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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에 처음 들다

정읍 무성서원

신라 정강왕 때 태산(泰山)의 태수(太守)로 부임해 선정을 베풀고 간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해, 태산의 백성들은 ‘태산사(泰山祠)’라는 사당을 세웠다. 이후 조선 숙종은 무성서원(武城書院)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공자의 제자 ‘자유’가 무성(武城)고을을 잘 다스린 것처럼 최치원 선생도 이 고장을 그에 버금가게 잘 다스린 것을 칭찬하여 붙인 이름이었다. 무성서원 내삼문에는 다음과 같은 주련이 걸려있다.

 

士林首善 聖朝額恩(사림수선 성조액은)

유학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의 으뜸이라

숙종 임금께서 이름 지어 현판 내리셨네.

 

 

우리나라 유학자 최초로 문묘에 배향된 최치원

경주최씨 최치원 선생은 6두품 출신의 통일신라시대 대문장가이자 정치가였다. 882년 당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킨 황소에게 ‘의롭지 못한 일이라 꾸짖는 글(<토황소격문>)’을 보내자, 이 글을 읽던 황소가 침상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당나라에서 명문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884년 가을,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 선생은 진성여왕 8년(894)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10가지 정책(時務十條)’을 제시하여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직인 아찬 벼슬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벼슬을 그만두고 가야산·지리산 등 우리나라 곳곳에 머문 흔적을 남기며 지내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세상을 떠났다.

 

신라 성덕왕은 문묘(文廟)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세우고, 공자·안자·증자·맹자·주자 등의 제사를 지냈다. 우리나라에 세워진 문묘였으나, 오랫동안 우리나라 학자는 모셔지지 못했다. 그러다 고려 현종 때, 글을 잘 지어 당나라까지 이름을 날린 최치원의 공적을 높이 인정하여 우리나라 학자 중 제일 먼저 문묘에 배향되었다.

 

이로써 향교의 대성전인 문묘에 공자와 안자, 증자, 맹자, 주자 등과 함께 제사에 모시는, 우리나라 유학자 최고의 영예에 올랐다.

 

201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서원

정읍 무성서원(書院)은 2019년 영주 소수서원, 함양 남계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 장성 필암서원, 달성 도동서원, 안동 병산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 9곳의 서원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나라의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는 중국, 일본과는 다르게 독특한 형태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서원은 성리학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의 큰 스승들을 함께 모시고 제사를 올렸다. 학생들은 다양한 학문을 공부한 스승과 함께 토론을 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비판적 사고능력을 길렀다. 일본은 서원 모습을 찾을 수 없고 절에서도 성리학을 가르치는 등 일정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조선의 서원은 성리학을 공부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유학 이념을 ‘예’를 통하여 생활하고자 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풍속으로 발전하며 일정한 형식을 갖추었다. 특히 스승에게 제사 올리는 공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서원과 비슷한 향교 역시 성리학을 공부하는 곳이지만, 나라에서 운영한다는 점과 공자와 중국의 유명한 유학자, 우리나라의 큰 스승 18분을 대성전에 모시고 제사 올리는 것이 큰 특징이다.

 

 

‘공부하며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강수재 주련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의 무성서원에 들어서면 거문고 가락에 맞춰 노래 부르는 현가루(絃歌樓)와 명륜당, 태산사(泰山祠)가 한 줄로 이어져 있다. 공부하며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강수재(講修齋)는 하나라 우 임금이 썼다는 하우체(夏禹體) 주련을 걸었는데,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용진정사 주련과 같은 글이다.

 

강수재 앞에는 병오창의기적비(丙午倡義紀蹟碑)를 세웠는데 이는 일제가 1905년에 을사늑약을 강제로 맺자 74살의 최익현과 임병찬 의병장을 중심으로 800여 호남 의병들이 태인과 정읍을 거쳐 순창으로 나간 호남의병전쟁을 기념한 것이다. 순창에서 일본군이 조선군을 앞세워 전투를 벌이자 같은 민족끼리 싸울 수 없다며 최익현과 임병찬 의병장은 스스로 의병들을 해산시켰고, 이때 일본군에 잡혀 대마도로 함께 끌려갔다. 최익현은 그곳에서 단식으로 순국하였고, 임병찬은 조선으로 돌아와 1914년 대한독립의군부 총사령관으로 활동하던 중 일본군에 체포되자 단식으로 순국하였다. 무성서원에서는 항일구국 의병들의 호국정신과 의로운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강수재 주련은 하나라 우 임금이 썼다는 하우체 옆에 작은 글씨의 해서체로 토를 달아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강수재 주련 중 洙泗濂閩(수사렴민)은 공자가 노나라의 洙水(수수)와 泗水(사수)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것을 의미하여 공자와 맹자를 이르고, 濂閩(렴민)은 송나라 때 호남성 濂溪(렴계)가 고향인 주돈이, 복건성 閩中(민중)에 살던 주자를 이른다.

 

萬國罔知定 家家久太平(만국망지정 가가구태평)

承帝忘形處 犇華永不明(승제망형처 분화영불명)

세상이 지극함을 아는 곳으로 정하고

집집마다 백성들이 오래도록 평화로우니

하나라 우임금의 뜻을 잊지 않는 곳이라네.

한없이 빛나고 영원히 그 밝음을 떨쳐라.

- 하나라 우 임금

 

淵源追潮洙泗濂閩 依仁遊藝德業日新

(연원추조수사렴민 의인유예덕업일신)

規模己宏心身家國 愼思篤行倫理自明

(규모이굉심신가국 신사독행윤리자명)

유교의 학문적 뿌리는 공자, 맹자, 주돈이, 주자에 있고 어짐에 의지하고 학문과 노닐며

덕을 쌓으니 날로 새롭구나.

자신을 수양하고 가정이 화목하면 나아가

나라를 다스릴 수 있고

신중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니 사람의 도리가

스스로 밝아지는구나.

 

 

흰 연꽃이 새겨진 무성서원 명륜당 주련

명륜당에 걸은 주련은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이고 주련머리와 아래에 흰 연꽃을 새겼다. 마침 문화해설사 한 분이 명륜당 툇마루에 걸터앉아 기타 치며 정읍사 노래를 불러 주었는데 매우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무성서원 명륜당의 주련 중 남전고약(藍田古約)은 송나라 때 섬서성 남전현에서 여씨 형제들이 약속하고 실천한 것으로 어질고 착한 일을 권하는 덕업상권(德業相勸), 허물과 그른 일을 경계하는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의 바른 풍속으로 사귀는 예속상교(禮俗相交), 근심스럽고 어려울 때 서로 돕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을 이른다.

 

揖讓進退杏壇遺敎 月朔參拜享禮倆丁

(읍양진퇴행단유교 월삭참배향례양정)

春秋講磨經義四子 文藝時習詩書禮樂

(춘추강마경의사자 문예시습시서예락)

德業日新孝悌忠和 勸規交恤藍田故約

(덕업일신효제충화 권규교휼남전고약)

절하고 사양하며 들고 나아가니 공자의 가르침이고

매월 공손히 뵙고 절하며 봄과 가을에 제사 올리네.

논어, 맹자, 대학, 중용과 ‘춘추’를 익히고 닦으며

문예를 때때로 익히니 시와 글씨, 예절과 음악이구나.

덕을 날로 쌓으니 효도와 공경, 충심과 화합이고

서로서로 풍속과 예절을 지키니 남전의 옛 향약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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