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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사랑과 I love you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하는 사회
언제부터인가 사랑한다는 말에 달라붙어 있던 쑥스러움이나 거리낌이 옅어진 듯하다. 특히 ‘사랑해요, LG’ 같은 광고 문구를 보면 기분이 묘해진다. LG 관계자가 자기 회사를 사랑한다면이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소비자까지 나서서 사랑한다고 외칠 이유가 따로 있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어를 배우러 온 오키나와 출신 친구가 ‘사랑해요, LG’를 듣고 놀랐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에게는 거침없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한국 사람들이 좀 낯설게 보였던 듯하다.
실제로 일본어로는 사랑을 고백할 때 사랑한다(愛している)는 말보다 좋아한다(好き)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잘 타 완곡어법을 즐긴다고 단정해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바로 앞 세대만 하더라도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대놓고 하는 것을 낯간지럽고 부끄럽게 생각한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한다는 말이 흘러넘치는 한국 사회의 변화에서도 실로 서구화의 흔적이 느껴진다.

말로 해야 진짜 사랑이다?
눈부시게 산업화가 진행되고 콜라나 아이스크림과 같은 달큼한 맛이 침투하면서 ‘I love you’가 나타내는 정서도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서구 사회에서 가족끼리 나누는 사랑한다는 말, 포옹, 입맞춤에 대한 감각 등은 근대화가 덜 이루어진 한국 사회에 본보기가 되었다.
자유로운 표현을 방해하는 수줍음, 쑥스러움 같은 감정은 어느새 촌스럽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가부장제적 사고에 젖은 아버지들은 이런 세태에 적응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사랑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 자체가 마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인 것처럼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오락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영상편지는 마치 카메라를 들이밀고 상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장치처럼 보인다. 카메라 앞에서 혹여 쑥스러움을 이기지 못해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어 전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비난(?)까지 감수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미디어는 열정적으로 사랑의 고백을 선도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은 주눅이 들 것 같다. 말로 하든, 안 하든 진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진대, 머리 위에 손을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면서 사랑한다고 외치는 시청각적 표현으로 사랑의 뜻이 흐려지고 사랑의 표현이 빈약해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사랑의 대상
현대사회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어쩐지 이성 간의 사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저잣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붙들고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고 설문조사를 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옛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현대인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아니면 매우 다를까?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 아니, 그 시절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말을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쉬운 예로 학교 때 고전문학 시간에 배운 고대문학이나 중세문학의 작품을 떠올려보면 임금이나 부모에 대한 애정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바로 전근대 사람들에게 충이나 효 같은 종류의 사랑이 가장 중요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흥미로운 것은 고려가요 <정석가>나 정철의 <사미인곡>에서 보듯이, 충효의 마음을 드러낼 때 이성 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남녀 사이의 애틋한 감정과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은 따로따로가 아니라 깊이 통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오늘날 사랑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연상시키는 대상은 단연 연애 상대가 되는 이성(때로는 동성)이다.

‘연애’라는 말의 성립
그런데 여러 가지 사랑 가운데 이성 간의 교제를 지칭하는 ‘연애’라는 말은 근대 이후에 쓰이기 시작했다. 이 점에서 연애의 역사는 겨우 백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연애는 영어의 Love에 해당하는 번역어를 고심하다가 한자의 연(戀)+애(愛)를 조합하여 만든 일본의 한자어인데, 조선과 중국에서도 영어의 Love를 사랑이 아니라 연애라고 번역했다.
신문이라는 말이 없으면 신문이라는 문물을 이해할 수 없듯이(신문 역시 일본식 한자 조어다), 연애라는 말이 성립하면서 사람들은 연애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연애라는 말만 들어왔고 정작 연애에 해당하는 현실은 없었다. 그러나 연애가 어떤 것인지 감을 잡게 되면서 연애는 현실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연애와 마찬가지로 학교, 군대, 경찰, 우편, 법 등등 근대문명은 번역이라는 수용 과정을 통해 성립했다. 지금은 아주 친숙해진 탓에 백여 년 전에 들어온 신조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현재 한국어에서 차지하는 일본식 한자 조어의 비중은 대단히 높다. 여기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연구해야 할 어려운 학술적인 주제다.
아무튼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일은 태고적부터 있었겠지만, 연애는 좀 차원이 다른 말이었다. 즉, 서양에서 건너온 Love라는 말과 부딪히지 않았던들 연애라는 말도 생겨날 턱이 없었다. 과연 Love란 무엇인가. Love는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는가.

사랑은 본디 내리사랑
한국에도 사랑이라는 말이 있긴 있었다. 고전의 기록에서 사랑의 전신인 ‘랑’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사랑 애(愛)’이기도 하고 ‘생각 사(思)’이기도 했다. 한국어에서 보면 사랑과 생각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모하는 것이고 몸이 끼어드는 에로스와는 거리가 멀다. 어쩌면 한국어의 랑이야말로 영어의 Love와 가까운 말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랑이 본질적으로 ‘내리사랑’이라는 점이다. 내리사랑이란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베푸는 애정이며, 특히 부모의 자애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춘향가>에서 “이리 오너라 업고 노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로 잘 알려진 이 도령의 <사랑가>에 나오는 사랑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실은 이팔청춘의 남녀가 나누었던 이 사랑타령의 사랑도 윗사람인 남성이 아랫사람인 여성에게 베푸는 애정인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한편 이 도령을 향한 춘향의 사랑은 사모하고 은혜하며 섬기는 것이지 베풀 수는 없는 것이다.
남녀평등의 이념이 보편화된 오늘날, 사랑도 점점 더 평등에 걸맞은 감정으로 변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한다고 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되었고, 콩알만한 자식이 부모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귀여울 따름이다. 사랑은 내리사랑에서 오르락내리락 자유로운 사랑으로 변한 것이다.

기독교의 사랑도 내리사랑
Love와 사랑에 관해 기독교를 도외시하고 논하기는 어렵다. 넓은 의미로 사랑은 귀하게 여기고 정성을 다하는 마음 혹은 어떤 것을 몹시 좋아하거나 즐기는 마음이지만, 주로는 남녀가 서로를 생각하는 열렬한 마음 또는 그러한 마음에서 행하는 성행위를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뺄 수 없는 사랑이 바로 기독교에서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는 덕목이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성경 구절도 있거니와, 기독교가 세계 종교, 보편 종교가 된 이래 사랑의 이념은 절대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기독교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사랑은 절대적인 존재가 내려주는 은혜요, 축복이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의 사랑 역시 내리사랑이다. 물론 이웃을 사랑하라는 평등한 관계의 사랑도 없지 않다. 그러나 평등한 이웃에게 사랑을 쏟을 수 있으려면 먼저 자신이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다시 말해 정신적으로 더 선한 자리에 올라 있지 않으면 사랑을 나누어줄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이웃에 대한 사랑은 어디까지나 이웃을 너그럽게 여겨 사랑하라는 내리사랑이다.
선진적인 문명의 하나로서 기독교를 받아들였을 때, 하느님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의 관념은 조선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 고귀한 정신적 사랑이라는 생각은 기독교의 사랑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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