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문화예술을 담당하고 있다. 음악 전담을 맡고 있기 때문에 붙은 업무다. 음악 수업을 제대로 하는 것도 힘겨운 판인데, 학교의 문화행사 준비와 음악과 관련된 것은 내 일이다. 공연을 준비해야 했다. 그냥 무대를 준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공연의 주제와 구체적인 내용까지 기획하고 아이들을 지도하고 훈련시키는데다가 무대 위에 올라가 지휘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무대감독에 더해 팔자에도 없는 마에스트로가 되었다. 나에게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졸업하고 군 전역하기까지 음악 대회는커녕 학교 장기자랑도 나가본 적이 없다. 뭘 어떻게 준비하고 시작해야할지 말 그대로 감도 오지 않았다. 무대에 올라가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악기를 연주한다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내가 갑자기 연예기획사를 차려야 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섯 학년의 네 과목 전담에 매일 오후가 회의로 채워지는 6학급 소규모 학교라 정신없이 지나가다 보니, 대회 준비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심지어 교무부장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 관심 사안이라고 할 때까지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일
병역을 마치고 바로 교사로 임용이 되었을 때는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할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임용은 오래 전에 봤고, 당장 학생들에게 직접 가르쳐야 하는 교육과정의 내용들도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전역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준비는커녕 군대에서 쓰던 짐도 정리하지 못한 채로 아이들을 맞아야 했다. 교사로서 맞이해야 할 가장 큰 문제가 교실에서 부딪쳐야 될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착각이었다. 교사는 교육자이기 전에 조직에 속한 공무원이었던 것이다. 군부대와 마찬가지로 학교도 일상적으로 하는 과업과 별개로 각종 구호와 선언을 앞세우는 개혁 프로그램이 동시에 진행된다. 당연히 대학에서는 업무 매뉴얼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반론적인 교육학 이론과 교과 교육과정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세세한 데까지 신경 써서 만든 경이로운 것인지만 배우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잘 모를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업무에 실수가 잦은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마산초등학교는 혁신학교다. 나는 혁신학교에 대해 신문에서나 얼핏 들어봤지 자세한 것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발령받고 얼마 지나지
초등학교 교사들은 모든 과목을 가르치지만, 모든 영역에 걸쳐 고루 재능을 갖춘 소수의 인재들을 제외한다면 잘하는 영역과 못하는 영역의 구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본인 역시 그러한데, 글을 읽고 쓰거나 어디 단상 위에 올라가 무엇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에 올라가라고 하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으나 갑자기 어떤 재료로 미술 작품을 조형하라고 하거나 음악 공연을 하라고 하면 적잖이 당황하게 한다. 초등교사라면 자신의 능력 조합에 맞지 않는 현장에 한 번씩은 서게 된다. 화성시에는 관내 학교들이 참여해야 하는 ‘화성오산 어울림한마당’이라는 종합예술제가 있다. 음악, 미술은 물론이고 학생 백일장까지 갖춰져 교과 교육의 틀 내에서 마음껏 발휘하기 힘들었던 다방면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 학교에서는 문화 예술 담당이 매년 이 대회에 음악 공연을 출품해온 모양이라, 신규교사에 처음 음악전담을 맡아 본 본인으로선 엉겁결에 자세한 곡절과 영문도 모르고 대회 준비를 떠맡게 되었다. 온갖 업무와 6개 학년 4개 교과 전담과목 수업에 치이면서 부랴부랴 짬을 내 공연 준비를 하는데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라는 사람은 있어도 어떻게 하라고 가
방학이란 건 다음 학기를 준비하며 여유를 가지고 잠시 숨을 돌리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 못한 듯하다. 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6명의 5학년 악동들을 방학식 날 보결로 맡게 되면서 “여러분, 즐거운 여름 방학이에요. 푹 쉬고 8월에 다시 봅시다”라며 인사했더니 아이들은 “흥, 우리는 내일도 모레도 학교 온 단 말이에요. 선생님이나 안 오지!”라고 앙칼진 반응을 보였다. “여러분, 선생님이 방학 때 논다는 건 편견이에요. 선생님들도 나름 바쁘답니다.” “으아~ 나도 놀고 싶다.” 방학 중엔 빽빽한 학사 일정에서 벗어나 시골 아이들답게 자유롭게 뛰어 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거야말로 내 편견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우리 학교 학부모님들은 아이들이 학습 부담에 짓눌리지 않고 애들답게 즐겁게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데 교육 철학을 두고 계셔서 비교적 자유롭게 방학에 쉬는 편이다. 하지만 방학이 되고 나서도 방과 후 수업을 받으려고 꼬박꼬박 학교에 붙잡혀 점심시간은 되어야 스쿨버스 타고 하교할 수 있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 녀석들과 비교해서는 ‘도시 아이’ 출신이므로 가
올해는 교과 전담교사를 맡게 되었다. 담임을 맡았던 작년보다는 여유로운 아침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침마다 어학실로 놀러 오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통근시간이 자가 운전으로 한 시간이 넘는지라 지각하지 않기 위해 일찍 출근하는데, 이 아이는 나만큼 일찍 와서 어느새 어학실에 달려와 놀아달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이 녀석은 ‘선생님 의자에 앉으면 안돼요’라고 말하는 내게 ‘아니에요, 돼요’라고 말하며 내 의자를 차지하고는 밀어 달라고 하고 엉덩이에 잔뜩 힘을 주어 의자에서 자기를 밀어내려는 나를 놀이 대상으로 삼았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어학실로 놀러오는 이 녀석 탓에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해 아침을 먹는 나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마산초등학교는 포도밭과 농가뿐인 주변에서 덩그러니 육지의 섬처럼 솟아있다. 주변에는 상가는커녕 민가도 몇 채 없다. 학교 버스가 아니면 도보로 오갈 수 없는 곳이다. 모든 등하교가 학교 버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등하교 지도는 편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학교에 오는 순간 학교 밖으로 놀러 나갈 수 없어 영락없이 갇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여자 아이는 학교 버스보다 한참 먼저 학교에 와 있어 놀 사람이
브론펜브레너는 아동이 교실에서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생태적 환경에서 배운다고 했다. 이는 루소가 에밀에서 말한 ‘아동은 자연만물로부터 배운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브론펜브레너가 말한 생태는 자연 환경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아동이 속한 사회적 배경과 거시적 문화체계 전반을 이른다. 즉, 아동을 키우고 기르는 것은 교사와 부모뿐이 아니라 그 맥락이 되는 문명 전체다. 도시 아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학습 환경 속에 있다는 마산초의 아이들도 4차 산업혁명을 눈앞에 뒀다는 초연결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한창 유튜브에 빠져 있다. 스쿨버스가 없으면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아이들은 현관 앞 기둥에 기대어 앉거나 나무그늘 아래에 웅크려 유튜브 선생님의 인터넷 방송으로 방과 후를 보낸다.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하든 통하지 않든, 어른들이 만든 부조리한 질서와 폭력을 접하고 수용한다. 인터넷 방송은 가장 자극적이고 직접적으로 폭력적 사고방식과 사회적 위계에 근거한 차별, 왜곡된 성 문화 등을 전한다. 아이들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회에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진짜 사회를 배우는 것이다. 교사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 일종의 게이트키퍼 기능을 한다고 생각
결국 생존을 위해서는 마산초에서 5.5km를 걸어서 사강리까지 걸어가야 한다. 같은 송산면임에도 포도농원과 공장 부지로만 이루어진 마산리와는 달리 사강리에는 여러 가게들이 있어 생활을 위해서는 반드시 사강까지는 가야한다. 편의상 ‘읍내’라고 부르지만, 마산리와 사강리가 속한 송산은 읍이 아니라 면이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5.5km라면 포병학교에서 병과교육을 받을 때는 체력 단련을 위해 뛰어서도 가던 거리였지만, 퇴근하고 쇼핑을 하러 가기에는 아무래도 귀찮고 힘들다. 법·율·장의 진리가 있다는 천축을 향해 순례하던 현장 삼장법사처럼,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뉘엿뉘엿 지는 노을을 뒤로 하며 편의점이 있다 전해지는 송산 중심가를 향해 걸었다.한 시간 반 정도를 걸었을까, 드디어 편의점에 도착했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우니 커피를 마시고 싶은 도시인의 본성이 깨어나 나는 읍내를 헤매었고, 끝내 미미 다방에 이르렀다. 글쎄, 천축국에 도달했을 때의 당나라 삼장법사의 심정이 이랬을까. 그곳은 나와 시·공간이 다른 철저한 이방이었다.엄마뻘의 마담은 비음이 잔뜩 들어간 간드러진 목소리로 긴 다리를 꼬고는 더욱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에게 애교를 떨고 있었다.
흔히 교사들은 체제 순응적인 이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바라고 들어온다고 하지만, 진보적인 프로그램으로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 믿는 이들에게 적합한 직역이다. 직접적으로 학교 교육의 틀에 철학과 이상을 담아 실천하고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과 변화가 있는지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가부장적 젠더 지배를 타파하고 진정한 성 평등을 이루려 한다면 페미니즘 정당에 투표하고 여성주의 시위에 참가하는 것 이상으로, 학급 운영과 교과 교육과정 재구성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실제로 교실에서는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고, 이 실험들은 나름의 이데올로기적 전망과 관점들에 토대를 두고 있다. 국민들이 교사들의 이념 편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교육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든 움직임은 결국 특정한 이념 지향을 내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처음은 언제나 서툴기 마련이라지만, 첫 담임은 결코 쉽지 않았다. 소규모 학급인 탓에 20~30명 규모를 전제로 한 교사용 지도서의 학습 활동들은 전부 재구성해야 했고, 이전 담임 선생님이 워낙 훌륭한 분이었던지라 내가 웬만큼 몸을 던져 활동들과 이벤트를 기획하더라도 아이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이전 담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이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메시지가 가득하다는 것을 느낀다. 지배세력의 이익을 대변하여 한 사회의 주류 가치로 자리매김했을 뿐인 뻔한 도덕을 권선징악의 싸움터로 동원하여 반복 선전하기보다, 자신에게 친숙했던 모든 배경을 뒤로 하고 더 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문화 상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사회의 큰 자산일 것이다. 그것은 많은 이들에게 무비판적으로 구질서에 영합하고 인정 투쟁의 아귀다툼에 빠지기보다는 경계를 넘어 사유하고 탈주할 수 있는 상상력과 꿈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6명의 아이들은 언제나 함께였다. 남자, 여자 각 3명씩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한 학년의 전부다. 전체 학생 수가 49명인 마산초등학교는 교육부의 폐교 권고 기준인 60명을 밑돈다. 그런 소규모 학교인 탓에, 이 아이들은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유치원생일 때부터 그럭저럭 청소년에 가까운 꼴을 갖춘 지금까지 줄곧 한 공간에서 함께 성장해왔다.학교에 대해서도, 서로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전혀 없는 이 녀석들에게 막 병역을 마치고 담임이 된 나는 그저 애송이 외부인에 지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