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이야기가 아닌 듯이 시작되는 이 글은 수필 <담요>(최서해 作)의 일부이다. 담요가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 글은 우리에게 큰 울림과 슬픔을 전해준다. 글을 통해 사람을 몰입시키고, 감동을 주는 것 그리고 당시의 시대를 읽게 하는 힘은 진심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전하고 독자에게 작은 깨달음을 전할 수 있는 글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준다.
수필은 삶을 표현하는 중요한 도구
글을 쓰는 목적은 다양하다. 정보의 전달, 설득, 깨달음을 주기 위함, 감동 등 글쓰기의 목적은 글의 종류를 규정짓는 기준이 된다. 목적에 따라 글의 형태와 구성이 달라지지만, 쓰기가 모두 삶에 대한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공통점이다. 삶에 대한 쓰기는 쓰기의 본질이며 근본적인 목적이 된다. 문학으로 범주를 좁혀보면 이러한 논리는 더욱 구체화된다.
문학은 삶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다. 그 발생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인간의 행위를 모방해 표현했다는 모방기원설, 유희를 추구하는 인간의 기본 속성(Homo- Rudens)에서 발생하였다는 유희본능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표현하고자 하는 데서 발생했다는 자기표현설 등 여러 견해가 있지만 이들의 견해들에서도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요소는 ‘삶’이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쓰기는 삶을 떠날 수 없으며, 우리가 하고 있는 수많은 쓰기 역시 삶에 대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삶을 표현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가 쓰기이며, 쓰기를 통해 삶의 내용을 전달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쓰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수필’이다. 수필은 보통 그 특징에서 제시되는 것처럼,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편한 쓰기이다. 우리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중요한 이유가 쓸 거리를 찾지 못하고, 구체적인 쓰기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수필은 글쓰기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전하는 일은 우리가 쓰기를 하는 본질적인 의미를 확인시켜주는 과정이며 동시에 쓰기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는 수필 쓰기를 삶의 쓰기의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제시해 보도록 한다.
수필은 무엇인가
수필(隨筆)은 말글대로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다. 다른 글과의 가장 큰 차이는 실제로 경험한 일을 자신의 언어로 직접 표현한다는 것이다. 수필은 동양과 서양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해 광범위하게 창작됐다. 프랑스의 몽테뉴, 영국의 베이컨이 쓰기 시작한
이전에도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솔직한 고백은 많은 작가와 철학자들에 의해 기록됐다. 우리의 고전에서도 수필의 흔적은 쉽게 발견된다. 이규보의 <역옹패설>은 시대를 넘어 삶의 여유와 철학적 사유의 결과를 오늘날까지 신선하게 전하고 있다.
수필은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나뉠 수 있다. 진술 방식에 따라 교훈적 수필(예 : 이희승 <지조>), 희곡적 수필(예 : 계용묵 <구두>), 기행수필, 서사수필(예 : 이희승 <딸깍발이>), 서정수필(예 : 이양하 <신록예찬>) 등으로 나누며, 주제의 무게에 따라 경수필(輕隨筆 : miscellany), 중수필(重隨筆 : essay)로 나누며 그밖에도 성격상, 형식상의 기준으로 나누기도 한다.
어떤 분류로 나누든 수필은 자신의 삶을 주제로 진솔하게 드러낸다는 점은 모두 동일하다. 수필의 특성과 관련지어 수필 작성을 지도하는 필요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1. 형식의 제한이 없다
수필의 정의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필은 특별한 형식의 제한이 없다. 자신의 경험을 쓰는 것인데 일정한 형식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비전문가도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다는 의미로 여기에서 중요한 교육적 가치를 찾게 된다.
엄격한 형식을 갖는 글은 고급의 쓰기 능력을 요구한다. 표현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도 형식적 틀에 갇혀 피상적으로 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진다.
글쓰기 과제를 주었을 때, “수필처럼 써도 되나요?”라는 질문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말은 “편하게 써도 되나요?”의 의미로 아이들도 수필을 편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형식적인 쓰기 능력이 부족한 저학년 학생일수록 수필은 쓰기의 입문 단계에서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2. 소재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수필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소재가 자유롭다는 점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소재의 종류는 수필의 작품 수와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작가가 수필로 표현한 삶의 경험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건을 함께 경험하고 표현했다 하더라도 그 경험의 내용은 글쓴이에 따라 모두 다르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배경지식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에 주관적인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다. 소재가 다양하고 자유롭다는 점 역시 쓰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대부분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고, 막상 주제가 정해져도 알고 있는 내용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수필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쓰는 과정이다. 자신만큼 그 내용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삶은 경험의 연속이다. 하루하루의 순간이 곧 수필의 소재가 된다.
3. 자기성찰의 과정을 거친다
자신이 경험한 일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사실(fact)을 전달하는 차원이 아니다. 어떤 경험이든 자신의 주관을 거쳐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깊이 있게 사고하는 자기성찰이 이루어진다. 자기성찰은 수필의 중요한 특성이며 수필을 읽고 쓰는 이유이다.
교육의 차원에서 볼 때 자기성찰의 과정은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중요한 내용이다. 지난 경험을 반추하고 재인함으로써 경험의 의미를 깨닫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이러한 성찰은 교과의 내용을 이해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현재의 교육 체제에서 실천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수필 쓰기는 자기성찰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다. 쓰기는 고차원적 사고 과정으로 쓸 내용을 정리하고 표현의 과정을 거치며 깊은 사유가 이루어진다. 한 편의 수필을 쓰며 자연스럽게 깊은 자기성찰의 기회를 갖게 된다.
수필 작성 지도의 실제
1. 테마 정하기
우리의 경험이 다양한 만큼 수필의 종류도 다양하다. 어떤 내용으로 수필을 쓸지 정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급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아이들이 갖고 있는 여러 요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여기에서는 학교급에 따라 정할 수 있는 테마를 간략히 나열해 보도록 한다. 상황에 따라서 달리 적용시킬 수 있다.
2. 좋은 수필 읽기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이다. 스스로 수필을 찾아 읽고 그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좋겠지만 수업의 현실을 고려해 아이들에게 좋은 수필 작품을 제공해 주도록 한다. 교과 수업과 연계성을 높이기 위해 교과서에 제시된 작품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방법도 유효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스스로 좋은 작품을 찾아 읽을 수 있도록 지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3.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감동과 교훈 찾기
주제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 보고, 실제 작성하게 될 수필의 소재를 찾는다. 자유연상법을 통해 가장 인상 깊은 기억을 떠올린다. 어느 하나의 기억만을 떠올리기 어려운 경우는 여러 가지 기억을 나열하고 가장 인상적인 내용을 정리하도록 한다. 소재가 정해지면 그 경험에서 느낀 감동과 전달하고 싶은 교훈을 찾아본다. 이를 정리하는 과정은 수필 쓰기의 개요 작성에 해당되며 주제를 정하는 과정이 된다.
4. 수필 작성
찾은 소재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형식으로 수필을 작성하도록 한다. 다음은 학생의 실제 작품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 글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면서 개인의 감동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에 대한 글, 수필의 힘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수필 <담요>는 어떻게 끝을 맺고 있을까? 무심결에 깔게 된 담요를 통해서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을까?
최서해는 잘 알려진 것처럼 가난한 삶으로 힘겨웠던 작가이다. 작가에게 담요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원고료를 받지 못한 채, 집에 돌아온 그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딸아이를 보게 된다. 사연인즉슨, 가난한 그의 어린 딸이 옆집 사내아이의 담요가 부러웠던지 만지작거리다 그 아이에게 맞아 머리가 터진 것이었다. 그 사실과 가난의 처참한 현실에 화가 났지만 그가 바꿀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원고료를 받자 그는 먹을 양식을 사지 않고 담요를 하나 사서 딸아이에게 준다. 가족들도 배고팠지만 그의 행동을 이해한다.
한 순간도 담요에서 떨어지지 않고 얼굴을 부비며 좋아하던 딸아이, 그 담요가 몇 년이 지난 지금 최서해의 무릎에 덮여 있다. 더 어려워진 생활고에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할머니와 함경도에 가 있던 딸아이는 더 추운 북간도에 있는 아비에게 담요를 보내자는 할머니 말에 말없이 담요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 어여쁜 딸아이는 가난과 영양실조에 하늘로 먼저 가고 말았다. 작가는 그 아픔을 담담한 수필로 써내려갔다. 수필은 눈물이고 따뜻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