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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익어가는 8월

 

장마가 끝나자 하늘은 더없이 파래지고 솟아오르는 흰 구름은 상큼한 바람을 탄다. 이제야 여름의 주름진 얼굴이 펴진다. 그 얼굴 한가운데 8월은 뜨거운 태양 아래 짙푸른 녹음을 두르고 진한 향기로 익어간다.

 

자연에 있어 시간은 중요하다. 특히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풀과 나무, 실과들은 자연의 시계에 순응하며 자신의 할 일에 한 치의 게으름이 없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자신의 기대 가치에 따라 시간의 흐름과 변화에 의미 부여를 달리한다. 그 이유는 모두가 가진 진실한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은 고귀한 영혼과 연결되어 있어 언제나 지혜로움과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7월의 마지막 주말, ‘지구와 함께하는 알뜰장터’가 유배문학관 잔디밭에서 열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뜨거운 햇볕 때문에 망설였을 것인데, 태풍의 간접영향으로 낮게 드리워진 구름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풀밭에 설치된 이동식 물놀이장은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였다. 음악과 더불어 풍덩풍덩, 아이들의 즐거움은 여름 더위를 날리고 있었다. 꽃보다 더 예쁜 얼굴, 활짝 핀 웃음꽃은 여름 하늘을 덮는다. 그래 너희들이 보물이다. 저 짙푸른 여름의 녹색보다 더 진하고 소중하다.

 

 

유배문학관 주변에는 짙은 녹색의 푸름이 융단처럼 깔려 여름을 만끽하고 있다. 하얀 클로버꽃과 붉은 백일홍꽃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일렁인다. 사부작사부작! 아이들의 웃음을 뒤로 발밑에 밟히는 풀의 감촉을 느낀다.

 

우리나라의 자연은 계절별로 다른 색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좋아하는 색도 다르다. 내게 있어 무엇보다 마음이 끌리는 색이 있다면 그것은 복사꽃 연분홍이다. 이른 봄 개울가나 밭 언덕에 피어나는 개복숭아 나무의 분홍빛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곤 지남철에 끌리듯 셔터를 누른다. 지난 3월 말도 그랬다. 지나치는 길에 본 유배문학관 광장 왼쪽에 무더기로 피어난 복사꽃을 보며 아쉬워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분홍빛에 이끌리어 약간의 한기를 느끼면서 그곳을 찾았었다. 몇 그루인지 헤아리기보다 그저 펼쳐진 분홍빛에 취해 있었다. 그 후 신록의 계절을 지나 녹색의 청춘인 여름이 올 때까지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런데 오늘 찾은 그 자리엔 솜털 뽀얀, 빨간 볼의 어른 주먹만 한 복숭아가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려 있다. 꽃이 피면 열매가 열리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영글어가는 복숭아는 자연의 시계에 따라 열매를 맺고 뜨거운 태양으로 단맛을 높이고 있다.

 

 

평범한 여름날 하루,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시간과 변화의 결실을 보며 여유는 저만치 두고 바쁘다는 핑계만 앞세우며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돌려 세워본다.

 

8월이 시작되었다. 덥구나! 빨리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8월의 하루하루 또한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담벼락 밑 빨강, 노랑, 연분홍, 꽃분홍 채송화꽃이 도란도란 뙤약볕 아래 여름을 달랜다. 깨 순이 나리꽃과 능소화의 주홍빛 맵시는 참 화려하고 평화롭다. 어디 그뿐인가? 고개 들어 담을 보면 하늘타리꽃과 담쟁이 이파리의 녹색 일렁임은 참으로 조화롭다. 장애물을 만나면 돌아가고 나무가 있으면 오르고 불평이나 합리화가 없다. 우리는 이런 말 없는 자연의 성장을 보며 바쁨을 내세워 합리화하는 일이 맞는지 물어볼 일이다.

 

8월의 여름이 침묵 속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할까? 해거름 녘 들길에 나서 보라. 수수하게 피어난 참깨꽃, 이삭 패는 벼꽃 냄새, 진초록 벼 논에 물결치는 청아한 바람 소리는 삶이 주는 오만과 독선을 돌아보게 한다. 한 걸음 더 숲길을 걸어보면 8월의 향기를 물들일 수 있다. 발밑에 피어나는 쑥향, 코를 스치는 진한 솔향은 찌들고 가파른 마음의 아우성을 여유의 녹음으로 다독여 준다. 이렇듯 뜨거운 8월의 한 가운데서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을 소중하게 어루만지고 있는지 반성하게 한다.

 

 

8월은 뜨겁다. 뜨거운 햇볕은 가을을 약속하고 자아의 참된 깊이를 노래하며 삶이 주는 편견과 고뇌를 토해내게 하고 달콤한 꿈을 꾸게 한다. 넋을 놓고 복숭아의 붉은 볼을 셔터에 담다 아이들의 깔깔대는 물놀이 소리에 다시 이끌려 돌아온다. 녹색 함성이다. 이 아이들은 여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8월을 반기며 성장의 걸음을 계속한다. 그 걸음은 쌓이고 쌓여 추억으로 스미고 사랑의 향기를 심을 것이다.

 

하늘의 구름이 낮고 짙게 드리워진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풀밭 위 클로버꽃 위를 미끄러진다. 두서너 살 되는 아기들은 힘들었는지 엄마 품에 자고 있다. 엄마는 연신 손부채질한다. 아이의 솜털 뽀송한 콧등에 송알송알 땀방울이 돋아난다. 이 아이들도 8월의 태양 아래 겸손한 향기로 여물어가는 열매들처럼 꾸미지 않은 내면의 향기를 갖고 자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이 뜨거운 8월을 감사히 받아들이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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