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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저장하기와 사장(死藏)하기 사이

 

해 기울 무렵, 사당동 호프집에서 소설가 송하춘 교수님과 만난다. 소설가 H 교수도 함께한다. 연배가 위라는 걸 잊게 할 정도로 송 교수님은 참 편하게 나를 대해준다. 자리에 앉자, 송 교수는 산문집(<왜 나는 소리가 나지 않느냐>)을 출간했다며, 책을 내게 건넨다. 독특한 기획으로 공을 들인 저술이다. 수록한 수필마다 자작시 한 편씩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 


책 속표지에 저자 서명이 있다. “박인기 교수께, 2021.3.11. 宋河春” 모두 석 줄로 된 저자 서명이다. 송 교수의 글씨는 그윽한 기운 머금고 엄전한 듯 활달하다. 그런데 무엇으로 쓴 글씨인가. 묽은 먹으로 쓴 글씨인 줄 알고, 가까이 들여다보니 그렇지 않다. 여쭈니, 연필로 쓴 것이라 한다. 미술 데생(dessin)할 때 쓰는 연필, 굵고 짙게 그릴 때 사용하는 4B 연필로 썼다고 한다. 서명은 대개 만년필로 하거나, 볼펜으로 한다. 거기다가 낙관까지 찍어서 보내는 것을 모범 격식으로 치는데, 송 교수님은 그런 거 저런 거 없이 연필로만 담백하게 썼다. 나는 연필로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지워지지 않아야 하므로 연필은 피하는 것이다. 


왜 저자 서명을 연필로 했을까. 그 까닭을 송 교수님이 말해 준다. 지금은 소중한 그 누구에게 책을 전하며, 책을 드리는 말씀과 함께 나의 자필 서명을 해 놓지만, 이 책이 영원히 보관되고 간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이 전해질 때의 그 소중함이란 것도 영원무궁한 것이 아니다. 형편 따라 세월 따라 소중함도 변한다. 책을 받은 분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 그러면 그가 지녔던 책의 운명도 이승에서 저승으로의 변전만큼이나 달라질 것이다. 또 살다 보면 불가피한 사정으로 그 책을 간직할 수 없는 형편에 처할 수도 있다. 


언젠가는 버려질 책의 운명을 헤아려볼진대는, 속표지에 주고받는 이의 이름을 적어놓는 것이 언제까지나 의미 있기만 할 것인가 하는 데에 생각이 가닿았다는 것이다. 요컨대 ‘받은 책을 버려야 할 때, 저자 서명을 지우기 편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나는 수긍하였다. 지혜의 일단이 있음을 느꼈다. 


언젠가 허름한 중고서적 판매장에서 어떤 유명 인사의 서명이 적혀 있는 책이 나돌아 다니는 걸 보았다. 이제는 속절없이 떠도는 운명에 들어선, ‘버려진 책’이 된 것이다. 저자 서명을 해서 책을 보낸 사람이나 그 책을 받은 사람의 이름을 보면서, 나는 민망함과 쓸쓸함에 젖었다. 책에 대한 연민도 일었다. 만약 서명도 선명한 나의 책을 그런 곳에서 발견했다면 어떠했을까. 모진 배반을 겪고 황량한 변방으로 추방된 느낌일까. 요즘 널리 알려진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노래가 무색할 망연함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중고서적 판매장은 그나마 괜찮다. 폐지 수집장을 떠돌아다니는 책은 또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 내가 서명하여 누군가에게 보낸 책이 없으란 법이 없다. 내 책을 버린 사람에게 항의할 것인가. 그럴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그저 내 마음일 뿐이다. 오히려, 그런 영양가 없는 책을 쓴 나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 또한 그렇게 버린 책이 없지 아니하다. 연구실을 떠나올 때는 정말 어찌할 수 없었다. 버릴 책을 정리하며,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나에게 서명을 하여 보내온 책은, 서명이 있는 속표지 한 장을 찢어버린 후, 그 책을 버렸다. 책으로 맺은 인연을 끊는 듯한 느낌이 들어 송구했다. 그저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책을 보내 주었던 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보관하고 간직하는 일은 무언가 소중한 것을 저장하는 데서 시작한다. 사람이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겨, 그것을 지키려 할 때, 하는 행위가 저장과 보관이다. 식량은 생존의 가치를 가지므로 저장 보관의 1순위를 차지한다. 책은 지식과 기술을 익히려 하는 사람에게는 저장의 의미가 중요하다. 전쟁터에 나간 젊은 병사가 어머니 사진을 군복 주머니 깊은 곳에 보관하는 것은 어머니의 가치를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진은 어머니의 가치가 표상된 ‘그 무엇’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재화의 가치, 인연의 가치, 여행의 가치, 배움의 가치 등등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 소중함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저장하여 보관하고 간직한다. 저장과 보관이 있음으로써, 나의 존재다움 즉, 내가 존재하는 가치가 생겨나고 지속한다. 저장과 보관이 없는 삶은 소망과 미래가 없는 삶이다. 퇴폐의 생각(mentality)에 지배되는 사람은 보관과 저장이 없다. 오늘만 살고 죽을 듯이 사는 것이 퇴폐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교육이란 것도 지식과 정서 등을 ‘저장하는 기술’과 ‘저장하는 태도’를 익히는 것의 일종일 수 있다. 


저장하기를 내가 몸으로 학습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다. 겨울에 채소를 저장하는 작업을 해 본 것이 지금도 인상적이다. 물론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다. 겨울에 김장독을 밖에 두면 얼어서 못 먹는다. 방이나 부엌에 두면 금방 너무 익어서 김치 맛을 버린다. 그래서 김장독 채로 마당 밭에 묻어서 저장하고 수시로 꺼내 먹었다. 


배추나 무는 마당 밭에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였다. 배추나 무를 구덩이에 묻고, 짚으로 살짝 덮고, 그 위를 흙으로 두둑하게 덮어서, 마치 무덤 봉우리처럼 해 준다. 얼지도 않고 썩지도 않도록 땅속 온도를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구덩이 입구에 어른 팔이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을 내고, 바람이 들지 않게 두툼한 짚단으로 그 구멍을 든든하게 막아 둔다. 나중에 무 배추를 끄집어내기 위한 구멍이다. 이런 작업은 아버지를 도와 함께 했었다. 밤도 그런 방식으로 저장을 했다. 그래서 긴긴 겨울밤, 묻은 밤을 꺼내와 화로에 밤 구워 먹는 추억을 만들었다. 밤을 이렇게 저장하지 않고 그냥 방에 두면, 밤 속에 온통 벌레가 생겨난다. 


상식에 속하지만,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다. 저장은 왜 하는가. 언젠가 끄집어내어서 쓰기 위해서 저장하는 것이다. ‘저장’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물건이나 재화 따위를 모아서 쌓아두거나 잘 간수함’으로 풀이되어 있다. 이는 ‘저장한 것’이 쓸모 있는 것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 쓸모 있음은, 뒤에 끄집어내어서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데서 입증된다. 저장과 비슷하지만, 사실은 반대어에 해당하는 말로 ‘사장(死藏)’이 있다. ‘사장’의 뜻을 살펴보면 ‘저장’의 참뜻이 살아난다. 사장은 ‘활용하지 않고 쓸모없이 묵혀 둠’으로 풀이되어 있다. 그래서 ‘저장하기’는 ‘사장하기’와 더더욱 대척의 자리에 놓인다.

 

나는 일상에서 저장하기를 쉼 없이 한다. 나를 포함한 현대인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일상에 그림자처럼 두면서 끝없이 저장하기(단축키 Alt+S)를 누른다. 그러면서도 그걸 끄집어내어 쓸모 있게 활용하는 걸 잊어버린다. 열심히 저장은 하면서도 한 번도 끄집어내어 보지 않는 경우가 오죽 많은가. 기를 쓰고 저장하지만 마치 사장하기 위해서 저장하는 것처럼 하지는 않는가. 그래서 저장하기가 욕심의 일종으로 비치기도 한다. 속언에 있는 “아끼다가 똥 된다”라는 말이 실감 나게 살아온다.


우리 현대인은 알게 모르게 ‘저장하기의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내 개인 컴퓨터에 내려 받은 까마득히 많이 저장된 파일들, 휴대전화 갤러리에 찍거나 받아서 저장해 둔 수만 장의 사진들, SNS에 주고받으며 저장된 수많은 전언과 콘텐츠, 누군가 보내 주어 저장해 놓은 허다한 정치적 주장, 경제 정보, 건강 조언, 엔터테인먼트 이야기 등등, 이 모두는 나의 저장 영토에 머물지만 나는 이를 통제하거나 다스릴 능력을 이미 잃지는 않았는지. 그걸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끄집어내는 것조차 힘들게 되어 버린다. 사람이 죽은 뒤 그의 스마트폰에서 그가 저장하여 남긴 디지털 정보들을 깔끔히 처리해 주고 돈을 받는 직업이 생겨났다고 하지 않는가. 


무릇 진정한 저장하기의 대상은 생명 가치를 지닌다. 저장하는 것이 생명 그 자체가 아니라 해도, 생활에 생기를 불어넣고 재생의 유용함을 드높이는 것이면, 생명 가치를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장 내용의 ‘쓸모 있음’을 부단히 증폭시켜 가는 데에 저장하기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저장의 기술에는 저장해 왔던 것을 버리는 기술도 기꺼이 포함되어야 한다. 사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마땅히 필요한 지혜이다. “망각 없이 행복(幸福)은 있을 수 없다”라고 한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모루아(Andrė Maurois)의 말도 함께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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