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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대치동 사교육의 현실

서울대 가야 하니까 견뎌야 한다

필자는 강남구에 소재한 고등학교에 재학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대치동’이라는 동네는 곧 우리의 두 번째 집이나 다름이 없다. 학교가 끝나면 버스를 타고 학원이 즐비한 대치동으로 가서 밤 10시까지 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사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대치동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웃지 못하는 상황이 곧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 5년간 ‘사교육의 성지’라고 불리는 대치동 근처에서 학창생활을 해오면서 밖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대치동의 현실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거기는 대치동이잖아.” 경기도에 거주하는 초등학교 동창들에게 나의 고민과 한탄을 늘어놓으면 항상 돌아오는 답변이다. 도대체 대치동이 무엇이기에 그리고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길래 왜 비정상을 정상으로 용인하는 반응을 보일까? 그래서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대치동의 모습을 말하고자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친구들끼리 “너 공부 잘하냐”라고 물어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치동은 질문 자체가 다르다. “너 서울대나 의치한(의대, 치대, 한의대) 갈 수 있냐"라고 묻는다. 대치동은 목표 자체가 서울대다. 서울대나 의치한을 못 가면 연세대 또는 고려대, 아니면 못 가도 한양대, 서강대, 성균관대까지만 용인된다. 그 이하의 대학을 가게 된다면 주변 인식에 이기지 못하고 재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목표가 높은 학생들이 한 군데에 모여 있으니,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부담감은 대치동 학생에게 크게 다가온다. 상대평가로 내신을 산출하는 국내 고등학교 특성상,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내 학교 친구들을 이겨야 한다. 함께 울고 함께 웃고 지내는 친구들과 직접적으로 경쟁을 해서 그들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다 같이 브레이크 없는 열차에 탄 상황에서 남들보다 한 걸음 먼저 나가기 위해 사교육의 도움을 과도하게 찾는다. 

 

과연 대치동에서 학원 안 가는 학생들이 있을까? 강남 8학군에 속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대부분 자신의 성적을 받쳐준 게 대치동 학원이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여기 있는 고등학교에서는 정말 공부 머리를 타고나지 않는 한 학원 안 다니고 상위권인 학생들은 없다. 다른 지역은 어떨까? 인터넷 강의의 질이 날로 높아지면서 평범한 고등학교에서는 인터넷 강의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 학생들이 많고, 심지어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만점도 학원 도움 없이 인터넷 강의만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에 많은 수험생이 공감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치동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학생들의 수준이 매우 높고, 학생 간 편차도 적다. 그러다 보니 1, 2등급 간 차이가 없어지고 단 두 문제만 틀려도 3등급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변별력을 확보하고 ‘줄 세우기’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거나 지엽적으로 출제한다. 공교육의 교육과정은 물론이고 사설 인터넷 강의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해도 정답을 맞히기 어려워 이러한 고난도 시험을 대비시켜줄 수 있는 대치동 사교육 시장으로 몰려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치동 학원을 다니지 않는 학생들이 무슨 수로 따라잡을 수 있을까.

 

우리 학교 상담 선생님이 들려준 극단적인 이야기다. 지방에서 영재로 통하던 형제가 있었는데, 첫째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엄마와 함께 대치동에 왔다. 사업하는 아빠는 지방에, 다른 가족은 대치동에 사는 ‘기러기 가족’ 생활이었다. 엄마는 “난 다른 대치동 엄마들처럼 애들한테 잔소리하며 들들 볶지 않겠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자정 넘은 시간까지 불야성 같은 학원가를 볼 때마다 초조한 마음에 애들을 잡았다. 둘째는 “엄마 때문에 살기가 싫어진다"라며 “엄마가 나한테는 스토커”라고 말했다. 직접적인 잔소리도 싫었지만 끊임없이 불안하게 쳐다보는 엄마의 시선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영재 형제는 대치동으로 온 후 게임에만 관심을 쏟았다. 공부는 뒷전이었다. 둘째는 처음엔 엄마의 기대에 부응했다. 문제는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서 불거졌다. 형제의 성적이 신통치 않은 데다 이런저런 문제까지 안고 있다 보니 다른 대치동 엄마들은 형제의 엄마를 노골적으로 멀리했다. 결국 형제의 엄마는 우울증과 뇌경색으로 세상을 떴다.

 

대치동이 우리 교육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아마 많은 학생들은 학벌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명문대 학벌은 성공으로 향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대치동의 학생들은 모두 브레이크 없는 열차에 타서 “상위권 대학 입성”이라는 관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대치동에 있는 1000여 개의 학원과 교습소가 명문대로 가는 관문을 제공해 주는 희망의 열차 역할을 충실하게 한다. 대치동 사교육은 학생들이 경쟁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방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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