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중에서 여뀌를 빼놓을 수 없다. 이삭 모양 꽃대에 붉은색 꽃이 좁쌀처럼 촘촘히 달려 있는 것이 여뀌 무리다. 냇가 등 습지는 단연 여뀌들 세상이고, 산기슭이나 도심 공터에서도 여뀌 무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을은 여뀌의 계절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여뀌는 흔하디 흔해서 사람들이 눈길을 잘 주지 않는 꽃이다. 그저 잡초려니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야생화에 관심 있는 사람도 여뀌는 너무 흔하면서도 복잡하기만 하다며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꽃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예쁜 모습을 포착하면 담는 정도의 꽃이다. 다른 꽃들은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도 많고 얘깃거리도 많은데 여뀌는 그런 것도 거의 없다. 여뀌는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피고 지는 꽃이다. 더구나 소도 먹지 않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식물이라는 인식도 퍼져 있다. 논밭에도 무성하게 자라는 경우가 많아 농사꾼에게는 귀찮은 잡초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명희의 소설 ‘혼불’을 읽다 보면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10권짜리 대하소설인 이 작품 2권에만 여뀌에 대한 묘사가 세 번 등장하고 있다.
“강모는 망설이는 강실이의 팔을 잡으며, 제가 먼저 후원 쪽으로 난 샛문으로 몸을 돌렸다. 강실이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선다. 그 주춤하는 기척에 오히려 강모는 잡은 팔에 힘을 주어 당긴다. 텃밭을 지나 명아주 여뀌가 우거진 곳까지는 한 울타리 안이나 마찬가지였다.”
4권과 6권에도 다시 여뀌가 등장한다.
“강수는 죽은 후에, 그토록 그리었으나 이웃 마을 둔덕 너머 아느실 최문으로 시집 간 진예 대신, 깨끗하게 살다 죽었다는 어느 먼 곳의 처녀 혼백을 맞이하여 굿을 하고 명혼을 치르었다. 그리고 강실이는 그 명혼의 신랑과 신부가 허수아비 몸을 불빛 아래 누일 때 명아주 여뀌가 제 등 밑에서 부러지는 소리를 아프게 들었다.”
강실이와 강모의 애증관계는 이 소설의 기본 뼈대 중 하나다. 강모는 효원과 혼례를 치르지만 정을 붙이지 못하다 연모하던 사촌동생 강실이를 범한다. 그 장소가 명아주와 여뀌가 무성한 텃밭이었다. 그래서 강실이가 이 장면을 회상할 때마다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