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체구에 유난히 도전적인 눈을 가진 아이' '복도와 계단을 늘 뛰어 다니는 아이' 이것이 그 아이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마주 대하기가 어린 아이 같지 않아 처음부터 나를 망설이게 했던 아이, 그랬다. 그 아이 Y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그러니까 그 아이의 4학년 담임을 맡으면서이다. Y는 첫만남 내 눈에 좋지 않은 인상으로 들어왔고, 그 첫날 하루를 못 넘기고 급우들과 충돌이 시작되었다.
첫날 자리 배정에서부터 그 아이 Y를 기피하는 급우들의 모습을 보았고 그 싸늘한 분위기를 참아 넘기지 못하는 Y는 빈정거리는 주변 아이들과 주먹질까지 오가는 새학기 첫충돌이 빚어졌고 그 다툼의 원인에 대한 댓가치곤 심한 주먹질이 오갔다. 그렇게 시작된 급우와의 마찰은 한동안 끝가는 데를 몰랐고 하루도 싸움이 없는 날이 없었다.
교사의 눈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 아이의 폭력에 가까운 충돌은 나에게 섬뜻함을 느끼게까지 했다. 단순한 다툼이 아니었다. 어떤 종류의 다툼이던 그 아이는 거칠게 대했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주먹부터 휘둘렀다. 처음엔 막막했다. 주위 아이들의 시각과 마찬가지로 담임인 나도 그 아이가 싫었다. 날이면 날마다 다툼이 없는 날이 없었다. 하루에 한차례의 다툼은 지극히 양호한 날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치는 Y와의 얼굴 찌푸린 시간이 점점 나를 지치게 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대책이란 것이 학급 규칙 하나 정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제도적인 문제가 아니기에 난감했다. 우선 Y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부모님이 계시고 누나가 둘이 있었다. 딸 둘을 낳고 난 후의 아들이라 너무 귀엽게 키운 탓인가도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옷차림에서부터 그렇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살림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고 별로 내세울 만한 것도 없고 막노동으로 부부가 생활고에 지쳐 아이를 방치한 원인이 더 컸다. 집도 학교에서 멀었다. 학구 위반은 아니었으나 성남시 외곽지 군 접경지역으로 정기적인 통학 수단은 학원차였다. 학원차 운영 시간에 맞춰 하루의 일정이 좌우되고 여의치 않으면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했기에 생활지도에 어려움이 더 많았다.
또한 집 주변에 문방구점이 없기에 준비물을 갖추기가 더욱 힘들었고, 준비물과 교과서는 거의 갖춰오지 않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고 그에 대해 불안한 마음도 없고 오히려 당연한 듯한 태도에 연민과 분노가 함께 느껴졌다. 야단을 쳐보아도 달래보아도 전혀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준비물을 내가 챙겨주고 교과서는 교사용을 늘 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도화지와 크레파스 등등 별것은 아니지만 늘 준비해 주어도 Y는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 뻔뻔함에 가까운 태도와 마치 나를 조롱하는 듯한 태도에 서운함과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러던 중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마치 Y와 힘겨루기라도 하듯 눈에 보이지 않게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 나부터 순수해지자’‘아직은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말자’‘시간을 기다리자’‘말 안들어 미울 때 내 자식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 아이를 바라보자’몇 번이고 내 자신에게 다짐을 했다. 그래서 맨 먼저 시도한 것이 '신체적 접촉'이다. 처음엔 내자신도 꺼려졌다. 깨끗하지 않은 용모, 늘 도전적인 눈빛, 담임교사마저도 적대시하는 듯한 표정….
한번 싸움이 벌어지면 그 아이는 자신을 진정하지 못하고 무조건 덤벼들었다. 아무리 말려도 교사의 손을 뿌리치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그 아이를 달래는 방법으로 분이 풀릴 때까지 안고 있기로 했다. Y를 품에 안고 있으면 분노와 울분을 이기지 못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내 품속을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쳤다. 내 두 팔에서만 빠져나가면 다시 달려들어 주먹과 발길질로 싸웠다.
그러나 얼마후 엄마 찾아 울다 울다 지쳐 포기한 어린아이 마냥 Y는 서서히 울분을 가라앉히고 잠잠해졌다. 분노가 가라앉아 잠잠해진 그 아이를 안고 있으면 마치 한바탕 경기를 끝내고 돌아간 빈 운동장 같은 허탈함과 고요함이 내 가슴에 왠지 모를 막막함에 푹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런 후에야 잘잘못을 가려주는 일이 가능했다. Y를 이해하고 설득시키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난 그 아이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그렇게 난폭해 보이는 행동 속에 지극히 여리고 부드러운 일면이 있었다. 조용히 달래노라면 그 아이는 잘 울었다. 잘 우는 정도가 아니라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동정과 울분이 내게까지 솟구쳤고 그 아이의 눈물만큼이나 내 가슴 속에도 생각해보면 그 눈물샘의 작은 한 방울 한 방울이 가뭄에 단비처럼 느껴진다. 그때는 그렇게도 힘들었는데, 마치 내 팔을 벗어나려는 그 아이의 몸부림만큼이나…
Y가 특별히 난폭해진 것은 '피해의식'과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하는 듯한 느낌, 담임교사마저도 믿을 수 없고 모두 한통속이라는 선입견, 나만 피해자라는 생각 등이 합해져 그 아이는 아무도 믿지 않았고 그 불신이 지독히 외로움으로 이어졌다. 그 외로움 때문에 Y는 특이한 행동을 했다. 그 행동은 복도와 계단을 마구 뛰어 다니는 것이다. 늘 앞서 뛰고 몇 아이가 그 뒤를 쫓아다녔다.
그 연유를 알아보았더니 언제나 Y가 다른 아이를 툭 건드리고 도망치면 다른 아이는 이유없이 맞은 것이 억울해서 뒤쫓아가는 이런 행동이 틈만 나면 계속 반복되곤 했다. 마침 계단 쪽에 위치한 우리 반은 복도와 계단에서 '톰과 제리'를 연상하는 화면이 늘 방영되곤 했다. 그 아이 Y는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급우간에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며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이 그래서 늘 외로웠기에 Y는 먼저 장난을 걸었고 뒤쫓아오는 아이들을 맞서 뛰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랬고 또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역할로 이용했다.
그런데 뒤쫓아온 아이에게 한 대라도 맞으면 그 곱빼기로 갚아줘야만 그 피해의식에 다소나마 분풀이가 되는 듯한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 처음엔 황당했다. Y의 의식이- 'Y 스스로 다른 사람을 때리는 것은 용납할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때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아이, 더 나아가 세배 네배로 되돌려 주고야 마는 아이의 의식이' 또한 Y는 대화로 설득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은 절대로 승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 설득되면 속된 말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동안 쌓인 서러움을 다 토해내곤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분노와 동정과 짜증이 교차되었고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 다음으로 시도한 것이 '칭찬과 대화'이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처음 Y를 급우들 앞에서 칭찬을 해 주던날 그 아이의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과 어리둥절한 표정을. 내 자신과 약속했다. 작은 일에도 칭찬을, 잘못된 일에는 대화로 설득하고 그에 합당한 약속된 벌을 주고 그 아이에 대한 감정과 선입견을 버리기로. 하지만 많은 시간적 투자가 이 약속을 가능하게 했다.
마지막 시도이면서 내 자신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기도 한 Y와의 약속은 다섯 세기였다. 화가 치밀어 올라 주먹부터 올라가고 싶을 때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넷, 다섯’까지만 세어 보고 행동으로 옮기자는 약속이었다. 쉬운 것 같지만 불같은 Y의 성격으로는 상당한 인내심과 의지를 필요로 했다.
잘 지켜지지 않았다. 아니 처음엔 지키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주먹부터 올라갔고, 안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얘기 나누고, 달래고 울고 울고 달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런 날이 끝을 알 수 없이 계속되고 적당히 지쳐갈 무렵, 또한 나 자신과의 약속에도 점차 길들여져 가고, 발버둥 치는 Y의 거센 몸짓에도 점차 익숙해져 갈 즈음 난 아주 작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변화는 뜨거운 여름을 지나고도 더 많은 시간이 흐른 제법 찬바람 느껴질 무렵이었다.
손잡기도 꺼려하고 곁에 다가가는 것도 경계하는 듯한 강한 눈빛이 점차 흐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무렵 Y는 내 책상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가까이 다가와 말을 붙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뛰고 달리는 주 무대가 복도와 계단에서 교실 안으로 특히 교실 앞쪽으로 차츰 옮겨 지는 것이 느껴졌고, 더욱 놀라운 것은 가끔 숙제를 해 오는 것을 놓칠 수가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주위를 빙빙 돌면서도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잠시 다가 왔다가 멀어져 가고 또 다시 왔다가 못 본척 돌아서던 Y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마치 야생의 늑대를 길들여 가는 소년과 늑대 영화의 한 장면 처럼. 작은 반란이 아직도 꺼지지는 않았지만 그토록 곤두서던 신경이 차츰 평온해져 감을 내 자신이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다툼은 있었지만 학년 초의 그 난폭함은 아니었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좀 더 차가운 바람이 불어 올 무렵 Y의 가장 큰 변화는 숙제와 준비물 갖추기에서 나타났다. 내용은 부실했지만 숙제를 꼬박꼬박 해왔다. 이번에 어리둥절한 것은 오히려 내쪽이었다. 처음엔 내 자신에 여러번 속았다. ‘저 녀석 또 분명 숙제 안해 왔겠지’하고 살펴 보면 알아보기 힘든 글씨지만 분명 어제의 숙제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몇 번은 속았다. 그렇다고 Y는 숙제 해 왔다고 자랑을 하거나 표시를 내지도 않았다. 여전히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 주위를 오갈 뿐이었다.
동학년 선생님들께서 “요즈음 Y 뛰는 모습이 잘 안보이네요.”라고 하시던 그때 쯤 Y는 숙제를 잘해왔고 '톰과 제리' 방영 시간이 뜸해졌으며, 나도 Y도 신체접촉의 첫번째 시도와 두번째 시도인 대화의 시간이 줄어든 반면 칭찬과 다섯 세기 시간이 늘어 갔다.
언제나 다툼 끝에 난 Y에게 물어보았다. “얘다, 다섯까지 세고 나서 저 애를 때렸니?”라고. 그렇게 다섯세기에 서로가 익숙해 질 쯤 Y를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많이 부드러워 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1년을 마감할 무렵 어느날 난 눈이 번쩍 뛰었다. 겨울 방학 과제물 검사를 할 때였다. Y가 일기를 매일 써 온 것이다.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비록 내용은 보잘것없고, 글씨도 형편없었으나 날짜만큼은 돋보였다. 틀림없는 Y의 것이었다. 나는 너무 기뻐 공책을 선물로 주며 크게 칭찬을 하고 동학년 선생님들에게도 자랑을 하였다.
아직도 공개적인 칭찬은 쑥스러운지 그저 씨익 웃기만 할뿐이었지만 처음의 그 반항적인 눈빛이 수그러진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아주 가끔씩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주는 그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날이면 순풍에 돛을 단 듯 하루가 순탄하게 지나가곤 했다.
그렇게 그 아이와의 1년은 지나갔고 지금은 같은 학교에서 다른 층을 쓰고 있으며 지금도 오다가다 만나면 씨익 웃고 지나가기만 했다. 그러나 그 눈빛에 처음의 그 강렬한 도전적인 빛은 보이지 않는다. 이젠 나도 그 눈빛이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복도를 지나가면 불러 말이라도 시켜 보면 왠지 고개가 땅으로 수그러들며 대답만 겨우 한다. 의도적으로 불러 심부름이라도 시키면 무척 좋아하고 의기양양한 모습이 어렴풋이 엿보이지만 아직도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듯하다. 그 아이는 아직도 마음속 얘기는 하지 않는다. 복도에서 만나면 눈을 마주치고 자주 웃곤 한다. 호탕하게 웃지는 않으나 보일 듯 말듯 미소 짓는 그 모습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다섯 세기에 익숙해지는 날이면 크게 웃는 날이 오겠지. 기다릴 수 있다. 아니 내 앞에서 큰 소리로 웃지 않아도 된다. 처음 씨익 웃으며 날 바라보던 그 작은 미소만으로도 나에겐 차고 넘친다. 먼 훗날 누군가에겐 활짝 웃고 마음을 터놓을 날이 오리라 믿는다. 우스운 일이지만 요즈음은 나 자신이 다섯까지 세기에 더욱 노력하고 있다.
왁자지껄한 종례시간 교탁에 서서 끝을 모르고 종알거리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그래, 다섯 다섯까지만 세자.’ 실험시간 길길이 뛰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다섯에 다섯을 보태어 세어보곤 한다. 그럴 때면 마치 아이들이 “선생님도 다섯까지만 세어 보세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요즈음은 아쉬움과 후회되는 마음이 교차된다.
‘겨울 방학 일기장으로 상장이라도 하나 줄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속도에 가속을 덧붙여 볼 것을…’ 그러나 과욕일 수도 있다. 흐르는 물길처럼 시간이 흐르면 시간이 흐르면… 먼 훗날 어색한 작은 미소에 익숙해지면 그 아이는 활짝 웃을 수 있겠지. 지금의 그 작은 미소를 잃지 않길 바랄 뿐이다. 더 먼 훗날 다섯을 세며 꾿꾿하게 살아갈 Y를 나 혼자 상상해보며 글쓰기에 적당히 지루해져 가는 나는 다섯에 다섯을 세며 이젠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