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는 의미의 탄생을 돕는 산파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남을 법한 옛날 고릿적 이야기지만, 학창시절에 내가 받은 국어수업에서는 은유법, 환유법, 대유법, 제유법, 직유법, 도치법, 의인법, 영탄법, 과장법, 반복법, 점층법, 돈호법, 설의법 등등 ‘법’ 자가 붙은 수사법을 마치 수학공식처럼 달달 외우곤 했었다. 수사법은 왜 쓰이는가, 어떠한 효과를 위한 표현인가를 설명하거나 실제 작문에서 효과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보다는 수사법 명칭을 무조건 외워서 시험문제에 대비하도록 주입받았던 것이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국어시험을 위한 수사법이라는 배움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언어에 존재하는 비유적 표현은 왜 생겨났고, 어떤 효과가 있으며, 그것은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가르치는 국어수업으로 탈바꿈되어 있기를 진정 바라 마지않는다.
위에서 열거한 수사법은 모두 말하는 사람이나 글 쓰는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관계가 있다. 그것은 대개 강조법, 변화법, 비유법으로 이루어지는데, 그중에서도 언어 기능의 본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비유법이다. 비유란 말하려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나타내는 방식으로, 다르게 말하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낯익은 대상을 통해 낯선 것을 표현하려는 것이다. 요컨대 비유는 낯익은 것과 낯선 것이 조우해 새롭고 신선한 뜻을 낳도록 해주는 산파라 할 것이다.
비유에는 수명이 있다 비유에 의해 성립한 표현 및 그것의 의미는 유기체처럼 생명의 순환을 겪는다. ‘두꺼비 같은 아들’, ‘사시나무 떨듯’ ‘앵두 같은 입술’ 등등, 애초에는 분명 시적이고 참신했을 표현이 상투적인 낡은 표현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