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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 공교육을 위한 모색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론 ①

‘공동체’와 ‘공교육’의 관계

공교육 최일선에서 땀 흘리고 있는 초·중등 교사들이라면 자신이 속해 있는 국가 공동체와 공교육의 역할에 대해 한 번쯤은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관점에 따라 교육을 지극히 기능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거나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의 주장처럼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하나로 간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적 입장을 논외로 하면 국가는 사회 운영의 기본원칙인 헌법에 따라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 그리고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공공의 비용으로 설립된 교육기관인 학교는 공동체의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화국의 새로운 시민을 양육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오늘날 교사 교육과정은 주어진 교과를 잘 가르치는 것에 치중하고 그것을 전문성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더욱 중요한 것은 국가가 수행해야 하는 교육의 공공성과 그 과정에서 교사에게 요구되는 공공성 및 구체적인 역할에 대한 성찰일 지도 모른다.

 

사실 이와 같은 고민은 근대 시민혁명 과정에서 탄생한 공화정 혹은 법치의 보편화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많은 공동체와 교육에 대한 논의들은 폴리스(polis)로 대표되는 고대사회의 공동체에서부터 진행되어왔다. 고대 그리스의 주요 철학자들 역시 이 같은 맥락 속에서 국가와 교육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해왔다. 정치적으로는 가장 대립했을 페리클레스와 플라톤이 ‘국가 유공자 자녀의 교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데 동의했던 것을 보면 공동체와 교육에 대한 고찰은 정치적 견해 차이를 떠나 동서고금 전반에서 공통적 측면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현실 속에서 가장 타당한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서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이들은 스승의 문제의식과 과제를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해왔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의 상대적 사유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절대적 진리와 가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덕과 덕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변론>, <크리톤>, <파이돈>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기록했고, 스승이 남긴 과제를 이데아론으로 대표되는 독창적 사유방식으로 제안한다. 이데아론과 상기설, 그리고 <국가>, <법률> 등의 정치철학적 저작 속에서 공교육에 대한 시각을 정립해왔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적 진리와 가치체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계승하고 있지만, 이데아론은 너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며 스승의 한계를 비판한다. <국가>에 등장하는 플라톤의 교육론이 정교하지 못하고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 제기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오늘날 그리스 북부 테살로니키에서 55km 떨어진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났다. 아리스토텔레스 집안은 마케도니아 왕가의 의사 집안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연스럽게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상류계층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근대 자연과학적 탐구방법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테네의 명문 귀족 출신이었던 플라톤과는 달리 그리스 변방 마케도니아라는 출신 배경은 역으로 아테네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찰자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학당>에 묘사된 플라톤이 우주론을 다룬 <티마이오스>를 들고 하늘을 가리킨다면,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든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며 인간의 윤리를 강조하는듯하다.

 

이처럼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접근했던 방식은 사뭇 달랐다. 플라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가장 이상적인 것을 모범(paradeigma)으로 생각해왔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현실 속에서 가장 타당하고 훌륭한 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플라톤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방식이 그래도 조금은 더 친숙하고 이해할만하다.

 

인간교육의 핵심요소 이성(logos)·감정(pathos)·윤리(ethos)

아리스토텔레스는 17살 때부터 20년간 아카데메이아(Akademeia)에서 플라톤을 사사한다. ‘나는 플라톤을 사랑하지만, 진리를 더 사랑한다(Amicus Plato, sed magis amica veritas)’는 말처럼 그의 아카데메이아 생활은 매우 도전적이었고 ‘재갈이 필요한 준마’라는 스승의 평처럼 논쟁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영혼에 대한 강의를 유일하게 이해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에게 ‘아카데메이아의 정신’으로 인정받았고, 플라톤의 뒤를 이을 아카데메이아 원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기원전 347년 플라톤 서거 후 플라톤의 조카이자 제자였던 스페우시포스가 아카데메이아를 맡게 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12년간 아테네를 떠나게 된다. 이후 그는 뤼케이온(Lykeion)에서 과거 플라톤이 그랬던 것처럼 학문과 교육을 병행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론은 여러 저술에서 확인되지만 <정치학>, <니코마코스윤리학>, <시학> 등에서 핵심요소들을 파악할 수 있다. 통상적인 철학사 서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해설은 <논리학>, <범주론>부터 시작해서 <영혼론>, <자연학>,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백과사전식 구성에 방대한 서술을 남긴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록을 순차적으로 읽어가기보다는 교육과 관련된 저술을 탐독해도 무방하다. 플라톤의 저술이 몇몇 편지글을 제외하면 대화편만 남아있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은 강의록만 전해지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적으로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지만, 교육만을 놓고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과 플라톤의 <법률>은 서로 결합하는 지점을 여러 가지고 있다.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교육은 올바른 양육이며, 아이의 마음이 쾌락과 고통을 잘 다스리는 방향으로 이어져 덕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logos)·감정(pathos)·윤리(ethos)를 인간교육의 핵심요소로 평가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학>의 교육론은 플라톤이 <법률>에서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을 계승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교육론이 가장 두드러지는 정치학은 총 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치학>을 간단히 요약하면, 가장 이상적인 정치공동체와 그 구성원에 대한 논의이다. 교육론에 관한 서술은 7~8권에 집중되어 있다. 8권 후반부는 소실되어 현재까지는 그 개괄적인 얼개만을 파악할 수 있지만, 공교육에 대한 그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들을 확인하고 검토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정치학>은 어떤 정치체제가 가장 이상적인 체제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훌륭한 시민은 어떻게 교육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을 담고 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z?on politikon)이라는 그의 언명은 <정치학>에서 가장 두드러지는데, 폴리스(polis)를 어원으로 하는 폴리티케(politike)라는 단어가 ‘인간에 관한 철학’, ‘인간적인 선’과 동일한 의미를 갖고 사용되는 용어라는 점은 정치학의 주요 내용을 가늠하게 한다.

 

플라톤이 그랬듯 국가 운영자들에게 젊은이들의 교육은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Politika, 1337a11). 폴리스는 각각의 정치체제 성격에 부합하는 시민을 길러 내려 한다. 만약 정치체제와 시민의 성격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그 정치체제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정치를 지향했던 아테네는 민주주의적 인간을 필요로 했고, 군국주의를 지향했던 스파르타는 용맹한 군인을 필요로 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교육방식이 차이가 있었던 것은 시민의 본성 차이가 아닌 두 국가가 추구했던 시민상의 차이 때문이었다.

 

모든 폴리스는 좋음을 추구하고(Politika, 1251a1) 그 목적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해야 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한다(Politika, 1337a23). 나아가 교육이 전적으로 사적 개인의 것만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공공의 것들에 대한 훈련은 반드시 공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교육은 현재 이루어지는 사적인 방식 대신 공적인 방식이 되어야 한다(Politika, 1337a26). 폴리스가 좋음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이상적이고 낙관적인 사고방식처럼 보이지만, 현대 민주정치에서도 선거를 통해 시민은 최선의 통치자를 선출하려고 하는 것은 동일하다. 아울러 인간은 본성·습관·이성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훌륭해질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적절한 습관을 통해 덕과 중용을 내면화하고 교육을 통해 다양한 지식과 교양을 습득한다면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손색없을 것이다.

 

공교육의 목적은 ‘좋은 대학’이 아닌 ‘공동체적 시민’을 만드는 것

하지만 각 정치체제에 맞는 인간형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각 개인이 갖고 있는 기술과 능력은 오랜 시간의 교육과 습관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는 국가의 이념에 부합하는 이상적 인간형에 대해 고민하고 그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구체적인 실천 가능한 덕목에 대해서도 미리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Politika, 1337a20). 교과지도와 생활지도, 그리고 과중한 행정업무에 시달리는 교사들에게 이러한 통찰은 사실 부담스럽다. 하지만 교사들의 현장 적응력 강화가 모든 교사교육의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지금, 현장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소진돼버린 교사들에게는 ‘내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화두가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학교 교육은 분명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따른 원칙을 중심으로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이라는 공교육적 원리에 입각해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이라는 기본원칙은 시민에게 일종의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차원에서 도입된 것만은 아니다. 시민은 교육의 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학교에 보내는 것만으로 종결되지 않는다.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의 공공성과 교양을 익혀야 하고, 이는 사적 개인인 부모들이 쉽게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이다. 오늘날 교육목표처럼 여겨지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성취일 뿐 공교육기관의 교육목적과는 무관하다.

 

일선학교에서 교사들이 여러모로 시달리는 이유는 어쩌면 그들의 전문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요구되는 공공성에 대해 사회가 너무나 무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 공동체적 동물임을 전제한다면, 공교육은 공동체적 시민을 만드는 교육이 되어야 하며, 그 출발점은 다른 사람과 공존하기 위한 인성교육과 도덕교육일 것이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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