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학년 다물이는 학교에서 전혀 입을 열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이나 선생님이 다물이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하루 종일 무표정한 얼굴로 시간만 때우다가 귀가할 뿐이다. 국어 읽기 시간에 자기 차례가 와도 책을 읽는 일이 없으며 즐거운 시간에 노래도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 담임교사가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어느 날, 다물이가 결석을 해서 집으로 전화를 했다. 수화기 저쪽에서 “여보세요?”하는 어린 남자아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담임은 “여보세요? 거기 다물이네 집이죠?”라고 묻다가 다물이란 생각에 ”너 다물이니?”하고 되물었는데 그 순간부터 아무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이다. 담임은 너무나 놀랐다. 학교에 와서는 입을 전혀 벌리지 않던 아이인데 집에서는 저렇게 말을 자연스럽게 하니 도대체 이유가 뭘까?
얼마 후, 가을운동회 연습을 위해 학년 전체가 모두 운동장에 모인 날이었다.
시범 보이는 교사가 교단 위로 올라가고 아이들은 시범동작을 따라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따라하는 동작을 지켜보다 보니 다물이가 의외로 예쁘게 따라하는 것이 아닌가? 대견한 모습에 담임은 다물이에게 칭찬의 눈빛을 보냈다. 그랬더니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다물이는 얼음처럼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동작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담임은 ‘괜히 쳐다보았네. 모른 척 할걸’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아이는 반응을 안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 호에서는 학교에서 입을 열지 않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생활지도와 관련해 한 원격연수원을 통해 접수된 과제를 분석한 결과 학교에서 말을 하지 않는 아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저연령화되고 있다.
교사가 실수하기 쉬운 접근
교수 · 학습 활동의 거의 대부분이 설명하고, 묻고, 대답하고, 읽는 언어적 의사소통인데 말을 안 하는 아이가 학급에 있을 때 교사는 그 아이를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갖은 방법을 써서 그 아이의 입을 열게 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의외로 본인들은 답답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학급에 이런 아이가 있을 때 일반적으로 교사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자.
임무완수형 교사
내가 맡은 동안에 어떻게 하든지 입을 열게 할 것이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자포자기형 교사
작년에도 말을 안했다는데 낸들 뾰족한 수가 있겠나?
아예 저 아이로 인해 힘을 빼지 말자. 자기가 답답하거나 필요하면 먼저 입을 열겠지. 답답한 쪽은 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지. 저 아이 한 명에게 쏟을 힘을 다른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
다정다감형 교사
내가 친절하게 대해주면 저 아이는 입을 열거야. 마치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바람과 태양처럼 난 저 아이에게 태양의 역할을 해서 입을 열도록 하고 말거야. 아이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도록 당부해야지.
상황고려형 교사
자기가 말하고 싶을 때 언젠가는 말을 하겠지. 그냥 부담주지 말고 편안하게 해주자. 의사소통을 꼭 언어로만 하라는 법 있나? 저 아이의 생각을 따로 적을 공책을 마련하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자.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입을 열겠지. 아이들에게도 주의를 줘야겠다. 누가 물어보면, ‘쟨 원래 말 안 해요’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해야지. 벙어리가 아닌 이상 원래부터 말을 안 하는 사람은 없는데 우선 이 낙인이라도 거둬줘야겠다.
선택적 함묵증 증상에 대해 이해하기
이러한 증상을 미국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4판(DSM-IV)에서는 선택적 함묵증 또는 함구증으로 명명하고 있다. 대체로 같은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나타날 때 진단명을 내리게 되는데 선택적 함묵증1)에 대한 진단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다른 상황에서는 말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서는 지 속적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
2) 장애가 학업적, 직업적 성취나 사회적 의사소통을 저해한다.
3) 장애의 기간이 적어도 1개월은 지속돼야 의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필 수 있다(입학 후 초기 1개월은 포함되지 않는다).
4)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사회생활에서 요구되는 언어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그 언어와 관련해 특별히 불편한 관계(예를 들어, 엄마를 잃은 아이의 경우 엄마란 말에 심리적인 불편으로 말을 안하게 되는 것)가 없는 것이어야 한다.
5) 장애가 의사소통장애(예 : 말더듬)에 의해 잘 설명되지 않고, 광범위성 발달장 애, 정신분열증, 다른 정신 장애의 기간 외에 발생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이의 성격, 원인 파악하기
1)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
선택적 함묵증을 가진 아동은 부모 · 형제와 집에 있을 때는 정상적으로 말을 하지만 선생님 · 또래 · 낯선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못한다. 아주 드물게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증상이 명백해지는 것은 학령기 이전이지만 대개 학교에 입학해서야 증상이 두드려져 선택적 함묵증 진단을 받게 된다.
감별진단으로 부끄러움을 잘 타는 아동은 불안이 유발되는 낯선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함묵증을 나타내기도 한다. 낯선 사람과는 말을 하지 않고 어머니에게 매달리지만, 입학하면 함묵증은 자연히 소실되기도 한다. 10세 이전에 약 50%에서 증세가 호전되나 10세까지 호전되지 않는 경우는 대개 예후가 좋지 않다.
2) 성격적 특성
선택적 함묵증을 가진 아이들의 성격은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아주 적대적이고 도전적이며 지배적인 성격을 가졌거나 우울하고 공격적이며 고집이 세고 남을 잘 믿지 못하거나 분노발작을 자주 표출하기도 한다. 반면, 복종적이고 민감하며 잘 울고 불안해 하거나 잘 놀라고 수동적 · 의존적이며 공포를 잘 느끼는 아동들도 있다. 간혹 아이의 적대감이 ‘말하는 것에 대한 반항적 거부’로 표현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때로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주위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중적인 특성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가정 내에서는 부정적, 적대적이며 고집이 세고 남을 조종하려고 하는 반면 낯설거나 새로운 상황에서는 수줍어하며 예민하고, 공포에 질리거나 경직되며 수동공격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함묵증의 드러난 원인 알기
1) 구강구조 이상
구강구조에 문제가 있거나 치열이 심할 정도로 고르지 않으면 말을 할 때 주위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심리적인 부담을 느껴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저하게 된다. 처음엔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작은 소리로 말을 하는 정도이지만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말을 해야 하는 여러 상황에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글로써 의사표현을 하고 간단한 말도 대답을 안 하는 경우에까지 이를 수 있다.
2)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한 증상
충격적인 일을 경험해서 순간적으로 놀랐을 경우 그 후유증으로 말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현장에서의 충격적인 일이란 갑작스런 추락사고로 사랑하는 친구가 크게 다친 일을 현장에서 목격했거나 여러 친구들 앞에서 교사에게 심하게 체벌이나 모욕을 당해 심리적인 충격을 받는 경우들이 있다. 가정에서는 사랑하던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이나 이사 등으로 이별의 상처를 견디기 힘든 경우에도 일시적으로 함묵의 증상을 보일 수 있다.
3) 어눌한 말소리에 대한 부정적 반응
구강구조 이상과 유사한 원인으로 볼 수 있지만 다소 차이가 있다. 발음을 정확하게 못해 전체 학급 친구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됐던 경험이나 또는 교사로부터 꾸중을 들었던 경험이 상처로 남아 자신감을 잃게 되고 점점 말을 안 하게 되는 경우가 해당된다. 1차적인 원인은 구강구조의 문제이지만 주위 반응에 의한 것이어서 심리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4) 수동공격성의 표현
아이의 성격에 따라서 상대방의 말을 못 들은 척 하거나 질문을 듣고도 딴청을 부리면서 상대방이 답답함을 느끼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말을 안할 수도 있다.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 찾아주기
1) 장난감 활용을 통한 치료기대
놀이는 누구나 좋아한다. 놀이를 통해 내면의 욕구도 표출하고 사회성도 기르며 자신을 외부상황과 적절히 조절해 나가는 기회가 된다. 놀이를 좋아하고 즐기는 아이는 심리적으로 건강하다고 볼 수 있다.
놀이치료 전문기관에 있는 놀이기구는 현실생활에서 다루기 힘든 공격성이나 의존심 등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장난감들이다. 예를 들면 펀치백, 총, 군인, 장갑차, 젖병, 접시, 장난감 요리기구, 각종 인형, 블록, 레고, 모래상자, 컵, 물 등이다.
말을 전혀 하지 않는 아이들도 장난감이 주위에 있으면 가지고 놀고 싶어한다. 교실에서 할 수 있는 놀이치료는 전문 놀이치료기관에서 실시하는 수준과는 차이가 있어서 갖추어 놓을 수 있는 놀이도구 수준도 매우 제한된다.
그래도 학습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간단한 놀이도구 몇 가지로도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 교실이 긴장의 공간이 아니라 즐겁고 재미있는 공간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즐거운 공간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심리적으로 편안함과 안전함을 확인하게 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말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게 된다.
2) 편안한 분위기 조성해주기
아이의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반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은 일일지라도 이런 아이들에겐 상당히 부담이 된다. 교실에 낯선 사람만 들어와도 긴장을 하게 된다. 친구들이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던지는 말도 이 아이를 불안하게 한다. 교사는 이 아이 주변에 배려심이 많고 친절하며 마음이 따뜻한 아이들을 배치시켜 주어 아이의 마음이 안정되도록 최대한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3) 의사소통 공책 마련하기
상황과 사정에 따라서 의사소통 방법은 다양하다. 아이가 말을 계속 하지 않을 경우 의사소통을 위한 공책을 별도로 마련할 수도 있다. ‘그냥 말로 하면 쉬울 것을 왜 바쁜데 그 아이를 위한 공책까지 따로 마련해서 쓰게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아이를 위한 맞춤식 서비스라 생각하고 실천해보자. 그 아이도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는 아이이다. 하고 싶은 말이나 감정을 표현할 기회를 주도록 하자. 그 아이와 가까워지고 신뢰를 얻어 관계가 좋아지면 의외의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유념할 일은 이 방법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 방법이 고착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4) 꼬리표 붙이지 않기
특별한 아이에 대한 일반 아이들의 흔한 표현으로 “쟤, 원래 그래요”가 있다. 아이들이 이 말을 할 때 반드시 그 생각과 표현을 수정해 주어야 한다. “원래 그런 아이는 없단다. 지금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일시적으로 그런 것이니 너희들이 이해를 하고 그런 표현을 쓰지 않도록 하자”고 해야 한다. 말을 하고 싶어도 ‘원래 말을 안 하는 아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더 말하기가 쑥스럽고 힘들게 될 수도 있다.
5) 부모 상담하기
말을 안 하는 아이와 부모면담을 하게 될 때 의외로 기대효과가 낮을 수 있다. 교사는 아이가 말을 안 하는 것에 대해 매우 심각성을 느끼는데 반해 부모는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에서는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하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보통 “아마 수줍음이 많아서 그럴 거예요. 좀 더 기다려주시면 말을 할 거예요”라고 반응하곤 한다.
부모가 심각성을 인지하고 전문상담기관에 데려가더라도 그 아이를 둘러싼 주변의 사람들, 즉 교사와 친구들이 협조할 때 효과가 빠르므로 부모와 상담할 때는 이러한 점도 고려하도록 해야 한다.
이상으로 학교에서 말을 안 하는 아이의 원인을 알아보고 도와줄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강조하는 말이지만 말을 안 하는 것을 교사에 대한 태도 문제로 보게 되면 큰 오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병리적인 문제이므로 측은히 여기고 최대한 편안한 환경이 되도록 하는 것이 그 아이를 도와주는 것이다.
부모가 원인을 제공한 경우라면 교사가 통제하기 힘든 영역이지만, 학교가 아이에게 부담과 불안과 공포심을 주는 환경이어서 발생한 문제라면 이 얼마나 씻을 수 없는 잘못인가? 학교가 즐겁고 신나고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생활지도의 달인이 되는 연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한영진
숙명여대에서 아동복지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에서 부모교육, 상담이론과 실제 등으로 강의를 맡고 있다. 2002년부터 전문상담교사-학교상담실을 운영하며 ‘교사를 당황하게 하는 아이들Ⅰ,Ⅱ’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