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이란 다큐멘터리를 보면 탁 트인 스페이스에서 펼쳐지는 야생동물들의 자유로운 생활은 복잡 다양한 현대 물질문명과는 너무 대조된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생긴 하나의 궁금증은 인간들은 수많은 질병으로 고통받고 생명을 잃어 가는데 왜 동물들은 질병이 적은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동물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연 속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뛰고 움직인다. 치열한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생존과 직결되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신체활동을 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의 뒤돌아보자. 자동화와 사무화의 부산물이 되어 버린 우리는 과연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신체 활동을 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선 빌딩숲 속에 푹 파묻혀 각종 스트레스와 시름하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제 3세계인 사이버 공간은 더 많은 사람들을 모니터 앞으로 끌어당겨 활동의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 사람은 신체구조상 항상 움직이도록 역학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보라.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생활하는 학교 운동장을 보라. 한참 성장기에 처해 있는 우리 아이들이 뛰어 놀기엔 턱없이 비좁은 곳이다. 아동
교사의 주요한 임무는 가르치는 일이다. 학교가 교육의 장이라면 당연히 교사의 생명은 수업에 있다.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하고 훌륭한 수업을 위해 교재연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바로 교사잡무 때문이다. 특히 초등학교는 더 심하다. 수업보다 잡무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면 그것은 교사가 아니라 사무직이다. 교사로서의 정체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사의 잡무를 없애야 한다고 외쳤지만 결국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왜 그런가. 우선 지역사회가 떠맡아야 할 행사나 활동이 힘없는 학교의 몫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카우트, 아람단, 해양소년단, 우주단 등 청소년 단체활동은 아동의 전인교육 측면에서 바람직한 활동이지만 교사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정 단체가 맡아야 할 활동을 교사가 떠안고 신음하고 있다. 그것은 학교를 힘없는 하부 말단기관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1년 동안 날아오는 각종 공문서는 수천 건에 이른다. 그중 필수 공문서의 비율은 20%안팎에 불과하다고 한다.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각종 공문서를 비롯해 유관기관, 청소년 단체활동, 각종 감사나 평가 등의 업무가 여전히 학교와 교사를 옥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