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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10대 10명 가운데 1명은 마약을 사용한 적이 있으며, 초등학생도 포함되었다는 충격적인 뉴스입니다. 무려 48%의 청소년이 성인용 영상물을 이용한다고 합니다(MBN, 2023.6.22.).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게임중독·스마트폰중독·야동중독 등 다양한 중독현상을 거치면서 둔감해진 모양입니다. 중독은 개인적 일탈이며, 시간이 지나면 대다수 아이는 별다른 문제 없이 학교를 졸업하기 때문입니다. 근데 이건 착각입니다.

 

대상만 바뀔 뿐 절대 치유되지 않는 중독 
중독은 시간이 저절로 치유해 주지 않습니다. 중독자는 그저 다른 중독 대상물로 갈아탈 뿐입니다. 게임에서 술·도박·섹스·마약으로 좀 더 확실하고 강하게 쾌감을 주는 방식으로 옮겨갑니다. 중독은 개인의 취약성 또는 도덕성 문제가 아닙니다.

 

관계 단절감에서 오는 외로움과 고독감, 박탈된 꿈에서 오는 공허감과 상실감, 공부와 경쟁 스트레스를 포함한 각종 트라우마에 괴로워하는 아이들은 인스턴트 해결책을 찾습니다. 스트레스를 스스로 극복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어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외적 요소에 일시적으로나마 의존하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의도치 않게 한몫거든 면도 있습니다. 아기가 보채면 입에 고무젖꼭지를 물립니다. 재갈이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가짜에 위안을 얻게 합니다. 아동이 지루해하면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 주어 쾌감 소비자로 만듭니다. 성적을 단기간에 올리기 위해 아이를 족집게 학원에 맡깁니다.

 

아이가 아파하면 진통제로 고통을 즉각 덜어줍니다. 과잉행동하는 학생에게 곧바로 ADHD약이 처방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이를 인스턴트 해결책에 길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싶습니다. 중독문제는 아이가 양육되고 교육되는 환경과 과정을 바꾸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적 문제입니다. 


한국보다 한두 세대 먼저 중독이 사회적 문제가 된 미국이 중독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면 반면교사로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1980년 초부터 백악관이 나서서 강력한 마약 근절 캠페인을 시작하였습니다. 처벌을 강화하고 모든 학교에서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는 홍보 프로그램을 시행했습니다. 


1980년 중반에는 마약 중독(addiction) 대신 마약 사용(use)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독자’라는 낙인을 찍지 않아야 마약 사용자가 좀 더 자발적으로 치료에 참여할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마약 주사기를 마약 사용자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공공 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재사용된 마약 주사기로 인한 감염 관련 질병을 줄일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선의의 보건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도에 실시된 연방정부 연구는 이 모든 노력이 대실패였다는 결론을 내렸고, 지금 미국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중독사회가 돼버렸습니다. 현재 미국인 5명 중 1명이 마약을, 거의 절반이 대마초를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는 인구 1명당 1.7번씩이나 처방되어 대거 남용되고 있으며, 2세부터 17세 아동 중 11%가 마약성분의 각성제이거나 진정제인 ADHD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NCDAS, 국가약물남용통계센터, 2023). 


중독 치료비용은 한 명당 평균 3,600만 원이나 되지만, 그마저도 치유 성공률에 대한 확실한 통계는 없습니다. 대다수는 치료받지 못한 채 매일 300명이 마약 과복용으로 사망합니다(CDC, 질병통제예방센터). 약물 남용으로 인한 의료·사법·생산성 손실 및 사회적 비용은 2020년도에만 7,400억 달러(거의 1,000조 원)나 됩니다(NIDA, 미국마약남용센터, 2020). 

 

대한민국의 가장 심각한 중독, 수능 중독 
중독자를 범죄자로 여기는 무관용 정책과 강력한 법적 처벌은 실패했습니다. 중독자를 환자로 여기며 치유에 방점을 둔 정책도 실패했습니다.

 

미국 사례에서 배울 것은 처벌과 치료만으로 중독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함께 빨리 예방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합니다. 상류에 독극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내버려 두고 하류에 처리시설을 갖춘들 결국 지는 게임입니다. 우리는 인스턴트 해결책이 아니라 원천에 개입해야 합니다. 


학교는 이제 학생들에게 정신건강을 위한 회복탄력성 방법을 가르치고 지도해야 합니다. 회복탄력성이란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인내심으로 견디어 내거나 깡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내적 힘을 길러서 성장동력으로 승화시키는 기술입니다.


치아건강을 위해 어릴 때 가르쳐 준 양치질이 평생 가듯이 학생시절 배운 회복탄력성이 평생 정신건강을 지키게 해줍니다. 양치질 가르치는 시간이면 회복탄력성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학교는 이미 빽빽한 교과과정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심각한 중독에 빠져있다는 증거입니다. 교과과정이 터지도록 꽉 채운 ‘수능시험’이라는 중독입니다.


중독의 특성은 ‘특정 물질이나 행동에 대한 강렬한 욕구, 많은 시간과 돈 소비, 이로 인해 건강문제, 중단하려고 할 때 금단증상 등이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수능시험은 이러한 특성을 다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능시험을 잘 보려는 강렬한 욕구가 있고, 시험준비에 많은 시간과 돈을 소비하며, 그 과정에 아이들을 세계 최고 수준의 불행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수능시험 대비가 아닌 것을 하려고 하면 불안해집니다. 교육문제의 핵심은 입시라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다 알지만, 아무도 꼼짝달싹하지 못하니 집단중독 상태인가 봅니다. 그러니 수능시험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가장 심각한 중독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인스턴트 해결책과 가짜 쾌감이 아닌 ‘진짜’를 위한 교육
약과 마약은 한 끗 차이입니다. 적당하면 약이고 지나치면 독이 됩니다. 현재 수능시험은 정도가 지나쳤고 유효기간도 지났습니다. 산업화의 원동력이며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 낸 성공적인 방법이었지만, 창의력 시대에는 오히려 걸림돌입니다.

 

창의력은 모험심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행위입니다. 실수와 실패가 거듭되고 실망감과 좌절감이 도사리는 험난한 과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스스로 소화해 낼 능력을 갖추어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학자인 유발 하라리 박사도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정서지능과 정신적 견고함입니다. 변화무쌍한 미래 세상에 확실하게 필요한 것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계속해서 자신을 재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한 번의 실수로 인생이 판가름 나게 하고 세상과 단절되어 온종일 고독히 홀로 공부해야 하는 수능시험은 창의력 말살 교육인 셈입니다. 아이를 단절감과 고립감에 찌들게 하여 중독 취약성을 높이는 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능시험 중독에서 벗어나야 다른 중독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국·영·수·사·과 내용을 조금 줄이는 대신 운동시간은 늘리고, 정신건강을 위한 회복탄력성을 가르치고, 그래도 약간 남은 시간은 그냥 ‘여유’로 남겨두면 됩니다. 이럴 때 학생들의 창의력도 커지고, 학습의 즐거움을 맛보면 중독의 유혹에 맞싸우며 가짜 쾌감에 의존할 필요성을 막을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마약을 할 때 느껴지는 평온함은 누군가에게 포근하게 감싸 안기는 아기가 된 기분이라고 합니다. 안전감과 연결감은 어릴 적 가정에서 충분히 얻지 못하면 마약을 통해서라도 얻어야만 살 수 있는 인간의 가장 기본 욕구입니다. 아이가 단절감과 불안감의 탈출구를 엉뚱한 곳에서 찾지 않도록 예방해야 합니다. 그래서 애착육아와 가족 간 유대감을 강화해야 합니다. 


다행히 한국은 대단한 학습사회입니다. 한번 목표가 정해지면 모든 역량을 다 쏟아붓는 교육열을 지녔습니다. 그 엄청난 교육열을 식히려고 하지 말고 방향만 약간 틀어주면 되겠습니다. 학교에서 정서지능과 회복탄력성 강화 기술을 가르쳐주고 가정에서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면 됩니다. 19세 대입 성공이 아니라 91세 대기만성이 목표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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