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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18세기 독일의 여러 왕들은 통일보다는 신성 로마제국 황제 자리와 교황의 환심을 사는 것이 더 큰 관심사였다. 더구나 신·구교도 사이에 벌어진 30년 전쟁의 결과로 제후국들이 완전한 자치권을 얻게 됨으로써 통일은 더욱 희박해졌다. 그런데 이 무렵, 지금의 베를린 지방에 있던 프로이센 왕국이 독일의 통일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프로이센은 본래 여러 제후국 가운데 하나였으나, 차츰 힘을 길러 영토를 넓혀 나갔다. 18세기 초에 프리드리히 1세는 왕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도읍을 베를린으로 정하였다. 그 후 프로이센은 중앙 집권을 확립하고 강한 군대를 길러 프리드리히 대왕(재위 1740~1786년) 때에는 유럽의 강대국 대열에 올랐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즉위 초에 오스트리아와 싸워 슐레지엔 지방을 손에 넣는 한편, 프랑스 등 선진국의 학문과 기술을 받아들이고 교육과 산업 발전에 힘을 기울여 독일의 근대화를 이룩하였다. 또 ‘왕은 국가 제일의 종이다’라고 한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민의 복지를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 곧 산업의 진흥과 교육 및 학예를 장려함으로써 독일의 의식 수준을 급격히 향상시켜 위대한 문인·학자들을 많이 배출시켰다. 바흐 팬이었던 프리드리히 대왕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는 1747년 그의 나이 62세 때 둘째 며느리가 낳은 첫 손자를 보기 위해 베를린에 갔다. 그의 둘째 아들인 카를 필리프 엠마누엘 바흐(C. P. E. Bach, 1714~1788)는 음악 애호가였던 프리드리히 대왕의 클라비어 반주자로 일하고 있었다. 대왕은 노대가(老大家) 바흐가 베를린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에 그의 음악을 듣고자 했다. 그해 5월 7일 일요일, 대왕은 예나 다름없이 손수 플루트를 들고 악사들의 반주로 협주곡을 즐기고 있던 차에 바흐가 포츠담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보고받았다. 바흐는 여장을 풀 사이도 없이 궁전으로 안내되어 대왕의 자랑인 최신식의 지르바만 클라비어를 몇 개 시험 연주한 다음 대왕이 스스로 내어 준 테마로 리체르카레(Regis Iussu Et Reliqua Canonica Arte Resolluta)를 즉흥으로 연주하여 왕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에는 왕이 6개의 오블리가토 성부를 가진 푸가(fuga)를 듣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는 자신이 선택한 주제를 가지고 바로 연주해 보임으로써 왕을 비롯하여 참석했던 음악가들을 감탄하게 했고, 다음 날 베를린으로 돌아와 신축한 오페라극장의 음향을 시험하고는 라이프찌히로 돌아갔다. [PART VIEW] 악장 배열 알 수없는 음악의 헌정 라이프치히에서 바흐는 왕으로부터 받은 주제를 전개한 리체르카레와 같은 주제에 의한 카논 5곡, 카논풍 푸가 1곡을 좋은 종이에 인쇄하여 갈색 띠로 장정하고는 헌사를 지어 대왕에게 헌정하였다. 음악의 헌정(BWV1079)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바흐의 「백조의 노래」라고도 불리는 푸가의 기법(BWV1080)과 함께 대위법 예술의 극치로 서양음악사에 군림하고 있다. 바흐의 아들 카를 필리프 엠마누엘 바흐가 죽은 지 4년 뒤인 1754년 출판한 사자약전(死者略傳)에 의하면, 처음에는 대왕으로부터 한 개의 푸가 주제를 받고 그것을 3성 푸가로 즉흥연주를 보여주었고, 6성 푸가를 즉흥적으로 보여줄 것을 요청받았을 때에는 대왕이 제시한 주제가 아니라 바흐 자신이 선택한 주제를 가지고 연주하였던 것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바흐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것에 대해서는 그가 훗날 대왕에게 보낸 음악의 헌정의 인쇄 악보에 첨부된 헌정문에서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가장 인자하신 국왕 폐하, 여기 깊은 공경의 마음으로 한 개의 음악 헌정물을 폐하께 바치고자 합니다. 이 작품 가운데 가장 거룩한 부분은 폐하의 고귀한 손에서 나온 것입니다. 얼마 전 포츠담에서 폐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고 또한 클라비어의 주제를 저에게 주신 것을 지금도 기쁨을 가지고 되새겨 봅니다. 그때 폐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저의 의무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연주에 필요한 준비가 되지 않아 명령하신 주제에 대하여 훌륭하게 처리하지 못했음을 시인합니다. 그래서 뛰어난 주제를 부단한 노력으로 완성하여 저의 임무를 다하려고 이렇게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중략) 폐하의 비천한 종인 작곡가. 1747년 7월 7일 라이프치히 이 헌정문에 있는 일자를 그대로 믿으면 바흐가 포츠담 궁정을 방문하고 나서 약 2개월 후에 작곡과 인쇄까지 완료한 것이 된다. 곡 전체는 규모가 큰 것과 작은 것이 혼합되어 총 13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존하는 1747년의 오리지널 판으로는 어떤 순서로 연주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형태를 알 수 없다. 음악의 헌정에 포함되어 있는 13곡 중에서 오리지널 판의 악기 편성에 대한 지시는 3곡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3곡과 앞에서 이야기한 두 개의 리체르카레 이외의 경우에는 연주자가 각자 자신의 판단으로 악기 편성을 선택해야 한다. 곡 전체를 구성하는 13곡은 거의 이른바 ‘왕의 주제’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독주곡부터 합주 음악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일정한 악장 배열을 알 수 없는 형태로 출판된 것도 음악의 헌정이 지닌 특성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필요에 따라 선택하여 연주하는 것을 의도한 것이었으며, 전곡을 순서대로 모두 연주하라는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지금도 행사를 위한 음악은 그 행사의 주최자와 성격에 따라 선택하여 연주하고 있는 것처럼, 당시에는 왕이나 귀족의 취향과 그날 연주의 성격에 따라 연주의 모든 것이 결정되었었다. 음악가는 고용된 하인의 신분이었으므로 음악가의 의도나 취향은 거의 반영될 수가 없었다. 현재 이 작품을 연주할 때는 신 바흐 전집(NBA VIII/1)의 교정자인 볼프의 제안에 따른 배열 순서로 한다. 악기 편성 또한 신 전집에 제시된 것을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에서 1960년대는 한 마디로 입학시험 제도의 실험기였다. 교육자, 지식인, 정치인, 그리고 일반 학부모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입학시험제도가 제안되고 실시되고, 수정되고, 폐지되고, 또다시 새로운 제도가 등장함으로써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의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입시 제도는 없다는 것을 전 국민이 깨닫게 되었다. 한 가정주부가 새교육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 당시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최정자라는 이름의 한 학부모가 새교육의 특집 ‘입시제도를 분석한다’에 게재한 글 제목은 ‘입학시험과 자녀교육: 이기고 볼 일이다’였다. 더 이상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입시제도가 어떻게 변하든지,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오로지 입시 전쟁에서 이겨 지옥을 탈출하고 볼 일이었다. 가장 극심한 것은 중학교 입시였다. ‘일류 중학’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이 중학교의 극심한 서열화가 만들어낸 지옥이었다. 해방 이후 1961년까지 중학교 입시는 학교별 전형을 기본으로 하였다. 전쟁 기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기에 교육법에 명시된 학교장의 학생 선발권과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이 보장되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별로 자체 출제하는 주관식 입시 문제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는 학생이 합격하는 단순하고 명료한 제도를 유지하였다. 전형 내용은 초등학교 6년 동안 배운 모든 과목이었다. 적어도 입시에서는 과목별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60년대 휩쓴 중학교 입시 광풍 5.16 군사정변과 군부정권의 탄생은 모든 것을 혼란에 빠뜨렸다. 1962학년도부터 중학교 입시가 국가 공권력의 개입에 의한 국가 공동출제 형식, 그리고 간단명료한 사지선다형 입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난이 폭발하자 1963학년도 입시에서는 국가 공동출제 대신 시·도별 공동출제라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이후 1965학년도 입시까지는 이런 형식을 유지하다가 1966학년도 입시에서는 다시 학교별 단독 출제를 기본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 공동출제도 허용하기로 했다. 이 시기에는 출제 형식만 자주 바뀐 것이 아니었다. 이전까지 초등학교 6년간 배운 ‘국산사자’(국어, 산수, 사회, 자연)를 포함한 전 과목이 중학교 입시과목이었으나 1964학년도 중학교 입시에서는 갑자기 과목이 축소되었다. 당시 표현을 빌자면 심지어 ‘사자’조차도 없어졌다. 예체능 과목뿐만 아니라 사회과목과 자연과목이 입시에서 배제된 것이다. 6학년 어린이들이 아침에 책보를 쌀 때마다 “국산사자”를 외우던 것에서 “국산, 국산”만 외우는 것으로 바뀌었다. 학교에서는 시험도 국어와 산수만 보고, 숙제도 국어와 산수만 내주는 새로운 풍토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에서 ‘도구 과목(국어, 산수)’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한 것이다. 도구 과목 중심의 교육으로 인해 공교육의 기본이 무너지는 출발점이었다. 1965학년도 중학교 입시에서는 다시 반공과 도덕을 포함한 전 교과를 대상으로 하는 입시로 환원되었으나 도구 과목의 추억은 이후 우리나라 교육에 자주 등장하여 교육의 비정상화를 초래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다. [PART VIEW] 무즙 파동으로 교육감 등 교육관료 줄 퇴진 1960년대 중반 중학교 입시가 초래한 부작용은 학교의 학생 선발권 약화, 도구 과목의 등장, 사지선다형으로 상징되는 단편적 지식 중심 교육의 출발에 그치지 않았다. 1965년에 있었던 입시문제 유출 소동은 입시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1966년의 국민학교 아동 학구위반 사건은 국가 공권력의 공정성에 대한 학부모들의 의구심과 함께 교육여건의 지역적 불균형에 대한 불만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처럼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 중반 중학교 입시의 난맥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은 유명한 ‘무즙 파동’이었다. 1965학년도 서울시내 중학교 입시 문제를 둘러싼 이 파동은 당시 새교육의 표현대로 ‘우리나라의 문교 행정의 난맥상을 집약적으로 나타낸 모델케이스였고 교육계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사건’(새교육 1965년 12월호)이었다. 서울시 공동관리위원회가 출제한 문제 중 정답이 애매하여 말썽이 된 문제는 무려 16개(국어 2, 산수 2, 자연 8, 사회 4)에 달하였다. 학부모들의 이의 제기로 문교부는 시험일로부터 닷 새 사이에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정답을 수정 발표함으로써 교육계를 일대 혼란에 빠뜨렸다. 대다수 학부모들은 이에 굴복하고 수긍하였으나 이른바 일류 학교로 꼽혔던 경기중학교와 경복중학교에 1점 차이로 불합격한 학부모 38명은 엿 만드는 과정을 묻는 자연 과목 18번 정답이 ‘디아스타아제’뿐만 아니라 ‘무즙’도 해당된다는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서울고법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재판정에서 무즙으로 엿을 만드는 시연을 보인 끝에 무즙도 정답으로 인정되어 38명의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교육법으로 인해 직접 입학이 어려웠던 이들 38명의 학생들은 전학 형식으로 원하는 학교에 편입하게 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금력과 권력을 지닌 금수저 자녀 21명이 덤으로 입학했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파문이 커지자 결국 청와대 비서관, 교육감, 문교부 보통교육국장, 서울시 학무국장 등 고위 공직자들이 무더기 해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중학교 과열 입시가 낳은 신조어 ‘치맛바람’ 이 사건의 전개와 해결 과정, 그리고 비판 여론 속에서 주목을 받게 된 새로운 현상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치맛바람’이었다. 일류병과 함께 무즙 파동의 공범으로 해석되었고, 공교육의 붕괴를 가져오는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새교육은 1965년에 치맛바람을 다룬 몇 편의 글을 게재하였다. ‘학교 주변을 휩쓰는 치맛바람’이라는 글에서는 이 현상이 순 국산이라는 흥미로운 사실에 주목하였다. 물밀 듯이 휘몰아치는 양풍 속에서, 그리고 미국 교육의 풍조 속에서도 오직 초연히 우리 풍토 위에서 절개를 지키며 날개 돋쳐 성장한 것이 ‘치맛바람’이라고 풍자하였다.(새교육 1965년 6월호) 경향신문사 논설위원이었던 언론인 송건호는 당시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진출 현상을 소개한 후 ‘사모님’의 등장을 경계하는 글을 새교육에 게재하였다. 송건호는 여성들이 전문 직업인이 아닌 ‘사모님’이라는 차원에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기보다는 나라 정치의 부패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계하였다. ‘사모님’의 진출은 공사(公事)를 공정하게 처리하기보다는 정실에 좌우되게 만들며, 정실이 있는 곳에 부패가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부패가 있는 곳에 공정한 인사행정이 있을 까닭이 없고, 공정하지 못한 인사에는 불평불만이 싹틀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사모님’의 진출은 필연적으로 사치와 허영을 수반하기 마련이라는 것도 송건호의 분석이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 진출하는 ‘사모님’들의 심리에는 단순히 자녀의 공부를 염려한다는 목적 외에 ‘나는 이렇다’ ‘나는 이런 옷을 입었다’라는 등의 심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모님’의 등장은 교육계나 사회의 부패와 관계가 깊다는 주장이었다. ‘무즙 파동’에서 나타난 ‘치맛바람’은 바로 이런 ‘사모님’의 등장이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경계해야 할 현상이라는 것이 송건호의 결론이었다.(새교육 1965년 2월호) 반세기 후인 요즘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부패 스캔들을 예견한 것이었을까? 중학 무시험 진학 전격 도입, 입시 지옥은 고등학교로 입시 제도의 개선을 둘러싼 교육계의 논쟁 속에 비극적인 사건이 연속적으로 언론에노출되었다. 과외 수업을 받던 어린이가 과로 탓으로 졸도한 후 숨지는 사건, 과외공부에서 자신을 잃은 학생이 “이번에 떨어지면 너 죽고 나죽자”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만화가게에서 음독자살한 사건, 그리고 과외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동들이 연이어 유괴되고 살해당하는 비극적 사건들이 보도되었다. 대한교련을 비롯한 사회 각계에서는 대대적으로 아동구출 보호운동을 벌였지만 효과는 없었다. 결국 정부는 1968년 7월 15일 이른바 ‘7.15 어린이 해방’이라고 부르는 중학교 무시험입학 정책을 발표하는 동시에 입시지옥의 주범으로 여겨지던 세칭 일류 중학교들을 강제로 폐교시키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이후 중학교 인구의 폭증에 따른 고등학교 입시 과열과 같은 문제점을 발생시키기는 하였지만 우리나라 교육사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는 중학교 무시험 전형은 이렇듯 많은 갈등과 희생, 그리고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후에 얻은 수확이었다.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그것은 ‘7.15 어린이 해방’ 수개월 전에 대한교련에서 입시제도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전문연구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이 위원회에서는 중학교 무시험 진학, 진학희망자 전원 입학 허용, 학교 간 격차 해소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는 사실이다.(새교육 1968년 6월호) 이 연구 결과와 정부의 7.15 정책이 매우 흡사하였다는 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교육자 단체의 전문화와 적극적인 정책 개발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태어나기 전 우리는 0이었다. 0에서 태어나는 순간 1이 된다. 이 1은 또 다른 1을 만나 2가 된다. 2는 자신들의 세포 복제 과정을 거쳐 비슷한 그러나 또 다른 숫자들을 만들어 낸다. 나는 이를 2+n으로 표시하고 싶다. 그런데 이 n들은 자기와 전혀 다른 n과 만나 또다시 2가 되고 조금 후에 또다시 2+n의 형태를 갖춘다. 계속되는 2의 세포 분열 속에서 세상이 유지되지만 n이 떨어져 나가면서 2만 남게 된다. 그러나 이 2는 죽음, 이혼 등의 여러 가지의 이유로 1이 된다. 1이라는 숫자는 시각적으로도 외로워 보인다. 심리학적으로는 더 외로워 보인다. 그래서 그 1은 또 다른 1을 찾아 공허함을 메꾸려고 한다. 근본적으로 1은 혼자서 그 화려함의 행진을 멈추고 자신의 원래 모태였던 0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0은 없음이 아니다. 노자의 도덕경 제42장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도가 하나 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의 내용과 같다. 노자의 道는 0인 것이다. 0은 만물의 근원이 되는 출발점이다. 0은 세상을 세상답게 해주는 조화의 원리이다. 만물은 ‘음’을 업고 ‘양’을 안아 ‘기’가 충만하여 조화를 이룬다(萬物負陰而抱陽[만물부음이포양] 沖氣以爲和[충기이위화]). ‘음’은 1이며 ‘양’은 또 다른 1로써 ‘음과 양’은 서로 다른 각자이지만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둘은 붙어 다녀야 한다. 즉, ‘업고 안아’야 할 것이니 이 둘이 합하여 지면 생기(生氣)가 넘치고 조화를 이루게 된다. 사람 ‘인(人)’의 원리와 같다. 人의 글자에서 보다시피 이는 사람들이 서로 기대어 있는 형상이다. 어느 하나가 내어준 어깨나 등을 거두어 버리는 순간 그 어느 하나는 무너져 버리게 된다. [PART VIEW] 人은 仁이다 내어준 어깨나 등을 서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상생(相生)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상생은 조화이다. 상생은 사랑이다. 仁이라는 글자는 사람(?)이 둘(二) 모여 있는 형상으로서 仁은 따뜻함과 사랑이 있는 단어이다. 세상은 2의 사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2는 1에서 나온 것이고 1은 0에서 나온 것이기에 0은 조화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0은 없음(無)이 아니다. 사르트르가 이야기하는 無(nicht)는 이런 의미에서 0이다. 사르트르의 ‘無’는 끊임없는 미래로 기투(企投)하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즉, 無는 자유이다. 기투란 인간존재의 의지와 자유를 의미한다. 피투(被投)란 ‘던져졌다’는 의미이다. ‘내 던져진’ 존재인 1은 자유로운 존재인 것이다. 1은 앞으로 펼쳐질 다양한 가능성에 대하여 스스로를 선택하는 기투적 존재이다. ‘내 던져진 존재인 1’과의 만남은 사랑과 따듯함으로 기투하여 간다. 그래서 세상은 조화로운 것이다. ‘없음’은 덜어내라는 뜻, 나눔의 실천을 불교에서의 존재의 법칙은 연기법이다. 연기법에서 ‘有와 無’는 존재의 공간적 관계이고, 생멸은 존재의 시간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연기법은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다루는 철학이다. 연기법의 공간적, 시간적 관계를 살펴보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도 있다.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도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도 없다.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도 멸한다”이다. ‘있다’는 0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空(공) 역시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고 소유하는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이다. 空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채움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자의 無도 없음이 아니라 있음의 것을 비우라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3장에서 “성인은 마음을 비우고 백성의 배를 채워라”고 말한다. 노자의 도덕경은 정치인에게 말을 던지는 것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경고장이기도 하다. 마음을 비우면 가슴 가득 채워지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행복이다. 나눔은 채워주는 것이다. 노자의 無는 없음이 아니라 있는 것을 덜어 냄으로서 또 다른 생산, 즉 행복을 채워 주는 것이다. 0은 없음의 단초라기보다는 시작의 씨앗이다. 0이 無로 본다면 세상이 어두워진다. 0에서 출발하여 1이 나오기 때문에 0은 없음이 아니라 시작의 희망이다. 희망을 보자. 0으로 되돌아 감을 슬퍼하지 말자. 0으로써 세상을 만들고 조화롭게 하였으며 또다시 나는 1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01 병자호란(丙子胡亂)은 ‘난(亂)’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나라 간의 전쟁이었다. 이 싸움에서 조선은 신흥국 청(淸)에게 졌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병자년에 오랑캐가 일으킨 난’이라는 뜻이니, 난리의 이름으로만 보면 전쟁을 겪은 조선의 자존심이 당당하다. 그러나 실제 싸움에서 조선은 참패했다. 1636년(병자년) 12월 청 태종은 2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다. 침략의 명분은 조선이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정묘호란의 약속이란 조선은 후금(後金)을 형의 나라로 받들어 예를 지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명나라를 섬기는 조선을 군사적으로 정복해 두자는 데 있었다. 청나라가 명나라를 없애고 중국을 지배하기 위한 선제적 군사 조치인 셈이었다. 청의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한양에 이르는 데 열흘 남짓 걸렸다고 한다. 청나라 군대의 세력이 어떠한지, 또한 조선의 방비 태세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적의 포위 속에서 혹한과 싸우며 버텼으나, 식량이 끊어져 청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가 김훈의 장편 ‘남한산성’은 이 장면을 절절한 감각의 리얼리즘으로 묘파(描破)한다. 그 딱하고 안타까운, 그래서 참으로 끝 간 데 없는 연민, 조상과 역사에 대한 연민의 밑바닥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지금의 송파나루(석촌호수)인 삼전도에서 이른바 강화의 예를 가진다. 강화(講和)란 서로 싸우던 나라끼리 싸움을 끝내고 화의(和議)하는 것이다. 말이 그럴듯해서 ‘강화’이지, 전쟁 뒤의 강화란 항복의 의식이 중심 내용이다. 삼전 나루에 주둔한 청 태종(淸太宗) 홍타이지에게 인조는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三?九叩頭)의 굴욕적 예를 행하며 항복했다. 항복의 조건은 이러했다. 청나라와 조선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로 의를 맺는다는 것, 조선은 명나라와 국교를 끊는다는 것, 세자와 봉림대군, 그리고 윤집, 오달제, 홍익한 등 청나라와 싸우기를 주장했던 신하들을 인질로 청나라에 보낼 것, 조선은 청에 조공을 바칠 것 등이었다. 그런데 강화의 조건이 이것만이 아니었다. 참으로 고약한 것이 있었다. 청 태종은 인조에게 항복을 받은 이 삼전도 자리에 청의 전승을 기념하고 자신의 공덕을 찬양하는 비석을 세우게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대청황제공덕비’이다. 굴욕이 여기에서 더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비를 어느 누구도 대청황제공덕비라 부르지 않았다. 건립 당시부터 후대의 각종 문헌에 이르기까지 비석이 있는 삼전 나루의 이름을 따라 그저 삼전도비(三田渡碑)라고 불렀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 거북한 치욕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청 태종 앞에 임금이 무릎을 꿇은 이상 누군가는 이 치욕의 비문을 지어야 했다. 역사의 오명을 짊어지는 일을 누가 맡을 것인가? 1637년 11월 25일, 인조는 비문을 지을 사람을 추천하라고 비변사에 명을 내렸다. 장유(張維), 이경전(李慶全), 조희일(趙希逸), 이경석(李景奭) 등 네 사람의 명단이 올라왔다. 장유는 모친상을 이유로 사양했고 다른 이들도 각자 나름의 이유를 댔으나 인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며칠 후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이경전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이 비문을 올렸다. 그 가운데 조희일은 일부러 글을 조잡하게 써서 1차로 탈락했고, 장유와 이경석이 지은 비문은 청나라에 보내 최종적으로 이경석의 비문이 채택되었다. 비문의 내용은 이러하다. [PART VIEW] 황제께서 십만 군대로 동방에 원정 오니 천둥 같은 기세에다 범처럼 용맹했네.(중략) 우리 임금 복종하여 다 함께 귀순하니 위엄 때문 아니요 덕에 귀의한 것이라네. 황제께서 가상히 여겨 은택을 베푸시고 온화한 낯빛으로 창과 방패 거두셨네.(중략) 우리 임금 돌아오니 황제의 은덕이요 황제께서 군대 돌려 우리 백성 살리셨네.(중략) 우뚝한 비석이 한강 가에 서 있으니 만년토록 조선 땅에 황제의 덕 빛나리라. [원문] 皇帝東征, 十萬其師. 殷殷轟轟, 如虎如?. (中略) 我后祗服, 相率以歸. 匪惟?威, 惟德之依. 皇帝嘉之, 澤洽禮優. 載色載笑, 爰束戈矛. (中略) 我后言旋, 皇帝之賜. 皇帝班師, 活我赤子. (中略) 有石巍然, 大江之頭. 萬載三韓, 皇帝之休. (최채기, [고전산문 424] 삼전도비 중에서) 비문을 쓰게 된 이경석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이 비문을 쓴 후 벼슬을 버리고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에서 임금의 명령을 거절하거나 대들거나 하는 일이 오히려 쉬웠을지도 모른다. 일부러 글을 거칠게 써서 이 소임을 맡지 않는 방식은 꾀는 될지언정 이 난국을 감당하고 짊어지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리라. 사람들은 이경석을 쉽게 매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면 이경석을 매도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그의 고뇌가 어찌 고통스럽고 심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힘이 약한 나라가 전쟁에 패하여 강대국에 항복하는 상황이다. 사직(社稷)과 임금과 백성을 다시 있을 오랑캐의 침략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그는 모욕의 십자가를 진 것 아니겠는가. 그의 가슴을 수십 번 오갔을 명분과 현실 사이의 고뇌, 그리고 세상의 손가락질에 대한 그의 번민, 평생을 회한에 묻혀 살아야 할 운명 등 그의 고통에 이입되다 보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싸움의 끝판을 적의 살육과 강탈에 내맡기지 않으려고 화해의 형식으로 강화를 한다. 그런데 그 강화의 뒤안길에서 약자 쪽의 정신과 마음에 가해지는 유린이 이렇듯 가슴 아프다. 강화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아픔이다. 02 전쟁이나 물리적 싸움은 그 속성상 광기(狂氣)를 수반한다. 6.25 때도 그러했다. 어른들은 전쟁의 시기 동안 ‘세월이 미쳤다’고 말했다. 그 싸움의 광기를 그냥 놓아버려 두면 야만의 극한이 될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인종청소로 일컬어지던 보스니아 전쟁이나 부족 간 끝없는 대량학살로 악명 높던 루안다 내전 같은 것들이 그 예이다. 싸움의 끝판이 광기로 치닫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고 인류는 화평 조약이니 강화조약이니 하는 것들을 문명 진화 차원에서 만들어냈다. 그래서 싸움의 끝판은 모름지기 ‘화해’의 국면이 되어야 한다. 사전에서 ‘화해’라는 말을 찾아보면, ‘갈등과 다툼을 그치고 서로 가지고 있던 나쁜 감정을 풂’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화해’는 법률 용어로도 쓰인다. 민사상의 분쟁을 일으킨 소송의 당사자가 서로 양보하여 분쟁을 끝내기로 약속하는 행위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화해 자체는 정말 좋은 것이다. 영어에서는 화해를 ‘reconciliation’로 쓴다. 거듭해서 달래고, 회유하고 조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화해를 시킴’에 가깝다. 그런가 하면 화해하다를 ‘make peace’라고도 쓴다. ‘화해’의 순수한 뜻을 잘 반영한 표현이라 하겠다. 또 다른 표현은 ‘bury the hatchet’이라고도 쓴다. 직역하면 ‘손도끼를 묻다’는 뜻인데 ‘무기를 내려놓고 화해하다’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악수도 그렇다. 손에 무기를 지니지 않았음을 확인시키는 동작이 악수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응당 악수는 ‘화해의 악수’를 뜻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화해는 사전에서의 화해와는 많이 다르다. 화해는 개인 차원에서는 마음의 평정함을 가져다준다. 분명히 그러하다. 그러나 사회 차원의 화해는 이미 제도의 일종으로 작동한다. 현실에서 여간해서는 50대 50의 화해는 없다. 즉 공평한 화해는 없다. 화해는 어느 일방의 양보를 전제로 성립한다. 아니면 어느 일방의 강압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화해는 갈등이나 싸움의 일부이다. 학교에서 아이들 싸움을 화해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아이들 싸움에 엄마들이 개입하면 화해는 또 다른 싸움의 한 장이 된다. 어느 한쪽이 대승적으로 양보하거나 용서하는 그런 화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화해를 말하면서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갑의 논리에서 화해를 말할 때 그러하다. 진정한 화해는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화해의 형식과 화해의 경험은 대단히 중요하고 밀접하다. 이것을 교육이 가르쳐야 한다.
우리 몸은 음식물을 통해 영양소를 섭취함으로써 균형 잡힌 성장과 함께 건강한 신체를 누릴 수 있다. 그렇다면 정신 건강은 어떨까? 우리 아이들이 무탈하게 일상적인 학교생활이나 가정생활을 해 나간다면 건전한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최근에 보면 그렇지 못한 학생들을 상당수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와 서울시가 2005년 서울지역 초·중·고생 2,672명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에 따르면, 한 가지 이상의 정신장애를 가진 학생이 36%, 두 가지 이상의 정신장애를 가진 학생도 13%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을 순서대로 보면, 특정 공포증(16%), ADHD(13%), 적대적 반항장애(11%) 등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교실 현장이 심각한 사회병리적 현상을 앓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현대화·도시화의 부산물로 나타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만연, 급속한 가족 규모의 축소와 유대관계 약화, 빈부격차 및 가정의 불화, 지식·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 및 성적에 대한 압박,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경제적·명예적 성공을 거의 유일한 삶의 목표로 삼는 한국 가정의 특수한 양육·사회 환경과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의 생물학적 특성까지 겹쳐져서 그 양상이 극대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던 건 우리 교사들은 하루 종일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까칠해진 아이들과 함께 뒹굴고 생활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들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돌봐 주고, 치유할 수 있는 교육기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도달해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교사-학생 간의 관계 및 아이들의 감정 상태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두 교육주체 간의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어 있어야 제대로 된 학급 운영도, 교수-학습도 가능하다. 전문가에 의하면 최근 들어 정신건강에 있어서 관계적 치료가 강조되고, 심지어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알츠하이머와 같은 중증 정신질환의 외부적 발현을 억제시킬 수 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이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속성에 상처를 입게 되었음을 뜻하며, 다시 말해 크건 작건 정신 건강에 타격을 입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사실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감정의 동물이다. 누구든 참아야지 하는데, 참지 못하고 한 대 때리고 나서 후회했던 경험들을 몇 번씩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 뇌가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에 관여하는 대뇌피질이라는 부위가 있고, 그 안쪽 하부에 감정을 통제하는 부위인 변연계가 있는데,* 생각에서 감정으로 명령을 내리는 네트워크가 하나라면, 감정에서 생각으로 명령을 내리는 네트워크는 세 배나 더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우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때리고 나서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은 생각보다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감정과 연관된 심리가 바로 나르시시즘(narcissism), 즉 ‘자기 사랑’이다. 감정이라는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을 통해서 보고, 청각을 통해서 듣고, 후각을 통해서 냄새를 맡는 것이 살아 있는 동안에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감정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간에 그냥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예민하게 건드리는 것이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나를 인정해주고 격려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다. 가장 불행한 순간에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의 곁을 떠나도 나는 너의 곁에 있을게” 하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불행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점점 더 개인주의화하는 사회에서는 나르시시즘이 더 중요해진다. 진정한 나르시시즘 인간관계, 진정한 나르시시즘 학급 운영이 이루어지려면 다음 3R이 채워져야만 한다(양창순, 2012,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상처받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관계의 심리학), 센추리원). [PART VIEW] 3R은 인정(recognition), 존중(respect), 보상(reward)을 말한다. 즉,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건전한 대인관계가 형성되어 원만한 사회생활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모든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적인 문제는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갈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우리 교사들은 이 세 가지 건전한 대인관계를 위한 필요조건을 교실 상황에 적용하여, 교사-학생 간의 인간관계와 학급 구성원 간의 소통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인정(recognition) 사람은 누구나 ‘나를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인간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나르시시즘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자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생각이 옳을 수 있고, 나는 이 세상에서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이고, 세상은 그런 나를 인정을 해줘야 한다는 심리이다. 사랑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바로 나르시시즘과 직결되어 있는 욕구이다. 이것은 현대인들이 가장 갈망하는 욕구이다. 사랑과 인정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자기실현화 욕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밥을 먹고 숨을 쉬어야 하듯이, 우리가 정신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인정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정신의 양식이다. 그런 욕구에 대한 갈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 있어도 정신적으로는 배고프고 목마르다. 요즘 젊은 층들에게 인기 있는 SNS, 블로그, 카페 등의 운영과 참여는 이러한 정신적 갈증을 달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학급 학생들은 30명의 무리 속에 섞여 있으므로 담임교사 등으로부터 인정받기가 매우 힘들다. 공부를 잘 한다든가, 회장 등 간부직을 맡는다든가, 하다못해 말썽꾸러기라도 된다면 나름대로 그에 대한 인정과 관심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생들은 특별한 점이 없는 한 관심을 받을 일이 많지 않다. 여기에 정신적 허기를 느끼게 되는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담임교사·과목 담당 교사 등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학생에게 해 준다면, 이러한 정신적 목마름과 허기짐을 조금이라도 해소시켜 줄 수 있겠다. “요즘도 종종 동생이랑 말다툼하냐?” (그전에 동생이랑 말다툼했단 말을 들은 적이 있고 이를 기억한다는 의미이다. 즉, 그 학생에게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오늘도 걸어왔어? 집에서 학교까지 걷기에는 되게 먼 거린데···.” (평상시에 등굣길을 걸어서 다님을 알고 있으며, 집의 대략적 위치도 알고 있고, 이는 그 학생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반증으로 이해할 만하다.) “영식이, 지난번에 보니까 축구를 아주 미친 듯이 하더라.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몸 좀 사려 가면서 하렴!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지난번에 축구에 몰입하는 것을 관심 있게 지켜봤음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고, 애정 어린 관심과 염려가 깃들어 있다.) 존중(respect) 사람은 누구나 ‘나를 존중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존중이란, 좀 더 나아가 나를 특별하게 대접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우리가 주로 단골 식당을 찾아가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단골 식당 아줌마는 늘 나의 입맛을 존중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무생채를 좋아하고 콩나물을 싫어한다든지, 쫄면 사리보다는 라면 사리를 좋아한다든지 등···. 이렇게 나를 존중해주는 환경 속에서 나의 자존감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만이 우리 안에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 능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자존감은 자기 확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인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가’하는 정체성과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 확신이다. 자기 확신이 있을 때에 하는 행동과, 없을 때에 하는 행동은 다르다. 따라서 담임교사는 우리 학급 구성원에게 정체성과 자기 확신의 (잠재적)유전자를 항상 일깨워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 중에서 다음과 같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말과 상대방을 무시하는 말을 비교해 봄으로써, 담임교사의 말 한마디가 학급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도, 낮출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나르시시즘의 충족은 기적을 일으키지만, 나르시시즘의 상처는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보상(reward) 교사가 학생에게 줄 수 있는 보상의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면, 상점·벌점, 참여도·태도 점수, 칭찬 스티커, 사탕, 초콜릿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것보다 가장 아이들의 마음속을 파고들 수 있는 보상의 방법은 언어적 반응(reaction)이다. 예를 들어 사회 시간에 지민이가 꽤 어려운 시사상식 문제를 맞혔다. 부끄럼이 많은 지민이가 틀릴 것을 무릅쓰고 들릴 듯 말 듯 조용하게 정답을 얘기했는데, 사회 선생님이 아무 대꾸도 없이 그냥 수업을 진행한다면 지민이는 다음부터 입과 마음을 닫아버릴지도 모른다. 이럴 때 흔히 말하는 ‘오버’를 해야 한다. 놀란 눈, 과장적인 표정과 흥분된 목소리 톤으로, “어머, 지민이. 어떻게 알았어? 그거 우리 학교 학생 400명 중 5명 밖에 모르는 건데···. 어찌 그리 어려운 걸 알았네. 와우! 대단한 걸···.” 이와 같은 반응을 들은 지민이는 그 어떤 보상을 받은 것보다 뿌듯함을 느낄 것이고, 다음에 또 대답하게 될 기회를 노릴지도 모른다. 연구에 의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메시지의 내용보다는 억양, 표정, 눈빛, 목소리 톤이라고 한다. 따라서 아이가 대답이나 행동을 잘 했을 때 해줄 수 있는 칭찬을 늘 준비해 둠과 동시에, 연극적 요소를 겸비하여 과장된 몸짓과 표정, 억양으로 아이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습을 해 둘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언어적 내용의 이해보다 감각적 표현에 훨씬 더 마음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물며 전두엽 성숙이 미숙한 우리 청소년에게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수학교사는 어떤 학생이 예전에는 못 풀던 문제를 풀었을 때를 대비하여 다음과 같은 칭찬 멘트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와우! 요즘 상민이가 수학 공부 좀 하나 봐. 한 달 전 같으면 절대 못 풀었을 문제인데,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데?” 놀란 눈빛과 흡족한 표정을 함께 지으면서 말이다. 마음의 밥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에 작용하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바로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흔히 ‘쾌락 호르몬’이라 불리는 것으로, 칭찬을 받을 때, 길 가다 돈을 주웠을 때, 성적이 올랐을 때, 담배를 피울 때, 인터넷 게임에서 승급할 때, 재미있는 상황에 처하거나 장면을 목격했을 때, 어려운 수학문제에 도전하여 힘들게 풀었을 때, 교사의 질문에 혼자 대답했을 때, 점차 성적이 오를 때, 이전과 달리 농구 자유투가 잘 들어갈 때, 자신이 쉽지 않게 여기는 문제를 심혈을 기울여 해결했을 경우에 활발히 분비된다. 도파민은 뇌가 먹는 밥과 같은 것이다. 사람에게는 매일매일 일정량의 도파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이 같은 경험이나 상황을 자주 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요즘 아이들은 도파민 부족에 의해, 또한 그에 의한 전두엽 기능의 저하로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뇌의 밥’을 주어야 한다. 우리가 배고플 때에는 무엇이든 다 먹고 싶고 맛있게 여겨진다. 아이에게 칭찬을 해주지 않고 인터넷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배고픈 아이에게 밥상을 앞에 두고 먹지 말라고 고문하는 것과 같다. 그 아이는 게임을 오래 하면 안 좋다는 걸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칭찬, 즉 도파민에 굶주려서 그러는 것이다(http://blog.naver.com/sonton21). 그렇다면 해결책은 자명하다. 아이의 뇌에, 마음에 도파민을 주어야 한다. 가장 쉬운 것은 역시 칭찬이다. 교사는 칭찬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한 교사가 반문한다. “아무리 보아도 칭찬할 게 하나도 없는 아이는 어떻게 할까요?” 천만의 말씀이다. 전문가들은 천하의 말썽꾸러기한테도 30가지 이상의 칭찬거리를 찾아낸다. 정 칭찬할게 없으면 피부색, 머릿결, 말의 속도, 목소리 톤, 옷 색깔, 유행 감각이라도 칭찬해 주어야 한다. 한 달 내내 지각한 아이가 마지막 날 정시에 학교에 왔다면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곧바로 칭찬해 주어야 한다. 그 아이를 칭찬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쉽게 오지 않으므로···. 그다음으로는 유머 감각을 들 수 있다. 어떤 이는 오늘날 성공하기 위한 교육자의 조건 중 하나로 유머 감각을 들기도 한다. 도파민이 부족한 청소년에게 교사의 유머 감각은 오아시스와도 같은 것이다. 실제로 한 아이가 전문상담가에게 토로한 내용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김현수, 요즘 아이들: 이해와 공감의 솔루션(티처빌 원격교육연수원 직무연수 과정)). “영어 선생님은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그분은 한 학기 동안 우리를 한 번도 못 웃겼어요. 그분은 매일 저를 야단치고 훈계하는 생활지도부장 선생님보다 훨씬 안 좋은 선생님이에요. 그런 분이 선생님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뇌가 얼마나 굶주려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한 단면이다.
대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 진심 등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감정과 태도 같은 자세가 일차적으로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 튀어나오는 말과 행동 때문에 당황스러움을 경험할 때가 많다. 특별한 이유나 상황이 아님에도 그러한 감정의 기복을 생각 이상으로 자주 겪을 때마다,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할 것이란 자기 착각 속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러한 감정의 변화를 더 먼저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이렇듯 뚜렷한 이유가 없으면서도 극적인 기분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상대방에게 우울하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지속한다면 ‘지킬 앤 하이드 신드롬’에 빠진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볼 일이다. 인성의 파괴는 자기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서 《지킬 앤 하이드》는 평소에 술이라고는 입에도 대지 않는 인자한 지킬 박사가 어느 날 술주정뱅이 난봉꾼이 되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악당으로 돌변하는 이야기이다. 지킬 앤 하이드 증후군은,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는 이들이 내부의 그림자와 싸우다가 순간순간 굴복하고 마는 사람들의 증상이다.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들, 어릴 때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겪은 이들이 이러한 증후군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평소에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 이외에, 감추지 않으면 안 될 어둡고 끔찍한 모습들이 자기 속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오늘날 인격이 무너지고 인성이 파괴되어가는 현실적 인간의 심리를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단정하기보다 그래도 나의 행동이 남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인성교육을 강화하는 중요한 동기의 한 방법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학교와 교실에서 이와 같은 증후군들이 증가하고 있다.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가깝게 마주하는 사람들을 통해, 사사건건 트집만 잡으며 억지 주장을 펼치는 이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장소에 따라 반응하는 태도나 자세가 다르지만, 증상을 앓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에서는 가족 간에, 학교에서는 동료 교사나 동급 학생들에게 날벼락 같은 이중인격의 언어폭력과 공격적인 돌발행동을 보여준다. 이들은 좋을 때는 더없이 좋은 사람이지만, 한번 급변하면 헐크를 연상시킬 만큼이나 폭력적인 언행을 보이기 때문에 통제 불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이런 행동의 변화를 정작 본인은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화나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고 합리화한다. 자신의 행동은 문제가 없으며 원인을 제공하는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다고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하는 두 얼굴을 가진다. 이들과의 갈등은 대화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문제해결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 불신감을 키우다가 결국은 서로를 욕하며 관계의 파탄을 불러온다. 인성,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해결 열쇠 이러한 갈등을 반복하다 보면 모든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책을 자기 탓으로 돌리거나,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 대처하지 못해 생긴 자신의 무능력을 생각하며 자책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순간 화가 났더라도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조용하게 넘어가면 모든 것이 좋은데, 이를 견디지 못해 상대방을 난폭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자책감을 느낄 때, 자존감은 무너져 내린다. 만일 그 대상이 부모라면,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화나게 한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다. 스스로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부정하는 생각으로 인해 죄책감에 빠져 살게 된다. 이런 상황이 교실에서 일어날 경우, 학생은 자신의 잘못으로 선생님이 화가 났다고 생각하며, 친구들 앞에서의 공개적인 모욕을 참게 된다. 억지로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PART VIEW]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음에도 이를 말하지 못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큰 고통이 된다. 한 사람의 마음을 창살 없는 감옥에 스스로 유폐시키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인성 속에 숨겨진 미묘한 여우의 꼬리를 잘라라 스무 살이 넘은 대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기계적으로 출석체크를 하는 것을 정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사회 안에는, 서로 간의 불신과 더불어 개인의 양심을 인정하지 않는 시스템이 숨어 있다. 교육은 주체적인 인간이 되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지만, 갈 길이 멀다. 제도에 대한 ‘구속’이 정직한 인간이 되기 위한 ‘실천’에 끊임없는 제약을 가하고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상과 제도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킬 앤 하이드’ 인간이 양성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기형적인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행동 자체가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모범 행동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정을 위해 헌신적으로 행동하며, 동료 교사들에게는 열심히 일하는 최고의 모델로 인정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모범적이고 헌신적이며 타인의 모델이 되고자 하는 마음과 달리 말과 태도가 반대로 행동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오래전 이야기이다. 서울의 청계천 노점상을 거닐다 보면 야바위꾼을 만나곤 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구경을 하다 보면 야바위꾼의 화려한 손놀림과 말재주에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 구경할 때는 찍는 대로 맞았는데, 만 원짜리 한 장을 거는 순간,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음에도 야바위꾼의 속임수에 속수무책이었다. 돈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다르지 않을까’란 마음의 이중성이, 패착으로 몰고 간 것이다. 이는 비단 개인의 패착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지킬 앤 하이드 증후군에 사로잡힌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얻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도, 난처한 입장에 처하면 공격적인 발작을 일으킨다. 인성으로 위장된 행동은 다중인격을 통합하기 위한 여우의 꼬리 짓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립학교 경영자 중에 지킬 앤 하이드 증후군 때문에 사립학교 자체를 개인 사업장으로 여긴 사람이 있다. 그는 이사장 취임을 위해 수업 중인 학교에서 형제간에 난투극을 벌이고, 며느리의 족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교육현장에서 일어난 비인격적인 행동이었기에 우리를 더욱 놀라게 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들의 끝이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속의 지킬 과 하이드를 인정하라 시쳇말로 미친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미쳤다고 말하지 않는다. 감정의 기복이 극과 극을 치닫는 경향이 있다면 솔직한 말로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는 것이 지킬 앤 하이드 증후군을 이겨낼 최고의 방법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직면한 문제를 냉정한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이해하려고 한다. 이는 인성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직함은 인성 실천의 핵심이며, 속임수는 거짓 갈등의 욕구를 발산하는 수단이다. 판단에는 여러 가지 겹눈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실들은 옳고 그름이 결정 나기 전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판단을 유보하고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다. 지킬 앤 하이드 증후군의 양면성은 명과 암이다. 자아가 꿈꾸는 이상이 명이라면, 그에 대한 그림자는 암이다. 우리는 이상을 따른다는 명분 앞에서, 미래에 대한 ‘약속’과 ‘책임감’을 증발시키는 실수를 종종 한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어느 한쪽의 편에서 지킬, 혹은 하이드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지킬과 하이드를 참고하여 선함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따르는 합리적인 사고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이스 관리 강화... 교원의 책무성도 높여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학교생활기록부를 학생의 성장과 학습과정 중심의 종합기록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개선방안을 발표하였다. 개선안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적용과 자유학기제 전면 시행 등에 따라 학생 참여 수업과 과정 중심 평가가 확대됨을 고려하였고, 교육과정과 교수·학습, 평가 기록의 연계를 높이고자 하였다. 특히 그동안 상대적으로 미흡하게 관리되었던 학교의 학생부 권한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뒀다. 또 학생부 항목별 기재 주체 명시, 학적용어 정비, 항목별 기재 표준 가이드라인 제공, 나이스 권한 관리 강화 등 교원의 학생부 기재 역량 및 책무성 제고 등을 통해 학교 현장의 능동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부 관련 훈령 및 제도 개선을 추진하였다. 나이스 시스템 상에서 이루어지는 학생부 권한 부여 및 입력 주체를 명확히 하도록 하였다.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 지침’(교육부 훈령)을 개정하여 그동안 모호하게 운영되었던 입력과 정정의 주체를 명확히 하였다. ‘2015 개정교육과정’ 적용에 따라 초등학교에 신설된 ‘안전한 생활’의 이수시간과 특기사항을 창의적 체험활동에 기록하도록 하고, 교과별로 입력하던 초등 통합교과의 교과학습 발달상황을 통합하여 입력하도록 하였으며, 단위학교의 ‘학업성적관리위원회’에서 학생부 정정에 대한 심의를 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였다. 고교 직업교육에서는 NCS 실무과목의 조기 적용에 따라 능력 단위 평가를 하도록 하였다. 아울러 의미가 모호하거나 설명이 부족했던 학적 용어(취학, 재입학, 복학, 진급, 전출, 휴학, 유예, 제적, 자퇴)는 그 의미를 명확히 정비하였다. 특히, 사회적 요구에 따라 ‘명예졸업’을 신설하여 학교 교육활동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나 ‘공익을 위한 활동’ 중 사망한 경우는 학칙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장이 명예졸업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둘째, 학생부의 항목별 기재 방식을 개선하였다. 학교 및 교사별 기재 수준의 차이를 줄이고, 상시 관찰한 내용의 구체적인 기술로 학생부의 신뢰도와 공정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학생부 서술형 항목의 표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다양하고 풍부한 ‘기재 예시’를 학교 현장에 보급하여 각종 연수에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기존의 결과 중심 기재를 과정 중심으로 개선하고 학생의 성장과 학습과정 중심의 기록이 되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학교 현장에서 제기되었던 의견을 반영하여 ‘수상경력’, ‘진로희망사항’, ‘독서활동’ 항목의 경우, 불필요한 항목은 제외하고 교사의 상시 관찰에 한계가 있는 부분의 기재 내용과 양식을 간소화하였다. 예를 들어, 독서활동의 경우 학생들의 독서 성향은 기록하지 않고 읽은 도서명과 저자만 입력하도록 개선하였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학생의 독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걱정하지만, 기존과 같이 학생의 독서활동 자료를 근거로 담당교사가 확인하여 입력하는 절차는 동일하므로 독서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은 지나친 걱정이다.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독서 성향을 상시 관찰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러한 이유로 그동안에는 학생이 써 온 독서감상문 등을 보고 그대로 기록하는 소위 ‘셀프 학생부’라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 했다. 이번 제도 개선은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독서교육의 효과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실 중심으로 기록하도록 하여 담당교사의 업무 부담도 최소화하였다. 물론, 입시 과정에서 대학은 학생의 독서기록을 중심으로 면접 등을 통하여 충분히 학생의 관심과 역량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PART VIEW] 학생부 기재 수준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재 예시 개발?보급과 더불어 현장 교사를 중심으로 정기적인 연수도 함께 진행된다. 작년 12월부터 학생부 기재와 관련한 교육부의 연수가 시작되었고, 매년 정기적으로 연수를 실시할 계획이다. 교사들이 학생부의 항목별 표준 가이드라인과 기재 예시를 참고하여 다양한 학생 활동 사례에 따른 학생부 기재 방법을 익힐 수 있도록 연수과정을 구성?운영함으로써 교사들의 학생부 기재 역량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시·도교육청 수준에서도 15시간 이상의 연수에는 학생부 관련 연수를 포함하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그동안 학교별로 교사별로 학생부 기재 내용 수준도 다르고, 기재 양도 달라 자녀가 입시에서 불리하지 않을까 하는 학부모들의 걱정을 덜 수 있도록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우수한 기재 예시들을 모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현장 교사들이 학생부 기재 시에 편리하게 참고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셋째, 학생부 권한 관리와 관련하여 나이스 시스템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학생부 권한 관리 실태조사 결과를 반영하여 학생부의 인증 절차를 기존의 1단계에서 2단계로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학생부 권한부여 상황에 대한 교육(지원)청 상시 모니터링이 가능하도록 하여 부적정한 권한 부여 등을 사전에 예방하도록 하고, 학생부 기록 수정 내역을 매 학년 학생부 마감 이후 5년 동안 보관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학생부의 권한 부여부터 내용 수정까지 철저한 관리와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넷째, 교원의 학생부 관리 및 기재의 책무성을 높이고, 학부모와 입학사정관 등의 학생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연수를 실시하도록 하였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교육부에서는 학생부 권한 관리 강화와 교원들의 책임 있는 기재 등을 지원하기 위하여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그 후속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교장 및 교감, 교육청 담당자, 교사 등 대상별 특화된 연수과정을 개설하고, 토론과 실습 중심으로 운영하는 등 관련 연수를 강화할 계획이다. 그리고 학부모와 입학사정관의 학생부 인식 개선을 위해 학생부의 기록 취지와 주요항목의 기재 가이드라인을 중심으로 학생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도록 하고, 학부모의 경우는 담당교사에게 학생부 수정 및 기재와 관련하여 부당한 요구 등을 할 경우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임을 주지시키도록 할 계획이다. 하지만 학생부의 신뢰도와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단위학교의 책임 있는 권한 관리와 학생부 기재에 대한 교원의 책무성을 제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학생부 권한 관리 및 부당 정정 등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과 사전 예방 차원의 지도?감독을 강화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의 학생부 관리 및 점검 실태에 대하여 정기적으로 지도?감독을 실시하고, 시·도교육청에서 관내 학교에 대해 정기적인 장학지도 및 실태조사 운영방안을 수립?실천하도록 하였다. 독서활동은 책 제목과 저자만 기록 교육부는 이번 개선 방안을 시작으로 학생부가 학습결과 중심에서 학생 성장과 학습과정 중심의 기록으로, 단편적 평가 기록에서 상시 관찰한 누가 기록 중심의 종합적 기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현장에서 학생부의 권한 관리가 보다 철저히 이루어지고, 교원의 학생부 기재 역량과 책무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학교 현장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하고 있다. 교실 수업과 평가도 변화하고 있다. 교사 중심의 전달식 수업에서 학생이 참여하는 학생 활동 중심의 수업으로 바뀌고, 결과보다는 과정 중심의 평가로 바뀌고 있다. 이렇게 변화하는 수업과 평가를 이제 학생부에 오롯이 담아내야 할 시점이다. 지금 시작하는 변화가 점진적으로 ‘학생 활동의 종합 기록지’라는 학생부 본연의 목적을 되찾게 되는 첫걸음이라 생각하며, 학생들이 활동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학생부에 충실하게 기록함으로써 우리가 기르고자 하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라 기대한다.
음식하고 남은 식재료의 화려한 변신 웰빙이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심리치료, 테라피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테라피란 ‘치료’라는 뜻으로 심신의 상태를 좋게 하는 간접 치료 방법들을 통칭하는 용어다. 테라피에는 아로마, 컬러, 마사지, 캔들, 요가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 가운데 푸드아트테라피는 사람들에게 친근한 음식 재료를 통해 심리치료뿐만 아니라 동기부여 및 잠재 능력까지 계발하는 치료방법이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과일, 과자, 채소 등 음식재료로 작품을 만들어 마음을 표현하는 예술 활동을 뜻한다. 충남 공주 호계초등학교 주인순 영양교사는 음식재료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푸드아트테라피스트이다. 꽃과 나비, 새, 만화 캐릭터 등 버려진 식재료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생명력을 지닌 아름다운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학생들 급식을 마치고 잔반을 치우다 우연히 양파껍질을 봤어요. 파르스름한 색깔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도마에 올려놓고 요모조모 모양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고운 꽃잎이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푸드아트테라피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죠.” 주 교사는 음식을 만들고 남은 식재료를 그냥 버리는 법이 없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수박 껍질이나 멸치 대가리, 양배추 등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한다. 우선 속을 다 파낸 수박 껍질을 둥글게 오려내고 다리 모양을 본떠 상하좌우로 붙인 다음 얇게 썬 오이 두 조각을 올려놓자 앙증맞는 개구리가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듯하다. 이번엔 멸치대가리 5개를 모아 원형으로 늘어놓은 다음 가운데에 팥 알갱이 하나를 올려 꽃 한 송이를 뚝딱 만들었다. 양배추로 만든 독수리는 예술작품에 가까울 정도다. 널찍하게 편 양배추 잎 네댓장을 이리저리 옮겨 붙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먹이를 찾아 활강하는 독수리의 힘찬 날갯짓이 느껴진다. 뭐니 뭐니 해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뽀로로와 같은 만화 캐릭터들. 만들기는 쉽지 않지만 전시회 같은 곳에서 인기를 독차지한다. [PART VIEW] “푸드아트로 학생들 편식 습관 잡았죠” 그는 푸드아트테라피를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로 당근과 달걀 껍질을 꼽았다. 당근을 썬 다음 찬찬히 들여다보면 대단히 매혹적인 주황색 단면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달걀 껍질은 안쪽의 매끈한 질감과 순백의 색감, 그리고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가 첫손에 꼽는 식재료다. “쓸모없다고 버려지던 식재료들이 아름답게 변하자 학생들이 제일 좋아해요. 학교 도서실 등에 작품을 전시해 놓으면 자기들끼리 제목도 붙이고 향도 맡아보곤 하지요. 짓궂은 녀석들은 슬쩍 슬쩍 집어먹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주 교사는 “야채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다 보니 아이들의 편식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며 “사소한 음식재료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식재료를 이용한 푸드아트테라피는 학생들의 심리치료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식빵과 딸기를 이용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게 한 뒤 수업 끝 무렵에 자신이 만든 것을 먹어 버리게 함으로써 가슴에 쌓였던 스트레스나 나쁜 기억을 없애 버리는 기법이다. 청소년기 학생들은 한참 성장할 때여서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예술치료는 정서적 안정감과 자신의 재능을 찾아가는 데 긍정적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 주교사의 설명이다. 그는 “처음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식재료 작품을 기다리는 눈치”라며 “마음 표현이 서툰 아이들과 소통하는 데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 교사는 기회가 주어지면 푸드아트테라피를 이용한 동화책 만들기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내용에 식재료를 이용한 배경 그림을 넣어 만든 동화책이다.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영양교사로서 교육적인 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 생각에서다. 새해, 그가 보여줄 또 다른 식재료의 향연이 기다려진다.
수상 부산의 한 여자중학교 학생들이 만든 한글 사랑 플래시몹이 인터넷상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부산의 명소를 배경으로 2백여 명의 학생들이 율동과 함께 재미있는 노랫말로 잘못된 언어습관과 한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가운데 다양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으로 한글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부산 재송여자중학교. 이 학교는 교육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주최로 열리는 학생언어문화개선사업 ‘바른말 고운말 쓰기’ 플래시몹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톡톡 튀는 노랫말로 잘못된 언어습관 풍자 최근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된 재송여중 플래시몹은 학생들이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짜임새 있고 알찬 내용으로 구성됐다. 가수 거북이의 ‘비행기’ 노래를 개사해 바른말 사용을 알리는 플래시몹은 여중생들의 재기 발랄한 감각까지 더해져 공익성과 흥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슈퍼 대신 나들 가게, 유저 대신 누리꾼/ 포스트잇은 붙임쪽지, 몇 일이 아니고 며칠/(중략) 줄임말과 욕설 나도 모르게 습관화, 한 번 더 생각해서 말하자/ 백성을 생각했던 세종님 마음, 상형 가획 이체 자음을 만들죠, 모음은 천지인 합쳐요 (이하 생략)” 톡톡 튀는 노랫말이 경쾌한 리듬을 타고 귀에 쏙쏙 들어온다. 이번 플래시몹은 학생들의 한글사랑과 언어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기획됐다. 3학년 학생 207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바른 말 고운 말’과 관련된 음악 편곡 및 개사 작업, 안무 창작, 의상 제작, 영상 아이디어 회의 등 총 4개월간의 준비를 통해 완성했다. 3학년 전원 참여 “즐거운 추억 만들었어요” 학생들은 플래시몹을 제작하는 기간 동안 ‘바른말 고운말 쓰기’를 직접 실천하면서 평소 사용하는 언어에 욕이나 비속어가 많이 포함되는 것을 깨닫고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플래시몹 촬영을 계기로 ‘바른말 고운말 쓰기’를 실천할 것을 약속했다. 사실 플래시몹 제작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2백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을 참여시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교 진학을 앞둔 시기여서 학습 분위기를 해치지는 않을까 우려가 컸다. 실제로 일부 학부모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번 해보자’는 의기가 합쳐지면서 3학년 전원이 참여한 가운데 기획부터 최종 편집까지 전 과정을 학생들 힘으로 제작했다. 장소 섭외도 난제 중 하나였다. 길거리 촬영이 도로교통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무산됐는가 하면 장소 대여료가 없어 포기한 적도 있었다. 광안리 해수욕장 촬영 때에는 태풍 영향으로 전기가 차단되는 바람에 앰프 사용을 못해 곤욕을 치렀다. 그래도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부산의 명물 광안대교의 야경을 배경으로 촬영을 준비했을 때 일이다. 화려한 전등이 다리를 비추면서 장관이 펼쳐졌지만 날이 어두워져 백사장에 서있던 학생들 얼굴이 카메라에 보이지 않게 됐다. 예상치 못한 일에 모두가 당황한 순간 이 학교 박정화 교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관광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야광 팔찌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게 한 것. 아름다운 광안대교와 학생들의 손목에서 깜찍하게 반짝이는 야광 팔찌, 재송여중 플래시몹 최고의 장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보람도 컸다. 플래시몹 제작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교사와 교사 간, 또 교사와 학생들 간 끈끈한 유대감과 성취감이다. 학급별로 플래시몹 연습을 하면서 담임교사와 학생들 간 소통이 활발해지고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깊어졌다. 교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기특했고 학생들은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는 선생님들이 고마웠다. 대회 수상 여부를 떠나 학생들에게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플래시몹 경연 부산시 대회와 전국 대회를 거치면서 학생들은 관문을 하나하나 넘을 때마다 열광했고 주변의 격려와 응원에 자신감이 충만했다. 무엇보다 달리진 것은 언어습관. 플래시몹 촬영을 마칠 때쯤 학생들의 입에서 욕설이 사라졌고 바른 언어 습관이 몸에 배었다. 국어 성적은 눈에 띄게 올랐다. “국어 성적 학년 평균이 무려 5점이나 상승했다”는 3학년 윤 모양은 “우리들의 열정이 성적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 했다. 재송여중 플래시몹이 전국대회 대상을 거머쥔 데에는 이 학교 이미경, 구관순, 박민수 교사 등 3명의 열정이 뒷받침됐다. 이들은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문화유산인지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한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워 바른 언어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도전 배경을 밝혔다. 특히 “학생들이 한글을 단순히 세종대왕의 업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 같아 국어교사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는 이미경 교사는 “이번 대회가 어떻게 하면 사랑받는 한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어휘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어 개념도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고요. 그러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게 감정 전달이 더 편하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에요. 교사로서 부끄러울 뿐이죠.” 그는 “우리 사회가 영어교육만을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글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가 평가 절하돼 학생들이 영어식 표현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는 정부의 한글교육 정책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독서교육을 강조하다 보니 한글교육이나 언어 사용 교육은 소홀히 취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거친 언어습관은 심각한 수준이에요. 선생님 앞에서 거침없이 욕설도 하고요. 우리 사회가 강한 자극만을 요구하다 보니 학생들도 자신의 감정을 욕을 통해 발산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욕을 청소년기 특권처럼 여기는 경향도 있어 교육적 지도가 시급합니다.” 이 교사는 학생들의 거친 언어 습관을 순화시키기 위해 새해에는 ‘바른말 누리단’ 활동 부문에 도전할 생각이다. 학생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말의 아름다운 변화와 진화에 동행하는 것이 교사로서 가장 큰 바람이라고 정유년 포부를 밝혔다.
전북 정읍시에 위치한 동화중학교는 우리나라 최초 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중학교이다.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치유와 돌봄, 그리고 사랑과 열정으로 변화의 계기를 제공하면서 인성 중심의 특성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역량을 갖춘 공동체 속의 바른 성장’을 목표로 설립된 이곳은 희망의 학교, 명품교육의 현장이다. 공립 대안교육의 초석을 다지는 동화중학교는 지난 2010년 3월에 개교하여 창의적 교육과정 편성과 실천 방안을 선도해 왔다. 2014년 제2대 교장으로 부임한 온영두 교장은 ‘희망을 꿈꾸는 학생,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헌신하는 교사, 배움이 살아있는 학교,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격려하는 학부모상’을 구현하며 선진형 대안교육을 이끌고 있다. 함께 성장하는 교육 공동체 육성 동화중학교의 교육철학은 ‘배움의 기쁨과 사랑의 돌봄으로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이다. ▲배움을 통한 자존감 있는 인간 ▲기본생활습관 형성을 통한 예의 바른 인간 ▲자연 속에서 실현되는 건강한 인간을 교육목표로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을 벗어나 학생 맞춤형 수업 및 프로젝트형 교과통합 체험학습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봉사, 찾아가는 음악회 및 자율동아리, 학부모 동아리, 하늬벌 축제, 동화 토론마당 등 어울림과 소통이 있는 교육과정 등이다. 교과서형 교육이 아닌, 자연친화적인 전인교육으로 자아실현을 돕고, ‘자연과 인간’, ‘다른 사람과 나’의 올바른 관계 형성을 통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로운 인격 배양을 추구하는 교육이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교사들의 뜨거운 열정 학교 부적응 등 청소년들의 위기는 사실 대부분 어른들의 잘못이다. 특히 부모들의 무관심과 무지에서 오는 무책임은 청소년들에게는 치명적이다. 가정이 붕괴되고 소통의 부재로 대화가 단절된 가족은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준다. 회복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는 곧바로 부적응이라는 행동으로 나타나 감당할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닫게 된다. 따라서 무엇보다 섬세하고 체계적인 접근을 요구하는 것이 대안형 공동체교육의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 문제를 대하는 동화중 교사들의 해법은 남다르다. 위기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학생들이 보여준 결과만을 탓하지 않는다. 드러난 행동만을 놓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리는 일반교사들과 달리, 행동에 대한 근본 원인을 찾아 ‘상처주지 않는 변화’를 모색한다. 변화를 기대하기까지는 많은 인내와 한계가 뒤따르지만 학생들과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면서 얼어붙은 마음을 조금씩 열어 가는 것이 동화중 만의 노하우다. 거친 행동과 닫힌 마음으로 응어리진 아이들이 졸업할 즈음이면 아쉬움에 교실마다 눈물바다를 이루는 것도 교사들의 헌신적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 김범주 교사는 ‘제2회 대한민국 공무원상’에서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김 교사는 학교 부적응 학생 등 어려운 현실에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교육의 발전적인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실천적 학생지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6년째 학교 부적응 학생들을 위해 헌신해왔으며, 어렵고 힘든 아이들의 자존감 회복과 희망 찾기에 온 열정을 바쳤다. 가정불화로 의지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휴일도 반납하고 흥미로운 교육활동을 통해 그들에게 안정과 기쁨을 찾아줬다. [PART VIEW]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건네는 희망의 손길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떠돌고, 학교에서는 아직 획일과 강압이 잔존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따라서 동화중은 학생들에게 ‘탈락’이 아닌 ‘도움’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교직원들이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처음 학교에 부임해 아이들을 만났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사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지요.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방황, 잘못된 교육, 사회의 불편한 시선 등이 학생들의 이름 앞에 ‘불량’과 ‘위기’라는 타이틀을 붙여버린 겁니다. 아직 올바른 자아가 성립되지 않은 청소년기에 어른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말이죠.” 온 교장은 “아이들에게 고리타분한 어른이 아닌, 함께 인생의 길을 걷는 동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현재의 소중함과 그 속에서 올바른 미래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도록 상처받은 아이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희망의 손길을 건네는 것이 교사들의 역할이고 의무라고 강조했다. 마음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교육의 선율 학생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기 위해 동화중은 관악 활동을 통한 정서함양에 힘쓰고 있다. 모든 학생들이 ‘동화 윈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1인 1악기’ 학습을 필수과목으로 이수해야 한다. 정규수업과 방과 후 활동을 통해 익힌 기능을 효 봉사, 지역 행사, 학교 홍보, 정기연주회 등에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자긍심과 효능감을 높이는 데는 이만한 활동이 없다. 학생들은 이 같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을 쌓고, 교육의 즐거움을 느끼며, 더불어 음악을 통해 감성을 치유하고 있다. “관악 활동은 참 좋은 교육입니다. 음악을 통해 집중력과 감성을 키워주고, 정서 함양에도 도움이 됩니다. 또 음악은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치유제가 되고, 아이들은 연주를 통해 화합의 의미를 배우게 되지요.” 조두호 음악교사의 말이다. 배움의 의지가 없는 아이들에게 연주 기능을 익히는 일은 그야말로 ‘사투(死鬪)’에 가까웠다. 거칠기만 했던 학생들의 손끝에서 고운 선율이 흘러나올 때 한국판 엘 시스테마의 신화를 보는 것 같은 감동을 받았다고 교사들은 털어놨다. 그래서 교육의 힘은 위대한 것일까? 동화중은 악조건을 극복하고 지난해 전국관악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4년 연속 은상을 수상하더니 드디어 금상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PART VIEW] 영재를 위한 교육이 아닌, 모두를 위한 교육 대안교육 전문가 답게 온 교장은 초심을 잃어가는 대안교육 현실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일부 대안학교들이 학생들에 대한 치유와 돌봄보다 경제논리에 사로잡혀 영재교육으로 몰리는 데 대해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보면, 상위 5%에 속하는 ‘영재’ 아이들에게만 관심과 투자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하위 학생들을 위한 돌봄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어요” 그는 위기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뿐 아니라, 위탁시설, 복지 후생 등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하는 데 교육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도 전국에 약 7만 명의 학생들이 학교 밖을 떠돌고 있습니다. 전북만 해도 1800여 명으로 분석되고 있어요.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PC방, 찜질방을 배회하면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바른길로 선도하여, 교육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가치 있는 활동일 것입니다. 교육당국과 지자체 등에서 하위 5%의 소외된 학생들을 위해 지원책을 늘리고, 가정과 사회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교육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합니다.” 온 교장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말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떡잎이 못나도 잘 가꾸어주면 튼튼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포기’보다는 ‘희망’을 선물하는 것이 마음의 상처가 있는 아이들에게 더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희망찬 사회를 위해 겉으로 드러난 떡잎이 아닌, 내면에 감춰져 있는 상처를 보듬어서 원인을 치유해 주는 사랑과 돌봄이 있다면 분명한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 학생, 학부모가 삼각이 되어 조화를 이루며 교육현장을 그리는 동화중학교. 이 학교가 대안교육의 미래를 선도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을 기대해 본다.
알파고와 천재 기사와의 대국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알파고는 매일 하루에 수 백판의 바둑 기보를 읽고 이를 바탕으로 최선의 착점을 스스로 판단한다. 세상은 충격과 함께 지능형 컴퓨터의 가공할 능력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사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장의 단순노동이 로봇에 점령 당한지는 이미 오래다. 그런데 알파고는 인간의 사고 영역까지도 인간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교육 영역은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미래학자들의 예측에 의하면 불행하게도 21세기에 없어질 직업 가운데 교직을 포함시킨 바 있다. 가르치는 일은 교사가 아니어도 다양한 방법이 개발될 것이므로 굳이 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영상강의도 그 한 형태이다. 교직이 사라진다는 말은 학교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아마도 기계가 인간 감성의 영역을 넘지 못하는 한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지능형 컴퓨터가 감성 영역에 이르지 못하는 한 교육에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은 지식의 전달에 한정될 것이다. 이 말을 달리하면 지금 학교에서 흔히 이루어지고 있는 설명식 위주의 지식 전달형 수업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학교가 도태될 수 있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은 스스로가 변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이다. 그런데 변화라는 말을 입에 담으면 그것은 수업의 문제이므로 교사의 몫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학교에서 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사회는 학교장의 경영관에 의해 좌우되는 곳이다. 그렇다면 학교 조직의 변화의 제일 앞자리에는 당연히 교장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변화를 위해 교장은 전 교직원과 학부모를 아우르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뚜렷한 경영관으로 교사들 이끌어야 지금 학교는 신학기 준비 때문에 분주한 시기이다. 학교의 한 해 교육활동의 모든 것이 학교 교육계획에 담긴다. 학교 교육계획은 크게 경영 계획과 교육과정 편성?운영 계획으로 구성된다. 경영 계획은 교육과정 편성?운영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교장의 경영관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요구 사항, 지역사회 및 학교의 제반 실태 등등이 두루 고려되는 것이다. 그런데 상당수 학교에서 경영 계획과 교육과정 편성?운영 계획이 별개의 것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 계획은 매년 동일하거니와 이웃 학교와도 별 차이가 없다. 교장 역시 교육과정 운영보다는 학교 시설 등과 관련한 경영 측면에 관심을 기울인다. 교육부에서는 매년 100대 교육과정 운영 우수학교를 선정한다. 이러한 학교의 교육계획서를 보면 학교 경영과 교육과정 편성?운영 계획이 아주 치밀하게 연계되어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주변에는 교장이 바뀌어도 교육활동에 별 변화가 없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학교의 교육활동이 매우 다양하게 변화하는 학교도 있다. 이런 학교는 당연히 부모들의 만족도도 높다. 학교장의 경영관이나 이를 관철하는 방법은 대부분의 학교가 별반 다르지 않다. 필자의 경우 학교장 경영관을 누구든지 그 의미를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평이한 용어로 서술하였다(학교 교육계획서 제일 첫 페이지에 학교장 경영관을 수록하였으며, 본관 현관에도 이를 게시하여 학교를 방문하는 모든 분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학교를 옮겨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를 교육과정 운영에 접목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에 대해 교사들과 머리를 맞댔다. 점차 교사들도 교장의 의도를 이해하고 모두 팔을 걷어붙이게 되었다. 성과는 오래지 않아 나타났고 그 일은 학교를 옮겨서도 계속되었다. [PART VIEW] 학교 교육과정 운영 중심은 교직원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은 국가 교육과정과 시·도교육청의 지침의 범위 내에서 학교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여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학교 교육과정 운영은 학교마다 고유하다고 할 수 있다. 국가 교육과정은 학년군, 교과군, 집중이수제 운영 등 다양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은 교과별 시수 확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어서 왜 국가 교육과정이 바뀌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바로 여기에 교장의 역할이 있다. 교육과정 운영을 교사들의 몫으로만 돌린다면 개선의 여지가 없다. 학생들의 실태 분석과 학교의 여건을 면밀히 분석하여 이를 교육과정 운영에 반영해야 하는 일은 교장이 참여하여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필자가 처음 교장 발령을 받은 학교는 도회지의 낙후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기초학력평가 결과는 교과별로 거의 10% 전후의 미도달 학생이 있을 정도로 학력도 형편이 없었다. 부임하고 처음 한 일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교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전 직원이 합심하여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아갔다. 그 방법은 암기식이나 문제풀이식 학습이 아니었다. 아이들 스스로 참여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가급적 편안하게 해 주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성과는 오래지 않아 나타났다. 학력 미도달 학생은 눈에 띄게 줄었고, 결국 3년 후에는 미도달 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되었다. 그때의 교육과정 운영 슬로건은 다음과 같았다[인천석남서초등학교(2010~2012) 및 용현초등학교 학교교육계획서(2013~2016)]. “수업의 시작은 모든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는 때이고, 수업의 끝은 마지막 남은 한 아이마저 깨닫게 되었을 때이다.” 그리고 수업 방식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설명하지 않는 수업하기’라는 우리 나름의 슬로건을 정하였다. 이는 수업을 그저 40분이라는 시간에 맞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앎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인 동시에 교사의 설명보다는 아이들의 공동 사고를 통해 스스로 깨닫도록 수업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교실마다 블록타임제 수업이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교육과정이 재구성되었고(교육과정 재구성과 수업 디자인(교육과학사, 2016)) 교육과정 운영은 학년에서부터 학급으로 자연스럽게 탈바꿈되어 갔다. 학급 교육과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학급 교육과정 운영 로드맵을 제시하여 활용하도록 하였다. 학교를 옮기고서도 학급 교육과정 운영은 지속되었으며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수업을 보다 다양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하였다[학급 교육과정 운영 레시피(교육과학사, 2015)]. 학급 교육과정 운영 덕분에 학년군별로 집중이수제 운영이 가능해졌고, 교사들의 희망에 의해 담임 연임제를 운영하고 있다. 눈 맞춤과 스킨십이 있는 교육 요즈음은 학교에서 조그마한 다툼이 벌어져도 학부모들은 학교폭력위원회의 개최를 요구할 정도로 예민하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도 생활지도에 상당한 애로를 겪는다. 혹여 말실수라도 하면 학부모는 금방 누구 편을 드는지 따지는 판이다. 문제는 핵가족으로 인해 아이들이 예전처럼 서로 부대끼며 자라는 가정환경이 아닌 탓에 친구들과 서로 협심하며 지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옮긴 두 번째 학교는 50학급이 넘는 규모가 큰 학교여서 매일 자잘한 다툼이나 학부모의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선생님들과 머리를 맞대고 협의한 결과 함께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었다. 그중 3~6학년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 휴무일에 학급 대항 줄넘기(3~4학년) 대회와 축구와 피구(5~6학년) 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름하여 ‘토요 용현 리그’였다. 이는 수업이 없는 날 집 주변에 아이들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활동할 수 있도록 하며, 이를 통해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지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학급 수가 많았으므로 4월부터 시작을 하면 11월 말 경에야 순위가 결정되었다. 마치 K리그와도 같았다. 학급의 모든 아이들이 선수였으므로 아이들은 무척 즐거워했다. 그것은 학부모도 마찬가지여서 토요일이면 일부러 학교를 찾아와 아이들의 경기를 응원하기도 하였다. 토요일은 아이들이 기다리는 날이 되었고, 학급 단위로 수업이 끝나면 연습을 하기도 했다. 학부모 중에는 평소에 학교에 오기 어려운 분들이 많으므로 토요일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은 대단했다. 그래서 다음 해부터는 학부모 연수를 토요일에 하도록 하였다. 자연스레 학교에 오기 힘들어했던 많은 학부모들이 호응했다. “교장 선생님, 토요 용현 리그는 정말 잘 만드셨어요. 감사합니다.” 6학년 아이가 내게 한 인사였다. 격한 호흡을 같이 하며, 골을 넣었을 때 얼싸안는 과정 등을 통해 아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이 왜 필요한지를 몸으로 배웠다. 다른 사례 한 가지. 부임한 학교마다 아이들이 하나같이 인사를 참 잘 한다. 처음에는 멀뚱거리던 아이들이 조금씩 눈 맞춤을 하면서 인사를 하더니 나중에는 전교생이 한목소리로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이러한 인사는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퇴근길에 아이들과 마주치면 어김없이 인사를 한다. 그런데 한 번도 아이들에게 인사를 잘 하라는 훈화를 해 본 일이 없다. 그저 한 아이가 인사를 하면 꼭 그 아이에 맞는 인사말을 큰 소리로 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참 착하구나. 몇 학년이지?”, “머리를 아주 예쁘게 묶었구나. 그러니 참 예쁘네” 하는 식이다. 그저 아이들의 일상을 살펴 기분 좋은 인사말을 건네는 식이다.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했더니 칭찬을 하더라는 말이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금방 퍼져갔다. 처음에는 정말인가 하는 의심에서 인사를 했는데 막상 칭찬을 듣고 보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모든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와 인사를 했다. 심지어 중학생이 된 아이들도 학교 주변에서 만나면 자기가 누구라고 이야기를 하며 인사를 했다. 저절로 학교에서는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줄어들고 자연히 학교폭력위원회에서 논의하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아이들과 작지만 눈 맞춤과 스킨십을 자주 하게 되면 아이들은 저절로 변화를 한다. 그야말로 아이들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공부하는 교장과 교사 교장이 되면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인지 교육과정 운영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건 교감선생님이 알아서 하면 될 일이라는 것이다. 어쩌다 수업참관을 해도 수업 교사에게 의미 있는 조언을 꺼리는 편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교장이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교사의 사기만 떨어뜨리지 않겠는가 하는 심정 때문이다. 그러나 수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함께 머리를 맞대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일로부터 수업 후의 협의까지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은 교사에게 참으로 큰 도움이 된다. 매년 수업 실기대회에서 1등급을 받는 교사들의 전화가 온다. 퇴임을 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교장이 공부하지 않으면 학교는 낙후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면 결국 학교라는 조직은 미래학자들이 전망한 바와 같이 알파고 같은 지능형 컴퓨터에 자리를 내주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생각하기는 끔찍하지만 지금의 교사들이 어쩌면 역사 이래 마지막 교사일 수도 있다는 말이 성립된다. 우리가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학생 체벌 금지 이후 학부모 민원 늘어 학부모 민원 발생의 시대적 배경을 찾는다면 아마도 체벌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 속담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선생님은 모든 면에서 가르침을 주는 모범이 되는 사람이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격의 권위를 지닌 존재로 인식되었다. 실제 예술인이나 장인(匠人)들의 도제식 교육은 엄격하면서도 따뜻함이 있고, 호된 질책과 묵묵히 지켜보는 스승의 사랑이 서로 돈독한 신뢰관계를 맺었다. 김홍도의 풍속화 서당도(書堂圖)에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회초리를 맞는 장면이 있다. 회초리를 드는 것을 달초(撻楚)라고 한다. 과거의 회초리는 스승이 제자들을 독려하는 동기부여와 사람됨을 가르치는 상징성이 있었다. 그래서 교사가 되는 것을 ‘교편(敎鞭)을 잡는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편(鞭)이 회초리를 뜻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했다. 학생들의 체벌을 금지하는 인권조례가 제정되고, 학생 개개인의 소중한 인격과 존엄이 존중받는 시대에 달초(撻楚)나 교편(敎鞭)이라는 단어는 이제 구시대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 1990년대 후반까지 학부모 민원 중에 학생 체벌의 문제가 제일 많았지만, 학부모들의 태도는 비교적 관대하였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이 2010년 10월 5일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 광주, 2012년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공포되었다. 이제 체벌은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됐고 교단 현장에서 가장 무서운 학부모 민원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저출산의 시대적 변화와 ‘내 자녀가 학교에서 차별이나 피해를 보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학부모의 인식이 다양한 민원 발생의 주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학부모, 탑-다운 해결 방식 선호 학부모 민원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와 행정기관에 대하여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학부모의 의사 표시’를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정보 선진국으로 학부모들끼리도 다양한 SNS로 활발한 정보교환을 통해 강력한 정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의 학부모 민원은 비교적 단순한 개별 민원이 많았는데 점차 다양화, 집단화 양상의 민원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학부모 민원은 학교에 직접 해결을 요구하기도 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판단되면 다시 교육청이나 교육부 등 상급기관에 동시다발적으로 민원을 제기하여 위로부터 아래로 ‘탑-다운 해결 방식’을 취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학부모 민원의 특징을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자녀가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될 때 제기한다. 둘째, 학생의 말만 듣고 불충분한 정보와 오해를 가지고 판단해서 민원을 제기한다. 셋째, 학부모가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여길 때까지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한다. 넷째, 학교를 가장 힘들게 하는 민원은 학교의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학부모(교직원, 교육공무원, 교육기관 근무자 등)들이 비교적 많이 제기한다. 학생부 기록에 민감, 불만 많아 [PART VIEW]학부모 민원은 학교가 위치한 지역적 특성, 학부모 성향(학력·경제력 등), 학교급별(유·초·중·고) 특징에 따라 다양성을 갖는다. 학부모 민원의 특징에 따른 분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담임교사와 학생(학부모)의 갈등 민원이다. 학교생활과 수업에서 교사 변인이 생활태도와 학습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 평소에 학생이 담임교사에 대한 차별의식을 느끼거나 불만을 갖게 되면 모든 것이 민원의 단초가 된다. 학교생활기록부 기록 내용, 자녀의 진술에 의해 발생하는 왕따와 차별 문제, 교사의 질책에 대한 불만(거친 언어표현, 비난 및 비하 발언) 등을 문제 삼는 민원이다. 둘째, 내신 성적 및 평가(지필평가, 수행평가) 관련 민원이다. 외국 유학을 다녀온 학생이나 영어권 국가에서 살다가 온 학생들이 특히 영어 평가 문제 오류에 대한 민원, 각 교과별 평가문항 출제 및 정답 오류, 과목별 수행평가(평가 기준, 평가 결과, 평가 시점)에 대한 민원, 부정행위자 처리 불만 등이다. 셋째, 학교폭력 관련(가해학생, 피해학생) 및 선도 처분에 대한 불만 민원이다. 학교폭력 가해자 처분에 대한 불만의 민원,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학부모의 상호 갈등 민원, 선도처분자의 징계 수준에 대한 불복 민원 등이다. 넷째, 교사의 역량과 자질에 대한 불만의 민원이다. 교사들의 수업방법(교사중심수업, 수업장악문제 등)에 대한 민원, 성희롱성 농담과 교수용어(비속어, 욕설 등), 수업시간에 정치적 발언과 이념적 내용을 지도한다는 민원 등이다. 다섯째, 학교와 학부모의 갈등 민원이다. 교장의 소통하지 않는 태도에 대한 불만(학생, 학부모의 의견 반영 요구), 운동선수 학부모와 코치 간 갈등 민원, 학교의 교육활동에 대해 불만을 품은 학부모의 지속적 민원 제기, 학교급식에 대한 불만,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 내용에 대한 불만,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 및 학부모회 임원 자녀에 대한 관심 요청 등의 민원이다. 여섯째, 학부모(학교운영위원회 위원)와 학부모(학부모회)간 갈등 민원이다. 학교운영위원회(학부모 위원)와 학부모회 임원의 미묘한 갈등,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 선출에 따른 잡음 등 자칫 학부모들의 기싸움 민원으로 학교가 곤란한 입장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 앞으로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발전할수록 학부모들의 요구와 민원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불신 풍조 만연한 사회상 학교에 투영돼 첫째, 서열 중심의 내신 평가와 경쟁 체제의 교육시스템이 민원 발생의 주된 원인이다. 학교 교육이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발달에 중심을 둔 교육보다는 치열한 경쟁과 내신등급이 중시되는 교육 때문에 민원이 많이 발생한다. 문항 출제 오류 및 성적 산출 민원,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민원 등은 대학입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계속 증가할 것이다. 둘째, 우리 사회의 신뢰가 무너지고 불신 풍조가 만연되어, 이런 현상이 학교 교육에도 영향을 끼쳐 학교를 불신하는 민원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잘못을 하고도 뉘우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도덕적 해이 현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앞으로 법질서가 확립되고 신뢰사회가 정착이 되면, 오해와 불신의 학부모 민원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셋째, 학부모들의 과열된 교육열과 지나친 경쟁의식 때문에 아주 사소한 것도 문제를 삼아 민원이 많이 발생한다. 자녀가 학교 교육 활동에서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받는다고 여기면 즉시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가 되었다. 넷째, 교육도 서비스라는 프로정신의 부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학부모 민원에 대해 안이한 태도로 대처하다 결국 문제가 확대되어 수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 민원에 대한 체계적 대응과 정확한 상황 판단으로 빠른 대처와 시스템의 가동이 필요하다. 민원 해결은 친절과 공감의 태도가 기본이며, 정성을 다하여 마음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학교장의 적극적 리더십이 문제 해결 관건 첫째, 학부모(민원인)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민원을 해결해야 한다. 민원인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한 의도를 파악해 경청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둘째, 아무리 어려운 학부모 민원도 교장의 진정성 있는 태도와 믿음을 주면 모두 해결할 수 있다. 학교의 모든 민원은 교장의 적극적인 의지와 신뢰 리더십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평준화 지역의 기피학교인 A 고교, 배정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들의 민원이 쏟아졌을 때 P 교장은 학부모들에게 학교의 비전과 자신의 학교경영 계획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실천했다. 1년 후, A 고교는 학생과 학부모가 만족하는 학교, 민원이 없는 학교로 변했다. 셋째, 민감하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민원은 신속한 해결을 위해 학교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아무리 작은 민원도 학교장에게 보고하고 대책을 수립하여 신속·정확·즉시 처방의 3대 원칙을 실천해야 한다. C 중학교에서 영어 지필평가 문제의 정답이 2개라는 학부모 민원을 받고, 교과협의회에서 협의한 결과, 복수정답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리고 성적 처리를 마무리했다. 그러자 학부모들은 여러 관계 기관에 민원을 제기하며 반발했고 결국, 학교는 복수정답을 인정하고 성적을 다시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었다. 이는 학교장에게 신속한 보고와 정확한 상황 판단, 즉시 처리의 아쉬움을 남겼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넷째, 학교와 교장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갖도록 학부모들과 소통에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학부모 민원처리가 미숙하여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일’이 없도록 학교장에게 즉시 보고하고 대책을 수립하여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 P 고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회 교사가 일방적인 이념교육을 수업시간에 실시한다면서 학부모가 시민단체에 자료를 제공하였다. 학생이 수업 중 몰래 녹음한 파일을 보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이때 H 교장이 상황을 보고받고, 즉시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수준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한 뒤 해당 교사와 함께 각 학급마다 학교장이 직접 사과해서 민원을 조기에 해결하였다. 다섯째,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학부모가 징계양정에 불복하여 재심 요구와 행정심판을 제기하는 등 민원이 증가하므로 이에 대비해야 한다.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때문에 징계 수위를 낮춰달라는 재심 청구와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학교폭력예방교육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졸업과 동시에 삭제됨을 잘 이해시켜야 한다. 아울러 학교폭력 가해 학생과 학부모가 안심할 수 있도록 경기도교육청의 ‘삭제 예고제(졸업 때 삭제 대상자임을 밝히는 것)’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결국 모든 학부모 민원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해결하는 원칙을 세우고, 초기 단계에서 신속하게 대처하여 진정성 있는 조치로 감동을 주고, 신뢰를 주는 태도로 최선을 다하면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미국의 경영경제전문지 Inc.에 어느 공장의 일화가 실린 적이 있다. 잘 돌아가던 공장의 대형 기계가 갑자기 멈춰 버렸다. 밤샘 근무를 할 정도로 바쁜 때여서 회사의 직원들 중 기계를 좀 안다는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며 손을 보았으나 기계는 요지부동이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사정이 급한지라 전문가를 불러다 기계를 고칠 수밖에 없었다. 한밤중에 불려 나온 전문가는 기계를 한동안 들여다보다 3분쯤 지난 후 망치를 꺼내 들고 두 번 탁탁 두들겼다. 회사의 직원들이 몇 시간을 매달렸어도 꼼짝하지 않던 기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장장이 비용을 묻자 전문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500만 원만 주십시오.” 전문가의 망치 두 방에 기계가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았던 공장장은, 그래도 너무비싸다 싶어 수리비 명세서를 요구했다. 망치질 두 방에 500만 원이라니? 며칠 후 청구서가 날아왔고 다음과 같이 비용 명세가 적혀 있었다. “망치로 두드리는 비용=1만 원, 어디를 두드려야 할지 급소를 알아내는 비용=499만 원, 합계=500만 원.” 망치질 두번에 500만 원? 전문가란 일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할 수 없는 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아는 게 많고 깊으며 보통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상식을 갖고 적당한 정도의 수행능력을 갖춘 ‘아무나’를 우리는 전문가라 부르지 않는다. 때문에 전문가라면 누군가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 없는 능력을 보유해야만 한다. 어떤 직업이 전문직이 되려면 자격제도, 장기간의 훈련, 윤리강령 등 다양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조건을 꼽으라면 바로 대체 가능성이 낮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능력이 어떻게 개발되는지를 아는 것은 전문가를 길러내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낮은 지식과 수행능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전문가가 보유하는 능력을 얻게 될 수 있을까? 먼저 유효성과 피드백의 존재 여부가 필수적이다. 유효성이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인과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치판이나 주가 예측은 유효성이 적은 분야이다. 정치학 전문가나 펀드매니저의 예측과 일반인의 예측은 차이가 없거나 전문가가 더 부정확한 경우조차 있다. 지금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전문성을 기를 수 없게 된다. 피드백은 자신의 결정과 행위에 대한 즉각적으로 피드백이 주어지고 이를 통해 자신의 수행을 교정할 기회가 주어지느냐의 여부를 말한다. 오늘 내가 한 실수가 바로 확인되지 않고서는 수행 수준이 향상되는 것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효성과 피드백의 조건을 갖추느냐에 따라 출발점은 비슷해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능력의 수준 차이는 매우 크게 벌어진다. [PART VIEW] 독일의 어느 음악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엄격한 선발과정을 통해 입학한 학생들의 실력 차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3년 동안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는 시기가 되면 아이들의 실력 차이는 천차만별이 되었다. 음반을 낼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한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대학에 겨우 진학할 수준에 머무르는 아이들, 심지어는 입학할 때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부모의 지원 정도, 학교 교육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선생님들과 교장은 원인을 찾는 연구를 의뢰하였고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실력의 차이를 만든 원인은 홀로 연습하는 시간에 있었다. 보통 수준의 아이들은 주당 9시간, 음반을 낼 수준의 아이들은 주당 24시간의 개인 연습에 매진했다. 졸업할 때가 되면 이들의 연습시간은 보통 수준의 아이들은 3,420시간, 최고수준의 아이들은 7,410시간의 연습량을 축적하였다. 이러한 연습시간을 의도적 연습이라고 불렀다. 의도적 연습은 연구를 통해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밝혀졌다. 그것은 무엇보다 성과향상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된 형태의 연습이고, 무수한 반복이 요구되며, 즉각적인 피드백과 함께 최대한의 정신적 노력을 요구하는 연습이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재미가 없다는 다섯 가지의 특징이었다. 재미없는 단계에 접어들어도 연습은 지속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개인의 내적 동기가 없이 재미없는 일을 반복해서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동기화를 가능하게 하는 어떤 힘이 요구된다. 전문가는 연습, 경험 , 창조의 수행과정을 거쳐야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또 다른 요소는 지속적인 학습이다. 학습 없이 최고 수준으로의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지적 호기심이 강해 늘 학습원이 열려있으며 무언가를 배우는 일에 시간과 재원을 기꺼이 투자해야 한다. 학습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경험은 전문가의 암묵지(暗默知)를 축적시켜 판단력과 통찰력을 길러준다. 그렇다고 모든 경험이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며 동일한 경험도 동일한 성장 효과를 내지는 못한다. 사람마다 민감도가 높은 영역이 따로 있어서 동일한 경험도 어떤 이에게는 특별하게 받아들여지고 더 세밀하게 이해된다. 이러한 경험의 원천은 너무도 다양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피드백이 동반되는 형태의 경험일수록 수행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최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의 창조활동이 필수적이다. 기존의 관행과 전통적인 방법을 벗어나 남다른 관점과 차별화된 사고로 자신의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찾고 기존의 것을 변형하고 응용하는 창조 행위를 해보지 않고서는 전문가가 되기 어렵다. 창조는 더 높은 단계로의 성장을 가늠하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학습과 경험이 기존의 것을 수용하고 소화하는 안으로의 과정이라면 창조는 밖으로 내보내는 생산 행위이다. 창조는 심도 있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의 사물이나 현상을 다르게 보고 해석하며 새로운 것의 가치를 인식하고 도전하여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자 하는 차별화된 마인드를 요구한다. 한 번의 시도로 거대한 성과를 내는 경우는 없기에 새로운 것의 창조는 늘 인내심을 요구하고 진화적인 문제해결 과정을 요구한다. 결국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의도적 연습, 학습과 경험, 그리고 창조와 같이 정신력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수행의 일상화가 요구된다. 남들보다 많은 양과 깊이로 이러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견디지 않고 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 행위를 일상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기에 그러한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의 행위를 지속적으로 동기화시키는 힘은 다름 아닌 개인이 지향하는 가치이다. 가치는 개인이 바람직하다고 믿는 행동이나 의사결정을 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신념을 의미한다. 개인이 지향하는 가치는 일상의 활동 속에서 의미로 표현된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 일을 지속할 동력은 점점 약해진다. 일 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삶의 가치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삶의 의미도 의미의 강도가 약해질수록 삶에 대한 의지가 약해진다. 삶에 대한 의미가 개인마다 다르듯이 일에 대한 의미도 사람마다 다르기에 어떤 이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의미는 고정불변의 무생물체가 아니라 진화가 가능한 생명체이다. 전문가와 비전문가는 존재인식의 차이 “당신은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10년 전과 지금의 대답이 같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특히 끊임없이 성장하여 최고 수준에 이른 전문가들은 의미에 대한 자신의 답을 지속적으로 진화·발전시켰다. 대한민국을 빛낸 최고의 과학자 상 수상자들도 처음엔 더 많은 보수, 승진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찾아 매진하기도 했다. 10년 정도 시간이 흐르자 자신의 연구를 스스로 평가하고 이런 연구를 계속하는 의미는 무엇일까를 성찰하게 되면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진정으로 의미 있는 연구를 찾으려 노력한다. 과거 보험영업인이라 불렸던 개인 자산 컨설턴트들에 관한 연구에서도 최고 전문가와 초보자의 차이는 다름 아닌 자신의 존재 역할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초보자들은 자신을 자동차 보험을 팔고 생명보험을 파는 세일즈맨으로 인식하며 오늘도 내일도 보험을 세일즈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반면 최고 수준에 이른 사람들은 자신을 고객을 도와주는 조력자(helper)로 인식하고 있었다. 고객에게 닥칠 위험을 대비하게 해주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여 도움을 주는 사람이기에 지금 당장 어떤 고객이 보험계약을 거절해도 문전박대를 해도 언젠가는 나의 도움이 필요해서 나를 찾을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전문가는 의미로 표현되는 내적인 삶의 가치와 일의 가치를 진화시키고, 끊임없이 학습하며 의도적 연습과 경험을 통해 성장하며 창조활동으로 자신의 수준을 높여간다. 그래서 누군가가 전문가가 되고자 원한다면 네 가지의 질문을 자신에게 묻고 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와 의미는 무엇이고, 무엇을 배우고 있으며, 어떤 경험을 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 내고 있는지’ 말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병존 페레스 전 이스라엘 총리가 한 시민에게 “기억의 반대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다. 그 시민은 “망각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페레스 전 총리는 “기억은 과거를 생각하는 것이고, 망각은 과거에 생각했던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기억의 반대는 망각이 아닙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기억은 과거를 생각하는 것이지만, 상상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억의 반대는 상상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교육도 마찬가지다. 기억하는 교육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상상하는 교육을 가르치는 일이다. 현 사회를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후기 산업사회가 도래한지 30년 정도 지났고 지식정보화 사회가 등장한지 20여 년이 지났다. 4차 산업혁명에 이어 어쩌면 10년 이내에 5차 산업혁명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이제 이러한 획기적인 기술혁명과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는 기억하는 교육을 강조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상상하는 교육을 강조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어쩌면 상상하는 교육이 더 중요한 교육의 목표와 철학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030년이 되면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지고 직업도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예견되는 이때, 기억만을 가르치는 교육은 미래에 대비한 유용한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에서는 3차 산업혁명까지 인간 우위였던 형태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인간과 인공지능형 대체 인간과의 병존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학습 혁명과 교육혁명, 산업혁명, 문화혁명 등의 총체적인 패러다임의 대변혁을 의미하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계…시대를 읽는 눈 길러야 4차 산업혁명 사회에서는 로봇과 나노, 빅 데이터, 사물 인터넷(IoT), 바이오 영역에서의 엄청난 변화를 예고한다. 이러한 변화에 대비하는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기억하는 교육에서 기초 교육을 강조하고 상상하는 교육에서는 미래의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창조적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맞는 교육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과서 위주의 강단 교육에서 벗어나 현장과 접목할 수 있는 실천형 교육이 더 가미되어야 할 것이고 교사들이 시대를 읽는 눈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3차 산업혁명까지의 인간 우위의 산업 구조가 이제는 인간에게 도전하는 구조로 바뀔 것이기 때문에 인간 친화적 4차 산업혁명이 될 수 있는 교육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PART VIEW] 이 점에서 교사의 역량을 기르기 위한 교사교육혁명, 학생이 입시 위주, 성적 위주에 몰입되지 않도록 하는 교육문화혁명, 경직된 학교 운영 체제를 과감히 탈피할 수 있는 학교경영혁명, 그리고 교장의 새로운 리더십, 교과서의 과감한 재개편, 나아가서는 전체적인 교육정책의 대변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기억하는 교육은 기억을 우리 머릿속에 머무르게 하지만 상상하는 교육은 가능성을 무한히 여는 교육이다. 21세기 교육은 가능성을 여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엄청난 기술과학 발전과 변화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체제가 붕괴되기 사작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상상만 하면 모든 상상이 거의 현실화될 수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2040년~2050년이 되면 아프리카 인구가 세계 인구의 40%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는 세계 노동력의 절반 가까이를 아프리카로부터 공급받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과 지구촌 환경 변화의 대변혁은 우리 교육이 현재의 기억을 가르치는 교육에 머물 때 결코 21세기의 주도적인 교육 강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교육정책이 바뀌고 교사가 바뀌고 교장이 바뀌고 학교 문화가 바뀌어 기억을 키우는 교육에 머물지 않고 상상을 키우는 교육을 더 강조할 때, 세계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교육은 과거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를 적응하게 하는 것만도 아니다. 미래를 활짝 여는 부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1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서울특별시립학교 시설의 개방 및 이용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이 통과됐다. 교육계와 학부모의 반발과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 수용한 결과라 하지만 학교 현장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여전히 난제가 산적해 있다.물론 가장 논란이 됐던 ‘사용자의 의무와 책임’을 명확히 하고 음주나 흡연, 취사, 영리행위 등 잘못된 사용에 대한 허가 취소 및 재사용 금지 또한 담아내 진일보한 조례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제3조처럼 학교 개방을 명시적으로 강화한 부분에서는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는 ‘학교’라는 학생들의 교육・생활공간을 체육단체나 지역주민들의 편의시설로 간주하는 과거 발상을 되풀이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학교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사용료 책정도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시의회는 교육청과의 줄다리기 끝에 학교시설 기본사용료를 대폭 삭감해 학교운영 예산이 되레 학교개방 비용에 쓰이는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비록 서울시와 교육청이 개방에 따른 손실비용 보전 예산을 별도로 책정했다고는 하나 이를 강제할 지급 근거가 조례에 반영되지 않아 단발성 예산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서울시교육청은 학교 개방에 따른 갈등 해결을 위해 조속히 나서야 한다. 특히, 학교현장에서 시설 사용허가 제한, 취소 등 사용자의 책임과 의무에 엄격한 원칙과 잣대를 적용할 수 있도록 지침을 보내 교육활동과 학생안전에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공청회 과정에서 논의된 ‘학교시설개방분쟁조정위원회(가칭)’ 설치, 사용자의 일괄배상책임 보험 가입 을 적극 추진해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학교가 지역사회의 생활문화 공간이라 주장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학생들의 안전과 교육활동을 위해 얼마만큼 노력해 왔는지 스스로 되짚어보기 바란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교장‧교감 성과연봉제 도입이 결국 보류됐다. 26일, 인사혁신처는 올해부터 일반직 공무원은 물론 군인·경찰·소방·외무 등 특정직 공무원의 5급까지 연봉제를 확대 적용하는 공무원보수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교육직은 유일하게 제외했다.교원만 예외로 한데 대해 인사혁신처로서도 정책적 부담이 컸다는 후문이다. 2년 전부터 도입을 기정사실화 했지만 교총의 설득력 있고 전방위적인 반대 활동으로 명분을 잃었다는 전언이다.정부의 연봉제 확대 방침은 교육직을 행정업무 중심의 일반직과 동일시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교장은 타 공무원과 달리 단위학교의 기관장이다. 개인 성과에 포커스를 맞춘 연봉제가 아니라 결국 학교 간 성과창출 등 불필요하고 비교육적인 경쟁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교육성과라는 기준과 목표의 모호함 역시 근본적 문제다. 저소득층, 농산어촌 등 교육 격차가 엄존하는 현실에서 교육양극화만 불러올 우려가 크다. 특히 교육부와 교육감 간의 정책 대립이 커지는 상황에서 성과의 기준도 다를 수밖에 없다.학교장은 타 공무원과 달리 4년 중임의 임기제 공무원으로 강력한 인사평가를 받고 있다. 그 심사도 날로 강화되고 있다. 교원의 3% 안팎인 교장‧교감이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도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교직의 성과연봉제 도입은 현실과 맞지 않고 부작용만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차후라도 인사혁신처가 더 이상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송구영신의 달을 맞아 서령고 동문들의 장학금 답지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월 14일에는 재경서령중고총동문회(회장 박흥순)에서 200만원을, 12월 29일에는 재전서령고동문회(회장 허섭)이 모교의 학생들을 위해 보람 있게 써달라며 132만원을 기탁했다. 항상 모교를 사랑하고 발전을 기원하는 우리 서령고 동문들의 따뜻한 마음이 매서운겨울추위를 녹이고 있다.
일본의 고등학교 교사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일한역사연구회가 주최한 한일학생교류회가 12월 27일부터 30일까지(3박 4일) 서울과 충남 지역에서 개최됐다. 치바에 거주하는 학생들로 3개교(치바시립이나게고, 치바현립마쓰토마바시고, 치바현립카시와고)가 연합해 지도교사3명과 고등학생 13명이 충남 소재 금강대학교와 성암국제무역고등학교를 방문 교류행사를 가졌다. 이번에 참가한 학생들은 토요일이면 한국에서 온유학생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워 준비를 하고 있다. 29일 저녁에는 홍대거리에 있는 음식점에서 불고기를 먹으면서 피로를 풀었다.
새해 구상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다내가 새로워져서 인사를 하면이웃도 새로워진 얼굴을 하고새로운 내가 되어 거리를 가면거리도 새로운 모습을 한다지난날의 쓰라림과 괴로움은오늘의 괴로움과 쓰라림이 아니요내일도 기쁨과 슬픔이 수놓겠지만그것은 생활의 율조(律調)일 따름이다흰 눈같이 맑아진 내 의식(意識)은이성(理性)의 햇발을 받아 번쩍이고내 심호흡(深呼吸)한 가슴엔 사랑이뜨거운 새 피로 용솟음친다꿈은 나의 충직(忠直)과 일치(一致)하여나의 줄기찬 노동(勞動)은 고독을 쫓고하늘을 우러러 소박한 믿음을 가져기도(祈禱)는 나의 일과(日課)의 처음과 끝이다이제 새로운 내가서슴없이 맞는 새해나의 생애(生涯), 최고의 성실로서꽃피울 새해여 !시 감상우리는 시간을 쪼갠다. 초 단위, 분 단위, 시간 단위로 시간을 나눈다. 또 하루 단위, 일주일 단위, 한달 단위, 그리고 일년 단위로 나누기도 한다. 시간은 곧 인생이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꿈꾸고 성취하고 행복을 추구하다가 미완성인 채로 삶을 마감한다. 무한한 시간 속에 우리가 생존하는 기간은 극히 제한적이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평균수명이 연장된다고 해도 80년 안팎이 고작이다.그 기간을 사는 동안 어떤 이는 큰 업적을 세우기도 하고 어떤 이는 무의미하게 삶을 낭비하기도 한다. 이런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의 모습을 가장 나답게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시간 단위가 일 년이다. 일 년이라는 기간의 일 단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하루, 일주일, 한 달의 시간 단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된다.새해를 맞이하여 구상(具常) 시인은 일 년이라는 시간 단위 목표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알아보자. 경제적 윤택이거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염원하는 내용보다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정신생활을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이라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꼭 시인이라 그렇다고 하기 보다는 누구에게나 행복을 좌우하는 가장 근본적인 삶의 여건은 물질적인 여건에 앞서 정신생활에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이 시에서 가장 눈에 띠는 대목이 몇 군데 있다. 첫째, 3연의 “새로운 내가 되어 거리를 가면/ 거리도 새로운 모습을 한다”는 구절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내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다짐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거듭나야 거듭난 세상을 비로소 볼 수 있다는 것이다.두 번째 눈에 띠는 대목은 4연의 “내일도 기쁨과 슬픔이 수놓겠지만/ 그것은 생활의 율조일 따름이다” 하는 구절이다. 기쁨과 슬픔을 우리 인생의 흐름과 함께 하는 가장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을 유지해나간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고 한다. 천국에도 스트레스는 있다는 말이 있다. 인생이 행복과 기쁨으로만 언제나 충만해 있을 수는 없다. 슬픔과 고통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리듬일 뿐이라는 것을 시인은 전하고 있다.그리고 또 한 구절 눈에 띠는 것은 6연의 “꿈은 나의 충직과 일치하여/ 나의 줄기찬 노동은 고독을 쫓고”하는 대목이다. 꿈은 곧 충직이란 말은 꿈이 신기루처럼 멀리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충직한 일상이 곧 꿈이라는 뜻이다. 충성스럽고 올곧은 생활, 그것이 바로 새해에 시인이 목표로 하는 꿈이 되는 것이다. “줄기찬 노동으로 고독을 쫓고”하는 구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오는 고독은 노동으로 쫓아낼 수 있다는 것으로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이 삶을 활기차게 하고 나태와 권태를 불러올 수도 있는 고독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원도 작은 마을 작은 학교 왕산초(교장 이연호). 28일 오후 폭설이 내린 운동장 위에서 이현화(왼쪽) 교사와 학생들이 바람개비를 돌리며 즐겁게 뛰어놀고 있다. 무거웠던 이야기가 가득했던 2016년을 뒤로하고 교육에 신선한 새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