. 아주 힘들게 기억했는데, 새로운 것을 기억하려면 방해를 한다. 반대로 아무리 새로운 것을 기억하려고 해도 헌 기억이 새로운 기억이 못 들어오도록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방해, 간섭, 혹은 억제 현상이라고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것을 공부하면 방해를 잘 한다. 그래서 영어공부를 하다가 수학을 조금 하는 것처럼 끊어가면서 공부하는 것도 굉장히 좋은 기억 방법이다. 왜 기억이 그렇게 모호할까? 우리가 신경회로가 굉장히 많기도 하지만, 한 회로에 한 기억만 담으면 혼란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 회로에 많은 것을 담기 때문에 가끔 이런 모호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잊는다. 이것도 또한 축복이다. 그러나 기억을 해야 할 것을 잘하기 위해서는 복습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온종일 공부했지만 그날 한 공부는 4분의 3은 잊어버리게 된다. 25퍼센트도 잘 남아있지가 않는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공부가 끝난 후에 5분 동안 복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공부한 것은 잠자기 전 30분에 다시 복습을 해야 한다. “아이고. 그 지겨운 공부를 또 해?” 그렇지만 복습 안 할 바에 왜 공부를 하는가? 정착이 안되었다면 이전의 시간투자는 헛것이 된다. 그래서 복습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한 달 후 이런 기간으로 복습을 해야 한다. 기억에는 복습밖에 왕도가 없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공부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 공부를 즐겁게 하는 마음을 갖고 하면 공부는 즐거운 것이다.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고, 평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이다.
세상에 저절로 이뤄진 것은 없다. 우리가 사는 지구도 그렇고 나의 삶까지도 모두가 그렇다. 백운산 자락 돌밭에 매화가 만발하는 곳. 이 아름다운 꽃들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겨 가는 곳, 광양 다압마을! 그곳에 누가, 무엇이 있길래 나는 가는 것인가를 질문하고 가 봐야 한다.
수능감독 후기 2015.11.12.(목) 아침 6시도 안되었다. 그런데 눈이 떠진 것이다. 신기한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는 일을 그만둔 이후로 잠이 많아졌던 것이다. 오늘은 정말 중요한 날이다. 나에게도 중요하지만 고3 수험생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날이다. 바로 수능시험일! 12년 동안 공부한 것을 한 순간에 모두 평가하는 날이라서 그런지 온 나라가 떠들썩댄다. 아직 큰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이라서 피부에 느껴지지 않지만 수능감독으로 국가의 부름을 받은 것은 10회째이다. 영광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회피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내 교직인생에서 수능일은 중요한 날이 되었다. ‘수능감독 종사원’이라는 종이를 유리창에 껴놓고 운전해 가니 맘이 든든하다. 역시 고사장 앞에는 경찰, 부모님, 학생들이 아우성이다. 내 차를 에스코트 하듯이 안으로 안내하는 경찰의 얼굴도 못 봤다. 벌써 긴장이 돼서 그런가. 어제 2시간이 넘게 감독연수를 받았지만 여전히 머리는 텅비어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이 안된다. 열 번도 넘게 했기에 그렇다. 지난해까지는 열심히 준비했지만 이제는 안심이 될 정도다. 나와 같이 임용된 동기 교사도 그런 것 같아 보인다. 우리도 이제는 중년이다. 요즘 수능은 조금 쉬워졌는지 예년과 같이 생떼를 쓰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갑자기 소리지르거나 감독교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도 보기 힘들다. 부정행위의 흔적조자 없어진 듯하다. 참, 우리학교가 특성화고이다보니 좀 더 쉬운 고사장으로 배치되곤 한다는 사실. 작년과 같은 고사장이다보니 학교측에서 배려해주는 것도 고마웠다. 이게 사람사는 맛이 아닌가 한다. 수능감독을 하다보면 인간미가 느껴진다. 오늘도 82년생이 시험을 보러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말 수능을 통해 인생을 바꿔보려는 어떤 사람의 투쟁이리라. 또 이번년도에 졸업한 사람이 바로 재수를 했는지 시험을 보러왔다.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을까. 정말 자신의 재능(탤런트)이 무엇인지 알아서 도전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목표한 대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도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다. 중간에 여러 가지 목표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물위에 떠있는 배처럼 앞으로 가야한다. 무사히 4교시까지 마쳤다. 정말 이상하다. 예년보다 더 힘들어야 하는데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날씨에 맞지 않게 두꺼운 옷을 입고 온 것 빼고는 좋았다. 선생님들이 국가를 위해 이렇게 헌신하는 모습 보기 좋았다. 이제는 다시 학교로 간다. 많은 업무와 우리반 아이들을 국가를 위해 기여하는 인재들로 만들리라 다시 다짐해 본다. 그리고 이 직업을 준 하늘에 감사한다. 나를 살아있게 만들어주는 아이들에게도 감사한다. 그 아이들은 이제 자격증 준비중이다. 꼭 취득해야만 하는 국가자격증. 그들에게도 도전하라고 동기부여 해야겠다.
나는지금 몇 개의 저축통장을 갖고 있는가? 오늘처럼 기분이 착잡한 날도 없을 것이다. 어제 밤 늦게 Y중학교에 근무했던 부장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당시 체육부장이였던 모 교사가 저 세상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지난 설 명절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모임에 나타났기에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향년 42세.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고인은 체육교사답게 체격이 좋다. 키도 크고 건장하다. 다리도 굵어 체력 또한 강하다. Y중학교에선 각종 체육행사를 주관하였고 전공이 씨름이라 수원시 대표, 경기도 대표로 전국체전에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체육수업도 잘 하여 외부 손님을 모시고 공개수업도 한 적이 있다. 가정에서는 아내와 딸, 아들 네 식구가 행복하게 살았다. 나와의 근무는 2년 반 동안 하였다. 학교생활이 성실하고 수업도 잘 할뿐 아니라 본인이 초빙교사를 원하여 2014년부터 4년간 Y중학교에서 더 근무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는 2014년 3월 학교를 떠나 전직을 하였다. 그 동안 소식을 몰랐는데 안산의 S고교에 근무한다고 한다. 아마도 무슨 사정이 있어 근무지를 옮겼나 보다. 전화를 건 부장교사의 말에 의하면 지난 설 명절 후 간염 증세가 나타나 입원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 증상이 악화되어 간 수치가 매우 높게 나왔다고 한다. 의사 말로는 환자가 신체조건이 좋고 체력이 강해 잘 이겨내고 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얼마 전 두 종류의 간염이 겹치고 황달도 심하게 나타나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세상을 등질 줄 아무도 몰랐다. 아침 일찍 대학병원 장례식장을 찾으니 손님이 별로 없다. 분향을 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예의를 표하였다. 빈소를 지키는 가족에게 나의 신분을 밝히니 본 적이 있다고 하면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부인은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조문을 하고 정중한 인사말을 건넸지만 배우자를 잃은 슬픔을 어찌 말로 표현하랴. 아마도 하늘이 무너진 듯 참담한 기분일 것이다. 점심 땐 교직에서 퇴직한 선배들과 함께 광교산을 찾았다. 항아리 화장실 코스인데 헬기장까지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 분들 평소 얼마나 건강관리를 했는지 산행 도중 벤치가 보여도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헬기장 인근 전망 좋은 바위에서는 준비해 온 간식을 먹는다. 이 분들은 산새들과 언제 친분을 쌓았는지 땅콩을 잘게 쪼개어 손바닥 위에 놓으면 산새들이 땅콩을 물고 달아난다. 몇 년 전인가 ‘일본 은퇴자들이 후회하는 것들’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일본의 경우나 우리의 경우나 별 차이가 없다. 은퇴 후 후회하는 것은 건강, 돈, 일과 생활, 인간관계 분야인데 후회막급은 무엇일까? 이른 바 ‘∼걸 ∼걸 ∼걸’이다. 건강 분야에서는 치아를 소중히 관리할 걸, 꾸준히 운동해서 체력을 길러둘 걸, 평소에 많이 걸을 걸, 약간 부족한 듯(8부) 먹을 걸 등이다. 돈 분야에서는 좀 더 많이 저축해 둘 걸이다. 은퇴 후 생활 측면에서 후회하는 것은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가질 걸, 여행을 많이 할 걸, 좀 더 여러 가지를 공부해 둘 걸, 퇴직 후에 활용할 자격증을 따둘 걸, 가족과 친구관계 등 인간관계를 소홀히 하지 말 걸 등이다. 지금 우리 은퇴자들이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건강할 때 건강의 소중함을 모른다. 건강을 잃고 나서 비로소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은퇴한 선배들이 말하는 후회는 현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깨달음을 준다. 선배들이 후회하는 것을 미리 알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고 실천한다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위에 나타난 각 항목을 보니 나도 반성할 점이 보인다. 치아 임플란트는 벌써 세 개째이다. 아내와 해외여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직장 일 때문이라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교직에 매어 있다 보니 다른 분야의 공부는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지금 방송대 공부를 하고 있다. 가족과의 대화와 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배우자와 가족이다. 절친한 친구와 사이가 좋으면 노후가 즐겁다. 후회 없는 인생, 이제야 조금은 보인다. 바로 5개의 저축통장 마련이다. 일상을 즐길 수 있도록 ‘취미 저축통장’,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교양(지식) 저축통장’, ‘건강 저축통장’은 필수이고 노후가 외롭지 않도록 ‘친구 저축통장’, 품위를 잃지 않도록 ‘돈 저축통장’. 나는 지금 몇 개의 저축통장을 갖고 있는가?
아직도 섬진강가의 찬 바람이 매화꽃 볼을 쉬임없이만지고 스쳐간다. 3월 11일 오후 느즈막한 시간에 매화마을을 찾았다. 3월 18일 무렵이 매화꽃의 절정이라서 아직 꽃밭을 이루지 못한 매화꽃이지만 오가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서 있다. 이 매화꽃이 피기 전 다압 산골은 여느 시골과 다름없는 농촌의 한적한 산골이었으리라. 그러나 척박한 돌산을 꽃피고 사람이 찾아오는 낙원으로 바꾼 한 일꾼이 있었다. 그 이름은 홍쌍리 명인이다. 이 돌산을 가꾸기에 그녀의 손은 너무 가냘펐다. 하지만 46년 동안 손이 호미가 되어 16만여평이 넘는 매실 농원은 많은 사람들에게 향기를 전달하는 행복의 장소로 변신한 것이다. 그녀는 이야기 한다. "세상은 파도가 쳐야 재밌제이" 라고... 이번 꽃길따라 물길따라 열리는19회 광양매화 축제에 오신 관광객은 오직 매화꽃만 보지 말고 인간 승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돌아가길 기대하여 본다. 그러기에 아이들과 손을 잡고 이 축제장을 꼭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
교총은 14일 서울시교육청이 ‘불법 찬조금 및 촌지 근절대책’을 발표한 데 대해 “교직사회 전체를 잠재적 촌지 수수 집단으로 오도해 교원의 자긍심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시교육청은 이날 학교 촌지 근절을 위해 ▲공익제보센터 확대 설치 ▲상근시민감사관 특별점검 ▲10만원 이상 금품 수수자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등을 골자로 한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교총은 즉각 입장을 내고 “시교육청이 밝혔듯이 촌지 사건은 지난 2013년 10건, 2014년 8건, 2015년 6건에 불과함에도 학기 초면 이벤트성으로 촌지근절 대책을 발표해 학교 현장을 촌지가 난무하는 곳으로 부정적 인식을 조장한다”며 행정 실적주의를 꼬집었다. 이어 “학교 출입구와 교무실 등에 현수막을 게시하고 자체점검 체크리스트를 작성토록 하는 것은 교육적이지도 못하고 잡무성 행정을 양산하는 지침으로 제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규정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고 다른 지역 교원과 다르게 적용돼 형평성 문제도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14년 ‘서울시교육감 지방공무원 징계의 양정에 관한 규칙’을 개정, 10만원 이상 금품 수수자는 중징계, 10만원 미만은 경징계 처분을 내리도록 했다. 교총은 또한 “음주 감사 등을 이유로 감사원으로부터 해임 요구를 받은 시교육청 감사관이 공직기강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학교 현장에서 볼 때 어불성설”이라며 조속한 처분을 촉구했다. 이어 “교총은 교원과 학부모간 신뢰회복을 위한 감사편지 나누기 등 마음의 촌지문화 운동으로 전환할 것을 강조해왔다”며 “교직사회 스스로의 자정운동이 해법임을 인식하고 교직윤리헌장을 조속히 개정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9일 교총을 방문해 현장교원과 현안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가졌다. 취임 후 유·초·중·고·대학 등 각 급별 교원들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현장의 애환과 고충을 직접 듣는 자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장관은 예정된 시간을 40분 넘기면서까지 시종일관 진솔한 자세로 구체적인 답변을 하며 현장과 거리 좁히기에 나섰다. 세부적인 내용은 배석한 실·국장에게 하나하나 묻고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주목할 대목은 현장중심의 상향식(bottom-up) 정책추진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취임 초기 초·중등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이번 간담회를 계기로 불식시켰다는 평가를 가능케 한다. 이 장관은 무엇보다 스승존중 풍토조성을 위해 방송·미디어와 협력해 사회적 인식 개선에 노력할 것을 약속하고,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해 3월 중 교권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부장교사, 교감선생님이 토로한 행정업무 폭주와 상대적으로 부족한 대우에 대해서도 분명히 인식하고, 바로 교육부 담당실장에게 꼭 챙기도록 지시하는 성의를 보였다. 또한 해외교사 파견에도 적극 공감하고, 연수휴직 기간에 대한 호봉 및 경력 인정 등에 대해서는 불이익이 없도록 종합적인 검토를 지시했다. 이번 간담회는 유·초·중등·대학 정책에 대한 이해와 현장의 실상을 가감 없이 체감하고, 토론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특히 최대 전문직 교원단체인 교총을 동반자로 인식하고 지속적인 소통을 강조한 것은 올바른 교육정책 수립을 위한 바람직한 좌표설정으로 보여진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취임 일성으로 강조한 ‘현장과의 긴밀한 소통’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으려면 간담을 정례화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상시교섭이다. 이 장관과 현장교원의 대화가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교총과의 간담회를 정례화 해서 일선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구현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