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떠납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자의든 타의든 교직을 떠나야했던 IMF때가 생각납니다. 이 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우리는 슬기롭게 극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IMF는 우리 교육계에 칼바람 같은 경쟁 사회처럼 엄숙한 잣대를 요구하고 떠났습니다.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고, 아이들을 지도해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쏟아져 나오는 공문서를 잘 처리하고,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는 것과 같이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만을 중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아이들에게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듯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어루만지는 일이야말로 오늘날의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대와 세대가 공존하고, 연륜과 경험을 존경하는 울타리 속에서 아이들은 우리의 전통과 미래를 함께 배우고 익혀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 때가 되면 떠나겠지만 노을처럼 아름다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 떠날 수 있는 학교를 꿈꾸어 봅니다. 오늘도 노년의 육신으로 제자들 앞에 서신 선생님들이 기능과 성과라는 칼바람에 떠밀리지 않는 학교를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출근길, 현관을 들어서면 아무도 치우지 못한 신발장 위 낡은 슬리퍼 한 켤레가 눈길을 잡는다. 걸어온 길들을 웅변하는 듯 닳아빠진 뒤꿈치로 여행의 고단을 말해주고 있다. 오랜 세월 접어 넣은 주름들을 걸치고 오늘도 어린 세상들을 맞으려는지 무수한 상처들을 데리고 토닥여주던 선생님의 보람이 걸어 나올 것 같다. 어딘가에 떨구고 온 발자국이 아파서일까 흰 머리칼처럼 실밥도 풀어지고 짐 지웠던 가슴처럼 시커멓게 때가 앉았지만 세상을 안내해주던 걸음, 걸음은 우리들의 길을 밝히는 불빛이 되어준다. 떠나실 때 잊고 가신 한 켤레 슬리퍼 그 아름다운 남루를 보면 나는 아침마다 숙연해지는 숨을 들이키며 하루의 계단을 올라 아이들에게 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