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1. 대학 캠퍼스.
한 쌍의 커플이 휴대폰으로 영화를 보며 낄낄거린다. 그 옆의 학생은 MP3 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그 때, 벤치를 뒹굴던 복학생이 딴지를 건다.
"너희들, 꼭 그걸로 영화를 봐야 하냐? 야, 음악은 집에서 들어!"
그러자 후배가 묻는다.
"왜 그래. 형?"
복학생이 쓸쓸히 벤치에 기대며 한 마디를 던진다.
"전화가 통화만 되면 되는 거지. 다 폼 잡는 거야."
그 장면 위로 광고 카피가 하나 떠오른다.
'그래도 당신의 마음속엔, 텔레콤.'
그래, 맞다. 전화는 통화만 하면 되는 거다. 영화? 음악? 그건 다 폼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폼나는 후배들 때문에 세월의 변화를 따르지 못한 복학생은 아무래도 쓸쓸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교육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수익자 부담 원칙의 '소수자'를 위한 사교육의 눈부신 변화는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나를 가끔 부끄럽게 한다. "저건 다 폼이야." 라고 말하지만 왠지 쓸쓸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한다.
금학년도에 교무부장 보직을 받으며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정확히 15년만의 저학년 담임이다. 나이 오십이 넘었지만 나는 응석받이 꼬마들이 버거워서 늘 고학년을 희망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2학년을 맡으니 참 좋았다. 수업 부담이 작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서 수업을 제일 조금 하는
내 주당 수업시수가 무려 25시간이다. 그런데도 나는 좋아죽겠다.
'주당 수업시수'는 수업이 교사 본연의 업무라는 점에서 업무 부담을 정의하는 가장 핵심적 지표이다. 교사의 주당 수업시수는 그동안 꾸준히 줄었다고 말하지만 초등학교의 경우, 천만의 말씀이다. 초등학교 교사는 한 사람이 12개 교과를 주당 25~32시간 수업을 한다.
급식 지도, 생활 지도 시간을 제외한 순 수업시수만이 그렇다. 여기에 공문 처리 등의 시간까지 더하면 결과적으로 교재 연구와 수업 준비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과도한 수업과 업무는 공교육의 경쟁력을 상실케 한 직접 원인이다.
초등 교원의 수업 부담 경감과 예체능 교육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시작된 '교과전담제'도 그 배치 기준이 3학년 이상 3학급당 0.75명의 보잘 것 없는 기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마저도 이 총리가 교육부 장관 시절, 교원 정년을 단축하며 야기한 극심한 초등 교원 부족 사태와 DJ 정부 시절 '교육 여건 개선 사업'이라는 외형적인 실적을 위해서 정원을 누적 미달시켜 왔다.
서울의 경우 금학년도는 300여 학급이 늘었지만 증원은 76명에 그쳐 교과 전담교사 295명을 학급 담임으로 전환하여 현장에는 정원의 50%에도 못미치는 교사만을 배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제도가 되고 말았다.
좋은 수업을 위해서는 적정 수업시수를 법으로 규정하는 '표준 수업시수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부도 2002년 '교육 통계'에서 교사 1인당 책임 수업시수 기준이 없기 때문에 합리적인 인력 운용이 어렵고, 수업 부담이 많은 교원이 질높은 수업을 전개하기 어렵다면서 법제화의
필요성을 밝혔다.
좋은 수업을 위한 표준 수업시수 법제화는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공교육 정상화의 기본 조건이다. 온 국민의 소망이기도 한 사교육비 경감도 초등 교육 단계에서부터 공교육 정상화를 통하여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다.
삼십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교단에 머물며 교사라는 직업에 '넘치는' 자부심을 가진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수업을 폼나게 하고 싶다. 좋은 수업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그 길로 가는 것이 가능할까? '계급장을 떼고' 토론을 하면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다.
나는 충고한다. 표준 수업시수 법제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온 국민에게 공교육의 변화를 절감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며, 그리하여 다음 선거에도 '재미'를 볼 수 있는 가장 으뜸가는 교육 개혁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