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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상담이라 쓰고, ‘꿈고문’이라 읽는다

<꼰대수첩> 6화 _ 진로상담

수시전형과 본격적인 취업시즌을 앞 둔 2학기 초, 3학년들의 진로상담신청이 쇄도한다. 제각각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고민은 거의 비슷하다. 자신은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으며,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실 어릴수록 꿈은 거창하고, 장래희망은 뚜렷하다. 진로가 확실해서라기보다 현실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과 흥미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멋있고, 재밌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것을 거침없이 꿈꾼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자유학기제를 통해 다양한 진로체험활동을 하고, 교과마다 진로와 연결하여 수행평가도 하며, 여러 가지 학교활동을 통해 본격적인 진로탐색이 시작되지만 오히려 꿈은 사라진다. 제아무리 흥미와 적성이 있더라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능력 범위’ 안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탓이다.

 

모든 상담이 어렵지만, 진로상담은 참 어렵다. 꿈이 사라진 아이들을 다시 꿈꾸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흥미와 능력을 파악해야 하고, 삶의 가치관도 생각해봐야 하며, 불확실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어려운 걸, 교사가 해내야 한다. 하지만 너무 겁먹지는 말자. 늘 강조하지만, 꿈꾸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역할을 잘 해낸 것이다. 꿈을 실현시키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교사만큼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적어도 1년, 길게는 3년 동안 아이의 관찰하며 성장과정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학생생활기록부의 행동발달사항이 대학입시와 취업에서 활용되는 이유도 교사의 판단을 신뢰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는 공부를 잘하지만 배려심이 부족하고, 누구는 공부는 좀 못하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누구는 공부를 못하지만 손재주가 있고, 누구는 학급분위기를 살리는 재주가 있고, 누구는 소심한 성격 탓에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해 안타깝고….

 

우리는 관찰한 모습을 토대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면서, 뭔가 실마리를 찾도록 도와주면 된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과연 자신이 잘 해낼지 두려워 머뭇거릴 때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면 된다. ‘영끌(영혼을 끌어모아)’하여 모은 용기로 시작하는 아이들 곁에서 적당한 격려와 코치를 해주면 된다. 말은 쉽지만, 30여명의 학생들을 모두 이렇게 돌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학기를 보내며, 가장 안타까웠던 1~2명의 학생을 우선 상담해보자.

 

 

진로와 직업·진학은 서로 다른 말이다

진로는 자신이 설계할 미래이다. 그래서 ‘꿈’이고, ‘장래희망’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직업이 곧 진로, 즉 삶의 최종목표인 것처럼 여기며 살았다. 어른들이 “넌 꿈이 뭐니?”라고 물으면 “저는 ○○○이 되고 싶어요”라고 구체적인 직업을 똑 부러지게 말해야했다. ‘넌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을 수없이 들으며, ‘커서 뭐가 되는 것’, 즉 진로와 직업이 동의어처럼 되어버렸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진로상담도 직업상담 혹은 진학상담에 더 가깝다. 물론 내가 설계한 미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 적합한 학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그 꿈을 갖게 되었는지, ‘왜’ 그 직업(학과·대학)을 선택하려고 하는지를 아는 것, 즉 ‘의미’가 중요하다. 알다시피 ‘진로’는 단순히 돈을 벌어서 먹고 사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에 답을 못하면, 즉 의미를 모르면 내적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내적동기가 없으면 즐거움도 생기지 않고, 해야 겠다는 실천의지가 따라 붙지 않는다. 따라서 학교의 진로상담 목표는 ‘내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나의 일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서, 어떻게,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우선 자신의 흥미·적성(능력)·성격·가치관을 탐색해봐야 한다. 아이들은 종종 흥미·적성(능력)·성격·가치관·미래전망 등 진로선택에 필요한 것들을 혼동하거나,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땐 ‘평생 입어야 할 옷의 선택’에 비유해서 설명해주면 금방 이해한다.

 

“성격이란 ‘입어서 가장 편안한 옷’이야. 흥미는 ‘입고 싶은 옷’이고, 가치관은 ‘갖고 싶은 옷’, 능력은 ‘가질 수 있는 옷’, 미래전망은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옷’이야. 사람에 따라서 옷을 살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잖아. 넌 어떤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물론 이 모든 것이 일치하면 너무 좋겠지만, 그런 학생이 얼마나 될까? 흥미·적성(능력)·성격·가치관·미래전망 중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에 따라 진로상담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입고 싶은 옷’이 가장 중요하다면 불편함을, ‘갖고 싶은 옷’이 가장 중요하다면 유행에 뒤처지는 아쉬움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특히 ‘가질 수 있는 옷’을 사기 위해서는 능력을 키워야 함을 이해시키며,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노력할지 계획을 세울 수 있다. 특히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에겐 현재의 능력으로도 살 수 있는 옷이 있으며, 업그레이드 시킬 기회가 많음을 이해시켜야 한다.

 

“일단 지금 현재 네가 살 수 있는 옷을 골라보자. 벗고 다닐 수는 없잖니? 한 번 옷을 사면 다시는 못 사는 것도 아니니까, 또 사면 돼. 유행에 뒤처지는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것이 더 촌스러운 거니까 갈아입어야지. 지금 당장은 이것밖에 못 사지만, 계속 업그레이드 시키면 된단다. 중요한 것은 ‘옷을 산다’는 거야.”

 

과거와 다르게 지금의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고, 직업 역시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던 직업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생겨난다. 불과 10년 전을 생각해보자. 반려동물을 위한 사업이 이토록 거대해 질 줄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과외’보다 ‘반려동물 산책시키기’ 아르바이트가 훨씬 수입이 좋은 시대이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10년 후의 흐름을 생각하며 진로상담을 해야 한다. 아이들은 잘 모른다. 정보도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다. 모른다고 타박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같이 찬찬히 찾아보면 된다. 급할 것 없다. 생각은 다시 바뀔 수 있고,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너무 빨리 한가지로 정해버리면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기 더 어렵다. 큰 줄기를 정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살펴보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일지 모른다.

 

현실적 조언이 때로는 꿈을 좌절시킨다

꿈은 있지만, 말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종종 만난다. 이 아이는 왜 말하기 싫은 걸까? 자신의 꿈이 부끄러워서일까? 아니다.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하면 ‘네가?(네 주제에?)’라는 반응이 돌아오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어른들 중엔 종종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말하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 조언, 즉 어느 정도의 성적이 필요하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부터 설명한다. 혹은 그런 직업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사회적 평판은 어떤지 등 우려와 걱정부터 늘어놓는다. 마치 현재 너의 상태로는 어림도 없으니 주제 파악을 하고, 현실적으로 눈높이를 맞추라는 무언의 경고처럼 말이다. 혹은 그런 직업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사회적 평판은 어떤지 등 우려와 걱정부터 늘어놓는다. 아이들은 시도도 해보기 전에 포기하고 좌절한다. 그래서 꿈을 잃거나, 다시는 꿈을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포기했어요.”

“왜?”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제 실력으로는 좋은 대학을 가기 힘드니까요.”

“뛰어나게 잘하는 천재들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거야? 나도 뛰어나게 상담을 잘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선생님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했잖아요. 저는 공부도 못하는 걸요.”

“음, 공부를 잘하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건 사실이야.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돈이 많으면 살 수 있는 게 많은 거랑 똑같지. 가진 돈이 별로 없으면 비슷한 걸로 사거나, 돈을 더 모아서 가거나, 구경만 하고 올 수도 있지. 돈 없다고 마트도 못가는 건 아니잖아. 적어도 내가 사고 싶은 것이 얼마인지 알아야 그만큼의 돈도 모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진로를 못 찾고 힘겨워하는 아이도 있다. 이 세상의 80%는 평범한 사람들인데, 마치 죄인인 양 잔뜩 주눅이 들어있다. 백 명의 아이에게 백 명의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들은 모두 다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학교 교육과정은 너무 단순하고 획일적이다. 일단 공부를 잘해야 한다. 공부를 못하면 다른 것을 특별히 잘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는 공부도, 노래도, 운동도, 그림도 그럭저럭 이다. 딱히 내세울만한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이 아이들은 ‘자신은 잘하는 것도 없고, 그래서 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잘하는 것이 없으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뭘 해야 할지 모르니 목표를 어떻게 세워야 할지도 모르겠고, 목표가 없으니 계획을 세울 수도 없다. 그런데 자꾸 어른들은 ‘꿈이 뭐냐’고 물으며, 똑 부러진 대답을 요구한다. 학생생활기록부 희망진로란에도 명확하고 구체적인 진로를 적어야 한다. 6년 동안, 혹은 고등학교 3년 동안 희망진로가 일치해야 한다. 전공적합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결국 아이들은 진로교육을 통해 꿈고문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빨리 꿈을 결정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어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빠진다. 아직까지 딱히 관심 있는 것이 없을 뿐인데,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밥벌이도 못하는 패배자’가 될까봐 불안해 한다. 그래서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꿈고문으로 상처받고, 자신감을 잃은 상태인 경우가 많다. 특히 성격적인 부분을 말하며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친다. 이런 학생들을 일으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령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하기는 하는데 하나를 진득하게 하지 못하고 금방 흥미를 잃는 아이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보자.

 

“너의 최대 장점은 넓고 얕은 지식이지. 넌 정말 시대를 잘 타고 난거야. 요즘은 인터넷에 접속하면 온갖 정보가 넘쳐나지. 어차피 인터넷과 정보싸움에서 지게 되어있어. 넌 호기심으로 얇지만 다양한 정보를 알고 있으니, 정보검색 능력만 더 갖춘다면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될 거야. 너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진로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볼까?”

 

반대로 한 가지에 빠지면 그것만 파고드는 아이들에겐 다음과 같은 말이 도움이 된다.

 

“넌 이 분야에서 최고인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거야. 어차피 주된 무기 하나만 있어도 적을 물리칠 수 있어. 하찮은 아이템 여러 개보다 현질해서 산 어마무시 아이템 하나면 끝장이잖아.”

 

성격이나 흥미, 가치관을 바꾸기란 어렵다. 따라서 최대한 학생이 가진 성격과 능력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로상담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능력을 키우는 시작은 ‘의미부여’이다. 내가 왜 그걸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적동기가 있을 때, 아이들은 싫은 것도 견디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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