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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팔순의 할아버지와 그의 마흔 살 먹은 소. 늙고 볼품없는 이들의 뒷모습이 조곤조곤 걸어오는 이야기는 어떤 화려한 이야기보다 가슴 깊이 울려온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삶과 죽음은 인간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기에 모든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게도 하고 울리기도 한다.

 딸랑딸랑 딸랑딸랑. 둔탁한 듯 쨍쨍한 워낭(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소리와 함께 늙고 비쩍 말라 볼품없는 소 한 마리가 등장한다. 축 처진 눈꺼풀이 눈곱 낀 눈동자를 반쯤 덮은 채 털이 듬성듬성 빠진 볼기짝엔 소똥이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다. 한눈에 봐도 쓸모없고 병들어 보이는 소의 뒤를 역시 늙고 마른 몸의 추레한 노인이 뒤따른다. 마치 쇳덩어리라도 달고 있는 양 너무나 무거워 보이는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떼는 모습이 소나 노인이나 위태위태, 별반 다르지 않다. 보는 이의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서로 닮은 늙은 농부와 소

 늙은 촌부와 소가 주인공인 영화 <워낭소리>는 경북 봉화 하눌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팔순의 최원균 할아버지와 그의 마흔 살 먹은 소의 동행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조용한 농촌 마을, 이야기는 별 특별한 사건 없이 전개된다. 무슨 재미난 꺼리가 있을까 염려되던 찰나, 주인을 닮아 덜컥거리는 낡은 달구지를 느릿느릿 끌고 가는 소와 짐짝처럼 수레위에 실린 깡마른 노인을 보고 있는데 그만 목울대가 아파온다. 가끔씩 들리는 방울 소리 외에는 아무런 대사도 없이 너무도 고요한 장면. 그저 하염없이 터벅터벅 걸음을 옮길 뿐인데, 소와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조곤조곤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두 주인공에게 몰입되고 나니 이 기이한 드라마가 꽤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 그 중심엔 이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주인공, 막강 입심의 이삼순 할머니가 있다. 오랜 세월 농사꾼으로 살아온 할아버지 못지않게 시커먼 얼굴에 검버섯과 주름이 자글자글하지만, 일흔일곱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를 자랑한다.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할아버지에게 시집와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60여 년의 세월동안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변변한 옷 한 벌도 못 얻어 입고, 나들이도 못해 본 할머니. 묵묵히 농사일을 하다가도 할아버지만 보면 신세 한탄이 절로 나온다. 더구나 할머니 말엔 대꾸도 잘 하지 않는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소에게는 늘 지극정성이다. 소의 건강을 위해 사료 대신 직접 풀을 베어 여물을 주고 행여나 소가 뜯어먹는 풀이 해로울까 봐 농약도 치지 않는다. 게다가 귀가 잘 안 들리는 할아버지가 소의 방울 소리와 울음소리는 용케도 알아듣고 소의 상태를 살핀다. 졸고 있다가도 소가 머리를 나뭇가지에 부비고 있는 걸 알아차리면 지체 없이 소의 머리털을 긁어준다.

“잃어버린 내 청춘” 할머니의 지청구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세월동안 경운기나 트랙터도 없이 낫 한 자루만 손에 들고 옛날식으로 농사를 지어 온 할아버지에게 소는 생계를 유지하게 해준 귀한 농사도구이자 재산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싫은 내색 없이 고된 농사일을 묵묵하게 해내는 충직한 일꾼이자 말수적은 할아버지의 곁을 말없이 지켜준 오랜 친구이자 피붙이 같은 존재다. 그렇게 이심전심, 할아버지의 애정과 손길을 듬뿍 받아서일까, 평균 수명이 15세인 여느 소와 다르게 40년이라는 세월을 버텨온 소는 이젠 병색이 완연하지만 여전히 고된 농사일을 해내고 할아버지의 듬직한 발이 되어 준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소가 환상의 복식조가 되어 구슬땀을 흘릴수록 할머니의 한숨과 시름은 깊어만 간다. 굽은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펴고 모내기를 할 때,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풀을 벨 때, 한나절이면 끝나는 기계 대신 하루 종일 손으로 벼를 벨 때마다 할머니의 지친 심신은 할아버지를 향한 원망을 토해낸다. 그러나 들은 척 만 척 무시하거나 괜한 역정을 내는 할아버지, 그래도 굴하지 않고 연이어 터지는 할머니의 지청구. “영감을 잘못 만나서 내가 평생 이 고생이야. 아이구, 이 넘의 팔자야,” 궁시렁거리며 할아버지의 뒤통수를 쏘아 보다가도 이따금씩 웃고 마는 할머니의 모습은 귀엽기 그지없다. 가끔 자막과 함께 등장하는 유머러스한 내레이션은 할머니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와 어울려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특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직접 쑨 쇠죽을 소에게 먹일 때나, 할아버지 전용 소달구지에 모처럼 한번 앉아 가다가 할아버지의 “내려” 한마디에 쫓겨날 때 할머니의 불만은 극에 달한다. “저 놈의 망할 소 때문에…” 그런데 할머니의 이런 신세 한탄은 할아버지와 소를 향한 애정이 담긴 것이기에 웃음 뒤로 코끝이 찡해온다. 땅과 소, 그리고 농사일을 자식보다 귀하게 여기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머슴 일을 하다가 다친 다리를 치료받지 못해 앙상하게 뼈만 남은 한쪽 다리에 늘 파스를 붙이고 사는 할아버지. 절뚝절뚝 다리를 끌며 소를 몰고 가는 할아버지의 고집과 열정을 말릴 수 없는 할머니의 마음은 그저 애처롭다. 하지만, 자식 9남매를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보낸 살림 밑천인 소는 할머니에게도 귀한 존재다. 그래서 가끔씩 동네 사람들 앞에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소”라며 칭찬을 하기도 한다.
 
땅, 농부의 생명과 자존심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네 소는 통 먹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한다. 소를 살펴본 수의사는 “살만큼 살았다”고 말한다. 순간 침묵이 흐르고 낙심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혀를 찰 뿐이다. 그래도 이들은 농사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농부에게 농사란 이 땅에서 그들의 생명이 계속되는 한 멈출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팔순의 할아버지와 마흔 살의 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눈물겨운 동행은 계속된다. 일을 그만두는 순간이 바로 농사꾼 최원균이라는 한 인간의 존재가 상실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에게 고된 세월을 버티게 해준 힘은 땅에 대한 그의 신념과 그것을 실현가능하게 해준 소와의 교감이다. 그러기에 노동을 멈추면 그들의 노구는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할아버지는 아마도 직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할아버지와 소는 산으로, 들로 향한다.

그런데, 추석에 고향을 찾은 자식들은 이제 그만 소를 팔고 편하게 사시라고 성화다. 할머니의 줄기찬 잔소리에도 꿈적 않던 할아버지, 드디어 소와 함께 우시장에 간다. FTA 파동에 소 값은 이미 바닥을 쳤고 건강한 젊은 소들 사이에서 고기값도 안 나오는 늙은 소는 천덕꾸러기다. 보다 못한 동네 사람이 인정상 백만 원에 팔라고 제의하지만 우리의 최 노인, 오백만 원 안주면 못 판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물정 모르는 노인네’라며 사람들은 혀를 차지만 할아버지에게 소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생명체다. 땅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한 이 비정한 사회에서 지난 사십년의 세월을 버티게 해준 소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보루이다.

죽음 앞에서도 삶은 계속 된다
특별한 기교나 인위적인 개입 없이 담담하게 연출된 이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주인공은 할아버지와 소를 둘러싼 자연이다. 변함없이 이어지는 고된 노동 속에서 무심하게 지나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은 속절없이 아름답다. 한 점 티 없이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초록의 풀들과 붉은 고추, 누런 곡식을 살찌우는 햇살과 마른 땅을 적시는 빗줄기, 인생의 황혼처럼 쓸쓸한 노을 속에 담긴 할아버지와 소는 한 폭의 그림 같다.

계절의 순환처럼 잔잔히 이어지던 이들의 삶에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부쩍 심해진 할아버지의 두통에 의사는 “큰 병에 걸릴 수도 있으니 힘든 일 그만하시라”고 충고하고, 어느 날 들이닥칠 죽음을 준비하듯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영정사진을 찍으러 간다. 곱게 수놓인 청색치마를 차려입은 할머니와 군데군데 흙물이 들었지만 빳빳한 삼베옷을 입은 할아버지의 모습은 참 고왔지만 한편 서글펐다. 나들이 사진 한 장 없던 텅 빈 벽에는 그렇게 어색한 미소를 지은 영정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은 실제 농부였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사이가 서먹했던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자식 된 도리를 제대로 못 한 반성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감독의 정직한 카메라는 때때로 할아버지와 소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둘의 주름진 얼굴과 희미한 눈동자가, 멍한 시선과 충혈된 젖은 눈이 닮아 보일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동이 느껴진다. 늙은 소의 평생을 함께한 코뚜레를 빼던 날, 더 이상 울리지 않는 낡은 방울을 클로즈업할 때도, 비틀거리는 다리로 할아버지에게 주고 간 마지막 선물인 마당 한가득 쌓인 땔감을 비출 때도 카메라는 그렇게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이제 늙은 소의 뒤를 이어 할아버지의 손발이 되어줄 젊은 소는 새로운 코뚜레를 꿰고 딸랑딸랑 워낭을 흔들 것이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젊은 소를 길들이며 할아버지는 여전히 낫을 들고 풀을 벨 것이며, 아픈 다리를 어루만지며 담배 한 대 피울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도 내일을 향해 발을 내딛어야 하는 것처럼 죽음이 저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삶은 여전히 계속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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