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지대, 벌건 흙먼지 날리는 황량한 산길에 칠판을 멘 남자들이 나타난다. “구구단을 배우세요, 이름 쓰는 것도 가르쳐 드려요. 돈 대신 먹을 것 주셔도 돼요.” 하지만, 아무리 목청을 높여 봐도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 한 무리의 남자들은 커다란 칠판을 등에 지고 학생들을 찾아 이란과 이라크 국경지대를 헤매는 교사들이다. 마을과 마을을 떠돌며 방랑하는 이들 무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오직 흔들리는 카메라뿐이다. 그들이 가진 모든 것, 칠판 다큐멘터리처럼 시작한 영화 칠판은 이윽고 선생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리부아르(바흐만 고바디)와 사이드(사이드 모하마디), 두 남자의 여정을 따라간다. 산 위쪽으로 방향을 정한 리부아르는 이란과 이라크를 넘나들며 불법으로 밀수품과 장물을 운반하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난다. 갈 길 바쁜 아이들을 막아서서 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지만, 그들에게 리부아르는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글을 배우면 책도 읽을 수 있고, 신문도 읽을 수 있다”며 설득하는 리부아르. 하지만 아이들은 하루하루 밥벌이가 중요할 뿐, 글쓰기도 읽기도 구구단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리부아르는 끈질기게
인생의 반환점에서 만난 타임 리프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주인공 곤노 마코토는 명랑한 열일곱 살 소녀다. 아침마다 늦잠을 자서 턱걸이로 지각을 면해도 등굣길을 나서는 마음은 즐겁기만 하다. 마코토에게는 늘 장난을 거는 유쾌한 치아키와 어른스러운 모범생 고스케라는 듬직한 두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면 세 사람만의 즐거운 야구연습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푸르디푸른 나무들이 우거진 교정, 파란 하늘이 눈부신 여름. 청춘의 가장 빛나는 한 때를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인생의 심각한 고민 따위는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마코토에게도 결정과 선택의 시간이 찾아온다. 선생님은 문과냐, 이과냐 진로를 묻고 단짝 친구 치아키와 고스케에게는 그들을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등장한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좋았던 소녀의 시간은, 이제 반환점을 만난 것이다. 7월 13일. 일본어 발음으로 ‘나이스 데이’라 불리는 날 마코토는 턱걸이로 지각을 면하고 하루 종일 의도치 않은 불운한 일들을 겪는다. 가사 실습 시간엔 그녀의 프라이팬에 불이 붙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친구랑 교정을 걸어가는데 난데없이 공이 날아와 머리에 맞는다. 그리고
살다 보면 인생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가 있다. 나이를 한두 살 더 먹을수록 삶이란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음을, 때론 나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흘러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살면서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마음 한 구석이 참 쓸쓸해진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서 후회만 켜켜이 쌓일 때, 앞으로 걸어갈 길도 뿌옇게 흐린 안개뿐 별다른 희망이나 반전이 기대되지 않을 때…. 그래도 용기를 내어 인생을 정면으로 응시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거리의 악사와 꽃 파는 소녀 그런데 여기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르는 노래가 그런 나약한 인생에게 눈물 나게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한다. 그들을 보면서,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다시금 삶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조용한 거리에 한 남자의 거친 기타 연주와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누구 하나 쳐다보는 이 없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난한 악사 ‘그’(글렌 한사드). 한 손엔 꽃바구니를 든 채 그의 앞에 멈추어 서서 노래를 듣던 ‘그녀’(마르케타 이글로바)는 진심어린 박수로 그의 노래에 화답한다.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도 없지만 음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