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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20대는 20킬로미터의 속도로 30대는 30킬로미터의 속도로 40대는 40킬로미터의 속도로 세월가는 속도와 나이가 비례한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한달여 씩이나 되는 방학이 어찌 그리도 쉽게 가버리는지…. 예전에는 방학이 황금알을 낳는 기간이라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른 것까지 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된게 이제 시작해봐야지 했는데 바로 개학이니 참으로 내가 늙기는 늙은 모양이다. 나이듦에 따라 빨라지는 시간의 속도를 눈치채지 못하다가 방학 중반에야 겨우 감지하고 이래서는 안되겠다며 마음 독하게 먹고 다시 나를 다잡았는데 웬걸…. 만리장성처럼 떡하니 가로막은 복병이 있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처음에는 그깟 올림픽 정도야 했었다.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88올림픽도 아니고 2002월드컵도 아니고 뭬 그리 큰 영향이 있을까 신경 안쓰면 되지 하고 장담했던 건이었다. 또한 맥놓고 앉아 멍하니 바라봐야만 하는TV시청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터라 나의 옹골찬 계획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8월 8일 개막식부터 24일 폐막식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올림픽을 시청했고, 더 나아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광장까지 직접 가서 응원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내가 사는 지역의 소속 선수가 역도 경기를 할 때는 우리 가족까지 동참시켜 목이 터져라 장미란을 외쳐대었다. 화장도 하지 않은 부스스한 얼굴로 웨스턴돔 광장의 맨 앞자리에 앉아 신나게 주홍색 막대풍선을 두드려대는 내 모습을 누가 봤더라면…. 더군다나 취재차 나온 방송국 리포터를 도와준답시고 옆에 졸졸이 앉아있는 생판 모르는 아이들을 일렬로 줄세워주고 박수치라고 유도하고…. 그냥 신바람이 나니까 없던 변죽도 생기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나는 꼬박 십칠일동안 야심찬 내 계획은 저만치에 던져두고 올림픽에 휘둘려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눈과 귀를 꼭꼭 막고 살아도 올림픽에 대한 승전보는 제일 먼저 인터넷상에서 그리고 지기들의 장황한 입을 통해 내 귀에 들려왔다. 참으로 신기하기도 한 것이 스포츠하고는 담쌓고 사는 문학 모임에 가도 온통 그 놈의 올림픽 얘기고, 마린보이 박태환이 어떠니, 한판승의 최민호가 저떠니, 누나들의 로망인 이용대가 어떠니 저떠니 하면서 얘기꽃을 피웠다. 숨쉬기 운동만 하는 나같은 부류의 문학인이 언제부터 그렇게 스포츠 선수에게 관심있었다고 그렇게 열을 내는 건지…. 그런 면에서 보면 올림픽은 문협과 민작의 문학단체도, 진보와 보수의 논객들도, 여당과 야당의 정치인들도, 교총과 전교조의 교원단체도 모두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자기 주장만 옳다고 핏대를 올리던 사람들이 금메달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한마음이 되어 응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우리의 텔레파시가 통한 모양인지 우리나라는 10위의 목표를 넘어서 종합 7위의 쾌거를 이루고 돌아왔다. 1위 중국, 2위 미국, 3위 러시아, 4위 영국, 5위 독일, 6위 호주, 7위 대한민국, 8위 일본, 9위 이탈리아, 10위 프랑스 나라 이름만 봐도 대단하지 않은가? 세계 역사 속에서 한가닥한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게 뿌듯하지 않은가? 그 무엇보다기분좋은 것은 늘상 독도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밉상덩어리 일본이 우리 발밑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반쪽짜리 남한의 발밑에…. ‘체력은 국력’이라는 정의가 맞아떨어진다면 이제 우리의 정치․경제․교육도 세계 7위의 반열에 오를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이나 교육수준 그리고 교원의 자리매김이 선진교육 대열에 낄려면 먼저 우리 교사들의 마음가짐부터 남달라야 하리라고 본다. 그 누구도 범접 못하게 전문가 소리를 듣도록 자기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서로 반대편에 서서 니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상대방을 헐뜯는 교원단체들도 이제는 한목소리를 내고 선진교육이라는 목표를 향해 손을 맞잡고 가야한다. 타인의 입장에서 봤을때 한솥밥을 먹는 교사들끼리의 집안싸움은 교사를 우습게 보는 강력한 원인만 제공할 뿐이다. 서로 화합하여 우리 교사의 격은 우리가 높일 때가 되었다. 황금같은 방학의 후반기, 베이징올림픽으로 인해 내 야심찬 계획은 반타작밖에 못했지만 한 가지 얻은 것은 있다. 하면 된다는 올림픽 정신!!! 와신상담하면서 피땀흘려 연습한 선수들의 인고의 4년이 있었기에 베이징올림픽에서 세계 7위의 성과를 이뤘듯이, 교육계에 발을 담근 사람 모두 그런 마음가짐으로 교직에 임해야 할 것이다. 나부터 2008학년도 2학기를 교육올림픽이라 생각하며 나를 개발하고 아이들 가르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치올림픽도 세계 7위 경제올림픽도 세계 7위 교육올림픽도 세계 7위 대한민국에서 안되는게 어디 있나?
비가 온 뒤라 그런지 너무 깨끗하다. 공기도 맑다. 더운 기운은 사라지고 선풍기가 없어도 견딜 만하다. 가을을 재촉하는 단비였던 것 같다. 이런 날이면 정신도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진다.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 출근하는 길이었다. 아침 6시 40분 모 라디오방송국에서 수원 어느 초등학교 학급 임원을 뽑는 상황을 녹음하여 들려주었다. ‘잘 하겠습니다. 잘 할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잘 할 것 같습니다.’ 등 임원으로 뽑히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들이었다. 주로 ‘잘 하겠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임원이 되는 애들에게 부탁하는 학급 애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잘난 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말보다 실천을 하면 좋겠습니다.’라는 따끔한 충고의 말도 하였다. 재미있었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정말 똑똑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옛날 시절이 생각났다.학급 임원이 되겠다고 나섰던 추억도 되살아난다. 다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보다 단순하고 진실되게 오직 잘 하겠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요즘처럼 무엇이든 안 하려고 하는 세태에 하겠다고 하고 잘 하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보기좋은 일인가? 오늘 아침 초등학교 학급 임원 선출의 방송을 들으면서 중,고등학교의 임원 선출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젖게 되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학급 임원 선출에 대한 열기가 이렇게 뜨거울까? 과연 관심이 있을까? 초등학교처럼 학급 임원을 서로 하려고 할까? 잘 하겠다는 다짐을 학생들이 있을까? 초등학교처럼 학급 임원을 서로 하려고 하고 학급을 위해서 일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많이 나오면 담임선생님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얼마나 수월하겠는가? 학급관리를 하는데 큰 힘이 될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중.고등학교 학급 임원 선출이 초등처럼 활발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다 그렇지는 않아도 대부분의 학교는 임원 선출 문제로 힘들어할 것 같다. 학교 현장에 있을 때 담임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알 수가 있다. 너무 힘들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학생들이 임원을 하지 않으려 하고 학급 일에 협조를 안 하려고 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는 초등학교처럼 학급 임원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아니 아예 없는 학급도 있어 애를 먹는다. 서로 안 하려고 한다. 잘 하겠다. 열심히 하겠다. 밀어달라 하는 구호는 중.고등학교 교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은 담임선생님들이 할 만한 학생들에게 반장을 맡아달라고, 학급 임원이 되어서 해 달라고 사정을 해야 하는 판국이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담임선생님께서 학급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초등학교처럼 잘 하겠다고 하는 학생이 그리운 때다. 잘 하겠다고 하지 는 않더라도 하겠다고 나서는 학생만 있어도 담임선생님으로서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를 정도이다. 왜 이렇게 갈수록 잘 하겠다도 아니고 하겠다도 아니고 안 하겠다고 하는가? 중.고등학생들이 머리가 컸다고 계산을 하다 보니 안 하겠다는 것 아닌가? 공부하는 시간 빼앗기고, 학생들에게 좋은 소리 못 듣고, 괜히 신경쓰이고 학급관리에 책임을 져야 하고...이러니 아예 발벗고 나서는 학생이 없는 것 아닌가? 요즘 학생들은 나이가 들수록 고학년이 될수록 중,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너무나 이기적인 것 같다. 너무 자기 계산에만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다. 조금도 헌신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조금도 남을 위한 노력은 하기 싫어한다. 자기 시간 빼앗기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자기가 임원이 되어 부모님들에게 부담을 주기도 싫어한다. 초등학생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초등학생 때의 순수한 마음을 회복해야 할 것 같다. 학급을 위한 헌신, 학급을 위한 노력, 학급을 위한 봉사, 학급을 위한 수고, 학급을 위한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것들이 있을 때 학급은 건강한 학급이 될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순수한 마음을 회복해야 서로 임원에 나오려 하고 ‘잘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올 것 아닌가? 공부하는 시간 조금 빼앗기고 친구들에게 좋은 소리 못 듣고 이것저것 신경이 쓰이고 해도 내가 학급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 너도 나도 해 보겠다. 잘 해 보겠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와서 담임선생님의 고민 중의 하나를 속시원하게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학교군 '대수술'을 통해 서울지역에서 고교선택제가 시행되면 현재 중2 학생이 고교에 가는 2010학년도부터 학생들은 거주지와 상관없이 서울 전체에서 희망하는 학교를 골라 지원할 수 있다. 2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일반계고 신입생 배정 방식은 도심의 공동학교군 37개 학교만 2∼3개교를 복수지원받아 추첨 배정하고 나머지 학교는 거주지 학교군에서 추첨을 통해 배정한다. 시교육청은 학생들의 교통 편의와 성적 평준화 등을 고려할 뿐 별도의 학생들의 지원을 받지 않고 거주지 인근 학교에 강제 배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 중2 학생이 고교에 들어가는 2010학년도부터 학생들은 2단계에 걸쳐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학교를 최고 4곳까지 선택해 지원할 수 있다. 우선 1단계에서 학생들은 서울의 전체 학교 가운데 2개교를 골라 지원할 수 있다. 지원 후 추첨을 통해 20~30% 정도의 학생이 배정된다. 이어 2단계에서 거주지 학교군의 2개교를 선택해 다시 지원하면 추가로 30~40%의 학생이 추첨 배정된다. 1단계와 2단계에서는 각각 서로 다른 2개 학교를 지원해야 하지만 1단계 지원학교가 거주지내에 있으면 2단계에서 해당 학교를 다시 지원할 수 있다. 1ㆍ2단계에서 배정받지 못한 학생은 3단계에서 거주지, 교통편의, 종교 등을 고려해 거주지 및 인접학교(통합학교군)에 강제 배정된다. 단계별 정확한 배정비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10월께 발표된다. 시교육청의 의뢰로 학교선택권 시행계획을 연구한 동국대 박부권 교수팀이 지난해 제안한 방안은 1단계 30%, 2단계 40%, 3단계 30% 비율로 학생을 배정하는 것이었다. 서울 도심의 중부학교군(중구ㆍ종로구ㆍ용산구)은 학생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을 감안해 배정 비율을 별도로 책정해 1단계 60%, 2단계 40% 안팎의 신입생을 배정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학교선택권 확대 방안의 성공 열쇠는 학교간 선호도 격차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이른바 명문고 등에만 학생들이 몰리고 비선호학교에는 지원자가 부족하면 학교간 서열화를 부추기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 여건이 좋은 강남권 학교로 1단계 지원자가 몰리면 특정지역 쏠림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 시교육청은 이런 문제점을 우려해 학교선택권 확대 방안이 시행되는 2010년까지 학교의 선호도 격차를 해소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수원 광교와 김포 한강 등 이달부터 분양이 시작되는 수도권 신도시가 학교 설립 문제로 흔들리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일선 교육청의 '부동의'를 무시한 채 미뤄왔던 입주자 모집 승인을 내주자 해당 교육청이 사실상의 '학교 설립 포기' 선언으로 맞서는 양상이다. 경기도교육청은 김포 한강신도시에서의 첫 분양을 하루 앞둔 1일 "한강신도시에 학교를 지을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나섰다. 교육청이 지난 3월 입주자 모집에 '부동의' 했음에도 김포시가 이를 무시하고 직권으로 승인한 것에 대한 반격으로 해석된다. 또한 학교용지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 설립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현실론 때문이기도 하다. 도교육청은 김포시가 최근 우남건설에 내준 분양계획 승인에 절차상 하자가 있음을 들어 김포시와 상급기관인 경기도에 직권 취소를 요구했다. 나아가 "분양 승인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분양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방안을 포함해 법적인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도교육청 홍만기 사무관은 밝혔다. 도교육청이 분양 신청 접수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이런 입장을 밝힌 점을 감안할 때 실제 법적 대응으로까지 갈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문제가 새로 조성되는 경기도내 신도시의 아파트 분양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수원 광교신도시도 김포 한강신도시와 마찬가지로 학교용지 문제가 걸려 있어 이달 초 시작되는 분양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수원시는 경기교육청이 역시 동의하지 않은 울트라건설의 광교신도시 첫 분양을 이달 20일께 승인할 예정이다. 김포시와 수원시의 이같은 입주자 모집 승인은 국토해양부의 지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교육청이 학교용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도시에서의 아파트 사업승인과 분양승인에 잇따라 제동을 걸면서 건설사업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자 정부가 내놓은 임시처방이다. 앞서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22일 '학교용지 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2천가구 이상의 주택을 지을 경우 사업 시행자가 학교용지 및 시설을 무상공급하고 2천가구 미만 사업의 경우 학교용지를 지금보다 20% 싼 값에 지자체와 시도교육청에 공급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경기지역에서 이미 빚어진 학교용지 부담금 갈등을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법이 시행된 1996년 이후 지금까지 경기도가 경기교육청에 내놓지 않은 부담금 누적액이 9천600여억원(경기교육청 추산)에 이른다. 도교육청은 부담금 미전입액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더 이상 자체 재원으로 학교를 짓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반면 도는 이 부분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부담금에 대한 도교육청의 입장이 워낙 확고해 이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로 분양이 계속 이뤄질 경우 신도시에서의 학교대란을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프로야구에 어느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중계방송 해설자로 이병훈 해설위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과거에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시원한 홈런을 쳐냈기에 홈런타자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하여 공중파방송의 아침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몇년 전부터는 각 방송사의 야구해설가로 변신하여 나름대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케이블티비에서도 자주 해설을 맡고 있지만,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이동하는 운전자를 위해 교통방송에서도 주말이면 프로야구 중계를 하는데, 여기에서도 이병훈 위원이 해설을 맡고있다. 지난달 31일에 지방을 다녀오면서 교통방송 중계방송을 접하게 되었다. 올림픽야구 이야기를 하던 이병훈위원이 '손기정선수가 이런말을 했습니다. '만일 자신이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달리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우리의 선조들은 국가관이 그렇게 투철했었습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를 다시찾기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분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그는 '그런데 요즈음 우리나라의 교육을 보면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수학, 영어만 잘하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부모들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에서 정책을 세우면서 무조건 수학, 영어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진행해 갔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다른 분야의 교육도 신경써야 합니다. 우선 역사교육부터 강화해야 합니다.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수십년후에 아이들이 독도가 어느나라 땅인지 조차도 모를 수 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 어떤지 아십니까. 안중근의사가 무슨일 했냐고 물어보면 그냥 일반병원 의사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이런 아이들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역사교육 강화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우리나라가 더 발전하고 세계각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물론 위의 이야기가 한꺼번에 다 했던 것은 아니고, 중계방송 중간에 했던 이야기를 종합한 것이다. 야구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이겠지만 교육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닐 수도 있지만 단순히프로야구해설가의 지나가는 이야기로 넘길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가 지적했듯이 국가의 정책이 잘못된 부분도 분명히 있다. 역사교육만을 강조했지만 수학, 영어뿐 아니라 역사를 비롯한 다양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선행되어야 할 문제들이 많지만 변화를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 교육전문가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고 프로야구 전문가의 입에서 이와같은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여건을 잘 모르고 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분명히 시사해 주는 대목은 있다는 생각이다. 역사왜곡 문제가 등장할때만 잠깐 역사교육강화방안이 나오는 것은 결코 옳은 방향이 아니다. 지속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하루였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적어도 한국 사람으로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한글, 곧 우리글을 만들고, 지금 우리가 국경이라고 말하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우리의 영토를 확정했다는 사실 정도다. 그런데 세종이 이승을 떠난 지 500년하고도 쉰여덟 해가 되고, 태어난 해로 따지면 올해가 611돌이 되는데도,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빛나는 것은 왜일까? 믿음과 형평성의 원칙 강조 세종은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잠시라도 팔짱을 끼고 한가히 앉아 있는 일이 없이, 백성 위에 있으면서도 백성보다 더 백성과 함께 살고자 나날이 정사를 보살피고, 여가에는 학문과 궁리, 창조와 경륜에 마음을 쏟았다. 또 중국의 입김이 거센 가운데에서도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독립국가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었다. 시황제나 나폴레옹처럼 영웅적 권세를 누리기보다는 머나 먼 국경지방의 민관의 생각까지 하나 놓치지 않고 물어서 세금의 형평을 논하기도 했고, 하늘의 별을 관측하고 강우량 측정기를 만들어 농사일에 보탬을 주고, 시계를 만들어 백성이 시간을 알게 하는 세심함에까지 열을 쏟았던 임금이었다. 죄인을 다스릴 때도 등을 때리는 법을 폐지하고, 죄수들의 옥중 생활에 조금이라도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하여 여름에는 바람이 통하게 하고 햇빛을 막아 주었고, 겨울에는 따뜻한 감옥을 만들게 하였으며, 다만 죄수들이 도망을 가지 못하게만 하였다. 이러한 세심한 노력은 임금의 권능으로만 치부하고 간과해 버리기 쉬운 인간적 고뇌(형제간의 우애, 외가와 처가 문제 따위)를 삭이며 철저한 믿음과 형평성 원칙을 가지고 통치한 균형감각의 소유자임을 보여준다. 중국 또는 이웃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임에 있어서도, 남의 옷을 받아 그대로 입기보다는 새로 본을 뜨고 자로 내 몸을 재서 우리 새 옷감으로 꼭 맞게 만들어 입는 방법을 찾는데 힘썼다. “우리는 중국과 다르다” 세종이 이토록 백성을 위하고 올바른 정치를 위하여 몸부림친 까닭은 과연 무엇인가? 모름지기 그것은 나라가 흥망성쇠 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새로운 국가를 개국함에 있어 광명정대한 다스림을 통하여 모든 백성이 함께 편안히 살 수 있는 해결책을 강구한 데에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태조 이성계 때부터 깊이 있게 논의되었겠지만, 사반세기가 지난 세종 때에 와서야 실현된 것이다. 집현전만 하더라도 고려 때 생겨 이름만 유지하다가 조선 초 정종 때 그 기능이 회복될 듯하더니, 역시 제 구실을 못하였다. 세종은 즉위 직후 1420년(세종 2년)에 집현전을 확충, 대궐 안에 설치하여 학자를 우대하고, 학문을 숭상하여, 역사·천문·지리·정치·도덕·예의·문자·운학·문학·종교·군사·농사·의약·음악 등에 관한 각종 저서를 짓게 하였다. 이러한 저술된 책들은 다 우리나라 600여 년에 가까운 문화생활에 막중한 지침서적 공헌을 하였을 뿐 아니라, 무원한 미래에도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한글의 우수성을 알고 있었지만 생각이 부족한 후손들 때문에 500년 동안에 한글이 빛을 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도 세종 이후의 역대 임금과 신하와 모든 백성들이 지금보다도 더 입이 닳도록 세종의 인품을 칭송하고, 오늘날 세계 석학들도 한글 창제 업적 하나만 놓고도 극찬하고 부러워하고 있다. 현대사에서 우리는 프랑스 혁명과 미국 링컨의 민주주의 정신을 양대 산맥쯤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 보다도 더 우리 겨레의 역량 속에 면면히 흐르는 세종의 민본정신야말로 후대에 시대적 요구에 따라 늘 새롭게 대두되어 조명되고 있는 불멸의 정신이다. 예를 들어 한글은 창제 당시 ‘우리는 중국과 다르다’는 자주정신과 모든 백성이 앎을 향유하도록 애쓴 민주정신으로 탄생하여, 일제 36년의 압박 속에서 자주 독립의 구심체가 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우리 문화 발전의 최상의 도구로서 쓰이고 있다. 여론조사로 백성의 뜻 반영 세종의 업적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다. 전제를 개혁하고, 세제를 정리하며 도량형기를 바르게 고쳐서 사용하게 함으로써 국가 경제 생활의 건전한 터전을 마련하였다. 인재를 뽑아 쓰되, 적재적소의 일을 시켜 금속활자를 개발하고, 국악을 정비하고, 천체관측기인 혼천의·간의·일성정시의, 강우량기인 측우기, 하천 수량을 재는 수표, 물시계인 자격루와 옥루, 해시계인 앙부일구·현주일구·천평일구·정남일구, 절기를 정하는데 쓰는 규표 등을 발명 제작함으로써 세계 과학사에 있어서 15세기는 세종의 과학시대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한글과 측우기 및 측후법의 창시는 세계 최초 최선의 자랑이요, 인쇄활자와 국악은 문명사적 자랑이다. 이러한 자랑할 만한 수많은 업적 가운데서도 현 민주주의시대에 사는 우리로서 특별히 우리 피부에까지 파고드는 것이 있으니 그중 대표적인 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꽃인 국민투표와 같은 세계 최초의 여론조사이다.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이를 행할 수 없다. 그러나 농작물의 잘되고 못된 것을 답사 고찰할 때에 각기 제 주장을 고집하여 공정성을 잃은 것이 자못 많았고, 또 간사한 아전들이 잔꾀를 써서 부유한 자를 편리하게 하고 빈민을 괴롭히고 있어, 내 심히 우려하고 있다. 각도에서 여론을 조사하여 보고가 모두 도착해 오면 그 공법(세법)의 편리 여부와 답사해서 폐해를 구제하는 따위의 일을 백관들은 깊이 의논하여 아뢰라”하여, 공법(貢法)을 제정하면서 좋다고 하는 사람이 9만8657명이고, 좋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7만4149명으로 나타나 결정지었다. 또 죄인이라도 15세 미만인 어린이와 70세가 넘는 늙은이는 살인죄와 강도죄가 아니면 옥에 가두지 못하게 하고, 80세 이상 10세 이하는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어도 구속하거나 고문하지 못하게 하며, 재판 때에는 사죄삼복계(死罪三覆啓)의 법을 실시하게 하며, 시체를 검시함으로써 형벌을 공정하게 하였고, 공처노비 가운데 임신한 여인에게는 아이를 낳을 달과 출산 후 100일 동안의 산아휴가를 주었다. 대마도를 정벌할 때도 “군사를 일으키는 뜻은 살생이 아니다”라는 말로 어루만지는 데에 그쳤고, 야인을 토벌할 때도 “토벌이란 정의로서 불의를 목 베이는 것”라는 말로 의연하게 대처하였다. ‘명황계감’을 지어 좌우명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후세 제왕의 일락을 방지하고, ‘자치통감훈의’와 ‘치평요람’을 편찬하여 흥망성쇠를 본받도록 하였으며, ‘역대병요’를 통해 전쟁을 잊지 않도록 하였다. 이 밖에도 세종은 나라와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자기의 몸도 돌보지 않은 분으로서 부모에게 효도함을 극진히 하였고, 형제간의 우애는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으며, 부부의 정도 두터우셨으니, 모든 다스림에 스스로 본보기가 된 점들은 위정자의 본보기, 어른의 본보기, 스승의 본보기로 충분하다. 결국 한글 창제라는 작은 틈으로 바라보는 세종의 위대함은, 그런 위업을 이루기까지의 자세와 그 위대한 정신(특히 자주·애민·과학정신), 그리고 그 치밀한 계획과 불굴의 의지, 이를 실천으로 옮기는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태도가 견고하게 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되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우리 역사상에서 그 위대함이 우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세종대왕 즉위 590돌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60돌이 되는 해를 기리며, 세종대왕을 겨레의 큰 스승으로 그분의 공덕과 위업을 우리의 지표로 삼아야 하겠다.
9월 개학과 함께 전국 초중고교에서 ‘독도 지키기’ 특별 수업이 진행된다. 교총은 지난달 28일 “독도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 영토임을 재인식시키고, 독도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1~20일까지 3주간 특별수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교총은 특별수업을 위해 8월초 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전문가 및 현장교사들과 협의회를 통해 학급별로 교수·학습과정안 및 수업자료를 제작했다. PPT 및 동영상·사진 자료로 만들어진 수업 자료는 학급별로 ‘우리 영토인 독도 이해와 국토수호 중요성 인식’(초등), ‘독도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중학교), ‘독도는 한국 땅’(고교)의 주제로 구성됐다. 자료는 교총 홈페이지(www.kfta.or.kr)에 탑재됐고, 학교는 자료를 다운받아 여건과 실정에 맞게 수업시간, 방식 및 내용 등을 자율적으로 정해 수업을 할 수 있다. 교총은 일본 정부가 2012년 시행되는 중학교 사회교과서의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명기한 것과 관련해 7월 15일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교육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강병구 교총 현장교육지원국장은 “일선 학교에서 특별 수업을 통해 ‘독도 지키기’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독도 문제와 관련해 과천 청계초(교장 곽무룡) 학생들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내용으로 선진 9개국 정상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주한 영국대사관이 이에 대한 답장을 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청계초 전교어린이회는 독도 문제가 불거지자 7월 18일 긴급 전교어린이회를 열고,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어린이회는 토의 끝에 영어·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한국어로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편지는 한국주재 각 대사관, UN 본부, 각 나라의 수상과 대통령 관저로 보내졌다. 이에 대해 지난달 18일 톰 워윅 주한 영국대사관 공보과 서기관은 답장을 보내고 “고든 브라운 총리를 대표해 청계초 학생들에게 감사한다”며 “독도 문제가 한일 양국에 민감한 사항임을 잘 알고 있으며, 두 나라 간의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득영 청계초 교감은 “독도에 대한 아이들의 사랑이 인정받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며 “개학 이후 독도에 관한 교육에 더욱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교총과 일본교육연맹은 1980년부터 ‘한․일 교육연구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일본교육연맹은 일본의 전국연합초등학교장회, 전일본중학교장회, 전국고등학교장협회, 일본사립중학고등학교연합회, 전국국공립유치원장회, 전일본교직원연맹 등 6개 단체가 연합된 형태로, 1951년 설립되었다. 학교방문(오전)과 교육 세미나(오후)로 이뤄지는 발표회는 올해로 24회째를 맞았으며, 그간 교원연수, 교원평가, 학교폭력, 교단갈등, 교육개혁, 과학교육 등 다양한 교육 이슈를 다루면서 양국 교육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발표와 논의를 통해 교육발전에 기여해왔다. 올해 발표회 주제인 ‘다문화가정에 대한 학교현장의 활동’은 통상 주최단체에서 주제를 제안하던 것에서 벗어나 다문화가정 문제에 대한 일본 사례를 습득하기 위한 취지로 교총에서 먼저 제안해 이뤄졌다. 21일 오전, 한국 대표단 19명은 주제발표자인 도미이 마사쓰구 교장이 재직하고 있는 신주쿠구 오쿠보초등학교를 방문했다. 1879년 설립되어 내년이면 130주년을 맞는 오쿠보초등학교는 전체 학생 206명 중 외국인 국적(12개국 출신)의 학생이 56명으로 약 28%에 달한다. 이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한국인 학생들이 간단한 일본어로 학교 소개를 한 후, 마사쓰구 교장은 밝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들을 길러낸다는 학교 목표에 따라 식물재배, 다른 학년과 유치원 학생들과의 교류, 외국어 교육, 국제이해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외국인가정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태국어로 학교소식지를 번역하여 발송하고 있으며, 이는 비영리단체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오후에 이어진 발표회 시간에는 마사쓰구 교장과 정수만 상주 모서초 교장이 각국의 사례에 대해 발표했다. 주제발표 후 계속된 질의응답 및 의견교환 시간에는 양단체 참석자들의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이창환 교총 부회장은 일본은 도시지역을, 한국은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발표를 했음을 언급하며, 일본의 다문화가정에는 어떠한 사회적문제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마사쓰구 교장은 “20여 년 전에는 일본에도 필리핀 등에서 온 결혼이주가정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으나, 현재는 관련 교육프로그램 및 인프라 구축으로 큰 문제로 불거지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오쿠보초의 경우에는 도시에 위치해 부모가 운영하는 음식점이나 상점 운영이 어려울 경우 본국으로 귀국해버리는 등 전출이 빈번하여 학교 경영상의 유동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어려움으로 꼽았다.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은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양국의 학교현장 지원활동을 언급하였다. 한국에서는 일본인 학부모가 어머니회 가입 등 활발한 학교활동을 통해 자신감과 적응력을 기르게 된 사례, 담임교사와 교장의 지도에 따라 한국 거주 외국인들에 대한 참여도를 더 높일 수 있었던 사례 등을 언급하였으며, 일본은 한국어 원어민교사의 수업을 통해 한국 언어 뿐 아니라 문화, 습관 등을 배울 수 있어 매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이번 일본 방문 기간 동안 이원희 교총 회장을 비롯한 대표단 일부는 동경에 위치한 일본교직원조합을 방문하여 나카무라 유즈루 위원장과 오카모토 야스나가 서기장 등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는 교권보호, 아동보호, 교원단체 회세확장 방안 등 양국 교육 이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양 단체간 협력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마지막 날에는 대표단 전체가 동경 한국학교(교장 김명식)를 방문하여, 동경 한국학교만의 독특한 이머전 교육, 학생 구성, 교사 채용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념패를 전달하는 등의 순서를 가졌다.
안양옥 서울교총 회장(서울교대 체육교육과 교수)은 최근 교과부와 문화체육부가 구성한 학교체육진흥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됐다. 문화체육부나 교과부 소속 공무원이 아닌 첫 번째 민간 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될 안 회장을 지난달 29일 만났다. 아울러 10월 실시될 서울교총회장 및 25개 구교총 회장 직선과 관련한 계획도 들어봤다. - 학교체육진흥위원회는 어떤 조직인가 입시공부에 시달리고 있는 학생들의 체력증진을 위해 ‘학교 스포츠클럽을 활성화’하기로 한 교과부의 계획에 따라 지난 해 교과부, 문화체육부, 체육진흥공단, 대학체육회가 구성한 위원회로 학교 체육교육 및 체육동아리 활성화를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동안 교과부는 체육을, 문화체육부는 교육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는데 정책적으로는 이 ‘교육’과 ‘체육’의 두 분야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역할도 한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문화체육부 업부보고 시 학교체육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바 있어 위상이 강화됐다. -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하나 초등학교 체육이 활성화되도록 체육보조강사 지원하는 일은 이미 시작됐다. 시도별로 952명을 선발했는데 이들 일선 초등학교에 배치될 체육보조강사는 체육정규교과수업을 보조하고, 방과후 체육활동과 스포츠클럽 활동을 지원하는 등 학교체육 전반에 대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하드웨어적 측면으로는 학교에 잔디운동장과 스프링클러, 조명 설치로 학교 운동장이 24시간 학생과 주민에게 살아있는 공간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며, 탈의실, 체육실내 교구함 등 각 학교별로 필요한 세부적인 시설물까지 완비될 수 있도록 지원해 학교체육의 선진화를 이루도록 하겠다. - 선진국형 학교체육의 모델이 있나 미국의 경우 하버드대, 예일대 등 명문대 일수록 SAT외에 예술, 스포츠맨십, 리더십 등을 평가하는데 기본이 스포츠클럽의 활동 실적이다. 또 일본의 경우도 방과후가 되면 과목별 선생님들이 체육 분야 한 종목을 맡아 학생들과 스포츠클럽 활동을 하는데 이것 또한 모델이라면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신체가 건강해야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처럼 교내에서 체육활동을 활성화 한다면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와 사회성이 배양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며 그렇게 된다면 사회문제가 되는 여러 청소년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것이다. - 서울교총회장을 겸하면서 국정과제 추진에도 참여하게 됐는데 힘든 점은 없나 서울교총회장과 학교체육진흥위원장 두 자리 모두 힘든 자리이긴 하지만 두 과업이 교육이라는 고리로 연결돼 있고 전공과 교총활동을 통해 알게 된 인적 네트워크가 오히려 도움이 된다. 또 체육계에 교육 분야를 알리고, 또 교총의 위상을 높일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 제33대 서울교총 회장과 6기 구교총회장 직선을 하는데 제도나 정책에 절대선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이미 한국교총에서 직선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도교총이 체계를 맞춘다는 측면에서 직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대의원회와 이사회를 거치며 논란이 된 측면도 있지만 모두 대승적 차원에서 동의해줘 10월 시행할 수 있게 됐다. 회원이 직선을 하게 되면 투표행위자체 만으로도 단체의 결속력을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도기적 단계로 당분간 학교급에 따른 윤번제를 병행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결국 자유선출이 돼야 한다고 본다. 선거 후 갈등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고 스스로도 중압감을 느끼지만 현명한 회원이 이를 잘 극복할 것으로 기대한다. - 회원에게 인사를 전한다면 교사로 교수로 활동하며 처음에는 교총과 가깝다고 느껴보지 않았는데 이제 완전히 인사이드가 됐다. 평생 교총맨이라는 생각으로 활동할 것이며, 크든 작든 교총의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회원들도 학교 현장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는 점에 감사를 전하며, 보다 적극적이고 주인의식을 가진 참여를 당부한다.
교직원공제회는 7월 21일자 한국교직원신문에 ‘상반기 4129억 수익’ ‘회원 생애복지 서비스 개발’ 제하의 기사를 쏟아냈다. 본지의 시리즈 기사를 의식해서다. 그럼에도 회원들은 “그 돈을 다 어디에 쓰느냐”며 여전히 여수신금리와 각종 복시사업에 불만스런 목소리다. 공제회는 “그 정도를 벌어야 지급준비율을 100퍼센트 유지하고, 지금처럼 가장 유리한 여수신 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혜택을 실감하려면 대출 이자를 더 낮추고, 저축급여율을 더 높여야 한다”는 회원들과는 괴리가 너무 크다. 20년 미만 탈퇴자는 은행보다 불리 군인․행정공제회보다 수익률 낮아 ▲저축급여는 신기루(급여율변동표 제시)=96년 가입당시 상한구좌(7만 2000원)로 가입한 A교사. 30년을 부으면 4억 600만원을 받는다는 설명에 바로 사인했다. 그러나 올 1월, 한도액을 42만원으로 증좌한 그는 30년 후 받는 돈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조견표에는 42만원씩 30년을 불입해 받는 돈이 3억 9300만원으로 되레 줄기 때문이다. “10년 간 화폐가치 변동을 감안해도 7만 2000원이 42만원이 됐는데 받는 돈은 1000만원 이상 줄다니 이해가 안 된다”는 A교사. 원인은 공제회의 저축급여 배율(30년 가입자 기준)이 10년 새 15.67배에서 2.6배로 급락했기 때문이다. 공제회는 71년 6월 급여 신설 후, 11번 증좌를 해 오면서 상한 구좌를 5구좌(3000원)에서 700구좌(42만원)로 늘려왔다. 반면 30년 새 급여율은 30년 가입자 기준으로 18.41배에서 2.6배로 줄였다. 회원들 사이에서 “기대가 무너졌다” “나중엔 얼마가 될지 불안하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이와 관련 공제회 급여팀은 “현 금리를 유지한다면 42만원씩 30년을 부으면 3억 9300만원을 받게 되는데 이게 현가로 1억 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30년을 상한 불입한 퇴직자들이 요즘 수령하는 돈이 1억 원 내외다. 결국 현가 1억 원을 보장하기 위해 한도구좌는 늘리고 배율은 낮춰 온 셈이다. A씨는 “가입 당시 눈앞에 보이는 액수는 신기루인 셈”이라며 “현가 1억 원을 받기 위해 30년 이상을 붇는 게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것보다 나은지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물론 1억 원도 가입 내내 한도액을 불입하지 않는다면, 특히 가입 초기에 그랬다면 어림없다. 71년부터 37년간 가입한 서울 초등교사 B씨. 불입 원금이 4095만 8400원인 그가 지금 퇴직하면 받을 돈은 8800만원이다. 공제회 홈피 조견표에는 30년 이상이면 배율이 2.6배, 35년 이상은 3.11배로 돼 있지만 “그건 현재 원금 총액에 대한 배율이 아니다”는 게 급여팀의 설명이다. 급여팀은 “71년 최초 가입금액이 3000원이면 그 3000원은 37년에 해당하는 배율을 적용하고, 이후 증좌시점마다 늘어난 증자액 분은 별도의 기간계산과 배율이 적용되는 등 계산이 좀 복잡해 사람마다 금액차이가 있다”고 해명했다. 71년~83년 적은 구좌를 불입한 B교사는 그래서 낭패를 봤다. B교사는 “가입 시 그런 말도 없었고, 홈피 조견표에도 그런 설명이 없다”며 “속은 느낌”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20년 미만 가입자는 시중은행보다 금리상 불리한 점도 문제다. 공제회는 “20년 이상 가입을 조건으로 각종 부가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며 “저축을 깨면 탈퇴급여금을 지급하고 있어 은행 금리보다 못하다”고 설명했다. 15년 이상 20년 미만자는 부가금의 70%, 10년 이상 15년 미만은 60%, 5년 이상 10년 미만은 50%, 5년 미만은 40%만 지급하며 해약금 형식의 뭉칫돈을 뗀다. 물론 탈퇴자가 아닌 ‘퇴직자’는 어느 은행 금리보다 우대 받는다. 서울 M초 H교사는 “막말로 20년 미만자 금리를 떼서 20년 이상 가입자에게 붙여주는 꼴”이라며 “15년, 20년 가까이 기여한 회원들인데 사정상 탈퇴를 했어도 최소한 은행금리보다는 대우해줘야 마땅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또 지방행정공제회, 군인공제회, 경찰공제회의 저축급여제도보다도 수익률이 낮다. 30년 가입 원금에 대한 배율이 행정공제회 2.7배, 경찰공제회 3.27배, 군인공제회 3.4배로 차이가 크다. 42만원씩 30년을 부을 경우, 행정공제회는 4억 824만원, 군인공제회는 5억 1982만원을 받아 적게는 1500만원에서 많게는 1억 270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군인․경찰의 평균 재직기간이 교원보다 훨씬 짧다는 점을 감안해도 20년, 25년 불입 시 수령 금액은 역시 수천만원의 차이를 보인다. 저축급여는 현재 57만명이 가입해 평균 320구좌씩, 매월 총 1100억 원을 납부할 만큼 공제회를 지탱하는 최대 사업이다. 하지만 급여율의 장기전망은 좋지 않다. KDI가 내 논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 전망’(2006-2050)에 따르면 실질 이자율은 2030년까지 완만히 하락해 이후 3% 내외로 유지될 전망이다. 변동금리인 저축급여 금리가 더 떨어질 우려가 높은 대목이다. 급여팀 관계자는 “금리를 더 높이긴 어려워 다른 교직원 복지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리 하락으로 저축급여의 메리트가 떨어지자 17년을 불입한 교직원 D씨는 최근 해약금을 물면서도 탈퇴했다. D씨는 “시골 땅 매입에 보탰는데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저대출’ 자랑하지만 은행권과 엇비슷 “지점도 없으면서…회원한테 돈놀이하나” ▲대출이자 너무 높다(퇴직금담보대출 표)=공제회 대여의 99%를 차지하는 생활자금대여. “연 6.75%, 최저 수준의 이자”를 자랑하며 회원복지사업으로 여기는 종목이다. 이 때문에 6월말 현재 6만 7946명이 2조 1200억 원을 빌려 쓸 정도다. 1인당 3000만원 꼴이다. 하지만 회원들은 “기여도에 비해 이자가 너무 높아 서운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은행권의 퇴직금협약대출(5000만원 한도)과 비교해 차이가 거의 없거나 오히려 높은 경우도 있다. 국민은행의 ‘공무원가계자금신용대출’은 8월 20일 현재 연 7.09%의 기준금리에 카드 사용, 이체 이용 등으로 최대 0.4%까지 할인이 가능해 최저금리가 6.69%다. 상환수수료 없이 10년까지 쓸 수 있다. 우리은행의 ‘청백리우대대출’, 농협의 ‘공무원생활안정자금’도 이체나 카드 사용 등의 부수거래로 6.79%를 적용받아 별 차이가 없다. 충남 S고 J교사는 “일반 은행에 비해 부실대출이 거의 없고, 수 백 개씩 지점을 운영하느라 인건비 부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자를 못 내리느냐”고 꼬집는다. 실제로 “떼이는 게 거의 없다”는 공제회와 달리, 금융감독원이 밝힌 18개 국내 은행의 가계부실여신액은 올 6월말 현재 1조 9000억 원에 달한다. 은행마다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 천 억원 규모다. 또 저축․대여 업무를 수 십 명이 담당하는 공제회와 국민은행(지점 1211개, 임직원 1만 2024명), 신한은행(지점 1044개, 임직원 1만 877명), 우리은행(지점 902개, 임직원 1만 4449명), 하나은행(지점 646개, 임직원 7816명)과는 차이가 너무 크다. 에듀카가 타사 보험료보다 10%~20% 저렴한 것은 ‘설계사나 대대적인 광고가 불필요하고, 교원은 일반인보다 20퍼센트 가량 사고율이 적기 때문’이라고 늘 강조하던 공제회의 논리가 대출이자에는 적용되지 않는 셈이다. 이에 대해 37년 회원인 전남대의 모 교수는 “우리 돈으로 우리를 상대로 돈놀이를 하고 있다”고까지 분개했다. 대여금 2조 1200억 원의 6.75%면 연 이자소득만 1331억 원이 된다. 강원 Y고 Y교사는 “이자를 1, 2% 정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제회는 “대출이자를 그 정도 낮추려면 1, 2천 억 원을 더 벌어야 하는데 현 경제상황으로는 사실상 어려운데다, 설사 벌어도 일부 대여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보다는 저축급여를 높이는 게 형평성에 맞다”고 말했다. 수십년 회원도 방값 비싸 잠도 못자 50~70% 할인해도 보통 8만~14만원 ▲문턱 높은 회관=공제회는 서울․경주․설악교육문화회관, 지리산 가족호텔, 라마다 제주호텔의 일정 객실을 회원용으로 할당하고 50~70%까지 할인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할인가가 작은방 기준으로 보통 8만~14만 원이나 되다보니 ‘그림의 떡’이다. 매년 현장교육, 교육자료 연수를 위해 열흘씩 한국교총을 찾는 교사들. 더러 숙박시설을 문의하는 지방 교사들에게 교육문화회관을 소개하지만 비싼 대실료에 엄두도 못 낸다. 교사들은 “10만 원짜리 연수 와서 잠자는데 칠팔십 만원을 쓸 수 있겠는냐”며 “눈앞의 회관을 두고 고시원이나 여관 신세를 진다”고 말했다. 23년 가입자인 인천 S초 J교사. 최근 아내와 부산에 갔다 잠자리를 정하지 못한 그는 마침 부산역 앞에 있는 공제회 제휴 숙박시설에 들어갔다가 비싼 요금에 놀라 결국 여관에서 자야했다. 용기를 내 “회원인데 좀 비싸지 않느냐”고 말한 그는 또한번 놀랐다. “그렇게 받아 공제회 이익금을 남겨야 한다”는 답변 때문이다. J교사는 “동생이 대위로 있을 때, 강원도 화진포 콘도는 40평에 4,5만 선이었다”며 “군인, 경찰들은 당당하게 회관을 쓰는데 교원들은 왜 이, 삼십년이 돼도 회관 문턱 넘기가 어렵냐”고 지적했다. 광주 B초 K교사는 “광주교원공제회관에서 운영하는 사우나, 스포츠센터는 예전에 20퍼센트 할인 혜택이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그나마 없어졌고, 급기야 수익이 낮다고 작년에 폐쇄까지 해 실망을 줬다”며 “가시적인 혜택마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공제회는 “은행권 보다 높은 저축금리, 낮은 대출금리에다가 출산보조금, 양육보조금 등 회원에 대한 각종 혜택을 부여하기 위해 수익을 최대화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호텔, 골프장 등은 복지시설이라기보다 수익시설로 이해해 달라”고 밝혔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성장기이며 식습관이 형성되는 시기다. 이시기의 균형 잡힌 영양공급과 바른 식습관은 건강과 성장뿐 아니라 평생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생애주기 중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식생활은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2005년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의하면 초·중·고등학생의 경우 탄산음료, 라면, 아이스크림, 주스류가 다소비 식품 20위 내에 있으며 라면, 스낵과자, 비스킷, 아이스크림이 주요 에너지 급원식품과 주요 지방 급원식품 10위 내로 영양을 골고루 갖춘 음식보다는 편리성·기능성을 중시하는 인스턴트식품, 가공식품, 패스트푸드를 선호, 이들 식품을 과잉 섭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초등학생부터 육류 섭취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과일, 우유 등의 간식보다는 과자, 빵, 라면, 아이스크림, 음료수 등 고당, 고지방, 고나트륨 간식 비율이 50%를 초과하고 있어 소아비만 유병률이 10~14세 때 가장 높아 17.9%에 달하고 있다. 반면에 우유가 다소비 식품 2위임에도 칼슘 섭취는 초등학생은 권장섭취량의 68.7%, 중·고등학생은 55.4%에 불과하여 섭취 부족 상태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가계의 소득이 높아지고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외식의 증가와 더불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식품구매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더구나 최근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는 교내매점이 거의 운영되지 않고 있는 추세여서 학생들은 등·하교길에 학교 주변의 문구점이나 구멍가게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2008년 6월) 조사에 따르면 서울지역 초등학교 주변 문구점에서 곰팡이가 낀 식품이 판매되고 식중독균도 검출되는 등 어린이 기호식품에 대한 관리가 허술한 것으로 드러나 학부모들을 걱정시키고 있다. 또한 2003년부터 전국 초·중·고교의 학교급식이 전면 실시된 이후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루 한 끼의 식사를 급식에 의존하고 있으나 일부 학교에서는 식중독 사고 등의 식품위생 관리, 영양품질과 식품안전의 문제가 여전히 지적되면서 학교급식의 질 개선을 위한 학부모와 시민단체의 요구가 증가되고 있다. 이와 같이 최근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과거에 비해 학교급식이나 간식구매 등 가정 외 식사와 간식 섭취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어 이러한 식사나 간식에 대한 영양성과 안전성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려 있으며 이들이 건강할 때 우리의 미래는 밝다. 따라서 이들이 올바른 식생활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가정, 학교 및 지역사회, 기업과 더불어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먼저 학교에서는 교과교육 등을 통해 예방 차원의 영양교육을 실시하여 학생들 스스로가 식생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실천할 수 있도록 실천능력을 배양해 주어야 한다. 특히 식품구매 기회가 많아진 이들에게 식품구매 등과 관련한 소비자능력과, 서구식 식생활 개선을 위해 우리 전통음식의 우수성에 대한 교육내용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고 영양교육은 어릴수록 효과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여 초등학교 저학년에서의 영양교육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 학교급식에서는 질 개선을 통하여 영양적이고 안전한 식사를 제공하여야 하며, 영양문제를 지닌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상별 영양교육과 상담을 실시하여 학생들이 현재 지니고 있는 문제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치료차원의 영양교육을 행해야 한다. 또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서는 가정에서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자녀들의 교육문제에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건강과 직결된 자녀의 식생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편이다. 식생활이 우리 아이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직결되며 이는 곧 그들의 미래와 관련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가정에서 자녀들의 식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바른 식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여야 하며 외식을 줄이고 가공식품보다는 자연식품을 섭취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가정에서는 학교와 일관된 지도와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에서는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가정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의 영양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나 가정과 학교에서의 노력만으로는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식생활 영위는 어려우며 정부차원의 관리와 제도적 지원이 마련되어야 한다. 2008년 3월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7월에는 선진국 수준의 식품안전 달성을 위한 ‘식품안전 종합대책’이 관계부처 공동으로 마련되어 정부차원에서 제도 마련과 대책을 수립하고 있으나 이러한 제도와 대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민, 학교, 지자체의 관심과 공동 협동체제를 통한 관리 감독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기업은 당, 지방, 나트륨 등 영양 위해 성분의 함량을 줄일 수 있는 공법 개발과 위생적인 제품의 개발로 우리 아이들이 안심하고 영양적인 제품을 구입하여 섭취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어야 한다. 이처럼 가정을 비롯하여 학교, 지자체, 정부, 기업 모두가 학생들의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고 영양적이고 안전한 식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노력할 때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1 고속도로 휴게소 남자용 공중 화장실 소변기 앞에 가면, 앞 벽면에 이렇게 적혀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 말고도 또 있습니다!” 소변을 볼 때 오줌 방울을 소변기 바깥으로 흘리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코믹하게 나타낸 것이다. 의미가 적절하게 우회적으로 전달되도록 하여, 오줌 방울 다스리기에 만전을 기해 달라는 화장실 당국자의 의도를 재미있고도 간곡하게 전해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당부의 문장 속에는 남성중심의 인식이 기본 전제로서 들어 있다.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흘려서는 아니 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이 문장은 의미가 자연스럽게 성립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평균적인 한국의 남자들은 이 문구 앞에서 별다른 회의를 품지 않고 이 표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 문화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위대하고, 그렇게 때문에 (여자처럼) 눈물이나 질질 짜대는 존재가 아니라는 남성 우월의 문화적 최면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체면이 중시되는 우리에게는 우는 것을 흉으로 인식하려는 태도가 있었다. 특히 남자에게는 이런 인식이 강요되었다. 예전부터 들어 온 말 가운데 누구나 잘 아는 말이 있다. 남자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세 번 운다(세 번만 울어야 한다). 한 번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기로서 고고(呱呱)의 성(聲)을 울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경우이고, 세 번째는 나라가 망하는 경우이다. 이 말은 세 번 우는 경우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라, 여간해서는 울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는 데에 쓰였다. 전통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하는 우스갯소리 가운데,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솔(털) 난다.”라는 말도 있었다. 울던 어린 조카아이를 달래려고 우스운 말을 해 주던 고모나 이모들은 아이가 웃을 분위기로 옮겨 나올 때 막상 이 말을 해 주게 되는데, 이 말을 듣고 다시 울음 쪽으로 도망가는 아이도 있는가 하면, 아예 우스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까르르 웃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이 말이 자라면서 주는 문화적 영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감정의 급속한 변화는 경솔하여 바람직하지 못하며, 따라서 똥구멍에 솔(털)이 나는 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울음이라는 것을 가벼이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세상 문화를 터득하게 된다. 물론 함부로 울어서는 아니 되며, 울 것 아닌 것 가지고 울다가 함부로 해죽거리면 벌을 받는다는 협박도 숨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2 울음이 억압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울음이 억압되면 울음만 억압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웃음도 억압되고, 기쁨도 억압되고, 연민의 감정도 억압되고, 사랑의 감정도 억압된다. 물론 분노도 억압된다. 모든 감정의 억압은 무표정의 얼굴과 몰인정의 인격으로 드러난다. 드러내는 감정의 자아와 숨어 있는 감정의 자아가 분리된다. 그러니 그런 심리 기제로 어찌 밝은 소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쉽게 말하면 감정의 노출과 전달이 자연스럽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울음에 대한 억압은 유독 남성에게 주어진다. ‘우는 남자’는 ‘못난 남자’로 바로 번역되는 문화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는 남자가 옹호받기는 힘들다. 설사 옹호받는다 하더라도 존경을 받기는 어렵다. 그러니 문화적 인식의 코드가 얼마나 완강한 것인가. 남성의 남성다운 정신적 표상은 ‘논리와 이성’으로 드러나고, 여성의 여성다운 표상은 ‘정서와 감성’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우리는 오래도록 인식해 왔다. 울음은 극단의 감성 코드에 해당되는 것, 어찌 이성과 논리를 주재하는 남성이 울음이라는 극단의 여성성을 지닌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 온 것이다. 남성 우월주의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여성의 속성은 남성의 속성에 비해서 열등하고 모자란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니까 예쁘고 부드러운 것은 억세고 강한 것보다 약하고(못하고), 감성과 정서는 논리나 이성에 비해서 뒤떨어지는 것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적 성(gender)이 점차 평등한 힘을 얻음으로써, 그 여성성에 의하여 남성성이 중심의 자리에서 내려오기도 한다. 남과 여에 대한 인식의 옷을 대중들이 바꿔 입히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는 고정관념의 옷으로 오래 입혀져 왔는데, 이제는 꼭 그렇지도 않은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로 되는 성향까지 생겨나고 있다. 얼굴 곱상하고 여성처럼 부드러운 이미지를 지닌 젊은 남성을 ‘꽃미남’이라고 일컫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다. 여성성의 전형적 자질이라 할 수 있는 ‘예쁘고 부드러운 것’이 남성의 매력 자질로 적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가지고 있는 남성성(또는 남성상)에 대한 것들도 빠르게 변해 간다. 포스트 모던의 대중문화가 매스 미디어에 의해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사회에서는 양성 평등의 가치가 빠르게 전파되고 공유된다. 그래서 전통적 남성성은 과감히 해체되기도 하고, 그 자리에 이전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남성상이 등장하기도 한다. 3 여성성에 대한 인식 교정은 빠르게 진화되어 간다. 많은 가치 판단에서 이성(理性) 절대주의가 위력을 점차 잃었다. 심지어는 감성을 이성보다 더 중시하는 경향도 생겼다. 부드러움이 강직함보다 더 힘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의 가능성과 강점을 남성의 그것에 비해서 더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이 대중문화의 현장에 두드러지게 발현되는 것이 바로 여성의 매력 요소를 그대로 남성에게도 전이 적용하는 것이다. 근육질의 남성보다 부드럽고 고운 얼굴의 남성, 이른바 꽃미남을 더 가치 있게 인식하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그러나 남성성에 대한 인식 교정은 그 자체로 변해 간다기보다는 여성성 인식 변화에 대한 후차적 영향을 받아 마지못해 변해 간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여성성이 남성성에 쉽사리 동화되고 평등해지려는 것에 비해서 남성성이 여성성에 동화됨으로써 평등에 가까워지는 것은 잘 되지 않는 편이다. 이 또한 그간의 남성우월주의가 오랜 동안 쌓아 올린 업보라고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쉽게 말하면 여성도 남성의 영역에 진출하여 남성과 동등하게 일하고 성취한다는 것은 대체로 승인되는 편인데, 남성이 여성의 전통적 영역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은 흔쾌한 갈채도 모자라고 문화적 승인이 인색한 것 같다. 일의 세계는 또 그렇다 하더라도, 감정과 생각을 펴고 전하는 일상의 심리 작용 국면에서는 남성도 여성처럼 감정을 펴는 것에 대해서 더더욱 이해를 안 해 주려는 분위기이다. 적어도 눈물을 흘리며 우는 문제에 한해서는 정말 그러하다. 여자는 쉽사리 눈물을 보여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의 노출이고, 그것이 때로 무기까지도 되는데, 남자가 눈물을 흘리면 덜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남자와 여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 있을 뿐이라는 평등의 대명제에 입각하면,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남성들은 좀 억울하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게 하는 남성주의 문화에 대해서는 오히려 인간적 피해자가 남성이라는 느낌도 든다. 남성이 잘 울지 않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차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울음이야말로 인간적 감정의 근본을 나타내는 것인데, 그래서 가슴을 풀고 울고 싶은데, 남자라는 이유로 억지로 꾹꾹 눌러 참는 경우 그걸 어떻게 남자답다는 말로만 치켜세워 옹호하는 것만이 능사이겠는가. 이래저래 오늘 이 문화적 과도기의 남자들은 힘들다. 4 울음이란 정신과 감정의 곤경을 해소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울음은 치료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정신적 긴장과 곤경을 이성의 힘으로 버티고 버티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 때, 그래서 더 버티려고 하다가는 마침내 몸의 어느 한 구석이나 정신의 기제가 허물어 내리려 할 때, 그때 몸과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터져 나오는 것이 울음이다. 그러니 가장 인간다운 것, 가장 꾸밈이 없는 것, 가장 순수한 것이다. 그래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라.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야말로 인간적인 이해와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우는 남자는 정말 못난 남자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우는 남자는 인간적일 수 있다. 운명적 한계 앞에서 비극적 상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뜨거움을 실존으로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울음이다. 그래서 시인 김현승은 신 앞에서 기도의 형식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지닌 보석 가운데 가장 나중 지닌 보석이 눈물이라고. 돌의 미학을 강조하고, 굳센 지조의 철학을 말하던 조지훈도 울고 싶은 날의 감정을 절조의 시구로 남겨 놓지 않았는가. 그가 시 낙화의 맨 끝 구절에서 길어 놓은 구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는 언제 읽어도 좋다. 우는 남자 조지훈 시인을 누가 통념의 해석으로 못난 남자라 일컬을 것인가. 울음의 욕구 저 밑에 있는 보석 같은 진정성을 왜 남성들에게서 박제(剝製)하려 하는가. 알고 보면 세상에는 우는 남자들이 많다. 숨어서 울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차마 가족 앞에서는 울지 못하고 숨어서 운다. 아버지의 울음을 안 보고도 알아주는 집안은 행복을 스스로 지을 수 있는 집이다. 우는 남자가 못난 남자라고 생각하는 동안 남자들은 감정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우는 남자들이 울음의 진실성을 통해서 위안 받도록 해 줄 수는 없을까. 어쨌든 더 이상 우는 남자에게 못난 남자라는 굴레를 씌우지는 말자.
천년숲길, 바람, 물소리…휴(休)의 시간 아이들과의 체험여행 테마가 넘쳐난다. 갯벌체험, 경제 캠프, 별자리 관찰, 박물관 견학… . 산속 깊숙이 자리한 사찰은 어떨까. 수학여행이나 답사지로 들르는 곳이 사찰이기는 하지만 하룻밤을 자면서 스님과 똑같이 지내보는 템플스테이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새로운 세계와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국 80여 개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실시한다. 템플스테이란 전통 사찰이나 수도원에 머물며 사찰 고유의 문화와 수행을 체험해 보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산사에서의 하루는 새벽 예불을 위한 목탁소리를 들으며 깨어나 맑은 음식으로 공양을 하고 단정히 앉아 마음을 비우는 참선을 통해 정신적 풍요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불교문화체험, 생태체험, 청소년 템플스테이 등의 요소가 가미되어 다양한 템플스테이가 진행된다. 그 중 강원도 오대산 자락에 자리한 월정사 템플스테이를 살펴보자. 오대산은 태백산맥의 중간에 위치하며 1563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동대산, 두로봉, 상왕봉, 호령봉의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그 너른 산자락에 유서 깊은 천년사찰인 월정사와 상원사가 안겨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자장(慈藏)이 당(唐)나라에서 돌아온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오대산이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머무는 성지’라 하여 지금의 절터에 월정사 초암(草庵)을 지었다고 한다. 1300년이 넘는 고찰인 것이다.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스러운 땅으로 여겨지고 있는 이곳은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등 귀중한 사서(史書)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史庫)가 있던 곳이고 피부병을 앓던 세조와의 인연도 깊다.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8각 9층 석탑이 우뚝한 월정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속세에서 입던 옷을 벗어 가지런히 두고 수련복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사찰에서 지켜야 할 예절 배우기 이어 차 한 잔을 두고 스님과 잠시 시간을 나누며 법당을 드나드는 법 등 사찰예절을 익힌다. 법당의 가운데 문은 스님들이 다니는 문이니 출입할 때는 측면의 문을 사용해야 하고 정중앙 자리도 스님의 자리이니 피해야 한다. 더불어 합장과 합장절, 큰절을 배운다. 합장은 불교의 독특한 예법으로 두 손의 손바닥을 맞대어 몸과 마음을 다 모아 일심으로 예의를 표현하는 것이다. 합장한 자세에서 허리를 앞으로 45~60° 기울이는 것은 합장절로, 일주문을 넘어 부처님 도량으로 들어가거나 나올 때, 법당에 첫발을 들여놓거나 나올 때, 경내에서 스님과 인사할 때 합장절을 한다. 큰 절은 삼보(부처님, 법, 스님)에 대한 예경과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의미하며 동시에 스스로를 낮추는 수행법이다. 신체의 다섯 군데(양 무릎, 양 팔꿈치, 이마)를 땅에 닿게 하는 것이다. 방법은 두 무릎을 살며시 굽히면서 오른손, 왼손 순으로 바닥을 짚되, 손은 나란히 어깨넓이만큼 벌려서 짚는다. 그 다음 무릎을 꿇고 엎드리면서 왼발이 오른발 위에 오게 포개고, 엉덩이가 두 발의 뒤꿈치에 닿게 한다. 양 팔꿈치와 이마가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양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위로 향해 귀에 닿을 정도로 받쳐 올린다. 이를 반복해 108배나 1080배, 3000배의 기도나 참회가 이루어진다. 어둠이 내릴 쯤이면 저녁예불을 알리기 위해 사물(四物)을 친다. 사물은 북과 목어, 운판, 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리로 모든 생명을 구원한다. 북은 가죽을 가진 짐승을 구원하고 목어는 물고기 등 수생생물을, 운판은 하늘을 나는 조류를, 그리고 종은 명부에 든 귀신들을 구원한다. 법고와 목어, 운판이 차례로 스님들에 의해 쳐지면 경내가 경건해진다. 저녁 종은 총 28번을 치는데 본래는 스님이 치지만 템플스테이 행사 때는 참가자들이 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저녁 공양 후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오후 9시. 도심의 사람들에게는 다소 이른 시간이다. 도량석으로 시작되는 산사의 하루 똑똑똑 또르르 똑똑똑 또르르. 도량청정무하예(道場淸淨無瑕穢) 삼보천룡강차지(三寶天龍降此地)~. 만물이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새벽 3시. 도량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의식인 동시에 잠들어 있는 천지만물을 깨우며 미혹의 중생들을 깨어나게 하기 위한 도량석(道場釋)이 진행된다. ‘하늘은 자시(밤 11시∼1시)에 열리고, 땅은 축시(1시∼3시)에 어둠에서 풀리며, 사람은 인시(3시∼5시)에 잠에서 깨어난다’고 한다. 도량석은 단순히 잠을 깨우는 소리가 아니라, 자비를 베풀고 법음을 전하는 깨달음의 도량을 열어 뭇 생명들이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기원하는 수행의식이기도 하다. 목탁소리는 약한 음에서 서서히 높은 음으로 올리다가 내리기를 아홉 번 정도 반복하니 일체중생이 갑자기 놀라지 않고 서서히 깨어나게 하기 위한 배려인 것이다. 도량석을 마감하는 목탁소리가 끝나면, 그 소리의 끝을 받아 법고가 울린다. 법고의 여운을 운판이 받고 운판의 끝소리에 이어 목어의 둔탁한 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윽한 범종 소리. 범종 소리가 끝남과 함께 법당에서는 작은 종이 울리고 예불이 시작된다. 골 깊은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그곳에서 산사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가사장삼을 걸쳐 입은 스님들이 총총걸음으로 줄지어 적광전으로 향하고 은은한 범종 소리가 경내에 퍼지면 수련생도 어둠이 사위에 쌓인 경내를 질러 적광전으로 향한다. 코끝을 간질이는 향내음과 가만가만히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 그리고 알 듯 모를 듯 염불소리와 석가모니불의 크고도 위엄 있는 자태를 경외하며 반시간 남짓의 새벽예불이 올려진다. 목탁소리에 맞춰 ‘오분향’, ‘헌향진언’, ‘예경문’, ‘반야심경’을 외는 스님들의 목소리는 장엄하다. 은은히 조명 밝힌 팔각구층석탑과 어둠새벽 하늘을 지키는 별빛이 오묘한 천상(天上)의 세계를 보여준다. 미명의 새벽에 전나무 숲 걷기 새벽예불이 끝나면 별빛에 의지하며 월정사가 자랑하는 전나무 숲길을 걷는다. 청량한 새벽 공기는 가슴 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탁한 공기와 잡념 그리고 번뇌를 씻어주는 듯 머리를 맑게 한다. 손전등 등 인공의 빛을 배제하고 원시 자연의 방법으로 길을 가야 한다. 운무가 가득하고 개울물 소리만 들리는 전나무 길은 신비로움의 극치다. 미명의 어둠길을 걸어 일주문에 도착할 즈음이면 제법 앞이 보인다. 일주문.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 번째 문으로 사바세계에선 지극한 행복이 있는 불국정토로 가는 문이며, 생멸(生滅)이 있는 세계에서 각(覺)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며, 생사를 열반으로, 번뇌를 지혜로, 속박을 해탈로 탈바꿈시키는 문이며, 무상(無想)과 고통과 무아와 부정의 인생을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삶으로 전환시키는 문이기도 하다. 이 문을 통과해야만 불국정토로 들어갈 수 있고 이로 인해 인생의 대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일주문을 넘으면 지나온 어둠의 전나무길이 밝음과 열림의 전나무 길로 다시 다가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800여 m에 걸친 숲길은 참으로 아름답다. 이른 아침부터 부산히 움직이는 다람쥐를 만나고 맑은 골짝물 위에 떠가는 나뭇잎을 만나고 여덟의 친구를 잃고 이제는 홀로 서 있는 수백 년 된 전나무도 만나고 또 출가한 이들의 삭발한 머리를 묻어두는 작은 비(碑)도 만난다. 이 길은 묵언(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색하며 걸음)을 행하며 걷는 길이다. 마음까지 깨끗이 닦아내는 발우공양 새벽 찬바람과 전나무 향을 만끽하며 돌아오면 아침 공양이 기다린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 죽비소리에 따라 발우를 편다. 행자가 청수 물을 돌리면 큰 그릇에 물을 받아 국그릇 찬그릇을 헹구고 밥과 국은 각각 먹을 만큼만 담아, 남거나 모자라지 않게 한다. 소리를 내지 않고 꼭꼭 씹어 공양한 뒤 마지막으로 김치나 단무지 한 조각을 남겨 밥그릇과 국그릇, 찬그릇을 깨끗이 닦아 퇴수까지 말끔히 먹어야 한다. 퇴수는 아귀에게 공양할 음식인데 아귀는 몸은 태평양만하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보다 작아 항상 배고픔에 기갈이 든 귀신이다. 이들은 불가에서 공양하고 남은 퇴수를 마시는데 이때 음식찌꺼기가 있으면 이것이 목에 걸려 목구멍에 불이 나면서 엄청난 고통을 주니 배고픈 아귀가 끼니를 거르게 된다. 엄청난 악업을 짓게 되는 것이다. 발우공양(鉢盂供養)에서 발우란 ‘양에 알맞은 그릇’이란 뜻으로 스님들이 사용해 온 식기다. 발(鉢)은 인도말(범어)로 발다라(鉢多羅)의 약칭이고, 우(盂)는 중국말(한자)로 밥그릇이라는 뜻으로 번역하면 응량기(應量器)가 된다. 즉, 각자 자기가 먹을 수 있는 양에 따라 공양하는 그릇이라는 뜻이며 수행의 한 과정으로 행하기 때문에 법공양이라고도 한다. 부처께서 6년 고행 후 보리수 아래에서 성불한 다음 타푸사, 바라타 두 상인에게 첫 공양을 받았으니 발우공양의 역사는 수천 년을 넘나든다. 발우공양이 끝난 발우는 처음에 받았던 발우의 모습대로 깨끗해 설거지가 필요치 않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음식 낭비와 환경·식수 오염으로 인간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이때에 쌀 한 톨, 밥 한 알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아끼며 환경 오염을 미연에 방지하는 발우공양은 참으로 환경 친화적인 식사법이다. 이 모든 것은 ‘처음처럼’ 흔적이 남지 않게 하고 좋은 것을 남에게, 나쁜 것을 나에게로 향하며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이 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시간들 아침 공양이 끝나면 월정사 경내와 상원사, 수정암을 둘러본다. 60여 개의 사찰과 8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월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로 국보 제48호인 팔각구층석탑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사리구, 상원사 문수동자 좌상의 복장유물인 상원사 중창 권선문(국보 제292호), 부처님 진신사리(보물 제793-21호)를 비롯, 한암(漢岩)·탄허(呑虛) 스님의 유품에 이르기까지 5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이는 월정사 경내의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세조 4년(1459)에 간행된 월인석보(月印釋譜·보물 제292호), 세조어의(世祖御衣·보물 제793-16호) 등 세조와 관련된 유물도 많다. 상원사는 세조가 심한 피부병에 시달릴 때 찾은 곳이다. 세조는 꿈속에서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뱉은 침에 맞은 후에 피부병이 생겼다. 전국을 헤매다 영험하다하여 찾은 이곳 계곡물에 몸을 담갔는데 지나는 동자승이 등을 씻어준 후 말끔히 나았다고 한다. 하여 상원사에는 다른 사찰에는 없는 문수동자상이 봉안되어 있고 계곡에는 세조가 옷을 벗어 걸었다는 관대걸이가 있다. 종각 안에는 상원사 동종이 걸려 있다. 하늘하늘 꽃구름을 타고 얇은 옷깃 나풀대며 기도하는 비천상의 모습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신라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 부도 탑들을 돌아보면 적당히 피곤하다. 이렇게 적당히 몸을 움직이고 일찍 자고(9시), 일찍 일어나고(3시), 채식위주의 절밥으로 공양하면 몸이 가볍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빼어난 자연환경과 불교문화가 어우러진 사찰, 그곳에서 스님과 수행자의 일상을 체험하며 몸과 마음의 휴식을 얻는 템플스테이(Temple Stay)는 참으로 좋다.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나라 이름이라고 변하지 않을쏘냐 올해 어린이날에 부산에 사는 동생 집에 놀러 갔더니 조카아이가 지구본을 선물 받았다고 자랑을 했다. 지구본 위에는 각 나라의 영토가 국경선을 따라 갖가지 색깔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나라 이름과 큰 도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무람없이 “어디 어디 좀 가리켜보렴”하고 어른 티를 냈고, 아이는 아이답게 내 앞에서 자신의 ‘대단한’ 지식을 뽐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이가 30년도 넘게 차이 나는 두 사람은 나라 이름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언어가 그러하듯이 나라 이름이라고 영원불변할 리는 없다. 지나간 역사를 조금만 떠올리더라도 나라 자체가 생기거나 없어지는 것은 물론 사정에 따라 나라 이름을 바꾸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만 해도 존재했던 소비에트연방이 몇 년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국경선이 끊임없이 변해왔던 것처럼 어떤 지역이나 나라를 가리키는 명칭도 역사적 필요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별 의문 없이 학교에서 가르쳐준 대로 국가의 명칭을 외우고 있지만, 그것은 ‘현재’라는 단서가 붙은 임시적이고 시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 이름도 한국어다! 국가의 명칭은 현재적일 뿐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생겨나 자리를 잡고 통용될 뿐이다. 예를 들어 ‘터키’는 영어 발음에서 빌려온 음으로 표기한 나라 이름이지만, 이것을 영어라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Turkey의 ‘r’ 발음을 굴리지 않으면 영어권 사람과 ‘터키’라는 말을 공유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터키’는 영어와 발음이 비슷하긴 해도 엄연한 한국어인 것이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일본인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토르코’라는 말을 들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나는 자꾸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니까 답답해진 친구는 “언니 같은 사람(?)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하고 아쉬워했다. 그렇다, 내가 터키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일본어인 ‘토르코’는 아무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투르크’나 ‘토이기(土耳其)’였다면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그 친구 역시 (아무리 내 발음이 유창했다고 해도) ‘터키’라는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본래의 나라 이름과 한자음의 나라 이름 때로는 동일한 나라인데 다른 명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우리가 나라 이름을 붙이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본래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는 것이다. 노르웨이, 스페인, 쿠바,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베트남 같은 예가 그것이다. 또 하나는 한자어로 표기된 것을 음역(音譯)하거나 의역(意譯)하는 것인데, 미국, 중국, 태국, 일본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외국의 존재를 알고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조상들은 외국의 명칭을 한글 표기보다는 한자음을 빌려 표기했다. 이제는 퀴즈 문제로나 나올 법하지만, 백여 년 전 이 땅에서는 네덜란드를 화란(和蘭), 오스트리아를 오지리(奧地里), 러시아를 아라사(俄羅斯) 또는 노서아(露西亞), 독일을 덕국(德國), 필리핀을 비율빈(比律賓)이라고 썼다. 이러한 한자음 표기는 나라뿐 아니라 구라파(歐羅巴, 유럽), 아세아(亞細亞, 아시아) 같은 지역 이름이나 윤돈(倫敦, 런던), 백림(伯林, 베를린), 나성(羅城, 로스앤젤레스) 같은 도시 이름에도 사용되었다. 이들 가운데 ‘동백림(동베를린) 사건’(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가요 제목, 길옥윤 작곡)처럼 몇몇은 아직도 귀에 익은 채 남아 있기도 하지만. 나라 이름의 표기와 이미지 사이 근대 초기에 해당하는 개화기 문헌을 살펴보면 프랑스를 표기할 때 한자어의 음역인 불란서(佛蘭西)와 의역인 법국(法國)이 혼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법국’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불란서와 프랑스가 줄곧 사용되어 왔고, 요즘 들어서는 그나마 프랑스로 통일되어 가는 듯하다. 그런데 본래 이름인 프랑스를 그대로 프랑스라고 부를 때는 어떤 의미도 끼어들지 않지만, 한자어로 표기하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佛蘭西’는 음역이기 때문에 부처, 난꽃, 서쪽이라는 이미지가 그다지 강하지 않으나, ‘法國’이라 적으면 마치 ‘법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라 이름은 그것을 표기하는 과정에서 이미지와 결합하는 경우가 있다. 좋은 감정이나 싫은 감정, 숭배하거나 무시하는 의도가 표기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은 한자가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몽골’과 ‘몽고(蒙古)’다. 본래 몽골이라는 이름을 음역하여 한자로 표기할 때, 우매하고 낡았다는 뜻을 가진 글자를 갖다 붙임으로써 몽골이 뒤떨어진 곳이라는 이미지를 낳고 말았다. 몽골을 ‘몽고’라고 한 것은 결국 몽골을 오랑캐 나라로 낮추어 본 중화주의 사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미국, 아름다운 나라? 나라 이름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것 중 하나는 ‘미국’이다. 미국은 주지하다시피 해방 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로 손꼽힌다. 한미 FTA를 비롯하여 최근에는 온 나라를 ‘촛불집회’로 후끈 달군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통해 새삼스레 한국 사회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막중한 비중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메리칸 드림이 더 나은 삶의 표상으로서 보통 사람들의 환상을 충족시켰던 시절에 ‘美國’은 그야말로 이름에 걸맞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러나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사회의 일각에서는 반미의 기운이 번지기 시작했고, 나아가 한국의 고도경제성장과 더불어 무역 마찰이 표면화되면서 미국의 이미지는 일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2002년에는 해태제과 소액주주운동본부가 ‘미국 국가명 한자 바꾸기 운동’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美國’을 ‘米國’으로 바꾸자는 이 제안과 관련하여 조선일보의 이규태 코너에는 美國의 유래를 간결하게 더듬어본 ‘美國과 米國’이라는 칼럼이 실렸고(2002. 4. 16), 이 칼럼에 대해 오마이뉴스의 조정희 기자가 ‘허점투성이 이규태 코너’라는 글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을 펼쳤다. 이규태의 칼럼이 객관적인 고증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증적 오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2002. 4. 21~30,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아름다운 나라와 쌀의 나라 오늘날 중국과 한국은 ‘美國’, 일본은 ‘米國’이라는 표기를 선택하고 있다. 청나라와 미국이 처음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1844년의 왕샤(望厦)조약을 통해서인데, 이 조약 첫머리에 ‘The United States of America’가 ‘亞美理駕洲大合衆國’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여기서 America를 중국식 음을 빌려 나타낸 야메이리지아(亞美理駕)란 말에 ‘美’란 글자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1854년에 체결한 일미화친 조약에서 는 미국을 ‘亞墨利加合衆國’으로 표기하여 ‘米’의 자취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에도시대에 간행된 일포사서(日葡辭書)(일본어-포르투갈어 사전)에는 米國을 ‘쌀이 풍부한 나라’라고 풀이하고 있으며, 여기서 전하여 ‘米’는 亞米利加의 약어(略語)라고 되어 있다(일본국어대사전, 小學館). 옛 문헌을 살펴볼 때 米國보다는 美國이 훨씬 더 앞 시기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米國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표기임이 분명하다. 1900년대 중반의 교과서만 해도 美國과 米國을 함께 썼다고 하니, 아무래도 개화기 이후 일본의 영향이 개입하면서 米國이라는 표기가 점점 힘을 얻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다. 그리고 해방 직후까지도 공존하던 美國과 米國은 그 후 美國으로 굳어진다. 그러나 반미 감정의 골이 깊어지거나 더 이상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라고 표기하고 싶지 않다는 의식이 일반화된다면 美國이라는 표기를 버려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난생 처음으로 미국인을 만난 우리 조상은 미국 선원과 의사소통을 시도하다가 ‘America’라는 말을 듣고 ‘며리계’라고 받아 적었다고 한다. ‘며리계’라는 말에는 오로지 먼 곳에서 온 낯설고 신기한 손님에 대한 환대의 마음만이 깃들어 있지 않았을까 몰래 상상해본다.
“체임벌린과 달라디에, 1938년 뮌헨에서 단호한 태도를 취해 히틀러의 슈테덴 병합 야욕을 꺾다.” 물론 뮌헨회담은 정반대의 드라마로 끝났고, 연합국의 자유 수호 의지를 과소평가한 히틀러는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도발했다. 히틀러의 체코슬로바키아 점령 계획 1938년 3월 오스트리아 병합에 성공한 히틀러와 그의 참모들은 동년 5월에 체코슬로바키아 점령을 계획했고, 우선 독일계 3백만 명이 거주하던 슈테덴을 병합하려 했다. 당시의 체코는 동맹국 프랑스의 군사원조에 의지했다. 역시 동맹관계에 있던 소련도 체코의 방위를 위해 필요할 경우 영·불과 협력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그 무렵 소련은 거의 무시되었다. 히틀러는 줄곧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병합을 요구했다. 그렇듯 독일의 체코침공이 임박한 듯했으나 영국도 프랑스도 체코를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실 양국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독일과의 전쟁을 피하려 했다. 9월 22일 체임벌린은 독일 고데스부르크에서 히틀러를 만났지만 그의 강경한 요구만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히틀러는 체코인들에게 9월 28일까지 슈테덴에서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주장을 수용하려 했지만 체코는 물론 영국 내각과 프랑스는 반대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38년 9월 23일에 총동원령을 내렸고, 프랑스는 다음날 부분 동원령을 내렸다. 체임벌린은 긴박한 상황의 타개를 위한 4개국 회담의 즉각적 개최를 제안했고 히틀러도 그에 동의했다. 9월 29일 체임벌린, 히틀러, 달라디에, 무솔리니가 뮌헨에서 만났다. 히틀러는 이전의 주장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무솔리니가 중재안을 제시했고, 4인은 10월 10일까지 독일 육군이 서체코의 슈테덴을 점령하되 한 국제위원회가 그 지역의 장래를 결정한다는 중재안을 승인했다(1938. 9. 30). 수년 후 무솔리니의 이 같은 안은 독일 외무성이 준비한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체코에게 독력으로 독일에 저항하든 아니면 뮌헨합의를 수용하라고 했고 무력한 체코는 결국 수용했다. 군중의 환영을 받으며 귀국한 체임벌린과 달라디에는 전쟁의 위협이 제거되었다고 보고했다. 체임벌린은 “명예롭게 평화를 달성했다. 나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믿는다”고 국민에게 말했다. 독일과의 전쟁 피하고 싶었던 英, 佛 제1차 세계대전을 도발했지만 참패한 독일은 식민지를 모두 상실하고,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랑스에 양도하고 라인란트가 비무장지대로 되었으며 30년에 걸쳐 천문학적인 1360억 금(金)마르크를 배상해야 했다. 또 육군 10만과 군함 36척 외에는 잠수함과 공군은 가질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1919년 1월 19일의 선거로 구성된 의회는 2월에 공화국을 선언한 다음 사회민주당의 에베르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베르사유조약’을 비준했다. 독일제국은 그처럼 바이마르공화국으로 탈바꿈했지만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거의 절망적 상태에 놓였다.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은 당시로서는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헌법이었다. 주권재민의 이념에 입각해 20세 이상 남녀 보통선거로 구성되는 의회와 임기 7년의 대통령을 두었다. 제한적인 대통령의 권한에 비해 의회의 권한은 아주 컸다. 또 국민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을 인정했으며 심지어 노동자대표가 경영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았다. 헌법은 그처럼 진보적이었지만 바이마르공화국의 전도는 문자 그대로 암담하였다. 바이마르체제는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도 그 자체가 발전이나 성장은커녕 최소한의 안정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각지에서 폭동을 선동해온 공산당이 1920년 3월에 역설적이게도 제국 부활을 목표로 폭동을 일으켰는가 하면, 국민은 국민대로 처음 경험하는 민주주의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 채 패전의 굴욕감마저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국토가 잿더미와 다름없이 된 데다 식민지를 상실한 상황이라 경제의 회복은커녕 천문학적 물가고를 겪어야 했다. 인플레이션은 특히 프랑스와 벨기에의 루르 점령 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독일이 배상금 지불을 지연하자 프랑스와 벨기에는 1923년 1월에 독일의 탄광지대 루르를 점령했던 것이다. 독일인들은 분노를 넘어 양국을 증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후 바닥을 알 수 없이 폭락하던 마르크화의 가치는 독일의 경제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쟁 전의 1마르크는 미화 25센트였으나 1923년 초에는 5만마르크 대 1$, 루르 점령으로 생산 활동이 마비되어 최악의 상태에 처했던 그해 말에는 25억 마르크 대 1$을 넘어 물경 수조 마르크 대 1$에 이르렀다. 우표 한 장 값이 5천만 마르크였다고 한다. 경제난은 당연히 정치적·사회적 불안을 격화시켰는데, 히틀러가 뮌헨에서 폭동을 일으켜 투옥된 것도 그때였다. 하지만 독일인민당의 스트레제만을 수반으로 하는 연립내각이 조직된(1923. 8) 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진력했다. 폭동이 어느 정도 진압된 후 1조 마르크를 렌텐은행이 발행한 1렌텐마르크로 교환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해 인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진정시켰다. 또한 독일의 전쟁배상금 지불을 위한 차관 공여와 프랑스의 루르 철수 등을 내용으로 하는 도즈안(案)에 따라 미국이 제공한 2억$의 차관도 경제안정에 기여했다. 온건한 외교정책을 편 스트레제만은 국제연맹에 가입해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는 등 바이마르공화국의 앞날에 약간의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히틀러에게 기회가 된 대공황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독일에 치명타를 가했다. 대서양을 건넌 공황은 영국과 프랑스에도 고통을 주었지만 특히 독일을 재기불능상태로 만들었다. 모든 은행이 폐쇄되고 모라토리움(지불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산업침체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독일은 대공황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히틀러의 나치스(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는 경제공황이 초래한 정치·경제·사회적 위기를 기회로 이용했다. 중산층과 중소농민도 생존을 위협받는 상태에서 독일인들은 베르사유조약의 파기, 배상금 지불 중지, 군비 확충 등을 주장하는가 하면 공산주의 타도와 유대인 말살을 외치며 독일의 부흥을 약속한 히틀러에게 투표하기 시작했다. 나치스는 1930년 선거에서 107석을 얻어 드디어 143석의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2당으로 부상했고, 1932년 7월 선거에서 나치스가 제1당(총 600석 가운데 230석)이 되었다.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다음해 1월에 히틀러에게 조각을 의뢰했다. 그날 밤 베를린은 밤새 소란스러웠고 시민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브란덴부르크문을 지나 수상관저로 향하는 제복차림의 나치스 돌격대·친위대·히틀러 유겐트, 기타 남녀노소의 횃불행렬이 줄을 이었다. 손에손에 나치스 깃발을 든 그들은 노래 부르고 춤추었다. 히틀러는 어느새 구세주가 되어 있었다. 물론 히틀러의 성공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대중의 심리를 파악하고 적절히 이용했다. 그의 모토는 “대중에게로 나가라”였다. 그는 대중에 직접 호소하는 것의 위력을 가장 잘 간파한 정치가 중의 1인이었고 또한 뛰어난 대중연설가였다. 논리나 이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간명한 말’을 반복해 강력하게 주장할 때에만 대중이 수용한다는 것을 믿고 실천했다. 그는 또한 신문과 방송의 위력을 잘 알고 적절히 이용했으며, 언론매체나 군중집회 등을 이용해 대중의 정서를 좌우할 줄도 알았다. 옥내외의 집회에서 열광하던 독일인들. 그는 달콤하고 통쾌한 수사로 그들을 웃고 울게 했다. 정권을 잡은 직후 히틀러는 공산당을 탄압할 좋은 기회를 얻었다. 1933년 2월 17일에 의사당에 불이 나자 그는 공산당원의 소행으로 몰아 공산당을 탄압했다. 1933년 3월의 선거에서 288석으로 의석을 늘린 히틀러는 5월에서 7월에 걸쳐 사회민주당·독일국민당·중앙당을 해산시키고 일당지배체제를 확립했다. 다음해 8월에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자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수상 겸 총통이 되어 명실 공히 독재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바이마르공화국은 무너지고 중세의 신성로마제국과 비스마르크제국에 이어 제3제국이 출현했던 것이다. M.베버는 베르사유조약이 조인되자 “우리는 앞으로 10년 안에 모두 다 국가주의자가 될 것이다”고 말했는데, 사실 독일인은 모두 국수적 국가주의자가 되었던 것이다. 옥내외의 군중집회나 거대한 열병식 어디에서나 그들은 ‘히틀러 만세’를 외쳤다. 15~18세 사내아이들은 ‘히틀러 청년단’에 들어가 나치의 자질을 준비했다. 일부 이성적 지식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독일인은 광신적 히틀러주의자가 되거나 적어도 국수주의자가 되었다.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 도발 강력한 독재체제를 구축한 히틀러는 안으로 공산당 탄압, 유대인 박해, 엄격한 통제경제, 군수산업 진흥정책을 강화하고 밖으로는 배상금 지불 거부와 재무장을 선언하는 등 베르사유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그 위에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은 물론 교육과 예술 부문까지 장악하여 사상의 통제를 강화했다. 나치즘은 국수적 민족주의와 반지성주의에 입각하고 공산주의 타도를 내건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라는 점에서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유사했다. 히틀러는 장엄한 분열식과 환상적 대중 집회를 통해 국민을 열광시키면서 군국주의적 독재체제를 날로 강화해 나갔다. 베르사유조약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재무장을 추진하던 히틀러는 1933년 10월에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1935년 1월에 주민의 직접투표를 통해 자르 지방을 병합하고 이어 징병제를 발표했으며, 베르사유조약과 상제르맹조약으로 병합이 영구히 금지된 오스트리아를 1938년 3월에 병합한 다음 동년 9월엔 체코의 슈테덴 병합을 요구했다. 전술했듯이 체임벌린은 뮌헨회담으로 전쟁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찬했지만 히틀러는 그렇듯 영·불의 우유부단을 비웃으며 다음해에 체코슬로바키아 전체를 점령해 버렸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국방군에게 폴란드 침공을 준비하도록 명했다(1939. 4). 그리고 1939년 8월 23일에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해 서부전선에만 전력투구할 수 있게 된 독일은 8월 31일 ~ 9월 1일 밤에 폴란드를 침공해 2차 대전을 도발했다. 체임벌린과 달라디에가 뮌헨에서 전쟁불사의 태도로 맞섰을 경우 히틀러는 한 발 물러섰을까? 혹 히틀러의 전쟁도발을 잠시 지연시킬 수는 있었을지 모르나 아닐 것이다. 자르 지방을 점령하고 오스트리아를 병합할 때 히틀러는 이미 유럽전쟁이나 세계대전을 도발할 각오였다. 비밀리에 독소불가침조약 체결을 추진한 것 또한 그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혹자는 폴란드 침공 역시 히틀러가 연합국의 의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나 히틀러의 머릿속에는 이미 세계대전과 유럽제패의 밑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국과 프랑스 등 자유세계가 평화보전에 지나치게 매달려 전쟁 초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본 문부 과학성은 8월 29일,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 3학년을 대상으로 금년 4월에 실시한 전국 학력·학습 상황 조사(전국 학력 테스트)의 결과를 공개 발표했다. 기초지식을 물어보는 문제의 평균 정답율은 중학 수학으로 참가교의 약 2할이 70%이상을 확보한 한편, 40~50%대의 학교가 약 3할이나 있는 등, 학교간 격차가 선명하게 나왔다. 지식의 활용력을 보는 문제의 정답율은 초,중 모두 5~6할로, 43년만에 실시한 작년도에 계속하여 과제로 지적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의 거의 전원에 해당하는 약 224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국어와 산수·수학 각각 기초를 묻는「지식」(A)과 응용력을 보는「활용」(B)의 2 분류로 나누어 출제했다. 한편, 생활 습관이나 학습 환경의 조사도 실시했다. 중학교 수학 A는 평균 정답율이 63. 9%이였지만, 학교 별로 보면▽70%대 1749교(참가교의 16. 5%)▽60%대 4921교( 동46. 6%)▽50%대 2763교( 동26. 1%)▽40%대 501교(동4. 7%)등 차이가 컸다. 초등학교 국어 A(평균 정답율 65. 6%)에서도, 정답율 70%대의 학교가 22. 4%있는 한편, 50%대의 학교도 19. 1%로, 기초 학력에 학교간에서 큰 격차가 있는 것을 알게았다. 분류별의 정답율은 초등학교 산수 A가 72. 3%로, 중학 국어 A는 74. 1%. A문제 4 분류의 정답율은 작년도보다 8. 1~16. 1포인트 낮았다. B문제 4 분류는 50. 0~61. 5%로, 10. 5~12. 3포인트 저하된 수치이다. 문부과학성은「과거의 조사에서 과제로 지적된내용을 많이 출제했기 때문에, 작년도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작년의 정답율로 단순하게는 비교할 수 없다」라고 하고 있다. 평균 정답율의 도도부현간 격차(공립학교)는, 최대의 중학 수학 A로 22. 5포인트 였으며, 최소인 중학 국어 A에서도 10. 8포인트 차가 났다.아키타가 5 분류로 톱으로 후쿠이, 토야마도 많은 분류로 상위에 올랐으며, 오키나와는 전분류 최하위로, 오사카나 홋카이도, 코치 등이 성적이 낮았다. 상위층과 하위층의 대상은 작년도와 거의 같았다. 작년도와 같이 취학 원조를 받는 아동 학생의 비율이 높은 학교는 정답율이 낮은 경향을 볼 수 있었다. 학습 환경 등의 조사에서는 국어 수학이나 종합 학습이「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한 아동 학생의 비율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의 국제중학교 설립추진과 함께 사교육열풍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학부모들이 어쨌든 일반 중학교보다는 무엇이 좋아도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외국어고등학교 등의 특목고의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았던 이유와 같다는 생각이다. 벌써부터 학원가에서는 국제중입시에 촛점을 맞춰 수강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불법 과장광고를 낸 학원들이 서울시교육청에 적발되어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국제중 설립방침에 따라 여기에 맞게 국제중학교 대비반을 운영하고 있는 학원들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나섰는데, 그 실효성에 의문이 있을 뿐 아니라 정말로 학원들의 과장 과대광고를 막기위한 조치인지 의구심이 든다. 그렇게 의구심을 갖는 이유는 국제중학교 설립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의도적으로 하는 행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사교육과 국제중학교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방안일수 있는 것이다. 여론이 잠시 수그러들면 다시 국제중학교 설립의 정당성을 부각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중학교 설립에 따른 사교육비 증가가 일시적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분위기와 그동안의 분위기를 미루어볼때 일시적으로 끝날 확률은 높지 않다고 본다. 학교교육이 아닌 사교육에 의존하여 상급학교 진학을 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국제중학교설립이라는 구실을 만들어 준 다음에 국제중 운영대비반등을 운영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원을 단속한다는 것은 앞 뒤가 안맞는 조치이다. 많은 시민들이 우려했던 것을 귀담아 듣지 않고 서둘러 결정내린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인 것이다. 어쨌든 불법적인 영업을 하는 학원들에 대한 단속이 시작되었으니 일회성으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할려면 제대로 하여 국제중학교 입시학원들의 불법 영업을 막아 달라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끝난다면 단속이 이루어질 때는 잠시 쉬었다가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으면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안하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된다. 한편으로는 서울시교육청에서학원들만 단속하는 것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국제중 설립을 서둘러서 발표함으로써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못하였고, 신입생선발을 두고도 말이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학원들을 무조건 단속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기 때문이다. 선발방식 자체를 손질하여 학원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결국 시교육청에서 문제 발생을 유도해 놓고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 단속하는 것은 분명 앞,뒤가 안맞는 조치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왕 시작한 불법학원단속 방침이 지속되어야 한다. 여기에 국제중학교 입시와 관련한 다양한 선발방식개발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몰아가서는 안된다. 모두가 공감하고 인정하는 방안이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 현재로써는 이보다 더 급한일은 없다는 생각이다. 병주고 약주는 식의 단속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시가 수학 시험을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뉴욕시는 지금까지는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2학년에 대해서는 교사와 1대1 면담 방식으로 20분에서 30분간 진행되는 교양 시험만 실시해 왔다. 뉴욕시 교육부에 따르면 이달 25일 시내 1천400여개 학교에 시범사업 참여를 독려하는 이메일을 보낸 결과 65개교가 긍정적 반응을 보여 1만2천명의 유치원생 및 초등학교 1,2학년생이 올해부터 수학 시험을 함께 보게 됐다. 이들 학교는 과목당 60분에서 90분간 진행되는 주.객관식 문제풀이나 컴퓨터를 이용한 30분짜리 시험, 교사와의 1대1 면담 등 5가지 시험 방식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 뉴욕시는 이번 사업에 4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며 내년 중간평가를 실시해 지속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뉴욕시 교육계와 학부모들은 이러한 변화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뉴욕시 교원노조(UFT)의 랜디 웨인가르텐 위원장은 "일단 (성적) 정보가 마련되면 학교당국이 이를 개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살펴 때이른 평가를 내리는 데 쓸 소지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뉴욕시는 조지 부시 행정부가 학습 지진아의 성적 향상을 위해 2002년 도입한 '낙제학생방지법(NCLB:No Child Left Behind)'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초등학교 3학년부터 12학년까지의 시험점수를 학교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이러한 시험 위주 교육정책이 학생들의 창의력을 빼앗고 학교 교육을 획일적 시험에서 더 좋은 점수를 올리기 위한 반복연습으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사업이 유치원마저 시험을 위한 예습장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시험 위주의 NCLB 정책은 미국에서 전국적 논란의 대상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학생들의 수학 및 읽기 능력은 향상됐지만 역사와 음악 등 다른 과목 점수는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 20%를 차등지급했던 교원성과상여금(성과금)의 지급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차등폭을 30%로 늘려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연히 교직단체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선학교 교원들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머지 부분은 이해를 한다고 해도 현실에 잘 맞지 않는 기준을 정해서 학교에서 나름대로 순위를 정하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동안 교직단체들이 줄기차게 주장했던 부분들인데도 전혀 반영되징 않고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교직단체들과의 협의도 단순히 설명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차등지급폭을 30%로 늘리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해에는 경력위주로 순위를 정하지 말라고 권장함으로써 일선학교들은 철저히 경력을 배제하였다. 경력위주로 지급되던 교원성과금의 관행이 지난해에 깨진 것이다. 그것을 깬 것에 만족하지 않고 올해는 30%로 차등폭을 높이고 지금기준액수도 높이겠다고 한다. 여기에 교과부의 숨은의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올해 30%를 고집하면서 지급액을 높임으로써 반납에 대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지급액이 많아질수록 교원들의 동요가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급액이 많지 않을때는 단순히 반납운동에 동참해도 크게 갈등을 겪지 않았지만 지급액이 많아지면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해보다 반납하는 교원들의 수가 줄어들수 있는 이유이다. 이렇듯 반납하는 인원이 줄어들면 교과부에서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셈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또 한가지 의도가 있다고 본다. 반납하는 교원들의 수가 줄어들면 내년부터는 차등폭을 40%가 아닌 50%이상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 교원들에게 성과금이라는 달콤한 선물을 하면서 향후 완벽한 차등지급을 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힘없고 생각이 단순한 교원들이 충분히 말려들 개연성이 있다. 여기에 각 학교의 관리자들을 교묘하게 압박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함께 하고 있어 명확한 기준없이 성과금이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것이 아니다. 성과금을 지급함에 있어서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기준을 학교에서 만들도록 강요하지 말고 다양한 연구와 검토를 통해 기준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기준의 예시를 1-2개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조직특성을 지닌 학교사회에 맞춰서 기준을 여러개 정하고 그것을 예시로 제시하라는 것이다. 납득할만한 객관적인 지표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 한가지 하고싶은 이야기는 교원들을 등급으로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재 학교사회가 여러가지 평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근평, 성과금, 교원평가 등이 바로 그런것들인데, 근평에서 우수한 성적표를 받아든 교사가 성과금에서 뒤로 밀린다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여러가지 제도를 도입하면서 교원들을 등급으로 평가할 우려가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교원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 지급을 강행하지 말고 이런 부분들을 검토해야 한다. 일선학교 교장이나 교감들은 교사들 편이 되어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평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 해당교사의 내면적인 측면까지 정확히 꿰뚫고 평가를 해야한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가 현재까지는 어렵기 때문에 좀더 시간을 두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성과금을 얼마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성과금의 지급이 되어야 한다. 단순한 교원들을 이용하여 100%차등지급을 이루려는 의도를 버려야 한다. 그 이전에 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머리를 맞대고 충분한 고민을 한다면 의외로 해결의 실마리는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있다. 일단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자꾸 속셈만 드러내지 말고 같이 노력해야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