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화가 왔다. "선생님! 헤어졌어요. 각오는 돼 있었지만…." 여자 친구와 장래까지 약속했다며 흥분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꽉 잠긴 그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짓누른다.
중학교 시절 수영 특기생으로 체고에 진학한 그는 다이빙 사고로 전신마비가 됐다. 지역 봉사활동을 통해 나는 그의 후원자가 됐다. 걷고 싶다는 소망 하나만으로 전신마비 1급 장애를 견뎌온 그였다. '슈퍼맨 걷는 날'이란 특이한 그의 아이디에는 이런 절실한 바람이 담겨 있다.
그런데도 표정은 너무 밝고 오히려 봉사하러 나온 사람들을 웃게 만들곤 했다.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손가락 하나뿐인데도 컴퓨터를 잘도 더듬는다. 정보 사냥에 능해 세상사 돌아가는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다.
나는 그를 위해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눈물겨운 인생 역정을 세상에 알렸다. 방송국 후원으로 제자들과 함께 공사 현장에서 땀 흘리며 그를 위해 사랑의 집을 지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뿌듯한 감동의 물결이 일었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는 유명인사가 됐다. TV에 출연을 하고, 후원하는 까페가 생기고, 그를 염려하는 사람들과의 정기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중졸 학력이 전부인 그가 배움의 필요성을 절감한다며 고입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입 검정고시마저 합격했을 때, 나는 진정 그의 열렬한 팬이 됐다.
그런 그가 마음을 준 여자 친구를 떠나 보내서인지 오늘은 무척 슬퍼한다. 사람들을 만나 즐거웠던 것만큼 홀로서기의 아픔과 시련을 겪고 있다. 나는 새삼 교사로서의 역할에 한계를 느낀다. 더 이상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안타깝게 그를 바라보게 된다.
"창순아! 선생님은 힘내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구나. 너를 사랑하면서도, 아픈 네 마음을 위로해 줄 오직 한마디를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또 슬퍼지는구나. 굳세게 살자! 넌 지금껏 그렇게 살아온 오뚝이였잖아. 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