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01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학교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교사들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모든 규제와 제도 등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마음껏 가르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교원의 선발은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행 교원임용체계에서는 한번 임용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평생 그 직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가르치는 직업을 우대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가 있다. 이러한 사회적 풍토로 인해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교직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 현실은 획일적인 규제와 간섭이 그대로 남아 있고, 늘어나는 잡무와 교육활동 이외에 급식, 보육, 생활지도 등의 업무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열심히 가르치고 전문성을 제고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좋은 교사가 최상의 수업을 전개할 때,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만족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임용된 지 2년 된 교사가 교원능력개발평가에서 2년 연속 최하 점수를 받는다거나,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매년 반복해 교체요구를 받는 교사, 담임을 하지 않으려고 2월만 되면 몸이 아프다며 진단서를 제출하는 교사 등을 보면 '왜 이분들이 교직을 선택했나?' 의문이 든다. 현재 학교현장에는 교수-학습의 개선을 통한 교과지도보다 생활지도 및 그 외 많은 업무에 치여 힘들어 하는 교사들이 많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교직 3년 이내 교사 중 80%정도가 후회한다고 하니 학교 관리자로서 안타까움이 많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교원임용고사 개편 방안이 논의 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부디 학생들에게 관심과 배려를 할 줄 알고, 적극적으로 담임교사가 되기를 원하는 분들이 교사로 선발되는 시스템을 갖추기를 기대해 본다. 시안에서 지적한 현행 임용시험의 문제점이 양적 수급을 맞추기 위한 일회성 평가로 교사가 지녀야 할 기본소양에 대한 평가가 어려운 지식위주 평가라는 점, 그리고 획일적인 방법의 대규모 선발방식 및 사교육의존도 증가와 대학교육의 경시 풍토 등이라는 데 공감한다. 교사의 70∼80%가 중등학교 시절 은사 중 어느 한 분의 교수-학습 방법을 모방하고 있으며, 대학 전공 교육내용이 중등학교 교과서나 교육과정과 관계없는 교수 전공 위주의 학문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은 교사양성 교육과정과 교육방법의 현장적합성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임용시험 방식을 개선할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해 대학들의 교원양성교육과정의 개혁을 도모함으로써 학교현장에 적합한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을 예비교사들이 학습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임용 후 학교현장에서 부딪치게 될 교과지도, 학급관리, 생활지도 등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학교현장에서 필요한 기능과 지식 및 소양 등을 겸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1차 교육학 시험을 폐지하고, 국가인증 중심의 인·적성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사 능력 인증 제도를 현재 고1학년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2018학년도부터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교육실습을 근본적으로 개혁해 교생실습 결과를 임용시험에 반영해야 한다. 대학에서는 3~6개월(한 학기) 정도의 실습 기간을 두고 교생실습 결과에 따라 15~20학점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해주도록 하며, 단위학교에서는 ‘교생실습평가위원회’를 구성한 뒤 다면평가, 교원능력개발평가, 객관적 평가지표를 통해 평가 등 세 가지 평가를 통한 계량화 틀을 마련해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기간제 교사, 방과후 학교 강사, 사서, 학교교무보조 업무, 과학실험 조교 등으로 근무한 경력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본다.
새해를 맞아 한 해를 설계하며 미래에 대한 설렘과 희망으로 활기차야 할 우리 사회가 유달리 어수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학교폭력과 그 결과 빚어진 학생들의 죽음은 우리 사회를 암울하게 만든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해 세계적으로 번져나가는 국가재정위기는 국제경제를 위축시켜 수출중심의 우리나라 경제전망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해야 할 일을 팽개치고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 눈이 멀어 연일 아전인수식 주장만 되풀이하는 정치꾼들은 우리 사회를 더욱 허탈하게 만든다. 이 같은 우리사회 현상을 단적으로 진단하면 '모순 덩어리'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우리사회 구석구석이 모순과 갈등으로 무너져가고 있는 듯해 지켜보기 안타까울 뿐이다. 선진국의 정치사회 구조를 살펴보면 보수와 진보가 상호견제하며 선순환 구조를 형성해 사회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상호균형이 무너질 때면 어김없이 전쟁이나 경제위기 등 큰 재앙을 초래하곤 했다. 지금의 남유럽 경제위기가 그 대표적 예다. 우리나라도 그 주장의 차이를 엄격히 구분하기 힘든 보수와 진보의 상호견제가 유지되었을 때는 사회가 비교적 건전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해왔다. 국가 발전과 더불어 개인의 계층이동도 활발히 이루어져 사회적 갈등도 자연스럽게 치유되곤 했다. 사회적 소외계층이 가진 이들을 부러워하기는 했어도 증오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현재의 야당이 집권했던 10년, 그리고 그들의 실정으로 보수가 집권한 지금, 계층 간 위화감이 심해지다 못해 증오하게 된 것을 어찌 설명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전교조를 중심으로 한 진보 교육 세력들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들을 구체화시킨 현재의 교육제도가 과거 입시 제도를 포함한 교육시스템보다 더 우수하다는 증거를 찾기가 너무나 힘들다. 일부 친 전교조 성향의 교육감들이 중심이 되어 발표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를 따르면 교사들이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수단은 전무해진다.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하다는 것은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학생들의 인권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 만들어진 학생인권조례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인성적으로 성숙해 자신들의 잘잘못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고 그에 따른 행동도 철저히 이성에 따른다는 가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교육계에 일하거나 적어도 학부모이기만 해도 청소년들의 정신적 성숙도가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이러한데도 이를 모른척하며 학부모들의 불안감에 편승해 각종 선거를 위한 포퓰리즘에 매몰되는 일부 교육계 인사들과 정치꾼들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가진 자들을 증오하면서 자신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온갖 편법을 저지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지나친 경쟁은 인성을 피폐시킨다며 교육에 필수적인 경쟁요소를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되면서도, 결국 최후의 승자만이 살아남는 무한경쟁 연예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자신의 자녀들은 미국으로 유학 보내면서 미국과 관련된 정치적 사안만 대두되면 의사당을 버리고 길거리로 투쟁만 하러 나가는 정치인이 너무 많다. 고위공무원들이 교육을 위해 위장 전입하면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국회의원 자신들의 위장전입은 애써 모른 척 한다. 이런 예들은 우리 사회가 가진 모순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 전체가 모순덩어리이면서 청소년들에게는 모순 없이 올바르게 행동하라고 가르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 가정이 모순을 가르치고 사회 지도층이 모순을 솔선수범하기에 우리의 청소년들이 학교폭력과 같은 삐뚤어진 행동을 옳다고 믿는지도 모를 일이다. 열심히 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선생님들에게는 대단히 죄송스러우나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학생과 자녀를 어떻게 가르쳤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반면교사’의 뜻을 가슴에 새길 때다.
2011년 서울 지역 초등학교의 여교사 비율은 무려 85.0%, 중학교 교사는 68.7%로 특히 대도시 지역 여교사 비율이 매우 높았다. 고교도 10년 전 30%대였던 여교사 비율이 2011년 전국평균 46.2%로 증가했다. 이처럼 일선 학교의 여교사 비율이 급속히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이 자료는 사립과 공립을 구분하지 아니하고 가공된 통계이므로, 보통 사립학교에 남교사가 더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대도시 공립 중등학교의 경우 학부모가 체감하는 여교사 비율은 통계자료보다 더 높을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의 여러 나라를 보아도 여교사의 비율이 월등하게 높은 것은 교육이라고 하는 직업이 여성에게 더욱 적합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최근 학교에서의 돌봄 기능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이때에 남교사보다는 여교사의 감성이 학생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하고 가르침을 배움으로 이끌게 하는 데 더욱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남학생들 중에는 여교사를 무서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없이 잘못을 감싸주는 엄마 같은 인물쯤으로 착각하고 덤벼드는 경우도 드물게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특정 성(性)의 문제가 아니라 교원 개개의 지도력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또 어느 특정 성별을 가진 교원이 다른 성의 특성을 잘 교육할 수 없을 거라는 논리 또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즉, 여성 교사가 남성성을 잘 교육하지 못해 아이들이 여성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매우 약하다. 차라리 여초현상의 현 교직상황에서 여성교원이 남성교원보다 어떤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든가, 어떤 측면의 능력을 더 길렀으면 좋겠다는 주장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체벌의 해독(害毒)이 유독 강조되는 요즘 학교에서는 교사가 학부모를 설득해 이해를 구하고 학생들을 타이르고 기다려주며 상담해야 하는 경우가 잦다. 이런 역할은 여교사들이 더 잘 해낸다. 여교사에게 부족한 부분의 역량을 기르도록 하는 일이 바람직하지 이제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남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교직 진출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사회 정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녀평등이 적절히 실현되지 못한 현 상황에서 교직의 여초 현상 하나만을 부각시키고, 그 균형을 위해 남교사할당제를 주장하는 것은 역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서울 거원중 교장
우리나라 초·중·고 여교사 비율이 갈수록 높아 간다는 소식을 접한 지가 꽤 되었다. 물론 어느 분야에서든 능력 있는 재원이 선발되어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절대다수가 되어서 어느 한 성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교육수요자가 균형 잡힌 성 역할을 배우는데 무리가 있을 것이다. 장애우를 위한 각 과목별 할당제가 실시되고 있고 지역에 따라 농어촌지역의 따로 교사를 채용하는 방식도 나오는 등 교육 실정에 맞는 교사 임용을 위해 교사 선발 방식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남교사의 부족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초등학교 5학년만 되어도 예전 중학생들 이상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왕따 문제, 학교폭력, 이성교제 등 돌발행동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중학교에서는 더욱 학생 생활지도가 어렵다. 그래도 남교사가 엄하게 지도하면 따르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여교사는 만만하게 보고 욕설까지 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도 철이 들어 자주 심하게 싸우지는 않지만 간혹 남학생들이 싸우기라도 하면 후속조치로 야단을 치게 될 때 나이 드신 남자 교사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한 부모 가정이나 맞벌이로 아버지와 따로 떨어져 주말부부로 지내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이때 보통 어머니가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고 보살피는데 아버지와의 접촉이 모자라 아버지의 정이 그리운 아이들이 있다. 학교에서는 공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의 인격도 형성시키는 곳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역할을 남교사를 통해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었으면 한다. 사립학교는 사정이 조금 다르지만 일반 공립학교에서는 특히 여교사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 사실이다. 여교사의 지도를 받은 학생들이 여성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그 나름의 따뜻함, 섬세함과 차분함을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교육 일색으로 진행되면 남자교사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강인함, 씩씩함, 대범함 등은 학교교육을 통해 전혀 접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초등학교 남학생들 사이에는 '우리는 언제 담임선생님으로 남자선생님 만나볼 수 있을까' 기대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새 학년이 되어 담임교사 발표를 기다리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한 번이라도 남자 담임선생님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상황이 사라지는 이제는 그만됐으면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일 터지는 학교폭력 사건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기에 미쳐 피어보지도 못한 채 무엇보다 소중한 자기 목숨을 포기했을까? 25년째 교단에서 아이들과 지내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무겁다.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살 사건 이후 각 단체는 단체대로, 언론사는 언론사대로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내놓기에 바쁘다. 여러 가지 대안과 대책을 들으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생각나며 걱정스런 마음이 든다. 사실, 학교폭력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고, 이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많은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며 고민을 해왔다. 그러한 고민 끝에 나온 정책이 ‘전문상담교사’ 제도이다. 2004년 1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학교와 교육청에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2005년 9월부터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매년 인원을 3000~4000명씩 증원해 모든 학교에 한명 이상의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발표됐다. 수업을 겸임하는 상담교사로는 다양한 유형의 청소년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고 전문적인 학생상담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2009년부터 교육정책이 바뀌면서 전문상담교사는 증원되지 않았다. 매년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이 7만여 명, 청소년 자살 200여명, 반항장애·품행장애·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등으로 상담치료의 개입이 필요한 위기청소년의 수가 180여만 명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전국의 학교에는 고작 570여명의 전문상담교사가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 570명이 어떻게 180만 명을 감당하란 말인가? 이런 사정을 감안했을 때 이번 사건은 예견된 일이며, 언제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미, 대구 사건에 이어 대전 여고생 자살사건, 광주 집단 성추행 사건, 논산 금품갈취 및 괴롭힘 사건 등 계속해 학교폭력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일 신문 지상을 떠들썩하게 하지 않았던가? 사건이 일어난 그 학교에 Wee 클래스와 전문상담교사가 있었더라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문상담교사가 Wee 클래스에 있으면 아이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학교생활 고민을 털어놓고 지원을 받을 수가 있다. 자해를 하던 아이가 Wee 클래스의 지원을 받아 활짝 웃으며 학교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고, 우울해하고 불안해하던 아이가 상담치료를 받은 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즐거움을 회복한 아이들도 있다. 며칠 전 우리 학교에서 실시한 ‘학교폭력실태조사’에서도 몇몇 아이들은 교실에서는 설문에 충실하게 답변하기 불안하다며 일부러 Wee 클래스에 와서 상세하게 적고 가기도 했다. 평소에도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Wee 클래스에 놀러 와서 자신들의 진로 고민뿐만 아니라 학급에서 일어나는 일을 쉽게 이야기한다. 학생들이 학교폭력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 사건이 두 번 다시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의 희생이 일어나기 전에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실현해 나가야 한다. 전문상담교사 대체인력(상담사, 인턴 교사 등)을 배치하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신분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상담을 하거나, 교내외의 교사·전문가와 협의 등을 하며 체계적인 상담 치료를 진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에서는 더 이상 임시방편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시스템을 구비하는 일, 즉 학교마다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겠다는 원래 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기 바란다.
‘가르치다’는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어 배우게 하다는 말이다. ‘가르키다’는 '가르치다'의 잘못된 표현이다. 예를 들면 ‘동생을 가르켰다’가 아니라 ‘동생을 가르쳤다’가 맞는 말이다. ‘가르치는’ 일에는 언제나 혼신의 힘과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한다. ‘가르치는’ 일은 자신을 던지는 일이다. ‘가르치는’ 일은 내용과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기보다는 자신의 철학과 신념이나 가치관을 ‘가르치는’ 것이다. 특정 내용에 대한 자신의 체험적 스토리, 거기에 담겨진 철학과 신념, 지식을 얻는 동안 고뇌했던 체험적 열정을 가르치는 것이다. ‘가르치는’ 가운데 학생들이 받는 감동은 ‘가르침의 기교’에서 오지 않고 가르침에 임하는 스승의 ‘자세와 태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가르침은 기법과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과 열정, 자세와 태도의 문제다. 제자가 원하는 것은 전달하는 메시지보다 메시지에 대한 스승의 관점과 철학, 체험적 스토리와 열정이다. ‘가르치다’라는 말과 혼동될 수 있는 말이 바로 ‘가리키다’이다. ‘가리키다’는 손가락으로 어떤 대상이나 사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말이다. 스승은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가리키는 사람이므로 ‘가르침’은 곧 ‘가리킴’이다. ‘가르침’은 곧 ‘가리킴’이기 때문에 잘못 ‘가르친다’는 것은 곧 방향을 잘못 ‘가리킨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과정에서 스승이 범할 수 있는 최대의 실수는 제자들이 나아가야 될 방향을 잘못 ‘가리키는’ 것이다. '스승이 있는 곳에 도(道)가 있고 도가 있는 곳에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다. 길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찾는 것이다. 스승은 길의 방향을 가리키는 사람이고 제자는 그 길에 도달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서 발견하는 사람이다. 궁극적으로 길을 찾고 길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은 자신이다. 깨달을 ‘각’(覺)자를 보면 ‘배워서’(學) ‘본다’(見)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가르침’을 받고 방향에 대한 ‘가리킴’을 받으려면 먼저 배워야 큰 깨달음이 있다는 의미다. 배우지 않고 문제의식이 없는 제자에게 스승이 아무리 가르치거나 가리켜도 가르침과 가리킴의 본질과 내용과 방법을 깨닫기 어렵다. 위대한 스승은 제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너무 많은 가르침은 오히려 제자의 유연한 생각을 가로막을 수 있으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꺾을 수 있다. 제자가 갖고 있는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마중물과 같은 질문을 던질 때 제자는 마침내 꿈틀거리는 욕망의 물줄기를 찾을 수 있다. 진정한 가리킴은 질문을 던지는 일에서 비롯된다. 질문도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 과감하게 미지의 세계로 떠나도록 유도하는 질문이어야 한다.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이나 단답형 답을 요구하는 질문은 오히려 제자들의 지적 탐험과정을 방해할 수 있다. 스승이 던지는 질문의 성격과 방향이 제자가 얻을 답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한다. 제자가 어제와 다른 답을 만나게 하려면 어제와 다른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 있도록 안내해주어야 한다. 한편 ‘그르치다’는 무언가를 잘못해 일을 그릇되게 한다는 의미다. ‘그르치다’는 한자로 '誤(오)'라고 쓴다. 가르치면 긍정적으로 사람이 바뀌지만 그르치면 사람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멍청한 의사 한 명은 환자 한 명을 죽일 수 있지만, 멍청한 교사 한 명은 수백 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스승이 ‘가리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방향을 잘못 가리키면 내용을 잘못 ‘가르치는’ 것보다 그 파급효과가 훨씬 막대하다. 이제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일방적 가르침은 정답이 존재할 때 가능한 일이다. 갈수록 문제는 복잡해지고 하나의 정답 보다는 여러 가지 현답(賢答)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스승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제자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함께 헤매는 것이다. 다만 스승은 제자보다 답이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헤맸던 경험이 많을 뿐이다. 스승은 체험적 깨달음을 통해 제자에게 다양한 현답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제자에게 질문을 던져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해보는 길로 안내해주야 한다.
학교폭력에 관한 한 노르웨이는 세계적인 대표선수이다. 또래 괴롭힘(bullying) 용어를 처음 사용한 노르웨이 학자, 댄 올베우스(Dan Olweus)는 학교폭력이나 또래 괴롭힘 행동에 관한 국내‧외 논문이나 연구에 가장 빈번하게 출현하고 있다. 특히 올베우스가 개발한 설문지와 프로그램은 노르웨이뿐 아니라 유럽 국가와 미국,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멈춰’ 역시 노르웨이 올베우스 프로그램이다. 1982년 노르웨이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학생 3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노르웨이는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해 사회 전체가 괴롭힘 근절 실천운동(Manifesto Against Bullying)을 전개하고, 유명한 올베우스(Olweus) 괴롭힘 방지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서양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도입·운영하고 있다. 초·중·고교에서 "우리는 다른 학생을 괴롭히지 않는다", "우리는 괴롭힘 당하는 학생을 돕는다"는 등의 학생 행동규칙을 만들고, 유치원부터 다른 아동을 괴롭히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은 괴롭히는 행동을 목격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괴롭힘 멈춰(Stop Bullying)"라고 외친다. 이밖에도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매니페스토는 학교폭력 무관용(zero tolerance) 정책을 핵심모토로 삼고 있다. 매니페스토의 주체는 중앙정부, 시민단체, 학부모단체, 지방자치단체, 학교와 유치원, 청소년 여가활동 단체 등으로 구성된다. 매니페스토의 주요활동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학교와 학부모, 학생들에게 배포한다. 둘째, 다양한 언론 매체를 이용하여 학교폭력에 대한 국민의식 수준을 제고한다. 셋째,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을 위한 프로그램의 보급과 개발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마련한다. 매니페스토 주체는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특정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지방자치단체나 지역수준의 학교가 독자적인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을 위한 활동계획을 세우고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하는 데 중점을 둔다. 특히 매니페스토 주체가 마련하는 재정적 지원은 일선 학교와 지역 사회의 학교폭력 발생을 줄이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한다. 매니페스토는 학교폭력 발생건수를 줄이거나 학생의 체감 효과 면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학교폭력에 대한 국민의식 제고나 정부와 민간, 학교와 지역사회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캐나다에서는 ‘불링’(bullying․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집단 괴롭힘)이라 일컫는 학생 간 집단 따돌림이 이제는 신체적 폭력, 폭언, 위협, 금품탈취나 도난, 총기소지, 마약밀매 등으로 그 범위나 정도가 너무 커져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회문제로까지 부상했다. 최근 WHO의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 13세 아동들의 40%가 싸움을 한 적이 있거나, 불링을 당했거나 가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간접적으로 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은 90%가 넘는다. 학교내 폭력을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북미도 예외는 아니어서 학생의 60%가 직․간접적인 폭력의 피해자라고 한다. 학교폭력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슈가 아니나, 그 기폭제가 된 것은 1999년 콜로라도 주 ‘컬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 학교폭력 문제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자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여론 역시 들끓기 시작했다. 캐나다 인구는 미국의 1/10 수준이며 유럽식 사회보장이 잘 돼 있기에 미국에 비해 여타 사회문제가 덜하나 학교내 폭력에 대해선 법과 질서준수의 원칙하에 일체의 관용을 용납하지 않는 ‘No Tolerance Policy(불관용 정책)’를 견지하고 있다. 이는 1994년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 학생의 학교 내 총기소지가 발각될 경우 무조건 1년간 장기 정학처분을 내렸던 것에서 비롯됐다.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일체의 관용을 허용치 않는 엄격한 제제조치가 교육적으로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경우, 2000년 ‘Safe School Act’(학교안전법)를 제정하고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학생들의 폭력사고에 강력 대처하고 있다. 학교안전법은 스쿨버스나 학교 내․외 행사를 포함해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구성원 간의 폭력문제를 다룬다. 신체적 폭력, 성폭력, 강도, 심한 괴롭힘, 일체의 총기 및 마약관련 범죄 행위 등이 포함되며 정도가 심한 경우는 경찰신고도 한다. 학생들에 의한 폭력사고가 발생할 경우, 학교는 우선 문제 학생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 가능한지, 행동에 따른 결과를 인식하는지, 적절한 처벌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다른 학생에게 계속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따져 처벌여부와 수위를 정한다. 학교안전법에서 규정한 정학 및 퇴학조치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정학기준은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신체적 상해를 가할 것이란 위협 ▲술이나 불법마약 소지 ▲술에 취한 상태 ▲교사나 기타 일정한 지위에 있는 사람에 대한 욕설 ▲학교 내 기물이나 다른 사람의 재산에 파손을 야기할 수 있는 난동 ▲교육청에서 규정한 학생 행동규범에 위배되는 행위 등이다. 정학조치는 교장과 교사 양자가 내릴 수 있으며 교사의 경우 1일, 교장은 최대 20일까지 정학조치를 단행할 수 있다. 교사가 내린 1일 정학조치에 대해서는 학생의 이의제기가 허용되지 않는다. 퇴학기준은 ▲칼, 총을 포함한 무기소지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끼칠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하거나 위협하는 경우 ▲병원치료를 요할 정도의 상해를 입히는 신체적 폭력 ▲성폭력 ▲강도행위 ▲미성년자에게 술 제공 ▲교육청에서 규정한 학생 행동규범에 위배되는 행위 등이 있다. 퇴학의 경우 2가지 유형이 있는데 최저 21일부터 1년간 단행하는 한시적 퇴학조치는 교장과 교육청에서 내릴 수 있으며 학교가 정한 시정조치를 이행할 경우, 해당학교의 복교가 가능하다. 영구 퇴학조치는 교육청에서만 조치 가능하며 주에서 정한 엄격한 규율 프로그램을 완수하지 않는 한 온타리오교육청 산하 어떤 학교에도 복교할 수 없다. 정학․퇴학조치를 내릴 경우 학교는 해당 학생 및 학부모에게 반드시 서면통지를 하며 불응할 경우, 교사나 교장이 내린 1일 정학조치를 제외하곤 이의제기절차를 통해 적법성 여부를 심판 받을 수 있다. 실제 연간 정학조치건수를 보면 학교안전법이 발효되기 전 해엔 전체 재적학생의 5.3%인 11만3778건에서 2003~4 학년도엔 7.2%인 15만2626건으로 증가했다. 동기간 중 퇴학건수 역시 106건에서 1909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그러나 각 교육청간 법 적용에 일관성이 없고 상대적으로 소수인종 학생에 대한 징계조치가 많으며 No Tolerance Policy자체의 효과에 대한 회의도 만만찮아 학교안전법 자체에 대한 수정논의도 비등한 실정이다. 영어동시통역사
최근 우리나라는 학교에서 ‘왕따’로 사고가 자주 일어나면서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교육계는 자살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야 호들갑을 떨며 심각성을 이야기 한다. 사실 왕따 문제는 아이들 주변에 항상 있어왔지만 어른들이 가볍게 여기며 방치했기 때문에 더 커지게 된 것이다. 왕따는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학교문제는 아니다. 지금의 어른 세대가 어릴 때도 그랬고 그보다 더 오래된 옛날부터 존재 했다. 그러나 갈수록 늘어나는 학습에 대한 스트레스와 가정교육의 부재, 정신적으로 예민해진 청소년 사이에서 그 정도가 심각해지면서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 학교에서는 1주일에 50만 건의 ‘모빙(Mobbing․집단적으로 이뤄지는 심리적 형태의 동료 억압)’이라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왕따 현상을 의미한다. 학생 6명 중 한 명이 모빙을 경험한 것이다. 이렇게 정확한 통계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독일 사회가 모빙을 얼마나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독일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독일은 왕따 문제를 대단히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에서 사소한 모빙 사건이라도 발생하면 교장실이 발칵 뒤집히고 교사회의가 소집될 정도다. 특히 최근엔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모빙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은 통제가 어렵기 때문에 그 심각성이 더해 언론에도 자주 오르내린다. 독일은 모빙의 심각성에 대해 학교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역 대학을 중심으로 모빙은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으며, 학교현장에서는 꾸준히 해결책을 찾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모빙을 단순한 왕따라는 의미로 가볍게 이야기 하지 않고 ‘모빙테러’란 말까지 사용하며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베를린 자유대학 교육연구팀은 ‘페어플레이’란 이름의 안티모빙 수업 콘셉트를 만들어 학교 현장에 배포했다. 전 학년을 대상으로 프로젝트주간을 정해 이뤄지는 이 프로그램은 일주일 동안 총 17시간의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모빙에 대한 구체적인 진실을 알려주고 심각성을 주지시킨다. 수업 내용은 사회성을 기르는 훈련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면서 도덕성이 필요한 이유 등에 관한 주제를 상황극으로 체험해 본다. 또한 다양한 발표를 통해 모빙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에 따른 공포감과 우려, 스스로 경험한 왕따에 대한 기억을 털어 놓으며 함께 해답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이 수업은 왕따를 당해보거나 가해자로서의 경험이 전혀 없는 학생들도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베를린 대학 연구팀은 이에 대해 “왕따의 희생자나 가해자가 아니라도 그러한 상황을 목격하고도 문제 삼지 않고 침묵하는 행위는 사전에 막을 수도 있는 사고를 방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안티모빙 프로젝트 주간 수업은 현재 베를린 지역의 7학년부터 9학년까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돼 큰 성과를 거뒀다. 수업을 받기 전에 모빙을 경험한 학생은 24%였으나 수업 후에는 12%로 줄었다. 또한 가해자도 24%에서 19%로 감소했다. 무엇보다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거칠게 감정을 표현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교육결과에 만족하고 있다. 베를린 시범학교에서 성공을 거둔 안티모빙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 독일 전역에 보급될 예정이다. 얼마 전, 브레멘의 잔드웨넨 학교에서는 ‘모빙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안티모빙 프로젝트 주간에 들어갔다. 브레멘 교사들은 주교육연구소에서 안티모빙 연수를 받고 수업을 주관한다. 헤센 주는 주 문화부와 건강보험사가 연합해서 ‘왕따 없는 학교’란 슬로건으로 현장교육을 시작했다. 헤센주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1000여 개의 안티모빙에 관한 교사수업자료와 학부모 정보지 등을 제작, 배포했다. 이밖에도 4년 전에 이미 12개 학교를 시작으로 안티모빙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함부르크 주도 좋은 모범사례다. ◆모빙이란 ‘집단에서 제외시키다’, ‘이간질 하다’, ‘심리적 테러’ 등의 뉘앙스를 풍기는 영단어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왕따’에 가까운 뜻. 직장에서의 정신적 테러를 가리키는 용어에서 시작됐다.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심리적 형태의 동료억압인 모빙은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스트레스의 극단적 형태를 뜻하는 전문용어이다.
학교 내 폭력과 집단 따돌림 현상은 미국 학교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뉴욕시 스태튼 아일랜드에 위치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다이앤 커밍스는 학교에서 친구들의 지속적인 따돌림에 시달리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작년 말 경 달리는 버스에 뛰어들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가족들에 따르면 커밍스 양은 학교에서 급우들에게 휴대전화와 신발, 옷을 빼앗기는 등 집중적으로 왕따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가해자들은 페이스북을 포함한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커밍스 양에게 지속적으로 폭언을 일삼는 등 온라인상에서도 집단 따돌림을 계속해 왔던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청소년들 사이에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디지털 학대가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 조사 기관에서 발표한 청소년 폭력 실태 자료에 따르면, 미국 10대들 중 24%가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로부터 디지털 데이트 학대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절반 이상은 이러한 폭력의 피해자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고 응답해 디지털 학대가 청소년들 사이에 점점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 문제는 한국과 미국 할 것 없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고 그 정도도 심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한국과 미국 정부와 교육 당국의 대처 방안은 확연히 다르다. 한국은 집단 따돌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법안 제정에 소극적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을 예방하고 사건 발생 시 신속하게 대처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의 책임을 강하게 묻는다. 미국은 이미 46개주에서 ‘집단 따돌림 방지법(Anti-Bullying Law)’을 제정해 시행중이다. 특히 10개주에서는 가해 학생을 형사 처벌 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학교는 학교 내에서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 사건이 발생하면 반드시 정부에 보고하고, 정부는 신고가 접수되면 수사 전문가를 임명해 신속하게 조사를 펼쳐 가해 학생을 처벌한다. 그리고 조사와 처벌 결과는 인터넷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 된다. 더 나아가, 미국 연방 교육부는 최근 집단 따돌림 행위를 단속하지 못하는 학교에는 더 이상 연방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최근 직접적인 학교 내 폭력 사태와 함께 디지털 학대 또한 증가하면서 미 연방 정부가 일선 학교에 직접 책임을 묻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최근 학교 내 집단 따돌림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교사나 학교 직원이 학생들의 집단 따돌림 행위를 인지하거나 목격했을 경우 이를 가해자와 피해자 학생의 보호자에게 알리도록 의무화 하는 법안의 제정을 추진 중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만약 학교 직원이나 교사가 학생들의 집단 따돌림 행위를 인지하고도 이를 외면하거나 가해자와 피해자 보호자들에게 알리지 않을 경우 징계를 내리도록 해 교직원들의 감시와 예방에 대한 책임감을 의무화 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정부와 교육당국은 학교 내 폭력과 집단 따돌림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 적극적이고도 단호한 대처를 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정부와 교육당국의 대처는 소극적이고 미온적이다.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으로부터 청소년들을 지켜내는 일은 학생들의 성적을 높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학교가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정부와 교육당국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다. 정부와 교육당국은 앞서 소개한 미국의 사례들을 참고해 학교가 폭력과 집단 따돌림으로부터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교육환경에는 큰 차이가 있고 같은 미국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학교의 여러 문제에 다가가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미국의 학교폭력 문제 대처 방식이 전적으로 옳다거나 같은 방법을 한국에 적용해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미국 공립학교에서 카운슬러로 근무하며 필자가 경험한 미국 학교들의 왕따 문제 대처 방법을 이 자리에서 함께 나눔으로써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왕따 문제의 예방과 근절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반(反) 왕따' 분위기 조성에 주력 미국 학교들은 처음부터 교직원과 학생 모두에게 학교는 그 구성원들의 상황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무조건 안전한 장소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교육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버지니아주 패어팩스 카운티의 공립학교에서는 매년 새 학년이 시작되는 9월이면 전교생을 학년별로 모아 놓고 이틀에 걸쳐 '성희롱 예방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필수로 진행한다. 프로그램은 학교 카운슬러들이 직접 주관·진행하며, 동영상 등을 활용해 성희롱의 구체적인 실례와 심각성 및 방지책에 대해 가르치고 그 중요성을 수차례 반복해 강조한다. 이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및 그 산하 교육청 등이 법제화한 규정을 통해 이뤄진다. 성희롱이란 성적 수치심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유발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들을 포함하며, 언어적 가해 외에도 이메일이나 채팅 등을 통한 비언어적 가해, 육체적인 가해를 모두 포함한다는 점을 철저히 가르친다. 피해 학생들의 고통 등에 대해서도 연극으로 재현하는 방법 등을 활용해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문제 발생 후 가해자와 피해자 위주로 개별 사건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왕따 문제를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전체 학생들에게 철저히 교육시킴으로써 학교 전체 분위기를 '반(反) 왕따'적인 것으로 만들어 문제를 예방하는 데 주력한다. 도움 받을 수 있다는 믿음 주어야 이런 왕따 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해도 아직 올바른 주관이 뚜렷하게 정립되지 않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언제든지 여러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간단명료하게 가르친다. 여기서 대처법이란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하면 학생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 들지 말고 바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것이다.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이지만, 여러 사람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특성을 지닌 사춘기 학생, 특히 어렸을 때부터 남의 잘못을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것을 ‘고자질’ 이라 배우며 자란 한국 학생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학교와 가정에서 ‘고자질’과 자신의 권익을 찾기 위해 도움을 청하는 것 간의 차이를 아이들에게 명확히 가르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학교에 상주하는 경찰, 카운슬러, 선생님, 학교 청소부 아저씨 등 누가 되었던 학생이 편하게 어려움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분을 찾으면 된다고 가르치며, 학교 내에 편한 사람이 없을 경우 부모님께라도 솔직히 얘기하고 도움을 청하라고 가르친다. 어린 학생들일수록 일반 교사보다는 좀 더 편하게 의논할 수 있는 카운슬러에게 어려움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한국도 카운슬러 제도를 활성화하기 바란다. 한국에서 자란 많은 한인 학생들은 친하지 않은 어른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아 학교 카운슬러보다는 자신의 부모에게 어려움을 털어 놓는 경우가 더 많은데, 한인 부모님들은 문제를 알고 나서도 해결을 위한 도움을 청하는 데 주저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혹시 자녀가 더 큰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용기 내어 속내를 털어놓은 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무너져 더 큰 고통에 대해서조차 입을 열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어느 누구보다 자녀의 안전을 중시해야 할 부모로서 좀 더 확고하고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면 현실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어야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문제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전 구성원에 명확한 책임 분담 모든 교직원들에게 학생 안전에 대한 책임을 분담하도록 하는 법적 제도도 필요하다. 필자는 학생이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도움을 청해 왔을 경우 대게 두 가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겪는 다툼 정도면 해당 학생들을 사무실로 불러 양쪽 입장을 서로 충분히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화해하도록 한다. 하지만 단순한 다툼을 넘어 섰다는 판단이 서면 바로 법규에 따라 이를 해당 학생의 학부모나 학교 교장단에 보고한다. 이 경우 대부분 부교장이 직접 문제 파악 및 조사 과정을 총괄하며, 해당학생들의 진술이 엇갈리면 증인이 될 만한 모든 학생들을 한 명씩 불러 구체적인 조서를 쓰게 한 후 이에 근거해 정확한 사건 규명에 힘쓴다. 조사결과 의도적으로 육체적·정신적 해를 가한 것으로 판명 될 경우 학교 차원에서 정학 처분 등 엄격한 처벌을 즉각적으로 내린다. 금전 강탈, 협박, 육체적 폭행 및 고문 등에 대해서는 학교에 상주하는 경찰이 바로 개입해 형사조치가 필요한지 여부를 조사한다. 만약 형사법에 반하는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되면 경찰은 학생을 형사기소하는데, 학생이 미성년일 경우 법적 보호자가 함께 법정에 서야 한다. 또한 피해 학생의 이야기를 교직원들이 가볍게 여겨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피해 학생이 더 큰 피해를 입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자가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이로 인해 카운슬러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 교직원들이 의무적이나마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학교 안전은 모든 사람들이 철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대처해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이를 아예 법규로 명시한 것이다. 한국도 교육법, 형사법 등 관련 법규의 개정을 통해 학생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베스트 아카데미 원장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배은희 의원이 학교폭력피해자협의회와 함께 만화로 보는 학교폭력 대처 매뉴얼 '이 땅의 모든 학부모가 알아야 할 학교폭력 10가지 비밀'을 발간·배포했다. 매뉴얼은 학교폭력피해자협의회 회원들의 경험을 토대로 '소문내기', '놀림', '별명 부르기'처럼 사소하게 여기기 쉬운 행위도 타인에게 큰 아픔을 주는 폭력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사례를 통해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됐다. 신체적 폭력, 정서적 폭력, 금품 갈취, 사이버 폭력 등 유형별 학교폭력의 정의와 사례, 대처법 등으로 구성돼있으며, 피해학생 입장에서의 대처법과 함께 가해학생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모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사항을 담았다. 얼굴에 낙서를 하거나 옷을 벗긴 상태에서 동영상이나 사진을 찍어 돌려보는 '인증샷 게임', 동전에 구멍을 뚫고 낚시 줄을 매어 목 안에 밀어 넣고 꺼내기를 반복하는 '동전 게임', 칼등으로 배, 팔, 다리 등을 그어 공포심을 조성하는 '수술 게임' 등 어른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신종 폭력에 대한 정보도 들어있다. 배은희 의원은 "학부모와 교사는 학교폭력예방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과 주변에서 들은 짧은 지식만으로 대응하다 문제가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며 "학교폭력을 쉽게 이해하고 대처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화를 이용한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교현장에서는 문제가 커질 것을 우려해 학교폭력을 쉬쉬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뒤 "이런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므로 사건이 발생하면 반드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통해 공개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 교단을 떠나는 교원들이 크게 늘고 있다. 15일 광주교육청과 전남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명예퇴직을 통해 학교를 떠난 교원은 모두 358명(광주 112명, 전남 246명)으로 집계됐다. 2010년 308명(광주 91명, 전남 217명)보다 50명(16.2%) 는 것이다. 예년과 달리 교장·교감 등 관리자 명퇴가 급증해 광주에서 3명, 전남에서 13명이 교단을 떠났다. 사립학교의 증가 폭이 커 광주는 33명에서 46명으로, 전남은 25명에서 34명으로 명퇴자 수가 늘었다. 명퇴금 지급액도 광주는 54억원에서 79억원으로, 전남은 140억원에서 164억원으로 증가했다. 명퇴금 확보에 애로를 느낀 광주시교육청은 사학법인의 명퇴 교원 수를 제한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명퇴 예산이 부족한 이유는 무상급식비, 수학여행비 등에 가용재원을 많이 썼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역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의 교권 붕괴, 교원평가제 도입 등으로 교육환경이 급격히 나빠졌다"면서 "게다가 연급혜택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퍼지면서 50대를 중심으로 명퇴를 선택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학생 제대로 보호못받아'…'언론 보도 너무 선정적' 지적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주변에 알려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해 말도 잘 안 해요" "담임교사나 학교는 덮으려고만 해요" "처벌을 더 세게 하는 것이 소용 있는 대책인지 모르겠어요." 15일 오후 서울 구로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긴급 학생집담회'에는 중·고등학생과 현직 교사 등 20여 명이 참석해 2시간여 동안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심모(18)양은 "학교 폭력이 일어나면 담임교사나 학교는 덮으려고만 한다. 처벌이나 대책이 있다고 해도 피해학생은 보호를 제대로 못 받는다. 주위에 알렸다가 더 큰 폭력을 불러올 수 있어 말도 잘 못 한다"고 말했다. 최모(14)군은 "일진들이 한 명만 괴롭히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을 괴롭히기 때문에 한 명이 신고했는데 그냥 덮이면 원래 괴롭히던 여러 명을 한꺼번에 불러 때린다"며 "학생들이 폭력을 신고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얘기하라는 게 솔직히 소용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군은 "학부모들이 나선다고 해도 금방 학교에 소문이 퍼져 더 괴롭힘을 당한다. 학년이 올라가고 체력이 좋아지면 이전에 당했던 걸 되갚는 식으로 피해자도 폭행을 저질러 학교 폭력이 계속 순환되는 경우도 있다"며 목격담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학교 폭력은 힘으로 싸우는 것인데, 학교에서도 등급을 매기며 성적으로 싸움을 붙이고 있지 않느냐'며 학교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을 되물었다. 심양은 "학교에서는 매일 '공부해서 다른 아이를 이겨야 한다'는 식으로 부추겨 경쟁심을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폭력을 말리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김모(15)군도 "'도덕'이 점수 잘 받으려고 만든 과목이 아닌데도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축소 수업한다. 인성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학교 폭력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담회 참석자들은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쏟아진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자극적이고 선정적일 뿐 무책임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닌 5년 중 3년 동안 학교에는 폭력이 있었다. 늘 있었던 일인데 이제야 관심을 두는 게 이상하다"며 씁쓸해했다. 이날 집담회를 연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의 김대근(27) 운영위원은 "언론은 '일진들을 박멸하라'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맞는 사람, 때리는 사람 모두 피해자"라며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천지역 교사와 학부모 단체들은 15일 인천시교육청의 방학 뒤 시험 실시 방침과 관련, 잇따라 성명을 내고 철회를 촉구했다. 시교육청은 최근 초·중·고교생들이 방학을 알차게 보내도록 하기 위해 방학 전에 보는 기말시험을 과목을 나눠 방학이 끝난 뒤에도 실시하는 학사일정 선진화 계획을 수립, 각급 학교의 의견을 조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인천지역 교사와 학부모 단체는 "이는 학생들을 1년 내내 시험공부에만 매달리게 하는 반교육적 발상"이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 계획은 학생들을 방학을 포함해 1년 내내 '학습기계'로 전락시킬 것"이라며 "시교육청은 이 문제보다는 학생들의 인성 향상과 폭력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사)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도 성명을 통해 "학생들은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방학 중에도 학원을 다녀야 해 결과적으로 사교육을 부추기는 방안"이라며 "방학의 취지에 맞게 각자 여유를 갖고 체험과 여행을 즐기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현재 12월 말 기말시험을 보고 방학을 한 뒤 개학을 하면 2월 한 달은 교사나 학생들 모두 거의 허송세월한다"며 "이런 귀중한 시간을 잘 보내도록 하기 위해 방학 뒤에 기말시험을 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형편이 좋은 학생들은 학원이나 과외공부를 하지만 저소득층 학생들은 그런 기회가 없어 학력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며 "학생들이 방학 중 자율학습이나 방과후 학교에 참여해 공부를 하도록 하기 위한 면도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대부분 언론에서 최근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당연히 학교폭력에 관한 내용이다. 학생들의 자살로 이어지는 폭력문제에 대한 심각성이 지나치리만큼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쉽게 결론이 내려지지 않고 계속해서 논란만 가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관련 단체들은 제각각의 논리를 펼치고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안타까움을 더해주는 분위기가 아쉽다.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대책없이 폭로하기에 바쁜 언론들의 보도 자세이다. 학교폭력이 이슈화 되면서 언제 일어났던 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보도되는가 하면 어느 한쪽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식의 기사도 있다. 물론 언론이 할일은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보도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해 주고 여론을 형성해 가는 것이지만 자칫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학교폭력 문제가 발전해 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교육관련 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해 보인다. 학생인권조례제정이 학교폭력 증가에 어느정도 여향을 준 것이 사실임에도 이를 왜곡하고 절대 그렇지 않다는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반면에 학생인권조례가 학교폭력을 증가시킨 주범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 둘 모두 정답은 아니라고 본다. 관련이 있는 것에 공감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에도 공감한다. 학부모단체들은 전적으로 학교교육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 역시 어느정도는 관련이 있다. 학교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학교폭력이 근절되진 않더라도 어느정도는 감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교육과 더불어 교사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모든 책임을 교사들에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교사들이라고 학교폭력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리 없음에도 마치 교사들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 따져 볼 문제이다. 한편 학부모들이나 교육당국에 모든 책임을 떠 넘기려는 분위기도 있다. 가정교육이 잘못되었고, 교육당국의 대처가 미흡하다는 것인데, 이 역시 어느정도 영향을 준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 쪽에만 책임이 있다면 그 부분만 해결하면 학교폭력 문제는 쉽게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폭력 문제는 여러가지 문제가 서로 얽히면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즉 학교폭력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학교와 교사, 가정의 학부모, 교육당국의 정책입안자 들이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그렇더라도 이들에게 각각 어느정도의 책임을 지라는 식의 해결책은 전혀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해결 자체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당국과 사회적인 분위기, 학교와 교사, 학부모들이 다함께 나서야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모두가 조금씩 더 머리를 짜내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당국에서 제시하는상당활동 강화나 폭력신고제도만으로는 절대 해결이 어렵다. 학생들이 학교에 갈 시간임에도 PC방을 찾았다면 그 이유를 묻고 학교에 돌아가도록 유도하거나 거리를 배회하는 학생들이 있으면 학교나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지도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폭력예방교육 등을 좀더 강화해야 한다. 상담교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면 상담교사 뿐 아니라 폭력문제를 안고 있는 학생들을 치유할 수 있는 전문가, 정신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다면 의학적으로 치료를 할 수 있는 인력들과의 연계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상담교사 배치했으니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이다. 학생들의 폭력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학생들이 휴대폰을 이용하여 괴롭힐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오로지 신체적인 폭력만 예방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육체적인 폭력과 함께 정신적 폭력, 휴대폰 등을 활용한 폭력, 컴퓨터 게임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육체적 정신적 폭력까지 모두 포함하여 예방을 해야 한다. 학부모들도 이런 부분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학부모들 만의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학교밖의 폭력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는 일에 나서야 할때가 되었다. 학교내의 폭력 문제는 교사들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학교밖의 폭력예방을 위한 노력에는 학부모와 함께 지역사회의 주민들도 함께 나서야 한다. 내 자녀가 아니지만 내 자녀라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폭력예방활동을 강화한다면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좁게보면 학교폭력 문제는 전적으로 학교와 교사들이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좀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면 학부모를 포함한 국민 모두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행동을 모든 국민이 정확히 살피고 지도하는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결국은 학교폭력이 더이상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 학교가 다함께 폭력근절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석교사는 교수직이고 교감은 관리직이다. 학교의 모든 경영을 수행하고 책임도 지는 것은 교장의 역할이다. 교장이 학교에서 최고 경영자이자 최고 책임자라는이야기이다. 교장 밑에는 교감이 있고, 교감 밑에는 교사들이 있다. 부장교사는 보직일 뿐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관리직의 최고봉이 교장이라면 교수직의 최고봉은 당연히 수석교사다. 교수직의 최고인 수석교사가 법제화되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배치가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면서 수석교사제가 꼬이고 있다. 즉 일선학교에서 교감과의 관계정립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갈등으로 발전하고 있다. 교감들은 당연히 수석교사는 교감직위의 아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수석교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리직인 교감과 교수직인 수석교사를 애초부터 비교하면 안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교감과 수석교사의 관계 정립이 필요한 이유이다. 여기서 한가지 확실한 것은 수석교사는 관리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감, 교장이 되기를 포기한 교사가 수석교사로 뽑힐 수 있다. 물론 이해가 안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수석교사는 수석교사 그 자체가 되어야지, 교감과 자꾸 비교해서는 아무것도 진전이 되지 않는다. 교수직의 최고가 수석교사일뿐 교감과 수석교사의 지위를 따지자고 만든 제도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 필요는 있다. 지금껏 교감이 수석교사의 역할을 일정부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관리직으로 여러가지 행정업무도 해왔다. 또한 교내장학활동도 교감이 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부분을 어느정도 양보해야 옳다고 본다. 즉 장학활동에 관한 부분은 전권을 수석교사에게 넘겨야 옳다. 물론 교감은 장학활동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학활동도 하되, 전권은 수석교사에게 넘겨주고 협조하는 차원에서 교감들이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수석교사제가 도입되었는데, 관리직 업무와 장학활동까지 교감이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동안은 대신해서 장학활동을 해 줄 교원이 없었기에 교감이 이를 맡아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교수직의 전문가로 뽑힌 수석교사들이 본연의 업무를 잘 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계속해서 교감이 맡겠다고 한다면 갈등의 폭이 커질뿐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교감들의 업무가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제는 교감의 업무경감 차원에서라도 수석교사에게 전권을 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수석교사제 도입의 근본취지를 교감들이 이해하고 따라줘야 옳다. 계속해서 갈등을 키운다면 수석교사제 그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감과 수석교사가 서로 같은 레벨이냐의 문제도 따질 필요가 없다. 수석교사는 교수직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고 교감은 관리직으로 분류하면 된다. 즉 교장의 지시를 받는 것이 교감, 수석교사 모두에게 해당되고, 가급적 교감은 수석교사의 업무에 간섭을 하지 않으면 된다. 교감과 교사의 차이로 생각하지 말고 관리직과 교수직의 차이로 보면 된다는 이야기이다. 교육지원청의 예를 들면 교육지원과와 행정지원과의 차이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교육지원과는 교육지원과장의 주관하에 업무가 이루어지고, 행정지원과는 행정지원과장의 주관하에 업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최종결재는 교육장이 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쉽게 해결될 문제인 것이다. 교육지원과장이 행정지원과장의 업무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것과 같은 이치로 보면 되는 것이다. 결국 수석교사제의 성공은 일선학교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조금더 양보하고 넒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수석교사제라는 좋은 제도를 학교에서 막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서로가 협조하고 양보하는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 대결구도로 나간다면 어느 것 하나도 쉽게 해결할 수 없다. 수석교사제 정착을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대전청소년적십자 고등부 제2회 슈퍼 글로벌 리더 프로젝트-대한민국 알리기 봉사활동 대한적십자사 대전·충남지사에서는 2012년도RCY 대전(高)지도교사협의회(회장 송인철)에서 주관한 제2회 슈퍼 글로벌 리더 프로젝트에 대전고등부 RCY 단원 (서일여자고등학교 10명, 구봉고 6명, 지도교사 2명)이 참가했다. 1월 9일부터 12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대만(화련/기륭/야류)를 방문하면서 우리나라 알리기 캠페인 및 대만현지에서 대한민국(세계7대 경관에 선정된 제주도 및 독도관광 상품)알리기 봉사활동을 실시하였다. 대만 최대번화가 서문정 거리에서 실시한 이번 해외봉사활동은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경관 및 관광 상품을 알리는 목적으로 실시하였으며, 특히 한국의 다양한 관광안내 책자 배부 및 제주도의 다양한 모습이 담긴 DVD 및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면서 다양한 문화체험과 국제교류를 통한 친선도모 및 글로벌 인간관계를 함양하고 상호문화 이해 및 체험으로 한류 열풍에 따른 한국의 경제, 문화, 관광을 널리 알리고, 봉사활동을 통해 자긍심과 주인의식을 갖추는 진정한 리더가 되도록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서일여자고등학교 2학년 이다솜 학생은 대한민국 알리기 봉사를 통해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앞서가는 모습을 현지 홍보를 통해 전달하면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고, 앞으로 대만 국민들이 한국을 좀 더 방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말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을 시작으로 온 나라를 흔든 학교폭력의 실상은 해가 바뀌어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은폐되었던 사건들이 봇물처럼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 폭력의 형태도 따돌림, 성추행, 금품갈취, 절도등 남·여학생을 가리지 않고 상습적·반복적으로 자행된 폭력은 나이만 어렸지 성인들의 행태와 별다를 것이 없다. 지금은 방학기간 중인데도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사례들을 보면 개학 후가 더 걱정된다. 이러한 학교폭력을 놓고 학교의 인성교육 미비, 입시경쟁, 가정교육 부재 등원인을 얘기하지만먼저 학교·가정·사회의 책임이 크다. 요즘 일각에서는 학교가 무책임하고무능하다고 하고 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일어나지 않게 교육해야 할폭력이 학교에서 난무하다는것은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가 폭력의 도가니가 될때까지교사들을 무엇을 했느냐다. 물론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지만, 요즘 학교나 교사들은 학교폭력에대처할 권한이나 메뉴얼이 없어 지도가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언젠가부터 교육이 시장 논리에 밀려 교사가 교육의 주체 자리에서 밀려나 학생과 학부모가 교육수요자가 되고부터는 이들의 요구와 목소리는더 커지게 되었다. 한편 교사의 교육권인 교권은점점 위축되어 정상적인 교육이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최근 일부 시도의 학생인권조례 시행은 학교 교육을 더 얼어붙게 하여 사실상 학교교육이 지식교육 이외는적극적인 지도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학교폭력이 학생들이 공부와 일상생활을 하는 학교 공간에서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으로는 가정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가속화되는 저출산은 현상은 자식들을 지나치게 과보호한 나머지 모두가 제왕식 자식을 만들고 있다.형제들이 없어 같이 놀지 못하고,대화할 친구가 없어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풍요함 속에서 어려움을 모르는 오직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자녀들로 키운다는 것이다. 또한 부모의 맞벌이로 인하여 자녀와의 대화할 시간이 적어 제대된 가정교육을 못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의 한 요인이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폭력 및 음란물이 청소년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사회분위기도 문제를 크게 하고 있다. 사회가 개방되면서 온갖 매스컴에서 통제 없이 흘러나오는 폭력물은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의 감각을 지극했고 이러한 욕구는 친구들 사이에서 왜곡된 영웅심으로 표출하게 된다. 이러한 폭력은 학생들의 절제력을 잃은체 학교 내외, 대상을 막론하고SNS로까지 무차별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학교폭력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우리 학교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학교폭력이 무차별적 괴롭힘으로 유행처럼 번지 있다는 점이다. 학교나 경찰을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로 인한 학생자살도 점점 증가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이제야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교육당국은 물론 정치권에서 그 대안이나 제도 마련에 부산하다. 그러나 매일 쏟아지는 대안이나 대책들을 보면 아직도 그 원인을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행안부는 우선 기초자치단체와 교육청, 경찰, 시민단체 등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실효성 있는 학교폭력 예방대책을 추진하기 위해 시·군·구 단위 지역대책위원회를 신설한다고 했고, 교육과학기술부는‘학교폭력 One-Stop 지원 시스템’ 구축 등을 말하고 있다.하지만 지금 학교현장에 나타나는 사례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 원인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학교현장에 가서 학생과 교사들에게 진솔한 고민과 담론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까지 교육과학기술부와 시·도교육청, 단위학교들은학교폭력 예방과 근절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해 왔음에도불구하고, 일부 학생들이 다른 동료 학생들에게 가하는 학교폭력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의 대책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렀다거나 학교폭력의 복잡한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여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젠 폭력의 유형에 따라 확실한 처방을 해야한다.지금까지의 관용주의에서 벗어나 가해학생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학교에 스쿨 폴리스가 있고, 전문 상담교사가 배치된다고 학교폭력이 근절된다는 단순한 처방은 이젠 버려야 한다. 근본적인 대책이 없으면 가해학생들의 폭력적 행동의 표출을 억제할 뿐 그것의 내면적 원인인 공격적 심성을 없애거나 완화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젠 보다 강력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이루어져 학생과 학부모의 폭력에 대한 죄의식을 갖고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변화도 필요한 것이다. 학생인권은 자유만큼이나 책임의식을 갖은 학생 상호간의 기본적인인권교육이 필요하다.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히 생각하고서로 존경하고 배려할 줄 아는 공존을 위한 인권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학생들의 자율이 미래의 삶에 어떠한 영향이 미칠지 교육공동체가 함의한보다 진지한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미래사회의 주인이다. 아무도 모르는 미래사회를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야할 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이 아니라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 보다 진지한 생각이 필요한 때다.
해와 달이 싸웠다. “나뭇잎들은 초록색이야”하고 해가 말하니까, 달이 “아니야, 은색이야”하고 대받았다. 달이 “사람들은 일도 하지 않고 주로 잠만 자지”하고 말하니까 해가 “아니야, 사람들은 열심히 움직이며 일을 해”하고 말했다. “그럼 왜 지구가 이렇게 종용하니?” 달이지지 않고 다시 해에게 말했다. “넌, 누구한데 무슨 소릴 들었니? 지구는 늘 시끄럽기 짝이 없어.” “아니야, 너야말로 누구한테 그런 소릴 들었니? 지구도 다른 별들처럼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어.” 정호승 시인의 인생동화울지 말고 꽃을 보라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 나오는 해와 달의 이야기는 모두 맞는 말이다. 해가 떠오르면 지구는 환한 대낮이 되면서 나뭇잎들은 싱그러운 초록의 기운을 마음껏 뽐낼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자신의 일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지구는 새 노래에서부터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공사장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까지 온통 소음이 가득한 곳으로 비쳐진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저녁에 동산 너머로 솟아오른 달에게는 이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은백의 아름다운 지구가 동화처럼 펼쳐진다. 사람들은 하루의 바쁜 일상을 접고 꿈속에 빠져들게 되면서 세상은 온통 고요에 묻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해와 달은 자신들이 본 모습을 지구의 유일한 모습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왜곡된 시각과 일치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지난 연말 대구에 이어 광주와 대전의 학교폭력자살 사건과 관련,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월 12일에는 국회과학기술위원회를 열었지만 뾰족한 대안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위의 동화에 나오는 해와 달의 대화처럼 겉돌고 말았다고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하나뿐인 귀중한 생명을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버린 그 행위의 이면에 담긴 메시지가 결코 적지 않음에도 사건 발생 23일이 지나서야 위원회가 열린 것도 문제지만, 뚜렷한 대책 하나 세우지 못한 사실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대책이라고 내 놓은 것이 고작 ‘상담교사 배치’와 ‘117 원스톱 구축’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학교폭력의 원인과 대책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선 급한 불 끄는데 물 한 바가지 더하는 것 정도에 그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학교폭력이 왜 급증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고, 학교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시스템상의 문제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학교폭력 대응시스템으로는 아무리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 해도, 전문상담교사를 확대배치해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교실에서 무너져 내린 교사의 권위를 되살리지 않고서는 어떤 대안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그리고 학부모의 자기자녀 중심의 극단적 이기주의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 익숙해져 있는 이분법적 사고는 사건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는 바, 학교폭력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한쪽에서는 학생인권조례 등 학생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일을 그르치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한쪽에서는 학력중심의 경쟁 풍토가 학교폭력을 불러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화에 나오는 해와 달의 이야기처럼 모두 맞으면서 모두 틀린 이야기다. 이것은 외눈박이 시각으로 본 나름대로의 해석일 뿐 종합적인 대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를 교육적 행위가 활발하게 일어나게 하는 공간으로 회복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생님이 학생의 비행에 대하여 눈감아 버리게 하는 구조를 우리는 깊이 있게 통찰해야 한다. 교사들이 학생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해야 하는 현실, 교사들에게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대드는 아이들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이다. 필자는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제안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교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 최근 교육개혁 운운하며 교사때리기에 급급한 교원정책이 교권을 크게 위축시켰다. 학생의 인권을 강조하듯 교사의 교육권도 보장되어야 한다. 둘째, 무관용원칙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잘못에 대해서는 아무리 어린 학생이라도 책임을 지게 하는 교육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책임 뒤에 얻어지는 인권의 소중함을 적극적으로 체험하게 해야 한다. 셋째, 자녀에 대한 부모(보호자)의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 물론 생활고에 시달리는 부모가 자녀의 교육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을 이해하지만,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수 없는 문제이다. 자녀와 함께 하는 교육적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부모의 역할 중 자녀교육 지원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인성교육이 배재된 교육은 사회를 파괴시키는 독약이 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성은 부모다움의 알파요 오메가임을 되새겨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사태나 문제를 종합적으로, 본질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학교폭력 또한 예외가 아니다. 왜 교육적으로 문제가 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나 파장을 고려한다면 어떤 이념이나 논리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의 본질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외눈박이의 고정된 시각은 전체를 아우르는데 제약이 된다는 사실에 유의하면서 보다 본질적이고, 심층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