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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화해의 골든타임

“있잖아요. 저 기훈(가명)이랑 다시 만나고 싶어요. 사람들 시선을 더는 신경 안 쓰고 싶네요.”

“덕수(가명)랑 저랑 다시 전처럼 만나면 안 되나요? 함께 보내던 시간이 그리워요.”

기훈이는 학교폭력 피해자, 덕수는 가해자다. 덕수와 아이들 네 명이 기훈이를 청소도구함에 억지로 밀어 넣으면서 폭행했다. 이 사건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회부돼 가해자 전원이 2호(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조치를 받았다.

 

가해자에게 먼저 다가선 피해자

 

한 달 남짓 흐른 후, 덕수와 교육청 wee센터 특별교육장에서 다시 만났다. 준법 교육을 하는 중에 학교생활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그리고 기훈이를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서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기훈이가 먼저 말을 걸고 자꾸 다가온다는 것이다. 분반까지 된 마당에 부담스럽기도 한 눈치였다. 교육을 끝낸 후 덕수를 차에 태우고 기훈이가 다가올 때 기분을 물었다.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도망갈 수도, 모른 척 무시할 수도 없고요. 다른 애들이 제가 걔한테 접근한 걸로 오해하고 신고할까 봐 겁나기도 해요.”

“그럼 넌 피하고만 싶어?”

 

정면만 응시하던 덕수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사실, 예전처럼 다시 친하게 지내면 좋죠. 그전에는 기훈이가 매일 절 데리러 와서 함께 등교하고 그랬거든요. 담치기도 같이하고 그랬는데….” ‘담치기’라는 단어를 내뱉을 때 입가에 살짝 미소가 어렸다. “너 기훈이랑 화해하고 싶지? 내가 도와줄게.”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덕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맞아요. 다시 예전처럼 지내면 좋겠는데 어쩌죠?”

 

“기훈이도 그런지 물어보고 교육청에 알아볼게. 다시 예전처럼 만나도 되는지.” 덕수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발랄하게 당부까지 남긴다. “샘~, 그거 진짜 꼭 알아봐 주세요. 부탁 좀 드릴게요. 꼭이요 꼭!” 중3 남학생에게 절절한 ‘부탁’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곧바로 기훈이를 만나 덕수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한 후 교육청 담당자에게 알렸다. 교육청에서는 양쪽이 원한다면 예전처럼 다시 만나도 괜찮지만, 화해했다고 해서 접근금지명령의 효력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고 확인해줬다.

 

제때 대처가 훈훈한 결말로

 

학교폭력으로 2호 조치 결정이 나온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적극적으로 화해를 원하는 일은 거의 없다. 기훈이의 사건은 최초 신고가 이뤄진 직후부터 학폭위 개최와 화해에 이르기까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가 빠르게 회복된 매우 보기 드문 사례다. 눈에 보이는 변화를 위해 학교, 경찰, 그리고 누구보다 피해 학생이 ‘제때’,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주효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덕수와 기훈이는 나와 학생부장 선생님 앞에서 악수하며 화해했고, 함께 하교하며 재회의 기쁨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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