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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공정’의 덫에 걸린 우리 사회,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가?

최근 우리 사회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거기엔 온통 불공정이 화두였다. ‘조국 사태’에서 빚어진 입시의 불공정 논의는 정권의 명암을 가르는 분수령이 되었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여야의 후보들도 온통 ‘공정’만을 외쳤다. 불공정을 바로 잡겠다는 공약을 마치 통과의례처럼 똑같이 내세웠었다. 과거에는 꿈꾸지 못했던 ‘공정한 경쟁’을 내세워 당의 대표가 된 젊은 정치인도 있었다. ‘공정과 상식’을 외치며 국민의 지지를 받아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그렇다면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면 우리 사회는 좋은 사회가 될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과 노인 빈곤률, 그리고 매우 낮은 수준의 행복지수를 보여주고 있다. 그뿐이랴. 가장 많은 청소년이 우울증을 앓고 있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죽어가고 있으며 가장 낮은 출산율은 미래의 국가 존재조차 불확실하여 세계에서 가장 먼저 소멸할 국가로 예측된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우리는 사회집단의 갈등조차 가장 극심한 나라다. 그야말로 평화로운 일상을 찾아보기가 힘든 나라가 되었다. 이것이 2021년 7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된 결과란 말인가?

 

이런 문제들의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우리 사회가 너무도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국민의 분노는 상한선이 없을 정도로 치솟고 있다. 즉, 불공정하고 특권의식에 찌든 우리 사회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너무도 크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의 눈에는 온통 불공정만이 보이고 따라서 ‘공정’을 국가 비전으로 삼으려는 이상한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엔 심각한 함정이 있다. 바로 그들은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역설적으로 공정은 기득권과 특권을 지켜주는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너무 많은 사람들의 행복은 우연의 일치에 달려있다. 이는 부모·출신·성별·돈에 근거한다. 이것은 불공정하다.” 이 말은 최근 독일 총선에서 권역별 비례대표로 당선된 이예원(Ye-One Rhie·34) 의원이 한 일간지(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일에서 부모가 대학에 가지 않은 아이 중에 21%만이 대학에 가는 반면, 부모가 고학력자인 아이들의 74%는 대학에 가기로 결정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다시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자. 공정은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삶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동일한 기회를 갖는 것이라 할 때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조건을 똑같이 맞출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선택의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부모 찬스’로 인해 너무도 불공정한 일들이 우리 사회엔 비일비재하다. 최근의 ‘대장동 사건’과 ‘조국 사태’ ‘정순신 자녀 학폭 사건’을 보라. 유력한 정치인과 법 전문가를 부모로 둔 자녀들에게 불공정한 일들이 일상화되고 불법, 탈법 등의 일들이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그뿐이랴. 부모의 시험지 유출로 인한 쌍둥이 자매 사건, 대학 교수들의 자녀 논문 저자 등재 등등 우리 사회는 부모 찬스에 의한 불공정이 매우 심각하다. 이는 모두가 기득권과 특권 유지의 필사적인 행태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의 무수한 불공정만 말한다면 이 또한 공정하지 않다. 왜냐면 이렇게 불평등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경제적 불평등의 대명사였던 멕시코와 미국도 추월한 지 오래다. 우리의 생활 세계도 불평등이 만연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불평등과 차별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학벌, 성별에 따른 불평등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도 이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불평등한 나라에서 공정만을 외치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정해지면 자연스럽게 평등해지는가? 공정의 이념이 실현된다면, 한국 사회는 ‘불공정한 불평등사회’에서 ‘공정한 불평등사회’로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공정한 불평등사회는 어쩌면 불평등을 더욱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사회로 타락할 수도 있다.

 

공정한 경쟁, 이 말이 다시금 화두로 등장하는 우리 사회는 공정의 덫에 걸려 있다. 이미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페어플레이(Fair Play)를 강조하는 스포츠맨십이 교육에도 강력히 적용되어야 한다. 예컨대 이를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여기엔 ‘바람직한 민주시민의 육성’이란 교육목표에 부합하고 사회적 정의를 우선하며 또한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지켜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강력한 윤리의식과 행동의 동반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제 국가는 공정한 경쟁의 심판자 역할이 아니라, 평등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로써 공정 논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공정보다 평등과 정의가 더 우선적이어야 하며 국가의 정책적, 제도적인 노력과 함께 우리 교육이 초집중해야 할 방향이자 풀어가야 할 숙제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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