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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2주간의 러시아, 중국 독립 운동유적지 탐방을 통해 지금의 내가 있는 곳, 나의 조상, 민족, 나라를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미래의 나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었다. 타의에 의해 나라, 자유, 가족을 잃은 시대에 태어나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한 삶이 아닌 미래의 후손과 나라를 위한 삶을 선택한 훌륭한 분들의 일대기를 통해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느꼈고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깊은 존경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이 다른 다라의 독립 운동과 다른 점은 세계 곳곳에서 독립을 외쳤다는 것이다. 국외 독립운동 유적지가 788여 곳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점이 세계 역사학자들에게 높이 평가받는 부분이다. 약800여 곳에서 독립 운동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반도의 작은 나라는 일본의 지배와 억압을 받았지만 해방되기 위한 몸부림은 유럽, 아메리카 대륙 등 세계 약 800여 곳에서 이루어졌다는 게 말이다.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가 세계의 넓은 곳으로 나가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보면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인천공항을 떠나 도착한 곳은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공항이다.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는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우리나라 함경도 농민들이 농사짓기 좋은 땅을 찾아 이주하기 시작하였고 러시아는 광활한 미개척지를 개척하는 조선 사람들을 환영했으며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20세기 초부터는 일제의 감시와 눈을 피해 독립운동을 펼치는 근거지가 된 것이다. 러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시베리아 열차의 시발착역인 블라디 보스톡 역, 볼셰비키 혁명 전사들의 동상이 있는 혁명광장, 잠수함 박물관, 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들을 기리는 추모공원, 기도를 드리는 장소인 러시아 정교회 등을 돌아보며 러시아의 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우스리스크 최재형 선생의 옛집과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참배한 후 1935년에서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전까지 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했던 고려사범대학건물을 보았다. 우스리스크에는 옛 주택들이 많이 남아있었고 농사짓기 좋은 땅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러시아의 우호적인 태도와 이상설 선생의 외교력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정착할 수 있었고 나중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과의 국경지대인 크라스키노에서는 항일투쟁을 위해 단지동맹을 결행한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12인을 추모하는 단지 동맹비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겨눈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러시아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갔을 때는 두만강이 보였다. 유행가 가사에도 등장하는 두만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감격이었다. 강 너머로 보이는 마을이 북한이었다. 강폭이 좁은 만큼 마음도 아팠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우리나라라니……지금 이 순간에도 배가 고파 죽음을 각오하고 저 강을 넘고자 마음을 먹는 북한 주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을 따라 이동하여 용정에 도착해서 김약연 등 4개 가문이 이주해 형성한 정착촌인 명동촌, 한인사회의 지도자로 평생을 교육에 힘쓰신 김약연 선생의 뜻이 담겨있는 명동학교,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용정중학교 등을 둘러보았다. 러시아 연해주 지역도 한인촌이 많았던 곳이지만 1937년 강제이주 되면서 한인들이 살지 못해서인지 그 흔적만 있고 숨결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었던 반면 중국 만주지역은 지금도 한인들이 살고 있어서 옛 독립운동의 흔적에서 그들의 숨결까지도 전해지는 듯했다. 이 번 탐방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백두산 천지를 보기 위해 가던 중 청산리 전투가 있었던 지역으로 향했다. 청산리 전투는 북로군정서 군을 이끈 김좌진과 홍범도 부대가 함께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대첩이다. 청산리 대첩 기념비는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볼 수 있었는데, 전투에서 희생된 독립군들을 생각하며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면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생각하면서 올라갔다. 높은 산들이 주변에 많았는데, 이런 지형을 잘 알고 있던 대승을 거둔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드디어 한민족의 성스러운 산으로 숭배되었고, 단군이 탄생했다는 백두산으로 향했다. 백두산에 도착하니 백두산이 중국에서 불리는 장백산으로 입구팻말, 기념품, 셔틀티켓, 기념엽서 등이 만들어져 있어 많이 아쉬웠다. 눈앞에 펼쳐진 백두산 천지와 폭포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 장관이 내 마음에 짧은 시간 동안 들어오기에는 벅찼고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다음에 올 때는 장백산이 아닌 백두산이라는 팻말을 지나 백두산 천지행 티켓을 사서 바위 위에 앉아 천천히 백두산의 절경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음 탐방지는 만주에서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이 벌인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고 큰 승리를 한 봉오동전투 승전지였다.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과 여러 독립군 부대가 연합을 이뤄 일본군의 추격대대를 포위하여 수많은 병력이 사상을 당해 퇴각한 전투였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발해성이 있었다는 발해성터를 보았다. 터에 피어있는 예쁜 꽃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유적지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다시 이동하여 해림으로 가서 김좌진 장군이 말년을 보낸 마을을 방문하였는데, 이곳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는 마치 우리나라 시골 마을처럼 느껴졌다. 1999년에 회의실과, 자택, 정미소 등을 건립해 무료 관람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그곳에서 김좌진 장군의 일대기와 업적, 마지막 생활상 등을 교수님의 설명을 통해 들었다. 그 앞은 아이들의 놀이 기구와 주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고 있었다. 김좌진 장군이 살던 옛 마을이었고 그곳에 그분을 기릴 수 있는 이 공간을 잘 가꿈으로써 이곳 중국인들도 김좌진장군과 우리 방문객들을 친근하게 대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숙박 장소는 한중우의공원이었는데 이곳은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항일투사들의 활동과 한인이주, 일제의 침략상을 알릴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저녁 식사 후 탐방단 4개조에서 독립운동가 1인을 정해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론적으로 알았던 독립 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직접 찾아서 탐방을 해보니 그 분들이 더욱 존경스럽고 위대해보였다. 다음 날 네 시간을 이동하여 하얼빈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가 100여 년 전 의거를 일으킨 역사적 장소이다. 하얼빈은 지금까지의 중국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벤츠, 아우디 등 고급 승용차가 다니고, 고층 빌딩에 명품관, 백화점 등이 즐비했다. 하얼빈은 작은 어촌에 불과하였으나 1903년 중동철도가 개통되면서 러시아인과 중국인이 급증하고 거대도시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러시아의 만주 지배의 거점이자 동양의 모스크바로 건설된 계획도시였다. 또한 20세기 전반 러시아뿐 아니라 영국, 미국, 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전이 펼쳐져 동양의 파리로 불리었다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하얼빈의 건물은 러시아의 건물과 아주 닮아있었다. 웅장하면서도 장식이 화려했다. 안중근 의사 친필 유묵비인‘청초당’앞에서 동양평화를 지키고 민족 독립을 위해 싸운 업적을 되새겨 보았다. 국외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을 통해 느낀 점은 첫째, 역사의 흔적은 반드시 남는다. 우스리스크의 한인촌에서의 고려 사범학교 옛 건물, 최재형의 집, 블라디보스톡에서의 신한촌, 연변에서 보았던 한국식 팔작지붕, 용정학교, 하얼빈에서의 러시아 건축양식 등 역사가 지나간 곳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다만 후손들이 얼마나 그것을 찾아내고 보존하고 유지하느냐에 따라 그 흔적은 흙으로 덮혀지지 않고 우리 곁에서 의미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연변에서 아직도 우리 문화가 숨 쉬는 것은 우리 민족이 아직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곳 사람들은 한글을 사용하고 한국의 역사를 배우며 자람으로 그곳에서의 역사는 그나마 쉽게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 찾지 않아 알 수 없는 흔적, 먼지를 걷어내지 않아 묻혀 있는 흔적, 드러나 있으나 보존하지 않아 허물어져가는 흔적을 지금부터라도 지켜내는 것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다. 그 흔적들이 우리의 역사로 다시 자리매김한다면 과거의 흔적들이 우리 삶의 지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둘째, 가장 큰 힘은 동료이다. 탐방 4일째 백두산을 갔다가 돌아오는 버스에서 느꼈던 적막하지만 훈훈했던 그 안의 공기가 생생하다. 자다가 깨어보니 어두운 버스 안에는 일행들 모두가 조용히 눈을 감고 계셨다. 눈을 감고 쉬거나 잠들거나 하셨을 텐데 그 일행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창밖을 보았는데, 너무나 아름다웠다. 깜깜한 밤하늘에는 총총히 박혀있는 하얀 별과 지나가는 수많은 키 큰 나무들을 보며 광활한 숲을 달리는 상쾌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고 이 분들과 함께였다. 한평생 독립을 위해 싸우다 생을 마친 독립투사들도‘어떻게 그렇게 힘든 삶을 살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일본군을 피해 도망갈 때 나와 함께 뛰는 동료, 손발이 꽁꽁 얼어 동상이 걸릴 때 걱정해주는 동료, 독립의 희망이 보이지 않아 좌절할 때 어깨를 두들겨 주는 동료, 매일 고통스런 훈련 속에서도 웃음이 나게 하는 유쾌한 동료들이 있어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으리라. 몇 해 전, 광복절에 집에서 텔레비전 방송을 보았는데 광복 특집 프로그램이 몇 개뿐이었고, 예능프로와 드라마 재방송이 많아 씁쓸했던 기억이 있었다.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독립투사들에게 후손 된 우리들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광복의 그날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고 꿈이었던 독립투사들의 값진 희생으로 지금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분들의 나라와 민족에 대한 순수하고 열정적인 희생정신과 용기를 잊지 말아야할 것이며 이 번 국외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의 기회를 허락해준 국가보훈처 보훈교육연구원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리며 21세기 대한민국의 희망인 아이들에게 올바른 나라사랑 정신을 일깨우는 교사가 될 것을 굳게 다짐해본다.
어릴 적 추운 겨울날, 온 가족이 화로 주변에 둘러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언제 익을까?’ 턱을 괴고 기다리면서 할머니께서 들려주셨던 호랑이 이야기는 왜 그리 무섭고 재미있었던지....... 할머니의 이야기에 집중을 하다보면 어느새 고구마는 노오란 살색을 자랑하며 맛좋게 푹 익어 있었다. 껍질을 하나씩 벗기기가 무섭게 어느새 고구마는 입속에 들어가 있었고 정말 꿀맛이었다. 군고구마를 다 먹고 나면 입 주변이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당시에는 고구마가 유일한 간식거리였다. 껍질을 벗겨내고 노오란 속살이 보일랑 말랑할 때 “호호” 입김을 불면서 총각김치나 배추김치에 턱 걸쳐서 먹었던 군고구마의 맛은 일품이었다. 고구마를 캐는데도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다. 고구마 줄기를 걷어낸 후 보물이라도 캐듯이 조심스럽게 흙을 파내야 한다. 천천히 고구마 줄기 주변의 흙을 파내다보면 빠알간 고구마의 정체가 드러나게 된다. 막 캐낸 햇고구마를 깨끗이 씻은 후 큰 솥에 삶아서 먹으면 자연의 냄새를 흠뻑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 아이들에게도 나와 비슷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학교 유휴지를 이용하여 농촌 체험습장을 조성했다. 물론 교직원들과 학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떤 농작물을 심을까?’ 고민을 하다가 고구마, 상추, 고추, 방울토마토, 쑥갓, 청경채 등 다양한 농작물을 심고 아이들과 함께 잡초도 뽑아 주고 물도 주면서 농작물 관찰 일지를 써보도록 했다. 농촌과 농민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명존중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농작물 그리기, 농촌 체험학습장 견학 소감문 쓰기 대회 등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즐겁게 참여했던 것이 고구마 캐기였다. 고구마를 수확하는 보람을 느껴 본 아이들은 “선생님, 내년에는 전부 고구마만 심어요?”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요즈음 우리나라도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아침 식사를 빵이나 우유로 대신하고 간식으로 피자나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고 있다. 각종 암이나 당뇨 같은 성인병은 식생활과 밀접히 관련되어있다. 앞으로 고구마를 이용한 다양한 가공 식품이 개발되어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고구마를 많이 먹어서 건강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예빈아, 넌 일본을 알기 위하여 공부하기로 선택한 교실에서 너와 만나 수업을 한지 한 달이 지났구나. 이제 너도 ‘하루에 30분 정도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수업 기록을 하였는데 이것이 너를 위한 변화의 출발신호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수업을 통하여 너의 살아온 시간들을 한 번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구나. 그리고 또, ‘잠을 깨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겠다’고 네 스스로 반성을 하였는데 이러한 생각도 매우 중요한 변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너의 생각은 앞으로 너를 밝혀줄 좋은 생각이라 믿는다. 너도 이제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갖게 될 것인데 미리 네가 살아갈 미래 모습을 한 번 예측하여 보기 바란다. 네가 보듯이 우리는 점점 물질적이고 외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다. 직업을 선택하고 일하는 데 돈이 핵심 이유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만큼 돈을 많이 벌고 있을까? 돈을 벌게 해주는 자신의 일을 좋아하며 고마움과 보람을 느끼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잡코리아’와 ‘사람인’ 등 취업 포털에서 실시한 조사를 보면 직장인 10명 중 6명 이상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답하며 자신의 직업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직장인 10명 중 7명, 많게는 10명 중 9명이 기회가 된다면 직업을 바꾸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유를 물어보면 만족스럽지 못한 연봉과 업무 스트레스를 우선으로 꼽는다. 일을 하는 이유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원하는 만큼 수입이 있지도 않고 일만 많으니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은 당연하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직장보다 월급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주는 곳이 있다면 옮기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에 의미도 희망도 없을 뿐만 아니라 몸담고 있는 조직에도 애정이 없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돈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면서 점점 더 불행해져 간다. 일을 하며 성장하고 보람을 느끼기는커녕 스트레스만 무겁게 쌓여간다. 직장도 동료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에게 업무 중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을 물었는데 1등을 차지한 답은 “퇴근하고 싶다”였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이 벌지 못하니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아니냐고, 일이 힘드니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애초에 원했던 일도 아니고 만족도 없고 보람도 없으니 물질적인 것이라도 채우려는 심리가 아니겠냐고 말이다. 돈을 많이 벌면 기분도 좋고 일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돈을 많이 벌고, 벌어놓은 게 많으면 행복할까? 경제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 중에는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건강하게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와 정반대의 사람도 있다. 겉보기에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더 많은 돈을 벌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물질적인 성공이 개인의 만족이나 행복과 연결되려면 반드시 갖춰져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일에 대한 ‘자신만의 이유’다. 곧, 일에 대한 ‘의미와 목적’이다. 물질적인 성공뿐 아니라 일에 대한 자부심과 충족감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신념’을 이야기한다. 일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내적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을 얼마만큼 많이 벌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이길 수 있는지 생각하고 경쟁하느라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 네가 살아갈 미래를 미리 한 번 그려보면서 왜 지금 공부를 하는가?, 앞으로 너의 장래를 위하여 어떤 자세로 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여 보고 너의 생각을 편지로 보내주면 고맙겠다. 또 네 편지를 보았는데 보다 정성이 필요하다. 왜 우리는 어떤 사람을 거지라고 부를까? 거지는 거지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너에 행동, 실천 하나하나가 너의 품위를 높여줄 것이다. 모든 일에는 작을지라도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이것 하나만 잘 지켜서 너는 기본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제 13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어느 날 선배의 권유로 모정당의 선거운동에 동참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비교적 신분이 자유로 왔던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선배의 권유를 따라서 개사곡 부르기, 피켓팅, 구호 외치기 등의 활동을 했다. 한 달 정도의 선거운동은 내 인생에 커다란 경험이 되었다. 짧은 조직경험은모 대학원에서 총학생회장으로서 활동할 때 밑거름이 되었다.사소한 안건 하나라도 대화와 토론의 과정을 통해민주적인 방법으로 의사 결정을 했고 무엇보다 예산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집행하려고 노력하였다. “정치의 질은 유권자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 는 말이 있듯이 유권자들이 투철한 철학을 가지고선거에 임해야 올바른 민주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 6.4 지방선거는 선거인 명부 대조→ 서명→1차 투표용지 배부→기표소에서 투표 후 투표함에 넣기→2차 투표용지 배부→기표소에서 투표 후 투표함에 넣기→퇴장의 순으로 투표가 진행되었다. 자신이 누구를 찍어야할 지 모르겠다며 투표 종사원에게 알려달라는 황당한 주문을 하기도 했고 연로하신 어머니를 도와준다며 함께 기표소로 들어가는 해프닝이 있었고 치매에 걸린 어르신은 투표소를 잘 못 알고 오셔서 억지를 부리며 큰소리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하셨다. 6.4지방 선거에서 느낀 점은 후보자가 너무 많아서 후보자의 자질과 공약을 꼼꼼히 따져보기보다는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의 후보자를 일제히 찍는 ‘줄 투표’가 유행했을 것 같고 교육감 선거의 경우 번호가 없기 때문에 인지도 중심으로 투표했을 것이라는 예측을 해보았다. 6.4지방 선거 투표사무원을 하면서 느낀 것은 유권자의 태도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올바른 선거풍토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의식이 변해야 된다고 생각되는데 각종 동호회 모임에서 선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부분 올바른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후보가 누구인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럴 때 마다 ‘정치의 질은 유권자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 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미래가 더욱 밝고 장족의 발전을 하겠다는 확신도 가져보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민주시민 의식이 높아졌고 자신이 행사하는 깨끗한 한 표가 공명선거를 실현하고 올바른 민주정치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유권자들이 많아졌다. 당선된 후보자들은 초심을 잃지 않고 자신들이 내세운 공약에 진정성을 가지고 꼭 지키려고 노력하고 재임 기간 중 국민을 섬기는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다했으면 좋겠다. 국민을 위한 봉사자로서 국민을 섬기는 태도로 임할 때 깨끗하고 밝은 민주 정치가 실현될 것이다. 앞으로 실시되는 모든 선거에서는 온 국민이 함께 투표에 참여해서 깨끗한 한 표를 행사하고 후보자들도 바른 양심과 소신을 가지고 선거에 임해서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참된 일꾼들이 많이 선출되었으면 좋겠다.
25년의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왕따를 당했던 k란 아이다. 그는 얼굴도 예쁘고 말도 잘 했지만 새침떼기에다가 자기만이 특별하다는 일종의 공주병 환자였다. 학교에 오면 친구들과 이야기하기보다는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졸졸 쫓아다녔다. 그러한 k를 아이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 오늘은 어떤 책 읽었어.”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고 통통 튀는 그를 수용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k어머니가 아이들 때문에 전학을 시켜야겠다는 것이었다. k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앞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도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어머니를 일단 진정시켰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면서 k를 내 옆에 앉게 하여 놀이에 참여시켰고 체육시간에도 놀이에 참여시켰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거부반응도 있었지만 서서히 그를 수용하게 되었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지 몇 달도 안 되었는데 친구들과 잘 어울리게 되었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금방 다투다가도 금방 친해지는 게 아이들이었다. 그를 지도하면서 교사가 포기하지 않고 관심을 가진다면 충분히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 주변에는 대수롭지 않은 특성 때문에 외면당하는 친구들이 있다. 아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은 모든 교사들이 명심해야할 진리일 것이다.
모처럼 아침 일찍 출근하여 밀린 업무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오셨다. 일에 몰두하여 " 안녕하세요?" 라는 짧은 인사를 나누었고 계속 컴퓨터 앞에서 업무 처리를 하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상큼한 미소와 함께 " 아침 식사는 했어요?" 라며 커피 한 잔을 손수 타서 주셨다. 늘 직원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시는 교장 선생님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따뜻한 차 한 잔을 받고 보니 '내가 좀더 센스 있는 사람이었다면 먼저 차 대접을 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차를 마셨다. 차 한 잔으로 인하여 1교시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힘이 났다. 작은 친절이 큰 감동을 자아내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으며 될 수 있으면 동료 교사나 아이들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교직 생활을 한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교직은 힘들고 외로운 직업이다. 교사의 직무 스트레스에 관한 연구 라는 책에서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동료 교사와의 관계 그리고 관리자와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교사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초등교사의 경우 어린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렵기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고 그것은 동료 교사나 관리자와의 원만한 인간관계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사들은 작은 친절과 관심에 힘이 생기고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칠 수 있는 것 같다. 차 한 잔의 친절을 베풀어주신 교장 선생님처럼 많은 관리자 분들이 평교사들에게 좀 더 다가서는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2016. 09. 27(화요일). 13시 30분. 강원도 교육청 주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일명 김영란 법)' 시행( 09. 28일부)에 앞서 교직원(공사립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본청, 직속기관, 교육지원청 등) 대상 청렴교육(주제 청탁금지법의 이해와 공직자등의 자세) 연수가 강원도 교육 연수원 대강당(만남채)에서 개최되었다.
노래를 잘 하거나 스포츠를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부러워 한다. 이 사람들이 나타낸 재능때문이다. 지금까지 재능은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스포츠, 연예분야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나타낸 사람들을 보면 타고난 재능을 부모로부터 타고났기 때문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나온 연구 결과들은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서 길러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말콤 글래드웰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사례를 조사해서 그 결과를 '아웃라이어'를 통해 세상에 공개했다. 미국에서는 야구리그를 7월 31일을 기준으로 선수의 연령을 구분하는데 2005년 메이저리그에 출전한 미국계 선수 중 505명이 8월생이었고, 7월생은 313명에 불과했다. 영국의 경우에는 운동선수 기준일이 9월 1일인데 1990년의 프리미어리그에 출전한 선수들 가운데 288명이 8~11월에 태어난 반면 6~8월에 태어난 사람은 136명이었다. 학교생활에서도 학생들 가운데 3월에서 5월 사이에 태어난 학생들의 성적이 특별하게 좋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조기 교육을 목적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학교를 보낸 경우 동급생들을 따라가는데 힘이 든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같은 연령이라도 조금 일찍 태어나서 경험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학업 성적이나 운동에서 나은 성과를 보여 주었다. 제프 콜빈은 '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에서 지금까지 게놈 연구를 통해서도 특정 재능을 담당하는 특정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위대한 성과의 수수께끼를 가장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열쇠는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뛰어난 성과에 지름길은 없으며, 엄청난 양의 계획된 연습만이 위대한 성과로 통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로 천재 작곡가로 알려진 모차르트와 천재 골프선수로 알려진 타이거 우즈를 소개한다. 모차르트는 다섯 살에 작곡을 시작해서 여덟 살에 공식 석상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여 35년 동안 수백 곡을 작곡했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당시 유명한 작곡가이자 연주자였다. 레오폴트는 세 살 때부터 아들에게 작곡과 연주 훈련을 강도 높게 시켰다. 아버지는 뛰어난 교육자였다. 모차르트가 태어나던 해에 그가 펴낸 바이올린 교습서는 이후 수십 년 동안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받았다. 모차르트의 재능은 아주 어릴 때 훌륭한 아버지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모차르트의 첫 번째 작품은 21살 때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9번이다. 모차르트가 18년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은 뒤에 만든 작품이다. 타이거 우즈도 그의 아버지 얼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기에 골프 황제로 불릴 수 있었다.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 얼은 골프광이었다. 얼은 7개월 된 타이거 우즈에게 처음으로 골프채를 손에 쥐어 주었다. 얼은 타이거 우즈를 곁에 두고 몇 시간이고 자신의 골프 연습을 지켜보게 했다. 얼은 그 당시를 이렇게 말했다. “타이거의 눈에는 똑같은 장면이 계속 반복되는 영상처럼 보였을 겁니다.” 타이거 우즈는 두 살이 되기 전부터 골프장에서 꾸준히 연습했다는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입학 때 이미 지역의 유명 인사였고, 대학 때는 미국 전역에 이름을 날렸다. 그는 4살 되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훈련을 받았고 그 이후에는 전문 코치 밑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우즈가 골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제프 콜린은 위대한 사람들의 성공 비결은 준비된 지도자에 의한 조기교육,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 반복 훈련, 결과로부터의 피드백이라고 말한다. 앤서니 라빈스는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에서 ‘대부분’을 탈출해서 ‘절대 소수’로 옮겨 간 수백 명의 삶을 연구하여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비결을 ‘한계를 뛰어넘는 극한의 노력’이라고 밝혔다. 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아니라 더 많은 노력을 한 사람들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면 된다. “노력한다고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도 노력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부터 노력을 한다면 내일, 그리고 내년에는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
2016년 9월 27일(화) 충남 서산 서령고(교장 한승택)는 김영화 교감선생님의 주관으로 부정청탁 금지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약칭 청탁금지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전교직원을 대상으로 청렴교육을 실시했다. 이번 교육을 통해 교직원들은 반부패, 청렴의지를 다시 한 번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아울러 학교 행정과 인사 등 모든 정책을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시행하기로 결의한 뒤, 참석자 전원은 청렴서약서를 제출했다.
이젠 분명 가을이다. 아무도 부인 못한다. 여름 더위 자체도 스스로 인정한다. 아무리 열을 내 어 보아도 소용이 없다. 가을이 대세다. 여름이 옛 위력을 과시하려다가는 큰코 다친다. 조용히 물러나야 할 일이다.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인사다.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을 대한다. 그날 아침에 만나는 학생이 인사를 잘하면 기분이 좋다. 그것도 90도의 각도로 고개를 숙이며 손을 배에 모아 하는 학생을 보면 흐뭇하게 된다.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인사를 하면 기분이 나쁘진 않다. 그런데 인사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학생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 특히 모지락스럽게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인사를 하지 않거나 외면하면 마음이 상한다. 이 여파로 하루종일 학생들을 가르칠 마음이 사라진다. 옆 찔러 절 받기 식으로 인사를 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되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지 않으면 어디서 누가 할 것인가? 교육은 변화인데 학생들이 인사를 하지 않는데 그것을 한탄만 하고 지도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 고유의 예절은 머지않아 사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누구보다 존경하되 배로 존경해야 하는 마땅한 법인데 존경은커녕 마음을 상하게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학교의 생활이 유쾌할 수가 없다. 절하고 뺨 맞는 일 없다. 옛날에는 아무리 가난해도 인사만 잘하는 이는 굶는 죽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인사가 그만큼 자신을 유익하게 한다. 인사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할 것 같다. 학생들이 인사를 안 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일리가 있다.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생님 편에서 되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배우는 학생이라 할 수가 없다. 선생님이 인사를 해도 인사를 받지 않고 반응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인사에 대한 선생님의 친절한 반응은 반드시 필요하다. 학생들이 인사를 안 하면 먼저 선생님이 인사를 건네면 학생들은 미안해서 더 인사를 잘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인사하는 학생을 길러야 할 것이다. 사조(辭朝)라, 조정에 부임 인사를 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임금님에 대한 존경을 극치에 이름을 알 수가 있다. 이 아름다운 인사의 전통을 잘 살려야 될 것 같다. 그리고 조심할 것은 허울 좋은 도둑놈처럼 겉으로는 인사 체면이 제법 멀쩡하나, 하는 짓은 흉악한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앞에서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욕하고 존경하지 않는 이가 나오지 않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겉과 속이 일치하는 학생이 되도록 지도해야 이들이 장차 지도자가 되면 나라는 장래는 밝아지게 되고 살 맛 나는 세상이 된다. 아비없는 후레자식(얼러 키운 후레자식)이라, 귀엽게 키워 버릇없는 애들이 많다. 이들도 가슴에 품고 사랑으로 잘 키워야 할 것이다. 인사도 할 줄 알고 예절도 잘 지킬 줄 아는 학생이 되도록 지도하는 것은 우리 선생님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28일부터 시행되는 가운데 학교현장은 차분함과 혼란이 교차하는 분위기다. 사실 김영란법은 부정부패의 근본적 고리를 끊기 위해 필요하고, 선진국 도약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한 번쯤 감내해야 할 진통이기도 하다. 그런 취지에 공감하는 교원들은 담담한 표정이다. 이미 이보다 훨씬 엄격한 ‘공무원행동강령’이나 시·도교육청의 ‘반부패와 청렴에 관한 조례’가 시행되고 있다는 점도 완충작용을 하고 있다. 하지만 ‘란파라치’ 학원까지 등장하면서 교원들이 잠재적 법죄집단으로 매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법 시행을 둘러싼 이 같은 과열현상이 자칫 취지와는 달리 왜곡된 법 해석으로 선의의 피의자를 양산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따라서 교육당국은 김영란법의 적용범위와 다양한 적용 사례를 정리해 매뉴얼을 만들고 학교에 안내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누구보다 책무성을 느껴야 할 교육부가 실질적인 매뉴얼을 제공하는 대신 ‘김영란법 신고사이트’부터 개설해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교원들의 자존심을 앞장 서 상처 주는 교육부에 현장은 아연실색할 뿐이다. 교원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시·도교육청도 마찬가지다. 고작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신고사무 처리지침’만 시달할 뿐 혼란과 걱정을 덜어 줄 대책은 없다. 오죽하면 한국교총이 교사들에게 궁금한 점을 직접 묻고 관련기관의 유권해석을 받아 30문30답을 제공했겠는가. 또 김영란법 매뉴얼 조속 제공을 교육부 교섭과제로 요구했겠는가. 교총은 김영란법 시행과 관계없이 청렴을 실천하고 존경받는 스승상을 스스로 만들어나가자고 제안했다. 교육당국은 그런 교원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다 상세한 매뉴얼 제공과 연수 등 구체적인 정책 배려에 나서야 한다.
친구는 선물이고 보물이라는 1학년 아이들 친구란? _____ 다! 라는 주제로 한 학교폭력 예방교육 작품입니다. 1학년이 생각하는 친구란? 선물이고 보물이랍니다. 친구는 소중하답니다. 친구의 좋은 점 찾기, 그 친구를 위해 해주고 싶은 것들을 발표하고 쓰기도 하고 그림으로 표현했어요. 학교폭력이라는 낱말조차 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너무나 부정적인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우정이나 사랑, 이해, 배려와 같이 아름다운 낱말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언어는 생각의 틀을 고정시키기 때문입니다. 어릴수록 부정적인 낱말보다 아름답고 사려 깊은 낱말을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학교폭력 예방교육보다는 친구 이해교육이나 내 친구 칭찬하기가 더 좋을 듯합니다.
한가위를 앞두고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이 전국을 흔들고 지금까지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더 이상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일 수 없다는 현실에 어디보다 걱정이 앞서는 곳은 바로 학교 현장이다. 이번 지진으로 경주는 물론 울산, 창원 등지의 많은 학교에서 벽이 갈라지고 창문이 뒤틀리는가 하면 엘리베이터까지 멈춰 섰다고 한다. 학생들의 안전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학교의 내진율이 공공기관 가운데 최하위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내진율은 40.9%인데 비해 학교는 22.6%에 불과하다. 학교시설 10곳 중 8곳이 지진에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학교는 상황에 따라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이라도 철저한 안전 점검과 내진 보강에 나서야 한다. 더욱이 학교는 재난 발생 시 이재민들의 대피소 역할과 함께 신속한 수습을 위한 거점 기관이 돼야 한다. 그런 학교가 오히려 지진에 더 취약해서는 안 될 일이다. 또한 이번 지진 당시 울산, 부산 등 영남 지역의 많은 고교가 건물이 흔들리는 상황에도 대피는커녕 안내방송조차 없이 평소처럼 야간자율학습을 해 안전불감증에 대한 우려와 비난을 자초했다. 긴급 재난이 발생했음에도 안전 매뉴얼은 작동하지 않았고 실제로 재난이 일어났다면 생명을 지킬 골든타임을 놓치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수많은 어린 학생들을 보호하고 있는 학교가 지진에 무방비인데다 안전 매뉴얼까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당장 정부와 교육당국은 내진 보강을 위한 예산부터 확보해야 한다. 또한 세월호 참사 이후 그토록 강조했던 안전 매뉴얼이 무용지물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실질적인 안전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학생들의 생명과 안전이 예산 타령과 허울뿐인 매뉴얼로 벼랑 끝에 서는 일은 막아야 한다.
최근 강원도 철원의 모 고교에서 자녀의 학교폭력 징계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가 학교폭력자치위원 명단과 연락처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교감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위협하는 사태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해당 교감은 병가를 내고 입원 치료까지 받았고, 학교교권보호위원회가 개최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교권보호법 무색하게 한 흉기 난동 학부모의 교권침해가 갈수록 사회 문제화 되는 현실이지만 이번 사건은 금도를 한참 넘어선 것이다. 결코 신성한 배움의 장소인 학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반교육적 범죄다. 안타깝지만 이번 사건은 지난 8월 4일, 일명 교권보호법인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학교현장에서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자칫 이제 막 시행된 교권보호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교권보호법을 보다 강력하게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통해 지도감독권자인 교육감은 학생 아닌 제3자의 폭행, 명예훼손, 모욕 등에 대해 관할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정당한 사유 없이 특별교육을 이수하지 아니한 보호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학교폭력 징계 처분에 불복한 학부모의 앙심이 발단이 됐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학폭 불복으로 인한 재심 청구는 2013년 764건, 2014년 901건, 2015년 979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재심 청구 과정에서 막무가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거나 흉기로 살해 위협까지 하는 사태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 당국은 학폭 처분 불복에 따른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도 적극 나서야 한다. 이미 학교폭력의 예방 및 처리, 학폭위 업무와 관련해 교장, 교감은 물론 생활지도 교사들의 고통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학폭예방 유공 가산점 부여만으로 덮어둘 수 있는 문제가 더 이상 아니다. 법령에 명시된 학폭위의 결정에 불복해 학교에서 학부모가 흉기로 교원의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올바른 교육은 어불성설이다. 그런 교육 환경에서 학생들이 제대로 배우고 교원들이 보람 있는 수업을 한다는 것도 연목구어일 뿐이다. 교권침해 예방, 처벌강화 법제화 절실 이참에 우리 사회와 교육계는 교육 수요자로서 학부모의 위상에 대해서도 숙고해 봐야 한다. 무조건 교육 수요자라고 강변하면서 교권을 무시하고 나아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학부모들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외국처럼 교육 수요자를 납세자, 담세자 모두로 규정하고 있는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내 자녀를 학교에 맡겼으니 내가 교육 수요자이고, 내 맘대로 하면 된다’는 그릇된 인식은 바꿔야 한다. 이번 사건은 교권침해 대응에 소극적이고 무감각하기까지 한 우리 사회와 국회, 교육행정 당국, 검·경찰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해당 학부모에 대해 검·경은 철저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로 일벌백계해야 한다. 국회와 교육당국은 교권침해 예방과 처벌 강화를 위해 법률적, 제도적 보완을 하루빨리 서둘러야 한다.
진보교육감들은 현재의 학생들이 입시교육에 혹사당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9시 등교를 만들었고 방과 후에는 자유를 주거나, 예비대학 과정을 수강하게 하겠다고 한다. 시험도 가급적 축소하고, 학생들에게 꿈 꿀 시간을 주겠다고 한다. 학력저하, 일탈 양산하는 혁신 이 얼마나 에듀토피아적인 환상인가.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념 아래 혁신공감학교, 민주시민교육, 마을공동체교육, 그리고 현장을 섬기는 교육을 하겠다는 취지로 교장들을 불러 가르치고 학부모를 모아 공감 토크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께름칙한 게 알맹이가 없다는 것이다. ‘혁신’과 ‘공감’을 강조하는 데에도 ‘공감’은커녕 스트레스만 증가한다. 요즘 유행어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가 목까지 차오른다. 혁신, 혁신을 부르짖지만 새롭기는 고사하고 업무의 과중과 학력저하, 인성의 부재만 양산하고 있다. 흔히 양란으로 불리는 심비디움(Cymbidium)은 꽃이 크고 화려하지만 동양란과는 달리 향기가 없다. 어쩌면 교육감도 화려한 외국 교육모형에 심취하여 전통교육을 천시하고 맹목의 교육을 추종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도대체 ‘혁신’하자 해서 나아진 것이 무엇인가. 학력인가 아니면 인성인가. 그저 공문에 치이고 연수와 설문조사에 허덕이는 교사만 가엾다. 갈수록 진수성찬 쏟아내는 진보교육감의 입담은 대단하다. 근면을 가르쳐야할 아이들을 늑장 등교시키고, 시험도 보지 않게 하고, 방과 후에는 자유로이 즐기라고 한다면, 도대체 교육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인간으로서의 인의예지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교육이 혁신에 매몰돼 더 이상 진보하지 않는 모순. 진보라는 가면에 감추어진 교육감의 무도함을 간과하기 어렵게 됐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최근 18개 전문대학장과 간담회를 했다. 고교생을 위해 방과후 예비대학 과정을 개설하겠다고. 그러나 상위권 명문대학은 협조조차 하지 않을 분위기이다. 과거에도 대교협에서 학점제 운영을 하였지만 중하위권 대학 일부 학과만이 개설하여 유야무야 끝났다. 이 교육감의 즉흥적 발상에서 나온 예비대학 과정 역시 잡음만 일으키고 있다. 학교 공부만으로도 바쁜 아이들이 중하위권 대학에 가서 스펙을 쌓을 거란 생각을 어떻게 장담하는가. 게다가 인근에 대학이 없는 경우에는 수강 혜택은 그림의 떡이다. 진보교육감이 이따금 이슈를 터뜨리는 것을 정치적 행보로 호응해줄 수는 있지만 교육을 위한 신념적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진보없는 진보교육감 ‘모순’ 교육감들이 지금 중점적으로 해야 할 일은 인륜과 양심의 회복이다. 최소한의 윤리실천이 절실한데 학생들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교육감은 인성교육에 대해 무관심하다. 지금도 거리에 다니는 청소년을 보라. 학교는 아이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고 방관해 음주, 흡연, 폭력에 노출돼 있다. 심지어 선생의 치마까지 들추고 있다. 저녁시간을 감당하지 못해 심야에까지 음란 애니메이션과 살상 게임을 즐기며 지낸다. 이 모든 것을 입시교육 탓이라고 언제까지 억지를 부릴 것인가. 아이들의 일탈을 방조해 야만으로 만든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이제라도 교육감들은 혁신보다 소중한 인성교육의 프레임을 새로이 만들기 바란다. 어쩌면 하늘 우러러 교육적 고뇌를 할 때가 지금 아닌가.
20대 국회 첫 교육부 국정감사가 시작도 못한 채 28일로 연기됐다.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교육부 국감은 야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반발한 여당 의원 전원의 불참으로 시작부터 파행을 겪었다. 10시 15분경 야당 단독으로 개의했지만, 야당 의원들의 의사진행 발언만 이어졌다. 야당 의원들은 23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나온 장관들의 필리버스터를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세상에 장관이 필리버스터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당연히 국민을 상대로 답변해야 할 장관들이 청와대의 사인을 받아서 길게 답변하는 것은 국회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신동근 의원은 “장관이 아무리 정무적이라지만 정치적 중립의무 있는 것 아닌가. 최소한 유감, 사과정도는 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유성엽 교문위원장(국민의당)도 “장관들이 이래적으로 길게 답변해서 길게 끌고 간 것은 적절치 못했다“며 ”다시 한 번 유감 표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전혀 지시받은 바 없다”면서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며 국감에서는 그렇게 느끼지 않도록 충실히 답변하겠다”고 대답했다. 여당 의원들의 참석을 요구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이날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간사의 병결로 임시 간사를 맡은 유은혜 의원은 “국감 시작 날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해 유감스럽다”면서 “국감에 차질이 없도록 참석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또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증인채택 없이 시작된 것도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송기석 국민의당 간사는 “20대 국회 시작하면서 강조했던 협치정신이 이렇게 사라져서는 안 된다”며 “오늘 오전 또는 내일까지라도 기다려서 새누리당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 위원장은 “새누리당이 의총 중이니 참석하기를 기다려보자”며 10시 56분경 국감 중단을 선언했다. 오후 2시재개된 국감에서도여당의 불참 입장이 번복되지 않자유 위원장은 “국감이 국회의 중요한 임무지만 국민들은 여야가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랄 것”이라며 연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여당의 참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국민과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다며 반대 입장을 피력했지만,결국 교육부 국감을 28일 국회에서 진행하는 데 합의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28일에도 새누리당이 복귀하지 않으면 야당 단독으로라도 국감을 진행하겠다고 약속할 것을요구했다. 그러나 유 위원장은 “미리 기한을 정해 약속을 하는 것은 협상을 위한 자세가 아니다”라며 끝까지 확약은 하지 않았다.
지인으로부터 녹나무 한 조각을 선물 받았습니다. 몇 백 년 된 녹나무로 탁자를 만들고 남은 조각을 얻었다고 하면서 은은한 향의 나무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바짝 말라있던 나무에 물을 휴지에 묻혀 표면에 바르자 갑자기 죽었던 것같이 보이던 나무가 세포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속에 감추어 두었던 향기를 터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말라붙은 나무 조각도 물과 접촉하는 순간 마른 세포벽을 귀퉁이를 열어 생명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죽은 듯 보이는 것에도 어떤 새로운 생명의 순간과 접촉하는 순간 살아있는 삶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무만이 아니라 우리 몸은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세포는 수많은 미생물과 네트워크를 이루고 접속하면서 진화해 왔습니다. 즉 나의 몸은 나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 몸은 미생물의 터전이며, 그 미생물과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미생물들의 생활 터전이자, 우리 몸은 수많은 외부 미생물의 활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교류하며 소통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사스를 비롯한 콜레라 등의 병원균에 대해 지나치게 민간하게 반응해 온 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말 것을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우리 몸은 많은 외부 미생물과의 소통을 통해 진화해왔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인 미생물을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하고, 이제까지 알려진 과학과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몸과 관련된 미생물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생물에 대한 홀로코스트 시대 - 요즈음 시중에는 침대, 이불, 소파, 칫솔, 노트, 방향제, 가습기, 에어콘 등 무수한 항균, 살균 제품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그 제품들에 대한 텔레비전이나 신문 광고에는 어김없이 현미경으로 본 무수한 미생물들이 혐오스럽게 등장한다. 그 혐오스러운 모습은 현대인들을 전율케 만든다. 미생물들에 대한 악마의 신화가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광고들은 무의식 중에 소수의 미생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미생물들은 인간의 적이며, 그러한 미생물이 없는 주거환경을 만드는 것이 인간에게 이롭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람들은 미생물이 없는 ‘위생적인 주거환경을 꿈꾼다. 그리고 그 실현방법은 미생물에 대한 홀로코스트이다. 클린(cleen) 마케팅이 미생물을 죽인다 – 위생적이고 청결한 주거문화로 표상되어온 상류층의 이미지는 과학기술이 발달됨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차원으로 발전해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아온 생물들과는 다르게 생긴 미생물의 모습(그것만으로도 일반인들에게 미생물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부족함이 없다)을 일반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되었고, 우리 주변에 우글거리는 미생물들은 불결함의 표상이 되었다. ‘위생과 청결’의 이미지는 기업상품의 주요한 마케팅 전략으로 채용되었고, 심지어 그러한 전략이 ‘그린(Green) 마케팅’의 일환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가장 반자연적인 이미지가 가장 자연스러운 이미지로 역전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에게 유해한 미생물은 1%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대부분의 미생물은 몰살시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인간에게 유해하다고 믿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미생물에 대해 알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멋진 책입니다. 책상 위의 녹나무는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은은한 향을 품어냅니다. 저에게 반가운 벗을 만나듯 세포를 열어 저와 소통합니다. 저 역시 그네의 향을 폐 속 깊숙이 호흡하며, 제 속에 있는 수많은 미생물들과 공유하는 사이 가을밤은 저절로 깊어갑니다. 행복한 밤 되십시오. 『우리 몸 미생물이야기』, 이재열 지음, 우물이 있는 집, 2004
9월 24일(토) 오전 10시 서산문학제(초·중·고학생 백일장)가 서산호수공원 일원에서 개최되었다. 서산문학회가 주관하고 서산시와 서산시의회, 충청남도서산교육지원청, 서산경찰서가 후원하고 갤러리안, 충청일보, 새길포장(주), 태양자원, 다빈치안경원, 준하기업이 협찬한 이번 대회에는 관내 초중고 학생 10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서산문학제는 2016년도 서산시 지방보조금 지원사업(문화예술진흥사업)의 일환으로 서산지역의 문화예술 발전과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해마다 개최되고 있는 수준 높은 대회이다. 이번 글제로는 일기, 편지, 가을이 제시되었다. 학생들은 본인의 기호에 따라글제를 선택한 뒤운문과 산문으로 나눠 각자의 실력을 겨뤘다. 접수된 작품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각 부문 최우수상과 우수상, 장려상을 선발하여 상장과 상금이 수여될 예정이다. 수상작은 10월 중 작품집으로 발간되어 관내 기관단체 및 학교, 수상자들에게 배부된다.
대사동 오층석탑과 당간지주는 야트막한 부춘산 자락에 고즈넉이 놓여 있다. 마치 천년의 세월을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로이 버티는 망부석처럼 쓸쓸해 보였다. 시내를 직선으로 관통하여 1호 광장에서 서령고 방면으로 방향을 잡고 200여 미터를 들어가서 왼쪽으로 꺾으면 옛 절터에 당도하게 된다. 절터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은 행정구역상 '대사동(大寺洞)'인데 이것으로 미루어 이 자리에 큰 사찰이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대사동 오층석탑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5호(2008.04.10)로 지정되어 있다. 형상을 자세히 보기 위해 기자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오층석탑은 이중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만이 남아있다. 마치 처음부터 삼층석탑으로 축조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나 삼층 탑신의 옥개석 위에 탑신을 쌓아올린 홈이 선명하게 남아있어 삼층 이상의 탑이라 짐작할 수 있는데, 아마도 사층으로 탑을 쌓는 경우는 없기에 오층석탑이라 추정할 수 있다. 만약에 오층의 탑신과 상륜부까지 온전히 남아있었더라면 정말 아름다운 탑이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석탑은 전체 높이가 490㎝ 정도로 현재 3층의 옥개석만 남아 있다. 탑의 기단부는 상층과 하층의 이중 기단으로 조성되었는데, 지대석은 1개의 장대석으로 각 면을 구성하였고, 이 위에 하대 지석과 낮은 면석을 놓았다. 하층 기단의 면석은 4매의 돌로 쌓았으며, 양 우주 및 그 사이에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비교적 낮은 상대 갑석은 아래에 부연이 조각되어 있고, 옥신굄은 2단으로서 하층 기단의 면석과 마찬가지로 약간 부조시키고 있다. 옥신과 옥개석은 각각 별석으로 조성되었으며, 1매의 석재로 만들어진 각 옥개석은 네 모서리가 반전되어 있는데, 전각의 반전도가 날렵해 전체적으로 경쾌한 느낌을 주며, 옥개받침은 4단으로 조출되어 있다. 상륜부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모양으로 볼 때 아마도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불국사의 석가탑처럼 단정하면서도 장식도 없이 매우 소박하다. 하지만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어수선한 환경 속에서도 그 우아한 기풍만은 잃지 않고 고고하게 서 있다. 석탑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골목길 어귀에 당간지주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이게 바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6호(2008.04.10)로 지정된 대사동 당간지주이다. 마치 오랫동안 길가 담장의 일부였던 양, 개인주택 담장과 연이어 있는 당간지주의 풍경은 스산하기 그지없다. 당간지주가 자리했던 곳이 본래 이곳이었다면 아마도 이쪽이 절의 입구가 될 듯싶다. 지주에서 탑까지 먼 거리가 아니라 사찰 역시 그리 큰 사찰은 아니었던 듯싶다. 당간은 '당(幢)'이라는 깃발을 내걸기 위해 만들어진 사찰의 석조물인데 석조로 된 양쪽의 당간지주는 가운데 당간을 받치는 역할을 하고 우뚝 솟은 당간의 윗부분에 깃발인 '당'을 걸게 된다. 높게 솟은 당간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쓰러지고 방치되어 결국 사라지게 되었고 당간을 받치던 석조인 당간지주만 남아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대사동 당간지주는 오층석탑과 더불어 그 양식이 매우 단출하다. 아무런 장식 없이 거칠게 돌을 다듬었고 정상부분에 간구 하나만 마련하여 당간을 지탱했던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오층석탑과 당간지주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고려 후기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지주가 마주 서 있으나, 기단석의 매몰과 유실로 원래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또한 두 지주의 높이가 각기 달라 한쪽은 3.96m이고 다른 한쪽은 3.81m이다. 정상부가 파손돼 총 높이가 동일하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 대사동 절터의 석조물들은 그리 뛰어난 작품은 아닐지라도 모진 풍파를 견디며 천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온 우리 서산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우리 주변의 문화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치 : 충청남도 서산시 대사동(大寺洞) 1로 52-3 서산 대사동 오층석탑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5호(2008.04.10 지정) 서산 대사동 당간지주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6호(2008.04.10 지정)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지진이 발생했다. 상당수가 불안한 모습이다. 해운대에 보금자리를 꾸린 한 제자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가 지진을 감당해 낼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번 지진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이 생각을 뛰어 넘고 있다. 나는 우연히 고베지진, 후쿠오카지진 발생시 일본에서 근무하면서 이에 대처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엄청난 인명피해와 물적 손실에도 다른 지역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다른다. 조그만 여파가 생겨도 그 피해는 금방 이웃으로 번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앞날에 빨간 신호등이 켜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음이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발로 뛴 한 기자가 "한국 경제 망하는 길로 가고 있어요. 곧 중국한테 다 먹히고 맙니다. 희망이 없어요."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 중소기업 장사꾼이 뭘 아냐고요? 나처럼 중국 다니며 비즈니스 하는 기업인은 다 알아요. 우리가 왜 망할 수밖에 없는지. 중국은 이제 거대한 창업 국가가 됐다. 실리콘밸리 모델을 제대로 이식해 자기 걸로 만들었다. 중국의 명문대 앞에 가보면 창업 카페가 즐비한 걸 보고 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고 전하고 있다. 중국의 머리 좋은 젊은이들은 거기 다 모여 있다. 회사 차려 부자 될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런데 한국 대학가는 술집과 먹자 골목밖에 더 있는가. 중국 청년들은 창업하겠다 난리인데, 한국의 우등생은 공무원 시험을 치기에 바쁘다.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 청년이 꿈을 잃은 나라에 미래가 없다. 젊은이들 탓할 일이 아니다. 중국은 꿈을 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자기 힘으로 돈 번 부자들의 성공 신화가 넘쳐나고 있다. 우리 청년에겐 어떤 롤모델이 있는가. 100대 부자 중에 자수성가 부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른다. 죄다 재벌 2·3세, 세습 부자인데 이래 놓고 무슨 꿈을 가지라고 하는지 말이 막힌다. 이 땅에서 기업을 세워 성공하기가 힘들다. 중소기업 육성책을 편 지 30년도 넘었다. 그런데 좋아지긴커녕 대기업과 격차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졌다, 문제는 정부 정책이 헛다리 짚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본질은 따로 있는데 엉뚱하게 남의 다리 긁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양극화, 저출산, 사교육이다. 이것들이 제각각 따로 노는 별개 문제가 아니다. 몸통은 하나이다. '성장 사다리'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자기 힘으로 성공하는 시스템이 붕괴했기 때문이다. 온갖 문제들은 여기서 파생되는 부산물일 뿐이다. 그러니 몸통, 즉 성장 사다리만 복원시키면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것이다. 창업을 하여 부자가 되는 사다리가 생기면 우선 청년 실업이 해소된다. 대기업에 취직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러면 사교육에 목매지 않고, 아이 낳지 말라고 해도 낳을 것이다. 양극화가 해소되고 온갖 문제가 실타래처럼 연쇄적으로 풀린다. 지금 정부 정책을 보면 실업은 고용부, 저출산은 복지부, 사교육은 교육부가 틀어쥐고 각개약진한다. 말로는 소통이지만 소통이 안된다. 몸통은 놔두고 열심히 깃털만 건드리니 될 가능성이 낮다. 성장 사다리 복원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발상을 바꾸면 가능하다. 투자 생태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창업할 때 가장 힘든 문제가 자금이다. 사업 초기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조달할 곳이 없다. 은행은 담보부터 요구하니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비결이 아이디어만 좋으면 펀딩해 주는 투자자 풀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투자 불모지가 되어 대부분 벤처기업이 자금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업을 접고 있으니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없다. 투자만 받을 수 있으면 좋은 벤처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창업 활성화는 결국 금융의 문제이다. 비극은 정책 입안자들이 투자가 뭔지 모르는 것 같다. 금융이라면 담보 잡고 돈 꿔주는 것만 생각한다. 그러니 주택 담보대출이 기형적으로 부풀고 부동산에만 돈이 몰리고 있다. 이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 돈이 자본시장으로 오게 해야 한다. 그래야 벤처 투자도 활성화되고, 창업도 활성화된다. 창조경제니 뭐니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돈맥 경화라는 경제병으로는 경제 전쟁에서 패하기 쉽상이다. 정책 담당자들의 분발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