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독도의 날’과 칙령 41호
국제법 기준‘누가 발견해 관리하고 있나’ 칙령 41호 기념해영토 주권 환기시켜야 독도는 2개의 작은 암초로 되어 있다. 예로부터 사람이 살 수 있는 섬도 아니고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섬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지도나 고문헌에 울릉도와 더불어 독도가 표기된 것은 상징적으로 조선의 영역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독도는 한국의 울릉도에서는 보이지만, 일본의 오키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한국의 울릉도 사람들에게는 예로부터 독도에 대한 영역의식이 생겨났고, 일본인에게는 독도에 대한 영역의식이 생겨나지 않았다. 세종실록 지리지나 숙종실록 지리지에 울릉도와 우산도(독도)가 등장하는 것은 동해의 울릉도에 왜구가 침입하였기 때문이다. 영토에 위기가 닥칠 때 일수록 더욱 영토의식이 강하게 나타나 독도까지도 영역표시를 명확히 했던 것이다. 1876년 일본의 강압에 의해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자 조선의 문호는 개방되었으며 일본의 한국침략은 본격화되었다. 특히 울릉도에 일본인들이 빈번히 침입했다. 조선조정은 울릉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울릉도에 조선인을 이주시켰다. 더 나아가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강하게 집착하자 조선조정은 동해의 주변 섬에 대한 행
- 최장근 최장근 대구대 일본어일본학과 교수
- 2010-10-20 1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