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약 1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전국 16개 시·도에 각 5개교식 총 80개 학교의 운동장에 천연 잔디 심기를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 놀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학교 환경을 제공하는 한편 지역주민에게 보다 나은 생활체육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은 1개교 당 잔디 운동장 조성비로 6000만원, 운동장 주변 우레탄 트랙 설치비로 8000만원, 그리고 연간 관리비 300만원 등 총 1억4300여만원의 막대한 공사비가 투입되게 된다. 그러나 이 사업은 큰 실효 없이 예산만 낭비할 소지가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먼지 없고 푸른 학교운동장을 만들어 정서적으로 안정감과 상쾌감을 주자는 취지가 환영받을 만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학교운동장에 잔디를 조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몇 가지 운영상의 문제점도 있다.
먼저 학교운동장은 학생들의 놀이 공간이면서 정상적으로 체육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활동공간이어야 한다. 또 학교마다 특기종목을 원할히 육성할 수 있는 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잔디가 조성되고 나면 사정은 달라질 게 뻔하다.
잔디 보호와 관리 차원에서 운동장에는 금줄이 쳐져 출입이 통제되는 등 체육교육과 각종 학교 교육활동에 어려움을 초래할 게 불보듯하다. 또 지역주민에 대한 운동장 개방도 상당히 제한적이게 될 것이다. 현재는 '고등학교이하각급학교시설의개방및이용에 관한규칙'에 따라 학교운동장을 지역주민에게 개방하고 있는데 잔디를 보호하려면 이것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현재 일부 학교에 건설된 번듯한 체육관을 예로 들어보자. 학교는 이 시설물을 자랑거리로 여기지만 실제로 학생들의 출입은 거의 제한돼 있다. 따라서 학교운동장을 잔디 운동장으로 조성하는 것은 단위학교의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고돼야 한다.
더욱이 잔디 운동장을 설치·관리하고 유지하는데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는 점은 현재의 교육여건상 투자우선순위에 맞지도 않는다. 지금 우리 학교체육은 부족한 예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변변한 체육관 시설조차 없어 비가 오면 체육활동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대부분의 학교 운동부는 국가의 지원 없이 오로지 학부모의 후원으로 유지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각 시·도는 학교체육 예산의 부족으로 학생선수 육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92년 전국 시·도교육감 협의회에서는 서울올림픽 수익금 600억원으로 유지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에 학교체육 진흥금을 매년 요청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공단측의 지원은 그야말로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급기야 작년에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 협의회에서 각 시·도는 시·도별로 5억원씩 재정 지원이 안되면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것을 결의해 체전의 존폐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 여건상 대회 종목을 교육과정 종목만으로 축소 개최할 것을 문화관광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단측은 정말 필요한 예산은 지원하지 않고 잔디 운동장 설치에 막대한 예산을 쓰려는 발상을 내놓고 있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라도 계획을 전면 수정해 그 예산을 학교 운동부 육성에 지원하고 체육 꿈나무들을 발굴해 내는데 노력해주길 강력히 촉구한다. 그것이 올림픽을 치른 나라로서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개최를 앞둔 우리가 보여줘야 할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