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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부심과 우월감 사이

01 군 복무를 어떻게 할까 고심하다가 대학 3학년 때 ROTC(단기복무 장교훈련 코스)에 지원하였다. 대학생 신분과 사관후보생 신분이 묘하게 섞인 대학 3·4학년 시절을 보냈다. 이런저런 고충이 있었지만, 뒤에 생각하면 내게 부족한 인내와 책무감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며 유익한 자양이 되었고, 그것은 내 나름의 자부심을 만들어 주는 바탕이 되었다.

 

사관후보생 시절 구보하고 행군하며 불렀던 군가 중에 지금도 청신하게 자부심을 일깨우는 노래 하나가 생각난다. 멜로디와 더불어 가사가 주는 어떤 일깨움이 내 자아의식에 와 닿았다. 군부대의 사기는 구성원의 자부심에서 나온다. 일선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초급 장교들의 자부심은 그래서 중요하다. 자신의 자부심을 넘어 부대의 자부심을 이끈다. 열등감에 찌들어 기운 빠진 장교를 상상해 보라. 청년 장교의 자부심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 노래의 제목은 ‘장교단가(將校團歌)’라 했다. 1절 가사는 이러하다.

 

우리는 젊은 사관, 피 끓는 장교단/ 저 하늘 푸른 창공을 나는 솔개//

세월아! 화랑도 빛나는 전통을/ 굳게 세워 새 나라 건설에 용진하자 용진해.//

 

자부심이란 ‘자신의 가치나 능력을 믿고 자기를 당당하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누구나 갖기를 원하는 ‘바람직한 마음’이다. 자부심이 없다고 상상해 보면, 자부심의 긍정적 의미가 확연히 드러난다. 자부심(自負心), 글자 뜻 그대로 하면 스스로 나를 짊어질 수 있음을 뜻하니, 내가 나의 능력을 어떤 사태에서도 잘 발휘할(control/operating) 수 있음을 믿는 마음이 곧 자부심이다.

 

그런데 ‘온전한 자부심’이란 사전에만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어떤 사람의 자부심이 뛰어나다고 했을 때, 그의 ‘현실 자부심’은 아무런 흠결이 없는, 그런 자부심이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의 자부심을 그렇게 완전무결하게 예찬해 줄 수 있을까. 아닐 수 있다. 사람들은 그의 자부심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가 잘난 척한다고 지적할 것이다. 그가 우월감에 빠져 있다고도 비판할 것이다. 그가 겸손하지 않다고 불평할 것이다. 그가 독선적이라고 나무랄 것이다.

 

 

02 자부심과 우월감은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걸까? 불가피하게 가까울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자부심과 우월감 사이에 거리가 있다면, 그 사이는 좋은 사이인가 나쁜 사이인가.

 

영어권 사람들은 이 양자를 ‘사이’라 할 것도 없는 사이, 즉 매우 가까운 사이로 보았던 흔적이 있다. 영어의 ‘pride’는 자랑과 자부심의 뜻도 지니지만 오만(傲慢)과 우월감을 뜻하기도 한다. 이 한 단어가 자부심과 우월감을 같은 울타리로 감싸고 있다. 여간 잘 다스리지 않으면 자부심이 우월감으로 변하는 것은 잠시 잠깐이란 뜻 아니겠는가. 우월감이 현실적으로 자부심을 지탱하는,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바탕이 된다는 걸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그들이 현실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부심과 우월감, 그게 그거지. 뭐가 달라. 아 좀 솔직해지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자부심’을 인간의 긍정적 성정으로 인정하여 선한 이데아로 하늘에 걸어놓고, 혹여 그 이데아가 세속의 현실 마음이 부추기는 우월감이나 오만함에 훼손이라도 될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런데 자부심을 멀리 보내고 우월감만 가지고 보면, 문제는 많다. 우월감은 열등감의 상대편 감정이다. 의미의 위상에서 보면 우월감은 열등감이 부정적인 만큼 부정적일 수도 있다. 우월감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가 없다. 이 점이 자부심과 차이를 보인다. 훌륭한 자부심은 숨어서 조용히 작용한다. 그 어떤 겸손함도 우월감을 가리지 못한다. 조심해야 할 것이다. 자칫 우월감을 가리려고 시도한 겸손의 모드(mode)는 우월감의 또 다른 행태로 변신한다. 우월감은 가리기보다는 자신의 내면 안에 잘 가두어 둬야, 그것을 선한 영향력으로 전이할 수 있다. 잘 가두어 둔 우월감은 자부심을 만들어 내는 숨은 동력이 된다.

 

우월감 중에는 세속적 인간의 ‘도덕적 우월감’이 가장 고약하다. 도덕적으로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도덕적 우월감이니, 상대를 얼마나 인격적으로 깔보고 무시하는 감정인가. 그리고 자신은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생각으로 일종의 무오류주의 미신에 빠져서 지낸다. 차라리 돈 없다고 깔보는 경제적 우월감은 솔직하기나 하다.

 

그러니 이런 도덕적 우월감이야말로 아이러니하게도 비도덕적이다. 겸양의 도덕과도 멀고, 용서의 도덕과는 더욱 멀다. 그들의 도덕은 각질처럼 화석화되어 죄에 무신경하도록 이끈다. 그렇게 된 경지가 바로 선과 위선을 구분하지 못(안)하는 경지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던, 성서에 나오는 바리새파 종교 지도자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도덕적 우월감과 정치권력은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다. 도덕적 우월감이 권력 행위의 수단이나 방편으로 전락하면 나라에 위태로움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바로 그 우월감 때문에 이권과 부패에 대한 경계심을 놓치기도 한다. 도덕적 우월감은 권력에서 멀리 벗어나 있을 때만, 소위 재야에 있을 때만 유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는 도덕적 실천이 멈춰버린, 그래서 도덕적 우월감만 남아 있는 마음의 사태가 얼마나 공허한지를 말해 준다. 개인이나 공동체나 모두 그러하다.

 

03 다중지능 연구로 유명한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ener)는 뒷날 세계적으로 뛰어난 지도자들의 리더십에 관한 연구를 심도 있게 하였다. 그 결과로 낸 책이 <Leading Mind>(한국에서는 <통찰과 포용>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이다. 나는 이 책에 언급된 인물 중 프랭크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엘리너 루스벨트(Eleana Roosvelt, 1884~1962)를 주목해서 읽었다. 그녀가 비교적 ‘바람직한 자부심’의 소유자로 읽혔기 때문이다.

 

엘리너는 8세에 어머니를 잃고, 10세에 아버지를 잃었다. 청소년기를 고아로 지내며 경제적으로 궁핍했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혹독한 노동을 하기도 했다. 그녀의 경우를 두고서 본다면 역경은 자부심이 생성될 수 있는 필요조건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역경은 찾아온다. 역경을 선물로 여기는 긍정의 정신이 자부심의 근간을 만든다. 물론 쉽지 않다. 엘리너가 역경 중에도 특별히 마음을 관리한 것은 열등감에 지지 않으려 한 점이다. 열등감에 눌리지 않으려는 노력은 자부심 형성의 충분조건처럼 보였다.

 

엘리너의 어록이 새롭게 읽힌다. “No one can make you feel inferior without your consent(당신의 동의 없이는 그 누구도 당신에게 열등감을 안겨 줄 수 없다).” 그녀가 열등감을 얼마나 부정적으로 보았는지를 말해 준다. “위대한 사람은 이상을 이야기하고, 평범한 사람은 일상을 이야기하고, 속 좁은 사람은 사람을 이야기한다.” 이 말도 엘리너의 말이다. 자부심이 어떤 정신의 위상을 갖는지 보여 준다. 그녀는 어떤 절망 속에서도 비관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여섯 명의 자녀를 낳아서 길렀는데, 한 자녀를 병으로 잃었을 때도 그녀는 내가 사랑할 아이가 아직도 다섯이나 있음을 감사의 언어로 말한다.

 

대통령의 부인이었지만, 엘리너는 자신의 소명을 찾아 자신의 삶을 헤쳐 나아갔다. 그녀는 남편 사후에도 미국의 유엔 대사를 했다. 자부심의 힘이었다. 남편이 장애를 얻었을 때는 남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자신의 자부심을 더욱 고양하였다. 엘리너는 역경을 거치면서 세 가지 다짐을 했다. 첫째, 나는 매력적이지 않다. 둘째, 나에 대한 그 누구의 애정도 지속적이지 않다. 셋째, 내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조차도 나를 실망하게 할 수 있다. 이걸 보면, 자부심이란 자기의 독립성(나는 나다)을 강력한 의지로 일깨우는 태도에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엘리너가 도덕적 우월감을 드러내는 대목은 특별히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보기에 따라서는 도덕적 열등감 같은 것을 유추할 수는 있었다. 그렇다! 도덕적 개인이라는 범주에서는 도덕적 우월감보다 도덕적 열등감이 더 의미 있을 수도 있겠다. 도덕적 열등감이란 일종의 반성 기제로 작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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